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차 씨는 개수대 수돗물을 손에 받아 얼굴에 갖다 댔다. 냉수인데도 시원하지가 않았다. 온 몸이 화끈거리며 달아오르는 게, 딸과 함께 갔던 불가마 찜질방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그는 숨통을 죄어오는 열기에 30분도 있지 못하고 나왔다. 아무리 수돗물을 적셔도 땀은 금방 배어나왔다. 위생모를 쓴 머릿속은 금방 불이 붙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홧홧했다. 개수대에서 몸을 돌린 차 씨는 한 동료 여자와 마주쳤다. 그녀는 언젠가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한 채로 온 테이블을 돌며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마다 앞에 서서 절을 한, 푼수 끼가 다분한 여자였다.

  오늘 수육 맡을 거예요?

  그녀는 두툼한 양 볼을 당기며 생글 웃고 있었다. 차 씨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여자는 얼른 그가 있던 개수대를 차지했다. 차 씨는 그녀 대신 정리담당을 맡아야 했다. 고등학교 급식실에 조리원으로 취직한지 다섯 달이 다 되어가는 그가 생각하기에 정리담당이 가장 힘든 역할이었다. 수시로 잔반쓰레기통을 비우고 식탁을 훔치고 모자란 반찬을 채워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힘들지 않은 것이, 이미 여러 차례 동료 여자들이 돌아가면서 차 씨를 시켜먹었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남자조리원인 그가 들어온 후부터 이곳 여자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차 씨! 하고 부르기 일쑤였다. 영양사 역시 전보다 일이 원활해졌다고 느끼는지 묵묵히 보고만 있었다.

삐- 소리와 함께 차 씨는 살균소독기 문을 열었다. 100도씨에서 달궈진 식판과 수저들이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고무장갑을 꼈는데도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손에 전해졌다. 천 개가 넘는 식판은 그의 손을 몇 차례 거치고 나자 어느 새 배식구 한쪽에 쌓였다. 그가 숨을 몰아쉬며 이마를 닦았다. 살이 고무장갑에 쓸리는 느낌이었다. 차 씨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1학기 때 에어컨을 설치해준다던 교감은 2학기가 되기 전에 전근을 가버렸다. 동료 여자들 말마따나 급식 파업을 막으려던 수작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사방 군데 문을 다 열어놓아도 시원한 바람은 코빼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스 불에서 튀는 열기, 식기들이 부딪치는 소리, 미지근한 수돗물이 뿜어져 나오는 소리, 가 마치 끝나지 않는 합창단의 노래처럼 그의 머릿속을 내내 울려댔다. 차 씨가 잠깐 벽 한 쪽을 짚고 서 있으려고 하는 찰나였다.

  차 씨! 차 씨! 여기 벌레!

  일제히 모든 소리가 멎었다. 모두가 그를 부른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 씨는 재빨리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다. 수증기에 부연 안경을 쓰고 있는 여자가 개수대 밑을 가리켰다. 벌레! 곱등이 나왔어! 곳곳에서 비명 비슷한 외침이 들렸다. 곱등이라니. 여태껏 바퀴벌레 따위 같은 건 나왔어도 곱등이는 나온 적이 없었다.

