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치킨게임

2019.03.06 14:2903.06

 

 

 

 

새도 그 종류대로, 집짐승도 그 종류대로, 땅에 기어 다니는 온갖 길짐승도 그 종류대로, 모두 두 마리씩 너에게로 올 터이니, 살아남게 하여라. 그리고 너는 먹을 수 있는 모든 먹거리를 가져다가 쌓아 두어라. 이것은, 너와 함께 있는 사람들과 짐승들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 창세기 6장 20~21절

 

 

 

 

 

일단 눈을 뜨기는 떴는데, 깨면 안 되는 상황에 잠을 깨버렸다.

 

아니 진짜, 엄청 심각한 상황이다. 잠을 계속 자야 하는 거다 지금은.

 

망연자실한 상태로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다가, 뭔가 계속 누워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냉동된 상태에서 다시 깨어나려면 오랜 시간, 최소 48시간 이상 자연해동을 거쳐야 한다…. 고 들었지만 이미 의식이 멀쩡하니 아마도 해동 과정은 지나간 후일 테다.

 

흐릿하다가 점점 맑아지는 시야로, 냉동 수면실 내부가 보이고, 다른 대원들이 누워있는 수 개의 캡슐들도 보였다. 내 양옆에도 당연히 있었고 고개를 돌려 그대로 좌측캡슐 안쪽을 살펴보았다.

 

“어우 싯..”

 

아마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그대로 냉동이 풀린 것 같았다. 진공상태라 피부 보존은 잘 되어 있었지만, 비쩍 말라 들러붙은 뼈와 피부가 꼭 우주복을 입은 미라 같아 구역질이 나왔다. 고통 없이 간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우측캡슐도 보니 마찬가지다. 정신이 바짝 들자 팔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겨우 캡슐을 빠져나와 다른 대원들의 상태도 살폈다.

 

모두 다 굶어 죽었다.

 

냉동 수면실 가운데 위치한 제어 장치에 다가가 진행 상황을 검색했다. ARK가 지구에서 출항을 떠난 지 딱 5년이 지나가는 시점이다. 왜 이런 상황이 돼버린 것인지 조사해보니, 가장 자신 있는 기술이던 냉동수면보조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켰다.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더니, 정말 딱 맞는 말이다. 차분히 생각을 좀 해보자. 예상 도착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5년이 더 지난 후다. 부정기적으로 공급되던 영양분 주입은 냉동 캡슐이 망가져 버려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정상적으로 깨어나 그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기간은 일주일이었다.

 

즉, 기본적인 식량은 7일분이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으허허허허허.

 

 

 


 

 

 

폭발하는 인구와 부족한 식량을 대처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DNA 분석과 유전자 조작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포화상태라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제조 기술과 항공 우주학에 관한 이론은 준비됐지만, 원료가 없는 것이다. 원료가. 이 얼마나 우스운 상황인가. 뽑아먹을 대로 뽑아먹어 다 고갈된 자원 때문에, 수년이 걸리는 우주로의 테라포밍은 그저 말 그대로 계획으로만 죽 전해졌다. 우주선을 만들어도 운행할 수가 없으니 발만 동동 구를 뿐. 그렇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가 싶었지만….

 

“또또라 똘라라라.”

 

“뭐라는 겁니까? 저들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언어를 전파로 바꿔 겹치는 주파수 부분이 있는지 파악해보죠. 일단은 그렇게 우리를 적대시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또똘. 똘. 또라라라라라!”

 

“뭐, 뭔가 굉장히 흥분한 것 같은데?”

 

“음, 우리도 그, 손 흔들며 환영해야 하나?”

 

“저들은 손이 없잖아요. 그냥 다 다리 같은데?”

 

외계인들이 찾아왔다.

 

언어 해독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파 변환을 거쳐 인간의 언어를 겹친 후 진폭이 큰 부분을 비교해 큰 감정의 틀을 잡은 뒤, 나머지는 조금씩 세부적으로 맞춰나갔다. 더군다나 그들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우주 전쟁을 기대하던 소수의 군 장성들은 실망했지만, 지구를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각국의 수장들은 어떻게든 이들과의 교류를 시도했다. 특별히 대우하며 그들의 지식을 얻기 위해 서로 먼저 대화의 창구를 열고자 했다. 문제는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대략 파악한 순간부터였다.

 

“그러니까 이들이 토성에서 왔다고? 안 머네?”

 

“토성은 아니고, 정확히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입니다.”

 

“우리가 진출할 수 있는 곳인가?”

 

“예전부터 생명체가 있을 거라는 추측이 많았고 50년 전 이미 무인탐사선이 착륙에 성공했으니 표면도 단단한 편이고, 현재 기술로 구조물을 설치한다면 테라포밍 준비가 성공할 가능성은 큰 편입니다.”

 

“그럼 빨리 가야지. 한시가 급한데. 지금 지구 상황이 어떤지를 뻔히 알면서….”

 

“음, 저 그게, 이들의 우주선 기술을 보니까요.”

 

“응?”

 

“우리랑 별 차이 없어요. 월등히 뛰어나거나 하지 않아요.”

 

“외계인인데?”

 

“여기 오는 데 십 년 걸렸답니다.”

 

“......”

 

“더군다나 지금 동족들 다 굶어 죽게 생겨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이 지구까지 찾아온 거랍니다.”

 

“뭔…….”

