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노화의 메카니즘

2019.06.09 12:2706.09

“효주 씨, 놀라지 말고 내 말 잘 들어요. 효주 씨 할아버지 돌아가신 거 자의가 아니었어요.”

“네? 안락사 동의서에 싸인이 있었잖아요?”

“그 동의가 가짜였어요. 효주 씨 삼촌하고 이사가 짜고 서류를 조작한 거예요. 할아버지는 회복 중 이셨어요.”

“뭐라고요? 그럼 할아버지가 살해당한 거란 말이에요? 이상하다 생각은 했는데... 흐흑”

 

남자는 효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효주는 흐느껴 울다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다짐했다.

 

“우리 할아버지 아직 100살밖에 안되셨는데, 너무 억울해요. 성진 씨, 저 꼭 복수할 거예요. 증거를 찾아서 전부 부셔버리고 말겠어요!”

“걱정 말아요 효주 씨. 내가 회사 찾는 것도 도와주고 옆에서 지켜줄게요. 우리 함께해요”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의 옆얼굴이 클로즈업되며 반짝이는 효주의 귀걸이와 성진의 손목 커프스가 보였다. 두 제품 아래로 '클래식한 기품과 모던한 감각의 주얼리. 제품이 궁금하시면 지금 바로 클릭하세요'라는 문구가 지나갔다.

 

“고마워요 성진 씨. 나... 지금 성진 씨가 옆에 있어줘서 너무 힘이 돼요”

 

성진이 효주의 눈물을 닦아주고 둘의 얼굴이 서서히 가까워졌다.

 

“지랄들을 한다. 100세씩 처먹었으면 죽어야지 뭐한다고 더 살아”

 

박 실장이 국에 밥을 말다가 국밥집에 높이 걸린 화면 속에서 성진과 효주가 키스하는 것을 보며 욕을 했다. 앞에 앉아 국을 뜨던 27세 청년 수현이 박 실장에게 물었다.

 

“실장님은 오래 사는 거 싫으세요?”

“오래만 살면 뭐해. 나이 들어 좋은 게 있어야 오래 사는 게 좋은 거지”

“전 늙는 건 괜찮은데요, 대신 돈이 있는 채로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돈이 없으면 젊거나 늙었거나 고생하는 건 마찬가진 것 같아요”

“야, 넌 아직 젊으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야. 왜 젊음을 돈 주고도 못 산다고 하겠냐. 하긴 돈이 많으면 좋은 거 처먹고 힘든 일도 안 해서 덜 늙고 덜 아플 수는 있겠다”

 

티브이에서는 성진과 효주의 키스가 끝나고 성진, 효주, 효주의 삼촌과 이사장의 얼굴이 교차하면서 제공회사 '퓨처스타일 메디컬'이 큰 글씨로 하단을 장식했다.

 

의자에 걸터앉아 국밥을 들이켜는 박 실장은 배가 불룩 나왔고 옆머리를 넘겨 빈 정수리를 가려보려 애쓴 모습이었다. 그는 마흔밖에 되지 않았지만 30대나 심지어 20대처럼 보이는 또래의 마흔과 비교하면 요즘 시대에는 50대 이상처럼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사장님, 뉴스 좀 봅시다”

 

드라마가 끝났기 때문에 사장은 박 실장의 요청대로 채널을 돌려주었다. 수현이 물었다.

 

“실장님 괜찮은 거 없어요? 저 방학 끝나기 전에 바짝 해야 되는데요.”

“이젠 단기가 잘 없어. 편의점은?”

“야간에 무인으로 바꾼데요. 본사 방침이라서… 주간 하기는 하는데 그건 페이가 낮잖아요. 창문닦이나 페인트는 없어요?”

“스파이더 로봇이 대세잖아. 건물 안에 있는 사람도 불편해하고. 이제 사람으로 하려면 무슨 보험에다가 하여튼 복잡해졌어.”

“물류는요? 잠깐만 할 수 없을까요?”

“말도 마. 웨어러블 로봇인가? 그거 없으면 발도 못 붙여”

“실장님네 회사는 그런 거 안 해요?”

“우리 사장이 어디다 투자하는 인간이냐. 물류사에서 공용 앱 만든 거 알지? 앱으로 신청할 때 로봇 체크 안되어있으면 아예 걸러버려. 요즘 그런 앱 때문에 소개소도 필요가 없다니까. 나도 이거 그만두고 다른 데로 옮기든지 해야 될 것 같다.”

 

수현은 남은 햄을 집었다. 밥을 다 먹은 후 박 실장이 계산을 하면서 어떤 일이라도 들어오면 곧 알려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고 수현은 감사를 표했지만 별 기대 없이 멍한 상태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현은 중심가에 있는 큰 편의점으로 들어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마트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규모가 있었는데 입지가 좋아 늘 사람이 북적였다. 사장이 없을 때는 이어폰을 끼고 예능이나 음악프로를 들었지만 오늘은 사장이 나와있었기 때문에 매장에 틀어놓은 뉴스를 강제로 들어야 했다. 손님 앞에서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무례해 보인다고 하면서 손님들이 관심 없는 뉴스를 강제로 듣는 것은 무례한 일이 아닌지 의문이었다.

 

손님의 흐름이 끊이지 않고 몇 시간 지속되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잠시 뜸해지자 사장이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수현이 어떤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을 것인가 고민하던 때에 휴대폰 메시지 알림이 떴다.

 

'박실장 : 아는 사람 통해서 받은 건데 이거 괜찮은 거 같다.  제약회사 <퓨처스타일 메디컬> 노화 관련 신약 임상시험 참여자 모집. 30세 미만 신체건강 지병 없을 것. 신청 및 상세 www.futuremedical... '

 

수현은 박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자 봤지? 식약청 승인받기 전에 하는 거래. 주사 몇 번 맞는데 페이가 50이야 50! 나이만 안 걸렸으면 내가 하고 싶다. 경쟁률 장난 아닐 것 같은데 얼른 지원해봐.”

 

박 실장의 흥분한 설명을 들으며 수현은 인원이 차 마감될까 봐 즉시 관련 사이트로 들어가 신청 양식을 제출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편의점 사장이 돌아와 수현을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사장만 없으면 농땡이지?”

 

사장의 눈초리에 수현은 야간 교대가 올 때까지 저녁을 먹지 못하고 일을 했다.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수현은 <퓨처스타일 메디컬>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자 국내 3위 안에 드는 제약회사로 몇 년 전 노화방지 신약개발로 엄청나게 주식이 상승했다는 소식 아래에 각종 기부와 사회적 공헌 기사가 줄줄이 떴다.

