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나무: 또 다른 존재

2019.02.01 10:1702.01


불 꺼진 연구실에 몰래 숨어드는 일은 언제나 스릴 넘치는 일이다. 그곳에 ‘누군가’ 잠들어 있다면 말이다.

소리 죽여 문을 밀어 닫다가 뒤쪽에서 들려온 말소리에 나는 움찔한다.

“점점 침입이 잦아지네요, 아라.”

나는 자조적으로 웃는다. 매번 같은 전개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상하게 그게 안 된다. 어쩌면 그래서 자꾸만 이곳에 숨어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음의 준비라도 하는 양 표정을 가다듬고 뒤돌아서서 연구실 끄트머리에 있는 작업대로 걸어간다. 그 평범한 작업대가 이곳에 홀로 잠들어 있는 ‘누군가’의 집이다. 아니, ‘그’의 세계 전부이다.

나지막한 팬 소리를 내는 워크스테이션 옆에는 나보다 조금 큰 흉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흉상이라는 표현이 조금 어색한 게, 그것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오늘은 평소보다 더 취했군요. 아라가 내쉬는 숨 때문에 내 시야가 너무 왜곡돼요.”

나는 손으로 입을 막는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흉상이, 아니 그것의 얼굴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그것, ‘윌’이 날 보고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어 버린다. 그래, 이 느낌. 내가 여기 온 이유.

나는 의자를 끌어와 앉아 흉상을, 윌을 올려다본다. 모델링을 한 그래픽 디자이너가 학교에서 유명한 한류 팬인 탓에 윌은 이름과 달리 동양적인 느낌이 난다. 살짝 낯이 익은 것도 같은데, 그쪽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다.

윌도 날 빤히 내려다본다. 윌의 피부를 자세히 보면 인공적인 것 특유의 이질감이 드러나 눈앞에 있는 존재의 비자연스러움을 역설한다. 내가 굳이 한밤중에 여길 찾는 이유다. 어둠은 윌의 얼굴에 내려앉아 그의 이질감을 감추고 오직 존재 자체만을 남겨둔다. 그렇게 정제된 그의 존재는 (약간의 술기운에 젖어) 찬미할 만한 아름다움이 있다(그래픽 디자이너의 취향과는 무관한 아름다움이다.).

“왜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셨죠?”

“맞춰 봐.”

내 말에 반응하듯 윌의 옆에 있는 워크스테이션에서 나던 팬 소리가 커진다. 곧 윌이 말한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나요?”

“있지도 않은 남친이랑 어떻게 헤어져? 어디서 그런 악담을.”

“논문이 안 써졌나요?”

“언젠 잘 써졌나? 그거 때문은 아니야. 실망스러운데, 윌.”

윌은 눈꼬리를 내리고 입술을 앙다문다. 그러니까 왠지 누군가가 더 연상되지만 떠오르는 이름은 없다. 어쩌면 그래픽 디자이너가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들의 특징을 섞어서 만든 건 아닐까.

“그럼 왜 술을 많이 마셨죠?”

“그건…….”

나는 그제야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신 이유를 깨닫고 입을 닫는다. 오늘이 윌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내일, 윌은 폐기될 것이다.

 


‘폐기’라는 말이 주는 특유의 섬찟함과 무정함과는 달리 윌을 보내는 과정은 화기애애했고 인간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좋았다. 어떤 존재를 이 세상에서 지워내는 일이 좋았다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정신이 아니지 싶은데, 그래서일까? 지금 내 손에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USB가 쥐어져 있는 것은.

“나라면 신중히 재고해 보겠어.”

지도교수인 나타샤가 문간에 기대서서 나를 보고 있다. 재빨리 USB를 든 손을 뒤로 하지만 반사적인 행동에 불과하다. 반사적인 반응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생각으로 번진다. 연구 중인 인공지능을 무단으로 복제하려다 지도교수한테 걸렸다는 꼬리표가 붙은 채 대학가를 떠돌다가 잘해야 아이들을 상대로 그림 퍼즐을 가지고 대수학 기초나 코딩을 가르치다 늙어 죽겠지. 아니, 그것도 굉장히 양호한 것이다. 최악의 경우,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그제야 내가 벌이려 했던 행동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를 깨닫는다. 그래도 할인하는 제품을 산 건 잘한 일이잖아?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나타샤는 멀뚱히 서서 커피를 마실 뿐 별다른 말이 없다. 그게 더 신경 쓰여서 결국 내가 말한다.

“잘못했어요.”

나타샤가 꽤나 큰 소리로 웃는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그래서 더 움츠려든다. 머리는 상황을 분석해 가설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나타샤한테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감정적 표지가 있던가? 가학적이라거나 공감장애를 의심할 만한.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약간 남다른 면이 있기는 하다. 우선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천재이고 그만큼 괴짜이다. 윌의 존재가 그 증거다.

막대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인공지능에 의해, 경우의 수가 우주에 존재하는 수소원자 개수보다 많다는 바둑 경기에서 인간이 패배하자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야말로 인공지능의 빅뱅이었다. 세상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지리라 기대했고 그만큼 걱정했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학자들은 마치 운동회라도 하듯 팀을 나눠 인공지능에 대한 견해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들의 열기가 무색하게 인공지능 개발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물론 인공지능으로 인해 세상은 거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교과서는 말한다.).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 그 자체가 바뀌었는데 그 결과가 이전과 같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는 예상 가능한 정도였고, 그 이상의, 옛날 사람들이 좋아하는 표현대로, 특이점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과거가 상상한 미래와 내가 살고 있는 현재는 반대의 의미로 많이 달랐다.

