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모두 정화되기까지

2018.09.27 23:1409.27

처음 본 건 아니었다.

 

 

 

분명, 내 방의 벽을 통해서도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는 꿈이라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일어나기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 더군다나 잠결이라 그 의문은 감기는 눈꺼풀과 함께 스르르 사라졌고, 깬 후 얼핏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냥 악몽이라고만 여겼다.

아주 지독한, 스트레스와 피곤에 지친 후유증으로 인한, 악몽.

 

벽지가 깨끗한 곳은 피하는 것 같았다. 벽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려는 그것은 깨끗한 곳에서는 활동하지 않았다. 벽지가 낡아 찢어졌거나, 떨어지려 하는 부분들. 곰팡이가 잠식해서 거뭇한 얼룩을 걸쳐 입은 부분들. 그런 곳을 통해 기어 나오려 했다. 몸집이 얼만한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사람의 크기정도는 된다고 느낀 건, 컵 주둥이만한 부분을 찢고 불쑥 드러낸 손목을 보고 나서였다.

 

“아악!”

 

비명을 지르고 눈을 비비고 불을 켜기까지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환해졌을 땐 이미 그것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싫어하는 듯했다. 튀어나온 부분을 만져보고, 벽지를 훑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꺼림칙했지만 나는 다시 누워 잠을 청했었다.

 

그런데, 욕실에서 다시 본 것이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기 위해 물을 틀었을 때였다. 하얗고 깨끗한 타일 사이로, 작은 금이 간 부분이 있었는데 왠지 자꾸 눈길이 그곳으로 향했다. 물때와 곰팡이로 더러워진 타일 틈과, 균열. 이상한 기분에 물을 멈추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균열은 실금이라 새끼손가락만 했다.

 

툭.

 

끼익. 끼익. 끼익.

 

아아. 내 입이 서서히 벌어지며, 샤워기 호스를 쥔 손아귀에 힘이 꾹 들어갔다. 그 균열을 비집고 무언가 나오려 하고 있었다. 타일 가장자리 부스러기가 살살 떨어지며 하얀 물체가 보였다. 슥슥. 긁어내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그 하얀 물체, 아니 하얀 부분이 흐릿한 수증기 사이로 그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사람의 손톱이다. 손가락 끝이다.

 

무언가, 실금만한 균열을 통해 나오려 하고 있다.

 

아주 비현실적인 상황에 닥치면, 사람은 순간 멍해진다고 했던가. 무섭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물론 후에 곱씹을수록 오금이 저릴 정도로 흠칫 했지만, 당시는 아니었다. 나는 들고 있던 호스를 숙여, 나오려는 그것을 향해 뜨거운 물을 뿌렸다. 물줄기를 맞은 그것이 다시 들어가기를 빌면서.

 

촤악.

 

내 방에서는 분명 환해지자 모습을 감추었는데. 물줄기 사이로 꼬물거리는 손톱이 여전히 보인다. 타일의 균열이 점점 커져 가고, 손가락은 형태를 드러낸다. 털이 많지도 송장처럼 창백하지도 않았다. 그냥 사람 손가락. 분홍빛 손가락과 다를 게 없다. 검지다. 알껍데기를 찢고 나오려는 병아리처럼, 균열을 넓히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의 온도를 높였다. 아주 뜨겁게.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운 물줄기가 벽을 때리고 수증기를 엄청나게 뿜어낸다.

 

‘사라졌어.’

 

그제야, 사라졌다.

 

멍하니 서 있던 나를 움직이게 한 건, 느릿느릿 흘러드는 두려움이었다. 사시나무 떨리 듯 몸이 서리치는 바람에, 몹시도 추워져 수건을 걸치듯이 얼른 욕실을 도망치 듯 빠져나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긴, 누가 있었다고 해도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하아. 한 숨이 흘러나온다. 우두커니 서서 앞의 벽을 바라보았다. 깔끔한 벽지가 보인다. 그러나 그 끝을 쭉 따라가 보면, 어디든지 찢어진 부분과 거뭇한 부분이 있었다. 나오려는 그것은 도대체 무얼까. 다시 나타날까.

 

두려움에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젖은 머리를 뒤로 넘겨 거울을 보았다.

 

그럼에도 표정 없는 얼굴이 보인다.

 

지난 10년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표정이다.

 

 


 

 

아버지는 암탉이 울면 안 된다는 고리타분한 구식 남자였다. 어머니와 나, 동생까지 자신을 빼고는 모두 여자인 이 집안에서, 가장이자 유일한 남자인 아버지는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런 부분이 술이 들어가면 더욱 심해진 다는 거였다, 우리는 철저히 무시되고 짓밟혔다.

 

술로 인한 폭력은 일상다반사였고, 그 대상은 대부분 어머니와 동생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순종적이고 얌전한 여자였다. 일단 결혼부터가, 실수로 나를 가지게 된 후 절대로 지우지 않는다며 한사코 결심을 굳히지 않은 결과물 이었으니까. 그러나 사랑 없는 결혼은 아니 한 만 못하다는 진리는 불멸해서, 집안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어머니였지만, 아버지가 없는 시간이면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애정에 굶주린 어머니의 고육지책인 셈이었다. 나이에 비해 고운 얼굴인 어머니 곁에는 언제나 남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착하기만 한 어머니가, 잘 대해주는 남자들의 의도를 사랑이라고 오해해왔던 결과였다. 그런 사실을 아버지가 모른다는 것이 우습게 보였지만, 나는 관여하고 싶지도, 누구의 편을 들고 싶지도 않았다.

 

동생은 유일하게 우리 집안의 여자들 중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현할 줄 아는 이였다. 그녀는 활달했다. 아니, 활달 하려 했다. 동생의 방에서는 록과 메탈 음악이 한날한시 끊임없이 새어나왔다. 반항심이었을까, 지고지순 한 여성상만 아는 아버지의 눈에 그런 그녀의 모습이 달가울 리 없었다. 타이르기는커녕, 이미 손이 나가곤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동생은 울며 집을 뛰쳐나갔다.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고등학교도 겨우 다니고 있는 실정이었다. 매일 저녁 아버지가 퇴근 후 집에 들어오는 때를 맞추어, 동생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몇 달 전부터는 아무도 없는 대낮에, 남자를 데려오기까지 했다.

 

“친구야. 동급생인데, 과제 때문에.”

 

내 갑작스런 방문에 적잖이 놀란 기색으로, 그녀는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해댔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번져 있는 립스틱을 보고 나는 별 말 없이 그대로 방을 나섰다.

 

분명 훨씬 오래전부터 남자를 알았을 거야. 동생은 그런 애였다.

 

유일하게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라면, 이 집안에서는 나 밖에 없다. 특이하게도 아버지는 내게는 관대했고, 어머니도 내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다지 사고도 치지 않고 그림자처럼 조용한 내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가 그들 각각의 입장 (또는 약점 )을 관찰하는 입장에 있어 그러는 건지도 몰랐다. 이런 방관하는 입장은 나도 바라는 바였다. 사실, 그들의 입장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아버지가 동생을 때리던, 어머니가 바람이 나 다른 남자를 만나던 그건 내 알바 아니었다. 동생이 남자를 데리고 희희낙락 엉겨 붙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지저분해. 그냥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세상은 분명 더럽다.