 

”한국사회에 안락사가 도입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선진국에 비해 시행률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은 올해 22년 연속 세계 최장수 국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이런 사실은 오히려 불명예라고 일각에서는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노인국가라는 오명을 당분간은 씻을 길이 없어 보입니다.

 

전문가 모시고 초고령사회 이대로 괜찮은가, 우리나라의 안락사 비율이 왜 이토록 낮은가 등을 진단해보는 시간 갖겠습니다. 서울대 화학과 출신이시고 식약처를 거쳐 현재 퓨처스타일 메디컬사의 신약개발팀장이자 충남대 대학원 교수로 계신 김형신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버스 라디오에서 퓨처스타일 메디컬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수현은 귀를 기울였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드리겠습니다. 왜 이렇게 시행률이 낮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 시행절차가 까다롭고요 유교국가의 잔재로 부모님한테 불효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도 한 요인인 것 같습니다. 입원에서 약품 처방, 장례에 이르는 비용 문제가 큰 것도 큰 장애요인이고요.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지금과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고 봅니다”

 

”절차만이 아니라 불효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심리도 문제점으로 지적하셨는데요.”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간호 등에 지쳐 노인을 살해하거나 학대하는 경우가 급증해왔죠. 그렇지만 부모를 죽인다는 주변의 눈이 무서워서인지 기타 선진국과는 달리 안락사는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노인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안락사를 터부시 하는 경향도 강하고요.”

 

”아까 말씀하신 비용 문제 때문은 아닐까요?”

 

“예, 그것도 전혀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실제로 절차가 복잡하다 해도 일단 신청을 하면 기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입원비용, 검사비용, 약제의 구매 각 단계마다 돈이 들지요. 그리고 병원에서는 장례를 따로 치를 수 있게 하지 않고 자기들 병원에서만 가능하게 패키지화하고 있죠. 한꺼번에 목돈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선뜻 안락사를 택하지 못하고 그저 노환으로 자연사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말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용을 못하는 것이죠. 이는 인간의 존엄성 관점에서 볼 때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가 일종의 살인을 방조하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쪽의 저항도 만만치 않지 않습니까?”

 

”네, 전통가치를 중시하는 보수단체나 생명은 신이 주신 것이다라고 하는 종교단체에서 특히 반대하고 있지요. 자연주의 단체에서도 자연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인위적으로 앞당긴다고 비난이 거세고요. 이대로라면 90세 이상 노인율은 물론이고 100세 이상 노인 비율도 세계 최고인 초고령 국가로서의 상태는 이대로라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수현은 인터넷 검색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퓨처스타일 메디컬이 크고 좋은 회사라는 것을 확신했다. 단기 알바인데도 홈페이지의 조회수는 새로고침 할 때마다 몇백 단위씩 올라가고 있었다.

 

일주일 후 서류 합격자 발표를  홈페이지에서 조회 하면서 수현의 손이 떨렸다.

 

'귀하는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2차 신체검사는 아래와 같이 진행됩니다.'

 

수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건강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2차는 쉽게 통과할 것 같았다.

 

신체검사는 강남의 고층 빌딩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통과된 사람만 최종 대상자 면접을 한다고 안내가 되어 있었다. 일반 아르바이트에 비하면 번거로운 절차였지면 주사 한 번에 50이라는 보수에 수현은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신체검사를 진행하는 건물은 퓨처스타일 사옥은 아닌 것 같았다. 여러 명이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는 자동 회전문을 지나자 대리석 돌로 마감한 로비가 나타났다. 벽면에는 무엇을 그렸는지 모를 큰 그림이 걸려있었다. 벽면 양 옆의 복도로 들어가야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는데 그 앞은 카드를 찍어야 열리는 게이트가 있었다. 사원증을 찍고 자유롭게 지나가는 사람들 근처에서 수현은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어떤 사람이 안내데스크에 묻는 소리가 들렸다.

 

“퓨처스타일 메디컬...”

“게이트 지나 엘리베이터 탑승하셔서 6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퓨처스타일 메디컬 지원자 이쪽으로 오세요”

투피스 정장을 입은 안내원이 한쪽 게이트를 열어주면서 외쳤다.

 

수현과 주변을 서성이던 무리들은 안내원이 가리키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거기엔 1층과 주차장, 그리고 P층 표시 말고는 층수 버튼이 없었다. 안내원이 카드를 태그 하자 층수 안내 화면에 '6F'라는 표시가 뜨면서 영어 음성으로 '식스 플로어' 하고 안내가 나왔다. 안내원은 문이 닫히기 전에 재빨리 엘리베이터 밖으로 빠져나갔다.

 

4층에서 담뱃갑을 든 사람이 탔다. 그는 엘리베이터 안의 많은 사람을 보고 움찔하더니 조심스레 탑승하여 P층을 누르고 담뱃갑을 탁탁 치며 위를 노려보았다. 수현이 잠시 열려있던 문 너머로 보니 4층의 사무실은 공실인 것 같았다. 더 안쪽의 구조는 알 수 없었지만 먼지로 부옇게 된 통창으로 봐선 꽤 오랜 시간 비어있던 것 같았다.

 

6층이 되자 담배를 든 사람 빼고 모두 내렸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이 설문지를 건넸다. 설문지 작성을 마친 후 신체검사를 하고 접수처에 내면 된다고 했다. 수현이 일체형 책걸상에 앉아 설문지를 보니 깨알 같은 글씨로 앞뒤 가득 세장에 걸쳐 질문지 있었다. 나이, 가족사항, 본인을 비롯한 혈연들의 병력, 평소의 식습관 운동습관 생활 패턴 주변 환경 등등 어린 시절부터 단계별로 인생의 모든 것을 체크하는 느낌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입 시험장에 온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간이 책상에 앉아 설문지를 적고 있었다.

 

종이의 윗면에는 빨간 글씨로 '기재하는 모든 사항은 사실이며 작성자는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 사실과 다르게 작성하여 회사에 해를 끼쳤을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다'라는 경고문구가 적혀 있었다. 수현은 많은 칸을 '알 수 없음'으로 체크했다. 작성을 마치고 신체 검사대로 가자 간호사가 설문조사 마지막에 붙은 종이를 가져갔다. 바닥에 테이프로 붙여 놓은 화살표를 따라 움직이며 키, 몸무게, 피하지방 검사, 혈압, 시력, 앉았다 일어서기 등의 검사를 받았다. 청진기를 든 의사가 숨 쉬는 것을 검사하고 배나 관절을 이리저리 두드려보거나 눌러가며 종이에 검사 결과를 썼다. 마지막으로 채혈 및 소변 채취를 하고 나서 종이를 접수처에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

 

접수처에서는 신분증을 요구하여 복사본을 만들어 서류와 같이 철한 후 접수가 완료되었다고 했다. 수현이 앞에서 기다렸지만 더 이상 안내가 없었다.

