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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다정한 휴가

2019.05.27 10:3905.27

미우 

 

원흉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그날 아침 미우가 설거지를 하다 주저앉아 악을 쓰며 울어버린 탓에 티브이를 보며 식판에 담긴 아침을 먹고 있던 세나가 어린이용 젓가락을 손가락에 끼고 낯선 미우를 공포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 곧 미우를 따라 입 안 가득 분해되지 못한 멸치볶음과 밥알을 그대로 내보인 채 울게 된 그 모든 일의 이유는 안방에 있었다. 태어난 지 13개월 된 리한 탓이었다.

 

미우는 리한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업무로 복귀한 지 열흘이 지났다. 첫째 딸아이 세나를 길렀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세나의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휴직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대체로 기대심이 가득 차 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미우보다 한 해 먼저 육아휴직을 마치고 업무에 복귀했던 마케팅 부서 혜진의 말로는 휴가보다 중노동 출장이 더 맞는 표현이라며 한 달도 채 채우기 전에 차라리 일을 하게 해달라고 빌게 될 거라고 말했다.

 

진호도 세나를 가졌을 때에는 미우와 같이 휴직을 냈다. 그때 당시 진호에게도 주변에서 조언을 가정하여 혀를 많이 내둘렀는데 개중에서도 가장 많았던 것은 둘이서 같이 육아휴직 내봤자 급여는 한 명에게만 지원이 되니 무엇하러 아내와 꽉 채운 1년 휴직을 내느냐는 것이었다. 개월에 조금이라도 차이를 두라고 했지만 진호가 느끼기에 곧 바빠 올 연말에 인력 하나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 필사의 노력 같았다. 하지만 진호는 완강히 한날 한 시, 미우와 함께 휴직을 했다. 아이를 위한 휴직이라고 말을 붙였지만 사실 출산이라는, 진호는 결단코 가늠할 수 없는 일을 해낸 미우를 극진히 보살피기 위함이 컸다. 세나를 가졌을 때에는 그 모든 것이 계획대로, 무리 없이 흘러갔다. 결혼의 현실이라든가 육아 지옥, 현실과 가정이라는 극단의 축에 가랑이가 찢어져라 서 있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어쩌면 첫째 세나의 타고난 성상이 얌전했던 덕일지도 모른다고, 미우는 둘째 아들 리한을 낳고 생각했다.

 

“전날 지출결의서 확인하고 다시 연락 주세요. 문제 있으면 애 업고서라도 가야지 어쩌겠어요?”

 

미우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아마 자신이 리한을 업고, 한 손에는 세나의 손을 잡고 회사로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휴대폰에 불이 나는 한이 있어도 누구도 미우에게 두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오라고 할 사람은 없으니. 자기들도 급하게 낸 연차에도 전화로 일을 시킬지언정 얼굴을 마주 보며 일을 시키기에는 퍽 미안할 테니까.

 

리한은 세나와 달랐다. 임신했을 때부터 전에는 이처럼 심한 입덧과 몸살을 앓은 적이 없었다. 성별을 확인하기 전부터 시어머니는 아들이라 그렇다며 자신의 고통과는 전혀 상관없이 진호를 임신했을 때 자신이 겪었던 고통만을 줄줄이 나열했다. 집안일을 도와주겠다고 이른 아침부터 소식도 없이 찾아왔으나 결국 사과를 깎거나 그릇을 치우는 것도 미우의 몫이었고, 다음부터는 시어머니가 찾아와도 집에 없는 척 휴대폰도 꺼두고 갈 때까지 숨죽이고 있다가 저녁에야 엄마한테 갔다 왔다는 둥의 연락을 했다. 정말로 엄마한테 갔으면 덜 서럽기라도 하겠으나 그 얌전한 세나를 몇 달 봐주면서도 몸이 망가진 엄마라 미우는 자신이 찾아감으로써 한 시도 가만있지 않을 엄마를 생각하면 짐을 싸다가도 멈추게 된 것이다. 정말로 그나마, 세나가 얌전한 아이어서 다행이었다.

