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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개꿈

2019.02.06 22:3402.06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양갈래 길에서 넋을 놓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왼쪽으로 난 골목길에는 꿈속에까지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는 사나운 개가 금세라도 짖을 듯 길을 가로막고 있었고, 오른쪽 골목에는 동네에서 십원에 한대로 유명한 형이 땅바닥을 침으로 적시며 두 손에 든 동전을 절그렁대고 있었다. 

 

왼쪽의 저 개가 어떤 어른의 다리를 사정없이 물어뜯는 것을 꿈에서 보았는지, 실제로 보았는지, 나의 상상이었는지 나는 지금 제대로 기억할 정신이 없다. 으르렁거리는 이빨이 콧잔등을 주름으로 사납게 일그러뜨리며, 고리 모양으로 벌겋게 찢어진 구멍까지 올라갔다. 그 구멍 안, 양 끝으로 돌아간 눈 두 개가 희번덕거리자, 나는 허리 아래가 다 꺼진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른쪽은 또 어떤가? 동네 중학교 짱의 가슴에 끔찍한 상처를 남긴 샤프는 분명 그의 바지 주머니에 있을 것이다. 학교 짱도 그를 피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소문에 그는 이 동네 코흘리개들의 공포가 되었고 코 묻은 돈의 주인이 되었다. 


나는 지금 좌로나 우로나 치우칠 수 없는 곳에 서 있다.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미친개의 이빨에 뜯길 것인가? 절그렁거리는 손에 들릴 샤프에 긁힐 것인가? 나는 돈도 없고 광견병 주사도 맞지 않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집에 동생보다 먼저 도착하지 않으면 한 개 남은 라면의 국물만 먹게 될 것이다. 동생과 나는 서로에게 국물만은 남겨 주었다. 국물만은.

 

나도 이제 열한 살, 제법 잽싸게 달릴 수 있다. 이건 어떨까? 개를 유인하여 그 길로 샤프 형에게 달려가 개와 형을 맞붙게 하면 어떨까? 이빨과 샤프가 엉킬 때, 바로 그. 때. 나는 쏜살같이 그 지긋지긋한 골목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에게 안보이던 승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샤프 형은 조리를 신고 있다. 그리고 그의 허파는 지금 달리기에 불리한 담배 연기를 연신 들이키고 있다. 
잠깐, 잠깐. 얼마나 멀리 뛴다고 지금 담배 연기를 운운하고 있는 거지 나는? 마라톤이 아니잖아, 이건 그야말로 스피드 싸움이라고. 스피이드!

 

냉정할 필요가 있어, 냉정할.
망할 냉정은 나로 하여금 문득 나의 나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나는 만으로 열한 살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열 살. 열 살의 나이로 과연 저 이빨의 스피드를 이겨낼 수 있을까? 다시 발이 물먹은 솜뭉치처럼 무거워졌다.

 

차라리 이 골목도 저 골목도 아닌 내 앞의 이 담을 타고 올라가서 기와 위를 걷는 것은 어떨까? 
나는 무협만화에서 담벼락과 기와를 날 듯이 걷는 주인공의 다리를, 그 만화를 그린 만화가보다 더 정교하게 그려낼 정도로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보아왔다. 만화방에서 보고 또 본 것으로 모자라, 그 부분을 만화방 주인 몰래 찢어 가방 속에 넣어가, 밤마다 보고 또 보았던 것이다. 언젠가는 해볼 심산으로.

 

잠깐, 잠깐. 그러고 보니 이것은 운명인가 보다. (나는 체념하였던 것이다.) 나는, 발차기와 권법, 검술 대결 등의 수없이 많은 멋진 장면도 마다하고 담벼락과 기와 위를 자유자재로 걷는 장면을 몰래 찢었던 나는, 그렇다면 오늘 이 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기뻐해야만 한다. 기뻐하자, 기뻐하자고. 기뻐하자고 마음먹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무서워서가 아니라고, 정말 기뻐서 나온 눈물이라고 담벼락에게 말했다.

 

나는 일단 책가방을 벗었다. 가방을 가만히 아주 살짝 내려놓았다. 쓰리 세븐을 내려놓은 장본인인 나도, 쓰리 세븐 가방 자신도 모를 정도로 아주 가.만.히. 나는 쓰리 세븐에게 약속했다. 내일 학교 가는 길에 꼭 찾으러 오겠다고. 나도 맘이 무거운 건 마찬가지라고. 너는 더럽고 오래된 가방이라 아무도 손대지 않을 거라고. 어쩔 수 없다. 엄마한테 죽도록 얻어맞아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지금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 몸을 가볍게 하여 기와 위를 걸어야 한다. 기와 위를 무사히 통과하면, 집까지 번개와 같은 속도로 내달릴 것이다. 반드시 동생보다 먼저 도착할 것이다. 그리하여 꼭 면발을 독차지할 것이다. (7080의 삼양라면이었던 것이다.)

