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

 

삐삑-

 

 

 

‘사천 오백원입니다. 카드 받았습니다.’

 

 

 

소영은 담배 바코드를 찍고 가격을 말했다. 기계적인 친절이 묻어 있었다. 물론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곧 건너편의 중년 남성은 만원 한 장을 계산대에 던졌다. 떨어진 지폐를 아주 짧게나마 바라봤다. 흔한 일이다. 그래 흔한 일이잖아. 소영은 속으로 되뇌었다. 비릿한 잔상을 지우며 지폐를 계산기에 넣었다.

 

 

 

‘저기 따뜻한 캔커피도 하나 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영은 고개를 들었다. 중년 남성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계산대 앞에 꼿꼿이 서 있었다. 곧 계산대를 봤지만 역시나 캔커피는 자리에 없었다.

 

 

 

‘손님. 온음료는 우측에 보시면 있습니다. 원하시는 걸 가지고 오시면 되요.’

 

 

 

소영이 설명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미동도 없었다. 다만 소영에게 고정된 남성의 시선이 말을 걸었다. 그니까 니가 가져 달라고.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눈이 마주친 후였다. 긴 한숨을 억지로 참으며 소영은 계산대 자판을 위로 젖혔다. 더 할 말이 있는 듯한 시선을 애써 피하며 우측 진열장으로 향했다. 소영은 4~5 종류의 캔커피를 쳐다봤다. 커피를 즐기지 않는 탓도 있지만, 어떤 커피가 입에 맞을지 알도리가 없었다. 저런 흉물스러운 사람의 입맛은 더 알도리가 없어 보였다. 단순히 진상을 피우려는건가? 의심을 애써 억누르며 정성껏 커피를 훑어봤다. 1+1, 2+1이라 적힌 이벤트 상품들과 어차피 같은 공산품임에도 가격으로 고급스러움을 내뿜는, 그래서 할인은 하지 않는 제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제품은 행사 제품보다 500원 더 비쌌다. 500원 만큼 고급스러운건 얼마나 고급스러운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소영은 500원이 더 비싼 제품을 꺼내 계산대로 갔다. 자주 만지지 않았지만, 500원 만큼의 온기가 더 전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계산대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불편한 시선은 계속되었다. 애써 침착하게 바코드를 찍었다.

 

 

 

‘6000원... ’

 

 

 

능글맞은 시선을 느끼며 소영은 말끝을 흐렸다. 반말처럼 들렸으면 싶었다. 한편으로 정말 반말로 들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뒤따랐다. 잔돈을 건냈다. 계산대 위에 던지고 싶은 심정을 참았다. 냉큼 지폐를 받아 든 남성은 골몰히 계산대 위의 캔커피를 보고 있었다. 담배갑은 얼른 주머니에 넣은 것과는 달랐다. 작은 긴장이 감돌았다. 소영은 생각했다. 일부로 비싼 걸 고른걸 알면 어쩌지? 행사 상품이 아닌 걸 알면 어쩌지? 아니 실상은 어떤 제품이든 상관없이 컴플레인을 걸겠지? 찰나의 시간 동안 많은 생각들이 계산대 안과 밖으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혼란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 아가씨가 커피 맛을 좀 아네!? 캔커피는 역시 남양이지.’

 

 

 

남성은 빙긋 웃으며 캔커피를 집어 들었다. 웃음이 비렸다. 남성은 소영의 조마조마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쾌한 흥얼거림을 남기며 편의점을 나섰다. 불쾌한 잔여물을 휘저으며 소영은 잠시 숨을 골랐다. 일부러 500원이나 비싼 음료를 골랐는데. 오히려 입맛에 맞았다는 생각을 하니 패배감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싸가지는 없어도 취향이 확실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차례 거사를 치르고 나자, 자신이 편의점 알바를 시작할 때 그만 두던 선배(?) 알바생이 비장하게 남긴 말이 문뜩 떠올랐다.

 

 

 

‘세상은 넓고 편의점은 수없이 많으며 진상은 각양각색이다.’

 

 

 

자기 커피 취향을 시험하는 손님도 있을 줄은, 저 새끼를 만나기 전이라면 내일도, 내년에도, 다음 생에도 몰랐을 것이다. 다시금 큰 깨달음을 되새기던 소영은 그 선배의 행방에 관한 상념에 잠시 빠졌다. 이정도의 통찰이면 지옥 불반도를 벗어나 신선이 되지 않았을까? 하얀 백로를 타고 콘크리트 숲을 유유히 날아다니는 그런 신선. 아! 신선이 되지 않아도 좋다. 지옥 불반도를 벗어나긴 했겠지?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믿었다.

 

 

 

딸랑.

 

 

 

편의점 투명문이 열리며 기척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상상도 자유롭지 않은 자유대한민국의 아르바이트생. 아니 지옥 불반도의 든든한 문지기는 상념을 지우며 주둥이에서 침을 뱉어 냈다.

 

 

 

‘안녕하세요. 편의점 25시입니다.’

 

 

 

다음 손님은 롱패딩을 입은 젊은 남녀 연인이었다. 남자는 롱패딩이 감추어진 여자의 허리를 감았고 여자는 붙여놓은 찰떡같이 남자에게 엉겼다. 서로 다른 색깔 찰흙이 경계선을 지우면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곧 가판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무엇을 먹고 싶냐는 물음이 떠다녔고 그 위를 결정 장애에 걸린 여자의 애교로 채워나갔다. 견고하게 굳은 두 색의 찰흙에게는 당연히 소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편의점을 탐색 하기만 할 뿐이었다. 어쩌면 서로를 탐하기 전에 의식처럼 들리는 전초전일지도 몰랐다. 눈꼴 사나웠다.

 

하지만 그다지 감정 소비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이 흐르듯 바람이 불어가듯 그렇게 여기를 부유하다 떠날 운명 같았다. 역시나 둘은 그냥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 편의점을 나섰다. 물론 유리문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이유 모를 승리자의 눈빛을 보내긴 했지만. 다시 한번 팔을 저으면 남은 눈빛을 흐트렸다.

 

 

 

마치 이어달리기 주자를 보는 것 같았다. 목적지는 소영의 혈압 지수 180. 들어오는 모든 손님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서로가 의식하지 못한 채 바통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커피 손님같이 전력 질주를 하는 이도 있고, 앞선 커플같이 설렁설렁 산책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손님은 어찌 되었든 결승선을 향해 한발씩은 꼭 내딛었다. 소영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결승선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시계를 봤다.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시간이 빨리 가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잠시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허벅지 탄탄한 주자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술에 취한 손님, 자기가 취한지 안 취한지도 모르는 손님, 집을 나오듯 한 중학생 무리와 주변에서 자취를 하는 듯 보이는 후줄근한 차림의 대학생들. 이어달리기 선수들은 하나 같이 친절함... 아니 인간다움은 집안 쌀통에 고이 모셔놓은 듯 했다.

 

 

 

‘1+1인데 이거 왜 없어?’

 

‘카드 잔금이 있을 건데 왜 계산이 안되요?’

 

‘저기 이거 라면 국물이 따뜻하지가 않은데? 온수기 고장 난거냐?’

 

‘민증 안 가지고 왔는데 이번 한번만 봐주세요. 성인 맞다니까요?! 전에 알바 언니는 다 줬는데? 진짜!’

 

 

 

반말은 기본이었다. 이도 아니면 과자 봉지를 아무렇게나 버린다던지, 음식과 음료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눈치만 본다던지, 침을 뱉는다던지 따위의 바통이 이어졌다. 혈압상승 주자들은 언제나 열정적이었고, 그 열정을 스스로 몰랐고 서로도 몰랐다. 오직 소영만 그걸 느꼈다. 홀로 느낄 수 있다는 특별함이 그래서 더 씨발스러웠다.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주자들이 얼마나 왔다 갔을까? 소영은 내려온 다크서클을 끌어 올리고, 최대한 피로를 몰아냈다. 비빈 눈에 드디어 푸르스름한 새벽녘 빛이 느껴졌다. 계주들이 달리는 트랙 위에 조금씩 아침이 내려앉고 있었다. 한발 두발씩 다가오던 결승선이 희미해졌다. 곧 퇴근이다. 작은 안도감과 기대가 차올랐다.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퇴근을 알려주는 납품 트럭이 편의점 문 앞에 도착한 것이다. 이것만 마무리하면 끝이었다. 핼쑥한 눈에 생기가 조금 돌았다. 편의점으로 들어온 기사님은 짧게 인사 건냈다. 곧 트럭에서 물품을 내렸다. 소영도 일을 도왔다. 얼마간 반복 작업을 했을까? 허리를 펴자 아침 온기가 소영을 감쌌다. 기사님은 다시 짧게 인사를 건냈고 곧 트럭이 떠났다. 아직 시간이 남은 소영은 납품 받는 물건들을 가판대에 쪽으로 옮겼다. 차분히 하나씩 정리했다. 가판대를 채우고 남은 물품 상자는 카운터 우측에 있는 창고 쪽으로 옮겼다.

