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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감정을 감정하기

2018.09.27 02:2509.27

 


내가 이예슬을 인터뷰한 장소는 마포구 대흥동의 언덕길에 있는 작은 카페였다. 갈색 목재로 마감된 인테리어를 보고 기다리고 있으니,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로봇팔이 네 개 달린 커다란 휠체어에 편안하게 앉은 채로 앞을 보고 있었다. 예슬의 몸에는 천이 둘둘 감겨 있었다. 휠체어는 굉장히 푹신하게 보였고, 그 위에는 360도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다.
 자율주행 휠체어였다. 내가 팔을 흔들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휠체어는 나를 감지하고 내 앞으로 스르륵 미끄러져왔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몸을 아예 움직일 수 없으니, 내가 그녀를 바라본 탓이다. 그때 알람 소리가 나고, 휠체어에 달린 스피커에서 합성된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누리경제 김동연입니다."
 나는 일단 일어나서 인사를 꾸벅 했다가, 그녀가 악수를 하거나 할 형편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냥 주저앉아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다시 스피커가 울렸다. 나는 노트북을 잠시 흘겨보았다. 워드프로세서에 나와 예슬이 한 말이 하나하나 글자로 타이핑되고 있었다. 진짜 인공지능 만세다. 몇 년 전에는 퇴근하고 녹취록 몇 시간씩 치고 했는데.
 "메일은 잘 읽었어요. 제가 이런 길을 택한 사연이 궁금하시다고."
 "아, 네. 취재 허가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게, 예슬 씨가 언론 상대로 인터뷰하시는 게 처음이라서, 제 요청을 받아주신 게 정말 감사하고 또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휠체어의 스피커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른 언론에서는 다 스스로 뇌를 잘라낸 여자라면서, 엄청 자극적인 뉴스만 뽑더라고요. 그래도 제 생애랑 의도를 알아주려고 하는 기자 분은 처음이라."
 기사 할당량도 할당량이지만, 나는 정말 궁금했다. 왜 이 여자가 쌩쌩 돌아가고 있는 전자 뇌를 절개해냈는지. 왜 눈을 뜨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스스로 택했는지. 왜 정신을 몸 안에 가뒀는지.
 예슬은 스피커로 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헛기침 소리를 냈다. 저 헛기침 소리는 예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낸 소리일까, 아니면 의례적인 것일까, 것도 아니면 음성 합성기에 프로그래밍된 것일까 살짝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영화관에서 걸어나왔다. 햇빛, 햇빛이 내 머리를 따갑게 때렸다. 어지러웠다. 지독하게 어지러웠다. 나는 앞쪽으로 넘어지면서 무릎을 꿇었다가, 쓰러졌다. 이게 뭐지, 왜 이러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옆에 있던 애인이 다급하게 어딘가로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일순간 깜깜해졌다.
 다채롭고 우아하고 기이하고 희미한 이미지들이 순간 순간 나를 스쳐지나갔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맡고 느꼈다. 건물이 나한테 돌진하고, 지금까지 들었던 수많은 음악들이 머릿속에서 요동쳤다. 그 수많은 감각의 파도 속에서 감각들이 서로 자리를 바꾸기도 했다. 나는 소리를 맡았고 냄새를 보았다. 처음 소리를 맡았을 때 나는 내가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수많은 기억과 느낌들이 머릿속을 터질 것 같이 채웠다가, 이제 엄청나게 어지러웠다. 색채의 소용돌이를 마주보는 시야가 좁았다가 넓어졌다, 이리 돌았다 저리 돌았다 했다. 머리를 짚고 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머리를 짚더라? 머리를 짚는다가 뭐지? 주저앉는게 뭐지? 근데 지금 이게 무슨 꿈이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어지럽지도, 감각이 혼란스럽지도 않았다. 그냥 눈이 뜨였다. 평일에 출근하려고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것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주말에, 잠을 10시간, 15시간씩 자다가 더이상 억지로라도 잠을 잘 수가 없을 때처럼, 뭘 하든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할 때처럼. 나는 눈을 떴다. 하얀 천장이 보였다. 아, 병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쓰러진 거지.
 푹신한 매트리스가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편안했다. 옆에 사람들이 있다는 인기척을 받았다.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리려고 했다. 그러면서 쓰러진 내 옆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꽤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위에 눌렸나? 나를 감싸는 이불, 바람, 창을 뚫고 들어오는 도시의 소음, 인기척, 모든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몸에 힘을 주는 법을 까먹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세상이 깜깜해졌다가, 다시 하얀 천장이 드러났다. 그러고 보니 눈을 옆으로 돌릴 수도 없었다. 눈꺼풀 빼고는 아무 것도 움직이지가 않았다. 
 궁금했다. 왜 몸이 움직이지 않을까? 이것도 꿈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꿈 같지가 않았다. 모든 감각들은 날 서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니 내 심장이 규칙적으로 쿵 쿵 뛰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천장을 보니, 천장에 있는 이런저런 패턴들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시각은 또렷했다.
 가위에 눌리면 엄청 무섭고 끔찍하고 귀신도 보고 그런 것 아닌가. 그런데 그냥 되게 평온했다. 머릿속에서는 이게 분명히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어떤 근육에도 힘을 줄 수 없는 상태인데, 왜 안 무섭지?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한 여자의 얼굴이 내 시야를 꽉 채웠다. 어, 뭔가 소리를 지르고 싶었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깼네, 이틀 만이야."
 나는 눈을 계속 깜박였다. 내 애인 소정이었다. 나는 그녀의 예쁜 얼굴을 그냥 계속 들여다보았다. 사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이틀 만이면 오늘 월요일인가? 그럼 지금 일하고 있어야 할텐데, 나 때문에 연가 낸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말을 이었다.
 "뇌경색 때문에 쓰러진 거래. 부모님은 방금 전에 가셨어. 의사 선생님 불러야겠다."
 그러고는 띠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문이 벌컥 열렸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많이도 걸어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릴 수가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고 답답해야 하는데, 그래도 또 별로 이상하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소정이가 의사한테 내가 방금 깼다고 말하자, 의사는 소정이를 내보내고 난 다음 내 눈에 불빛을 비추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혹시 제가 하는 말에 답이 예스면 눈을 꾹 길게 감아주시고, 노면 눈을 두 번 빠르게 감았다 떠 주시겠어요?"
 의사는 내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눈을 2초정도 감았다 떴다.
 "아 네. 깨어나셨네요. 쓰러지고 옆에 있던 이 분이 바로 119 부르셔서, 의식도 아주 또렷하신 것 같고. 차도가 좋겠네요. 수술은 부모님 동의 받아서 했고요."
 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지금 내가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데, 무슨 말 하는 거지? 차도가 좋긴 뭐가 좋아. 뇌경색이라고? 그럼 뇌가 망가져서 못 움직이는거야? 생각이 생각을 부르고, 답답하고 우울한 생각이 머리를 지나갔다. 가슴 속이 무거워져야 하는데... 뇌경색이라잖아. 딱 봐도 그래서 못 움직이는 거 같은데...
 그런데, 그 묵직하고 우울한 불안이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머리 한 쪽에서 자꾸 울렸다. 침대가 편안했다. 그때 의사가 약간 미소를 띄고는,
 "지금 몸이 안 움직이시죠? 걱정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여기 환자분한테 BCI 씌워드려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간호사 한 명이 내 목을 들어서 받쳤다. 또 다른 간호사 하나가 내 왼쪽으로 와서는 커다란 알루미늄 뚜껑 같은 걸 씌웠다. 약간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머리에 씌운 그 철모가 휠체어에 장착된 음성 합성기랑 같은 거라고요?"
 휠체어의 스피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또렷하게 흘러나왔다.
 "네, 뭐, 같다기 보다는 비슷한 기계인 거죠. 지금은 원래 제 목소리인데, 그때는 뭐 이렇게 비싼 게 아니라서 엄청 크고 소리도 딱딱했어요. 2000년대 초의 보이스웨어를 쓰는 것 같았다니까요."
 "그러니까 신경의 발화를 읽어서 원하는 말을 만들어내는 기본 원리는 같다는 거죠?"
 "네, 이게 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이제 뚜껑 같은 거 안 써도 되고 목소리도 제 목소리로 나오고 해요. 옛날에는 잡음도 엄청나게 심했는데..."
 나는 내가 정말 궁금한 질문을 하려고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난감했다. 그녀는 표정도 없었고, 자그마한 몸짓도 없었다. 저 목소리도 합성되어서 나오는 목소리인데, 어떻게 눈치를 봐야 하지?    그녀는 휠체어에 완전히 정지한 채로 앉아 있었다. 잠시 말을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때,
 "뭐 묻고 싶으신 거 있으시죠?"
 하고 그녀가 내게 먼저 말을 던졌다.
 "어... 어, 네. 어떻게..."
 내가 얼이 빠져서 이렇게 말하니까, 다시 휠체어에 달린 스피커에서 웃음소리가 흘렀다.
 "에이 뭐, 하루이틀 이렇게 있는게 아닌데. 제가 이렇게 있으니, 제 눈치 보기 힘든 거 알아요.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하세요."
 나는 그녀의 세심함에 감탄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보통 뇌경색이라고 하면, 깨어나면 아무 정신도 없을 것 같은데, 그때 상황을 너무 상세하게 기억하셔서."
 "그러니까요. 그래서 저 담당하신 분이 제 케이스로 논문을 좋은 데 올리셨다고 하더라고요."

