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내가 언니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때는 중학교에 들어간 뒤였다. 입학의 설렘도 많이 잦아들고, 학교 생활에도 한창 익숙해졌을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시절의 기억은 너무 짙은 안개 속에 휩싸여 있어서,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언니가 나보다 한 학년 높은 중학생이었을 때였을 수도 있고, 언니가 고등학생이 된 다음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의 기억 만큼은 아주 생생한 색깔로 내 머릿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우리 둘은 같은 미술 학원을 다녔다. 딱히 예고를 준비하는 건 아니었고, 취미 미술 반이었다. 나나 언니나 연필 소묘를 지독히 재미없어 해서, 선생님이 파스텔 화를 가르쳐 주었다. 나와 언니 빼고는, 근처에 어릴 때 파스텔을 학원에서 배웠다는 애들이 한 명도 없다는 걸 보면 그 시절 선생님이 좀 특별한 분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있다.

딱히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가루가 된 파스텔을 종이에 뿌린 다음 이리저리 문지르는 것을 좋아했다. 가루 파스텔은 대충 발라도 자연스럽게 색이 뒤섞였다. 그걸 종이에 이리저리 바르면 특별한 기교 없이도 보기 좋은 예쁜 색들이 나왔다. 왜 부드러운 중간색을 파스텔톤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 날도 우리는 석양이 지는 하늘을 그린다고 하면서 여러 색이 뒤섞인 어지러운 추상화를 함께 만들어냈다. 그게 특별히 예쁘게 잘 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걸 집으로 가져가서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었다. 내가 그림을 가져가고 싶다고 말하니, 미술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파스텔로 그린 그림을 계속 보존하려면 정착액을 뿌려야 해. 그러지 않으면 가루가 전부 날아 간단다.”

그는 그러면서 어떤 스프레이를 들고 와서 우리 그림에 칙칙 뿌렸다. 아주 시큼한 식초 같은 냄새가 났다.

“하루 정도 말리고 나면 냄새가 빠지고 다 굳으니 내일 가지러 오렴.”

하고 그는 웃어 보였다. 우리도 따라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집에 도착한 다음 문을 열자 웬일로 부모님이 둘 다 집에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상당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왔니? 오늘은 핸드크림 발랐지?”

핸드크림을 안 바르고 건조한 손으로 가루로 된 파스텔을 계속 매만지다 보면 손이 갈라지고 피도 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별로 착색되지 않은 손을 내밀었다.

“잘 했다. 손 씻고 거실로 같이 나오렴. 할 이야기가 있다.”

그때 분위기는 어두침침했다. 내가 수학 과외 선생님이랑 입을 맞추고 수업 하나를 통째로 농땡이 쳤을 때보다 부모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자연스레 그 어두움에 짓눌린 우리 둘은 별 말 못하고 함께 화장실의 세면대 앞에 섰다. 그때 언니가 말했다.

“둘이 싸웠나...? 이혼한다 그러는 것 아니야?”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런데 갑자기 왜 저러지?”

나도 의아했다. 성적표가 올 날도 아니었고,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우리는 서로 뭐 큰 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차라리 부모님이 이혼 선언을 했으면 내 사춘기가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아무 죄도 없는데 지레 겁먹은 우리는 조심조심 거실로 발길을 옮겼다. 아빠는 창 밖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예전에 끊는 담배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여름이랑 겨울이가 알아야 할 게 있단다.”

여름은 한 살 많은 내 언니 이름이고, 겨울은 내 이름이다. 부모님은 우리가 태어난 계절을 따서 우리 이름을 지었다. 내 머릿 속에 별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이혼 이야긴가? 아니면 성교육일까? 그것도 아니면 우리 부모님이 보증을 잘못 서서 어디 시골로 야반도주라도 해야 하나?

아빠는 고개를 돌리고 엄마랑 우리들을 잠시 바라보더니 내게 말했다.

“겨울아, 어릴 때 할머니 돌아가셨던 거 기억하니?”

“응.”

할머니는 내가 유치원에 다닐 적에 돌아가셨다. 100년 하고도 훨씬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은 할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장례식 때 분위기가 어땠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것처럼 말이다. 엄마랑 아빠도 언젠가는 죽는단 말이지...”

아빠는 조심조심 말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 둘은 난감하면서도 또 의아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끝없는 미지의 입구에 대해 알고 있었다. 미디어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죽은 뉴스도 보았고, 말했듯이 가까운 친척을 떠나보낸 적도 있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늙고, 몸이 닳고 닳으면 작동을 멈춘다는 것을 우리가 모를 리가 없었다.

가끔 잠을 자다가 죽음에 대한 악몽을 꾸거나, 죽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 보면 크게 공포에 떤 적은 있었다. 그래도 우리 둘은 우리가 너무나 어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주일을 기다리기도 벅찰 만큼 시간이 느리던 그 활기찬 나이에 수십년 후의 죽음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개념이었다. 아빠는 말을 잇지 못했고, 엄마가 나머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우리 가족 중에서 겨울이는 조금 다르단다. 죽음이라는 점에서...”

“다르다니, 뭐가 다른데?”

“울아, 우리 중에 너만 죽지 않을 거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개를 돌리며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나나 언니나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죽지 않는다니? 그 말은 무겁지만 그만큼 비현실적이었다. 엄마도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당신께선 말을 이었다.

“여름이는 당연히 알테고... 울이도 중학생이니까 과학 시간에 세포가 뭔지는 배웠지?”

“응.”

“울이가 내 뱃속에 있을 때, 지금처럼 크지 않고 정말 작았을 때 있지. 네가 세포 수십 개로만 이루어져 있을 때...”

엄마는 구구절절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시절에 노화와 죽음을 관장하는 유전자 여러 개를 인간 입맛에 맞춰 조절하는 기술이 발명되었다고 했다. 수정란에 있는 DNA를 DNA 가위로 조작하면,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영영 죽지 않는 불멸의 인간이 탄생했다. 나는 그 기술의 혜택을 최초로 받은 세대였다. 그 당시에는 사기라는 말도 많았지만, 백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20대 시절의 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왜, 왜, 왜 나는 안 해줬어!?”

언니는 그 긴 이야기를 이해하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발작적으로 튀어오르면서 소리질렀다. 불쌍한 우리 언니. 나는 그때 언니가 느꼈을 박탈감을 한 조각도 공감할 수 없다. 내가 차마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우리는 그 적까지 거의 싸운 적이 없었다. 연년생이라면 다들 피가 터지게 싸운다고들 하는데, 언니는 나를 순전히 친구처럼 대했다. 그 좋은 사람이 그 날은 나를 물어 뜯을 것 처럼 바라보다가, 내게 달려들어서 나를 넘어뜨렸다. 부모님이 언니를 붙잡고 말렸다. 몇 분 동안 언니는 경기를 일으키다가 탈진해서 숨을 쌕쌕 몰아쉬었다. 너무 무서웠다.

“왜, 왜...”

“겨울아, 너는 들어가 있어.”

아빠가 그 말을 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내 방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 후에 부모님이 언니에게 정확히 무슨 말을 해줬는 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부모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그 날의 이야기를 결코 다시 꺼내지 않았으니까.