 

 

 

소영은 창고가 싫었다. 편의점 알바를 하는 시간에도 가능하면 창고를 가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창고는 어둡고 음산했다. 게다가 물품을 쟁여 놓는 수납 테이블들은 언제나 위태했다. 나뿐만은 아니겠지? 모두가 여기를 싫어했겠지? 소영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소영만큼 창고를 싫어하는 알바생은 없었다. 다들 가벼운 불쾌함 정도는 느꼈지만, 소영은 불쾌함 이상의 소름끼침과 공포스러움까지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창고 안쪽은 누군가 웅크리고 앉은 느낌적인 느낌이 났고, 이상한 소음이 들리는 경우도 있었다. 마치 쇠를 긁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자신이 묵고 있는 고시원이 떠올라 더더욱 창고가 불쾌했다. 아니 미웠다. 그래서 퇴근시간에 오는 물품을 창고로 옮기는 건, 언제나 가장 어려운 미션이었다. 매번하는 일이지만 쉬 적응은 되지 않았다.

 

‘얼른 마무리 하자.’

 

 

 

소영은 입을 다물고 혼자 다짐했다. 이어 파란색 수납 플라시틱통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최대한 소음이 들리지 않게 박스를 끌며 창고로 들어갔다. ‘끼기긱’ 그럼에도 바닥을 긁는 소음을 피할 수 없었다. 거슬리는 소리를 외면한 채 창고 가장자리로 박스를 던지다시피 밀어 넣었다. 약한 수납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어 남은 박스를 하나씩 더 밀어 넣었다. 그렇게 던지듯 박스를 밀어 넣을 때 마다, 수납대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오히려 회색으로 쌓인 먼지와 그 먼지 사이를 지나간 벌레들의 흔적, 그리고 창고 안쪽에 어둡게 자리 잡은 얼룩들이 더 신경 쓰였다. 약간의 진동이 소영의 조급함을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박스가 하나둘 밀어 넣어지고 드디어 하나만이 남게 되었다. 깊은 심호흡을 하면 마지막 박스를 다 옹골차게 손에 쥐었다. 창고 입구에 앞발을 살짝 디딘 자세를 잡고 마지막 박스를 힘껏 밀어 던졌다. 짧은 희열이 같은 것이 담겨 힘이 좀 들어 가버렸다. 쿵하는 소리와 물품 박스는 창고 구석에 무겁게 자리했다. 운동 에너지가 수납대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끼익끼익’ 거슬리는 소음이 들려왔지만, 애써 외면했다. 소영은 다음 알바에게 창고 나사를 좀 쪼라는 인수인계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수납대의 흔들림이 가셨다.

 

 

 

‘오늘도 끝났네.’

 

 

 

일을 마쳤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보람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소영은 문 한편으로 물러서 창고를 훑어봤다. 이제 문만 닫으면 정말 남은 일을 끝이었다. 하지만 소영은 신경이 쓰였다. 마지막에 던지듯 정리한 파란 물품박스가 삐뚤었다. 아귀를 맞추고 싶었다. 찝찝했다. 잠시 그 삐뚤게 놓인 물품박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냥 둬도 관계없었다. 하지만 소영은 그게 더 불편했다. 던져 놓은 듯 대충 퍼질러 앉은 박스의 모양새. 마치 자기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싫었지만, 제대로 아귀를 맞추지 않으면 영영 편의점 알바 인생도 아귀가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금세 박스로 다가가 박스 사이에 벌어진 틈새를 맞춰 고정시켰다. 틈새 없이 정리된 박스의 모습을 바라봤다. 고작 비뚤어진 박스를 제대로 정리 한 것 뿐이지만, 한결 마음이 편했다. 허리를 다시 펴고 일어섰다.

 

그때였다. 방금 전 흔들리던 수납대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흔들리는 게 아니었다. 수납대는 소영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태를 인지하지 못한 소영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수납대는 더 심하게 요동쳤다. 마치 무거운 기둥에 묶인 사람이 발버둥 치며 풀려나길 바라는 것처럼. 수납대의 몸부림이 심해졌다. 짧은 순간 사이로 나사가 튕겨 나왔다. 그 반동에 놀라 소영은 뒤로 자빠졌다. 나사가 또 하나 풀렸다. 너무 놀라 숨도 멈췄다. 창고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만 고개만 돌려 열린 창고문 너머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이내 수납대는 자신을 묶었던 나사를 전부 튕겨 내고 소영 앞으로 다가왔다. 하얗게 질린 소영의 얼굴을 보며, 소영의 머리 위로 쓰러졌다. 황망한 상황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고, 덮치는 수납대를 간신히 팔로 막았다. 하지만 거대한 수납대의 덩치와 무게를 버텨낼 수 없었다. 소영도 뒤로 쓰러졌고 의식을 잃었다.

 

 

 

 

 

2.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소영이 눈을 떴다. 어리둥절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누군가 알은체를 했다.

 

 

 

‘아이구! 일어났나 보네! 잠깐 기다려 봐.’

 

 

 

한 중년여성이 깨어난 소영은 발견하고 말을 건넸다. 이내 호들갑을 떨며 병실을 나섰다. 여성이 나간 자리에 환자복을 입은 또래의 남성이 소영의 눈에 들어왔다. 남편으로 보였다. 남성 환자는 초점 없는 멍한 눈으로 뜻 모를 감정을 보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의아해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인기척이 들렸다. 병실을 나간 여성이 간호사와 함께 돌아온 것이다.

 

 

 

‘어! 깨어나셨네요?! 다행이네요.’

 

 

 

살가운 간호사의 말에 소영도 입을 열었다.

 

 

 

‘창고 매대가 쓰러진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아 기억은 나시나요? 편의점에서 쓰러지셨다고 구급차에 실려서 왔어요. 가벼운 뇌진탕이라고 하셨는데 CT를 찍어봐야 돼서 우선 진행을 했구요. 검사 결과는 곧 나올 것 같아요.’

 

 

 

친절한 간호사의 말에 편의점에서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봤다. 철제 선반이 무너졌다. 아니 철제 선반이 자신을 덮쳤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위협적인 그 모습에 물러서다 뒤로 넘어지듯 머리를 바닥에 들이받았다. 그리고는 기절을 했던 것 같았다. 그 이후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제시간에 교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핸드폰을 확인해야 했다.

 

 

 

‘.... 혹시 제 물건은 어디 있나요?’

 

‘급하게 오신다고 개인 물건 맡겨진 건 없었는데요?’

 

‘네? 그럼 혹시 핸드폰이라도 못 보셨나요?’

 

 

 

소영의 걱정스러운 질문이 이어지자 옆에 있던 중년 여성이 손을 쑥 내밀었다. 핸드폰이었다.

 

 

 

‘응응! 집에 얼른 전화 드려. 십년감수 했겠네. 젊은 아가씨가.’

 

 

 

자신의 핸드폰을 건넸다.

 

 

 

‘아니 그게 아니고...’

 

 

 

잊고 있던 친절이 어색해 말을 잇지 못했다. 몸도 반응하지 못했다. 당장 생각나는 건 친절함에 대한 리액션이 아니었다. 타인이 건네주는 핸드폰은 더더욱 아니었다. 연락처가 담긴 자신의 핸드폰이었다. 혹시나 와 있을 연락들을 확인해야 했기에. 내키지 않은 표정과 소영의 당황함을 보고 간호사가 말을 이었다.

 

 

 

‘혹시 따로 챙긴 게 있나 얼른 확인해 보고 올께요.’

 

‘....네? 아! 네 감사합니다’

 

 

 

간호사는 병실을 나갔다. 그리 걱정은 안되었지만 얼른 핸드폰을 확인하고 싶었다. 걱정보다는 조급함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소영은 자리에 가지 않은 중년 여성을 알아챘다.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핸드폰을 여전히 들고 있는채로. 혹시하는 마음에 손을 거두지 않았을게다. 얼른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아니고 제 핸드폰이 필요해서요. 전화번호랑 그런 게 다 저장되어 있어서...’

 

‘아! 하긴 요즘은 그렇지? 핸드폰에 다 저장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언제든지 필요하면 말해요.’

 

‘네! 감사합니다.’

