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

 

대체 이건 어디에다 버려야 하는 걸까. 어느 쓰레기통에도 이걸 위한 표시는 없다. 모두 다 플라스틱, 유리병, 스티로폼, 음식물 쓰레기, 비닐 등으로만 분류될 뿐, 이게 들어갈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검은 비닐봉지를 검지 하나로 바꿔들었다. 손가락 하나로 들으려니 무거웠다. 생각보다, 무게가 있었다. 가벼울 줄 알았는데. 이것은 살아 움직이는 마냥 꿈틀꿈틀 비닐봉지를 바스럭바스럭, 두들겼다. 내가 안에 있음을, 검은 봉지 안에 있음을 잊지 말라는 듯이. 하지만 그것은 환청이었다. 또는 추운 내 몸의 떨림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봉지 안의 이것은 죽었기 때문에.

 

살아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경비실 안쪽에서 불이 켜졌다. 시계가 문 귀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자정. 그렇구나. 벌써 시간이 저렇게 되었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자리에서 움직이지는 않았다. 여기가 어디지? 시선을 한 걸음 비켜서 이곳이 제자마을이란 걸 깨달았다. 제자마을이라면, 버스로 다섯 정거장 떨어져 있는 셈이었다. 지금 누나가 울다 지쳐 잠들어있을 집과.

 

“이 시간에 왜 거기 계속 서 있어요?”

 

경비의 형체가 흐릿하게 움직였다.

 

나는 봉지를 왼손으로 바꿔들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여기 주민이에요?”

 

“아뇨.”

 

경비는 내 대답에 기침을 한 번 터뜨리고는, 내 손에 들린 검은 봉지를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오른손으로 바꿔들었다. 이번엔 다섯 손가락 모두를 사용해 들었다. 남의 시선이 닿은 봉지는 솜이 물을 먹듯 금방 무거워졌다. 경비의 시선은 검은 봉지에 어디 토막 난 시체라도 들었다는 것 같은 의심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바로 경비실 앞을 떠났다.

 

 

 

검은 봉지는 더 바시럭바시럭 징징댔다. 그만 들고 다니라는 소리였다. 하긴. 이것도 불과 몇 시간 전, 아주 짧은 몇 분 동안은 살아있었을 생명체였으니, 불규칙적으로 위아래로 흔들리는 봉지 안에서 멀미 꽤나 했을 법했다. 거기다 녹진한 칼 끝 쇠맛은 꽤나 역했을 법했다. 처음 맛 본 게 엄마 젖도 아니고, 물도 아니고, 그 차갑게 무딘 칼이었으니.

 

그래서 얼른 한 곳에 가만히 내려두라고 재촉하는 것이다. 왜, 누나도 멀미가 심하다. 누나의 멀미는 그게 자가용이든, 버스든, 기차든, 지하철이든 간에 그 속성이 달라지는 법이 없었다. 10분 이상을 움직이는 네모난 상자 안에서 버티지 못했다. 누나는 속이 울렁거린다며, 눈을 닫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래야 멀미가 좀 깬다면서. 특히 명절에 이모랑 셋이서 할머니댁 내려갈 때가 고역이었는데, 지금 이것도 그러한 모양이었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는 어지럽고 갈 길은 먼, 지금.

 

나도 빨리 내려놓고 가고 싶어. 그런데 버릴 데가 없잖아.

 

뭐, 그래봤자 기껏해야 방금 지나친 제자마을이 겨우 두 번째로 가본 동네였지만.

 

 

 

2

 

어쨌든 간에 거기에 이것을 위한 쓰레기통은 없었다. 애초에 분리수거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정말 할 수 없으면 그냥 아무 데나 무단투기를 하는 수밖에. 그러나 누나는 안 된다 했다. 검은 봉지를 조심스럽게 들고 집을 나서는 내게,

 

“사람 눈에 안 띄게....... 아무 데나 버리지는 마.”

