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나는 휴대폰에 뜬 누나의 이름을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지?’ 했다. 워낙 정신이 없었다거나, 누나와의 두 자릿수의 나이 터울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저 사이가 소원했던 것이다. 나는 긴장한 채로 전화를 받았다. 이제는 낯설기까지 한 목소리가 대뜸 말했다.

“유성이 연락 없었어?”

나는 의식적으로 유성이라는 이름과 내 유일한 조카를 연결 짓고는 “잠깐만” 한 뒤 연구실 밖으로 나가 비상계단이 있는 곳으로 갔다.

“조카님, 아니 유성이가 왜?”

“연락 없었어?”

그것은 질문의 의미를 갖는 말이라기보다는 둑이 터지는 듯한 파열음에 가까웠다.

나는 무의식 한쪽에 넣어뒀던 나의 조카님에 대한 것들을 꺼내 빠르게 재구성했다. 조카님의 현재 나이 따위를 계산해야 할 정도로 왕래가 없었다는 자각은 사치였다.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들은 세부사항을 바탕으로 한 재구성이 끝나자마자 내가 말했다.

“유성이 곧 졸업이잖아.”

“수능이지.”

그놈의 수능은 그 존재감이 유일신 못지않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고, 그게 누나가 나한테까지 전화를 한 이유였다. 누나한테는 어떨지 몰라도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누나가 평소보다 과민하다는 증거였고 그만큼 실제 상황이 나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방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수능이야. 수능 앞두고 애가 얼마나 지쳤겠어. 잠깐 바람 좀 쐬는 걸 거야.”

휴대폰 너머의 정적이 내 숨통을 조여왔다. 뭘 잘못 말했나 싶은 것도 잠시 누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유성이 데리고 있지?”

정말이지 치명적인 비약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조차 누나에게는 자신의 말을 뒷받침할 증거가 될 뿐이라는 생각에 나는 얼른 말했다.

“나 벌써 죽고 싶지 않아.”

“유성이 거기 없어?”

“없어. 통화는커녕 문자도 해 본 적 없어. 자그마치 10년 동안!”

“왜 짜증이야.”

짜증은 아니었다. 누나를 향한 것도 아니었고.

“미안. 근데 진짜 아니야.”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끊자. 나는 나대로 찾아볼게. 찾으면 연락해.”

연구동을 나와 대학교 교정을 가로지르며 조카님을 어떻게 찾을지 고민하는데 언뜻 시선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본관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누군가 서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후드를 깊이 눌러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로.

그것이 열쇠인 양 무의식의 문이 벌컥 열리고 기억 하나가 튀어나왔다. 10년 전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나는 강을 따라 난 산책로를 약간은 비장한 마음으로 걷고 있었다. 후드를 깊이 눌러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로.

나는 파티에 가는 중이었다. 파티의 이름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파티’였다. 주최자는, 나의 위대한 조카님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슬슬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깨달아가던 즈음, 나는 엄마의 악마 같은 계략으로 누나네 얹혀살게 되었다. 누나와 나는 나이 차이가 누나와 나라는 인간의 성격 차이만큼이나 컸다. 그런 누나가 내게 얼마나 어려운 존재였는지를 설명하기란 이제 막 심화 과정에 돌입한 전공 문제만큼이나 복잡다단했다. 하지만 숙식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분명 누나의 어려움만큼이나 커다란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나의 위대한 조카님을 볼 수 있다는 것.

엄밀히 말해 조카님은 위대하다는 수식을 붙일 정도로 대단한 아이는 아니었다. 그저 그 아이의 존재로 하여금 내게 끼치는 어떤 느낌, 어떤 감성이 위대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다른 걸 다 제쳐두고 이제 막 대학생이 된 내가 느낀 허망함을 조카님 앞에서는 잊을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조카님은 나에게 위대했다. 증명 끝.

하지만 분명 조카님에겐 조금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9살의 나이에 아이돌이나 건물주가 아닌 시간여행을 꿈꾸는 것이 그 증거였다.

‘빅뱅 이전의 세상은 어땠어요?’