  그가 곱등이를 본 적은 딸 애 방에서였다. 주말 오후에 낮잠을 자고 있던 그에게 비명을 지르며 달려온 딸은 자기 방에 곱등이가 나타났다며, 얼른 죽여 버리라고 했다. 그때 차 씨는 방문을 닫고 안에서 곱등이를 죽이기 위해 살충제를 있는 대로 뿌렸다. 그 덕에 하루 동안 편두통에 시달렸던 그였다. 그때 그놈하고 비교했을 때 개수대의 놈은 조금 작아보였다. 차 씨는 개수대와 찜기 사이에 껴놓은 쓰레받기를 꺼내들며 개수대 밑으로 몸을 숙였다. 빛이 미치지 않는 조그만 그늘 속에서 그는 까딱이는 더듬이 한 쌍을 볼 수 있었다. 차 씨는 곱등이가 흉측한 귀뚜라미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곱등이는 구석에서 꼼짝 않고 그를 마주보고 있었다. 차 씨는 쓰레받기를 든 손을 그늘 진 깊숙한 곳으로 집어넣었다. 구석이 너무 깊어서 쓰레받기가 닿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곱등이는 딱히 피할 생각이 없는 지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차 씨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듯한 곱등이에 묘한 기분을 느끼며 개수대 밑에 몸을 바싹 붙였다. 그때였다. 곱등이가 뒤로 벌러덩 고꾸라지더니, 하얀 실 같은 뭔가가 곱등이 몸 끝에서 튀어나와 꼬물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것이 실타래 마냥 똬리를 튼 채 개수대 바닥을 기기 시작했을 때, 곱등이는 그대로 죽어버린 듯했다. 그들은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차 씨는 급히 되는대로 고무장화 뒤축으로 바닥 곳곳을 밟아대기 시작했다. 그가 숨을 몰아쉬며 발을 뗐을 때, 흰 실 같은 것은 바닥에 들러붙은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차 씨는 한순간 멍하니, 그 몸부림을 바라보며 죽은 곱등이를 떠올렸다.

  그가 고개를 들어 시계를 쳐다보았다. 점심시간 10분 전이었다.

 

 

 

  영양사는 퇴근하기 전, 급식실에선 살충제를 쓰지 말라고 일렀다. 바닥에 붙이는 약도 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자칫했다가 그 약 성분이 조금이라도 급식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이면 큰일 난다는 것이었다. 차 씨는 앞으로도 쓰레받기로 지랄을 떨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 절로 힘이 빠졌다. 그는 이번 주 마지막 주번으로 남아 조리실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식당 안은 조용했다. 무심코 날짜를 따져보던 차 씨는 내일이 토요일임을 깨달았다. 토요일. 마음 같아선 일주일 내내 주말이 계속되었으면 싶었지만, 그는 얼른 월요일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차 씨는 주말에 혼자 아무런 할 것이 없었다. 외출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래봤자 하는 외출이라곤, 근처 도서관이나 편의점을 가거나, 아니면, 아니면 딸을, 보러 가는 것이 전부였다. 차 씨는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면서 식탁 귀퉁이에 앉았다. 급식 일은 여자들 등쌀에 못 배기는 일이었다. 후. 차 씨는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아까 그 곱등이를 떠올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바닥에 꿈틀거리던 건 곱등이 몸에 기생해 산다는 연가시였다. 성충이 되기까지 청소년기를 곱등이 몸속에서 보낸다는 벌레였다. 영양분을 쪽쪽 빨아먹고는 마침내 곱등이를 죽이고 나온다는.