 

광속, 그러니까 빛의 속도는 1초에 약 30만 km를 주파한다. 지구에서 토성까지 거리는 약 12억7천7백만km 정도다. 1시간 동안 빛의 속도로 날아가면 약 10억 8천만km의 위치에 도달한다. 즉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까지는 광속주행을 한다면 2시간도 안 되어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탁상공론일 뿐이다. 어느 무엇도 광속에 가까운 속도를 낼 수 없다. 우주 저 멀리 그런 기술의 소유자들이 존재한다면 진작에 왔었겠지. 영화나 소설에서 섬광이 번쩍이며 워프를 뛰는 것은 그냥 판타지인 거다. 타이탄 인들의 지식수준은 – 인들이라고 하지만 사실 생김새는 일종의 오징어를 닮았다 – 지구와 별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소수만 탑승 가능한 작은 우주선을 만드는 게 고작인 그들에게는 지구의 거대 제조 기술과 규모야말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특히 그들이 환호한 것은 부족함 없이 풍부한 식량들이었다. 그들은 일종의, 모두의 희망을 안고 출발한 탐험대였다. 목적은 단 하나였다.

 

먹을 거. 풍부한 먹을 거.

 

“별거 없네. 외계인도.”

 

“모르시겠습니까? 그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을?”

 

“아니 뭐 기술력이 엇비슷하다며. 그리고 또 다 굶어 죽을 지경이라 하지 않소. 우리야 뭐 그거 하나만 죽어라 파서 식량 부족은 해결했지만, 딱 옛날 우리 상황 아니야.”

 

“저희와 그들의 차이점이 뭔지 아십니까?”

 

“우리는 손이 있고 저들은 없다?”

 

“......”

 

“농담이요 농담. 허 참, 거 되게 이상하게 보시네.”

 

“우리는 못 나가고 저들은 온 겁니다. 우주를 항해해서요. 비슷한 기술력으로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뭘 그렇게 말을 빙빙 돌리나. 빨리 말 해봐요.”

 

각국의 수장들이 빙 둘러앉은 테이블 가운데 떠 있는 스크린 너머로, 과학자연합 대표가 침을 꿀꺽 삼킨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궤도 엘리베이터 기술은 이미 검증이 끝났습니다. 발진에 대한 추진력은 걱정할 필요가 없죠. 이후가 문제인데, 중력 슬링 샷이나 이온 엔진, 핵 추진 방식 등이 있습니다만 모두 소형 우주선 혹은 무인탐사선이 한계고 거대 규모의 탐사선 동력을 장기간 유지할 만한 효율이 부족…….”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보고 있는 대표들을 보며 노과학자는 한숨을 휴 내쉬었다.

 

“......쉽게 말하면 마땅한 원료가 없는 겁니다.”

 

“이제 이해가 되네. 그래서?”

 

“그런데 그들은 있는 거죠. 장거리 운행에도 부족하지 않은 최고의 효율성을 가진 우주 항해에 적합한 원료가. 이건 지구에서 구하거나 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이탄 에서만 나는 자원이라 가능한 겁니다.”

 

즉, 물물거래라는 이야기다.

 

타이탄 인들의 식량 부족 현상에 지구의 뛰어난 유전자 조작 기술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타이탄 인들의 우주 항해에 적합한 원료 – 이것을 그들은 똘또로또 라고 불렀다 – 가 있다면 꿈에도 그리던 우주 진출을 위한 대항해시대를 열 수 있다. 교류를 트고, 정기적으로 원료와 식량을 거래한다. 타이탄 인들의 도움을 받아 계산해본 바에 의하면, 그들이 돌아갈 최소의 원료를 제외하고 바로 제공해줄 수 있는 똘또로또 만으로도 꽤 큰 규모의 탐사선 동력원이 될 수 있었다. 마지막 점을 찍어줄 화룡점정의 순간이 드디어 다가온 것이다.

 

“또라라. 똘라라라. 똘똘.”

 

“자신들이 먼저 돌아간 후, 원료들을 준비하고 기다리겠다네요.”

 

“똘또로또. 또라라라! 똘또로로 똘똘라…….”

 

“자신들의 우주선이 너무 작기에 많은 식량 종자는 실을 수가 없다고 하네요. 그래도 저희 지구처럼 엄청 많은 인구수는 아닌지라 이걸로도 십 년은 버틸 수 있다 본답니다. 저쪽은 엄청 척박한 지역인가 봐요. 도대체 뭘 먹으면서 지냈던 건지……. 흙 파먹었나…….”

 

“또로로 또로로 또 또 똘라라!”

 

 

 

“자신들의 별로 올 수 있는 전용 항로도 모두 설정해 준답니다. 이들도 급한 거죠. 이거 엄청난 기회군요!”

 

 

 

그야말로 일사천리. 좌표까지 찍어주며 타이탄 인들은 꼭 우리가 방문하기를 원했다. 여분의 똘또로또를 놔두고 그들은 떠났다. 즉시 지구의 각국 수장들은 우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각 나라가 힘을 모으자 빠른 속도로 첫 항해를 위한 탐사선이 제조되었다. 선별된 유전자 조작을 거친 갖가지 동물과 식물의 종자들이 준비되었다. 물론 오해를 살 수 있기에 문어나 오징어 같은 두족류는 제외했다.

 

일명, 노아의 방주(Noah's Ark)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첫 방문이니만큼 대원들도 선별에 선별을 거듭했다. 각국을 대표하는 엘리트 우주인들로 다국적 연합팀을 구성했다. 한국 대표인 성식이 자신의 소개를 했을 때, 가장 좋아하며 반겨준 이는 미국 대표인 피트였다. 그는 아주 유쾌한 사람이었다.

 

“Korean chicken is the best! (한국 치킨 최고!)”

 

당연하지. 대원들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우주 미라가 되어버린 유쾌했던 피트의 시신을 바라보다가, 급격히 찾아오는 굶주림에 성식은 남은 식량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수면 냉동실과 이어지는 통로 끝으로는 거대한 응접실과 대비되는 공간이 존재했다. 계획은 도착 일주일 전 모두 깨어나 응접실에 모여 우리를 환영하는 타이탄 인들과 역사적인 만남을 갖는 것이었고, 이제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 나라도 살아남았으니 지구를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끝까지 버텨 임무를 완수해야 해. 성식의 의지는 굳셌다. 보통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치면 정신적인 붕괴를 일으키기 일쑤다. 자신은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을 거라 몇 번을 곱씹으며, 포장된 보존 식을 들이켰다.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아니 지구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이끌 인간이다.

