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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지금, 여기

2019.06.27 11:5806.27

704호라 적힌 문 앞에 나는 있다. 낯섦이 한 꺼풀씩 벗겨진다. 초인종을 누른다. 익숙한 비명이 침묵을 스쳐간다. 문이 열린다. 서훈이 나타난다. 190센티미터의 큰 키가 기린의 목처럼 나를 향해 기울어진다. 내게서 무언가를 찾는 듯 내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그리고는 나를 안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마주 안는다. 그의 마른 몸이, 딱딱한 뼈와 근육이 내 살결을 조금씩 짓누른다. 그는 곧 무너질 모래성 같다. 그의 집은 홀로 남아 죽어가는 여왕벌의 벌집을 떠오르게 한다. 창고로 쓰이는 방 하나와 안방, 그의 방, 으로 이루어진 집에서 나는 안락함을 되찾는다. 낡은 천 소파에 앉아 몸을 뒤로 젖힌다. 남향이어서 햇빛이 고이다 못해 흘러넘친다. 오후 두 시다. 믹서기가 갈리는 소리가 난다. 서훈이 과일 주스를 만드는 소리다. 나는 베란다 바깥으로 학교를 내다본다. 그와 내가 나온 초등학교였다. 운동장은 체육 수업을 하는 아이들로 시끌벅적 하다. 서훈이 주스를 들고 옆으로 와 앉는다. 사과 주스다. 형, 사과 싫어하잖아. 내 말에 서훈은 사과가 그렇게 몸에 좋대, 하며 주스 한 컵을 한 번에 들이킨다. 달달하다. 너도 얼른 먹어.

 

날씨 너무 좋지 않니.

 

그러게. 이런 날에 늘어지게 낮잠 자면 좋은데.

 

잘래?

 

아니.

 

나는 고개를 젓는다.

 

시간이 얼마 없어.

 

무슨 시간?

 

대답을 않는다. 시선을 돌린다. 그런 게 있어. 나는 서훈의 입으로 입술을 갖다 댄다. 거칠다.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진다. 입술을 뗀다. 그의 입술은 갈라지고 트고 피가 나고 엉망이다. 형 또 입술 껍질 깠지. 그는 머리를 긁적인다. 나는 집안을 둘러본다. 머리가 아팠다. 누가 바늘 하나하나로 뇌 주름 사이를 찌르는 듯했다. 창고로 쓰이는 방에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옷가지들로 지저분했다. 잡다한 책들이 꽂힌 책장과 벽에 걸린 중학생이었을 때의 가족사진은 서훈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화장실 문을 연다. 널찍한 화장실엔 샤워부스와 변기, 세면대가 전부다. 그는 이곳에서 끊임없이 씻었을 것이다. 피가 나도록 항문을 씻고 또 씻는. 이가 갈리도록 칫솔질을 하고 또 하는. 그러다 제 풀에 지쳐 침대에 누워있다 다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나는 다시 거실로 돌아온다. 서훈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입을 감싼 그의 손을 잡고 내려놓게 한다. 불안해. 그는 중얼거린다. 심장이 빨리 뛰어. 긴장 돼. 나는 약을 먹었느냐고 묻는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사람을 죽일 지도 몰라. 그는 중얼거린다. 그럴 거라는 예감이 들어. 나는 그의 가슴으로 손을 가져간다. 맥박을 느낀다. 이토록 생생할 수가 없다. 꿈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건 현실이야. 현실이어야만 했다.

