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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적송의 서재

2019.02.26 22:3902.26

적송의 서재

 

 

지난 사 년 동안 나는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이런 표현이 다소 과장되거나 비유적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물리적으로 엄연한 사실이다. 쓰지 못하니 벌지도 못했고 벌지 못하니 제대로 먹을 수도, 입을 수도, 바꿀 수도 없었다. 나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는 끊임없이 고향집으로 들어올 것을 넌지시, 때때로 강하게 권유했지만, 나는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평생 규칙적으로 살아온 아버지는 나의 경제활동이라는 표현을 누구나 그렇듯 당신이 살아온 삶에 그대로 대입시켜, 차마 내 얼굴을 마주칠 용기를 내지 못할 때에는 낮에 몰래 와서 대문 앞에 이런 저런 먹거리와 반찬을 놓고 가고는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살아온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아버지가 혹시나 하는 걱정에 내는 조심스런 발소리와 보자기에 꼭꼭 싸온 먹거리들을 혹시나 망가질까봐 사뿐히 바닥에 내려놓는 소리, 그리고 깊은 한숨과 함께 왔던 곳으로 돌아가며 어쩔 수 없이 내는 아버지의 몸짓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과 염려가 깊어질수록 스스로에 대한 경멸도 깊어졌다. 마치 눈이 먼 채로 지옥에 떨어져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절망에 빠지는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나 역시 그렇게 앞도 뒤도, 옆도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았지만 스스로를 경멸하는 습관을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이 독을 삼키는 일일지언정 한편으로는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점점 눈이 멀고 공허에 갇힐수록, 그 정도의 세월이면 응당 글자로 채웠어야 할 백지의 양만큼 나는 무기력해져갔다.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건, 더 큰 경멸과 무기력에 스스로를 잠식시키는 일이었다. 간혹, 이런 나의 삶을 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존심과 그것을 자양분 삼은 수치가 나의 손을 잡았다. 나는 이미 책을 낸 작가였다. 약간의 수고만으로도 내 이름과 내가 낸 책, 그리고 그 책을 칭찬하는 기사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결국 나는 포기했다. 희망을 이야기하던 청년작가에서 인생의 허무주의와 고난을 말하는 중견작가로 순식간에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청춘이고 싶었다.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포기가 사년동안 반복되고 나서야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들어가겠노라고 말했다. 그것은 예술적인 이유에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단지 삼백 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도둑질이라도 해야 할 판인 경제적 궁핍 때문이었다. 집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을 하면서 나는 아무런 머뭇거림도 없이 이사비용과 고향으로 내려갈 차비를 달라고 요구했다. 아버지는 흔쾌히 돈을 보내 주었다. 그 돈으로 뜨거운 커피를 사서 한동안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너무 빨리 식었다.

 

 

고향집으로 돌아간 날 나는 어릴 적부터 쓰던 컴퓨터가 있는 것을 보고는 쓰고 있던 컴퓨터를 팔았다. 돈을 받고 오는 길에 처음 저 컴퓨터를 살 때만 해도 얼마나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지 생각하니 쓴웃음이 났다. 집에 돌아오니 일찍 퇴근한 아버지가 창고로 쓰고 있던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무얼 하냐고 물으니 내게 책이 많아서 이 창고방을 서재로 쓸 생각이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구인정보를 검색하였다. 지금 내 상황에서는 학원 강사가 가장 현실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하지만 단 한군데도 이력서를 보내지는 않았다. 여전히 내 안에는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나를 뚫고 나가려는 어떤 이야기가. 어떤 계기만 주어진다면 당장이라도 뛰어나와 신화속의 야수처럼 울부짖으며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할 그런 괴물이. 그날 밤 삐쩍 마른 짐승이 나의 피를 빠는 꿈을 꾸었다. 날카로운 이빨로 내 몸 여기저기에 구멍을 뚫고 흘러나오는 피를 빨고 있는 짐승. 더 이상 나올 피가 없자 상처에서 글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안돼! 그 글자들은 안돼. 그 글자는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내가 세상에 소개할 괴물. 그러나 짐승은 그 글자들을 씹어먹기 시작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분쇄되는 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다. 비명을 지르며 짐승을 때렸다. 나의 주먹질에 짐승이 놀라 달아났다. 내 주위에는 가쁜 숨소리를 내뱉으며 죽어가는 글자들 천지였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만들고 있는 서재로 갔다. 읽지도 않는 책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책장이 필요할 듯 보였다. 돈을 벌면 가장 먼저 책장을 사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전화를 받았다.