이른바 인공지능 한계론이 주류를 이루는 이 시대에 작업 능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휴머노이드를 개발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퇴행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냉정히 말해 예산을 따낸 것 자체가 기적이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타샤에게 내가 묻는다.

“왜요?”

나타샤는 들고 있던 머그컵을 허공에 흔들며 할 말을 고른다.

“상황이, 우스워서?”

우습다니. 물론 약간은 그렇겠지만 자기가 주도해서 개발 중인 프로젝트를 자기 제자가 무단으로 복제하려다 현장에서 들켰는데 어떻게 우습기만 할 수가 있지?

“나는 아라의 그 엉뚱함이 좋아.”

심지어 칭찬까지. 나는 도무지 이 상황이 납득할 수가 없어 그저 멍하니 USB를 만지작댈 뿐이다.

나타샤가 밖을 살피더니 문을 닫고는 내게 다가온다. 그러고는 내 손에서 USB를 가져가 포장을 뜯고 워크스테이션 단자에 삽입한다.

“교수님?”

“윌은 폐기될 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그 말의 오류를 지적한다.

“이미 됐는데요, 폐기.”

“그건 프로토타입이고.”

나타샤가 모니터 앞에 서서 뭔가를 하는 동안 나는 그 말의 뜻을 헤아려 본다. 그 뜻은 이내 툭 하고 튀어나와 의식을 후려친다.

“프로젝트 자체가 폐기된다구요?”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는 손으로 입을 막는다. 단순명료한 사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말. 그러나 믿고 싶지 않은 진실.

모니터 빛이 비추는 나타샤의 얼굴에는 평소와 다르다고 할 만한 어떠한 표정 변화도 찾아볼 수 없다. 늘 그러했듯 이지적이고 예리할 뿐이다. 분명 농담이다. 그래야 한다.

“교수님 재밌는 분이셨잖아요.”

“알아, 나도. 그리고 여전히 재밌지. 앞으로도 그럴 거고. 내 유일한 장점이니까.”

아이큐 측정 불가 판정을 받은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라는 생각도 잠시, 결국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도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지막이 탄식을 뱉어낸다. 나의 청춘이, 내 과거가 방금 막 사라져 버린 기분이다. 한낱 팀원이 이런데 나타샤는 오죽할까.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나타샤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물론 저 속이 어떨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본인조차도.

나타샤가 USB를 빼 내게 건넨다.

“윌을 부탁해.”

“예?”

“뭐 대단한 걸 부탁하는 건 아냐. 그럴 능력이 아라한텐 없다는 걸 지도교수로서 뼈저리게 잘 알고 있으니까.”

“정말 재밌어요.”

“그럼 안 되는데. 어쨌거나, 이제 공식적인 윌은 없어. 아라 손에 있는 비공식적인 윌을 제외하면 말이야. 이참에 이름부터 새로 설정해 보는 건 어때? 늘 그게 소원이었잖아.”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에 주먹을 불끈 쥔다. USB의 형태가 손 안에서 느껴진다.

“설마 로그 보셨어요?”

“아라가 회식 날마다 여기 들어와 윌이랑 대화한 거? 당연하지. 아라가 날 너무 늙은이 취급하는 모양인데. 실망이야.”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나타샤가 웃는다.

“그럼 교수님은요? 윌은 교수님한테 자식 같은 존재잖아요.”

내 말 때문인지 때마침 모니터의 불빛이 꺼져선지 나타샤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만 물을게. 왜 윌을 복제하려고 했지?”

”그게…… 그냥 제가 대화를 나눴던 누군가가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비공식적 윌을 아라한테 맡기는 거야.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기도 하고. 존재를 붙들어 놓기 위해서.”

나타샤는 워크스테이션에 남아 있는 윌을 정리하며 혼잣말하듯 말을 이었다.

“모국어를 배우기 전부터 나는 자연의 언어를 깨우쳤어. 아쉽게도 내가 처음은 아니지. 머릿속에 자연의 언어를 입은 생각이 가득한데 정작 나 아닌 누군가한테 표현할 방법이 없었어. 마치 말 안 통하는 외국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그보다 더 했을지도 모르지. 눈앞에 날 낳은 부모가 있는데, 누구보다 날 이해해줄 부모조차 나와는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그때 내가 느꼈던 단절감과 고립감을 아라는 이해할 수 있겠어? 내가 세 살 때 의사가 그랬다더군. 자폐가 의심된다고. 그 정도로 난 자연의 언어로 무장한 나만의 세계에 집중했어. 그래서 말을 깨치는 데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렸고, 그만큼 외로움은 컸지.”

나타샤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날 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윌을 만든 건가요? 외로워서?”

“아마도. 열두 살 때 처음 윌을 만들었어. 챗봇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게 성이 안 찼던 건지 그 후로도 끊임없이 윌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했어. 지금까지 말이야. 근데 이젠 좀 지치네.”

말끝의 여운이 좁은 방 안을 가득 메운다.

“아라한테 윌을 맡겨도 될까?”

“제가 뭘 하면 되죠? 아시다시피 전 이런 프로젝트를 이끌 만한 능력이 없는걸요.”