언니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연년생이던 우리는 학교도 같아서 매일 같이 아침을 먹고 나섰지만, 다음 날 일어나니 아침 시간에 언니가 없었다.

“언니는 어디 갔어요?”

아빠는 언니가 벌써 학교에 갔다고 말했다. 그 적까지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나는 나를 잡아먹으려는 야수처럼 굴던 언니를 떠올리며 침울하게 밥을 먹었다.

항상 함께 가던 미술 학원에도 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전 날 언니와 내가 그렸던 파스텔 그림을 내게 주었다. 가루가 흩날리던 그림은 정착액으로 딱딱히 굳어있었다. 그 날부터 난 파스텔화가 꼴보기 싫어져서 수채화를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서 언니와 한 번 마주치기도 했다. 부모님은 그 날부터 저녁 식사 시간을 따로따로 잡았다. 엄마랑 아빠가 돌아가면서 딸 하나씩이랑 밥을 먹었다. 첫 날에는 엄마랑 내가 여섯 시 반에 밥을 먹고, 아빠랑 언니가 일곱 시 반에 밥을 먹었다.

“세상에는 네가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어쩔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많은 법이란다. 언니를 이해해 주련. 죽음의 무게는 삶의 짐보다 무겁단다.”

내가 불평하자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 내 눈을 바라보다가, 오뎅볶음을 잘근잘근 씹었다. 당신의 눈에는 깊은 회한이 서려 있었다. 어쩌면 그 눈빛 속에도 질투하는 감정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엄마도 언니와 같이, 언니보다 훨씬 빨리 늙어 죽을 사람이었으니까.

우리 집이 엄청나게 넓은 건 아니었으니 언니와 나는 그 후로 몇 년 동안 부대끼고 살아야 했다. 첫 몇 주간은 언니와 대화하려고 부던히 노력했지만 언니는 나를 바라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도 결국 포기했고, 부모님은 그 꼴을 보면서 참 안타까워 했지만 언니를 딱히 설득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삶 내내 함께했던 친구가 사라지자 나는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다 쏟았다. 원래 취미로 다니던 미술 학원에서 반을 입시 미술 반으로 바꾸었다. 나는 수채화에 재능이 있었다. 당연히 예고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입시 미술 반은 밤 늦게까지도 그림을 그렸다. 집으로 돌아가면 언니의 텅 빈 눈을 볼까 무서웠다. 오후 10시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언니는 자기 방에 박혀 있었다. 억지로 이룬 평화였다.

나는 예고에 진학하지 못했다. 내가 그림을 못 그렸던 것도 아니고, 성적이 특출나게 나빴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시험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겨울아, 너는 너 같은 아이들이 모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해.”

“나 같은 아이들이 무슨 말이야?”

“불멸 시술을 받은 애들만 따로 모이는 학교가 세종시에 있단다.”

“싫어, 나는 예고 가서 계속 그림 그릴 거야.”

내가 싫든 말든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빠한테 혹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었지만, 그 날 아빠는 언니한테 그 얘기를 했던 날처럼 내 끔찍한 말을 한 마디 한 마디씩 다 받아주었다. 그때 나는 왜 내가 바라지도 않는 시술을 했냐고 화를 냈다. 아빠는 그 말을 듣고도 그저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세종시에 불멸 시술을 받은 아이들을 모았다. 우리에게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빠는 “울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 아니니. 거기서도 계속 미술 학원 다니게 해 줄테니, 꼭 나중에 네가 원하는 대로 서울에 있는 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 들어가자. 국가에서 시키는 일이라 어쩔 수가 없단다.”라고 말했다.

나는 서울에서 세종으로 내려가는 것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집에서 언니를 마주칠 일이 없다는 점이 좋았다. 언니는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집 근처에 있는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는 항상 머리를 뒤로 묶고 알이 큰 안경을 낀 채로 자기 방에서 공부만 했다. 우리는 식사를 다른 시간에 했지만서도 우리는 가끔 마주쳤다. 언니는 나를 한 번 흘겨보고는 무시하곤 했다. 그 눈이 너무나도 싫었다.

세종은 예쁘장한 계획도시였고,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조치원 쪽에 박혀 있었다. 나는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다행히도 학교 주변에 나 같은 학생을 위한 미술학원이 드문드문 있었다. 근처의 홍익대학교 캠퍼스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강사를 뛰었다. 새로 지어진 학교는 쾌적했고, 시골의 공기는 서울보다 확연히 깨끗했다. 나는 학교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불멸 시술을 받은 청소년들을 위한 윤리와 불멸 시술에 대한 이해라는 추가 과목이 있는 것을 제하고는 다른 학교랑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우리를 굳이 모았어야 했나 하고 의아했다. 하지만 그 교육 과정 속에서 나는 언니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왜 나만 영원한 젊음의 특혜를 받고 언니는 그럴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딱히 찾아볼 생각도 없었다는 말이 더 옳으리라. 부모님도 그에 대해서 따로 자세히 설명해준 적은 없었다.

정확히 2086년 4월에 태어난 아이들부터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된 이유는, 인간의 세포 개수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었다. 노화를 잡기 위해서는 모든 세포에 있는 DNA의 특정 유전자 몇 개를 세심히 불활성화해야 한다.

사람이 갓 착상돼서 아직 세포가 수십 개 밖에 없을 때에는 유전자 가위를 주입하는 것으로도 가능했다. 하지만 태어난 사람은 세포가 너무나 많다. 아동일 때 이미 수 조 개이고, 성인의 세포 수는 50조 개에 다다른다. 이 모든 세포들의 DNA를 하나하나 교정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착상 시기가 몇 주일만 달라도 기대 수명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나는 꼴이었다.

이 이야기를 해주었던 생물 교사도 물론 죽을 운명을 진 사람이었다.

“난 너희들이 정말로 부럽다. 나보다 수십 년 늦게 태어난 덕에 나와 전혀 다른 시간을 보고 살아갈 테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지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우리 언니를 생각했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돌아가게 된 나는 언니와 마주칠 일도 자연히 줄었고, 그렇게 멀어지니 오히려 미안해하는 연민의 감정이 생겼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우리 기숙사는 두 명이 한 방을 썼다. 내 룸메이트는 유소희라는 이름의 키가 훤칠하게 큰 아이였다. 그도 나와 같이 서울시 마포구에서 살다 내려온 친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 측에서 의도적으로 본적 주소가 가까운 아이들을 서로 짝지어주지 않았나 싶다. 소희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배려에 감사한다.

고등학교 동창들은 되게 두 부류로 갈렸다. 한 부류는 영생이라는 특권 의식에 찌든 오만한 아이들이었고, 또 다른 부류는 결국 우리보다 먼저 갈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친구들이었다. 그는 후자에 속했다.

입학 후 2개월이 지나고 아직은 서로 조금씩 어색했을 때의 일이다. 그 날이 마침 2086년 4월 이후 태생의 아이들만이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생물학적인 이유를 배운 날이었다. 나는 어둔 방 안에 누워 언니를 생각하며 뒤척였다. 새벽이 올 때까지 잠이 들지 못 했는데 옆에 있는 침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겨울아, 안 자?”

나 혼자 못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응.”

