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

 

그 애가 나를 쳐다본 때를 기억한다. 원망, 절망, 질투, 좌절....... 나열하면 나열할수록 부푸는 감정들이 새까맣고 조그만 동공을 이루는 눈이었다. 뭔가를 말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저 스쳐갔다. 감지 않았으나 감은 눈으로 그 애를 스쳐갔다. 옮긴 눈길은 남자친구에 주었다. 그 애를 때리고 욕하고 왔을 남자친구에게.

 

 

 

 

 

2

 

고전문학 토론 시간이었다. 2조의 토론 내용 발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다른 반과의 합반 수업이었다. 3조인 나는 다음 수업시간에 이어서 할 예정이었다. 2조에 다른 반인 그 애가 있었다. 주제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를 읽고 정한 ‘앉은뱅이와 난쟁이의 정장남자 살해는 정당한가?’이었다. 조장인 그 애는 정당하다는 입장, 찬성이었다. 집문서와 돈을 되찾기 위해 정장 남자를 차에 묶은 뒤 불을 지른 그들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살아야 하니까요. 내가 살아야 하니까요.

 

즉각 아이들의 반박이 쏟아졌다. 살인을 정당화하는 것이냐, 미화하는 것이냐, 어쨌거나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느냐. 나 역시 살인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되거나 미화될 수 없다고 말을 꺼냈다. 그 애는 모든 상황과 동기를 고려해야 한다며 함무라비 법전이 있는 시대가 아니지 않느냐는 재반박을 내놓았다. 설전이 오가고, 교사는 빈 책상 위에 궁둥이를 걸치고 앉아 꼬박 졸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입 좀 닥쳐라. 트젠 목소리 듣기 짜증나.

 

일순의 정적의 뒤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따라붙었다. 그 애는 그 말을 꺼낸 남자애를 응시하다 고개를 돌렸다. 같은 조 다른 아이들도 한껏 비웃음을 입가에 처바른 채였다. 그 애는 입을 다물었다. 살기 위해서라고요, 두 마디를 내뱉은 후에. 다른 아이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졸다 깬 선생이 아이들을 보고 집중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그 애를 바라보다가 괜찮냐고 물었다. 그 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괜찮지 않았다, 그 애는, 그러니까 내가 봤을 때는 말이다. 다른 애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나는 그 애를 멍한 눈길로 뜯어보았다. 뺨에 남은, 옅게 퇴색 된 시퍼런 멍. 고개를 숙이며 보인 정수리 쪽의 텅 빈 한 줌. 어깨 위에서 가지런히 흔들리는 단발머리가 얼굴의 반을 가렸다. 전 쉬는 시간에 또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5조의 한 남자아이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입 닥치라고 말한 남자애 옆에 앉은 남자아이, 남자친구였다. 그는 짝꿍과 함께 킬킬대며 그 애를 힐끔거렸다.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남자친구는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마주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가 사귀는 사이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인 나와 남자인 그, 연인인 우리의 관계를. 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그 애에게로 다시 고개를 향했다. 살짝 머리를 든 그 애의 뺨과 정수리가 다시 보였다. 남자친구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었다. 스스로가 여자라고 ‘주장’하는 그 애, 이상한 그 애, 괴물 같은 그 애, 왕따인 그 애, 라고 나는 천천히 머릿속으로 나열하며 입을 벙긋거렸다. 어느 순간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나열하면 나열할수록 부푸는 감정들이 새까맣고 조그만 동공을 이루는 눈이었다. 그 감정들은 검붉게 썩어가는 제 속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어둠의 잔해들, 아니면, 아니, ‘아니면’ 없이 확실한 어둠의 잔해들이었다. 나는 얼굴을 가만히 무표정으로 내버려두었다. 그 애가 발표를 마친다. 자리로 돌아간 2조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애를 오른쪽으로 해 갈라섰다. 선생이 김성찬, 내 이름을 불렀다. 3조인 나는 자리에서 아이들을 이끌고 교탁 앞에 섰다. 짧게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 애는 자신의 발표문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아무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것처럼. 나는 입을 열었다.

 

저희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자>를 읽고,

 

 

 

 

 

3

 

여럿의 가위 날이 허공에서 빛을 반사했다. 그 애의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삼키는 가위들을 쥔 손 중에 남자친구의 손이 있었고 내 손이 있었다. 마치 지뢰 파편이 다닥다닥 박힌 병사의 머리 같은, 아니면 밤송이에 더 가까운 것 같은 그 애의 머리가 보였다. 더운 날이었다. 온 몸의 땀구멍마다 불꽃이 타닥타닥 튀는 듯한 느낌이었다. 뜨거운 햇빛은 피부 아래의 혈관을 쥐어짜 몸속의 모든 흐름, 예를 들어 숨조차, 가로막는 것 같았다. 그 애의 얼굴이 그들의 발길질과 손에 의해 뙤약볕 아래 함몰되는 중이었다. 그 애의 양 옆으로 펑퍼짐한 코는 폐까지 닿기도 전에 신음으로 흐트러지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얼굴에 붕 뜬 화장은 그들이 가져온 더러운 대걸레에 의해 어지럽혀진다. 이해하기 힘든 피카소의 작품 마냥.

 

나는 여자야.

 

언젠가 그 애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느 상황에서인지, 어느 시점에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말 뒤에 이어진 아이들의 말들만 기억날 뿐이다. 무수히 많은 질문들, 그 속에 숨은 무지와 그에서 비롯된 적의 없는 비수들. 그 애가 트랜스젠더이건 뭐건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않았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불쾌했다. 자기는 여자라며 여자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그 애의 말에 여자아이들 거의 대부분이 대놓고, 또는 뒤에서 혐오스러워 했다. 여장 변태라는 이미지가 그 애 위에 덧씌워졌다. 우리가 씌운 것이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시선을 바꾸지 않는 이상 그 애는 여장변태였고, 정신이상자였고, 왕따였고, 그리고 가짜 여자였다.

 

남자친구는 자기 친구들과 헤어져 나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주유소에서 근무하는 남자친구의 아버지는 나를 그저 아들의 친한 친구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가 호모포비아이든 개독이든 상관치 않았다. 남자친구도 아버지한테 커밍아웃 할 생각 없다고 줄곧 말해왔었다. 아버지랑 별로 친하지도 않아....... 싫어. 아버지. 그러다 남자친구가 걔는 커밍아웃했을까, 물었다.

 

누구? 내가 되물었다.

 

그 변태새끼 말이야.

 

그가 대꾸했다.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글쎄. 그게 내 대답이었다. 그렇게 ‘여자’처럼 하고 다니는데 부모가 모를 리가 있을까? 문득 웃음이 터졌다. 누가 봐도 남자인 ‘남자애’가 여자처럼 보이려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는다는 게 웃겼으므로. 개그 프로그램에서 자주 봐왔던 변태 캐릭터 같기도 했다. 그런 건 유전인가? 걔 부모도 존나 이상한 인간들인 것 같애. 남자친구가 말을 이었다. 그런 애들하고 성소수자로 하나로 묶여서 우리 같은 동성애자들도 변태 취급당하는 거 아냐.

 

맞아.

 

나는 말했다.

