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

 

그건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오래 전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5년 정도 지났을까. 어쨌든 그 정도인데, 어제 꿈에 그 애가 문득 나를 방문했다. 그러면서 왜 아직도 자기 사진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안 갖고 있어, 하고 대답했다. 그 애는 걸핏하면 뻥 치는 건 여전하다면서, 이따가 베란다 책장 맨 위 칸에서 자기 사진을 한 번 찾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꿈에서 깼다. 악몽도 아니었고, 깊게 꾼 꿈도 아니었고, 그저 잠깐 현실과 꿈 경계에서 어물쩍 시소를 타다가 휙, 현실로 발을 뺀 것 같았다. 기분은 맑았고, 곱게 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숨도 쌕쌕거리지 않고 후우우, 후우우, 골랐다. 분명 겉은 그런데, 내 마음은 이상하게도 더없이 끔찍한 악몽을 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살짝 열린 틈새로 꿈이 꼬리를 남긴 듯한, 그런 찝찝한 느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그 애가 자신의 사진이 있다고 일러준 베란다 책장으로 가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 애의 사진을 찍은 적도 없을뿐더러, 단 둘이 같이 사진을 찍은 적도 없고 하물며 단체사진으로도 나는 그 애의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애의 흔적은 말끔히 털어낸 지가 오래였다. 어쨌든 찾아는 보았다. 베란다 책장을 뒤적거렸다. 자다가 깬 시각이라, 아직 새벽 3시에 불과한 때였다.

 

아직 햇빛 터럭조차 보이지 않고 완전한 어둠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나는 책장 한 구석에서 그 애가 말한 ‘사진’이라는 것을 꺼내들었다. 죽은 그 애의 모습들이 페이지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마치 죽은 그 애가 누워있는 관 뚜껑을 열어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건 그냥 교과서였다. 옛날 교과서.

 

침대 벽에 기대 앉아 교과서를 무릎 위에 펼쳐두었다. 나는 한동안 교과서 표지를 넘기지 못하고 가만히, 노란 스탠드 불빛에 눈을 익혔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교과서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왜 이걸 갖고 있었지. 교과서 옆면에는 내 중학교 때의 학번과 이름이 검은 네임펜으로 큼지막하게 들어차있었다. 20223, 이성현. 그 숫자 다섯 개와 글자 세 개는 3년 동안 묻고 묻어두었던 기억을 깊은 땅 속에서 끄집어내고 있었다. 교과 겉 표면이 반질반질 했다. 네 귀퉁이는 헤졌고 교과서를 쫙 넘기다 보니 중간중간 죽 찢어진 페이지도 눈에 띄었다. 어느 한 곳에서, 나는 손길을 멈추었다. 죽 찢어진 페이지였다. 그리고 그 찢어진 선은 그 애의 배꼽에서부터 목을 거쳐 미간, 이마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애는 ‘활동 2 - 도덕적 삶이란 무엇일까?’ 라는 말풍선 아래에서 펜을 쥐고, 진지한 표정으로 백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교과서 모델인 그 애의 모습이 낯익었다. 리본을 쇄골 중간에 가지런히 달고, 단추는 목 끝까지 채우고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올린 모습이.

 

그 애는 아마, 중 1때 교과서 모델을 했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게 우리 중 2 교과서에 실린 거라고. 나 나오는 거 이상하지? 그것도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에. 그 애는 킥킥대면서 3월 초, 내 짝꿍으로 옆에 앉아 교과서를 뒤적이며 말을 꺼냈다. 어....... 이게 너였어? 어색한 내 대꾸에 그 애는, 응, 이라고 대답했다. 나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2월 달에 나눠준 2학년 교과서에 연예인 윤혜연 딸, 그 애가 모델로 나온다고.

 

엄마가 연예인이라서 그런 거겠지.

 

아이들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애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어떻게 하다가 교과서 모델을 했느냐고. 엄마처럼 연예인 될 생각이냐고.

 

아니, 연예인은 하기 싫어. 될 실력도 없고....... 교과서 모델은, 엄마 생일선물로 해준 거야.

 

생일선물?

 

다른 연예인들은 자기 자식하고 예능도 자주 나오고 얼굴도 자주 비추면서 자리 다져가는데, 자기도 어느 정돈 그렇게 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지. 요새는 가족끼리 나오면 뭔가, 좀 스토리 같은 것도 생기잖아. 요새 사람들은 그런 거 좋아하니까. 무엇보다, 그러면 CF도 많이 들어오고 드라마 자리도 많이 들어온다나 뭐라나.

 

넌 진짜 연예인 안 할 거야?

 

그 애는 누가 봐도 예뻤다. 예쁘다, 한 마디면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여자아이였다.

 

그래. 그리고 엄마가 말한, 뭐 자식하고 예능에 나오는 건 아빠들이 많이 하지 않아? 엄마랑 딸이라 나오는 것도 완전 홍일점이라서, 더 눈에 띌 것 같아. 그래서 더 싫기도 하고. 그럼 아빠랑 나가. 셋이라던가.

