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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야간 경비원

2019.02.26 12:3102.26

야간 경비원

 

 

1

 

“그러니까 시체가 움직였다고 제멋대로. 시.체.가.”

 

정현은 괴고 있던 턱을 풀고 한숨을 쉬면서 얼음이 다 녹아 눅눅한 맛이 나는 커피를 마셨다.

 

“수갑을 풀기 위해서 자기 엄지손가락을 잘라낸다고.”

 

연태가 입에 사탕을 넣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정현과 연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장환이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영화에서는.”

 

정현이 손을 휘저어 연태의 말을 잘랐다.

 

“아 글쎄, 나는 영안실 야간 경비원도 아니고 그냥 외지에 있는 공장의 야간 경비원이라니까.”

 

“중요한 건 야간 경비원이라는 거야. 영화에 나오면 무조건 죽는 역할이야. 그나마 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주인공이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그냥 피를 흘리거나, 목이 돌아가거나, 내장이 바깥 공기를 맡으며 죽어있는 거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정현의 질문에 연태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야간 경비원이란 건 그런 존재라는 거야. 죽기 위해, 허무하고 비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존재. 그게 존재의 이유지.”

 

“그래서?”

 

“칠흑같이 어둡고 주변에 편의점도 하나 없는 오지에 있는 폐공장의 야간 경비원이라. 내가 만약 사람을 죽인다면 당연히 그런 곳에다 시체를 버릴 거야. 그리고 그 모습을 야간 경비원에게, 여기서 말하는 야간 경비원은 너야, 들키게 되고 야간 경비원은 힘껏 저항해서 살인마를 제압하는 거지.”

 

정현이 그게 끝이야?하는 표정으로 연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야? 그럼 해피엔딩이잖아.”

 

연태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탁 소리 나게 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야간 경비원들은 항상 죽는 거야. 멍청아. 살인범은 혼자 온 게 아니라고.”

 

“그럼?”

 

“누군가는 망을 봐야할 거 아냐. 너는 그 망보는 사람에게 죽는 거야.”

 

정현이 고개를 흔들며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다음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내가 주말에 일하기로 한 폐공장에서 야간 경비를 하다가 살인범이 시체를 버리는 걸 목격하게 되고, 열심히 싸워서 그 놈을 제압했는데, 밖에서 망보던 놈한테 당해서 죽을 거라는 말이지?”

 

“거의 그렇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

 

“살인범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야간 경비원은 항상 그렇게 된다는 거지. 아무리 잘해도 말이지.”

 

“그러니까 영화에서 그렇다는 말이지?”

 

“아 잠깐.”

 

장환이 손을 들고 정현과 연태의 말을 자르며 들어왔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도 야간 경비원이 주인공이야. 그런데 해피엔딩이라고.”

 

“그래!”

 

장환의 말을 들은 정현이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후속편도 나왔다고.”

 

연태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긴 그런 영화도 있었군.”

 

“거봐!”

 

정현이 남은 커피를 다 마시며 말했다.

 

“애당초 우리 삼촌이 위험한 일을 내게 맡길 리는 없지.”

 

연태가 자못 심각한 얼굴로 정현에게 물었다.

 

“너희 아버지랑 삼촌의 관계에 문제는 없냐?”

 

정현이 사탕껍질을 연태에게 던졌다.

 

“없다. 자식아. 우리 삼촌은 여자문제 말고는 딱히 문제 될 게 없는 사람이라고.”

 

“어쨌거나 친구.”

 

연태가 정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전화는 꼭 진동으로 해놓도록 해.”

 

“뭐?”

 

정현이 의아한 얼굴로 연태를 바라보았다.

 

“전화라는 놈은 항상 그러지 말아야 할 순간에 울리는 법이거든.”

 

 

 

 

 

2

 

“문단속은 다 해놨어. 그리고 여기 열쇠.”

 

정현은 열쇠꾸러미를 받아들었다.

 

“열쇠마다 어디 열쇤지 다 적혀 있어. 하지만 경비실 열쇠 말고는 쓸 일은 없을 거야. 어차피 문은 다 잠겨 있고, 시시티브이가 있으니 감시는 그걸로 하면 되니까.”