 

그래서 퀴어축제 같은 것도 가기 싫어. 걔네들 보면 토 나올 것 같애.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가 도어 록 비밀번호를 눌렀다. 잘 정돈된 아늑한 집안이 푸근한 따뜻함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 애는 들어가자마자 내 아래를 살짝 움켜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속에서 밀려나온 행복감에 입꼬리가 누그러졌다. 신음을 살짝 흘렸다. 그 애의 고통에 젖은 신음소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2학년 1반 최경수, 는 돈을 가져왔느냐고 물으러 간 거였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 애의 반에 들어갔는데 그 애를 보게 된 거라고. 자세한 묘사가 이어졌다. 그 애는 에어컨 속 냉각장치에 줄을 묶은 뒤 목을 맨 상태였다고 했다. 혓바닥이 턱 아래로 개처럼 죽 빠져나왔고, 부서진 밤송이 같은 머리는 언제나처럼 푹 숙여진 채고, 손목 근처에는 핏방울이 말라붙은 상처들이 가득했다고 했다. 죽은 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줄을 잘라 풀어주었더니 토악질을 하면서 깨어나더라고 진술했다. 학교에 일찍 온 남자친구와 그 친구들이 장난으로 기절놀이 같은 걸 하다가 벌어진 일이라고, 내가 물었을 때 선생은 그렇게 대답했다. 학교폭력징계위원회가 열릴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친구는 울고 불며 그 애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 그 애는 무표정이었다. 남자친구의 어떤 말에도 어떠한 표정 변화 없이 응, 응, 응, 그렇게만 대답할 뿐이었다.

 

너무 심했잖아. 괴롭히는 건 상관없지만.

 

남자친구를 기다렸다 같이 가는 길이었다. 남자친구는 질끈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롤러코스터의 오르막 끝에 멈춰 선 것처럼. 아래로 떨어지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다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걔 죽이고 싶어. 너도 알지? 물론 걘 왕따인 이유가 있는 애지만, 그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나는 걔가 싫어. 죽이고 싶어. 나는 걔가 트젠이라서? 라고 대꾸했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것 때문만은 아냐. 다시 그는 눈을 감는다. 나는 그의 손을 살짝 잡았다 다시 놓았다. 떨어진 두 손 사이로 비껴선 바람이 찼다. 고개를 돌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다. 그런 뒤 그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춘다. 건조한 입술을 편안하게 감싸는 보드라운 뺨을 나는 확인한다. 남자친구를 느낀다.

 

 

 

 

 

4

 

그날은 나도 그 애를 ‘데리고’ 있었다. 빈 우리 집이었고, 남자친구와 나, 그리고 그 애 이렇게 셋만이 있었다. 부모님과 여동생이 유럽 여행을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빗방울을 머금었을 새까만 구름들 사이로 조각조각 찢긴 달빛이 떨어지는 밤이었다. 전깃줄에 목을 묶은 채 개처럼 끌고 다니던 남자친구는 침대에 누워 뒹굴거렸다. 나는 네 발로 바닥에 버티고 선 그 애의 등 위에 두 발을 올리고 있었다. 야구방망이가 문 옆에 세워져 있었다. 나는 야구방망이를 가져와 그 끝을 핥으라고 했다. 더러운 먼지가 그 애의 혓바닥 뒤로 삼켜졌다. 짖어보라고 했더니 짖었다. 나는 야구방망이를 그 애의 성기 쪽으로 가져갔다. 세게 치려는 시늉에 그 애는 움찔거렸다. 남자친구가 킬킬대며 나를 툭 쳤다.

 

변태.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변태지.

 

나는 마주 웃으며 그 애를 보았다. 조금 자란 머리가 그 애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학교폭력징계위원회에서는 정학 5일 처분을 내렸다. 정학 4일째인 남자친구였다. 나는 그의 옆에 누워 아래를 만지작거렸다. 단단하면서도 푹신거리는 그의 가슴을 연신 쓸고 문지르고 핥았다. 나는 그 애에게 방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몸을 이곳저곳으로 느끼다 잠이 들었다. 어쩌면 나만 잠이 든 것일 수도 있었다.

 

내 어깨를 양손으로 잡은 채 흔드는 남자친구가 어렴풋이 보였다. 완전히 깬 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심해 속 시퍼런 물로 침잠한 듯한 그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남자친구는 당황해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쟤 좀 봐봐.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 애가 누워있었다. 쓰러져있다, 라는 표현이 더 알맞았다. 나는 그 애에게로 다가갔다. 잠이 덜 깨서 비몽사몽 하는 상태였다. 위로 치뜬 두 눈은 흰자위만 보였고 목엔 시뻘건 손자국이 선명했다.

 

죽었다,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생각이 든 건 수십 분이 지나서였다. 나는 남자친구와 그 애를 번갈아보았고, 가만히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생각만 되풀이했다. 더불어 죽였다, 남자친구가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까지. 두툼한 밧줄에 꽁꽁 매인 정적을 풀어헤친 건 나였다.

 

신고하면 안 돼.

 

 

 

 

 

맞고 있다. 무엇으로 맞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저 맞을 뿐이다. 나를 도보 블록의 하나로 박아 넣을 것처럼, 욱여넣을 것처럼 때리고 있는 그들을 알 뿐이다. 더러운 게이 새끼, 총 쏴서 다 죽여 버려야 할 것들, 그런 비슷한 말들이 피가 흐르는 고막에 부닥치기 일쑤다. 나는 사지를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했다. 허우적거렸다. 시멘트 안으로 들어가 그대로 굳어진 돼지가 나오는 동화를 떠올린다. 그렇게 구경거리가 된 돼지가 될까봐 겁났다. 이미 나는 그들에게 구경거리였지만.

 

그래도.

 

와이파이 셔틀, 삥 뜯기, 눈에 띄지 않는 소소한(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괴롭힘, 그런 따위들의 늪에 빠진 나였다. 게이라는 이유 때문일까. 오픈리로 살겠다는 결심을 한 내 탓이었을까. 페북에 게이-퀴어라고 자기소개를 수정했을 때 예견치 못했던 내 탓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확언하는 나를 나는 증오한다. 오픈리는 자연스럽게 포비아인 학교 아이들의 타깃이 되었다. 그들의 존재를 무시했던 내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다녔다. 부모님에게 말할 순 없었다. 커밍아웃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독실한 한국 기독교 신자인 부모님이 내 성정체성을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호모포빅적인 말들도 일상적으로 들어왔던 나였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평선마저 삼켜진 어둠에 한 꺼풀씩 벗겨진 나는 살가죽조차 남아있지 않은 맨몸이었다.

 

지금 쓰러진 그 애처럼.

 

남자친구는 그 애가 먼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부엌에서 칼을 꺼내들어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렇겠지. 네가 사람을 죽일 리가 없지. 싸이코패스도 아니고, 그치? 의식 없는 말들이 입술 사이로 후두둑 떨어졌다. 내가 쓰러졌을 때가 생각났다.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부모님이 보였고,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어. 갈매기 모양으로 무늬가 새겨진 병원 천장이 아래로 무너진다. 그 뒤로 쓰러진 그 애가 보인다. 옮기자는 말이 튀어나왔다. 어디로? 남자친구가 물었다. 산으로. 뒷산 있잖아.

