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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뱀의 선물

2019.05.28 16:2505.28


"뱀을 좋아하신다고요?"

"네. 왜요? 이상해요?"

당연히 이상했다. 아니 이상하지 않았다. 흔히 사람들의 얼굴을 고양이과와 강아지과로 나눈다지만 그런 식으로 나누자면 그녀의 얼굴은 뱀과였다. 뱀. 그녀의 얼굴은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웠다. 눈을 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태어나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 그녀는 내 앞에 앉아 있다. 소개팅 상대로.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 스스로가 외모로 평가했을 때 그다지 내세울 부분이 없다는 현실적인 계산도 있다. 관찰자의 눈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이라면야 거리낄 이유가 없겠지만 앞에 마주 앉은 사람을 볼 때는 외모보다는 그 사람의 말과 생각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런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를 본 순간 그런 겉치레는 허물처럼 벗겨져 내렸다. 나는 벌거벗은 아이처럼 그녀와의 시선에 꿰어진 채 볼품없이 퍼덕거렸다.

젖은 종이를 떼어내듯 날 털어내 버려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노골적으로 허물어진 내 표정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까 걱정하면서도 흔들리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는 죄인처럼 그녀의 선고를 기다렸다. 그녀는 달랐다. 그녀의 눈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나와 눈을 마주치기 전부터 거울처럼 얼어붙어 있던 그녀의 눈동자는 오히려 내게 관심을 보이는 듯 살짝 세로로 길어졌다. 먼저 앉아 있던 내가 미처 일어설 새도 없이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와 의자에 올라앉더니 바로 지나가던 웨이터를 불러 음식을 주문했다. 메뉴판은 열어 보지도 않았다.

“어머, 아직 주문 안 했어요? 저랑 같은 거로 드세요. 여기요! 아까 그 메뉴 이인분으로 주세요!”

요리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피가 배어 나오는 고깃덩어리에 검은 소스가 점점이 흩뿌려진 무언가였다. 끔찍하게 맛있었던 기억만 난다. 나는 거의 씹지도 않고 그 덩어리를 삼켰고 그런 나를 그녀는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그렇다. 그녀는 나를 흡족해했다. 우리는 정신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었고 쉴 새 없이 서로에게 날카로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는 정말 완벽했다.

그녀는 외모만 보고 무턱대고 그녀에게 빠져들었던 내 무모함마저 덜어주었다. 그녀는 똑똑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그녀의 작은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어떤 주제를 꺼내도 거침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인류의 역사에서부터 아이돌 그룹 멤버의 뒷이야기까지, 그녀와의 대화는 모자이크처럼 이어졌고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그녀는 뱀을 좋아한다고 했다.

물론 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애완용으로 키우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녀가 뱀을 좋아하는 건 이상했다. 뱀을 좋아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 이상하게 뱀을 좋아했다.

“뱀은 죽지 않잖아요. 그래서 좋아해요.”

“뱀이 왜 안 죽어요. 걔도 생물인데. 살아있는 건 다 죽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요? 뱀이 죽는 거 봤어요?”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똑똑했다. 어이없는 미신을 믿을 정도로 허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엔 나를 놀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진지했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시선을 나에게 고정한 채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잠시 내가 뭔가 착각하진 않았는지 되짚어 보아야 했다. 그녀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뱀은 죽지 않는다고.

“아니... 죽는 걸 직접 본 적은 없죠... 그래도...”

그때 나는 어렸을 적 시골 외갓집에서 봤던 길쭉한 원통형의 유리병에 담긴 뱀술이 떠올랐다. 그 속에 담긴 누런 액체 속에서 딱딱한 박제처럼 굳어 있던 뱀도.

“뱀술 속에 담겨 있던 뱀을 본 적은 있죠. 그럼 그 뱀이 살아있었겠어요?”