 

 

하일환. 처음에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새벽에 대뜸 전화가 와서는 한 달만 하일환의 조수로 일해달라니. 원래 하일환의 조수로 일하던 사람이 신혼여행을 가게 되면서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가 돌아오고 주변을 정리할 한 달 동안만 임시로 일해 줄 수 있느냐는 선배의 전화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받게 될 금액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지난 몇 년간 가장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그 하일환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 중 한 명. 글을 쓴다는 사람 모두가 목표로 하는 작가. 나는 아버지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부랴부랴 짐을 꾸려 곧바로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나는 미리 가져온 하일환의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가 쓰는 책들은 기괴하고 뒤틀리고 악의적이지만, 또한 매력적이고 아름답기도 했다. 새삼 전화를 받기 전까지 하일환이라는 존재를 까먹고 있었다는 것이 의아했다. 선배가 알려준 곳은 버스를 타고 내려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빨리 움직여 하일환의 집까지 걸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곧 후회하기 시작했다. 애당초 인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 지나가는 차들은 지나치게 빨리 달렸다. 문학계라는 곳에서 내가 걸어갈 길이 없듯이, 버스정류장에서 하일환의 집까지 가는 길에도 내가 걸어갈 길은 딱히 없었다. 그리고 걸어가겠다는 나의 결정을 비웃듯이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하일환의 집에 도착한 것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좁은 땅에 저렇게 큰 집을 지었을까 싶은 엄청난 크기의 집이었다. 또한 위치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벽과 시시티브이, 사나운 개들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중무장한 군인이라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니었다. 이런 곳이 작가의 집이라니. 왠지 모르게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이렇게까지 했나라는 마음에 불안감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초인종을 누르려고 대문으로 다가가자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었다. 개들이 짖는 소리에 초인종소리를 못 들을까봐, 그런다고 소리가 더 크게 나는 것도 아닌데 초인종을 세게 눌렀다. 곧이어 문이 열렸다. 나를 노려보는 개들의 사나운 눈빛을 피해 나는 바쁜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문이 잠겨 있지 않은 것을 안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얼른 문을 닫았다. 한 마리라도 목줄을 끊어버리고 나를 향해 달려들 것 같았다. 창을 통해 밖을 보니 근육질의 검은색 마스티프 한 마리가 나를 노려보며 목줄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간략하게 정리된 채 냉장고에 붙어 있었다.

 

1. 먼저 부르기 전까진 절대로 찾지 말 것.

 

2. 식사와 청소는 해주는 아주머니가 따로 있음.

 

3. 주로 할 일은 이층 창고에 있는 원고정리.(제목과 내용이 섞여 있으니 제목에 맞는 내용을 찾아서 정리해놓을 것.)

 

4. 해가 지면 서재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 것.

 

5. 자네는 이층창고 방에서 자면 될 것이네.

