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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쓰레기 줍는 남자

2019.02.26 19:2202.26

곧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조수석에 가득 놓인 딸의 사진들로 마음속에서 가신 지 오래였다. 창문 속으로 희미하게 코끝을 간질이는 쓰레기 냄새는 뒤에 아직 반이나 빈 쓰레기더미에서 몰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코를 찡그리는 대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디즈니 환타지아의 ost ‘The Sorcerer's Apprentice’에 귀를 쫑긋 세웠다. 마법사의 제자 ost인데, 딸이 어렸을 때 그걸 보고 한 달 동안 계속그 노래만 듣고 부르던 기억이 뇌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흥얼거리던 와중에 나는 ‘701동’이라는 숫자를 보고는 차를 왼쪽으로 돌렸다. 도로 한 가운데를 잠시 점거하며 나는 경비실 앞의 분리수거를 하는 곳으로 차 엉덩이를 천천히 뺐다.

 

언제나 그렇듯 702동 경비는 수전증으로 떠는 손으로 레쓰비 하나를 들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니, 라면 하나 끓여먹은 뒤 담배 대신 피는 것일 터였다. 얼마 전에 폐암 2기를 선고받고 한 달간이나 입원치료를 하다가 퇴원했다. 담배 대신 레쓰비를 잡게 된 이후로 그 경비는 담배만 보면 손을 떨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꽤나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하나 드릴까?”

 

나는 조종석으로 올라타 붉은 갈퀴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뇨, 방금 먹고 왔어요. 요새는 담배 안 피시네요.”

 

“강아지 고추보다 작은 거에 내 목숨 맡길 수는 없지.”

 

나는 웃으면서 갈퀴손을 아래로 움직였다. 녹슨 붉은 손가락들이 쫙 벌어져 포대 자루 하나를 잡았다. 그리고 트럭 안으로 들고 와서는 그 위에 쏟아 붓는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속이 빈 채 버려지는 쓰레기들이었다. 주인의 뱃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열렬한 사랑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불 속에 들어가는 처지에 불과하다.

 

“요즘도 전단지 붙이고 다닙니까?”

 

“예, 그러죠. 항상.”

 

“새벽부터 고생이시네. 신문지 돌리는 것도 아니고.”

 

경비가 캔을 홀짝이며 말했다. 그는 갈퀴손 사이로 흘린 쓰레기들을 이따금씩 트럭 안으로 던져 넣었다. 나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유리병이 담긴 청록색 포대자루를 집었다. 그 순간이었다. 희미한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뭐지, 하고 나는 레버를 위로 올렸다. 하지만 그때 꼬물거리는 포대자루가 눈꼬리를 잡고 물어졌다.

 

얼른 갈퀴손은 포대자루를 놓아주고 나는 조종석에서 내려 포대자루로 달려갔다. 경비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먼저 포대자루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헉, 하는 숨소리와 함께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나는 사람 시체라도 들어있나 하고 안으로 시선을 던졌다. 작은 갈색 푸들이었다. 유리병들 틈에 섞여 푸들은 낑낑대며 뒷발로 귀를 박박 긁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감정이 배배꼬인 이상한 기분이 신경을 타고 퍼져나갔다. 조심스럽게 나는 푸들을 포대자루 안에서 안아들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누가 애완동물을 유리병 자루에 버린 모양이야. 그런 짓을 누가 저질렀는지 참.......”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푸들은 울지도 짖지도 않았다. 그저 가슴팍에 머리를 묻고 몸이 간지러운듯 몸을 자꾸만 뒤척였다. 나는 비닐 자루에서 노끈 두 개를 엮어 조수석에 푸들을 짧게 묶어놓았다. 기운이 없었는지 그저 풀썩 시트에 쓰러져 두 팔을 포개고 그 위에 턱을 얹었다. 작은 한숨소리가 검은 콧구멍을 드나들었다. 순간 나는 두려웠다.

 

누군가 길에서 본 딸도, 저런 모습일까.