  그 순간 어디선가 찌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차 씨는 뒤를 돌아보았다. 식당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퇴근길에 아스피린이라도 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쉼 없이 몇 시간을 끔찍한 더위와 부대끼며 일했더니 온 몸이 쑤시고 머리도 아프고 졸음에 취한 그였다. 문득 차 씨는 딸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감옥 아닌 감옥, 그곳 소년원에서 딸이 뭘 하고 있을까. 그는 담당선생이 한 말을 차근차근 되씹어보았다. 소연이는 밥도 잘 먹고 크게 문제없이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 문장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다른 말은 없나, 한참을 졸음과 싸우며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나오는 건 재채기뿐이었다. 그곳에서 가끔 우편물이 도착하기도 했지만 전부 안내문 따위였다. 그는 딸의 이름이 적힌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쩌면 다행이라고, 차 씨는 생각했다. 만약 정말 무슨 큰 일이 있다면 어떻게든 연락을 했을 테니까. 그러나 반신반의였다. 그는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차 씨는 끔벅끔벅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그날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차 씨를 맞은 형사는 딱 한 마디만 했다. 따님이 미성년 성매매 건으로 현장에서 검거되었습니다. 차 씨 역시 딱 한 마디만 했다. 예? 그 후엔 딸의 퉁명한 대꾸와 상대 남성의 거친 목소리만이 오갔다. 딸의 한 손에는 초코바가 들려있었고, 그 앞에는 음료수 두 캔이 따있는 채 놓여있었다. 차 씨는 헐레벌떡 뛰어오느라 차올랐던 숨을 고르며 딸을 쳐다보았다. 두 턱으로 늘어진 목이 그를 외면한 채 반대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몸에 쫙 달라붙는 티셔츠 아래로는 차 씨 허벅지 두께만큼의 팔뚝이 살을 늘어뜨린 채 굽어있었고, 팬티인 양 엉덩이와 사타구니를 꽉 죄는 핫팬츠 아래로는 굵은 통나무 같은 짤막하고 두꺼운 다리가 뻗어나와있었다. 허리 부근의 티셔츠는 뱃살을 한 뭉텅이 집고 있었다. 차 씨는 딸이 왜 이곳에 있는지 이해하지를 못했다. 형사의 질문과 딸의 대답, 그리고 여전히 자기는 아니라고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허공에 붕 떠있는 듯했다. 늦은 점심을 먹는 형사들의 짜장면 냄새와 한쪽의 믹스커피 냄새, 경찰서 안을 흐릿하게 떠돌아다니는 담배냄새, 속에서 차 씨는 딸의 진한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질감, 그는 딸이 아닌 낯선 여자가 대신 앉아있는 것 같았다. 딸은 차 씨를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고, 단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그는 마치 다른 일 때문에 왔다가 은근슬쩍 남의 일에 기웃거리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딸이 원조교제를 해왔다는 사실에 놀라고 화가 나기 이전에 자신이 여길 왜 왔는가, 에 대한 물음이 더 큰 차 씨였다. 글쎄 제 친구놈이 이런 뚱뚱한 년들이 취향이라서 대신 기다려준 것뿐이라니까요....... 상대 남자는 처음과 똑같은 말을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었다. 딸은 음료수 한 캔을 마저 비운 뒤 다리를 꼬고 앉았다. 펑퍼짐한 허벅지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차 씨는 낯선 남자가 딸의 양 허벅지 사이로 몸을 들이미는 걸 떠올려보았다. 그가 딸의 어깨를 툭 건드렸을 때 딸은 몸을 부르르 떨며 그의 손을 탁 쳐냈다. 그는 지난날 10년 넘게 딸과 함께했던 세월이 어느 순간에 무너진 건지, 그 지점을 생각해보았다. 언젠가부터 딸은 차 씨의 품속에서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사소한 거짓말과 다툼부터, 학교폭력 사건과 절도 사건에 휘말리기까지의 시간은 눈 깜짝할 새였다. 무너진 그 지점, 진원지를 알 수 없는 뒤틀림에 차 씨는 속이 거북했다.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뭔가를 토해낼 것만 같았다. 아니면 뱃가죽을 가르고 튀어나오거나. 차 씨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경찰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양 손으로 붙든 변기 속에 머리를 처박은 차 씨는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가 머리를 들어 변기 속을 내려다봤다. 깨끗했다. 하지만 속은 여전히 거북했다. 이젠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까지 했다. 그가 다시 경찰서로 돌아갔을 때 딸은 사라지고 없었다.

  차 씨가 눈을 뜬 것은 소란스러운 소리 때문이었다. 그는 웬 여자가 식판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날 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차 씨는 그녀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매일 점심시간 전 아직 아무도 없는 식당에 혼자 앉아 내내 누군가와 전화를 하며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 학교 청소부 여자였다. 그 순간 그가 앉은 식탁으로 곱등이 한 마리가 폴짝 뛰어올랐다. 차 씨가 으악 소릴 지르며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공중의 식판이 식탁을 쾅하고 내려쳤다. 잠깐 동안 정적이 흘렀다. 차 씨와 청소부 여자의 눈길이 서로 맞닿았다. 그녀는 식판을 얼른 식탁에서 치워버렸다. 식탁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차 씨는 어디선가 찌르, 하고 우는 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아 찝찝했다. 식당은 다시 고요해졌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차 씨는 곱등이가 또 나타났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그렇다고 했다. 그에게 뭐 물어볼 것이 있어 왔는데 마침 곱등이 한 마리가 식탁 위를 뛰어다니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청소부인 여자가 급식실 조리원인 자신에게 물어볼 것이 뭐가 있을까.