 

하고, 부탁을 했으니 말이다. 자기 손으론 도저히 못 버리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한테 부탁하는 주제에 아무 데나 버리지는 말란다. 그래도 어쨌거나 자기가 낳은 애니까, 생색이라도 내는 건가.

 

그때는 아마 두 시간 전이었을 거다.

 

나는 학교서부터 참았던 큰일을 치루기 위해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을 찾았다. 하지만 화장실엔 이미 누나가 들어가 있었다. 빨리 나오라고 했던 것 같다. 안에선 아무런 대꾸도 들려오지 않았다. 샤워기 물줄기 소리만 계속 들렸다. 손잡이를 돌려봤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문을 두드렸다. 빨리 나와! 몇 초 후에 누나는 샤워 중이라고 말했다.

 

........ 말했다. 근데,

 

그래, 내 물음과 누나의 대답 사이의 정적이 생각난다. 그것은 정적이 아니었다. 무슨 소리를 나는 분명....... 들었다. 그 순간에는 그냥 지나쳤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생각해보니 그것은 조그맣게 우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매우 작았다.

 

마치 뭔가에 틀어 막힌 것처럼.

 

갑자기 확, 코를 꿰뚫는 냄새에 순간 나는 검은 봉지를 놓칠 뻔했다.

 

그래도 가까스로, 누나에게 칼을 건네주던 그 손으로, 꽉, 붙잡았다. 냄새가 너무 심했다. 악취였다. 죽었으니 이런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바로 나는 죽었소, 하고 알리다니. 아니, 냄새가 갑자기 이렇게 역하게 사람 속을 뒤집는 게 아니라, 처음 이 봉지를 들고 나올 때부터 악취는 났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걸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아마 온 몸에 다 뱄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 신경 쓰일 건 아니었다. 사람들이 내 몸에서 나는 악취를 맡고 “어, 네 몸에서 시체 냄새 나!” 이러지는 않으니까. 기껏해야 “음식물쓰레기통에 빠졌냐?” 라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검은 봉지 안의 이것은 냄새로는 음식물쓰레기에 불과했다. 정말 그럴 지도 모를 일이었다. 좋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것을 음식물 쓰레기라 생각해보자. 그러면 이것을 버릴 곳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어쨌거나 그 당시에 그런 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나는 빨리 정리하고 나오라고 했다. 급해 죽겠다고. 누나는 10분만 기다리라고 했다. 목소리가 처져 있었다. 청소기로 쫙, 숨을 빨아들인 것처럼, 땅으로 꺼지는 그런 목소리였다.

 

하여튼 그렇게 먹어대니까 살이 쪄서 몸 씻는 것도 힘들지.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서 그 10분을 어금니 꽉 깨물며 버텼다. 화장실에선 일정하고도 끊이지 않는 물줄기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괄약근을 있는 힘껏 움켜쥐고 있는데 식탁 한 귀퉁이에 있는 약 상자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타이레놀 크기의 작은 것이었다. 이게 누나가 먹던 거였나, 하고 나는 집어 들었다. 약국에서 파는 평범한 약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한문이 앞뒤로 잔뜩 적힌, 수입약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화장실로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엉덩이 쪽에 뭔가가 느껴졌다. 의자에 놓여 있었는데, 처음엔 방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뒤를 살펴보니 언젠가 할머니가 허리에 차고 있던 복대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순간 화장실에서 똑똑 소리가 들렸다.

 

 

세상의 축축한 공기를 훅 들이마셨다. 순간 그 흐름을 타고 악취가 또 다시 콧등을 긁어댔다. 나는 구역질을 하고는 검은 봉지를 등 뒤로 치워버렸다. 숨 쉬기가 힘들었다. 밤공기가 더 시원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따뜻했다. 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발을 끌면서 그곳으로 가 앉았다. 검은 봉지는 옆에 내려놓았다.

 

 

부엌에서, 칼 좀 갖다, 줘.