 

 

 

 

 

5

 

산은 고요했다. 운동 삼아 뒷산을 오르는 아저씨 아줌마들조차 없었다. 밤에 소나기와 태풍이 몰려올 것이라는 예보 때문이었다. 그래도 간간이 사람들이 눈에 띄긴 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샛길을 통해 갔다. 30인치 캐리어는 그 애의 몸을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컸다. 부서진 나뭇잎과 흙이 들러붙은 바퀴는 갈수록 뻑뻑해져 끌기가 쉽지 않았다. 나와 남자친구는 번갈아가면서 캐리어를 옮겼다. 나무들이 한 데 빽빽이 모여든 곳을 찾아야 했다. 남자친구의 한 손에 들린 검은 봉지에는 모종삽이 두 개 들어있었다. 깊게 구덩이를 판 뒤 캐리어를 묻을 생각이었다.

 

뻔한 생각이었다. 아예 집에서 한참 떨어진 아주 먼 곳에 갖다 버리자는 말도 나왔다. 남자친구는 그게 더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곳곳에 CCTV가 있을 것이고 우리의 그 행로가 다 밝혀지면 끝, 이라고 대꾸했다. CCTV가 고장 나거나 아예 없는 오래된 낡은 동네인 여기가 더 숨기기 안성맞춤이야. 나는 말했다.

 

여기로 하자.

 

나는 나뭇잎을 스쳐가는 바람소리를 스치며 말했다. 남자친구가 건넨 모종삽을 건네받았다. 검붉은 색에서 보랏빛으로 내려앉은 하늘이 허공을 가로지른 나뭇가지들 사이로 내보였다. 초가을의 서늘한 기운에 피부의 털들이 뻣뻣이 기립했다. 끊임없이 흙을 퍼냈다. 아래로 삽을 향해 흙을 파고든다. 그리고 위로 향하며 흙을 퍼낸다. 이 두 가지 행동이 남자친구와 맞물려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캐리어를 밀어 떨어뜨린다. 퉁, 투박한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다시 흙으로 구덩이를 메우기 시작했다. 꼭 내가 나를 묻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괜찮니? 부모는 그렇게 물었다. 병상에서 꼼짝할 수 없는 나는 네, 라고 작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나는 언제나 괜찮았다. 괜찮든 괜찮지 않든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괜찮아야 했으므로, 학교폭력 쯤은 아무 것도 아니어야 하는 인간이어야 했으므로. 부모가 그렇게 나를 믿었으므로, 그래야 했다. 일순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남자친구가 있는 쪽으로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어지러운 한편으로 마음 한 구석에서 길어 올린 그 애를 향한 혐오와 증오가 불시에 머릿속을 뒤덮었다.

 

칠판 앞에 선 그 애가 시야를 가렸다. 저는 여성입니다. 정확히는 트랜스젠더 여성이고요. 이렇게 공개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는 저와 같은 성소수자가 더 있을 것이고, 저와 그들이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제가 치마를 입든 바지를 입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뭘 입든 전 여자니까요. 여성이니까요. 4월 국어 첫 수행평가인 ‘자서전 발표’ 시간이었다. 발표가 끝나고 박수 소리는 띄엄띄엄 들렸다. 교사는 어, 그래, 하면서 당혹감에 짙은 표정을 내비쳤다. 그 애는 자리로 돌아갔다. 뭔가 이상한 애였는데 역시나가 역시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랜스젠더는 정신병자지. 대부분의 애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괜찮아?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귀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양 손을 짚고 일어섰다. 무딘 날 같은 바람 한 줄기가 등을 훑고 지나갔다. 벌레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장단의 소리가 사위를 잠식했다. 나는 얼른 내려가자고 남자친구를 재촉했다. 삽을 다시 봉지에 넣고 우리는 산책하듯 앞뒤로 팔을 흔들며 천천히 내려왔다. 걸으면 걸을수록 땀이 났다. 남자친구가 연신 소매로 땀을 닦아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찬물에 샤워를 했다. 달아오른 몸이 조금 식는 느낌에 나는 심호흡을 했다. 무더운 밤이었다.

 

 

 

 

 

6

 

여동생 숙제 좀 봐줘라. 걔하고 그만 좀 놀고.

 

남자친구 집에 가려던 계획은 취소되었다. 다음 날이 한글날이라서 학교를 가지 않으니 망정이지, 여동생 숙제 봐줄 여유 따위 없었다. 여동생이 가져온 숙제는 ‘동성결혼’에 관해 찬반 입장을 밝히고 발제문을 써가는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뭐라고 써야 하냐고 여동생은 물었다. 나는 트위터와 책에서 얻은 얕은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서 대답해주었다. 동성결혼 합법화가 아니라 ‘법제화’이고, 이는 당연한 천부인권이며 세계적으로 법제화되는 추세라고. 그럼 소아성도착증과 수간은 어떻게 할 거냐는 여동생의 물음이 이어졌다.

 

그거 두 개는 정신질환이고. 아직 미성숙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아이랑, 성숙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이 확립된 성인의 관계가 평등해? 아니잖아. 평등한 관계여야 된다고. 그런 점에서 수간도 마찬가지야.

 

나는 훌륭히 대답했다고 속으로 자화자찬했다. 여동생이 다시 물었다.

 

그럼 트랜스젠더는?

 

동성결혼과 상관없는 질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대답했다. 트위터와 책에서 배운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서.

 

그건 정신질환이지. 정신병자. 성별 이분법을 고착화시키는 것밖에 더 돼? 걔넨 그냥 여장 남장 좋아하는 변태들이지....... 음 변태까진 아닌가. 어쨌든. 이상한 건 똑같으니까.

 

여동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 없이 손에 쥔 샤프를 움직여나갔다.

 

너희 학교에도 그런 애 있냐? 트젠?

 

아니. 레즈라고 소문 난 애는 있어. 우리 반 앤데.

 

걔랑 친해?

 

아니요.

 

여동생이 입을 비죽였다.

 

걔한테 뭔 일 생기면 도와주기도 하고 그래. 포비아들이야 얼마든지 있잖아.

 

알아서 하겠지....... 뭐.

 

그때 전화가 왔다. 담임선생님이었다.

 

나는 여동생 방문을 닫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 애에 관한 얘기였다. 학폭위에서 징계를 받은 남자친구와는 이미 전화를 끝낸 것 같았다. 아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그 애의 실종에 대해서. 나는 모르겠다고 둘러댔다. 그래, 하고 담임은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괜한 불안감이 마음속을 기어다녔다. 전화를 세 차례 건 뒤에야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건너들려왔다. 담임에게 아직 연락 온 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갸우뚱한 말이었다. 시답잖은 말을 더 주고받다 우리는 내일 만나기로 약속하고 대화를 끝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병원의 갈매기 천장이 불쑥 머릿속에서 뛰쳐나왔다. 나는 고개를 짧게 좌우로 흔들었다. 걱정할 것 없어.

 

나는 그렇게 믿었다.

