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차별금지법

2019.02.26 19:2002.26

1

 

누구의 죽음에 먼저 눈을 감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멀뚱히 서있을 뿐이다. 담배를 피우고 싶지만 병원 건물 전체가 금연구역이다. 나는 걸음을 돌리려다, 다시 멈췄다, 또 다시 걸음을 돌리고, 계단 한 칸 아래로 내려간다. 가위바위보를 하며 누가 먼저 계단을 빨리 내려갈지, 그런 게임을 문득 생각해본다. 나는 매번 지기만을 바라며 계단 한 칸 한 칸을 밟았다. 그러나 게임은 그리 길게 진행되지 못한다. 멀리서 들려오는 통곡소리에, 울음과 외침 소리에 손은 자연스레 주먹을 쥐게 된다. 누구를 한 대 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발끝에서부터 정수리에까지 치닫는다. 나는 사람들에 떠밀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선다. 한쪽으로 길게 정렬한 빈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빈소가 몇 번인지 알고 있지만 몰라야 한다. 사위를 조금씩 베어 무는 침묵의 전진 뒤로 나는 숨는다.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죽음을 노란 완장으로 차고 있는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나는 그저 제일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파란색 후드 점퍼에 청바지. 검은 조끼패딩. 내겐 검은 정장이 없다. 그 누구의 목숨도 떠나보낸 적이 없으므로.

 

나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다 뒤로 몸을 돌린다. 빠져나간다. 룰을 무시한 채 계단을 미친듯이 내려간다. 지하 주차장으로 향한다. 자동키로 차 문을 연다. 운전석에 몸을 구겨 넣는다. 시동을 켠다. 전조등이 들어오고 내비게이션이 인사를 건넨다. 후진으로 차를 길게 뺀 뒤, 왼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사이드 미러를 곁눈질 한다. 가벼울 줄 모르는 두려움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발에 힘을 주게 만든다. 얼마나 달렸을까. 쫙쫙 갈라진 가뭄의 대지 마냥 입안이 말라있다. 헛구역질이 나온다. 인근 편의점에서 생수 한 통을 사 들이킨다.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돈다. 몇 번이고 반복한다. 발자국이 서로의 발자국을 삼키며 이어지는 원 안에서 나는 감히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영원히 그늘에 숨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몸을 도는 것을 멈춘다. 땀이 난다.

 

일순 나는 눈앞이 부옇게 흐려진다. 뺨이 차갑게 식고 나서야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팔뚝을 입에 문다. 이에 힘을 줘 깨문다. 정렬한 고통 속에서 추는 꼴이다. 나는 운전석으로 도망치듯 달려간다. 아무리 꾹꾹 눌러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생각들의 틈에서 나는 죽은 두 명을 발견한다.

 

아버지와 S.

 

 

 

 

 

2

 

아침으로 뭘 먹으면 좋을까. 나는 냉장고문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한다. 먹을 게, 있으려나. 없다. 인터넷으로 장을 본 게 벌써 2주 전이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그런 삶에 익숙해진 탓이다. 오랜만에 햄버거가 먹고 싶다, 는 생각이 든다. 검은 화이트삭스 모자를 쓰고 청바지를 입고 후드 점퍼를 걸친다. 거울로 나를 바라본다. 100킬로그램이 넘은 지 벌써 반년이 다되어간다. 엉덩이가 너무 커졌고, 복부비만은 더 심각해졌다. 나는 점퍼를 턱 밑까지 추어올린다. 헤진 신발을 신는다. 언제 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끈은 자꾸만 풀려 리본 모양으로 두 번 묶는다. 도어락 위에 붙은 포스트잇을 본다. ‘가스 점검! 난방 점검!’ 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이다. 박스테이프로 틈 하나 없이 전면을 붙인 상태다. 옆으로 휘어지고 날이 선 글씨체는 지워지지 않는 아버지의 흔적 중 하나다. 문을 연다. 순간 사람 두 명과 마주친다. 여자는 초인종을 막 누르려던 참이었다. 남자는 뒤에서 나를 발견하곤 성큼성큼 다가왔다. 내 아들 왜 죽였어? 여자가 소리친다. 왜 죽였냐고. 너 때문에 죽은 거야. 남자가 언성을 높인다. 되살려내. 내 자식 되살려내라고. 그들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말을 이어나간다. 나는 다시 문을 닫으려 한다. 하지만 남자의 발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여자의 손이 틈새로 들어와 내 옷깃을 잡는다. 이러지 마세요. 나는 작게 중얼거린다. 그들은 내 말에 아랑곳없이 문을 따고 들어오려 한다. 멀쩡하던 우리 아들 그렇게 되고, 너희들 같은 이상한 종자들 때문에 죽어버렸어.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나는 우산을 꺼내 그 끝으로 남자의 발을 찌른다. 힘을 실어. 문이 닫힌다. 나는 재빨리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도어락도 잠근다. 쿵쿵 주먹으로 문을 내리치는 소리가 아침의 고요를 깨부서뜨린다. 나는 문 앞에 주저앉는다. 현관문에 등을 기댄다. 그들의 고함과 주먹을 휘두르는 소리가 떨리는 진동으로 등에 전해진다. 좀비 같다, 고 생각한다.