 

“저…이 중에서 몇 명이나 통과돼요?”

“그건 때마다 달라서 모르겠어요”

“연락은 언제쯤...”

“저흰 신체검사 위탁만 받은 거라 그건 모르고요, 아마 이번 달 내로는 가지 않을까요?”

 

접수처 직원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수현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수를 보면 2차 검사자는 몇 백 명에 이를 것 같았다. 단기 아르바이트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은 처음 보았다. 입구에서 안내하던 정장 입은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이거 되면 50만 원 받는 거 맞죠?”

“저는 접수 안내 교육만 받아서요, 그런 건 회사에다 직접 물어보셔야 될 것 같아요”

 

수현은 터덜터덜 건물을 나왔다. 여기 지원하느라 하루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뺐는데 헛수고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장에게 밉보인 것과 일당을 날린 것에 화가 났다.

 

신체검사를 한 지 3주가 지나도 아무 소식이 오지 않았고 지원 접수 사이트는 사라지고 없었다. 편의점 사장은 야간을 무인 판매로 바꾸었다. 사장은 낮 시간도 일부 시간대를 무인화하거나 아르바이트 한 명을 줄여야겠다고 했다. 수현보다 더 젊고 싹싹한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남을 것 같았다. 수현은 계속해서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아보았다.

 

신체검사를 한지 정확히 28일째가 되는 날 문자 메시지가 왔다.

 

‘신체검사에서 적합성 통과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최종 면접장소는 …’

 

수현은 기뻐서 소리를 쳤다. 고시원 옆방에서 시끄럽다고 쿵하고 벽을 두드렸다. 수현은 건강으로 치면 자신만 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면접은 순식간에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면접장소는 광화문의 '퓨처홀딩스' 빌딩 11층이었다. 직원 휴게실 같은 곳에서 대기했는데 정원처럼 꾸민 야외 테라스가 있고 다른 쪽은 통유리로 광화문의 번화한 풍경이 보였다. 대기실 안에는 '공정성을 위하여 면접자들끼리의 사담을 금합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면접 안내원들이 면접자들과 함께 대기실에 있었다.

 

단순 아르바이트로 생각하고 면티에 청바지를 입고 온 수현은 다른 면접자들의 정장 차림을 보고 후회했다. 완전 정장이 아닌 사람도 있긴 했지만 자신처럼 허름한 옷차림은 없었다.

 

창 쪽에 앉은 사람이 옆사람에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하고 묻자 안내 사원이 제지했다.

 

“다른 사람하고 대화 금지입니다.”

“그냥 인사하는 거예요. 그것도 안돼요?”

“정보 유출이나 공정성 때문에 그러는 거니까 협조해주세요”

“아직 면접은 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정보 유출입니까?”

“회사 방침입니다. 계속 그러시면 면접 못 보실 수도 있어요”

 

말을 했던 사람은 얼굴이 벌게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기실 문으로 경비원 두 명 이 들어왔다. 항의하려던 사람은 경비원과 사원을 번갈아 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욕을 하면서 외떨어져 있는 의자로 가서 털썩 앉았다. 사원은 경비원에게 고개를 까딱했고 경비원은 밖으로 나갔다.

 

대기실의 큰 티브이에서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티브이 옆에는 드라마 포스터가 붙어있었는데 아래 '퓨처스타일 메디컬 협찬'이라는 큰 글씨가 눈에 띄었다. 수현을 비롯한 대기자들은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 한참 더 사실 수 있었는데 당신들이 죽인 거잖아!”

”옛날 같으면 제사상을 받아도 수십 번을 받았을 나이야. 온갖 거 투약해서 징그럽게 오래 사는 게 능사는 아니지. 효주 너도 적은 나이가 아닌데 할아버지 말고 니 노후를 생각해야지. 연장 치료 안 했으면 자연스럽게 돌아가셨을 거고 너한테로 승계도 됐을 텐데 그 기회, 네가 날린 거야.”

”효주 씨는 탐욕에 가득 찬 당신 같은 인간들과 달라요.”

“넌 뭔데 남의 집 일에 끼어들어? 효주가 총수 되면 한 자리 줄 것 같아 그래? 피 한 방울 안 섞인 게 어디서”

“성진 씨는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누구보다 더 가족 같은 사람이에요. 살인자인 당신들에게 할아버지 회사를 뺏긴 채로 있지 않을 거야”

”골치 아픈 거 신경 쓰지 말고 시집이나 가. 겉모습 20대 같다고 진짜 20대인 줄 착각하는 모양인데 너 50대야. 껍데기 어려 보인다고 아직도 갓 대학 졸업한 애인 줄 알아? 저렇게 정신머리 없는 차림이나 하고 돌아다니니, 안 그래요 이사님?”

“그럼요. 효주 씨도 효주 씨 할아버지도 젊어 보인다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너무 손에 움켜쥐고만 있으려고 하시면 안 돼요. 회사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 경영해줄 겁니다”

“삼촌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잖아요. 몇 년 전부터 노화클리닉 다니시는 거 모를 줄 알아요? 얼마나 드나들었으면  VVIP라면서요?”

 

삼촌 할아버지와 효주의 얼굴 피부가 클로즈업되고 자막광고가 지나갔다. '노화는 더 이상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닙니다. 언제나 젊고 건강하게, 국내 유일 안티에이징 토탈케어 솔루션: 퓨처리스트 뷰티클럽 지금 등록하세요'

 

“너 내 뒷조사하고 다니는 거야?”

“이제 삼촌 할아버지가 신약개발 데이터 빼돌리려고 한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까발려질 거예요. 그 자리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지켜보겠어요.”

 

극적인 음악과 함께 협찬사 '퓨처스타일 메디컬'의 글자가 하단에 뜨고 중간광고가 시작되었다. 중간광고에는 비타민처럼 한 알만 먹으면 노화방지가 된다는 영양제 광고가 연이어 두 번 나왔는데 퓨처스타일 메디컬 제품이었다. 그 외에 몇 개의 광고가 지나고 다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교외의 분위기 있는 골프 리조트를 통째로 빌린 성진이 효주에게 청혼하고 있었다. 효주는 성진이 끼워주는 반지를 보고 눈물을 글썽였다. 반지 낀 효주의 손이 클로즈업되었다. 그 위로 성진이 손을 감싸 쥐었다. 두 사람의 손은 50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끈했다. 그 손을 배경으로 아래 짧은 광고 문구가 지나갔다. '20대처럼 탄력 있는 손을 위한 크림, 타임 리버스 엘릭서' 수현은 무릎에 놓인 자신의 손을 보았다. 극 중 50대라는 그들의 손보다 자신의 손이 더 거칠어 보였다.

