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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어려움

심너울

1.

 휴대폰에 저장된 졸업사진 속의 나는 내 머리보다 너무 작은 학사모를 머리 위에 이고 만면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래, 이 때는 좋았지. 머리 위의 학사모를 석사모, 박사모로 업그레이드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휴대폰이나 보면서 농땡이를 부리는 내 머리 위에는 학사모도 석사모도 박사모도 아니라, 샌드위치 프랜차이즈의 모자가 씌어 있었다.

 비둘기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에, 나는 취업 준비도 준비지만 일단 쪼들리는 지갑부터 어떻게 채워야 했다. 편하고 쉬우면서도 자기계발이 되고 월급도 많으면서 또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으며 복리후생 역시 뛰어나고 직장 분위기도 친근하면서 진상 손님을 마주칠 일이 없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나 싶어서 구직 웹사이트를 뒤져 보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자리는 없었다.

 그런 헛된 탐색이 지속되던 어느 날, 나는 우울을 곱씹다 햇빛이나 쐬며 샌드위치나 먹으려고 집 밖으로 나섰다. 내 자취방에서 100m 반경 내에 있는 하프웨이 샌드위치 신촌점에 당도하자 대문에 이런 글이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아르바이트 구함. 무경험자 환영, 4대보험 보장, 시급 9천원, 평일 10:00~20:00, 샌드위치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요"

 마침 하프웨이 샌드위치를 즐겨먹던 나는 이 일이나 하면 취준 동안 시간을 보람차게 때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점심이랑 저녁에 샌드위치는 양껏 먹을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날 나는 점장에게 전화했고, 3분 동안의 약식 면접 후에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하프웨이 샌드위치는 미국에서 출발한 샌드위치 프랜차이즈인데, 고객이 샌드위치의 빵과 속재료를 입맛 대로 정할 수 있다는 점이 사람들의 취향에 딱 맞아 승승장구했다. 프랜차이즈는 날이 갈수록 비대해지다가 한국에도 상륙했고, 맥트럼프 햄버거에 질린 한국인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결국, 이제 신촌의 비둘기대학과 황조롱이대학 사이에서도 하프웨이 지점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고객의 주문대로 샌드위치를 조립해주는 일이었다.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는데, 일단 처음 오는 사람들의 주문을 받는 것이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주문하시겠어요?" 하고 물으면 처음 운전면허를 따려고 핸들을 잡고 도로에 나간 사람 만큼이나 떨면서 "그.. 그... 이탈리안 BLT 샌드위치로... 야채 많이 넣어주세요..."하는 것이었다. 그럼 나는 "잠시만요 고객님, 어떤 빵을 드실 지부터 선택하셔야 해요."라고 말하면 그 사람의 얼굴에 운전면허 연습 중에 보행자를 쳐버리고 만 사람의 표정이 그려졌다.

 또 내가 예상했던 대로 샌드위치를 정말 양껏 먹을 수 있었다. 내가 하프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할 때는, "올리브랑 양파 많이 넣어주세요"라고 말하면, 올리브와 양파를 빵의 형태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 달라는 뜻이었는데, 그냥 두세 점 더 넣고 말아서 불만이 좀 많았다. 그런데 내가 먹을 샌드위치를 내가 직접 만들게 되니까 올리브 나무 한 그루에서 한 철마다 나는 양의 올리브 무더기를 샌드위치에 쏟아부어 먹을 수 있었다.

 또, 생각지 못한 조합을 택하는 손님들의 레시피를 외워 두었다가 나중에 그 사람이 먹은 그대로 따라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먹을거리를 만드는 아르바이트야 수천 수만 개가 있었지만, 하프웨이에서 일하는 건 고객이랑 대화도 좀 해야 하고 살짝 창의적인 면도 있는 일이었다. 점장은 40대의 남자였는데 예의 바르고 공정한 사람이었다. 계속 일하다 보니 나는 하프웨이 신촌점과, 그 안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꽤 정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까 1년이 금방 지나갔다. 1년 동안 내가 낸 수많은 이력서와 자소서들은 모두 서류분쇄기에서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2~3개월 취준하면서 하려고 한 일이 내 중요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시급도 많이 올랐고, 점장의 열 살짜리 아들에게 영어 과외도 해주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도 마산에 내려가서 하프웨이 지점이나 낼까 하는 하루하루였다.