 

정현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 시시티브이로 감시하고 있다가 네 시간에 한번 순찰을 하면 돼. 그리고 열린 문이 있다면 그때는 문제가 되는 거지. 잘 잠겨 있다면! 문제될 게 하나도 없는 거야. 그러니까 열린 문이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되는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주간 경비원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정현은 열쇠를 만지다가 조끼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닫은 다음 손바닥으로 열쇠를 확인했다. 연태가 했던 말 중에 맞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오지’라는 말이었다. 주변이 삭막할거라는 예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건 삭막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되지를 않을 정도였다.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이런 곳까지 출퇴근들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폐공장은 산중턱에 있었다. 오래 된 정현의 차는 기어를 드라이브에 놓고 올라오지 못해 일단으로 해야지 겨우 올라올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정현은 일을 마치고 내일 아침에 운전을 해서 집으로 갈 일이 걱정이 되었다.

 

‘브레이크를 점검한 게 언제였더라?’

 

올라오는 길로 험난했지만 내려갈 때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낭패였다. 더군다나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할 테니까.

 

“I'm a barbie girl, in a barbie world. Life in plastic, it's fantastic.”

 

산짐승들을 모조리 깨울 기세로 ‘아쿠아’의 ‘바비’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정현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주머니에 있던 전화기를 꺼냈다. 화면에 ‘초고도비만’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정현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야. 놀라서 심정지 당할 뻔했다.”

 

“내가 말했지?”

 

연태가 한껏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는 진동으로 해놓으라고.”

 

“끊어!”

 

정현이 통화종료 버튼을 누른 후 한동안 전화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진동 모드로 바꾸었다.

 

“내가 최연태 말을 듣는 날이 올 줄이야.”

 

정현이 투덜거리며 공장의 문을 하나씩 점검하다가 의외로 점검해야 할 문이 많은 것에 한숨을 쉬었다. 각 공장마다 지게차가 드나드는 문, 직원들이 드나드는 문, 사무실로 드나드는 문까지, 사무실이 없는 공장 건물에는 휴게실과 탕비실이 있었는데 모두 다 외부로 통하는 문이 달려 있었다. 정현은 짜증을 내며 문을 하나하나 점검했다. 그렇게 점검하자 거의 한 시간 반이 훌쩍 흘러갔다. 땀범벅에 된 채로 정현은 경비실로 향했다. 경비실 문이 활짝 열린 걸 본 정현은 불안한 마음에 휩싸였다. 그리고 주간 경비원의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정현은 자기도 모르게 허리춤에 매달린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경비실을 향해 걸어갔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나듯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정현은 긴장으로 널뛰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경비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현은 호신용 스프레이를 다시 허리춤에 차고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최연태, 돼지새끼.”

 

그리고 경비실에 에어컨이 없는 것을 알아채고는 절망스럽게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를 바라보았다.

 

 

 

 

 

3

 

눈앞에 있는 칼은 쇳덩이도 베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수갑은 왼손과 수도관에 채워져 있었다. 칼을 들자 시퍼런 날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가죽으로 만든 앞치마를 입은 덩치 큰 남자가 길고 얇은 톱을 갈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어디에 톱을 쓰기위해 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빨리 수갑을 풀고 도망가야 했다. 수갑과 칼을 번갈아 보았다. 선택은 하나였다. 칼을 들어 왼손 엄지손가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잘린 살 틈으로 피가 새어 나오고,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꽉 다문 이빨이 안으로 밀려나 잇몸에도 피가 났다. 날카로운 칼날이 뼈에 가까워질수록 무디어지고, 뼈에 닿을 때쯤에는 그저 단단한 쇳덩이로 변했다. 어쩔 수 없이 왼손 엄지손가락 주위를 동그랗게 자른 다음 살을 발라냈다. 칼날은 뼈와 가까워지면 무디어졌다가 뼈에서 멀어지면 다시 날카로워졌다. 뼈 근처의 살은 잘라낸다기보다는 밀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밀려난 살덩이들이 뼈에서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었다. 통증과 절망 때문에 눈물이 났다. 그때 머리위로 뜨거운 콧김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가면을 쓴 남자가 톱을 들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자 남자가 가면을 벗었다. 저 얼굴은!

 

“돼지 새끼!”