 


의사는 내 뇌의 앞부분과 정수리 부분 사이의 혈관이 막혔다고 말했다. 운동을 담당하는 부분이 다 타올랐다고. 다른 부분은 정상적이어서 이런저런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 나는 너무 궁금한게 많고 말하고 싶은게 많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 내 머리에 달린 뚜껑에서 지지직거리고 굵고 두꺼운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럼, 움직이지, 평생, 못하는, 내가, 아니, 근데, 이건, 목소리가, 왜, 남자 목소리야, 아니, 목소리, 아니, 그럼, 밥도, 내 손으로, 못 먹고, 걷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눈만, 뜨고, 감을 수, 있으면, 내가, 뭘, 할 수, 아니, 근데, 이건, 왜, 목소리가, 무슨 테너로, 씨발, 썅, 개좆같은..."
 내 생각이 복잡해지니까 머리에 달린 뚜껑에서 계속해서 욕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잠시만, 잠시만 진정해 보세요. 빠르게 적응하시네."
 옆에서 노트북 키보드를 따닥따닥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의사 노릇 하려면 컴퓨터도 잘 해야 하나?
 "존나, 웃기네, 요즘, 의사질, 하려면, 컴퓨터도, 잘, 해야, 하나, 4차, 산업혁명, 좆같네..."
 어, 이거 생각보다 내 머릿속에 있는 걸 너무 잘 표현하는데. 키보드를 치는 소리가 더 긴박해졌다. 의사가 평온하게 말했다.
 "아, 처음에는 다 이래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그리고 이거 고치시는 분은 의사 분이 아니라 스캔 기술자 분이시거든요."
 뚜껑에서 흐르는 목소리가 조금씩 높은 톤으로 바뀌었다. 나는 어떻게든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뚜껑에서는 잠시 애국가 가사가 흐르다가, 팬더나 고양이, 펭귄이 귀엽다 같은 소리도 나왔다.
 "이게 반응 역치가 너무 낮은 거 같은데, 제가..."
 의사가 그 말을 하고 또 무슨 조정을 가하자 뚜껑에서 흘러나오던 목소리가 멈췄다.
 "이제 어떤 말하고 싶은 텍스트를 머릿속에 그린 다음에, 어릴 때 국어책 읽었던 것처럼 읽는 상상을 해 보세요."
 나는 책을 읽는 상상을 죽어라 하기 시작했다. 여자 목소리긴 한데 내 목소리와는 분명히 다른 소리가 뚜껑에서 조금씩 흘러나왔다. 목소리가 느리고 약해서, 지나치게 물 절약을 강조하는 사람이 관장인 공공기관의 화장실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그럼, 저는 평생, 움직일 수 없는, 건가요?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는 건가요?"
 "아, 잘 하시네. 아유, 다 방법이 있죠."
 이제야 갑자기 뇌경색이라는 병명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교 때 돌연사한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외할아버지는 등산 중에 자기 뇌혈관에 배신당했고, 다시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나는 그냥 20대라 살아남은 건가? 이건 다 유전병인 건가?
 "20년 전에, 외할아버지가, 뇌경색으로, 돌아가셨는데, 방법이 있다니요? 아니, 지금, 몸에, 힘이 전혀, 안 들어 가거든요? 그럼 재활 같은 걸, 거쳐야 하는 건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요새 사이버네틱스 기술이 발전해서, 운동 기능 쪽은 전자 두뇌로 완벽하게 대체가 가능합니다. 아직 고등 인지 쪽은 기술적... 그리고 윤리적 문제가 있는데, 환자 분 케이스에서는 죽은 세포 부분만 걷어내서 바꾸면 원래대로, 아니 훨씬 더 잘 움직일 수 있으실 거에요."
 "사이버네틱스, 라고요?"
 "예예, 그냥 요즘 인공 허파 인공 간 이식 많이 하잖아요. 뇌 쪽도 이제 이식이 잘 되는 부분이 꽤 많거든요."
 나는 왠지 섬뜩한 기분이 들려고 했다. 너무나 무서운 질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무감정했던 것이 놀라울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나는 그 무서운 질문을 조심스레 던져 봤다.
 "그거, 보험, 처리, 되는, 거죠?"
 "아, 예. 지금 옛날 말로 하면 감금증후군 증상 보이시는 거거든요. 급여 지원되는 희귀난치성 질환입니다."
 "후우... 어, 이거, 한숨까지, 쉬어지네."
 "그 쪽에 집중을 많이 하셨나 보네요. 그럼 지금 신호 다 괜찮으시니까, 보호자 분이랑 쉬고 계시면 서류 준비해 오겠습니다."
 당연하지 이 사람아. 20대에 뇌졸중 와서 침대에 누워있기만 하면 기둥뿌리 다 뽑게 생겼는데, 한숨이 안 나오게 생겼나. 머리에 닿는 생경한 금속의 감각에 익숙해질 즈음에 내 옆에 서있던 사람들이 또 우르르 빠져나갔다. 누군가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의사가 뭐래...?"
 소정의 목소리였다. 내 애인은 내 시야의 초점이 맺히지 않는 곳에 서 있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나, 지금, 눈도, 못, 돌리거든. 너, 얼굴, 나한테, 보여줄래?"
 그녀는 내 뚜껑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적인 목소리에 살짝 놀란 것 같았다. 그래도 소정은 곧 침대에 팔을 기댔다. 침대 한 쪽에 쏠리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녀가 나를 바라다보았다. 익숙하지만 항상 새로운 그 얼굴이 나를 다시 한 번 바라본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사로잡았던 그녀의 얼굴에 나는 가까스로 초점을 맞춘다. 그녀를 살핀다. 가슴이 언제나처럼...
 언제나처럼 가슴이 뛰지 않았다. 어, 벌써 식었나. 사실 만난 지 몇 개월 안 돼서, 지금 막 꿀이 쏟아질 때인데. 내가 굉장히 빠르게 설레고 설렘을 오래 지속하는 편인데 왜 이러지.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기 위해 나는 일부러 머릿속에서 온갖 귀여운 동물들 생각을 하면서, 소정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녀는 똑같이 예뻤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인간의 외모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기준을 전부 넉넉히 통과한 모습이었다. 그 넉넉한 아름다움은 고등학교 때에 팽팽 놀면서 전교 1등을 쓸어가던 특출난 수재가 보이는 재능과 같이 여유롭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왠지 이탈리아에 여행갔을 때 본 대리석 조각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같았다. 왜 생생한 열정이 느껴지지 않을까? 왜 만지고 싶지 않지?
 "괜찮아?"
 소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응, 괜찮아. 하, 하, 하."
 "야, 그 웃음 좀 무섭다."
 "그러게, 처음이라, 나도, 다시, 나아지는, 수, 있대, 다친 부분을, 전자 뇌로, 바꾼대. 옛날보다, 더, 잘, 움직일 수, 있을 지도, 모른대."
 "다행이다... 그럼 수술하고 너도 나랑 같이 필라테스 다니자."
 그녀는 이불 안에 파묻혀 있던 내 오른손을 꽉 잡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유독 따뜻한 그녀의 체온이 찌르르 내 팔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당황스러웠고, 그래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런데, 있잖아."
 "응?"
 "운동쪽, 신경만, 망가졌다고, 했는데, 나, 있잖아."
 소정은 내 오른손을 잡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방의 쨍한 빛 몇 줄기가 그녀의 눈망울에서 통통 뛰었다. 음성 합성기에서 이제 슬슬 익숙해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원래, 이렇게, 못 움직이면, 되게, 무서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어, 나 지금, 너무, 이상할 정도로, 평온하다. 왜 그렇지? 나, 아무 기분이, 안 느껴져, 그래서, 그게 무서운데, 또 무서운 게, 가슴이 막, 가라앉고, 이러거나, 하지 않아. 그게, 너무, 그게 너무 나는, 지금,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근데 그게 또, 느껴지지 않고, 그래야 하는 것 같은데, 나, 운동 신경만 망가진 거, 맞아? 감정이, 없어진 거 아냐? 진짜, 왜, 나는..."
 내 머리에 쓴 뚜껑은 파도처럼 쏟아지는 내 생각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다. 아무 채널도 없는 라디오 주파수를 잡은 마냥 합성기가 지지직 거리는 소리를 냈다. 소정은 잠시 내 손을 놓았다가, 내 뺨에 입을 맞췄다. 따뜻했다.
 "괜찮아질거야. 그건 좀 있다가 의사 선생님 오면 물어보자."
 


