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유서

2019.05.23 19:2805.23

당신하고 사귄 후 첫 생일이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내게 효자손을 선물로 주었지요. 나는 아토피가 심했습니다. 선물을 받고 나서 솔직히 나는 좋아해야 할 지 기분 나빠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습니다. 뭔가 나를 아토피 환자라고만 인식하는, 그게 전부인 인간으로 대하는 것 같았거든요. 지금에서야 이렇게 말하는 거지만. 나는 늘 긁는, 또는 긁히는 존재였습니다. 늘 가려웠고 긁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면 늘 긁어 달라고 했습니다. 가렵든 안 가렵든, 습관이 된 거지요. 어머니는 나중에 자기들 죽고 나면 누가 긁어줄까, 농담 삼아 얘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건 저도 몰라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내가 나를 긁는 모습을 거울로 본 적이 있습니다.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바짝 세운 손톱으로 긁는 모습이 마치 구애 행위를 하는 못나고 혐오스런 벌레 같았습니다. 이후로 거울을 본 적이 없습니다. 거울을 다시 보게 된 건 당신하고 만나기 시작하고 난 뒤였습니다. 나는 당신 앞에서 최대한 긁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신이 효자손을 준 겁니다. 나는 자위를 하다 걸린 아이처럼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좋았습니다. 당신이 직접 긁어주는 게 더 좋았지만, 길게 내다보자면-헤어졌을 때를 생각한다면-효자손이 더 좋았지요. 언제라도 당신을, 그리고 당신의 손길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니까요. 나나는 지금도 당신이 준 효자손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의 완치가 돼서 긁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 나는 가렵지 않은 곳을 긁기도 합니다. 효자손으로요. 그런데 그 짓도 몇 번 하다 보니 질립디다. 색이 바랬고 당신의 손길은 희미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긁어봅니다. 몸으로라도 당신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우리는 보건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에이즈 검사를 하기 위해서 우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에이즈에 걸렸을까봐 밤잠을 설치고 하루 종일 불안에 매여 살았습니다. 검사를 하는 내내 주사를 맞는 강아지 마냥 낑낑대며 속으로 불안에 불안을 거듭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때 당신이 나타났습니다. 내게서 한 자리 떨어진 곳에 당신은 앉았지요. 당신도 에이즈 검사를 받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말을 걸었습니다. 혹시 동성애자냐고. 그건 상당히 무례한 질문이었습니다. 남의 성정체성을 함부로 묻는 것도, 에이즈 검사하러 왔으니 동성애자일 것이다, 라는 편견이 묻은 말도.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쪽은요? 하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자기도 동성애자라고 대꾸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침묵으로 입을 모았습니다.

 

당신은 내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나는 소설을 쓴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오, 하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면서 출간한 책이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아직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래도 멋지네요. 나는 일순 ‘멋지다’의 뜻이 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소설을 쓰는 행위에 ‘멋지다’라는 부사를 얹는 건 조금은, 아니 많이, 쪽팔리는 짓이니까요. 당신은 백수라고 말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고. 그리고 나는 이름이 불려 검사실로 들어갔습니다. 검사실에서 나왔습니다. 여전히 당신은 앉아있었습니다. 그는 폰을 달라 하더니 자신의 번호를 입력해 저장해놓았습니다. 뜬금없는 플러팅에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그냥 핸드폰을 받고 고개를 까딱한 뒤 자리를 피했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난 건 마포대교에서였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지금은 해체된 여성 보컬그룹의 노래를 들으며 다리를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있더군요. 당신은 자살방지 도우미였습니다. 주기적으로 난간에 붙여있는 자살방지 문구를 바꾸고,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을 막는. 목사나 신부보다도 더 위대하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당신은 내게 인사를 했고, 나는 그가 인사를 건넨 지 한참이 지나서야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자살할 사람을 막는다는 것, 그 어느 것보다도 고결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반면 당신은 꿀 빠는 직업이라면서 좋아했습니다. 짧은 근무 시간, 서있기만 하면 되는, 주기적으로 대충 지어낸 말들로 난간의 위로 문구를 바꾸는. 사람들의 목숨 따위엔 관심이 없는 당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딱히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막으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자기가 죽겠다는데, 엄연히 그건 그 만의 결정인데, 왜 남들이 괜한 오지랖을 부려서 그의 삶을 방해 하냐고. 뭐 이런 투였습니다. 당신은 내게 위로 문구를 써달라고 말했습니다.

 

소설 쓰니까 잘 쓰실 거 아니에요. 멋진 말 같은 거.