정확히 저렇게는 아니지만, 어렸을 때 나는 만나는 어른마다 붙들고 물었었다.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일단은 설명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답이 나오지 않아 자가당착에 빠져 허우적댄다. 그런 와중에도 순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그들에게 결국 꺼려지는 존재가 된다. 그 이후의 반응은 제각각이지만 그로 인해 내가 느꼈던 것은 실망과 회의, 그리고 터무니없지만 약간의 배신감으로 일관됐다. 물론 지금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조카님의 꿈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시사케 했다. 우선은 안타까웠고, 그럼에도 응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타고나기를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기로 소문난 나에게 조카님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이렇게 물으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간여행이 정말로 불가능해?”

“누가 그래?”

조카님은 누나의 스마트폰을 내게 보였다. 유튜브 영상이 멈추어 있었다. 나도 재미 삼아 본 적이 있는 과학 채널이었다. 영상의 제목은…….

‘타임머신을 통한 시간여행이 불가능한 이유’

나는 음, 하고 난처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과거에 내가 받은 상처 아닌 상처를 조카님 또한 받지 않았으면 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걸 가능하다고 거짓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꼼수를 썼다.

“이론적으로, 가능해.”

조카님의 표정은 복잡했다. 가능하다니까 기뻐하긴 해야겠는데, 그 앞에 붙은 요상한 놈 때문에 마냥 그럴 수가 없는 거였다. 나는 부연설명을 위해 스탠드를 껐다.

“봐봐.” 스탠드를 다시 켜며, “이 빛이 어디서 나오지?”

조카님은 시간여행 얘기하다 말고 무슨 수작인지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답했다.

“전구.”

“맞아. 이렇게 스위치를 켜는 순간, 전구는 빛을 쏴. 근데 전구에서 쏴진 빛이 책상을 밝히는 데 얼마나 걸릴까?”

나는 스탠드 스위치를 껐다 켜기를 반복했다. 똑딱거리는 소리를 듣고 누나가 방 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장난치지 마라. 전기세 나가.”

흥, 지금 얼마나 값비싼 강의를 하고 있는데 그까짓 전기세 따위. 나는 즉시 장난을 멈췄다. 누나가 쯧, 하고 다시 사라졌다.

조카님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무 빨라서 모르겠어.”

이런 기특한 조카님을 보았나.

“바로 그거야. 빛은 너무 빨라.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빨라.”

조카님이 이제는 답을 내놓으라는 듯 날 쳐다봤다. 짜식, 누가 누나 아들 아니랄까 봐.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들어. 만약에, 우리가 이 빛처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고 쳐. 그럼 우리가 빛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 우리 시간이 느려져.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 시간만 느려지는 거야. 다른 사람은 아니고. 왜라고?”

“우리가 빛처럼 빠르게 움직여서.”

나는 조카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렇지. 그래서 시간여행이 가능한 거야. 우리 시간이 느려진 만큼 남들은 저 미래로 가버리니까. 결국 미래로 시간여행을 한 셈이지.”

“그럼 과거로는?”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말했다.

“못 가.”

“왜?”

나는 내가 아는 한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 무시무시한 이론과 논리적 모순 들을 그냥 설명하기도 만만치 않은데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이를 상대로 풀어서 설명하려니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위대한 조카님은 끈기 있게, 중간 중간 질문을 해가며 천천히 내 뒤를 쫓아왔다. 분명 기특한 일임에도 나는 기뻐할 수 없었다. 조카님의 세계가 무너져 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조카님의 눈치를 살폈다. 실망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단지 피곤해 보였다. 안 그래도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운 편인데 왠지 더 나이를 먹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미안함과 죄책감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럼 아빠를 볼 방법은 없는 거네.”

그러고는 내 방을 나가 버렸다. 치명타를 맞은 느낌이었다.