  곱등이 때문이에요.

  여자는 학교 행정실에서 일종의 공문 비슷한 게 내려왔다고 했다. 거기에는 학교 내 화장실, 복도 등에서 요즘 출몰하는 곱등이 등의 벌레들을 퇴치할 것을 우선으로 두고 있었다. 차 씨는 그 말을 듣고 나서 곱등이가 학교에서 급식실로 퍼진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가 헷갈렸다. 어쨌거나 여자는 급식실에도 곱등이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고 온 것이었다. 여기에도 곱등이가 나타났다고 들어서요. 여자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행정실에서 급식실에서 퍼진 것 같다고, 급식실 조리사님들이랑 같이 해결하라고 했다고 말을 맺었다. 차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내일 애기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여자가 몸을 움찔거리며 내일은 토요일인데, 하고 중얼거렸다. 내일 근처 카페에서 만나요. 그는 내일이 토요임을 다시금 상기하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제가 좀 피곤해서요. 여자는 그러겠다고 한 뒤 식판을 들고 개수대 쪽으로 향했다. 차 씨는 그녀에게 자신이 닦고 갈 테니 먼저 퇴근하시라고 말했다. 청소부 여자는 안녕히, 계세요, 하곤 식당을 나섰다. 차 씨는 식당을 나서는 여자가 핸드폰을 꺼내들어 귓가로 가져가는 것을 보았다.

  차 씨는 흐르는 수돗물에 식판을 씻고 나서 급식실을 나섰다.

 

 

 

  하늘 위 어딘가에서 쭉 뻗어 내린 빛줄기에 뜨거운 바람도 같이 실려 내려왔다. 나무를 한껏 치장하고 있는 초록색 잎사귀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울퉁불퉁한 그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아래를 막 지나가는 사람은 바로 차 씨였다. 그는 헐렁한 반팔 티셔츠에 북슬북슬한 다리털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면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은 무색에 가까울 만큼 퍼랬다. 그는 청소부 여자와 만나기로 한 카페를 굳이 찾아다닐 필요도 없이, 익숙한 듯 멈춤 없이 향했다. 카페 간판을 막 발견한 차 씨는 문득 그 카페가 어딘지 낯익다는 생각에 잠시 멈춰 섰다. ‘오후 나들이’. 그는 이곳이 딸이 자주 간다던 카페임을 깨달았다. 같이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가 밖에서 나갔다 돌아오는 딸에게 어딜 갔다 왔느냐고 꾸역꾸역 물어볼 때면 딸은 항상 이 카페 이름을 대곤 했다. 항상 이 카페에서 남자들을 만나왔던 것일까. 그는 40인치가 넘는 허리를 실룩거리며 남자의 팔짱을 끼고 모텔로 걸어가는 딸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고백하는 애마다 차였다고, 남자애들이 돼지 같다고 놀린다고, 징징대던 딸애가 남자 옆에 딱 붙어서 가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 차 씨는 청소부 여자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만날 앞치마를 두르고 마스크를 쓴 채 청소도구함을 밀고 다니던 학교에서의 모습과 많이 다를 터였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단번에 찾았다. 모습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전화 소리 때문이었다. 그녀는 구석자리에 뒤돌아 앉아있었는데,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끊임없이 무어라고 읊조리듯 말하고 있었다. 차 씨는 그녀의 점심시간을 기억해냈다. 하루도 빠짐없이 도시락 뚜껑을 열고 닫을 때까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그녀였다. 그 누군가는 전화가 끊어질 듯 하는 찰나에 받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지금도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차 씨가 근처에 갈 때까지 그녀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맞은편에 나타났을 때에야 여자는 전화를 끊었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그들은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차 씨는 겨우 곱등이 한 마리 잡자고 밖에서 만난다는 게 우습게 느껴졌다. 하지만 먼저 약속을 잡은 건 그였다. 딸을 만나기 싫다는 그의 무의식이 멋대로 내뱉은 말 때문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딸의 담당선생에게 말했던대로 그는 지금쯤 두 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소년원을 가기 위해 지하철에 타고 있을 터였다. 오늘 아침에도 그 생각이 났지만, 청소부 여자와의 약속이 때마침 기억이 났다. 여자는 주문한 커피만 홀짝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차 씨는 뭐라고 얘기를 꺼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불쑥 튀어나온 말은,