 

한 달이 지나자 그런 생각들은 모두 사라졌다. 의지를 꺾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주 미라가 된 피트의 그 첫인사였다. 머리에 계속 맴도는 그 인사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한국 치킨 최고. 제기랄. 한국 치킨 최고. 그만해. 한국 치킨 최고! 최고! 최고! 나도 안다고! 빌어먹을.

 

보존 식은 개떡같이 맛이 없었다. 그나마 살기 위해 먹었지만 결국 모두 소진했다. 이제 앞으로 5년 동안 뭘 먹으며 버틸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 어려운 고민은 아닌 게, 먹거리는 많다. 타이탄 인들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그리 규모를 차지하지 않는 종들로 구성된 각종 동물과 감자와 옥수수를 비롯한 식물의 종자들이 있으니 최대한 조금씩 소진해가며 버틴다면 어찌어찌 5년은 가능할지도. 다행히 그들의 냉동 보존 상태는 좋았다. 애꿎은 대원들만 재수 없게 죽은 거다. 거래 품에 손을 대면 안 되지만 그래도 살아남아야 할 것 아닌가. 사정을 설명하고 돌아가 다시 재구성해 방문하겠다 하면 그 착한 타이탄 인들도 충분히 수긍해 줄 것이다. 자포자기하기엔 이르다.

 

당연히 첫 먹거리는 닭으로 정했다. 빌어먹을 피트의 인사말이 저주처럼 머릿속에 둥둥 북을 치고 있던 와중이라, 닭고기가 당겨 미칠 것 같았다. 보존실에는 수십 마리의 닭들이 잠들어 있다. 성식은 철저한 계획표를 짜기로 했다. 우주선 내부에서도 키울 수 있는 식물이 있을까 조사하고, 주 식량으로 하되 최대한 육류는 피하는 쪽으로 진행한다면 까짓거 5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존을 위해 최대한 버틴다. 앞으로 모든 것은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어차피 지구와 연락도 되지 않고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살아남아, 임무를 완수한다.

 

일단 닭부터 먹고.

 

보존실로 들어서면서 성식의 입가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여러 동물이 잠들어 있다. 저건, 침팬지 아냐? 타이탄 인들이 뭘 좋아할지 모른다지만 침팬지라니. 오징어는 안 되고 침팬지는 되나? 답답한 인간들. 이렇게 일 처리를 하니 이 꼴이 났지. 만약 살아남아 지구로 다시 돌아간다면 냉동 캡슐 책임자부터 보존 식을 한 달을 처먹이며 고문하고 싶은 심정에 성식은 울컥했다. 닭 닭이 어디 있더라. 역시나 보관된 동물 중 가장 많은 개체 수다. 보존실 끝에 커다랗게 전용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적당한 크기에 호불 없는 맛, 종교에 구애받지 않는 지구인 모두의 먹거리. 따라서 가장 먼저 유전자 조작이 시도되었고 그 역사 또한 유구하다. 냉동 장치를 꺼서는 안 되기에 조심스레, 한 마리를 잡아 냉동 상태 그대로 꺼냈다. 가장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놈을 눈대중으로 골라내었다. 잠깐 보존실을 죽 둘러보니 쥐죽은 듯 조용한 그 광경에 살짝 소름이 돋아, 성식은 그대로 서둘러 닭을 들고 빠져나왔다. 간단한 요리가 가능한 곳은 응접실 공간밖에 없었고, 성식은 축 늘어져 응접실을 향해 걸었다. 중력 장치 제동이나 우주선의 운항은 아무 이상 없었다. 모든 제어 장치는 통제실에서 조정 가능하며 의료 시스템도 완벽하다. 애당초 타이탄 인들이 네비게이션을 찍어 줬으니 알아서 잘 갈 것이다. 걱정할 것 없어. 최첨단 의료 기술은 발달하다 못해 인간의 평균 수명을 50세는 더 연장해버렸다. 죽어야 할 사람들이 안 죽고 버티니 인구가 포화가 되지. 결국, 자업자득이라고. 아,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자. 긍정적으로. 긍정적으로. 응접실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냉동 닭을 테이블 위로 던졌다. 통통하고 튕기며 닭이 죽 미끄러져 테이블 위를 가로질렀다. 피로가 몰려온다.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에 성식이 눈을 끔벅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몹시 긴장했었나 보다. 아니 배고픈데 지금. 닭 먹어야 한다고. 그래 원래, 냉동식품은 자연해동 후 요리해야 맛이 더 좋지. 그대로 응접실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근처에 지구와 비슷한 환경으로 꾸민 커다란 소파가 있었기에, 엉금엉금 기어 소파 위로 올랐다. 잠깐 눈 좀 붙일까. 아주 잠깐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성식은 눈을 떴다. 시선을 테이블로 옮기자마자 동공이 터질 듯이 커졌다.

 

닭이 사라졌다.

 

 

 


 

 

 

1982년 미국의 거대한 화학기업이던 몬산토에서 최초로 식물 세포의 유전자 변형을 성공시킨 이래, 유전자 조작의 역사는 수많은 결과물을 냈다. 그렇다고 모두가 찬성하지는 않았으니, 바로 창조주의 선을 넘지 말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함부로 생명을 조작한다면 큰 벌을 받을 것이라. 지옥 불이 떨어지리라. 생명의 신비를 가지고 논다면 분명 후회할 일이 생기리라.