“너도 부모님 생각해?”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동창들은 그 수업을 받은 날 다 쉽게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그랬겠나. 우리의 부모님과, 엄마 배를 타고 난 언니 오빠들이, 나이 많은 사촌들이, 어쩌면 지금까지 알게 된 나이 많은 친구들이 영원히 살지 못하는 이유가 딱히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냥 조금 빨리 태어나서였다는 걸 알았으니까.

“부모님도 부모님이지만... 친언니.”

“언니가 있구나. 친해?”

“아니, 중학교 때부터 언니가 말도 안 걸어. 그때까진 참 친했는데. 너는 왜 안 자?”

“나는 엄마 생각 하느라.”

“엄마랑 친해?”

“아니.”

왜 아닐까. 그래도 엄마는 우리들한테 불멸을 직접 선물한 사람들인데. 우리를 아끼지 않으면 큰 돈 들여 그런 시술을 왜 굳이 해 줬을까. 나는 의아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그가 말을 이었다.

“나 낳다가 돌아가셨거든.”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소희의 길쭉한 몸이 이불에 묻힌 실루엣만 보였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소희는 말을 이었다.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고, 아빠도 혼자서 나 든든하게 키워줬는데. 오늘 수업 들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더라. 왠지 내가 엄마 목숨을 갉아먹고 나온 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게 어떻게 네 잘못이야.”

“그렇겠지. 당연히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까.”

“윤리 시간에 들었잖아.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걸 가지고 죄책감을 가지기 보다는, 사회가 우리한테 준 선물에 감사하고 우리가 가진 걸로 어떻게 사회를 도울까 생각하는 편이 낫다고.”

“그래, 하지만 그걸로 될까...”

소희는 그렇게 말하고 얼마 뒤에 잠들었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할 지 잘 몰라서 계속 뒤척이기만 하다 말할 때를 놓쳤다. 그 날 기분이 심란해 새벽 네 시는 돼서야 겨우 잠들었던 것 같다. 그 날 새벽의 대화는 길지 않았지만 그 이후 우리는 급격히 친해졌다. 소희는 사려깊고 정이 많은 아이였다. 그를 추억할 때 항상 말하곤 하는 정말 그다운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소희가 결석을 했다. 우리들이 모인 고등학교에는 아무래도 중산층 이상의 잘 사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특목고 못지 않게 성적 경쟁이 치열했다. 나는 입시미술 실기 준비 때문에 성적에 신경을 쓸래야 쓸 수가 없었지만, 소희는 의대에 가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갑자기 결석을 한 것이다.

휴대폰 연락을 해도 받지를 않아서 걱정이 되었는데, 오후 다섯 시 쯤 돼서야 그는 진단서 한 장을 들고 학교로 돌아왔다.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치과에서 정기 검진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당연히 치과는 세종시에도 많았다. 교무실에서 신나게 욕 먹고 돌아오는 그에게 나는 황당해서 물었다.

“아니, 왜 서울까지 치과를 갔다 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계속 다녔던 치과라서. 주말엔 안 하거든.”

“너 이에 무슨 심각한 문제 있어?”

“아니, 세종시 이사 갔다고 다니는 치과 바꾸면 의사 선생님한테 미안하잖아. 그래도 그동안 3개월에 한 번씩 얼굴 보던 사인데.”

그때 그의 웃는 표정을 사진으로 꼭 남겨뒀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많다. 소희는 참 정 많고 착한 아이였다. 옆에 항상 같이 있다 보면, 저래서야 나중에 사기당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나중에 그런 곤란에 처할 일은 없었다.

2094년 3월, 꽃샘추위가 한창이던 날의 밤이었다. 미술학원에서 도전적인 느낌의 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하고 가벼운 걸음걸이로 학교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도중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엄마!”

“겨울아! 너 괜찮니?!”

그때 엄마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나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물었다.

“응? 당연히 괜찮지. 왜 그래?”

“너 지금 어디야?”

“나 학원 끝나고 학교 돌아가는 길이지.”

“아이고... 아이고 다행이다. 겨울아, 학교 들어가지 말고 지금 당장 가장 빠른 기차 타고 서울로 오거라. 알겠지? 지금 거기는 위험해.”

“무슨 말이야?”

“지금 너희 학교에 폭탄 테러가 났단다! 방금 전에 뉴스에서 갑자기 떠드는데 정말 십년 감수했다. 겨울아, 일단 어서 서울로 오거라. 차비는 지금 당장 보내줄 게.”

“뭐, 테러? 무슨 말 하는거야, 지금, 엄마?”

그때 그 긴박한 기억은 영원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 거라고 당시엔 생각했는데, 이젠 그 순간 이후로 서울로 도망칠 때까지 몇 시간은 지우개로 지운 것 마냥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너무 충격적인 일이라, 내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 순간을 싹 지워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불멸 시술을 받은 우리 같은 사람은 영원히 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상에 면역이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 세포가 유통 기한이 영구적일 뿐이지, 심한 상처를 입으면 우리도 죽는다. 학교에 있는 많은 친구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에는 자신의 특권에 오만하고 당당한 아이들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눈물짓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소희도 있었지.

비료로 만든 폭탄이었다. 학교 수위가 트럭에 비료와 경유를 잔뜩 실은 다음 불을 붙인 것이었다. 학교 건물의 절반에 뼈대가 드러났다. 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희생했지만 그 자는 살아남았다. 서울로 급히 도망친 다음 덜덜 떨면서 뉴스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옛날에는 수저 잘 물고 태어났다 해도 죽는 건 똑같았소. 아무리 오래 살아도 100살 되면 저승 갔지. 그게 순리지. 흙수저 물고 태어난 비루한 놈들은 영원히 새끼 까고 늙어 죽고, 그 새끼도 또 자기처럼 비참하게 살아갈 새끼 까고 늙어 죽고, 금수저 물고 태어난 놈들은 세상 망할 때까지 좋은 것만 즐기다 가는 게 말이 돼요? 그래서 했소. 나는 후회 없수다.”

그의 말대로 죽은 아이들 대부분은 사회 상류층의 자식들이었다. 여러 네트워크에서 그의 이름에 의사, 장군, 열사 같은 단어가 붙어서 돌았다. 나는 다행히 폭발 현장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때 만난 내 동창들 중에서는 1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무언가 터지는 소리만 나면 공황을 겪는 친구들이 있다.

서울의 집으로 도망치는 나는 하루종일 뉴스를 보았다. 사망자 명단에 강소희라는 이름 석 자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때 나는 죽음이 어떤 것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 날 너무 많이 울어서 경기를 일으켰다. 어린 시절 언니가 죽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똑같이. 나는 경기를 일으키면 온 몸이 저릿저릿하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마침내 탈진해 거실 바닥에 쓰러진 나는 다음 날 새벽에 눈을 떴다. 분명히 거실에 쓰러진 걸 기억하는데 일어나니 푹신한 침대였다. 부모님이 들어서 옮겨 줬던 것이다. 갑자기 부모님도 결국 죽을 거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내가 사고로 죽는다고 해도, 천 년을 살면 그중 10%도 안되는 세월만이 엄마 아빠랑 같이 보낸 세월이겠지.

소희야, 너는 내 인생에서 몇 퍼센트가 될까? 나는 몇 시간을 울고 또 울었다.

