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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한국 소설 문학의 화신

2018.10.04 18:1910.04

“바로 여기 안에 류 작가가 있습니다.”

 

<읽기와 쓰기> 출판사의 김 대표는 자랑스럽게 랩탑을 가리켰다. 반짝이는 플래쉬와 찰칵거리는 카메라 소리,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음이 강당에 울렸다. 랩탑의 고급스러운 알루미늄 외장과, 그 외장 한가운데에 자랑스럽게 박혀 있는 사과 모양에 사람들이 감동받은 것은 아니었다.

 

1년 전, <읽기와 쓰기> 출판사가 내놓은 새 단편 소설집은 출판 당시에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소설집 이름도 고만고만했고, 류서영이라는 작가는 그 전까지 그 어디에서도 볼만한 글을 내놓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뭐 제대로 마케팅이 돼서 SNS에 카드뉴스가 올라오고 한 것도 아니었다. 책은 소리소문없이 몇몇 대형서점 구석에 쳐박혔다. 처음 출간하고 한 두 달 간, 도서관에서 비치해놓겠다고 한 권씩 사 간 것을 제외하면, 50권도 채 안 팔렸으리라.

 

그러다 출판 후 70일 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트위터에 상주하는 시간이 긴 것과 세련된 상상력으로 유명한 작가 한 명이 광화문에 있는 대형 서점의 소설 코너를 거닐다가 잠깐 발을 헛디딘 게 시작이었다. 그는 책꽂이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으면서 주저앉았는데, 마침 그 책이 그의 눈에 띄었다. 감수성 깊은 작가는 ‘이것도 인연이다’고 마음 속으로 되뇌이면서, 단편집을 꺼내 첫 소설을 읽어 보았다.

 

40분 후에 그는 서점 직원한테 이 책 재고 더 없냐고 물어보았다. 서점 직원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근처에 비치된 컴퓨터서 검색하더니, 창고에 있는 네 권을 더 꺼내 왔다.

 

“이게 지금 다거든요.”

 

직원이 그리 말하자 작가는 직원에게 모두 다 달라고 말했다. 어깨에 멘 에코백에다 같은 책을 다섯 권 집어넣은 채로, 집에 오면서 그는 트위터에 글을 하나 올렸다.

 

“이번에 읽기와 쓰기 출판사에서 내놓은 새 단편집 굉장하네요. 류서영 작가의 글은 전에 본 적이 없는데 더 찾아 봐야겠어요. 한 편 한 편 다 찬란한 글이라 대표작이 무엇이라 집기도 힘드네요. 날 잡고 리뷰를 써야겠네.”

 

작가가 어디 블로그에다 리뷰를 올리기도 전에, 그 글만 보고 인터넷 서점으로 책을 구매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루 뒤에, 작가의 리뷰를 보고 책을 구매한 사람 중 불만이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다시 수십 개의 트윗이 올라왔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트윗 계정 이름을 ‘류서영 작가님 글 파는 중’ 뭐 이런 식으로 바꾼 채였다.

 

한 사흘 쯤 지나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서점 계정에서 류서영 단편집 광고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읽기와 쓰기> 출판사는 그 때부터 2쇄 출판을 시작했다. 소설 코너 가장 깊숙한 심연의 구석에 쳐박혀 있던 류서영 단편집은 베스트셀러 코너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잡았다.

 

그 어떤 사람들이 보아도 류서영의 단편들은 좋은, 아니 위대한 소설이었다. 문장은 쉽고 잘 읽히며, 우아하고 세련됐다. 이야기의 구성은 경이로울 정도로 치밀하였다. 인물은 거친 파도 속을 헤치는 범고래처럼 생생했다. 사건은 너무나 흥미로워 책을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가 없었다.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그 모든 위대한 소설들이 크게 참신하지는 않았다는 게 있을까.

 

모든 비평가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류서영은 새롭지 않은 소재를 끝까지 이용해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사람이라고. 류서영 단편집은 한국 소설 문학 전체에 대한 거대한 오마쥬라는 말도 많았다.

 

10만 권이 팔리자, 사람들은 류서영이 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지금 활동하는 모든 기성작가들보다 뛰어난 글을 쓰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작가. 그런데 단편집의 책날개에도 딱히 작가 소개는 적히지 않았다.

 

맨날 TV에 나와서 글 쓸 시간이 없는 거 같은데 어째 신기하게 책을 꼬박꼬박 내는 몇몇 유명 교수들의 뒤에서 글을 써 주던 사람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류서영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뛰어난 기성 작가가 힘을 모아 만든 익명의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12개월 만에 100만 권이 팔렸을 때 마침내 <읽기와 쓰기> 출판사의 김 대표는 ‘작가와의 만남’을 열었다. 대학의 큰 강당을 빌렸고, 많은 기자들과 사람들이 몰려왔다. 책에 사인을 받으리라는 기대에 부푼 감수성 깊은 대학생들도, 소설을 아끼는 수많은 책벌레들도 강당 의자를 꽉 채웠다. 작가 하나를 만나러 온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사람이 많았다.