 

내가 교과서 앞 단락에 있는, 그 애가 어떤 아버지뻘 되는 사람과 함께 손잡고 웃고 있는 걸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애는 실소를 머금으면서 그 아저씨도 교과서 모델이라고 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진짜 아빠 말이야, 네 아빠.

 

없어. 나도 몰라. 이혼했겠지, 뭐.

 

책상에서 가위를 가져왔다. 다시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아 교과서를 펼쳐들었다. 초록색 간지 두 장을 지나고, 교과서 제목과 저자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지나 머리말, 목차를 차례로 지난다. 첫 번째 단원, ‘개인과 사회의 도덕적 삶’이다. 몇 장을 더 넘긴다. 흰 여백에 두 쪽 뒤의 그 애의 모습이 어렴풋이 비쳐 보인다. 나는 가위를 미리 집어 들었다. 한 번 헛질을 해보니, 스큭스큭 날이 맞물리는 소리가 난다. 잘라야 했다. 완전히 그 애를 떨쳐내기 위해서는 말이다. 5년 전이라는 질긴 과거와 연결되어있는 이 교과서가 내 방 어디에 처박혀있는지 그녀가 꿈에서 알려준 이유도, 내 생각과 똑같을 것이다. 저도 누군가가 아직도 흔적이든 무엇으로든 간에 자기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싫었을 테니. 그 애의 소망은 그게 아니었는가. 영원히 사람들에게서 잊히는 것. 그래서 오죽하면 그 애가 자신이 죽었던 날 밤에 내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을까.

 

“실수했어. 이렇게 자살해버리니까 사람들이 더 나한테 관심 갖잖아. 차라리 죽지 말 걸. 그러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한테 덜 신경 쓸 거 아냐. 사람들 눈길이 싫어서, 그 말들이 싫어서, 그 관심들이 다 싫어서 죽은 건데....... 앞뒤 안 맞지, 어이없지?”

 

왜 하필 그 말을 내게 찾아와서 했는지. 내가 무슨 원한 풀어주는 무당도 아닌데.

 

그 하얀 여백에 비치던 그 애는, 환히 치아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아하, 하는 얼굴로 손가락을 튕기고 있다. 부분부분 중학생의 앳된 구석이 엿보였다. 전혀 그런 기분이 아닌데,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그 애 옆에는 ‘궁금증 타파!’ 라는 작은 코너가 붙어 있었다. 그 코너에는 빨간 줄과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고, 별표도 한 두 개쯤 머리에 달았다. ‘서술형으로 나옴!’이라는 빨간 글씨가 코너 옆에서 죽 이어져 그 애 오른쪽 뺨을 덮은 상태였다.

 

환히, 웃고, 있다, 는 말이 이렇게 어색할 수가. 그 애는 물론 평소에 많이 웃었다. 적어도 나와 같이 있을 때는 그랬다. 남자친구도 아니어서 같이 있던 적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친했고 동아리도 같은 동아리였기에 밥도 같이 먹는 날이 심심찮았다. 그때 그 애는 아마 30초에 한 번 꼴로 웃음을 터뜨렸던 것 같다. 양 보조개 위에 버티고 선 미소는 내내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 웃긴 얘기를 많이 한 것 같진 않다. 그냥, 시답잖은 얘기들, 서로 말꼬리 잡아 까면서 장난치기, 뭐 그런 것들. 난 그런 것들이 좋았었는데.

 

시험에 나옴! 에 묻힌 그 애의 반쪽 웃음은 어색했다. 연예인 엄마에게서 좋은 유전자란 유전자는 죄다 물려받은 모양인지 얼굴이며 몸매며 성격이며 빠지는 데가 없었다. 그 애의 엄마는 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난한 집안의 엄마나, 카리스마 있는 성공한 여자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언제나 출생의 비밀의 열쇠를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어느 정도 극이 위기와 절정에서 오락가락할 때 느닷없이 방문을 박차고 나타나, 그래 내가 네 엄마다, 사실 네가 내 아들이다, 라는 대사를 처연하게 외쳐대던 그 애의 엄마. 아이들은 종종 그 애에게 장난삼아 이렇게 말을 던지곤 했다.

 

“너도 혹시 친딸 아닌 거 아냐?”

 

 

 

가위를 치켜들었다. 스극스극, 그 애의 형태를 따라 가위 날은 탭댄스를 추었다. 그 과정은 미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단순히 사진을 오려내는 것뿐인데. 그런데 왜 이렇게 식은땀이 나고 손이 떨리고 더딘지. 가위가 아가리를 딱, 다물자 그 애가 한낱 종잇조각으로 떨어져나갔다. 나는 작은 한숨을 잇새로 내보냈다. 나는 얼른 잘려나간 그 애를 베개 밑으로 치워버렸다. 갑자기 교과서를 넘기는 손길이 바빠진다. 그 애에게서 기억이 욕지기처럼 거꾸로 치민다. 나는 애써 재채기를 참는 사람처럼 이를 세게 악다물었다.

