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정적

심너울

 


나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튼 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휴대폰으로 드라마를 보았다. 일본 아저씨가 이곳저곳 식당을 돌아다녔다. 그가 이것저것 먹는 한가한 장면들이 지나갔다. 드라마의 백미는 동네에서 돌아다녀 보면 진짜로 있을 만한 곳에 들어가서 진짜로 먹을 수 있을 만한 음식을 먹는 것에 있었다. 배우는 평소에 내가 아무 신경도 안 쓸 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바삭바삭한 튀김을 씹는 모습에 전율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소리가 죽으니 드라마의 본질도 함께 죽었다. 나는 휴대폰의 볼륨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 보았다. 소리 바가 나타났지만 아무 차이가 없었다. 아직 2년도 안 지났는데 벌써 망가졌나? 나는 궁시렁거렸다.

 “-- --?”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허리를 일으켜서 침대 위에 앉았다. 이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입을 벌리고 소리를 냈다.

 “- - - - - - -“

 목에서 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들리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에 연결된 헤드셋을 썼다. 컴퓨터로 아무 음악이나 재생했다. 들리지 않았다. 나는 볼륨을 최대로 높여보았다. 들리지 않았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삐 하는 이명이라도 들리길 기대했다. 들리지 않았다. 그 어떤 청각적 자극도 느낄 수 없었다. 이명도 없었다. 귀가 꽉 찬 느낌도 없었다. 현기증도 없었다. 어떤 갑작스러운 감각도 없었다. 갑자기 소리가 사라졌다.

 나는 무서웠다. 몇 주 전에 읽은 책이 기억났다. 그 책에서는 뇌의 한 부분이 망가지면 그 부분에 대한 기억도 사라진다고 했다. 작가는 모든 색각을 갑자기 잃어버린 화가를 소개했다. 그 화가는 빨간색과 초록색과 파란색을 기억조차 할 수 없게 됐다.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게 말이다. 내 뇌의 청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망가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충격적이었다.

 나는 제일 좋아하는 뮤지컬의 메인 넘버를 떠올렸다. 가사와 리듬과 박자를 기억했다. 나는 노래를 불렀다.

 “-- -- -- --, - - -, - - - ----?”

 내가 부르는 노래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소리를 듣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소리가 어떤 것인지 기억할 수 있었다. 목이 박자와 리듬에 맞게 진동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무서웠다. 소리를 담당하는 뇌의 어떤 본질적인 부분이 망가진 것이 아니더라도, 귀가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면? 뇌의 표면적인 부분이 좀 어떻게 되어버렸다면?

 나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지 생각했다. 나는 이어폰을 거의 쓰지 않았다. 나는 사실 음악 자체를 별로 즐겨 듣지 않는다. 최근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 어떤 전조도 없었다. 매일 밤 먹는 수면제 때문인가?

 인터넷에 수면제의 부작용을 검색하려고 했다. 수면제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면제의 약 위에 쓰인 약어와 모양을 검색창에 쳤다. 내가 먹는 것과 같은 약이 나왔다. 부작용에 난청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 하지만 울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병원에 가야겠다.

 옷을 입었다. 내팽개친 휴대폰은 바닥에 뒤집혀 있었다. 휴대폰을 집어들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지갑도 챙겼다. 나는 문 밖으로 나왔다. 현관 밖으로 나서자 엄청나게 뜨거운 햇빛과 습기가 나를 맞았다. 썬크림을 바르지 않은 것이 기억났다. 그게 대순가?

 나는 거리로 나섰다. 12시였다. 하늘 위에 뜬 해가 마포구 변두리에 옹기종기 모인 주택들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나는 무작정 도로를 가로질러 뛰었다. 그때 옆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트럭이었다. 급히 멈춘 것처럼 보였다. 경적을 울린 것 같았다. 소리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귀를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차가 다가온다는 것도 알 수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 주저앉아 펑펑 울고 싶었지만, 나는 주위를 계속 돌아보면서 걸었다. 그러다 어떤 사람들과 눈이 잠시 마주치기도 했다. 사람들은 다 어딘가로 급히 걸어가고 있었다.