 

올해로 7살이 된 세나는 지난해부터 유치원에 다녔다. 누구에게 아이를 맡기든 집에 계속 있는 것보다야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과 어울리고 오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세나는 마치 타고나기를 제 엄마를 위해 천사가 내려온 듯한 아이였다. 태어나던 순간에도 긴 진통 없었으며 몇 번 만에 매끄럽게 나와 주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울지 않아 걱정이었으나 곧 의사는 요즘은 아이들이 울지 않아야 편안하게 나온 것이라며 안심시키며 방과 똑같이 생긴 출산실에서 미우의 가슴에 세나를 안겼다. 이마가 볼록하고 눈썹이 긴, 감고 있는 눈만 보아도 얼마나 사슴 같이 큰 눈망울을 가지고 있을지 짐작되는 딸이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새끼 기린처럼 빨갛고 쭈글쭈글해서 징그럽다는데 미우에게 세나는 그저 예쁘기만 했다. 7년이나 지났으니 해가 바뀔수록 기억이 점점 더 미화됐다고 하더라도 미우는 세나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의 포근한 인상만큼은 변하지 않을 거였다.

 

세나의 밥상을 치워주려던 순간 잠든 지 기껏 이십 분이 좀 지난 리한이 또 울기 시작했다. 식판에 손이 채 닿기도 전에 미우가 “잠시만.”하고 세나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고는 안방으로 향했다.

 

원래는 두 층 위에 사는 정씨가 돈을 받고 아이들을 돌봐줬다. 리한을 낳고 두 번째 육아휴직을 지내고 있을 적에 더는 엄마에게 아이를 부탁하지 못함을 알고 어린이집이나 유모를 구하기 위해 동네 어린이집과 인터넷을 샅샅이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워낙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흉흉한 일이 많았으며 인터넷은 정보를 찾으려고 할수록 유모에게 덴 일화들이 자꾸만 눈에 보였다. 그렇게 쉬이 어느 곳도 결정하지 못하고 광속처럼 휴직기간이 끝나갈 무렵,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아파트 1층 전광판에 붙은 어린이집에 연락을 하려던 찰나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간간히 눈인사를 나눴던 정씨가 먼저 ‘아이 맡기시려고?’하고 물어왔다. 정씨가 아파트의 아이들을 맡아 왔다는 건 그때 알았다. 미우는 그제야 분리수거장에서 정씨를 만날 때마다 등에 포대기로 아이를 업고 있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키도 작고 마른 몸에 나이도 이제 쉰 끝자락이라서 정씨가 아이 둘을 봐줄 여력이 있을까 싶다가도, 그간의 내공도 있을 것이고 쌩 판 모르는 남보다는 나았으며 무엇보다도 시간이 없었다. 리한이는 아침 8시부터 미우가 퇴근해서 오는 7시까지, 세나는 유치원을 마치고 오는 시간부터 7시까지 봐주는 걸로 적지 않은 금액을 월급으로 주었다. 미우의 수입 중 절반이 정씨에게 가는 것이어서 개인 적금통장에 돈을 넣었던 것도 그때부터 뚝 끊겼고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좋은 일을 해줄까 싶어 간간히 정해진 액수보다 돈을 더 많이 넣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치고 8시 10분까지도 정씨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아 기다리다 전화를 걸려던 찰나에 정씨가 전화를 해왔다. 며느리가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빨리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새벽에 응급실로 갔다는데 정신이 없어 해가 좀 뜨고 전화한다는 걸 이제야 하게 됐다면서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미우는 왈칵 ‘그럼 저는요?’하고 외치고 싶었으나 알겠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서야 손자 보신 걸 축하한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도대체 왜 우는 거야, 응?”

 

13개월을 조금 넘긴 리한은 이제 제법 앉은 자세를 유지하거나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일어나려는 시늉을 보이기는 했으나 아직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있었으며 틈만 나면 울었다. 피부가 예민해 웬만한 이불은 손빨래하지 않으면 살갗에 닿는 부분에 금방 두드러기가 일어났다. 잔열도 쉽게 올라서 몇 번씩 응급실에 갔는지 모른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이므로 각별히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세나 때에는 이런 적 없었는데…….’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괜히 리한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이럴수록 세나와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는데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아이 하나를 키웠다고 둘째에는 기고만장해있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세나야 왜? 필요한 거 있어?”

 

세나가 문지방을 밟고 서서 안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설거지 내가 했어. 내 거.”

 

“어머, 그 사이에? 내버려두면 엄마가 할 텐데.”

 

세나가 큰 눈으로 미우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뻗었다. 가리키는 것은 미우 품에서 겨우 울음을 그친 리한이었다. 미우가 민망함에 웃었다.

 

“우리 세나가 최고다, 정말 고마워.”

 

리한이 태어나고 난 이후로 세나에 대한 관심이 절반 이상 떨어져 나왔다. 어쩔 수 없었다. 엄마라는 역할은 한 명인데 아이는 둘이지 않는가. 더군다나 리한에게 손을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는 것도 불변의 진리 같은 것이지만 미안함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하는 것도 세나에게 좋지는 않은 것 같아 미우는 사과 대신 고마움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엄마는 세나 덕분에 살아, 세나가 엄마를 정말 기쁘게 해.