 

“접수번호 352번 남수현 씨”

 

수현은 화들짝 놀라 일어나 구겨진 면티를 손바닥으로 펴면서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1대 다로 진행되는 면접이었다. 건너편 창을 등지고 배치된 긴 테이블에 네 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정가운데 앉은 머리가 희끗하고 얼굴이 살짝 주름진 권위적인 느낌의 남자와 그 남자 양 옆으로 외견상으로는 30대로 보이는 남녀 한 명씩이 앉았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의자에 20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 한 명이 있었다. 여자 면접관이 수현이 왜 설문지에 대부분 병력을 알 수 없음으로 썼는지 물어보았다. 수현은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가까운 친척도 없어 병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면접관들은 껄끄러운 듯한 눈빛을 교환했다.

 

“이후에 돌봐주신 분은 없습니까?”

 

한쪽에 따로 앉은 젊은 면접관이 물어보았다.

 

“보육원에 있었는데요, 1년 후에 성인이 되니까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연락 닿는 친척은 없습니다.”

“보육원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은 없습니까?”

“다 뿔뿔이 흩어져서요, 보육원도 얼마 전에 폐쇄됐다고 하고요. 연락 안 한 지 좀 되는 것 같아요. 가끔... 가끔 해요.”

“그 가끔이 얼마나 가끔이죠?”

 

수현은 대답을 망설였다. 실은 제대로 연락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보육원에 있던 시간이 짧아 친구가 없었고 아는 이들도 자신처럼 먹고살기 바빠 이리저리 일터나 거처를 옮기면서 연락이 뜸해졌다. 젊은 나이에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휴대폰 요금조차 내지 못해 연락이 끊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런 인맥도 지인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보일까 봐 알고 지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답하기가 꺼려졌다. 수현이 대답을 못하자 30대 남자가 고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하게 답변을 안 하면 면접 진행이 어려워요. 여기서 거짓 정보 말했다가 들통나면 회사에 배상해야 됩니다.”

“저기... 1년 전... 아니 2년 전에 연락했던 것 같아요. 다들 살기 바빠서...”

 

수현은 말을 흐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이 순간 자신이 한심하게 생각됐다.

 

“젊은 친구가 열심히 사느라 그랬구먼. 여기 보면 저소득 특별전형으로 대학도 갔고 장학금도 타고 참 열심히 살았는데 학교에서 인기가 있겠어?”

 

가운데 앉은 희끗한 머리의 남성이 위압적인 모습과는 달리 인자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 학비 하고 군대 때문에 휴학을 자주 해서요... 동기들도 제가 그 학교 학생인 줄 모를 겁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오티도 못 가고...”

 

면접관들은 측은한 듯 수현을 쳐다보았다.  수현은 지나치게 솔직하게 대답한 것을 후회하면서 면접을 망쳤고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여자 면접관이 말을 이었다.

 

“신체검사에서 적합도가 높게 나왔어요. 우리가 이렇게 꼼꼼하게 질문하는 이유는 별 문제없는 임상이라도 실험이 끝나고 나서 원래 있던 지병을 실험 때문에 생겼다고 하거나 없던 병이 생겼다면서 온갖 지인들이 소송을 거는 경우가 많아서 그래요. 대부분 합의금을 노리고 어떻게든 한몫 잡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조금이라도 걱정될 만한 지인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예를 든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연락 하면서 지내는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희망이 생긴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알바하는 편의점 사장님이 계시는데요, 무인으로 바꾼다고 곧 잘릴 것 같고요, 박 실장님이라고 직업소개소 하시는 되게 좋은 분이 계시는데 가끔 밥 사주시고 그러세요. 자주는 아니고요, 두세 달에 한번? 그 정도인데 이제 곧 그만두신다니까 연락할 일 없을 겁니다. 가족 병력은 모르지만 저는 감기도 잘 안걸리는 건강체질이니까 지병은 없을 거예요. 저 진짜 체력 좋고 성실하고요, 저 때문에 난리 칠 사람 아무도 없어요. 저 같은 사람은 어디서 비명횡사하거나 실종된다 해도 신고해줄 사람도 없어요.”

 

수현이 그렇게 말하자 면접관 모두가 정색하며 수현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순간 수현은 스스로를 밑바닥 인생처럼 표현했다는 걸 깨달았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구는 순간 희끗한 머리의 면접자가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옆의 면접관들도 듯 웃음을 터트렸다.

 

조롱처럼 들리는 웃음에 수현은 얼굴이 벌게졌고 눈물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참으려고 주먹을 꽉 쥐고 어금니를 물었다.

 

가운데 면접자가 웃음을 멈추자 양 옆의 사람들도 동시에 웃음을 멈추었다.

 

“어렵게 살았는데 농담도 잘하고 인성이 좋은 것이 이 나라에 크게 기여할 사람 같네.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요.”

 

수현은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90도로 인사를 하고 면접장을 나왔다.

 

안내자가 수현을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내심 교통비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내민 것은 기밀 서약서였다. 관련 사실 중 어떤 것이라도 발설할 경우 사전자격 박탈될 수 있고 회사에 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떨어질 것이 뻔한 수현에게는 또 하나의 기분 나쁜 서류일 뿐이었다.

 

그날 밤 수현은 소심한 복수로 불쾌한 면접 경험을 인터넷이 익명으로 올렸다가 회사를 추측하는 댓글이 많이 달리자 혹시라도 퓨처스타일 메디컬에서 알아채고 소송이 걸릴까 봐 하루 만에 글을 삭제했다.

 

이틀 후, 비가 부슬부슬 와서 손님도 별로 없고 사장은 감기가 걸렸다며 나오지 않아 수현은 편한 마음으로 한산한 편의점을 지키고 있었다.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는데 무심결에 받았다.

 

“퓨처스타일 메디컬입니다. 남수현 씨 되시죠?”

 

수현은 놀라 휴대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수현이 대답을 않자 상대가 재촉했다.

 

“여보세요, 남수현 씨 본인 맞으십니까?”

“네, 맞아요.“

 

수현은 엉겁결에 대답을 하고 아니라고 거짓말을 할 걸 하고 후회했다. 사죄만 하면 벌금은 안내도 될까. 기밀 서약서에는 무거운 문구가 많았던 것 같았다.

 

“적합성에서 A를 받아 임상시험 대상자로 선정이 되셨습니다.”

”네? 제가 됐다구요? 정말로 제가 됐다구요?”

“네, 대상자 되셨고요, 절차 안내해드릴건 데요, 장소나 주의사항은 문자로도 공지 나갈 겁니다. 입원날짜 때문에 확인 필요한데요, 담배는 안 하신다고 하셨고 마지막으로 음주하신 게 언제죠?”