 

나는 간략하게 적혀 있는 내용을 읽고, 하일환에게 인사를 하러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다가 가지 않기로 하고 곧장 한 달 동안 내가 기거할 방이 될 이층 창고로 향했다. 창고의 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 쌓여 있는 문서의 양은 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다. 문서들은 제목과 내용으로만 분류가 되어 있었고, 내용은 처참할 정도로 뒤죽박죽이었다. 제목의 뒷장에는 그 제목을 가진 소설의 대략적인 내용이 적혀있었는데, 이 문서를 정리하는 것은 그 대략적으로 흘겨 쓴 내용을 보고 추리를 한 뒤, 그 제목에 맞는 내용을 찾아서 정리하는 것이었다. 이걸 다 하려면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고, 이게 꼭 필요한 일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꼭 필요한 짐만 내놓은 뒤 곧장 작업에 착수했다. 그때 내 안에는 일말의 기대 같은 게 있었다. 하일환과 지내다보면 뭔가 실마리가 보일수도 있다는 기대. 그 막연한 기대를 품고 밥을 먹으러 오라는 연락이 있기 전까지 그 실효성을 알 수 없는 작업을 계속 이어나갔다.

 

 

저녁을 먹으러 간 나는 하일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원래 사진으로 그가 매우 신경질적이고 호감이 가지 않는 생김새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는 그 정도가 심해 불쾌한 감정을 넘어선 공포를 주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마디마다 구슬이라도 넣은 것 같이 흉측하게 부어오른 손가락을 움직여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일환이 먹는 음식을 훔쳐 먹는다는 죄책감이 들어 쉽사리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자네가 충분히 먹기까지 기다리지 않을 걸세.”

 

머뭇거리며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있는 내게 하일환이 눈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공포와 불쾌를 간신히 누르며 식사를 했다. 감정이 구체적인 단어나, 문장, 혹은 구토가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올까봐 최대한 천천히 먹으며 그 감정을 억눌렀다.

 

“아줌마가 음식을 잘하지.”

 

말 그대로 음식은 훌륭했다. 저런 외모의 하일환이나 한심한 인생의 살고 있는 내가 먹기엔 너무나 아까울 만큼.

 

“해가 지면 절대 서재에는 들어오지 말게.”

 

하일환이 나를 똑바로 쳐다본 것은 서재에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를 할 때가 처음이었다. 그 경고를 한 하일환은 벌떡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거실로 가 커튼을 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것을 지팡이로 가리킨 하일환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한 번 경고했다.

 

“이렇게 되면 서재에는 들어오지 말란 말일세.”

 

내가 대답을 할 틈도 없이 하일환은 서재로 사라졌다. 밥을 먹으면서 하일환의 두개골 안으로 숨으려는 듯 움푹 들어간 눈과 거름을 발라놓은 듯한 피부, 듬성듬성 한 머리카락이 떠올라 입맛이 사라진 나는 하일환이 서재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창고로 돌아가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구에서 오’라는 단편소설을 완전히 정리할 수 있었다! 그 소설을 몹시도 읽어보고 싶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피곤함이 몰려와 나는 창고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침대에는 눕지도 못한 채 여기저기 흩어진 종이를 모아 베개를 대신해 잠이 들었다. 평화로운 잠이었다. 무척이나. 그러나 잠이 주는 평화는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나는 언제인지 모를 새벽, 불안에 떨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모든 것은 내가 잠이 들었을 때 그대로였다. 바닥에서는 땀이 나지 않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은은한 열이 올라오고 있었다. 작은 창으로는 도시에서 보지 못한 깨끗한 달빛이 들어왔다. 한동안 나를 감싸고 있는, 주위와 어울리지 않는 공포의 원인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그 원인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명이었다. 그것은 단단한 문을 뚫고 들어와 이 크고 견고한 집 구석구석에 울리고 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덩달아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그것은 고통에 찬 비명이었는데, 그때까지 살면서 그런 비명을 질러야 할 정도로 고통을 받은 적도 없고, 그런 고통에 빠진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나는 공포를 이겨내려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비명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비명이 멈추면 비명을 지른 자가 느끼는 고통이 메아리처럼 남아 울렸다. 이층수색을 마친 나는 일층에 내려가서 다시 이곳저곳을 찾았다. 그때 다시 한 번 비명이 들려왔다. 그 진원지를 찾은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민에 빠졌다. 비명은 서재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머리에서는 해가 지면 절대 서재에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가 계속 떠올랐다. 그러나 다음번 비명소리가 들려왔을 때 나는 서재로 들어가기 위해 문고리를 힘차게 돌렸다. 문은 잠겨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드리며 하일환을 불렀다. 그때 서재에서 엄청나게 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지 마!”