순간 그녀의 눈이 날카로워지면서 번쩍하고 빛을 쏘았다. 갸름하고 날렵한 턱선이 순간 내려앉은 느낌도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내 뇌리에 딱 한 컷의 희미한 기억만을 남기고 다시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날카롭게 쏘아진 그녀의 눈빛은 나를 밀어낸 게 아니라 휘감아 그녀에게로 끌어당겼다. 나는 휘청하고 앞으로 쓰러질 뻔했다.

“그 뱀... 꺼내 봤어요? 살았는지 죽었는지 꺼내서 확인해 봤느냐고요?”

그쯤에서 그녀의 억지를 받아주기로 했다. 그래. 그녀는 뱀이 죽지 않아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해서 죽지 않는다고 믿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 못 할 이유도 없었다.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허상들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따지면 뱀이 죽지 않는다고 믿는 정도야 해가 될 것도 없었다.

“알았어요. 그러고 보니 뱀이 죽는다고 확신할 순 없겠네요. 제가 직접 본 것도 아니고.”

그 대답은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녀에게 거짓말은 소용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내게 진심으로 그녀를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그래. 난 그녀의 모든 걸 믿을 수 있다. 아니. 믿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뱀이 죽지 않는다는 걸 진심으로 믿고 그녀에게 고해할 수 있단 말인가. 망설이는 나의 눈동자를 보더니 그녀는 벌떡 일어나 몸을 빳빳이 세우고는 길쭉한 팔을 쭉 뻗어 내 손목을 휘감았다.

“가요. 내가 보여줄 테니.”

그녀의 손은 미끈하고 차가웠다. 가느다랗고 새하얀 손가락이 내 손목을 휘감아 도드라진 혈관을 압박했다. 쿵쾅대는 맥박이 고스란히 그녀에게 전해졌다. 전율이 팔꿈치를 타고 떨리는 어깨를 넘어 심장을 찔러댔다. 그녀의 피부는 아이스크림처럼 차갑게 녹아들었다. 나는 홀린 듯 그녀를 따라나섰다. 홀리지 않았어도 따라나섰을 것이다. 그녀는 미치도록 아름다웠으니까.

그녀는 안전벨트로 나를 조수석에 단단히 묶었다. 위협하듯 몇 번 묵직한 엔진음을 울리던 그녀의 자동차는 불빛이 가득한 밤거리로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길게 뻗은 검은 아스팔트 위로 에스 자를 그리며 그녀의 자동차는 수많은 차 사이를 미끄러져 나갔다. 나는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별똥별처럼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그녀는 탑처럼 솟은 아파트 단지로 차를 들이몰았다. 그녀의 차는 켜켜이 쌓인 네모난 상자 중 한 곳의 지하로 빨려들 듯 삼켜졌다. 찢어질 듯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앞바퀴 두 개가 카스토퍼를 움켜 물었다. 긴장이 풀리자 부서질 듯한 몸을 지탱하던 아드레날린이 세포 속으로 퍼져 들어가며 온몸에 전율이 밀려왔다. 축축한 땀이 손바닥에 흥건하게 고였다. 그녀는 한 방울의 땀도 흘리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잡아끌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는지 아래로 내려가는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몇 층에선가 멈춰선 엘리베이터는 통째로 집어삼켰던 우리를 토해내고는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가 현관의 키패드를 요술 램프처럼 문지르자 삐리릭 소리와 함께 육중한 현관문이 입을 벌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불 꺼진 그녀의 집으로 빨려 들어갔다.

퍽 소리와 함께 거실의 불이 밝혀졌다.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쏟아낼 뻔했다. 뱀을 좋아한다던 그녀의 거실은 온갖 형태의 뱀 문양과 그림, 갖가지 신화에서 끌어모은 듯한 크고 작은 뱀의 형상들, 뱀과 결합한 기괴한 동물들의 형상들, 뱀처럼 휘어진 벌거벗은 인간의 형상들이 뒤섞인 하나의 거대한 소용돌이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근육을 튕기며 꿈틀대는, 진짜 뱀들이 있었다.

“겁먹지 말아요. 안 무니까.”