"그러니까 흔히 우리 뇌가 이성과 감정을 관장한다고들 말하잖아요."
 "그렇죠."
 내가 추임새를 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근데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뇌에서 운동을 관장하는 부분이 망가지면서, 자율신경계도 무너졌다고요."
 "예, 예? 잠시만요."
 나는 급히 노트북에다 자율신경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했다. '자율신경은 호흡, 순환, 대사, 체온, 소화, 분비, 생식 등 생명 활동의 기본이 되는 기능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뭔가 고등학교 때 들어본 것 같기도 했는데, 그러자니 또 그 어두컴컴한 속을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아니 뭐, 누가 뭔가를 알고 있다면 초짜한테도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왜 이렇게 어려운 설명들 뿐이야.
 "히히, 고등학교 때 배우는 건 맞는데, 다들 잊어먹곤 하죠. 저도 그랬어요."
 그녀는 장난스러운 웃음소리를 내고는 설명을 이었다.
 "기자님은 심장을 마음대로 뛰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맥박 수를 늘리거나 할 수 있을까요?"
 "어, 아니요, 그게 됐으면 부정맥으로 군대를 안 갔겠죠."
 이게 무슨 소리지.
 "자율신경계가 그런,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걸 조절한다고 하거든요. 막 더울 때 땀 나고, 무서울 때 심장 뛰고, 뭐 먹을 때 침 흐르고, 먹으면 소화하고, 이런 건 우리가 의식적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그렇게 되는 거지. 그런데 운동 피질이 무너지면 그 쪽도 문제가 생긴데요."
 그 이야기를 하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어떤 질문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 나는 당장 떠오르는 의문 하나를 던졌다.
 "저, 그런데, 지금 얘기하시는 거 보면 감정이 사라진 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거 같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자율신경계가 감정이랑 관련이 있는 건가요?"
 내가 그 말을 끝마치자마자 예슬은,
 "바로 그거죠."
 하고 손가락을 튕기는 딱 소리를 냈다. 그녀는 휠체어를 테이블 쪽으로 살짝 당겼다. 저 음성 합성기는 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직접 커스터마이징한 건가? 그녀는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거 아시잖아요. 무서우면 심장이 뛰고, 슬프면 눈물이 나고, 무서우면 소름이 돋고. 이런 거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거 아니잖아요. 아 뭐 눈물 연기 잘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근데 그게 감정이랑 엄청 연결되어있는 거 같지 않아요? 아무리 무서운 영화를 봐도 심장이 안 뛰면 공포를 느끼는 걸까요? 짝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가슴을 억누르는 답답한 느낌이 느껴지지 않으면 그게 사랑일까요?"
 예슬은 질문을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바라는 답은 단 하나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안 그렇겠죠?"
 "그러니까요.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감정은 진짜 머리만으로 느끼는게 아니라고요."
 예슬의 휠체어에 달린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갈수록 빨라졌다. 그녀는 나름대로 극적인 설명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보통, 우리가 뭐 무서운 걸 보면, 그 무서운 걸 보면 무섭기 때문에 소름이 돋고 가슴이 철렁 주저앉는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그 아름다운 얼굴을 보기 때문에 심장이 뛴다고,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라는 거에요."
 "그렇다면...?"
 "그러니까 신체의 반응이 먼저라는 거죠. 뇌가 무섭고 설렌다고 생각해서 심장이 뛰는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 놓이면 먼저 심장이 뛰고, 그걸 사람의 뇌가 해석하는 거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뭐 좀 어색하긴 해도 의인화를 하면, '어, 내 심장이 뛰네, 왜 뛰지? 아, 내 앞에 내 애인이 있구나. 그래서 설레는 거구나.' 하고 설레이는 감정을 느끼는 거죠. 막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좀 무서운 영화를 보거나 놀이기구 타라고 말하잖아요? 심장이 쿵쿵 뒤는 걸 옆에 있는 사람 때문이라고 착각해서라니까요."
 나는 흥미가 생겨서 몸을 바짝 앞으로 당겼다.
 "그래서 자율신경계가 고장나면..."
 "그쵸,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갑자기 감정이 날아간 게, 다른 게 아니라 운동피질이 타버리면서 자율신경계까지 고장나서 생긴 문제라고요. 그것도 운동 피질을 전자 두뇌로 바꾸면 다 낫는다고. 저 같은 증상 겪는 사람이 옛날부터 조금씩 있었다더라고요."
 나는 예슬이 자신의 전자 두뇌를 완전히 제거한 상태라는 걸 다시 떠올렸다.
 "그럼, 지금 감정이..."
 "아, 근데 제가 안드로이드 얘기까지 했었나요?"
 예슬은 말을 돌렸다. 갑자기 웬 안드로이드 이야기야?
 