 

수출업을 하는 회사 경리팀에 속해 있는 미우는 세나를 가졌을 때 있었던 이전 회사와 사뭇 다른 회사 분위기에 입사 초기부터 적잖게 당황했다. 전에는 그래도 언니 동생 하며 서로가 일이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는 적당한 편의도 봐주었으며 세나를 출산하러 떠나는 길에는 크지는 않지만 영양제나 간식 같은 것들도 챙겨 줬었다. 특히나 애 셋이 있다던 같은 팀원 윤혜 씨는 미우가 복직하는 날 새 방석까지 선물하는 등 동료로서의 우애를 느끼게 해 줬다. 그렇지만 준호의 회사가 이사를 가게 되면서 미우도 이직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출퇴근이 30분에서 2시간 거리로 멀어지는 곳이었는데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세나를 생각하면 단 1분이라도 아끼고 싶었다. 길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던 것이다. 사회 초년부터 제법 우직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줬던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은 응당 슬퍼야 함이 맞았음에 미우는 결국 마지막 날 눈물을 보였고, ‘주책없게 왜 울어!’하고 미우를 나무라던 팀원들도 이내 저마다 눈물을 꾹 찍었다. 새로운 일터에서도 자리 잘 잡고 곧 적응할 거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해주었기에 미우도 그러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곳이 소위 말하는 꼰대와 알탕 집합소였으며 여직원이라고는 첫날 커피를 내주었던 민씨밖에 없다는 사실은 첫 출근에 모두 간파해 버렸다.

 

리한을 예정보다 6년이나 늦게 갖은것도 회사에서 눈칫밥 먹기 바빠 도통 다른 일들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였다. 다행히도 세나가 제 할머니랑 있으면서도 말썽 부리지 않아, 아이를 키우며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이를테면 아이가 바둑알을 삼켜 응급실에 갔다거나 갑자기 열이 난다거나 그냥 엄마가 보고 싶어 울어재끼는 일들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래서 자꾸만 세나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세나야, 엄마 정말 힘들어.’

 

‘엄마는 세나랑 둘이 있을 때가 제일 좋았는데…….’

 

‘위로해주는 거야? 엄마 울어도 돼?’

 

정서에 좋지 않을 것도, 아무것도 모를 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말하지 않으면 속이 답답해서 당장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세나의 호수 같이 커다란 눈이 그렇게 위로일 수가 없었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탈모도 다시 생겼다. 두 번의 임신으로 늘어질 대로 늘어난 뱃가죽은 바지 속으로 숨기기도 힘들어졌는데 올해로 마흔 후반이 된 같은 부서 팀장이 자꾸만 출산 후 관리에 대해 눈치를 줬다. 출산한 지가 1년이 지나 가는데도 배가 그렇게 나온 것을 보면 진짜 살이 아니냐는 둥……. 더 화가 나는 것은 그 말에 적당한 웃음으로 넘기며 속으로는 무시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녁밥을 몇 숟가락씩 남기는 자신을 눈치챌 때였다. ‘그깟 말이 뭐가 중요하다고. 내가 괜찮으면 됐지.’라는 생각은 자꾸 자기 암시처럼 느껴졌다.

 

결혼 9년 차에 접어든 진호는 늘 심심하고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승진을 앞에 두고 있던 터라 리한을 위한 육아휴직은 쓰지도 않았다. 미우는 내심 섭섭했으나 그래도 되느냐고 묻는 진호에게 ‘그러든가.’하는 미적지근한 답을 했다. 늘 진호가 자신의 고민에 보이던 정도의 반응이었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진호는 덥석 고맙다고 말했다. 회식은 잦아지고 야근은 점점 더 늘어났다. 늦은 밤, 진호가 올 때까지 리한을 재우며 기다리다 퇴근한 진호에게서 ‘일찍 왔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면상을 한 대 갈기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리한을 안고 있는 지금 미우에게는 아직 퇴근 전이니 말이었다. 퇴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그렇지만 미우에게는 버텨야 한다는 선택지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버틴다면 반드시 이 꽉 막힌 상황 중 어느 한 곳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처럼 회사를 갑자기 빠져야 하는 날이면 엄마로서 이런 희생도 하지 못하냐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왜 희생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이기심에 악을 쓰고는 했지만 버텨야 했다. 탈모가 진행되고 예전보다 감정 기복이 더 심해졌으나 언젠가, 언젠가는 분명 나아질 것이리라.

