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설문조사

2019.04.30 18:5604.30

1

우리 학교(주변 학교도 포함) 학생들 중 동성애자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

첫 질문이었다. 나는 샤프를 내려놓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묵에서 돋아난 웃음소리가 간간이 귓가를 간질였다. 선생은 교탁에 서 교과서를 들추며 수업 준비를 했다. 교장의 특별지시로 인한 설문조사였다. 다시 고개를 숙인다. 설문지를 들여다본다. 눈을 가까이 갖다 댄다. 글자 하나가 시야에 꽉 들어찰 정도로. 아니오, 에 가있던 샤프 끝을 천천히 왼쪽으로 옮긴다. 밧줄로 묶은 거대한 돌덩이를 끌어당기듯 무거운 일이었다. 예, 에 브이 체크를 한다. 다음 질문.

동성애자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온 몸의 핏줄이 두드러기처럼 불거지는 듯했다. 주관식이었다. 나는 길고 긴 괄호 사이의 백지에서 맴을 돌았다. 다시 고개를 들고, 뒤를 돌아보고, 설문지 위로 시선을 붙잡아둔다. 누가 심장을 꽉 움켜쥐었다 풀기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한순간 피가 온 몸 속에서 만개했다 빠르게 지는 것처럼. 나는 몰라요, 한 글자 한 글자 각인을 새기듯 적는다. 뒤에서부터 걷어오렴. 선생이 말했다. 맨 뒷자리 아이가 설문지를 걷기 시작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종이를 건넸다. 그 애가 고개를 내저었다.

학번하고 이름 써야 돼. 빨리 써.

나는 학번하고 이름을 왜 써야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쓰지 않는다면 쓰지 않는대로 티가 날 것이다. 나는 나를 드러내기 싫었다. 조용히, 가만히, 그런 형용사들을 추구하는 삶. 나는 몇 번이나 학번과 이름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길 반복했다. 종이를 걷던 아이는 이미 선생에게 설문지를 건넨 뒤였다. 나는 지우개 똥과 시커먼 자국으로 지저분한 설문지를 선생에게 주었다. 그는 내 설문지를 뚫어져라 보더니 맨 뒷장으로 넘겼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설문조사가 끝나는 대로 선생님들께서는 수업을 재개하시기 바랍니다.

수업이 재개됐다. 나는 다시 두 팔에 얼굴을 묻었다. 입을 열지 않는 어둠, 그 속에 몸을 맡겼다. 빨려 들어가는 듯한 속도감이 몸을 감쌌다. 그리고 눈을 뜨자

 

2

깬다. 암막 커튼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아침 8시다. 토요일이다. 안심해도 되는 날. 옆에 누워있는 남자를 바라본다. 애인이다. 이불 아래 드러난 그의 맨 몸은 부드럽고 폭신하다. 그를 한 번 더 껴안는다. 얼마나 껴안을 수 있는지 모르니 최대한 힘껏, 꽉, 안아 그를 느낀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거울을 바라본다. 볼록 튀어나온 배와 좁은 어깨, 밤톨만한 페니스와 짧은 다리, 큰 머리. 총체적으로, 못생겼다. 그나마 얼굴이 나름 귀여운 편에 속한다고나 할까. 그렇게 자위를 하며 나는 화장실로 향한다. 씻고 입는다. 아침을 뭐 먹을지 고민한다. 식빵은 없고 시리얼만 있다. 그것도 오레오 오즈. 내가 싫어하는. 어느 새 일어난 그가 화장실에서 나온다.

배고파.

그는 중얼거린다.

시리얼밖에 없네. 이거라도 먹어야지.

그럼 넌 뭐 먹게?

나도 이거 먹어야지, 뭐.

토스트 사다줄까?

아냐. 뭐하러.

나도 먹고 싶어서 그래. 갔다 올게.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그는 집을 나선다. 나는 그가 닫고 나간 현관문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본다. 단단한 철제 문. 쉽게 부서지지 않는 문. 그와 나의 사이에 가로선 현관문에 선뜩한 느낌을 받는다. 문을 열면 그가 아니라 그의 마네킹이 서있을 것만 같다. 한 손에 곰팡이 핀 식빵 봉지를 들고, 다른 손엔 나에게 줄 시집을 갖고. 아마 그 시집은 수십 번을 읽어 낡게 변색되고 찢어진 안희연의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나 황인찬의 <구관조 씻기기>일 것이다. 나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간다. 꿈 때문에 찝찝했다. 동성애자 색출 설문지를 작성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안 좋은 기억은 연어처럼 사라졌다 돌아오길 반복한다. 나는 오렌지 주스 한 컵을 들이마신 뒤 소파에 가 앉는다. 현관문을 쳐다본다. 하나, 둘, 셋, 넷....... 열. 문이 열리고 애인이 나타난다. 다행히 마네킹은 아니었다.