 

 

 

 

 

7

 

남자친구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담임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연락도 되지 않았다. 교무실에 가 담임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남자친구는 병원에 있었다. 담임은 남자친구가 한 무리의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누구한테 맞았다고요? 담임은 귀찮다는 듯 나를 돌아보곤 말을 이었다. 어떤 성인 무리한테 폭행당했다, 알고 보니 몇 년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 그런 얘기들이 죽 뒤따랐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남자친구가 나한테 말하지 않은 얘기가 있었다니, 그것에도 놀랐지만. 나는 엊그제 밤을 떠올렸다.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던 와중에 그가 말했었다. 누가 미행하는 것 같다고. 누가 자신을 따라온다고 말했다. 한 명이 아니라고 했다. 여러 명이라고. 좁은 골목도 아니고 꽤 큰길이었다. 사람이 간간이 오가는 그런 작은 길. 나는 가족 중에 마중을 나오라고 할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어린 동생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그가 집에 안전하게 들어갈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았다.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그는 쫓아오던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병원에 있었다.

 

804호 문을 열었다. 다섯 개의 침상이 양쪽으로 정렬해있다. 그 중 한 가운데 위치한 남자친구는 머리와 팔,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 누워있었다. 눈만 껌벅껌벅 천장을 향해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그의 가족들은 잠시 저녁을 먹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았다. 아무런 말없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덕지덕지 붙은 반창고와 솜에 가려진 그의 얼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멎은 시선을 붙잡고 있던 눈동자가 나를 향해 움직였다. 나는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는 자그맣게 응, 이라고 했다가 아니. 그렇게 말했다.

 

내가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애....... 개가 아는 20대들한테 당했어.

 

남자친구는 과거 얘기를 짤막하게 읊조리듯 말했다. 중학교 때 한 살 많은 남자애를 사귀었다고 했다. 그러다 몇 개월 만에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때 그 남자애와 연이 있는 20대 게이들이 몰려와 자신을 폭행했다고 그는 대답했다. 우연히 마주쳤다고 했다. 이태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도망갔지만 쫓아왔다,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그 남자애는 없었다, 그런 말들이 죽 뒤를 이었다. 그건 데이트폭력이잖아. 경찰엔? 신고했어? 남자친구는 아주 조금, 머리를 좌우로 내저었다. 신고하면 더 그럴 거야. 그 말에 나는 아니야, 말을 끊어내듯 내뱉었다. 신고해야 돼. 그놈들이 그런 짓 더 못하게 하려면....... 문득 나는 죽은 그 애가 생각났다. 아직 실종된 걸로 처리된 상태였다. 그 애는 경찰에 우릴 신고했을까.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괜한 미련이었다. 그랬다면 진즉에 경찰이 찾아왔을 것이고, 이렇게 나와 남자친구가 대화를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죽은 애는 죽은 애야. 나는 그렇게 믿었다.

 

죽은 애는 죽은 애라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고.

 

수년 전, 내 머릴 내려치며 한 말이었다.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8

 

나는 그들에게 맞는다. 나는 그 애를 때린다. 나는 쫓기며 쫓는다. 잡히지 않을 어둠을 한 터럭이라도 피하기 위해 나는 도망친다. 그들은 점점 포위하듯 나를 감싼다. 쫓던 그 애는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이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치닫는다.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저 혼자 슬로모션으로 허우적거린다.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맞는다. 그들이 뱉는 소리들이 침묵의 공명을 업고 울려 퍼진다. 날 선 부서진 침묵의 잔해들이 귓구멍을 쑤신다. 문득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그들을 살펴보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다. 그 목소리는 점차 멀어지고 옅어지다 이내 허공으로 스러져간다.

 

꽉 쥐고 있던 이불자락을 놓았다. 그때서야 나는 현실로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몰아쉬는 숨은 들숨인지 날숨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과 피아노, 늘어놓은 인형과 피규어들이 새벽 햇무리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방은 아침과 새벽에 한 발씩 걸쳐놓은 모습이었다. 핸드폰을 보니 얼마 전 퇴원한 남자친구에게서 카톡이 와있었다. 내용은 죽고 싶다, 그런 말들이었다. 천천히 첫 번째 말부터 읽어나간다. 그 남자애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20대 게이들이 자기를 자꾸만 따라다니고 숨어있고 때리려 든다. 다시, 남자애가 나에게 다시 고백했다. 이미 애인이 있다고 했지만 굽히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멀리 도망쳐버릴까. 그리고 꿈을 꾸었어.

 

나는 카톡 읽기를 멈추었다.

 

꿈을 꾸었어, 그 뒤를 읽는다, 어떤 남자를 만났어. 길을 잃어버린 나에게 친절히 길을 알려준 사람이었지. 그런데 계속 뒤를 따라오는 거야.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자신을 모르냐고, 그렇게 끊임없이 재촉하는 거야. 나는 모른다고 했지. 그랬는데 그 남자가 갑자기 변하는 거야. 끔찍하고 흉측한 시체 모습으로. 꼭........ 죽은 그 애 같은 모습으로. 나는 도망쳤어. 다리가 원하는 대로 빨리 움직였어. 근데 이번엔 상체가 안 따라줬어. 하반신이 잘려나간 채 저 혼자 달려갔어. 무슨 도끼로 잘려나간 춤추는 분홍신 마냥. 무서웠어. 그리고 너를 만났어. 네가 날 안아줬는데, 그래서 안심했는데, 네가 아니었어. 그 남자였어. 등에 칼을 꽂더라.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깨어나서도 등 쪽이 결리고 쓰라렸어.

 

핸드폰을 뒤집어놓았다. 아무 것도 보고 읽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남자친구를 품에 안았을 꿈속의 ‘나’를 상상해보았다. 그런 내가 그 정체모를 남자로 변해서 칼을 꽂는다니. 불쾌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남자는 누굴까. 죽은 그 애는 지금 모습이 어떨까, 그 물음에 맞을 답을 찾았지만 머릿속은 꿈과 현실이 혼재된 망망대해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턱 밑까지 잡아당겼다. 다시 잠을 청했다. 몇 시인지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다. 시간을 알고 나면 그대로 영원히 그 꿈에 발목을 붙잡힐 것 같아서였다.

 

그 애는 잊혔다. 아이들은 더 이상 그 애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담임도 실종 수사 중이라고만 하고 별다른 말이 없었다. 형사가 와 형식적으로 나를 포함한 몇몇 아이들과 얘기를 나눴을 뿐이다. 나는 그 애의 빈 책상을 건너다보았다. 당당히 나는 트랜스젠더다, 여성 화장실을 이용할 것이다, 라고 말하는 그 애가 실루엣으로나마 칠판 앞에 서있었다.

 

나도 그랬는데.

 

그래서 그렇게 맞고 모욕당하고 지옥 같은 나날들이 이어졌는데.

 

그래서 감히 반 아이들 앞에 서서 공개적으로 그렇게 나를 밝힐 수 없었는데.

 

그래서 나는 숨어야 했는데.

 

그 애는, 너는 당당하게 그렇게 말할 수 있구나.

 

그래서 나는 네가 싫다. 트랜스젠더인 너도 싫고 그런 주제에 당당한 네가 싫다.