 

엄청난 위압감이 나를 넘어뜨렸다. 넘어진 채로 나는 그 고함소리와 비명소리를 낸 사람이 같은 사람일 수 없다고도 생각했고, 하일환의 안전을 위해서 문을 부셔서라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을 접고 극심한 공포에 빠진 채 창고로 도망쳤다. 그리고 나의 비겁함이 부끄러워 벌거벗은 채로 이불속에 들어가 밤새도록 온몸을 격하게 떨며 울었다. 그렇게 경련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내 주위를 맴돌던 그 밤을 지나 날이 밝자 나는 하릴 없이 멍하게 일어나 하일환이 지시한 작업에 다시 몰두했다. 지난밤 있었던 일은 꿈이었거나, 나를 향한 시험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잠시 후에 아주머니가 와서 식사를 하라는 말을 하였다. 나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천천히 움직여 식당으로 향했다. 하일환이 내게 보일 태도가 무척 걱정이 되었는데, 식당으로 가는 동안 생각하기에 무척 화를 내거나, 혹은 모른척할 것이라는 두 가지 이외에는 다른 결론이 나지를 않았다. 그리고 만약 내게 화를 낸다면 나는 서재에 들어가지 않았노라고 항변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이 있어 다시 창고로 돌아가 ‘구에서 오’를 챙겨서 식당으로 향했다. 부끄럽지만 하일환에게 제대로 항변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거라도 내밀어 혹시나 나를 향할지 모르는 그의 화를 조금은 식히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고개를 숙이고 식탁에 앉아 하일환을 기다리는 동안 긴장 탓에 머리에서 땀이 났다. 그리고 하일환이 자리에 앉는 소리가 나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다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그전날 밤에도 그리 편하거나 호감 가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그날 아침에 본 하일환은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불려 나온 불길한 괴수 같은 모습을 하고 앉아 있었다. 핏기 없는 얼굴위로 기묘한 안광이 내려앉은 모습이 누군가의 죽음을 선언하기 위해 창백한 말을 타고 온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그전날 밤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진 하일한의 모습에 압도되어 얼떨결에 ‘구에서 오’를 그에게 내밀었다. 말없이 내게서 자신의 단편 소설을 받아든 그는 말없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식탁에는 음식들이 놓여졌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알 수 없는 검은 덩어리와 도저히 두 명으로는 다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고깃덩어리, 그리고 각종 채소와 과일까지. 그것은 일종의 만찬 같았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손님이라도 찾아오는 것인지 벙벙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를 흘깃 본 하일한이 읽고 있던 ‘구에서 오’를 찢어버리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의 잇몸이 너무 흐물거려 고기를 씹을 때면 이빨의 절반이 잇몸으로 들어갔다가 고기에 깊숙이 박혀 찰기 없는 잇몸을 한껏 늘리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면 잇몸의 피가 완전히 사라져 하얀색이 되었다가 고기에서 이빨이 빠져나오면 천천히 핏기가 돌았다. 그러나 완전히 피가 채워지기도 전에 하일환은 쉬지 않고 음식을 씹어 삼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대작가에 대한 존경이 사라지는 식사시간이었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으면서 하일환의 눈은 내게 고정돼 있었다. 그가 젓가락으로 검은 색 덩어리를 들더니 한 입 먹으면서 말했다.

 

“이건 선지야. 피를 보충해주는 데 좋은 걸세.”

 

하일환이 웃었다. 선지 찌꺼기들이 누런 이빨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리 질겨 보이지 않는 음식을 씹는데도 그의 잇몸은 지렁이처럼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

“미안하지만, 빨리 먹지 않으면 아침은 굶게 될 걸세. 내가 먹는 꼴이 궁금해서 앉아 있는 거라면 별 문제 없겠네만.”