그녀가 손을 내밀자 기다란 검은 뱀 하나가 쉬익 하며 소용돌이에서 떨어져 나와 그녀의 팔에 감겨들었다. 뱀은 애무하듯 그녀의 팔을 타고 올라 겨드랑이를 감싸고 돌며 쇄골의 패인 부분에 몸을 담그고 새하얀 목을 향해 머리를 곧추세웠다. 검은 뱀은 시퍼런 독액이 뚝뚝 떨어지는 송곳니를 한껏 빼물고는 갈라진 붉은 혀로 그녀의 목을 핥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한껏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의 가슴이 봉긋하게 솟아올랐다.

어느샌가 그녀의 손에는 반원 모양으로 날이 휘어진 작은 낫이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곧추세운 뱀의 눈 사이를 짚어 등 쪽으로 서서히 다이아몬드 모양의 매끈한 비늘을 쓸어내렸다. 휘어진 날이 목에 감기자 뱀은 격렬하게 혀를 날름거리며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머리는 여전히 부르르 떨며 꼿꼿이 세운 채였다.

“잘 봐요! 뱀이 죽는지!”

그 말과 동시에 그녀는 뱀의 목에 감긴 둥근 날을 잡아당겼다. 뱀의 목은, 깔끔하게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고 머리를 잃은 몸통은 수압을 못 이기는 호스처럼 퍼덕거리며 그녀의 얼굴부터 시작해 온 거실 안에 붉은 피를 흩뿌렸다. 내가 내지른 비명은 마치 그녀의 낫이 내 기도를 갈라놓기라도 한 듯 가래 끓는 울림만 남기고 힘없이 새어나가 버렸다.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거실을 빠져 나와 그녀의 집 밖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붉은 피를 점액처럼 뒤집어쓴 그녀의 얼굴이 여신처럼 아름다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이 잘라낸 뱀 머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보라니까요!”

그녀의 손가락이 뻗어 나간 곳에는 몸통을 잃은 뱀 머리가 여전히 빳빳하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머리는 잘려나가기 전과 마찬가지로 격렬하게 혀를 날름거리며 세로로 그어진 깜박이지 않는 눈동자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껏 턱뼈를 늘려 커다랗게 벌린 입으로 나를 위협하던 그 머리는 한 뼘 밖에 안 남은 몸을 잔뜩 움츠리더니 용수철처럼 튕기며 나에게 날아들었다.

그녀가 자신의 팔에 감겨 있던 뱀의 검은 몸뚱이를 채찍처럼 휘둘러 쳐내지 않았다면 독액을 흘리는 송곳니는 그대로 내 허벅지로 박혀 들어왔을 것이다. 자신의 몸뚱이에 맞아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머리는 잔뜩 독이 올라 다시 한번 나를 향했다. 얼마 안 남은 몸을 꿈틀대며 나에게 미끄러져 오던 뱀의 머리 위에 그녀가 재빨리 투명한 아크릴 박스를 덮어씌웠다. 뱀 머리는 몇 번이나 벽에 머리를 부딪으며 빠져나오려고 애쓰더니 다시 한번 아가리를 한껏 벌려 머리를 떨고는 분을 못 이기는 듯 박스 안을 빙빙 돌았다. 뱀 머리는, 분명 살아있었다.

“자, 이래도 내 말을 못 믿어요?”

믿는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것이다. 뱀은 죽지 않는다. 그 말은 몸을 잘리고도 죽지 않는 뱀의 머리처럼 내 머릿속에 강렬한 주문으로 새겨졌다. 그녀는 세로로 길게 가늘어진 눈동자로 내 눈동자를 꿰뚫고 뇌를 파헤쳐 그 강렬한 주문을 찾아내고는 입술이 귀에 걸릴 정도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몸을 한 번 떨자, 어깨에 걸쳐져 있던 옷이 허물을 벗듯 무너져 내렸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와, 물처럼 둥근 엉덩이가 차례대로 드러났다. 차가운 형광등 빛을 반사하며 그녀의 새하얀 피부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

“당신 때문에 내가 아끼던 뱀을 두 동강 냈잖아요. 당신이 날 못 믿어서. 뭐로 보상할 거에요? 당신이 가진 뱀으로?”