 

나는 속으로 그 말들을 되씹어 삼켰다. 혓바닥 뒤에서 헛구역질을 일으키는 말들을 뱃속으로, 이름 모를 소화기관에 저장한다. 그것뿐일까. 내가 그 애를 싫어하고 그 애를 산에 묻은 것은. 모르겠다. 나는 책상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한때 여기에 적혀있던 무수한 말들-똥꼬충, 게이새끼, 더러운 놈, 에이즈환자, 전염병 환자, 변태, 걸레-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 같다. 그것이 입체성을 띠기 전에 나는 지우개로 깨끗한 책상을 힘주어 문질러 닦는다. 있지도 않은 말들이 길쭉한 때로 밀리고 밀려 나온다. 누가 닦았는지 그 애의 책상은 깨끗하다. 내가 그 애의 책상에 적은 말을 떠올려본다. 떠올려지지 않는다. 뭐라고 했더라.

 

기억은 나지 않고, 그 애가 했던 말들 중 하나가 떠오른다.

 

혐오를 혐오합니다.

 

혐오를 혐오한다니. 누가 한 말이더라. 우에노 치즈코인가. 맞는 말이다. 혐오를 혐오할 수 있다. 혐오를 혐오해야 한다. 다만 그 혐오의 기준은 누가 세우는 것인가. 그 애는 기존의 남성과 여성을 혐오한다. 트랜스젠더 존재 자체가 그렇다. 나 또한 혐오를 혐오한다.

 

그래서 그 애는 혐오 받아 마땅하다.

 

 

 

 

 

9

 

경찰서에 있다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 말은 붕 뜬 채 생각의 찌꺼기들만 남은 머릿속을 유영했다. 침이 목울대를 넘어갔다. 뭐라고? 나는 되물었다. 경찰서에 있다는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점차 또렷해진다. 들린다. 경찰서에 있어. 그 말이.

 

나는 급히 일산 경찰서로 움직였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내내 죽은 그 애가 조용히 내 뒤를 쫓아오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속으로 그 말을 수천 번 이상 되뇌었다. 다른 일이겠지. 남자친구가 죽이고 우리가 같이 생매장한 그 일 때문은 아니겠지. 그렇게 걸음 하나하나에 일어서는 두려움과 절망을 밟아 누르며 나는 경찰서로 향했다. 문을 열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남자친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재빨리 그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남자친구의 얼굴엔 붉은색의 뭔가가 점점이, 또는 호선을 그리며 묻어있었다. 뭐가 묻은 거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할 때까지 계속 물었다.

 

죽였어. 애들을.

 

죽었다고? 누가?

 

죽였다고. 애들을.

 

남자친구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누가 누굴 죽였다는 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형사는 현장에서 체포된 것이라고, 그가 20대 남성 두 명을 죽였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누군데? 이내 그를 때렸다던 20대 게이들에 생각이 가닿았다. 그 두 명은 병원에 실려 갔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라고 했다. 남자친구는 울기 시작했다. 흐느낌에 가까웠다. 눈물을 한 방울 한 방울 주워 담듯 그는 통곡을 예열했다. 울음의 파도가 목구멍에서 넘실거렸다. 100도씨의 물처럼 들끓는 소리가 났다. 뭣 때문에 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형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조용히 하라고 짜증을 냈다. 남자친구는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고 중얼거리며 울었다. 나는 울지 말라고 했다. 울지 마. 울지 말라고. 그러나 그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울지 말라니까!

 

나는 소리쳤다. 남자친구의 눈물로 이지러진 얼굴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건 정당방위야. 널 괴롭혔잖아. 그래서 정당방위로 죽인 죄밖에 없다고.

 

나는 형사와 남자친구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형사는 그건 재판을 해봐야 아는 거고....... 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남자친구는 일단 유치장에 갇혔다. 구속 영장을 발부할 거라고 했다. 나는 유치장 앞에 앉아 그를 지켰다. 울던 그는 지쳐 잠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서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남자친구는 여느 때처럼 미술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 20대 무리 중 두 명이 따라왔다고 했다.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는 도망치려 했지만 금세 붙잡히고 말았다. 온 몸을 뒤지더니 돈만 쏙 가져갔다고 했다. 그냥 가려던 그들을 멈춰 세운 건 남자친구였다. 돌을 던졌다. 뺏긴 돈을 되찾으려는 것보다는 자존심이 상해서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렇게 그는 두들겨 맞다가 그 애가 생각났다. 이렇게 얻어맞는 건 그 애 같은 애 따위나 당하는 건데. 그는 가방 속의 커터칼을 꺼냈다.

 

 

 

 

 

10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남자친구가 사람 두 명을 죽이고 교도소로 가게 됐다는. 아이들은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교무실에 불려가는 일이 잦아졌다. 나와 남자친구가 게이라는 소문도 났다. 누가 퍼뜨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날 아는 애들이 지나가는 말로 너 진짜 게이야? 그렇게 묻고는 저들이 킥킥대는, 그런 것이었다. 뒤늦게 죄책감이 몰려왔다. 아니, 원래 마음 어딘가에서 홀로 기어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내 뭔지 모를 자신감에 눌려있다 흘러나온 것뿐이다. 스멀스멀 나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하던 죄책감은 어느 새 나를 자, 살, 두 글자에 욱여넣고 있었다. 살인범인 남자친구, 그를 도운 나, 죽은 그 애, 언제 들킬지 모르는 일이었다. 가려졌던 현실의 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걸 가리고 있던 환상은 무엇이었을까. 모르겠다. 알 수 없다.

 

내가 봐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깊이 박아두었던 말뚝에 매인 사나운 개가 짖어대듯 감정이 흔들렸다. 절대 날아가지 않도록 꽉 맨 감정이었다. 학교폭력을 당했을 때도, 그 애를 괴롭힐 때도, 죽었을 때도, 흔들리지 않던 감정이었다. 그게 착각일지도 몰랐다.

 

사실은 조금씩 무른 흙 위로 빠져나온 말뚝을 느끼지 못했을 뿐일 수도 있다.

 

어느 새 뛰쳐나간 감정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서 흘린 수많은 느낌과 기분과 감각들이 뫼비우스의 띠를 이룬다. 그 띠를 따라 나는 천천히 움직인다. 지나갔던 일들이 하나둘씩 깨어났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과거를 마주한다.

 

그러다 멈춘다. 어떤 남자가 있다.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체육선생이었다. 누구의 관심도 없는 TV속 영화와 저희들끼리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그만 좀 자라며, 보고 감상문 써야 한다며 내 어깨를 꾹 주무르는 체육선생이었다. 나는 선생의 허락을 받고 화장실로 향한다. 질기고 질긴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숨을 헙 들이키며 뱃가죽을 당겼다. 몸 속 내장들을 머리까지 끌어올리는, 살가죽과 내장들과 뼈에 흡수된 모든 수분을 다시 역으로 흡입하는 그런 호흡이었다. 그렇게 해서 눈물 두 줄기가 쪼르르 흘러나왔다. 왜인지 흘러야만 할 것 같은 눈물이었다. 아니, 내가 흘려선 안 될 눈물 같았다. 내 몫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몫까지도 흘려버린 기분이었다.