  저 때문에 중요한 전화 끊으신 건 아니죠?

  여자는 그 말에 잠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요. 아니에요. 그냥, 전화였어요.

  그는 여자를 보며 그녀의 나이를 가늠해보았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아니면 나이가 좀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미간에 인 주름이 여자의 콧잔등을 타고 넘어와 팔자주름으로 번졌다. 그녀에게도 자식이 있을 것이었다. 왠지 아들일 것 같았다. 화장으로도 숨길 수 없는 피곤함과 우울함이 여자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만약 애엄마가 집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꼭 이 여자와 비슷한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곱등이 처치에 대해 별다른 의견을 주고받지 못했다. 그저 징그럽다느니, 언제부터 나타났느니, 어떻게 잡았느니, 등등 시답잖은 얘기로 오후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나마 얘기한 바에 따르면, 곱등이가 처음 발견된 곳은 급식실 식당 정수기 밑에서였다. 여자가 남자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발견했을 때는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차 씨는 아마 곱등이가 급식실에서부터 학교까지 사방 군데 번식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곱등이는 바퀴벌레보다는 번식력이 낮으니까요, 하고 덧붙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차 씨의 물음에 여자는 대답을 않고 있다가 들릴 듯 말 듯한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 보면 곱등이도 불쌍해요. 난데없는 여자의 말에 그는 당황했다. 다른 생물을 몸속에 키우고 있다가 끝내는 조종당해서, 죽는 줄 알면서도, 물가로 뛰어들잖아요. 그녀가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전 봤어요.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곱등이 한 마리가 변기를 기어오르고 있더라고요. 그러더니 그 안으로 풍덩, 빠졌어요. 봤더니 곱등이는 죽고 웬 실 같은 게 뱀처럼 꼬물거리고 있었어요. 차 씨는 급식실 개수대 밑에서 본 곱등이를 생각해냈다. 자기 새끼도 아니고, 전혀 다른 종족인데 마치 부모처럼요. 그러더니 여자는 멋쩍은지 살짝 웃어 보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었다. 차 씨는 천천히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때 여자가 핸드폰 시계를 보더니 잠시만 전화 좀 하고 오겠다고 하며 자리를 비웠다. 차 씨는 그녀가 떠나자마자 다시 곱등이를 어떻게 박멸한 것인지를 생각했다. 불로 태워? 언젠가 인터넷에서 곱등이를 죽이려고 라이터로 장난치다가 학교 앞 화단에 불을 낸 초등학생들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차 씨는 직원에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고는 카페 뒤쪽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레 밀려오는 배뇨감에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려던 그는 여자 화장실 앞에 서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그녀는 현석인가, 연석인가 하는 이름을 부르며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차 씨가 화장실을 갔다 나왔을 때도 여자는 여전히 핸드폰을 붙든 채였다. 그는 무어라고 말을 걸려고 다가갔다. 차 씨가 여자의 핸드폰 화면을 본 것은 그때였다. 분명 통화를 하고 있는 그녀였는데, 핸드폰 화면은 ‘아들’이라고 적혀있는 통화종료 화면이었다.