 

짜증나, 시발. 낮게 중얼거린 욕설이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게 해주었다.

 

그러다 순간, 나는 깜짝 놀라면서 입술을 위아래 내리눌렀다. 그 애가 하던 습관이 언제 내게 옮겨진 건지, 놀랐다. 그 애는 정말 짜증나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남들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목소리를 낮춰 욕을 실컷 내뱉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밥 먹으러 식당으로 가다가 갑자기 쉿쉿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나면, 나는 뭐하냐고 물었다.

 

그 애는 멋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욕하는 거야.

 

세상에 욕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아 짜증나! 씨발! 이렇게 하는 게 욕이지.

 

야. 내가 나 그렇게 했다간 엄마한테 맞아 죽어.

 

왜?

 

내가 그렇게 해봐라. 그러면 이틀도 안 지나서 인터넷에 윤혜연 딸 일진, 연관검색어 뜬 다니까. 거기다 우리 학교 애들도 욕할걸. 도덕 교과서 나온 애가 욕하고 다닌다고.

 

나 참, 지들도 욕하는데 뭔 상관이야?

 

어쨌든 그래.

 

그 애, 욕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여자애였다. 그 와중에 그런 걸 신경 쓰다니. 그런 거 하나하나에 자기감정을 억지로 숨기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 하는 생각을 누르는 다른 생각. 연예인 딸이니까, 당연한 거지.

 

생각해보니 도덕 교과서 속 그 애는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었다. 도덕 교과서 모델이었던 그 애는, 교과서 안에서든 밖에서든 좀체 욕을 하거나 짜증과 화를 내지 않았다. 그야말로 ‘도덕적’ 이미지를 굳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게 편하다고, 그 애는 말했다. 뭐 이렇게 저렇게 이슈 만들려고 나대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보다는, 그냥 조용하고 착한 애가 낫잖아.

 

 

 

2

 

한 10페이지 가량은 그 애가 나오지 않았다. 왜 우리는 도덕을 배워야 하는가, 올바른 도덕적 인성을 키워야 하는 이유, 같은 것들이 절절이 늘어뜨려 있었다. ‘쉬어가기’ 코너에 시 한 편이 나와 있었다. 타인과의 대화, 공감, 배려에 관한 단락이어서 그런지, 천양희 시인의 ‘참 좋은 말’이라는 시였다.

 

내 몸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혀.

 

그 애의 혀는 강했을까, 약했을까. 하지만 그 애의 혀는 옴짝달싹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묶여있었으니, 그게 강한지 약한지조차 가늠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혹시, 얘가 나한테 하는 칭찬이나 뭐 성격 좋게 말하는 것들도 다 사람들 의식해서 말하는 건 아닐까? 그게 다, 가식일 수도 있잖아. 이런 의문들.

 

오! 찾았다! 하는 무의식적인 탄성에 나는 좀 닥치고 있어, 윽박지르고는 가위를 찾아 아가리를 벌렸다. 어서 빨리 죄다 오려내서 없애야 한다, 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강박감이 이젠 숨은 그림 찾기 하는 양, 즐거움마저 주고 있었다. 98쪽의 그 애는 팔에 얼굴을 파묻고 선 채, 옆의 또 다른 모델 아이한테 위로를 받고 있는 모습이었다. 옆으로 시선을 비켜섰다.

 

‘내가 남에게 위로를 건넸거나, 위로를 받았을 때의 심정은 어떠했나요?’

 

이 뭔 개떡 같은 질문인지. 초등학교 수학교과서 문제 끝에는 항상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라는 물음이 붙는 것처럼, 이런 인간관계에서의 도덕, 따위를 배울 때는 꼭 저런 질문들이 기다리곤 했다. 내 경험을 끄집어내라고 종용 아닌 강요를 하고 있는 무례한 것들. 왜 내 사연을 이 신뢰 없는 교과서 활동 칸에 구구절절이 풀어내야 하는지. 다시 옆으로 시선을 한 걸음 뺀다. 어떤 아이에게 위로를 받고 있는, 그 애. 참으로 어색하고 낯익은, 이질적인 풍경이다. 과연 그 애를 위로했던 아이들 중 진심으로 위로를 건넸던 애들이 몇이나 될까. 그 위로하는 순간에조차 다른 인간들처럼 끊임없는 의문을 품고 그걸 캐내려는 고질적인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들이. 그러나 그 애는 한결같이 자신에게 신경 써주고 위로하는 아이들에게 고마워, 미안해, 고마워, 미안해....... 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물었다. 대체 뭐가 고맙고 뭐가 미안한 건지.

 

그냥.

 

그런 것도, 다 너 이미지 관리, 그런 거 하는 거야?

 

몰라.

 

나는 안 믿어. 알지?

 

몰라....... 그래, 알아.

 

새벽에 먹는 물은 훨씬 차가웠다. 기온이 그만큼 내려가니까. 덩달아 교과서도 더 차가워졌다. 냉장고에 넣은 것처럼.