 

 

 

조건 없는 친절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감사 인사를 놓치지 않았다. 허리를 세우고 앉고 싶었지만, 기운이 없어서 그냥 그대로 누워버렸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배고픔보다 핸드폰이 더 중요했다. 알바생은 아프더라도 허락을 받아야 했다. 다치더라도 허락을 받아야 했다. 아니 사실 아프지도 다치지도 않아야 했다. 그게 정답이었다. 소영은 느닷없이 오답에 마킹을 했다. 생각이 돌아오자 다시 스트레스가 몸을 휘감았다. 허기가 가셨다. 그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어! 여기! 간호실에 맡겨진 게 있었어요. 이거 맞나요?’

 

‘네? 아 네! 감사...’

 

 

 

간호사가 건네는 폰은 자신 것이 맞았다. 다행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오는 간호사에게 몸을 기울이며 팔을 뻗으려 했다.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악!’

 

 

 

머리가 아니었다. 팔이었다. 팔을 뻗어 핸드폰을 받으려 했지만, 굽혔던 오른팔을 쉬이 뻗지 못했다. 뻣뻣함고 함께 오른팔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의아한 듯 간호사는 소영에게 다가와 핸드폰을 건네주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 팔을 펴려니까 갑자기 너무 아프네요.’

 

‘팔이요? 이쪽 오른팔?’

 

 

 

간호사는 소영의 오른팔 팔꿈치 아래는 잡고 눌렀다.

 

 

 

‘아아!!’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얼굴을 일그러졌다. 간호사는 미안한 듯 다시 손에 힘을 풀고 받치 듯 소영의 오른팔을 잡았다.

 

 

 

‘팔은 따로 검사 한 건 없는데? 일단 최대한 움직이지 말고 계세요. 선생님한테 말씀 우선 드려보고 올게요. 검사를 다시 할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오른팔 쓰지 말고 계세요.’

 

‘네? 아... 네.’

 

 

 

식은땀이 날 정도의 고통이었다. 이런 아픔은 전에 없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간호사는 심각한 듯, 한편으로 대수롭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병실을 나갔다. 소영은 오른팔을 몸쪽으로 가져왔다. 마치 깁스를 한 자세였다. 다행이 아픔이 좀 가셨다. 한숨을 쉬며 일그러진 얼굴로 맞은편의 남자 환자를 바라봤다. 여전히 초첨은 없지만 의식하고 있는 듯 소영을 바라봤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만, 정확히 어디로 시선이 멈추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묘하게 불쾌하진 않았다. 다만 응시의 대상이 무엇일까 하는 작고 조악한 호기심이 머리에 멤돌 뿐이었다. 옆에 앉은 친절한 중년 여성은 다시 걱정스러운 듯 소영에게 말을 걸었다.

 

 

 

‘왜? 팔도 이상 있는거에요? 부러진 거?’

 

‘예? 아... 그것 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많이 아프네요.’

 

‘어이구 저런... 쯧’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의식적으로 감사의 말을 내뱉었다. 기계적이기도 했다. 이런 반사작용이 직업병 같아 보일까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중년 여성은 안타까운 표정만 지을 뿐 별 생각은 없어보였다. 다시 남성 환자를 쳐다봤다. 초점이 있는 듯 없는 듯한 눈빛은 여전했다. 친절에 대한 예로 병명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사연인지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쓰는 건 지금 소영에게 사치였다. 일을 하다 다친 것,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것, 침대에 온전히 앉아 무보상적 호의를 받은 것. 모든 것이 사치였다. 현실을 다시 직시하자 겁이 났다. 얼른 생활의 영역으로 달려가야 했다.

 

잡념을 떨치며 소영은 침대 위에 있는 핸드폰을 가져 왔다. 오른팔을 쓸 수 없어 왼손으로만 핸드폰을 짚으려 하자 꽤 불편했다. 앉은 무릎에 핸드폰을 던져둔 뒤, 왼손으로 핸드폰 잠금을 풀고 전화와 문자를 확인 했다. 역시나 빨간 불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집에서 온 문자가 있었다. 아마 119 구조대원이 대신 보내줬다거나 병원에서 연락을 했으리라 짐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치가 소영에게 돌봐주고 있었다.

 

 

 

‘딸... 엄마도 오늘 일이 있어서 병원에는 내일이나 되어야 갈 수 있을 것 같아.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다. 저녁에 다시 연락할게. 딸 진짜 미안해.’

 

 

 

엄마의 문자였다. 병원에 가게 되었다는 연락은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별일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정말 진실되어 보였다. 서운함이란 감정과 미안해라는 단어가 미묘하게 교차했다.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되뇌었다. 다음 문자를 확인했다. 점장이었다.

 

 

 

‘창고 개판이네. 어떻게 했길래 창고 선반이 다 무너지냐? 평소에 관리 좀 제대로 했어야지!’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영을 탓하는 투였다. 곧 다음 문자도 눈에 들어왔다.

 

 

 

‘괜찮니? 그래도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 걱정이다. 연락도 안 되네.’

 

 

 

한 시간 간격으로 온 다음 문자는 소영을 탓하진 않았다. 마지막.

 

 

 

‘연락이 안되서 그래도 일단 문자 남긴다. 새벽 타임까지는 올 수 있지? 메꿀 사람 알아보고 있는데, 당장은 모르겠다. 꼭 좀 와줬으면 좋겠네. 미안하다.’

 

 

 

십분 전쯤에 온 문자였다. 처음에는 화를 냈고 다음은 걱정을 했고 마지막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핸드폰 화면으로 점장의 비린내가 났다. 어쩌면 너무 인간적인 냄새였다. 구역질이 났다. 울컥하고 목울대로 침이 넘어 오는 것을 억지로 힘을 내 삼켰다. 하지만 핸드폰으로 새어나오는 비린 향을 어쩌진 못했다. 정말 침대에 구역질을 할 것 같아, 잠시 숨을 고르려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건너편의 남자가 눈에 또 들어왔다.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눈. 기계적이고 반사적인 저 눈. 소영은 생각했다. 오히려 저 눈동자가 더 따뜻한 것 같다고. 한참을 만지작거리면, 핸드폰 뒤편에서 전해지는 배터리의 뜨끈함 같은 뭐 그런 전자기기들의 따뜻함. 마치 그것이 전해지는 눈빛이었다. 그 느낌이 좋아, 소영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환자와 눈과 잠시 마주치려 노력했다. 역한 느낌이 가라앉았다.

 

 

 

 

 

3.

 

얼마 뒤 의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깔끔한 인상의 흰 가운이 잘 어울리는 남자 의사였다. 안면이 있는 간호사가 뒤따라 들어왔다. 건너편의 중년 환자와 보호자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소영에게 다가왔다.

 

 

 

‘김소영씨? 팔도 아프시다고 하셨나요?’

 

 

 

소영은 대답 없이 의사를 쳐다봤다.

 

 

 

‘팔은 조금 있다 보도록 하구요. 우선 CT 촬영 결과부터 말씀 드릴게요. 가벼운 뇌진탕으로 보이고 CT결과는...’

 

 

 

의사는 소영을 다시 쳐다보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

 

 

 

‘이상이 없네요. 큰 문제없어 보이지만, 약간의 어지럼증 정도는 조금 있으실 수도 있어요. 기운 차리시면 좀 걸어도 보시고 하시다가 환자분이 불편한 게 크게 없으시면 약만 처방 받으시고 퇴원하셔도 될 것 같긴 합니다.’

 

‘아... 네.’

 

 

 

퇴원이라는 말에 그제야 알겠다는 답을 뱉었다.

 

 

 

‘근데 팔이 아프시다니까... 잠시 볼까요?’

 

 

 

의사는 소영의 굽힌 오른팔을 잡았다. 약간의 욱신거림이 있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의사는 이상 없음을 감지하고 소영의 팔을 한번 펴려 힘을 주었다. 의사의 악력이 전달되자, 통증을 기억하고 있던 놈은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이어 미약한 아픔이 느껴졌다. 전처럼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의사는 힘을 더 주었다.

 

 

 

‘아프시지는 않나요?’

 

‘예? 아... 조금 아프긴 한데 못 참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팔 움직임이 좀 뻑뻑하네요. 팔 펴시는데 불편하신 거죠?’

 

‘네?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

 

‘근육이 좀 굳어있는 느낌인데... 근육경련 같아 보이기도 하구요.’

 

 

 

팔을 펴보려던 의사는 그 시도를 그만 두었다. 이어 소영의 팔꿈치 아래 뼈를 눌러보았다. 조금씩 힘을 더 주면서. 하지만 소영은 이상하게도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쥐가 났을 때의 작은 찌릿한 느낌만 들었다.

 

 

 

‘누르면 아픈가요?’

 

‘음... 조금 저리는 느낌이 나긴 하는데 아프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의사는 소영의 팔을 좀 더 강하게 눌렀다.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곧 혼잣말을 내뱉었다.

 

 

 

‘근육 경련이어도 너무 딱딱한데...?’

 

‘네?’

 

‘아! 아닙니다. 사진 찍어봐야겠는데?