 여름날의 목요일 오후 세 시, 좀 한가한 시간에 나는 휴대폰의 갤러리에 저장된 내 옛 졸업사진이나 보면서 쉬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어떤 여자가 한 명 들어왔다. 나는 마음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위생 장갑을 다시 끼고, 습관이 된 한 마디를 꺼냈다.

 "주문 도와드릴까요?"

 "네, 야채 샌드위치로 해 주시고요."

 채식주의자인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그냥 그날따라 고기가 먹지 않고 싶은 사람도 있고, 야채 샌드위치가 제일 맛있는 사람도 있고 하니까. 손님의 취향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었다.

 "네, 그럼 빵은.."

 "빵은 꿀귀리빵으로 해주세요. 15cm로요. 치즈는 빼 주시고요."

 "데워드릴까요?"

 "아니오."

 나는 꿀귀리빵을 반쪽으로 자르고 또 사이에 속재료가 들어가도록 큰 칼집을 냈다. 이 여자는 빵 속에 넣는 게 뭐 거의 없구나. 나야 편하고 좋지.

 "야채 싫어하시는 거 있으세요?"

 "야채 전부 다 빼 주세요."

 "네?"

 나는 샌드위치에서 눈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 손님, 그럼 샌드위치에 아무 것도 안 들어가는데..."

 그녀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일을 시작한 후 가장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그럼... 그럼 소스는 뭐 넣어드릴까요."

 "소금이랑 후추 뿌려주세요."

 나는 매우 혼란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로 빈 빵에 소금과 후추를 뿌렸다. 아마, 처음 하프웨이를 찾는 고객들이 주문 순서를 헷갈렸을 때 짓는 표정을 내가 짓고 있었으리라.

 "어... 세트로 해드릴까요?"

 "아니요, 그냥 주세요."

 나는 그 샌드위치... 아니 그냥 자른 뒤에 소금과 후추를 뿌린 꿀귀리빵을 종이로 잘 포장한 다음에 쟁반 위에 올렸다. 계산을 해야 할 때가 오자 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게... 비건 샌드위치로 이렇게 주문하시면 4천 700원이긴 한데..."

 그런데 이게 어딜 봐서 샌드위치인가, 그냥 자르고 소금과 후추를 뿌린 꿀귀리빵이지. 나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왼쪽을 쳐다보니 세 달 전부터 같이 일하는 성혁이가 나랑 비슷한 표정을 지은 채로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네, 영수증 버려주세요."

 그녀는 당당히 카드를 내밀었다. 얼이 빠진 채로 나는 결제를 끝내고, 영수증을 버리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꿀귀리빵을 들고 테이블 하나에 자리를 잡더니, 그 빵을 한 입씩 깨물어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우주의 밝혀지지 않은 기이한 신비를 엿보는 기분으로, 실례란 것도 깨닫지 못한 채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2.

 심너울이 강남의 자기 사무실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나는 여름날 아침에 무거운 노트북이 든 에코백을 맨 채로 2호선 지하철 열차 안에서 얼이 빠진 채로 있다.

 얼마 전 실업 급여를 받으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갈매기대학교 심리학과 선배이자, 자칭 팝 싸이콜로지스트이자, 대성공한 수필 작가인 심너울을 카페 구석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소설 주인공의 이름을 짓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던 내게 그녀는 선뜻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 이름으로 쓰도록 했다.