“입원이요?”

 

상대는 절차를 설명했다. 기뻤던 마음도 잠시 설명을 들으며 수현의 표정이 흐려졌다. 신체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해야 하기 때문에 최장 3개월까지 입원한 상태로 바깥출입을 못하며 기밀 유지를 위해 외부와의 연락이 제한되기 때문에 일상에 지장이 없도록 정리를 하고 오라고 했다. 수현은 몇 번 방문해서 주사만 맞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게 되는 것에 당황했다.

 

”죄송한데 저 이거 못할 것 같아요.”

“네? 무엇 때문에 그러시죠? 저희가 대상자를 엄격하게 선별하는 거라서 갑자기 그러시면 곤란한데요.”

“기간도 좀 길고... 페이가...”

“기간은 본인 신체변화에 따라 한 달만 하실 수도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뭐라고 하셨죠?”

”페이... 이런 말씀드리기 좀 그렇긴 한데요, 다른 일 아무것도 못하는데 한 달에 50 받으면 저는 생활이 어려워지거든요...”

 

상대방이 한숨을 쉬었다. 수현은 역시 지나치게 조건이 좋았던 것이 이상했다고 그동안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시간을 낭비한 자신을 탓했다.

 

”안내를 제대로 못 받으신 것 같은데요, 한 달 50이 아니고 투약당 50입니다. 한 달 동안 네 번에서 다섯 번 투약하고, 월세 빼시는 분들 위해서는 저희가 무료로 창고 임대해드려요.”

 

3개월 동안 집세는 안 나가면서, 병원에서 먹고 자는데 최대 750을 벌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진짜요?  도대체 왜요? 왜 그렇게까지 해주면서 임상시험을 하는 건데요? 이거 다단계처럼 가둬놓고 사기 치는 거 아니에요?”

 

상대방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임상은요 법적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 하는 거고요, 요건에 맞게 인원 선발하다 보니 가격이 높은 거에요.”

 

“그래도 대상자가 저 하나만도 아닐 텐데 그런 많은 돈을 회사에서 지불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통과되면 수천억인데 그깟 몇십만 원이 대수라고...”

 

안내원의 짜증 섞인 혼잣말에 수현은 입이 떡 벌어졌다.

 

“안 내키시면 할 수 없죠.  대기자 명단에 있는 다음 분한테 바로 연락 가니까 번복은 안되세요. 그럼 안 하시는 걸로 알고...”

“아니요. 할게요! 해요. 안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랬어요. 날짜 맞춰서 가면 되는 거죠? 저 꼭 가니까 딴 사람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상대방은 재차 수현의 의사와 입원날짜를 확인한 후 전화를 끊었다. 수현은 숨이 가쁘고 손이 떨렸다. 그동안 숱한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이렇게 수익성 좋은 것은 없었다. 이런 일자리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세월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완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금액은 안내받은 것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어떤 글은 잘못하면 몸이 망가진다며 하지 말라고도 하고, 어떤 것은 임상까지 가면 검증이 거의 끝난 것이어서 문제가 없다고도 했다. 수현은 부작용이 있다 해도 받을 돈을 생각하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건강체질이기 때문에 큰 부작용 없이 잘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원 당일 짐을 정리하고 고시원 방을 뺐는데 짐은 배낭 하나, 여행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이 정도면 병원에 그대로 들고 가도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전철을 탔다. 편의점 사장에게는 다른 일자리가 생겨 그만두게 된다고 미리 말했는데 사장은 아쉬운 기색이 없었다.

 

수현이 도착한 곳은 강북에 사무실이 밀집한 곳에 있는 초고층 빌딩이었다. 시가의 큰 블록 한 개를 전부 차지하는 대형 빌딩으로 입구가 동서남북의 네 개가 있고 주변의 유동인구가 수현이 일하던 편의점 근처보다 더 많았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 예전 신체검사를 받던 건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로비가 나타났다.  피라미드 모양의 유리와 철제로 이루어진 천장에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안쪽에는 엘리베이터가 수십 개 있었는데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엘리베이터에 접근할 수 있었고 각 검색대 앞쪽에 경비원이 둘씩 배치되어 있었다. 서성이는 수현을 보고 양복을 입고 귀에 무전기 이어폰을 꽂은 사람이 다가왔다.

 

“무슨 일로 오셨죠?”

”어... 그게...”

 

수현은 건물에 도착하면 특정번호로 전화를 걸라는 안내 문자를 기억하고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냈다.

 

“여기, 제가 안내받았어요. 전화 걸게요”

 

수현이 전화를 거는 동안에도 양복 입은 사람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수현의 초라한 행색과 들고 온 여행가방, 배낭을 노려보았다. 전화가 연결되자 상대방은 수현이 빌딩에 도착했는지를 확인하고 로비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수현에게는 영원같이 길게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몇 분 지나지 않아 흰색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엘리베이터 홀에서 검색대를 지나 로비로 왔다. 이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깔끔한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과 달리 가운 입은 사람은 머리가 흐트러져 있고 옷은 구겨졌으며  밑창이 고무로 된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가 수현을 맞이하자 양복 입은 경비는 수현에게서 눈을 떼고 멀어졌다.

 

“남수현 씨 맞으시죠?”

“예”

“따라오세요.”

 

인간적인 차림이라 안심했던 수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검색대로 향하는 흰 가운의 태도에 긴장했다.

 

검색대를 통과하여 지문인식으로만 작동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7층에 내렸다. 엘리베이터는 37층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사방이 황금색 금속 재질로 마감되어 바깥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속도가 빨라서 귀가 먹먹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영화 속 실험실처럼 모든 것이 은색 금속 재질로 마감된 공간이 나왔다. 바닥은 소리가 덜 나는 흡음 타일이었다. 금속 복도를 지나 불투명한 유리문이 있었는데 흰 가운이 지문을 찍자 문이 열렸다. 흰 가운은 바쁜 모습으로 수현을 재촉했다.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자 병원 입원실처럼 긴 복도에 일정 간격으로 문들이 양쪽으로 나 있었다. 흰 가운은 한참 복도를 걸어 수현을 어떤 방으로 들여보내 기다리라고 하고 방문을 닫고 떠났다. 잠시 후 옅은 푸른색 가운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태블릿 피씨를 가지고 들어와 화면 칸 안에 지문을 찍게 했다. 지문을 찍는 순간 수현의 이름과 나이와 인적사항이 떴다. 본인이 맞는지 확인시킨 후 태블릿 안의 동의서를 열어 사인을 하게 했다. 노화 관련 시험 과정에서 일어난 어떤 일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 문구가 보였는데 수현이 내용을 전부 읽으려 하자 푸른 가운이 타박했다.