 나는 전신 마취를 하지 않고, 머리 쪽의 통증만 차단한 상태에서 전자뇌 이식 수술을 받았다. 주치의는 전자 뇌의 동기화 과정에서 내가 피드백을 꼭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술 도중에 움직여야 한다고 온 몸을 단단히 고정했는데, 손가락 끝도 마음대로 못 움직이는 내 꼴이 약간 우스웠다. 
 두개골을 딸 때 고통은 없었지만, 소름 끼치는 진동이 느껴졌다. 실제로 소름이 끼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눈이 천으로 덮여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소리는 들렸다. 뚜 뚜 뚜 하면서 내 심장 박동을 알리는 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가끔 서로 알 수 없는 말을 주고 받았다. 가끔 수술 중인 의사 한 명이,
 "다 잘 진행되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면서 말을 걸기도 했다. 뭐 나는 대답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별로 걱정이 되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아무 것도 내 심장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으니까. 음성 합성기도 떼 놓은 상태라 그냥 지루하기만 했다. 
 한 1시간쯤 지루한 시간이 지났을까, 한 의사가 말을 걸었다.
 "지금 전자두뇌가 환자 분 다치신 쪽에 설치됐거든요. 오른손에 힘 한 번 줘 보세요."
 나는. 오른손을. 한 번. 꽉 쥐었다. 몸에 힘을 주는 느낌, 근육을 수축하고 이완하는 벌써 생경해진 감각이 온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나는 입을 벌렸다.
 "웁, 에뷀, 유블 브렐렙?!"
  이상한 소리밖에 낼 수 없었지만, 음성 합성기의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듣다가 진짜 내 목소리를 들으니, 기뻤다. 정말 기뻤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 됐다. 신호도 다 제대로 나오네. 며칠만 있으시면 예전처럼 말도 잘 하고 훨씬 다 좋아지실 겁니다."
 나는 근처의 사람들이 조그맣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들었다. 나는 심장이 뛰고 몸에 힘이 돌아오는, 항상 나와 함께 했지만 잠시 떠나 있었던 이 생경한 감각이 너무나 놀라워서 속박되지 않은 몸에다 자꾸 힘을 주었다 뺐다. 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의사들 모두를 붙잡고 입이라도 맞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술은 정말로 성공적이었다. 재활은 재활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빠르게 진전되었다. 수술이 끝나고 하루 뒤부터 나는 기계체조라도 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머리를 절개하는 수술을 했으니 당분간은 누워 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소정이 휴학계를 내고 계속 내 옆에 함께 있어 주었기 때문에 심심할 일은 없었다.
 소정의 얼굴과 그 맵시를 바라볼 때마다 느껴지는 흐뭇하고 두근거리는 기쁨이 다시 돌아온 것이 제일 기뻤다. 대학에서 학부생들이 여는 심리학 학회에서 만난 그녀는 심리학 전반과 심리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재밌어 했다. 그녀와 함께 내 증상과 바깥 이야기를 하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나는 지금까지 뇌가 모든 정신적 활동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심장이 안 뛰고 소름이 안 돋고 땀이 안 나면 감정도 비어버린다는 게 진짜 신기하다."
 소정은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게 정말 인상적이었는지 틈만 나면 이 얘기를 하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이런저런 대답을 하다가,
 "야, 그래도, 수술 전에도 네가 엄청 예쁘다는 건 확실하게 느껴지더라."
 라고 말하면 그녀의 반응이 제일 좋다는 것을 알아냈다.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잠시 내 속에 갇혀 있고, 아무 것도 못하고, 소정이랑 이야기하면서 보낸 몇 주 동안 또 2047년의 세상은 뭐가 그리 바쁜지 급히도 바뀌어 있었다. 내가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서울의 마지막 남은 그린벨트 몇 뙤기에다 아파트를 지어서 집값을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은데, 이제 사람들은 최신형 안드로이드에 대한 강력한 규제 없이는 고용 개혁도 없다는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었다.
 내가 쓰러진 새에 발표된 최신형 안드로이드는 공장에서 1시간 30분이면 조립할 수 있는 하나의 기계 인간이었다. 독창성보다는 생산성의 혁신에 주목하는 한국의 한 기업에서, 산업의 여러 분야에 써먹을 수 있는 안드로이드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팡팡 찍어내는 방법을 마침내 찾아낸 것이었다. 45분이면 인간의 신체와 겉보기에는 전혀 차이가 없는 신체가 만들어지고, 또 남은 45분이면 용도에 맞게 적합한 지식을 입력해 넣을 수 있다고 했다. 원래는 하나당 6개월은 걸리는 공정이었다.
 가장 낙관적인 사람이 보아도 이 안드로이드들은 취업 시장에 떨어진 거대한 운석이었다. 대기업 회사원의 1년치 연봉만 지불하면, 한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전혀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으며, 또 인간적인 융통성을 가진 최신형 안드로이드를 사무실이나 작업장에 배치할 수 있었다. 성실하게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죄다 공룡의 운명을 따라갈 판국이었다.
 안드로이드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과 위기감은 실로 놀라워서, 그동안 있던 사회의 수많은 갈등을 단번에 봉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자신이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든,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든, 그 어떤 사상을 지닌 사람들이든 광장에 나와 집회에 참여했다. 가짜 인간들에게 그 어떤 권리도 줄 수 없으며, 그 어떤 일자리도 줄 수 없다고. 나도 꽤 공감하는 바였다.
 소정은 생각이 좀 달랐다.
 "사실 뭐 사람이랑 똑같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대신 안에 컴퓨터 하나 박혀 있는 거면, 그것도 사람인 거지. 안드로이드들한테도 당연히 인권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들은 사람이라는 칭호에 너무 큰 무게감을 두는 것 같아."
 안드로이드 반대 시위 생중계 현장을 TV로 함께 보며 소정은 그렇게 한 마디 했다. 나한테는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 말이었다.
 "아니지 그래도, 쟤들 머리 속에 든 게 우리 사고랑 감정과 같은 거라고 확신할 수 없잖아. 애초에 그런걸 알 수도 없는 거지만. 그리고 확실히, 감정은 진짜 아니야. 쟤들은 분명히 감정이 없잖아. 감정이 없으면 싸이코패스잖아. 싸이코패스는 우리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미워하잖아. 똑같은 거 아닌가? 자연스러운 거야 이건."
 "애초에 그런걸 알 수 없으니까, 그런 거에 차이를 두면 안되는 거 아니야? 사람들끼리 느끼는 감정이 같을까? 내가 느끼는 슬픔과 네가 느끼는 슬픔이 서로 완전히 똑같은 경험일까? 모르잖아. 그래도 어쨌든 겉으로 보면 비슷하거나 거의 같으니까, 같은 셈 치고 서로 인간이라 공유하는 거 아니야?"
 인정하기 싫지만, 소정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그녀가 한심할 정도로 이상주의적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 더 오만하게도, 그녀가 나보다 아직 시장을 모르는 한창 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글쎄, 그래도 나는 나랑 더 비슷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 안드로이드는 공장에서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잖아. 다 큰 채로, 똑같은 지식을 가지고. 하지만 실업자 한 명 한 명들은 전부 다 자기 역사가 있고, 뭐라도 돼보려고 노력했고 눈물 흘렸던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을 동정하는 게 뭐가 잘못된 건지 나는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저 안드로이드들도 일단 만들어지고 난 다음부터 자기 자신만의 경험과 역사를 쌓아가는 건 우리와 똑같아."
 나는 가벼운 한숨을 쉬고 소정의 얼굴을 바라봤다.
 "우리 이 얘기는 그만하자."
 그 날은 그렇게 넘어갔지만, 그 이야기는 절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러겠는가. 서로 의견이 배치되는 것을 서로 확인했는데 이야기를 잠시 중단해봤자, 그 균열을 가리지도 못하는 일이다. 나는 심지어 '반안드로이드 시민협의회' 같은 단체의 명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걸.
 어쨌든 정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에 안드로이드 산업에는 굉장히 빡빡한 규제가 가해졌다. 1시간 30분만에 생산라인에서 뽑혀나온 안드로이드들은 심각한 혐오업무나 위험업무에만 배치되었다. 특히 통일 사업이 가속화되면서 비무장지대의 수많은 지뢰와 불발탄을 제거하는 데에 안드로이드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가끔씩 소정은 메신저로 안드로이드들의 끔찍한 노동 환경을 내게 전송하곤 했다. 지뢰를 밟거나 불발탄이 폭발해서, 산산조각이 난 안드로이드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불쾌한 모습이었지만, 안타깝지는 않았다. 저러려고 만든 존재들 아닌가.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르면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증오하는 것이 다르면 사랑하기 어렵다.
 소정은 안드로이드들의 권리 운동에 진지하게 나서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모습이 못마땅했다.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이 아닌 기계들이 하수처리장에서 쓰레기를 건져내다 오수에 휩쓸려 작동 정지해도, 그것에 무슨 비극이 있나.
 나는 당장 퇴원하고, 학교에 다니면서 다시 일자리를 찾을 것이 무서웠다. 동기들 중에는 이미 당당히 큰 기업에 합격해 경력을 쌓아나가는 아이들이 있었다. 난 그들에게 뒤쳐져 평생 말도 안되는 월급을 받으며, 조롱 당하고 모멸을 곱씹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안드로이드들은 내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좁은 문을 더 좁게 만드는 악한 존재들이었다. 소정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기존의 안드로이드들을 폐기하는 운동 따위에도 참여하곤 했다. 내 행동, 인터넷 북마크, 그리고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소정도 대충 눈치를 챘던 것 같았지만.
 관계의 균열은 더이상 봉합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고, 우리의 관계는 오직 관성으로만 굴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소정을 수저 잘 물고 태어나서 고결한 척 할 수 있는 위선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퇴원할 때가 다가왔다.
 퇴원 수속을 밟고 나서 병원 출입구를 나설 때 소정이 내 눈에 들어왔다. 키가 크고 볼륨을 준 단발을 한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우리 관계가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것을 내심 직감했다. 나는 먼저 인사했다.
 "안녕."
 "응, 안녕."
 소정은 달려와서 날 꼭 안고, 나를 풀어준 다음에, 나를 내려다보며 내 양 팔뚝을 꼭 잡았다. 나는 그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퇴원 축하해. 건강해져서 다행이다."
 나는 그녀의 그 아름다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에 대한 마음은 이미 식어있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대로였다. 문득 나는 쓰러지고 나서 처음 그녀의 얼굴을 보았을 때가 생각났다. 참 예쁘다, 그런데 왜 가슴이 뛰지 않을까 하고 궁금했던 그 순간이.
 "미안해. 내가 널 이해하지 못해서..."
 내가 그렇게 말하자 소정이 빙그레 웃었다. 나는 갑자기 안드로이드고 뭐고 그 큰 웃음과 아름다운 눈웃음을 내가 포기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입원한 내내 날 찾아오고, 퇴원할 때까지 까먹지 않고 나를 찾아온 것이 갑자기 마음 속에 계속 스쳤다. 부모님보다 훨씬 더 자주 온 사람한테 내가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 그래도 네가 아플 때 옆에서 도와줄 수 있었던 게 다행이야. 그때는 참 좋았는걸."
 "그럼..."
 나는 문득 새로운 희망을 얘기해보려고 했지만, 그녀가 말을 끊었다.
 "나, 호주 쪽에서 안드로이드 권리 운동하는 사람들 단체에 참여하려고."
 "호주에 간다고?"
 "응, 내일."
 "그럼..."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나는 소정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소정이 잠시 담담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하나만 잊지 않아줬으면 좋겠어."
 "그게... 뭔데?"
 나는 펑펑 울면서 귀를 쫑긋이 세웠다. 그녀가 조곤조곤 말했다.
 "네가 지금 나 때문에 울고 하는 것도 전자 두뇌 덕에 느끼는 거잖아. 그거 안드로이드들이 쓰는 거랑 같은 거야."

 


"그러니까 소정이가 저한테 거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심어주고 떠난 셈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좀 걔도 나쁘게 군 것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뭐 둘 다 어렸을 때니까."
 나는 이예슬의 표정을 유심하게 관찰했다. 그녀의 표정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완전히 똑같은, 위화감이 드는 무표정이었다. 나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지 않나 자세히 쳐다보았는데, 최소한의 감정의 기미도 없었다. 좀 무서웠다.
 "감정적인 동요를 많이 받으셨나 보네요."
 "네, 제가 미워하고, 없어졌으면 하는 것들이, 저랑 같은 식으로 감정을 느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걸 어떻게 해결하신 건지..."
 "일단 죽자사자 술을 마셨죠. 한 2주 동안 매일 술만 마신 것 같은데... 근데 그때 딱 느껴지더라고요."
 "느껴진 것이?"
 딱히 새로운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그녀는 이야기를 충실히 잘 전개하는 좋은 화자였다. 어쩌면 입으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말을 합성하기 때문에 말에 혼란이 없는 걸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면서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뇌 수술을 받기 전이랑 술을 마셨을 때 느껴지는 게 다르더라고요. 일단 잘 안 취하고, 취해도 막 걸음이 오락가락하거나 그런 것도 없고. 훨씬 빠르게 깨고. 행동도 빠릿빠릿하고 날렵하게 변하고."
 "그게 운동 피질을 대체한 전자 두뇌 때문이었을까요?"
 "네, 이게 동기화가 된 이후로는 몸을 움직이는 게 훨씬 더 잘 되더라고요. 막 근력이 늘어나고 그런 건 당연히 아닌데, 반사신경이 엄청 늘어나고, 재빨라지고, 막 세밀한 행동도 아주 쉽게 할 수 있고 그랬어요."
 그럴 수 있다. 나는 전자 두뇌를 장착한 안드로이드들이 사실 신체적으로도 이미 인간 몇 배의 능력을 낼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안드로이드들에 대한 이미지를 고려해서 제한선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산업부 기자들에게서 도는 찌라시에 불과하지만, 전자두뇌를 직접 이식받은 그녀가 이야기하니 설득력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럴 만하다. 인간 몸이란 게 수억 년 진화의 산물이라지만 아무래도 최적화와는 거리가 좀 멀지 않나. 막 진화가 쌓이고 쌓이다 보니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겨서, 막 음식 먹다가 기도가 막혀서 질식사하는 불쌍한 사람도 생기고 하니까. 생각해보면 전자 두뇌는 한도까지 최적화해낸 첨단 공학의 산물이고. 전자 두뇌가 생체 두뇌보다 재빠르고 더 뛰어난 건 당연한 일 같았다.
 "그래서 아무래도 술만 마시는 건 너무 건강하지 않다 싶어서 이런 저런 운동도 했죠. 소정이가 같이 하자고 했던 필라테스도 했고, PT도 받아보고, 요가도 해 보고, 발레도, 킥복싱도 해 봤어요. 뭘 해도 다 잘 되더라고요. 격투기도 꽤 많이 했는데, 막 몇 달 만에 진짜 인간 흉기가 됐다니까요. 지금 제 모습을 보시면 확실히 좀 연상이 안 되긴 하겠네요."
 "어, 아, 네, 어. 흠."
 나는 이예슬이 한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때 그녀의 스피커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히히, 이렇게 사람들이 당황하는 거 보면 재미있더라고요. 악취미긴 한데."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나는 경직된 목을 좀 매만졌다.
 "여튼, 그래서 스트레스는 계속 받고, 학교로 돌아가기까지는 좀 시간이 남았고 해서 하루에 10시간 씩 운동하고 했던 때였죠.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하루에 열 시간을 운동만 하면서 보내나 싶어요. 트레이너도 그렇게 하면 몸에 안 좋다고 막 만류하는데, 그냥 너무 움직이고 싶더라고요. 근데 그때가... 그때가 2047년 10월이네요. 그때, 아시죠?"
 내가 짬이 몇 년인 기자인데 모를 리가 있나, 그때 나도 많이 굴렀지. 이제야 나는 고개를 마음껏 끄덕일 수 있었다.
 "당연하죠."

