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61.

 

겨울 산에서 가장 가혹한 것은 추위 그 자체다.

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질 거라고 일기예보가 지껄였다.

영하 20도에서 사람은, 몇 시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일생을 불운과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만이 맡을 수 있는 불운의 향기 그 짙은 역취가 윤의 주위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씨발스럽네... 하는 윤의 발밑으로 담뱃재가 산을 이루었다.

 

 

62.

 

결국, 저녁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윤은 창밖의 겨울 산을 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폐급인데. 여기서 영창까지 갔다와봐야 크게 달라질건 없을 것 같았다. 윤은 몇 가지 채비를 하고 몰래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윤은, 처음으로 자신이 폐급인게 마음에 들었다. 설산이 깊어졌다. 어디선가 오늘 제설은 확정이네 어쩌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63.

 

기록적인 폭설이었다.

방금 막 찍힌 발자국이 눈에 덮여 사라지는 걸보며 윤은 절망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이슈마엘은 어쩌면 집에 돌아가 바보같은 윤을 욕하며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타당했다. 윤의 몸은, 특히 눈 때문에 젖어 얼어버린 발과 딱딱하게 굳어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 윤에게 그 논리를 받아들일 것을 강하게 종용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이슈마엘이 돌아가지 못했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아도 불행에 찌든 윤의 뇌는 자꾸만 눈밭에 쓰러진 이슈마엘, 실족 당한 이슈마엘, 윤을 부르며 우는 이슈마엘을 그려냈다. 먼 산에서 군견이 컹컹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윤을 찾는 것이리라.

 

이 눈 덕분에 되려 기동타격대의 추적을 따돌리기가 쉬울 것이라는 모순이 우스웠다.

 

"한 시간만 더." 윤은 달달 떨리는 이를 꼭 깨물며 자신을 다독였다.

 

 

64.

 

윤은, 이슈마엘이 있을만한 곳을 하나하나 더듬어갔다.

 

숨어있기 좋은 작은 동굴, 둘이 같이 쉬곤 했던 대기초소,

꼭 사람 얼굴 같은 무늬가 있는 100살 먹은 고목...

 

자꾸만 이슈마엘과 함께했던 기억이 떠올라 윤은 피식 피식 웃었다.

 

더불어 미안한 감정도 배가 되었다.

갈 수 있을만한 곳은 거의 다 가봤다.

또 어디가 남아 있더라... 하다가 딱 한군데.

아직 안 가본 곳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니, 거기일 수 밖에 없다. 대체 왜 거기부터 확인하지 않은걸까.

역시 윤은 바보인가 보다.

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다섯 시간을 설산을 헤맨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험한 산길을 거의 뛰듯이. 심장이 터질 듯이 달렸다.

 

65.

 

"......찾았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66.

 

하지만 산길을 지나치게 빠르게 뛰었기에

 

윤의 첫마디는 "흐허흐허후욱."에 가까웠다.

폐고가에서 이슈마엘이 실소했다.

"뭐라고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윤은 숨을 고르기 전에 가져왔던 여벌의 외피를 이슈마엘에게 입히고 미리 터트려둔 핫팩 아홉 개에 자신이 쓰던 핫 팩을 두개, 도합 열 한 개의 핫팩을 이슈마엘의 몸 곳곳에 집어넣었다. 힘이 없는지 이슈마엘은 저항하지 않았다.

 

이슈마엘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영하 20도의 추위에 10시간 가까이 밖에 있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사람들의 눈엔 얼어 죽고 싶어 환장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윤에겐 의미가 있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의 눈엔 안보여도 이슈마엘은 살아있었다. 자기 이빨이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치는데도

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슈마엘의 손을 꼭 잡곤 따뜻해질 때까지 호오, 호오. 입김을 불어넣었다.

 

67.

 

윤이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이슈마엘의 컵에 두 번 째 커피를 따라줬을 즈음이었다.

다행히도 보온이 잘됐는지 아직 뜨끈뜨끈했다.

사과를 할까. 하다 윤은 생각에도 없던 말을 해버렸다.

 

"...덕분에 이제 탈영병이야."

 

이슈마엘이 지적했다.

 

"용법이 잘못됐어요. '덕분에'가 아니라 '때문에'에요."

 

"늘 해보고 싶었으니까. 덕분에지."

 

"그러니까." 윤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책임져 줘."

 

이슈마엘이 피식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져 드릴게요."

 

어떻게 책임져줄지 모르면서도 이슈마엘은 책임져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윤은 놀라울 정도로 안심했다.

