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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퇴근하고 싶다.”

 

2018년 가을밤, 한국의 모 공대에서 전산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K씨는 탄식했다. 한 5분 동안 그는 연구실에서 탈출하는 순간, 침대 위에서 즐기는 찰나의 편안함, 잠시라도 자기 냄새가 배어 있는 공간에서 푹 쉴 때의 즐거움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러다 K씨는 자신이 퇴근한지 2시간이 흘렀고, 출근까지 8시간이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K씨는 그날 밤 잠도 못 자고 고민했다. 왜 출근하지도 않았는데, 퇴근한 후에 벌써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일까? 옆 건물에서 임상심리학 박사 과정을 거치며 처절한 고통을 받고 있는 K씨의 친구 L씨가 그 이야기를 들었으면,

 

“하도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까, 하루에서 오직 퇴근하는 몇십 분만이 즐거운 때인 거지. 그래서 그 기쁜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싶은 거고.”

 

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K씨는 전산학 전공자였다. 알고리즘에서부터 병렬 컴퓨팅까지, 확률 밀도 함수에서 정보 이론까지 온갖 끔찍하고 기괴한 적수와 10년을 맞서 싸운 그는 생각하는 구조가 이미 보통 사람들과 너무나 달랐다. 그는 어둠 속에서 천장을 보며 읊조렸다.

 

“출근하기 전에 퇴근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출근한 미래에서 퇴근하고 싶다는 감정이 과거로 거슬러온 것 아닐까?”

 

다음 날, K씨는 네 시간 밖에 잠들지 못했지만 흥분한 상태로 출근했다. 여전히 출근하자 마자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도교수 S씨에게, 퇴근하고 싶다는 감정을 통해 정보를 과거로 전송할 수 있다는 이론을 늘어놓았다. S씨는 무슨 소린가 했지만, 초광속 통신이라는 이름이 굉장히 그럴싸해 보여서 그에게 연구 계획서를 쓰게 시켰다.

 

연구 계획서는 R&D 지원단의 혼란스러운 소용돌이를 몇 개월 만에 통과했고, K씨는 드디어 자기가 설계한 실험을 실시할 수 있었다.

 

K씨는 96명의 직장인과 대학원생들을 모집했다. 직장인들 중에서도 특히 주 52시간 근무제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골랐다. 대학원생들은 딱히 그런 기준을 두지 않아도 전부 고통받는 사람들 뿐이었다. K씨는 각 피험자들에게 1번부터 96번까지 번호를 매겼다.

 

그 다음이 가장 연구비가 많이 드는 절차였다. K씨는 하루 날짜를 잡은 다음에, 피험자들의 직장에 여러 방법을 이용해서, 특정 번호의 피험자들에게 하루 휴가를 내주도록 설득했다. 병가든 연차든 연가든 공가든 특별휴가든 뭐든 간에.

 

그리고 나서 K씨는 그 전날 밤 11시에, 모든 피험자들에게 전화를 돌려서 현재 퇴근했는지, 퇴근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천운이 따른 탓에 그때까지 야근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K씨는 이제 퇴근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0번을 붙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1번을 붙였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01001000 01100101 01101100 01101100 01101111 00101100 00100000 01110111 01101111 01110010 01101100 01100100]

 

K씨는 이 이진 코드를 Ascii로 변환했다. 컴퓨터에 떠오른 글은 명확했다.

 

[Hello, world]

 

K씨는 연구실을 뛰어다니면서 소리질렀다. ‘퇴근하고 싶은 기분이 시간을 초월해 과거로 흘러간다’라는 사실을 증명해낸 것이다. 퇴근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 즉 정보가 과거로 흐른다는 것, 초광속 통신의 기본 골자인 ‘Salyojo 알고리즘’ 발명의 순간이었다.

 

그 후 5년이 지난 지금도 초광속 통신 기술은 여전히 고통받는 대학원생들과 직장인들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한국 정부에서는 초광속 통신 기술을 4차 산업 혁명 핵심 기술로 선포했다. 한 직장인 당 1비트의 정보를 약 10시간 전으로 보낼 수 있으니, 많은 정보를 보내려면 그만큼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했고, 주 52시간 근무제는 유명무실해졌다.

 

현재 초광속 통신 기술에서 가장 뒤쳐진 국가는 유럽 쪽이다. 그 쪽에서는 매일매일 야근으로 기름을 뽑히고 있는 사람이 도통 드물어서 ‘Salyojo 알고리즘’ 적용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다.

 

K씨는 해당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는데 성공했으며, 지금은 어디 공공 연구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고, K씨의 친구 L씨는 결국 박사 과정을 수료만 하고 요새 제주도에서 펜션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도교수 S씨는 초광속 통신의 발명자로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한국 과학자가 되어 지금은 미국 어디 큰 연구재단에 있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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