 

사진 몇 장이나 오려냈다고 벌써 시간이 새벽 네 시를 넘고 있다. 내일 역사 수행평가 있는데, 망했다. 홧김에 그 애 원망 좀 해봤다. 차라리 내일 밤에 와서 알려주지, 왜 수행평가 있는 날 새벽에 와서 나를 괴롭히는 거냐고. 안 그래도 내신 등급이 바닥을 쳐서 대학도 못 갈 판인데 말이다. 그 애는 내가 중학교 때 공부 잘했다고 지금도 잘하리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공부는 자기가 더 잘했으면서. 나는 다시 교과서를 넘겼다. 교과서에 수두룩한 필기도 대부분 그 애 교과서에서 베낀 것이었다. 교과서 검사한다, 하면 바로 그 날 아침에 그 애 교과서를 빌려서 미친 듯이 빈 여백에 베껴 썼다. 그러면 국어선생님은 으레 이렇게 물었다.

 

“너 또 지은이 꺼 베꼈지?”

 

그러면 그 애는 씩 웃으면서 점수 깎으라고 옆에서 선생님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깎아요, 깎아요. 그렇게 말하는 그 애의 얼굴엔 여느 여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장난기가 굽실굽실 일렁였다. 말 하나하나가 남들 의식하는 가식적인 애, 라는 잠시 동안의 의문은 금세 풀려버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도덕 교과서에 나온 것하며, CF에 엄마와 함께 나온 것하며 가식적이다, 재수 없다, 엄마 백 믿고 설친다, 떠들면서 그 애를 등 뒤에서 몰아세웠다. 거기다 툭하면 ‘아빠’와 관련 있는 얘기를 꺼내 그 애의 반응을 살폈다. 일부러 너희 아빠는 뭐하셔? 물었다가 아 미안, 미안해, 이러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애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그 짓거리를 했으니, 그 애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에 이르렀다.

 

연예인 자식들은 다 이렇게 사는 건가.

 

그 애는 혼잣말하다시피 내 옆에서 중얼거렸다.

 

 

 

3

 

이번에 너 거기 케이블 예능 나왔더라.

 

한 달에 두 번 있는 동아리 시간이 끝난 후 내가 말했다.

 

그거....... 봤어? 사람들 잘 안 보는 건데.

 

뭘, 어제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찍고 내려오던데?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 애는 가타부타 말없이 책상정리만 하였다. 그 얼굴에는 감정을 좀체 가늠하기 어려운 가면 비슷한 게 덧씌워져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굳은 그 애의 표정이 그 가면을 밀어내고 드러나는 것이었다.

 

마음 바꾼 거야? 연예인 하기로?

 

아이들은 어제 실컷 떠들어댔다. 그거 갖고 오전 내내 그 애를 괴롭히기도 했다. 연예인 데뷔하려고 나온 거냐, 게스트로 나온 아이돌들 잘생겼느냐, 예쁘냐, 사인 받았느냐, 같이 사진 찍은 거 있느냐, 부럽다....... 라는 말로 끝나는, 아이들은 뒤돌아서서 그 애에 관해 쿵덕쿵덕 서로 다함께 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아무리 시청률이 1퍼센트도 나오지 않는 케이블이라 하지만, 요새는 다 재방송이나 다운 받아서 보고, 또 실시간 검색어에 조금이라도 오르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보니까. 그 애는 그런 생각을 못한 자신이 한심스러운지 얼굴에 점점 그늘이 겹쳤다.

 

아냐. 연예인 안 해. 내가 뭐 엄마가 연예인이라서 연예인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어제 나와서 엄청 잘하던데. 너 저번에 교과서 모델도 엄마 생일선물로 겨우겨우 한 거라며. 그런데 이거 나온 거면 애들 말처럼 너도 연예인 할.......

 

너까지 나한테 왜 그래? 내가 안 한다고 했잖아. 애들한테 그렇게 수십 번도 더 말한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오늘 애들한테 하루종일 나 시달린 거 몰라? 너까지 왜 그러는 거야? 너도 연예인 사인 받아달라고? 아니면거 뭐 욕할 거 있나 트집 잡으려고? 그것도 아니면, 너도 내 아빠가 누군지 궁금한 거니? 나도 모르는 내 아빠가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아!

 

 

 

무심코 그 애의 사진을 찾으며 넘기던 손이 그 애 앞에서 멈추었다. 그녀는 ‘토론하기-말 한 마디에 무너지는 사람들의 삶. 당신의 ’말‘ 한 마디는?’ 이라는 활동 옆에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심각한 얼굴의, 그 애가 마우스를 잡고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목은 거북이처럼 앞으로 빠졌고, 등은 휘었다. 그 애의 어깨까지 닿는 단발이 비스듬한 그 애의 눈가를 거의 가리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보고 있는 게 뭔지 보려고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그 애를 어루만졌다. 반질반질한 교과서 종이가 그 애의 죽음을 일순간 깨웠다. 이제는 곧 오려버릴 이 사진으로나마 만날 수밖에 없는 그 애를. 그 화면엔 아마 그 애에 대한 기사와 댓글로 엉망진창이겠지.