 

너희들 같은 이상한 종자들 때문에 죽어버렸어.

 

제 자식이 죽어도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혐오를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는 양 귀를 틀어막는다. 파리지옥 마냥 나를 가두고 놓아주지 않는 저 목소리의 굴레에 목이 죄인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내 사지를 붙든다. 피가 배어나오고 헛구역질이 난다. 우리 아들 살려내. 죽어도 아무리 죽어도 S는 부모의 자식이다, 부모의 아들이다, 부모의 것이다. 그대로 눈을 감는다. 보랏빛 잔상이 떠다니는 어둠 속으로 나는 빨려 들어간다.

 

배고픔은 사라진지 오래다. 나는 여전히 귀를 틀어막은 채 방으로 달려간다. 문을 잠그고 침대로 몸을 던진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밤이다. 모든 소리가 제자리로 돌아가 침묵을 지킨다.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남아있다. 나는 이불 밖으로 나선다. 인터폰 화면에 경비원의 얼굴이 나타난다. 나는 걸쇠를 잠그고 문을 연다. 경비원은 별 일 없느냐고 묻는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 집에 침입하려 했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신고 받고 온 거예요. 그 사람들, 언제 갔어요? 내가 묻는다. CCTV 확인해보니까 낮에 왔다 갔는데. 뒤늦게 누가 신고해서 온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경비원은 계단 아래로 모습을 감춘다.

 

현관문을 열어젖힌다. 찬바람이 잇따라 나를 덮쳐온다.

 

 

 

 

 

3

 

무작정 걸음을 옮긴다. 컵닭강정을 한 손에 든 채, 땅을 바라보며 걷는다. 비둘기들이 길가를 가로막고 있다. 나는 그 사이를 지나간다. 비둘기들은 폴짝거리며 살짝 몸을 비킬 뿐이었다. 사망신고서를 적고 오는 길이다. 주민 센터의 사회복무요원이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문득 본인이 오셔야 돼요, 라고 했다던 라디오 코미디 일화가 떠오른다. 나는 일산 백병원이라 크게 적힌 일자형 건물을 올려다본다. 옥상을 생각한다. 누군가 떨어진다. S다. 일순 나는 어지럼증에 비틀거린다. 닭강정을 쏟는다. 비둘기들이 기다렸다는 듯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달려든다. 다시 보니 어느 누구도 떨어지지 않는다. 쿵, 하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거기에 아버지와 S가 있다는 사실만을 재확인할 뿐이다. 장례식장으로 바로 내려가는 입구를 지나칠 수밖에 없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 몇이 각기 다른 데를 보며 담배를 태우고 있다. 나는 숨을 헙 들이마신다. 담배 냄새가 풍기지 않을 거리를 벌리고 나서야 다시 푸하, 숨을 토해낸다. 성저마을 1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S가 살던 집이다.

