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중편 나자렛의 나자렛

2019.05.15 03:5205.15

-1-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사회자가 경쾌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성가가 행사장 곳곳에 비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그 성스런 목소리들은 잔잔하게 거대한 돔의 꼭대기까지 차올랐다.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과학적인 경의와 종교의 신비함이 두 손잡고 강강술래를 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때문에 관중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성가를 따라 불렀다.

마침내, 오르간의 마지막 음색이 빛을 바라기 무섭게 부채꼴 모양의 관중석에서는 환희와 기쁨이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절정에 다다르자, 사회자는 자랑스럽게 외쳤다.

“오늘은 참으로 뜻깊은 날입니다. 그렇죠?”

그가 운을 때자,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녀는 길게 늘어진 붉은 치맛단을 끌고 나왔다. 그녀가 입은 드레스 자락은 바닥으로 흘러내리다 못해 거의 무대의 1/3을 가릴 지경이었다. 그녀는 리드미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지구 정부가 드디어 예수님과의 접촉을 위한 타임머신 사용을 허가해 주었습니다! 마침내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타임머신을 사용해 과거로 돌아가 예수님을 찾아 뵐 예정입니다, 여러분!”

그녀의 한마디에 검은 우주공간 위로 수많은 불꽃이 날아올랐다. 그 불꽃들은 철저히 계산된 신앙심과 광학적인 측면에서 완벽한 십자가의 형태를 이루었다. 네 귀퉁이가 거룩하게 휘어졌다. 교차하는 두 선들 사이에는 부드러운 마진이 들어가 있었다. 심지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형상까지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거대한 십자가의 등장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빛을 바라보면서 성호를 그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분이 행사장에 나타난 것만 같은 거룩한 기분마저 불러온 덕이었다. 허나, 사람들의 수많은 기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불꽃은 십 여초 뒤에 조용히 사그라졌다. 엄청난 디테일 치고는 상당히 허무한 최후였다.

그러나 이 거대한 십자가가 남긴 여파는 실로 대단했다.

십자가를 본 사회자를 비롯한 1등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현기증을 느꼈다. 하지만 다른 관중들 중 절반은 십자가를 본 뒤, 약 1분 동안 시력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남은 이들의 절반가량은 각막을 십자가로 지진 것 같은 상흔을 입었다. 결국, 그들은 백내장이 악화되어 몇 년 뒤에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래도 관중석 제일 뒤에 앉아 있던 극소수의 관객들보다는 운이 좋았다. 관중석 제일 뒤에 앉아 있던 이들은 극심한 방사선에 노출되어 즉사하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 대다수는 이런 일이 일어나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세상 모든 일들은 축복이자 기적이었다. 재난도, 역경도, 기쁨도, 행복도. 심지어,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작자가 고작 일주일 만에 만들어낸 괴상하기 짝이 없는 검은 공간을 보고서도 감사히 여기는 게 좋을 거라고 뻔뻔하게 말했음에도 그들은 감사히 여겼다. 온 세상을 가득 채운 온갖 모순을 해결해줄 만한 고객센터나, AS센터도 없는 데도 말이다! 그러니 오죽하랴?

사람들이 눈을 붙들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찾는 동안, 사회자들은 진행을 이어갔다.

“아, 지금까지 배일에 가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몇 분 후에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오르는데요. 그런데 그게 정말인가요? 지금까지 예수님의 존안을 기록한 역사적 사료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면서요?”

남자 사회자가 묻자 여성 사회자는 입술을 바싹 당기면서 영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네, 맞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예수님의 존안에 대한 구체적인 사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한때 예수님이 흑인일 거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죠. 또 몇몇은 불교와 연관을 지어서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서양으로 가져온 동양 사람이 예수라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리곤 했습니다.”

“맞습니다. 이런 무의미한 논쟁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죠? 전 우주의 기독교, 이슬람교도를 비롯한 모든 아브라함 종교 연합회 여러분의 바람대로 말이죠!”

“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반인이 과거로 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죠. 특히 위생적인 측면에서 아주 위험합니다. 현대의 질병이 과거에 창궐해서 타임 페러독스를 일으킬 위험성도 있죠. 저희는 이런 위험성 때문에 완전히 청결 상태를 유지한 로봇을 과거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과거에 계신 그 분께서 우리의 자녀인 로봇에게 가르침이 담긴 말씀을 전하실 것이며 저희는 처음으로 그분의 거룩하신 하늘에 계신 임의 광명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 사회자가 목청을 높이자, 남성 사회자는 무대 뒤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무대 뒤쪽에선 커다란 원통형 기계장치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사회자는 원통형 장치가 무대 위로 올라오는 순간에 맞춰 목청을 높였다.

“네, 신사숙녀 여러분! 소개합니다. 우리가 그분께 보낼 로봇! 나자렛-1225 입니다!”

다시금 우례와 같은 박수가 스테이지를 가득 매웠다. 그러자 은빛으로 반짝이던 원통형 기계장치는 서서히 눈 녹듯이 사라졌다. 물론, 원통형 장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탱크 안에 들어 있는 로봇을 볼 수 있게끔 탱크 겉면을 투명하게 바꾼 것뿐이었다. 그러자 로봇의 모습이 무대 위에 훤히 드러났다.

나자렛이란 이름의 로봇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 눈 두 개에 입 하나, 콧구멍이 두 개 달린 코도 있었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과 덥수룩한 수염은 덤이었다. 하지만 피부는 은색이었다. 때문에 나자렛의 모습은, 신도들로 하여금 은으로 만든 십자가에서 때어난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주최 측의 바람대로였다.

이미 행사를 알리는 공지를 인터넷에 띠울 때부터 로봇을 과거로 보내는 데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메일을 통해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행사장 주위에서 시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했다.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데 어떻게 쇳덩이를 보낼 수 있는가? 평생 성경만 읽고 산 독실한 신도(주로, 메일을 보낸 당사자처럼 말이다.)를 보내는 게 진리라고 아득바득 주장하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제일 앞줄에 앉아서 타임머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엉덩이를 들썩이는 부류들이 그랬다. 당장이라도 무대 위로 뛰어올라와 자기가 대신 시간 터널에 뛰어들고 싶어 엉덩이가 근질거릴 터였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시무룩한 얼굴을 푹 숙이고만 있었다. 감히 예수님처럼 생긴 로봇에게 물을 먹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훗, 성상옹호론자들이란. 사회자는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나자렛은 어제 조립된 완벽한 로봇입니다.”

“맞아요. 보조 추진기가 허리에 달려 있고, 각종 번역기도 달려 있죠. 아람어부터, 고대 그리스 어까지 가능하죠.”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들 하죠? 이제 슬슬 나자렛을 깨워 볼까요?”

두 사회자는 활짝 웃으면서 로봇이 들어 있는 원통을 손으로 두드렸다.

“나자렛! 혹시 의식이 있니?”

사회자가 말하자, 로봇의 두 눈에는 불이 들어왔다. 눈을 껌뻑인 로봇은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술 마시고 방금 일어난 사람처럼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에. 뭐라고?”

“나자렛. 아, 제대로 작동을 하는 구나.”

“보면 몰라? 그나저나 댁은 누군데 나한테 반말이야?”

훅 들어오는 로봇의 날선 질문에 사회자가 당황하자, 로봇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괜찮아요. 누구시든 반말해도 돼요. 전 어제 태어났거든요.”

“하. 농담에 소질이 있는 로봇이군요.”

사회자는 썰렁하게 식은 객석을 부담스럽게 바라보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저 수많은 독실한 종교인들에게 몰매를 맞을 수도 있었다. 때문에 이번에는 여성 사회자가 나자렛에게 물었다.

“나자렛. 혹시 예수님을 만나면 어떤 질문을 할지 생각해봤니?”

사회자가 묻자, 나자렛은 인공두뇌를 뒤졌다. 그리곤 짤막하게 말했다.

“기밀 사항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오, 그렇구나. 그러면…….”

사회자들이 다음 질문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나자렛이 말했다.

“있죠. 제가 예수님에게 바칠 노래가 있는데, 한번 불러 봐도 될까요? 제 특기가 노래 부르는 거거든요.”

사회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환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한 번 네 특기를 보여주겠니?”

사회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적어도 이 로봇이 경건한 성가를 읊거나,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가사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았다. 하지만 불행이도 나자렛은 그런 종류의 로봇이 아니었다.

그는 오른손을 가슴 앞까지 올렸다. 그리곤 반쯤 주먹을 쥔 왼손을 왼쪽 어께까지 올렸다. 그러더니, 곧이어 통기타 치는 시늉을 했다. 기타 선율을 입으로 튕기면서 녀석은 노래를 시작했다.

“오오, 오오! 헤이~. 지이~ 져어스. 따라딴딴따~. 어~벤져스 만큼 유명하아지~.”

쌈바 선율이 경건한 성가로 가득한 행사장을 집어삼켰다. 슬슬 시력이 돌아오기 시작한 교인들은 멍하니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바라보았다. 당장 성경과 십자가를 들고서 무대를 엎어버려도 놀랍지 않을 만큼 더러운 얼굴로 말이다. 하지만 분위기를 읽을 줄 모르는 로봇은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오! 지이~ 져어스! 빠라빰빰빠~. 생일은 12월 25일! 하지만 사실은~ 진짜 생일이 언젠지. 아무도오~ 모올라아~아아~. 25일은~. 옛날부터 유명한. 태양신의 축신일. 오! 하! 지만~. 우리의 지져스~. 그런 골동품 아니야~. 그는~. 은하계에서 제에일 유명한 가수라네! 오! 영원하라~. 스페-스 쌈바 포크!”

로봇이 반주를 시작하고 2절 가사를 읊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대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행사 주최측은 새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경건하다 못해 사람들이 지루해하다 죽게 만들어줘야 하는 로봇이 저런 경박한 노래를 부르다니! 감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무대 뒤편에 서있던 추기경들은 로봇을 주문한 회사에게 항의 전화를 넣었다. 어떻게 예수님을 찍으러 과거로 갈 로봇이 경박한 노래나 부를 수 있는지 해명을 요구한다고도 말했다. 그러자 회사 측은 별일 아니란 듯 덤덤하게 말했다.

“음, 예수님을 만나러 갈 거라면서요. 세상에 요즘 예수님이 얼마나 핫한 줄 알아요?”

“예수님은 수천 년 동안 핫 했어요!”

“수천 년? 뭔 소리에요? 우리 예수님은 그런 퀴퀴한 예수님이 아니죠. 요즘 인터넷 안 봐요? 스페이스 쌈바 포크 송 부르는 예수님 말예요! 광고도 찍었잖아요. ‘십자가에 못 박힌 놈보다 제가 더 유명하죠~. 지져스 크라이스트.’ 그 사람이 요즘 얼마나 핫 한데. 헤헤. 근데, 잠깐만요. 설마 그 예수가 아니라 ‘그’ 예수를 보러 간다는 거였어요?”

“그럼 아브라함 종교 연합이 당신네 회사에 주문을 넣은 이유가 뭐겠어요?”

“어……. 예배할 때 분위기 좀 띄우려고요? 애초에 피부색을 은색으로 주문했잖아요. 그게 파이프 오르간 옆에 두면 자연스러울까봐 그런 거 아니에요?”

이 쯤 되자, 주최 측은 한숨을 쉬면서 전화를 끊을 수밖엔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전 우주적인 종교적인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다. 거기다 주식시장과 내년도 성경 판매 숫자가 슬슬 걱정되기도 했다. 이러다가 수천 경 달러에 달하는 행사 마케팅 비용을 못값을 수도 있었다.

수많은 추기경들이 골머리를 썩일 동안. 행사장 뒤에 근엄하게 앉아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열쇠가 그려진 황금 옥좌에 근엄하게 앉아 있었다. 그 몸은 쇠할 대로 쇠해서 온몸에 박은 생명 유지 장치 없이는 체 두 시간도 못 버틸게 자명했다. 심지어 눈조차 버겁게 뜨고 있어서 저게 사람인지 시체인지 구별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는 간신히 눈동자를 움직였다. 그의 미약한 뇌파를 읽은 기계 장치가 대신 말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네. 주문이 잘못 들어간 것도 다 하늘에 계신 그 분의 뜻이겠지.”

“하지만 전하. 이번 일이 잘못되면 저희는 파산입니다. 요즘 가뜩이나 신앙심이 많이 떨어졌다고요. 요즘 애들은 예수님이 씨리얼 상자에 나오는 곰돌이 푸 쯤으로 생각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객석에 모인 사람들을 전부 내쫓을 순 없잖나. 어차피 우린 이 행사 다시 열 수도 없어.”

“하지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도…….”

“그래. 도널드 추기경. 전에도 그런 말했었지. 그때 어떻게 됐나? 바티칸 시국이 디즈니한테 통째로 팔렸지 않나! 자네 덕에 내 집이 날아갔다고! 그것도 바티칸 디즈니랜드의 가장 큰 어벤져스 롤러코스터 플랫폼이 됐어.”

“하지만 디즈니가 바티칸을 사갈 줄 누가 알았습니까?”

도널드 추기경이 성호를 그리면서 중얼거리자, 교황은 입을 열었다.

“됐소. 오늘 이거 성공 못 시키면 아브라함 종교 연합은 끝장이요. 나는 마지막 교황으로서 명하겠소. 타임머신을 작동시키십쇼. 지금 당장 작동시켜요. 안 그러면 우린 집에 갈 우주선도 못 구할 테니까!”

“오. 성자와 성령과 성부의 가호가 있기를.”