 

그것보다도. 이슈마엘이 커피를 홀짝이며 물었다.

 

"왜 핫 초코가 아니라 커피인거에요? 어른이 되라는 무언의 암시인가요?"

 

이슈마엘에게서 컵을 받아든 윤이 커피의 온기에 손을 녹이며 말했다.

 

"아뇨, 귀하께서 저희 핫 초코를 사랑해주신 덕분에 커피 밖에 남지 않았을 뿐입니다."

 

"세상에나, 당연히 복선인줄 알았는데."

 

"사실 복선도 뭣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윤과 이슈마엘은 평소와 다름없이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하지만 그 대화는 분명 평소보다 더 많고 깊지 않은 듯 깊은 대화였다.

 

기동타격대가 올 때까지 둘은 웃고 떠들었다.

 

윤은 아무 짓도 안 하겠다 약속한 뒤 이슈마엘을 업고 산을 내려갔다. 그 때 이슈마엘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윤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땀 냄새가 날 텐데도 이슈마엘은 딱히 싫은 눈치가 아니였다.

이상한 자세로 내려오는 윤을 보며 사람들은 '역시 미친놈이다.' 했지만 그 또한 윤에겐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음날. 윤은 영창에 들어갔다. 들어가는 김에 탈영 사유로 평소 좆같았던 선임들을 몇 명 찔렀다. 저 멀리 육군교도소에서 선임들이 이를 가는 소리가 아드득 빠드득 들려오는 듯 했지만.

 

그래도 이슈마엘이 끝까지 같이 있어줘, 지루하진 않았다.

 

 

68.

 

그리고 새삼스럽게도, 시간이 흘렀다.

 

 

69.

 

윤은 병장이 되었다.

김도 병장이 되었다.

둘은 이제 말을 놓았다.

윤은 스물 셋이 됐다.

이슈마엘은 새 교복을 입었다.

세일러복이었는데 그게 또 어깨까지 내려온 금발과 잘 어울렸다.

브래지어가 맞지 않아 B컵으로 바꾸었다고 자랑했다.

윤은 속으로 '제정신인가..' 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줬다. 예의상 기뻐해준 건데도 너무 기뻐한다며 가슴을 퍽퍽 맞았다.

 

억울했다.

 

이슈마엘은 이제 커피를 마신다.

마셔보니까 괜찮더라구요. 라고 해서 윤은 이제 두 명 분의 커피를 산다.

 

그리고 놀랍게도.

윤은 돈을 아끼기 위해 담배를 끊었다.

대신 커피를 하루에 열 잔씩 마셨다.

그럼 의미 없는 거 아니냐고 이슈마엘에게 핀잔을 들었다.

윤은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이슈마엘의 키는 윤의 턱까지 닿는다.

제대까지 대략 10여일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70.

 

윤과 이슈마엘은, 이제 한단어로 서로를 겁박할 수 있었다.

 

윤은 '모차렐라 치즈'라는 단어로.

이슈마엘은 '중학생' 이라는 단어로 서로를 겁박할 수 있었다.

 

서로 내가 미쳤지. 저걸 왜 말해서... 라고 말하며 분개했다.

 

즐거운 기만의 나날이었다.

 

 

71.

 

변한 건 별로 없었다.

윤은, 일단 근무를 안 뛰었고 머리가 많이 길었다.

이슈마엘이 머리를 자르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긴 머리는 병장의 상징이었기에 자를 순 없었다.

윤은 김치찌개를 이슈마엘은 밥을 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끔 이슈마엘이 자고 갈 때도 있었다.

처음엔 조금 두근거렸지만 나중엔 그렇듯. 그냥 익숙해졌다.

여전히 윤은 하모니카를 잘 불었고 애창곡은 피아노맨이었다.

 

 

72.

 

윤은 단기 하사나 해볼까. 하고

1년 전의 자신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말을 입에 담았다.

김은 처음으로 이 새끼가 미친건가... 하는 눈으로 윤을 쳐다봤다.

윤은 허둥거리며 아니, 부사관이 의외로 안정적이기도 하고... 라며 변명을 하다 조용히 그 눈빛에 동의했다.

 

"일병 때 보다 더 미친놈 같냐?"

 

담배를 비벼 끄며 김은 ""이라고 대답했다.

 

 

73.

 

어느새 둘은 사귀고 있었다.

물론 윤과 김이 아니라 윤과 이슈마엘 말이다.