 

3

우리는 데이트를 한다. 손을 잡고 싶었지만 아직, 이다. 기껏해야 어깨동무 하는 척 허리에 손을 두르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우린 언제나 가까이 있었고 그건 지금, 그리고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산의 웨스턴돔과 라페스타는 복잡했다. 퀴어축제를 하기에 딱 좋은 미관광장이 눈에 띄었다. 거기서 이어진 전국에서 가장 큰 호수공원 역시 마음에 들었다. 대화를 했고, 볼을 만지고, 손가락 끝을 살짝이나마 어루만졌다. 나보다 키가 큰 그는 줄곧 내 머리를 쓰다듬기 일쑤였다. 그 손길이 좋아 나는 강아지 마냥 그의 어깨에 기댄 채 얼굴을 비볐다. 일순 우리는 사람과 부딪힐 뻔 한다. 죄송합니다, 지나치려는데 그 남자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그는 펜과 종이를 들고 있었다.

설문조사 한 번만 참여해주시겠어요?

그의 목소리는 쉰 채 갈라져 나왔다.

나는 바쁘다며 그냥 가려고 했지만 애인은 잠깐인데 뭘, 하며 남자에게로 다가섰다.

설문지를 살펴본다. ‘동성애 허용 찬성 반대’라고 적힌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동성애는 허용하고 말고의 문제도 아닐뿐더러 찬성과 반대의 영역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줄이며 말한다. 애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문지가 잘못 됐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남자는 반드시 하나에 체크해주셔야 한다며 펜을 내밀었다. 한 번만 해주세요. 대학 과제입니다. 남자의 말에 애인은 ‘찬성’에 체크를 한다.

아래도 한 번 봐주세요.

남자는 설문지 하단을 가리킨다. 이번엔 ‘트랜스젠더 및 양성애자 허용 찬성 반대’다. 기가 막혀 나는 남자의 얼굴을 곁눈질 한다. 그는 웃음을 입가에 띠운 채였다. 할 거면 반대에 해. 나는 애인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그는 왜냐고 물어본다. 트랜스젠더하고 양성애자는 좀, 그렇잖아. 빨리 체크하고 가자. 그러나 애인은 찬성에 표시를 한다.

우리는 호수공원 입구까지 걸어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옅은 침묵을 씻어낸 건 애인이었다. 트랜스젠더하고 양성애자가 좀 그렇다는 게 무슨 뜻이야? 나는 가만히 그 말을 곱씹다가 맞잖아, 좀 그런 거. 트랜스젠더는 일종의 성도착증이고 양성애자는....... 박쥐같아서 싫어. 걔넨 이성애자처럼 결혼할 수 있는 거잖아. 이성애자처럼 살 수도 있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애인은 트랜스젠더는 엄연히 우리와 같은 사람이자 성소수자라며, 그들은 성도착증 환자가 아니라며 열변을 토한다. 양성애자 역시 그냥 두 성을 좋아하는 것일 뿐, 이성애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 알았어. 미안.

나는 그렇게 넘긴다. 언제나처럼.

설문조사를 했던 그 남자를 다시 본 건 정확히 30분 후였다. 어제 본 공포영화 <어스>와 <콰이어트 플레이스>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우리 둘 다 공포영화 마니아라 할 얘기가 많았다. 스토리가 어쩌구, 인물과 개연성이 어쩌구, 연출이 어쩌구 각본이 어쩌구 등등....... 그러다 나는 두 발을 멈춰 세운다. 뒤를 돌아본다. 설문지 남자가 있었다. 나는 몇 발자국을 걷다 다시 뒤를 돌아본다. 남자는 여전히 우리와 가까이 서있었다. 나는 애인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른다. 남자는 우리를 마주본 채로, 설문지를 들고 서있다.

저희한테 뭐 볼일 있으세요?

아직 설문조사가 덜 끝나서요.

그는 말한다.

아까 했잖아요. 그리고 저희 바빠요. 가보세요.

한 번만 더 해주시면 되는데요. 사은품도 드려요.

남자는 왼손에 들고 있던 각티슈 세트를 들어 보인다.

나는 애인의 팔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5분마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그는 멀찌감치에서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애인에게 경찰에 신고하자고 한다. 그렇게 하자. 경찰을 불렀고 우리는 인근 정자로 가 앉는다.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10분 후 경찰이 왔다. 나는 그 남자에 대해 말하고, 경찰은 공원과 인근 지역을 수색해보겠다고 한 뒤 사라졌다.

누굴까.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인가.

진짜 대학 과제 하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

애인이 말한다.

설문조사를 누가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해. 신천지도 아니고.

나는 비꼬듯 중얼거린다.

근데 설문조사가 많이 낡았네. 허용이니 찬성이니 반대니.

설문조사 해주시겠어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혀를 깨문다.