추기경들은 타임머신을 작동 시켰다. 그리곤 시간 터널 안으로 들어가는 나자렛을 바라보면서 성호를 그었다.

 

-2-

 

나자렛-1225는 떨어지고 있었다.

중고로 단 관성 속도계에 따르면 나자렛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떨어지고 있었다. 비행기에 떨어뜨린 화물처럼 말이다.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로봇은 당황했다. 왜 시간터널을 나오자마자 떨어지고 있는 걸까? 일단, 계획상 수직낙하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거기다 예수가 하늘을 날았다는 기록도 없었다. 그렇다면 뭐, 제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휴먼에러’였다.

어떤 멍청한 원숭이의 후손이 시간여행을 고려할 때 좌표 값을 잘못 잡아 지표면에서 조금 위에 나타난 듯 했다. 하여간에 이래서 인간들이란. 팔짱을 낀 나자렛은 혀를 차면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혀 차는 소리나 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속도가 붙으면 곤란했다. 만약에라도 지표에서 2만 미터가량 떨어진 상공에서부터 자유낙하를 한다면 100%확률로 동체가 부서질게 뻔했다. 그러면 임무는 고사하고 부서진 상태로 방치되다가 수천 년 뒤에 돈도 못 버는 고고학자들에게 발견될 터였다. 아니, 그 전에 현지인들에게 발견돼서 개 밥그릇쯤으로 쓰일지도 몰랐다.

나자렛은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허리에 내장된 보조 추진기를 꺼냈다. 양쪽 허리와 등이 갈라지면서 추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150개의 터빈블레이드가 공기를 압축해서 나자렛의 몸을 약 12미터 높이 상공까지 띠울 수 있는 장치였다. 하지만 불행이도 나자렛은 추진기는 작동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할 필요도 없었다.

추진기를 꺼내자마자 나자렛의 몸은 지푸라기더미 속에 처박혔으니까 말이다. 오,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고도를 확인해 볼 걸. 하지만 불행이도 반쯤 썩은 지푸라기는 나자렛의 몸을 지탱하지 못했다. 때문에 나자렛은 반쯤 썩은 지푸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멋지군. 기껏 무균처리까지 다 했는데. 나자렛이 투덜거리자, 지푸라기 아래에서 가로로 누워 있는 큼지막한 나무 기둥이 나타났다. 불쌍한 나자렛은 허리부터 나무에 처박힌 뒤, 가슴부터 오물 구덩이 속에 처박혔다.

나자렛은 오물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여기는 대체 어딜까? 나자렛이 눈을 껌뻑이는 사이, 그의 머리 위로 짚더미가 수북하게 쏟아져 내렸다. 멋지군. 나자렛은 얼굴에 들러붙은 지푸라기와 오물을 닦아냈다.

지푸라기를 들춰내자, 나무로 만든 구조물이 보였다. 얼기설기 쌓아놓은 장작들과 굵직한 야자나무 기둥, 그리고 여물통 같은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마구간 같은 곳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나자렛은 턱을 쓸어내리면서 뻘쭘하게 추진기를 허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운동 제어 장치가 멈춘 탓이었다.

나자렛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자가진단 프로그램을 돌렸다. 그러자 곧장 허리 어깨 쪽 신경에서 운동 능력 이상이 감지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자가 수리가 가능했기에 딱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진짜로 큰 문제는 오른쪽 옆구리 부분의 상처였다. 나자렛은 손 하나가 쑥 들어가고도 남는 상처부위를 만지작거렸다. 아무래도 떨어질 때 프레임이 휘어버리면서 피부를 50cm가량 찢어놓은 모양이었다.

나자렛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2만 미터에서 떨어져도 안전하다는 안전보증서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아무래도 제작사 쪽에서 제작비를 상당히 많이 남겨먹은 듯 보였다. 나자렛은 끙끙거리면서 휘어버린 프레임을 오른손으로 교정했다. 일단 프레임이 펴지자 그는 왼쪽 검지손가락을 프레임에 가져댔다. 손끝이 갈라지면서 용접도구가 튀어나왔다. 그는 왼손을 상처에 가져대고 엉성하게 용접을 시작했다. 일단 응급처치용이었다.

당장 옆구리에서 냉각수가 세거나, 전류가 빠져나가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기에 이정도면 임무가 끝날 때까지 버칠 것이다. 아마, 창이나 칼 같은 날카로운 물건이 옆구리를 찌르지만 않으면 괜찮을 터였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사진 좀 찍었다고 칼을 휘두르랴?)

나자렛이 응급처치를 마치기 무섭게 짚더미 밖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뭐야? 뭐가 어떻게 거야?”

“세상에, 이게 뭐야, 우리 집 지붕이 뻥 뚫렸잖아!”

목소리는 총 두 명이었다. 한쪽은 걸걸한 목소리의 여성이었고, 다른 한쪽은 굵어지다 만 남자의 목소리였다. 남자는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해. 이건 로마 놈들이 저지른 짓이야. 지난번에 임금 좀 더 달라고 협상한 거 가지고 지금 와서 이러는 거라고.”

“로마 군인이? 아, 돈도 쥐똥만큼 버는 건축가 겸, 석공 겸, 나무꾼의 집을 찾아와서 지붕만 저렇게 개판으로 만들어놓고 떠났다고? 불도 안 지르고?”

“음, 아마도……. 하지만……. 난 그래도 석공 조합의 조합장인데…….”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갔다. 그러자 여자는 한숨을 쉬었다.

“와, 요셉. 자기, 굉장한 거물이구나. 그런 사람이 이런 똥통 같은 곳에 살고 대단하다야. 아주. 대단하시네.”

남자는 끙끙거리면서 여자의 말에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여자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반박할 거리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그가 입을 열고 숨을 들이키기 무섭게 짚더미 속에서 사람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두 남녀는 깜짝 놀란 듯 나자렛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쇼?” 나자렛이 말하자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 요셉 니 친구냐?”

“아닌데. 마리아. 니 친구 아냐?”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자, 나자렛은 천천히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자신이 미래에서 온 로봇이며,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우연히 두 사람의 마구간이었노라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괴상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자, 로봇은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사람을 좀 찾는데.”

“사람? 남의 집 천장에 구멍내놓고 사람을 찾는다고?”

마리아라는 여자 쪽이 말했다. 그러자 나자렛은 얼굴에 들러붙은 지푸라기와 오물을 손으로 닦아내면서 말했다.

“나자렛이란 곳에 태어난 이에수스를 찾고 있어. 이야스, 예슈아, 예호슈아, 뭐, 대충 이런 이름인데, 들어본 적 있어?”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여기가 나자렛이긴 한데……. 그런 사람 여기 없…….”

그런 사람 없다고 중얼거리던 마리아는 잠시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곤 잠시 뒤, 그녀는 입술을 내밀고서 입을 열었다.

“……지는 않지만, 혹시 누가 알아. 그런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 요셉.”

“어쨌든 목자들 중에는 없…….”

요셉이란 이름의 남자가 말하자, 마리아는 요셉의 발을 밟았다. 마리아는 곧장 발가락을 붙들고 캉캉 춤을 추고 있는 요셉의 말을 가로챘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목자들 중에 있는지 없는지도……. 아이고, 내 발…….”

“맞아. 맞아. 우리는 잘 모르겠어.”

마리아라는 여자는 요셉 대신 말했다.

“그나저나, 그 찾는다는 사람이 이에수스랬나? 아, 기억이 날 듯 말 듯 가물가물하단 말이지. 만약에 네가 무상으로 저 지붕을 고쳐 주면 조금 기억이 좀 날지도 몰라.”

나자렛은 지붕을 가리키는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 아무래도 지붕을 수리하기 전에는 입을 열 생각이 없나보군. 아무래도 조언을 받아야겠어. 나자렛은 입력된 프로그램 중에 협상술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나자렛의 최첨단 인공두뇌 속을 가로지른 프로그램이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도출한 결과 값은 다음과 같았다.

‘인터넷이 끊겼습니다. 네트워크 환경을 확인해 주세요.’

아아. AC 0년으로 보낼 로봇 안에다가 인터넷이 없으면 쓸 수도 없는 프로그램을 깔아놓다니. 나자렛은 자신을 제작한 엔지니어를 저주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때? 내가 노래를 불러줄게. 난 노래는 잘 부르거든. 일단 그거면 조금 기분이 좀 풀릴 거야.”

마리아의 표정이 점점더 어두워졌음에도 나자렛은 기타 치는 흉내를 냈다. 그가 간드러지는 코러스를 흘리면서 포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오~. 시골열차 기관사는~ 술에 절어 속도 올렸지~! 달그락달그락 달려간다 시골열차~. 근데, 아뿔싸 기차는 급커브가 나타나네! 바로 앞은 낭떠러지…….”

“한마디만 더 해. 확 그냥 사람들한테 기물파손범이 돌아다닌다고 소문부터 낼 거니까. 그러면 니가 이에수스인지 뭐시기인지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아?”

마리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손가락을 꺾었다. 위협적인 소리가 울리자, 나자렛은 노래를 멈췄다. 이렇게까지 반응이 안 좋을 줄은 예상도 못한 나자렛은 시무룩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결국 나자렛은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대신에 내가 지붕을 고쳐주면 이에수스, 아야스, 예수아…….”

“일단! 고친다음에 이야기를 하자고.”

마리아는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가까스로 발가락 통증을 참아낸 요셉은 나자렛의 어깨를 감싸면서 말했다.

“그래. 일단은 움직이라고. 친구. 나무 기둥도 새로 새워야 하니까. 오늘 하루 종일 해도 밤늦게나 끝날 거야. 그나저나 지붕에다 무슨 짓을 한 거야?”

“하늘에서 떨어졌어.”

“아. 하늘에서.” 요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술 마시면 그런 기분이 들긴 해.”

멋대로 이해한 요셉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나자렛은 정말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요셉과 마리아는 나자렛을 끌고 야자수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마리아는 나자렛에게 공구가 담긴 나무 양동이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나무망치와 톱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마리아가 말했다.

“얌마. 잡담은 그만하고 얼른 엉덩이부터 움직여. 오늘 내로 수리 안하면 여행객들을 못 받는단 말야. 그리고 너. 지붕 고치는 김에 땔감이랑 먹을 것도 찾아오도록 해.”

“하지만 난 지금 바쁜데…….”

나자렛이 멀뚱히 지푸라기 한가운데 서서 중얼거리자, 요셉과 마리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이구. 요즘 세상에 안 바쁜 사람들도 있니?”

마리아가 말하자, 요셉이 거들었다.

“그리고 너 때문에 우리도 바빠졌다고. 일단 우리는 시장에 좀 갔다 올 거야.”

“그 동안 땡땡이치지 마. 넌 도망가도 몸이 은색이라 금방 잡히니까 어디 갈 생각도 하지 말고. 알겠지? 도망가면 로마 애들이랑, 유대교의 높으신 분들에게 일러서 강제노역을 치르게 할 거야. 그럼 우린 이만.”

마리아는 수천 년 뒤에 생길 어느 사기적인 나라의 셈 삼촌처럼 나자렛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마구간을 나섰다. 두 사람이 오솔길을 따라 깡충깡충 뛰어 내려가자, 나자렛은 고민에 사로잡혔다. 물론 몸 색깔이야 바꿀 수 있었다. 최첨단 소재로 만든 인조 피부에 이렇게 전력을 흘러 보내면…….

나자렛은 은색 피부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시 전력을 배분했다. 하지만 피부색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은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나자렛은 자체 점검에 나섰다. 그러자 순식간에 원인이 드러났다. 어딘지는 몰라도 피부와 그래픽 카드 사이에 접촉 불량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피부 전체가 맛이 간 모양이었다.

나자렛은 턱을 쓸어내렸다. 이 쯤 되면 선택지는 없었다. 만일, 그냥 도망간다면 저 마리아와 요셉이란 작자들이 괜히 다른 인간에게 이 일을 알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임무에 막대한 지장을 줄 수도 있었다.

결국 마구간에 혼자 남은 나자렛은 마구간의 구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3-

 

반나절이 지나 시장에서 돌아온 요셉과 마리아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제 두 사람의 마구간은 오물과 지푸라기로 들어찬 냄새나는 곳이 아니었다. 진도 5의 지진도 견디는 내진 설계를 적용, 각종 재난에도 끄떡하지 않을 만큼 견고한 건축물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구간의 내부는 원래의 크기보다 3배가량 넓어져 있었다. 나자렛은 3배나 넓어진 공간을 적절히 나누었다. 그는 사람 사는 곳과 말이 사는 곳, 그리고 손님들이 잘 곳을 나누었다.

말과 함께 뒹굴어 잠을 청하던 두 사람의 눈에 이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정책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놀란 것은 마구간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통나무를 능숙하게 배어내는 나자렛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 혼자서 5그루 배기도 힘든 통나무를, 이 은빛 인간은 벌써 19그루를 배어낸 차였다. 그러고도 지친기색 없이 20그루 째 나무를 묵묵히 배어내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마리아와 요셉이 함께 팔짱을 끼고 시장에 갔다 돌아오는 반나절 사이에 벌어진 것이었다. 마리아는 입술을 쭉 내밀고 말린 대추 야자를 입안에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

“와, 너 보기보다 꽤 힘도 세구나.”

“꽤 쌘 정도가 아니지. 저건 장사야. 완전 장사라고.”