 

낙후된 아파트다. 나는 11층에 위치한 S의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복도형 아파트는 주로 공포영화의 무대가 되기 마련이다. 죽 뻗은 복도, 누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감과 기대감. 그중 눈에 띄는 집이 있다. 노란 폴리스라인이 쳐진 406호다. 문은 열려있는 상태다. 나는 안에 누가 있나 살핀다. 저기요. 아무도 없다. 저기요. 얼마나 묵었는지 모를 정적만 새어나온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간다. 방 하나와 화장실 하나, 부엌, 거실로 이루어진 15평대 아파트다. 나는 베란다로 향했다. 유리문을 열고 방충망을 열었다. 방충망은 윗부분 가장자리가 녹이 슬어 잘려나간 상태이다. 새도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구멍이다. 나는 방충망을 찢는다. 삭은 탓에 방충망은 쉽게 뜯겨져 나간다. 휑하니 빈 문으로 잔잔한 바람이 고개를 들이밀다 간다. 나는 그 문마저 열어젖힌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까마득하다. 레고 장난감 같은 차들과 사람들이 드문드문 흩어진 모습이다. 난간을 잡는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금속의 냉기가 온 몸을 얼어붙게 한다. S는 난간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 허공으로 체중을 실었다. 그리고 떨어졌다. 나는 발을 올려본다. 꽤나 높은 탓에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옛날에는 쉽게 올라갔는데. S의 죽음의 최초이자 마지막인 목격자, 난간, 은 너무 쉽게 죽음을 방관했다. 나는 난간을 발로 찬다. 부러질 때까지 차보자는 심정이다. 그러나

 

발끝만 아프다. 나는 포기하고 무릎을 쭈그린 채 앉는다. 나 역시 S처럼 죽으려고 했었다. 투신. 고통 없이 한 번에 갈 수 있도록 20층 이상의 아파트를 찾아 돌아다녔다. 새벽이었다. 20층이 넘는 아파트는 흔치 않았다. 최소 10년 이상 된 아파트들이 대부분인 곳인 때문이었다. 있다 해도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경비원은 의심쩍은 눈초리로 나를 흘겨볼 따름이었다. 아버지가 집에서 나가라고 한 날이었다. 치킨을 먹고 있었고, 나는 육군 A대위 성소수자 불법 색출 사건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중이었다.

 

근데 너는 게이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신경을 쓰냐?

 

나는 당황한 채로 입을 다물었다. 다 먹어갈 때쯤, 나는 내가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S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이름, 주소, 트랜스젠더, 라는 것 외엔 무지하다.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도 함께. 우리 아버지 말이다. 나는 일어선다. 아버지는 내가 잘못되었다며, 병원에 가자고 말했다. 게이가 아니라는 확신에 찬 말들이었다. 나는 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달라고 했다. 어떠한 것도 필요 없다.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게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무슨 희생을 대가로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이게 다 야동 때문이야. 그런 놈들이 그 짓거리 하는 거에 중독 돼서 그런 거야. 다 해결 방법이 있어.

 

아니라고, 나는 말했다.

 

아버지의 내 성 지향성에 대한 어떠한 행동도 용납할 수 없다고 나는 말했다.

 

그럼 이 집에서 나가.

 

나는 알겠다고 했다. 집을

 

나온다. 경찰이라도 나타날까 두려워 서둘러 계단으로 내려간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방영되던 시기였다. 그때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내 핸드폰을 가져가 검열했다. 결국 걸리고 말았다. 포르노의 한 장면을 캡쳐한 사진이 걸린 것이다. 오럴 섹스를 하는 장면이었다. 너, 이거 뭐냐. 너 게이 되고 싶어? 나는 친구가 보낸 사진이라고 둘러댔다. 아버지가 그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 거실 바닥에 몇 번이고 던져 내쳐진 핸드폰은 망가졌고, 외출 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가출하기 이틀 전의 일이었다.