 

 

 

 

 

11

 

수학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역 근처라 사람들이 많았다. 불을 켠 포장마차들이 죽 늘어선 길거리는 달빛마저 삼킨 가로등으로 환했다. 그 한 쪽에는 공사를 멈춘 제 2 그랜드 백화점이 서있었다. 외관상 거의 완공이지만 투자자들의 모종의 사정으로 공사 중인 그대로 방치된 곳이었다. 나는 이끌리듯 그곳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오랜 시간 무른 결이 느껴지는 공기였다. 핸드폰 손전등을 켰다. 샛노란 불빛이 둥근 광원을 그리며 백화점의 곳곳에 스며들었다. 기둥과 타일 바닥, 움직이지 않는 에스컬레이터 등 어느 한 시간에 멈춰버린 듯한 분위기였다. 나는 천천히 발을 옮겼다. 밖이 내다보이는 유리 엘리베이터 세 개는 3층 언저리에 멈춘 상태였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간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지 않는다. 일정한 폭으로 움직이는 기계마냥 두 다리를 내버려둔다. 오르고 또 오른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물건들과 건축 자재들이 음산한 느낌을 더한다. 어제의 재판이 기억 한 줄기로 솟아난다. 검사 측은 징역 3년을 구형했고, 판사는 징역 10개월과 보호관찰 처분을 내렸다. 만 18세가 지난 탓이었다. 남자친구는 별다른 표정 변화도 없었다. 단지 그의 부모가 울고 있었다. 변호사는 죽은 두 사람이 지속적으로 그를 폭행 및 협박해왔다는 사실을 들어 정당방위, 무죄를 주장했다. 나는 방청석에 앉아 가만히 재판을 지켜보았다. 재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죽은 그 애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들키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큰 건 죄책감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죄책감이었다. 죽어도 상관없는 애인데. 내가 죽이지도 않았는데. 내가 그 애를 괴롭힌 건 맞지만 나도 전에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니 쌤쌤이다, 그런 생각이 자라났다. 남자친구도 비슷한 경우이지 않은가.

 

걸음을 멈춘다. 그런 생각들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없다. 의미 따윈 없다, 없어, 그러니....... 죽자. 더 살 자신이 없었다. 살인범인 남자친구와 게이라고 소문 난 학교생활, 그리고 죽은 그 애. 그 어디에도 살아야 한다는 의미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주위를 살핀다. 바깥으로 뻥 뚫린 건물 외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선다. 족히 10층은 넘는 높이였다. 한 손으로 쓸어버릴 수 있을 만큼 작아진 차들과 사람들과 건물들이 시야에 꽉 들어찼다. 뛰어내리면, 아무런 느낌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내가 괴롭히고 나를 괴롭혔던 세상에서 영원히. 나는 한 발짝 더 앞으로 허공에 다가섰다.

 

소리가 들린다.

 

 

 

 

 

남자가 걸어왔다. 내 쪽으로,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떼며. 나는 뒤로 물러선다. 그는 나를 보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누구냐고 물었다. 귀신이야? 달이 쥐고 있던 먹구름의 조각들이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계속해서 내 가까이로 다가왔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가만히 그 자리에 서 남자를 응시했다. 어둠에 반쯤 가려진 그의 얼굴은 어딘가 익숙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등 뒤로 핸드폰을 가져갔다. 잠금 화면을 열고 경찰서에 신고하려는 순간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나 모르겠어?

 

몰랐다. 나는 머리를 천천히 위아래로 끄덕였다.

 

네가 괴롭히던 앤데. 그래도 모르겠어?

 

그 애, 에 생각이 가닿은 건 수 분이 지나서였다. 일순 핸드폰이 떨어졌다. 철과 부딪치는 시끄러운 소리가 침묵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바깥으로 뻥 뚫린 출입구로 다가섰다. 발끝으로 먼지덩이가 밀려 떨어졌다. 소리 없이 비에 삼켜진 먼지들은 천천히 땅으로 추락한다. 나도 그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가까이 오면 뛰어내릴 거야.

 

나는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소리쳤다.

 

남자는 다가오던 두 발을 멈춰 세웠다.

 

내가 걔인 거, 너도 알잖아. 다른 사람 몸에 잠깐 빙의한 거야. 나 같이 약한 사람한테.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지.

 

꿈인지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애가 내 앞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나 죽이려고 온 거니? 복수라도 하려고?

 

그럴 순 없어. 나도 양심이 있는 지라, 널 죽이고 싶진 않아.

 

그가, 그 애가 다시 다가온다. 내 오른발의 반쪽이 허공을 디뎠다.

 

다만 넌 좀 더 사는 고통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몸이 휘청거린다. 세상이 180도로 뒤집히는 느낌과 함께 세찬 빗줄기에 몸이 밀려난다. 떨어지는 느낌, 마치 무수한 시간의 터널을 광속으로 지나가는 듯한, 주마등이 스쳐간다는 표현 마냥, 나는 어둠으로 굴러 떨어졌다.

 

 

 

 

 

12

 

양심....... 무슨 양심을 말하는 거지.

 

생각이 번쩍임과 동시에 눈이 떠진다. 가려움일줄 알았던 느낌이 일순 화끈거리는 고통으로 돌아왔다. 목젖 부근 기침으로 가득 찬다. 나는 숨을 헐떡인다. 비명을 질렀다. 아팠다. 팔, 다리, 배가 아팠다. 바늘로 같은 자리를 수백 번 찔렀다 빼내기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뿌연 시야에 실루엣으로 그려지는 몇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 내 몸을 만지고, 주사기 같은 걸로 뭘 주입하고, 나를 건드린다. 부모님이다. 그리고 여동생, 간호사다. 괜찮냐는 말들이 싹둑 토막 난 채로 귓구멍 근처에서 이합집산을 반복한다.

 

고통이 잦아든다. 진통제를 투여한 까닭이다.

 

이리저리 뒤틀리던 내 몸이 한순간 죽은 사람처럼 멎는다.

 

 

 

 

 

13

 

복합부위통증증후군.

 

그게 내 병명이었다. 10층 높이에서 자동차 위로 떨어진 탓에 곳곳의 뼈가 부러지고 장기가 파열됐지만, 더 고통스러운 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그 병이었다. 거의 하루 종일 여동생이 옆에서 나를 보살폈다. 부모님은 퇴근하자마자 병원을 들렀다 가셨다. 조금만 움직여도, 어딘가에 스쳐도 불에 덴 듯한 통증이 피부를, 뼛속을 긁어댔다. 매번 레이저 치료를 해도, 진통제를 맞아도 고통은 어김없이 제 시간에 맞춰 찾아왔다.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기껏해야 편지를 쓰는 것뿐이었다.

 

내용은 매번 비슷했다.

 

사고를 당했다, 큰 건 아니니 걱정마라, 잘 지내고 있니, 소년 교도소가 그래도 성인 교도소보단 낫지 않느냐, 등등. 그 남자가 다시 찾아올 때까지는 그런 내용만 있었다. 남자는 내 국어선생이라며 병실을 찾아왔다. 여동생은 자리를 비워주었고, 병실엔 나와 남자, 그리고 기침을 수시로 내뱉는 폐렴 걸린 노인 환자가 전부였다.

 

견딜 만 하니?

 

이거, 꿈이야, 현실이야.

 

나는 낮게 목소리를 깐 채 물었다.

 

네가 생각하기 나름이지. 나는 현실이라고 생각해. 너한테 다시 말을 거는 이 상황 자체는 나도 아직 현실 같지 않지만.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남자인 그 애를. 하나하나 뜯어본다. 그 얼굴에 붙은 가면의 흔적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으로 떼어낸다.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 나는 다시 고통에 쓸려간다. 소리가 들린다. 더 때려! 죽을 때까지 패란 말이야! 신경이 가닥가닥 끊어져 찌꺼기로 널브러지고 그 아픔은 고스란히 정수리까지 치달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 애가 보였다.