 


비무장지대에서 안드로이드들이 반란을 벌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한참 스쿼트를 치고 있었다. 내 몸에 최대한 집중했기 때문에, TV에서 흐르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 때 한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더니 말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예슬 씨, 저것 봐요."
 그는 TV를 가리키고 있었다. 푸른 숲이 보였다. 그러다 카메라 쪽으로 뭔가 날아왔다. 굉음이 들렸다.
 "저게 뭔데요?"
 "안드로이드들이 비무장지대에서 무기를 만들어서 반란을 일으켰다잖아."
 "반란이라고요?"
 "네, 저거 헬기가 미사일 맞고 떨어지는 거잖아요."
 "뭐라구요?"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휴대폰을 켰다. 인터넷을 돌아다녀보니 난리였다. 이미 한반도의 중부에서 안드로이드들이 이곳저곳으로 진군하고 있다고 했다. 국방부에서는 다급히 안드로이드들을 막으려고 근처 부대들을 급파했지만, 현충원 입주자들만 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드로이드들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했다.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요구였지만, 그들의 무력은 막강했다. 그들은 먹지도, 자지도 않았고 고통도 몰랐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총알 한두발을 맞는다고 전투불능 상태에 빠지지도 않았다. 전자두뇌 코어만 파괴되지 않으면, 몸의 한 부분이 파괴되어도 모듈만 교환하면 되었다.
 통일 전에야 비무장지대 쪽에 엄청난 수의 군부대가 있었지만, 이 지역이 통일 후에 후방이 되어버렸다는 것도 문제였다. 만약 통일하지 않았다면 초기에 진화가 되었을텐데. 지금 말해봐야 아무 의미 없는 일이지만.
 서울은 비무장지대로부터 60km 떨어져 있다. 안드로이드들은 지치지 않고 인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뛰어왔다고 했다. 경기도 북부의 도시들은 이미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했다고도 했다. 도시의 수많은 나쁘고 더러운 것들을 다른 지방으로 아웃소싱하던 서울 시민들은 그 거리적 이점 탓에 안드로이드 군단의 불벼락에 놓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민방위 훈련의 흐릿한 기억을 되살려 황급히 지하철로 도망쳤다.
 어디에 있었는지, 처음 보는 사이렌들이 많이 울렸다. 빨간 사이렌을 단 트럭들이 오고가면서 대피소로 들어가 있으라는 말을 했다. 나는 밖의 혼란스러운 광경을 보면서 출입구로 천천히 걸어나와, 바깥 광경을 보았다.
 거리에 나와 보니 많은 사람들이 대피소로 빠르게 도망치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에 큰 공포가 어려 있었다. 가끔 저 먼데에서 폭음이 들려오기도 했다. 야, 진짜 근현대사에서 남한과 북한도 그렇게 막 해도 전면전은 안 했는데 이렇게 이상한 데서 내전이 터지는구나. 그나저나 비무장지대에 있던 안드로이드들이 무기는 대체 어디서 구한 걸까? 나는 계단에 걸터앉았다.
 "뭐해요 아가씨? 얼른 대피소로 가요!"
 어떤 사람이 뛰어가면서 나한테 그런 말을 던졌다. 오지랖이람. 아가씨라는 호칭을 들으니 왠지 오기가 차올랐다. 이깟 폭죽놀이... 소정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있겠지. 거기서 안드로이드들 때문에 전쟁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후회하겠지?
 나는 사람들의 급류를 반대로 헤쳐나갔다. 나는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전투를 보고 싶었다. 적당히 높은 아파트로 가면 잘 보이지 않을까? 가만,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 도봉구를 개발해서 청년들이 모이는 허브 어쩌고로 만든다 하면서 지었던, 높이와 공실률이 모두 무지하게 높은 빌딩이 생각났다.
 나는 중간에 군인들이 나를 제지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일부러 대로를 통하지 않고 웬만하면 작은 도로 쪽으로, 가능하면 골목을 택해서 뛰었다. 시간이 꽤 걸렸다. 가끔 정말로 재수없는 군인들이 탄 트럭이 북쪽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도 앱에 있는 내 위치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북쪽에서 나는 폭음이 조금씩 더 커져서 전율이 흘렀다.
 저녁 시간이 되자 도봉구로 건너올 수 있었다. 높이와 공실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그 빌딩을 스마트폰으로 찾을 필요도 없었다. 쌍문역 쯤에 서자, 도봉구청 옆에 있다는 그 거대하고 속이 비어있는 건물이 아주 잘 보였다. 나는 군인들이 없는지 확인한 다음에 대로를 엿보았다. 사람들이 다 지하철로 숨어들었는지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후방에 있는 군인들은 죄다 전쟁터로 끌려간 것 같았다. 하긴 최전방은 개마고원에 있으니까. 도로에는 사람들이 놓고 간 차들도 많았다. 머리 위로 전투기가 휭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소정과 헤어지고 난 뒤에 처음으로, 오랜만에 살아있는 기분을 느꼈다. 운동으로 잊으려고 노력했던 공허함이 어느새 저 멀리 사라졌다. 강소정 이 바보 년아. 어떻게 공장에서 찍어낸 것들이랑 우리랑 같냐. 안드로이드들이 총탄에 파괴돼서, 그 생명 없는 신체가 산산조각 나는 꼴이 보고 싶었다. 같은 전자 두뇌를 쓴다고 해도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보고 싶었다.
 구청의 옆의 옆에 있는 커다란 건물을 보면서 나는 숨을 돌렸다. 하도 격하게 뛰어서 기침을 하니 입에서 피맛이 났다. 그래도 운동으로 단련하지 않았으면 평소엔 꿈도 못 꿀 정도로 오래, 빠르게 달렸다. 나는 지친 채로 잠시 바닥에 앉았다가, 그 웃긴 청년 허브 빌딩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빌딩의 대문은 열려 있었다.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도봉구 재개발, 청년 허브 어쩌고 하면서 지어진 이 건물은 과도하게 공허한 면이 있었다. 이번엔 폭음이 가까운 데서 크게 들렸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작정 빌딩의 가장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꼭대기까지 나를 날랐다. 옥상 문은 열려 있었다.
 옥상으로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국군이 안드로이드 군인들과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의정부의 남쪽, 한 10km 밖에서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뭐 내가 군대를 간 것도 아니고 군사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참 빠르다 싶었다. 아무래도 비무장지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던 기계 노예들이 갑자기 총구를 우리한테 들이밀리라고 생각은 못했겠지. 옛날 SF 영화에서나 나오던 이야기 아닌가.
 놀랍지도 않은 일이지만, 국방부가 딴 건 몰라도 서울만은 반드시 지키기로 한 것 같았다. 서울 쪽은,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이 뭘 파놓고, 저것도 세워놓고 해놓은 것 같았다. 이렇게 멀리서 보아도 하늘과 지상이 울렸다. 건물이 무너질까 싶어 살짝 걱정이 될 정도였다. 나는 옥상 난간에 기대서 여러 색깔과 색깔이 맞부딪히는 꼴을 바라보았다. 맥주 하나 가져오면 좋았을걸.
 꽝꽝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가끔 저 먼 곳에 있는 건물의 일부분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도 맨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안드로이드들은 관람자들을 배려한 것인지 무엇인지 고맙게도 쓰는 무기들을 전부 회색 빛이 도는 하얀 색으로 칠해 놓았다. 멀리서 보니 전투는 국군의 여러 색과 안드로이드의 회색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희미한 모습으로만 보였다.
 그래도 국군이 이기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일단 안드로이드의 수가 너무 적을 테니까. 나는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았다. 뉴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는 3만 기 정도 밖에 없다고 했다. 몇몇 기자들이 전선에 직접 나가서 직접 그 꼴을 찍고 있는 듯 했다. 아니 근데 3만 기라고? 안드로이드를 그렇게 많이 찍어 냈나?
 나는 옥상에서 괜히 "한국군 화이팅! 한국군 이겨라! 안드로이드 개새끼들 다 죽여버려!"라고 허공에 소리치기도 했다. 싸움판의 경계에 있던 국군은 그걸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놀음도 한 20분쯤 지나자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무섭지는 않았다. 굉장히 먼 거리였으니까. 망원경을 들고 왔으면 안드로이드들 박살나는 꼴을 볼 수 있었을걸 하는 후회도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아, 오늘은 안드로이드 반란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나중에 구경가게 미리 망원경을 준비해 둬야지"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겠어. 그래서 나는 그냥 휴대폰으로 라디오 뉴스를 틀은 채로 옥상 난간에 기댔다.
 그때 나는 꽤 멀지만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에서, 한 사람이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니 저게 뭐하는 사람이지? 지금 한창 북쪽 10km 밖에서 군사 작전이 진행 중인데 거리를 걸어다니네? 물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뭐하는 사람일까? 나는 북쪽의 재미없는 광경에 신경을 끄고 그 사람을 지켜보았다. 위에서 보니 그 사람은 어디를 부여잡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은 도로 위에 주저앉았다.
 나는 급히 옥상에서 내려와 엘리베이터에 탔다.