 

“안내 안 받았어요?  빨리빨리 진행합시다. 이러다 날 새겠네”

 

수현은 급히 사인을 했다.

 

“따라오세요”

 

수현이 짐가방을 들고 따라나서자 막아섰다.

 

“개인 물품은 반입금지예요.”

“예? 소지품 가지고 올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누가 그래요? 내부 공간 오염시킬 수 있어서 개인물품은 안되는데.”

“장기 입원하니까 개인사용품은 가지고 올 수 있다고 안내받았는데요”

 

푸른 가운은 이마를 찌푸리다 얘기했다.

 

“외부 연락되는 휴대폰 같은 건 안되고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확인 절차 마치고 요청 시 소독 거쳐서  반입시켜드릴 테니까 일단 여기 두고 가세요. 겉옷 벗고, 주머니 한번 털어보세요.”

“저기... 칫솔 같은건”

“세면도구나 병원복 다 제공돼요.”

 

수현은 티셔츠와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푸른 가운을 따라나섰다.  자신의 짐이 걱정돼 자꾸 뒤를 돌아봤다.  푸른 가운은 또 다른 문을 지문으로 열었다. 병원 병실 같은 긴 복도와 복도를 따라 난 문들이 나타났다.  모든 문에 지문인식기가 달려있었다.

 

푸른 가운이 어느 방 앞에 멈췄다. 지문을 찍자 미닫이 문이 열렸고 1인실이 보였다. 침대, 1인용 소파, 샤워부스가 있는 화장실이 딸린 방은 수현의 고시원보다 컸다. 간단한  운동기구도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푸른 가운은 수현을 남겨두고 나갔다.

 

창에는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다. 수현이 블라인드로 다가가는 순간 문이 열리고 표정이 없는 여자 간호사와  이종격투기를 하는 사람처럼 위협적인 덩치의 남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여자 간호사가 갈아입을 옷, 지퍼백에 든 개인 세면도구와 수건을 주고,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남자 간호사는 안내서와 오락거리가 담겨 있다는 태블릿을 건네주고  30분 후에 검사를 할 테니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수현은 정밀검진을 위한 안내에 따라 전날 밤 9시부터 금식 상태였다. 목이 말랐지만 입원실 어디에도 물이 없었다. 수돗물을 마셔도 될까 고민하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정확히 30분 후, 온갖 장비와 사람들이 수현의 방으로 들어왔다. 검사가 끝나자 수현에게 주사를 놔주었다. 그 순간 수현의 뱃속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울렸다. 표정 없는 간호사가 곧 식사가 나올 거라고 하고 장비와 사람 모두 철수했다.

 

식사를 기다리며 태블릿을 보니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았다. 안에는 영화, 드라마, 소설, 게임 등이 있었고, 주의점과 안내자료, 스케줄이 있었다. 영화를 하나 틀어 놓고 보다가 소파에서 선잠이 들었다. 문 열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보니 바퀴 달린 이동형 서랍 같은 것이 들어오고 있었다. 간호사는 침대에 부착된 간이 식사대를 올려 위치를 잡고 한 칸에서 트레이 채로 식사를 꺼내 놓았다. 수현이 식사를 하려 하자 질문했다.

 

“어지럽거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 없으시죠?”

“네... 괜찮은 것 같아요”

“피로감 정도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요. 몸에 힘이 없고 소화가 안 되는 증상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정상이니까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되고요, 혹시 심각한 통증이나 출혈 같은 증상이 있으면 여기 침대 옆에 비상벨 보이시죠? 그거 누르시면 돼요.”

“출혈... 이요?”

“통상적으로 안내드리는 거예요.”

 

수현은 간호사가 나가자 트레이에 놓인 물 한 병을 전부 마셨다. 밥은 몇 가지 반찬과 미역국이 있는 평범한 식사였는데, 밖의 식당에서 먹던 것보다 간이 약했다.

 

며칠간 밥 먹고 간호사나 의사가 와서 간단한 진찰을 하는 무료한 날이 계속됐다. 한 번은 간호사에게 자신의 짐이 어떻게 됐는지 문의하자 귀찮다는 듯 필요한 품목을 알려주면 반입시켜 주겠다고 했다. 수현은 짐이 분실되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하자 그런 걸 누가 가져가냐며 핀잔을 주고 나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밖을 보고 싶어 블라인드를 걷어보았는데 그 뒤는 벽이었다. 헬스기구로 운동을 했는데 일할 때보다 힘이 들었다.

 

약 1주일 후 두 번째 투약이 있었다. 주사를 맞은 지 한 시간 정도 지나 어지럼증이 있어 안내서를 보니 정상이라고 했다. 간호사에게 산책을 하거나 다른 곳을 돌아다닐 수 없냐고 물었지만 보안 유지 때문에 실험이 끝날 때까지는 안된다고 했다. 며칠 후 세수를 한 후 세면대 위에 붙은 작은 거울을 보니, 늘 여드름이 있고 기름기가 돌던 피부가 여드름이 사라졌고 피지가 줄어들어 깨끗했다. 수현은 좋은 약을 맞으니 피부부터 달라지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세 번째 투약 후 이틀이 지나고 식사로 나온 돈가스를 먹은 후 점점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더부룩한 정도에서 복통이 심해졌다. 침대 위에서 몸을 뒤채며 끙끙 앓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들어왔다.

 

“아픈데 왜 호출을 안 하세요? 지금 증상이 어떠세요?”

“배가 너무 아파요.”

 

간호사가 손목을 짚고 배를 눌러보더니 착용한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빠른 말로 뭐라 중얼거렸다. 잠시 후 의사가 나타나 수현을 검사하고 주사제를 놓았다.

 

“체했어요. 생활이 달라져서 소화불량이 올 수 있으니까 앞으로는 식사를 30분에 걸쳐 천천히 하세요.”

“저는 체해 본 적이 없는데요, 너무 아픈데 어디 잘못된 것 같아요”

 

의사는 수현의 말을 무시하고 나가면서 간호사에게 3일 치 소화제를 가져다주라는 말과 함께 속삭였다.

 

“이제부터 식사 가볍게 줘”

 

그 이후 수현의 식사는 소화가 잘 되는 음식으로 바뀌었다. 생선, 두부, 야채 등 채식에 가까운 건강식이 주를 이루었는데 수현은 기름기 있는 것들이 먹고 싶었지만 튀기거나 구운 것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고기가 나와도 삶은 것이었다.