 

정현은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땀으로 젖은 몸을 덜덜거리는 소리를 내며 식혀주고 있는 선풍기를 쳐다보았다. 정현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벽시계를 찾았지만 경비실의 벽은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정현은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삼촌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여러 번 걸려 와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최연태, 돼지 새끼!”

 

정현이 삼촌에게 전화를 걸까하다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전화기를 다시 벨소리 모드로 바꾸고 주머니에 넣었다. 전화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순찰을 할 시간이기도 했다. 정현은 손전등과 삼단봉을 챙겨 경비실 밖으로 나갔다. 경비실 문을 잠그려다가 어둡고 인적 없는 밖을 보고 있자니 눈앞에서 산짐승에게 살해당하는 자신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망설이다가 문을 잠그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순찰을 마치고 경비실로 돌아왔는데 문 뒤에 숨어 있던 미치광이 살인마에게 살해당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높고 외진 곳까지 누가 올라오겠어.’

 

정현은 웃으며 헛된 생각을 떨쳐버리려 애썼다. 그러나 이내,

 

‘이런 높고 외진 곳까지 올라오니 미친놈이지.’

 

라는 생각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이런 위치면 사람보단 산짐승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문을 열어두기로 결정하고 순찰을 나섰다. 불안한 마음에 시작한 순찰이었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산중턱의 싱싱한 새벽공기를 전해주는 바람소리가 사그락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정현은 손전등 불빛을 하늘로 쏘았다. 그리고 하늘에 희미하게 비춰지는 불빛이 보름달이라 생각하고 소원을 빌었다.

 

‘최연태 살 못 빼게 해주세요.’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정현은 지금까지의 기분이 싹 달아나고 긴장으로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소리는 제2공장에서 나고 있었다. 가야하지만 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될 수 있는 최대로 천천히 걸었는데, 제2공장은 생각보다 빨리 정현에게 다가왔다. 뒤돌아서 도망쳐도 따라올 것 같았다. 정현은 마음을 가다듬고 제2공장을 향해 다가갔다. 지게차가 드나드는 가장 큰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정현이

 

“잘못 들었겠지. 문 잠겨 있네.”

 

라고 중얼거렸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제2공장에 달린 문은 일곱 개가 넘는다는 걸 정현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겁쟁이. 어서 빨리 다른 문을 살펴봐!’

 

마음속의 누군가가 정현을 질책했다. 정현은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만약 정말 공장안에서 누군가 무슨 짓을 벌이고 있다면 그 짓을 마치고 도망칠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건물의 좌측을 돌아가 다른 문을 살폈다. 직원들이 드나드는 문은 잠겨 있었다. 정현은 발걸음을 제2공장 사무실로 돌렸다. 그리고 사무실 문이 열린 걸 봤을 때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다. 잘못 봤다고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정현은 다리에 힘을 주고 떨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문으로 다가갔다. 공장안에서는 무거운 물건이 바닥을 쓰는 소리와 누군가 그 물건을 옮기느라 용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열린 문까지 접근한 정현이 자세를 낮추고 손전등을 끈 후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사무실 안에는 희미한 불빛을 벗 삼아 한 남자가 입구를 꽁꽁 묶은 자루를 옮기고 있었다. 정현은 조용히 삼단봉을 꺼내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낸 다음 남자를 습격할 기회를 살폈다. 남자는 연신 땀을 훔쳐가며 자루를 조금씩 옮기고 있었다. 생각보다 자루가 무거운 모양이었다. 그때 자루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정현은 하마터면 삼단봉과 스프레이를 놓칠 뻔 했지만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그 두 개를 꼭 쥐고 있었다. 비명소리를 들은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한쪽에 치워져 있던 철제의자를 들어 자루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아악!”

 

자루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현은 다리에 힘을 주고 남자를 덮칠 준비를 했다. 남자의 주의가 자루에 쏠려 있는 이 순간이 가장 좋은 기회였다. 정현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사무실 안으로 한걸음을 들여놓았다.

 

“I'm a barbie girl, in a barbie world. Life in plastic, it's fantastic.”