 내 뇌가 어떻게 된 것이든, 귀가 어떻게 된 것이든, 작은 문제 같지 않았다. 작은 병원으로 가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이 증상이 영구적으로 유지될 것 같아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연세대 대학병원까지 가기로 마음먹었다. 네 횡단 보도만 건너면 닿을 수 있는 짧은 거리였다. 나는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빠르게 걸었다.

 신촌의 번화가로 들어서자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꽉 차 있었다. 이 더운 날씨에,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은 전부 혼란스럽게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끔찍한 더위에 인형탈을 입고 춤추던 사람들은 탈을 벗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게 앞에서 마이크 들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던 사람들도 마이크를 내려놓은 채였다. 주저 앉은 사람들도 보였다.

 그때 어떤 사람이 아이패드를 들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아이패드의 내용을 볼 수 있도록 360도로 계속 돌았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 곳으로 쏠렸다.

 「지금 다 안 들려요」

 아이패드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지금 다 안 들려요. 그 말이 옳았다. 신촌 번화가의 입구에서 대학 병원까지는 차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끼어들어갈 틈이 없었다. 병원 앞의 모습을 보고, 이 불가해한 상황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도로에 멈춰선 차들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뭔가 크게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을 알게 되자 나는 갑작스레 허탈해져서 웃었다. 내 익숙한 웃음이 들리지 않아서 더 어색해졌다. 이제야 끔찍한 더위가 느껴졌다. 더위와 공포 때문에 땀을 너무 흘렸다. 습기 때문에 전혀 마르지 않아서, 찜통 안에 있는 것 같다는 진부한 비유가 그대로 맞았다. 소리고 자시고 일단 땀이 좀 말랐으면 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고 근처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휴대폰에는 엄청난 수의 연락이 와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룹 채팅방에서 “너희도 안 들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두 너무 무서워했다. 그걸 하나씩 챙겨보다가 카페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곳에 들어가니 싸늘한 냉기가 나를 반겼다.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좀 있다가 상황을 눈치 채겠지. 나는 적당히 편해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고 생각하니, 무서움이 덜했다. 그리고 정말 시원했다.

 그런데 그룹 채팅방마다 반응이 달랐다. 근처에 사는 친구 몇몇이 모이는 방에는 몇몇 친구들이 끝없이 무섭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학번에 있는 동기들이 전부 있는 방은 사람들마다 반응이 다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말이야, 병원 가 봐 빨리’ 같은 말을 했다. 또 어떤 친구들은 ‘아무것도 안 들린다. 무섭다. 너도 그러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이쯤 되자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들리고 어떤 사람들은 안 들리는 건가?

 난 잠시 이게 무슨 종교집단에서 말하는 휴거인지 고민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종교 동아리 생활을 가장 열심히 하는, 그래서 좀 다가가기 꺼려지는 애 한 명이 너무나 무서워하고 있었다. 종교랑 가장 멀어보이고 틈만 나면 음담패설이나 하는 더러운 놈은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었다.

 애들이 말하는 것 봐서는 아무 도움도 얻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 재난 문자였다.

 「[행정안전부]

 마포구, 서대문구 일대 정적.

 해당 지역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상현상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운전 자제 요망, 현재 해당 지역 시민들은 안전한 곳에서 대기 바랍니다.」

 


일주일이 지났다. 정적은 여전했다. 사람들은 마포구와 서대문구를 정적 구역이라는 이름으로 싸잡아 불렀다. 정부는 가용 가능한 모든 인력을 여기에 쏟아 부어서 안전 관리를 시작했다. 그래도 소리가 없으니 온갖 일들이 일어났다.

 일주일 동안 갑작스러운 침묵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 일단, 마포구와 서대문구를 빠져나가면 소리가 들렸다. 그 구분은 정확히 행정상 경계 그대로였다. 가양대교, 성산대교, 양화대교, 서강대교를 지나면 반쯤 지났을 때 갑자기 소리가 뚝 끊기거나 확 풀려났다.

 인왕산 정상은 서대문구와 종로구에 걸쳐 있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조금 걸으면 모든 소리가 멈추고, 동쪽으로 조금 걸으면 온갖 소리가 들렸다. 덕에 인왕산에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몰리게 되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어색한 말소리를 내는 것을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보면서 즐기는 놀이가 유행했다.