 

정씨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그로부터 나흘 후, 미우가 점심을 미루고 일을 끝내고 있던 시간이었다. 회사에 있을 때에는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전화를 주지 않았던 정씨였다. 급한 일인가, 싶어 황급히 휴대폰을 든다는 게 그만 의자 밑으로 떨어트렸고 그 짧은 순간에 전화가 끊겼다. ‘뭐지?’싶은 마음에 다시 걸려던 때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전화를 받자, 상대방의 목소리 이전에 건너편의 아주 소란스러운, 그리고 한 편으로는 어딘가 섬뜩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머니, 리한이가…….]

 

 

 

 

 

정씨

 

돌봐주던 아이가 죽었다. 사고였다. 그렇지만 죄지은 사람이 있다면 바보처럼 안일하게 행동한 자신이었다. 그 외에 어떠한 의도나 미스터리는 결단코 끼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의 죽음을 계속해서 사고로 놓지 못하고 겸연쩍게 바라보던 마흔 후반의 형사는 사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잠정적 판단을 내렸다. 자신은 아니라고 가슴을 퍽퍽 내리치며 외쳐봤자 수사에서 제외될 수 없다며, 간단한 질문만 오고 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남자 형사 옆에 내리 붙어있던 여자 형사가 정씨를 붙잡고 달랬다. 노희재 형사였다. 노 형사는 정씨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아이가 죽었다는 충격에서 살인마로 몰릴지 모른다는 공포심으로 전복되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떨렸다.

 

“어머니, 물 좀 마시세요.”

 

노 형사가 종이컵에 생수를 받아와 내밀었다. 적당히 따뜻한 물이었다. 한 대의 스타렉스와 한 대의 순찰차, 응급차의 잔상이 뒤엉킨 아파트 현관 앞 계단에 앉아, 정씨는 노 형사가 내민 물을 조금씩 들이켰다. 눈물을 쏟아내 메마르고 갈라졌던 속이 따뜻한 물로 채워지고 진정된 듯했다. 노 형사가 정씨의 손을 가만 잡았다. 하는 행동들이 꼭 딸 같았다. 분명 노 형사도 누군가의 딸일 터이니, 떨고 있는 불쌍한 엄마뻘의 노인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운 마음에 나온 행동일 것이다. 정씨는 노 형사의 말에 따라 숨을 차분히 쉬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였다. 잘못한 게 없으니, 세상의 정의는 오로지 진실을 동반하지 않는가. 사고로 간주되기는 어려운 일이라 누군가의 의도된 살인으로 보고는 있지만 고작 13개월짜리 아이를, 납치도 아닌 살인을 하기에는 아이는 아직 세상을 살며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두 부모의 인간관계를 더 파악해야 했다. 정씨는 필사적으로 기억하려고 애썼다. 자신이 혐의에서 완전히 풀려나려면 더 강력한 다른 용의자가 있어야 했다. 그렇지만 아등바등 사는 사회 초년 부부였다. 정씨가 생각하기로도 두 부부가 타인에게 원한을 사며 살아갈 성품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며 두 사람 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물론 사사로운 관계야 정씨가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하지만 정씨는 아까부터 계속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집의 장녀. 세나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며느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다. 붙임성 좋은 성격은 아닌 것 같았지만 적당히 예의 있게 대화를 이어나갔고 자기 할 말도 얼버무리거나 세지 않게 조절하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결혼 적령기에 소개팅으로 만나 서로의 조건을 보고 결혼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내렸다고 솔직하게도 말했다. 꿈같은 결혼생활을 꿈꾸다 그 환상이 깨져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제 일도 열심히 할 줄 아는 며느리였기 때문에 정씨는 처음부터 홀어미인 자신을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게 하려고 딱 잘라, 아들 부부에게 자신과 따로 떨어져 살라거나 생활비는 보내주지 않아도 나라에서 준다고 말해둔 터였다. 아들은 처음 몇 번 혼자 살면 위험하다고 말리더니 이내 결혼 생활 몇 달 만에 일주일에 전화도 겨우 한두 번 하는 수준이었다. 나라에서 돈을 준다고 해봤자 겨우 십몇만 원이었다. 그래서 정씨는 많은 나이에도 아이들 돌보는 일을 포기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며느리가 달에 삼십씩은 용돈을 챙겨줬고 못해도 삼일에 한 번씩은 전화를 해 안부를 물었다. ‘아프신 데는 없으시고요? 불편한 곳 있으면 말하세요.’딱 그 정도 수준이었지만 아들보다는 나았다.