나자렛은 통나무를 쓰러뜨린 뒤 나무 조각으로 뒤덮인 자신의 동체를 손으로 털었다. 그리곤 도끼를 어깨 위에 올린 체 입을 열었다.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나보다 훨씬 대단했어. 나무 20그루쯤은 하루에 그냥 배셨지.”

“예수?” 요셉이 턱을 쓸어내리면서 끙끙 거리자, 나자렛이 말했다.

“이에수스라고도 부르지. 또 다른 이름으로는 예수스…….”

“아, 됐어됐어. 지겹게 들었다고. 세상에.” 마리아는 치를 떨었다. “있지. 네가 어디서 온 녀석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우리 소개부터 할게. 난 마리아야. 이쪽은…….”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의 이름은 파악했어. 그 쪽은 요셉이지?”

“어. 내가 요셉이지. 난 석공이야. 건물을 짓는 일을 하고 있지.”

요셉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자, 나자렛은 두 사람을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두 사람 혹시 부부인가? 혹시 아이가 있지 않아?”

나자렛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두 사람은 휘파람을 불면서 어깨동무를 했다.

“뭐, 우리는 동업자겸, 친구 겸, 뭐…….”

“애인이라고 해도 괜찮지. 아마도……. 어쨌든 간에 아직까지 애가 없거든.”

요셉이 말하자, 마리아는 요셉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 녀석이 문제야. 해만 지면 잔다니까.”

“그래. 그래. 다 내가 문제지. 어쨌든, 한 가지 제안을 좀 할까 싶어. 실은 내가 음, 석공조합을 맡고 있어. 요즘 힘쓰는 놈들이 부족해서 그런데 혹시 너도 우리랑 같이 사업하지 않을래? 일당에 은화 세 닙은 줄게.”

요셉이 제안하자, 나자렛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나는 중대한 사명이…….”

“에이. 사명은 조금 뒤로 미뤄. 요즘 그리스 풍 신도시가 얼마나 잘나가는 때인 줄 알아?”

마리아가 나자렛의 왼팔을 붙들자, 어리숙한 요셉이 나자렛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요셉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나만 믿어. 친구. 앞으로 30년 동안 나자렛에서 석공만큼 잘나가는 사업은 없을 테니까. 혹시 알아? 네가 찾는다는 놈도 이곳에 와서 석공 노릇이나 할지도 모르잖아.”

흠. 아주 일리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럼 아주 잠시 동안 여기 머물면서 예수님을 찾아볼까? 나자렛은 그렇게 생각했다.

 

-4-

 

그렇게 13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길고 긴 노동 끝에 나자렛은 석공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떤 인간보다도 실력 좋은 조각가이면서, 나무꾼이었고, 건축가였다. 그는 지치는 법도 없었다. 핵융합 배터리 덕분에 딱히 전력난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게다가 병들거나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았다. 심지어 부탁을 마다하는 경우도 없었다. 심지어 음식도 먹지 않았고, 무언가 탐하는 일도 없었다.

때문에 태생은 조금 의심스러웠음에도 그를 싫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감독관들이나 시장 상인들은 예외였다. 그들은 언제나 나자렛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종종, 나자렛은 놀라우리만큼 정확한 계산으로 그들 모두를 물 먹이곤 했으니까 말이다.

석공들이 단체로 대추야자를 사려 했을 때도 그랬다.

상인들은 말린 대추야자를 열통 가져와서 석공들에게 로마 금화 100개를 요구했더랬다. 하지만 불행이도 이 대추야자 열 통 중 5통은 개미들이 반쯤 파먹은 뒤였다. 아마 말리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정립된 식품 품질관리법의 기본이 된, 무작위 화학적 족적 스펙트럼 검사를 끈질기게 실시한 결과 개미들이 먹은 통 5개는 공짜로 받을 수 있었다.

거기다 나자렛은 야근과 잔업을 밥 먹듯이 시키던 감독관들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석공들이 단체로 일에서 손을 때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라고 일침까지 놓았다. 결국 감독관들은 야근할 때마다 수익금을 조금 더 얹어 주겠노라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렇게 나자렛의 협박과 근면함 덕에 석공들의 대우는 나날이 좋아졌다. 가계 형편이 서서히 피기 시작하자, 마리아와 요셉도 신바람 나는 삶을 누렸다. 두 사람은 매일 저녁마다 말린 고기와 흰 빵을 먹었다. 요즘에는 포도주도 조금 구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저녁만 되면 거하게 취한 두 사람을 찾는 것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는 걱정거리가 있었다. 아이가 없었던 것이다. 아이가 없다는 건 말 그대로 늙어서 죽을 때까지 뼈 빠지게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일을 못하면 그대로 굶어 죽어야 했다.

아직 노인복지란 개념이 영부족한 시대였던 터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거기다 두 사람 뿐 아니라 나자렛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나자렛이란 촌 동내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얼굴은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석공 중에 예수님을 찾지 못한 건 둘째치더래도, 하다못해 갓 태어난 아이들 중에서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이 각자 다른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어느 저녁에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있지. 곰곰이 생각을 좀 했어. 그러니까, 우리도 이제 나이가 꽤 먹었는데, 아직까지 아이가 없잖아.”

“맞아. 지금이면 분명 갓 태어난 손자가 구유에 누워서 울고 있어야 하는데. 아이고, 요즘에는 아는 사람들이 다들 나더러 고자라고 놀린다고.”

요셉이 시무룩하게 말하자, 마리아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있어. 음, 있지. 13년 동안 우리가 계속 널 지켜봤는데. 넌 꽤 괜찮은 녀석인 거 같단 말이지. 요즘 애들이랑 달리 일도 잘하고. 또 농땡이도 안 부리고 말이야.”

“맞아. 거기다 마리아한테 추파도 안 던지더라. 어쨌든, 본론부터 말하자면.”

요셉은 양피지를 내밀었다. 양피지에는 입양서류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입양 서류? 날 입양한다고?”

“응. 우리가 널 입양을 좀 할까 해.”

마리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요셉은 나자렛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이거야. 우리가 너한테 재산을 전부 물려줄 테니까 너는 우리가 늙어서 기력이 다할 때까지 계속 우리를 돌봐주는 거지. 우리 묫자리도 봐주고, 간병도 해주는 거야.”

“하지만 나에겐 사명이 있어. 이에수스, 예수스…….”

마리아는 학을 때면서 소리쳤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 사람 찾는 것도 도와줄게. 세상에. 13년 동안 그 이야기야? 그리고 재산도 준다잖아. 거절하면 안되지.”

“그런가? 흠, 그럼 거절할 이유가 없군.”

어깨를 으쓱거린 나자렛은 두 사람과 함께 입양 서류를 작성하였다. 그렇게 며칠 뒤, 두 사람이 베들레헴으로 입양 서류 제출 겸 신혼여행을 떠났다. 홀로 나자렛에 남은 요셉의 아들, 나자렛은 요셉이 운영하던 석공 조합을 도맡았다.

그가 맡은 일은 고작해야 보름 정도 책임지고 석공들을 관리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석공들을 관리하는 일은 상당히 힘겨운 일이었다. 이 테스토스테론으로 뇌가 절어진 남녀 집단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치고 박기 바빴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주로 4각 관계와 불륜, 그리고 도둑질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자렛이 조합장 대리 직함을 달자, 그들은 조합 운영자가 서로 바뀌었답시고 치고 박고 싸웠다. 오죽 심하게 싸웠으면, 5명의 앞니 10개가 빠지고 석공 한 명이 곤죽이 되어 실려 나갔으랴?

보다 못한 나자렛은 별의 별짓을 다 했다. 포크송을 부르기도 했고, 혼자서 되도 않는 말장난을 하면서 어떻게든 사람들 머리를 식히고자 애를 썼다. 하지만 이 야만인들은 결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하다못해 나자렛은 티타늄 주먹으로 석공들의 이빨을 탈탈 털어버릴 생각까지 했더랬다. 하지만 나자렛은 주먹질을 할 수 없었다. 머릿속 어디에도 안간을 제압하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 않았던 탓이었다.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불행이도 이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너, 이 자식! 우리를 놀리는 거냐! 엉?!”

더 열이 오른 석공들은 나자렛을 붙잡아 면상에 주먹질을 날렸다. 나자렛이 쓰러지자, 석공들은 쓰러진 나자렛을 이리저리 밟고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 바람에 석공 두 명의 손이 빵부스러기처럼 으스러지고 말았다. 티타늄을 맨주먹으로 때려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이 이 지경까지 오자, 참다못한 나자렛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닥쳐! 이 원숭이들아! 전부 다 닥치라고!” 포크 송의 간드러지는 발성이 욕설을 내뿜자, 석공들은 바닥에 드러누운 나자렛을 노려보았다. 간신히 발길질에서 벗어난 나자렛은 한숨을 쉬면서 사람들에게 호통쳤다.

“나 원, 그냥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면 안 돼? 여러분은 만인을 사랑하란 소리도 못 들어봤어? 이 야만인들아?”

나자렛이 말하자, 사람들은 괴상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상에. 만인을 사랑하라니, 그럼 기분 나쁜 녀석들도 사랑해야 한단 말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되물었다. 그때마다 나자렛은 충실히 답변했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인생은 항상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로 가득한데, 굳이 서로 싸울 거 뭐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이빨 몇 개는 털어줘야 속이 후련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자렛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상대의 이빨을 털어버리면, 그 이빨 털린 자식의 자손들이 가만히 있겠느냐 물었다.

이빨 털린 집 애들이 아버지 원수 갚겠다고 당신 이빨 털러 찾아올 게 불 보듯 뻔했다. 어디 그뿐이랴? 그렇게 당신 이빨 털리고 나면 당신의 자식들은 가만히 있을 건가? 나자렛은 천문학적인 이빨 개수를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헬레네 양식으로 지은 포세이돈 신전을 10개를 짓고도 남을 거라고.

(마지막 설명은 아무도 이해를 못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석공들은 싸움을 멈췄다. 일단 이빨이 없으면 뭔가를 먹기도 힘들었던 탓이었다. 그리고 먹질 못하면 일을 못했고, 일을 못하면 돈을 벌수가 없었다.

결국 성난 황소처럼 굴던 석공들이 먹을 것 앞에서 조금은 유순해졌다. 그들은 서로에게 으르렁거리기도 했지만, 주먹질은 멈췄다. 아마도 나중에 이빨이 덜 깨지면서 다른 사람을 조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더 이상 싸우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석공들이 잠시나마 싸움을 멈추자, 사람들은 석공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 나자렛의 명언이 입방아에 올랐다.

특히, 원수도 사랑하란 말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명언은 주로 변명을 하는 데 쓰였다. 특히 요셉이 마리아가 아끼는 그릇을 깼을 때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우리 법적인 아들이 한 이야기를 엄마가 되가지고 대놓고 어기면 쓰겠어? 요셉은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어땠거나 나자렛의 가르침을 받은 뒤로 사람들이 사람들을 덜 죽였다는 점은 너무도 자명했다.

나자렛의 말이 파급력을 얻자, 그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시몬도 그 중 한명이었다. 한 13살이나 먹었을까? 아직 어린티를 다 벗지도 못한 녀석은 갈레아 호수 근처에 살고 있었다. 녀석은 어떻게 알았는지, 낚시터를 다지고 있던 나자렛에게 와서 귀찮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그쪽이 굉장히 똑똑하다면서요? 왜 서로 사랑하라는 거예요? 머리부터 깨부수면 안 되는 거예요? 물고기가 언제부터 생겼어요? 포세이돈이 만드신 거예요? 새는 왜 날 수 있어요? 등등 별 요상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물론 나자렛의 최첨단 인공두뇌 안에는 이 모든 답변들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시간여행 때문에 발생하는 페러독스가 발생할까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보다도 나자렛은 이 조그만 인간이 너무도 귀찮았다. 원, 당장 여기에다 낚시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작은 인간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자렛은 건성건성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대체로 ‘그냥 만들어졌어.’와 ‘자연적인거야.’로 좁혀졌다.

하지만 이 조그만 인간은 이런 답변에 만족하지 않았다. 녀석은 이리저리 방방 뛰면서 빨리 대답하라고 나자렛을 재촉했다. 하다하다 녀석은 귀청을 뚫어버릴 것 같은 소음을 내면서 우주적인 규모로 질문을 확장시키기도 했다. 결국, 보다 못한 나자렛은 일손을 멈췄다. 그리곤 시몬에게 진화론부터 기본적인 고전 물리학의 전반적인 설명을 토대로 모든 답변을 이야기 해주었다. 물론, 빅뱅은 덤이었다.

엄청나게 방대한 지식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시몬은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리곤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오뚝이 마냥 흔들어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자렛의 설명을 듣다 지친 시몬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너무 방대한 양을 한꺼번에 (졸음이 쏟아질 만큼 나른나른 한 목소리로)알려주자 완전히 질려버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 까? 시몬을 잘 들었노라 말하며, 강가에 버려진 나무토막 위에서 몸을 누이고 잠을 청했다. 어지간히 졸린 게 아닌 모양이었다. 모든 것이 계산대로였다. 하여간에 인간들을 재우는 데는 물리학만큼 좋은 자장가도 없다니까.

이제야 질문에서 해방된 나자렛은 다시 낚시터를 다듬었다. 진흙 위에 반석을 세우고, 나무를 얹어 사람들이 잘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작업을 마치기도 전에 물가에서 낯익은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어후! 어푸! 살려줘요!”

시몬이었다. 나자렛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호수 한가운데까지 떠내려간 나무토막과 나무토막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시몬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물살 때문에 진흙이 무너져서 시몬이 누워 있던 나무토막이 휩쓸려 간 모양이었다. 나자렛은 망설이지 않고 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수영은 하지 않았다.