 

김 대표는 자랑스럽게 랩탑 하나를 가리켰다. 이제 대충 돌아가는 꼴을 깨닫고는 소리를 지르는 상상력 높은 사람도 있었다. 그는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류서영 작가는 AI입니다.”

 

그 말이 나오자 마자 수많은 기자들이 손을 들고 여러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목소리들이 겹치고 겹쳐 알아듣지 못할 말이 되었다. 대표는 두 손으로 목소리를 낮추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한 1분 동안 소란스러웠지만, 곧 시끄러운 소리는 잦아들었다.

 

“저희 출판사는 최근 3년 간 그동안 출판되었던 모든 소설 컨텐츠들에 특정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이를 학습하는 컴퓨터에 집어넣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여러 최신 자연어 처리 기술을 도입하여...”

 

“어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된 것입니까?!”

 

하는 소리가 울렸다. 다시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잠시만 조용히 해 주세요. 질문 시간을 따로 가지겠습니다. 자세한 기술적 디테일은 여기서 답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희는 컴퓨터가 여러 훌륭한 한국 소설들을 학습해 새로운 좋은 소설을 출력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발표하고자 합니다. 원래 소설을 쓰는 AI는 여러 방면에서 지지부진한 편이었는데...”

 

대표는 그러면서 손에 쥐고 있던 조종기를 눌렀다. 강당의 화면에 여러 군데서 발췌한 글이 나타났다. 영어도 있고 한국어도 있었다. 처음 몇 문장까지는 괜찮은 글 같았지만, 곧 지리멸렬해지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김 대표는 뚜벅뚜벅 걸으면서 시선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조금씩 돌리며 말했다. 프레젠테이션의 화면이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익숙한 글이 나타났다. 류서영 단편집의 문장들이었다.

 

“저희는 이제 컴퓨터가 더 넓은 맥락을 읽고 새로운 글을 통째로 창작해낼 수 있었습니다. 류서영 작가의 글은 전부 초기 설정값만 넣고 사람이 아무 손도 대지 않은 글입니다.”

 

강당의 사람들이야 모두 제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겠지. 그래도 모두가 이것이 너무나 거대한, 완전히 새로운 혁신이라는 것은 직감했다. 갑작스럽게, 경이 혹은 공포에 압도된 침묵이 좌중에 흘렀다. 대표가 말을 이었다.

 

“물론 수많은 비평가들에게 지적받은 대로, 소설의 소재가 참신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수많은 한국 기성 작가들의 좋은 점을 모두 학습시킬 수 있었지만, 학습한 것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여전히 기계학습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잠시 김 대표가 뜸을 들였을 때 사람들이 긴장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오케스트라를 이뤘다. 화면이 넘어갔다.

 

“기성작가들의 소설 뿐만 아니라, 웹 전반에 걸쳐 있는 모든 소설들을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게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리 하여 등단하든, 등단하지 않았든 모든 작가들의 창의력이 한 군데 뭉치는 것입니다. 저희는 감히 이제 이 류서영 작가를 한국 소설 문학의 화신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지나치게 감동받은 한 사람이 박수를 치자, 우렁찬 박수 소리가 터졌다. 김대표는 프레젠테이션을 종료했다. 배경화면에 떠 있는 흰 프로그램 터미널이 하나 보였다. 터미널에는 세 문장이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읽기와 쓰기>

 

류서영 v2.0

 

새로운 소설 작성을 위해 설정을 입력하세요:]

 

“지금 이제, 여기서, 모든 기성작가와 신진작가,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모든 한국 작가들의 소설 중 가장 좋은 것만으로 만들어낸, 한국 문화의 화신이 신작을 낭독하겠습니다!”

 

김 대표는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자기 머리에 울리는 것을 들었다. 그는 스스로 이게 지금 자기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터미널에 입력했다.

 

[새로운 소설 작성을 위해 설정을 입력하세요:

 

$ create -korean --sayall]

 

김 대표는 일부러 몸을 많이 숙여서, 키보드를 치는 청량한 소리가 강당 전체에 울리도록 했다. 그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된 느낌을 받았다.

 

곧, 웹에 있는 모든 한국어 소설을 긁어서 공부한, 한국 소설 문학의 화신은 한 줄씩 자기가 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강당에 설치된 모든 스피커에서, TTS 기술이 적용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 본인의 성장과정을 간략히 기술하고,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가장 큰 사건을 기술하십시오. 저의 성장과정 중에 가장 제 역량을 증진시킨 순간을 이야기하자면 바로 대학 3학년 여름 방학, 00 기업의 제품기획과 인턴 직무를 수행중이던 때일 것입니다. 당시까지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그 지식으로 시험을 치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던 제게, 가지고 있는 지식을 가공하여 현장의 업무에 도입한다는 것은...」

 

김 대표가 마음 속에 품던 황금기 어쩌고 하는 생각은 와장창 깨졌다. 그는 마이크를 껐다.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이게 뭔가 잘못됐다 깨달은 개발 팀장이 느긋히 앉아 있다 달려 나왔다.