 

전화벨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정현이 화들짝 놀라며 호신용 스프레이를 놓쳤다. 의자를 들고 있던 남자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정현을 바라보았다. 정현이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화면에 ‘초고도비만’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남자와 전화기를 번갈아 보던 정현이 황급하게 전화기를 끄느라 손가락으로 화면을 더듬는다는 것이 그만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당황의 끝에 달한 정현이 전화를 끈다는 것이 그만 스피커폰 버튼을 눌러버렸다.

 

“내가 말했지. 전화는 안 좋은 순간에 걸려온다고.”

 

정현이 전화를 한곳에서 던진 다음 삼단봉을 휘두르며 남자에게 달려들었지만 남자가 정현을 밀치는 바람에 자루에 걸려 나뒹굴었다. 남자가 정현의 삼단봉을 잡았다. 정현도 양손으로 삼단봉을 잡자, 남자가 삼단봉을 잡고 있는 정현의 왼손 엄지손가락을 힘껏 깨물었다. 정현이 비명을 지르며 삼단봉을 놓았다. 그때 무언가가 발에 밟히는 것이 느껴졌다. 정현이 재빨리 몸을 숙이고 발밑에 있는 물건을 손에 쥐었다.

 

“잠깐만!”

 

삼단봉을 뺏은 남자가 외쳤다. 정현은 남자의 말에 아랑곳없이 호신용 스프레이를 남자에게 뿌렸다.

 

“아악!”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삼단봉을 놓았다. 정현이 삼단봉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가 손을 더듬어 삼단봉을 찾아내고 손에 쥐자마자 남자를 향해 휘둘렀다. 퍽, 퍽 하는 소리가 몇 번 나고 남자가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뭐야? 뭐야?”

 

아직 꺼지지 않은 전화기에서 연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현이 전화기를 주어 들고 연태에게 말했다.

 

“오늘 여기에 손가락이 잘리거나, 내장이 튀어나와 죽는 야간 경비원은 없다. 돼지야.”

 

정현이 전화를 끊고 손전등을 킨 다음 사무실을 살펴보다가 주위에 버려져 있는 노끈을 들어 남자의 손을 뒤로 묶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112’까지 누른 정현이 갑작스레 몰려온 의문에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삼촌?”

 

깜짝 놀란 정현이 외쳤다.

 

 

 

 

 

4

 

환수가 고개를 저으며 눈을 떴다가 손전등의 불빛에 신음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정현아, 불빛을 돌려.”

 

환수의 말을 들은 정현이 손전등의 불빛을 자루 쪽으로 돌렸다.

 

“삼촌.”

 

정현의 말을 들은 환수가 몸을 일으키려다가 양손이 뒤로 묶인 것을 알고 한숨을 쉬었다. 어찌나 얻어맞았던지 온몸이 쑤셨다.

 

“정현아. 이것 좀 풀어봐라.”

 

“삼촌 저 자루 안에 있는 게 뭐예요?”

 

환수의 말을 무시하고 정현이 자루의 입구를 풀려고 하자 환수가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절대 안 돼! 정현아 그 자루를 풀면 절대로 안 돼!”

 

환수의 외침에 정현이 움찔하며 자루의 입구를 풀던 손을 멈췄다.

 

“삼촌, 이 안에 있는 거 사람이죠?”

 

“내 말을 들어. 빨리 내 손을 풀어줘. 그리고 절대 그 자루를 풀지 말거라.”

 

“삼촌에게 여자 문제가 많다는 건 저도 알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이런 짓까지 하는 겁니까?”

 

“정현아 내 말을 들어. 믿기 힘들겠지만, 그 자루 속에 있는 건 인간이 아니야.”

 

“제가 바보로 보이세요?”

 

“정말이다. 정현아. 빨리 그 자루 속에 있는 걸 처리하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위험해!”

 

그때 자루 속에서 불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환수와 정현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정지했다.

 

“인간이 아니야, 그럼 뭘까? 뭘까? 정말 뭘까? 킥킥킥킥킥킥.”

 

정현이 삼단봉을 더 세게 꽉 쥐었다. 환수가 몸을 꼼지락거리며 자루에서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모습을 본 정현이 조용히 환수에게 다가가 묶인 손을 풀어주려 했다. 하지만 끈이 너무 꽉 조여 있어서 푸는 데 시간이 걸렸다.