한동안 울고 나니 배가 고팠다. 나는 배가 고프다는 이 느낌조차 산 자의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탈진하여 울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기어나가면 스스로에 대한 환멸이 너무 클 것 같아 나는 침대에 콕 박혀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해가 뜨고 방 안이 햇빛으로 밝아왔다.

내 방이 아니었다. 나는 언니 방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언니는 어디로 갔지. 나는 몸을 일으켰다. 책상에는 수많은 책들이 널려 있었다. 대부분은 고등학교 참고서들이었지만, 로켓 그림이 그려진 전공 교재들이 많았다. 공간 왜곡 도약 항법의 이해와 실제? 언니가 이런 데 관심이 있었나? 천문학 교재들도 있었다.

서랍을 하나씩 열어보자 생물학 책들도 있었다. 없는 과학 분야가 없다고 할 정도로 언니에게는 과학 책이 많았다. 이걸 다 읽었다는 게 놀라웠다. 어디다 쓰려고 이렇게 많은 것을 공부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을 때였다.

그 순간에 책상 위에 걸려 있던 커다란 액자가 햇빛을 받고 빛났다. 액자 안에는 그림이 들어 있었다. 석양이 지는 하늘을 묘사한 아름다운 파스텔화였다. 내가 언니와 함께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나 했다. 하지만 태양빛이 내 얼굴에 내리쬐는 감촉은 그 어느때보다 참됐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내가 응 하고 말하자 문이 열렸다. 엄마였다.

“겨울아, 괜찮니?”

“잘 모르겠어. 지금 나 배고파. 근데 내가 배고프다는게 무서워. 내 친구가 죽었는데.”

“괜찮아. 다 그런 거야. 일단 밥 먹자.”

나는 침대를 짚고 일어났다. 다리가 약간 후들거렸다. 엄마는 다가와 내 허리를 받쳐주었다. 나는 식탁으로 향했다. 아빠가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뭔가 한참 만들고 있었다. 향긋한 간장 냄새가 풍겼다. 아빠는 고개를 돌리고 우리 둘을 보고는 아주 약한 미소를 지었다.

“울아, 네가 좋아하는 갈비찜 만들었는데, 아침에 괜찮을지 모르겠다.”

“아니야, 괜찮아.”

나는 힘없이 식탁에 앉았다. 아빠랑 엄마가 분주하게 먹을 것들을 차렸다. 나는 돕지도 않고 식탁 위에 먹을 것이 올라오는 족족 입 안에 집어넣었다. 지금까지 이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그만큼 입맛이 돌던 때는 없었다.

“그래, 원래 슬픈 일이 있으면 많이 먹고 많이 우는 거야. 우리 딸.”

엄마는 내 어깨를 두드리고 내 게걸스런 식사에 꼈다. 그러다 보니 또 눈물이 한 방울씩 흘렀다. 그러면서도 어쩜 그리 입에 먹을 것을 우겨 넣었는지.

10분도 안 걸려서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나는 트림을 한 번 했다. 기분이 많이 나아져서 물었다.

“그런데 나 왜 언니 방에 넣었어? 언니는?”

“언니 대학 간 거 몰랐니? 그래서 네 방은 지금 창고로 쓰고 있단다.”

“언니가 대학에 갔다고?”

“응, 저기 대전 쪽으로 갔잖아.”

언니랑 이야기를 안 하고 산 지는 오래됐지만, 정말 이야기를 안 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3월이면 봄 학기겠네. 과학고등학교 들어가더니 대학도 한 발 빨리 가는구나. 나는 아직 고 2인데. 나는 언니 방에 있던 그림과 책들을 생각했다.

“무슨 학과? 의대 갔어?”

“1학년 때는 전공이 없고 2학년 때 정한다던데, 아마 항공우주공학과로 갈 것 같다더라.”

“그게 뭐하는 곳인데?”

“우주선이나 비행기 만드는 데라는데, 아빠도 사실 잘 모르겠다.”

내 호기심은 거기까지였다. 배가 부르니 다시 소희 생각이 났다. 나는 다시 어두컴컴한 표정으로 양치도 않고 방에 들어가 질질 짰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서 한 끼 한 끼를 챙겨 주었고, 엄마는 학교 일을 나 대신 처리해 주었다. 부모님이 소중하다는 걸 느낄 때마다, 당신들이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나는 건물의 절반이 날아가 뼈대가 드러난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자퇴 수속을 밟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 후 난 세종을 딱 한 번 들렀다. 합동영결식에서였다.

소희의 영정 사진은 너무나도 앳돼 보였다. 나중에 언뜻 전해 듣기로는 찍은 사진들이 환히 웃고 있어서 중학교 때의 증명 사진을 썼다고 했다. 나는 그 앞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국화를 놓았다. 영결식장 밖에서는 영생의 권리까지 독점하는 상류층은 비난하는 시위자들이 많았다. 내가 그때 그들에게 가졌던 감상은 너무나 독하고 추한 것이라 따로 기록하고 싶지 않다.

흉흉한 때였다. 그때 나같은 잘 사는 집의 아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적의는 어마어마했다. 내가 그냥 검정고시를 치겠다는 말을 했을 때 부모님은 잘 한 생각이라고 추켜세워주었다. 나는 집에 박혀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하면서 지냈다.

하루에 6시간은 근처의 미술 학원에서 미술 실기를 공부했다. 거기서 인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밖에서는 내가 불멸 시술을 받은 사람이라는 걸 숨기고 다녔다. 나랑 나이가 같은 또래도 불멸 시술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대놓고 그들을 따돌리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나는 똑같이 친하게 지냈다. 소희가 불멸 시술을 받은 사람들도 유한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계속 언니의 방을 썼다. 언니는 여름 방학 때나 돌아온다고 했다. 언니의 책상에는 정말 수많은 책이 있었다. 하루종일 공부만 하더니 이 많은 책을 고등학교 때 다 읽었을까. 과학기술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내가 봐도 대학교 새내기가 쓸 교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무슨무슨 개론 이런 이름이 아니라, 우주선을 설계하고 심우주 속으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쓰인 책이었으니까. 한 페이지를 몇십 분 동안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책이 있다는 데 감탄했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던 것은 벽에 걸려 있던, 나와 언니가 그린 파스텔화였다. 분명히 그 그림을 그린 날 우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고 사이가 파탄이 났다. 왜 그 날의 그림을 벽에 걸어 두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우리가 예전 그 사이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희미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윗세대의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영원한 삶을 손에 넣고자 하는 욕망은 대단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지만, 모든 세포의 DNA에 있는 노화 유전자를 전부 제거하는 것은 현대의 기술로는 불가능했다. 자신에게 허락된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세포의 유전자 치환을 연구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린 사람들도 있었다. 냉동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이었다.

현대에는 할 수 없는 일이라도 미래에는 할 수 있으리라는 간단한 생각에서 출발한 기획이었다. 영생하는 세대는 언젠가 모든 세포의 유전자를 치환하는 기술을 만들어낼 것이다. 생명 과학과 생명 공학에서 이루기만 한다면 수많은 마법을 이룰 수 있는 기술이니까. 그들은 스스로를 꽁꽁 얼리고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우리들이 그들을 깨워 영생을 선물하리라고 믿었다.