 

 

겨우 손가락 하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화장실 문틈에선 그런 누나의 말이 흘러나왔다. 웬 칼? 나는 반문했지만 누나는 빨리, 라고 한 뒤 문을 닫아버렸을 뿐이었다. 달리 할 게 없었다. 사람 급한데 빨리 안 나오고 뭐하는 거야, 이렇게 투덜거리면서 나는 어딘가 매우 이상하고 말이 안 되는 것인줄 알면서도 부엌에서 식칼을 갖다 다시 열린 문틈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제발 빨리 나오라고 소리치려는 찰나 문이 다시 닫혔다.

 

 

 

3

 

“이것 좀 버리고 와라.”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봉지였다. 아래가 묵직한 검은 봉지. 누나는 샤워 가운을 입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칼 사이로 나는 움푹 벌레가 파먹은 듯한 눈두덩과 역삼각형으로 기괴하게 찌그러진 안면을 볼 수 있었다. 들리지 않게 내쉬는 숨은 마디마디가 짧았다. 로즈베리향 샴푸 향기는 평소와 달랐다. 그 속에 이질적인 ‘냄새’가 감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누나가 다섯 손가락으로 꽉 붙들고 있는, 그 검은 봉지가 시야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칼은 어디로 치워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칼로 뭐했어?

 

칼은 어딨어?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입술은 마른 침마저 불안감에 뺏기고 있었다.

 

나는 물끄러미, 그것을 말없이 응시했다. 마치 난해한 추상화를 보면서 그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처럼. 그건 추상화였다. 빛도 사물도 모두 흡수하고 그 안의 것을 꽁꽁 어둠으로 싸맨 검은 봉지는, 무수히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 보였다.

 

“그게 뭔데?”

 

누나는 아무 말 없었다.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한 옥타브 올라간, 경계를 벗어난 산발적인 웃음. 목이 졸렸던 사람처럼 컥컥대는 웃음. 누나가 또 무슨 시답잖은 장난을 치려는구나, 하는 안도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서웠다.

 

나는 검은 봉지를 열었다.

 

쇠 비린내가 확 끼쳤다. 아니, 피비린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간에.

 

 

화들짝 놀라 나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검은 봉지에 손이 닿았다. 그 물컹물컹한 느낌, 차가운지 뜨거운지 피부는 느끼지 못할 그런 무(無)의 온도. 나는 그 느낌을 얼른 몰아내기 위해 닿았던 손을 청바지 위에 박박 문질렀다. 마찰이 나고 뜨거워지면서 어느 정도 사라졌다, 싶었는데 잠시 후에 오히려 더 강하게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기분 나빴다. 봉지 안의 이것은 어린 아기 특유의 짤막한 웃음을 터뜨렸다.

 

 

검은 봉지를 열었다. 나는 그 안의 이것이, 처음엔 뭔지를 몰았다. 꼭 음식물 쓰레기처럼 보였다. 냄새도 그와 비슷하게 풍겼고. 그래서 나는 냄새난다고, 방 안에서 갖고 나가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누나도 똑같은 냄새를 풍겼었다. 샴푸 향기 속에 숨은 ‘그것’이었을 것이다.

 

왜 음식물쓰레기를 방에 갖고 들어와. 빨리 갖다 버려.

 

누나는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라 했다. 그러면서, 내가 버려주겠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된다고 이르는 것이었다. 이게 대체 무어냐고, 말하면서 나는 다시 검은 봉지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무죽죽하고, 시뻘겋고, 만지면 무슨 살이 녹아 없어질 것 같은, 하여튼 형용할 수 없는 불가해한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아까 본 알 수 없는 약 상자와 지난날 누나의 모습들이 내 머릿속에 마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누나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건 아기, 라고.

 

아기라니?

 

나는 검은 봉지를 재빨리 여몄다.

 

뭔가 봐서는 안 될, 금단의 영역을 침범한 듯한 느낌이었다.