조카님의 아빠, 그러니까 그 호칭조차 어색한 매형은 나 역시 본 적이 없었다. 서울에서 혼자 살던 누나가 어느 날 임신을 한 채로 우리 집에 내려온 게 전부였다. 그때 내 나이가 10살도 채 안 됐을 때니 누나의 상황을 알 리 없었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을 땐 이미 옛일이 되어 굳이 되짚어 물을 수 없었다.

조카님에 의하면, 매형은 누나가 임신 중에 죽었다는데 신빙성이 떨어졌다. 누나는 결혼식은커녕 혼인신고도 안 한데다가 우리 집에서 지내는 내내 감정이 격해 있었다. 임신 중에 겪는 우울증이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였다. 매형이, 아니 그 개자식이 누나와 조카님을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개자식도 조카님에겐 그저 아빠일 뿐이었다. 시간여행을 해서라도 보고 싶을 정도로 그리운.

 


조카님은 한동안 말도 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는, 종이 인형 같은 상태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누나가 조용히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 나는 조용히 답했다. 글쎄. 사춘긴가 보지. 내 자신이 미웠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참, 곧 생일이지?”

“누구?”

“누군 누구야, 조카님이지.”

누나는 아, 했다. 마치 오전 중에 할 일 하나를 깜빡했다는 듯 간결하게. 사실 우리 집안이 생일 같은 기념일을 원체 안 챙기다보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카님의 생일만큼은 허투루 넘어갈 수 없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지만 안 주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까.

나는 선물을 고르기 위해 조카님을 관찰했다.

조카님은 집에 있는 동안 자기 방에서 좀체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필기구 핑계를 대며 조카님 방을 들락거렸다.

“연필 있냐?”

“공책은? 줄 없는 걸로.”

“풀 있어? 아니면 스카치테이프.”

조카님은 인내심 있게 고분고분 물건을 내주었다. 조카님의 책상 위에는 스케치북 낱장이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내가 들어갈 때마다 거기에 뭔가를 쓰고 그리고 있었다. 거기 집중하느라 내가 귀찮게 하는 것도 모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참지 못하고 내가 물었다.

“뭐 해?”

자판기처럼 물건을 내어놓던 조카님이 그제야 나의 성가심을 깨달은 것처럼 미간을 구겼다. 몸을 살짝 숙여 쓰고 있는 것을 가렸다.

“가위 여기 있잖아.”

“안 알려줄 거야?”

조카님은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나는 방을 나오며 미소 지었다. 타깃을 발견한 것 같았다.

 


오전 강의가 없는 날, 나는 방에서 죽치고 있다가 현관문이 닫히고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를 듣고서야 밖으로 나갔다. 치밀함이 살짝 떨어지는 누나가 나가다 말고 돌아올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은 냉장고를 뒤져 식빵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보드라워진 식빵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 창밖을 주시했다. 지하주차장을 지켜보며 식빵을 우물거리고 있는데 누나 차가 나타났다. 이 정도면 되지 싶었다.

나는 조카님의 방에 들어갔다. 책상 위는 깨끗했다. 조카님이 그 스케치북 낱장을 학교에 가지고 갔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다행히 스케치북 낱장이 있었다. 크레파스로 크게 ‘시’라고 쓰여 있는. 나는 약간 두려움을 안고 스케치북 낱장을 넘겨댔다. 그다음 장은 ‘간’이었다. 글자들을 조합해 보니 이러했다.

‘시간여행자를 위한 파티’

영어 버전도 있었다. ‘PARTY FOR TIME TRAVELERS’ 도대체 요새 학교에선 무슨 짓을 하길래 9살짜리가 전치사를 다루는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지는가.

함께 들어 있는 공책에는 파티에 대한 구상이 적혀 있었다. 날짜는 일주일 뒤, 조카님의 생일날이었다.

 


미래의 물건인 듯한 휠체어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모습으로 유명한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비밀리에 파티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파티가 끝나고 호킹은 파티를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파티를 위한 장식으로 꾸며진 하얀 공간에 호킹이 있었다. 혼자서 말이다. 이후 호킹은 공식적으로 파티 초대장을 배부했다. <시간여행자를 위한 연회 초대장>이었다.