 

그 애, 지금은 자기 아빠가 누군지 알려나.

 

미안.

 

그 애의 목소리엔 울먹이는 듯한, 끓음이 자글거렸다.

 

미안해. 너는 아무 소리도 안했는데....... 그냥 내가 헛소리 한 거야.

 

아냐, 내가 쓸데없는 거 괜히 말해서 그래. 빨리 집에 가자.

 

그거 나간 건, 아빠 알려준다고 했어, 엄마가. 아빠한테 이렇게 잘 자랐다고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엄마하고도 둘이서 잘 지내고 있다고. 그래서 나간 거야. 근데 보긴 뭘 봐. 딸이 사람들한테 욕먹는 것밖에 더 보겠어? 이런 걸로 나 사는 거 보여주고 싶지도 않아. 보고 싶으면 직접 와서 보라 해.

 

그 애는,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바닥에 엎드려 정면을 바라보고 해맑게 웃고 있는 그 애의 얼굴이, 거북스럽다. 바로 가위로 잘라버렸다. 둥근 타원형으로 뻥 뚫린 교과서 한 장이 새벽바람에 펄럭거렸다. 이젠 가위질도 어느 정도 능숙해졌다. 벌써 8장정도 오린 것 같다. 처음의 그 울렁거림은 점차 가라앉았다. 그런데 그 애가 꿈속에 여러 차례 방문해 물었던 물음들이 다시금 내 속을 뒤집어놓으려고 한다. 나는 숨을 꾹 참고 몸의 모든 움직임을 정적에 가두었다. 머릿속을 깨끗이 비워내려 하며, 그 사이에 손은 그 애를 찾아 교과서를 뒤적이며 바쁘게 가위질을 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았어. 교과서 페이지는 2학기 중간고사 범위를 넘고 기말고사 범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동시에 그 애의 죽음을 향해.

 

 

 

4

 

도덕 교과서 속 그 애가, 도덕 교과서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한 것은 예능을 출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제일 처음 본 그 기사 제목, ‘성상납 리스트 Y양, 윤혜연으로 밝혀져’.

 

유명 스폰서들 간에 떠돌고 있는 성상납 리스트에 그 애 엄마의 이름이 수차례 오르내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예능 나왔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고. 남편에 대해선 일절 말 없더니. 결국 이런 더러운 거였구만.

 

집에 오자 엄마가 말했다.

 

에휴, 그러면 뻔하지, 뭐, 걔 아빠는 그 스폰서들 중 한 명 아니겠냐. 그러니까 여태껏 숨기고 있었던 거지. 그나저나, 어떻게 그런 애가 다른 교과서도 아니고 도덕 교과서에 나온다니? 애초에 다 가식이었던 거지. 예능 나온 것도 그렇고, 연예인 데뷔하려고 교과서 모델 한 것도 그렇고. 그 스폰서가 어디 출판사 사장인가?

 

나는 가만히 방 안에 틀어박혀서 생각했다. 그 애를. 그 애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그게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울고 있을까, 엄마에게 화를 내고 있을까. 페이스북을 열었다. sns에는 온통 그 애에 관한 얘기로 넘쳐났다. 제각기 기사 링크를 달고 그 아래 자기 말을 짤막하게 달아놓고 있었다. 그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별 일이 다 있네. 저 아줌마 만날 내가 사실 네 엄마야, 하던 분 아니심?

 

드라마 시청률 30퍼센트 넘었던데....... 이제 하락세 타려나. 아니면 하차?

 

얼마 전에 예능도 나오지 않음? 딸이랑 같이 있는 거 보기 좋았는데ㅎ 근데 이럴 줄은.

 

스크롤을 계속 내렸다. 그 애에 관한 얘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왠지 아빠에 대한 말이 한 번도 없다 했어.......

 

표면적으론 그 애 엄마를 뒷담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게 해서 태어난 그 딸’인 그 애를 욕하는 것이었다. 동정하는 듯 하면서 은연중에 멸시하는. 나는 종국엔 핸드폰을 내던져버렸다. 무서웠다. 어떻게 페이스북을 켜도 트위터를 켜도 그 애밖에 보이지 않는 건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시답잖은 웃긴 얘기와 사진들, 썰 같은 것들이 어서 그 애를 묻어버렸으면, 바랐다.

 

그 애에게 전화를 해볼까.