 

오묘한, 웃음인지 울음인지 분노인지 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누나는, 이내 기이한 울음을 흘렸다. 그 울음 속에는 간간이 섞여 나오는 실소 비슷한 게 배어있었다. 그저 주저앉은 채 땅바닥만 쳐다보면서, 두 손은 오갈 데 없어 허공을 더듬으면서, 누나는 울었다. 누나는 하나씩, 막칼로 마구 썰어낸 얘기들을 코스요리처럼 내게 하나씩 내왔다.

 

이번 부탁은 들어주기 싫었다. 칼이야 내가 몰랐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치더라도. 그런 마음으로, 그냥 사람 눈에 안 띄는 곳에 대충 버리고 돌아가자, 하고 나왔는데 막상 그게 아니었다. 검은 봉지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검은 봉지는 생각보다 아무 곳에나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게 무슨 개소린지 나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이걸 버려야 한다. 집에 갖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벤치에서 점점 벗어났다. 검은 봉지는 벤치 내 옆자리, 그 자리에 가만히 놓여있었다. 나는 이왕 몇 걸음 떨어진 거, 아예 저기에다 버리고 가버리자, 하며 움직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개똥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가버리는 것처럼, 아이스크림 비닐을 모른 척 흘리는 것처럼, 그렇게 가려고 말이다. 어차피, 저건 태어나서는 안 되었을 거잖아. 어차피 저건 어느 누구도 키울 수 없는, 그런 애잖아. 저건 악마의 씨앗이었다. 재활용은커녕, 분리수거도 허용되지 않는 악마의 씨앗.

 

시간이 몇 신지 보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는데, 문자가 두 통 와있었다. 누나였다.

 

언제와.

 

아까와 똑같은 내용이었다.

 

너, 경찰에 신고해라. 그 봉지 들고 가서 신고 좀 해줘.

 

이건 막 1분 전에 온 것이었다.

 

네가 신고 해줘. 그때 나도 다 말하게. 그러면 억지로라도 말하게 될 거 아냐.

 

마음에도 없는 개소리는 잘한다. 다 끝났다고, 이제 와서 신고를 하겠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냥 빈 말이다. 진짜 신고할 마음이었으면 예전에 했겠고, 나한테 이 문자 보낼 시간에 신고를 했겠지.

 

누나는, 내게 다 말했다. 아니, 그때 말한 게 전부 다 말한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놈이 누군지 짐작을 하면서도 그놈이 누구냐고 다그쳤다. 대체 어느 놈이냐고.

 

남자친구. 후배.

 

그런 일이 한 순간에 벌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남자친구가 그걸 영상으로 찍고, 누나한테 메일로 보내놓고서는 인터넷에 유포하겠다며 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신고 해도 유포, 돈 안 줘도 유포.

 

남들이 그 영상을 본다는 것이, 누나는 단순히 성폭행을 당했다는 그 자체보다도 더 끔찍했다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경찰에게 신고했으면 되었잖느냐, 고 물으니 누나가 대답했다.

 

그럼 걔들도 다 볼 거 아냐. 그리고 임신했다는 건? 그건 어떻게 할 건데?

 

낙태를 하려고 했지만 그럴 만한 돈도 없었고, 그 후배가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에게 낙태하면 영상유포를 하겠다고 협박해오더라는 것이었다. 그래놓고서는 누나를 고소하겠다는 것이었다. 남자친구한테서 돈을 뜯어내려고, 강간당했다면서 자신한테 낙태비용과 배상금을 내놓으라고 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그 일 가지고 질질 시간 끌수록 손해 보는 건 오히려 너, 라면서 닥치고 애나 빨리 낳으라는 것이었다. 선배가 엄청 예쁘니까 애도 예쁠 거라면서. 어차피 나중에 선배랑 애 낳고 살라 했는데, 조금 일찍 앞당겨진 것뿐이라 생각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신고해줄 거야? 그리고 올 때 먹을 것 좀 사와라. 배고파.

 

점점 지랄이 되어가고 있다. 이 상황에 배가 고프다니. 일주일은 기아체험 하듯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다가, 또 그 다음 주에는 배가 터질듯 폭식을 할 땐 언제고.