로봇에게 수영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물론 성능 보증서에는 방수 기능도 작동 중이라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2만 미터에서 떨어져도 멀쩡하다는 동체가 고작 4미터 떨어졌는데 찢어지지 않았던가? 거기다 옆구리에 난 상처 때문에 방수가 안 될게 뻔했다.

그래서 나자렛은 보조추진기를 작동시켰다. 출력을 15%까지 높이자, 나자렛의 몸은 공중에 살짝 떠올랐다. 나자렛은 공중에 반쯤 뜬 상태로 빠르게 호수를 가로질러 허우적거리는 시몬을 건져 올렸다. 그가 죽다 살아난 시몬을 안고 낚시터로 다가오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어떤 이들은 나자렛의 발에 입을 맞추며 그를 신의 아들로 떠받들었다.

물론 나자렛은 자신이 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세상에. 물 위를 걷는 인간이라니! 그런 사람이 신의 아들 아니면 누가 신의 아들이랴? 사람들은 나자렛에게 어떤 신의 아들이냐고 빨리 대답하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나자렛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용한 물리학적인 법칙들을 설명했다. 나릇나릇하고 딱딱한 어조로 아주 지루해 죽을 만큼 늘어지게 말이다.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인력, 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이죠. 이런 핵력은 아실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력이죠. 인력이란 건 나중에 여러분의 머나먼 후손인 뉴턴이란 과학자 분께서…….”

나자렛의 설명이 끝날 때까지 온전한 정신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전부 호숫가에서 진흙을 베개 삼아 잠이 들거나, 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갔다. 나자렛은 흡족해했다. 이제 더 이상 딴 소리는 안 나올 터였다. 하지만 여기서 나자렛조차 예상하지 못한 한 가지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선택적 기억 왜곡이었다.

이 문제는 주로 졸면서 수업을 듣는 게으른 학생들에게 주로 발생하는 문제였다. 이 현상을 경험한 학생들은 항상 동문서답하기 바빴다. 뉴턴을 뉴런으로 알아듣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심하면 지금이 수학시간인지, 국어시간인지 알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고도로 발달한 과학과 공부와 담을 쌓은 사람들이 만나, 이 현상은 너무도 거대한 집단 최면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우선 사람들은 ‘우주를 지배하는’과 ‘머나먼 후손’, 그리고 ‘분께서’란 말만 간신히 알아들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말들은 사람들의 뇌 속에 들어가 살짝 오작동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자렛의 기나긴 설명은 압축되고 말았다.

‘헤헤. 저는 우주를 지배하는 분의 자손입죠. 신의 아들이라고요.’

사람들은 대체로 나자렛이 한 말을(정확히는 그가 한 말이라 착각한 말을) 믿었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나자렛이 물 위를 걸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쨌든간에 일단 나자렛이 물 위를 걸은 건 사실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물 위를 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물 위를 걸으려면, 신의 아들쯤은 되어야 가능해 보였다. (아니면 커다란 소금쟁이거나 말이다.)

물위를 걸은 나자렛에 대한 소문이 방방곳곳 퍼져나갔다. 이제 마리아와 요셉의 집 앞에는 나자렛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 덕에 신바람이 난 건 마리아와 요셉이었다. 그들은 주변에 마구간을 5개나 더 짓고서 사람들을 받았다. 1박에 은화 10 닙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나자렛을 만났다. 그런 이들 중에는 나자렛 덕에 목숨을 건진 시몬도 있었다.

시몬은 나자렛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제자로 받아주십쇼! 스승님!”

“싫어.”

나자렛은 딱 잘라 거절했다. 하지만 이 끈질긴 녀석은 계속 따라붙었다.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시고 제발 제자로 받아주세요! 아버지가 수영하나 못하는 놈이 물고기는 어떻게 잡겠냐고 아우성이라고요! 저더러 집안의 수치라고 한단 말예요! 어차피 스승님의 가호도 받았겠다, 아예 포세이돈님께 제물로 바치는 게 본전 뽑는 거라고 협박까지 했다고요! 바다에 던져버린다고 했다고요!”

나자렛은 포세이돈에게 제물로 바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시몬을 산체로 바다에 빠뜨리겠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포세이돈의 상징인 백마 등에 묶어서 말이다. 나자렛은 고민에 사로잡혔다. 이놈을 죽게 내버려둬야 하나?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 내일 죽으나 60년 뒤에 죽으나 거기서 거기였다. 나자렛이 고민에 사로잡히자, 마리아가 나섰다.

“그냥 받아줘. 불쌍하잖아. 넌 사람이 말에 묶여서 해수욕을 해야 직성이 풀리겠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뭘 했다고 제자를 받아?”

“뭘 했긴. 그 사나웠던 녀석들이 주먹질 안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지. 뭐, 요즘에는 발로 정강이 차는 게 유행이지만.”

요셉은 퉁퉁 부은 정강이를 슬쩍 내보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 친구. 너라면 분명 좋은 스승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너도 이제 네 일을 해야지! 사내 녀석이 언제까지 부모가 떠다주는 밥만 먹을 거야? 엉? 항상 가슴에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살아야지!”

“나 밥 안 먹거든.” 항변하던 나자렛은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혀를 찼다. 또 안하겠다고 버티면 할 때까지 쫓아다니면서 중얼거리겠지? (너는 요셉을 닮았니? 아니면 당나귀를 닮았니? 하여간 느릿느릿하고 우유부단해가지곤.) 마리아와 요셉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시몬은 기뻐서 죽으려는 사람처럼 자리에서 펄쩍 펄쩍 뛰었다.

"에이, 스승님. 그러지 마시고 제자로 좀 받아주세요. 안 받아주면 확 그냥 여기서 드러누울 거예요. 안 나갑니다."

시몬은 문 앞에 등을 깔고 드러누웠다. 당장 집밖으로 나가려면 시몬을 밟고 지나가야 했다. 세상에. 나자렛은 뚱한 눈으로 마리아와 요샙을 째려보았다. 두 사람만 아니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리라는 무언의 투덜거림이었다. 그러자 마리아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왜? 네가 그랬잖아. 이웃을 사랑하라고. 근데, 이제 와서 이웃이 물에 빠져 죽게 두려고?”

“물론 아니지. 근데 일단은 조금은 고민을 좀 해봐야…….”

“고민 할 필요 없어요. 스승님. 앞으로 잘 모실게요. 절대 후회 하지 안하실 거라니까요!”

자리에 시몬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마리아와 요셉은 두 손을 역동적으로 흔들면서 소리쳤다. 받아줘. 받아줘. 하다하다 시몬까지 받아잘라고 소리쳤다. 각기 다른 세 사람의 불협화음이 서라운드 스피커처럼 마구간에 메아리 쳤다. 그 소리가 공감각적인 불쾌함을 자아내자, 나자렛은 청각센서를 꺼버렸다.

흥. 어디 해볼테면 해봐. 나자렛은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매우 편리한 우연이 일어났다. 우연히도 이 세 사람의 코러스는 나자렛의 몸 안에서 공진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치명적인 진동음이 나자렛의 몸안을 관통했다. 골격이 서서히 비틀리고, 피부가 죽어라 덜덜 떨렸다. 거기다 용접해둔 옆구리까지 거센 진동 속에서 파르르 떨리다가 땀에 젖은 파스처럼 위태롭게 흔들거리기 시작하자, 나자렛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아! 알았어! 알았어. 제자로 받아줄 테니까 다들 좀 닥치라고!"

나자렛은 진저리를 치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시몬은 자리에서 번쩍 뛰어올랐다. 어찌나 기뻤던지 놈은 마굿간에서 재주를 부렸다. 백덤블링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물구나무를 서다가 마리아에게 한대 쥐어박히기도 했다. 하지만 시몬은 개의치 않았다.

“헤헤. 제가 너무 들떴네요. 사모님. 죄송합니다."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인 시몬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스승님. 이제 제자가 됐으니 제 이름 좀 새로 지어주세요.”

“이름을? 너 이미 이름 있잖아. 시몬이라며.”

“에이, 그건 부모님이 지어만 주신 이름이죠. 요즘은 스승님들이 제자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게 유행이라고요.”

유행이라. 고개를 끄덕인 나자렛은 마구간 입구에 놓인 큼지막하고 편편한 반석을 바라보았다. 반석을 이곳 토착 말로 말하면 케파였다. 흠, 어차피 대충 지어도 괜찮겠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널 케파라고 불러도 되겠지?”

“케파?!” 시몬은 왼쪽얼굴을 찡그렸다. 딱히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마치 돌쇠에게 쇠돌이란 이름을 붙여준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시몬은 굉장히 긍정적인 인간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케파라……. 흠. 그러니까 그리스 어로 베……, 드로 쯤 되려나요? 베드로? 나쁘지는 않는 이름이네요. 케파보단 베드로가 낫겠어요. 감사합니다! 스승님.”

베드로는 고개를 숙여 다시 한 번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껄끄러운 기분에 사로잡힌 나자렛은 인사를 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왜 하필이면 내 첫 제자 이름이 베드로지? 예수님의 첫 제자 이름도 베드로인데…….

하지만 걱정도 잠시 뿐. 베드로가 의아한 듯 말했다.

“그나저나 스승님처럼 똑똑하신 분이 이런 곳에서 강의 하시는 건가요? 예루살렘 같은 곳에는 안 가시나 봐요?”

“예루살렘이라. 거긴 왜 가야하지?”

“왜긴요. 거기가 모든 종교와 철학의 중심지잖아요. 제 과외 선생님도 거기 출신이시라고요. 아마, 거기 가서 스승님 말씀을 퍼뜨리면 전 세계 방방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 스승님 말씀을 떠받들걸요.”

베드로의 제안에 나자렛은 턱을 쓸었다.

뭐, 내 생각이 퍼지는 건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이 곳 나자렛에서 일하고 있는 목공 중에는 아예 예수라 부를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계속 이런 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벌써 AC 13년이었다. 까딱 잘못했다간 예수님의 행적을 놓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역사적 사실과 달리 예수님은 나자렛에서 자란 게 아니라 해외에서 왔을 지도 몰랐다. 지금 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강연을 펼치고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랬다가 혹시라도 이곳에 예수님이 나타나면 어쩌지? 나자렛은 곤란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예상치 못했던 전개에 당황한 마리아가 소리쳤다.

“잠깐! 계약은 잊지 않았겠지? 넌 우리 재산을 받는 대신 우리를 끝까지 모셔야할 의무가 있어! 혹시라도 가서 안 돌아오거나 하면 그냥 쫓아가서 내가 잘난 머리털을 죄다 뜯어놓을 줄 알아.”

“알았어. 알았다고. 나 원. 멀지도 않은 곳이잖아. 금방 갔다가 올게.”

나자렛이 항변하자, 마리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이상한 곳 가지 말고, 술집도 되도록 가지 않는 게 좋아. 상인들 조심해. 걔들은 일부러 가격을 3배는 부풀려. 거기다 거리에 있는 애들은 특히, 더……. 조심, 해야……. 하는데…….”

마리아는 결국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요셉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우리 여보가 눈물이 많아. 전에 기르던 까마귀가 있었는데, 걔가 날아가서 안돌아왔을 때도 이렇게 일주일은 울었어. 쉬쉬. 괜찮아. 자기야. 쉬쉬. 어차피 먼 곳 가는 것도 아니잖아. 빨리 가면 이틀이면 가는 곳이라고.”

요셉이 말하자 마리아는 요셉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투닥거렸다. 그 바람에 요셉의 두 뺨은 너무 맞아 시퍼런 멍이 들었다. 하지만 사랑의 힘 때문인지 (스톡홀름 증후군 때문인지) 요셉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시선으로 마리아를 꽉 껴안았다. 그는 나자렛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마리아는 내가 책임질게. 그리고 우리 둘 다 아직 은퇴하려면 한참 남았으니까 가봐. 친구. 가서 네 생각을 펼쳐보라고. 네가 찾는 다는 사람은 계속 찾아 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없어도 정말 괜찮겠어?”

“그럼. 오히려 네 덕에 지금까지 잘 살 수 있었던 걸. 그 동안 정말로 고마웠어. 친구. 네가 우리를 위해 해준 모든 건 잊지 않을 게. 그러니까 몸조심 하고 잘 다녀와.”

요셉이 말하자, 나자렛은 천천히 요셉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것은 단순한 고마움의 표시가 아니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뛰어넘은 진정한 교감의 표시였다. 나자렛은 요셉의 팔뚝을 툭툭 다독이면서 베드로의 권유를 승낙했다. 한동안 예루살렘에서 지내야 했기에 그는 마리아와 요셉에게 작별인사를 전했다. 물론, 예수님을 찾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은 덤이었다.

 

-5-

 

그렇게 나자렛은 보름 동안 사막을 떠돌았다.

그러는 와중에 수많은 사건사고가 나자렛과 베드로를 덮쳤다. 이를 테면, 몇몇 종교계 지도자들이 나자렛의 소문을 듣고 형벌과 관한 조언을 구하는 일도 있었다. 내용인 즉, 간음한 여자가 있는데, 돌을 던져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 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자렛은 잠시 고민에 사로잡혔다. 사실 13년 동안 돌만 깎고 살았던 터라 나자렛은 율법이랑은 영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아무도 율법 이야기는 하지를 않았던 터라 딱히 알아야 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마땅한 수가 없나 싶어 나뭇가지로 바닥을 긁적거렸다. 이럴 때 구글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 까? 나자렛은 못마땅한 얼굴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나자렛에게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대답 못하냐는 둥, 우주를 지배하는 아버지가 아직도 연락이 없냐고 놀리곤 했다. 그리고 몇몇 이들은 벌써부터 맞으면 아플 것 같은 돌들을 선별하고 있었다.

