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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은원(恩怨)

2018.11.19 16:0811.19

 

 

 

아버지는, 죽었다.

 

네 아비에게 원한을 가진 놈들은 많았지.”

무엇이 제 아비를 이리 갈기갈기 찢어 버린 것 입니까.”

그건, 네 아비가 강호를 등졌기 때문이다.”

일섬은, 증오에 가득 찬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은원의 실타래를 풀지도 않고 도망쳤으니, 그 끈 끄트머리를 따라가면 어차피 마주칠 것을. 어리석었다. 결국은 나 또한 네 아비를 죽이러 온 터.”

흔들리는 내 동공을 보며 일섬이 미소를 지었다.

의뢰를 받으면 누구든 구분 하지 않아. 나는 일섬(一閃)이라 한다. 너도 적은 나이는 아니니, 내 명성은 익히 알겠지?”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모른다? 알려주랴?”

팔과 다리의 힘줄이 끊겨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바닥에 널브러진 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를 도륙하고, 나를 폐인으로 만들었다. 비참한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며, 입과 눈에서 피를 토했었다. 아버지와 같이 작업하던 일꾼들도 모두 죽었다. 비참하고 끔찍한 죽음들이었다. 사지가 성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살육을 벌이고, 그대로 육편들 한복판에 나를 내버려두고, 돌아갔다.

날 죽이시오.”

내가 널 왜 죽여?”

내 아비가 죽었으니, 나라도 죽여야 의뢰에 명분이 서지 않겠소?”

의뢰 대상은 네 아비지, 네가 아니다.”

구부정하게 나를 내려 보던 일섬이 씩 웃었다. 가느다란 수염을 기른 그는, 요상한 문신을 하고 있었다. 왼 쪽 눈썹에서 오른 쪽 턱까지, 사선을 그리는 핏 빛 줄을 얼굴에 그리고 줄 사이사이 구부러진 곡선을 화려하게 새겼다. 마치 한 마리 거대한, 붉은 지네 같은.

네 아비의 직업은 무엇이냐?”

나는 답하지 않았다. 일섬이 허리를 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많은 작업대들 가운데, 검은 반석 둘을 눈여겨 본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칼이로구나.” 일섬이 말했다.

네 아비는 누구에게 의뢰를 받아 칼을 만들고 있었느냐?”

모르오. 안다 해도 답할 의무는 없소.”

네 아비의 죽음의 원인이 궁금하다면, 바로 그것이다. 강호를 등지고 떠나서, 강호와 연관 된 일을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죽음의 명분이지.”

정말 모르오.”

도공으로서의 네 아비가 훌륭하다해도, 과거를 버리려 했다면 이 일도 버려야 했다.”

그들은......그런 건 없었소. 그냥, 그저 들어와서, 살육 했을 뿐이오.”

모습을 아느냐?”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숨겨 알 수가 없었소.”

무슨 무공을 썼느냐? 아니, 내가 살펴보지.”

 

휘이익. 작은 휘파람 소리를 내며 일섬이 천천히 걸었다. 휘이익. 휘익. 귀에 박히는 그의 휘파람 소리가 너무도 날카로워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팔 다리는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심장이 쿵쿵 거리며 뛰었다. 그들은 일부러 나를 죽이지 않았다. 왜 일까? 왜 나를 죽이지 않았지? 사지의 힘줄을 모두 끊어 버린 후, 출혈을 막은 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버리고 떠났다. ? 무엇 때문에? 재활이나 부활은 불가능 하다. 복수란 꿈도 꾸지 못 해. 유일한 혈육을 이렇게 남김으로써, 절망에 빠져 생을 알아서 마감하라는 최대한의 복수 인 건가?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를 죽이기 전에 사지를 베어내며 피 흘리는 몸뚱이와 비명을 지르는 내 모습을 일부러 보였기도 하다. 분노와 슬픔과 절망과 공포. 그것이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눈빛이었다.

일부러 심하게 훼손하였으나, 내 눈은 속이지 못 하지. 들어온 건 셋 이요, 하나는 여인이라. 여인은 검을 쓰고, 노인은 도를 쓰고, 사내는 창을 쓴다. 그 중 검이 가장 악랄하구나.”