 

그는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먹는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식사하는 모습에 대한 관심을 거두었다.

 

“저 소설을 읽어봤나?”

 

나는 아직 읽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제목이 왜 ‘구에서 오’인줄 아는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돌리 파튼의 노래 제목이야. 그 노래제목에서 따온 게 아니라 그냥 그 노래제목 그 자체라고. 큭큭큭.”

 

웃고 있는 그의 입에서 씹다 남은 음식이 튀어나왔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으려고 얼굴에 힘을 집중했다.

 

“그 젖 큰 컨트리 가수 있지? 아는가? 그 여자의 노래제목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하면 영감을 받은 거야. 하지만 알아듣지도 못하는 노래에서 무슨 영감을 받았겠나? 그저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돌리 파튼이 나왔어. 그런데 젖이 너무 큰 거야. 그때 나는 정말 한심하게 살고 있었거든. 얼마나 한심했는지 상상도 못할 거야. 그래서 손장난을 하고 제대로 닦지도 않고 저걸 쓰기 시작했어. 아마 자네가 만진 종이에서 아직도 내 정액냄새가 날지도 모르겠군.”

 

만약 내 기분을 망치기 위해 한 이야기였다면 완벽한 실패였다. 티브이를 봤다고? 나는 아버지 집에 돌아가기 전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팔아버렸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내 집에서는 티브이를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창 힘들 때에도 티브이를 볼 수 있었던 그가 내심 부러웠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거야. ‘구에서 오’라는 소설은. 나는 그때.”

 

하일환이 물을 들이켰다.

 

“타자로 글을 쓰면 죄악이라고 여겼지. 지금도 그래. 글은 손으로 써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펜촉이 종이 위를 거니는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야만 진정한 글이 된다고 말이야. 하지만 예전에는 젖이 큰 외국 여자가수를 보고 손장난을 치고 저런 걸 썼지.”

 

그가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 어쩌면 내게서 은연중에 맡을 수 있는 간절함의 냄새를 고약한 구취로 더럽히려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나는 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으며 딸딸이를 쳐도 좋고, 젖이 큰 여자가수를 보며 영감을 얻어도 좋으니 단 한글자만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을 듣고는 그때까지의 조소와 자책의 빛을 완전히 지운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서재에 가보게.”

 

나는 느닷없는 그의 말에 놀라며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의 말은 명령이나 요구라기보다는 부탁에 가까운 느낌이어서 이미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적개심과 반항심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얌전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말대로 서재로 향했다. 서재 문 앞에 서서 손잡이에 손을 얹었는데 그 전날 들었던 비명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리고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비명이 시작되고 다시 시작되고 또 다시 시작되어 비명들이 끊임없는 교집합을 만들어내며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 비명들을 이겨내려 문손잡이를 힘껏 돌리고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열었다. 육중한 무게의 문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바람에 흩날리는 천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덕분에 문에 끌려가듯 서재 안으로 들어서게 된 나는 한동안 말없이 서재의, 그리고 서재를 구성하고 있는 물건들의 모습에 넋을 빼앗긴 채 한참을 쳐다보았다. 서재안의 모든 목재들은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커다란 창문으로 한껏 들어오는 햇빛을 받은 그 붉은 목재들이 발하는 빛의 독특함은 인간의 하찮은 말문을 막기에 충분했다. 빛을 반사하는 것이 아닌, 빛을 흡수하는 그 아름다운 목재들은 책장으로, 그리고 책상과 의자로, 또 협탁으로 하고 서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서재의 공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책장을 응시했다. 책장의 붉은색이 마치 피처럼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히 환각을 본 것이라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뜬 다음 다시 응시를 했는데 마찬가지로 아주 느렸지만 천천히 붉은색은 기하학적인 방향으로 흘러내렸다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소름이 돋으려는 찰나 하일환의 손이 내 어깨를 잡았다.