아이고야. 이건 또 뭔 일 이래니. 나자렛은 혀를 차면서 바닥에다 생각을 적었다. 분명 던지라고 하면 던지랬다고 난리칠 게 뻔했다. 그렇다고 던지지 말라 하면 간음을 권장한 나쁜 놈이 될게 뻔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나자렛은 당당히 말했다.

“니들 중에 가장 착한 사람이 먼저 던지는 게 어때?”

“가장 착한 사람?” 사람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가장 착한 사람이라니. 범위가 너무 애매하잖아. 착하다는 기준이 대체 뭐야?”

“죄가 없으면 착한 거지. 뭐.”

나자렛이 말하자,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돌을 들고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여자들은 손가락에 뾰족하게 깎은 돌반지를 줄줄이 끼고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거기다 남자들은 한 대만 맞아도 사람을 확실하게 저세상 급행 마차에 태울 수 있을 만큼 큼지막한 돌망치를 들고서 여인에게 다가갔다.

사람들의 시꺼먼 양심에 놀란 나자렛은 잠깐 멈추라고 소리쳤다.

“잠깐만. 생각을 좀 해보라고. 죄가 없다는 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거지. 맞지? 그리고 해를 끼치지 않는 건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는 다는 거고.”

사람들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나자렛은 검지를 추켜세우면서 말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태어날 때 어머니를 많이 아프게 하잖아? 그럼 다들 어머니를 괴롭히고 태어난 샘이겠지. 그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일단 죄를 짓고 태어난 거네? 그렇지?”

사람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종교 지도자들을 바라보았다. 나자렛을 보채던 종교 지도자들도 서로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두툼한 턱살을 실룩거리면서 바쁜 일이 생각났다며 자리를 떴다. 그리곤 사람들더러 알아서 하라고 중얼거렸다.

나자렛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다시 길을 떠났다.

하루를 걷자, 두 사람은 어느 이름도 없는 작은 마을에 당도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을 입구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돌덩이를 나르던 석공 하나가 가슴을 붙잡고 자리에서 쓰러진 것이다. 사람들이 그 석공이 죽어가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나자렛을 찾았다.

하. 이런. 괜히 과학이야기는 왜 꺼내가지고 이 고생인지. 나자렛은 혀를 찼다. 그리곤 사람들 사이를 해치고 환자를 살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과 불안정한 맥박으로 볼 때, 심장마비인 듯 했다. 나자렛은 곧장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가슴압박을 60번 한 뒤, 입으로 산소를 불어 넣어주기 무섭게 석공은 곧 정신을 차렸다. 시퍼렇게 죽어가던 석공이 기침을 하면서 되살아나자 사람들은 기겁을 했다. 몇몇이 들은 악마라고 소리쳤고, 몇몇 이들은 나자렛의 목에다 화환을 걸어주기도 했다. 특히 되살아난 젊은 석공의 여동생은 향기 나는 기름을 가져와 나자렛의 은빛 발과 머리에 뿌리기도 했다.

"저희 오빠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요. 혹시 존함을 알 수 있을 까요?"

"스승님은 나자렛에서 온 나자렛이시다."

베드로가 말하자, 사람들은 수근 거렸다. 그들은 물위를 걸었다던 그 성자라고 말하면서 하나같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 중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경을 해매던 젊은 석공도 있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나자렛에서 온 이에수스 찾는 나자렛 씨. 저는 나사로라고 합니다요. 저도 좀 제자로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나자렛은 딱 잘라 말했다.

"안 돼."

그가 딱잘라 말하자, 사람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그리곤 마리아와 요셉에게서 배웠는 지 '받아줘' 합창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시끄러운 화음이 계속 되자, 나자렛은 지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곤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 나사로야. 넌 이미 내가 온 생명을 다해서 널 되살렸으니 너에게는 더 이상 가르칠게 없다. 그러니 가끔 가다보충수업만 듣거라.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내 지혜를 나눠주도록 하마!"

나자렛이 두 팔을 벌리고 말하자, 사람들은 자리에서 엉덩이를 깔고 앉아 나자렛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계획대로군. 나자렛은 상당히 수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지루한 강연을 시작했다. 지난번에 시몬을 구했을 때처럼 사람들이 전부 곯아떨어질 거란 계산에서였다. 그리고 이번에 나자렛이 택한 강연 주제는 바로 심폐소생술이었다.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면, 일단 주위에 알립니다. 그리고 가슴 압박을 60회 실시 해야 해요. 가슴에 이물질이 없는지 확인하고, 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나자렛의 강의가 계속 되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졸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자렛에게 몰려들었다. 결국 나자렛은 온 마을 사람들에게 심폐소생술을 알려준 뒤에야 간신히 마을을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사건들이 줄지어 따라붙었다. 홍해라는 바다를 갈라 달라 애원하는 이집트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천벌 받아도 싼 놈들한테 천둥 번개 좀 쳐달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카이사르가 그려진 은화와 그냥 은화를 놓고서 어떤 은화가 더 신성한지 따져 묻는 이도 있었다.

나자렛은 수많은 부탁 중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나자렛과 베드로는, 나자렛을 떠난 지 두 달을 넘겨서야 간신히 예수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다.

 

-6-

 

예루살렘은 거대한 돌무더기였다.

곳곳마다 종교 상징물과 기도하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 하나하나 정성껏 다져놓은 단단한 도로 위로 순례자들이 두건을 쓴 체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 모여 있었기에 나자렛은 어디서부터 강의를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천천히 도시 곳곳을 쏘다녔다. 하지만 도시가 너무 넓고 정신이 없어서 하는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거리의 사람들을 붙잡고 어디가 광장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이 쌀쌀맞은 도시 사람들은 누구하나 나자렛과 베드로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베드로는 하는 수 없이 거리를 쏘다니는 아이들에게 광장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자 꼬작지근한 몰골을 한 아이들은 거만하게 거리 당 은화 두 닙 씩 달라 요구했다.

결국 참다못한 베드로가 나서서 나자렛이 얼마나 위대한 성인인지 떠들어댔다. 하지만 아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위대하신 분이 지도하나 안가지고 다니셨네. 뭐, 알아서들 잘 찾아 가쇼! 그럼.”

아이들은 그리 말하고서 인파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베드로가 소리쳤다.

“아, 그래! 좋아. 일단 광장이 어딘지나 알려줘! 일단 은화를 한 닙 줄게. 그리고 도착하면…….”

“헤헤. 형씨. 지금은 은화 세 닙이야.”

“무슨 소리야?! 방금 전에는 두 닙이면 된다며?”

“허, 이 아저씨가 수요와 공급에 대해 하나 모르네. 미안하지만 그쪽의 수요가 어마무시하게 상승한 지금, 우리입장에서는 확실한 수익이 보장된다 이거지. 그래서 가격 올렸어. 자세한 정보는 이집트에서 들여온 최신 경제학을 확인해보라고.”

“이런 날강도들 같으니!”

“에이. 그래서 우리 도움 안 받을 거야?”

꼬마들 중 한명이 밉살스럽게 말하자, 베드로는 이를 갈았다.

“에잇! 도둑놈들…….”

“도둑들?" 아이들은 수근수근거리면서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방금 누가 도둑놈이란 말을 했던 거 가튼데. 툇.”

“쳇. 적어도 강도는 신의라도 있지. 엉. 뭐? 우리가 근본도 없고, 신의도 없는 도둑놈이라고? 지금 우리더러 그렇게 이야기 한 거야?”

눈가에 흉터가 난 아이들이 굉장히 사악한 얼굴로 말했다. 애들이 손바닥에 침을 뱉고서 작은 날붙이를 꺼내들었다. 결국 나자렛과 베드로는 기가 죽어 찍 소리도 내지 못했다. 세상에. 요즘 애들이 이렇게나 무섭다니.

베드로와 나자렛은 두 손을 들고서 입을 열었다.

“알았어. 알았어. 너희는 강도들이야. 됐지? 이제…….”

“알았으니까, 우리 기분 상한 값까지 은화 10 닙. 어때?”

나자렛과 베드로는 아이들의 요구를 승낙할 수밖엔 없었다. 베드로는 일단 은화 두 닙을 건넸다. 도착하면 나머지 값을 츠르겠노라 약속하면서. 그러자 아이들은 반짝이는 돈을 받아 챙기고 두 사람을 광장까지 안내해주었다. 하지만 어느 광장에 다다르자 상황이 많이 바뀌고 말았다.

수많은 사람들 중 몇몇이 나자렛의 얼굴을 알아본 것이다.

“와! 나자렛 옆에 있는 호수에서 물 위를 걸었던 분이죠!”

“나자렛에서 이예수스 찾는 나자렛씨! 맞죠? 그, 죽은 사람도 살렸다던 분이죠! 그죠!”

“세상에. 그 나자렛이다! 엄마야! 그 나자렛이라고!”

사람들이 개미 때처럼 몰리자, 나자렛과 베드로는 얼떨떨한 기분에 머리를 긁적였다. 갑작스런 인파에 떠밀린 아이들이 은화를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것 같았다. 하지만 베드로와 나자렛은 아이들을 모른 척하면서 사람들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사람들이 두 사람을 머리 위로 뻔쩍 들어 올리자, 나자렛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유명했었나?”

“음, 아무래도 지난번에 쓰러진 석공을 되살려 주신 게 결정타였나 봐요.”

“오, 이런.”

나자렛은 난감한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의 기분이 어찌 되었든 간에 사람들은 그와 베드로를 연단에 올려 세웠다. 이미 연단에는 날아다니는 국수가 세상을 창조 했노라 강연을 하던 사람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끌고 연단 밖으로 내던진 뒤에 나자렛에게 강의를 해달라고 청했다.

얼떨결에 강연을 하게 된 나자렛은 멀뚱멀뚱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뭘 말하지? 나자렛은 당황하다 못해 끔찍한 얼굴로 주제를 찾았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아이는 어른이 되는 가? 삶과 우주의 절대적인 질문의 답은 무엇인가? (42?)

나자렛이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면서 뜸을 들이자, 사람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우! 빨리 빨리 강연을 해라!”

“시간 없어! 다음 사람도 연설을 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세로 항의하자, 나자렛은 하는 수 없이 강연을 시작했다.

“아, 아름다운 점심입니다. 여러분. 어, 그러니까…….”

나자렛은 아무 말이나 했다. 하지만 불행이도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나자렛이 연단에 서서 정말로 아무 말이나 했다는 점이었다. 우선, 그는 로봇 제품 설명서를 읊었다. 우주정거장에 대해 말하고, 원숭이가 뼈다귀를 던졌더니 우주정거장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영화로 만든 스탠리 큐브릭에 대해 이야기했다.

보통 시간여행자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발생한 까닭은 매우 단순했다. 아무도 이 가여운 로봇에게 주제를 던져 주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 바람에 나자렛의 첫 강연은 엉망이 되었다.

사람들은 알 수도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은색 인간을 보고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요즘 유명한 은빛 인간이 나타났다기에 와봤더니 별거 없다고 말했다. 그러다 기껏 모인 사람들이 하나 둘 광장을 뜨기 시작하자 보다 못한 베드로가 나섰다.

“그러니까 다들 아시겠죠? 그러니까, 그래요! 이웃을 속이지 말라고요. 이웃을 속이면 딴 사람들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일 테니까요!”

베드로가 말하자, 아까 길안내를 하던 꼬마 중 하나가 다가왔다. 그리곤 베드로의 엉덩이를 주먹으로 때리고 달아났다. 베드로가 자리에서 펄쩍 뛰자, 수많은 청중들은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베드로도 멋쩍게 웃었다. 다만, 옆구리에 차고 있던 돈주머니가 사라진걸 보자 그의 얼굴은 뭐 씹은 듯 구겨졌다. 그는 도망가는 아이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사람들을 향해 광대처럼 웃었다.

그렇게 베드로가 마지막 요약을 잘해준 덕에 두 사람의 수입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그리고 2년이 조금 더 지난 어느 날. 드디어 나자렛과 베드로는 그동안 모인 기부금으로 그럴싸한 성전 하나를 차릴 수 있었다.

대리석으로 쌓아올린 기둥과 황동 지붕이 멋들어지게 반짝거렸다. 그리고 편편하게 절삭한 석회석 교탁과 수강생들의 엉덩이를 따뜻하게 해줄 동물 가죽이 깔렸다. 벽면에 걸린 횃불이 은은하게 성전을 비쳤다. 바알간 불빛이 매끈한 돌 표면에 반사되어 성전을 푸근하게 감쌌다. 그야말로 성스러움의 시각화였다.

제 아무리 한심한 한량이라 할지라도 이곳에 발만 들이면 경건함 마음에 몸조차 가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니 이런 경건한 장소가 입소문을 안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이 기묘하리만큼 신성한 성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반쯤은 장난삼아, 반쯤은 정말로 구원을 받을 수 있지는 않을 까 싶어 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진리를 찾는 이들도 아주 가끔 찾아왔다.

나자렛은 눈코 뜰 세 없이 일을 해야 했다. 다행이도 옆 동네에 사는 또 다른 신학자인 (날아다니는 면발 괴물이 세상을 창조 했노라 주장하고 다니는) 에피스파게티우스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제, 그는 유명세만큼이나 화려하게 입었다.