그녀의 얼음장 같은 손이 내 아랫도리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 내가 어떻게 그녀의 집을 빠져 나와 내 집으로 돌아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내 방 침대 위에 시체처럼 뻗어 있었다. 옷과 살갗 여기저기에 딱딱하게 말라붙은 붉은 핏자국이, 어제 뼈를 으스러뜨릴 듯이 나를 휘감았던 그녀가, 나를 미끄러지던 그녀의 매끈한 피부가, 이가 시릴 정도로 떨려왔던 그녀의 전율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얼마나 더 곯아떨어져 있었을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제 소개팅을 주선해 준 룸메이트였다. 나는 엉망이 된 몰골을 들킬까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야. 너 어제 왜 안 들어왔어? 걔 집에 가서 잤냐? 만난 지 하루 만에?”

“몰라. 머리 아프다. 좀 더 잘래.”

“뭐야. 진짜 거기서 잔 거야? 술 마셨냐? 술만 마셨어?”

나는 대답 없이 이불 속에서 몸을 말았다. 갑자기 그녀가 친구와 어떤 사이인지 궁금해졌다. 걔라고 가볍게 지칭하는 태도가 기분 나빴다. 저 녀석은 그녀의 집에 가 봤을까. 가보기만 했을까. 머리가 정말로 아파졌다.

“대체 밤새 뭔 짓을 했길래. 하루 종일 잘 거냐? 난 약속 있어서 나간다.”

문이 닫히고 잠시 후 현관문이 잠기는 전자음도 들려왔다. 이불 속에서 고개를 빼내자 책상 하나와 구석에 놓인 옷걸이가 전부인 작은 방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와 휘감기며 뒤엉키던 어제의 기억이 꿈처럼 생생했다. 너무도 생생히 머릿속에 새겨진 장면들에 익숙한 방의 풍경마저 낯설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녀는 정말 완벽했다. 그 자체로도 완벽했지만, 나와의 결합도 원래 하나였던 조각처럼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맞아 들어갔다. 내 윤곽과 들어맞는 반쪽이 그처럼 아름다우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었다. 그녀와 들어맞는다는 이유만으로 나 스스로도 완벽해지는 듯했다. 그렇게 완벽한 그녀가 어떻게 평범하기 그지없는 친구 녀석과 아는 사이가 될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 자식이 어떻게 그녀를 알게 되었는지, 어떤 관계인지, 뱀은 죽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지,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이 치밀어 오르며 피가 조금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얼른 욕실로 달려갔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물로도 피부 속에 스며든 그녀의 땀과 체취는 닦여나가지 않았다. 피로 얼룩진 옷은 결국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했다. 친구는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나는 또다시 차가워지려는 몸에 살짝 어지럼증을 느끼며 그녀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를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아, 걔? 나도 소개받았어. 몇 번 만나기는 했는데, 나랑은 잘 안 맞아서.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아무 일 없었으니까. 내가 아무려면 설마... 내 스타일은 아닌데. 솔직히 걔 예쁘긴 하잖아. 몸매도 죽이고. 근데 걔 말하는 게... 난 뭐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만 늘어놓는데, 피곤하더라고. 그때 딱 네 생각이 나더라. 너하고 정말 잘 맞겠다고. 야, 너, 기분 나쁜 거 아니지?”

친구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는지는 잘 알 수 있었지만 나는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소개해 준 친구 녀석에게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뒤로 나는 계속 그녀와 만났고, 이제 그녀는 내 삶의 일부, 아니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친구는 그녀와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나가는 내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 너 걔 몇 번 만나고 그만둘 줄 알았어. 한두 번 만나기는 좋지만... 걔 좀 부담되지 않냐?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게 있어 걔. 기를 빨린다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요즘 너 안색도 별로 안 좋고, 요즘 좀 무리하는 거 아니냐? 적당히 해. 적당히.”