일섬이 휘파람을 멈추고, 너덜거리는 일꾼의 팔 하나를 들더니 매섭게 노려보았다.

살점은 너덜하나 잘린 단면은 매끄러우니, 화려한 연속 공격 사이로 강력한 일격을 보이는 바, 내가 아는 바로 이런 검을 쓰는 이는 하나다.”

팔을 던지며, 일섬이 이번에는 다른 일꾼의 잘려진 목을 들어 살폈다.

중간을 관통하여 피를 빼고, 그대로 흔들어 잘라냈구나. 이런 식의 창술을 쓰는 이는 많지 않다. 이 또한 내가 아는 이의 하나. 의외인 걸?”

산산조각이 나 흩어져 있는 아버지의 시신을 보며 일섬이 이마를 탁 쳤다.

놀랍군! 네 아비의 시신을 보니 한 눈에 알겠구나! 토막을 낸 도법은 상당한 수준, 아니 가히 최고수급의 실력이야. 검이 유린하고, 창이 꿰뚫어 흔들고, 칼이 조각을 내었다. 증오가 굉장하구나. 단 칼에 잘라냈다. 원래 도법, 즉 칼이란 건 힘차고 강한 일격이 장점이지만, 뼈와 살을 분리 하지 않고 동시에 토막 내는 것은 칼날의 질을 떠나, 쓰는 이의 힘이다. 그래서 보통 늙은이들은 칼을 쓰지 않아. 이 정도의 힘과 무공을 가진 이는 역시 내가 아는 그 사람뿐이다.”

 

당신은 어찌 그리 잘 아십니까? 아무리 심오한 무공의 소유자라 해도, 어찌 그리 쉽게 그들을 파악할 수 있는 겁니까? 나는 몰랐소. 그 셋이 여인이고 노인이고 사내인 걸 몰랐소. 공격을 당한 나조차 모르는데, 어찌 그리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거요? 믿을 수 없소.”

 

애송아.” 일섬이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검에 당한 부분을 보면 손속이 좁으니, 범위가 좁은 검법은 보통 여인의 수다. 창에 당한 부분을 보면 찌르고 들어 올린 흔적이 있으니, 건장한 사내가 아니면 쉬이 할 수 없는 수다. 칼에 당한 부분을 보면 마찬가지로 힘이 찬 사내라 착각 할 수 있으나, 잘 보면 흰 가닥의 털 자락이 군데군데 보이니 영감인 걸 안다. 범위를 좁히고, 흔적을 보면, 파악할 수 있으며, 무공을 안다. 나는 일섬이다. 천하제일 고수이지. 너는 나를 모른다 하나 강호의 모든 이는 나를 안다. 애송아. 더 할 말이 있느냐?”

그럼 그들이 누군지 아는 거요?”

알다마다. 그런데 너무 의외라 나도 모르게 이마를 쳤구나.”

뭐가 의외라는 거요?”

너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분 할 수 있느냐?”

 

일섬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물끄러미 바라보며 묻는 그에게 막상 답할 말 떠오르지 않아 그저 다물었다. 그는 여전히 나를 바라만보고 있었다.

정파와 사파란 무엇이냐?”

대의를 행하는 이들은 정파요, 사욕을 추구하는 이들은 사파요.”

과연. 그렇게 알고 있느냐?”

강호의 본분이지 않소.”

과연. 그렇다면 네 아비는 정파이냐 사파이냐?”

본가는 악행을 한 적이 없고 비록 강호를 등졌다고는 하나 누구에게 피해 준 적이 없소! 모욕 하지 마시오! 내 비록 어리나, 가문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소! 그저 조용히 칼과 검을 만들며 여생을 보내려 했을 뿐이오!”

 

사파가 모욕인 것이냐?”일섬이 조용히 물었다.

 

모욕이요!”

쓸모없는 놈. 좋다. 네가 아는 정파 중 가장 유명한 이들이 누구더냐? 말해 보거라.”

그들은......”