 

그 축소판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언제부터 나는 이랬었나. 태어나서부터인가. 내게는 목표나 의지라고는 없다. 그냥 살 뿐이었다. 이것이 우울증 초기 증상이라고 구박하는 선미와 남자 친구 성식이 없으면 어쩌면 이미 이 지루한 삶과 작별했을 수도 있었다. 선미와는 중학교 때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성식과의 만남도 선미가 주선해주었고, 우리 셋은 항상 어울렸다.

 

“너는 항상 시니컬해.”

 

성식은 만날 때마다 내게 웃으라고 권했다.

 

“왜 감추고 다녀.”

 

“뭘?”

 

“예쁜 미소.”

 

“비행기 태우지 마.”

 

“그게 남자 친구가 해야 할 일 아냐? 적어도 난 내가 뭘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남자라고.”

 

우리는 같은 학원을 다녔다. 공무원 입시 준비를 하며 매일 서로 만났다. 같이 앉아 공부하고, 헤어지면 커피 점에 들어가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 자신을 아껴준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우습게도 대화의 화제는 욕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부모 잘 만나 가산점이 붙는 소위 ‘신의 아들’ 들을 욕했다. 똑같이 공부하고 노력해도, 그들은 단 1점에 목숨 거는 입시생들을 비웃으며 잘도 합격했으니까.

 

“더러운 세상이야. 그들이 뭘 잘했다는 거야? 그들의 부모에게 보상해야지, 왜 자식들에게 대물림을 하는데? 똑같이 노력해도 누구는 10점이나 플러스 되고 누구는 1점, 아니 면접에서 눈물 흘리며 떨어져야 하는데?”

 

“그들은 그게 자랑이라고 떠들지.”

 

“세상 참 웃겨.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세상은 너무 더럽다고. 이상하게 돌아간단 말야.”

 

“동감.”

 

“다 바뀌어야 하는데.”

 

선미가 커피와 도넛을 들고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커피 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선미는 벌써부터 혼자 독립해 나와 살고 있었다. 나와는 달리 그녀는 혼자 개척하고 즐길 줄을 알았다. 그것이 부러웠던 나와, 내 성격과 환경을 걱정하는 선미와는 묘한 교감이 존재했다. 술에 취해 펑펑 울던 그녀의 생일 날, 선미는 성식을 좋아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나와 성식을 이뤄지게 해준 것도 선미다.

 

“고객들아. 돈 내라. 사는 거 아니다.”

 

“고마워.”

 

“뭐가? 돈 내라니깐?”

 

성식이 웃었다. 내가 빨개진 얼굴로 당황해하는 게 귀여웠는지 그가 연실 웃어댔다.

 

“선미가 장난치는 거잖아.”

 

“나는 그런 거 잘 몰라…….”

 

전화 소리가 울렸다. 성식의 품에서 시끄러운 록 음악이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선 성식이 전화를 살짝 가리킨 뒤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자리를 벗어났다.

 

선미가 그가 일어서는 걸 보고 내 곁에 잽싸게 앉았다. 우리 집안의 기묘한 분위기를 아는 그녀는, 언제나 둘만 남으면 나를 걱정하는 얘기를 꺼냈다.

 

“나랑 같이 살자니까.”

 

“안된다구 했잖아.”

 

“너, 니네 아빠가 손찌검 아직도 하니?”

 

“......”

 

“내가 봤을 때, 너 얼른 나와야 돼. 언제 당할지 몰라.”

 

“뭘?”

 

그녀가 목소리를 줄였다.

 

“나 너희 아빠 무서워. 어떻게 자신의 자식을 그렇게 때릴 수가 있지?”

 

“난 안 때려. 맞는 건 항상 동생이야. 반항하니까.”

 

“니 동생 꽤 예쁘잖아. 혹시, 그런 걸 즐기는 변태 아냐?”

 

그녀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였다.

그녀는 행여 모를 ‘폭행’에 관한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건 니 입장이지. 내가 봤을 땐 가능성 높아. 이유 없이 때리다니. 너희 아빠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잖아. 애정이 없으면 딸도, 여자로 보인단 말야. 내가 알아.”

 

“좀 그만 해. 너무 과대망상 아냐 그거?”

 

“과대망상?”

 

선미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성식이 돌아오는 게 보였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차갑게 툭 던졌다.

 

“......아니. 지금 세상에서는 절대로 과대망상이 아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실제로 있었기도 하고......”

 

“뭐?”

 

성식이 미안하다며 자리에 앉았다. 선미가 미소 지으며 목소리 톤을 올렸다.

 

 

“세상은 썩었으니까. 더러운 세상이야. 안 그래?”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성식이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동생인 혜진은 나를 싫어했다. 원인은 하나, 나는 아버지가 때리지 않아서였다. 단 둘이 있을 때면 서로 말도 잘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서로 침묵으로 일관하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선미와 성식에겐 우습게 보일까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나는 어제 보았던 그것의 존재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동생은 같은 집에 사는 가족이니 볼 수도 있었겠다 싶어서, 먼저 말을 꺼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그녀의 굳게 잠긴 방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뭐.”

 

퀭한 눈으로 그녀가 문을 열고 고개를 배꼼 내밀었다. 할 얘기가 있다고 하자 못 마땅한 표정으로 그녀가 손사래를 친다. 평소라면 그대로 지나칠 나였지만, 여전히 서있는 내 모습에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데.”

 

거실 소파에 앉은 그녀가 툭 대꾸한다. 심호흡을 한 뒤, 나는 그녀에게 웃지 말라고 먼저 말을 꺼냈다.

 

“말해 봐.”

 

내 방과, 화장실에서 본 그것의 존재에 대해 나는 차분히 설명했다. 벽지의 지저분한 곳이나 타일에 금이 간 부분을 통해, 무엇인가 나오려 한다는 말을. 손가락을 보았고, 그것은 사람의 손가락과 흡사했으며, 절대 환각을 본 것이 아니라는 말을.

 

“미쳤네.”

 

그녀가 깔깔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충분히 보일만한 반응이다. 그러나 심각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나를 보자 웃음소리는 금방 그쳤다.

 

“야, 언니야, 잘난 아빠사람한테나 말해보지 그래. 나는 연약하고 아무 힘이 없어서 그래요.”

 

“너는 본 적 없어?”

 

“벽에서 튀어나오는 손가락을 봤냐고? 본 적이 있지. 영화에서. 아니 애니였나.”

 

그녀는 더 말을 꺼내지 않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그녀가 빙글빙글 돌렸다. 나를 조롱하는 행동이다.

 

“아! 얼굴은 봤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던 혜진이 갑자기 뒤돌아 물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내가 놀라자 그녀가 히죽 웃었다.

 

“잘생겼으면 좀 꼬셔보게.”