 연구자들은 이 인왕산 경계를 보면서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구역이 어디서 적용되는지 연구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경계를 기준으로 해서 저 하늘 높이부터 지구의 중심까지 이어진, 찌그러진 원뿔 모양이 정적 구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지구가 태양을 빙빙 공전하면,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무한히 넓은 구역이 엄청난 속도로 별의 바다 속을 스쳐 지나갈 것이다. 갑자기 소리가 끊기는 것도 충분히 이상하지만, 그건 너무 이상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사람들은 헬기를 하늘로 높이 올렸다. 고도 1000m부터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이 구역이 어떻게 끊기는지 알아낸 사람들은 땅 속으로 시선을 기울였다. 사람들은 난지도 근처에서 굴착기로 땅을 파고 또 팠다. 지하 1000m부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일관적인 점이라는 데에서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정적 구역 밖의 사람들 중에서도,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이상 현상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았다. TV로 이런저런 생방송을 보던 사람들이었다. 우연인지 무엇인지, 마포구에는 꽤 많은 방송사가 있다. 아나운서들은 계속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자기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깜짝 놀랐다. 프로정신을 발휘해 끝까지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굉장히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영상들이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돌면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그것을 보자마자 꺠달았다. 정적 구역 내에서 소리가 나긴 하지만, 단지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적 현상이 일어난 이후에 녹음된 소리들이 전파를 탄 것 아닌가.

 당장 수많은 설비를 옮길 수 없었던 방송사들은 지방 방송사의 시설을 썼다. 아니면 오랜만에 후시녹음을 하게 된 방송사도 있었다. 후시녹음의 기술은 많이 실전되어서, 이제 전설이 된 늙은 방송인들과 성우들이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사태의 전말이 원인 빼고 드러나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정적 구역을 떠났다. 수도권 시민들은 갑작스레 치솟는 집값에 환호했다. 그러다 보니 뜬금없이 대통령 지지율도 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정적 구역의 빈 집들을 닥치는 대로 사서 모으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부동산이란게 뭔가 하는 회의에 빠졌다.

 나는 조용하게 살다 가고 싶었지만, 이런 조용함은 영 달갑지 않았다. 나는 신촌에 있는 학교에 묶인 인생이었다. 적어도 졸업장을 받기 전 까지는 이 조용한 동네에서 살아야 했다. 학교는 대책이 세워질 때까지 휴교한다고 발표했다.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있을까?

 이 정적 현상이 언제 끝날지 궁금했다. 아무도 모르는 문제였다.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것 때문에 뭔가 커다란 일을 했다가, 갑자기 현상이 끝나면? 그럼 세금 멍청하게 썼다는 온갖 폭격을 받고 침몰하는 것이지. 그냥 손 놓고 있는데, 현상이 끝날 기미를 안 보이면? 그럼 이런 중요한 안건에 세금을 안 썼다는 폭격을 받고 침몰하는 것이고.

 수능을 다시 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인턴을 하기에도 자리가 없는 8월의 어느 하루였다. 세상이 나를 집요하게 괴롭힌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옥상에 올라가 정적에 싸인 동네를 바라보며 담배 피우는 나쁜 버릇만 들었다. 

 소리가 멎은 이후로 이른 시간에 일어나기가 참 힘들었다. 알람이 울려도 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가 갑자기 휴교해서 일찍 일어나도 할 일은 없었다. 그래도 오후 두 시에 일어나고 하면 정말 기분이 끔찍했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을 뺨 밑에 놓고 옆으로 엎드려서 잤다. 아침마다 뺨에 울리는 진동을 느끼며 깼다.

 많은 친구들이 지방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본가로 돌아가거나 했다. 나는 보증금 때문에 계속 신촌에 살았다. 집주인은 웃는 표정이 참 보기 좋았었는데, 이제 그는 볼 때마다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곧, 한적한 번화가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길거리에 경찰들이 정말로 많았다. 멍하니 서서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그들이 가련해 보였다. 그러다 월급 한 푼 못 버는 내 신세가 더 가련하다는 걸 깨달았다.

 가끔씩 소리가 그리우면 서강대교를 건넜다. 따릉이를 타고 서강대교를 반쯤 건너면, 일시정지한 음악을 재생하는 것처럼 갑자기 소리가 탁 트였다. 마포구의 경계를 넘어서면 마포구 안의 소리가 경계를 타고넘어 흘러왔다.