 

딸이 없어서 말년에 고생할 거라던 말과 달리 믿음직스러운 며느리가 와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처음 미우를 알게 되었던 날, 정씨는 무엇보다도 미우의 손을 잡고 자신을 올려다보던 세나의 눈빛이 사랑스러워 녹아내릴 정도였다. 정말 딸이란 이런 행복이구나. 정씨는 리한이 때문에 고용된 유모였지만 세나가 더 눈에 들어왔다.

 

며느리의 임신을 알게 된 후에는 통화가 더 잦아졌고 밑반찬이나 산모에게 좋은 것들을 해 다 먹이기 바빴다. 며느리는 만류는 하지 않았고 대신 다음번에 갈 때면 그전에 해 간 반찬을 싹 비웠다.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뭐 넣고 버무리신 거예요? 맛있던 걸요.’ 아부성 짙은 칭찬 대신 비법 조리법을 물어보는 듯한 말투도 좋았다. 예전에는 오래 있으면 불편해할 것 같아서 짐을 맡기듯 두고 떠났는데 며느리가 피곤하면 피곤하다고 말한다는 걸 경험한 후에는 있고 싶을 때는 언제든 있을 수 있었다. 며느리와 대화가 많아지면서 정씨는 자연스럽게 보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소재가 늘었다. 특히나 세나에 대한 이야기는 늘 칭찬이었다.

 

“딸들은 원래 그래요. 엄마가 안쓰러운 사람이라는 걸 본능으로 타고나나 봐요.”

 

타고나는 본성……. 정씨는 며느리의 말을 듣고 나서야 어릴 적 아버지와 오빠들이 포도를 다 먹을까 봐 어머니 몫의 몇 알을 주머니에 숨겨뒀던 일이 떠올랐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자신도 그런 적이 있었다니. 정씨는 며느리가 딸을 가지기를 그때부터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랬던 세나에게서 기묘한 감정이 들기 시작한 것은 세나가 지나치게 제 엄마의 것만 챙기는 모습을 목격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포도 낱알까지 챙겼던 자신을 떠올리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으나 세나는 마치 이 집에서 아빠와 리한의 존재는 없는 듯이 행동했다. 리한을 등에 업고 셋이서 슈퍼에 딸기를 사러 갔을 때에도 세나는 4인 가족이 먹을 수 있는 딸기 상자 대신 조그만 바구니에 담긴 딸기를 가져왔다. 둘이서 먹기에는 이게 충분하다고 말이다. 처음에야 애들이라면 제 엄마만 좋아하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아빠랑 리한이 거는 없는 거야?’하고 묻고는 했지만 그런 행동이 잦아지고 세나가 유치원에서 그려 온 가족 구성원에 제 엄마와 저 밖에 없다는 걸 보고 나서는 다른 또래에 비해 유별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이 있던 시간에 리한은 유모차에 타고 있었다. 안전벨트를 채우지 않았던 건 어차피 가는 곳이라고 해봤자 아파트 뒷마당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정씨가 사는 103동 아파트 뒷마당에는 6대 정도 세울 수 있는 지상주차장이 있었으나 낮에는 대부분 출근 탓에 차들이 빠져 공터였다. 그때마다 그곳은 아파트 주민들에 의해 건조장이 되었다. 정씨는 홍고추를 말렸다. 햇빛이 직선으로 내리 꽂히는 곳에 건고추가 될 때까지 말린 후 직접 빻아 고추장을 만들었다. 며느리가 고추장이 특별히 맛있다고 한 후에는 매해 그 일을 미루지 않았다. 직접 먹일 수 있는 것은 직접 먹여서 하자. 그 노력을 아들은 평생을 해 먹여도 몰라주었는데 며느리는 찌개 단 한 숟가락으로 바로 알아차렸다. 세나가 오는 시간이면 말려두었던 홍고추를 거두러 갈 시간이었다. 원래라면 4시 즈음 리한이 낮잠을 자기 위해 칭얼거리기 시작하면 유모차에 태워 아파트 현관 앞에 나와 산책하고 있으면 세나를 태운 유치원 버스가 4시 15분경 도착해야 했다. 그럼 세나와 함께 말린 고추를 비닐봉지에 담아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인데, 오늘. 세나가 초인종을 누르고 집에 온 것이다. 4시가 안 된 시간이었다.

 

‘어머!’

 

‘일찍 끝났어요.’