 

 

 

몸을 돌려 간호사에게 지시사항을 전했다.

 

 

 

‘뭐 크게 잘못됐나요? 편의점 창고 큰 선반을 오른팔로 막긴 했는데...?’

 

‘통증이 심하시지는 않으니까 별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팔로 선반을 막으셨다니, 뼈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어요. 사진은 한번 찍어보시고. 정형외과 선생님한테 진료를 받으셔야 될 것 같아요.’

 

 

 

다시 간호사에게 몸을 돌려 어려운 말로 지시를 내렸다. 소영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내심 진료비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어 보였다.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그런 소영에게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 그때 맞은편의 중년 환자가 의사를 불렀다.

 

 

 

‘어허이. 의사 양반!’

 

 

 

걸쭉하게 내려앉은 목소리였다. 소영은 맞은 편 환자의 목소리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마치 오래된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 같았다.

 

 

 

‘네?’

 

 

 

의사를 불러 세웠지만, 중년 환자는 말을 잇지 않았다. 물끄러미 의사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신기하게 초점이 돌아온 눈이었다.

 

 

 

‘여보 왜요? 어디 불편해?’

 

 

 

친절한 아주머니는 남편의 행동에 함께 반응했다.

 

 

 

‘음... 선생님도 어디 따로 불편하신가요?’

 

 

 

의사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전에 본 적 없는 또렷한 눈동자에 약간의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짧은 정적이 이어졌다. 그리곤 다시 중년 환자는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여!’

 

‘예?’

 

‘그게 아니라고!’

 

 

 

중저음의 목소리가 넓게 울렸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병실에 있는 나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당황한 의사는 환자에게 다가갔다.

 

 

 

‘뭐 불편 하신 게 아니라구요?’

 

‘그게 아니라! 아픈 게 아니라고!’

 

 

 

중년 남성은 의사가 다가오자 목소리를 높이며 양팔을 휘저었다. 그 모습이 사뭇 공격적이어서 의사와 간호사는 뒤로 주춤거렸다.

 

 

 

‘여보? 왜그래요? 뭐 어디 더 안 좋아요?’

 

 

 

아내는 난생 본적 없는 남편의 행동에 얼른 남편 앞으로 갔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에게 잠시 시선을 맞췄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의사에게 집중했다. 눈빛에서는 사뭇 간곡함이 담겨 있었다.

 

 

 

‘의사양반! 그게 아니라니까! 아픈 게 아니라고! 저건 아픈 게 아니여!’

 

 

 

아니라는 말과 함께 소영을 가르켰다. 다들 소영에게 시선이 갔다. 소영도 당황스러웠다.

 

 

 

‘아픈 게 아니라고! 내 말 들어!’

 

 

 

의사는 소영과 중년 환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중년 환자는 어느새 얼굴까지 붉게 상기되었다. 여전히 눈에 힘이 들어있었다. 의사는 간호사를 돌아봤다. 무슨 소리인지 통역을 해달라는 표정이었지만, 간호사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소영도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의사는 할 수 없이 환자에게 다가갔다.

 

 

 

‘네! 선생님 아픈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친구 많이 안 아파서 금방 퇴원할 수 있을 거같아요.’

 

‘그러니까! 아픈 게 아니라니까! 의사 양반은 알고 있지?’

 

 

 

의사는 환자에게 동조하며 안심시키는 말을 했다. 그렇지만 정말 환자의 말뜻을 알고 있는지 소영은 의문이 들었다. 의사는 조금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네네. 알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잉! 그려! 알고 있는 거지? 알고 있는 거 맞지?’

 

‘네네! 알고 있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오늘 밥이랑 약이랑 잘 챙겨 드세요.’

 

‘잉~ 알겠어! 알고 있다니까 됐어.’

 

 

 

의사는 다시 한 번 보호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몸을 돌렸다. 간호사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듯한 모습이 소영의 눈에는 저 중년 환자의 오지랖을 욕하는 듯 보였다. 날선 뒷모습에 이내 병실 문이 닫혔다. 의사와 간호사가 사라지자 아내는 걱정스러운 듯 남편을 바라봤다.

 

 

 

‘여보? 어디 뭐 불편해?’

 

‘알고 있다니까. 의사 양반이 알고 있다니까 괜찮어.’

 

 

 

환자는 아내의 말에 다행스럽다는 투의 말을 남겼다. 이후 남성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동자에서 힘을 잃어갔다. 남자의 높게 솟구쳤던 숨소리가 사그라들고 있었다. 남편의 행동에 놀란 눈치였지만, 활력을 느꼈던 아내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남편을 보자 다시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소영을 살폈다.

 

 

 

‘이 양반이 좀 정신이 오락가락해! 아가씨 애기는 별 다른 뜻 없었을 거니까 신경 쓰지마요.’

 

‘네? 아... 네.’

 

 

 

중년 여성은 당황스러운 남편의 행동에 자신도 당황스러웠지만, 세심하게 소영에게 보살피는 말을 건넸다.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긴 했지만, 소영은 여성의 말보다 남자의 모습에 더 신경이 쓰였다. 초점 없는 저 눈이 너무 이상했다. 더구나 아프지 않다는 말은 또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 말과 눈동자를 번갈아 곱씹으며 소영은 자신의 오른팔을 만졌다. 다시 의문이 들었다. 아프지 않다는게 무슨 말일까? 오른팔을 주무르며 해답을 찾으려 짧게 고민을 했지만 쉽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다. 말을 곱씹을수록 의문은 점점 놀람이 되고 결국 사실이 되었다. 오른팔이 단단, 아니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건너편 중년 환자의 말처럼 통증은 가셨다.

 

 

 

‘뭐? 진짜 아프진 않네.’

 

 

 

마치 주문 같았다. 어릴 적 자장가을 듣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부모가 아이를 달래듯, 그렇게 차분하고 온후하게 고장난 자신의 오른팔을 보듬어주는. 원인과 이유가 어찌되었든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저 초점 잃은 눈동자의 사내에게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예정대로 X-ray 촬영을 했다. 환자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나왔다. 정신이 없을 때와 달리 맨정신으로 검사를 하고 나오자 내심 병원비가 걱정이 되었다. 병원비를 확인해야 했다. 가난에게 아픔은 죄였다. 급히 소영은 접수처로 갔다. 대기석에 앉아 있는 영혼 없는 얼굴들을 봤다. 죄인이 많았다. 어찌 아픔은 가난에게 찾아갈까. 쓸데없는 상념이 잠시 소영의 머리에 맴돌았다. 상념을 떨치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빈 접수처를 눈에 들어오자 얼른 직원에게 다가갔다.

 

 

 

‘저기 어제 입원한 환잔데요?’

 

‘번호표 뽑아주시겠어요?’

 

‘네?’

 

 

 

간단하게 물어보려했지만, 접수처는 규칙은 엄격했다. 접수처 직원은 소영의 좌측을 가리켰다. 두어 걸음 거리를 두고 번호표 기계가 보였다. 대기석 의자에 앉은 환자들, 아니 죄인들은 흰 종이 쪼가리를 소중한 보물인양 두 손에 꼭 움켜쥐고 있었다. 대기석에 앉은 한 죄인이 소영에게 날카롭고 히스테릭한 눈길을 주었다. 새치기를 한 건 아니었는데, 모두가 신경이 날카로워 보였다. 아픔의 눈은 저런 눈이지, 참. 살기어린 바깥의 세상살이가 다시 떠올랐다. 소영은 규칙에 정연해야 했다.

 

 

 

‘아! 예’

 

 

 

소영은 접수처에서 물러서 번호표를 뽑았다. 냉큼 번호표와 전자 대기판을 바라봤다. 137번. 전자 대기판의 숫자는 119였다. 꽤 기다림이 길어질 듯 했다. 하는 수 없이 소영도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이질적인 분위기가 싫었다.

 

주변을 잠시 둘러봤다. 마법진을 펼치듯 세상의 살기들이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결계를 쳤다. 여기저기 참 많은 죄인이 보였다. 그 중 소영의 건너편 옆자리 앉은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살집이 많은 한 젊은 남자였다. 인기척을 느끼자, 남자는 힐끔거리며 소영을 쳐다봤다.