언젠가 들었던 아버지의 말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정파의 고수라. 그렇지. 오로지 악만 베며 명성을 떨친 이들이 있는데, 그 중 최고는 번개 같은 도법을 지닌 천공(天空)이다. 삼십 년간 강호를 누비며 단 한 번도 패 한 적이 없는 전설의 고수지. 구십이 다 되가는 나이에도 정정해서, 모르는 이가 보면 육십 언저리로 본단다. 그리고 그의 후손이자, 바람 같은 검법으로 유명한 단화(丹花)도 있다. 절세미녀이며, 절세고수다. 단화의 검법은 너무도 화려해서, 보는 이들의 시야마저 현혹하게 만든다고 하지. 그 단화의 남편이자 최고의 창술을 지닌 개문(開門)도 있다. 창술에 가히 일인자라, 그가 창을 들면 악인 모두가 벌벌 떤다 한다. 이 셋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정파 제일 고수들이다. 소림과 무당의 장문들도 이 셋에 비하면 부족하기 그지없다. 이들은 행하고, 그들은 행하지 않으니. 말로만 떠드는 이와 직접 행하는 이들의 평가는 달라야 하는 법이다.]

 

천공과 단화와 개문이오!”

 

역시. 너는 나를 모르면서 그들은 잘 아는구나. 네 아비가 내 얘기는 언급 안 하더냐?”

[사파? 사파의 고수는 알 필요 없다. 우리는 사파가 아니니.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우는 인물이니 신경 쓸 거 없다.]

 

사리사욕만 챙기는 이들은 알 필요 없소!”

 

애송아. 그 사파와 정파는 누가 구분하느냐? 참으로 멍청하구나.”

일섬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며, 너털거리며 그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참으로 의외로다. 의외야.” 어느새 바짝 내 곁에 선 그가, 다시금 허리를 굽혀 내 두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 아비를 죽인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뭣이오! 말도 안 돼!”

그리고 내게 의뢰를 한 이도 그들이다.”

뭐라고!”

 

재밌구나. 정파와 사파를 구분하자면, 그래 애송이 네 말대로 말이다. 대의를 행하는 자와 사욕을 챙기는 자라 하면, 네 아비를 죽이라 의뢰한 자는 사욕을 챙기는 거니 사파 아니겠느냐? 화려함 속의 강한 일격의 저 검법은 단화의 홍렬십삼초’. 창으로 꿰뚫어 진동을 통해 충격을 뿌리는 저 창술은 개문의 삼중진창’. 뼈와 살 구분 없이 단 칼에 베는 도법은 천공의 극렬도법이다. 방금 네가 말한 정파 고수들이 말이다. 정파 삼대 고수가 네 일가를 도륙하고, 네 말대로라면 사파인 내게 네 아비를 죽이라 의뢰했다. 우스운 일이지. 어차피 내게 정파 사파 구분은 없다. 그러나 정말 의외인 것은, 왜 내게 의뢰하고 그들이 먼저 시행했냐는 것, 그리고 애송이 너를 왜 살려뒀냐는 것이다.”

 

믿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누누이 옳음을 행하라 강조하며 이들의 활약상을 말해주곤 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이 살육을 펼친 대상이라니. 말도 안 돼. 나는 온 힘을 써 악을 질러댔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그냥 나를 죽이시오!”

의뢰해라.”

일섬이 중얼거렸다.

 

내게 의뢰해라. 네 아비의 복수를.”

, , 폐인이고 돈 같은 것도 없소. 뭘 가지고 당신에게......아니 당신 같은 사악한 사파인에게 무슨 의뢰를!”

돈은 필요 없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의뢰만 받아. 애송아. 의뢰해라. 그들에게 묻고 싶거든. 왜 내게 네 아비를 죽이라 의뢰했는지. 그리고 먼저 선수 쳤는지를.”

“......”

이 일섬이 정녕 사파의 극악무도 한 흉이라 보느냐. 너는 정녕 그렇게 생을 마감하고 싶으냐. 네 아비의 복수를 하고 싶지 않느냐. 의뢰해라. 난 내 의지로 누군가를 해한 적이 없다. 단 한번만 빼고. 내 의지대로 행하여 누군가를 죽였고, 그것이 내가 생각하던 것과 정 반대 이었음을 자각한 이후, 그저 오로지 누군가의 의뢰로만 죽였다. 고마워해라. 애송이 네 놈이 편히 눈을 감도록, 이 일섬이 복수해주겠다는 얘기다.”

나는......”