 

나는 영혼을 몸에서 빼내어 나의 방이자, 동생의 방이자, 우리 가족의 방,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우리 집 단칸방으로 날려 보냈다. 나와 동생이 붙어서 자는 벽에는 곰팡이 핀 벽지 대신, 그보다는 그래도 한결 깨끗한 누런 신문지가 붙어 있다. 그곳에 내가 훔친 만화가 붙어 있었고 나의 영혼은 다시 한번 담벼락과 기와 위를 걷는 주인공을 따라 걸었다. 마지막 연습이었다. 만화가가 그리기 싫어, 흘려 그린 다리의 모호하고 실 같은 선들도 다른 장면에서 수도 없이 본 굵고 선명한 다리의 선들로 복원하여, 나는 깃털처럼 가볍지만, 흔들림 없이 걸을 수 있었다. 발 없이 공중에 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몇 개의 호를 그리는 곡선만으로 때운 장면에 이르렀을 때, 내 영혼은 절망하였다. 

 

그때, 부엌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이, 동생이 집에 도착했고, 그는 지금 라면 봉지를, 봉지를 뜯으려는 참이다. 나는 급히 나의 영혼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힘차게 왼발로 담벼락을 찼다. 영혼의 발이 내 몸의 발에 이르기도 전이었고, 이어서 오른발로 더 높은 곳의 담벼락을 차고 올랐다. 이 또한 영혼의 오른발이 내 몸의 오른발에 이르기 전이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세 번의 발차기는 나를 담벼락 위로 올려놓았다. 바람 한점 일으키지 않았고, 나는 털끝만큼도 흔들리지 않았다. 잠자리 한 마리가 십자로 벌린 내 양팔 여기저기를 훑으며 날아다니더니, 왼쪽 어깨에 고요히 내려앉았다.

 

잠자리를 놀라게 해서는 안된다. 이 녀석이 나의 균형이다. 이 녀석이 날아가 버리면 나는 떨어질 것이다. 나는 내가 봤던 만화에서처럼 물 흐르듯이 담벼락을 타고 이동했다. 순조로웠다. 이대로 이 흐름을 유지하면서 기와로 갈아타야 한다. 기와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와지붕이 가까워지면서 기와는 담벼락보다 점점 높아져 갔고, 담벼락과 기와 사이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멈추면 안 된다. 잠자리가 알아챌 것이다. 그대로 가다가, 가는 힘에 실려 기와지붕으로 나와 잠자리를 옮겨야 한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고, 이 중요한 순간에 나에게 떠오른 만화의 장면은 하필, 발 없이 떠있는 그 그림이었다. 딸기코 아저씨네 마당으로 떨어지는 일만 남았다. 나는 추락하면서도 만화가가 주인공의 발대신 때운, 그 알 수 없는 호가 그리는 곡선의 궤적을 머릿속에 그리며, 딸기코 아저씨네 나무와 주춧돌 기둥 사이에 묶인 빨랫줄에 눈처럼 사뿐히 내려앉았다가, 가뿐히 뛰어올라 기와지붕에 안착했다. 

 

이번에는 진실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렇구나, 그랬어! 나는 내가 그토록 만화방에 드나들던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이 날을 대비하기 위해, 기와 위를 걷기 위해 그렇게 만화방에서 얻어터져가며, 그렇게 그곳에서 쫓겨나며, 그렇게 그곳에서 아저씨들이 먹던 맛있는 짜장면 냄새를 참아가며, 만화에 열중하고 열중했던 것이다. (물론, 인심 좋은 아저씨가 먹던 짜장면을 남겨줄 때도 있었다. 남은 단무지를 슬쩍 먹는 그 맛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의 몸은 기쁨과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잠자리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도대체 이 놈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지금 나의 달팽이관이 날아간 것이다. 나는 다시 미역처럼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서 있을 수가 없어 두 손으로 기와를 짚었다. 짚은 기와가 옆의 기와를 밀고, 이어서 밀린 기와가 옆의 기와를 밀며, 한 칸씩, 한 칸씩, 오른쪽 기와와 왼쪽 기와가 똑같은 속도로, 정반대 방향으로 밀려 내려갔다. 딱 두 개의 기와가 하나는 왼쪽으로, 하나는 오른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왼쪽의 기와는 이빨의 대가리 위로, 오른쪽의 기와는 샤프의 머리 위로.

 

이제 죽게 되었구나. 죽게 되었어. 국물도 못 먹고. 여기 위, 무서운 딸기코 아저씨네 지붕 위에서. 이빨에 찢기고, 샤프에 긁힌 후에도 내가 살아 있다면, 아저씨 기와에 남은 내 지문과 아저씨 담벼락에 남은 내 신발 자국에 화가 난 아저씨의 몽둥이질에도 살아남는다면, 집까지 기어가, 국물이라도 마시리라.