 

나는 20층 말고 15층 정도에서 떨어지자고 목표를 바꾸었다. 그래도 그 정도면 고통 없이 갈 수 있을 정도라고, 자위하면서. 집에서 나온 지 한 달이 지난 때였다. 아파트들은 언제나 내 묘지가 될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자는 게 내 가출의 목표였다. 그러나 경제권을 쥔 아버지의 힘을 무시할 순 없었다. 있는 돈을 최대한 긁어모아 집에서 나왔지만 역부족이었다. 돈이 이천원 쯤 남았을 때, 나는 피시방 구석자리로 향했다. 거기서 헤드폰을 끼고 음란물 사이트를 들어갔다. 바로 옆이 수리중이라 나 혼자였다. 남성 둘이 몸을 섞는 장면이 이어졌다. 나는 바지와 팬티를 조금 내리고 페니스를 쥐었다. 구석진 곳이라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teen'이나 ’twink'를 붙여 검색했다. 좋아하는 포르노 배우의 이름을 쳐보기도 했다. 브렌트 코리건. 유명한 포르노 배우였다. 나는 그가 나온 영상들을 보며 페니스를 천천히 문질렀다. 움직였다, 위 아래로 흔들었다. 정액이 분출된 순간이었다. PC방 알바가 와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경찰서에 가면 어떻게 될지 시나리오는 뻔했다. 나는 좆까라면서 헤드폰 연결선을 빼버렸다. 음량을 최대치로 높였다. 두 명의 배우가 흘리는 각종 높낮이의 신음소리가 PC방 안을 휘돌아다녔다.

 

 

 

 

 

4

 

벨소리가 울린다. 나는 협탁 위의 핸드폰을 집어 귓가로 가져간다. 재현이니? 쉰 목소리의 여자 목소리다. 나는 가만히 그가 누구인지 생각해본다. 그 여자다. 아버지와 같이 살던.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만 한 사이였다. 나는 그와 같이 있을 일이 거의 없었다. 따로 원룸을 얻어 살았으므로. 왜 오지 않느냐고, 그는 핸드폰 저 편 너머에서 다그치듯 말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최소한 자식으로서 빈소를 지켜야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아버지와 화해했잖아. 아직도 뭐 안 풀린 게 있니? 나는 알겠다고 말한다. 전화를 끊는다. 더 이어질 말이 있던 모양이지만 내겐 1분의 잠이 더 소중했다.

 

아버지가 바뀐 것은 절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기독교를 위시한 대부분의 종교에서 동성애를 사탄의 행위라 명명하며 성소수자들을 탄압하고 있을 때, 불교는 성소수자들을 포용했다. 그게 일종의 전략인지, 정말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건지는 알 길이 없었다. 아버지는 거기서 동성애자 딸을 둔 여자를 만났다고 했다. 아버지와 여자는 합이 잘 맞았다. 그의 딸은 나보다 두 살 어린 고등학생이었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만난 지 오래 된 사촌을 떠올리려는 것만큼이나 기억이 흐릿하다. 아버지는 그 여자아이를 좋아했고, 여자아이의 엄마, 그 여자는 호모포빅적인 아버지를 바꾸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원룸을 내놓고 다시 집에 돌아오고 싶진 않았다. 어쨌거나 아버지는 더 이상 호모포빅적인 말을 하지 않았고, 그 여자를 따라 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분명 아버지는 변했다.

 

검은 정장이 없어 친구에게 빌린다. 나는 대화역에 위치한 일산 백병원으로 향한다. 본관을 통해 지하 장례식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공기가 낯설었다. 나를 밀어내는 듯했다. 나는 파란 넥타이가 거슬렸다. 친구도 검은 넥타이는 없다고 했다. 나는 전 애인에게서 선물 받은 청록색 넥타이를 맬 수밖에 없었다. 13번, 19번 빈소. 13번엔 S가 있었고, 19번엔 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있다. 어딜 먼저 가야 할 지 알 수 없다. 나는 복도를 서성인다. 1번부터 20번 빈소까지 걸었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빈소를 기웃거릴 용기조차 없다. 오전 10시. 이 시간이면 아버지가 주유소에서 한창 일하던 시간이었다. 기름을 넣고, 세차장에서 자동차에 물을 뿌려 걸레로 닦고 문지르고 하던. 혼인신고를 올리자마자 아버지는 돈을 더 벌 욕심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결혼식 하객 알바, 장례식장 도우미, 전단지 붙이기, 편의점, 등등 셀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단지 짐작할 뿐이다. 그 여자에게 딸려온 여자애의 유학비를 대주기 위해서, 그랬을 거라는. 나는 벽에 등을 기댄다.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을 멀뚱히 바라다본다. 그들은 어떤 죽음을 애도하고 있을까. 누구의 죽음일까. 한 명 한 명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조문객이에요?