 

 

 

 

사람이 죽은 집은 바로 묘 자리로 탈바꿈해버린다. 집 주인은 처음에 딸이 죽었을 때, 사정을 봐서 딱 한 달간 시일을 줄 테니 그 안에 다른 집을 구해서 나가라고 최후의 통첩을 했다. 그때는 딸이 한 줌 재로 옷을 갈아입는 날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막 집을 나서는 내게 집주인이 가로막고 섰다. 내가 쓰레기차를 모는 일을 한다는 것을 최근에 알고 난 뒤, 몸에서 냄새라도 난다는 듯 잔뜩 인상을 구기면서 말이다.

 

조의금은 다음 달 월세 없는 걸로 대신 할게요. 다음 달 말일까지, 집 구해서 나가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알았죠?

 

나는 장승처럼 멍하니 서서 고개만 끄덕였다. 양 허벅지에 딱 붙인 두 손은 떨리는 것을 멈추기 위해 바지자락을 꽉 붙든 상태였다. 집주인은 혀를 한 번 차고는 2층으로 올라가버렸다. 그리고 불꽃의 딸의 몸을 부수는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딸을 작은 도자기 항아리에 담아 납골당으로 이사시켰다. 1년 만에 만난 딸은 사지가 뻣뻣해진 채 내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 한 번 꺼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누워서 나를 모른 체 했다. 후회는 이미 내게서 저만치 물러서 질책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손이 저려왔다. 딸을 학대했던 손이 그때의 고통과 비명을 기억하는 듯 찌르르 울어댔다.

 

소각장을 들러 집에 돌아온 뒤, 나는 푸들을 내려놓았다. 이제 곧 나가야 될 집을 강아지는 코로 킁킁거리며 머릿속에 이곳을 입력시켰다. 소파에 앉아 나는 강아지를 지켜보았다. 왜 버렸을까? 그런 생각이 소각장을 거쳐 집에 오는 내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것도 유리병 포대자루에. 아마 유리병의 무게가 무거우니까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고 그곳에 넣은 것일 터였다. 이유는 뭘까. 뻔한 이유에서부터 갖가지 말 못한 사연에 이르기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요일 아침에 하는 동물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보았던 그런 이유들이 이 강아지의 등에 지워진 굴레일 것이다.

 

편의점에서 작은 개 사료 봉지를 사와 주니 깔짝대다가 몇 움큼 삼키고는 약수터에서 떠온 물을 핥았다. 딸을 닮아도 너무 닮았다. 먹고 자고 난 뒤, 강아지는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먹을 것을 주고 빨래 바구니에 담요를 깔아 줄 때 나를 핥는 것 말고는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 마치 일정 거리를 내게서 두려는 것 같았다. 그것이 두려웠다. 딸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쓰레기차에서 주운 강아지 한 마리가 말이다. 아내가 죽고, 그 슬픔과 자책감으로 매일을 술에 진탕 빠져 보냈다. 그리고 딸은 나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어디 가. 일로 와.”

 

이불을 덮으며 나는 옆에 있다가 빨래 바구니로 종종걸음 치는 푸들을 불렀다. 그러나 오지 않았다. 내 손에 뽀뽀도 해주지 않은 채 그대로 얕은 코골음 소리를 흘렸다.

 

몇 번 부르다가 그 말끝은 희미해져 결국 잠 속 저편으로 넘어와 버렸다.

 

 

 

 

나는 새로 뽑은 딸의 사진들을 두 손 가득 들고 새벽 거리에 나섰다. 아, 오늘은 저 푸들을 찍은 사진도 있었다. A4크기만 한, 그리고 아래에 몇 자 글이 적힌 사진이었다. 그것은 거리 곳곳에 붙여질 것이었다.

 

“왜 이렇게 춥냐........”

 