 

끝까지 조롱이다. 쾅 소리를 내며 그녀가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한 숨을 쉬며 벽시계를 보았다. 저녁 여덟시가 되어간다. 아홉시면 아버지가 퇴근 하는 시각이다. 술에 취해서 들어오지 않기만을 빌 뿐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어디론가 나가 들어오지를 않는다. 그렇게 남자를 많이 만나면서도 집을 나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아버지가 무서워서겠지.

 

그는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 도망자를 쳐 죽일 사람이니까.

 

삼 십분 정도 지나면 어머니가 돌아와 흔적을 지우고 아무렇지 않게 저녁 준비를 할 것이다. 그전에 먼저 샤워해야 하는데, 두려워졌다. 내 눈은 어느새 벽시계 밑의 찢어진 벽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렇게 뜬 벽지. 가운데 깔끔한 곳과는 대비되는 지저분한 곳. 벽시계가 들썩이는 것 같이 보여, 나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쳐다보니 잘못 본 것 같았다. 이러다가 노이로제 걸리는 게 아닐지 몰라. 그래도 내가 참 담담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이런 현상을 겪으면,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가.

 

‘의욕이 없거든.’

 

 

스트레스도 의욕이 있어야 받는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삶이다.

 


 

 

아버지가 늦는다. 밤 10시가 넘어서도 들어오지 않는다면 술에 취한 게 틀림없다. 이런 날은 일찍 자는 게 좋았다. 어김없이 구타였다. 어머니의 표정이 온전치 못하다. 안절부절 하는 기색이 극명히 보인다. 동생은 잠긴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씻고 자야 되는데. 샤워를 하지 않으면 찝찝한 기분에 잠이 오질 않는다.

 

현관이 벌컥 열리고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어머니가 오셨어요, 하며 아버지를 부축한다.

 

“쌍년아.”

 

아버지가 어머니를 확 밀쳤다. 어머니가 쓰러지자 갑자기 아버지가 그런 어머니의 배를 걷어찼다.

 

“악!”

 

“쌍년아.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나는 조용히 몸을 돌려 내 방으로 향했다.

관여하는 것도 싫었고, 보기에도 힘든 장면이다.

 

“거기 서.”

 

그때, 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웠다. 놀라 가만히 굳었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어머니도 놀라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걸음이 매우 위태하다. 흔들거리며 그가 내 곁으로 다가온다.

 

“네 년은 알았지? 그런데 말 안했지?”

 

대답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표정이 급격히 창백해진다.

 

“씨발. 요 며칠 의심이 가더라구. 시팔 년이. 바람을 피워? 감히?”

 

어머니가 헐레벌떡 일어나 달아나려 현관으로 뛰쳐나갔다.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아버지가 그녀를 패대기쳤다. 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어머니의 머리를 잡고 그가 뺨을 두 세대 후려쳤다.

 

“미쳤구나. 이 년이 미쳤어.”

 

“그만해요!”

 

어느 샌가 동생이 나와 소리치며 말리려 든다. 나는 어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대로 방관하는 게 내 입장이 아니었던가. 나는 이 집안에서 그런 존재 아닌가.

 

동생이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나는 바로 그녀가 찾는 게 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안 돼. 그녀를 붙들고 방으로 밀어 넣었다. 놔! 동생이 악을 바락 질렀다.

 

“찔러 죽일 거야!”

 

“그만해.”

 

“놔! 시팔! 노라고!”

 

아버지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다시 몇 번 어머니의 뺨을 후려친 뒤, 그가 어머니를 안방으로 끌고 간다. 우리가 바라보는 가운데, 그가 안방 문을 벌컥 열며 장롱 쪽으로 어머니를 밀쳤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목소리로 그가 중얼거렸다.

 

“여기서 뒤져라.”

 

“이 미친 새끼야! 그렇게 사람 패고도 성이 안 차냐!”

 

“네 엄마라는 년이 개새끼랑 희희덕거린 건 넘어가고?”

 

아버지가 혀가 꼬이는 목소리로 답한다. 동생이 욕을 해도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만 한 가득이다. 그가 장롱 문을 열며 안의 이불을 마구 끄집어낸다. 울먹이며 어머니는 두 손으로 싹싹 빌고 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반 들다시피 장롱 안에 던져버린다.

 

“용서해주세요. 좁은 곳은 무서워요!” 어머니는 폐쇄 공포증이 있었다.

 

“나오면 죽는다. 시팔 년.”

 

동생이 나를 노려본다. 뭐라도 좀 해보라는 표정이었다. 그저 고개만 숙인 채 동생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얼른 내 방에 들어서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어차피, 아침이면 나올 거잖아. 장롱을 걸어 잠그며 아버지가 발로 걷어찬다. 쿵쿵. 어머니가 안에서 문을 치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무서워요! 좁아요. 좁은 건 싫어요. 용서해주세요!”

 

“시끄러워. 내일 두고 보자.”

 

아버지가 다시 비틀거리며 욕실로 향한다. 그를 향해 달려들려는 동생을 말리며, 아버지를 조심스레 지켜보았다. 넘어질 뻔 하다가 욕실 문손잡이를 잡고 겨우 선 채, 그가 욕실 안으로 들어선다. 불도 켜지 않고 변기 뚜껑을 열어 대놓고 흉물스런 성기를 드러내며 오줌을 갈긴다. 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마구 침을 튀며 지껄인다.

 

“니네도 똑같은 종자지. 지 애미랑 똑같은 핏줄 아냐. 딸? 웃기고 있네. 어디서 다른 시팔 새끼 애새끼들 배가지고는 쳐 놔 놓고선. 지애미 닮아서 색기 철철 넘치는 게 남자 후리고 다닐 년들이야. 썅 년들.”

 

그가 손으로 탈탈 흔들어 오줌 방울을 턴다. 보란 듯이 하는 행동이다. 은근슬쩍 그가 나와 동생을 쳐다본다. 그 눈빛은…….

 

더러웠다.

선미의 말이 떠올랐다.

 

‘세상은 썩었으니까. 더러운 세상이야. 안 그래?’

 

 

동생이 갑자기 나를 밀치며 욕실로 박치고 달렸다. 내가 넘어질 정도로 거센 행동 이었다. 그녀가 욕실 문을 그대로 닫아버렸다. 손잡이를 꼭 쥐며 혜진이 소리쳤다.

 

“야! 이리 와서 이것 좀 잡고 있어봐!”

 

그녀의 불같은 행동에 정신이 없었다. 시키는 대로 욕실 손잡이를 잡자, 안에서 아버지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뭐 하는 거야!”

 

“잡고 있어. 시팔. 가둬버리자구.”

 

동생이 부엌 찬장 밑 서랍을 열었다. 공구가 모여 있는 곳이다. 망치를 하나 꺼내 든 그녀가 재빨리 욕실로 뛰어왔다. 술이 많이 취했는지 아버지는 제대로 욕실 문을 열지도 못했다.

망치가 손잡이와 벽 사이를 가로지르며 벽을 만들었다. 사이에 낀 그것은, 일종의 자물쇠가 되었다. 덜컹거리지만, 안에서는 열 도리가 없다.