좋다. 내 추측이 맞지 않다 해도, 네 일가를 도륙한 이를 찾아 모조리 숨통을 끊겠다. 애송아, 너는 이제 죽는다. 의뢰해라. 어차피 죽는 거, 밑져야 본전 아닌 가?”

 

왜 그들이 나를 살렸는지는 모르나, 일섬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믿지 못 하겠지만, 단화, 천공, 개문이 그들이라는 걸 절대 믿지는 못 하겠지만, 그들이 아니더라도 이 자가 원수를 갚아주겠다는 것은 하늘의 도움과 다름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정말 그들인가.

그렇다면 왜, 우리를.

 

의뢰하오. 아비의 원수를 갚아주시오.”

다 마치고도 살아있다면, 보고 하러 오마. 대가는 없다. 의뢰를 수락하마. 그때까지 살아 있어라. 그리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일섬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출혈은 멈췄지만, 나는 어차피 죽은 거와 다름없었다.

 

 


 

 

누구냐!”

의뢰 주를 만나러 왔네.”

무슨?”

쓸데없는 시간 소요를 할 필요는 없지.”

일섬이 오른 손을 들어 그대로 청년의 이마를 가리켰다. ! 핏물을 흘리며 이마에 커다란 구멍이 난 청년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옆에 서 있던 다른 청년이 고함을 지르며 들고 있던 창을 내질렀다. 왼 팔을 들어 막은 일섬이 그대로 검지와 엄지를 구부려 그대로 죽 뻗어 이마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 마찬가지로 뚫린 구멍에서 핏물을 쏟으며 그 또한 그대로 쓰러졌다. 문을 천천히 열며 일섬이 중얼거렸다.

잘 가시게.”

대낮이라 보초를 서는 이는 많지 않았다. 어둠을 틈타 덮치는 이들은 다 모자란 것들이야. 일섬은 그대로 터벅터벅 대로를 걸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단화의 저택 안마당은 갖가지 묘목들로 가득 차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휘이익. 휘이익. 휘파람을 불며 일섬은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먼저 찾아오다니.”

누군가 낮게 읊조렸고, 일섬은 들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눈치가 빠르네. 일섬.”

, 기분이 나빠서. 이 몸에게 맡겼으면 이 몸이 마무리 짓는 것을 보고 행동했어야지.”

휘이익. 휘이익. 일섬은 계속 휘파람을 불었다.

단화 낭자.”

흉한 사파인이 내 저택에 발을 들인 걸 알면, 당신은 모든 정파의 원한을 사는 거요.”

애당초 내게 의뢰를 건넨 이는 당신인데? 비록 직접 움직이진 않았지만.”

내 남편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나도. 할아버님도.”

단지 궁금해서 왔을 뿐이야. 왜 내게 의뢰하고, 먼저 선수를 쳤지?”

 

매섭게 찌르는 창날에, 일섬이 순간 허리를 숙여 피했다. 핑 하는 공명음과 함께, 날카롭게 날이 선 창이 부들거리며 흔들렸다. 슬쩍 몸을 피한 일섬이 바라보자, 기다란 수염을 흩날리며 바짝 창을 들고 서 있던 개문이 얼굴을 찌푸렸다.

실패하고도 잘도 돌아온 이유는 뭐냐!”

실패? 나는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어. 이 모든 건 네 놈들의 계략이겠지. 단지 그게 궁금할 뿐이야. 가지고 논 거?”

그냥, 여기서 죽어라!”

창이 일섬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덜덜 거리며 떨리던 창 날이 순식간에, 수 개의 흐름이 되어 일섬의 목을 노렸다. ‘삼중진창법의 무서운 점은, 일단 한 번 찔리면 그 파동으로 인 해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만다는 것이다. 두 팔을 품에 넣고, 일섬이 뒤로 몸을 날렸다. ! 개문이 보법을 옮기며 그런 그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세 갈래로 보이던 창 날은 이제 여섯 개로 늘어났다. 다시 손을 꺼내 든 일섬의 두 팔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일섬이 엄지손가락 두개를 맞부딪히자, 붉은 장갑 위로 가느다란 갈고리 세 개가 팟 하며 튀어나왔다. 후 하고 한 숨을 내 쉰 일섬이 개문에게 말했다.