 

“야, 이거 왜 이래?”

 

그런 와중에도 류서영 작가는 계속 자신의 글을 낭독하고 있었다. 군중들 속에는 웃는 사람도 있었고 김 대표 만큼 당황한 사람도 있었고 이게 또 무슨 메타포 아닌가 싶어 진지하게 듣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 수록 그냥 굉장히 잘 쓴 자기소개서였다. 인사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류서영이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잘 조화해내고, 어떻게 이를 직무에 잘 적용할 수 있을 지 하나도 티끌 없는 논리로 풀어내는 것을 들으며 거의 눈물을 흘릴 뻔 했다.

 

100년에 한 편 나오기도 힘들 만한 위대한 자기소개서였다.

 

“테스트 해 본 거 아니야? 이거 왜 이래, 야.”

 

개발 팀장은 분노한 대표 앞에 서서 더듬거렸다.

 

“아... 이게, 음... 웹에서 소설이라고 간주되는 글은 전부 다 크롤링 해와서 학습하게 만들었거든요.”

 

“아니 그런데 테스트 때는 괜찮은 소설 뽑혔다며, 이게 뭐야?”

 

“그게... 웹이 너무 방대해서 한두달 걸리는 작업이 아니라, 테스트 이후에도 계속, 프레젠테이션 하는 도중에도 실시간으로 인터넷에서 한국어로 된 모든 소설을 긁어오게 시켰거든요.”

 

“근데 왜 자소서가 나와 자소서가?! 자소서는 따지고 보면 그 수필이지, 이게 왜 소설이야?”

 

대표는 소리질렀다. 그때, 강당 앞 줄에 앉아 있던 대학생 한 명이 이 난장판을 재미있게 관찰하다, 깊은 깨달음을 얻고 외쳤다.

 

“아, 한국 사람들은 취업할 때 누구나 작가가 되는구나!”

 

류서영은 프로그래밍 된 대로 웹에서 반응 좋은 소설을 긁어 와, 그걸 합쳐 쓰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한국 소설 문학의 화신에게 소설의 정의는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였다. 특히 잘 쓰인 자소서는, 수많은 소설들 중에서도 특히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좋은 평가와 감사를 받은 소설들이었다.

 

자소서 예시 한 편 보기 위해서 자기 블로그나 SNS에 시덥잖은 글을 공유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류서영은 그것이 전부 자소서라는 한 거대한 소설 문학에게 쏟아지는 예찬이라고 인식하고 학습한 것이다.

 

그렇게 10분 만에, 한국 소설 문학의 화신은 성장 과정에서부터 직무 역량을 물흐르듯 써내고, 6천 자 분량을 정확히 맞추었으며, 어느 면에서는 인간적이고 또 어느 면에서는 전문적인, 그러면서도 또 삶의 대소사들에서 얻은 여러 깨달음을 아주 알맞고 정확한 문장으로 전시하는 자기소개서를 낭독했다.

 

많은 관중들이 당황한 표정을 짓거나 크게 웃었다. 마침 시간 내서 그 자리에 참석한 취준생들 중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그 소리를 녹음하거나 받아썼다. 김 대표는 너절한 변명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대충 끝마쳤다. 작가와의 대화는 소란스럽게 끝났다. 질문 세션은 진행되지도 못했다.

 

기자들은 그 날의 소동을 그대로 언론에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사실 <읽기와 쓰기> 출판사가 해낸 기술적인 업적은 당장 해외에 나가서도 수많은 상을 쓸어올 만큼 위대한 것이긴 했다. 프레젠테이션에서 좀 추한 꼴을 보였을 뿐이지.

 

그래서 <읽기와 쓰기>는 갑작스레 너무 거대해지고 유명해져서, 발표자 김 대표는 갑작스런 부와 유명세를 아주 크게 누렸다. 류서영이 프레젠테이션 때 자소서를 써서 낭독한 일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돼서, 개발 팀장이 회사를 나갔다고 한다. 지금쯤 아마 프레젠테이션 때 썼던 노트북을 만든 회사나, 아니면 인터넷에 있는 한국어 소설을 긁을 때 썼던 검색 알고리즘을 만든 회사에 있을 것이다.

 

류서영이 낭독한 자소서를 몇천원 씩 받고 팔아먹는 사람들도 큰 재미를 봤다. 수많은 회사들의 인사과 사람들은 너무나도 뛰어난, 판에 찍어낸 듯한 자기소개서들을 읽으며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모를 상황에 놓였다. 하다 하다 안돼서 나중에는 아예 면접만 보고, AI로 사람을 거르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건 또 굉장히 나중 일이다.

 

마지막으로, 소설 쓰는 걸로 먹고 산다는 꿈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지금 자기가 있는 자리가 심연인 줄 알았는데, 굴러떨어질 더 깊은 밑바닥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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