 

세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집은 고작해야 4층이었는데 봉고차 소리도 못 들었을뿐더러 유치원 하원이 이렇게 들쑥날쑥해도 되는 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오늘도 고추 가지러 가나요?’

 

‘응, 그럼 가지. 무슨 일 있니?’

 

‘저도 같이 나갈래요.’

 

어차피 따라 나와 봤자 늘 정씨가 고추를 다 담을 때까지 도로 턱에 걸터앉아 쳐다보는 것 밖에 없으면서 왜 굳이 따라 나온다는 걸까…….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이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 정씨는 그러려니 했다.

 

리한이는 유모차 밖으로 튀어나가 돌계단으로 굴러 떨어졌다. 떨어지는 동안 아이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아이를 발견한 것은 계단 밑을 지나고 있던 대학생이었으며 소리를 질렀을 때, 정씨는 아주 잠깐 집에 올라갔다 도로 내려와 계단 앞에 덩그러니 있는 유모차를 봤다.

 

“왔을 때 사람은 없었다는 얘기죠?”

 

남자 형사는 딱히 자신에 대한 소개도 없이 정씨 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며 물었다. 정씨가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근처에 씨씨티비는 정말 없습니까?”

 

“없다고 들었어요. 정 못 믿으시면 관리사무소에 여쭤보시지…….”

 

“안 그래도 보내기는 보냈어요.”

 

대학생이 119에 신고를 한 시각과 정씨가 아파트 건물 내에 있는 CCTV에 찍힌 시간으로 미루어 정씨가 범죄를 일으켰을 확률은 극히 드물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지은 지 30년이 되어가는 오래된 아파트에는 CCTV 사각지대가 많았고 사건이 일어난 뒷마당과 비밀의 문처럼 난 작은 돌계단이 그런 곳이었다. 경사가 급한 곳도 아니었으니 아이를 토해낼 정도로 유모차가 저 혼자 굴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필시 누군가가 이곳에 왔다는 것인데 목격자도, 블랙박스도, CCTV도 없었다. 남자 형사가 하수구에 가래를 끌어다 뱉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딱 한 명 존재했다.

 

“애는 이상한 소리나 하고 쯧…….”

 

세나. 그 아이는 계속 그곳에 있었다.

 

“아이가 원래 평소에도 좀 이상한 이야기 자주 하고 그럽니까?”

 

“……애들이 하는 말들이 늘 그렇죠 뭐.”

 

“괴물이라니. 참나.”

 

남자 형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괴물이요?”

 

“예예, 뭐 아파트만 한 괴물이 나타나서 발로 찼다고 그랬나.”

 

 

 

 

 

희재 

 

미우는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 옆에는 여자 경찰이 미우를 지키고 있었다. 여자 경찰은 응급실로 들어오는 희재를 보자마자 플라스틱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켰다. 미우의 남편이라는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 희재의 연락을 받고 ‘뭐……’하고 되묻던 남편은 곧 말을 멈추고 한참 후에 ‘욱’하는 소리를 뱉었다. 그게 토를 하려고 했던 것인지 눈물이 터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희재는 미우가 실려 간 병원 주소를 읊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이의 죽음을 듣고 회사에서 현장으로 달려온 미우는 추운 겨울날에도 블라우스 차림에 사원증도 빼지 않았고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달려오다 넘어졌는지 살구색 페이크 삭스 앞이 뚫려 있었고 발톱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미우는 전혀 알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폴리스라인으로 뛰어 들어가는 미우를 지키고 서 있던 남자 경찰 둘이 막으려는 걸 희재가 말렸다. 이 정도 짬밥이었으면 한눈에 누가 피해자의 보호자인지 알아차려야 하는데 남자 경찰들이 늘 게을러서 문제였다. 희재는 숨고 제대로 쉬지 못하는 미우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그곳에 없다. 이미 사망선고받은 아이의 곁으로 미우를 다시 안내했다. 사정없이 떨고 있는 미우의 손을 희재가 살며시 손가락을 감싸 잡았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피해자와 같은 온도가 된다. 지금부터 평생을 쭉 그런 온도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1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아이, 리한의 사체는 살인이라 하기는 단순했고 사고라 하기는 잔혹했다. 튕겨져 나가듯 15개 돌계단 밑으로 떨어졌으니 단단히 여물지 못한 아이의 두개골이 멀쩡할 리 없었다. 미우는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예상 가능한 반응 중 하나였기에 희재는 곧바로 미우가 땅에 닿지 않도록 뒤에서 단단히 안았다. 여자 경찰에게 병원에 동행할 것을 부탁하고는 사건 현장과 미우의 사건 현장을 마저 정리하고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붕대가 감긴 미우의 발가락을 보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응급실로 들어왔다. 피해자 가족들의 걸음걸이에는 절망과 불행이 함께 깔려 있었다. 그래서 걸음걸이만 듣고도 곧 자신에게 절규의 비명을 지르며 다가 올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형사가 된다는 것은 그런 귀를 가지는 것과 유가족들에게 대리 범인이 되어주는 것이다. 최 형사의 말이었다. 희재가 갓 태어난 기린 같은 걸음으로 현장을 헤매고 다닐 적에 희재에게 걷는 법을 가르쳐 준 선배였다.