 


"여기서부턴 국가 기밀이에요. 편집하시든가, 적당히 꾸며 내시든가. 흥미가 있으면 더 조사해 보시든가. 원하는 대로 하세요."
 "예?"
 나는 당황했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아니 애초에 내전이 났는데 도망치지도않고 그걸 구경하고 있었다고? 이거 뭐 하는 사람이야?
 "기밀이라구요. 특급 기밀일 걸요 아마. 영화에서는 이런거 내도 막 사람들이 보호해주고 하던데 그게 그렇게 잘 될 지는 모르겠네요."
 "어, 그럼 예슬 씨도 기밀을 말씀하시면 그게 죄가..."
 "저야 상관 없죠. 이미 저는 제 속에 갇혀 있는데 무슨 감옥이 더 무섭겠어요."
 나는 그냥 기인 한 명 취재해서 적당히 인터뷰 기사 하나 낼 생각이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세요."
 뭐 사실 별 대단한 거 같지는 않지만 자기 딴에는 대단하다고 여기는 거겠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다는 착각을 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별 거 아닌 정보도 크게 특별하다고 착각하지 않는가.
 


 55층이나 되는 빌딩에는 평상시에 하루 열 다섯 명 정도의 사람을 운반했을 고속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빠른 속도로 나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귀가 약간 멍해졌다. 나는 출입구로 나온 다음에 거리에 침을 한 번 뱉고, 휴대폰을 보면서 그 사람이 주저앉았던 거리가 어디쯤일 지 짐작했다. 나는 그곳으로 조금씩 빠르게 걸었다.
 전쟁통에 빌딩 옥상으로 올라가서 관람이나 하는 나도 다른 사람이 보면 어처구니 없는 바보지만, 대로에서 대놓고 걸어다니는 사람은 또 뭘까. 길가다 무슨 파편이나 맞으려면 어떡하려고. 빌딩을 나와서 북쪽으로 한 걸음씩 걷는데, 뭔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아무도 없어요-?!"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 번 외쳤다.
 "여기요-!"
 "빨리 와요-! 다쳤어요-!"
 목소리에 반가운 기색이 진하게 묻어났다. 다쳤으면 다친 거지, 아무런 의료장비도 없는 꼴을 보면 꽤 실망할텐데. 아마도 내가 군인인지 알겠지. CPR 빼고는 응급 처치법도 모르는걸. 흠, CPR이 필요할 정도의 상태가 되는 걸 바라지는 않겠지?
 그래도 다쳤다니 나는 뛰어갔다. 곧, 거리의 이리저리 멈춰 있는 차들 사이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여러 자동차들에 기댄 채로 있었다. 그는 정강이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는데, 어쩌다 다쳤는지는 몰라도 치명적인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또 어디 편의점에서 대충 챙겨왔는지 이온음료 병이랑 편의점 음식 포장들도 널부러져 있었다. 그가 걸어온 뒤쪽을 보니 도로에 조금씩 피를 흘린 자국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빨리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는 끙끙대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구레나룻이 약간 희끗희끗하고 다부진 체격을 가진 남자였다.  다치고 길거리에 아무도 없는 중에 나타난 내가 반갑긴 한데, 내가 군인도 의사도 아닌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해 보이는 그한테 나는 말했다.
 "아니, 대피소로 도망쳐야죠. 지금 여기서 뭐하세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경기도 쪽에서 빠져 나온 거거든요?"
 그는 그러면서 다친 다리를 보여주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별거 아닌 거 같았는데, 가까이서 보 니 지독한 상처였다. 다행히 뭐 동맥이 터지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총을 맞았거든요 제가?"
 그러니까 상처가 참 둥글었다.
 "아니, 이걸 어떡해. 총은 또 어쩌다가... 어... 제가 근처 역에서 사람들 데려올까요? 아니면 군대에..."
 그는 한숨을 푸욱 내쉬고 드러누우면서, 옆에 있는 차의 번호판 위에다 다친 다리를 올려놓았다. 그는 신음을 주욱 내뱉으면서,
 "제가 지금 그게 안되니까 이러고 있죠, 끄으.."
 라고 말했다. 나는 무슨 소린가 했지만, 일단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그의 다리에 난 상처를 꼭 묶었다. 가을 저녁이고, 땀을 많이 흘려서 약간 으슬으슬했다.
 "아, 이거 산지 얼마 안 된 건데."
 "이 난장판이 끝나고 나면, 반안드로이드 시민협의회에서 이유엽이라고 찾아주세요. 재킷 몇 벌이든 사드릴테니까.
 "예? 반안드로이드 시민협의회요? 저 거기 회비 내는 특별회원인데요?"
 갑자기 그는 고개를 들어서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뭐랄까, 지금까지 보이던 건성건성 반기는 눈빛에서 사상의 동지를 만난 눈빛이라고 해야하나.
 "그럼 우리 같은 동지네요!"
 아, 정말 그 눈빛이 맞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다리에 묶은 재킷의 매듭을 좀더 꽉 여며 주었다.
 "아, 네, 뭐. 회원이신가 보죠?"
 "제가 거기 기술직 간부거든요. 곧 창당할 때 제 이름도 올리고 할 건데. 이유엽 못 들어보셨나봐요?"
 이젠 내 눈빛이 바뀌었다.
 "아, 그럼 협의회서 기술 쪽 다 맡아서 하시는 거구나! 제가 기술 쪽에는 관심이 없어서 진짜 몰랐는데, 와 이거 생각도 못했네요. 아, 근데 총은 어쩌다가... 아니, 지금 여기 왜 계시는 거에요? 안드로이드들이 난리를 일으킨 거잖아요. 역시 우리 생각이 맞았다니까요. 우리가 걔들을 어떻게 믿어요 정말. 근데 방금 전에 뉴스 보니까, 걔들이 비무장지대에 3만이나 있어요? 아니 정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그걸 그렇게 많이 뽑은 거에요."
 그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대충 묶은 재킷도 어찌 압박을 했는지 뭔지 조금씩 스며나오는 피도 줄어들고 있었다. 매일같이 하는 운동 덕에 엄청나게 내 근력이 는 탓이다.
 "에이, 무슨, 안드로이드가 3만 기나 있겠어요."
 "예? 뉴스에서는 안드로이드 3만 기라고 하던데..."
 "그러니까요, 사실 안드로이드가 나오자마자 그렇게 반대에 부딪혔는데 어떻게 3만 기나 있겠어요. 한 3천 기 정도 있을 걸요. 그것도 지금 저 위에서 다 박살나고 있을 거고."
 "그럼?"
 "그거 전자두뇌 이식한 사람들도 죄다 거기로 몰려간 거잖아요. 하긴 걔들도 안드로이드들이긴 한데."
 "뭐라고요?"
 "음... 아니에요 아이구, 다리야..."
 이유엽은 감정을 숨길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리에서 오는 고통에 어느새 익숙해진 것 같았고, 그의 표정에 말실수를 했을 때의 당혹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갑자기 다리 어쩌고 할 위인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나는 머리를 굴렸다.
 "아, 저희 외할머니가 치매 조기증상이 오셔서, 기억 보조장치 설치 시술을 받으셨거든요. 그것도 따지고 보면 전자두뇌잖아요? 근데 전자두뇌 이식한 사람들이 다 거기 몰려갔다는게 무슨 말씀이신가 해서."
 내가 어느정도 둘러대자 이유엽은 긴장이 풀렸는지, 방금 전에 숨기려 했던 무언가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유, 그건 보통 전자 두뇌라고 안하죠. 뭐 대뇌피질 일부를 완전히 안드로이드들 걸로 치환하거나 하면 또 저희 간부진은 사실상 안드로이드나 다름없다고 보는데."
 "아, 그래요? 제가 가입할 때는 또 막, 안드로이드라고 하면 공장에서 나온 기계 인간, 뭐 이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유엽은 다리의 통증을 잊은 듯이 눈을 번뜩이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어떤 성격인지 확신이 왔다. 어떤 개념의 의미를 딱 정해놓고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엄청 물고 늘어지는. 정치하기에는 좋지 않은 성격 같은데.
 "아니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성질이 어디서 나옵니까? 기억이야 컴퓨터가 우리보다 훨씬 잘하죠. 그래서 보조 기억 장치를 다는 건 안드로이드가 아니죠. 그런데 감정, 감수성, 그리고 의식. 뭐 이런 거야말로 우리 인간이 안드로이드들이랑 본질적으로 다른 점, 숭고한 차이점 아니겠습니까?"
 그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방금 전까지 흘리던 신음은 어디로 간 건지. 나는 일단 그를 좀 띄워주기로 했다.
 "하긴 인공지능이 시나 소설 같은 예술을 하는 건 아직 많이 부족하다면서요?"
 "어휴,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혹시?"
 "예? 이예슬이요."
 "야, 특별회원 분들, 비싼 회비 내시는 거 보면 다 열성이지만 예슬 씨는 진짜 저희 간부진들이랑 사상을 딱 공유하시네. 이거 다 끝나고 나면 제가 진짜 올려 드릴게."
 나는 그냥 맞장구만 쳐 줬는데 왜 이리 열성적으로 반응하는 걸까? 멀리서 아주 커다란 폭음이 울려왔다.
 "안 아프세요? 지금 되게 기분이 좋으신 거 같네요. 그리고 전자두뇌 이식한 사람들이 몰려갔다는 건 무슨 말씀이신가요? 또 총상은 어쩌다...?"
 최대한 나는 걱정스럽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이유엽이 방금 전에 감정이 없고 이런 헛소리를 했을 때 척수를 몸에서 뽑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내 머리에 박혀 있는 전자 두뇌가 내 몸에 증오와 분노를 불어넣었다. 마음 한 켠에 소정이 헤어지면서 한 말이 떠올랐다.