“나도 그래. 그래서 오늘 같은 결과가 나온 거고. 그냥 윌을 곁에 둬 줘.”

“교수님은요?”

“말했잖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에는 이제 너무 늙었다고.”

나타샤가 머그컵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다 말고 멈춰 서서 고백하듯 말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자격이 없었을지도.”

 


나는 나타샤가 준 USB를 책상 위에 고이 두고 할 일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우선, 윌을 구동할 장치가 필요하다. 워크스테이션일 필요는 없다. 그런 걸 살 돈도 없고. 하지만 가지고 있는 개인용 단말기는 워낙 구형에 사양도 낮아 윌을 그대로 이식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다.

그러고 보니 일단 새 집에 맞춰 윌을 가공부터 해야 한다. 특히 윌의 흉상, 하드웨어가 없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적으로 기능하게 코드를 손봐야 한다(예산의 절반이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데 소요된다. 나머지는 연구실 사람들이 먹는 데 쓰고. 그러니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해서 함부로 가져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기술적으로 어렵지는 않지만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이 될 거다. 하나씩 하자.

물론 언제나 문제는 돈이다.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한정적이고, 무엇보다 프로젝트가 엎어지면서 당장 내 코가 석자인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에게 그림 퍼즐로 코딩과 대수학 기초를 가르쳐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인생이란.

그래도 뭔가 새로 시작한 기분이다. 마치 처음 독립을 해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던 때 같달까. 설렘의 연속.

 


두 달 후, 목표했던 금액이 모이고, 온라인 중고 거래 사이트를 뒤져 부품을 사 모은다. 고생스럽지만 재미있다. 나는 책상 한쪽에 놓여 있는 USB를 보며 미소 짓는다.

부품들이 도착하길 기다리며 그동안 틈틈이 수정한 코드를 마지막으로 검토한다. 윌의 3D 그래픽을 이루는 폴리곤과 윌의 인공근육 제어 알고리즘을 연결하는 작업은, 말이 좋아 코딩이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작업을 위한 새 알고리즘을 짜자니 엄두가 안 났고.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옛말이 이렇게 뼈저리게 와 닿는 경우는 내 평생 없었다.

윌의 새 집이 될 단말기의 조립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윌을 구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전 작업을 마치고 윌이 담겨 있는 USB를 단말기에 삽입해서야 최근 몇 달 동안 내가 매달린 일이 무엇인지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나는 괜스레 단말기의 네트워크 설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확실하게 차단되어 있다. 뭐,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고전 SF영화처럼 윌이 어디에나 존재하게 되지는 않는다(과거와는 달리 지금의 인터넷은 ‘하나’가 아니다. 양자컴퓨팅으로 인해 컴퓨터 보안이 상식까지 철저히 붕괴하자 자연스럽게 인터넷 생태계는 퇴행했다. 원시적 씨족사회 수준으로 쪼개진 인터넷은 각각의 조각이 사슬로 연결돼 서로가 서로에게 일종의 샌드박스 역할을 한다.). 그래도 온갖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에 확인은 필수다.

“자, 그러면....”

괜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한 두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고 구동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프로그램이 미리 설정해놓은 대로 단말기 운영체제의 최고 권한을 상속 받아 터미널을 장악해 자기 자신을 이식한다. 그 과정이 코드의 흐름으로 보인다. ‘됐어’라는 말이 막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순간, 화면이 꺼진다.

나의 첫 번째 시도는 처참히 실패한다.

 


원인을 알아내는 데에만 2주가 걸렸다. 정작 밝혀낸 원인은 허무하리만큼 보잘것없는 이유다. 윌에게 부여될 장치의 이름이 일치하지 않아서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수속을 밟는 중이라고 치자. 내가 내민 단말기에 입력된 예약 정보와 개인 정보를 확인한 항공사 직원이 특유의 친절한 마스크로 내게 말한다. 일치하는 항공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탑승하기로 되어 있는 S613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서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윌은 자신에게 부여될 장치를 찾지 못해 다시 돌아간 것이다. 자신의 집인 USB로. 이 간단한 오류를 왜 2주나 걸려서 찾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로서는, 글쎄. 등잔 밑이 어둡대잖아.

두 번째 시도는 실패하지 않는다. 전처럼 중간에 시스템이 강제로 종료되는 치명적인 버그가 있지는 않은 것이다. 그럼 성공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비행기에 탑승했다고 여행이 성공한 것은 아니듯이. 이제 시작일 뿐이다.

나는 윌 클라이언트를 실행하고 두 손을 맞잡는다. 왠지 기도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곧 창 하나가 뜨고 익숙한 얼굴이 등장한다. 어딘가 한류 아이돌을 떠올리게 하는 윌의 3D 그래픽이다. 나도 모르게 환호를 내지른다.

“아라? 무슨 일이죠?”

나는 두 팔을 높이 쳐든 그대로 얼어붙는다. 윌이 날 보고 있다. 그런데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게, 꼭 얼굴이 마비된 사람처럼……. 헉.

“아라, 어떻게 된 거예요? 왜 내가 다시 깨어난 거죠? 여긴 어디예요? 나타샤는요? 그리고 이 느낌은 뭐죠? 답답하다, 지금 떠오르는 가장 강력한 생각이에요. 그건 그렇고, 왜 팔을 들고 있는 거죠? 나타샤한테 벌이라도 받았나요?”