 

방안에만 있으니 태블릿도 재미가 없고 운동도 잘 안 됐다. 수현은 이제 몇 번째 투약인지 신경 쓰지 않았다. 늘 피곤하기만 했고 밤에 자주 깼다. 화장실을 자주 갔다. 샤워를 하다가 다리에 쥐가 났다. 다리를 주무르면서 내려다본 손이 많이 쭈글쭈글했다. 한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더 거칠어진 것 같았다. 샤워하느라 물에 불어서 그런가 하고 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손에서 손목으로 이어지는 곳에 전에는 없던 것 같은 주름이 있었다. 다리를 보니 근육이 많이 사라지고 가늘어져 있었다.

 

세면대 거울로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눈 아래 다크서클이 심했다. 그동안 알아채지 못한 게 놀라울 정도로 머리숱이 줄어있었다. 세면대 거울로 몸을 보기 위해 1인 소파를 끌어왔는데 크지 않은 소파를 화장실까지 끌어오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소파 위에 올라가 거울에 몸을 비추니 살이 찐 것은 아니지만 축 처져 아저씨 같았다. 수현은 소파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다시 거울 속의 얼굴을 봤다.

 

27세의 얼굴이라고는 믿기 힘든 모습이었다. 태블릿을 열어 부작용에 대한 안내를 읽는데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그런 것 같았지만 것 같았지만 안에만 있어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안내에는 일시적인 소화불량, 시력감퇴, 근력 손실, 체온 변화, 두통, 혈압 상승 또는 하락이 있을 수 있다고 되어있었다.

 

두 달 정도 지난 때에 다시 수현의 방으로 온갖 장비와 사람들이 들어와 정밀 검사를 하고 나갔다. 그날 밤 수현은 자다가 목이 말라 깼다. 물컵을 든 손이 덜덜 떨렸다. 화장실에 불을 켜고 들어간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눈 앞에 백발노인의 머리가 떠 있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앞으로 고개를 돌리자 노인의 머리도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수현은 천천히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의 머리도 자신에게 다가왔다. 수현이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로 가져가자 노인도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로 가져갔다.

 

수현은 화장실을 나가 침대 머리맡의 벨을 눌렀다. 거기까지 가는데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해서 벽을 짚었다. 손에는 검버섯이 피고 쭈글쭈글했다.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어 미닫이 문을 열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수현은 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밖에, 밖에 아무도 없어요? 저, 저, 저 좀 봐주세요. 이거 부작, 부작용 심한 것 같아요. 여기, 여기 없어요?”

 

목소리가 떨리고 갈라져 더듬게 되었다. 힘껏 외친다고 했지만 힘없고 가래 낀 노인의 목소리만 들렸다. 미닫이가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두 명이 이동 침대를 밀며 들어오고 그 뒤를 의사와 간호사가 따랐다.

 

“선생... 선생님, 원래대로 해주세요. 이거 그만하면 돌아오는 거죠? 이상해요. 이상해. 부작용... 너무 심해요...”

 

건장한 체격이 수현을 번쩍 들어 침대에 눕히고 저항하는 팔다리를 침대에 묶었다. 의사가 주사기를 들고 다가왔다. 수현은 소리를 질렀다.

 

“그만 맞을래요. 이제, 이제 안 한다고요. 안 들려? 이제  안 한다고!”

 

간호사가 수현의 턱을 벌려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혀 아래로 작은 알약을 넣었다. 뱉어낼 새도 없이 알약은 녹으면서 수현은 정신을 잃었는데 마지막으로 본 것은 주사기를 들고 다가오는 의사였다.

 

몸이 흔들리는 느낌에 수현은 정신이 들었다. 눈곱이 심하게 끼어 버석거렸다. 간신히 눈을 떠보니 옆에 남자 간호사 한 명이 앉아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흔들리는 정도와 소리를 보아 수현은 차 안에 있었다. 움직일 수 없어 아래를 보니 팔다리가 침대에 결박되어 있었다. 차창 너머로 숲이 우거진 산자락 사이에 해가 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수현이 발버둥치자 간호사는 결박을 더 단단히 조였다.

 

한참을 가던 차가 멈추고 뒷문이 열리면서 찬바람이 훅 들어왔다. 차 밖에는 트레이닝 복을 입은 사람이 휠체어를 가지고 대기하고 있었다.  해가 막 떨어진 어스름한 하늘 아래로 사방이 짙은 숲이었다.  수현은 휠체어로 옮겨지면서 다시 저항해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얇은 환자복 사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에 온 몸이 떨렸다. 수현을 내려놓고 차는 바로 떠났다. 트레이닝 복이 수현의 휠체어를 밀고 큰 정원과 분수를 지나 기둥이 많은 서양의 고전 건물을 본뜬 건물로 다가갔다. 건물의 위층은 작은 창들이 일정 간격으로 나 있었는데 모든 창문에 튼튼한 창살이 덧대어져 있었다. 수현은 다시 몸부림쳤다.

 

유리로 된 정문에 '미래안식 요양병원'이라는 병원 로고가 붙어있었다. 입구 벽에는 강원도 지정 우수업체, 5년 연속 사회적 기업 선정 등등의 팻말이 붙어있었다.

 

“저 여기 들으올 사람 아니에요. 저, 져 내료 주세요”

 

수현은 혀를 제대로 움직이기가 힘들어 발음이 샜다. 휠체어를 미는 사람은 정문 자동문 안으로 수현을 데려갔다. 양복을 입은 사람이 수현 쪽으로 달려왔다.

 

“원장실로 데려가요.”

“바로요?”

“손님 오셨어. 빨리.”

 

양복 입은 사람은 휠체어 앞에서 급하게 걷다가 원장실 문 앞에 이르러 수현을 보더니 이맛살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지저분해.”

 

양복 입은 사람은 앞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수현의 눈가를 훔치고 수현의 머리를 빗어 넘겼다. 수현의 일그러진 입가로 침이 조금씩 새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고는 원장실 방문을 두드린 후  안에 휠체어를 밀고 넣고 문을 닫았다.

 

원장실 안에는 손님용 테이블을 마주하고 한쪽은 원장 가운을 입은 사람이 반대편에는 멋지게 차려입은 중년 남녀 한쌍이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사람은 면접 때 봤던 사람인 것 같았지만 눈이 흐릿해진 수현으로써 확신할 수는 없었다.

 

중년 부부는 흥미로운 듯 수현을 바라보았다. 원장이 입을 열었다.

 

“인위적인 느낌을 주는 급환이 아니라, 나이에 맞는 자연스러운 결과를 도출합니다. 건강식품이다 노화방지 시술이다 해서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저희는 원래의 흐름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해 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그... 자연의 흐름이라는 게 얼마나 걸리죠?”

 

“여기 환자, 보이시죠? 20대 청년인데 두 달 전부터 투약했습니다.  자기소개해보세요.”