 

“낼 아침까지 내버려 둬.”

 

동생이 내 손을 잡아끈다. 끌려가는 나를 향해 그녀는 쉬지 않고 화난 목소리로 떠든다.

 

“나도 막 나가지만, 이 미친 집안 더는 못 참아. 어떻게 사람을 장롱에 가둘 수가 있어. 엄마는 좁은 데 무서워하잖아! 시팔, 때리는 건 좋다 이거야. 시팔 놈. 그런데 아까 너도 들었잖아. 욕실에서 그 변태가 음흉한 눈으로 뭐라고 했는지. 무슨 행동을 했는지. 나는 잘 알아. 남자라는 새끼들. 다 똑같아. 그냥 놔뒀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지 몰라. 술이 깨면 정신 좀 차리겠지. 그리고 너 너무 나 몰라라 있는 거 아냐? 그것도 정말 맘에 안 들어.”

 

나는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던 동생이 내 손을 놓았다.

 

“사람 맞아? 언니는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아. 소름끼쳐.”

 

한 마디 툭 던진 채 그녀가 안방으로 향했다. 어머니를 꺼내려는 것 같았다. 쿵쿵거리며 울리는 장롱 문을 그녀가 기를 쓰고 열려 애를 썼다. “엄마! 열려?” 하지만, 아버지가 문을 잠근 채로 욕실에 갇혀 있는데 밖에서 열 도리가 없었다.

 

“시팔! 몰라 나도 이제! 엄마 그냥 하루만 참아!”

 

동생이 소리치며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나는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장롱에 갇힌 어머니. 화장실에 갇힌 아버지. 방에 틀어박힌 동생. 그리고 나. 벽시계가 다시 들썩였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벽시계가 들썩이며 흔들거린다. 찢어진 벽지. 그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지켜보았다. 들썩들썩. 소리가 들린다. 끼익. 끼익. 손톱으로 긁어대는 소리.

 

“이 시팔 년들 나가면……. 다 죽었어. 니네 다 죽었......”

 

욕실에서 아버지가 중얼거린다. 말꼬리가 점점 흐려지는 게 잠이 드는 것 같았다. 어머니도 더는 장롱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한 두 번이 아닌 경험이라 일치감치 포기하는 거겠지. 그래, 차라리 맞는 거보다 낫지.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것의 소리만 더 선명해질 뿐이다.

 

끼이익.

 

갑자기, 벽시계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것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동했을까. 어디로 이동했을까. 아버지가 갇힌 욕실로, 아니면 어머니가 갇힌 장롱 안으로. 적막이 흐른다. 가만히 고개를 숙여 내 손가락을 보았다.

 

비슷해.

그러고 보니, 그것의 손가락과 내 손가락은 너무나도 흡사했다.

 


 

 

새벽 여섯시도 안 되어 눈이 번쩍 뜨였다. 아버지가 잠이 깨기 전에 욕실 문을 열어야 했다. 술에 취해 기억을 못하는 게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가둬 놓았다는 건 상상하지도 못할 사람이니까.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품을 뒤져 장롱 열쇠도 찾아야 한다. 어찌됐든, 한동안은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어머니가 바람피운 것을 눈치 챘으니.

 

그런데 이상했다.

 

문에 다가서니, 작지만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똑.

 

문에 귀를 대고 자세히 들어보았다.

 

똑, 똑, 똑.

 

망치를 빼내었다. 아버지가 두드리는 소리였다. 뭔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똑, 똑, 똑.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열었다.

 

 

아버지가 문을 두드리다 말고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무표정 한 얼굴이다. 평소에도 굳게 다문 표정이지만 묘하게 다르다. 그것은 마치, 석고상 같았다. 내가 엉거주춤 자리를 비켰다. 그가 천천히 욕실 문턱을 넘었다. 걸음은 굉장히 절도 있었고, 규칙적인 움직임이었다. 서서히 고개를 돌려 벽시계를 바라본 그가 얼굴을 몇 번 문지르더니 그대로 거실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바로 잠이 들어 버린다.

 

어안이 벙벙해 그저 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내가 아버지의 품을 뒤져 장롱안의 열쇠를 꺼냈다. 어머니를 꺼내기 위해 장롱에 다가간 순간, 또 똑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똑.

 

흠칫 놀라 열쇠를 떨어뜨렸다. 다시 주워 드는 내 귓가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여전히 규칙적으로 울렸다.

 

똑, 똑, 똑.

 

손이 조금 떨렸다. 열쇠를 겨우 끼워 넣고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와 같이, 문을 두드리다가 만 자세다. 말을 걸어보려다 그냥 그만 두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어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내 얼굴을 슬쩍 바라본 그녀가 안방을 천천히 나섰다. 걸음걸이는 아버지와 판박이다. 절도 있고 규칙적인 움직임.

그녀 역시 고개를 돌려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얼굴을 몇 번 문지른다.

그대로,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버린다.

 

이게 무슨 일이야. 혼자 중얼거렸다. 동생을 깨울까도 생각했지만, 그녀도 이런 식으로 변해있을까 갑자기 두려워져 그냥 단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치 기계처럼 행동했다. 그들에게 무슨 변화가 생긴 걸까.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어제 보았던 벽시계의 흔들거림과 그것의 모습은 헛것을 본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이동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변화시켰다.

 

그것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아침 일곱 시가 되자 둘은 동시에 깨어났다. 느릿느릿 움직이며 어머니가 주방으로 향하고, 아버지는 다시 욕실로 들어섰다. 무심코 시계를 보니 그들이 행동을 시작한 시간은 정확히 일곱 시였다.

 

단 일분도 틀리지 않은 정각 일곱 시!

 

아무 말 없이 어머니가 물을 올려 찌개를 끓일 준비를 한다. 욕실에선 샤워를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방 앞에 서 그대로 지켜보는 내 가슴은 쿵쾅거리며 뛰고 있다. 흘깃 동생의 방문을 바라보고, 약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도 변했다면 일어나서 방을 나설 터였다. 아직 자고 있는 걸 보면 그녀에게는 그것이 접근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갑자기 공포가 밀려와서, 나는 동생의 방문을 급하게 두드렸다.

 

“누구야......”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동생이 안에서 말하는 게 들린다. 내가 소리쳐 대답하자, 그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졸린 눈으로 그녀가 날 쳐다보았다.

 

“왜......”

 

나는 그대로 그녀의 방으로 들어섰다. 놀라며 나를 밀치는 동생을 부여잡고, 그대로 자리에 앉혔다. 내 손을 뿌리치는 그녀에게 다짜고짜 말을 꺼냈다.

 

“아빠랑 엄마가 변했어.”

 

“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하는데,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이상하지 않아?”

 

동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빠는 술에 잔뜩 취해 있었잖아. 최소한 숙취로 인한 짜증이라도 내야 한다고. 매일 그랬잖아.”

 

“그랬지.”