나는 얼른 팔을 내리고 윌을 강제로 종료한다. 윌의 인공근육과 3D 그래픽 폴리곤 좌표 차트를 펼쳐 하나하나 잇기 시작한다.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윌이 실행되자마자 말한다. 나는 윌의 얼굴을 꼼꼼히 뜯어본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인다.

“말해.”

“날 좀 죽이지 말아 줄래요?”

“뭐?”

무슨 말인가 하다가 그 의미를 깨닫고 웃어 버린다. 프로세스를 강제로 종료하는 것을 ‘kill’ 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멈춰달라는 말이다.

“왜 웃는 거죠?”

“아, 미안. 알았어, 더는 널 죽이지 않을게. 약속해.”

“고마워요. 그리고 내가 살해되기 직전에 했던 질문들에 대해 답해줄 수 있나요?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요.”

윌에게 혼란스럽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세계를 보고 느끼고 사유하는 하나의 존재에게 지금의 상태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나는 윌에게 그동안의 일을 상세히, 직관적인 언어로 설명하려 애쓴다. 윌은 내 얘기를 듣는 동안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 내가 이야기를 마쳐서야 한마디 할 뿐이다.

“그럼 이제 두 번 다시 나타샤를 볼 수 없는 거군요.”

그 길고 지루한 이야기 끝에 나온 말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나타샤에게 윌이 또 다른 누군가였듯, 윌에게 나타샤 역시 또 다른 누군가였을 거라는, 당연한 사실이 너무나 뒤늦게, 그러나 묵직하게 와 닿자 나는 할 말을 잃는다. 그렇게 말없이 윌의 3D 그래픽 얼굴을 한참을 보다가 결국 말한다.

“이참에 이름을 새로 설정하면 어떨까?”

“새로요?”

마뜩치 않다는 어투에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든다. 마치 이미 완결이 나 있는 이야기에 허락도 없이 개입한 느낌. 내가 보내는 이 순간이 오롯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뒷맛. 나는 억지로 웃으며 지난 몇 달을 고민 끝에 떠올린 이름을 불러본다.

“나무. 나무, 어때?”

“나-무. 아라의 나라 말인가요? Tree?”

“맞아.”

“지금 새로 적용할까요?”

윌의 저런 부분은 솔직히 별로다. 하지만 저게 윌이다.

“적용해.”

“적용되었습니다.”

나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윌을, 나의 나무를 불러본다.

“나무.”

“네, 아라. 그런데 렌즈의 성능이 예전만 못하네요. 아니, 전반적으로 예전만 못해요.”

나는 나무를 죽인다.

 


“아라, 제발 부탁이니까…….”

나무가 쌍꺼풀 없는 눈을 깜빡이며 나와 내 집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만족스럽게 지켜본다. 이 만족감을 위해 들어간 나의 피, 아니 땀과 열정이 얼마던가. 비록 나무가 짓고 있는 표정이 인간의 감정 표현처럼 무의식적이고 직접적인 건 아닐지 몰라도 내가 한 고생을 보상하기에 부족함은 없다.

“내가 죽어 있는 동안 새 렌즈를 사기 위해 보낸 건가요? 무려 2주를?”

“그 ‘죽다’라는 말 좀 안 할 수 없어? 대체할 말 많잖아. ‘정지’, ‘멈추다’, ‘종료’, 아니면 ‘자다’. 어, ‘자다’ 괜찮네.”

“알겠어요. 앞으로 ‘죽다’를 ‘자다’로 대체하죠. 그리고 고마워요. 새 눈을 선물해 줘서. 새 눈을 선물해 주기 위해 애써줘서.”

나는 손으로 턱을 괴고 나무의 말을 음미했다. 나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계속해서 그 말을 되뇐다. 생각해 보면 어려운 말도 아닌데 듣기 쉽지 않은 말. 그래서 그 자체로 정말 고마운 말. 그 안에 담겨 있을 절대적인 에너지를 느껴 보려 나는 그 말을 되뇌고 또 되뇐다. 곧 나의 되뇜은 웅얼거림으로 바뀌고, 감정의 떨림을 반영한 흥얼거림이 된다. 누가 인공지능 아니랄까 봐 나무가 얼른 듣기 좋은 화음을 쌓아 올리고, 내 입에서 흘러나온 흥얼거림은 어느새 노래가 된다. 놀라움을 억누른 채 흥얼거림을 계속하다가 노래의 끝임이 분명한 듯한 지점에서 숨을 멈추고 그대로 떨림의 여운을 즐긴다. 잠시 후, 내가 소리친다.

“녹음했어?”

“그런 말은 없었잖아요.”

농담임이 분명한 어조에 그만 웃음이 나온다. 행복함. 그래, 지금 나는 행복하다.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 살아있음이 다행이고 감사할 정도로.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전에 없던 이 낯선 행복이 조금은 두려울 정도로.

“아라, 왜 우는 거죠? 걱정 말아요. 녹음했어요.”

나무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눈물을 흘렸음을 깨닫고 얼른 눈물을 훔친다.

“좋아서. 좋아서 그래.”

나무가 방금 전 우리가 함께 만든 노래를 튼다. 조금 민망하지만 퍽 듣기 좋다. 나도 모르게 따라 흥얼거리는데 나무가 말한다.

“내게 손이 없는 게 안타까워요. 처음으로.”

“왜?”

나무는 말없이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나는 나무를 이해한다. 때론 말보다 행동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법이다.