돌아보니 맞은편 의자에 그 남자가 앉아있다. 나는 기겁을 하며 벌떡 일어선다. 애인 역시 화들짝 놀란 얼굴이다. 경찰이 곧 올 거라고, 스토킹이라고 신고할 거라고 으름장을 놨지만 남자는 그저 웃을 뿐이다. 그리곤 입을 연다.

당신들, 게이지? 동성애자지?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나는 뒷걸음질 친다. 애인의 손을 잡는다. 남자는 품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망치를 꺼낸다. 그의 망치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우리는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그거 내려놓으세요. 애인이 말한다. 나는 도망가자고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 말한다. 남자가 정자에서 나오는 순간, 나는 애인의 팔을 끌어당기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얼마나 힘껏 달렸을까. 우리는 뜀을 멈춘다. 사방을 꼼꼼히 둘러본다. 망치를 든 미친 남자는 보이지 않는다. 경찰이 그를 잡았을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망치를 든 미친놈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알려줘야 했다. 나는 공원 관리소로 가자고 애인을 이끌었다. 관리소에 도착한 우리는 그 남자와 경찰에 대해 말을 꺼낸다. 그러나 경비는 처음 듣는다는 듯 고개를 내저을 뿐이다.

경찰이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망치를 들고 죽이려고 했다고요?

우리는 그렇다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일단 안내방송으로 주의하라고 전하겠습니다.

 

오늘은 그가 나의 집을 데려다주는 날이다. 그의 얇은 허리는 팔을 두르기 편하다. 매끈하고 탄탄한 그의 배를 콕콕 찌른다. 잘 가라고 인사를 하고, 입을 맞추고, 그는 등을 돌려 사라진다. 나는 아파트 4단지로 향한다. 지하주차장이 없는 동네였다. 대신 널따란 지상주차장이 있다. 3-4라인으로 걸어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7-8라인의 현관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유모차 한 대가 현관 구석에 있었고, 그 옆에, 그 옆에....... 형체가 있었다. 어둠보다 더 새까만, 그래서 실루엣이 그려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주차된 스타렉스 차량 뒤로 몸을 숨긴다. 실루엣이 천천히 이지러지기 시작한다. 희끄무레한 것이 눈에 띈다. 문이 열린다. 달빛에 조금씩 본모습이 드러난다. 그 남자였다. 설문조사를 해달라며 공원에서 우리를 쫓고 망치까지 꺼낸 그 남자. 남자는 내가 살고 있는 집 라인인 3-4라인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가느다랗고 긴 칼을 꺼내 왼손에 쥔다. 남자는 3-4라인 현관으로 들어선다. 자동센서등이 잠시 그를 환히 비춘다. 불이 꺼지고,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암흑 속에 제 몸을 감췄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는다. 애인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만 길게 늘어진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나는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에 몸을 떨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노래가 울려 퍼진다. 핸드폰을 확인하지만 내 폰이 아니다. 다시 남자를 쳐다본다. 그는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다시 센서등이 켜지고 그가 계단을 내려온다. 그는 왔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간다. 나는 그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뒤 차량 뒤에서 나온다. 그리곤 재빨리 3-4라인 현관으로 달려간다.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아니, 내가 있던 스타렉스 뒤에서. 그 남자가.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달려온다. 나는 문을 닫은 뒤 미친듯이 계단을 뛰어올라간다. 노란 불빛의 센서등이 차례로 켜지며 나의 질주를 관망한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재빨리 누른 뒤 문을 열고 닫는다. 걸쇠까지 걸어 잠근다. 손잡이 잠금장치까지 손을 쓴다. 쿵, 하는 소리가 현관문을 뒤흔든다. 나는 외시경으로 눈을 갖다 댄다. 새까맸다. 다시 들여다보아도 새까맸다. 순간 그 새깐만 것이 옆으로 움직이며 흰자위를 드러낸다. 남자의 눈동자였다.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선다. 경찰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은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가까운 지구대에서 5분 내에 도착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알겠다며 통화를 끊는다. 한순간 모든 소음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비명을 지른 건 초인종 소리가 몇 번이고 허공을 휘도는 순간이었다.

노크 소리가 들린다.

설문조사 한 번만 해주시면 됩니다. 당신을 죽이진 않습니다.

나는 경찰을 불렀다고 말하려다 가만히 있다.

애인에게 전화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 더러운 게이 새끼야.

남자가 귓속말을 하듯 말을 작게 읊조린다.

다시 초인종이 울린다. 외시경으로 확인해보니 경찰이다. 그들의 손엔 피가 묻어있었다. 그 피가 뭐나고 묻자 어떤 사람이 칼에 찔린 채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신원 확인 중이라고 경찰은 대답한다. 그러다 벨소리가 들린다. 경찰 중 좀 더 마른 쪽이 전화를 받는다.