그 파티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정말로 가능하다면 미래의 누군가 호킹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려 시간여행을 통해 파티에 참석하리라는 추론이었다.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으니 호킹의 파티는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물론 호킹의 파티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완전히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여행 중 과거의 사람을 만나면 안 되는 법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미래의 사람들에게 호킹의 파티가 그다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을(할) 수도 있다. 애초에 그 실험은 불가능을 재확인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카님의 목적은 그런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며칠 전 내가 그랬듯 그 실험 역시 조카님의 세계를 무너뜨릴 것이다.

아니, 어쩌면 조카님 자체를.

 


조카님의 생일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 눈엔 모든 것이 위태롭게만 느껴졌다. 특히 조카님이 그러했다. 기계처럼 일어나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책가방을 꾸리는 모습에서 전에 없는 비장함이 새어나오는 듯했다. 괜히 덩달아 긴장한 나는 차려 자세로 누나와 조카님을 배웅했다. 내가 말했다.

“오늘 학교 끝나고 놀러갈까?”

조카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싫어?”

“나 바빠.”

사실이었다. 조카님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파티가 열리기로 되어 있는 장소로 달려갔다. 그곳은 아파트 단지 근처의 강가를 따라 30분쯤 걷다보면 나오는 공터였다.

조카님은 야무지게 챙겨놓은 꾸러미를 꺼내 주변을 꾸몄다. 심열을 기울여 쓴 환영 문구와 의미가 애매한 그림 들을 고가도로 기둥에 붙이고 풍선을 불어 갈대풀에 묶었다. 초등학생이 용돈을 쪼개 한 것 치고는 제법 그럴싸해서 만약 그 파티가 선생님을 위한 것이었다면 필시 그 선생님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터였다.

최종적으로 조카님은 기다렸다. 미래의 시간여행자를. 그 희망이 부서지는 순간을 기록하기 위한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서 말이다.

그때의 기다림은 조카님에겐 다시없을 초조한 순간이었다고 훗날 내게 말했다. 끈질기게 서서 막연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을 해 본 적이 나는 없었다. 다행히도 그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누군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사람은 평범해 보였다. 깊이 눌러 쓴 후드와 커다란 마스크로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기는 했지만, 최근 들어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장이었다. 조카님도 학교에 갈 때 마스크를 자주 쓰기 때문에 경계심을 갖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저 사람이 시간여행자가 아니면 어쩌나 싶은.

조카님은 일회용 카메라를 부서져라 움켜쥔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누군가, 예비 시간여행자를 바라보았다.

예비 시간여행자는 조금은 서두르는 듯한 동작으로 조카님 앞에 와서 멈춰 섰다. 조카님은 일회용 카메라를 예비 시간여행자의 얼굴에 맞춰 조정하며 입을 열었다.

“한국말 할 수 있어요?”

예비 시간여행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카님이 영어로 말하려 머릿속으로 완전한 형태의 의문문을 조립하는데 예비 시간여행자가 조카님이 치켜든 일회용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찍지 말라고요?”

예비 시간여행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카님은 아쉬운 마음과 함께 일회용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가 시간여행자가 틀림없다는 확신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까지 제어할 수는 없었다.

예비 시간여행자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조카님에게 건넸다. 그것은 구형 스마트폰이었다. 조카님이 얼결에 받아 들자 예비 시간여행자는 또 다른 스마트폰을 꺼내 들며 뒷걸음을 걸었다. 곧 조카님의 손에 있는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통화가 걸려온 거였다.

조카님은 마치 그것이 방사선을 분출하는 물질인 양 신중을 기해 통화 버튼을 밀고는 천천히 귀에 대 보았다. 스마트폰에서 사람의 것이 아닌 듯한 목소리가 말했다.

“안녕.”

조카님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미래에서 온 것이 틀림없는 사람이, 평범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차림새로 나타나 느닷없이 구형 스마트폰을 건네고는 뒷걸음치며 변조된 목소리로 태연하게 ‘안녕’ 하고 인사하다니. 이 모든 게 조카님에겐 꿈만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저기 멀어져 가는 사람이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가 맞으며,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그거면 족했다.