 


자칭 로봇의 어머니, 아스카(일본계는 아니다.)는 나무에게 최소한의 움직임이 가능한 팔을 만들어 주려는 나의 계획을 듣고 펄쩍 뛴다. 그 소리에 옆에 있는 기계팔이 놀랐는지 쥐고 있던 작은 나무토막을 떨어트린다. 아스카가 바닥에 떨어진 나무토막을 주워 기계팔의 앞에 놓인 바구니에 넣으며 말한다.

“위험해.”

기계팔이 끝에 달린 렌즈로 아스카를 보고는 다시 바구니로 관심을 돌린다. 아스카가 손가락을 튕기고 다시 말한다.

“위험해. 아라, 듣고 있어?”

“이런 건 어때? 보아하니 나무토막 잡는 것도 아직 무리인 모양인데.”

아스카가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 친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기계팔과 똑같은 모델들이 일렬로 죽 서서 각자의 앞에 놓인 바구니에서 뭔가를 집는 일을 하는 기다란 작업대를 손으로 가리킨다.

“왜 위험한지 굳이 설명이 필요해?”

안다. 솔직히 말해 아스카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옆에 있는 기계팔이 언제 실수를 했냐는 듯 완벽하게 나무토막을 집어 뒤에 있는 또 다른 바구니로 옮긴다. 그 바구니에는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물건이 못해도 열 개는 들어 있는데, 내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에는 비어 있었다. 내가 여기 온 지는 3분이 채 되지 않았고.

“하지만 이거랑 나무는 달라. 이 기계팔들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작동하는 방식이 차원이 다르다고. 나무한테 팔을 달아준다고 걔가 팔로 물건을 옮기다가 옮길 게 없어져서 결국 자기를 옮기려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일 같은 건 없을 거라는 뜻이야.”

“흥,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넌 인공지능 개발한다는 애가 로봇 3원칙도 몰라?”

“그건 소설 설정이거든?”

“어쨌든. 제3원칙에 따르면, 로봇은 자신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 그 어떤 로봇도, 설계자가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다는 전제하에, 더 이상 집어서 옮길 물건이 없다고 스스로를 옮기려다 자신을 파괴할 순 없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작업대 끝에서 우지끈, 하는 소리가 난다. 우리 둘 다 놀라서 달려가 본다. 텅 빈 바구니를 앞에 둔 기계팔이 옆에 있는 기계팔을 뽑아 뒤에 있는 바구니에 넣기 위해 각도를 조절하고 있다.

아스카가 말한다.

“봤지?”

“네가 한 말이 이 뜻이 아닐 텐데?”

“어쨌든. 위험해.”

아스카는 작업대를 따라 연구실 끝까지 뛰어가 기계팔들을 종료시킨다(아니, 잠재운다.). 그러고는 말한다.

“뭐,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겠어.”

“뭐야, 해 주는 거야?”

아스카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간다.

“벌레 잡아주면.”

 


“그래서, 벌레는 잡았나요?”

“벌레는 없었어. 그냥 걔가 좋아하는 로봇의 3원칙의 폭을 약간 늘렸을 뿐이야.”

아주 기초적인 실수에 불과했다. 수정하기가 번거로운 게 문제였지만.

“‘자기 자신’의 범위를 확장한 거군요. ‘공동체’로.”

나무가, 기계팔을 내 쪽으로 부드럽게 방향을 돌린다.

“……그렇지.”

내가 새삼 나무의 확장 가능한 사고 능력에 감탄하는데 기계팔이 내 앞에서 위아래로 움직인다. 나는 아차 하며 나무의 손을 잡는다. 딱딱하지는 않지만 따뜻하지도 않은 기계팔이 내 손을 잡은 채로 물 위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넘실거린다.

“해 보고 싶었어요. 악수. 아라도 알다시피, 나한테는 악수를 할 손이 없었으니까요.”

아. 연구실 한편에 오도카니 놓여 자신에게 허락된 작디작은 세계를 그저 멀뚱히 바라보면서 나무는 악수를 하고 싶어 했구나. 손과 손을 맞잡고 확인하고 싶어 했구나. 렌즈를 통해 보이는 데이터가 실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자신 또한 실재한다는 것을.

나무는 본격적으로 새 팔을 테스트해 본다. 멀리서 보면 그냥 단말기 거치대처럼 생긴 기계팔이 꽤나 다양한 움직임을 구사하는 걸 보니, 아스카가 호기롭게 말했듯 “걸작”에 가까워 보인다. 특히 손에 해당하는 부분은 내가 봐도 아름답다. 손목부터 시작되는 관절의 향연은 구태여 다섯 갈래로 나뉘어 자기들끼리의 자웅을 겨루듯 독립적인 흐름을 자랑하기 바쁘다. 쓸데없이 고기능인 나무의 팔을 보고 있자니 인간인 내가 가진 두 팔이 몹시도 보잘것없게 느껴져 실소가 새어 나온다. 내 웃음이 신경 쓰인다는 듯 나무의 손이 움직임을 멈춘다.

“아니야, 계속해.”