언제부터 사귀자! 하고 말로 정한 건 아니었지만

이슈마엘의 공세에 윤이 무너진 건지

사실 윤도 이슈마엘에게 마음이 있어서 그랬던 건지

둘은 이미 사귀고 있었다.

가끔 껴안았고 자주 손이 얽혔고 많이 보고 싶었다.

 

아직 동기가 있을 때 주말이면

윤의 동기는 하루 종일, 정말로 하루 종일 통화했다.

통화비로만 월급 이상을 썼다.

월급이 비정상적으로 적은 것도 문제였지만

그래도 모자라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던 동기는

윤이 보기엔 이미 휼륭한 정신병자였다.

 

그 때 동기는 니가 아직 사랑을 몰라서 그래 이 새끼야. 라고 말하며 웃었다. 뭔가 애 취급당한 느낌이라 기분이 나빴던 게 생각이 났다.

 

밤에 이슈마엘의 생각을 하다

윤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74.

 

짬 처리를 할 만큼 했다.

꼭 벼룩시장에 온 것처럼 바글바글했다.

평소엔 인사도 안하던 후임들이 각다귀처럼 달려들어

이것저것 가위바위보도 하고 데덴찌도 해가며 가져갔다.

다만 이슈마엘이 가지고 싶어 했기에 노란색 깔깔이만은 이슈마엘에게 하사했다. 사실 처음엔 뭔가 괘씸하게 여겨져서.

김에게 다 줘버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어차피 김도 전역이 얼마 안남은 시점이었기에 진짜 짬 처리가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이 홍차 우리는 유리병은요?"

 

"무거워서 두고 가기로 했어."

 

"책은요?"

 

"두고 갈 거야. 대부분. 다음 놈도 읽겠지 뭐."

 

"꼭 자살하기 전에 신변정리를 하는 것 같아서 즐겁네요!"

 

윤이 기겁했다. 그도 그럴게 떨어지는 나뭇잎도 조심하는 시기인 것이다.

 

"부정 탈라!" 하고 살짝 준엄하게 경고를 해봤지만 이슈마엘은 여전히 개뿔, 그런 건 신경도 안 썼다.

 

 

75.

 

그렇게 긴 듯, 길지 않은 듯 한 윤의 마지막 일과가 끝났다.

이슈마엘과 여기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는데.

딱히 그걸 남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둘은 고민하다. 침상아래에 매직으로

'윤과 이슈마엘. 여기 있었다.' 라고 적었다.

쓰고 나니 멋쩍기도 하고 너무 진부하기도 해서

둘은 서로의 아이디어였다고 공을 돌렸다.

 

76.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몰래 피운 모기향과 이슈마엘이 살살 부쳐주는 부채만 있다면 어쩌면 이 계절을 한 번 더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을 기념하며 윤과 이슈마엘은 같이 잤다.

우연인지 김은 그날따라 코를 골며 깊게 자고 있고

다른 놈들은 말차다 말말차다. 해서 내무반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둘이 그렇고 그런 플레이를 즐겼다는 얘기는 아니다. 윤과 이슈마엘은 아직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윤이 졸리다는 걸 알고 있는지 이슈마엘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일이면 전역이네요."

 

"그러게."

 

"전역하고 나면 뭐 할 거예요?"

 

"글쎄... 거짓말 같겠지만 너무 꿈같은 얘기라 생각해 본적이 없어."

 

"거짓부렁 하지 말아요! 만날 나가기만 하면... 나가기만 하면...씨발. 거렸으면서!"

 

"아니... 그게. 진짜야. 분명 만날 그렇게 중얼거리긴 했지만."

 

순간 어둠 속에서 이슈마엘의 눈이 반짝 빛난 것 같았다.

 

"그럼 말이에요 윤. 핫 초코를 파는 카페를 여는 건 어때요?"

 

", 그건 내 소망이 아니라 네 소망이겠지?"

 

"아니, 진짜로! 윤이 잘 하는 건 핫 초코 타는 것 밖에 없잖아요."

 

",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둘은 한동안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슈마엘도 졸렸던 것인지 부채를 부치던 손이 서서히 멈추고 곧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옅은 잠기운 속에서 윤은 자신이 정말로 뭘 하고 싶었는지 생각하다 문득, 자신의 팔을 베고 자고 있는 이 여자애를 더 오랫동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이렇게 말해볼까.