이름이 신성훈이라더군요. 응급차에서 사망했답니다. 혹시 아시는 분입니까?

애인의 이름이었다.

 

4

식탁에 앉는다. 두 팔을 모아 그 위로 머리를 기댄다. 어둠 속에 나를 묻는다. 아무리 파헤쳐도 나오지 않는 빛 한 줄기를 찾아 눈을 두리번거린다. 감았다 뜨고, 이번엔 감은 눈에 힘을 주고 나의 안쪽에서 지직거리는 보랏빛 잔상들을 바라다본다. 신. 성. 훈. 그 남자는 왜 죽었을까. 185센티미터, 80kg, 다운펌한 머리, 언제나 어울리지 않는 검은 바바리코트, 길쭉한 다리와 잘생긴 얼굴. 묘사하자면 그랬다. 그런 남자였다.

퀴어 커뮤니티 내에선 이미 그 살인마 얘기로 떠들썩했다. 유명 포털 사이트에도 관련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각종 기사가 떴다. 대부분 기사의 댓글은

잘됐다, 똥꼬충 학살은 인정한다.

싹 다 청소해버려야 함.

더 잔인하게 죽였으면 좋겠다

이러한 내용들이다.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는 설문조사 같은 거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이 주를 이뤘다. 문제의 살인마를 찍었다는 사진도 각각 올라오곤 했다. 모두 어딘가에 숨어서 소리 나지 않게 찍은 사진들이었다. 반쯤 벗겨진 머리와 땅딸막한 몸집, 어딘가 보면 불쌍하면서도 이목구비가 기이하게 합을 맞춘 얼굴, 그것들이 한 데 모여 섬뜩함을 연출한다. 나는 남자가 나온 사진들을 몇 번이나 들여다본다. 한 번은 봤을 법한 평범한 얼굴인 동시에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불쾌한 기운을 내뿜는 표정이다. 칼을 뒤에 숨긴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달이 비춘 칼끝, 언제든지 내 몸을 뚫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진다. 인터넷을 닫는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물을 마신다. 숨을 들이킨다. 숨을 참는다. 다시 내뱉는다. 애인의 장례식은 내일이다. 그러나 나는 갈 자신이 없다. 용기가 부족한 걸까. 아니면 뻔뻔한 걸까.

 

얼마나 숨어있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복도 귀퉁이에 숨은 채 복도를 수시로 흘깃 쳐다본다. 교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2층엔 아무도 없다. 수학여행 주간이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나는 학교에 홀로 등교했고, 홀로 하교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의 걸음을 센다. 하나, 둘, 셋....... 여섯. 교장이 나타났고 나는 그의 관자놀이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저 풍선에 바늘을 갖다 댄 것처럼, 소리 없이 교장은 쓰러졌다. 피가 범람했다. 나는 몇 번이고 더 그의 머리를 내려쳤다. 튀어나온 목젖을 평평하게 두드린다. 다신 앞을 볼 수 없도록 양 눈을 짓뭉개놓았다. 구겨진 종이 뭉치를 그의 손에 쥐어준다. 끅, 흐끅, 거리는 새된 신음만 흘러나온다. 학생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모형 CCTV를 나는 빤히 올려다본다. 망치를 그의 다른 손에 쥐어준다.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두 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물속을 부유하듯 느릿한 걸음이었다.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를 건너다본다. 교장이 우뚝 서서 나를 바라본다. 두 눈에선 검붉은 피가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잿빛으로 부풀어 오른 목에선 칠판을 긁는 괴이한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는.

 

쫓아오기 시작한다.

 

한순간 발을 허공에 내딛는다.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진다. 계단 위를 구르고 나는

눈을 뜬다. 나는 누워있고, 이불은 반쯤 벗겨져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격자무늬의 천장은 내게 안도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방에서 뛰쳐나오듯 나온다. 부엌으로 가 냉장고 속 물을 마신다. 냉기가 몸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간다. 화장실로 가 거울을 마주한다. 며칠 동안 감지 않아 떡진 머리, 잔디처럼 돋아난 수염, 푸석한 피부와 아래로 처진 눈이 지난 몇 주간의 삶을 요약해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켜놓은 컴퓨터 앞으로 다가간다. 설문조사를 하는 남자를 조심해라, 라는 내용의 글들이 퀴어 커뮤니티를 장악했다. 글쓰기 버튼을 누른다. 게시물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수십 분이 흘러간다. 나는 작성완료 버튼을 클릭한다.

‘저는 복수할 것입니다.’

나는 제목을 혼잣말로 읊는다.

‘제 애인을 죽인 그 살인마를 꼭 잡을 것입니다.’