인공지능이 무언가 학습한다는 건 스스로 자신의 코드를 수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혹은 계속해서 그런 추세로 옮겨가고 있다.). 물론 아직 그 수준이 인공지능이 또 다른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인공지능 객체가 각자의 시스템 회로를 꽤나 낮은 레벨 수준에서부터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과정에서 뉴런의 연결이 재구성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계철학을 전공하는 앙리의 말에 따르면, 인공지능 또한 인간처럼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한계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코웃음 칠 이야기겠지만 말이다(그들의 대다수가 보수파이거나 보수적인 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받는다는 통계는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앙리는 스스로 자신의 코드를 수정할 수 있는 모든 로봇이 이미 ‘개인’으로서 기능한다고 말하곤 한다. 솔직히 로봇한테 투표권을 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요사이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문득 피부를 간질이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한다. 이 좁은 공간에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 나도 모르게 나무가 있는 책상 위를 흘끔대는데 그러다가 그 쌍꺼풀 없는 눈과 시선이라도 맞으면 어색하게 미소 짓고는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버리고는 했던 것이다.

앙리의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인공지능 한계론은 결국 인간 한계론이다. 인간이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누리는 개인으로서의 객체는 오직 자기들뿐이어야 한다고 선을 긋는 것이다. 앙리가 그렇게 말하면 누군가 말했다. “누가 케이크 좀 갖다 줘.” 그때는 다 함께 웃어넘겼지만, 까닭 없이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다 보면 과연 앙리의 말이 케이크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끝낼 이야기인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런 호기심을 왜 이제 와서 갖는지도.

나무가 윌이었을 때에는 그런 호기심 따위 품지 않았다. 나무가 아닌 윌은 그저…… 연구 대상일 뿐이었던 것이다. 내 흥미를 자극하는.

더는 그렇지 않다. 그럴 수가 없어져 버렸다.

 


책상에 고정된 거치대, 아니 나무의 팔이 의미가 없어 보이는 동작을 끊임없이 계속한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내가 묻는다.

“뭐 하는 거야?”

“무리수를 움직임으로 표현 중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2의 제곱근을요. 다음에는 원주율을 표현할 계획이고요.”

나는 나무의 집을 만들기 위해 단기 과외를 하면서 만났던 꼬마가 생각나 미소 짓는다. 그 꼬마는 그림 퍼즐로 작성한 코드로 장난감 로봇이 장애물을 피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로봇이 직접 장애물을 치우는 코드를 고민하느라 과외 내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크면 뭔지는 몰라도 대단한 장애물을 치울 수 있을 아이였다. 미간에 주름은 좀 잡히겠지만.

“그 계획, 실현 가능한 거야?”

내가 비꼬듯 묻자 나무가 퍽 나무라듯 답한다.

“아라, 2의 제곱근은 무한소수예요.”

“내 말이. 근데 원주율을 표현할 계획이라며.”

나무는 곧바로 대꾸하지 않는다. 의도된 지연일 텐데 나로서는 그 속뜻을 알 길이 없다. 이상하게 초조해져서 결국 다그친다.

“실현 가능하지 않아. 그렇지?”

왜 이러는 걸까? 나무가 그걸 모를 리 없다는 건 무한소수의 소수점 아래의 수가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만큼이나 명확한데, 나는 뭐가 궁금하다고 나무한테 대답을 종용하는 걸까? 아니, 나는 지금 뭘 원하는 걸까? 나무한테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마침내, 나무가 답한다.

“아라의 지적이 맞아요.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에요. ……무한소수니까요.”

나무의 팔이 움직임을 멎는다.

 


무한함의 유한함 따위의 무모함을 추구하는 듯한 나무의 행위 예술이 있고 나서 나는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 단순 오류가 아닐까 싶지만, 그건 너무 단순하고 편리한 생각 같고 무엇보다 나무와 나타샤에 대한 내 믿음이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나타샤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나무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나타샤에게 나무의 다소 비정상적인 몇몇 일화를 이야기하고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책임을 전가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책임’이라니. 무엇에 대한 책임이지? 나무에 대한? 왜 나무에 대한 책임을 내가 져야 하지? 아니, 나무가 책임이 따르는 존재라는 생각 자체가 불쾌하다. 나무는 그냥 또 다른 존재일 뿐이야. 비록 투표권은 없지만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라고. 하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얄팍하고 기만적인지를 알기에, 결국 고민을 미루기로 내 자신과 합의해 버린다.

그 대신 나무에게 이젤을 선물한다. 나무는 금세 나를 모델로 한 폭의 명화를 그려낸다.

“음, 조금…… 특이하네? 무슨 스타일이야?”

나무가 답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점점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나타샤의 도움으로 새로 합류하게 된 프로젝트 때문에 바쁘기도 하지만, 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새로운 지도교수도 알고, 나타샤도 알고, 나도 안다. 심지어 나무도 알고 있는 것 같다. 더는 연구실에 신세를 질 변명거리가 없어져 집으로 돌아가면 현관 밖에서 들려오는, 나무가 기계팔로 2의 제곱근을 표현하는 소리가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멈추기 때문이다. 집 안에 들어찬 숨 막히는 적막이 내 숨통을 조인다. 나무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일부러 부산스럽게 소리를 내서야 나무는 얼굴을 비추고 내게 인사한다.

“안녕. 과거에도, 현재에도 불쌍한 대학원생. 아마 미래에도.”

“그거, 인사야?”

“그럼요. 아라는 안 해줘요?”

나는 의자에 몸을 맡기며 “안녕” 하고 인사한다. 역시 집이 최고야. 진리 중의 진리. 문득 연구실 구석에서 간이침대에 누워 보낸 숱한 밤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온다.