 

“빨리. 빨리.”

 

목소리를 심하게 떨며 환수가 재촉했다. 정현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 눈으로 들어갔다. 정현이 땀을 닦으며 간신히 끈을 풀었을 때,

 

‘드드득’

 

자루가 찢겨지는 소리가 났다. 환수와 정현이 동시에 자루로 고개를 돌렸다. 찢어진 자루의 틈으로 날카롭고 두꺼운 손톱이 달리고, 정현과 환수의 얼굴을 동시에 덮어버릴 만큼 큰 손이 튀어나왔다.

 

“도망쳐.”

 

환수가 정현의 팔을 잡았다. 정현이 환수를 일으켜 세우고 손전등을 들어 자루를 비췄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자루가 완전히 반으로 찢겨지는 소리가 천천히 나더니 그 안에서 잠옷을 입은 어떤 것이 쭈그리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커다란 손과 발에 어울리는 긴 팔과 다리, 그리고 파도에 맡겨져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뻗쳐 있는 머리카락, 얇은 입술로는 채 다 가리지 못한 날카로운 이빨사이로 날름거리는 혀가 보였다.

 

“자기야.”

 

자루에서 튀오나온 도대체 뭐인지 모를 그것이 환수를 향해 두 팔을 뻗으며 말했다. 정현이 비명을 지르며 삼단봉을 휘둘러 그것의 얼굴을 때렸다. 맞은 부분의 피부가 벌어지며 피와 함께 누런색 벌레들이 떨어져 나왔다. 상처를 만져보던 그것이 있는 힘껏 입을 벌려 소리를 질렀다.

 

“피해!”

 

환수가 정현을 문으로 밀치며 외쳤다. 그것이 입에서 귀를 찢는 것 같은 괴성과 피, 그리고 누런색 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 두 사람은 사무실 문을 나와 달렸다.

 

“차로 가자. 어서 피해야 돼.”

 

정현이 환수를 부축하고 자신의 차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차에 다다라서야 열쇠가 경비실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유 이런!”

 

정현이 소리를 지르자 환수가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내보였다.

 

“내 차가 있는 곳으로 가자.”

 

“그게 어딘데요?”

 

“제2공장 사무실 근처.”

 

정현은 망설였다. 차라리 경비실 문을 잠그고 숨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아직 그것이 제2공장에 있다면 최연태 입속으로 걸어들어가는 탕수육이 된 꼴일 텐데?

 

“지금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려라. 차에 타면 운전은 네가 하고 곧장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야 된다.”

 

환수가 건넨 열쇠를 정현이 받아들었다.

 

 

 

 

 

5

 

‘왁자지껄. 하여튼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들.’

 

환수는 잔속의 얼음이 위스키에 녹으면서 유리잔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는 바텐더에게 주던 눈길을 거두었다. 목으로 넘어간 위스키가 미묘한 여운을 남기며 강렬하게 위산과 섞여서 마치 섹스를 마친 후의 나른한 느낌을 남기고 사라졌다. 환수가 미소를 지었다. 방금 마음속으로 바텐더를 유혹하려 애쓰는 남자들을 욕했지만 자기라고 딱히 다른 용무로 이곳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돈, 그리고 여유 있는 태도, 비싼 시계와 커프스. 은은한 향기가 나는 잘 다려진 양복. 이런 것들이 확실한 경쟁력과 우위를 제공해줄 거라 생각했지만 이곳에는 그런 자들이 넘쳐났다. 지금 환수가 느끼는 우월감이래봤자 바텐더와 가까운 자리에 앉기 위해 몸싸움을 하지 않아서 양복이 구겨지지 않았다는 것과 이 넓은 바 자리를 놔두고 바텐더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터에 얼굴이 땀으로 번들거리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환수는 스스로를 맹수라고 생각했다. 맹수는 사냥하기 쉬운 동물을 고른다. 다리를 다쳐서 도망칠 수 없거나, 아직 어려서 방어를 제대로 할 수 없거나 하는 동물들. 바텐더는 너무 크고 빨랐다. 눈앞에 있는 서너 마리 맹수들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환수는 자신의 무릎에 걸터앉아 천천히 옷을 벗으며 키스를 퍼붓는 바텐더의 모습을 상상하며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찾아냈다. 방어를 할 수 없는 짐승.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도 없고 도망칠 튼튼한 다리도 없는 가련한 짐승. 환수는 잔으로 부드럽게 테이블을 두드렸다. 바텐더가 환수에게 다가왔다. 서너 마리 짐승들이 사나운 눈빛을 환수에게 보냈다.