처음에 그는 딱히 비싼 옷은 필요 없노라 말하기도 했다. 애초에 로봇이 옷을 입을 필요가 있을 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특히 그 중에서도 부유한 어부의 아들이었던 베드로가)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강연을 하면 아무도 안들을 거라 말했다.

베드로는 나자렛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이러다간 그, 이에수스인지 하시는 분이 우리 성전을 그냥 지나칠지도 몰라요. 아마, 지나가면서 그럴걸요. 우~. 가르침을 받으러 왔는데~. 우우~, 웬 누더기가 말을 하네~. 설마 저 포대자루가 신의 아들인가?”

베드로가 외국인 억양으로 말했다. 그 바람에 나자렛은 13년 동안 입고 있던 누더기를 던저버렸다. 대신, 그는 푸른 색 옷을 입기고 결정했다. 사람들에게 고급스러움과 수수함을 동시에 전해줄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다.

나자렛의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우선, 사람들은 전보다 나자렛의 이야기를 좀 더 귀담아 들었다. 푸른 옷을 입을 정도로 잘사는 작자가 거만한 투도 없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의 동경과 친근함을 자아냈다. 그 덕분인지, 이제는 이웃나라에서도 나자렛을 보기 위해 배를 타고 순례 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나자렛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이렇게 입소문이 났으니 예수님도 곧 내 성전을 보러 오시겠지. 나자렛은 강연을 하면서 신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예수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서 강의를 한 덕에 사람들의 신뢰도만 올라갔을 뿐이었다.

이쯤 되자, 나자렛은 난감해졌다. 매일 같이 늘어만 가는 신도들의 숫자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서서히 약해져갔다. 사실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벌써 정비를 안 받은 지도 15년이 넘었다. 몸 안에는 모래로 가득 차 서걱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몇몇 프로그램들은 작동을 정지했다. 그나마 멀쩡한 건 핵융합 베터리 뿐이었다. 이러다가는 예수님을 만나기도 전에 몸이 먼저 고장 날 판이었다.

이제 나자렛은 자신을 과거로 보낸 주최 측을 원망했다.

놈들인 예수님을 찾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거기다 기본적인 유지 보수도 제공해주지 않았다. 분명 법적으로 로봇의 권리 증진을 위해 1년에 한번은 전체적인 점검을 받을 권리가 있었건만, 이 한량들은 이 권리를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나자렛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했다.

망할 놈들. 확 돌아가자마자 로봇들을 선동해서 반란이라도 일으켜야지. 돌아가면 일단 이름이 ‘네오’거나, 성이 코너인 작자들은 일단 없애고 볼 거다.

나자렛이 마음을 굳게 먹은 그때였다. 수업시간도 아닌데도 문간에서 소란스런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성전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나자렛은 고개를 돌렸다. 그가 성전 밖으로 나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고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돈에 대한 이야기가 의례 그렇듯, 좋게 끝나는 법이 없었다. 결국, 항의하는 사람들이 흙을 집어던지자, 경호원들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곧장 그들의 엉덩이와 고간을 걷어찼다. 한 번 두 번. 발길질이 이어질 때마다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한 광경이었다.

나자렛은 곧장 베드로를 찾았다. 그러자 싸움 판 제일 앞줄에서 대추야자를 먹으면서 구경하고 있던 베드로가 말했다.

“아, 스승님. 어서 오세요. 구경하러 오셨나 봐요.”

“구경은 무슨! 이게 다 무슨 소란이야?”

나자렛이 말하자, 베드로는 엉덩이로 옆 사람을 밀어 가며 자리를 만들었다.

“실은, 환전 문제 때문에 이래요. 요즘 환전 가격이 많이 올랐거든요.”

“환전을 꼭 해야 하는 거야?”

나자렛이 자리에 앉으면서 말하자, 베드로는 고개를 저었다.

“뭐, 예전에는 아니었죠. 근데, 어디 사는 누가.”

베드로는 나자렛과 자신을 손가락을 가리 켜면서 말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예루살렘의 것은 예루살렘에게’라고 말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카이사르 얼굴이 그려진 은화를 쓰면 아무래도 로마처럼 탐욕스럽다는 뜻이라고들 하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께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일부러 순례자들이 로마 은화를 환전을 했죠. 예전에는 1대 3 쯤 됐는데, 요즘에는 시장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서 1대 10으로 바뀌었죠. 카이사르 얼굴이 새겨진 로마 돈을 100정도 바꾸면 은화 10닙으로 바꿔주는 데 말이죠…….”

베드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나자렛에게 귓속말을 했다.

“사기에요. 사기. 이거 아주 그냥 땅 파서 돈을 긁는 거라고요. 로마 돈으로 100이면 소가 세 마리를 사고도 남는 데 환전하면 꼴랑 10 닙 밖에 안준다고요. 빵 반 개 살 수 있는 돈이잖아요.”

“흠. 그러니까 저 자식들이 내 성전 앞에서 환전소를 차려 놓고 내 신도들을 엄청나게 벗겨 먹는 다는 거구나.”

베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자렛은 인자하게 웃었다.

“그래, 베드로, 요즘 유행하는 욕 중에서 제일 쌘 욕이 뭐가 있을 까?”

“글쎄요, 제가 듣기론…….”

머리를 긁적인 베드로는 나자렛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황한 나자렛은 눈을 껌뻑거렸고 베드로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맞아, 생각해보니 아직 파충류와 포유류를 구별 못하는 시대였지. 미래에서 온 최첨단 로봇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곤 별다른 논리적 거부감 없이 욕을 내뱉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나자렛은 벌떡 일어나 상인들의 좌판을 뒤집어엎었다. 그 바람에 소들은 놀라 달아났고 은화가 거리에 나뒹굴었다. 갑작스런 폭력을 목도한 상인들도 펄쩍 뛰었다. 그러자 한 덩치 하는 사내가 나자렛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이제 그만 두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자렛은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 그는 예수의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런데 만일 예수가 예루살렘에 강연을 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는데, 돈이 없어서 쫓겨나야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심각해지는 꼴이었다. 때문에 그는 두뇌에 저장된 온갖 동물 소리를 조합해서 사람들에게 겁을 주었다. 그러자 남아서 항의하던 경비원들조차도 감히 나자렛에게 덤벼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침내 성당 앞을 지키고 있던 상인들과 가축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나자렛은 손바닥을 털면서 중얼거렸다.

“자, 이제 깔끔하게 해결됐군. 더 이상 교회에 들어올 때마다 돈을 뜯기는 일은 없을 거야.”

“허, 그런 소리는 대체 어떻게 내는 거예요? 좀 가르쳐 주세요.”

“베드로. 넌 이런 소리 못 낸다. 자, 자. 다들 들어가자. 일단 하던 수업마저 해야지.”

나자렛은 몸을 돌려 다시 성전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군중들 사이에서 뱀처럼 생긴 사내가 튀어나왔다. 그는 넙죽 인사를 하더니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이고, 선생님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나라 밖에서 왔는데, 그……. 카리옷이라 하는 곳에서 왔어요. 저기 사막 한가운데 작은 나라죠. 어쨌든 간에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본론만 이야기 할 수 있어?”

베드로가 말하자, 카리옷이란 나라에서 온 자는 혀를 날름거렸다.

“아, 네. 알았어요. 그러니까 제 이름은 유다예요. 그, 멀리서 이에수스 찾는 나자렛 씨가 있다고 해서 왔습죠. 제자가 되고 싶어서요.”

그가 말하자, 베드로가 나서서 선을 그었다.

“워워. 우리는 제자는 더 이상 안 받아요. 스승님도 제법 바쁘셔요. 대신에 조언이 필요하면 언제든 와도 좋은데…….”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난 벌써 환전까지 다 했다고요!”

유다는 은화 한 자루를 내보였다. 분명 아까 상인들이 환전해주던 돈이었다. 30닙 정도 되는 은을 바꾼 걸 보니 소 열 마리는 팔고 온 듯 했다. 나자렛은 마지못해 유다에게 들어와도 좋다 손짓을 했다. 이름 때문에 영 껄끄럽기 짝이 없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사기까지 당하면서 여기 온 사람을 쉽사리 내칠 수는 없었다.

나자렛은 입을 열었다.

“좋아. 제자로 받아주지. 그만 울고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유다와 베드로가 함께 있다면 조만간 예수를 찾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까지 샘솟았다.

하지만 불행이도 다음날 새벽부터 나자렛은 길거리에 나다닐 수 없었다.

좌판을 엎어버린 바람에 그의 목에 두둑한 현상금이 걸린 탓이었다. 딱 하루 만에 교실은 불탔고 사람들은 좌판 엎듯이 교탁과 방석을 뒤집어엎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웃을 사랑하자 이야기 하던 사람들은 이제, 나자렛의 머리를 원하고 있었다.

 

-7-

 

어느 허름한 마구간에 숨어든 나자렛과 두 제자들은 숨을 돌렸다.

먼저 포도주와 흰 빵을 뜯어먹던 베드로가 유다에게 흰 빵을 건넸다. 그러자 유다는 포도주를 거하게 마시고서 흰 빵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러다 포도주를 쭉 들이켠 유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자렛은 유다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

사막을 지나자마자 사기를 당한 것도 모자라,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사람이 지명수배자가 되다니. 암만 봐도 머리 위에 떨어지는 화분 피하려다 똥 밟은 격이었다. 때문에 나자렛은 유다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누구든 막다른 길목에 다다르면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특히, ‘유다’란 이름 때문에 더 거슬렸다. 왠지 모르게 배신을 밥 먹듯이 할 것 같은 이름이었다. 물론 이 근방에 유다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무척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쫓기는 상황에서 어제 처음 만난 유다와 함께 은신처에 숨어 있는 일은 처음이었다. 때문에 나자렛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하……. 화장실 갔다 올게요.”

유다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리곤 축 늘어진 몸을 질질 끌고 허름한 집 밖으로 나갔다. 저거 군인들에게 날 찌르려고 가는 거 아냐? 나자렛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유다는 몇 분 뒤에 마구간으로 돌아왔다.

나자렛은 안심했다. 그래. 고작 이름 때문에 사람을 오해하다니. 난 역시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로군. 그는 반성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는 유다의 손이 부자연스러워보였다. 꼭 뭔가를 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세히 보니 유다는 손에 작은 파피루스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 나자렛은 유다에게 물었다.

“흠, 유다야. 네 손에 쥐고 있는 건 뭐냐?”

“…….” 유다는 입술을 쭉 내밀고서 입을 다물었다. 누가 봐도 녀석은 화장실이 급한 강아지처럼 망설이고 있었다. 방금 화장실을 갔다 온 놈이 또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은 둘 중 하나를 뜻했다. 위장병이 들었든가, 아니면 찔리는 게 있는 것이다.

침묵이 길어지자, 베드로도 나섰다.

“신입. 손에 쥐고 있는 게 뭐냐고 스승님이 묻잖아.”

“아, 네. 이건……. 다른 게 아니라. 그……. 조, 종이…….”

마른침을 꿀떡 삼킨 유다는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화장실, 뒤뒤뒤뒤, 뒤처리 용으로 가져왔어요. 그게, 찝찝하잖아요. 안 그래요?”

“그건 그렇지.”

유다가 별거 아니란 듯이 파피루스를 빠르게 펄럭이면서 말하자, 베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자렛은 동의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의 카메라에 잡힌 몇 가지 단서들 때문이었다. 그는 유다가 파피루스를 펄럭이던 순간을 천천히 돌려보았다. 그러자 공기에 나부끼는 파피루스 사이로 나자렛의 얼굴과 30닙이라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다 로마 황제의 휘장은 덤이었다.

나자렛은 유다를 유심이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걸까? 유다는 침을 꼴깍 삼키고서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이 자식, 도망가냐? 나자렛은 베드로를 바라보면서 유다를 잡으라고 눈짓을 주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해맑게 포도주를 마시면서 흰 빵을 먹을 뿐이었다. 얼굴까지 뻘겋게 달아오른 녀석은 빵을 오징어마냥 질겅질겅 씹었다.

결국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던 유다는 아무런 제지 없이 은신처를 뛰쳐나갔다.

나자렛은 망연자실하게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그에게는 사람을 제압하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유다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니 굳이 유다를 따라갈 수도 없었다. 잡지도 못할 놈을 쫓아가봐야 무슨 소용이랴?

아. 망했다. 나자렛은 고개를 숙이고서 한숨을 쉬었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화장실에 간다던 유다는 화장실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나자렛은 이마를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베드로가 빵부스러기를 씹으면서 말했다.

“에, 유다가 안 오네요. 벌써 해가 뜨려고 하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도망갔나 봐요.”

“도망은 무슨. 분명 우리가 있는 곳을 군인들에게 찔렀을 거야. 분명해.”

“에? 유다가 왜요?”

“아까 내 현상금 전단지를 손에 쥐고 있었거든. 내가 너한테 그렇게 눈짓을 했는데, 넌 그걸 못 보더라.”

“하지만, 유다가 그랬잖아요. 그, 화장실 갈 때 쓸 파피루스라고요. 그리고 유다는 누굴 이를 만한 성품이 아니에요. 못 봤어요? 흰 빵을 저한테 다줬다고요. 살면서 그렇게 욕심 없는 녀석은 처음 봤어요. 거기다 설령 유다가 의심이 되더라도 저는 의심안할 거예요.”

“왜? 어째서?”