 

6

그러나 무력하다. 나는. 무엇도 할 수가 없다. 하루에도 다섯 번 이상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범인을 잡았느냐고 묻는다. 대답은 똑같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뉴스에 나오는 살인마, 남자를 보며 들끓다 못해 터져버릴 듯한 분노를 어떻게든 가라앉히려는 노력밖에 하지 않는다. 그저 끊임없이 배고팠다. 나는 중국집에서 탕수육 세트를 시켜 먹고, 저녁에는 치킨을 먹고, 야식으로 족발을 먹었다. 아침에는 생크림을 바른 토스트를 여섯 개나 먹어치웠다. 왜 그렇게 배가 고플까. 귀신이라도 들렸나. 죽은 애인의 영혼이 덧씌워졌나. 그렇다면 차라리 좋았다.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내 곁에 영혼만이라도 남을 수 있다면. 나는 무당을 찾았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인현궁’이라는 무당집이다.

무슨 일로 왔느냐는 말에 나는 귀신이 붙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당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주 깨끗해. 귀신은 무슨 귀신. 그러면서 복채 4만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나는 만원짜리 네 장을 꺼낸다. 복채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는데요. 진짜 없나요. 무당은 없는 귀신을 왜 자꾸 만들어내느냐며 화를 낸다. 빨리 돈 주고 나가라는 말만 되돌아온다. 그렇게 배가 고픈데요. 이상하잖아요. 저 어제부터 쉬지 않고 먹었어요. 지금도 배고파 죽겠어요. 무당은 그럼 병원을 가보라며 내 말을 쳐냈다.

 

학교에 휴학계를 내러가는 길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탄 상태이다. 위로 올라간다. 한 칸 두 칸, 밟아 오른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는데 어떤 여자가 불쑥 종이를 내민다. 대학 과제인데 도와줄 수 있겠느냐며, 간단한 설문조사만 하면 된다고 여자는 말한다. 나는 가라는 뜻으로 손짓을 했다. 그러나 그는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정문까지 따라온다. 그가 다시 말하기 시작하자 나는 몸을 돌려 그를 본다. 다물어진 그의 입술이 서서히 열린다. 너 게이지? 동성애자지? 죽어버려. 나는 꺼지라고 말한다. 그를 밀친다. 종이를 빼앗아 찢는다. 다시 꺼지라고 말한다. 여자는 나를 보며 뒷걸음질 치더니 이내 제자리로 돌아간다.

휴학을 신청한다. 박 교수는 나를 보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래, 무슨 일이 있긴 했었지. 뉴스 봤다, 나도. 성소수자들 죽이고 다니는 뭐 그런 미친놈이 있다면서.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너도 무섭겠지. 나도 그 마음 이해한다.

트랜스젠더 주제에 뭘 안다는 거야. 나는 애써 웃는다. 걸걸한 목소리와 가슴을 부각하고 쏙 들어간 허리와 한껏 업 된 엉덩이.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이다. 가짜 여성. 그런 주제에 뭘 이해한다는 건지. 나는 지난날 박 교수가 교수자리를 맡았을 때 벌어졌던 시위를 기억한다. 기독교 학교인 S대학은 일명 ‘개독 학교’로 불린다. 성소수자에 대한 탄압과 혐오가 만연한, 손꼽히는 학교다. 트랜스젠더 교수의 임용을 학생과 교수들이 가만히 내버려둘 리 없었다. 시위와 대자보가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졌다. 나도 그 시위에 동참했다. 하지만 그는 내 전공 교수였다. 그래서 이렇게, 그를 마주보게 된 것이다.

휴학을 하고........ 글쟁이한테 뭐 휴학이야 큰 의미는 없지만. 글 쓰는 건 계속하렴.

나는 인사를 하고 연구실을 나왔다. 배가 고팠다. 나는 학교를 나오자마자 교수의 카톡을 차단하고 번호를 지운다. 학교 건너편의 김밥천국으로 걸음을 옮긴다. 자리에 앉자마자 거의 5인분 식사를 주문한다. 다 먹을 수 있겠느냐는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음식이 나오고 나는 먹기 시작한다. 밥을 먹고 김치찌개를 떠먹고 떡볶이를 집어먹고 재료를 비비고 김밥을 두 세 개씩 입에 쑤셔 넣고. 그리고 나서야 배가 불렀다. 귀신 들리면 귀신 몫까지 먹어야 해서 많이 먹게 된다는데, 그게 진짜일까, 생각한다. 애인의 귀신에 빙의되고 싶다는 바람이 문득 든다. 그럼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텐데. 영화 <겟 아웃>에 나오는 것처럼 뇌를 바꿔치기 하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았다.

 

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정기모임에 참석한다. 전화를 무시하고 가려했지만 동아리 회장인 후배가 이제 언제 볼 수 있겠느냐며 성화기에 갔다. 부원은 30명에 육박했다. 더 늘었네. 나는 혼잣말을 하며 회장인 후배와 함께 상석에 앉았다. 이런저런 잡담이 오가더니 이번 회의 안건은 ‘성소수자 겨냥 연쇄살인범’이었다.