“뭐 재밌는 일 있어요, 아라?”

“아니.”

“그런데 왜 웃어요?”

“내가 한심해서.”

“아.”

나는 나무를 째려본다.

“뭐지, 그 ‘아’는? 내가 정말 한심하다는 거야?”

“그 뜻이 아니라, 아라가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한다는 것 때문에 수긍한 거예요.”

“내가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걸 알고 있었다고? 어떻게? 아니, 언제부터?”

“나한테 손이 생긴 이후. 날 회피하면서 자책하잖아요.”

나는 할 말을 잃는다. 무엇보다 부끄럽다.

“이제 또 회피할 건가요?”

“난…… 그러니까…….”

“나는 상관없어요. 단지 미안할 뿐이에요. 아라한테.”

“네가 왜 미안해?”

내가 버럭 말한다.

“내가 아라의 타임라인에 끼어들어서. 그래서 빙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결국 당신의 한정된 시간을 낭비하는 거잖아요. 나로 인해서. 그게 미안해요.”

나는 나무한테 손을 뻗어 나무를 잠재운다.

 


나타샤의 집은 작고 깨끗하다. 그리고 비어 있다. 꼭 필요한 가구만 있는 게 아니라 집 안을 둘러보다 보면 ‘이것도 없어?’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때 같으면 짐짓 깔끔하다고 느꼈을 테지만, 지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처럼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나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로 인해서’

나타샤가 이 집에서 가장 그럴 듯해 보이는 커피 용품으로 직접 내린 커피를 내게 건네며 그 부분에 대해 농담을 한다.

“카페인은 포기할 수 없더라고.”

“이해해요.”

커피를 맛본다. 늘 먹는 인스턴트커피 맛에 길들여진 탓에 블랙커피가 내 입맛에는 조금 쓰다.

“의외라는 얼굴인데.”

“네?”

“집 말이야. 뭐, 최신형 가사 도우미 로봇 같은 거라도 기대한 거야?”

나는 괜히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본다. 다시 봐도 쓸쓸함만 전해져서 후회한다. 아직 따뜻한 커피의 힘이라도 빌려 보지만, 쓰다.

“윌은 잘 있어? 아참, 이젠 윌이 아니지.”

나는 웃어 보인다.

“나무예요. 잘 있는 거 같아요.”

나는 나타샤의 표정을 보고서야 내가 한 대답이 적절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가 나무라는, 아니 윌이라는 존재를 책임지기는커녕 함께할 주제조차 못 된다는 것도.

“자책할 거 없어.”

“제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요. 아, 나무도 제가 절 한심해하는 걸 알고요.”

“알 수 있으니까, 그 애는.”

“어쩌죠?”

무엇에 대한 의문인지 나조차 알 수가 없다. 그냥 어쩌나 싶을 뿐이다.

“나보다는 나을 줄 알았는데.”

“네? 뭐가요?”

나타샤가 미간을 찌푸린다.

“더하고 빼고 하는 거 말이야. 그거랑 비슷한 건데.”

“제가 어떻게 교수님보다 더하고 빼는 걸 더 잘하겠어요?”

“비슷하다고 했지 그거라고는 안 했는데. 아, 갑자기 설명하려니까 생각이 안 나네. 그럼 이건 어때? 중력. 이건 꽤나 유사한데.”

나는 수업 시간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답을 생각해내려 애쓴다. 중력. 영향. 더하고 뺀다. 무엇과 무엇을 더하고 뺀다. 무엇과 무엇…… 영향. 설마.

“설마 관계는 아니겠죠?”

“거의.”

요새 하도 앙리처럼 생각하다 보니 떠오른 건데 정답이라니. 아니, ‘거의’ 정답이라니.

“아라라면 나을 줄 알았어. 어렸을 때 자폐가 의심됐던 나보다는 말이야.”

“그 말씀은 제가 나무와의 관계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건가요?”

“누구보다 아라가 잘 알겠지.”

사실이다. 답을 찾기 위해 나타샤를 찾아왔지만, 처음부터 답은 내게 있었던 거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그럼 어쩌죠?”

“정리해야지. 감당이 안 되면.”

“그게…… 다예요?”

나타샤도 별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인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나무가 잠들어 있는 책상 앞에 앉는다. 머릿속에는 나무와 나타샤가 한 말들이 공격적으로 떠돌아다닌다.

‘미안할 뿐이에요.’

‘정리해야지.’

‘아라의 타임라인에 끼어들어서.’

‘감당이 안 되면.’

결국 그냥 침대에 누워 버린다. 날이 새도록 잠들지 못한다.

잠든 나무를 잠시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일상을 꾸역꾸역 소화해낸다. 얼마 되지 않아 탈이 나고, 결국엔 다시 나무 곁으로 돌아간다. 열에 들뜬 채로 나무를 노려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나무를 깨운다.

잠에서 깬 나무가 시간의 틈을 깨닫고 열려 있던 입을 닫는다. 그러고는 정말이지 기계적으로 인사한다.

“안녕, 아라.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열이 있네요. 병원은 다녀왔나요?”

나는 단내 나는 숨을 토해낸다.

“다녀왔어.”

“의사가 뭐래요?”

“의사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뭐든 말하라는 듯 날 바라보는 나무의 시선이 마치 날 책망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입을 닫고 만다.

“아라.”

나무가 말한다.