 

경비복 차림의 보안요원이 다가와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좌우로 내젓는다.

 

여기 사람 많아서 복잡하니까 조문객 아니면 나가줘요. 나는 온 길로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13번 빈소가 언뜻 눈에 스쳐간다. 사람 한 두 명이 서있는 모습이 시야 가장자리에 비친다. 19번 빈소는 아무도 없다. S의 빈소다. 이틀 전 아침에 느닷없이 찾아와 고함을 지르고 들어오려 하던 그 부모의 아들. 아니, 딸. 아버지를 죽인 범인. 여자.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퀴어 축제가 끝나고 뒤풀이를 할 무렵이었다. 철제 야구방망이로 아버지를 곤죽이 될 지경까지 때려 팼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응급실로 실려갔으나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그는 구속되었다. 나는 그를 찾아간 적이 있다. 손에 꼽지만. S는 누가 봐도 남자였다. 스테레오 타입을 충실하게 따른 남자였다. 나는 아버지를 왜 죽였느냐고 물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정말 죄송하다며,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물었다. 아버지를 왜 죽였느냐고. 그는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혐오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선전물을 나눠줬다고 했다. 퀴어 축제가 한창일 때였다. 낮술을 대차게 마신 그는 친구 세 명과 함께 비틀거리며 모텔로 향하던 도중, 아버지와 시비가 붙었다고 했다. 골목에 나동그라져 있던 철제 야구방망이로 아버지를 곤죽이 될 때까지 두드려 팼다고 했다. 머리, 복부, 가릴 것 없이.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그런 걸 나눠줬다고요? 나는 아니라고 말한다. 나도 게이인데, 아버지가 불교를 믿는 순간부터 퀴어 친화적으로 변했다고 했다. S는 고개를 내저었다. 거기에 트랜스젠더는 없었나 봐요. 그 선전물에 그렇게 적혀 있었어요. 트랜스젠더는 성도착증 환자라고, 치료의 대상이라고. 게이나 양성애자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내용의 선전물이었다고, S는 말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게 일당이 세거든요. S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모든 벌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고서 일주일 뒤, S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했다.

 

 

 

 

 

5

 

못가겠어요.

 

나는 여자에게 말한다.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

 

나는 다시 대답을 듣기도 전에 꺼버린다. 편의점 문을 연다. 아버지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자가 냉장칸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인기척을 내자 여자는 왔느냐며 나를 돌아본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붙은 탓이다. 주 5회, 오후 11시부터 익일 8시까지, 야간근무다. 사장인 여자는 내게 포스 사용기와 시제 맞추는 법, 담배 종류, 물건이 들어오는 시간, 정리방법 등을 세세하게 가르쳐준다. 이미 수습기간 때 교육 받은 내용이라 당황하진 않았다. 손님이 없는 시간엔 공부 같은 걸 해도 된다고 말했다. 폐기는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말한다.