문제는 그 냉동인간 기술이 모든 세포에 있는 유전자를 치환하는 것 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어렵다는 데 있었다. 꽝꽝 얼린 고기를 녹이면 고기의 세포가 다 터져서 빨간 물이 질질 흐른다. 얼린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전문가들은 완전히 얼어버린 뇌를 해동해 한때 거기 깃들어 있었던 사람을 복구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손사래 쳤다.

당시 사회를 휩쓸던 냉동인간 이야기들을 나는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내 부모님과 언니도 그 기술의 혜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었다. 그러면서 생명 과학에 대한 어렴풋한 지식을 얻긴 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데 대한 좌절감도 많이 얻었다.

그렇게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대학가에 여름방학이 왔다. 여름방학이 시작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자 언니가 집으로 들이닥쳤다. 언니가 집으로 돌아온 날, 부모님은 전부 일하러 가시고 나 혼자 집에서 츄리닝 입고 빈둥거리고 있었다. 항상 뒤로 넘겨 묶던 머리는 싹둑 잘라 숏컷을 했고, 크고 동그란 안경은 그대로 끼고 있었다. 나는 언니를 보자마자 눈물이 글썽 했다. 내 마음 속에 석양을 묘사한 파스텔화가 가득 찼다.

“언니... 안녕, 지금 집에 나 밖에 없는데.”

언니는 나를 잠시 흘깃 쳐다보았다.

“오랜만이네.”

“어, 어떻게 지냈어?”

“그냥, 공부.”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언니도 딱히 대답을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 언니는 커리어를 돌돌돌 끌고 자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자기 방을 썼다고 화낼까? 그러지도 않았다. 언니는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노크를 해 볼까 하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부모님은 돌아와서 창고로 쓰이고 있던 내 방에서 이런저런 잡다한 것을 정리했다. 언니 방에 있던 내 참고서나 책 따위를 가져와서 넣어 주기도 했다. 나는 방에 걸려 있던 그림과 언니의 차가운 태도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을 이기지 못하고 내 방에 박혀서 게임이나 했다.

오후 여덟 시 쯤에 문 밖에서 소리가 새어들어왔다. 아빠의 목소리였다.

“술도 아직 한 번도 안 해보고 공부만 하고 있다고?”

“응. 할 게 많아.”

언니가 답했다. 둘이서 식탁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문 쪽에 쪼그려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새내기 때는 좀 마음 풀고 놀아도 괜찮아. 그 나이 때 밖에 못 하는 게 있어. 공부는 좀 미뤄둬도 돼.”

“글쎄...”

그 나이 때 밖에 못하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이 아렸다. 내가 누릴 영원한 20대를 생각했다.

“잘 됐다. 이 참에 술 마시는 법 배우자. 원래 처음 마실 때는 부모랑 같이 마셔야 하는 거란다.”

“바쁜데... 알겠어, 오늘만이야.”

곧 맥주를 따를 때 나는 싸한 탄산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1학년인데 너는 뭐가 그리 공부하는 게 많니? 아빠는 이공계 출신이 아니라서 그 쪽이 얼마나 공부를 하는 지 듣기만 했다만... 그래도 어쩜 새내기 때 하루에 14시간씩 공부할 만큼 과제량이 많지는 않을텐데. 아직 전공 진입도 안 했잖아.”

언니는 대답을 않았다. 꽤 빨리 술잔을 비우는지 맥주 소리가 계속 났다.

“사흘 뒤에 대전으로 다시 내려간다고? 아서라, 어릴 때도 맨날 방 안에서 책만 읽느라 볼 일이 없었잖니. 공부 잘 하고 열심히 하는 건 고맙지만 엄마랑 아빠 마음도 좀 생각해 주면 안될까?”

침묵이 흘렀다. 몇 분 정도 대화가 멎었다. 그때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해서 이러는 거야.”

나는 귀를 문에다가 바짝 갖다댔다.

“생각하다니?”

“가족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

언니는 말을 멈췄다. 그 후 아빠가 이리저리 언니를 다그치긴 했지만 언니는 말을 잇지 않았다. 곧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언니도 아빠도 자기 방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언니가 가족을 생각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궁리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큰 돈을 버는 사람이 되어 가족을 위하겠다는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열심히 사는 것이 정말 가족을 위한 일일까?

언니는 하루에 밥 먹는 시간이랑 자는 시간만 빼고는 책상 앞에 앉아 있기만 했다. 나는 내가 행복한 것이, 그리고 서로 함께 어울리는 것이 정말로 가족을 위한 일이리라고 생각했다. 정말 가족을 위한다면 왜 나에게는 그렇게 차갑게 대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쯤 되자 언니에 대한 분노가 내 마음 속을 채웠다. 나는 울분을 곱씹으며 잠들었다.

언니는 말한 대로 사흘 뒤에 대전으로 돌아갔다. 나는 언니 방에 다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내 방을 썼다. 부모님은 언니 방을 창고로 전용하게 됐다. 8월에 검정고시를 무난하게 통과했다. 11월에 100년 전통의 대수능도 적당히 실력대로 쳤다. 그 다음에는 실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옆의 경쟁자가 내 그림에다가 일부러 물통을 쏟아붓는다 같은 흉흉한 이야기도 많았지만 별 사건 없이 적당하게 쳤다.

나는 바라던 대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다. 일부러 집이랑 꽤 거리가 있는 곳을 골랐다. 집에서 벗어나 자취가 하고 싶었다. 부모님은 테러의 기억 때문에 나를 집에서 내보내는 것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지만, 내가 “그건 나 같은 애들 모아놨기 때문에 생긴 문제잖아” 하는 식으로 설득을 했다.

나는 언니랑 달리 영원한 젊음을 즐기고 또 즐겼다. 대학생활은 참 재미났다. 자체휴강은 예사였고, 술을 정말 엄청나게 마셨다. 미대에는 과제가 꽤 많은데, 해 간 과제의 수가 손에 꼽는다. 근처 아이들이 삶의 방향을 준비할 때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잘 살았고, 또 경력에 아둥바둥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어차피 나는 영원히 사니까. 죽지 않는데 시간과 경력에 얽매일 이유가 없었다. 필요할 때 공부하면 되지 뭘. 그때 난 얼마나 어렸는지.

그렇게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다가 미대를 때려쳤다. 엄밀히 말하면 학사경고를 너무 많이 받아서 쫓겨난 것이다. 아빠가 한 말 중에 또렷히 기억하는 것이 있다.

“아빠는 너한테 그 시술을 해준 게 후회된다. 넘치는 젊음을 그저 낭비하기만 해서 쓰니. 언니처럼 하라고는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네 앞가림할 준비는 해야지.”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30대가 되어도 내 얼굴에는 주름 하나 지지 않았다. 10년 전과 입맛이 정확히 똑같았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다음날 아침이 되면 말끔했다. 그 동안 엄마 아빠의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졌다. 시간의 직격탄을 맞는 부모님의 모습이 웃겼다.

내가 10년을 허송세월하는 동안 언니는 물리학 박사가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고 그랬다. 이제는 정말로 언니를 볼 일이 없었다. 부모님은 언니 이야기를 할 때는 어깨가 으쓱으쓱 했다. 거실에 언니의 사진이 붙었다. 30대가 된 언니는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파여 있었다.