 익숙해지고 나니 정적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옛날에 들었던, 완전히 방음되는 방에 들어가면 사람이 미쳐버린다고 하는 이야기가 기억났다. 꽤 위험하긴 했지만, 집중이 잘 되고 잠이 잘 오는 점이 좋았다. 침대 위에 누워 눈을 감으면 잠시 세상과 접속을 끊은 기분이었다. 어차피 구역 밖으로 나가면 소리는 돌아오니까 괜찮았다.

 

 


찜찜하고 적막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자주 가던 카페가 문을 닫았다. 카페 주인한테 필담으로 주문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아쉬웠다. 손님이 없어서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을 충전할 만한 곳이 필요했다. 마카롱과 홍차가 먹고 싶었다.

 나는 골목길들을 쏘다니며 영업하는 카페를 찾아다녔다. 잘 쏘다니지 않는 구석에 카페가 있었다. 나는 그 곳에 들어갔다. 카페에는 손님이 몇 명 구석진 데에 앉아 있었다. 어떤 젊은 여자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다행히 마카롱도 있었다. 가격은 꽤 저렴했다. 나는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나를 보고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휴대폰에

 「블루베리 마카롱, 바닐라 마카롱이랑 홍차 차갑게 주세요.」

 하고 써서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을 달라는 뜻 같았다. 왜 그러는 지는 몰라도, 나는 내 휴대폰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거기에 뭔가 타이핑해서 보여주었다. 내 휴대폰에는

 「수화 할 줄 모르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살면서 처음 받는 질문이었다. 나는 약간 당황해서는, “그래야 하나요?”라고 말할 뻔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그녀가 웃었다. 웃긴가? 뭐가 웃기지?

 그녀는 자기 휴대폰을 꺼내서 뭔가 도도도 쳐서 내게 보여주었다. 그녀의 휴대폰에는

 「여기는 원래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 단체가 세운 비영리 수화 카페에요. 이런 일이 나니까 비장애인 분들도 오시네.」

 하고 적혀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죄다 뭔가 손짓을 많이 하고 있었다. 이제야 그게 수화인 것을 알아보았다. 민망했다.

 그녀는 한 자리를 가리켰다. 그 곳에 앉으라는 뜻 같아서 가서 앉았다. 조금 있으니 그녀가 쟁반에 마카롱 두 개와 커피를 담아 가져왔다.

 마카롱을 입에 넣어서 씹었다. 바삭하게 부스러지는 표면, 부드럽고 달디단 크림. 커피를 입에 곧장 흘려넣었다. 달콤하고 씁쓸한 맛, 식감까지 참 좋았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씹고, 마시고, 넘기는 소리가 없는 게 문제였다. 소리를 잃으면 먹는 재미조차 줄었다.

 카페의 벽에는 카운터를 보던 여자 사진이 인쇄된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녀의 사진 밑에는 수화 기초반, 중급반, 고급반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진 속의 그녀는 머리를 짧게 친 채로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표정으로 ‘수화 그거 별거 아니니 신청해봐’라고 웅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정적 구역에 묶여 살아야 하는데, 수화를 배워 볼까.

 이 곳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요즘 카페들은 죄다 천장을 시원하게 노출하고, 벽에 아무런 마감재도 바르지 않는다. 넘어지면 크게 다칠 것 같고 해서 정말 싫었다. 커피에 횟가루가 들어갈 것 같기도 했다. 참 이상한 유행이다. 그런데 이 장소는 바닥이나 벽이나 천장이나 깔끔한 타일로 잘 처리되어 있었다. 아주 깨끗하고 조용한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당연히 조용하군.

 쟁반에 남아 있는 것들을 모두 먹었다. 나는 휴대폰에 이렇게 적었다.

 「저 수화 기초반 들고 싶은데요.」

 그런 다음 나는 카운터에 있는 그녀에게 휴대폰을 가져갔다. 그녀는 그 글을 읽고, 나를 한 번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메모지 하나를 꺼내더니, 펜으로 글을 썼다.