 그녀는 소설이 완성되면 꼭 연락하라고 했고, 나는 얼마 전에 문고판 용지에 150페이지 정도 되는 소설을 썼고, 그녀에게 연락했다. 그녀는 출판사에 있는 자신의 지연을 이용해서, 비둘기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슬픈 백수 '심너울'이 주인공인 내 소설을 실제로 출판시켰다. '심너울'이 겪는 여러가지 궁상맞은 일들을 서로 다른 단편에 하나하나 묘사한 옴니버스식 소설이었다. 내 이름을 달고 나온 단편집은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기적적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나는 삶에 행운이라는게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놀랐다.

 심너울은 그 결과에 꽤 만족했는지, '심너울'의 이야기를 더 많이 쓸 것을 내게 주문했다. 나도 더 많은 책을 출판하고 더 많은 인세를 얻지 못하면 서울에서 추방돼 마산에서 아버지의 키조개 양식장을 물려받을 판국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주문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딱히 수익의 일부를 나누자 같은, 내가 언젠가 듣겠지 하고 준비했던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냥 자주 나를 강남의 사무실로 불러 소설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베스트셀러를 많이 내고, 여기저기 큰 돈을 받으면서 강연을 다닌 데다가, 그 돈들을 탁월히 굴려서 정말로 돈이 많았다. 서울의 어느 식품회사 영업부에서 일하는 김 대리가 퇴근길에 한강 둔치에 서 있는 수많은 아파트들을 보면서 "아, 저 많은 집들 중 내 집이 하나도 없구나"하고 탄식할 때, 그 옆에서 "아, 저 많은 집들을 내 재산으로는 20%도 채 못 사는구나"하면서 탄식할 정도로 그녀는 부유했다. 그녀에게 내가 쓰는 소설과 그 출판은 현실에서 즐기는 육성 시뮬레이션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심너울의 사무실에 찾아가는 건 항상 기대되는 일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요리를 얻어먹을 수 있기도 했고, 가끔은 용돈도 받았다. 그녀의 사무실이 강남에 있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신촌역과 강남역은 정확히 2호선의 끝과 끝에 있어서, 한 번 지하철에 몸을 올리면 영겁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앉아서 가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서울에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열차 속은 항상 바글바글했다.

 봉천역 쯤에 도착했을 때에 나는 심너울에게 새로 보여줄 소설의 구성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심너울'이 오버웨이에서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아니, 오버웨이라는 실제 프랜차이즈 이름을 쓰기보다는 하프웨이로 하는 것이 낫겠다. 어쨌든, 하프웨이에서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만나는 어떤 여자 이야기다.

  나는 이런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식의 이야기를 한 번 쯤은 써보고 싶었다. 물론 이야기 속의 '심너울'은 전혀 소년이 아니라 25살이지만, 어쨌든 누구에게나 설레는 순간이 있지 않겠나. 그런데 내가 그런 단편을 쓰려고 하면 항상 심너울이 제지하면서,

 "이봐요 후배님. 당신 모태솔로 아니에요? 근데 무슨 연애담을 써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변했다.

 "아니, 너울 선배님, 연애 해본 적 있어요. 사실 꽤 많거든요. 저번에도 얘기했잖아요."

 "1년 이상 간 사람 한 명도 없다면서요. 그럼 그게 사귄건가, 그냥 불장난 한 거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가 살짝 꼰대 같기도 했지만, 사실 내가 남녀 사이에 흐르는 어떤 미묘한 기류를 잡는 능력이 모자라긴 했다. 내가 했던 연애들도 진짜 진지한 만남이었다기보다는 막 대학생이 된 소년 소녀들의 실험 실습 같은 것이었고. 1~2학년 때 하는 학부 실험 실습에서는 다들 처음 만져보는 현미경과 피펫을 신기해하는 법이니.

 "작가님, 그냥 잘 쓰는 백수 신세한탄 하는 이야기나 쓰세요. 연애담은 연애 해보고 나서 쓰구요."