난 김치찌개를 잘 끓이고 넌 밥을 잘하니

같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러면 이슈마엘은 아니, 사람이 김치찌개만 먹고 살 것도 아니고... 하며 어이없어 하겠지. 이슈마엘이 어이없어 하는 게 눈에 선해 윤은 슬쩍 웃었다.

 

공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 미래로 이어진다.

윤의 머리 속에선 이미 이슈마엘을 닮은 딸과 성인이 된 이슈마엘의 손을 잡고 같이 소풍을 가는 부분까지 그리고 있었다.

 

슬프게도 남자란 그런 동물이다.

열일곱에서 스무 살까지면 삼년인가... 아니, 이 미친놈이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하고 윤은 다시 웃었다.

 

그 공상이 지나치게 허망하고, 또 아름다워서 웃었다.

 

 

77.

 

결국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날이 찾아왔다.

전역자 버스를 기다리며 김이 퉁명스레 배웅을 해줬다.

어제 윤의 물건을 가져갔던 후임들은 당연하다는 듯 아무도 오지 않았다. 윤도 별 기대는 안 했기에 실망하지 않았다.

 

"잘 가."

 

"그래. 나오면 연락하고."

 

둘의 인사는 이정도면 충분했다.

 

"이제 너 가면 난 누구랑 담배 피냐."

 

투덜거리는 소리에 이제와 생각해보니

이 새끼도 외톨이였구나 싶었다.

 

혼자 피워 새끼야. 하고 윤은 김에게 남은 담배를 다 쥐어주었다.

 

이슈마엘은, 왜 우는 건진 모르겠지만 울었다.

그래서 달래느라 꽤 고생했다.

꼭 장성한 아들을 독립시키는 엄마 같네. 하며 윤은 피식 웃었다.

 

"저기, ." 하고 이슈마엘이 코를 팽! 풀곤 윤을 불렀다.

버스가 도착한 직후였다.

이슈마엘은 "줄게 있어요." 라고 말하곤 윤에게 눈을 감으라. 시켰다. 뽀뽀라도 해주려는 건가 싶었는데 손에 무언가를 꼭 쥐여 주고는 윤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쪽지였다.

 

"전화 줘요. ."

 

그리고는 정말로 나가는 건 못 보겠다는 듯이 뿅 소리를 내며 사라져버렸다.

 

조금 멍했다.

여전히, 겁이 많은 여자라고 윤은 버스에 오르며 생각했다.

 

 

78.

 

자대전입을 올 때 왔던 그대로 버스를 타고 위병소로 왔다. 군대라는 곳이 늘 그렇듯. 풍경은 변하지 않는다. 소나무들은 여전히 돌아가라... 돌아가라... 하고 기괴하게 구부러져있었다. 처음엔 낯설고 무서웠지만. 이젠 휴가를 나갈 때마다 봤기에 익숙한 풍경이다.

 

위병소에서 전역증을 확인 받고. ‘고생하셨어요 아저씨. 와 진짜 부럽네.’ 소리를 들었다. 윤은 조금은 멍하게 아저씨도 수고하세요.’ 하고 휴가자들과 함께 버스를 타 시외버스터미널에 왔다. 휴가를 나간다고 들떠있는 신병을 보며.

 

문득 어제 밤. 행보관이 불러 맥주를 한잔 따라주며 고생 많았다고.’ ‘제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니까. 무슨 일이 됐던 열심히 해보라고말한 게 생각이 났다. 터미널 앞에서 새 담배를 사 비닐을 뜯었다. 진짜로 시작인걸까. 의심스러웠다.

 

 

79.

 

윤이 사회에 나와 처음으로 한 일은 역설적이게도 머리를 자른 것이었다. 확실히 이슈마엘의 말대로 너무 길었다. 만약 지금이 장발 단속을 하던 80년대 였다면 바로 머리에 고속도로가 뚫릴만한 머리였다. 머리를 깎는데 뭐 이리 돈이 많이 들어. 하며 윤은 새삼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햄버거를 사먹고 소주를 산 뒤. 음반 가게에서 요즘 유행하는 가수의 앨범을 샀다.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가 가방을 던져두고 간만에 혼자 있는 시간을 만끽했다. 이슈마엘에게 전화를 해볼까. 하다

역시 저녁에 하기로 마음먹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살짝 애를 태우고 싶었다. 윤은 여고생을 상대로 장난질이나 치는 음험한 놈이다.

 

그렇게 다짐하고 윤은 30분만에 쪽지에 있는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아니, 보통 오후 3시면 저녁이라고 하지 않나? 번호를 하나하나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누르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딱 두 번 송신음이 울리고는,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80.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The dail is wrong number, please call again....