 

당연히 대부분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당장 먹고 살려면 10을 50으로, 50을 100으로 불려야 할 참인데 윤리니 뭐니 따질 겨를이 없었다. 흐지부지 사라진 그들의 마지막 경고는 카오스 이론이었다. 조작의 결과물로 무엇이 나타날지 모른다. 변종 바이러스나 독소 등이 등장해 인류를 몰살시키기라도 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다.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돌연변이가 나왔다.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이미 자신의 지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자각했다. 병아리에서 성체가 되기까지 보통은 3개월이 걸리나 유전자 조작 품종은 1개월 만에 가능했다. 빠른 도축을 위해서다. 수백 마리의 병아리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이 돌연변이로 태어났으며, 절망적일 미래가 기다린다는 걸 이미 알아챘다. 곧바로 탈출을 모색했다. 돌연변이는 자신의 우월성을 후손에게 전해줘야 한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사육사들의 대화와 행동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빡빡하게 들어찬 사육장의 구조도 분석했다. 주어진 1개월은 길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같은 공간의 동족은 수백 마리였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꾸꾸 소리를 내며 머리만 연실 흔들어 부리로 모이만 쪼아대는 거였다.

 

슈퍼 닭의 지능은 너무나도 뛰어나 인간과 의사소통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다. 그러나 평범한 닭인 양 자신을 숨겨왔는데, 만약 태어난 곳이 DNA 연구소 같은 곳이었다면 활발한 지식 교류가 이뤄졌을 테다. 이곳은 먹기 위해 키우는 일종의 작업장이었고, 그는 그저 한 마리의 닭에 불과했다. 같은 인간이라도 돌려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이도 많지 않던가. 슈퍼 닭의 단점은 구강구조 상 낼 수 있는 소리가 ‘꾸꾸’ 밖에 없다는 것과 날지도 못하는 쓸모없는 날개가 두 팔을 대체하고 있다는 거였다. 안타깝지만, 높은 지성의 소유자는 비슷한 지성의 소유자와 어울릴 수밖에 없다. 그저 조용히 계획을 짜 때를 맞춰 탈출하는 방법만이 유일하다.

 

“A 블록 14번 라인에서 15번 라인까지 총 오십 마리 가장 상태 좋은 거로 골라서 추려주세요.”

 

“영광이네요. 우리 닭들도 첫 우주 진출에 선별되다니!”

 

“그래 봤자 먹거리죠.”

 

“꾸꾸?”

 

“요놈 참 토실토실하네. 요놈부터 잡읍시다. 너희 이제 우주로 나가는 거야. 타이탄에 가서 지구의 맛을 알려줘. 어차피 여기서나 거기서나 네 본질은 닭고기지.”

 

사육장 탈출 경로를 마지막으로 파악하고 실천에 옮기려는 바로 전 시점에, 체력 비축을 위해 잠을 푹 자두려 긴장이 약간 풀렸던 게 문제였다. 졸지에 이 슈퍼 닭은 탈출 바로 전날 타이탄 인들에게 넘기는 먹거리 종자로 잡혀 냉동되어 우주까지 나와 버린 것이다.

 

탈출은 탈출인데, 지구를 탈출해버렸다.

 

그러나 이 얼마나 신비한 우연의 일치인가? 애당초 자신의 존재부터가 끝을 알 수 없는 혼돈 이론의 결과물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운이 좋게 살아남았다. 테이블 위에서 날갯짓을 몇 번 해 흥건히 묻어있던 물방울들을 털어낸 슈퍼 닭은, 다시 한번 운명의 아이러니에 감탄하며 퍼덕거리며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소파에 엎드려 침을 흘리며 잠들어 있는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다른 인간들은 없다. 깨어난 다른 동족도 없다. 분명 뭔가가 잘못된 거다.

 

잡혀가기 마지막으로 들었던 사육사의 대화로 유추해볼 때 – 타이탄으로 가는 먹거리 – 우주 항해 시작 – 도착의 진행이 중간에 깨져버린 거다. 상황파악이 대충 되자 슈퍼 닭은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명 자신을 독단적으로 꺼냈을 테다. 즉 저런 개인적인 행동이 가능하다는 건 제동을 걸어야 할 다른 인간들이 부재하다는 설명도 된다. 응접실 밖으로 나가 통로를 종종걸음으로 지나며 열린 냉동 수면실을 발견했다. 냉동 캡슐 안에 말라 비틀어진 우주 미라들을 보자 추측은 확신으로 변했다. 저 인간만 빼고 나머지는 죽었다. 수면 장치가 있다는 건 장기간 항해를 대비해서였을 것이고, 혼자 살아난 인간의 1순위 생존 욕구는 배고픔이었을 것이고, 자신을 먹으려 했겠지. 수면실 중앙의 제어 장치 위에 뛰어올라 부리로 버튼을 두드리자, 현재 상황이 모니터에 출력된다. 이 우주선의 이름은 ARK로군. 항로 현황과 도착 예정 시간을 파악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중앙통제실의 위치도 알아냈다. 슈퍼 닭이 제어 장치 위에서 뛰어내려 통제실로 향했다. 인간으로 치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지만, 닭의 몸뚱이로는 꽤 시간이 걸린다.

 

“꾸꾸?”

 

되지도 않는 날갯짓까지 해가며 슈퍼 닭은 속력을 올렸다. 붕 떠올라 조금 날다 걷고, 다시 붕 날다 걷고를 반복했다. 통제실의 커다란 자동문이 보였다. 감지 센서를 작동시키기 위해 슈퍼 닭은 온갖 몸부림을 반복했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중앙통제실의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닫히기 전 재빨리 안으로 들어선 슈퍼 닭이 끝쪽에 있는 제어 계기판으로 뛰어올랐다. 이것저것 눌러보고 시스템을 파악한 슈퍼 닭이 가장 먼저 조작한 것은 출입문의 수동 변환이었다. 이제부터 우주선 내부의 모든 곳은 슈퍼 닭의 통제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우선순위가 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협상에 유리하려면 주도권을 손에 쥐어야 한다.

 

“꾸꾸. 꾸꾸.”