“그야, 당연히 스승님이 그랬잖아요.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요. 헌데, 생각해보세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 어찌 의심이 깃들 수 있겠어요?”

하. 나자렛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스승보다 나은 제자로구만. 그는 베드로의 어깨를 다독거리면서 말했다.

“베드로야. 넌 나 뒤통수 안 때릴 거지?”

“당연하죠. 스승님. 저는 절대로 스승님을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요. 저어얼 대로 배신 안 해요. 사실, 부끄럽지만, 저는 배신이란 단어도 모릅니다. 스승님.”

베드로가 웃으면서 요란스럽게 소리치던 그때였다. 은신처를 지켜주던 낡은 나무문이 우지끈 부서졌다. 나자렛과 베드로는 서로를 얼싸안고 문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중무장한 군인들이 하나둘 집 안으로 들어왔다. 번뜩이는 칼을 본 베드로는 나자렛을 밀었다. 그리곤 넋을 놓고 소리쳤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베드로 아닙니다. 저는, 이 사람 몰라요. 그리고 어, 케파. 아니라 시몬이에요착하고착하며착한시몬입니다그러니까목숨만은…….”

나자렛이 못마땅하게 바라보자, 베드로는 아차 심었던지 횡설수설 거렸다. 그는 물고기 잡는 법을 이야기 하다가 군인의 귀를 잡아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군인들이 칼 손잡이로 베드로의 이마를 후려친 탓이었다. 베드로가 날선 소리를 지르자,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옆 집 수탉이 울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나자렛은 베드로를 괴롭히는 군인들을 막아섰다.

“워워. 폭력은 나쁘다고!”

나자렛이 소리쳤다. 하지만 불행이도 어느 시대나 그랬듯이 칼은 혀보다 강했다. 수많은 칼들이 다가오자, 최첨단 로봇인 나자렛도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는 흔하디흔한 공격용 프로그램도, 총 한 자루도 없었던 탓이었다. 군인들이 말했다.

“후후. 저작거리에서 좌판 엎은 게 네놈이지? 상인들을 위협한 혐의로 널 체포한다.”

그렇게 나자렛은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군인들에게 끌려가면서 그는 수많은 것을 보았다. 우선, 제일 처음 눈에 비친 사람은 유다였다. 그는 소한마리 값이 20닙인데, 어찌 범죄자를 고발했는데 어찌 30닙 밖에 안줬느냐 따지고 있었다. 베드로는 허겁지겁 도망가고 있었고, 길거리에서 마리아와 요셉은 사람들 눈치를 살피다 인파 속에 숨어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뭐가 된 거 같구먼. 나자렛은 한숨을 쉬었다.

 

-8-

 

나자렛이 법정에 앉기 무섭게 판결이 내려졌다.

심판관들은 기분전환 삼아 좌판을 뒤엎은 나자렛을 십자가에 매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들은 이미 자기들 끼리 결정한 대로 나자렛에게 형을 집행했다. 우선, 그들은 나자렛에게 가시가 돋은 월계관을 쓸 것을 명했다. 그리곤 사형 장소인 십자가 언덕까지 커다란 십자가를 직접 짊어지고 오를 것을 명했다.

나자렛은 하는 수 없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을 올랐다. 사람들은 하나둘 저작거리로 나와 나자렛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모이자, 감독관은 친절하게도 그의 머리에 가시로 만든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보통사람들이었다면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어야 하지만, 나자렛의 강화 섬유는 살짝 날카로운 가시쯤은 가뿐하게 막아냈다. 그러자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 진짜 신의 아들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허나, 칼과 창이 번들거리자,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다물었다.

언덕을 다 오른 나자렛은 땅에 십자가를 박았다. 십자가가 깊숙이 박히자, 군인들은 그의 몸을 십자가 위에 매달았다. 십자가 위에 축 늘어져서 생각에 잠겼다.

열흘은 그냥 지나갔다. 문제는 십자가 언덕 어디에도 예수님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오, 이런. 나자렛은 고개를 저었다. 임무는 완벽하게 실패였다. 거의 30년 가까이 예수를 찾았지만, 이 거대한 모래구덩이 어디에도 예수 비슷한 사람은 없었다.

이것저것 물으러오는 사람들은 많았고, 기적을 바라는 이들도 많았지만, 예수는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나자렛은 로봇 역사상 최악의 실패작으로 기록될 게 불 보듯 뻔했다. 거기다 30년 동안 하드웨어에 모래란 모래가 마구 껴서는 시스템 성능도 많이 떨어졌더랬다. 마치 이틀이 하루처럼 느껴지고 일주일이 하루처럼 느껴지는 게 아무래도 시간감각이…….

“세상에. 보름이 됐는데도 안 죽었네.”

누군가가 동체를 툭 건드는 바람에 대기 중이던 나자렛은 눈을 떴다. 그러자 십자가 아래에는 로마 병사 몇 명이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녀석들은 나자렛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흠, 사형수가 보름동안 안 죽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지?”

“음, 풀어주는 게 어때? 신의 뜻이잖아.”

나자렛이 능청스럽게 말하자, 로마 군인들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오호라. 이것 봐. 아직도 입이 살아 있네.”

“그러게. 안식일까지는 죽어줬으면 했는데. 뭐, 안 죽었으니까 형법에 따라서 창으로 찔러야겠군.”

한숨을 쉬던 나자렛은 얼마든지 찔러보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로마 백인대장은 들고 있던 창으로 나자렛의 배를 찔렀다. 하지만 은빛 피부를 아무리 찔러도 피한방울 나지 않았다. 깜짝 놀란 백인대장은 몇 번을 더 찔러보았다. 하지만 창이 씨알도 먹히지 않자, 다른 백인대장이 혀를 찼다.

“하. 그거 하나 못 찔러? 나 원. 이럴 거면 백인대장 그만둬야지.”

“허. 아주 잘나셨네요. 롱기누스 씨. 그럼 롱기누스 씨가 한번 찔러보시지. 엉? 그나저나 이 자식 피부가 너무 단단한데.”

“우~. 신의 아들이라 그런가?”

호탕하게 웃던 롱기누스은 백인대장의 창을 낚아챘다. 슬쩍 간을 보던 롱기누스는 나자렛을 창으로 찔렀다. 그는 정확히 나자렛의 옆구리에 있는 봉합선을 찔렀다. 창이 옆구리를 깊숙이 파고들자, 냉각수와 함께 스파크가 롱기누스는 눈으로 튀었다.

롱기누스는 두 눈을 감싸고서 땅바닥을 뒹굴었다. 모르긴 몰라도 눈이 멀었을 터였다. 냉각수 자체에 신체에 유해한 성분들을 생각해보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나자렛은 창을 든 유인원의 후손을 바라보면서 쌤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통쾌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다른 백인대장들의 시선이 슬슬 롱기누스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의사를 찾았고, 누군가는 언덕을 내려가기 바빴다. 거기다 더 많은 군인들이 언덕 아래서 밀려올라오고 있었다. 수십명의 군인들을 본 나자렛은 몸에 힘을 뺐다. 그리곤 다시 약 일주일동안 대기모드에 들어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더 이상 이 피로 굶주린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뭐, 맨날 사랑하라 이야기 하는 것도 질렸고, 변하지 않는 세상은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다 어디에도 없는 예수를 찾으라고 난리치는 것도 짜증이 났다. 때문에 그는 죽은 척을 했다. 그가 정말로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그를 관에 넣고 동굴 속에 봉한 뒤, 입구를 큼지막한 돌덩이로 막아버릴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나면 곧장 시간터널을 열고 미래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은 딱 6일 째까지는 잘 맞아 떨어졌다.

 

-9-

 

나자렛이 공식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지 일주일이 지난 어느 새벽.

나자렛은 석관을 이불처럼 팽개쳤다. 물론 소리가 나지 않게 최대한 살포시 내던졌다. 관에서 일어난 나자렛은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머리에 쓴 가시 월계관이 피부를 찌르고 있었다. 거기다 창에 찔려 찢어진 옆구리에서는 냉각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얀 부동액이 은색 피부를 적셨다. 아무래도 다시 용접을 해야 할 듯싶었다. 거기다 머리카락은 굉장히 처참했다. 마치 소가 그의 머리카락을 뜯어먹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자렛은 팔목에 내장된 용접도구를 꺼냈다. 하지만 용접도구는 작동되지 않았다. 15년 동안 쓰질 않았던 용접기는 아무래도 고장이 난 듯싶었다. 흠, 하는 수 없지. 돌아가자마자 고쳐달라고 하는 수밖에. 용접기를 팔목 속에 집어넣은 나자렛이 시간터빈을 작동시키려던 그때였다.

“어, 스승님?”

낯익은 목소리가 동굴 속에 울려 퍼지자, 나자렛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두 눈이 방울처럼 커진 베드로가 서있었다. 오, 이런. 나자렛은 베드로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허나, 이미 베드로의 입은 대문짝만하게 열린 뒤였다.

“스승님이 살아나셨다아!!!”

베드로가 소리치기 무섭게 동굴 밖에선 웅성거리는 소리가 몰려왔다. 나자렛이 손을 쓰기도 전에 동굴 안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이야기했고, 이에수스 찾는 놈이 로마를 이겼노라 말했다.

이쯤 되자, 나자렛은 질렸다.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는 일은 딱 한 번으로 족했다. 두 번은 싫었고, 세 번은 더더욱 싫었다. 때문에 당황한 나자렛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조용조용! 어, 내가 되살아났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라! 알겠지?”

“헝헝. 스승님을 부정해서 정말 죄송해요! 헝헝!”

“알았으니까 좀 닥쳐!”

“세상에! 내 아들이 살아 있어!” 마리아가 소리쳤다. 요셉은 이미 마리아의 품에서 혼절한 뒤였다. 마리아는 나자렛의 머리카락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머리카락 쥐어 뜯어서 미안!”

“미안이고 나발이고, 좀 조용히 좀 해! 내가 살아 있는 거 알면 안 된다고.”

베드로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알았어요. 근데, 왜? 살아 있는 사람을 살아 있다 말도 못하면 어떻게 하란 거예요?”

베드로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잠깐만, 설마 그, 구울 같은 건 아니죠? 옆 동내 소문 들어보니까 막 무덤에서 살아 나와서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가 돈다던데. 어째 좀 의심스러운데. 아무도 무덤에서 사람이 살아나오는 걸 본적은 없지만, 간접적인 증거들이 차고 넘친다던데.”

배드로가 말하자,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그러자 마리아도 눈살을 찌푸렸다.

“맞아 맞아. 어떤 바보들이 갑자기 짠하고 되살아난 사람을 믿겠어?”

“하지만 신의 아들이시잖아. 그러니까 하나님도 조금 봐주는 거 아닐까?”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심드렁하게 고민에 사로잡혔다. 그리곤 수많은 논의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베드로가 석관위에 올라서서 말했다.

“좋아요. 조용히들 해주세요. 저는 여기, 예수란 사람을 찾는 자, 나자렛의 제자 베드로입니다. 여러분이 걱정하는 바가 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스승님이 구울이란 귀신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죠. 하지만 전 스승님을 믿습니다. 나사로를 두 손으로 살려내신 분이시며, 예루살렘에서 강연도 하셨죠. 그리고 수많은 제자 가운데 공식적으로 스승을 배신한 제자가 딱 한명 뿐이신 위대한 분이셨죠. 바로 옆에서 강연하던 스파게티우스인지 뭐시기인지가 수강생 절반에게 배신당해 저작거리에서 몰매 맞았던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엄청나신 분이었죠.”

나자렛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베드로가 말했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일단 창으로 한 번 더 찔러보는 게 어떨까요? 피가 나면 살아있는 사람이고, 안 나면 구울 인거죠. 듣자하니, 구울은 심장 쪽을 찌르면 가루가 된다더군요.”

“잠깐만. 그러다가 내가 죽으면 어쩔 건데?”

나자렛이 말하자, 베드로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살살 찌르면 안 죽는다고요. 그리고 한 번 찔려봤잖아요. 한 번 찔려서도 안 죽었는데, 뭐, 두 번 쯤은 괜찮지 않을까요? 하나님께 한 번 더 부탁드려보면 되잖아요.”

“안 괜찮거든!”

“에이. 뭘 빼고 그래요? 한 번 되살아났는데, 두 번은 못 하겠어요? 아, 그리고 이번에 천국에 갈 때 우리들도 좀 천국 명단에 이름 좀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아, 진짜. 이 자식들이.”

나자렛은 탄식을 했다.

“좋아. 대신 일주일 뒤에 와라. 난 좀……. 어, 쉬어야겠어.”

“석관에서요? 구울들이 막 석관에서 자고 한다던데.”