  그녀는 곧 돌아와 앉아 곱등이를 어떻게 없앨 건지에 대해 다시 말을 꺼냈다. 차 씨는 대답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아까 그 장면을 계속 되뇌고 있었다. 여자는 밥줄이 달린 문제라고 했다. 안 그래도 청소부 자리도 위태위태해요. 곱등이 몇 마리 때문에 직장 잃을 순 없잖아요. 차 씨가 물었다. 혹시 자식 있으십니까? 갑작스런 물음이었지만 여자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이 하나 있다고 했다. 현석이라고, 올해 고3이라고 했다. 대학가야 하는데, 놀고만 있어요. 그녀가 다시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차 씨는 자신에게도 딸이 하나 있다고 했다. 정말요? 아들 있으실 줄 알았는데. 자식 얘기가 나오자 여자는 눈에 띄게 얼굴이 밝아진 상태였다. 차 씨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여자의 핸드폰 화면을 떠올렸다. 혼잣말이었던가. 아니면 정말 미친 건가. 여자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그에게 어떤 아이의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얘가 제 아들이에요. 최근에 찍은 건데, 잘생겼죠? 그는 사진 속 여자의 아들이라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어떤 유원지에 있는 것 같았는데, 사진 귀퉁이에 있는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플래카드엔 2006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늘은, 2015년 6월 22일이었다.

 

 

 

  그들은 별다른 성과 없이 각자 집에서 곱등이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찾아오기로 했다. 차 씨는 인터넷에서 곱등이를 죽일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급식실에 계속해서 곱등이들이 늘어나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아마 학부모들에게서 민원이 올지도 몰랐고, 그 역시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도 몰랐다. 차 씨는 무심코 급식실에서 잘린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화물 운전기사, 주유소 알바 등을 전전하던 그가 반년만의 노가다 생활 끝에 겨우 잡은 직장이었다. 내가 돈을 벌지 못하면 딸은 뭘 먹고 살지. 차 씨는 핸드폰을 켜 연락처를 뒤져보았다. 소연이, 라고 저장된 딸의 전화번호가 낯설었다. 전봇대에 붙은 대출 전화번호와 마주친 기분이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맨 오른쪽의 통화버튼을 건드렸다. 그러나 이내 그는 통화를 끊었다. 딸은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소년원 내에서 개인 휴대전화 사용은 금지였다. 직접 통화하고 싶으면 담당선생을 통해야 했고, 딸 역시 공용전화밖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딸의 전화는 한 번도 걸려온 적이 없었다. 경찰서에서 벗어난 이후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소년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딸이 그에게 한 말이라고는 찾아오지 말라는 말 뿐이었다. 차 씨는 다시 아까의 청소부 여자를 생각했다. 아들과 통화를 하고 있던 그녀는 아무도 받지 않는 핸드폰만 귀에 붙인 채 혼자 떠들고 있었다. 알 수 없었다.

  차 씨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막 끌어당기던 때였다. 베개를 베고 누워있는 그의 시야 아래쪽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곱등이였다. 그가 헐레벌떡 놀라 몸을 일으켰다. 여태껏 봤던 것들 중에 가장 몸이 토실한 놈이었다. 그가 침대 옆 협탁에서 잡히는 대로 들어 내리치자 곱등이가 허공으로 붕 뛰어오르더니 문지방을 넘어 사라졌다. 차 씨는 재빨리 곱등이 꽁무니를 쫓았다. 그는 딸의 방 문틈 사이로 사라지는 곱등이를 발견했다. 그가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일순 고막을 찢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허공을 가득 메우며 들려오는 찌르, 하는 울음소리였다. 그의 눈앞에는 수천 마리의 곱등이들이 공중으로 뛰어오르고 딸의 물건과 이불을 갉아먹고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딸의 모든 흔적이 사라지고 있었다. 곱등이들은 딸의 물건들을 먹어치우며 점점 몸집을 부풀렸다. 마침내 곱등이들은 성인 팔뚝만한 크기로 자라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차 씨는 문득 낯선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팔과 두 다리가 사라져있었다. 그 자리에는 대신 미세한 솜털이 나있는 꺾인 네 다리가 달려있었다. 그가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자 눈앞에 떠돌아다니는 곱등이들처럼 찌르, 하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순간 속에서 뭔가가 꾸륵거리며 역류하는 것을 느꼈다. 그 꿈틀거림은 아랫배에서부터 복부, 가슴을 거쳐 마침내는 목구멍에까지 다다랐다. 아빠. 그것이 내는 소리였다. 아빠. 그것이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아빠가 싫어. 몸이 죽 찢어지는 느낌과 함께 차 씨가 몸부림을 쳤다.