친구는 유난히 그녀에게 관심이 많았다. 나는 무엇보다도, 나보다 자신이 먼저 그녀를 알았다는 사실을 은근히 나에게 과시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친구는 자신만 그녀를 알고 나는 그녀를 몰랐던 그 시간 동안 뭔가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기회가 날 때마다 그 얘기를 꺼냈다. 야, 사실은 걔가 말야. 넌 모를 수도 있지만 걔가 원래. 내가 겪어 본 바로는 걔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빨이 떨리고 턱이 간지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녀석이 불러서 나간 자리에 그녀가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내가 오기 전 둘이 무슨 말을 했을까. 혹시 전에도 둘이 따로 만난 적이 있었을까. 그 녀석도 그녀가 뱀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 녀석도 뱀이 죽지 않는다고 믿을까.

그날 밤, 난 유난히 거칠게 그녀를 휘감았다. 그녀를 내 속에서 녹여 없앨 기세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끝내지 않았다. 그녀의 목덜미에 무딘 내 이빨을 가져다 대고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결국 지쳐 떨어진 나를 바라보며 그녀는 차가운 미소로 말했다.

“불안해요? 우리가 끝날까 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신, 나 믿죠? 내가 말하는 거, 뭐든지 다 믿을 수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영원히 내 곁에 있을 방법이 있다면, 죽지도 않고 헤어지지도 않고 영원히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믿을 거예요?”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혀를 빼물었다. 길쭉한 입이 귀에 걸렸다. 뱀이 죽지 않는다는 걸 믿었는데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걸 못 믿을 이유는 없다.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알몸을 덮고 있던 얇은 실크 조각 속에서 미끄러지듯 빠져 나왔다. 번쩍이는 나신을 흔들며 어디론가 사라졌던 그녀는 야구공만 한 붉은 구슬 하나를 들고 다시 나타나서는 불쑥 나에게 내밀었다.

“간단해요.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돼요. 이것만 몸에 지니고 있으면 영원히 죽지도 않고, 날 소유할 수도 있어요. 조심하세요. 다른 사람이 가져가면, 그 힘은 고스란히 그 사람에게 옮겨갈 테니까.”

 


그날 이후, 그녀는 정말로 내 소유가 되었다.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고, 언제든지 격렬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저 붉은 구슬만 지니고 있으면 그 모든 게 가능했다. 그녀 역시 나만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의 가느다란 눈동자로 알 수 있었다. 구슬 하나만 있으면.

그뿐이 아니었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도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요리를 하다 칼에 손을 벤 적이 있었는데, 구슬을 지니고 있자 불과 일 분도 지나지 않아 깔끔하게 상처가 아물었다. 몇 번 더 시험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어머, 내 말을 믿은 게 아니었어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대단한 발견을 했다고 그녀에게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녀는 시큰둥하게 되받았다. 그건 내가 딱 좋아할 만큼의 차가움이었다. 구슬을 받기 전에는 미묘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기며 애를 태웠던 그녀는, 구슬을 받고 난 후에는 항상 최고의 만족과 행복과 떨림을 주었다. 영원한 시간이 지루하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녀를 만나는 하루하루는 언제나 새롭고 짜릿했다. 그것이 앞으로 영원히 내 앞에 펼쳐질 미래였다.

구슬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이미 나에겐 그녀, 그리고 그녀를 소유할 수 있는 구슬을 지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삶의 목표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집에서 구슬을 품은 채 영원히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낮 동안 그녀의 집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품속 깊이 구슬을 감추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손에 쥐고 있어도, 주머니에 넣어도 불안했다. 매시간, 매분 마다 품속에 숨긴 구슬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잔뜩 움츠리고 그녀의 집 근처를 배회하다 경찰에게 불심 검문을 받았다.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행색이었다. 경찰은 내가 품에 꼭 안고 있는 구슬을 보여 달라고 했다.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경찰은 점점 더 나를 의심했다. 결국 계속 불응하면 강제로라도 압수하여 조사하겠다는 경찰의 말에 못 이겨 나는 잠시 구슬을 건네주어야 했다. 구슬이 내 손을 떠나 있던 불과 일 분 남짓한 시간이 천 년처럼 길었다. 영원한 삶, 그것도 영원히 달콤한 삶을 순식간에 뺏겨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미칠 것 같았다. 그 이후로는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내 집 안에서 숨어 지냈다. 낮 동안 집에 처박혀 있다가 밤이 되기 무섭게 기어나가는 나를 친구는 의심과 걱정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밤에 하는 일자리를 구했다고 적당히 둘러대었지만 믿지 않는 눈치였다.