 「기초반은 사람이 없어서 안 열린 지 꽤 됐는데, 잘 됐네요. 다음 주 수요일 오후 8시에 오세요.」

 그녀가 건넨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녀의 글씨는 인쇄한 고딕체 마냥 똑바르고 세련됐다.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기초반 개강까진 어정쩡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난 이 동네는 참 심심했다. 새벽에도 휘황찬란하던 신촌의 빛나던 가게들은 이제 낮에도 텅 비어 있었다. ‘갑자기 시작되었으니, 갑자기 끝나지 않을까’ 하던 사람들의 기대가 하나씩 꺾였다. 많은 가게들이 폐업했다.

 그 동안 정적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하나 드러났다. 그러니까, 사람들만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신기한 현상을 보러 온 서양의 한 조류학자가 가장 먼저 알아낸 것이었다. 그녀는 까치들의 영상을 찍은 다음 정적 구역 밖에 나가 관찰했는데, 새들은 전혀 소리를 박탈당한 모습이 아니었다. 이후 몇 가지 정밀한 실험 후에,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은 잘만 듣는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 이상한 일이 사람들한테만 일어난다니까, 또 여러 호사가들이 나섰다. 세상의 무엇이든지 좀 신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방송에 많이 나왔다. 과도하게 종교적인 사람들이 신이 나서 종말이니 심판이니 하는 단어들을 주워섬겼다. 주말의 공포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나올 법한 헛소리를 심리학이라는 딱지를 달고 나와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방송에 꼬박꼬박 자막을 달아 주는 것이 우스웠다.

 수화 기초반이 열리기 전부터 갈 곳 없던 나는 매일 그 카페에 들렀다. 처음 들렀을 때에는 두세 명의 손님과 그녀가 있었는데, 날이 갈수록 손님이 늘었다. 용기를 내서 몇몇 사람들과 필담을 해 보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원래 듣지 못한다고 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정적 구역 뉴스를 보고 이 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침묵이 내린 후에 신촌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우울함이 서려 있었다. 소리가 박탈된 이 공간을 모두 떠나고 싶어했다. 카페 속의 사람들은 밖의 사람들과 달랐다. 소리가 없는 삶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으니까.

 강남에서 이 곳으로 이사를 온 한 사람은, 사실 밖에서 약간의 소리는 들린다고 내게 알려줬다. 나는 의아해져서,

 「그럼 이 조용한 곳을 찾아 오는 이유가 뭐에요?」

 라고 물었다. 그는 조용히 웃으면서 메모지에 글을 썼다.

 「밖에 있으면 들리긴 해도 귀에서 삐 소리가 엄청나게 나요. 그래서 나는 아무 소리도 없는 여기가 좋아.」

 그걸 읽고 나는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소리를 내긴 냈다.

 적막이 이 동네를 찾아오기 전에, 나는 아는 청각 장애인이 한 명도 없었다. 갈 수록 카페에 사람들이 많아져서, 사실 조금 놀랐다. 그 사람들 중에는 다가가기 힘든 사람들도 많았지만, 평소에 만났으면 정말 친해지고 싶었을 사람들도 많았다.

 가끔은 구석에 앉아 카운터를 보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했다. 최근에 손님이 많아지니 굉장히 기뻐 보였다. 며칠 전에 처음 본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행동거지가 우아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흡족해지는 사람이었다.

 수화를 빨리 배우고 싶었다. 꽤 긴 기다림이었다.

 

 


수요일이었다. 카페는 오후 8시가 되면 문을 닫았다. 그 전까지 폐점 시간까지 있다가 카페를 나섰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짧은 머리, 세련된 글씨체, 우아한 행동을 가진 그녀가 마감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카페 내부를 정리한 그녀는 피곤한지 잠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숨을 크게 쉬었다. 그 다음에 그녀는 백지 하나와 펜 두 개를 들고 내 앞에 앉았다. 그녀는 내게 파란 펜 하나를 건네고, 검은 펜으로 글을 쓴 다음에 종이를 내 방향으로 돌렸다.

 「비장애인이신데, 왜 수화를 배우려고 해요?」

 나는 잠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써야 좀 비장하고 멋있어 보이려나, 했다가 바보 같은 짓을 할 것 같아 그 생각은 접었다. 인쇄된 것처럼 또렷한 글자 밑에 내 삐뚤빼뚤한 글자를 적으려니 약간 민망했다.