정년 퇴직한 엄마는 틈만 나면 언니 자랑을 했다. 언니는 지구에서 2만 광년 떨어진 블랙홀 두 개를 연구해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주의 깊은 곳에 있는 그 두 블랙홀은 서로의 중력에 따라 왈츠를 추듯 함께 빙빙 돌고 있다고 했다. 그 두 블랙홀의 무게와 중력이 어찌나 어마어마한지 그 중력장에 잡히면 지구에서 하루가 지날 때 50년의 시간이 흐른다는 옛날 SF 영화 같은 이야기도 들었다.

“그 두 별 이름을 겨울이 네 언니가 지었다는 거 아니니.”

“뭐라고?”

“자매별이래, 자매별.”

“자매별이라고? 참 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만적인 이름이었다. 몇 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든 사람이 언제부터 자매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고 자매별이라고?

“진짜... 뭐야? 비운의 여주 노릇이라도 하려고? 겨우 1년 차이인데 나는 안 늙고 자기는 늙는다고, 그거 가지고 쇼 하려고 자매별? 나 이제 언니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는데? 진짜 웃기다.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나는 언니를 마음 속에서 지웠다. 언니는 방송에도 가끔 나왔다. 우주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데 언니의 얼굴이 나오면 화가 나서 채널을 돌렸다. 가끔 찾는 부모님한테도 내 앞에서는 더이상 언니 이야기를 못 하게 했다.

그 울분 속에는 질투도 있었다. 언니가 방송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안 하고 30대까지 탱자탱자 놀기만 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일단 일이 없으니 우울했다. 밖에 나가서 아르바이트라도 시작했다. 너무 힘들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영화관 아르바이트가 재미있었다. 억지로라도 웃어야 하는 것이 생각보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었다. 하루에 한 번은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어서, 개봉 영화들을 정말 원없이 다 보았다. 무대인사 오는 연예인들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곳곳에 CCTV가 있으니 농땡이를 피울 순 없었지만.

매일 영화를 보니까 자연스레 영화 일에도 관심이 생겼다. 장면을 효과적으로 연출하는 방법이 제일 흥미로웠다. 다시 대입을 준비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또 예대 특유의 실기 시험을 공부할 생각 하니 악몽 같았다. 나는 무작정 시나리오 작성법과 영화 연출법 책, 캠코더를 하나씩 샀다.

내 근처에는 나처럼 무한한 젊음과 잘난 집안만 믿고 무작정 살아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단편 영화를 찍어서 공모전에 나가자는 말을 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애들이 있었다. 시간이 썩어나니 느릿느릿 찍고 느릿느릿 편집했다. 30분 짜리 영화를 만드는데 1년이 걸렸었던가. 완성한 것만 해도 대견한 일이지.

우습게도 내가 한때 그림을 그렸던 것이 장면의 구도를 잡는 데 꽤 도움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내 삶에는 항상 운이 어느 정도 따랐다. 영화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나는 내 숨겨진 재능을 찾은 기분이었다. 부모님도 내놓다시피 한 딸이 무언갈 하기 시작하니 기뻐했다.

영화 제작사의 연출부에 취업했다. 와, 내 생애에 그만큼 바쁜 시기는 없었다. 말이 좋아 조연출이나 조감독이지, 그냥 노예였다. 자잘한 편집은 당연히 전부 다 내 일이었고, 대본 체크도 꼭 해야 했다. 일정 관리도 다 내 몫이었고, 촬영할 곳을 빌린다든가 할 때 연락하는 것도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내 일이었다.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잠을 못 잤다. 욕도 굉장히 많이 들었다.

힘들고 지치는 하루하루였지만, 바쁘니까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렀다. 그러는 사이에 내 자리도 하나하나 올랐다. 영화관에서 감정 노동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마음 속에서는 내게 지랄하는 이들의 쓸개를 자근자근 씹고 있었지만.

영원히 젊다는 사실 때문에 차별이 있기도 했다. 나보다 나이 많은 감독들은 전부 다 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전혀 노화의 낌새가 없는 나를 질투했고, 또 불멸 시술을 받지 못한 아이들을 편애했다. 나보다 분명히 능력이 없는 애들이 높은 자리에 나보다 더 빨리 올랐을 때 참 괴로웠다. 끝없는 젊음과, 저들은 어차피 수십년 뒤에 죽고 없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버텼다.

영화판에 발 담근지 20년이 지나고 50대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불멸 시술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힘이 죽죽 빠지기 시작한 때였다. 내 또래들의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고, 주름이 한 줄 두 줄 생기는 걸 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항상 같은 모습이었다. 어색했다. 동시에 이 활기로 이제 슬슬 내 이름을 전면으로 단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하는 기대도 있었다.

“이제 3년만 기다리면 내 이름 단 영화 볼 수 있을 거야.”

오랜만에 집에 찾아가서 부모님과 식사를 하며 그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참 좋아했다. 그런데 아빠의 반응이 이상했다.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 하고 음식을 놓쳤다.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엄마와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다가 흰 머리의 노인이 앞으로 쓰러졌다. 비명을 질렀다. 신고하니 3분도 안돼서 앰뷸런스가 왔다. 나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황망한 채로 병원에 따라갔다.

뇌졸중이라고 생각했는데, 뇌종양이었다. 뇌의 깊숙한 부위에 생긴 악성 종양이 커지고 커져서 뇌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수술을 할 수도 없는 종류의 뇌종양이었다. 22세기에! 22세기에 여전히 불치병이 있었다는 말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그랬다.

“어떻게 22세기에... 의학이 정복하지 못한 병이 있을 수가 있죠?”

의사는 내 질문을 듣고 난감한 표정으로 머뭇대다가 답했다.

“새로 태어나는 세대들이 전부 불멸 시술을 받기 때문에, 의학의 여러 분야가 더이상 필요가 없어지고 있으니까요. 요즘은 그래서 외상 치료와 정신과적 질병 치료에만 투자가 모이거든요.”

그 말을 듣고 뒤로 넘어질 뻔 했다. 나 때문에 내 아빠가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중한 죄책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아빠는 그 이후로 다시 예전의 아빠로 돌아오지 못했다. 방사선 치료도 항암제도 나노봇 치료도 효과가 없었다. 아빠는 거의 항상 의식이 없었고, 의식이 돌아오더라도 나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언니는 오자마자 아빠가 누운 병상에 고개를 기대고 펑펑 울었다. 오랜만에 본 언니는 확연히 늙어 있었다. 숏컷과 큰 동그란 안경은 여전했지만, 몸에서 풍기던 활기는 사라진 채였다. 나는 이 사람이 정말 나랑 한 살 차이가 나는게 맞는가 싶었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좀만 더 빨랐으면... 좀만 더 빨랐으면...”

언니는 병상에서 그렇게 읊조렸다. 나도 엄마도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언니에게 표독스러운 말을 하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가족 모두를 위하겠다고? 하지만 아빠는 언니가 미국으로 떠난 다음에 1년에 열흘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좀 쉬엄쉬엄 살았으면 우리 가족은 훨씬 행복했을 텐데.