다 죽겠네.

내가 속삭이듯 말한다.

네?

후배가 되묻는다.

아냐. 빨리 시작해. 나 먹으러 가봐야 되니까.

점심 안드셨어요?

먹었는데 배고파.

안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오갔다. 오직 성소수자만을 겨냥한 지능적이고 계획적인 연쇄살인이라며, 집단적으로 움직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정부에게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더 이상의 한 명의 성소수자도 피해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머리를 주억거린다. 어느 순간 그들의 말이 들려오지 않는다. 몇몇 사람에게로 시선이 고정된다. 트랜스젠더들이다. 나는 옆으로 고개를 젖혀 후배에게 묻는다. 언제부터 트랜스젠더를 부원으로 받았느냐고. 후배는 트랜스젠더 없는데요? 반문한다. 나는 내가 트랜스젠더라고 생각한 그들을 다시 쳐다본다. 트랜스젠더 같이 생겼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시위도 하고 플랜카드를 내거는 거죠.

의견은 그렇게 모아졌다. 나는 가만히 그들을 다시 쳐다본다. 아무리 봐도 트랜스젠더 같았다. 구체적인 시위 날짜 등 계획은 임원진이 추후 다시 공지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모임은 끝났다. 나는 그들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나간다. 그들은 두 명이다. 부원들이 갈림길에서 헤어지고, 또 갈림길에서 헤어진다. 10미터 쯤 앞에서 그들은 걷는다. 나는 티 나지 않게 나름 노력하며 그들을 쫓는다. 그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나다녔다. 복잡한 골목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그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발을 멈춘다. 그리고는 서로에게로 달려들어 물고 빨기를 반복했다. 게이이거나 양성애자인 모양이다. 나는 소리 나지 않게 뒤돌아 골목을 빠져나온다. 무력감이 다시 온 몸에 녹아내린다. 그때였다. 내가 있는 골목에서 사선으로 보이는 골목이 하나 있다. 그런데, 그런데,

거기에 있다.

내가 보았던 그 살인마가. 그는 설문지를 갖고 있었다. 남자는 한창 섹스를 즐기고 있는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들은 막다른 골목 벽에 기댄 채였다. 아래에 깔린 사람이 겨우 고개를 옆으로 내밀어야 남자가 있음을 알아볼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남자가 더 빨랐다. 그는 위에서 열심히 피스톤질 중인 남자의 옆구리에 칼을 꽂아 넣었다. 나는 온 몸으로 그 비명을 견뎌야 했다. 남자는 그가 쓰러져 꼼짝하지 않을 때까지 칼을 휘둘렀다. 아래에서 신음소릴 내던 연인은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골목을 달려 나갔다. 나는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레 남자에게 다가간다. 칼질에 여념이 없는 남자의 뒤로 가 벽돌로 머리를 내리친다. 그러나 남자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칼을 내질렀다.

우리 만난 적 있죠. 안 그렇습니까?

껍질을 뜯은 탓인지 그의 검붉은 색의 입술이 말을 내뱉는다.

개새끼, 성훈이 죽인 거 너지? 이 씨발 새끼가.

당신은 아직 여지가 있습니다.

그 남자가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나처럼 정상인이 될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내게 한 걸음 다가온다.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당신들은 떼죽음을 당할 겁니다. 신께서 친히 벌을 내리실 겁니다. 죽고, 죽을 것입니다. 살고자 한다면 신의 뜻을 거스르지 마십시오. 나와 같은 대리인이 나 하나라고 생각합니까?

그는 천천히 나를 보며 뒤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웃다가 정색하고, 정색하다 웃는다. 나는 멍하니 멀어지는 남자를 본다. 남자가 사라졌다.

 

7

변기를 붙잡고 숨을 몰아쉰다. 먹은 것들을 그대로 게워냈다. 나는 입 안을 물로 몇 차례 행군 뒤 방으로 향한다. 검은색이 없어 회색 정장을 입는다. 박 교수가 죽었다. 소식을 들은 건 일주일 전이다. 살인, 이라고 했다. 학생 기숙사 쪽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역시 칼에 찔린 채. 흔하고 흔한 살인사건 중 하나다. 다만 중요한 건 그가 트랜스젠더이고, 그 역시 CCTV 확인 결과 설문조사 권유를 수차례 받은 점이었다. 그 남자는 어딜 가나 있었다. 마치 한 명의 사람이 수십 수백개의 인격으로 쪼개져 움직이는 것 같았다.