 

 

 

81.

 

아홉 번 정도, 아니 사실 스물아홉 번 정도 강박적으로 번호를 꾹꾹 눌렀다. 마지막에는 너무 세게 눌러 손톱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젠 귀에 박힌 듯한 기계음에 윤은 전화기를 던져버렸다.

'대체 뭘까.' 윤은 그대로 머리를 감싸 쥐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미칠 것 같았다.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리고 이슈마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화기에선 여전히 엿같은 기계음만이 흘러나왔다.

 

 

82.

 

대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정신병에 걸렸던 것일까. 아니면 이슈마엘은 귀신이었던 걸까? 만약 신이 있다면 지나치게 잔인하다고 이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윤은 진심으로 자신이 정신병에 걸렸으면.

지금이라도 저 벽장에서 이슈마엘이 다시 굴러 나왔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랬다. 눈을 꼭 감고 이슈마엘을 불렀다.

하지만 이슈마엘은 나오지 않았다. 벽장은. 그냥 벽장이었다.

아직까지 이슈마엘을 껴안았던 감촉이 생생한데. 그게 전부다 단순한 환상이었단 말인가.

 

눈으로 보기 전까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며. 윤은 옷을 대충 걸쳐 입고 밖으로 나왔다.

 

 

83.

 

담배를 물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걸으며 윤은 헝클어진 생각을 정리했다.

 

분명 휴대전화를 산지 얼마 안 되서 자기 번호조차 제대로 외우지 못한 것이다. 평소 행동거지를 보면 그게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오랫동안 외톨이지 않았나.

정신머리가 나간 여자 같으니라고

그렇다고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런 실수를 해? 별 진짜.

 

윤은 속으로 이슈마엘을 욕하며 인천으로 가는 버스표를 구했다.

 

 

84.

 

인천에 도착한 윤은 학교 주변에 있는 양장점을 찾아 다녔다. 이때는 아직 홈페이지라는 게 그렇게 발달한 시대는 아니어서 당연히 교복을 맞추려면 양장점을 가거나 기성품을 파는 가게에 가야했다. 교복을 찾는데요. 하고 들어와서 이 교복 저 교복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게 아니야... 라고 중얼거리는 윤은, 옆에서 보기엔 평범한 변태였다.

 

이것도 아니고 저건 프릴이 달려있고. 뭐를 봐도 이슈마엘이 입던 교복과는 다른 것 같았다.

 

양장점 주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살 생각이 없으면 꺼지시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렇게 한 양장점에서 쫓겨나면 다른 양장점으로 쫓겨나기를 반복했다. 경찰에 쫒기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양장점 주인들 사이에서 웬 미친놈이 교복을 찾아다닌다는 모종의 네트워크가 돌았지만 윤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체크한 교복들과 아직 체크하지 않은 교복들을 찾으며 골머리를 앓았다. 아직 이슈마엘이 입던 교복을 찾지 못했다.

 

 

85.

 

그렇게 3일이 지났다.

 

 

86.

 

오늘도 결국 해가 떨어져버렸다. 내일 또 다시 해가 뜬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이 세계의 끝인 것처럼 절망스러웠다. 다시 터미널 주변으로 돌아온 윤은 멍한 표정으로 작은 다방에 들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다방 주인이 세 번 헛기침을 하고나서야 아직 주문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윤은 커피 한잔이요. 하고 노트를 꺼낸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터미널 주변인 주제에도 사람이 없는 다방답게 커피는 금방 나왔다. 슬쩍 노트를 본 다방 주인이 퉁명스레 물었다.

 

흐음, 당신이오? 그 교복을 찾아다닌다는 남자가?”

 

분명 변태가? 라고 하려다 남자가? 로 바꾼 것이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윤이 헛웃음을 지었다.

 

제가 유명해요?”

 

다방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재떨이를 내밀었다.

 

양장점 주인들한테선. 소문으론 궁극의 교복을 찾는다던데.”

 

다방 주인이 잠시 고민하다 덧붙였다.

 

어떤 여자에게 입혀도 학생으로 보인다는.”

 

윤이 헛소리를 무시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양장점도 해요?”

 

다방 주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아니, 친구 놈이 양장점을 하거든.”

 

그래서 찾는 교복은 찾았소?”

 

아직요.”

 

어떤 교복을 찾는 건진 모르겠지만. , 법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만 열심히 하시오.”