 

번호는 이미 외우고 있던 터라, 정신없이 손가락만 자판을 두드렸다. 아니면 카톡을 보내볼까. 아니지, 오늘 3G 없다고 했으니까, 문자로 해야 할 거야. 어디 홀린 것처럼, 나는 그 애에게 문자를 적었다. 몇 번을 지웠다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좋아한다고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베개 밑에서 오려낸 그 애 사진들을 한데 쓸어 모았다. 카드놀이 하듯, 그 사진들을 하나씩 손에 손으로 넘겨가며 훑었다. 웃는 모습이 더 많았다. 다른 교과서 모델들과 같이 가족사진을 찍은 것도 있고, 아빠와 손을 잡고 있는 것도 있고, 엄마와 함께 식탁에서 마주앉아 밥을 먹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이성 친구 간의 도덕’ 단락에서는 벤치에 남자친구와 함께 앉아있었다. 어색하게, 서로 조금 거리를 두고 앉은 모습이 영 귀여웠다. 남자친구 역할을 맡은 교과서 모델은(짜증나게도 나보다 더 잘생기고 키도 큰 애다.) 우물쭈물, 하는 얼굴로 팔을 어슷하게 그 애 어깨 쪽으로 두르고 있었다. 그 애는 그걸 못 본 척, 당황하고 수줍은 얼굴로 딴 데를 보았다.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실금 배어나왔다. 귀엽다. 저 남자애가 나였으면.

 

하지만 웃음은 밀랍처럼 굳어 싸늘하게 식어만 갔다.

 

교과서 그 애 사진들을 붙이고 짤막한 말이 적힌 종이가 칠판을 뒤덮은, 그때 점심시간이 기억난다. 지나가던 다른 반 애들까지 칠판에 몰린 아이들 틈으로 끼어들던 그때. 나는 그 애를 찾아 학교 온갖 구석을 다 뒤지고 다녔지만, 결국 혼자서 교실로 돌아오던 참이었다. 교실 앞뒷문이 다 활짝 열려 있었다. 마치 나더러 어서 들어가 보라는 듯, 교실은 그 뚫린 두 개 입으로 시끌시끌한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앞문으로 들어간 내 눈에 교실에 가득 메우고 있는 아이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칠판을 보고 웃고 떠들고 있었다.

 

뭐 보고 있는 거야?

 

아, 걔 그거. 알지? 연예인 딸 걔 있잖아, 너희 반.

 

칠판에는 교과서에서 죄다 오려낸 그 애 사진들이 어지럽게 나붙어있었다. 친절하게 그 애 사진 옆의 단락 제목도 같이 붙어 있었다. 하나 같이 그 단락의 제목들은 도덕적인 인간, 바람직한 가족의 형성을 말하고 있었다. 교과서 속 가족과 같이 찍은 사진에 눈길이 갔다. 그 애의 아빠 역할을 맡은 남자 모델의 얼굴에 누가 빨갛게 동그라미를 여러 번 겹쳐 그려 강조했다. 그리고선 바깥으로 꼬리를 빼 이렇게 적어놓았다.

 

‘이 사람 B 스폰서 회장임ㅋㅋ’

 

그 옆 엄마 역할을 맡은 교과서 모델 여자에게도 똑같았다.

 

‘연예인으로 뜨려고 몸 팔다가 어쩌다 생긴 딸 감당 못하신 분.’

 

그리고 그 애에게도.

 

‘저기, 내 아빠 누군지 아는 사람 있니?’

 

아이들은 계속해서 어디선가 인터넷 기사를 뽑아다가 칠판 빈 여백을 틈틈이 메웠다. 기사 제목에 ‘성상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기사가 없었다. 단란했던 예능 첫 출연의 그 애, 그 전에 도덕 교과서 모델로 처음 자신을 알린 그 애, 가 연예인 성상납 기사 속 사진으로 쓰이고 있었다. 기사 내용과 기사 속 사진은 그 괴리감이 너무나도 커, 그 애의 인생을 정확하고 요악적으로 나타내주는 듯했다. 사진처럼 저렇게 행복했는데, 아래 기사 내용처럼 망했지.

 

엄마가 성상납 추문에 휘말린 그 애가,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 애가, 교과서 안에선 더없이 행복하고 단란한 평범한 가족의 모습으로 나왔다는 것에 사람들은 아이러니해했다. 어떤 사람은 저 교과서에 나온 저 애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 이번 일이 어느 정도 예견된다고 했다. 처음엔 단란한 가족사진으로 시작하더니, 갈수록 같이 있는 사람이 줄고 종내에는 혼자 있는 모습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등을 맞대고 싸운 듯한 모습도 있다고.

 

나는 그 생각이 나자마자 오린 사진들을 뒤져 그것을 찾아냈다.

 

있었다. 엄마와 등을 맞대고, 얼굴을 잔뜩 찌푸린 그 애가 있었다.

 

그 애는 아무 말이 없었다. 5, 6교시에 나타나지 않았던 그 애가 7교시, 도덕시간이 끝나기 15분 정도 남았을 때 나타났다. 선생도 아이들도 뒤늦게 수업 도중 들어온 그 애를 상관 쓰지 않았다. 내 옆에 앉은 그 애는, 끝나기 5분 전에 아 다 끝났다.......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나는 불안함 마음에 물었다. 그 애 표정은 평안했다. 그저 이 모든 일들이 단순히 꿈에 불과했다는 것처럼. 수업 다 끝났잖아. 그 애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 그렇지, 그래, 내일 주말이지....... 주말, 주말. 너 주말에 뭐할 거야? 내가 물었다. 그 애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아무 것도, 그냥 집에 있을 건데, 말했다.