 

 

 

눈을 뜬다. 두통은 더 심해진다. 나는 양 관자놀이를 검지로 지그시 누르며 원 모양으로 문지른다. 나는 싱크대 앞에 서있다. 어지럽다. 비틀거리며 식탁 모서리를 잡는다. 몇 번째지. 내 계산이 맞다면 네 번째다. 타임루프에 갇혀 처음으로 돌아간 지. 그때마다 나는 싱크대에 서 있는 채로 똑같은 하루를 맞이한다. 옷이 물에 젖어 축축하다. 물이 붉다. 묻은 피를 닦아낸 탓이다. 활짝 열린 안방 문을 들여다본다. 시체가 있다. 서훈의 누나와 아버지다. 망치를 지칠 때까지 휘둘렀으니 안 죽는 게 이상한 거였다. 그는 이 사실을 모른다. 그는 자신의 가족이 무사히 유럽에 도착해 여행을 즐기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안방 문을 걸어 잠근다.

 

서훈에게 가야 했다. 나는 거실 빨랫대에서 옷을 걷는다. 물에 젖은 셔츠를 벗고 새 옷을 입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서훈의 집으로 향한다. 돌아가는 풍경은 똑같다. 아파트 지하실에서 화단으로 올라온 삼색고양이와 검은 고양이가 나를 보고 야옹, 말을 건네는 것도 같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703동 2층 집 아줌마가 보인다. 경비 아저씨는 분리수거를 할 포대자루를 펼쳐놓는다. 구형 아반떼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고양이들을 스쳐 지나간다.

 

나는 핸드폰을 킨다. 그에게서 카톡이 와있다. 불안하다, 죽을 것 같다, 죽고 싶다, 비슷한 말들로 형성된 일종의 지옥이다. 그러다 나는 걸음을 멈춘다. 사거리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그가 서성인다. 내 기억으로 이 시간에 그는 집에서 세 시간째 샤워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타임루프를 반복하다보면 엇나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나,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서훈을 부른다.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나는 그에게로 달려간다.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밝다. 그러나 미소를 한껏 뽐내던 그의 안면근육은 이내 어둠 속으로 부서져 내린다. 뭐하고 있었어? 나는 묻는다. 그는 그냥, 너 보고 싶어서, 작게 말한다.

 

나도 형 보고 싶었어.

 

우리는 걷는다. 시답잖은 얘기들에 웃기 바쁘다. 마지막 미소를 맞이하는 사람들 같다.

 

공원을 지나 대화역으로 향한다.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맑다. 햇빛은 뜨겁지 않다. 살결에 부드럽게 녹아드는 빛줄기에 따듯해지는 기분이다. 우리는 서훈의 집에 도착한다. 그의 집은 언제 봐도 한결 같다. 거실 벽면에 걸린 먼지 쌓인 예수 십자가는 부적 마냥 존재하는 듯하다. 필요할 때만 찾는, 그래서 신앙이란 게 생겨날 수 없는, 믿는 자의 간절함과 베푸는 자의 자비심이 오고갈 수 없는 불신의 관계. 거래라고 볼 수조차 없는. 나는 그가 몇 번이나 저 십자가에 대고 기도를 했을지 궁금하다.

 

그의 입술은 오늘도 피가 나고 갈라지고 튼 상태다. 나는 립밤 하나를 건넨다. 입술 그만 뜯고 이거 발라. 내 말에 그는 천천히 머리를 주억거린다. 그러나 바로 바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립밤을 다시 가져와 뚜껑을 연다. 그의 입술에 립밤을 천천히 바른다. 그의 높은 콧대와 강낭콩 모양의 콧망울, 그 아래로 내뻗은 인중이 시야에 기웃거린다. 아랫입술 한 번, 윗입술 한 번. 다시 아랫입술 한 번, 윗입술 한 번. 그리고 나는 립밤을 그의 손에 쥐어준다. 쥐어주며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갠다. 혀와 혀가 뒤섞인다. 서로의 언어를 속삭인다. 낳지 못할 말들의 맛을 엿본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나는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지금은 어때? 좀 나아졌어?

 

응. 덕분에. 근데 기복이 심해.