 

감사합니다.”

 

윤이 예의바르게 화답했다.

오늘은 왜인지 진이 빠져서 뭔 소리를 들어도 뭐라 대꾸할 힘이 없었다.

 

그리고.“ 다방주인이 멋쩍다는 듯이 물었다.

 

이건 그냥 내가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그 노트 한번 봐도 되겠소?”

 

내가 왕년엔 옷 좀 꽤 만들었거든. 하고 다방 주인은 아예 윤의 앞에 주저앉아버렸다.

 

가라고 해도 안갈 기세여서. 윤은 좋으실 대로. 하고 노트를 내밀었다.

 

다방 주인이 노트를 펄럭이며 윤이 조사한 교복들의 디자인과 특징들을 훑어봤다. 웬만한 교복 마니아가 봐도 이 사람은 진심이다! 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뜨거운 정리였다.

 

다방 주인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감탄했다.

 

많이도 찾아 다녔구먼 그래.”

 

이 주변 양장점은 다 찾아다녔으니까요.”

 

다방 주인이 이 교복이 당신이 찾는 교복이랑 비슷하지 않나?” 하며 한 부분을 짚자 윤은 고개를 저으며 비슷하기만 하고 전혀 다른 교복이더라구요.” 하고 이슈마엘이 입던 교복과 어떤 부분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했다.

 

윤이 이슈마엘이 입던 교복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시작하자 잘 모르겠다는 듯 흐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다방 주인이 창밖을 가리켰다.

 

꼭 저것 같은?”

 

 

 

 

 

87.

 

윤은 빨리 달리는 것은 자신 없었지만 오래달리는 것만은 자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소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윤은 평생 저렇게 잘 달리는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터미널에서 달동네까지. 추격전을 반복하던 둘은 힘이 다 빠지면 잠시 휴전하듯 쉬고 다시 달리기를 반복하며 달밤에 난리 부르스를 쳤다. 한번 뛸 때마다 건물이 낮아지고 점차 빛도 드물어졌다. 도움을 청하거나 경찰을 부르지 않은 것이 용한 일이었다. 윤으로선 다행이었지만. 소녀는 소녀 나름대로 무서웠을 것이고 윤도 윤 나름대로 이슈마엘에게 닿을만한 단서를 놓칠까봐 두려웠기에 필사적이었다.

 

잠깐만! 서봐! 근처 찻집에서 얘기만 잠깐 해보자고! 라고 했을 때도 멘트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윤이 소녀를 따라 잡은 것은 거의 8km를 더 달렸을 때의 일이었다. 가로등 아래서. 힘이 다 빠졌는지 후욱후욱 스으읍 후우욱. 하며 숨을 몰아쉬던 소녀는 억울하다는 듯 울상이었다. 윤 역시 거의 울듯이 숨을 몰아쉬며 소녀의 어깨를 잡았다.

 

.. 잡았다하악...”

 

술래잡기는 아니었지만 왜인지 그런 룰이 되어버린 것 같아 윤은 소녀의 어깨를 잡았다. 성추행이라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너무 세게 잡았다는 듯 당연하다는 듯 머리에서 무언가 툭 떨어졌다. 가발이었다.

 

윤은 기겁을 했다.

소녀도 기겁을 했다.

 

윤은 소녀를 다시 보았다.

 

소녀의 목엔 중간에 무언가가 걸린 듯이 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88.

 

다방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소년이 훌쩍였다.

 

경찰에 신고하지 말아주세요.”

 

감히 상상치도 못했던 사태에 윤은 살짝 당황했지만 그래도 원래의 목적은 잊지 않았다.

 

신고할 생각도 뭣도 없어. 난 그냥 네가 입은 교복이 어디 학교건지 궁금한 것뿐이야.”

 

소년이 기겁을 하며 물었다.

 

..그건 왜..왜요?”

 

윤이 소년의 걱정을 지레짐작했다.

 

학교에 알리려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냥 학교 이름만 알려주면 돼.”

 

... 그런데 왜요?”

 

윤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거짓말을 했다.

 

여자친구가 도망쳐서 찾아 갈라고 그런다. .”

 

..그게...”

 

윤이 답답하다는 듯 재촉했다.

 

아 학교엔 말 안한다니까. 어디 학굔데 그래.”

 

소년은 소름이 돋는 다는 듯 얼굴이 새파래져서 대답했다.

 

이 교복. 3년 전에 망한 학교 교복이에요...”

 

 

89.

 

“......?”