 

소영은 편의점이 생각이 났다. 매번 자정을 갓 넘겨서 오는 한 남자. 머리는 감지 않았고, 꼭 도시락을 사갔다. 짖궃은 추측이었지만, 하는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런 후줄근한 모습 자체가 불쾌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런 모습이 익숙해졌다. 옆에 앉은 남자는 편의점 남자와 닮은 듯 닮지 않았다. 살이 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기억을 떠올리던 와중에도 남자의 시선이 계속 이어졌다. 남자는 의도적으로 소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이내 의도적인 시선임을 깨달았다. 불쾌했다. 한마디 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애써 전자 번호판에 집중했다. 띵- 띵-. 번호가 넘어갔다. 전자 번호판은 소영과 달리 정직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남성은 소영 쪽으로 고개를 두어 번 더 돌렸다.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띵- 어느새 127번을 가르쳤다. 시선이 거두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용기를 내 우측을 바라봤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의 차례인 듯 했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측의 남자는 이상하게 소영에게로 다가왔다. 소영은 놀란 듯 엉덩이를 들썩였다. 남자는 금세 소영 앞으로 다가왔다. 어찌 할 바를 몰라 소영은 남자가 다가오는 반대편으로 몸을 기울이며 움츠려 들었다. 그런 소영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소영에게 바짝 다가와 섰다. 그리곤 오른손을 소영 눈앞에 가져다 보였다. 오른손에는 흰색 번호표가 있었다. 127번.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픽하고 살집이 있는 그 남자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비웃음과 자랑이었다. 그리곤 접수처 쪽으로 걸어갔다.

 

 

 

‘뭐야?’

 

 

 

정말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 수 있지만, 설마 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설마 번호표 자랑을 하려고 자신이게 다가왔을까? 에이, 설마’ 소영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 답안을 제외하면 다른 답이 없었다. 재수 없었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미련해보였다. 접수처에 앞에 서는 모습도 미련해보였다. 아니 실제로 미련한 인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혈압이겠지? 아니 고혈압일거야.’ 떠난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자신을 애써 위안했다. 하지만 내심 패배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상실감이 들었다. 다시금 알바를 그만 둔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세상은 넓고 진상은 각양각색이다.

 

 

 

무서울 정도로 세상사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난 선배를 떠올리며 패배감을 추스르자, 접수처 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앞서 간 남자에게도 친절한 미소를 건네고 있었다. 남자를 상대하는 직원뿐만 아니라, 접수처의 모든 직원은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훈련된 친절이 만연했다. 소영은 새삼 감정을 소비하는 건 자신만이 아니란 걸 느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동질감과 함께 묘한 쓰라림이 팔꿈치에 전해졌다. 연하게 전해오는 쓰라림에 다시금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다. 그렇게 몇 번이고 주문을 외우고 있자니 패배감도 지루함도 점점 옅어졌다.

 

 

 

‘....7번 고객님! ...37번 고객님! 137번 고객님!’

 

 

 

쓰라림에 한눈을 판 사이 어느새 소영의 번호가 되었다. 소영을 찾는 친절이 소리를 질렀다. 인지하지 못하던 소리가 소영을 깨웠다. 이내 소영은 정신을 차리고 전자 번호판을 봤다. 137번. 소영은 얼른 접수처로 향했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소영이 접수처 앞에 서자 접수처 직원은 전자 번호판 같은 기계적인 반응을 보이며 대사를 읊조렸다. 기계적인 직원의 반응에서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아주 짧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객님?’

 

‘아? 네! 저기 어제 입원을 했는데요. 병원비가 얼마정도 나왔는지 알고 싶어서요.’

 

‘성함이랑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죠?’

 

‘김소영입니다.’

 

 

 

이어서 자신의 주민번호 앞자리를 말했다.

 

 

 

‘퇴원하시는 건가요?’

 

‘네? 아직 퇴원이 결정난 건 아닌데요. 음... 병원비만 좀 알아보려고.’

 

‘아 중간 정산? 하시는 거죠?’

 

‘네? 정산은 아닌고 병원비가 어느 정돈지만...’

 

‘네 그럼 잠시만요.’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다. 그러자 앞쪽에 고정된 태블릿 화면에서 영수 금액이 나왔다. 272,500원. 생각만큼, 아니 생각 보다 많은 금액이 나왔다. 다시 팔이 쓰라렸다.

 

 

 

‘병원비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온거죠?’

 

‘그건 결제 하시면 영수증에 진료과정이랑 기록들 다 적혀 있으니까 그거 보시면 될 거에요. 일단 지금 결제 하실 건가요?’

 

‘네? 아! 아니요. 퇴원할 때 하려고요.’

 

‘따로 필요하신 건 없으세요?’

 

‘네? 아.. 네.’

 

‘140번 고객님’

 

 

 

접수처 직원은 번호를 넘기며 고객을 불렀다. 꺼지라는 무언의 압박 같았다. 비용에 대한 궁금증이 남았지만 내키지 않았다. 다시금 죄인들의 눈길이 느껴졌다. 접수처에서 발을 옮겼다. 병실로 돌아가는 중에 얼른 퇴원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힘없이 걸었지만 어느새 소영은 자신의 병실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병실 문 앞에서 물끄러미 서 있었다. 병실에 들어가면 전산기기에 떴던 금액이 더 커질 것 같았다. 퇴원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그때 소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소영씨 어디 갔다 오셨어요?’

 

‘네? 아 잠시 바람 좀 쐬러...’

 

‘정형외과 연락 왔어요. 결과 나왔다고. 진료실 다시 가시면 되요.’

 

‘네? 아! 네.’

 

 

 

소영은 머리 위로 떠다니는 쉼표 달린 숫자와 퇴원이란 단어를 억지로 지워내며 다시 병실을 나섰다.

 

 

 

 

 

5.

 

정형외과 진료실은 하얀 바탕이었다. 흰 바탕 위에 하얀색을 다시 덧칠 한 듯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앉아 있었다. 반면 의사의 얼굴색은 그렇지 않았다. 약간은 통통한 체형에 입술은 검붉었고 심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갈라져 있었다. 버짐 같은 것들이 피어올라, 검붉은 피부가 더 건조하게 보였다. 안경을 꼈고 다크 서클이 마치 흰 배경의 빛을 빨아 들이 듯, 묘하게 눌려 있었다. 평소 소영의 머리에 자리 잡은 고정된 의사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왠지 진료를 받는게 죄책감이 드는 인상이었다.

 

의사의 맞은편에 앉아 있자니 어깨가 앞으로 움츠려들었다. 그런 소영에게 신경 한 톨 쓰지 않으며, 검은 피부에 흰 가운을 걸친 의사는 x-ray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미간이 움찔거렸다. 곧 입을 열었다.

 

 

 

‘이게...? 오른팔 사진 아닌가요?’

 

 

 

느릿하고 무거운 말투였다. 피곤하다고 투덜거리는 듯 했다. 역시 소영은 안중에 없었다.

 

 

 

‘네! 환자분 오른팔이요.’

 

‘이상한데? 이게 오른팔이 맞어?’

 

 

 

의사는 전문의답지 않게 간호사를 불렀다. 진료실 문 가장자리에 있던 간호사는 소영을 지나 의사에게 다가갔다. 의사는 의아한 듯 사진과 간호사를 번갈아봤다. 간호사에게 이 사진이 맞냐며 확인해보라는 듯. 그러자 간호사 역시 꽂혀 있는 사진을 봤다. 동공이 커졌다.

 

 

 

‘사진이 왜 이렇죠?’

 

 

 

간호사는 되물었다.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의사와 간호사는 짧게 서로를 쳐다봤다. 소영의 오른팔 뼈가 이상한 것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듯. 소영은 도통 무슨 상황인지 눈치 챌 수 없었다.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상체를 앞으로 밀었다. 슬쩍 의사 선생의 책상에 몸을 기대며 그의 우측에 있는 사진을 확인했다.

 

분명 방금 전에 오른팔을 찍었다. 그런데 오른팔의 뼈 모양이 아니었다. 팔꿈치 위로는 흔히 볼 수 있는 팔의 뼈 모양이었지만, 팔꿈치 아래는 이상했다. 비전무가인 소영의 눈에도. 팔꿈치 쪽으로 갈수록 빼는 둥글게 굵어졌고 손목으로 올수록 가늘어졌다. 절구공이를 반 자른 모양이었다. 그리고 손은 마디 없이 오리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큰 덩어리로 된 뼈가 보였다. 손가락은 당연이 보이지 않았다. 손목 아래에 더 있어야 될 것 같은 뼈 역시 보이지 않았다. 이를 테면 손목 위쪽의 뼈만, 심지어 이상한 모양으로 찍혀 있었다. 소영은 이상하긴 했지만, 놀라진 않았다. 오히려 ‘저 요상하게 생긴, 살 속에 파묻힌 물체는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뿐이었다.

 

셋은 토끼눈을 하고 서로를 몇 번이나 번갈아 봤다. 소영은 의사와 간호사의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장이 바뀐다면 자신도 별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입을 우물쭈물거리기만 했다. ‘옹’ 하는 입모양을 하고, 수 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의사가 검붉은 입을 땠다.

 

 

 

‘아... 음.. 아 일단 그럼.’

 

 

 

하지만 검붉은 입에선 채도 없는 단어들만 나올 뿐이었다.