 

이제야 알았네. 그때 너도 있었구나.

 

무슨 소리야?

 

남자가 되물었다.

 

그때 나 애들한테 맞고 다녔을 때, 왕따였을 때 말이야.

 

나는 고통에 밀려온 숨을 가까스로 삼키며 말했다.

 

그때 너도 있었잖아. 맞지?

 

남자의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흔들렸다.

 

나를 때렸잖아. 너도 날 게이라면서 때렸잖아. 모르는 척 하지 마. 그러고 보니 너, 이름도 바꿨구나. 징계 받고 나서 강제전학 당했지.

 

맞아. 나도 널 때렸어. 그때.

 

그의 목울대가 한차례 너울거렸다.

 

그때 널 때리지 않았다면 난 너 대신 맞았겠지. 아마 네 남자친구보다 날 먼저 그 애들이 죽였을 거고. 그 점에서 미안한 건 아무 것도 없어. 나도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까. 너도 마찬가지지 아니니?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로 살 때의 그 애의 얼굴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를 바로 누이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남자친구 괴롭힌 것도 너니? 살인범 만든 거?

 

제대로 말해야지. 네 남자친구는 원래부터 날 죽인 살인범이었어. 넌 방조자에 같은 가해자이고.

 

더러운 정신병자. 트젠 주제에.

 

나는 글자 하나하나를 씹어 되새김질 했다.

 

그 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동생이 들어왔다. 여동생을 흘깃 거린 뒤 그 애는 병실을 그대로 나섰다. 잠시 잊고 있던 통증이 피부 밑에서부터 속살과 뼈를 파먹는다. 다시 신음과 비명이 입안으로 몰아쳤다.

 

 

 

 

 

14

 

병원 생활은 지루했다. 거의 매 순간 다가오는 고통의 그림자를 저 멀리 병원 기둥에 피터팬의 소녀처럼 꿰매서 묶어버리고 싶었다. 답장이 이따금 오곤 했다. 남자친구 역시 별 할 말이 없는지 매번 비슷한 내용의 짤막한 글을 실어 보냈다. 나는 그 글을 소리 내어 읽곤 했다. 모두가 잠든 시각, 한 꺼풀 벗겨진 어둠의 터럭을 붙잡은 채 모두가 잠든 시각이었다. 나는 뱃속에 곯은 감정들을 입 안의 숨으로 그러모아 그 위에 말을 보탠다. 아무리 읽어도 제자리에 안에서 맴만 도는 듯한 기시감은 어쩔 수 없다.

 

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여동생이었다. 그 뒤로 엄마가 쫓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내 침대 커튼을 열어젖혔다. 여동생은 울었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눈가가 눈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엄마 역시 두 볼이 상기된 상태로 당황한 기색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일이냐고.

 

엄마는 뭐라 말을 하려다 다시 입을 다문다.

 

둘이 싸운 모양이었다. 워낙 쉽게 자주 싸우는 사이니 나는 그러려니 하며 여동생을 자리에 앉혔다. 그는 연신 눈가를 훔치며 가쁜 숨을 내쉬기를 반복했다. 나는 대체 뭔 일이냐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여동생의 입에서 나, 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잠시 무른 정적을 당겨쓰다 트랜스젠더, 그렇게 내뱉었다. 나는 둘의 단어조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나는 대답을 재촉했다.

 

트랜스젠더야. 나. 나 여자 아냐. 남자라고.

 

엄마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아빠하고 다 같이 얘기해보자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다 여동생을 보고, 다시 허공에 시선을 흩뜨려놓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는 울음을 멈추고 두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왜 트랜스젠더야? 여태까지 정상적으로, 어, 여자로, 살았는데 그게 그런데. 무슨 말이야. 대체.

 

여자로 살던 척한 것뿐이었어.

 

이게 무슨 일이야.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그 말을 나는 가까스로 삼켰다. 엄마는 아빠와 전화하러 나간 상태였다. 여동생은 침대 다리 맡에 앉았다. 시선은 나를 향했고 몸은 비스듬히 창가를 바라보았다. 자기는 트랜스젠더이고, FTM이며, 잘 알지 못하지만 그동안 가족, 엄마, 아빠, 그리고 오빠인 내게서 들어왔던 트랜스젠더 혐오적인 말들을 기억한다고. 그리고 자기는 인권활동가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 그런 말들을 하나하나 깨부술 거라면서. 나는 잠시 머릿속이 빈 수레가 굴러가는 마냥 갖은 생각의 잡음들로 시끄러웠다. 그 애가 생각났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남자에 빙의되어 날 찾아왔던 그 애.

 

그거, 현실 맞나. 진짜 그 앤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망상증에 걸려 헛것을 보는 거라면. 나는 여동생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적어도 여동생은 현실이었다. 그 위로 그 애의 모습이 얄따란 실루엣으로 겹쳐 보였다. 그 애가 복수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여동생에 빙의한 건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여동생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세차게 흔들어댔다. 소리치면서, 당장 내 여동생 몸에서 나와, 당장 나오라고 소리치면서. 흔들리는 여동생의 모습이 점차 그 애로 변해갔다. 가윗날에 잘려나간 밤송이 같은 머리를 한 채 나를 노려본다. 나는 다급히 뒤로 물러선다. 또 다시 몸을 휘감으며 찾아오는 고통의 파도 속에서 나는 두 팔을 내뻗는다. 살려달라고 외친다. 여동생의 얼굴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나는 침잠한다.

 

 

 

 

 

15

 

달린다. 뭔가가 달리고 있다.

 

눈을 뜬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배경으로 차창이 보인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안전벨트까지 찼다. 옆자리엔 그 애가 있었다. 낯모를 남자였다. 신호등에 차가 멈춰 섰다. 나는 환자복을 입은 그 상태 그대로였다. 누구냐고 물었다. 남자는 나야, 참치캔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내는 것 같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나는 소리를 질러보지만 길가의 사람들은 모두 제 갈 길을 가기 바빴다. 신호등 앞의 사람들도 무심히 핸드폰을 들여다볼 뿐, 나의 외침이나 비명에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차는 다시 출발한다. 광화문 사거리다. 청계천에서 세종대왕상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위대가 동성애 반대, 트랜스젠더 반대, 아빠와 엄마가 있는 가정이 정상적인 가정입니다, 등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었다. 북과 장구를 치며, 거중기에 매달아놓은 거대한 스피커로 알 수 없는 말을 외쳐대며. 차는 정확히 그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돌진’이란 표현이 더 적합했다. 나는 차를 세우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남자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잠깐일 뿐이야. 그는 말했다. 오늘은 내가 평소 이상형으로 꼽던 남자 모습으로 와봤어. 남자는 아직 정체화하기 전의 모습이었고. 이 모습으로 날 기억해줘.