조카님은 빛의 속도로 눈물을 훔치며 스마트폰에 대고 말했다.

“안녕, 안녕하세요.”

그 어느 때에도 예의를 잊지 않는 조카님. 나는, 아니 예비 시간여행자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조카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저기, 미래에서 왔나요?”

예비 시간여행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렇게 물었다.

“네가 이 파티를 주최… 열었니?”

“네!”

조카님의 목소리가 강물을 타고 흘렀다.

“정말 미래에서 왔어요?”

“미안하지만 말할 수 없어.”

“왜요?” 조카님은 아차 싶다는 듯 얼른 덧붙였다. “알았어요. 말하면 안 되는 거죠? 맞죠?”

“맞아.”

“그런데 이렇게 나타나도 돼요?”

“그건, 실은 안 돼. 법적으론 말이야.”

조카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서 이렇게 얼굴을 가린 거야. 내가 누군지 모르면 누구도 날 처벌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대화하는 거 이해할 수 있지?”

“그럼 지금 하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거네요.”

스마트폰을 통해 변조된 숨소리조차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는 못했다.

“왜죠? 왜 여기 왔어요?”

“그게… 너한테 말해주고 싶어서야.”

“뭘요?”

“음, 그러니까…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하지만 삼촌은 불가능하댔어요.”

“그 멍청한 인간 말은 들을 필요 없어.”

“삼촌은 멍청하지 않아요.”

조카님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과 미래는 다르기 때문에… 미래에는 얼마든지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이야.”

조카님은 약간 분을 삭이는 것처럼 예비 시간여행자를 노려보듯 보았다. 그 시선에 예비 시간여행자는, 아니 나는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야. 그거 말해주고 싶어서 온 거야.”

조카님은 서서히 표정을 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꾸며놓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파티장을 둘러봤다. 여기저기 붙여놓은 스케치북과 풍선이 고가도로 아래 특유의 바람으로 휘날려대고 있었다.

시간여행자를 위한 파티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초라하고 서글프게.

 


그 날, 내가 후드를 깊이 눌러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그곳에 간 것은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었음은 물론이고 단순히 어린 조카님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또한 맹세코 아니었다. 하지만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내가 한 행동은 조카님에게 커다란 변화를 안겨준 것처럼 보였다. 안 그래도 애늙은이라는 평가를 받던 조카님이 문자 그대로 애-늙은이가 되어버린 거였다.

나는 대역죄인이 된 심정으로 조용히 방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대학교 기숙사에 자리가 비어 나는 도망치듯 누나네를 나왔다. 일부러 더 학업에 매진했고 덕분에 평소에 좋아하던 교수님과 함께할 기회도 얻었다. 결국 나는 조카님의 파티를 잊고 살게 되었다.

 


“집 좋네.”

조카님이 침대에 몸을 던졌다. 녀석은 어느새 싱글 매트리스가 부족해 보일 정도로 커져 있었다.

“삼촌 같아.”

머릿속으로 이 상황을 누나한테 어떻게 보고해야 후한이 덜할지 계산중이던 나는 주의를 뺏기고 말았다.

“어떤 면에서?”

조카님은 오피스텔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책상 쪽을 가리켰다. 그 위에 펼쳐져 있으나 체계를 갖고 분류된 물건들을.

“융통성이 없어.”

“깔끔한 거야.”

“온정이 없는 거야. 어린 조카한테 꿈은 못 줄망정 깨부수기나 하고.”

“내가 언제…….” 나는 내가 했던 시간여행자 행세를 떠올리며 버럭 말하다가 참았다. “아니, 그건 그런데, 너도 이제는 알겠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을 거스를 순 없어. 알잖아? 너 공부 잘한다며?”

침대 끝에 걸터앉은 조카님은 다리로 가위질을 하며 어렸을 때도 하지 않던 장난을 쳐댔다. 표정 또한, 수능을 앞두고 가출을 했거나 멍청한 삼촌을 원망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냥 편해 보였다. 불편한 것은 나뿐인 모양이었다.