 

“모두 적송으로 만든 것이라네.”

 

그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책장의 붉은색은 흐르지 않고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이 정말 정지한 것인지 집중을 하지 못해서 보지를 못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커다란 적송 두 그루가 서 있었네. 그것들을 잘라 만들었지. 여기 서재에 있는 모든 가구들을.”

 

나는 하일환이 말에 웃어야 예의인지, 진지해야 예의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나무나 목재에 대해서 문외한이었지만 적송으로 가구를 만들었다고 저런 빛깔이 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상식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서재가 내뿜는 색체에 압도되어 버린 나는 결국 하일환의 말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로 했다. 내가 그 기묘하고 압도적인 색체를 머금은 서재를 보고 꼼짝도 못하는 것을 본 하일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식탁으로 돌아가 남은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하일환의 어지럽게 흩어진 원고를 정리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두 작업 모두 절망적이었다. 글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 것도 문제였지만, 정리를 하기 위해 하일환의 글을 읽어야하는 것은 혹독한 고문이었다. 나는 몇 번이나 과연 이런 조잡하고 악의와 자기혐오에 가득한 배설물들이 글을 쓰는 사람들의 최종 목표인 하일환이 쓴 것인지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글을 쓰는 것도 원고를 정리하는 것도 손에 잡히지 않으면 나는 하일환 몰래 쓰레기통에서 건져 온 ‘구에서 오’를 테이프로 붙이는 작업에 몰두했다. 조각난 글들을 읽으면서 여간한 내용을 다 파악했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구에서 오’는 조각난 글들의 파편으로만 존재했다. 그 글을 읽으면 하일환이 나와 같이 글이 써지지 않는 시기에 느꼈던 좌절감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하일환과 조금 더 가까운, 아니 비슷한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서재의 붉은 색체를 보고 온 다음 받은 영감은 쉽게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그 색체를 글로 표현해 낼 재간이 내게는 없었다. 그러니 뭐든지, 그것이 유효한 것인지 아닌지를 따지지도 않고, 이것저것 간절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부끄럽지만, 어느 날에는 정말로 하일환의 정액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에서 오’ 원고에 코를 대어 냄새를 맡아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서는 습기와 먼지, 세월을 오랫동안 머금은 종이냄새만이 날 뿐이었다.

 

그 날 이후 하일환의 안색은 날이 다르게 좋아졌다. 아니, 좋아졌다기보다는 원래대로 공포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뿐이었지만. 하지만 시체의 모습에서 벗어난 그는 사나운 개들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고, 내게 느닷없이 농을 던지기도 하였다. 가끔 나의 시선이 서재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에는 친절히 서재의 문을 열어주었다. 안색이 좋아지는 하일환과는 다르게 서재의 적송은 내가 처음 봤을 때 가지고 있던 그 색체를 조금씩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내가 그 색체에 적응이 되어서 그런 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서재에는 한 발도 들이지 않은 채 적송으로 만들어졌다는 가구들을 보면서, 그리고 옅어지는 가구들의 색체를 보면서 너무도 간절하게 어떤 영감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색체가 금방이라도 사그라질 것 같은 불길한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영감은 쉽사리 글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불안과 좌절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나는 밥을 잘 먹지 못했다. 반면 하일환은 한 맺힌 사람처럼 밥을 먹었다. 그는 가끔 먹고 토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먹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약속한 한 달이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다. 그날따라 하일환은 밥을 거의 먹지 않았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하일환에게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는지를 물었다.

 

“자네는 ‘구에서 오’를 읽지 않은 것이 확실하군. 그걸 읽어 보았다면 내게 그런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일환이 기분 나쁘지만 수줍어 보이기도 하고 진실처럼 보이기도 하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계속해서 하일환에게 어떤 방법을 캐내려고 질문을 던졌다.