어느 날, 샤워를 하다 보니 이상하게 몸에서 때가 많이 나왔다. 살살 문지르는데도 때가 국수가락처럼 말려 나왔다. 급기야 팔에 있던 피부 전체가 양파껍질처럼 떨어져 나가는 단계에 이르자 나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나는 몸을 덮고 있던 피부 전체를 벗어냈다. 놀랍게도 그 피부밑에서 새로 자라고 있던 내 몸은 이전의 몸보다 더욱 젊고 건강했다. 나는 넓은 어깨와 낮은 체지방으로 역삼각형이 된 상체를 거울에 비추어 보며 구슬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

낯설 정도로 매끈해진 몸을 거울에 비춰보며 정신이 팔려있다가 나는 친구 녀석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욕실 문을 벌컥 열어젖힌 녀석의 시선이 가 닿은 곳은 하필이면 내가 벗어놓은 허물이었다. 그 녀석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허물을 감출 생각도 벌거벗은 몸을 가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선반에 올려놓았던 붉은 구슬을 움켜쥐었다. 녀석을 납득시킬 만한 변명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나는 허물과 구슬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는 친구에게 결국 붉은 구슬의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다. 영원히 죽지 않게 젊음을 유지시켜 주는 구슬이라고. 친구는 반신반의했지만 내 얼굴의 윤곽이 그대로 남아 있는 허물을 보고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그녀까지 소유할 수 있다는 건 말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 구슬의 주인이 바뀌면 능력도 옮겨 간다는 점도 밝히지 않았지만, 무언가 구슬에 놀라운 힘이 들어있다는 것은 녀석도 느낀 모양이었다. 한 번만 만져보자며 손을 뻗는 친구를 나는 거세게 밀쳤다. 욕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욕을 내뱉던 녀석은 내 눈이 정상적인 사람의 눈이 아니라는 걸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대충 옷을 걸쳐 입고는 그 길로 집을 뛰쳐 나왔다.

친구에게 비밀을 들킨 이후, 나의 불안은 더욱 심해졌다.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불안했지만 언제 그 녀석이 나타날지 모르는 집 안에 있기는 더욱 불안했다. 나는 품속 깊숙이 구슬을 숨긴 채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나를, 그리고 내 구슬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일 분 일 초를 숨죽이며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 밤이 되어 그녀의 집에 들어가고 난 뒤에야 겨우 마음을 놓았다.

낮에도 그녀의 집에 머물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내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어도 그것만은 안 된다며 그녀는 허물처럼 옷을 벗었다. 극도의 피로감으로 곯아떨어졌다가 아침에 내쫓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나는 영생을, 그리고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문제가 터졌다. 친구 녀석이었다. 지옥 같은 낮 시간을 견뎌내고 겨우 그녀의 집으로 돌아와 한숨 돌리려는 찰나에,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에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날 미행한 거였다. 녀석은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녀는 안된다며 날뛰는 나를 달래고는 녀석을 안으로 들였다.

뱀으로 도배된 거실과 미친 사람처럼 구슬만 품고 있는 나를 보고 친구는 경악했다. 당장 여기서 나가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지만 나는 경기를 일으키며 친구의 손을 뿌리쳤다. 친구는 막무가내였다. 그녀는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하듯 의자에 똬리를 틀고 앉아서는 혀를 날름거리며 거실에서 뒹구는 우리를 지켜보았다.

한 손으로 구슬을 움켜쥔 채 친구에게 저항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나는 친구가 휘두른 손에 맞아 구슬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보다 한 발 앞서 녀석이 구슬을 집어 들었다.