 

 

90.

 

소년의 안내를 받아. 망했다는 학교가 있던 자리를 찾아갔다.

그 자리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차라리 휑한 터라도 남았으면 미련이라도 버리겠건만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으니 충격이 더 했다. “너 이 새끼.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하고 협박도 해봤지만 소년은 진짜라니까요!“ 하고 답답하다는 듯 억울함을 호소했다.

 

소년을 버리고 근처의 이름이 비슷한 학교를 찾아다녔다. 그 멍청한 이슈마엘이니 유급했을 수도 있어. 하며 근처의 중학교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이슈마엘은 없었다.

윤은 집으로 돌아갔다.

 

 

91.

 

집에 돌아와. 윤은. 당연하게도 땀을 많이 흘렸으니까.

샤워를 하고 더우니까 선풍기를 켜고

배가 고프니까 라면을 끓여먹었다. 그리고 라면을 먹다가 이슈마엘 생각이 나 조금 울었다.

 

상을 물리고 멍하니 앉아 있다 소음이 그리워져 TV를 틀었다.

TV에서 이슈마엘 또래의 걸그룹이 나와 이승철이 불렀던 소녀시대를 부르고 있었다.

 

다시 이슈마엘 생각이 나 울컥했다.

 

그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윤은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다시는 이슈마엘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다 부숴버리고 싶어졌다. 마침 가방이 눈에 들어와서 발로 찼는데. 아팠다.

 

뾰족한 것이라도 있었나 보다. 뭔지는 몰라도 완전히 부숴버릴 생각으로 가방을 열었다. 하모니카였다. 생일 때 이슈마엘에게 받았던. 불어보니 뿜빠뿜빠 하고 소리가 났다. 그리고 시 소리도 기가 막히게 잘났다. 그게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윤은 손에 피가 안 통할 정도로 하모니카를 꽉 쥐었다.

 

옆방에서 씨발 놈아 새벽 세시야 세시! 하는데도 윤은 기뻐했다.

 

 

92..

 

윤은 정말로 필사적으로 정말로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게 더듬어 댔는데도 기억이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독립투사 급의 정신력이다. 이제 좀 불어줬으면 좋겠는데.

 

윤은 처음으로 자신의 기억력이 저주스러웠다.

머리뚜껑을 따서 속을 헤집어서라도 기억하고 싶었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다 언젠가 김에게,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슈마엘이 살던 동네에 있던 유원지. 분명 김은 그 주변에서 살았다고 했었다.

 

새벽 5시 새가 지저귈 즈음의 일이었다.

슬슬 밝아오는 하늘을 보지도 않고

윤은 하모니카와 지갑만 챙기곤 밖으로 나섰다.

 

김을 만나볼 차례였다.

 

93.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산을 몇 개 구불구불 지나. 다시 부대 앞이다. 위병소에 면회 신청을 하고 김을 기다렸다. 정확히 10분이 지나고 김이 모습을 보였다.

 

"전역한지 일주일 만에 면회를 오다니.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농담할 시간 없어. 예전에 이슈마엘이 산다고 했던 동네 기억나?"

 

윤은 이젠 그 주변의 모든 집의 벨을 누르며 이슈마엘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김이 윤이 가져온 사제담배를 피우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곤 연기를 후 뱉으며 말했다.

 

"... . 기억나."

 

"진짜?!"

 

"아니. 가짜. 내가 이사를 얼마나 많이 다녔는데. 기억이 날 리가 있나. 그런데 상관없어."

 

윤은 이 개똥구더기 만도 쓸모없는 놈이 뭐라 지껄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 잠깐만. 잠깐! 스톱! 진정해봐. 들어보라고!"

 

그딴 게 통할리가 없었다. 윤의 주먹이 올라올 즈음에.

 

"아니, . 애초에 나. 너무 빨리 나온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고 보니. 막사에서 여기까지만 40분이다. 그런데 어떻게 김은 10분 만에 여기에 올 수 있었을까? 그렇다. 이곳은 벽지 중의 벽지. 가족들조차 한번 오고 나면 학을 떼는 곳이다.

 

"그게, 너 말고도 오늘 면회 오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거든."

 

별달리 친구도 없는 김에게 누가 찾아오겠는가.

얼떨결에 애인과 생이별을 하게 생긴 여고생이나 찾아오겠지.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교복 사이로 노란 깔깔이가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94.

 

진짜 있었네. 이슈마엘.

 

축하해. 하고 김은 윤의 어깨를 턱. 한번 잡곤 자리를 피해줬다.