 

“나의 글을 자네가 지내는 그 창고에 있는 망할 놈의 종이들에서 이미 끝나버렸다네.”

 

그 말을 끝으로 하일환은 침묵에 잠겼다. 나는 대화의 종료를 아쉬워하며 단 한마디를 덧붙였다. 정말 글이 쓰고 싶다고. 그리고 창고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났다. 그때 하일환이 말했다.

 

“자네가 이곳에 있는 마지막 날 밤에 서재로 오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해가 지면 서재로 가는 것은 절대 금지된 일이 아니었던가?

 

“알려주지.”

 

 

그렇게 나는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두근거림을 견뎌내며 지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구에서 오’ 다음에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소설 한 편을 정리해서 그에게 건넸다. 그 소설을 다 읽은 하일환은 하루 종일 우울해하며 서재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서재에서 들려오는 흐느낌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궁금했다. 도대체 예전에 쓴 원고들의 무엇이 그를 그렇게 괴팍하게 만드는 것일까? 단지 부끄러움 때문일까? 하지만 그의 흐느낌에서 느껴지는 후회는 과연 무엇일까? 세상에 발표되지 않아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조잡한 소설 한 편을 쓴 것이 그렇게 후회되는 일일까? 그때는 그것이 몹시도 궁금했다. 하지만 진실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달랐다.

 

 

아직도 그날 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침에 떠나기 위해 짐을 싸고 하일환의 원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가슴속을 채우고 있었던 것은 기대와 궁금증이 아니라 첫날밤에 들었던 그 고통에 찬 비명과 하일환의 흐느낌이었다. 그가 왜 해가 지고 난 다음 나를 서재에 들이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거기에 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새벽이 되어 이끌리듯 서재로 향했다. 태풍이 불어온단 이야기는 없었는데, 그리고 한겨울에 태풍이 불리도 없는데,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찬 바람이 창을 흔들었다. 불 꺼진 집을 걷자니 관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계단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에 헛발질을 해 계단에서 구를 뻔 했다. 알 수 없는 힘이 내가 서재로 가는 것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서재 앞에 다다르자 거짓말처럼 흔들리던 창들이 조용해지고 시야가 선명해졌다. 누군가 관 뚜껑을 열어 내게 맑은 공기를 맡게 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서재 문을 열려하는데 안에서 하일환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미 비명을 지를 힘조차 사라져버린 이의 마지막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려움에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서재에 문을 열었다. 하일환은 책상에 앉아 미친 사람처럼 펜을 놀리고 있었다. 손이 어찌나 빨리 움직이는지 종이 한 장을 몇 초 만에 채우고 있었다. 그의 눈은 이미 뒤집어져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고, 얼굴에는 단 한 방울의 핏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앙상한 뼈를 간신히 덮고 있는 애처롭고 가죽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는 시체와 같았다. 하지만 그 가죽만 남은 손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종이에 글자를 채워갔다. 그리고 적송의 색체는 내가 처음 봤던 날보다 훨씬 더 짙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신이 나간채로 글을 쓰고 있는 하일환의 뒤에 무언가가 서 있었다. 그것은 악마, 마귀, 사탄, 그 무엇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불길한 존재였다. 아니 그 세 가지를 모두 한 몸에 담고 있는 존재였다. 피를 끓이는 듯 강렬한 붉은 색의 그것의 몸에서 나온 촉수다발이 하일환의 몸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하일환의 피와 생명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이 하일환의 피와 생명을 빨아들일수록 적송의 색체는 짙어지고 생명력을 얻어갔다. 책장을 채우고 있는 붉은 색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것은 살아있었다! 협탁도, 책상도, 의자도 모두 살아있는 괴물이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비명소리에 하일환의 목이 꺾이듯 몇 번 움직이더니 퀭하고 핏발서린 하얀색 눈자위가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하일환의 입이 움직이며 젊은이가 내뱉는 듯 생기어린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렇게 쓰는 거야. 다 이렇게 써진 거야. 말해봐. 이 글을 누가 쓰고 있는 것 같나?”