 

여전히 나는 ‘멋지다’의 뜻을 몰랐습니다. 멋진 말이란 게 뭔가. 어떤 멋진 말이 사람의 생명까지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당신의 성화에 못 이겨 몇 가지 말들을 즉석에서 지어내 읊조렸습니다. 당신은 못마땅해 여겼습니다. 술에 취한 건지, 그래서 등단을 못하고 책도 못내는 게 아니냐고 당신은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화가 났지만 맞는 말이니, 나는 그저 크게 웃으며 소주 한 병을 더 시킬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건 겨울 말이었습니다. 어떤 옷을 입을지 애매한 때였습니다. 당신하고도 사이가 애매한 때였습니다. 섹스는 하는데 사랑은 없는. 밥을 같이 먹지만 정이 없는. 당신은 자신에게 강박증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망상증이었습니다. 과거의 일들을 끄집어내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고 불안해했습니다. 과거에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았나, 그런 것들. 내가 누굴 강간하거나 살해하거나 어떻게 저렇게 해서 죽게 만들지 않았나, 나는 죽어야 한다, 범죄자다, 이런 것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빠져나오질 못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도 몇 번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온 몸을, 온 정신을 강박사고에 묶어둔 사람처럼.

 

당신은 자살방지 도우미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은 내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람을 죽였다고. 어떤 중년의 여자와 남자아이가 다리를 건너고 있더랬습니다. 둘은 겁도 없이 난간 위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당신은 내려오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 번 내려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시 한 번 내려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둘을 난간 너머로 밀어뜨렸습니다. 비명 따위는 듣지 못했다고, 당신은 경찰조사에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도망쳤습니다.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마포대교 교차로였습니다. 나는 매일 같이 다리를 찾아 가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사람 형체가 뜨지 않을까, 죽었으면 시체라도 건져야 하는데,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온종일 다리 위에 서있었습니다.

 

당신은 불어터진 몸으로 발견됐습니다. 사인은 익사였습니다.

 

 

 

당신은 사랑을 주는 척 하며 내 심장을 도려냈던 사람입니다. 당신이 선물로 준 효자손으로 지금 나는 등을 긁습니다. 마지막 가려움이겠지요. 나는 마포대교에 있습니다. 효자손을 강을 향해 멀리 내던집니다. 당신은 여기서 죽었습니다. 나는 방금 당신이 죽였던 두 모자(母子)의 장례식을 갔다 왔습니다. 울고 싶지 않은데 울고 싶었습니다. 침을 쑤셔넣듯 목 뒤로 삼켰습니다. 눈물을 한 방울 한 방울 주워 담듯 통곡이 예열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겨먹은 눈알인지 쥐어짜도 찌르르한 통증만 느껴졌습니다. 나는 숨을 헙 들이키며 뱃가죽을 당겼습니다. 몸 속 내장들을 머리까지 끌어올리는, 살가죽과 내장들과 뼈에 흡수된 모든 수분을 다시 역으로 되마시는 그런 호흡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눈물 두 줄기가 쪼르르 흘러나왔습니다. 발치에 짜디짠 오아시스 웅덩이가 천천히 고여 들었습니다. 멍색의 잔상들이 떠다니는 사이사이로 탁자 주위의 남자들과 상복차림의 여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울고 싶을 때가 있는데 울지 못해서 힘들다고. 우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지 그는 자신의 비평을 전시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슬픈 영상을 찾아본다고 합니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영상을 본다고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피해 유가족에 이입이 되어 울게 된다고. 그런 당신을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의 슬픔을 훔쳐가는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당신에게 한 적은 없습니다. 대신 같이 울었습니다. 같은 울음이었으나 다른 눈물이었습니다.

 

육개장이 맛없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여기입니다. 마포대교. 당신이 태어났던 곳, 일하던 곳, 죽었던 곳. 이 글을 누군가가 읽을 때면 난 이미 죽어있을 겁니다. 그때를 상상해서 써봅니다. 나는 난간 위로 올라갑니다. 자살방지 도우미가 저쪽에서 달려옵니다. 나는 그에게 싱긋 웃어보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떨어졌습니다. 다리에서 비명이 들려오고, 곧 구급대원들이 오겠지요. 그 자살방지 도우미는 나를 막지 못했습니다. 거기서 끓어오르는 죄책감, 많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죽음을 결심했을 때 느꼈던 그 감정 그대로.

 

여기는 마포대교입니다. 이제 갈 때가 되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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