 

그는 내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손톱을 잘라주겠다고 한다. 너 아직 엄마한테 손톱 잘라달라고 하지? 응. 나는 대답한다. 살 잘릴까 무서워서 혼자 못하겠어. 엄살은. 서훈은 내 왼손을 잡는다. 그리고 차례차례 손톱을 자르기 시작한다. 아래 깔린 신문지에 잘려나간 손톱들이 나뒹군다. 딱, 딱, 잘려나가는 손톱들을 나는 한 데 모은다. 쥐가 손톱을 먹으면 사람이 된대. 내 말에 서훈은 그래? 대답한다. 하지만 먹을 쥐가 없는 걸. 그러게. 발도 줘봐. 발톱도 자르게. 나는 발을 내민다. 다리 짱 길다. 나는 발톱을 자르려는 그의 손길을 피해 발을 꼼지락거린다. 그가 발바닥을 간질인다. 나는 깔깔거리며 왼쪽 발을 내민다.

 

배고프다, 밥 먹자.

 

뭐 먹을래?

 

엽떡에 피자스쿨.

 

그러자, 나는 주문을 하는 그를 바라본다. 옆에서 본 얼굴이 더 잘생겼다고 생각한다.

 

아, 발톱을 너무 바짝 깎은 탓에 나는 작은 비명을 내뱉는다.

 

미안. 괜찮아?

 

그는 마저 내 발톱을 다 자른다.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우리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기 시작한다. 매운 떡볶이 하나에, 조그만 피자 한 조각에 나는 그와 함께 있음을, 살아있음을 자각한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서 아무 것도 아닌 나를 발견한다. 우리는 음식을 해치우고 거실 바닥에 드러눕는다. 그리고선 숨 막히도록 그를 꽉 끌어안는다. 샴푸 냄새가 풍겼다. 나보다 키가 20센티미터는 더 커 나는 그를 안은 게 아니라 매달린 모양새가 되었다. 마치 뱃속의 쌍둥이 태아처럼 우리는 각자의 눈동자를 통해 자기자신을 비춰본다.

 

맞다. 소설은 얼마나 썼어?

 

나는 묻는다. 그 말에 서훈은 한숨을 내쉰다.

 

영 진도가 안 나가. 대회 마감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슨 소설이랬지?

 

퀴어 소설.

 

우리 얘기를 쓰면 되잖아.

 

나는 일어나서 그를 내려다본다. 다시 그의 가슴으로 손을 가져간다. 여전히 맥박은 조용히 뛰고 있다. 나는 손을 무른다. 서훈은 문예창작과 학생이었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다. 멋진 꿈이야. 나는 책 읽는 사람이 아니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형 소설 완성되면 보여줘. 꼭 읽어볼게. 그는 응, 하며 작게 웃었다. 나는 먹다 버린 사과 같은 그의 소설들을 대충 읽어보기는 했다.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교과서에서 보던 소설과는 많이 달랐다. 간간이 불편하고 불쾌한 장면이 툭툭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쓴 약을 들이킨 사람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서. 제목은 ‘나’였다. 게이와 트랜스젠더가 등장하는. 주인공은 트랜스젠더 아이를 죽인 동생 대신 용서를 구하러 다닌다. 자해를 하기도 한다. 자신의 항문을 도려내려고 식칼 끝을 세우기도 한다. 이후 전개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소설을 버리고 새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므로.

 

휴학을 신청했다. 휴학을 한다고 말한 날,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글을 표절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고백. 글틴이라는 청소년 문학 사이트에서 탈퇴한 회원의 글을 그대로 긁어왔다고. 주인공 이름이나 몇 가지 묘사만 짜깁기하며 바꾼 채였다. 운 나쁘게도 이미 그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그 사실을 교수에게 알렸지만 교수는 그냥 넘어가자고 했다. 그리고 그는 휴학을 신청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 얘기였단 말이야.

 

그는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았다.

 

누가 봐도 우리 얘기였어. 표절은 내가 한 게 아니라 걔가 한 거라고.