여전히 터무니없이 좋은 놈이었다.

 

그렇게 윤과 이슈마엘만이 면회실에 덩그러이. 남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윤을 재치고 이슈마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기차화통이라도 구워먹은 듯한 목소리였다.

 

"아니, 전화를 왜 안 해요 왜! 내가 그렇게 싫었어요! 내가 싫던 거면 말이라도 하지! 나 지금 인기도 많은데!"

 

윤의 목소리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왜 망한 학교의 교복 같은 걸입고 있는 거야! 역시 머리가 나빠서 검정고시로 학교 나올라고 작정 한거지? 헷갈리잖아 바보야!”

 

그거야 윤이 세일러복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실망할 것 같아서... 우리 학교는 사복 학교라 별 수 없었단 말이에요! 아줌마 옛날 교복을 달라 그랬죠! 사람이 왜 배려를 해줘도 감사할 줄을 몰라요! 그리고 바보라고 한 사람이 바보라고 했어요!”

 

이젠 둘은 삿대질까지 해가며 싸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마지막의 마지막에 잘못된 번호를 주고 난리야! 내가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 알아!”

 

"남자가 하나하나 바꿔서 전화해볼 근성이 없어요? 애초에 자기번호를 그렇게 잘 기억하고 다니면 자기 번호라도 주던가! 왜 나한텐 번호 안줬어요! 자신감이에요? 내가 번호를 꼭 줄 거라는 자신감이라도 있었어요? 와 어이없네? 이 남자! 그리고 별 수 없잖아요!"

 

이슈마엘이 힝하고 울었다.

 

"오랫동안 외톨이였는데 자기 번호나 제대로 기억하고 다니겠어요!"

 

크게 외치는 소리에 건물 뒤에서 담배를 태우던 김이 역시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훌륭한 어른답게 남 탓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리움이 더 짙은 탓이었는지 서로를 호도하는 목소리는 점차 울먹거림으로 변해갔다.

둘은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것이다.

 

이슈마엘은 윤에게 다가가 키스하려다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인다는 걸 깨닫고 머뭇거렸다.

그리고 윤은 상관없다는 듯 몰상식하게도

이슈마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버렸다.

포개진 입술의 온기를 느끼며

내가 이렇게 몰상식한 사람을 좋아했다니. 하고

이슈마엘은 행복해했다.

 

--

 

------------------------------------------------------------------

 

다른 웹사이트에도 올렸던 글입니다만

 

다음 글은 거울에서 올리는 것이 처음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일단 중간고사라는 희대의 적부터 물리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아 공강을 이틀이나 만든 것이 이런 후폭풍을 몰아올줄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아프군요.

 

중간고사가 끝나는 대로 쓰고 있던 작품을 마무리 지어 다시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억수

담배를 끊었습니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081 0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9804 0
2491 중편 23세기 소설가 - II 인투스 2018.11.20 3 0
2490 단편 단화개문(丹花開門) 후안 2018.11.19 2 0
2489 단편 은원(恩怨) 후안 2018.11.19 3 0
2488 단편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5 너울 2018.11.19 305 0
2487 단편 불광동 수정씨 희야아범 2018.11.17 7 0
2486 중편 23세기 소설가-I 인투스 2018.11.17 9 0
2485 단편 살을 섞다2 노말시티 2018.11.13 36 0
2484 단편 극지인(polar alien, 劇地人)과 도넛 희야아범 2018.11.09 14 0
2483 단편 합격자 자기소개서: 2045 하반기 [SL전자] 전략기획 너울 2018.11.01 40 1
2482 단편 아이스크림 - 시가, 상담 후 판매 너울 2018.10.30 16 1
2481 단편 모래바람 속 푸른 레거시 온연두콩 2018.10.27 21 0
2480 단편 연희 진정현 2018.10.24 24 3
2479 단편 사랑의 의미 진정현 2018.10.24 24 4
단편 Call me Ishmael 2(完) 이억수 2018.10.19 7 0
2477 단편 Call me Ishmael 1 이억수 2018.10.19 14 0
2476 단편 삐거덕 낡은 의자 온연두콩 2018.10.18 29 1
2475 단편 BUSY 온연두콩 2018.10.18 23 0
2474 단편 이름 없는 싸움 김성호 2018.10.17 17 0
2473 단편 비취 라그린네 2018.10.17 15 0
2472 단편 고양이 카페트 선작21 2018.10.17 15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5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