손을 마주치고 비벼도 입이 내뿜는 흰 연기는 허공 속으로 뭉개졌다. 푸들은 집에 두고 왔다. 사료를 가득 따르고, 그릇을 씻어 새 물을 채워놓고 왔다. 사진들을 붙이는 손은 익숙하게 가운데부터 양 모서리까지 쭉쭉 펴 바른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테이프를 각 모서리에 단단히 붙인다. 아파트 경비들은 내가 이러고 산다는 것을 알기에 떼어내지 않지만, 내가 쓰레기차를 돌지 않는 다른 아파트 경비들은 담배꽁초를 지지며 떼어내기 일쑤다. 딸의 얼굴에 담뱃불로 지진 흔적이 남아있으면 그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아 곧잘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마지막 한 장을 전봇대 위에 붙이며 나는 딸의 사진을 빤히 들여다본다. 아직 아내가 살아있고, 제 엄마에게 사랑받았던 시절의 딸이었다. 어색하게 브이 자를 그리고 입꼬리를 치켜 올린 얼굴은 이제 이곳에서만 존재한다. 오래 전에 세상에서 지워진 얼굴이었다. 그리고그 아래 글자를 읽어본다. ‘딸을 찾습니다. 나이 12세, 여자아이, 노란리본을 머리에 꽂고.......’ 나는 순간 뭔가에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딸은 죽었다.

 

그 사실을 나는 입으로 곱씹어보았다. 끔찍했다. 씹으면 씹을수록 비릿한 피 맛이 배어나와 혓바닥 아래에 고여 들었다. 내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가출했다가 1년 만에, 잠을 자며 나를 맞이했다. 쓰레기차에서 갈퀴손으로 주인에게서 버려진 것들을 다시 줍듯, 나는 딸을 주운 것이었다. 그리고 똑같이 불로 태웠다. 소각장에서 타는 쓰레기들과 화장터에서 재로 변해가는 딸의 모습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매번 단지 내를 돌며 포대자루를 집고 더미 위로 쏟을 때마다 딸 수십 명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그만 때리라고 내 손과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그러면 나는 미련 없이 다시 손을 들고, 딸을 친다. 나는 미련 없이 쏟아진 쓰레기들을 뒤로 하고 다시 새로운 쓰레기를 잡기 위해 갈퀴손을 벌린다....... 머리가 무거워졌다. 갈퀴손에 꽉 붙들린 양 관자놀이가 고통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집으로 갔을 때는, 강아지 한 마리가 몇 개의 가방들과 함께 밖에 나와 있었다. 콧물과 침으로 범벅된 코를 내게로 들며 푸들은 나를 향해 다가섰다. 1층 집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집주인이 남긴 조그만 쪽지가 강아지 목줄 사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가라는 것이었다. 아직 싸지 못한 짐은 한데 모아서 내놓았으니까 그리 알라고 하였다. 전세금은 아직 돈이 마련되지 않아 한 달 정도 후에 주겠다고 적혀 있었다. 허탈한 웃음이 입가에 걸쳐졌다. 웃음소리가 지지직거리는 라디오처럼 입술 사이로 튀어나왔다. 푸들이 낑낑댔다.

 

나는 짐들을 온 몸에 들고 오른손으로는 푸들의 끈을 잡은 채 거리를 지났다. 내가 새벽에 붙인 딸의 사진들이 벌써 절반은 사라진 상태였다. 아니면 담뱃불로 시커멓게 탔거나. 발걸음은 여유롭다.

 

쓰레기차에 올라탄 나는 푸들을 조수석에 묶어두었다. 그리고 가방들을 짊어지고 모두 소각장 근처로 갔다. 조종석에 앉아 갈퀴손을 꺼냈다. 바닥에 널브러진 가방들은 갈퀴손에 붙잡혀 소각장 꼭대기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조종석에 앉아 갈퀴손을 벌린 채로 가만히 있었다. 운전석에서 강아지가 우는 소리가 딸의 울음소리처럼 들리는 건, 착각이 아니었다.

 

나는 버려진 것이었다. 나도 쓰레기 소각장에서 재로 사라져야 하는 운명이었다. 이곳이 나의 집이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이곳이었다. 경비들이 뜯어낸 딸의 사진은, 아직 내가 사랑했을 때의 딸을 찾기 위하 그 전단지는 이 쓰레기더미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터였다. 눈물이 눈동자와 눈꺼풀 사이를 비집고 속눈썹에 맺혔다. 뿌옇게 흐려진 앞에 놓아진 커다란 불길이 쓰레기를 집어삼켰다.

 

돌아보니 푸들이 운전석에서 뛰쳐나와 소각장 밖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쓰레기더미로 고개를 돌렸다. 딸은 더 이상 내 옆에 있지 않았다. 갈퀴손이 그 사실을 알려주려는 듯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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