 

 

 

싱크대엔 비누 거품이 부풀어 오른다. 나는 잠긴 안방 문의 문고리를 한 번씩 돌려본다. 문에 귀를 갖다댄다. 무슨 소리가 들려오길 가만히 기다린다. 그러나 정적이 나를 마주할 뿐이다. 그의 누나와 아버지가 찾아온 건 일주일 전이었다. 그들은 내 집에 무단으로 들어와 내게 서훈과 헤어질 것을, 멀리 떠나기를 강요 했다. 그의 아버지는 식칼을 들고 있었다. 내 말대로 안 하면 찔러 죽인다는 심산이었다. 그의 누나 역시 제 아비와 똑같은 말을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를 아웃팅 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소문 한 번 나면 너도 이 동네나 저 동네나 못 살 걸? 순식간이었다. 나는 기다려보라 한 뒤 망치를 가져왔다. 먼저 그의 아버지의 손을 쳐 칼을 빼앗았다. 그리고 휘둘렀다. 저항이 강렬했지만 나 역시 만만찮은 체구였기에, 거기다 망치까지 쥐었기에 물러나는 일은 없었다. 그들이 쓰러진 건 팔에 쥐가 오고 나서였다. 그들은 피바다를 이루며 서로의 몸을 베개 삼아 누워있는 상태였다.

 

나는 길을 나선다. 그는 어제처럼 마중 나와 있지 않다. 집으로 가 초인종을 누른다. 그가 긴 목을 내빼며 나를 내다본다.

 

우리 롯데월드 가자.

 

나는 생뚱맞다는 듯한 그의 얼굴을 뒤로 하고 얼른 옷을 입으라고 재촉했다.

 

갑자기 웬 놀이공원?

 

우리 한 번도 안 가봤잖아. 가보자.

 

롯데월드엔 사람이 얼마 없었다. 평일 한산한 오후라 그런지. 바이킹을 탄다. 내려갈 때의 그 떨림, 온 몸을 내던지는 듯한 짜릿함을 나는 느낀다. 놀이기구를 몇 개 타지도 않았는데 두통이 또 다시 엄습해온다. 머리가 깨질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시 식당 구석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그는 공원 외 약국에서 아스피린을 사다준다. 하지만 먹어도 별 효과는 없는 듯 했다. 나는 뒤로 몸을 젖힌 채 벽에 머리를 댔다. 눈을 몇 번 감았다 뜬다. 서훈의 얼굴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찬 물 마시면 좀 낫지 않을까. 그는 물을 떠와 내게 내민다. 이가 시릴 정도의 냉수를 나는 한 번에 마셔버린다. 그가 내 손을 잡는다.

 

죽지 마.

 

그가 말한다.

 

내가 왜 죽어?

 

그렇지. 안 죽지. 그래도

 

그는 침을 삼킨다.

 

죽지 마.

 

나는 피식 웃는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그는 웅얼거린다. 너 기억나지? 내가 너한테 책 보내준 거. 알지. 내가 쓴 소설들 묶은 소설집이었잖아. 그거 인쇄해서 파는데 네가 갑자기 페이스북 메시지로 내 책을 사겠다면서 연락이 온 거야. 기억나지? 응. 그래서 깜짝 놀랐지. 고등학교 2학년 때 첫 짝꿍이었던 점을 빼면 너와 아무런 접점이 없었는데. 이후에 인사는 하고 지냈지만. 내 소설을 보여줄 만큼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친하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네가 책을 사겠다고 2년 만에 연락을 해온 거야. 놀라면서도 엄청 기뻤지. 그때 난 널 좋아했으니까. 2017년, 그러니까 재수를 하던 시절에 참, 꿈 많이 꿨어. 네가 얼마나 꿈속에서 나를 괴롭게 했는지 몰라.

 

왜?