 

“저 여성분이 좋아할 만한 걸로 한잔 드리지. 계산은 내가 하고.”

 

바텐더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투명한 액체를 만들어낸 다음 거기에 푸른색의 청을 넣었다. 투명한 음료에 푸른색. 은은한 조명 덕에 그 모습이 몽환적으로 보였다.

 

‘돌아보지 마. 돌아보지 마.’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환수는 여자를 지나치게 밝혔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불행해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식들을 만난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자식들이 외국에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건 환수를 만나기 싫어서 한 거짓말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환수는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삶지도 않은 콩 비린내 나는 차가운 두부를 씹으면서 밤새도록 울었다. 하지만 후회는 하룻밤으로 끝났다. 사실 하룻밤도 필요하지 않았다. 환수는 다음날부터 원래대로 여자를 만나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성공하는 날도 있고, 실패하는 날도 있었다.

 

‘언제 정신 차리려나.’

 

생각에 잠겨 있던 환수는 팔을 쓰다듬는 손길에 깜짝 놀라며 옆을 바라보았다. 여자가 어느 틈엔가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자가 술잔을 들고 건배를 청했다. 쉽게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이 푸른색이 오로라처럼 내리고 있는 술잔 너머로 보였다. 환수가 미소를 지으며 건배를 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가 화장실을 간 사이 환수가 계산을 하기 위해 카드를 내밀었다.

 

“조심하세요.”

 

카드를 받아든 바텐더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저 여자 손님이랑 함께 나가서 돌아온 손님은 없으니까요.”

 

환수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꼭 돌아오도록 하지요.”

 

계산을 마친 환수가 화장실에서 돌아온 여자의 허리를 안았다. 손가락사이로 파고드는 옷감의 감촉이 술기운을 달아나게 했다.

 

 

 

 

 

6

 

제2공장 사무실 근처로 향한 환수와 정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사무실 안에서는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현은 발바닥에 온 신경을 집중해 혹시나 모를 바닥의 장애물을 밟아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천천히 전진했다. 머릿속으로는 환수와 한 대화를 떠올렸다.

 

“만약에 저 괴물이랑 싸우게 되더라도 머리카락을 조심해야 돼. 머리카락을 입속에 넣으려고 할 텐데 저 괴물 머리카락에서 이상한 약 같은 게 나와. 그걸 먹는 순간 현실은 다 잊어버리게 돼. 그냥 꿈속에 있는 것처럼 돼버리지.”

 

“그나저나 저 커다란 걸 어떻게 저만한 자루에 넣었어요.”

 

“자루에 넣을 때는 저렇게 크지 않았어.”

 

환수가 어깨를 잡는 바람에 정현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환수가 재빨리 정현의 입을 막으며 자기가 앞서 가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손가락과 입모양으로 차가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사무실 문을 돌아가서 뒤에 있는 화장실 앞에.’

 

환수의 말을 알아들은 정현이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어쨌든 사무실 문은 지나가야한다는 말이었다. 환수가 앞장서서 걸었다. 점점 괴물이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괴물은 여전히 사무실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하자 환수는 고개를 살짝 내밀어 괴물의 동태를 살폈다. 마치 벌레들을 정복한 것처럼 무수히 많은 벌레들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괴물의 모습이 희미한 손전등의 빛을 타고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괴물은 마치 선채로 잠이 든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신경과 근육이 달린 생명체처럼 괴물의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끊임없이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환수는 그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속으로 욕을 했다. 환수가 뒤를 돌아보며 정현에게 손짓을 했다. 그때,

 

“And now the end is near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전화벨 소리가 조용한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빌어먹을 시나트라!’

 

정현이 속으로 욕을 했다. 환수가 황급히 전화를 껐다. 정현의 머릿속에서 연태가 한 말이 맴돌았다.

 

‘전화라는 놈은 항상 그러지 말아야 할 순간에 울리는 법이거든.’