 심너울이 이렇게 말할 때마다 자존심에 조금씩 금이 가긴 했지만, 그녀가 하는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도 책 한 편 내고 나면 나도 누군가한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내고 연애질도 해보고 도전해 보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하지만 책을 내고 나니, 책을 내는 게 생각보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 지갑이 가벼운 건 여전하고, 갑자기 막 나한테 연락을 하는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그랬다. 그래서 내 소설 속의 불쌍한 '심너울'도 꾸준히 연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런데 그제 맥주에 완전 꼴은 채로 침대에서 뒤척거리면서 생각해 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여성상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 스스로 모르는데 좋은 연애를 바라겠나 싶었다. 소설이 나를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라면, 소설에서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써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고. 철저한 정신승리에 성공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는 심너울에게 "이제 여자 만나는 단편 하나 써 보려고요"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그녀가 답하기를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후배님?"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정말 자존심에 흠집이 난 나는 "이제 저도 출판경험 있는 작간데, 한 번 믿어보시죠. 꼭 경험해봐야 제대로 쓸 수 있으면 사극 작가들은 전부 시간여행자들인가?" 하고 보냈다. 그러자 "그럼 정리해서 모레 오후 7시에 사무실로 와봐요."라는 답이 왔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시간에, 딱 퇴근 시간에 맞춰서 2호선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시간에는 좀 위협적일 정도로 사람이 많다. 싯다르타도 명상하지 못할 공간에서 소설의 구성을 얼개가 맞게 정리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그냥 아주 짧게 써둔 서두나 보여주면서 설명해야지, 하고 나는 잠시 넋을 놓았다.

 "다음 역은 강남역..."하는 소리가 흘러나오자 나는 흘려둔 정신을 수습했다. 강남역이었다. 열차에서 내리자 정말, 정말, 정말로, 미치도록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명절 연휴의 경부 고속도로에 도로에 자동차가 꽉 차 있는 것 만큼이나 사람들이 많았다. 이 비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고 몰려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껴안은 만큼이나 가까이 붙어있었다.

 그곳을 비집고 나오는 것이 연애소설로 심너울의 성미를 맞추는 것만큼이나 하나의 도전이었다. 십 분 정도 방대한 강남역 속을 탐험한 나는 간신히 출구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강남역이 나를 토해내는 것 같기도 했다. 여기서 15분만 걸어가면 심너울의 사무실이 나온다.

 강남의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는 잘 정비된 길들과 높은 빌딩들을 빠르게 지나서, 나는 심너울의 사무실이 있는, 곧게 선 빌딩에 도착했다. 이제서야 휴 하고 한숨이 나왔다.

 빌딩 엘리베이터는 사방이 유리로 투명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이런 엘리베이터에 탈 때마다 왜 대체 굳이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엘리베이터의 중간에 떨떠름하게 서서 바깥을 바라보지 않으려 눈을 꾹 감고 심너울의 사무실이 있는 층에 도달하기까지 기다렸다. 곧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심너울의 사무실의 대문에는 귀여운 우주선이 그려진 로고가 걸려 있었고, 그 로고에는 '스타더스트 스튜디오'라고 쓰여 있었다. 심너울은 이 '스타더스트 스튜디오'에서 여러 재능있는 컨텐츠 크리에이터들을 모아 위대한 사업을 쏘아올릴 것이라고 항상 떠벌렸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냥 세금 아끼려고 만든 법인 같았다. 하여튼 나는 스타더스트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렸다.

 

3.

 그녀는 그 날 이후, 화요일만 빼고 매일 찾아왔다. 그리고 항상 모든 야채를 빼고 소금과 후추만 친 꿀귀리빵 비건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4700원을 지불하고, 테이블 하나를 잡아 오물오물 빵을 먹은 다음에, 쟁반을 올바르게 정리하고 하프웨이를 떠났다.

 나와 점장과 같이 일한 지 몇 개월쯤 된 성혁은 마감할 때마다 그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 관찰력 높은 손님 몇몇도 그녀의 수수께끼에 대해 궁금해 했을 것이다. 대체 왜, 꿀귀리빵이 먹고 싶으면 근처에 있는 마드리드바게뜨나 찾아갈 것이지, 하프웨이에 와서 내장을 적출당한 빈 샌드위치를 먹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재벌 4세인 거지. 원래 사람들이 복권 당첨되면 뷔페에 가서 한 접시만 먹고 나올 거라든지, 놀이공원 가서 자유이용권 끊고 놀이기구 하나만 타고 올 거라고들 말하잖아."