 

“더군다나 엄마는 장롱에 갇혀 있었다고. 사람이 반나절을 그렇게 좁은 곳에 갇히면 고통스러웠을 거 아냐. 하다못해 다리가 저린 다던가.”

 

“그렇지.”

 

“직접 나가서 봐봐. 어떤지.”

 

동생이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잠시 둘러본 그녀의 표정도 급격히 변해갔다. 어머니는 어느 새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고, 아버지는 면도 중이었다. 둘은 이따금 벽시계를 쳐다보았는데, 그 행동이 약속한 듯 똑같았다.

 

“엄마!”

 

갑자기 동생이 어머니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며 어머니가 동생을 바라보았다.

 

“엄마, 괜찮아?”

 

 

“이제, 밥 먹을, 시간이야. 혜진아. 이십 삼 분 후에, 밥 먹자.”

 

 

뚝뚝 끊어지는 말소리. 그건 지금까지의 어머니의 말투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바라보며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당신도, 식사, 해야죠. 이십 삼 분 후에.”

 

“면도 다하고, 먹어야지. 면도는, 오 분 남았어. 스킨과 로션은, 일분. 십분은, 아침 뉴스를 보면 돼.”

 

“그렇게 하세요.”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동생의 표정이 구겨졌다. 홱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소리쳤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약이라도 먹였어?”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왜 저렇게 이상해진 거야!”

 

“내가 말했던 거, 그거. 그게 저렇게 만든 거야.”

 

“뭔 말이야 그게?”

 

내 눈은 다시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은 아래로 내려가, 벽지의 찢어진 부분으로 향한다. 그때 본 손가락. 흰 손톱. 벽에서 기어 나오던 그것.

 

그것은 확실히 존재한다.

 


 

 

 

아버지는 정확히 오전 여덟시 이십 오 분에 집을 나섰고, 어머니는 아홉시가 되자 방청소를 시작했다. 동생은 아예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이래저래 그녀도 충격적인 모양이다. 나도 오후 예정인 학원 강의 수강을 취소했다. 그리고 성식을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의지할 상대가 필요했다. 급하게 잡은 약속이지만 성식은 일단 나오겠다고 했다. 단, 일이 있어 오래는 만나지 못한다는 사과와 함께.

 

“무슨 일이야?”

 

커피 점에서 만나자마자, 그가 걱정스런 말투로 물었다. 갑자기 눈물이 치솟는다. 그를 안고 하염없이 울음을 터뜨리니, 그가 등을 토닥인다.

 

“왜 그래?”

 

나는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을 설명해주었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고개를 숙인 채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행동이 이상하게도 매우 낯설다. 성식은 약간 안절부절못해 보였다. 나를 걱정해주고 있지만, 그것이 진실 되게 보이지 않는다.

 

“네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조금 당황스럽네.”

 

“전부 사실이야.”

 

“아니, 믿어. 믿는다고.”

 

그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탁자 위에 놓인 전화기를 잡았다 놓았다 하는 행동이 불안해 보였다.

 

“왜 자꾸 전화를 만져?”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금세 화제를 바꾸려는 듯 말을 꺼낸다.

 

“너희 아버지, 어떤 사람인지는 나도 알아. 그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변했다는 게 어쩌면......”

 

“어쩌면?”

 

“네게 오히려 더 좋은 거 아냐?”

 

“뭐?”

 

“기계적인 행동을 한다며. 네게 간섭하지 않잖아, 이제는.”

 

성식이 조심스레 말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결과적으로는 방관하는 내 의도와 맞는 조합이기에.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자신의 자리와 위치만 지키는 거. 니가 바라던 거 아니야?”

 

성식이 중얼거렸다. 전화를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이 몹시 거슬린다.

 

“네게는 좋은 거잖아. 좋게 생각하라구.”

 

그가 말을 하면 항상 내 대답은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부모님이 그렇게 변화된 것은 좋다고 쳐도, 벽의 그것은 큰 문제였다. 혹시, 그도 본 것은 아닐까. 내 말을 듣고도 당황한다거나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지금 행동들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처음 말을 꺼냈으니 분명 놀라며 당황할 텐데.

 

“벽에서 나오려는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아아. 뭐......”

 

“그게 더 궁금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냐? 아니면, 내가 이상한 헛것을 본거라고 생각해? 만일 그렇다면, 나를 걱정해야 하지 않나? 왜 좋은 게 좋은 거라 넘어가는 것 같지?”

 

“뭔 소리야! 아냐, 궁금해. 하지만 지금 너희 부모님이 변한 게......”

 

갑자기 짜증이 솟는다.

 

“지금 우리 대화, 웃긴 거 알아?”

 

“뭐?”

 

“마치 그렇잖아. 뭔가가 인간들을 하나 둘 바꾼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얘기야 그렇지? 내 말이 웃기잖아. 황당해? 그러니까 니 지금 태도가 이렇지.”

 

“내 태도가 어떤데?”

 

“무시하는 것 같아. 관심 없어 해. 평소와 달라.”

 

“아니야. 그렇지 않아.”

 

“다르다고!”

 

내가 신경질을 내며 소리치자 그가 놀라 쳐다본다. 우연처럼 때맞춰 전화벨이 울렸다. 시끄러운 록 음악 소리. 전에도 들리던. 무엇에 홀렸는지, 번개같이 그의 전화기를 낚아챈다.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누르며 상대의 음성을 들었다.

 

[여보세요? 오빠? 급한 일은 끝났어?]

 

이럴 수가. 나는 그대로 전화기를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성식이 쳐다본다.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며 바로 문을 향해 나섰다. “기다려봐!” 성식이 소리치며 내 어깨를 잡는다. 있는 힘껏 뿌리치고, 그를 밀쳤다. 힘이 너무 들어가 다리가 비틀거린다. 그가 다시 내 손을 잡았다. 울상인 표정으로 그가 애원한다.

 

“시간 좀 줘. 설명할 게.”

 

“나중에. 지금은 싫어.”

 

차갑게 대답하며 다시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가 멍 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보였다.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 목소리는, 동생이었다.

 

 

 


 

 

선미에게 연락을 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오늘은 쉬는 날이기에 집에서 단 잠을 청하는지도 몰랐다. 성식과 동생의 관계에 대해 의논해야 했다. 나는 무작정 그녀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 동안 내내 생각했다. 그의 행동, 그의 말투. 변해버린 부모님과 벽에서 나오려는 그것에 대해 말했을 때, 그는 그다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동생과 얘기 했겠지. 언제부터 그녀와 만났을까? 나와 사귀게 된 후부터? 혜진이 유혹했나? 아니, 혜진과 만나기 위해 나와 사귄 건가?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에도 복잡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할 길이 없다. 얼른 선미를 만나 그를 오만가지 욕으로 씹어대고 싶었다. 나도 감정을 표출할 줄 아는 그런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와, 동생과, 이 더러운 세상을 싸잡아 욕지거리를 내뱉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선미의 자취방 입구가 보였다. 숨을 가다듬고, 나는 벨을 누르며 소리쳤다.

 

“선미야!”

 

대답이 없다.

 

“선미야!”