 

 

 

‘저기 사진 촬영실에서 담당자 좀 불러줘요.’

 

‘네. 알겠습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피하려 간호사는 얼른 대답을 하고 재빠르게 진료실을 나왔다. 간호사가 진료실을 나가자 곧 이어 의사는 소영에게로 당겨 앉았다. 핏기 없던 입술이 좀 더 말른 듯 했다. 약간의 궁금증이 조금씩 가시는 듯 했다.

 

 

 

‘저기 팔 좀 내밀어 보세요.’

 

 

 

소영은 얇은 환자복을 덮힌 오른팔을 내밀었다. 어느새 팔은 심하게 부어있었다.

 

 

 

‘아니... 왜 이렇게 또 부어있어?’

 

 

 

의사는 소영의 오른팔을 잡고 소영을 쳐다봤다. 하지만 소영도 부은 팔을 보며 당황스러웠다.

 

 

 

‘안 아파요?’

 

 

 

의사의 질문에도 소영은 자신의 오른팔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저기? 안 아프냐구요?’

 

‘예? 아.... 아프진 않은데? 팔이 왜 이러죠?’

 

 

 

대답 대신 의사는 오른팔을 주물렀다. 꽤 진지한 표정이었고 그 진지함에 궁금증이 조금씩 두려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통증이 없다구?’

 

‘예.. 많이 안 좋은 건가요?’

 

‘언제부터 이렇게 부어있었죠?’

 

‘X-ray 찍을 때도 멀쩡했는데...’

 

‘그러면 찍고 오는 길에 이렇게 부었다는거에요?’

 

‘잠깐 접수실에 들르긴 했는데’

 

‘따로 부딪히거나 그런 건 없고?’

 

‘예.’

 

 

 

혼잣말을 하듯 소영의 말을 끊으면 질문을 이어가던 의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저기 선생님 문제가 있는지 어떤지 말씀을 해주셔야...’

 

‘아... 그런 것 같지는 않는데 뭔가 오류일 수도 있고요. 일단은 좀 지켜봅시다. 아프진 않다고 했죠?’

 

‘네.’

 

‘그럼 조금만 더 지켜봅시다. 경과를 봐야 알겠네요. 무턱대고 CT나 MRI 찍는건 저기 환자분 한테도 부담이니까...’

 

‘네. 부담이에요. 그리고 입원하는 것도 부담이라서 퇴원을 하고 싶어요.’

 

 

 

소영은 의사의 말에 기다리기라도 한 듯 말을 이어갔다. 의사표현이 이렇게 명확한 적이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로 또렷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의사는 다시금 답을 요구하 듯 소영을 다시 바라봤다. 소영은 재차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단지 선명하고 또렷한 눈으로 의사를 바라보기만 했다.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은 의사는 모니터로 눈길을 돌렸다. 진료기록을 확인했다.

 

 

 

‘가벼운 뇌진탕이 있었네요?’

 

‘네.’

 

‘뭐 신경과 선생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검사는 이상 없다고 하셨는데 약간 어지러울 수 있다고..’

 

‘그래요? 그럼. 팔이 문젠데. 안 아프다는 거죠?’

 

‘예? 예. 근데 좀 찌릿한 것 같기도 하고, 저린 것 같기도 하고 그렇기는 해요.’

 

‘음...’

 

 

 

의사는 소영의 눈빛을 살피며 깁스한 팔을 흘낏거렸다. 검붉은 물든 입을 어렵게 땠다.

 

 

 

‘그러면 병원에 좀 더 계셔보는 건 어떠세요?’

 

 

 

소영의 사정을 이미 넉넉히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의사로써의 본분을 지키려는 신념(?)이 담긴 은근한 말이었다. 생에 처음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한 그런 상황에서도, 혹하다 넘어갈 법한 그런 어투였다.

 

 

 

‘폰을 팔거나, 사이비 전도를 했으면 더 크게 됐을 텐데...’

 

 

 

잠시 상념이 머리에 맴돌았다. 하지만 이내 소영은 편의점 점장의 문자와 20만원 상당의 병원비가 떠올랐다. 입술 살짝 씹었다. 생각만으로도 비린 지폐향이 났다. 눈을 다시 밝혔다.

 

 

 

‘그게 제가 일도 있고, 병원비 문제도 좀 있어서요. 빨리 퇴원을 하고 싶어요.’

 

‘그래요? 음... 환자분 입장이 중요하긴 한데...’

 

 

 

분명 팔의 뼈 모양은 이상했고 팔도 심하게 부었다. 다시 한 번 소영의 팔을 움켜쥐듯 만졌다. 하지만 뚜렷하게 의사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눈치였다. 돈이 더 드는 검사들을 받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 도리 없이 소영의 팔을 다시금 만졌다.

 

 

 

‘아프지 않다고요?’

 

‘네...’

 

‘아프지 않다라... 아프지 않다라...’

 

 

 

같은 병실의 남자환자처럼 의사는 주문을 외우듯 아프지 않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내뱉었다. 갈라진 입술 사이로 의사는 고민을 씹어내고 있었다. 그 덕에 입술에서 붉은 피가 살짝 흘러나왔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그 핏멍울에서 의사의 고민이 느껴졌다. 그리고 붉은 핏망울의 색채 덕에 푸석했던 의사가 좀 더 생기롭게 보였다. 입술에 흘리는 피에 인간다움을 느꼈다.

 

 

 

‘그러면..!’

 

 

 

의사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혹시나!’

 

‘아프거나 아니면 이상 증상이 있으면!’

 

‘바로 병원으로 오셔야 됩니다!’

 

 

 

의사는 매듭을 짓는 듯 단어 사이사이에 힘을 주어 말을 뱉었다. 공산당이 싫은 어린 아이가 웅변을 하듯.

 

 

 

‘이상 증상이라면 어떤거요?’

 

‘음! 팔이 더 붓는다든지 아니면 아프다든지... 움직이기 불편하다든지? 뭐가 됐든요. 본인이 생각하셨을 때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은 게 있으시면 꼭 다시 오셔야 됩니다. 최대한 빨리. 그리고 가능한 오른팔 사용은 자제 하시고.’

 

‘아! 네.’

 

‘그러시면. 알겠습니다. 일단 퇴원하시고, 붓기 빠지는 약 좀 처방을 해드릴게요. 그리고 음... 팔 받쳐주게 반깁스 정도는 하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

 

 

 

소영의 의사를 물어보는 듯 했다. 하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만은 양보 할 수 없다는 단호함이 느껴졌다. 짧은 순간 굳어버린 붉은 핏멍울이 꼭 깁스를 강요하고 있었다. 돈 생각이 더 났지만,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해야 했다. 그리고 직업적이든 이유든 아니면 인간적인 이유든, 무엇이 되었든 의사 선생님이 자신을 신경써주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정도면 져줄 수 있다. 소영은 의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깁스 하시고 퇴원하시면 될 것 같아요. 퇴원 절차는 나가서 들으시면 되요.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이상 있으면 꼭 다시 병원 오셔야 됩니다.

 

‘네.’

 

 

 

의사에게 깊은 다짐을 하고 진료실을 나섰다. 진료실을 나오자 소영 앞에 아까의 간호사가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김소영씨. 당황스런 진료실 안의 상황은 이미 다 잊어버린 듯 한 목소리였다. 간호사는 소영에게 퇴원절차를 설명해줬고, 깁스를 하는 곳이 어딘지도 조목조목 알려줬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 때문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지만, 애써 간호사의 말에 주목했다. 설명이 끝이 나자 다음 환자의 이름을 호명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라 소영은 정형외과 구역까지라도 간호사가 배웅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간호사는 그럴 수 없었고 다음 환자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정해진 프로그램처럼 돌아가고 있는 진료실 외부의 풍경이 낯설어 의사의 입에 굳어버린 핏멍울이 더 신경을 쓰이게 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남은 감정을 걷어내며 소영은 정형외과 병동을 나왔다.

 

 

 

 

 

 

 

6.

 

깁스를 한 오른손이 불편했다. 아니 살짝 가렵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깁스를 한 주변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오른손을 보는 듯 했다. 깁스를 한 손이 왠지 모르게 쑥스러웠다. 그러다 버스가 도착해 올라탔다.

 

오른손이 이 모양이어서 버스카드를 찍는 것도 불편했다. 지갑을 꺼내는 것부터 고역이었다. 내켜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소영이 버스카드를 찍을 때까지 버스기사는 출발을 하지 않았다. 기사는 소영이 교통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가자, 굳이 소영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뒷머리가 쐐했다.