 

나는 그 애가 무슨 말을 할 줄 알았다. 자기 엄마에 대해 떠도는 그러한 소문들, 소문이라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믿어버린 ‘진실’에 대해서. 그러나 그 애는 다른 애들처럼 종례 때 앞에 놓인 핸드폰을 빨리 가져오기 바빴고, 심지어 ‘너 22번이지?’하고 내 것까지 가져다주었다. 아이들은 앞에서 이것저것 종례사항에 대해 말하는 담임의 말은 귓등으로 받아내고, 핸드폰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뭘 저렇게 열심히 볼까. 뭘 저렇게 바쁘게 엄지손가락을 두드릴까. 네이버를 켰다. 메인 뉴스란 네 번째 줄에 ‘연예인 성상납 리스트 추문...’ 이라는 기사가 떠있었다. 나는 그 애를 힐끗, 곁눈질했지만 그 애는 게임하기 바빴다. 결국 파산으로 졌다면서, 그 애는 게임 화면을 보여주었다.

 

왜 아무 말이 없어.

 

혓바닥 아래 숨겨둔 말은 점점 침샘을 타고 아랫니를 기어 넘고 있었다.

 

그 순간 그 애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자못 심각한 표정이었다.

 

나는 혀를 입천장에 밀착시켰다. 무슨 말을 할까. 내 문자는 봤으려나.

 

야, S카드 어떻게 얻어? 너 두 개나 있지 않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빤히, 그 애를 바라보았다. 그 애는 왜 그렇게 자기를 기분 나쁘게 쳐다보느냐며 고개를 돌렸다. 딴 데 가지 말고 곧장 집으로 꺼져, 라는 담임 말에 아이들이 우르르 앞문 뒷문으로 쏟아져나갔다. 그 애 역시 그 무리 중의 하나였다. 나는 청소당번이었지만 그대로 가방을 메고 그 애를 따라갔다.

 

나랑 주말에 영화 보자, 이미테이션 게임 말야. 그거 재밌대.

 

그거 내용 별로야.

 

그 애가 핸드폰 위로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왜? 그거 막 수학문제 푸는 거 아냐, 위대한 수학자 인생 이야기.......

 

알아. 그러니까 그 인생 얘기가 별로라고.

 

어떤 얘긴 줄은 알아?

 

아니까 얘기하는 거지.

 

뭔데?

 

그 애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자기가 수많은 사람들 살린 영웅이란 거 사람들은 모르고, 그냥 동성애자로 몰아서 정신병자로 만들잖아. 그리고 결국 자살하는 거. 맞지? 다 뻔한 내용이 뭐가 재밌어.

 

sns와 블로그에는 그 애 엄마에 관한 패러디물까지 등장했다. 미안해, 내가 사실 네 엄마야....... 하는 그 애 엄마 연기가 나오자마자 다른 드라마 내용이 튀어나왔다. 그럼 아빠는? 그리고 그 애 엄마가 드라마에서 같이 부부로 연기했던 남자배우들이 차례차례 슬라이드 쇼로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시트콤에 나온 장면이 나타난다. 여고생 여주가 바닥에서 통곡하듯 울고 있는 모습. 그리고 궁서체 자막이 지나간다.

 

‘지금 그 딸이 제일 불쌍함....... 자기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거잖아. 만날 출생의 비밀 운운하던 엄마가 진짜 출생의 비밀 터뜨리는 바람에. 이름이 뭐였지?’

 

 

 

5

 

이 사진들을 어떻게 할까, 생각한다. 다 찢어서 변기에 넣고 물 내려버릴까. 아님 불태워 버릴까. 제일 마지막 자른 사진으로 눈길이 향한다. 혼자 뒤돌아서있는 모습이다. 얄팍한 어깨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처져있다. 적갈색을 띤 머리카락은 어깨 근처에 힘없이 늘어뜨려 있다. 손을 가져갔다. 종이 위의 비닐 코팅이 만져진다. 그 애는 어디로 간 걸까. 왜 간 걸까. 더 세게 문지른다. 그러나 손끝에 닿는 건 그 애의 머리카락이 아닌, 사진 색마저 연하게 바래지는 종이 코팅뿐이다. 그 애의 목소리가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린다.

 

다 오렸으면, 갖다 버려. 다 버리라고.

 

손끝이 쓰라릴 정도로 사진을 문질렀다. 조금만, 조금만 더 어떻게 하면, 지금은 아마 땅에서 썩어 고운 흙이 되었을 머리카락이 만져질 것 같았다. 그 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는 나의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아직도 그게 기억나니.

 

그 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 목소리만이 새벽 여명을 타고 떠돌아다녔다.