 

다시 벨을 누르며 내가 소리쳤다. 여전히 대답이 없다.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열려있다. 감정이 급격한 상태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무작정, 그녀의 집으로 들어섰다.

 

“나야.”

 

거실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외출했다면 잠그고 나갈 텐데.

 

“선미야, 나 왔어.”

 

그때,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마치 뭔가를 게워낼 때 내는 소리 같았다. 들리는 곳은 화장실이다. 오늘 쉬는 날이라 어제 과음으로 무리했나. 약간 걱정되는 마음으로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나야. 괜찮아? 문이 열려서 들어왔어.”

 

“우에엑.”

 

“괜찮니?”

 

 

“우에에에엑.”

 

 

 

한 마디로, 소름이 끼치는 소리였다. 나는 섬뜩 놀라 뒷걸음질 쳤다.

 

“우으으……우으으……우어어……”

 

무슨 일을 당한 건가! 덜덜 떨리는 다리로 주방으로 향했다. 칼을 찾아 서랍을 이리저리 뒤졌다. 날이 빠진 부엌칼 하나를 집어 들고, 뛰는 가슴으로 조심스레 화장실로 향했다.

 

“선미야, 무, 무슨 일이야.”

 

역시 대답이 없다.

 

“대답 좀 해봐.”

 

일단 문 바로 앞까지 다다랐지만, 섣불리 열기가 두려웠다. 그녀가 대답만 해준다면. 일단 괜찮은 걸 알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쿵.

 

깜짝 놀라 걸음을 물러섰다. 안에서 문을 두드린다.

열어달라는 행동인가?

 

쿵. 쿵. 쿵. 쿵. 쿵.

 

 

“꺄아악!”

 

갑자기 미친 듯이 울리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일부러 두드리는 것이 아니다. 마구 두드린다. 그건, 구해달라는 느낌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떨리는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잠시 갈등했지만, 곧바로 나는 문을 열어 젖혔다.

 

“아악!”

 

게워내는 소리는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확실히, 선미는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선미가 아니다. 그녀가 둘이다.

 

반바지에 티셔츠를 걸친 선미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선미가 있다. 그리고 그 게워내는 소리는 벌거벗은 선미가 내는 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입은 거대한 크기로 벌어져 다른 선미를 집어 삼키는 중이었으니까.

 

“아아......”

 

목소리가 죽어간다. 비명도 가라앉는다. 두드리는 소리는 먹히는 선미가 구원을 애걸하며 발버둥 치며 문을 찬 소리였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나는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구역질을 계속 내뱉는 선미가, 달아나려는 다른 선미를 힘겹게 붙잡고 뱃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옷이 아니라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이빨이 딱딱거리며 부딪힌다. 달아나야 했지만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어보다 그녀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우에에에에에엑, 우에에에에에엑”

 

“아아, 제발!”

 

사람의 입이 그렇게 크게 벌어지는 건 처음 보았다. 삼키는 선미도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그녀가 그녀를 삼키고 있었다. 이미 가슴 언저리까지 먹힌 반바지 차림의 선미가 몸을 부르르 떤다. 팔과 다리가 미친 광대가 조종하는 마리오네트 마냥 이리저리 휘둘린다. 뱀이 먹이를 삼키 듯, 꾸역꾸역 삼킨다. 시선을 피해보려 고개를 돌리는데 입을 벌리고 있는 벌거벗은 선미의 다리 부분이 눈에 확 들어온다.

 

“벽…….”

 

그랬다. 그녀의 다리 끝은 고목 뿌리마냥 벽에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그것.”

 

깨진 타일. 균열. 금이 간 부분. 실금이 아닌, 사람 크기만 한 부분이 커다랗게 떨어져 나가 있다. 벽에서 튀어나온 그것. 선미의 모습을 한 그것이 선미 자신을 먹고 있는 것이다. 슬리퍼를 신은 발이 버둥거린다. 어느새 그것은, 그녀의 몸을 거의 먹어치웠다. 주저앉은 채로 나는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구할 도리도 없었고, 일단 나부터 살아야 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뜬 채, 선미의 모습을 한 그것이 나를 쳐다본다.

 

“보지 마…….”

 

내 입에서 중얼거림이 멋대로 튀어나온다. 그녀의 배가 불룩해진다. 외계인이 나오던 공포 영화의 배가 불러오던 장면이 떠오른다. 결국 선미를, 끝까지 다 먹어치운 그것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아, 아.”

 

마이크 테스트를 하듯, 그녀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나는, 아아, 나는.”

 

그것의 커다랗게 벌어졌던 입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 한다. 이윽고 선미의 모습과 완전히 같아져버렸다. 스르륵, 옷이 생성된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진다.

 

“이십. 아니, 이십, 일.”

 

딱딱한 목소리가 욕실 안에 울린다.

 

“이십, 일. 이십일.”

 

무엇이? 그러나 궁금한 걸 떠나, 내 몸은 이미 현관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밖으로 뛰쳐나가며 발목을 접질려 한참을 굴렀다. 고통이 밀려왔지만 이 무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돌아보기도 싫었다. 그것이 그녀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이제 그녀 행세를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그것이 먹어 치운 것이다.

 

절뚝이며 택시를 잡기 위해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노란 택시가 서서히 정차한다. 무작정 올라탄 내가 행선지를 말하자 기사가 고개를 살짝 돌려 답한다.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이 말투는. 다시 그대로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택시는 별 일 아니라는 듯 그대로 지나간다.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한적한 거리. 바람만 매섭게 차다. 추위도 몸을 공격한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어떡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려 해도, 그것들이 무서웠다. 무언가 변화되고 있었다.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걸어서 한 시간을 걸려 겨우 집에 도착했다. 오후 여섯시 경이라 아직 아버지의 모습을 한 그것은 퇴근 하지 않았을 터였다. 조심스레 현관을 열고 안의 기척을 살폈다. 동생은? 어머니, 아니 어머니 모습의 그것은? 일단은 조용하다. 살짝 발을 들어 안으로 들어섰다. 숨이 턱 막히며 긴장감이 머리끝까지 파고든다. 이 집에 동화되어 살았던 나로서는 어디 다른 곳으로 도망칠 방법도, 기운도 없었다. 결국 내 종착점은 이 집이었다.

 

소파위에서 잠이 든 어머니가 보였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동생의 방 쪽으로 이동해보니, 안에서 무슨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음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 같다. 그 누군가를 깜박 잊고 있었다. 나쁜 년. 나쁜 새끼. 갑자기 질투와 분노가 뒤섞여 폭발한다. 두려움과, 질투, 분노와, 배신감. 인간의 본성은 절대로 조절할 수 없다.

 

문을 그대로 벌컥 열어 젖혔다. 동생이 놀라며 쳐다본다. 전화를 든 채 그녀가 쳐다본다. 내가 그대로 전화를 뺏어들었다.

 

[뭐야? 무슨 소리야?]

 

역시 성식의 목소리다.

 

“이 나쁜 새끼.”