하지만 언니는 너무 심하게 울었다. 나도 아빠를 보고 눈물 흘렸지만, 언니는 며칠 동안 곡을 했다. 무엇이 그리 아쉬운 것이었는지 그때 나는 알 수 없었다. 언니가 싫었지만 공격적인 말을 해서 언니를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다.

아빠는 의사가 말한 3개월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빨리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는 아빠가 정말 내가 50년 동안 알고 지내던 그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모습이었다. 당신의 심장이 마침내 멈췄을 때 나는 여기서 굳이 심장을 되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는 이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낡은 모습이었으니까.

언니는 장례식 때에도 민망할 정도로 울었다. 호상은 아니었다. 기대 수명에 비하면 아빠는 지나치게 빨리 돌아가셨다. 그래도 아빠는 인생에서 누릴 것을 충분히 누리고 떠난 사람이었다. 왜 그리 곡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언니가 아빠가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자신의 유한성을 느껴 더 우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언니는 3일장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언니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나와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해봐야 아빠를 보살필 때 서로 교대하는 정도의 사무적인 대화였다. 3일장이 끝나고 잠시 부모님이 살던 집으로 들어온 언니는 엄마에게 말했다.

“아빠는 못 살렸지만 내가 엄마는 꼭 살릴게.”

언니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부엌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지겨운 대화 속에서 그 말만 내 머릿속에 그대로 박혔다. 살린다고? 어떻게 살린다는 말이지?

고등학생 시절에 배웠던 내용을 여전히 나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모든 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시기를 한 번 지나치면 인간 유전자를 모두 조작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우리 세대부터 갑작스레 수명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라고. 방법이 없었다. 그런 기술이 개발되는 데에 족히 200년은 남았다고 그랬다. 그런데 엄마를 살린다고?

나는 언니가 아빠의 죽음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머리가 좀 돌아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심지어 언니는 의학을 배운 사람도 아니잖은가. 죽을 사람들의 망상을 들으니 염증이 났다. 나는 일터로 돌아갔다. 이제 내 영화를 찍을 정도의 자격을 가진 내 밑에는 나와 같이 영원히 젊은 사람이 많았다. 언니는 일정대로 그 날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아빠의 죽음을 잊고 싶었던 나는 더 열렬히 일했다. 2년 반 만에 내 영화가 나왔다. 소희에 대한 내 기억을 담은 영화였다. 소희의 죽음으로부터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결코 마르지 않을 눈물의 저수지 같던 그 비극에 있던 눈물도 많이 말랐고, 이제 그 테러를 영화 소재로 쓸 수도 있게 되었다.

내 영화는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연륜 있는 젊은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때 즈음부터 슬슬 불멸 시술을 받은 감독들이 세상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투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내 근처에는 이제 나처럼 영원히 젊은 사람들만 남았다. 우리는 시간에 대한 걱정 없이 일했고, 좋은 영화들을 뽑아냈다.

5년 동안 난 가족을 거의 잊었다. 엄마는 1년에 한 두 번쯤 찾아뵀다. 엄마를 볼 때마다 아빠가 생각이 났다. 엄마 머리는 이제 완연히 하얬고, 어금니도 하나 빠졌다. 나는 마음 속으로 차라리 아빠가 추하게 늙은 꼴 안 보고 빨리 떠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내 두번째 영화의 포스터가 세계 곳곳에 걸리기 시작할 때 쯤이었을 것이다. 바쁠 때였다. 그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겨울아, 내다. 지금 MBC 봐보거라. 여름이가 인터뷰하고 있단다.”

“언니 원래 방송 자주 나오잖아. 보기 싫은데.”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한단다. 무슨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다. 한 번 봐주고 엄마한테 설명 좀 해주면 안되겠니.”

“...그래.”

말만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 나는 TV를 확인하지 않고 최종 편집에 몰두했다. 6분의 롱테이크로 찍은 장면 하나를 얼마나 유지할 지가 관건이었다. 그 고민에만 몇 시간이 들었다. 나는 밤 10시가 되어서야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습관적으로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뉴스를 읊게 시켰다.

“...오늘 이여름 스탠포드대 물리학과 교수가 공간 왜곡 추진법을 통한 냉동인간 기술을 발표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를 통해 불멸 시술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전체 유전자 치환 기술이 성립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뭐라고? 운전을 인공지능에 맡기고 의자에 늘어져 졸고 있던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방금 전 뉴스, 좀 더 자세히 들려줘.”

“이여름 교수가 30년 전 발표한, 2만 광년 밖에 있는 자매별이라는 이름의 두 블랙홀을 사용하여 시간을 빠르게 감습니다. 이여름 교수가 계산한 항로대로 블랙홀 주변을 지구 시간으로 하루를 돌면, 그동안 지구에서는 50년이 흐른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지구에서 영생에 필요한 충분한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사람들이 버틸 수 있습니다.”

“공간 왜곡 추진법이 뭔지 설명해줘.”

“물리학에서 물질은 광속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광속의 한계를 넘어서 다른 별로 항행하는 방법은 오랫동안 난제였습니다. 워프 드라이브라고도 불리는 공간 왜곡 추진법은 우주선의 속력은 광속 미만으로 유지하되, 움직이는 공간의 앞쪽을 접고 뒤를 늘려 광속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방법입니다.”

“그... 워프 드라이브는 누가 개발한 거야?”

“스탠포드 대학의 이여름 물리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과 NASA가 공조하여 2년 전에 발표된 추진법입니다.”

언니의 이름을 듣자 가슴이 덜컹거렸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완전히 누웠다. 우스우면서도 우울한 마음이 가슴 속에서 비집고 올라왔다. 그래서 아빠한테 자기가 늦었다고 말한 거였구나. 그래서 언니가...

고등학교 시절에 한창 유행했던 냉동인간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사람을 꽝꽝 냉동시키고 다시 녹였을 때 그 사람을 되살리는 방법은 없다고 전문가들이 말해도 스스로를 얼린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언젠가는 우리들이 기어코 그들을 회복시킬 방법을 되찾아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랬을 테다.

오직 살아있는 사람만 그 차가운 관 속에 들어가 담보되지 않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으니, 이는 자기 앞에 놓여진 확실한 삶을 불확실한 영생에 판돈으로 거는 일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내 근처에서도 냉동인간의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니, 우리 똑똑한 언니는 냉동 관에 들어가느니 지구의 시간을 빨리 감는 법을 택한 것이었다.

나는 집으로 가던 차를 돌려서 우리 가족이 한때 모두 모여 살았던 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TV에는 언니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설계한 거대한 우주선 조형도가 보였다. 완성까지 몇 개월이 남았다고 했다. 10만 명이 탑승할 수 있는 그 우주선은 앞으로도 꾸준히 만들어질 거라고 앵커는 떠들었다.

엄마는 날 보고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왔구나. 네 언니랑도 방금 전화했다. 몇 시간 뒤에 여기에 도착한다더라.”

“엄마... 언니랑 이거 관련해서 얘기한 적 있어?”

“아니, 나도 뉴스로야 알았다.”

“이것 때문에 그렇게 공부한다고 했으면 진작 그렇게 말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게나 말이다.”