“알아. 빛보다 빠를 수 없고, 그래서 시간을 거스를 수 없어. 요행을 써 과거로 간다 해도 풀어야 할 모순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도.” 조카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삼촌도 힘들었겠다. 아홉 살짜리한테 시간 지연 설명하는 거. 나라면 포기했을 거야.”

“그게 설명이냐? 네가 그냥 참고 들어준 거지. 네가 고생했다.”

“그건 그래.”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10년 만에 만난 삼촌과 조카 사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급격하게 허물어진 시간의 장벽은 그 자체로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품고 있었다. 보통 친한 친구 사이가 이렇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 친구가 내게는 없었다. 그 대신 위대한 조카님이 있지만.

나는 책상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댔다. 긴장이 풀리고 몸이 따듯해져서 노곤노곤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내 입장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왜 안 하던 짓이야?”

조카님이 맞춰보라는 듯 날 보고 웃었다. 본 적 없는 변화에 기분이 묘했다.

“공부가 싫어요, 는 아닐 거고. 누나… 엄마랑 싸운 것…도 아니겠지. 야, 선배로서 하나 충고하는데, 웬만하면 엄마 건들이지 마라. 피 보는 건 결국 우리야.”

“엄마도 힘들어서 그래.”

나는 뜻밖의 대답에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내 앞에 있는 아이가 내가 알고 있던 나의 위대한 조카님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 힘들었지…….”

조카님의 말대로 누나는 엄마로서, 여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힘들었다. 이쯤 되면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이 하나 있었고, 조카님도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아빠 찾았어.”

“뭐?”

내가 의자를 밀치듯 일어서자 조카님이 두 손을 들고 제지했다.

“그 인간… 아니, 네 아빠 어딨어?”

“말 안 할 거야.”

“왜?”

“삼촌이 알아서 뭐하게?”

“뭐하다니, 찾아가서…….”

내가 말을 흐리자 조카님이 확인사살을 했다.

“삼촌이?”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엄마도 알아?”

“당연히 모르지.”

“어떻게 찾았어?”

“내가 삼촌은 어떻게 찾았을 거 같아?”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난 SNS 같은 것도 안 하는데?”

조카님은 웃었다.

“뭐, 운도 좋았지만.”

“그래서, 어쩔 건데? 만날 거야? 만나러 온 거야? 설마 이 근처에 있어?”

“만났어.”

나는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만 뻐끔거렸다. 동시에 자괴감이 내 뺨을 때렸다. 이런 놈이 뭘 하겠다고 하루 20시간씩 연구실에서 보내는 걸까.

“그냥 삼촌 생각이 나서.”

조카님이 일어섰다. 나도 따라 일어섰다.

“엄마한텐 그냥 나 못 찾았다고 해. 좋은 소리 못 들을 테니까.”

“가게? 갈 거야, 지금? 집으로?”

“당연하지. 수능이 코앞인데.”

“그렇지.”

나는 또다시 죄인이 된 기분으로 조카님이 신발을 꿰어 신는 모습을 지켜봤다. 조카님은 거울을 보며 후드를 깊숙이 눌러 쓰고 얼굴만 한 마스크를 한쪽씩 귀에 걸었다. 그러고는 겨우 보이는 눈으로 거울을 통해 날 쳐다봤다.

“삼촌은 어땠어?”

“뭐가?”

“이렇게 나 자신을 감추는 거 말이야. 이러고 가서 그냥 멀리서 보기만 했거든.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 본 것도 아니고 안 본 것도 아닌 거 같은. 삼촌도 비슷했어?”

다 알고 있었구나. 놀라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내가 했던 어처구니없는 일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확인한 것처럼. 도대체 나의 한심함은 그 끝이 어디일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땠냐니까?”

“싫었어.”

조카님은 내 말을 곱씹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그랬던 거 같아.”

조카님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말했다.

“그래도 나는 그때 고마웠어.”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도 그럴까?”

나는 주저하다가, 결국 답했다. 답이 될는지 알 수 없는 대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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