 

언젠가부터 누나가 먹는 양이 늘어났다는 게 기억난다. 얼마 되었다. 그 전에는 남자친구 때문에 다이어트다, 몸매 관리다 뭐다 해가지고 끽해야 하루 두 끼 반 공기씩 먹는 일이 예삿일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입이 짧은 편이었고. 그런 사람이 밥을 한 공기, 두 공기 먹고 이것저것 군것질에도 손을 댔다. 배가 점점 나오기도 해서 이제 나한테 살쪘다고 말할 처지는 못 된다고 내가 말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근데 이상한 건 그렇게 먹을 땐 먹더니 또 구역질을 하면서 변기를 붙잡을 때도 많았다.

 

너 때문이었구나.

 

나는 검은봉지를 바싹 당겨 쥐었다.

 

답장을 하려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던 참이었다. 어떤 사람이 벤치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심장이 몸을 홱, 비틀더니 벤치 옆 어떤 사람의 발짝에 맞춰 캉캉캉 뛰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그곳으로 가서 검은 봉지를 가져와야 한다는, 그런 생각에 휩싸였다. 하지만 두 발은 그런 내 마음에 반대표를 던지며 나를 자리에 묶어두었다. 그 어떤 사람은 내가 앉았던 곳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무심코 옆으로 뻗은 손에 봉지를 건드렸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봉지에 관심을 갖더니, 이내 그것을 풀어서 열어보려고 했다. 나는 당장 달려가서 빼앗아 와야 한다, 는 생각에 식은땀을 흘렸다. 안에 들은 것이 시체라는 걸 알면, 그것도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기라는 것을 알면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은 봉지를 풀려고 낑낑댔다. 그러나 잘 풀리지 않는지, 이내 포기하고는 그것을 다시 옆에 두었다. 그러고는, 누굴 기다리는지 주위를 기웃거리면서 계속 몸을 뒤척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시선이 봉지에 언뜻 닿으면, 다시 봉지를 풀어보려고 그것에 매달리며 시간을 때웠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였다.

 

대체 얼마나 꽉 묶은 거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임시저장으로 넘어간 답장을 마저 쓰고 보냈다. 그리고 다시 벤치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서야 나는 퍼뜩 정신이 들어 급히 벤치로 달음박질쳤다. 신호등은 초록색도, 빨간색도 없이 꺼져 있었다. 새벽에는 비보호였다. 벤치에서 검은 봉지를 낚아챈 뒤 나는 바로 다른 동네 쪽으로 달려갔다. 문을 닫은 상가와 몇 집 만이 불을 키고 있는 아파트 사이를 뛰어가다가 순간 멈추었다. 나는 문득, 그 사람이 왜 봉지를 열려고 했는지 궁금해졌다. 악취가 엄청 심했을 텐데. 보통 그냥 쓰레기라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때는 검은 봉지 안의 이것도, 낯선 이가 무서워 가만히 있었을 테니까. 어쨌거나 ‘아기’잖아. 살아있든 죽었든 간에 아기는 아기니까.

 

 

 

4

 

어쩌면, 노숙자였을 수도 있다. 누가 놓고 간 먹을 건 줄 알고, 사람이 없나 살펴본 다음 먹으려고 했던 것일 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건 정말 완벽한 추상화가 아닌가. 대하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의미를 생각하니 말이다. 아까 제자마을 그 경비는, 시체 토막이라 생각했고, 지금 아까 그 사람은 뭐 먹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 같다고 했고. 꼭, EBS에 나오는 재미난 심리실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내가 낫지 않나? 시체 토막보다는, 더러운 노숙자 입으로 꾸역꾸역 넘어가는 유통기한 지난 음식보다는, 아무도 상관 쓰지 않는 음식물 쓰레기가 더 낫지 않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뭐든지 당사자 생각이 중요한 거 아닌가.

 

그래서, 넌 뭐가 좋은데? 셋 중에? 시체 토막, 먹을 거, 음식물 쓰레기 중에 말이야.