 

모든 게 다. 기억 나. 너는 내가 물어봤을 때 대답한 것처럼 주말 동안 집에 있었지. 그래, 그러면 월요일에 교복을 입고 집에서 나와서 버스에서 나를 만났다던가, 아니면 학교 후문 앞에서 만났거나,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아니면 교실에서, 만났어야 해. 근데 너는 그때 없었잖아.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나와 마주치지 않았어. 그리고 너는 네가 오는 대신 흰 꽃 하나로 대리 등교 했잖아. 얼마나 편했니? 몸이 안 와도 꽃 한 송이가 거의 한 달 넘게 너 대신 학교를 다녔는데. 애들이 네가 교과서 모델로 나온 그 도덕 교과서, 막 귀신 나올지도 모른다고, 부정 탄다고 분리수거함에 버리거나 뒷산 공원에서 태울 때도 너 집에 있었잖아. 아니, 그때는 병원에 있었던가?

 

버릴 거면 빨리 버려. 헛소리 하지 말고.

 

너희 엄마 이번에 다시 드라마 나오더라. 어제 잠깐 틀었는데, 봤어.

 

사진을 만지던 손길이 멈추었다. 손가락으로 문지른 부분이 하얗게 변색되어 그 애의 모습이 거의 사라져있었다. 양쪽 가장자리만, 희미한 실루엣처럼 그 형태만을 띠고 있을 뿐이었다.

 

막 너 얘기도 하고 그래, 어디 연예 프로그램에 나와서. 미안하다고.

 

관심 없어. 사진이나 좀 버려줄래? 그래야 나도 갈 거 아냐.

 

그냥 뭐, 사람들은 이제 루머니 뭐니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그리고 이젠 그 Y양이 너희 엄마가 아니라 다른 연예인일 수도 있다는, 추측성 기사도 많고.

 

엄마는 그럴 사람 아냐.

 

근데 왜, 왜 네가 죽은 건데? 그리고 너희 엄마가 정말 너한테 미안하다면 왜 지금 TV에 또 나오는 거지?

 

너한테서 이런 말 들으려고 사진 있는 데 가르쳐준 거 아냐.

 

나도 그냥 사진이나 갖다버리려고 네 말 듣고 이 사진 꺼낸 거 아냐.

 

나는 가만히 그 애의 목소리에 항변하다가, 어느 순간 손에 들린 사진들이 눈앞을 메웠다. 그 성상납 리스트가 진짜냐고, 아니면 단지 뜬소문에 불과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말해야 했다. 그건 다 거짓이라고, 그저 음모론 비슷한 거에 지나지 않다고. 그래서 너는 엄마가 남자들이랑 몸 뒤섞다가 어쩌다 생긴 애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 애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서지은! 서지은! 그 애의 이름 외친 내 입이 민망할 정도로 사위는 침묵에 잠겨있었다.

 

 

 

그 애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이 제일 먼저 알았다. 경비, 그리고 119 구급대원들, 네티즌들. 그 애 엄마는 드라마 오후 촬영을 마치고 나서야 그 애가 죽은 것을 알았다고, 발기발기 찢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곳에도 기자들은 들이닥쳤다. 조문하러 온 우리 반을 밀치고 들어선 기자들은 그 애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 애는 흰 꽃 속에 앉아 기자들에 의해 화보 아닌 화보를 찍었다. 그 애 엄마는 모든 걸 다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기자들에게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그 말을 갖고 기사들은 더 서로 먼저 추측하기에 앞장섰다.

 

‘모든 걸 다 말해주지 못해... 윤혜연, 딸 장례식장에서.’

 

나는 조문을 가지 않았다. 그 애 혼자 흰 꽃으로 있는 교실을 지켰다.

 

생각해보면, 그 애는 사진으로 몇 년 동안이나 내 옆에 있던 셈이었다. 왜? 나는 애들이 귀신 들릴 것 같다며 그 교과서들을 죄다 버릴 때 같이 버리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제 와서 뒤늦게 이렇게 사진을 죄다 오려내서, 뭐하자는 건지. 한심스러웠다. 그 애 사진 뭉치를 들었다. 버리려고 쓰레기통 앞에 섰다. 별로 버릴 곳으로 마땅찮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엔 화장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변기에서 올라오는 지린내와 똥내가 문을 닫고 돌아서게 했다. 최소한 그 애를 변기 속에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 애는 더럽지 않으니까. 그럼 어디다 버릴까. 계속 나는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는 단지 쓰레기장으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주황색 덮개의 커다란 일반 쓰레기통을 발견했다. 나는 아무런 미련 없이 그것을 뚜껑 사이로 밀어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완전히 굳어버린 손에, 나는 엉거주춤 이상한 자세로 쓰레기통 앞에 선 자세가 되었다.

 

버리라며, 버리라면서 왜 못 버리게 하는 건데?

 

나는 그렇게 그 애한테 소리쳤다. 그러나 그 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꿈에 그 애가 찾아온 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죽 혼자였다. 그 애는 없었다. 나는 쓰레기통 앞에서 물러나 쭈그려 앉았다. 그 애 앞에서 눈꺼풀은 잘 견뎠다. 북받치는 울음을 몸 속 깊숙이 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부옇게 술렁이는 시야였다. 손에 들고 있는 그 애의 사진들도 따라서 희미해졌다. 처음엔 그 형태가, 나중엔 그 애 얼굴이 희뿌연 눈앞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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