 

정현이 전화를 진동 모드로 해놓지 않은 것을 기억하고 아차 하는 마음에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는 순간, 정현의 전화기에서도 벨소리가 힘차게 울렸다. 정현이 전화기에서 밧데리를 분리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고개를 돌려 정현을 바라보고 있는 환수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괴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환수가 천천히 고개를 사무실 쪽으로 돌렸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머리카락들이 천천히 사무실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괴물의 머리가 사무실 안에서 튀어나왔다.

 

“정현아 도망쳐!”

 

환수가 괴물의 머리를 잡고 매달렸다. 머리카락들이 꽉 다문 환수의 입술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환수가 괴물의 목을 연신 주먹으로 내리쳤다. 환수의 목구멍을 원하는 머리카락들이 춤추듯 괴물과 환수의 사이를 채웠다. 환수의 주먹에 쓰러져 있던 괴물이 손을 들어 환수의 팔을 잡고 양 다리로 환수의 몸통을 졸랐다. 환수는 머리카락이 입에 들어가려는 것을 막기 위해 여전히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괴물이 환수의 팔을 잡은 손에서 손가락 하나를 세운 다음 환수의 얼굴로 가져갔다. 환수가 온 힘을 다해 막으려 했지만 괴물의 힘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천천히 환수의 얼굴로 전진하던 날카로운 손톱이 환수를 볼을 베었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무수히 많은 머리카락들이 쏟아져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정현이 정신을 차리고 환수를 돕기 위해 삼단봉을 들고 달려들었다.

 

“안 돼! 도망가!”

 

이 말을 마지막으로 환수의 얼굴에서 절망, 고통, 공포의 빛이 사라지고 환희와 쾌락의 빛이 떠올랐다. 환수가 바보처럼 웃었다. 괴물의 손이 환수의 배를 찢었다. 풍선이 터져 바람이 사방으로 뻗치는 것처럼 내장이 사방으로 튀어나올 때도 환수는 웃고 있었다. 괴물이 환수의 내장을 먹기 시작했다. 정현이 비명을 지르며 환수의 차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차가 눈에 보이자 리모컨에서 시동 버튼을 눌렀다. 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문을 열고 들어가 차를 몰았다

 

“이런 젠장!”

 

직진하던 정현이 급제동을 걸었다. 화장실 쪽으로 직진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쪽은 막다른 길이었다. 후진을 하기 위해 정현이 뒤를 돌아보자, 괴물이 브레이크 등의 불빛을 받아 붉은 모습으로 서있었다. 괴물이 정현을 향해 괴성을 질렀다. 정현이 후진 기어를 넣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로 괴물을 들이받으려는 순간 괴물이 위로 뛰어올라 차를 피해 제2공장 벽을 그대로 들이 받았다. 정현은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정신을 차린 정현이 멍한 머리를 감싸고 차에서 내려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다가 천천히 시야가 트였다. 정현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연태와 장환이 괴물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괴물을 이기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괴물이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장환과 연태가 몽둥이로 괴물을 다지고 있었다. 괴물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몽둥이에 찢어진 피부로 사이로 튀는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정현은 웃었다. 죽음의 공포에서 막 벗어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웃음소리로. 머리가 지끈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두 사람의 몽둥이질은 괴물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멈췄다. 장환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라이터 기름이었다.

 

“빌어먹을 머리카락은 아직도 움직이네.”

 

장환이 아직도 꿈틀거리는 괴물의 머리카락에 기름을 들이붓고 불을 붙였다. 머리카락들이 아우성 같은 몸부림을 쳤다. 연태가 괴물의 머리카락을 태우고 있는 불에 담배 세가치의 붙여 정현의 입에 하나 넣어주었다. 두 사람의 정현의 양쪽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 죽는 야간 경비원은 없어.”

 

연태가 중얼거리면서 웃었다. 장황과 정현이 따라 웃었다. 정현이 천천히 바닥에 머리를 뉘었다. 그때 정현의 머리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담배를 피웠더라?’

 

정현이 주위의 친구들을 번갈아 가면서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정현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희미해 보였다. 정현이 입에 물고 있던 담뱃불을 손바닥에 가져갔다. 뜨겁지 않았다. 연태의 어깨를 만졌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정현은 웃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한동안 멍하게 바라보다가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리. 오늘 여기서 죽는 야간 경비원은 없는데.