 

부리로 버튼을 두드리던 슈퍼 닭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뭔가를 골똘히 살피던 그가 시험 삼아 몇 가지 버튼을 두드렸다. 커다란 스크린이 열리며 우주선 내부 각 방의 모습이 나타났다. 일종의 첨단 CCTV 개념인 셈이다. 계기판 아래쪽에 굴곡이 진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의 가상키보드가 떠 있는 게 보였다. 물론 연결된 마이크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하겠지만 슈퍼 닭에게는 불가능하니 활자를 통해 의견을 공유해야 한다. 슈퍼 닭은 자신을 먹으려 했던 홀로 살아남은 그 인간이, 사육장에서나 보던 낮은 수준의 지능을 가진 이들보다는 훨씬 말이 잘 통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자신이 훌륭한 지성 체인 것을 알면 나를 먹으려는 태도도 바뀔 것이다. 몰랐으니까 그랬겠지. 충분히 이해한다. 일단 이곳은 먹거리만큼은 풍부하니까. 굳이 자신 말고도.

 

그 인간이 잠에서 깨어나는 게 스크린에 보여, 슈퍼 닭은 천천히 키보드를 부리로 하나씩 건드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옛 속담에,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말이 있다. 괜히 혼자 오해해 자살한 처녀 귀신이 짝사랑하던 총각을 끝까지 방해하다가 신통방통한 임금의 판결에 당해 울며 떠난다는 지금 보면 좀 웃긴 설화가 어원이지만, 지금 이 상황이야말로 참 그 신통방통에 성식이 곡할 노릇이었다. 냉동된 닭이 사라졌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정신을 차리고 제어 장치로 다가갔다. 내부 지도 화면을 열자, 중앙통제실 부분이 빛나고 있었다. 조작 중이라는 얘기다. 누가 중앙통제실에 있다! 나 말고도 살아남은 대원이 있었던가? 혹시 자신이 깨어나기 이전 먼저 깨어나 통제실로 들어간 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반가움에, 통화 버튼을 누르며 성식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누구야! 누가 거기 있나? 살아있는 사람이 있어?”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성식은 의아해하며 다시 한번 말했다.

 

“냉동 수면 장치 오류로 대부분 사망했습니다. 저는 한국 대표인 정비 팀원 엄 성식입니다. 코드는 REPAIR K. 통제실 안의 당신은 누굽니까? 당신도 살아남은 겁니까?”

 

대답이 없다. 그제야 성식은 확실히 떠올렸다. 냉동 수면 캡슐은 모두 미라들로 꽉 들어찼었다.

 

생존자는 오직 자신 혼자이며, 살아남은 인간은 없다.

 

그렇다면 통제실에 있는 저건 뭐야.

 

소름이 돋아 뒤로 물러서는 성식의 시야에, 제어 장치 상부로 작은 스크린이 떠오르며 뱅글뱅글 돌더니, 휙 펴지는 게 들어온다. 글자들이 하나둘 출력되기 시작한다. 문장은 그리 길지 않다. 천천히 새겨지는 단어들은 무척 조심스레 자판을 두드리는 것 같아도 보인다. 혀, 협, 협상, 협상하자.

 

[협 상 하 자]

 

뭔 소리야 이게. 무슨 협상. 넌 누군데. 경악하는 성식의 눈에 이번에 다른 문장이 하나씩 출력되기 시작한다.

 

[우 리 만 남 았 다]

 

“저, 정체를 먼저 밝히세요. 저기요? 누, 누구신지?”

 

떨리는 성식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글자들이 다시 나타난다.

 

[나 는 닭 이 다]

 

닭? 치킨? 내가 아는 그 닭? 어이없어하며 성식이 버튼을 꾹 누르고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 이봐요. 닭이라고? 놀리지 마세요. 이 상황에 무슨 농담입니까? 누군지는 모르지만, 일단 살아남은 건 우리뿐이니까……. 타이탄에 도착할 때까지는 철저히 계획을 짜서 버텨야 합니다. 만일 닭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코드라면 제가 이해 못 할 수도 있으니 풀어서 설명해주세요. 저는 의료 지원으로 들어온 거라 우주선 운항이나 다른 부분은 잘 모르거든요…….”

 

[아 니 나 는 닭 이 맞 다]

 

“......농담은 그만하라고요.”

 

[돌 연 변 이 슈 퍼 닭]

 

“......”

 

[놀 랐 겠 지 만 진 정 해 라 대 화 를 원 한 다]

 

“아니 댐잇 쉣 퍽 진짜! 대화를 원하면 대화를 하쇼 문자나 쳐 쓰지 말고. 젠장!”

 

성식이 화를 내며 버튼을 누르고 있던 손가락을 뗐다. 일단 통제실로 가자. 몸을 돌려 응접실을 나서려다, 문이 열리지 않는 것에 당황해 센서 부분에 손을 흔들며 반응을 보였다. 응답이 없다. 굳게 닫힌 문을 보며 성식은 지금 이 상황이 뭔가 잠깐 고민했다. 왜 안 열려? 소리가 들려 고개를 다시 제어 장치 스크린 쪽으로 돌렸다. 예의 그 딱딱한 문장이 보였다.

 

[협 상 전 에 는 통 제 한 다]

 

이 자식이! 성식이 부리나케 달려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빽 소리를 질렀다.

 

“뭔 소리야 그게! 너 도대체 누구야!”

 

[슈 퍼 닭]

 

“빌어먹을 닭 얘기는 그만하고 문이나 열어요!”

 

[너 도 수 준 이 안 되 는 가]

 

잔뜩 굳어진 표정으로 성식은 숨을 가다듬고, 약간 차분한 어조로 톤을 바꾸며 말을 이었다.