 「제가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근처에 아는 청각 장애인 분이 한 분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여기 있으니까 다들 막 대화하시는데, 저는 막 되게 불편하게 이렇게 필담 나눠야 되잖아요. 제가 학교를 여기 근처 다녀서 어차피 여기 계속 살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배워야죠, 뭐.」

 글로 쓰면 말로 하는 것보다는 나을 줄 알았는데, 더듬거리지만 않았지 긴장이 눈에 보이는 것은 똑같았다. 내가 종이를 돌려 보여주니, 그녀는 언뜻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다시 그 깔끔한 글씨를 적어서 내게 보여주었다.

 「쉽지 않을 거예요.」

 「휴교도 하고 해서 되게 심심해서요. 여기 있는 분들 좋은 분들도 많은 것 같고.」

 「좋아요. 그럼 절대 중간에 그만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물론이죠.」

 나는 ‘물론’ 위에다가 작은 별을 그렸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어두운 조명의 노란 빛이 그녀의 눈동자를 점점이 수놓고 있었다. 만약 소리가 들린다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는 순간이었다.

 수화는 굉장히 어려웠다. 

 나는 수화라는 게 뭐, 그냥 손가락으로 한국어 발화를 흉내내는 것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의 모양, 위치, 움직임, 몸의 다른 부분의 움직임까지, 수화는 성대를 제외한 몸의 모든 부위를 이용한 강렬한 표현이었다. 몸짓마다 단어도 있고, 문법도 있었다. 특히 문법은 한국어와 아주 달랐다.

 물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니, 꽤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신조어를 표현하는 방법이 있을까. 새로 만들어지는 단어는 수화에서 바로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튜브’ 같은 단어가 있으면 이미 단어가 있는 ‘유’와 ‘튜브’로 나눠서 표현했다. 

 1년 전에 스웨덴어가 문법이 영어랑 비슷해서 쉽다는 소리를 듣고 잠시 공부했던 적이 있다. 2주일 하고 때려쳤다. 그래도 한국 수화인데 스웨덴어보다 쉽겠지, 하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문화의 장벽보다, 감각의 장벽이 훨씬 높았다.

 말에 뉘앙스가 있는 것처럼, 수화에도 거의 같은 몸짓에서 약간의 변형이 큰 뜻의 차이를 만들었다. 그녀는 나보다 특출나게 시력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을 관찰하는 능력이 기가 막히게 뛰어났다. 그녀와 대화하면 내 작은 버릇들을 꽤 많이 간파하곤 했다. 나도 잘 모르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내 수화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 쓸데없는 기대가 돼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적막한 설렘의 밤이었다.

 하지만, 몇 주 정도 수업을 했을 때 그 기대는 깨졌다. 이제 조금이나마 수화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해하게 되었을 때이다. 그녀와 간신히 어떻게든 수화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그녀가

 [그 이명 때문에 여기로 온다는 P씨가 제 남자친구거든요.]

 라고 수화로 알렸기 때문이다. 온 몸에서 퍼져 나오는 실망을 최대한 숨기려고 했다. 관찰력 좋은 그녀는 쉽게 알아챘겠지만.

 한 달 정도 지나자, 수화와 필담과 필사적인 몸짓으로 그녀와 어느 정도 빠르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수화는 여전히 초보적이었다. 그래도 일종의 원어민에게 배우고, 소리가 없으니 발전 속도는 꽤 빨랐다.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는 단어는 그냥 휴대폰으로 써서 보여주는 식으로 땜빵할 수도 있었고.

 화요일 오후 4시였다. 서넛의 사람이 앉아 자신만의 일에 몰두했다. 카페가 한가할 시간이라, 그녀가 강의를 해 주었다. 그때 그녀가

 [이제 잡담 시간을 좀 더 많이 늘리는 게 도움이 되겠네요. 이것도 언어라서.]

 라고 해서, 그녀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약간 지레 김칫국 먹고 실망한 부분도 있었지만, 이제 그녀와 좀더 친해진 것 같기도 해서.

 [여기 조용해진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자 그녀는 웃었다. 그녀는 카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하나씩 얼굴로 가리켰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보고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기 노트북 보고 있는 사람 귀 뒤에 봤어요?]