 

하일환의 말이 끝나자 하일환의 뒤에 있던 그것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꼼짝도 못하고 그것의 눈길을 받아내었다. 그것이 미소를 짓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 두 갈래로 갈라진 혓바닥을 움직여 나를 불렀다. 자기에게 오라고. 나는 그것의 말을 듣는 대신 뒤돌아서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정원에 개들이 잠에서 깨어 내게 달려드는 것을 목줄이 막았다. 나는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불빛 하나 없는 도로를 내달렸다. 어디든 하일환의 집보다 멀어지기만 하면 상관없었다. 눈앞에서 계속 그것의 혓바닥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달리다 정신을 차렸을 때, 자동차 제동을 잡는 소리가 들려오고 내 몸은 공중에 떠올랐다가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차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는 병원이었고 아버지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옆에 앉아있었다. 경찰이 와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고 약물검사도 받아야했다. 약에 취하지 않고서야 그 도로의 한가운데를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달리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운전자의 항변에 의한 검사였다. 그러나 당연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운전자는 결국 포기했다. 나는 꼬박 네 달을 입원해야 했다. 아버지는 책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어디서 구했는지 노트북을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단 한글자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한글자도 읽지 않았다. 오직 묵묵히 재활에만 힘 쓸 뿐이었다. 퇴원을 하고는 아버지의 지인과 무슨 사이라는 복잡한 관계를 통해 집근처의 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얻을 수 있었다. 일은 지긋지긋했지만 그곳에서 겪었던 일을 어느 정도 잊게 해주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다음 하일환을 소개해 준 선배가 찾아왔다. 그는 대뜸 서류봉투 하나와 돈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일을 해놓고 돈 달라는 이야기도 안하냐?”

 

선배가 웃었다. 나는 돈 봉투를 확인했다. 한 달 일한 것 치고는 엄청나게 많은 금액이었다.

 

“그거 들었냐? 하일환 선생 이번에 새 책이 나온다더라.”

 

선배가 한숨을 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일환 선생이 몇 살인지 알지? 백아홉 살이야. 백년하고도 구년을 더 살았다고. 그런데 아직도 활동 중이란 말이지. 그런데 우린 뭐냐 진짜.”

 

넋두리를 늘어놓던 선배는 어중간한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나는 돈을 통장에 넣고 선배가 건넨 서류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진 ‘구에서 오’가 들어있었다.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 그 소설을 읽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조잡한 쓰레기였다. 차라리 하일환의 정액을 묻힌 종이가 더 낫게 느껴질 정도로. 문득 이층 창고에 있는 종이들에서 자신의 글은 끝나버렸다는 하일환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하일환의 글은 누가 쓴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는 왜 내게 ‘구에서 오’를 보냈을까?

 

 

선배가 다녀간 뒤 몇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하일환이 왜 내게 ‘구에서 오’를 보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나를 그날 밤 적송에 서재에서 봤던 그것에게 팔아넘긴 것이었다. 그는 죽지도 못한 채 그것에게 지배당하며 살아온 삶을 끝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지금 창문 밖에선 그날 밤 서재에서 봤던 그것이 침대에 누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꽤 오래된 일이다. 그것은 계속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부르고 있다. 나는 그 날름거리는 혀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날 처음 나를 사로잡으며 압도했던 적송의 서재가 내뿜던 그 찬란한 색을. 그리고 그 뒤에 숨어있는 존재를. 아마 내가 그의 부름에 굴복하기 전까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을 떠도는 영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욕구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친 듯이 글을 써내려가던 하일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떠 그것을 바라본다. 그것의 색체가 많이 옅어진 것을 확인한 나는 창을 열고 팔을 내민다. 촉수가 살을 파고 들어온다. 그것의 색이 다시 진해지는 것이 보인다. 나의 영혼은 내 몸을 빠져나간다. 눈앞에 아름다운 적송의 서재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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