 

새벽 두시가 되자 길고양이들이 문 앞에 진을 쳤다. 얼핏 세어 봐도 다섯 마리쯤은 되어 보인다. 문을 살짝 열자 고양이들이 으레 그렇다는 듯 느린 걸음으로 들어온다. 나는 육포를 하나 사 조금씩 뜯어 먹인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조금씩 제 이름을 찾아 자리잡는 것 같다. 문이 열린다. 30대 중반의 남자가 들어선다. 하얀 정장 차림이다. 그는 담배를 하나 달라고 한다. 낯선 담배 이름에 내가 헤매자 그는 손가락으로 아랫줄을 가리켰다. 그거요. 그거 하나 주세요. 남자는 카운터 앞으로 한 발짝 들어왔다. 순간 장례식장의 향 태우는 냄새가 그에게서 새어나온다. 조문을 하러 온 건가. 그렇지만 하얀 정장이 어울리지 않았다. 누가 장례식에 하얀 정장을 입고 오는가. 나는 그가 궁금했지만 마땅히 물어볼 건덕지가 없었다. 누가 죽었을까. 왜 죽었을까. 어떻게 죽었을까, 이 생각들로부터 저 사람이 과연 조문을 갔다 온 게 맞는가, 의문에 이른다. 그는 다행히 곧바로 나가지 않고 즉석식품 코너에서 머뭇거린다. 나는 정리를 하는 척 하며 남자를 흘깃 쳐다본다. 가느다란 종아리 위로 뻗은 적당한 굵기의 허벅지는 힙업 된 양 엉덩이를 바친 모습이다. 그가 다시 카운터로 온다. 도시락 두 개와 톨라 두 캔이다. 나는 봉지가 필요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대꾸한다. 나는 천천히 계산을 하고 천천히 봉지에 음식들을 넣는다. 그가 몸을 돌려 나가는데 한순간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는 내게 와서 명함 하나를 내민다. 내일 고양종합체육운동장에서 고양시 편 전국노래자랑이 열리니 많이 참석해달라는 홍보 명함이다. 그가 밝게 수고하세요, 하며 편의점을 나선다. 여전히 향냄새는 지워지지 않고 콧망울 안쪽 깊숙이서 살아 숨 쉰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옷 냄새를 확인한다. 옅은 세제 냄새만 풍길 뿐이다. 그 남자, 어디서 죽음을 묻혀온 건지 알 수 없다.

 

 

 

 

 

6

 

나는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스카이 캐슬이라는 납골당이다. 나는 익숙한 걸음걸이로 목표 지점을 향해 걷는다. 엄마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각종 사진과 꽃, 편지로 장식된 엄마의 유골단지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다본다. 아빠가 죽었어. 어떡하지, 엄마? 나는 묻는다. 사진 속 활짝 웃는 엄마에 감히 던질 수 없는 질문이다. 엄마, 나 게이인 거 알지? 편지 보내줬잖아. 아빠도 많이 변했어. 날 지지하고 응원해줘. 그런데 엄마, 퀴어축제에서 왜 그런 걸 나눠주고 있었을까. 나는 알아. 그 여자애의 유학비를 대려고 그런 거라는 걸. 그런 선전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는 일당이 세잖아. 근데 죽었어. 트랜스젠더인 어떤 퀴어가 죽였어. 그리고 그 트랜스젠더는 죄책감 때문에 죽었어.

 

엄마,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

 

나 때문일까. 나는 그 트랜스젠더가 미워.

 

그날, S는 내게 교정강간을 당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직 남자 맛을 보지 못해서 그런 거라면서 아버지가 수년 동안 성폭행을 저질러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요, 그래서, 그쪽 아버지를 죽인 것 같아요. 술은 마셨지만 사리분별은 할 줄 아는 상태였어요. 그쪽 아버지를 보고 우리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그런 걸 나눠주면서, 그 안엔 얼마나 고통 받는 자식이 또 있을까, 사람이 있을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니까 눈에 뵈는 게 없었어요. 그냥 죽여야 한다, 그 생각뿐이었어요. 나는 엄마를 올려다본다. 엄마, 그렇대. 그 트랜스젠더가, S가 그렇대. 내가 용서해야 할까? 사실 엄마. 나도 봤어. 퀴어 축제 때 길목에서 선전물 나눠주는 아빠, 봤어. 처음엔 뒷모습이 닮은 빻은 인간이라고만 생각했어. 근데 얼굴을 보니까 아니더라고. 교회 이름이 크게 적힌 조끼를 입고 이따만한 두께의 선전물을 나눠주는데, 구역질이 났어.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지. 피 한 방울 안 섞인 여자애의 유학비를 대주기 위해 자식까지 혐오의 절벽으로 내모는 아버지라니. 끔찍하잖아. 내가 S였어도 아버지를 죽였을 것 같아.