 

원장은 수현을 바라보았다.

 

“져... 저 구해주셔요. 뭔가 잘믓된 거 같아요. 네?”

 

입이 일그러져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수현을 중년부부는 미심쩍게 듯 바라보았다.

 

“중풍이던 저희 어머니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정말 이십대라고요?”

 

원장이 탁자에 놓인 태블릿을 들어 두 사람에게 건넸다.

 

“사장님, 여기 지문 한번 찍어보시죠”

 

사장으로 불린 남자가 태블릿 화면 안에 네모로 표시된 부분에 엄지손가락을 가져갔다. 잠시 후 남자의 생년월일과 만 나이, 각종 병력과 내장지방 비율까지 표시되었고 건강상태는 주의군으로 표시되었다.

 

“허…”

“아시겠지만 국가통합 의료시스템 덕분에 어느 병원에서도 환자들을 지문인식으로 연령과 질병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원래 타인 기록을 일반인이 보시기는 어렵습니다만 의료상 중대한 결정이 필요한 특수한 때에는 열람이 가능합니다.  지금이 그런 특수한 때에 해당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원장은 수현에게 태블릿을 내밀고, 떨리는 수현의 손을 가져가 지문을 찍었다. 그러자 수현의 사진과 생년월일 그리고 만 27세라는 나이, 병력은 없음이고 건강상태는 양호로 표시가 떴다.

 

“사모님, 확실하죠?”

“세상에, 정말 27세네. 놀랍네요.”

그 말에 수현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말했다.

“그러치요? 나, 나 이시치세에요. 돈 바든거 한...푼도 안썼어. 그거 돌려드릴테니까 워래대로, 원래대로 해주세요. 실엄, 그만하고 싶어요”

 

원장은 태블릿을 톡톡 건드리며 중년 남녀에게 설명했다.

 

“지금 보실 영상은 이 환자의 지난 두 달간의 투약 경과를 보여주는 겁니다. 옆에 운동능력, 근량 등 수치로 나타나고있죠.”

 

원장이 차례로 영상을 선택하자 수현이 병실 안에서 지내는 모습이 녹화된 것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화면 한쪽에는 분석 수치 및 그래프가 수현의 변화를 함께 보여주었다. 중년 부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밖에 사무장 있나?”

원장이 소리치자 수현을 데리고 들어왔던 양복차림의 사무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데리고 나가요”

 

수현은 발버둥 치며 말했다.

 

“노인 아닌 거 봐았잖아요. 워래대로 해 줘! 어디, 어디로 가는 거예요?”

 

여자가 물었다.

 

“그런데 속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니에요? 부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 젊을 경우 드라마틱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96세 정도면 그냥 일반 노환으로 신체기능이 저하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죠.”

 

수현의 뒤로 원장실 문이 닫혔다. 수현의 일그러진 입으로 삼키지 못한 침이 한쪽으로 흘렀다. 휠체어를 밀고 나온 사무장 앞으로 간호사가 다가왔다. 사무장이 주의를 주었다.

 

“치매 증상이 심해서 병원 탈출하려고 할지도 모르니까 잘 관리해”

 

간호사는 수현을 위층의 병실로 데려갔다. 4인실인 방 안에 침대 세 개는 노인 모습의 사람들이 하나씩 차지하고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간호사가 수현을 침대로 옮겨주고 나가자 수현은 다른 환자에게 말을 걸었다.

 

“실엄, 실험 당한 거 맞죠? 저도... 두달 전까지 저 티비... 저기 나오는 사람보다 더 져믄 모습이었어요. 스믈일곱이요”

 

수현이 들어오는 모습을 유심히 보던 한 환자가 수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난 열여덟 살이야.”

“우리, 우리 여기서 나가야 돼요. 계속 이쓰면 이러케 주께 될거에요“

 

그러자 다른 침대의 환자가 맞장구쳤다.

 

“나갈 수 있게 되면 좋겠네. 아, 난 열여섯”

 

순간 방안의 모두가 낄낄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수현은 어리둥절하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한참 맛이 갔는데  여기 있어도 되는 거야? 이 방은 멀쩡한 사람들 있는 곳인데”

“지난번 치매 있는 거 겨우 갔다 싶더니 또 저런 게 들어오네. 왜 자꾸 노망난 걸 여기 데려오나?”

“저, 저는 노망 난 게 아니에요. 진짜 스무일곱이라구요. 여기 이쓸 사람 아니에요!”

“에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똥오줌은 가려?”

 

노인들은 코웃음을 치고 티브이를 보았다. 수현은 떨리는 몸으로 창문으로 다가갔지만 창문 밖은 쇠창살이 쳐져 있고 창문을 여는 것도 힘들었다. 병실 문을 열고 복도를 따라 걸어가다 숨이 가빠 벽을 짚고 몸을 구부려 마른기침을 하자 다리가 풀렸다. 멀리서 간호사가 수현을 보고 다가왔다. 수현은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간호사는 빠른 걸음이 아닌데도 금세 수현을 따라잡았다.

 

“어르신, 이렇게 안 좋은 몸으로 어디 가세요? 넘어지기라도 하면 아예 못 움직이게 돼요.”

 

간호사는 수현을 부축해 방으로 데려가 가볍게 침대에 들어 올렸다. 수현은 자신의 무력한 모습에 눈물이 났다. 간호사는 침대 발치에 적힌 신상카드를 확인했다.

 

김수현(남, 만 89세, 치매 4기, 신체기능 퇴화, 폭력성 없음)

 

간호사는 수현의 신상카드에 노란색 주의 스티커를 붙이고 방을 나갔다.

 

“성진 씨, 우리가 해냈어요. 이제 할아버지도 천국에서 편히 쉬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요 효주 씨, 신약 출시로 회사도 정상궤도에 오를 겁니다. 내가 효주 씨도 효주 씨 회사도 옆에서 지켜줄게요”

“그럼 난 성진 씨를 지켜줄게요”

병실 티브이에서는 효주와 성진의 키스를 배경으로 협찬회사 '퓨처스타일 메디컬'의 로고가 올라갔다.

 

드라마가 끝나자 광고가 시작됐다.

 

“어리다는 것이 값어치 있다는 건 옛날 얘기죠. 법적 나이만 젊다고 젊은이인가요? 숫자에 불과한 나이 대신 진정한 청춘을 누리세요. 대한민국 최고 제약업계 퓨처스타일 메디컬이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 이 노화방지 시술로 여러분께 진짜 젊음을 선물하세요. 가까운 노화방지 센터나 시술 클리닉을 방문해서 퓨처스타일 메디컬 제품을 찾으세요. 여러분의 미래를 푸르게. 퓨처스타일 메디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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