 

검은 봉지는 대답없이 천천히 앞뒤로 흔들릴 뿐이었다.

 

아기? 아기는 없어. 이 셋 중에서만 말이야.

 

아파트 단지 몇 곳을 더 지났다. 내가 이 검은 봉지를 버릴 곳은 없었다.

 

모두, 똑같이, 내가 올 걸 약속이라도 해놨다는 듯-원래 항상 그랬지만-유리병, 플라스틱, 스티로폼, 비닐, 음식물쓰레기를 위한 자리만 마련해놓고 있었다. 초대받지 못했다, 는 이상한 서러움을 느끼면서 나는 동네 분리수거장에서 나왔다. 그러자 누나의 말이 다시 떠오르는 것이었다. 결국, 이것이 버려질 수 있는 곳은 경찰서밖에 없는 건가. 문득 이 근방에 지구대나 파출소가 어딘지 알아보려고, 잠시 핸드폰 데이터를 썼다.

 

지구대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공원 맞은편에.

 

 

나는 애를 왜 죽였냐고 누나에게 물었다. 나는 누나에게, 왜 나는 누나가 임신한 걸 몰랐었을까 물었다. 누나는 아침에 가서 밤에 돌아오고, 밥도 주말에나 같이 먹는데 알아채는 게 더 이상하다고 했다. 그럼 살찐 거. 나는 누나의 배로 눈길을 내렸다. 그게....... 그거였어? 누나는 가만히 있었다.

 

한동안 우리는 침묵을 삼켰다.

 

 

나는 기억이 닿는 끝까지 누나의 모습을 되돌려보고 있었다. 누나는 똑같이 자고, 밥 먹고, 싸고, 다시 잤다........ 하나, 요 근래 밖으로 나가는 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예전과는 뭔가 아귀가 어긋난 누나의 행동들을 짚어낼 수 있었다. 밤에 잘 때, 갑자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누워서 안자고 벽에 기대고 자고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발에 쥐가 났다고 새벽에 소리 지른 적도 있었다. 지른 ‘적’이 있다고 하기엔 너무 자주 그랬다.

 

우울증, 폭식증, 뭐 그런 것들이 겹친 모양이라고 생각한 나는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누나는 그냥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아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뭔 일이 있느냐고 물어봐도 대답은 하지 않고 허공만 노려보던 누나였다. 그게 한 몇 개월 동안 계속 지속되었던 것 같다.

 

그러더니 묻는 것이었다. 혹시 내가 이런 거 다른 사람이 알아? 아냐, 모르겠지. 알 수가 없지. 나는 그 이후로 밖으로 한 번도 안 나갔고 1년을 휴학했는데. 그렇지? 막 집에 놀러왔던 네 친구들이 뭐 이상한 말 한 건 없지? 응? 말해봐! 누나의 목소리는 찢어질 때까지 찢어져서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입술에 침만 적셨다. 이모가 생각나서였다. 이모는 종종 우리 집에 반찬을 가지고 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누나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모가 누나 방에 들어갔다 나오는 날이면 어디가 아픈 모양이라고 이모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느 날은 갑자기, 나한테 누나가 임신이라도 했느냐고 물었다. 물론 반 장난이었다.

 

네? 아뇨, 임신은 무슨. 만날 약도 먹던데요.

 

나는 누나가 무언가 만날 먹던 것을 떠올리며 대꾸했다.

 

근데 아까 보니까 애가 왜 이렇게 배가 불렀다니. 살이 그새 찐 건가. 우울증 걸린 애처럼 밖에 잘 나오지도 않고. 나 올 때마다 이런 거야? 제 엄마 생각나서 그런 건가?

 

나는 누나 반찬까지 숟가락으로 긁어모으며, 잘 모르겠어요, 대답했다.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건지, 아니면 단순히 두 발이 검은 봉지 따라 온 것인지, 인근 지구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힘이 실린 바람이 손에 들린 검은 봉지를 땅에 떨어트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1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경찰관 두 명이 지구대에서 나왔다. 나는 얼른 옆으로 몸을 숨겼다. 진짜 내가 여기 왜 온 건지. 신고하지도 못할 거면서.