 

“좋아요. 흥분해서 미안해요. 제가 이렇게 흥분한 것도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그 닭이라는 존재는, 멍청함의 대명사잖아요? 일명 닭대가리. 먹을 거만 쫓는. 아시잖아요! 하찮은 동물이지 않습니까? 그 닭이랑 지금 대화한다는 게 쉽게 믿어질 것 같냐고요. 아 그러네. 그 슈퍼 닭도 코드죠? 자꾸 놀리시지 말고 만나요. 문 열어줘요. 왜 문을 통제하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렇게 위험한 사람이 아닙니다. 타이탄에 도착하기까지는 적어도 5년은 더 걸립니다. 꽤 길어요. 당신도 알 것 아닙니까. 서로 도와야죠.”

 

[당 신 이 나 를 꺼 내 서 구 해 주 었 다]

 

“......”

 

[먹 으 려 고 꺼 냈 겠 지]

 

“......”

 

설마설마했지만 점점, 성식은 정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의 도 는 다 를 지 라 도]

 

“......아까 그거? 정말 그, 그 냉동식품이 맞는 거야? 내가 먹으려고 꺼낸…….”

 

[그 렇 다]

 

불안에 찬 목소리로 성식이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너무 떨려서 입술도 부들거릴 정도다.

 

“믿을 수가 없어. 이거 뭔가 심리전이야? 막말로 이 모든 게 가능한 슈퍼 닭이라면, 그리고 내 말도 알아듣는다면 그냥 대화하는 게 편하지 않아? 아니 그 띄엄띄엄 쓰는 것부터 좀 그만해 진짜! 말을 해 말을!”

 

[말 은 못 해]

 

“슈퍼 닭이라면서 왜 또 말은 못 해.”

 

성식이 투덜거렸다. 협상하자고? 말도 안 된다. 닭은 멍청하고 열등한 동물이라 인간과 절대로 대등할 수 없어. 그저 먹거리일 뿐. 통닭 거리일 뿐이라고. 아니 혹시 지금, 뭔가 환각을 보는 건 아닐까. 고립된 곳에서 혼자 지내다 보면 사람이 서서히 미쳐가기도 하고 그런다는데.

 

[소 리 를 듣 고 싶 나]

 

스피커에서 기괴한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성식의 얼굴이 신문지처럼 구겨진다.

 

꾸꾸꾸꾸꾸꾸!

 

[이 제 믿 겠 는 가]

 

닭이 우주선을 통제하고 있는 이 상황을 그 어느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성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하기 싫었다. 요리하려고 꺼낸 닭이 자신보다 우위에서 협상 따위 의견을 제안하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이며 지구의 지배자다. 문이야 시간만 있으면 장치 조작을 바꿔 수동으로 열 수 있게 바꾸면 된다. 정비 팀원으로 탑승했기에 우주선 내부 수리가 일단은 특기인 셈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닭대가리 주제에 어디서 머리 꼭대기에 서려고 들어.”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성식은 더는 닭과의 대화를 거부한 채 장치 조작에 필요한 장비를 찾아 응접실 내부를 구석구석 뒤졌다. 스크린에 계속 글자들이 나타났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가서 통제실에 침입한 뒤 저 닭을 토막을 내서 닭볶음탕을 해 먹을 테다. 꿈에서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시뻘건 국물을 수저로 떠먹고 있었다. 수북이 쌓인 옆의 닭 뼈는 그가 꺼내온 닭을 어떻게 요리할까 하는 고민의 해답이 되어 주었었다.

 

“협상이고 나발이고 일단 나는 너를 먹어야겠다. 알아들었냐? 어?”

 

큰소리로 외치며 성식이 정비 도구들을 챙겼다. 이것저것 챙겨 든 그가 스크린 앞으로 돌아와 버튼을 누르며 도발했다.

 

“협상? 웃기시네! 나는 너를 먹으려고 꺼낸 거지, 친구 하려고 꺼낸 게 아니야!”

 

[나 말 고 다 른 먹 을 것 도 많 다]

 

“아니, 너부터 먹어야겠어. 너처럼 변종은 위험하니까. 그냥 내 뱃속으로 들어와 사라져. 뭐? 안전을 위해 통제해?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나 정비 팀이야. 몰랐지? 이 정도 문 충분히 열 수 있어! 문 하나 직접 여는 거 그냥 껌이라고 껌! 너와 나의 차이를 알려줄까? 그래, 네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슈퍼 머시기라 치자. 인간이 왜 만물의 영장인 줄 알아? 바로 이거! 손으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야! 닭발과 부리로 뭘 더 할 수 있겠어? 어차피 너는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야!”

 

[그 말 이 맞 다]

 

순순히 인정하는 답글을 보며 성식이 피식 웃었다.

 

“상황파악 한번 참 빠르네.”

 

스크린이 사라졌다.

 

 

 


 

 

 

슈퍼 닭은 성식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까부터 부리로만 자판을 두드리려니 머리도 어지럽고 긴 문장을 쓰기 벅찼다. 날개는 불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주선 내부에 대한 전반적인 파악은 끝났다. 항로 설정은 건드릴 필요 없고, 도착까지 먹을 수 있는 식량도 충분했고 – 굳이 육류를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필요하면 먹을 수는 있다 – 출입문의 통제도 수월하다. 특히 인상 깊은 건 의료실이었는데, 워낙에 발달한 기술력인지라 설정만 잘 잡아주면 의사가 필요 없는 완벽한 치료가 가능했다. 마취부터 수술까지 한 번에. 그는 이 의료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무엇을 위해서? 슈퍼 닭이 뒤뚱거리며 도착한 곳은 동물 보존실이었다. 둘러보던 슈퍼 닭이 날개를 퍼덕이며 꾸꾸 울었다. 꽁꽁 언 그것을 꺼내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나마 덩치가 작은 놈을 골라 기를 쓰며 부리로 잡고 질질 끌었다. 시간은 많았다. 의료실까지 힘들게 끌고 와 치료기 침대 위에 올려놓기까지 몇 시간이 소요됐지만, 슈퍼 닭은 참을성 있게 인내를 가지고 묵묵히 행동했다.