 

횡단보도에 있었는데, 네가 자전거를 타고 나보다 먼저 쌩하니 가버린 거야. 나는 널 붙잡으러 달렸고, 마침내 따라잡았지. 그리고 나서 내가 고백했어. 너 좋아한다고. 그러면서 나는 안으려고 했는데 너는 ‘난 게이 같은 거 아냐. 그만 쫓아와.’ 하면서 쌩하니 가버렸지.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누가 보면 누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울었지. 그래도 후회 없는 울음이었다. 자고나면 베개가 축축했어. 눈가는 눈물로 말라붙어 잘 떠지지도 않았지. 그런데 그런 네가 내 소설을 읽다니.

 

엄청 좋았겠다. 그치?

 

나는 조금 누그러진 두통에 바로 앉는다.

 

그러니까 죽지 마.

 

자꾸 누가 죽는다고 그래?

 

내 반문에 그가 웃는다. 그러면서 내 손을 잡는다.

 

우리는 놀이기구 두 개를 더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이 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착 달라붙어 누웠다. 영원히 오늘이 반복되는 세상에선 그를 잃을 일이 없다. 나는 그의 배를 쓰다듬는다. 다시 가슴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맥박이 점차 느려진다.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나를 휘감는다. 어둠이 날개를 펼친다.

 

 

 

일어나자마자 아스피린을 챙겨 먹는다. 두통이 심해졌다. 물이 쉽게 넘어가질 않는다. 난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 알약을 삼킨다. 쓴 뒷맛에 나는 얼굴을 찌푸린다. 나는 서훈을 만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향한다. 평화롭다. 불행마저 비켜갈 그런 새파란 날이다. 나는 미리 전화를 걸어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는 공원 정자에 앉아있었다. 게임에 몰두해있어 내가 다가가는데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우리는 정발산역의 웨스턴돔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영화를 볼 것이었다. 콜 미 바이 유어네임. 퀴어 영화다. 우리는 손을 잡는다. 영화관은 한산하다.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8관으로 향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내 우리는 영화 내용에 집중하기 보단 서로의 손을 만지는 데 집중한다. 손가락이 이렇게 길었나, 가느다랬나, 투박했나, 컸나. 암흑 속에서 우리는 사랑에 목숨을 바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된다. 영화가 끝났는지도 모르게 끝났다.

 

하염없이 걷는다. 광장을 돌아보고, 호수공원을 빙빙 돌기도 한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인공 호수를 바라보며 우리는 진실 된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 그 모순을 우리는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우리는 사주, 타로, 손금을 보는 작은 가게 앞에 다다른다. 사주 한 번 봐볼래? 그가 묻는다. 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선다. 파마가 풀려 아무렇게나 뻗친 머리의 중년 여성이 우리를 맞는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 한자 등을 알려준다. 그녀는 그것들을 가지고 사주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이미 죽었어야 하는 팔자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렇게 살아있는데. 그러게요. 그녀는 연신 이상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러고선 서훈에게는 꽤 좋은 사주에 속한다며 자세히 내용을 풀이해준다. 나중에 자식 덕을 많이 보겠네요. 자식이요? 이번엔 우리가 고개를 갸우뚱, 한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중얼거린다.

 

가게를 나온다. 서훈은 내게 저 아줌마 말을 믿냐고 묻는다. 나는 아니, 대답한다.

 

말이 안 되잖아. 이상한 말만 잔뜩하고. 괜히 돈 날렸네.

 

아냐, 얼추 들어맞는 부분도 있었어.

 

어느 부분?

 

그는 더 이상 말을 않는다.