 

 

밤 10시쯤,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누나에게 다시 물었다. 애는 왜 죽였냐고.

 

누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가져다준 칼로 죽인 게 맞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다시, 왜 죽였냐고 물었다. 키우진 못하더라도, 어떻게 다른 사람이 키우거나 보육원에서 데려가도록 하게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런 방법도 있었을 텐데, 하고 나는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누나는 역시 바로 죽인 게 옳았다면서, 나를 흘겨보았다.

 

어떻게 얘가 살아있는 걸 볼 수 있어? 너 같으면 그게 가능하겠냐?

 

누나는 오늘 하루 종일 밖에서, 자살을 하려고 이리저리 장소를 옮겨 다녔다는 것이다. 나는 그놈도 이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누나는 아이를 죽이기 전에 이미 아이를 죽였다고 그놈한테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었다.

 

낙태라고 안 했어. 죽였다고 했지.

 

그 얼굴은 묘한 승리감에 휩싸인 듯 하더니 금세 절망으로 찌그러지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그놈이 경찰에 신고는 하지 말아달라고 하더라. 영상도 모두 삭제하겠대.

 

왜?

 

자기가 가고 싶었던 회사 붙었대. 지금 신입사원 OT 중이라더라. 강원도 펜션이래.

 

 

검은 봉지가 내 주의를 끌었다. 놀아달라는 양, 시끄럽게 비닐이 서로 비비적대는 소리가 커져갔다. 놀아줄 거 아니면 빨리 내려달라는 걸까. 경찰관 한 명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바람에 나는 숨을 죽이고 자동차 뒤로 몸을 낮췄다. 대체 여길 왜 왔지? 내가 온 게 아니었다. 봉지 안의 이게 날 갖고 장난친 거다. 그러나 예의 그 까르르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저 경찰관들은 서로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그러자, 문득 누나의 마음이 이해되는 것이었다. 그래, 저 새끼들이 증거 확인한답시고 그 영상 보면서 딸이라도 칠지 누가 알아. 어쩌면, 좋은 딸감이라면서 USB에 저장해갖고 저희들이 되레 유포를 시킬 수도 있잖아. 그런 기사, 저번에 본 적이 있었다. 여자들 도둑촬영 한 거 사진 확인한다는 핑계로 몰래 복사해서 옮겨 넣다가 걸린 거. 알고 보니 그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경찰관은 잘리지 않았다. 가벼운 징계처분만 받고 버젓이, 경찰노릇 하고 있다.

 

누나는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두 눈이 벌겋게 충혈 된 채 번진 눈물범벅이었다. 목소리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한 사람이 내는 목소리 같지가 않았다.

 

근데, 얘는 무슨 죄야? 나는 얘를 왜 죽여야 했지? 얘는 왜 죽어야 했지?

 

그렇게 한참을 검은 봉지의 이것을 죽인 자신을 자책하고, 그 후배를 원망했다. 그리고는 또 돌변해서, 검은 봉지를 가리키며 외치는 것이었다.

 

얘도 그 개새끼랑 똑같아! 얘도 결국은 내 인생 망치려고 태어난 거야. 나 죽이려고 태어난 거라고! 아마 내가 애 안 죽였으면, 지금쯤 내가 죽어있을 거야. 아니면 얘도 죽이고 나도 죽었거나.

 

누나의 몸에서 쇠 비린내가 더 심해졌다.

 

누나는 잘못 없어.

 

나는 그렇게 말했다.

 

차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경찰관들이 어디 갔나, 싶더니 갑작스레 차 전조등에 불빛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검은 봉지를 손에 쥐고 얼른 도로변 쪽으로 냅다 뛰어갔다. 왜 내가 뛰어가야 하는 진 몰랐다. 뒤에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서 꼭 경찰관들이 검은 봉지를 빼앗으려고 뒤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에 나는 더 이상 뛸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다리를 움직였다. 검은 봉지는 달리면서 오른쪽 허벅지에 일정하게 끊임없이 부딪쳐왔다. 봉지가 허벅지와 부딪치는 소리, 그래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내가 검은 봉지를 아직도 손에 들고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근데 말야. 너도 알고 있지?