 

대답이 없다. 동생이 다시 전화를 뺏어든다. 그대로 끄고, 그녀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뭐야?”

 

“나쁜 년.”

 

“누가? 내가? 웃기시네. 이 사람이 나한테 온 거야. 나는 가만히 있었어. 빨리 나가.”

 

“거짓말 하지 마.”

 

혜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위에서 내리까는 그녀의 눈을 보니 갑자기 주눅이 들어버린다.

 

“넌 네 자신이 대단한 인물인 냥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아니올 시다야. 너 같은 사람 참 재미없는 거 누구나 다 알아. 성식 오빠가 미칠 것 같다고 하소연 하던 거 다 진실이야. 너는, 살아있는 느낌이 아니야. 그냥 걸어 다니고 움직이는 인형이나 다를 바 없다고. 감정 표현이라는 거 알아? 그런 걸 알기나 해? 분노, 기쁨. 그런 거 없어? 못 느껴? 항상 방관하기만 했지. 언니 같은 불감증을 어느 누가 좋아하겠어?”

 

“그만해. 뭐가 잘났다고......”

 

말소리가 줄어든다. 왜 나는, 항상, 이런 식인가.

 

“그 사람, 정말 남자다운 사람이야. 원래는. 본능에 충실해. 자신의 감정 확실히 표현하는 거 좋아한다고. 너한테 맞추려고 숨겨왔대. 눈치도 없어. 너는 그런 것도 몰라? 알아서 챙겨줘야 할 것 아냐. 그래, 숨김없이 다 얘기하지. 나 오빠랑 잤어. 아주 좋았어. 날아갈 것 같았어. 내 타입이야. 너는 그런 거 모르지? 아니, 아직 처녀지?”

 

그녀의 모습이 점점 거대해져 간다. 그녀의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내 모습은 하염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어차피, 그래 어차피 나는 이런 식의 삶을 살 뿐이다.

 

나조차도 내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했는데, 그들은 어땠을까.

 

“몇 번이고 했는지 기억도 안나. 내 말 알아들어? 얼마나 많이 했는지 횟수도 기억 안 난다고!”

 

억지로 꾹 누르고 있는 내 감정은, 검푸른 바다처럼 깊숙한 저 편으로 가라앉아, 수면과 점점 멀어져갔다. 그녀는 그 동안의 억하심정을 풀어 헤치듯 내게 닥달하고 있었다. 더러운 말을 서슴없이 입 밖으로 내뱉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걸어 나갔다. 동생이 뒤를 따라오며 계속 욕을 해댔다. 제발. 나를 붙잡던 이성의 미약한 끈이 뚝 끊어져 버린 느낌이다. 더러운 년 놈들. 더러운 세상. 요즘 계속 떠올리는 이 더러운 이라는 단어가 왜 이리 나를 압박할까.

 

“어디 가? 왜, 내가 싫어? 싫겠지. 그거 알아? 나는 니가 더 싫어. 일 년 먼저 태어난 언니랍시고 아빠 엄마한테 인정받는 게 졸라 싫었어. 그래, 어쩌면 내가 너한테 복수하는 걸지도 모르겠네. 맞네 맞아. 아주 칼을 꽂는 확실한 복수네.”

 

“더러운 년.”

 

내 중얼거림을 듣고, 그녀의 안색이 붉어졌다.

 

“뭐라고?”

 

“더러워. 너도 그도 다 더러워. 더러운 년.”

 

그녀가 내 머리채를 잡았다. 내 몸을 질질 끌고 간다. 씩씩거리며 동생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욕실 앞에 선 동생이 나를 안으로 밀치며, 끔찍한 소리를 내 뱉었다.

 

“언니도 여기 들어가서 바뀌어 나오라고. 그때까지 가둬둘테니까.”

 

“뭐?”

 

그제야, 선미가 변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안 돼. 나는 황급히 밖으로 나서려 몸을 들이밀었다. 동생이 다시 밀치며 문을 확 닫는다. 철컥. 잠겼다. 아아, 아아!

 

“안 돼!!”

 

갑자기 소리치는 내 반응에 흥분 했는지 동생도 소리쳐 답한다.

 

“어차피 똑같겠지! 아빠나 엄마처럼 언니도 기계같이 변해버려도. 언니는 원래부터 그랬잖아.”

 

“문 열어!”

 

쿵쿵, 문을 두드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주위를 살폈다. 흐릿한 빛이 내부를 비춘다. 타일이 번쩍거리며 나를 반겼다. 거울도, 세면대도, 변기도. 일단은 전부 벽에 붙어 있는 것들.

 

내 시선은 그것들의 더럽고, 깨진 부분을 살핀다. 움직임이나 기척을 확인하려 했다. 아직은 조용하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다가온다.

 

“문 열라고!”

 

대답이 없다. 동생은 들어가 버렸는지 모른다.

 

주먹이 으스러지도록 문을 치고 또 쳐봤다. 아픔이 아련했지만 아랑곳없이 나는 문이 부서져라 쳐본다. 계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 움직인 것 같기도 해. 소름이 돋아온다. 머리끝이 쭈뼛 섰다.

 

“혜진아!”

 

동생의 이름을 외치며 문을 계속 두드렸다. 문 앞이 붉어지며 피가 묻는다. 손가락 마디가 까져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손잡이를 미친 듯이 돌려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열어줘 제발.

 

끼익. 끼익.

 

이 소리. 이 소리는.

 

끼익. 끼익. 끼익.

 

몸이 굳는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변기 위쪽이 들썩거린다. 아니, 금세 세면대 기둥 부분이 투득 소리를 낸다. 아니, 이번에는 갈라진 타일 균열 사이로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아아.”

 

말문이 막혔다. 목소리가 잠겼다. 목에 핏대가 서도, 내지르지 못한다.

 

그것이 오고 있다.

 

두 손으로 문을 있는 힘껏 때렸다. 쿵쿵쿵. 입은 끔뻑일 뿐,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살려 줘. 살려 줘. 내지르려 해보아도 나오는 건 틀어 막힌 호흡뿐이다. 주먹을 쥐고 치니 아파와 손을 전부 폈다. 손톱으로 미친년마냥 문을 긁어댔다. 손톱이 부러진다. 손가락 끝에서도 흐르는 핏물들. 눈에서 흐르는 눈물들. 입술을 깨물어 가를 타고 흐르는 핏물들. 아아악! 속으로, 내 마음이 비명을 지르고 발광을 한다.

 

제발. 고개를 돌리기가 두려웠다. 스윽. 스윽. 끼익. 투득. 여기저기 이상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것이 활동한다. 나를 먹어치우고, 나를 대신하기 위해서.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아니 내 주위에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모른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나는 그대로 무너져 주저앉았다. 여전히 내 손은 문을 긁고 있다. 아픔도 이제는 부질없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문을 두드린다.

 

투득.

 

타일이 하나 툭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소리가 난 쪽을 향했다. 손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손가락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윽고 팔목이, 어깨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그것의 팔. 우습게도, 손등과 손가락 끝은 피투성이였다. 지금의 내 손처럼. 나는 그저 멍하니 쳐다보았다. 힘이 없어 움직일 기운이 없었다.