내 무공은 익히 잘 알 텐데. 모든 공격을 파한다.”

들리는 소문일 뿐. 겨뤄본 적 없다!”

창 날은 이제 십여 개로 불어났다. 두두두두. 피할 공간이 없다. 일섬은 그대로 두 손을 들고 개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 뭐냐!” 개문이 당황하여 창을 거두는 순간, 일섬의 두 팔이 허공을 휘저었다. 날카로운 갈고리 여섯 개가 개문의 창 안쪽 부분을 조였다. 떨리던 창의 움직임이 멈추고, 개문이 힘을 주어 빼내려 하자 일섬이 그대로 창을 쥔 손을 노리며 갈고리를 내렸다. “이자가!” 창을 놓지 않으면 그대로 잡고 있던 두 손가락이 갈고리에 찢겨 조각날 판이었다.

비겁한!”

원거리엔 근거리. 명확한 사실일세.”

! 창을 놓은 개문이 왼 발을 그대로 올려 찼다. 일섬의 턱을 노리고 날아든 개문의 발길질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뱀처럼 흐느적거리는 몸짓으로 개문의 각을 피한 일섬이 뒤로 굽힌 그대로 땅을 짚었다. 흙먼지가 휘날렸다. 그대로 몸을 들어 올린 일섬이 두 발을 힘껏 개문의 가슴에 내질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개문의 몸이 뒤로 죽 밀려났다. 공중에 뜬 창이 채 떨어지기도 전, 찰나에 벌어진 합이었다.

여보!”

검이 날아들었다. ‘홍렬십삼초의 무서운 점은 방어나 피할 틈을 당최 주지 않는 매서운 공격의 연속이다. 단화의 검이 춤을 추며 일섬의 두 팔을 노렸다. 두어 번 막아냈다 생각했으나 이미 사초 내지 오초의 공격이 들어간 후였다. 갈고리가 구부러져 못쓰게 되자 일섬이 그대로 장갑을 벗어 던졌다. 막간을 노려 태세를 정비 한 개문과, 검을 들고 서 있는 단화를 보며 일섬이 히죽 웃었다.

합공이라. 과연, 올바른 정파이며 올바른 이들의 행위군.”

네 놈 같은 악인에게 자비란 없다!”

일대일 승부만 생각했던 내가 바보가 됐구만.”

닥쳐라!”

단화의 검이 일섬을 노리며 구부려졌다. 유연한 움직임으로 검 날이 사방팔방 춤을 췄다. 현혹되지 마라. 일섬이 또렷이 검의 움직임을 쫓았다. 동과 서로 움직이던 검 날이 어느새 방향을 바꿔 남과 북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피잉! 매서운 소리와 함께 개문의 창이 흔들리며 틈새를 노렸다. “현란하지만 그 실체는 단 칼. 그 한 방은 무섭지. 그리고 제대로 익히지 않았구나.” 일섬이 허리를 숙여 무릎을 탁 쳤다. 튀어나오는 커다란 침을 들고, 그대로 몸을 펴 단화의 손목에 던졌다. 기습이었다.

!”

개문의 창 날이 휘며 단화를 향해 날아드는 일섬의 침봉을 튕겨냈다. 공세를 바로 전환하기 어려웠던 나머지 그 충격파가 그대로 단화에게 향했다. 두두 떨리는 충격파에 단화가 쥐고 있던 검이 흔들려, 그녀가 잠시 펼치던 검압을 줄였다. 일섬이 뒷 춤에서 커다란 도를 꺼내, 그런 단화의 검을 내리쳤다.

화려함엔 우직함. 검을 파하는 것은 도.”

떵 하는 소리와 함께 단화의 검이 그녀의 손을 떠나 저만치 튕겨져 나갔다.

이 놈!”

개문이 외치며 창을 다시 돌렸으나, 이미 일섬의 모습은 시야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그의 도는 그대로 단화의 가슴을 찔렀고, 가슴 깊숙이 칼이 박힌 그녀가 입에서 피를 토하는 모습만이 뒤늦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괴성을 지르며 개문이 창을 휘둘렀지만, 풀썩 쓰러지는 단화를 보며 일섬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왜냐?”