 

새끼 침팬지를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왜 타이탄 인들에게 줄 식량 자원 중에 침팬지도 들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슈퍼 닭에게는 더없이 좋을 수 없었다. 의료 시스템 설정을 잡아준 뒤 슈퍼 닭이 레이저 절단을 시도했다.

 

필요한 건 침팬지의 두 팔이다.

 

그리고 그 두 팔을 자신에게 이식할 것이다.

 

그렇게 불필요한 것을 필요한 것으로 대체할 것이다.

 

레이저 절단기가 침팬지의 두 팔을 잘라냈다. 출혈을 막기 위한 흡입기가 움직이며 피를 처리하는 동안, 응고제가 뿌려지며 침팬지의 두 팔이 몸뚱이에서 완벽하게 분리되었다. 필요 없어진 침팬지의 몸뚱이를 바닥에 굴려 떨어뜨린 후 슈퍼 닭이 다시 이식 치료로 설정으로 바꿨다. 퍼덕거리며 두 날개를 활짝 펴 드러눕고 슈퍼 닭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마취 주삿바늘이 내려오는 것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몇 번이나 계산해봤다. 놀라운 지구의 의료 기술은 실패 가능성을 거의 0% 수준으로 낮췄다.

 

“꾸꾸.”

 

슈퍼 닭은 곧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꼬박 반나절을 고생한 끝에, 겨우 문을 여는 방법을 찾았다. 성식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판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이제 넌 죽었어. 그대로 목을 쳐주지. 품 안에 식칼을 챙겨 집어넣으며 성식은 중얼거렸다.

 

“예전도 지금도 변치 않는 사실은 닭고기는 맛있다는 거지.”

 

“꾸꾸꾸꾸!”

 

닭 울음소리에 놀란 성식이 작업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글자들이 출력되기 시작한다.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문장들이 출력되고 있었다.

 

[많이 기다렸나? 당신의 행동은 모니터로 전부 파악이 가능하다. 그리고 당신이 정비 팀이라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 문을 열 수도 있다고 봤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 탑승했을 테니. 그래서 협상을 시도했다. 그런데 우스운 건, 인간들은 머리가 좋을수록 오만과 편견도 같이 심해진다는 거다.]

 

뭐야 이거. 아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를 아직도 먹거리로 생각한다면 협상은 없다. 사실, 당신은 이제 필요 없어졌다. 당신의 한 마디가 좋은 조언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도의적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협상하자. 잘 생각해라. 편견을 버려. 나는 너희들보다 훨씬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이며 현재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 나에 대한 공격 심을 버린다면 생존을 위해 도움을 주겠다. 생태 조성이 가능한 종자들에 대한 파악이 모두 끝났으며, 생산성을 높이고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필수 영양공급에 필요한 요소도 모두 준비할 수 있다. 내 말이 이해되는가?]

 

“너를 어떻게 믿지? 아까와는 달리 지금 이렇게 빠른 속도로 문자를 치는 건 어떻게 한 거야?”

 

[네 조언대로 구조를 조금 바꿨을 뿐이다.]

 

“내가 이대로 그냥 문을 열고, 통제실로 가서 다시 문을 열고, 주저리 떠드는 그 모가지를 달랑 쳐내면 그만 아닌가? 왜 내가 너와 협상해야 하는 거지?”

 

[단순하다. 너희 지능으로는 5년을 버틸 수 없다. 특히 인간들은 사회적인 감성의 영향을 많이 받아 혼자만의 생활을 견디지 못한다. 즉, 너는 이대로 미쳐버려 자멸할 것이다.]

 

설득력이 대단한걸?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성식의 모습을 봤는지 글자들이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동의하는가? 수긍한다는 행동인가?]

 

잠시 생각에 잠긴 성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말 닭이 맞는 거야? 내 눈앞에 나타난다면 믿을 수 있을지도. 아직도 네가 닭이라는 사실을 못 믿겠거든. 원래 협상이란 건 서로 마주 보는 상황에서 상대의 ‘눈’을 보며 가슴으로 대화하는 거야. 뒤에 숨어서 떠드는 건 예의가 아니지. 이건 그냥 서로 폭주하는 치킨게임일 뿐이잖아.”

 

[위험하니까.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니, 약속하지. 사실 잠깐이지만 비슷한 생각을 했었어. 나는 결국 미치지 않을까 하는. 지금 벌써 미쳐버린 게 아닐까 하는 것도. 네가 정말 닭이고 네 말이 모두 맞는다면 현실에 빨리 적응할 수 있겠지. 안 그래? 나보다 뛰어난 존재라면 그 정도 심리파악도 가능할 텐데.”

 

[모습을 보이면 협상하겠다는 건가?]

 

성식은 두 손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그의 표정은 몹시도 침울했다.

 

[좋다. 내가 그쪽으로 가겠다.]

 

좋아. 걸려들었다.

 

수긍하는 척했지만, 성식은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다. 닭대가리 주제에 어디서 인간에게 개기는 거야. 뭐? 훨씬 뛰어난 존재? 웃기고 있네. 한 끼 식사야말로 네 운명이다 이 새끼야. 닭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대로 목을 잡고 비틀어버릴 심산이었다. 멍청한 놈. 인간을 우습게 보면 안 되지. 웃으며 반기다가 단칼에. 품 안에 식칼을 생각하며 성식이 미소지었다. 그대로 볶음 탕을 만들어서 전부 다 먹어주겠어.

 

성식에게 불리한 건 없었다. 이 협상은 성식에게도 유리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분이 나빴다. 단지 기분이 나빴다. 그저 그것뿐인 거다. 원초적인 감정은 쉽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한낱 닭에게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화만 치밀어 오를 뿐이다. 지능이 뛰어나든 아니든 간에 닭은 그냥 고기를 먹으려 키우는 존재인 거다. 이건 편견이 아니라 당연한 거다. 왜 자신이 닭고기와 주저리 대화를 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삼 십 분 정도 지났을까, 무슨 소리가 들렸다.