 

그리고 자동차가 무리를 친다. 사람 무리를 친다. 세종대왕상으로 움직이던 시위대가 한 순간에 뭉개진다. 차가 연신 들썩인다. 덜컹덜컹, 끼이이익, 쿵, 하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사람들이 아래에 깔린다. 차에 밟힌 사람들, 치인 사람들, 부딪친 사람들이 내뱉는 비명이 오케스트라의 한 절처럼 허공을 떠다닌다. 죽어도 돼, 이 사람들은. 그는 말했다. 저 끔찍한 혀로 하루에도 수백 명의 ‘우리’들을 죽이는 애들이야, 그러니까 죽어도 돼. 그러나 차에 치이고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동성애 반대, 게이 척결, 에이즈 척결, 항문성교 반대 등의 피켓을 들고 있다. 차는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들은 여전히 동성애 반대! 정상가족 복귀! 에이즈 척결! 항문성교 반대! 를 외친다. 남자가 차를 멈췄다. 시선이 굴곡지다. 누군가의 몸 위에 바퀴가 비스듬히 올라선 탓이다. 그 애는 운전대를 놓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흐느끼고 있었다. 온 몸으로 느낀 사람의 생명을, 그 뒤틀림과 뜀을 나는 뼛속에까지 새기고 말았다.

 

자. 네가 죽여. 저 사람들.

 

그 애는 구호를 외치는 호모포비아들을 가리켰다.

 

난 내 몫 다 죽였어. 지금 이 순간엔 트랜스젠더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욕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다 죽여버렸으니까.

 

운전대가 비어있다. 나는 운전대를 멀리서 보듯 건너다본다. 가느다랗고 길쭉한 그녀의 손가락이 운전대를 슬며시 두드리고 있다. 죽여.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야. 걔들은 널 부정했어. 이제 네가 부정할 차례야. 걔네가 원하는 것처럼 천국으로 보내버리라고. 운전대를 두 손 가득 쥔다. 그 애의 발이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허공에서 헛돌던 바퀴가 다시 앞으로 구르기 시작한다. 넘어지는 사람들과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 죽은 사람들, 그들 모두가 내 아래 짓밟히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다.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머리통이 으깨지고 뼈가 부서지고 살이 짓눌리고 장기가 터지고 파열되고, 그 표현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다시 새기며 차를 몬다.

 

 

 

 

 

고요하다. 나는 다시 눈을 뜬다.

 

몇 차례 감고 뜬 눈인지 몰랐다. 옆자리엔 여전히 그 애가 있다. 차는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역시 꿈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는다. 눈을 감기 전 스친다. 파손된 차창과 거기에 묻은 흥건한 핏자국이. 나는 다시 그 애를 바라본다. 어떠한 떨림도 감정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침묵으로 가라앉은 얼굴이다.

 

꿈이라서 다행이야.

 

나는 말했다.

 

그러니 나도 무섭지 않아. 네가.

 

무서워할 필요 없어. 날 왜 무서워 해? 날 죽여서? 그렇게 치면 나도 널 죽이려 했지. 중학교 때 말이야.

 

잘 아네. 우린 쌤쌤이야. 같은 처지의 같은 사람이라고.

 

같은 사람은 아니지. 너와 난 달라. 넌 게이이고 난 트젠이듯이.

 

언제부터 꾼 꿈이지? 네가 처음 병실에 온 날부턴가?

 

뭘 믿고 이게 꿈이라고 확신하지? 진짜면?

 

그 애가 웃는다. 고개까지 뒤로 젖히면서 깔깔 웃는다. 너무 웃어서, 이젠 비명, 고함으로까지 들린다.

 

상관없지. 그래 꿈이든 현실이든 상관없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네가 날 병실에서 납치해 포비아 학살에 동참시켰고, 이제는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고? 꿈도 이런 꿈이 있나.

 

나는 헛웃음을 터뜨린다.

 

여동생이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한 것도 꿈이야.

 

글쎄, 그건 모르겠는데.

 

그 애가 킥킥대며 말한다.

 

왜 무서워? 네 여동생이 트젠이면 뭐 너한테 악영향이라도 있나?

 

젠신병자라고 하지, 너 같은 애들을.

 

나는 말한다.

 

웃기지도 않아. 트랜스젠더는 망상병 환자야. 남자로 태어났음 남자지. 여자라니. 웃겨.

 

그럼 게이는 뭐지. 에이즈 물어다 나르는 모긴가?

 

그 애는 차에서 내린다. 헛간 같은 2층의 커다란 집 앞이었다.

 

나도 따라 내렸다. 몸이 아프지 않았다. 병이 씻은 듯 나은 것 같았다. 그러니 꿈이라고 나는 더더욱 확신한다. 그 애는 차 트렁크를 열었다. 시체가 보였다. 두 세구의 시체가 겹쳐져 있었다. 뒷좌석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썩은 내는 나지 않았다. 그 애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시체를 옮기고 차를 청소했다. 집으로 들어간 나는 집안에 쌓인 시체들을 보았다. 막 무너지려하는 젠가 마냥 아무렇게나 쌓인 시체들이었다. 그 애는 그 시체들을 휘 둘러보았다.

 

이게 다 무슨 시체인지 알아?

 

그가 나를 마주보았다.

 

포비아들 시체야.

 

제사라도 지내니?

 

나는 코웃음을 쳤다.

 

아니. 억울하게 죽은 퀴어들이 거쳐 갈 몸들이야. 한을 풀기 위해 잠시 머무를 수 있는 몸들.......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 나도 아직 몰라. 이대로 천국에 갈는지, 동물로 태어나는 건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건지. 난 신이 아니니까.

 

수십 개의 방문이 일시에 열렸다.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흐릿한 그림자 마냥 빛이 그들의 몸을 투과했다. 나는 입가를 비웃음으로 내리눌렀다.

 

나도 억울하게 죽으면 여기에 오겠네.

 

순간 그 애가 내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뒤이어 뱃속을 헤집는 칼날을 느꼈다.

 

넌 억울하지 않아. 넌 사람을 죽였잖아.

 

내가 널 때렸던 건 나도 협박당했기 때문이야. 근데 넌?

 

너는 그냥, 네 남친하고 같이 날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괴롭혔잖아. 트랜스 포비아. 맞지?

 

넌 억울하면 안 돼. 억울하지도 않고.

 

그냥 죽으란 말이야. 너한테 거쳐 갈 몸 따윈 없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몸 곳곳에 똬리를 틀며 날 죈다.

 

 

 

 

 

16

 

눈을 뜬다. 시침과 분침이 내는 시계소리만이 정적을 두드리고 있다. 눈을 뜨자 엄마가 보인다. 아빠가 보인다. 여동생이 보인다. 병실이 보인다. 환자복을 입은 내 모습이 보인다. 나는 웃는다. 모든 게 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동생을 부른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묻는다.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 다시 묻는다.

 

여동생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엄마가 사라진다. 아빠가 사라진다. 여동생만이 남는다.

 

나, 어제 커밍아웃했잖아. 오빠. 아니, 형.

 

순간 숨이 막혀온다. 나는 여동생을 바라본다. 그 애다. 여동생이 아니다. 그 애다. 그 애가 보인다. 나는 두 손을 뻗어 여동생의 목을 조르려 하지만 여동생이 한 발 앞섰다. 여동생, 그 애에 목이 졸린다. 안녕, 형. 눈이 다시 감긴다. 네가 그럴 리가 없잖아. 트랜스젠더일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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