 웬 딴 소리지? 아니, 소리가 아니라, 음. 하여튼 나는 다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귀 쪽에 뭔가 둥그런, 머리에 연결된 헤드셋 같은 것을 붙이고 있었다.

 [저게 인공 달팽이관이거든요.]

 그녀는 메모지 위에 달팽이 모양을 그렸다.

 [인공 달팽이관이라고요?]

 [네, 저게 신경에 직접 연결되어 있어요. 어릴 때 이식하면 효과가 있어요. 비장애인들보다는 못 듣겠지만요.]

 [그런데요?]

 [뭐, 그쪽처럼 별 신경 안 쓰는 사람도 있지만...]

 그녀가 날 가리키면서 말했다. 나는 왠지 민망해졌다.

 [막 지하철 기다리고 있고 그러면, 사람들이 저거 건드리고 그래요. 신기하다면서.]

 [아니, 진짜 그런 몰상식한 사람이 있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말하죠. 하지만 그런...]

 그녀는 손을 멈추고 머리를 한 번 내저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서 계산기 앱을 켰다. 그녀는 뭔가 도도도 치더니, 메모지에 뭔가 써서 내게 보여주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 몰상식하지 않죠. 하지만 100명 중에 3명만 있어도 봐요. 하루에 50명의 사람만 지나치면 대충 80% 확률로 만나네요. 그럼 거의 맨날 만나는 거죠.」

 나는 입을 아 소리를 내는 모양으로 벌렸다. 오래 조용한 곳에 있으니 습관이 바뀌어서, 소리는 내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수화로 말했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게 이토록 다르니까요. 그런데 여기 안에서는 이제 비장애인들 많이 떠났으니, 확실히 좋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 땅값이 엄청 내렸어요. 그래서 제 근처 사람들은 다 마포구 한강변에 있는 아파트에 살게 됐어요. 장애인 시설이 웬 말이냐 하면서 시위하는 사람들도 없고, 창 밖으로 한강도 보이고, 얼마나 좋아요. 요즘에는 방송마다 자막도 달아주잖아요. 정말 얼마나 좋아요. 수화는 기대도 안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이는 웃음을 만면에 짓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한 마디 덧붙였다.

 [비장애인 분이 진짜 소통을 하고 싶어서 수화를 배우러 오는 건 처음이에요. 그래서 참 고맙게 생각해요.]

 그러자 나도 얼굴에서 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이거 이렇게 된 거 수화 파고 또 파서 이 쪽 직업이나 잡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했다. 남자친구가 있든 말든, 근처에 정말 세련되고 품위 있는 친구를 가지는 것도 좋아 보였다. 사실 약간 이상한 죄책감도 들었지만,

 [저도 이 상황에 익숙해지니 많은 것을 새로 보게 돼요. 저도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라고 온갖 수단을 써서 그녀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 뒤에 수업이 끝났다. 나는 그녀의 연락처도 얻었고, 곧 식사나 하자고 이야기도 했다. 나는 카페를 나왔다. 카페에 이 카페를 운영하는 단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사람들의 귀 뒤를 관찰했다. 인공 달팽이관을 장착한 사람들이 적어도 두 명은 있었다. 청각 장애인들이 여기 많이 모이는구나. 내가 꽤 무심하기도 했고.

 나는 잠을 자기 전에 그 카페를 운영하는 단체에 내 이름으로 5만원을 후원했다. 학생에게는 큰 돈이었다. 요즘 약속이 적어서 별로 돈을 쓸만한 데도 없고 하니까. 뿌듯했다. 가끔, 나 대신 후원해주는 누군가들을 따라 클릭 몇 번으로 후원한 기분을 낸 적도 있었는데, 훨씬 나았다. 나는 아주 뿌듯하고 가슴이 벅찬 상태로 잠들었다.

 다음날 나는 알람보다 일찍 일어났다.

 

 


나는 시끄러워서 깼다. 에어컨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이 부는 소리, 내가 뒤척일 때 베갯잇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냉장고에서 띠 하고 흐르는 낮은 소리, 창 밖에서 이름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어제 켜두고 잤던 컴퓨터에서 흘러 나오는 게임의 배경 음악, 작은 소리, 백색 소음, 큰 소리, 소음. 나는 들었다.