 

불쾌한 기분을 뒤로 하고 자리를 찾았다. 다행이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창밖을 바라봤다. 달리는 버스로 노을이 계속 따라왔다. 멍하게 시간을 보내다 소영은 문뜩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른손을 한번 봤다. 쉬고 싶었다. 노을은 아름다웠고 버스가 지나가는 도심의 장면들도 생기롭고 활기찼다. 오른팔이 저린 듯 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미련하게 오른쪽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어둬 꺼내는데 상당히 불편했다.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핸드폰을 꺼냈지만 엄지만 나온 오른손으로는 문자를 쓸 수 없었다. 깁스 위로 핸드폰을 받쳤다. 차의 흔들림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불안한 상태로 왼손으로 문자를 썼다. 오늘 좀 쉬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당연히 수신자는 점장이었다. 왼손으로 문자를 쓴다는 건 깁스를 한 오른손으로 쓰는 것만큼 쉽지 않았다. 게다가 흔들림도 문제였다. 몇 번이고 철자를 틀려 다시 썼다. 최대한 상세하게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익숙하지 않은 왼손으로, 지금 자신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할 바에는 차라리 알바를 가는 게 수월했다.

 

 

 

‘점장님. 죄송한데 오늘 하루는 쉴 수 있을까요?’

 

 

 

가장 단순하고 직설적인 문장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고치기도 힘들었다. 아니 싫었다. 오른손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머릿속으로는 수십 번 더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것이 한 문장의 문자를 쓰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고민을 씹어 삼켰다 뱉어내길 몇 번, 그새 7~8개의 정류장을 지나쳤다. 어느새 버스는 소영의 동네에 가까워졌다. 곧 내려야 했다. 고민을 잠시 접어 두었다.

 

 

 

‘이번 정류장은 팔굴동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안내 멘트가 나왔고 이내 소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왼손으로 핸드폰을 옮겨 쥐고 버스 뒷문으로 옮겨 섰다. 이번엔 버스카드를 미리 준비 해 두었다. 하차 버튼을 누르며 재빨리 버스 카드도 같이 찍었다. 곧 정류장에 도착했다. 삐- 하는 알림음이 들리고 버스 뒷문이 열렸다. 준비된 자세로 얼른 버스에서 내렸다. 이번에는 민폐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버스 기사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영이 내리자마자 뒷문을 얼른 닫았다. 쓸모없고 작은 성취감에 돌아서서 버스를 바라본 소영이었지만, 버스는 매정하게 회색 매연이 뿜으며 소영을 남겨두고 자리를 떠났다. 이런 것에 성취감 따위를 느끼는 자신이 못나 보였다. 떠나는 버스를 보며 자신을 다독였다.

 

 

 

‘죄를 지은 게 아니잖아.’

 

 

 

오른팔을 쳐다봤다. 잘못한 게 없다는 게 당연했다. 훈련된 미안함 혹은 친절함. 혹은 고마워해야 되는 태도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이제는 싫었다. 소영은 왼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불이 밝혀진 핸드폰에는 아직 보내지 않은 문자가 남아 있었다.

 

 

 

‘그래. 죄를 지은 게 아니야.’

 

 

 

혼잣말을 뱉으며 소영은 보내기 버튼 냉큼 눌렀다. 이어 낮게 가라앉은 회색 매연을 물리치며 발을 내딛었다.

 

 

 

 

 

7.

 

힘없이 걸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고시원 건물 앞에 도착했다. 80년대 유행했던 벽돌식 4층 상가 건물은 벽돌 사이사이로 매연과 먼지와 시간이 끼어 검고 칙칙한 색을 내뱉고 있었다. 한쪽만 열린 입구 유리문 역시 칙칙하다 못해 반투명이 가까웠다. 입구 안쪽에서 비추는 형광등은 여태껏 쌓인 먼지와 곤충 사체에 가로막혀 적절한 밝기를 제공하지 못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입구 안쪽과 그 위로 이어진 계단의 조명들은 흰 빛이 아니라 누렇고 노르스름한 색을 띄고 있었다. 마치 오래되어 빛바랜 종이처럼. 황갈색의 형광등 불빛은 건물 외벽의 검게 묻은 세월과 조화를 이뤄 더욱 불쾌감을 자아냈다. 소영은 한참 입구 앞에서 멈춰 있었다. 패잔병의 찢어진 군복처럼 허름하게 내려앉은 자취방 건물을 앞에 두고 있자니 편의점의 창고 입구가 떠올랐다. 발끝에서부터 찌릿한 소름이 이어졌다. 피곤하고 힘겨운 하루였지만, 쉬려고 돌아온 안식처도 탐탁지 않았다. 포식자의 아가리. 그렇게 느껴졌다. 들어가는 순간 먹히는 것이다. 소영은 유독 오늘따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갈 곳이 있으리 없었다.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찍어 누르며 발을 옮겼다.

 

계단 벽면은 생체기가 많았다. 페인트가 오래되 벗겨졌고 그대로 굳어버린 생채기들은 마치 고개를 뒤로 젖히고 침을 흘리며 잠든 힘없는 수험생의 머리 같았다. 매번 보았던 공동 계단 구역의 그 모습이 오늘은 마치 자신에게 어디가로 끌고 가려는 듯 손을 뻗는 느낌이었다.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 3층 고시원 공동 현관의 비밀 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리며 퀘퀘한 고시원의 냄새가 소영을 반겼다. 화장실에서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멀리 공동 식당에서는 TV 예능 소리가 세어 나오고 있었다. 건물 외부에서 들리는 소음에 묻혀 무슨 프로그램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신발을 벗고 자신의 신발장에서 실내화를 꺼내 신었다.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실내화는 바닥에 들러붙어 ‘쩌억 쩌억’ 하는 비명을 질렀다. 바닥 청소를 안 한지 오래된 게 틀림없다. 아니 했다 해도 성의가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정도의 점성을 느낄 수 있으리 만무했다.

 

건물 안 고시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포식자의 뱃속이었다. 힘들고 지친 노동자의 땀을, 혹은 생활인들의 피로를 양분 삼아 살아가는 환상의 동물. 지폐가 피부가 되고 동전이 눈알로 이루어진 모습. 그래서 누군가의 피로를 갈구하고 찾아내 끝끝내 먹어 치워버리는 동물. 아니 괴물. 환상 속이 아닌 실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번성한 종족으로 이어지는 그런 괴물. 그 괴물의 소화액이 흐르기라도 하는 듯 고시원 복도는 끈적하게 소영의 발끝을 잡아 당겼다.

 

 

 

‘쩌억 쩌억’

 

 

 

소화액에 녹을듯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소영은 무거운 발을 겨우 옮겨 방에 다다랐다. 방문 앞으로 도착하자 얼른 비밀번호를 눌렀다. 복도의 소리와 온도가 묘하게 바뀌었다. 도망치는 소영을 붙자고 싶기라도 하듯. 소영은 쓰러지듯 방안으로 들어갔다. 밤샘 이후 진료로 이어지는 피곤한 하루였다. 그리고 고시원 건물과 복도의 탐욕 역시. 다행이 문이 닫히자 그 모든 피로가 승천하듯 소영은 한결 가벼움을 느꼈다. 이어 침대로 쓰러지듯 엎어졌다.

 

 

 

‘삐걱 삐걱’

 

 

 

인사소리였다. 침대는 토닥이는 듯 소영의 하루를 위로 해주고 있었다. 환기를 되지 않아 눅눅한 침대보였지만, 그 소리에 지긋한 습기는 후퇴했고 기분 좋은 뽀송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소영은 엎드린 채로 몸을 흔들었다. 다시 소리가 났다. 흔들의자처럼 다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자 전 보다 훨씬 안락함을 느꼈다. 의도적으로 다시 몸을 흔들었다.

 

 

 

‘삐걱 삐걱’

 

 

 

소영의 움직임에 맞춰 침대는 마치 아이를 재우는 어미처럼 소리를 냈다. 자장가 같이 들려왔다. 두어 번의 움직임이 이어졌고 좁아터진 고시원방은 고독한 자장가로 채워졌다. 미동이 가라앉고 삐걱거리던 자장가 소리가 나지막하게 이어졌다. 소영의 작은 숨소리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

 

 

 

 

 

8.

 

삐삐삐삐삐삐---

 

 

 

얼마간 잠이 들었을까? 잠결에 불쾌한 전자음이 들었다. 아직 뻐근한 핸드폰 소리라는 생각에 몸을 뒤척여 주변을 더듬었다. 머리맡에는 핸드폰이 없었다. 침대 근처의 바닥에도 찾을 수 없었다. 핸드폰을 쉬 찾을 수 없자 소영은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삐삐삐삐삐삐---

 

 

 

피곤함을 호소하는 소영의 행동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전자음은 더 빠르고 크게 들려왔다. 의도적으로 소영의 휴식을 방해하는 듯 했다. 잠시간 얼굴을 파묻고 있던 소영은 참을 수 없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좁은 침대의 끝으로 자리를 잡았다. 소음의 근원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좁은 방에서도 소음의 진원지를 찾기 힘들었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보다 소리 자체가 고시원방을 이미 채워 넣고 있는 듯했다. 어느 호숫가의 아침 안개 같이 모든 공간을 메우고 있는 듯 했다.