  그가 눈을 뜬 것은 그때였다. 핸드폰 알림소리에 깬 것이 아니었다. 등을 손바닥으로 쓸어보니 땀이 묻어나왔다. 그는 새벽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딸의 소년원 담당 선생이었다. 선생은 소연이가 많이 아파서 인근 병원 응급실에 와있다고 전해왔다. 차 씨는 그 말을 들으며 뒤통수를 긁적이고 있었다. 위험한 건 아니고, 독감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생은 와보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 제가 주말에도 일이 있어서, 하며 얼버무렸다. 통화가 끊어진 뒤 차 씨는 한동안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있었다. 그는 맞은편 딸의 방으로 눈길을 두었다. 속이 다시 거북해져왔다.

 

 

 

  청소부 여자는 집에서 만들어왔다며 괴상한 액체들을 식탁 위에 죽 나열해놓았다. 뜬눈으로 밤을 샌 차 씨의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배겨있었다. 그는 여자의 말대로 급식실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마다 그 액체들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차 씨는 내놓을만한 게 없었다. 고작해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급히 되는 대로 사온 살충제를 하나 내밀었을 뿐이었다. 살충제 겉 표면에는 사람에게 무해하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는 점심시간에 다시 보자고 했다. 청소부 여자는 남자화장실부터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남자애들이 오줌을 사방에 싸질러놓아서 곱등이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하며 급식실을 나갔다.

  또 한바탕 지옥 같은 점심시간이 지나갔다. 100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에게 국을 한 번 두 번 흘리지 않도록 떠주다 보니 어깨가 결렸다. 그는 곱등이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얼른 배고픈 배나 채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버티고 있는 차 씨였다. 그러던 그의 머릿속으로 다시 곱등이가 기어들어온 것은, 어떤 아이가 여기 곱등이가 있다고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급식실에 있던 수백 명의 아이들이 순식간에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곱등이를 발견한 아이는 이미 멀찌감치 떨어져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차 씨도 그 광경을 보곤 얼른 식판을 들고 달려갔다. 이번엔 다른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린 비명은 자기 식판에 곱등이가 들어갔다는 외침으로 이어졌다. 그는 넘칠 듯 담긴 콩나물 국 속에 빠져있는 곱등이를 발견했다. 그것은 뭔가를 뱉어내려는 양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하얀 실 같은 게 곱등이 속에서 빠져나오자 아이들은 악을 쓰면서 물러섰다. 그것을 본 차 씨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강한 혐오감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손에 든 식판으로 그것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내려쳤는지 모를 정도로, 식판이 저절로 손에서 떨어질 때까지 그 행동을 반복했다.

  점심시간이 우여곡절 지나간 뒤, 그는 영양사에게 불려갔다. 영양사는 진즉에 그것을 처리했어야지 이게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다. 차 씨는 입을 꾹 다문 채 뒷짐을 지고 있었다. 영양사는 자기까지 교감에게 불려가 된통 깨지고 왔다며, 학부모들의 항의가 곧 빗발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녜요? 차 씨는 그녀의 그 말을 청소부 여자가 올 때까지 곱씹고 있었다. 책임. 그는 자신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왜 책임을 져야하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식탁에 앉아 머릿속을 부유하는 생각들을 하나씩 건져 올리고 있었다. 청소부 여자는 식당 안으로 들어오면서부터 휴대폰을 귀에 붙이고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 현석이라는 자신의 아들과 통화 중일 것이라고 그는 여겼다.