엄마와 나는 언니가 올 때까지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도 언니가 자기를 살려줄 거라고 말했을 때 무슨 말인지 의아했다고 했다. 나는 언니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언니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우리는 어릴 때 언니와 내가 놀았던 이야기를 생각했고, 아빠를 기억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밤이 깊어졌을 때 언니는 돌아왔다. 우리 물리학과 교수님은 도어벨을 눌렀다. 엄마와 나는 현관까지 같이 갔다. 내가 문을 열어주었다.

“겨울아.”

언니는 내 얼굴을 보자 바로 날 꼭 껴안았다.

“겨울아...”

언니는 정말 내 몸이 으스러지도록 힘을 줘서 나를 안았다. 언니의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미안해, 겨울아. 내가 정말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언니는 포옹을 풀고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중학교 때 나보다 컸던 언니는 어느새 나보다 작아져 있었다.

“중학교 때 엄마 아빠한테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이후로 계속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내가 마음이 약해질까봐...”

나는 언니를 거실 쪽으로 데려왔다. 홍차를 언니 것과 엄마 것까지 해서 세 잔 준비했다. 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훌쩍이고 있었다. 차를 가져가자 언니는 홀짝 한 모금 하고는 약간 진정했다. 그리고는,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영원히 산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언니의 마음 속에 제일 먼저 차오른 감정은 나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였다.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울었으니까. 경기를 일으키는 언니가 무서워서 내가 내 방으로 도망쳤을 때, 왜 1년 차이로 태어난 우리가 왜 그토록 다른 운명을 지녔는지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그 다음 날부터 언니는 어떻게든 나와 같아질 방법이 없는지 고민했다. 어려운 문제였다. 처음에는 생물학을 공부했다. 생물학을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 나와 같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였다. 하지만 언니가 생물학을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불가능하단 사실만이 확실했다.

언니는 자기가 100살까지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60년 정도 연구할 시간이 있는 것이었다. 수백 년은 더 생물학이 발달해야 한 인간의 모든 세포에 있는 DNA를 고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이 언니를 좌절케 했다. 언니는 생물학에 걸던 희망을 포기했다.

그때 언니가 찾은 구원이 물리학이었다.

상대성 이론의 예시 중에는 쌍둥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같은 날에 태어난 쌍둥이 자매가 있을 때, 언니가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선에 타고 여행을 한다면 지구에 있는 동생의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 마침내 언니가 지구로 돌아왔을 때 언니는 자기보다 수십년 늙어 있는 동생을 보고 좌절한다.

우리 언니에게 쌍둥이 이야기는 비극이 아니라 희망의 씨앗이었다. 꼭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지 않더라도, 아주 강력한 중력장 속에 있으면 그만큼 시간도 감속된다. 적당한 블랙홀 주위를 돌면서, 지구의 시간을 빠르게 돌리면서 지구에 남겨진 사람들이 생물학을 발달시킬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것이 언니의 아이디어였다.

언니는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물리학과 항공우주공학에 모든 것을 걸었다. 40년 만에 언니는 성공했다. 충분히 시간을 감속시켜줄 두 블랙홀인 자매별을 찾았고, 2만 광년 떨어진 그 곳으로 갈 방법인 공간 왜곡 추진 항법을 실현시켰으며, 그 곳으로 가는 항로를 계산했다.

“왜 가족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야?”

“무서웠어, 내가 성공하지 못 할까봐. 그러면 가족들한테 쓸데없는 희망만 안겨주는 거잖아. 그게 너무 싫었어. 지금도 후회돼. 2년만 더 빨랐으면 아빠도 살 수 있었을텐데...”

언니의 손이 떨렸다.

“정말 미안해.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너를 멀리 했어. 연구만 끝내면, 연구만 끝내면 언젠가 영원히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미안해.”

착한 우리 언니, 나는 왜 언니 쪽에서 생각을 한 번도 안 했을까.


6개월이 지났다. 우주선 세 대가 30만 명의 사람을 태우고 2만 광년 너머에 있는 머나먼 세계로 떠났다. 엄마와 언니는 한 배에 탔다. 나는 미국까지 가서 가족을 전송했다. 400년 뒤에나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꼭 몸 조심해야 한다.”

엄마는 눈물을 글썽였다.

“에이, 걱정 집어치우고 한 달 동안 별나라 구경 잘 하고 와. 그때도 새파랗게 젊은 채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래, 믿는다. 우리 딸.”

언니도 나를 수줍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우리 둘은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서로 웃으며 마주보고 있었다.

“이거 가져가.”

나는 미리 챙겨온 그림을 가방에서 꺼냈다. 석양을 그린 파스텔화였다. 언니와 내가 함께 마지막으로 그렸고, 언니의 책상 위에 걸려 있던 그 그림이었다. 정착액으로 굳은 그림을 언니는 웃으며 받아 들었다.

“그럼 400년 후, 아니면 한 달 후에 보아요.”

우리 세 가족은 한 번 껴안았다. 둘이 떠나고, 나는 날아가는 우주선을 바라보며 우주선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공간 왜곡 우주선은 그 이름답게 쭉쭉 늘어나더니 순식간에 우주 저 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후로 밤하늘을 시시때때로 바라보는 버릇이 들었다. 저 수많은 별들 사이 어딘가에 언니와 엄마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가족의 안전을 기도한다.

나는 요즘 뭘 하고 지내냐고? 나로서 말하자면 나는 영화 감독 노릇을 그만둔 지 꽤 오래 되었다. 내 몇 안되는 작품을 보고 푹 빠져서 가끔 메일을 보내는 사람이 있지만, 이제 다시 메가폰을 잡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연구하고 공부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가 맞다. 나는 15년 전에 또 지긋지긋한 대입을 치뤘고, 의대에 입학했다. 대학원도 갔다! 내 연구 분야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치료다.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은 분야이지만, 내가 연구한 내용들이 결국 우리 가족에게 영원한 젊음을 선물하리라는 생각을 하면 지치지가 않는다.

400년. 아직도 참 많은 시간이 남았다. 빛이 도달하기에는 너무나도 먼 곳이라 불가능한 일이지만서도, 그 우주선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상상하곤 한다. 아주아주 빨리 감기 한 비디오 같을 것이다. 한 사람을 지켜다보기에는 너무 빨리 움직여서 여러 빛나는 점들이 점멸하는 것만 보일 것이다.

내 언니를 이 곳에서 바라보면 시간 위에 붙박인 것처럼 멈춰 있으리라. 하지만 그 우주선 안에서도 시간은 흐른다는 것을 나는 안다. 결국 우주선이 지구로 돌아오면 우리의 시간은 다시 합쳐질 것이라는 것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우리 다시 만날 그 찬란한 순간을.

댓글 4
  • 진정현 18.12.06 11:45 댓글

    무엇보다 이런 '다작'의 능력과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시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 진정현님께
    No Profile
    글쓴이 너울 18.12.06 15:00 댓글

    출근한 후 8시간 동안 멍하니 뭐 쓸지 생각만 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월급도둑이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너울님께
    No Profile
    유이립 18.12.08 19:13 댓글

    너울님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분은 처음 봤습니다 ^^
    조금 있으면 좋은 날이 놀겁니다!

  • 유이립님께
    No Profile
    글쓴이 너울 18.12.08 19:23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기대에 부응해보도록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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