 

나는 잠시 대답을 기다렸다.

 

우리 누나는 잘못 없어.

 

 

 

5

 

걸음은 우뚝 멈추지 않았다. 뜀박질에서 속보로, 속보에서 경보로 천천히 느려져갔다. 우리 집 아파트 단지가 설핏 보였다.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벌써 한 시간을 더 앞서있었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지. 더 이상 누나에게서 문자는 오지 않았다. 그때 제자마을 쪽에서 자동차 소리가 났다. 그냥 자동차가 아니라, 거대한 트럭이 쿵쿵 구르는 발짝 소리였다. 새벽의 정적을 뭉개며 덤프트럭이 나타났다. 초록색의 덤프트럭은 그대로 내 앞을 지나가 우리 집 앞으로 천천히 속도를 늦추며 다가섰다.

 

검은 봉지를 잡은 손에 실린 힘이 조금씩 늘어졌다. 덤프트럭이 막 정차를 하고 있었고, 야근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뒤늦게 양 손 가득 쓰레기를 들고 허겁지겁 다가오는 참이었다. 경비는 덤프트럭 운전사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 하고, 자신도 두 팔 걷어붙이고 주민들의 분리수거를 돕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경비의 일사불란한 지휘에 따라 유리병, 플라스틱, 스티로폼, 비닐 등에 쓰레기를 나눠 담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혹시 그곳에 이걸 버릴만한 적당한 데가 없나 싶어 사람들 가까이 다가섰다. 버릴 만한 곳이 없다는 걸 아는 데도, 내 두 눈동자는 경비실 앞 분리수거장을 구석구석 뒤적였다. 봉지는 내 손 안에서 머뭇거렸다. 그냥, 버리면 되잖아. 그런데, 만약에 누가 봉지 열어보고 안에 있는 게 뭐냐고 물으면 어떡하지? 시체인 걸 알게 되면? 그런 생각에 나는 몸을 돌리는데, 경비가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학생! 비닐 이쪽이야. 일로 줘.”

 

덤프트럭의 운전사가 이제 가져간다고 소리쳤고, 집게손 역시 덩달아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내가 무어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경비의 손이 검은 봉지를 낚아채갔다. 나는 어, 했다. 가져가면 안 되는데. 경비는 꽉 묶인 비닐봉지 안을 열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트럭 뒤에 던져 올렸다. 나는 여전히 어, 하는 당황한 채 멀뚱 서있었다.

 

“그거, 안에.......”

 

내 혼잣말을 들은 경비가 돌아섰다.

 

“안에 뭐 든 거 있어? 엄청 가볍던데.”

 

“분리수거 안 되는.......”

 

“괜찮아, 어차피 다 쓰레긴데. 저쪽에서 한 번 더 거르니까.”

 

그렇게 말하며 경비는 집게손을 더 재촉했고,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 경비실 앞 분리수거장은 온데간데 자취를 감추었다. 덤프트럭은 끄어억 트림을 토해내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리수거를 마친 사람들은 이왕 나온 김에 새벽산책이나 하자며 단지를 빙 돌려고 자리를 떴다. 경비 역시 새벽 순찰을 다녀와야겠다면서 손전등을 들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나만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손은 허전했다. 허벅지에 부딪치던 검은 봉지의 느낌이, 손가락에 주름을 패던 검은 봉지의 무게가, 쓰레기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쇠 비린내는 순식간에 포근한 새벽 공기로 잦아들었다. 검은 봉지를 찾아 두 손을 쥐었다 폈다.

 

잼잼놀이를 하듯, 쥐었다, 폈다.

 

하지만 내 손이 잡은 것은, 사라진 그 자리로 흘러들어온 새벽의 찬바람 한 움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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