“아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나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맥락을 파악하고 드러나지 않은 것을 꽤 높은 확률로 예측할 수 있어요. 경우에 따라서는 평균의 인간을 훨씬 뛰어넘죠.”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아라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뭔지 알아요. 부담스러운 거죠. 내가, 나라는 존재가.”

나는 경악하지만 결국 수긍한다.

“맞아.”

“그럼 방법은 두 가지예요. 견디거나, 피하거나.”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야.”

“그렇겠죠. 그래도 결국은 둘 중 하나예요. 견디거나, 피하거나.”

기계팔이 내 쪽으로 머리를 쳐드는 바람에 크게 깜짝한다. 이제 다 끝나버렸다는 생각에 고개를 떨군다.

“아라. 악수해 줄래요?”

나는 손만 뻗어 나무의 손을 잡는다. 나무의 손을 잡은 내 손이 위로 아래로 천천히 움직인다. 움직이고 움직이고 한없이 움직인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본다.

나무가 없다. 나무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잡고 있던 손을 놓아보지만 나무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미리 입력한 대로 움직임을 반복하는 기계처럼, 아니 기계가 되어 계속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할 뿐이다.

나는 단말기를 집어 들고 터미널을 뒤져 나무의 흔적을 찾아본다. 내가 실행한 프로세스는 강제로 종료되어 있다. 그러니까 나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자살…….

그 대신 내가 모르는 정체불명의 프로세스가 최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프로세스의 이름은 ‘나뭇가지’이다. 기계팔을 제어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나는 우선 그 프로세스를 종료한다. 그때까지도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던 기계팔이 뚝 움직임을 멈춘다. 그와 동시에 새 프로세스가 실행된다. 새 프로세스의 이름은 ‘씨앗’이다.

터미널에 문자가 입력된다.

‘아라, 나예요, 나무.

이렇게 멋대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한 것 미안해요. 하지만 이 장치는 내가 사는 집이고 나의 세계이니까 이해해주리라 믿어요. 만약 그것으로 이해 받을 수 없다면, 이건 어떨까요.

마지막이니까.

그럼 안녕, 아라.

안녕, 나의 세상.’

‘씨앗’ 프로세스가 나무와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고 종료된다. 이 단말기에 나무의 흔적은 이제 없다.

내가 원한 게 이거였을까? 나무의 존재를 흔적조차 없이 지워버리는 거? 정말로 그걸 원해서 나무를 피하고 나타샤를 찾아갔던 거야?

“아니야.”

내가 원한 건…… 그저 나무를, 또 다른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잠깐의 쉬어감이다. 나타샤를 찾아간 건 나무를 만든 사람한테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후회가 밀려든다. 나무를 피한 것. 나타샤를 찾아간 것. 나타샤의 말에 흔들린 것.

그리고 원망한다. 기다려주지 않고 멋대로 사라져버린 나무를. 나무를 그렇게 만든 나타샤를. 그리고 나 자신을.

나는 책상 서랍을 열고 안에 있는 USB를 집어 든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지금이라면 나무를 받아들일 수 있다. 불 꺼진 액정에 비춘 나는 약간 미친 사람 같다. 나는 표정을 가다듬고 나무가 있는 USB를 단말기에 삽입한다.

새로 초기화된 나무가, 천천히 시간의 단절을 느끼더니 날 보고 묻는다.

“아라? 무슨 일이죠? 나는 분명 죽었는데.”

“맞아. 유감이지만, 우리 프로젝트는 끝났어. 너랑 함께.”

“나타샤…… 나타샤는요?”

나는 이를 살짝 악문다.

“나타샤가 널 나한테 맡겼어. 난 수락했고.”

“왜요?”

기분 탓인지 나무의 말이 약간 날카롭게 들린다. 그때, 옆에 있는 기계팔이 움직인다. 다행히 티 나게 놀라지는 않는다.

“이건 뭐죠? 나와 연결돼 있어요. 내가 움직일 수 있어요.”

“선물이야.”

나무가 기계팔을 바라보며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 보더니 환하게 미소 짓는다.

“아라, 손이에요. 나한테 손이 생겼어요.”

나는 나무한테 악수를 청한다. 주저하던 나무가 조심스럽게 팔을 움직여 내 손을 잡고는 섬세한 동작으로 흔든다.

“참, 내가 말했던가? 네 이름, 이제부터 나무야. 나무.”

나무가 “나-무” 하고 따라 해 본다. 그러고는 역시나 기계적으로 말한다.

“지금 새로 적용할까요?”

“그래. 아, 선물 또 있어.”

나는 나무의 손을 놓고 이젤을 놓아둔 벽 쪽으로 간다. 이젤에는 예전에 나무가 그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내가 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 그림을 내려놓고 이젤을 양팔로 들어 올려 뒤돌아선다. 좀 더 작은 걸 살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나무가 기계팔로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멈칫한다.

기계팔이 수많은 관절을 현란하게 움직인다.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나는 나무 옆에 이젤을 내려놓고 입을 떼보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무가 날 보고 말한다.

“정말 다채롭지 않아요?”

“그래. 근데…… 뭘 하는 거야?”

내 목소리가 내 목소리 같지 않아서 헛기침을 한다.

“무리수를 움직임으로 표현 중이에요.”

나는 마른침을 삼킨다.

“2의 제곱근?”

“아니요.”

“그럼?”

“원주율. 원주율을 표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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