 

 

 

몇 번째일지 모르는 날, 나는 립밤을 그에게 건넨다. 입술 껍질 그만 뜯고 이거 발라. 문득 생각난 건데, 그가 말한다. 너는 동성애를 찬성하니? 어이없는 물음에 나는 빵 터져 웃는다. 그건 갑자기 왜? 내가 싫어하는 국어교사가 그런 말을 한 적 있거든. 동성애 찬반 토론을 열었던 거야. 수업시간에 동성애는 수간, 소아성애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그래서? 난 그때 잘 몰랐어. 더군다나 다른 조 토론이었고. 근데 거기에 어떤 애가 있었는데, 걔가 반대한다는 애들 논리를 다 씹어먹는 거야. 그러면서 애초에 이런 토론은 하지 말아야 되는 거라면서 선생까지 멕인 거지. 그리고 토론이 끝나고 조사를 했어. 동성애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 찬성이 11명이고 반대가 10명이었지. 난 그땐 많이 찬성하네,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반대가 너무 많은 거였어. 그리고 그 어떤 애는 토론 끝나자마자 게이로 몰렸고.

 

걔랑 지금도 연락해?

 

걔, 죽었어. 그 해에.

 

왜냐고 물어보려다 그가 덧붙인다.

 

자살?

 

응.

 

진짜 게이였어?

 

그건 몰라.

 

자살이 안부인사에 포함된 건 꽤 오래 되었다. 이쪽에서는. 다음에 만났을 때 죽지 않고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므로. 살아남았구나, 인사말을 우린 매 순간 1분 1초 건넨다. 걔들은 죄책감을 가지나. 누구? 그가 묻는다. 걔를 게이로 몰아간 애들 말이야. 그가 하하 소리 내어 웃는다. 있을 리가. 걔들한테 우리는 그냥 징그러운 벌레 유충이야. 망고 파리 마냥 자기 몸에 기생해서 제 살을 파먹고 사는 더러운 벌레 유충 말이야.

 

있잖아. 내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아?

 

내가 묻는다.

 

다른 남자애 사귀겠지? 아마.

 

잘 생각했어. 나 따라 죽는다, 도망간다, 뭐 그런 얘기할 거면 때릴 거였으니까. 내가 죽어도 형은 잘 살아야 돼. 나보다 더 잘생기고 더 몸 좋고 더 성격 좋은 애 만나서 기억에서 나를 지워버려 줘. 영원히 잊고 살란 말이야.

 

그래. 약속할게.

 

그가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갑자기 누나하고 아빠 보고 싶다.

 

왜?

 

그가 허공을 바라다본다.

 

죽여 버리고 싶어.

 

 

 

싱크대 앞에 선다. 두 손과 윗옷이 물 천지다. 물이 붉다. 개수대로 내려가는 물이 꼬르륵 소리와 함께 빨려 들어간다. 쇠비린내가 풍긴다. 나는 안방 문을 열어젖힌다. 썩어가는 시체 두 구가 보인다. 나는 서훈에게 전화를 건다. 지금 집으로 올래?

 

나는 그를 기다린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인터폰으로 서훈임을 확인한다. 천천히 현관문으로 다가간다. 문을 연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다. 무슨 일이야? 나는 그를 안방으로 인도한다. 그가 안방 문지방을 밟는다. 그는 시체 두 구를 본다. 자신의 누나와 아버지를. 나는 무서움과 억울함에 떠밀린 울음을 토해낸다. 온 마음으로 운다. 눈물샘이 찢어질 만큼 눈물을 흘린다.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

 

미안해.

 

나는 죽어야 해. 경찰에 신고해도 좋아. 아니, 그 전에 죽게 해줘.

 

서훈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다. 나를 안는다.

 

죽지 마. 내가 죽지 말랬잖아.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는 고개를 들고 그를 올려다본다.

 

우리 모두의 복수야. 복수라고. 네가 잘못한 게 있다면 저런 사람들을 가족으로 둔 나를 만난 거, 그거 하나야. 난 알고 있었어. 네가 저 사람들을 죽이리라는 걸. 네가 저 사람들 때문에 죽을 이유는 없어. 그런데 왜 죽었니. 죽지 말라고, 죽지 말라고, 계속 말했잖아. 왜 죽었니. 왜 죽었어.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타임루프에 휘말린 건 네가 아니라 나야. 너는 내 타임루프 속의 한 등장인물일 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저 사람들을 죽이고, 얼마 안 있어 자살했어.