 

 

정현의 배에서 튀어나온 내장이 괴물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괴물이 게걸스럽게 정현을 먹고 있는 동안 정현의 입에는 괴물의 머리카락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끈적한 액체가 목구멍으로 쉴 새 없이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생명이 천천히 꺼져가고 있는 정현의 얼굴은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7

 

바 ‘던위치’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여자는 ‘에밀리’라는 이름이 쓰인 은색 명찰을 차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손님들에게 본명을 말한 적은 없었다. 경험상 자신에 대한 정보를 덜 알려줄수록 손님들은 더 많은 돈을 쓰게 되고 그러면 팁으로 책정된 이십 프로의 실제 액수를 늘릴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월급제가 아닌 성과제로 계약을 한 것은 잘한 일인 것 같았다. 본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화려한 미모 덕에 공치는 날은 없었다. 물론, 진짜 중요한 건 손님들이 돈을 쓰고 싶게 만드는 것이었다. 에밀리의 경우는 간단했다. 눈을 마주치거나 몸을 숙여 얼굴을 손님과 가깝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손님들의 주머니는 열렸다. 에밀리의 앞에는 항상 네댓 명의 손님들이 앉아있었다. 물론 돈 많은 사람들로만. 그건 에밀리가 의도한 일은 아니었다. 남자들의 세계에는 저절로 정해지는 서열 같은 것이 존재했다. 에밀리의 앞은 가장 빛나고 고결한 자리였다.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거기에 속해도 되는 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에밀리 주위에 있는 술병을 보고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승자와 패자는 저절로 정해진다. 바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말이다. 에밀리는 그 순간이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다. 열혈한 맹수인 줄 알았던 자가 자신의 참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서 위험한 표정을 짓고 행동을 거칠게 하면서도 예의바르게 보이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는 남자들을 볼 때. 매일 돈을 내는 남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던위치’에서는 맹수도 아니었고, 위험하지도 않은 모래알갱이 같은 존재들이었다. 에밀리의 주위에 있는 손님들은 그 모래 알갱이 중에서 발바닥을 가장 거슬리게 하는 정도의 존재들일 뿐이었고. 밤이 깊어가자 모래 알갱이들이 들어왔다. 에밀리는 한 눈에 자기 앞에 앉게 될 남자들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던위치’에서 가장 위험한 맹수는 에밀리였다. 그녀는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윽고 에밀리 앞에 손님들이 차고 뒤늦게 오거나, 앉을 자격을 얻지 못한 자들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에밀리는 바 가장 끝 쪽에 앉아있는 여자를 힐끔 바라보았다.

 

‘하이에나.’

 

꽤 자주 들리는 여자였지만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항상 끝자리에 앉아 있다가 남자의 유혹을 받으면, 거절하지 않고 그 유혹을 받아들였다. 에밀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하이에나의 운명이었다. 애당초 그렇게 살아가는 데 최적화될 수 있게 진화한 존재들이었다. 에밀리는 여자가 오는 날은 기분이 좋았다. 먹이사슬 최정점에 있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기도 했고, 다른 이유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바텐더.”

 

에밀리는 자신을 부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미소를 지어줄 필요는 없었다. 남자는 ‘던위치’에 들어오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에밀리의 앞자리를 포기했다. 심지어 가장 먼 길로 돌아가기까지 했다. 이런 손님에게는 딱히 친절할 필요가 없었다.

 

“저기 저 여성분에게 어울릴만한 칵테일 한 잔 드리지요.”

 

에밀리는 주문을 받고 돌아서서 이런저런 술을 섞기 시작했다. 사실 자신이 뭘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가장 비싸 보이는 걸로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저 여자는 변기의 물을 떠다 줘도 그냥 먹을 테니까. 에밀리는 생각했다. 이십 프로로 책정하는 팁을 백 프로로 받아도 되겠다고 말이다. 어차피 저 여자는 저 남자를 따라 나갈 것이고, 유혹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다소 불합리한 가격표를 받아들어도 체면이라는 것을 생각해 당장은 항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저 남자를 다시 볼 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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