 

최 형사는 기동대에서 4년을 버티다 형사과로 승급시험을 봤고 여자 형사 중에서는 꽤 오랫동안 반장으로 자리를 지키던 호랑이었으며 희재를 형사과로 지원하게 한 우상이었다.

 

‘범죄영화 같은 건 좀 보냐?’

 

‘시간이 없어서 잘 안 봅니다.’

 

‘인마, 시간을 내서 봐.’

 

‘예?’

 

‘영화감독들이 하도 똑똑해서 영화로 추리하는 거 보면 얼추 비슷한 거 많아. 많이 봐 놔. 경험이 많아야 머리도 회전을 좀 하는데 그렇다고 범죄가 많아지라고 기도할 순 없잖니?’

 

3교대였으나 그마저도 일이 바쁠 땐 들쭉날쭉했던 휴무였음에도 꼬박 영화 결제를 하고 영화관에 찾아가도록 한 사람이 최 형사였다. 최 형사의 말처럼 영화를 통한 간접경험이 실제 수사에 도움이 됐는지는 아직까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서 직원들 외에 바깥세상 사람들을 만날 때 세상이 차단됐다는 느낌은 없앨 수 있었다. 최 형사는 호랑이 같은 카리스마와 촉을 겸비한 형사로서 성과도 곧잘 냈으나 최종적으로 반장 이상의 승진은 멈춘 지 오래였다. 최 형사보다 뻔히 성적 좋지 않은 반의 반장들이 차례로 높아지는 것을 바라보다 희재는 ‘억울하지 않습니까?’하고 도리어 자신이 볼멘소리를 했다. 최 형사는 사건 기록들을 들춰보다 웃으며 희재에게 물었다.

 

‘너는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사건과 범인을 모르는 사건 중 뭐가 더 괴로울 것 같니?’

 

희재는 망설이지 않고 후자라고 답했으나 끝내 답을 듣지는 못했다. 최 형사는 2년을 더 버티다가 일을 그만두었다. 사람들이 늘 입에 올리던 그 ‘때’가 된 것이다. 최 형사의 삶이 아닌 진정한 최영미로서의 삶……. 최 형사는 자신이 늘 가지고 다니던 조그만 수첩을 희재에게 선물했다. 사건을 추리하는 엄청난 비법이 있을 줄 알았으나 거기에는 다양한 욕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희한한 것이 사건을 떠나 여자 형사라는 이유로 현장에서 뒤로 밀려날 때마다 수첩을 읽으면 속이 편안해졌다. 속이 뻥 뚫리는 욕들을 소리 내어 읽으면 버틸 수 있게 됐다.

 

진호를 만나 일방적인 사건 통보를 알린 후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많은 것이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의 시체는 정확한 사망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부검실로 갔으며 몰렸던 구경꾼들도 흩어졌고 정씨는 내일까지 유치장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세나는 아동심리상담전문가와 함께 제 부모가 올 때까지 있을 거였다. 정씨는 사건 추정 시간에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출입문 CCTV에 찍혀 직접적인 살해용의에서는 풀려날 수 있었지만 공범의 가능성을 배제시킬 수 없었다. 정씨는 희재의 차분한 말에도 당장 누가 목에 칼을 겨눈 것처럼 떨며 범죄를 부정했다. 아이가 저렇게 된 것에 대해,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죄를 묻느냐고 물었고 희재는 물 한 잔을 정씨에게 내밀었다. 미우는 수출업 경리팀에서 일했고 남편 진호는 교재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했다. 아이는 오늘 사망한 아이를 포함해 둘. 어디 가서 원한을 살만큼 특출 난 환경은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이들의 원한을 살펴보려면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하지만 끝내 사고로 끝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돈을 원하지 않은 아동 살해 사건은 대체로 가 그렇게 끝났다.