  들었어요. 난리가 났다구요.

  청소부 여자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차 씨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효과가 없을 거예요. 며칠 지나야 알겠죠.

  잘릴 것 같아요.

  그가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대답했다.

  잘리겠죠. 당연히 잘리겠죠.

  겨우 곱등이 하나 때문에요?

  그는 여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동안의 침묵 끝에 그가 말을 꺼냈다.

  딸 애 방에서 예전에 곱등이가 나왔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한 번에 잡을 수 있었죠. 근데 지금 놈들은 더 빨라지고 더 예민해졌는지, 말을 잘 안 들어먹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는 딸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요.

  그럼 어디 있는데요?

  좀 멀리, 떨어져 있어요.

  차 씨가 있지도 않은 침을 삼켰다.

  그쪽 아들은 어디 있어요?

  현석이요? 지금 학교에 있겠죠.

  그는 뭘 더 물어보려다가 그만 두었다.

  청소부 여자는 자신은 조금 수확이 있었다면서 검은 봉지에 든 죽은 곱등이 몇 마리를 보여주었다. 그것들은 개똥처럼 시커먼 갈색으로 한데 뭉쳐있었다. 그는 이번엔 곱등이 몸속에서 나온 게 없었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못 봤다고 했다. 운 좋게 속 안 썩은 놈들일지도 모르죠. 그녀는 화장실에서 효과가 있었으니 급식실에서도 곧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그를 위로했다. 차 씨는 그녀에게 점심을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잊고 있었다는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가 도시락을 놓고 갔더라구요. 새벽 같이 일어나서 싸준 건데. 갖다 줘야 해서 먹을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여자는 퇴근할 때 다시 와보겠다며 종종걸음으로 식당을 나갔다.

  그는 급식실로 돌아가 개수대에 쌓인 식판과 수저들을 닦기 시작했다. 동료 여자들은 잠시 파업 논의를 한다며 곧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차 씨는 그러세요, 라고 웃으며 대꾸했다. 축구를 하다 교실로 돌아가던 애들 몇이 들어와 정수기에서 물을 먹고 갔다. 급식실에는 차 씨 혼자였다. 그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SG워너비의 ‘라라라’ 라는 노래였다. 차 씨는 가사 없이 그저 랄라라만 반복했다. 딸이 제일 싫어하던 노래였다. 그가 집에 있을 때면 온종일 그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아서였다. 물론 이젠 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야 급식실에서 혼자 흥얼거리는 차 씨였다.

  그는 설거지를 다 끝낸 뒤 개수대를 붙잡고 허리를 죽 폈다. 그는 몸을 낮춰 배식구를 바라보았다. 식판만 딱 내밀 수 있는 조그만 입구였다. 한동안 그렇게 배식구를 통해 식당을 들여다보던 차 씨는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배식구 크기의 또 다른 구멍을 사이에 놓고 그와 딸이 마주봤던 그때를. 담당선생은 면회실이 꽉 찼다고 가운데 창으로 가로막혀있는 곳을 내주었다. 딸은 왠지 더 살이 불어나보였다. 그는 무작정 아무 예고도 없이 면회를 온 것이었다. 차 씨는 뻔한 질문 몇 가지를 던진 뒤 침묵했다. 딸은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면서, 돌아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말리지 않았다. 딸이 가자마자 그 역시 곧바로 떠났다. 그는 딸이 소년원에서 나오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해보았다. 여러 달. 그는 정확히 얼마나 남았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알아본다고 해놓고선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차 씨는 벗은 고무장갑을 개수대 위에 걸쳤다. 그는 식탁 한 귀퉁이에 턱을 괴고 앉았다. 그는 오늘은 꼭 알아보리라고 다짐했다. 청소부 여자가 갖다 놓은 곱등이 제거약 냄새만이 식당 안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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