빈소엔 그의 가족과 지인 몇 사람만 있다. 나는 절을 하고, 국화꽃 한 송이를 올리고 향을 피우고, 상주와 맞절을 한다. 나는 가만히 박 교수의 영정사진을 바라본다. 트랜스젠더도 살해하는 걸 보면, 그 살인마가 단순한 포비아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트랜스젠더도 성소수자로 보는, 메갈리아와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그런, 포비아가 아닐까, 생각, 한다. 하지만 다 떠나서 날 가르치던 교수가 죽은 건 침착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동시에 나와 같은 사람들-성소수자에 트랜스젠더인 박 교수를 포함시켜 살해 대상으로 삼은 것, 박 교수와 같이 살해 대상이 된 것은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박 교수와 같은 취급을 받다니. 문득 그 살인마가 원망스럽다.

 

8

교장은 그렇게 죽었다. 경찰이 수시로 학교를 드나들었고, 아이들은 교장 살인사건에 대해 흥분하면서 저희들끼리 범인을 유추하며 명탐정 코난 놀이를 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나 역시 형사와의 면담을 가졌다. 이후로 형사가 나를 부른 적은 없었다. 잔혹하게 살해된 교장의 장례식은 학교 차원에서 거행되었다. 죽은 교장이 손에 쥐고 있던 동성애 찬반 설문조사지는 몸뚱이와 함께 화로 가마 속으로 들어갔다. 핏빛 불길이 샛노란 빛을 내뿜으며 폭발하듯 타올랐다. 화형식을 보는 듯했다.

그렇게 찬란할 수가.

그렇게 현란할 수가.

 

혜화역에서 열리는 성소수자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대책 마련 관련 시위에 참가했다. 죽은 애인과 친한 사이였던 사람들이 권유한 때문이다. 트랜스젠더들은 보이지 않았다. 시위 공지사항에 ‘트랜스젠더 참여 불가’라고 적혀 있었다. 트랜스젠더 배재적인 움직임은 그 남자의 연쇄살인이 시작된 지 중반 즈음부터 있어왔다. 살인범이 사실 트랜스젠더라거나, 트랜스젠더들이 작당해 벌인 연쇄살인이라든가....... 믿기 힘든 루머였지만 가슴 한 구석이 선뜩했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정말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박 교수는? 그는 트랜스젠더임에도 살해당하지 않았나. 사람들은, 트랜스젠더들이 범인이라고 유추하는 사람들은 모방범죄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트럭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엔진 소리만 들렸다. 점차 그 소리가 커지고,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고, 소리의 주인공인 트럭이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많은 사람들이 트럭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수라장이 이어졌다. 스티븐 킹의 소설 <트럭>에 나오는 미친 트럭들 마냥 그 트럭은 시위하는 사람들을 짓뭉갰다. 깔리고, 부딪히고, 날아가고, 치이고, 그러기를 반복했다. 뒤쪽에 있던 나는 얼른 트럭의 반대 방향으로 피했다. 비명이 폭죽처럼 허공에서 터져나갔다. 경찰차와 응급구조대가 달려온 것은 트럭이 막 도망가려던 참이었다.

사이렌 소리가 한동안 공중에서 떠나질 않는다.

 

9

저는 트랜스젠더입니다. 앞으로도 동성애자들을 죽일 것입니다. 동성애자들은....... 행동거지에 주의하면서 사십시오. 몸과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사시길 바랍니다. 애꿎은 트랜스젠더들을 차별하고 혐오하지 마십시오. 부탁하는 게 아니라 경고하는 것입니다.

 

10

트럭 테러 사건의 범인이 한 말을 나는 몇 번이고 곱씹는다. 말도 안되는 정신병자의 이야기였다. 왜 하필 동성애자를 타겟으로 삼아왔느냐고 묻는 기자의 말에 범인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혹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동성애자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당신이냐고 묻는 기자도 있었다. 범인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첨언하자면 자신도 누군지 모르지만, 어쨌든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나는 그 분의 대의를 위해 자그마한 성의를 내보였을 뿐이라고. 트랜스젠더들이 동성애자들보다 더 차별받는다는 것에 동의를 하십니까? 또 어떤 기자는 이렇게 물었다. 그는 불행 배틀을 하긴 싫다며 답을 피했다.

우리는 시위를 계속했다. 트럭 테러의 범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라고 외쳤고, 정신질환자인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연쇄살인을 일으키는 그 남자에 대한 수사를 보강을 철저히 하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정부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토론회에서 동성애를 반대하고, 유세현장에서 ‘나중에’를 외쳤던 대통령은 뜬구름 잡는 소리만 계속 했다. 행동을 주의하고, 가급적이면 집에 있을 것이고, 수상한 자가 보이면 즉시 신고해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었고, 누구도 지킬 수 없는 지침이었다. 피해자더러 조심하라 한다. 집에만 있으라니, 회사는 어떻게 다닐 것이냐고. 그 물음에 대통령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밝히고 양해를 구하면 될 것, 이라고 답했다.