“안 돼!”

나는 벽에 진열되어있던 뱀의 동상 하나를 집어 들고 녀석의 머리를 내리쳤다. 날카로운 청동 송곳니가 정수리에 박혀 들어갔다. 녀석의 머리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아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구멍이 뚫렸던 정수리는 거짓말처럼 아물고 피가 멎었다. 녀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에 쥔 구슬을 바라보다가, 내가 했던 말, 구슬이 영원히 죽지 않는 젊음을 준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다시 달려 들었지만 녀석의 주먹에 맞고 내동댕이쳐졌다. 바닥에 부딪혀 머리가 깨졌다. 깨진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흐려지는 의식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는 어느새 녀석에게 미끄러져 다가갔다. 거실을 기어가며 그녀는 허물처럼 옷을 벗어냈다. 녀석은 자신의 몸을 감아오는 그녀의 알몸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거야. 영원히 내 거라고. 나는 온 힘을 짜내 녀석에게 다가갔다. 내 손에는 어느새 주방에서 집어 든 식칼이 있었다. 그녀의 혓바닥이 녀석의 목을 핥았다. 녀석은 구슬을 손에 꼭 쥔 채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나는 있는 힘껏 식칼로 녀석의 손목을 내리쳤다.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녀석은 구슬을 떨어뜨렸다. 나는 미친 듯이 기어가 굴러가는 구슬을 잡았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손목을 부여잡고 녀석이 나에게 다가왔다. 구슬을 다시 뺏길 순 없었다. 영원히 내 거야. 영원히. 절대로 뺏기지 않을 거야.

나는 손에 든 식칼로 내 배를 찔렀다. 그리고는 길게 옆으로 살을 찢어냈다. 불에 덴 듯한 고통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나는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구슬을 찢어진 뱃속에 밀어 넣었다. 녀석이 나를 잡고 흔들었지만 나는 몸을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배에 난 상처가 서서히 아물면서 의식도 돌아왔다. 이제 구슬은 온전히 내 뱃속에 들어있었다. 다시는 뺏기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그 누구에게도.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너무 얇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로로 길게 가늘어졌다. 히죽거리는 입이 귀에 걸렸다. 턱이 늘어져 나를 통째로 삼켜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랗게 입이 벌어졌다. 끝이 갈라진 혀가 미친 듯이 날름댔다. 그녀의 새하얀 몸이 번쩍이는 비늘로 뒤덮였다.

그리고 내 뱃속에 들어간 구슬이 얼음덩어리처럼 차가워졌다. 온몸의 모든 열이 구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깨에 붙어 있던 팔이 푹 익은 살 조각처럼 힘없이 녹아 떨어졌다. 골반에서 다리가 미끄러져 떨어져 나갔다. 철퍼덕 바닥에 엎어진 나는 계속해서 가늘어지고, 길어졌다.

덜컥하고 턱이 빠졌다. 늘어진 입에서 침이 줄줄 흘렀다. 날카롭게 솟은 송곳니에서 시퍼런 독액이 떨어졌다. 눈이 가늘어지더니 쿵쾅대는 친구 녀석의 심장이 들여다보였다. 나는 몸을 휘저으며 쏜살같이 미끄러져 녀석의 심장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날카로운 비명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날카로운 쉬익 소리가 그 소리를 뒤덮었다. 그녀가 나에게 손을 뻗었다. 나는 기다란 검은 뱀이 되어 그녀의 팔에 감겨들었다. 나는 애무하듯 그녀의 팔을 타고 올라 겨드랑이를 감싸고 돌며 쇄골의 패인 부분에 몸을 담그고 새하얀 목을 향해 머리를 곧추세웠다. 나는 시퍼런 독액이 뚝뚝 떨어지는 송곳니를 한껏 빼물고는 갈라진 붉은 혀로 그녀의 목을 핥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한껏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의 가슴이 봉긋하게 솟아올랐다.

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 그녀의 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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