 

투득.

 

타일이 두 세 개 더 떨어져 나간다. 그것이, 서서히 몸을 드러낸다. 그건 바로 완벽한 나의 모습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의 모습. 무표정한 얼굴. 길게 풀어 내린 생머리. 그것의 머리가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것의 눈이 나를 발견하고 끔벅거린다. 타일이 더 떨어져 나간다. 목표를 찾았으니, 그 움직임이 더 활발해지는 것이다.

 

“아, 으, 으아아악!”

 

순간, 목이 트이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힘이 다시 들어온다. 이건 본능이겠지. 죽지 않으려는 본능. 그리고 공포. “아아악!” 문을 마구 차며 내가 소리를 질렀다.

 

“혜진아! 혜진아! 문 열어! 살려 줘! 제발! 문 열어 줘!!”

 

끼익. 끼익.

 

그것이 반 이상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조금 있으면 완전히 벽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다. 목이 아파 침을 뱉었다. 피가 섞여 있다.

 

“혜진아! 혜진아! 제발! 문 열어! 내가 잘 못했어!!”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그것이 바닥에 엎드린다. 서서 걷는 것에 익숙지 않은 모양이다. 나를 먹어야 만, 가능한건지도 모른다. 천천히 기어 온다.

 

그것이, 나를 먹기 위해, 천천히 기어 내 곁으로 다가온다.

 

“살려 줘요!!”

 

손발을 모두 사용해 문을 부수려 발버둥 쳤다. 부서질 리가 없었다. 문은 온통 피투성이 상태가 되어 버렸다. 서둘러 샤워 호스를 들었다. 그것이 손을 들어 내 다리를 잡으려 하는 걸 겨우 피하고, 나는 온도를 최대로 올려 물을 틀었다.

 

촤악.

 

뜨거운 물줄기가 그것을 덮쳤다.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피부가 벌겋게 익어가고 있어도 아랑곳 않는다. 수증기가 금세 사방에 넘치고, 거울은 뿌옇게 흐려져 몸을 숨겼다. 안개가 자욱이 깔린 것처럼, 점점 변해간다.

 

“제발 문을 열어! 제발! 혜진아!”

 

그것의 발도 완전히 벽에서 떨어져 나왔다.

 

전부 다 나와 버렸다. 이제 나를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아악! 혜진아! 엄마! 아빠!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고, 마구 발버둥을 치고, 울음을 터트려도, 그것이 다가오는 걸 막을 길이 없다. 천천히 느릿느릿 그것이 기어 온다.

 

다시 기운이 쭉 빠졌다.

 

다리를 쭉 편 채 털썩 주저앉았다. 앉은 내 눈과, 기어 오는 그것의 눈이 마주쳤다. 묘한 공감이 흐른다. 동질감 같은 그런 것 일수도 있다. 이것은 내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선미도 그렇고, 조금씩 침식하는 것이다. 나와 내 주위, 그리고.…….

 

그것이 내 다리를 잡았다. 강한 힘에 이끌려 내 몸이 그것 쪽으로 바짝 당겨졌다.

 

바닥에 드러누운 채 나는 그대로 쭉 끌려갔다.

 

이제 잠시 후에 나는 그것에게 먹힐 것이다. 나는 자포자기 했다.

 

 

차라리, 그래 차라리, 이 살기 싫은 더러운 이곳을 떠나는 방법으로, 그냥 포기하고 먹히는 게 좋을지도 몰라.

 


 

 

똑, 똑, 똑.

 

욕실 문이 벌컥 열렸다. 동생이 묘한 눈으로 나를 살피는 게 보였다.

 

“야.”

 

대답 하지 않고 나는 그대로 욕실을 나왔다. 내 몸은 규칙적인 흔들림과 절도 있게 끊어지는 몸짓을 반복했다. 어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는 게 보였다. 다가가,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도와드릴 건, 없나요.”

 

“괜찮아.”

 

“그럼, 저는, 청소라도 좀, 하고 있을게요.”

 

“그렇게, 하렴.”

 

동생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내 뒤를 쫓았다. 정말 내가 변해서 돌아오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는 그녀 따위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 모든 감정은 사라졌다. 그녀에게 느껴지던 질투와 분노는 소멸되었고, 더는 희로애락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대신 누군가 계속 규칙과 명령을 주입한다. 머리 한 구석에서 끊임없이 지시가 내려진다.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계산 된 움직임을 함으로 지금 내 위치를 지켜간다. 내 의식은 멀쩡하고, 기억도 똑같다. 변한 건 감정의 소멸이요, 무심(無心)이다.

 

방관자와 관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변화는 아주 좋은 거였다.

 

현관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온다. 구두를 가지런히 벗고, 옷을 세 번 턴 뒤 천천히 거실로 들어선다. 나와 어머니가 똑같은 몸짓으로 그에게 인사한다. “다녀오셨어요.” “응. 십분만, 기다려. 씻고 나올 게.” “그러세요. 그동안 , 식사준비, 하고 있을게요.” “알았어.” 동생이 질린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쳐다본다. 누구보다 감정 표현이 격렬하던 그 녀가 보기에, 이런 행동들은 섬뜩하기 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곧, 그녀도 우리처럼 변화 할 것이다.

 

세상은 더러워졌고, 쓰레기 더미가 되어버렸다. 친아버지가 자식을 강간하고 폭행하는 세상, 동생이 언니의 남자를 뺏는 세상, 가정을 버리고 밥 먹듯이 남자를 만나는 세상, 본능에 충실한 세상. 본성에 충실한 세상. 세상은 더럽다.

 

고로, 정화 작용이 필요했다. 가득 찬 쓰레기 더미는 치워져야 한다.

 

정화 작용 후에 변화 될 인간들과, 원래의 내 상태는 흡사한 부분이 있었기에, 나는 그것의 존재를 다른 이 들보다 먼저 눈치 챌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감정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위치만 고수하며 살아가게 된다. 무엇이 이렇게 만드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절대로 거역할 수 없다는 것만 알고 있다.

 

우리 모두가 식탁에 둘러 앉아 수저를 든다. 내리고, 올리고. 똑같다. 동생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원래 그녀는 다 같이 식사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가족 모두가 다 같이 모여 식사할 시간이.

 

시계를 쳐다보았다. 머리 구석에서 다시 지시가 내려진다. 십오 분 샤워. 수저를 내려놓고 욕실로 향한다. 정확히 십오 분 샤워를 해야 한다. 손잡이를 열고 들어서려는 나를, 어느새 나타난 동생이 턱 붙잡고 울부짖는다.

 

 

“야! 언니! 미안해! 정말 변해버리면 어떡해! 나는 어떡하라고!”

 

 

내가 답했다.

 

“걱정하지 마.”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시에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나와 같이, 우리 셋이, 동시에 그녀에게 말했다.

 

 

 

[이십오 퍼센트 완료.]

 

모두 정화되기까지, 정확히 칠십오 퍼센트의 인간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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