 

그의 눈시울이 새파란 빛으로 반짝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자정까지 2시간을 남겨 두고 있다. 우리는 아파트 옥상에 서있다. 얼어붙은 달이 빛을 흩뿌린다.

 

자정이 넘어가면 다시 너는 돌아갈 거야. 내가 타임루프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이 하루는 영원히 계속 될 거야.

 

벗어나. 나 때문에 오늘을 매일 살지 마. 그러기엔 너무 끔찍한 하루야.

 

벗어나려면 네가 자살하는 수밖에 없어. 몇 번을 시도했거든. 타임루프에 걸리려고. 근데 네가 그때마다 더 일찍 죽거나 하는 바람에 루프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어.

 

그럼 죽어야지. 죽을게.

 

내가 왜 타임루프에 휘말렸는데 그런 소릴 해?

 

그는 울먹거리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뱉는다.

 

어쩌다 타임 루프에 걸린 거야?

 

나도 몰라. 잠에서 깨니까 네가 저 사람들, 을 죽인 날이고 네가 죽었을 때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 너는 내 타임루프 속 인물이고. 나는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다 잠든 것밖에 없어. 그게 루프에 걸리기 전 내 마지막 기억이었어. 실패하고 나선 계속 기도를 드리다 잠에 빠지려고 했지. 그러다 성공한 거고. 그래서 다시 널 만난 거고. 신이 주신 기회야.

 

그래, 나는 죽는구나.

 

나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인다.

 

다시 침묵이 도래한다.

 

형. 내가 밉지 않아? 죽이고 싶지 않아? 그래도 누난데, 그래도 아빤데.

 

‘그래도’란 말이 얼마나 많은 우리를 죽여 왔는지 아니. 넌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나중이 아니고 지금.

 

미안해.

 

나한테 미안해하지마. 너 자신한테 미안해해. 넌 죽으면 안돼.

 

형, 형은 형 인생 살아야지. 계속 여기 갇혀서 나랑 지낼 거야?

 

내 삶의 이유를 뺏어가지 마.

 

찬바람이 드러난 맨살을 꼬집는다. 나는 서훈의 가슴 위에 손을 얹는다. 맥박이 느껴진다. 심장이 쿵쿵 뛰고 있다. 살아있다는 것, 형은 온전히 살아있다는 것에 문득 감사함을 느낀다. 이름 모를 신에게. 천천히 난간 가까이로 다가간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참 멀다. 나는 중얼거린다. 일로 와. 위험해. 서훈이 나를 부른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본다. 형, 즐겁게 살아. 내가 말했잖아. 나보다 더 잘생기고 더 몸 좋고 더 성격 좋은 애 만나서 기억에서 나를 지워버려 달라고, 영원히 잊고 살라고 했잖아. 나는 그에게서 허공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가 내 이름을 외친다. 발을 내민다. 몸이 기우뚱하며 아래로 떨어진다. 나는

 

 

 

머리가 깨질듯 아프다. 아니, 머리는 이미 깨졌다. 그때서야 나는 줄곧 나를 괴롭히던 두통의 정체를 깨닫는다. 두개골이 부서져, 척추가 부러졌을 것이다. 손을 움직여보려 애쓴다. 차가운 아스팔트가 만져진다. 나는 눈길을 위로 옮긴다. 옥상이 보였다. 형은 이제 나 같은 못난 인간을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그래야 한다. 나는 몸을 어떻게든 움직여보려 애쓴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다. 가만히, 조금씩 밀려드는 고통을 나는 되새김질 한다. 제발, 죽어야 해. 살지 마. 나는 내 자신에게 그렇게 속삭인다. 서훈을, 그를, 형을 떠올린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을 돈다. 안돼, 안돼, 안돼, 그 말을 계속 반복한다. 그래, 난 살아선 안 돼. 살지 마.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점차 멀어진다. 그리곤 이내 들리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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