어이가 없어 우리는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역시 트랜스젠더가 아니냐는 추측성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추측이 기정사실화되기까지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트랜스젠더들에게 되갚아주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게이 인터넷 방송 BJ들은 트랜스젠더 바를 급습하여 아웃팅을 했고, 어떤 이들은 트랜스젠더 클럽에 불을 질렀다. 싸움이 일어났고 사상자가 발생했다. 각 커뮤니티 간의 분쟁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분열이었다.

 

오늘은 교장의 기일이다. 내가 죽였던, 내게 죽었던 교장 선생님. 학생들은 오지 않았고, 나는 가까운 친척과 함께 제사에 참여했다. 친척들 앞에서 나는 교장을 아버지라 불렀다. 친척들 역시 나를 조카라고 불렀다. 교장이 죽은 날, 교장, 아니 아버지를 찔렀던 날.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처럼 나는 식칼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타난 아버지를 찔렀다. 그가 피를 토해내며 쓰러지자 나는 재빨리 그의 옷을 벗겼다. 그는 여자 속옷을 입고 있었다. 브래지어를 차고 있었고, 생리대를 착용하고 스타킹도 입은 채였다. 나는 기억한다. 새벽마다 그는 여장을 하고 날 찾아와 자신을 강간해달라며 다리를 벌리곤 했다. 자신은 여자라고 그는 재차 말했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교장에게 물건을 던지고 때렸다. 피를 흘리는 그를 거실로 끌고 나온 뒤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갔다.

학교에서, 나는 그가 입고 있던 여자 속옷들을 전부 벗긴 다음 도망쳤다.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학교의 지하창고 깊숙한 곳에 속옷이 든 가방을 숨겼다.

영정사진 속의 그를 바라본다. 내가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자마자 그는 내가 죽기 직전까지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싸웠다. 한 명은 동성애자를 혐오했고 한 명은 트랜스젠더를 혐오했다. 혐오를 혐오로 맞불 놓은 상태에서 결말은 예정된 것이었다. 둘 중 한 명이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었다.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와 교장 모두.

 

11

남자를 다시 본 건 트럭 테러 피해자 합동 분향소를 다녀온 날이었다. 그 옆에는 혐오 범죄로 인한 트랜스젠더 피해자 분향소가 있었다. 사람들은 죽음의 무게를 재는 데 능숙했다. 남자는 집 앞 공원에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의 표정이 이젠 마음에 들 정도다. 그는 설문지를 내밀었다.

설문조사 한 번 해주시겠습니까?

마치 미친 로봇 같다. 나는 펜을 건네받았다. 설문지를 본다.

 

우리 학교(주변 학교도 포함) 학생들 중 동성애자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의 물음과 같았다. 나는 잠시 고개를 쳐든다. 남자는 식칼을 든 채 나를 노려본다. 나는 주머니 속에 왼손을 넣었다. 칼이 손에 잡혔다. 설문지 질문들을 계속해서 읽어나간다. 고등학교 때 아이들이 설문지의 질문들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동성애자 없다, 있으면 병이니 고쳐야 한다, 잘못된 가정환경에서 자란 탓이다, 그런 말들. 선생은 내게 설문지를 취합해 교무실에 갖다 놓으라고 했다. 나는 홀로 복도에서 아이들의 답변들을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저 멀리, 4층 계단에서 막 올라오는 교장이, 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나는 설문지 뭉치를 떨어뜨렸다. 설문지들이 허공을 밟으며 땅으로 추락했다.

나는 펜으로 빠르게 체크를 해나갔다.

근데 저는 뭘까요?

다시 그는 정색하다 웃고, 웃다 정색한다. 나는 마지막 질문에 다다랐다.

 

본인은 동성애자입니까?

 

복부에서 피어오르는 고통이 한순간에 온 몸을 관통한다. 신음소리 마저 나오지 않는다. 남자는 다시 한 번 깊게 날 찌른다. 나는 칼을 뺐다. 상상으로조차 가늠할 수 없는 통증이 나를 지배한다. 나는 빼든 칼로 그의 눈을 찌른다. 옆구리를 찌른다. 실성한 사람 마냥 남자의 목을 깊게 베고 또 벤다. 피가 솟쳤다. 남자는 쓰러진다. 나는 떨어뜨린 설문지를 줍는다. 주머니에서 펜을 꺼낸다.

 

본인은 동성애자입니까?

 

나는 체크한다.

 

그럼 너는 뭐지? 넌 남자야, 여자야? 이성애자야, 동성애자야, 양성애자야, 무성애자야, 범성애자야, 뭐야? 넌 뭐지? 너는 네 존재의 이유를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나?

나는 묻는다. 남자는 파르르 몸을 떤다. 보도블록 틈을 따라 피가 흘러간다.

 

집으로 향하던 걸음을 되돌린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피에 젖은 손과 피를 내려다본다. 비틀거리며 걷는다.

교장 선생님께 물어볼 것이 있다. 머리가 어지럽다. 왼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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