 

이내 소음의 강도가 심해졌다. 소영은 머리가 아픈듯 아닌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핸드폰을 어디 뒀지?’

 

 

 

쓰러지듯 잠에든 기억을 더듬었다. 입은 바지 그대로였다. 주머니를 뒤졌다. 없었다. 곧 침대 옆의 작은 서랍장을 살폈지만 역시 눈에 띄지 않았다. 현관 쪽을 살폈다. 손가방이 떨어져 있었다. 소음에 지쳐 얼른 손가방을 살폈다. 다행이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왼손으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진동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점장의 답장이 와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땜빵 가능한 얘로 돌려보려고 했는데, 다들 시간이 어렵다드라. 나도 오늘 새벽타임은 어려울 것 같고. 염치가 있으면... 아니다. 늦게라도 올 수 있으면 꼭 와주길 부탁한다.’

 

 

 

삨삨삨삨삨---

 

 

 

점장의 문자를 확인하자 소영을 비웃듯, 전자음은 ㅋ 받침이 붙은 소리를 냈다. 짜증과 한탄이 한 번에 차올랐지만, 이내 시간을 확인했다. 알바 시간까지는 30분가량이 남아 있었다. 지금 가면 간신히 도착 할 수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10분 정도 지각일 가능성이 있긴 했지만.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점장의 문자에서 ‘염치’ 란 단어가 눈에 거슬렸다. 잘못한 것이 없었다. 아픈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일 수 있지만. 아픈 건 아픈 것이었다. 눈감아 줄 수 있다 생각했다. 아니 눈 감아 줘야 했다. 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투정 부리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방안을 울리는 정체 모를 전자음을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간단한 짐을 챙겼다. 머리는 부스스했고 눈은 부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고시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열리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전자음 커졌다 가라앉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한 번 문을 당겨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잠금장치는 당연히 방안에서 제어할 수 있었다. 의아함을 넘어 불쾌함과 두려움이 몸 전체를 감쌌다.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오른손이 불편했지만, 손잡이를 잡은 왼손을 받쳤다. 방금 전 보다 힘을 더 주기 위해서였다. 다시 한 번 손잡이를 돌려 몸을 뒤로 기울였다. 몸무게를 실어 문을 당겼다.

 

 

 

쿵.

 

 

 

문짝과 문 가장자리가 부딪히는 소음이 들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소영은 이내 신경질적으로 문을 사정없이 당겼다. 쿵쿵. 마찰음이 이어졌다. 방안을 가득 메운 전자음도 함께.

 

 

 

쿵-삨-쿵-삨-쿵-삨-.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방에 갇힌 것이 확실했다. 자신도 모르게 소영의 눈에서 눈물이 났다. 이마와 등에 땀이 차올랐다. 소영은 반복적으로 문을 다시 당겨 봤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소음이 커질 뿐이었다.

 

 

 

‘왜이래! 이거!’

 

 

 

문을 당기던 소영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문에서 한걸음 물러섰다. 지친 신음 소리가 베어 나왔다. 자세를 고쳐 잡고 있는 힘껏 문을 발로 찼다. 차분하게 사태를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럴 심리적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려 하자, 방안의 습기가 기분 나쁘게 소영을 옭아맸다. 안락했던 소영만의 방은 소영을 가두는 곳이 되었다. 도망쳐야 했다.

 

 

 

쾅.

 

 

 

물러선 자세로 무게를 실어 문짝을 걷어찼다. 좀 더 큰 마찰음이 들렸지만, 소영을 비웃듯 그대로였다. 다시 힘껏 문을 찼다. 이어서 여러 번 점프하듯 문을 찼다. 그러다 미끄러지듯 소영은 넘어졌다. 쓰러진 소영의 모습은 비루하기 그지없었다. 힘이 나지 않아 소영은 쓰러진 채로 누워있었다. 머리칼은 헝클어졌고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었다.

 

 

 

‘시발. 뭐야! 진짜!’

 

 

 

무엇이 문제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눈물이 계속 이어졌다.

 

 

 

삨삑삨삑삨---

 

 

 

비웃음은 여전했다. 엎어진 채로 귀를 막았다. 소음만 그만 되길 바랐다.

 

 

 

‘그만해..제발..’

 

 

 

하소연과 흐느낌이 이어졌다. 동시에 소음은 계속되었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포기한 듯 잠시 동안 귀를 막고 누워있었다. 그러다 알 수 없는 공포감과 소음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당장 죽을 것 같았다.

 

힘없이 소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쪽을 살폈다. 완고하게 팔짱을 끼고 거들먹거리는 것 같았다. 소영은 고개를 돌렸다. 오래된 브라운관 TV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에 미취학 아동 한명도 들어가기 힘들 작은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소영은 브라운관 TV를 밀어서 치웠다. 미세 먼지 때문에 문을 연적이 없었다. 열리는 지도 몰랐다. 사정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소영은 창문을 밀었다. 뻑뻑하지만 조금씩 문이 열었다. 문이 열리자 전자 소음이 빠져나가듯 소리가 줄어들었다. 한결 귀가 덜 아팠다. 머리도 개운해지는 듯 했다. 소영은 기운을 내 다시 힘껏 밀었다. 그러자 문의 잠금 장치가 부서지듯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완전히 열렸다. 갈 곳 몰라 주위를 멤돌던 기분 나쁜 습기와 소음이 고인 웅덩이에 물길을 튼 듯 빠져나가고 있었다. 쏴-아-.

 

소음이 줄어들자 소영의 창백하던 얼굴에 생기가 조금씩 돌았다. 지친 듯 침대 뒤로 기대며 자빠졌다. 잠시 숨을 가다듬은 뒤 소영은 창문으로 다가갔다. 마치 블랙홀처럼 창문은 배가 고픈 듯, 소음 빨아들이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귀에는 들려왔다.

 

 

 

‘하...’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베어 나왔다.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기에 나온 신음이었다. 소영은 힘이 빠진 얼굴로 물끄러미 창문을 바라봤다. 어쨌든 저리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하긴 했지만. 다시 자리에 일어섰다. 창문 가장자리를 두 팔로 붙잡아 상체를 지탱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소음을 삼키고 있던-정말 소음을 삼키고 있었다- 창문 밖의 어둠이 소영의 오른손으로 몰려왔다. 마치 눈도 못 뜬 어린 새가 입을 모으며 어미에게 먹이를 갈구 하듯. 깁스를 한 오른손이 어둠에 휘감겼다. 아니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놀란 소영은 황급히 손을 떼었다. 하지만 창문 밖의 어둠은 의식이라도 있는 양 방안으로 들어와 소영의 오른손을 휘감았다. 전자음의 진원지가 소영의 팔인 양, 어둠은 소영의 팔에 들러 붙어 거머리처럼 전자음을 빨아 먹었다. 그러자 아주 조금이라도 들려오던 삐- 하는 소음이 완연히 소리를 잃었다. 그리고 형태가 없는 소음 뿐 아니라 소영의 팔에 붙은 물리적 형태를 지닌 것들도 어둠 속에 빨려 들어갔다. 각질이 떨어져나가듯 깁스를 한 석고들이 부서졌다.

 

소영은 이제 저항할 힘도 없었다. 침대에 주저앉아 오른손을 든 채로 기이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튀김옷이 벗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삭바삭’

 

 

 

석고 깁스가 조금씩 부서지듯 사라지자, 이내 소영의 오른팔이 드러났다. 아니 소영의 손이 아니었다. 소영의 팔꿈치 아래 1/3 부분부터는 인간의 팔이 아니었다. 편의점 바코드 스캐너였다. 소영의 팔 아래 붙은 바코드 스캐너는 계속 해서 붉은 레이저 빛을 쏘고 있었다. 계속되는 소음의 정체였다. 하지만 그 정체를 깨닫자 소영은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창문으로 빨려가는 붉은 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소영은 창문 쪽으로 오른팔, 아니 팔에 붙은 바코드 스캐너를 내밀었다. 그러자 창문 밖의 어둠이 일렁이며 흰색과 검은색의 기둥이 생겨났다. 그러자 더 이상 붉은 빛은 창문 밖으로 빨려가지 않았다. 붉은 빛은 창문의 위쪽부터 아래로 스캔을 했다.

 

 

 

삐삑-

 

 

 

소음은 멈췄고, 바코드 찍는 소리가 들렸다. 소영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응대 멘트가 이어졌다.

 

 

 

‘카드 받았습니다. 손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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