 

어떡하지, 엄마. 근데 엄마. 아빠가 응급수술 받을 때 말이야. 나 아빠가 제발 살아나길 바랐어. 아빠 같은 사람들이 성소수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거라고 따지고 싶었고 여자에 미쳐서 피 한 방울 안섞인 남 유학비 대주려고 지 자식 팔아먹는 몰지각한 인간이라 욕하고 싶었고... 그리고... 그래.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

 

뱃속이 휑하다. 샌드위치 두 조각으론 엄마와의 대화를 버틸 수가 없다.

 

또 올게, 엄마.

 

 

 

 

 

7

 

커터칼을 꺼낸다. 팔뚝으로 미끄러지는 커터칼에 송글송글 핏방울이 맺힌다. 나는 그렇게 몇 번을 죽죽 긋는다. 통증 뒤로 나타난 안정감과 쾌감으로 나는 빠져든다. 흉터가 거의 지워질락 말락 하는 차에 다시 긋는 것이었다. 그러다 커터칼이 부러진다. 나는 커터칼을 벽 쪽으로 집어던진다. 그어봤자 일시적으로 편안할 뿐, 해결되는 건 없다.

 

나는 다시 병원으로 향한다. 장례식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나는 주춤한다. 여전히 검은 정장에 청록색 넥타이다. 장례식장은 한적했다. 여러 곳의 빈소가 텅 비어있다. 나는 13번과 19번 빈소로 조심스레 움직인다. 텅 비어있다. 나는 보안요원에게 묻는다. 여기 빈소 나갔어요? 그는 나간지 꽤 됐다며 누굴 찾느냐고 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아니요. 없습니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다.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다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온다. 얄따랗고 날카로운 목소리다. 장례식, 다 치르셨어요? 넌 그걸 이제 물어보니? 끝난 지가 언젠데. 너 같은 불효자는 세상에 없어. 전화가 끊긴다. 나는 죽은 S의 폰에 전화를 건다. 저음의 떨리는 목소리다. 장례식 끝났나요? 누구십니까? 장례식 끝났냐구요. 전화를 받은 이는 물음에 가타부타 대답은 않고 계속 누구냐고 캐묻는다. 나는 뒤늦게 내가 누군지 말한다. 밤에 만날 수 있겠느냐고 나는 묻는다. 죽은 S의 아버지는 알겠다고 했다. 의외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산산조각 난 달빛이 별처럼 하늘 군데군데 포진해 있다. 밤 12시였다. 가로등이 몇 개 없어 어두침침한 물안개가 서린 공원이다. 나는 그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곧이어 한 사람의 실루엣이 눈에 띈다. 그다. 고함을 지르며 현관문을 두드리던. 그는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나와 마주보고 섰다.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풀벌레 소리만이 가까스로 정적을 지켜낸다. 나는 속에서 식칼을 꺼낸다. 그의 목을 찌른다. 깊이 박힌 칼끝을 다시 빼내 이번엔 가슴으로 칼을 들이밀었다. 핏방울이 온 얼굴에, 몸에 점점이 튄다. 나는 식칼을 그의 옆에 내려놓았다. S와 약속했던 것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자기 아버지를 죽여 달란 것. 정당한 복수이니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다고 S는 말했다. 오히려 나를 도와준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이기적인 거 알아요. 그래도, 해주시겠어요?

 

나는 텅 빈 장례식장 빈소로 다시 향한다. 경비원이 보이지 않는다. 빈소들은 고요하다. 나는 빈소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 선다. 가위바위보를 하며 이긴 사람이 먼저 내려가는 룰이다. 나는 지기만을 바라며 계단 한 칸 한 칸을 내려간다. 여전히, 누구의 죽음에 먼저 눈을 감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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