 "어휴, 저희가 하는 의견에 전 시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잖습니까? 비무장지대 지뢰도 이제 다 제거됐다는데, 언젠가 쓸어버려야 하기도 하고, 근데 또 처리하려면 저 인권단체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애들이 와서 설치잖습니까? 그래서 정부 측에서 필요한 일을 한 거죠. 어, 지금 뭐 하시는..."
 나는 조심스럽게 이유엽의 다리에 묶인 재킷의 매듭을 풀었다. 이 개자식의 피가 몇 주 전에 산 내 아까운 가을옷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의 다리에 동그란 총상이 보였다. 찔끔찔끔 피가 흐르는 그 상처에 나는 오른손의 검지손가락을 집어넣고 살짝 힘을 줬다.
 "악, 씨발, 아악, 아아으아으아아악!!!"
 "야, 이 개좆같은 새끼야. 전자 두뇌를 이식하면 뭐가 뭐? 뭐? 뭔 짓거리 한건데?"
 "으아아아악! 악! 아악! 왜 이래! 씨발 존나 아프다고!!"
 나는 손가락을 좀더 밀어넣었다. 검지 손가락이 뜨거웠다. 쿵쿵쿵 빠르게 달리는 심장이 느껴졌다.
 "야, 너 뭔 짓 했지. 그래서 지금 자랑하고 싶어서 막 이러는 거지?"
 "헉, 헉, 악, 아니, 아니, 왜, 왜, 이러세요?"
 "야, 티 안 날 거 같냐? 너 지금 존나 수상하다고, 다리에 총 맞고, 병원 데려가달란 말도 안 하고..."
 "아니, 그게, 제가..."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내 손가락을 박은 다리의 바깥쪽을 세게 짓눌렀다.
 "갸아아아아아아악!"
 "너 이 개새끼야, 지금 이상한 짓 하고 온 거지? 바른대로 말해 봐."
 "아니, 왜, 왜 그러시는..."
 나는 왼손의 중지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것도 넣을까?"
 "제발, 제발, 그만, 그만하세요."
 "너 뭐 하고 온 거야."
 그는 빠르게 솔직해지는 면이 있었다. 내가 이런 기괴한 고문을 처음하는 것처럼, 그도 고문을 버티거나 하는 법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제가, 저 반란이, 제가 프로그램을 막 넣고 온 거거든요... 으허억!"
 "뭐라고?"
 "정부에서! 안드로이드들!! 처분하는데!! 인권 단체들 때문에!! 제가!! 어허어으허어억! 반란을 일으키도록 걔들을! 크으으어억... 조종했다고요!!!"
 "아니, 왜?"
 "그러면!! 명분이!! 생기니까!!"
 "안드로이드들을 쓸어버릴? 그럼 전자두뇌 이식자는 왜?"
 이유엽에게는 미안하지만 전자두뇌를 말할 때 내 감정이 실렸나 보다. 그는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개척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비명을 질렀다. 피가 펑펑 솟아나왔다.
 "어허어허어허억!! 제발!! 걔들도!! 안드로이드니까!! 제가 한국 전자두뇌 전산망 전체에 접속해서!! 조작을!! 무의식적으로, 전자 두뇌에, 사고를, 주입할 수, 그렇게. 안드로이드처럼. 커억! 어흐흐헉, 한 거에요!! 그 괴물들이!! 반란에 참여하도록 유도해서!! 죄송해요! 죄송해요!! 필요한 희생이었어요!!"
 아, 하고 탄식을 내밀고 나는 주저앉았다. 이유엽의 총상에서 내 손가락이 빠지자 피가 규칙적으로 퐁퐁 솟아올랐다. 동맥이 조금 찣겨나간 것 같았다. 이유엽은 그 꼴을 보고서 괴로워하며 자기 상처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머릿속으로는 퍼즐이 맞춰졌다. 내가 왜 굳이 대피소에 들어가지 않고 전쟁터를 구경하러 갈 생각을 했는지. 왜 내가 계속 운동을 하는 데 끌렸는 지. 전쟁에서 유용하도록 병사의 몸을 만들고 싶었겠지. 분명 빈 도시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을텐데, 그들을 용케도 잘 피해서 전쟁을 구경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다 이 전자 두뇌 덕인가.
 아마 뇌경색이 뇌의 다른 부분까지 침범했으면 지금쯤 나도 의정부에서 국군과 싸우고 있었겠네. 소름이 돋았다. 이 소름이 돋는 감정조차 내 머릿속에 있는 기계 두뇌가 시발점이란 생각을 하니 더 무서웠다.
 이유엽 이 지랄맞은 새끼가, 자기가 영웅적인 일 하고 왔다는 마음에 완전 들떠 있었던 거였구만. 총은 그 과정에 어쩌다 맞았겠지. 뭐 마지막까지 해킹을 끝내고 탈출하다가 맞은 걸 수도 있을 테고.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가 이유엽을 바라보니 그는 괴로워하면서 펑펑 울고 있었다. 나는 내 손과 팔을 바라보았다.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뭘 잘했다고 울어?"
 "저한테... 크흐흐헉... 왜 그러시는데요... 저 대피소로 데려다 주세요... 이러다가 죽을 것 같아..."
 나는 피묻은 손으로 정수리 앞부분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야, 새끼야. 여기 안에 든게 네가 그리 싫어하는 전자 두뇌다?"
 "으흐흑... 예?"
 "내가 뇌경색으로 운동피질이 작살이 났거든. 그래서 전자 두뇌로 교체했단 말이지."
 그는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괴물이야? 괴물이냐고."
 "크흐흑.. 아니, 선생님은 걔들이랑 다르죠... 몸을 움직이는 건 기계적인... 크헉.. 거니까... 으흐흑.. 이성이랑 감정은... 흐흑..."
 "그럼 내가 이거 떼도 여전히 인간이라고?"
 "감수성, 감정, 그런 건, 몸을 안 움직여도, 크흐흑... 으허흑... 남아 있잖아요!"
 이미 해는 졌다. 가로등이 자동으로 켜졌지만, 사람이 없는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폭음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진압이 거의 완료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나는 멀리서 군용 트럭들이 뛰뛰거리지 않나 했는데, 잘못 들었던 것 같다. 오른팔에 피칠갑을 한 여자와, 그 옆에서 다리를 부여잡고 펑펑 울고 있는 남자. 그리고 어지럽게 서 있는 차들. 이걸 보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졸려요... 흑흑... 졸리다고..."
 나는 이유엽이 옆에서 징징 짜는 걸 내버려두고 나는 일어섰다. 만약 동맥이 찢겼다면 내일 해를 못 보겠지. 근데 뭐 별로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이 어수선한 것들이 전부 정리되고 나면 여기 어쩌다 거대한 시민단체의 간부가 시체로 누워있는지 사람들이 조사하기 시작하겠지. 답답하고 피곤했다. 결국 뇌경색 걸렸을 때부터 인생 쫑난 셈인가.
 내 머리를 박살내고 그 안에서 내 뇌랑 단단히 연결되어있는 그 반도체 덩어리를 뽑아 집어던져버리고 싶었다. 뭐 사실, 뽑는 그 순간에 집어던지는 행동도 못하겠지만.
 계속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나는 이게 무서운 건지, 슬픈 건지,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무거운 침울이 내려앉은 건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달이 밝았다.
 나는 황망한 채 있다가 다시 이유엽을 돌아보았다. 그는 의식을 잃은 채였다. 벌써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옆편에 내버려둔 재킷을 그의 다리에 다시 꽁꽁 감았다. 법의학자들이 이 사람이 그냥 총상으로 죽은 것으로 결론내리기를 빌도록 하자.
 밤의 어둠이 내 오른팔의 붉은 피를 감췄다. 나는 근처에 있는 어두운 상가로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화장실이 있었다.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비누를 퐁퐁 짜서 팔에 있는 피를 꼼꼼히 세척했다. 피비린내가 갑자기 확 올라와서 약간 어지러웠다.
 나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굉장히 더럽고 지쳐 보였다. 나는 나보다 훨씬 키가 큰 소정이, 그녀가 내 뒤에서 다가와 나를 꼭 안아주는 이미지를 마음의 거울 속에 그렸다.
 방금 전에 살인이라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데, 너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내가 죽인 남자는 자신이 간부진 중에서 기술 간부라고 말했다. 그와 반목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간부들이 다 의견이 통합된 채니까 그런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겠지. 개죽음 당한 국군들은 대체 무슨 죄일까? 자기 의사도 아닌 전쟁에 나가 죽은 전자두뇌 이식자들은. 그냥 그 사람들은 뇌를 다친 부위가 나랑 조금 달랐을 뿐인데.
 나는 거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 눈이 가깝게 다가왔다. 내 하얗고 잡티 없는 피부를 바라보았다. 거기서 왠지 알루미늄의 차가운 광택이 흐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안드로이드를 더 미워하겠지. 그것들이 자신의 자식들, 친구들, 형제자매들을 죽였으니까.
 사회의 증오가 더 깊어질 거란 확신이 가슴 속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 증오의 촘촘한 그물망에 나도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 나는 온 몸에서 피를 깨끗이 닦은 채로, 화장실 변기에 비틀대며 걸어가 앉았다. 그리고 거기서 몇 시간이고 서럽게 울었다. 강소정이 보고 싶었다.
 