베드로가 수상쩍은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눈치를 살피던 나자렛은 몸속에 내장된 시간터빈을 가동했다. 그의 등 뒤로 시간터빈이 내뿜는 타키온 입자가 푸른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사람들은 탄식을 터뜨리면서 자리에 주저앉아 기도를 올렸다. 이에 깜짝 놀란 베드로는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는 석관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지만, 놀라운 반사 신경 덕분에 동굴 바닥을 사뿐히 굴러 착지했다. 베드로가 기도를 올리자, 나자렛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난 일단 아버지하고 잘 이야기 해두마. 그러니까 너희들은 내가 올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럼.”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던 나자렛은 천천히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시공간의 터널이 닫히기 무섭게 동굴 속에는 시꺼먼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방금 전에 벌어진 기적 같은 일에 놀라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일주일 뒤에 나타난다던 나자렛이 모습을 드러내질 않자, 사람들은 하나둘 동굴을 떠났다. 그리고 나자렛이 되살아났던 동굴의 존재는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져갔다. 허나, 나자렛이 행했던 수많은 기적들은 사람들 사이를 돌고 돌아 이제 전설이 되었다. 그가 남긴 가르침은 사람들의 말과 말에 실려 세상 곳곳에 스며들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희망이 나날이 커져가자, 나자렛이란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은 한 대 머리를 맞대었다. 그리고 희망을 모아 신과 인간, 그리고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담은(정확히는, 담았다고 생각하는) 책을 한 권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 책의 이름은 아직 없었지만, 책을 쓰는 이들에게는 이 책이 성공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허나, 모든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이들에게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이 나자렛이란 인간이 남긴 발자취가 너무나도 대단해서 감히 인간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다 죽은 사람을 살려 낸 것부터 빛과 함께 하늘로 승천했다는 이야기를 누가 믿으랴? 심지어 지팡이를 꽂았더니 바다를 가르고, 물고기가 씨가 마른 강에 물고기를 퍼뜨렸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더랬다. 거기다 본인 입으로 우주를 지배하는 위대한 분의 자손이라 밝힌 것부터가 사기꾼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이 쯤 되자, 사실과 거짓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놓였다.

“중요한 건 교훈이야.”

책을 쓰는 제자들 가운데, 두건을 뒤집어 쓴 제자가 말했다.

“그리고 교훈을 주려면 사람들이 읽어야 해. 사람들이 읽으려면 또 재미가 있어야지. 막 몇 페이지 씩 ‘하지마라, 하지마라’로 채워 넣으면 그걸 누가 읽겠어?”

“뭐야, 넌 이 신성한 성경에 거짓말을 적어서 사람들을 홀리자 이거야?”

수염을 잔뜩 기른 대머리 제자가 말했다.

“세상에, 이 위대한 말씀들을 전부 싸구려 과일 쪼가리처럼 만들 생각이야?”

“아니, 내 말은, 사람들을 홀리는 게 아니라 관심을 끌자는 거지. 생각해봐. 아무리 성스런 책에다가 그냥 딱딱한 말만 채우면 사람들이 읽겠어? 똑바로 살아라. 훔치지 말라. 뭐, 친구랑 싸우지도 말고 남의 아내와 남편을 탐하지 말라. 하지마라, 하지마라. 세상에. 벌써부터 졸리잖아.”

“그럼 뭘 어쩔 건데? 그게 사실이잖아.”

“아니. 이 사람아. 내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조금 자극적인 게 필요하다 이거야. 빛과 소금처럼 말이야. 하지만 소금이 짜지 않고, 빛이 반짝이지 않으면 다 무슨 소용이야? 그러니까 기적이라든가, 뭐 괴물을 무찔렀다든가하는 이야기를…….”

“허허, 여기 사기꾼이 있네.”

수염을 잔뜩 기른 대머리 제자는 혀를 찼다. 그러자 두건을 쓴 제자는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씰룩거렸다.

“사기꾼은 개뿔. 어쨌든 사흘 지난 시체든,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든 어쨌든 죽은 사람 살린 건 맞잖아. 안 그래? 나사로인가 뭔가 하는 사람을 살리는 걸 직접 봤다던 할아버지도 있었잖아.”

“하지만 그 말을 진짜로 믿을 수 있느냐 이거지. 만에 하나라도 거짓이면…….”

두건을 쓴 제자가 말꼬리를 흐리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제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두건 쓴 제자를 비꼬았다.

“아, 그래,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나자렛은 나자렛이란 마을의 어느 작은 마구간에서 나타셨지. 그것도 저기 언덕에 사시던 마리아 할머니 네 집 지붕을 뚫고 뚝 떨어졌다고 하셨잖아. 그건 또 어떻게 설명할래? 엉? 요셉 할아버지도 같은 말을 했지. 거기다 예루살렘에서 돈만 밝히는 장사치들에게 화를 냈더니 하늘에서 불덩이가 쏟아져 내렸다던데. 우리 대단하신 그리스도의 제자께서는 뭐라고 적으시려나?”

“음…….”

성경을 적던 두건을 쓴 제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그래! 펠리컨이 어느 날인가 알을 잉태해 주셔서, 알에서 짠하고…….”

“하, 그건 참 말이 되는 소리네. 그 이야기의 교훈은 뭐야? 엉? 알에서 사람이 태어났다고? 아니면 우리 조상님이 펠리컨이라 이거야? 하긴, 네 두둑한 턱살을 보면 그게 마냥 틀린 건 아닌 거 같네.”

두건 쓴 제자가 비아냥거리자 대머리 수염은 한숨을 쉬었다.

“됐어. 그냥 적자. 어차피 모아놓은 이야기 중에서 진짜가 뭔지도 모르겠으니까. 적당히 각색해도 되겠지.”

“그럼 뭐부터 시작할까?”

“음, 일단은……. 음, 마리아와 요셉에게는 아이가 없었는데, 어느 날 하늘에서 짠하고……. 하지만 짠하고 나타났다고 하면 좀 이상하지 않아?”

“그럼, 어, 하늘에서 전령을 내려 보냈다고 할까?”

“그래. 하늘에서 내려온 전령이니까 날개는 달아주자. 그리고 하늘에서 온 전령이니까, 줄여서 대충 천사라고 부르자고. 그러니까, 천사가 내려와서 마리아에게…….”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양피지에 펜촉을 가져댔다.

 

-10-

 

나자렛-1225는 시간터널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거대한 환호성과 성가가 그를 맞이했다. 나자렛은 옆구리에 난 창 자국을 만지작거리면서 몸을 뒤집었다. 그러자 순환계 시스템이 재부팅 될 거란 안내문구가 떠올랐다. 오, 이런. 나자렛은 바닥에 쓰러진 채 재부팅에 들어갔다. 그러자 인간들은 실망어린 성토를 쏟아냈다.

“괜찮습니다. 아마 단순한 재부팅으로 보입니다.”

남자사회자가 말하자 무대 위를 뒹굴던 나자렛은 손을 들고서 말했다.

“아직 괜찮아요. 데이터도 멀쩡해요.”

로봇이 소리치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로봇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자렛이 천으로 만든 수의를 어깨에 걸치고서 값비싼 푸른 천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러자 사회자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나자렛-1225? 뭐야 이건 왜 이런 차림을 하고 있는 거지? 파란색 옷감은 그 옛날에 굉장히 비싼 물건이었을 텐데.”

사회자가 말하자, 나자렛은 고개를 으쓱거렸다. 그는 가시 월계관을 벗었다. 그리곤 고개를 푹 숙이고서 사람들 앞에 나섰다.

“아무래도 제가 실패한 거 같네요. 가봤더니 있는 거라곤 마구간이랑 돌, 그리고 사람들뿐이었어요. 성난 사람들 말이에요.”

“임무는 어땠니? 나자렛.”

사회자가 묻자, 나자렛은 깊고 짙은 한숨을 쉬었다.

“임무요? 에구, 당신들은 그걸 임무라고 부를 지도 모르겠지만요. 제자라는 놈이 배신 때리는 바람에 십자가에 매달리고 옆구리에 창 맞는 일은 그리 즐겁지는 않더라고요. 충실한 제자라는 애들에게 그렇게 귀뜸을 해줘도 못 알아먹고. 참.”

“제자? 너한테 제자가 있었어?”

“네. 무지 많았어요.”

나자렛은 왼쪽 눈을 번뜩이면서 무대 위에 홀로그램 화면을 띠웠다. 그러자 과거에서 나자렛이 행했던 모든 일들이 전 은하계 곳곳에 생중계 되었다.

“이 쪽은 마리아인데, 마구간을 운영했죠. 옆에 있는 이 분이 목수 겸 석공 겸, 가끔 가다 양 때를 보던 요셉 씨에요. 이 두 녀석이 절 부려먹었어요. 13년 쯤 부려먹었죠. 그러다 나중에는 자기들이 늙어죽을 때까지 부려먹겠답시고, 정식 입양 서류까지 만들어서 절 입양하더군요. 아, 그래도 나쁜 녀석들은 아니었어요. 예루살렘까지 따라와서 창에 찔리니까 슬퍼해주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마구간에 말이랑 당나귀가 어찌나…….”

사회자는 늘어지는 나자렛의 설명에 질린 듯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음, 나자렛. 다른 건 다 생략하고, 일단 예수님의 말씀 좀 읊어볼 수 있니?”

“예수님 말씀이요? 무슨 말씀이요?”

“그, 예수님을 만났을 거 아냐? 막달라 마리아와 요셉은 만났다며. 우리에게 무슨 말씀 남기신거 없었나?”

“나 원. 예수란 사람을 아예 못 만났어요. 대신에 당신들이 좌표 값을 잘못 주는 바람에 고생한 내용은 많이 들어 있죠.”

“뭐?! 잠깐만, 그럼 넌 거기 가서 뭘 한 거야?”

“나무를 배고 강의를 했죠. 당시의 열악한 제조업계를 개선하기도 했고, 또, 돌 맞던 여자가 있기에 구해주기도 했죠. 예루살렘이란 곳도 가 봤는데, 건축술은 아주 탁월하더군요.”

“어…….” 이상한 낌새를 느낀 사회자가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자, 나자렛이 말했다.

“대신에 제가 하도 그런 사람 찾으니까 나자렛에서 이에수스 찾는 나자렛이 됐더라고요. 그래서 마구간에서 생활하면서 계속 예수를 찾았죠. 근데, 예루살렘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런 사람 못 봤어요. 그러다가 십자가에 매달려서 창에 찔렸죠. 세상에. 제 로봇생을 통틀어서 가장 끔찍한 기분이었어요. 매머드가 어떤 기분으로 멸종당했는지 알겠더군요.”

로봇이 웃으면서 말하자 장내에는 차가운 정적이 감돌았다.

신자들은 치를 떨었다. 그들은 결코 상상도하기 싫은 일을 상상하고 말았다. 만일 과거에 예수라는 인간이 없었다면. 예수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설마, 위대한 성자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미래에서 보낸 안드로이드라면. 그렇다면, 우리가 수천 년간 믿고 있던 예수는 대체? 그들은 벌린 입을 차마 다물지 못했다.

사회자는 싸늘하게 식은 관중들 앞에서 혼란에 휩싸인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음, 그렇다면, 증거, 증거가 있나? 녹화한 영상부터 틀어 봐!”

로봇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첫날부터 녹화된 메모리 파일을 무대 위에 띠웠다. 그러자 로봇이 했던 모든 일들이 하나 둘 화면 위에 떠올랐다. 마리아와 요셉부터 돌 맞는 여인을 구하던 일과 시장통에서 싸움을 벌인 일, 그리고 심폐소생술로 라자로를 되살리는 장면도 빠지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로봇이 옆구리에 창을 맞는 장면이 나오자, 앞줄에 서있던 어느 신도는 자리에서 졸도 하고 말았다.

나자렛은 무심하게 말했다.

“사실, 몇 가지는 좋았어요. 예전 사람들이 요즘 사람들보다 나았죠. 음, 연애도 자유롭게 하고, 시위도 거의 없고 말이죠. 근데, 저거 땜에 정나미가 떨어지더라고요. 그, 롱기누스인지 뭔지 하는 놈이었어요. 세상에. 그 나쁜 놈이 내 옆구리를 찔렀어요. 그래서 저는 죽은 척을 했죠. 안 죽으면 또 찌를까봐 겁이 났거든요. 어쨌든, 한 일주일 정도 쥐죽은 듯 누워 있으니까 막 사람들이 장례를 치르더라고요. 그래서 몰래 빠져나오려는데, 그걸 또 베드로가 봐서 하는 수 없이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한 다음에 긴급 시간이동으로 돌아…….”

로봇이 툴툴거리자, 사회자는 로봇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리곤 험악한 얼굴을 나자렛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베드로? 성자 베드로?! 성자 베드로를 만났다고?”

“그렇다니까요.” 나자렛은 카메라 눈을 켰다. 그러자 허공에는 또랑또랑하게 생긴 15살짜리 아이가 떠올랐다.

“얘는 베드로인데 말이죠. 절 잘 따르는 아이였죠. 집안이 대대로 어부였다는데, 이 녀석은 수영도 못하더라고요. 나중에 얘가 제 밑으로 들어왔는데…….”

“말도 안 돼! 설마 베드로가 네 제자였다고? 아니지? 그렇지?”

사회자가 얼굴을 바싹 들이밀면서 소리치자, 나자렛은 사회자를 슬쩍 밀어내면서 말했다.

“왜 이렇게 얼굴을 들이밀어요? 부담스럽게. 어쨌든, 예수는 못 만났어요. 여러분, 아무래도 여러분은 헛돈 날린 거 같네요. 하하. 그리고 여러분 조상들은 밥맛이었어요.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질 않나, 매일같이 주먹다짐이나 하는 족속들이었죠. 로봇친화적인 놈이 한놈도 없더군요! 어쨌든 여기까지 오셔서 감사합니다. 전 이만 수리 센터에 가봐야겠어요. 그럼.”

나자렛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자, 관중석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에이 썅! 저 로봇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책 한권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소리에 경기장을 맴돌던 정적은 산산이 부서졌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로봇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다음 순간 성난 사람들의 분노가 무대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개인 우주선을 타고 나자렛이 서있는 무대를 향해 달음박질 치고 있었다. 마치 천사가 내려오고 천지가 개벽하듯이 스튜디오는 거대한 함성으로 가득 차올랐다.

나자렛은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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