 

사건이 일어났던 순간에 이 집 장녀 세나는 그곳에 있었다. 유일한 목격자였다. 다급하게 현장으로 온 아동심리상담전문가는 충격받았을 아이를 달래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으나 남자 형사는 아이의 짧은 기억력이 곧 모든 것을 왜곡시킬 것이라며 닦달했다. 전문가는 하는 수 없이 스타렉스에 자리를 잡고 세나에게 동생의 유모차를 민 사람을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쥐어준 크레파스로 A4 용지에 그림을 그렸다. 종이를 가득 채우는 검은 괴물이다. 몸통은 비대하게 컸으나 다리를 짧았고 팔은 근육으로 가득했지만 길이가 짧았다. 얼굴은 구분되지 않았다. 세나가 괴물을 전부 검게 칠해버린 탓이었다.

 

안방에는 침대 옆에 유아용 침대가 바짝 붙어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스탠드 하나와 기저귀가 잔뜩 깔려 있었다. 원래는 테이블의 주인이었을 화장품과 거울은 바닥에 깔린 지 오래였다. 베개의 묻은 머리카락으로 보아서는 미우가 아이 침대 쪽에서 잤다.

 

최 형사는 일은 그만뒀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선을 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말미에는 늙은 노모에 의해 결혼 알선 업체에 정보까지 팔아넘겼다. 그렇지만 한때 악을 물리치기 위해 범인을 때려잡았던 일등 공무원이었던 최 형사는 꼴등 신붓감이었다. 나이가 많은 것을 떠나 최 형사는 근육이 너무 많았고 할 줄 아는 것이 요리나 재테크가 아닌 특공무술이었기 때문이었다. 희재가 들은 최 형사의 마지막 소식은 저 밑 지방 파출소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어르신들을 도와 김장을 하고 혼자 사는 노부들의 끼니를 챙겨준다고 했다. 그 뒤로 소식을 묻는 안부조차 먼저 하지 않았다. 최 형사가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테이블 두 번째 서랍이 문이 열려 있었다. 침대에 누우면 손이 닿는 위치였다. 희재가 서랍을 열었다. 그 속에는 여자속옷과 아이 수건 따위가 뒤얽혀 있었고 그 안에 봉투 하나와 약이 있었다. 흰 봉투 속에는 서명 사인까지 마쳐 놓은 사직서가 들어 있었다. 만일 최 형사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희재는 그때에 대한 답을 정정할 것이다. 범인을 알고 있는 사건이 더 괴롭다. 범인을 알고 있는 이상 그것은 사건이 될 수 없는데 범인을 알고 있는 사건이라 함은, 필시 알고 있으나 잡을 수 없는 범인일 것이다. 봉투와 함께 들어있는 약은 다이어트 식욕 억제제였다. 통 겉면에 가슴이 크고 허리가 잘록한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허리에는 줄자가 감겨 있었고 ‘임신 살을 쏘옥!’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사건도 그렇게 끝날 것이다. 리한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은 이렇게나 괴물의 형상으로 크게 자리 잡고 있으나 아무도 잡지 못 할 거라는 확실히 들었다.

 

세나는, 누구보다 살인 현장을 바로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였다.

 

 

 

 

 

세나

 

미우가 거실 중앙에 누워 있다. 아이의 사망신고도, 장례 절차도 전부 기억나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데 가만있으면 자꾸만 옅은 잠에 들었다. 의사는 안정제에 수면 성분이 있어서 평소보다 잠이 많아질 것이라고는 했지만 이 정도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인터넷에서 산 다이어트 약은 안정제 때문에 잠정적으로 복용을 중단했다. 식욕은 돌아오지 않았다. 미우는 원치 않게 하루씩 말라갔다. 곧 리한을 가지기 전의 몸무게가 될 거였다. 진호와의 대화는 부쩍 줄었다. 각자가 힘듦을 알아서 감내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세나가 거실로 나온다. 미우의 옆에 눕는다. 미우는 습관적으로, 따뜻한 것을 찾으려는 동물처럼 세나를 꼭 끌어안는다.

 

“엄마, 휴가야?”

 

“……응. 휴가야, 세나야.”

 

“그럼 안 힘들어?”

 

“응, 엄마 안 힘들어. 세나랑 같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

 

“다행이다.”

 

세나가 있어서 다행이다……. 정말로 세나가 있어서 미우는 숨을 쉴 수 있다. 미우가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꾹 깨문다. 눈을 질끈 감는다.

 

“엄마.”

 

“…….”

 

“내가 또 휴가 줄게.”

 

다정한 세나의 목소리만 이 세상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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