 

이런 생각에 한참 빠져 있다가 다시 바라본 두 기와는 여전히, 달팽이가 기어가는 속도보다도 더 느리게, 그 둘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잠깐, 잠깐. 어떻게 해서 이렇게 느린 속도로 떨어지는 거지? 마치 헤어진 나의 쓰리 세븐 가방을 내려놓는 것 같군… (갑자기 나의 쓰리 세븐 가방에게 미안해졌다. 그는 쓰리 세븐이 아니었다. 동생의 신발에 나이키 로고를 그려 넣은 것처럼 이름 없는 그에게 777을 그려 놓은 건 그를 부끄럽게 생각해서가 아니었는데…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였는데…)

 

나는 바람 한점 없고 공기도 따뜻하게 얼어버린 이 곳에서 무의식적으로, 혹은 간절한 바람으로 기와의 방향을 바꾸려는 듯 손가락을 허공에 그었다. 그러자 떨어지고 있는 기와는 느리지만 분명하게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다시 안보이던 승산이 내게로 돌아왔다. 내친김에 기와를 위로 들어 올리는 손짓을 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잠깐, 잠깐만. 기와가 꽤나 강해 보이니 아예 이대로 저 둘의 머리를 박살 내 버릴까? 내 생각을 알았는지 이번에는 손짓도 필요 없이 두 기와가 원래의 궤도로 돌아와 다시 이빨과 샤프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그들이 머리에 기와를 맞고도 무사하다면 나에게 돌아올 그들의 화풀이는… 이빨이 뽑힐 때까지 나를 물어댈 것이고, 샤프의 끝이 부러질 때까지 나를 긁어댈 것이다. 다시 기와의 방향을 틀었다. 아니 아니지, 잠깐, 잠깐만. 나는 지금 이 둘도 없는 기회와 소중한 시간을, 기와의 방향을 바꾸는 것에 탕진하고 있구나. 나는 이대로 어서 이 곳을 빠져나가면 그만이란 걸 깨달았다. 깨달음과 동시에 몸을 날리려는 데, 기와가 언뜻 소나기처럼 그 둘의 머리 위로 퍼부을 기세였다. 흠칫하며 제자리에 멈추어선 나.

 

어떤 것은 내 맘대로 되고, 어떤 것은 내 뜻대로 안 되는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갑자기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의 모든 힘을 동원해 기와를 하늘 높이 끌어올렸고, 그 기와를 힘껏 그 둘의 머리를 향해 쏟아부었다. 그들이 죽을 차례다.

 

갑자기 엄마의 음성이 머리를 울렸다. 아니 가슴이었나? 남을 해치는 사람은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는 음성.

 

이빨의 대가리와 샤프의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기 바로 직전에, 나는 방향을 틀었고, 기와는 가까스로 그 둘의 머리를 피해 그들의 코앞에서 땅을 뒤흔들었다. (그때 나는 보았다. 이빨의 희번덕거리던 눈이, 덫에 걸려 공포에 질린 생쥐의 눈처럼 되었던 것과 샤프의 겁먹은 표정은 그저 우리 동네 바보 형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땅이 다섯 뼘만큼의 지름과 세 뼘만큼의 깊이로 구멍이 났고, 기와는 박힌 채로 티끌의 흠도 없었다. 무사한 기와를 보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일단 저 기와만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 있다면, 딸기코 아저씨에게 맞는 일은 면할 것이다. 담벼락에 묻은 나의 신발 자국은 내 침으로 박박 닦아낼 것이다. 아마 나의 눈물도 한 몫하겠지.


지금 이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다시 본래의 괴물로 돌아온 그들이 맙소사… 악에 받친 야수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개 주제에, 인간인 주제에 발 없는 짐승처럼 담을 타고, 기와까지 올라왔다. 두 발 달린 짐승은 내 앞에, 네 발 달린 짐승은 내 뒤에 똬리를 틀고 선 것이다. 앞 똬리의 깊은 곳에서 샤프가, 뒤 똬리의 깊은 곳에서 이빨이 나를 순식간에 덮쳤다.

 

꿈에서 깨었을 때 나는 내 방이자, 내 동생 방이자, 우리 가족의 방, 그러니까 같은 얘기로 단칸방에 있었고, 내 777 가방도 나와 함께였다. 동생은 보이지 않았고, 라면은 두 개였으면 좋겠지만, 하나가 남아 있었다. 라면 하나가. 그대로.

 

나는 라면을 끓였다.
동생이 우당탕탕 들이닥쳤다. 라면 끓는 냄새가 녀석을 울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동생의 눈물이 멈출 줄 몰랐고, 나는 국물만 따로 따라내었다. 동생에게 건넸다.

 

"진짜?"
동생은 금방 입이 귀까지 찢어지며 그 뜨거운 면발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다 먹어치우려는 듯. 소고기맛 건더기 수프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후루룩. 후루룩."


나는?
국물만으로 충분했다. 아니 감사했다.

 

국물을 마시며 나의 보물, 벽에 붙은 신문지에 붙인 만화를 보았다. 주인공은 기와 위에 못 박힌 듯 서 있었고,
기와지붕은 딱 두 개의 이가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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