 꿈인가 싶었다. 꿈이라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켰다. 마포구, 서대문구의 적막이 오늘 아침 9시에 단번에 사라졌다는 뉴스들. 댓글에는 이게 다 대통령 덕이라는 글도 있었고, 대통령 때문에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글들도 있었다. 나는 대통령 뽑았지 제사장 뽑았냐고 조롱하는 글을 남겼다.

 나는 얼이 빠져 있다가, 일단 샤워를 했다.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땅을 때리는 소리가 생경했다. 머리를 감을 때 나는 가볍고 묵직한 소리들을 나는 들었다. 휴대폰으로 뉴스 생중계를 틀어 놓은 채로 나는 몸에 비누를 발랐다.

 “...적막 구역의 침묵이 갑작스레 사라지자 마포구와 서대문구의 부동산들이 일제히 300% 이상의 가격 상승을...”

 “...비대위는 순차적으로 적막 구역에 증원된 경찰 인력을 감원하기로 하였습니다...”

 “...적막 구역 소재 대학들은 일주일 내로 휴교를 해제하기로...”

 휴대폰에 떠오르는 화면을 보니, 어제까지만 해도 뉴스에서 제공되던 자막이 없었다.

 나는 이 꼴이 우스워서 하 하고 한숨을 쉬었다. 비누방울이 하늘로 동동 떠올랐다.

 나갈 준비를 마치니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끄고, 나는 거리로 나섰다. 골목길 구석에 있는 그 카페가 떠올랐다. 나는 발길을 재촉했다. 벌써 사람들이 길거리에 많았다. 그들은 가을 날씨를 즐기며 이리저리 조잘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이상 차를 피하기 위해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됐다.

 나는 지나가면서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귀 뒤를 유심히 관찰했다. 카페로 걸어가면서 백 명은 족히 마주쳤다. 인공 달팽이관을 낀 사람들은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어제만 해도 그 적은 사람들 중에 두 명이나 있었는데. 다 어디로 간 걸까?

 카페는 아직 열지 않았다. 나는 카페 옆의 화단의 돌담에 그냥 주저앉았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마구 울리고 있었다. 동기들도 있었고 친구들도 있었다. 전부 소리가 들리니 좋다는 말만 하고 있었다. 휴교는 좋았는데 이제 곧 학교 가야 돼서 싫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친구들이 바랄 진부한 대답을 해 주었다. 나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났다.

 청승맞게 돌담에 주저앉아 나는 훌쩍훌쩍 울었다. 그때 햇빛이 가려지는 걸 느꼈다. 고개를 들었다. 그녀였다. 그녀도 눈이 빨갰다. 내가 우는 것을 보고 그런지. 그녀는 손을 움직였다.

 [손님이 많아져서 좋았는데, 다시 그대로네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되나요?]

 [여기로 빨리 이사온 분들이야 계속 찾아오시겠지만, 아무래도 그렇지 않으면 힘들죠. 장애 관련 시설 아파트에 설치해달라 하면 얼마나 난리가 나나요.]

 [P씨의 이명도 다시 돌아왔나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펑펑 울었다. 내가 처음으로 듣는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녀야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겠지만,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목소리였다.

 우리는 카페 앞에 서서 몇 분 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서 카페 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흔히 카페 문에 달려 있는 벨이 없었다. 문은 별 소리를 내지 않고 열렸다.

 그녀를 뒤따라 들어가기 전에, 나는 입구에서 카페를 쓱 둘러봤다. 은은한 커피 냄새가 났다. 나무 무늬로 깔끔하게 마감된 카페. 동그란 테이블이 두어개 있고, 많은 사람들을 위한 큰 직사각형 나무 탁자가 있었다. 동그란 의자도 있고 편안한 소파도 있었다. 카운터에는 여러 커피콩과 포장된 과자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굉장히 익숙한 포근함을 느꼈다. 어,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뒤로 걸어서 카페 문 밖으로 나갔다. 새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새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았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입으로 소리를 내 보았다. 들리지 않았다. 다시 문 밖으로 나가 보았다. 잘만 들렸다.

 서강대교 중간에서 소리가 들렸다 꺼졌다 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눈물이 멎은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 새로운 친구는 카운터에 힘없이 엎드려 있었다.

 완전히 좋은 소식은 아니라도, 꽤 좋은 소식을 전할 시간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톡 쳤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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