일섬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개문이 창을 그대로 내뻗었다. “원거리에 근거리가 아니 된다면, 원거리에 더 원거리지.” 일섬이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파바박! 묘한 소리와 함께 작은 칼날들이 개문의 목과, 인중과, 이마에 박혔다. “으어......” 탄식과 함께 쓰러지는 그를 보며 일섬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원래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을. 마음이 흔들렸구나.”

왜 우리를 해하는 거냐!” 몸을 숙이고 엎드린 단화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일섬에게 외쳤다.

정파 고수들인 우리를 해하고 명성을 얻으려는 것 이냐!”

명성은 이미 있다. 왜 내게 의뢰하고, 네 놈들이 먼저 행했느냐?”

일섬은 오히려 되물었다. 쿨럭 거리며 피를 토하는 단화를 향해.

그를 해하라 의뢰한 이는 당신들이지 않느냐.”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이를 악문 단화가 소리쳤다.

 

누군 들 중요한가! 그가 죽으면 그게 다인 것을!”

오호라. 원한이구나. ? 왜 강호를 떠난 그를?”

나를 버리고 떠났어!”

 

개문이 움찔하며 반응했으나, 단화는 개의치 않았다.

 

나를 떠났어! 나를 버렸어!”

은원인가.”

나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속삭이더니, 내 아이를 데리고 그렇게 그냥 떠났다고!”

결국은 얽히는 것을.”

내 아이는, 살아 있나?”

단화가 중얼거렸다. 일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차마 죽일 수는 없었구나. 네 아이라서.”

, 그러고 싶지 않았어. 잊었다고 생각 했는데, 하지만 그는 나를 떠나고 다른 여자를 만나서......”

개문의 손이 힘들 게 단화에게 향했지만, 단화는 개의치 않고 무시했다.

그렇게 잊으려 했건만......새로운 사람과 함께 하려 했건만......그랬건만......”

단화는 끝까지 개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개문의 손이 툭 떨어졌다.

단화가 다시 한 번 피를 토했다.

네 놈의 악명은 익히 유명하지. 일섬. 누구라도 마음에 드는 의뢰라면 죽이는. 내 할아버지와 남편도 당신을 처리하는 것이라 동의해주었다. 그의 일가를 멸한 이가 바로 당신이며, 사악한 당신을 명분을 앞세워 해한다는 거. 그런 거였다. 그런 거였어. 하지만 이제 아무 의미 없다. , 그저, 날 떠난 그가 원망스러웠을 뿐......”

사파를 치는 명분과, 개인적인 복수라. 과연 네들이 정파인가?”

으하하하! 일섬은 커다랗게 웃었다.

 

개가 짖을 잡소리.”

그러니까 왜 나를 떠난 거야!” 단화가 울부짖었다.

 

우리 둘이면 그저 된다고 했잖아......”

네 자랑스러운 할아버지가 알면 모두가 피해를 보니까. 정파 제일의 고수이니.”

내 아이는......살아 있나......”

너희들을 죽여 달라 의뢰한 이가 바로 네 아이다.”

단화는 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고꾸라진 그녀가, 마지막 한 숨을 내쉬었다.

핏물이 쏟아지며 엎드린 그녀의 얼굴을 품었다.

 

개문과 단화의 주검을 보며 일섬이 고개를 흔들었다.

 

무엇이 정파와 사파를 구분하는가. 난 단지 그의 직업이 원인이려니 했다만, 개인의 원한과 이 나를 쳐내려는 복잡한 실들이 얽매여 있구나. 이 어찌 한심한가. 어미가 지아비를 죽이고, 아들이 어미를 죽이는 구나. 개문은 또 어떤가. 그는 왜 죽었는가. 천공 늙은이는 이제 이 나를 죽이러 찾아오겠지. 이 모든 게 다 은원의 꼬임일 뿐이다.”

 

번지는 핏 물을 바라보며 일섬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결국은 은원의 끈, 그 끄트머리에서 모두는 만나게 되는 것을.”

 

휘이익. 일섬은 휘파람을 불었다. 의뢰 주는 죽었겠지. 이런 결과를 듣기에는 그냥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몸을 돌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며 일섬은 나지막이 휘파람을 이어 불렀다.

 

잘 가시게들.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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