 정말이다.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이유로 온갖 괴상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기준을 과도히 벗어난 자신의 미적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지나치게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취재할 때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자신의 투철한 신앙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신도 인상 찌푸릴 역겨운 고행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을 취재할 때도, 자신이 어떻게든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 남을 가능한 기분나쁘게 조롱하는 사람을 취재할 때도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면 온라인 포털에 적당히 재미있는 기사를 올릴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많은 댓글과 높은 조회수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저널리즘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붙이는 것도 뭐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기자라기보다는, 기인들의 인터뷰를 모아 정리하는 컨텐츠 창작자 정도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보통 기자라고 하면 시사 쪽의 모습을 생각하니까. 나도 그랬고. 
 근데 이건 정말로 커다란 이야기가 아닌가. 안드로이드 반란이, 안드로이드들이 스스로 일으킨 것이 아니라고? 나는 포털에 이유엽이란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실제로 그의 부고가 있었다. 시신이 발견된 위치는 좀 달랐지만, 어쨌든 사인은 총상.
 나는 이예슬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한 마디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전자 두뇌를 다시 떼어내신 겁니까?"
 "예."
 "왜죠?"
 "모르시겠어요?"
 그녀가 되물었다. 나는 면접장에서 굉장히 곤란한 질문을 받은 면접자처럼 한 마디 한 마디 억지로 쥐어짜냈다. 그녀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전자 두뇌를 장착한 이상, 어쨌든 사람들은 안드로이드... 그러니까 기계 인간이랑... 똑같이 생각한다고 느끼셨기 때문입니까?"
 "뭐, 가깝네요. 지금 저 배려하신 건가요?"
 "어, 아니, 좀, 혹시 뭔가 좀 답하기 힘든 말 아닌가 했습니다."
 "아뇨, 저는 평온해요. 어떤 면에서 제 감정의 근원이 떨어져나간 상태인걸요 지금."
 나는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걔들이 해킹한 거 때문에, 제가 무의식적으로 전쟁터에 나가려 했다고요. 또 그럴 지 어떻게 알아요. 그러니 그냥 바로 떼 버렸죠. 이해 못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요즘은 자율주행 휠체어도 꽤 좋다니까요. 음성 합성기도 정말 뛰어나고. 평생 이렇게 살 게 아니라서 이렇게 맘편히 말하는 것도 있지만."
 나는 그녀가 답답하거나, 혹시 화가 나거나 슬프지 않은지 물어보려고 했다가 당연한 답변이 돌아오리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닫았다.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식어버린 홍차를 다 마시고 나서 내가 준비했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평생 이렇게 살 게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이제 앞으로 계획하시고 있으신 일이 있나요?"
 "인터뷰 끝나면 거의 바로 남반구로 갈 거에요.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사실 기밀을 말한 이유가 그것도 있죠. 망명 신청을 할 거에요."
 "아, 그럼, 그, 안드로이드 권리 운동이 활발한..."
 "네, 소정이랑 얼마 전에 연락이 맞닿았어요. 가서 다시, 거기서 전자 두뇌를 이식할 거에요."
 "그럼 다시 일어서시는 거군요. 또 감정도... 평온함에서 벗어나서..."
 스피커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바깥에서 조종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되게 무례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상태를 생각하면 괜찮을 것 같다 싶어서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그 전자 두뇌를 달아서 자율신경계가 회복되면, 그 감정이 정말 자기 감정이라고 확신하실 수 있나요?"
 그녀는,
 "제가 여기서 입꼬리를 한쪽만 올리며 웃을 수 없는게 아쉽네요."
 라고 한 다음에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글쎄요, 또 생각해 보면 심장이 뛰고, 가슴이 답답하고 한 게 감정의 전부는 아니죠. 어쨌든 제 뇌의 다른 부분이 그걸 또 해석해서 총체적으로 감정이 생기는 거니까."
 "아, 그럼 그게 감정의 근원이다 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는 거네요."
 "네, 그냥 감정이라는 구조의 부분, 뭐 이런 거겠죠. 그러니, 그냥 제 감정에 도움을 받는 거고. 뭐 사실, 그게 진짜 제 감정이 아니더라도 뭔 상관이겠어요. 어쨌든 제가 느꼈던 건 진짜 있었던 사실인데, 누가 가짜랑 진짜를 구분하겠어요."
 이예슬은 자연스러운 웃음을 들려주었다. 그 말까지 마친 그녀는 더이상 할 말이 없었는지, 잘 정리해달라, 어느 정도 공개할 지는 그냥 내 마음대로 하라고 하는 식으로 말하고, 의례적인 작별인사를 나눈 뒤 카페를 떠났다. 하긴, 내가 무슨 대단하고 이름난 기자도 아닌데 내 취재를 굳이 받아들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남반구로 떠나겠다고 결심하기 전에 이야기를 한 번 털어낼 용도로.
 그녀가 나를 어느 정도 인물로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어쨌든 데스크에 내가 인터뷰한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정리해서 올릴 생각이다. 이유엽과 그 뭐냐, 반안드로이드 시민협의회 하는 단체에 대해서도 좀 더 조사하고. 한반도에서 안드로이드가 싹 정리된 이후로 그 단체는 인간 순혈주의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요새는 정당 설립에 기를 쓰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 정도 이야기를 터뜨리면,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 오묘한 사람들의 차이를 애써 구분하려 쓸데없이 용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예슬이 내게 가르쳐준 대로 말이다. 누가 감정을 진짜나 가짜라고 감정할 수 있겠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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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el, T. (1974). What is it like to be a bat?. The philosophical review, 83(4), 435-450.
Searle, J. R. (1992). The rediscovery of the mind. MIT press.
Smith, E., & Delargy, M. (2005). Locked-in syndrome. Bmj, 330(7488), 406-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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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7 단편 문 뒤에 지옥이 있다4 지현상 2018.10.06 88 0
2466 단편 한국 소설 문학의 화신 너울 2018.10.04 29 0
2465 단편 모두가 성희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2 후안 2018.10.02 60 0
2464 단편 초광속 통신의 발명 너울 2018.09.28 33 0
2463 단편 모두 정화되기까지 후안 2018.09.27 21 0
단편 감정을 감정하기 너울 2018.09.27 24 0
2461 단편 폴라로이드 사진 모르타 2018.09.15 35 0
2460 단편 지옥도 후안 2018.08.31 55 0
2459 단편 시체가 놓여있는 상점 유래유거 2018.08.19 60 0
2458 단편 분리수거 김성호 2018.08.16 65 0
2457 단편 Y의 딸 김성호 2018.08.16 62 0
2456 단편 흑백논리 후안 2018.08.16 44 0
2455 단편 한 터럭만이라도 너울 2018.08.15 91 0
2454 단편 비소가 섞인 달걀술 호넷시티 2018.08.12 47 0
2453 단편 유전 눈설기쁠희 2018.08.12 45 0
2452 단편 양념을 곁들인 마지막 식사 호넷시티 2018.08.10 5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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