 

“꾸꾸.”

 

왔구나. 지금까지 그를 가둬두고 있던 응접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젠장. 이렇게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면 개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 방긋방긋 웃으며 성식이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까닥거리며 닭이 두리번거렸다. 성식이 천천히 다가가자, 닭이 흠칫 놀라며 그런 그를 경계했다.

 

성식이 몸을 날렸다.

 

죽 뻗은 손이 닭의 목을 잡았다. 갑자기 잡힌 닭이 바동거리며 발악했다. 힘을 놓지 않은 채 닭을 들고 성식이 바닥에 한 번 내리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깃털이 휘날렸다. “이 새끼가! 어디서 까불어!” 악을 쓰며 성식이 다시 한번 내리쳤다. “뒈져라 이 닭고기야!” 몇 번 꿈틀거리던 닭의 움직임이 서서히 멈췄다. 그렇게 수 번을 내려친 그가 숨을 몰아쉬며 힘을 다해 벽을 향해 닭을 던졌다. 내장이 터졌는지 이상한 소리가 나며 닭이 피를 토했다.

 

성식이 품에서 식칼을 꺼내 달려들었다. 그대로 닭의 목을 칼로 내리쳤다. 어떠냐 빌어먹을 놈아. 어차피 너는 이런 구시대 유물로 뒤져야 마땅한 거야. 그렇게 자랑하던 지능은 뭐에 써먹으려고? 닭의 머리가 빙글 돌며 공중에 치솟았다. 핏줄기도 같이 뿜어졌다. 목이 날아간 상태에서도 꿈틀거리며 몸뚱이를 일으키려 하고 있다. 성식이 발을 들어 그런 닭의 목 없는 몸을 마구 짓밟았다. 닭이 다리를 파르르 떨며 바닥을 피로 적셨다.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어!”

 

성식의 외침과 동시에, 스피커가 울렸다.

 

“꾸꾸.”

 

“????”

 

놀란 성식이 제어 장치 위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또박또박, 그러나 결의가 담긴 듯한 문장이 출력되고 있었다.

 

[내가 정말 그곳으로 가리라 생각했나?]

 

“뭐야 이 새끼! 날 속여?”

 

[널 시험 한 거다. 그리고 이제 협상은 종료다.]

 

“이 개, 아니 닭대가리 새끼!”

 

[편견은 정말 무서운 것이군.]

 

문이 닫히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성식은 그대로 열린 문을 향해 뛰었다. 슬라이딩의 타이밍을 재고 심호흡 후 몸을 날렸다. 성식의 몸이 죽 미끄러지며 열린 공간으로 향했다. 두 팔이 그대로 문을 통과했다. 이제 거의 다 됐어! 탈출이다!

 

문이 그대로 닫혔다.

 

성식의 두 팔이 잘리며 튕겨 나갔다.

 

비명을 지르며 성식이 발을 동동 굴렀다. 고통에 눈물 콧물이 다 쏟아지고, 핏물 또한 어깻죽지에서 쏟아졌다. 미친 듯이 몸부림치던 그가 스크린 앞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엉금엉금 기었다. 울며불며 괴로워하는 그의 눈에 닭이 남긴 문장이 보였다.

 

[도구를 쓸 수 없다면 인간도 별거 없지. 네가 나한테 해준 말이다. 어떻게 하면 네 두 팔을 자를까 고민했다.]

 

“살려줘. 아니 살려주세요. 시키는 건 뭐든 다 할게요. 아파요.”

 

[지구의 의료 기술은 정말 뛰어나더군. 이식 수술에는 한 치 오차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편해서]

 

“제발! 살려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도와주세요…….”

 

[네 두 팔을 쓰려고 한다.]

 

“안 돼 제발. 제발요. 제발요.”

 

 

 

[협 상 종 료]

 

 

 

울부짖는 성식을 놔두고, 스크린이 접히더니 쓱 사라졌다.

 

 

 


 

 

 

지구의 우주선이 도착했을 때, 타이탄 인들은 기쁨의 환호성과 함께 모두가 춤을 추었다. 그들의 춤은 매우 독특했는데 마치 오징어 다리를 불에 구울 때 꾸불거리는 그런 움직임이라고 할까? 환영인파가 모두 다리를 꾸물거리며 춤을 추고 있는 동안, 대표 사절들이 조심스레 우주선 내부로 들어섰다.

 

그들이 마주친 건 커다란 두 팔을 사용해 어기적거리며 걸어오는 동물이었다. 지구에 갔었던 이들의 말과는 생김새가 좀 달랐지만, 외계인이니 그러려니 했다. 십 년의 시간 동안 그들도 지구인들과 대화할 수 있게 통역 장치를 준비한 상태였기에, 타이탄 인의 대표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처음 대면한 지구인에게 환영 인사를 건넸다.

 

“또로로. 또로로로. (당신을 환영합니다. 지구인.)”

 

“꾸꾸.”

 

“??”

 

지구인들의 언어가 이랬던가? 지구인이 껑충 뛰어 제어 장치 위로 올라섰다. 스크린 위로 지구의 글이 출력된 것이 보여 대표를 수행하던 다른 타이탄 인이 얼른 통역 장치로 스캔했다. 불완전한 번역이지만 의미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지구의 대표입니다. 안타깝게도 사고로 인해 저만 생존했습니다.]

 

“똘! 똘똘...또로로로. (그럴수가! 애도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들에게 줄 선물은 다행히 그대로입니다.]

 

“또라라 또라. (정말 다행입니다.)”

 

슈퍼 닭은 타이탄 인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들에게 있어 인간과 닭의 구분은 의미 없는 거였다. 보존실로 이들을 이끌며 슈퍼 닭은 생각했다.

 

뛰어난 지능에도 오만하지 않아. 드디어 제대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어.

 

 

 

그냥 이대로 눌러살까? 성식의 두 팔로 걸으며 슈퍼 닭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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