 점장은 재벌 4세 가설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의아했다.

 "점장님, 솔직히 재벌 4세가 뭐하러 하프웨이에 맨날, 아니 뭐, 우리 빵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막 럭셔리한 부르주아 브랜드는 아니잖아요. 재벌 4세면 맘만 먹으면 저기 고구려호텔에서 빵 만드는 사람들이 구운 빵을 먹을 수 있을텐데."

 내가 이렇게 말하자 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그런데 왜 하필이면 또 꿀귀리빵일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꿀귀리빵이 우리 빵 중에서 제일 맛있지 말입니다."

 성혁은 제대하고 복학까지 비는 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더니 아직도 못 뺀 그 특유의 말투로 빵 맛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알렸다.

 "아니, 제일 잘 나가는 건 치즈허브빵이거든, 이 꿀귀리빵 먹는 맛알못아?"

 "너울 선배님, 꿀귀리빵은 사람들이 귀리에 익숙치 않아서 잘 안 나가는 거지 말입니다. 몇 년 지나면 꿀귀리빵이 제일 잘 나갈 거지 말입니다."

 "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고루 들어간 치즈허브빵이 맛있겠냐, 탄수화물 더하기 탄수화물인 꿀귀리빵이 맛있겠냐?"

 "너울이랑 성혁이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렇지, 내 나이쯤 되면 그냥 통밀빵이나 흰빵이 제일 맛있는 법이야."

 내가 성혁의 꿀귀리빵에 대한 어이없는 의견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니까, 점장이 또 괴상한 발언을 하고, 그렇게 대화 주제는 명백한 정답이 있는 "어떤 빵이 하프웨이에서 가장 맛좋은가?"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그녀가 찾아왔다. 나는 선반에서 꿀귀리빵 하나를 꺼냈다가, 갑자기 어느날부터 그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 동안 매일 내장 없는 꿀귀리빵을 먹으면서 내 궁금증을 돋웠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다시는 찾아오지 않으면, 나는 이 수수께끼의 정답을 평생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꿀귀리빵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분명 괴로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늙어서 청년 시절을 추억하다가, 사회복지사 앞에서 "꿀귀리빵... 꿀귀리빵..." 하고 중얼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젊고 열정 있는 사회복지사가 "아, 이 너울이라는 할아버지는 꿀귀리빵을 먹고 싶어하는구나!" 해서 맨날 꿀귀리빵을 식사에 추가하고, 마침내 노년의 나이에 맛대가리 없는 꿀귀리빵을 매일매일 먹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나.

 그래서 나는 용기를 냈다.

 "저기요, 왜 매일 이렇게 주문하시는 거에요?"

 "네?"

 잠시 둘러보니 성혁과 점장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점장은 "헛소리 해서 매일 4700원씩 꼬박꼬박 꽂아주는 손님 잃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정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아, 사실, 저희가 파는 게 샌드위치인데, 손님이 매일 주문하시는 게, 사실, 그게, 기록을 해뒀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 단골이시다 보니까, 꿀귀리빵만 매일 드시는데, 사실 이게, 그러니까, 옆에 마드리드바게뜨에서도..."

 마드리드바게뜨 이야기가 나오자 점장의 표정이 더 험악해졌다. 나는 거기서 말을 끊었다.

 "그게... 말하자면 긴데..."

 그녀가 입을 열자 갑자기 손님 한 무리가 들어왔다. 샌드위치를 많이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점장은 "조금이라도 더 그 삿된 혀를 놀리면 용서치 않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절박하게 소리쳤다.

 "저, 저기, 손님, 제 번호가..."

 나는 내 전화번호를 말하고는,

 "혹시 나중에라도 알려주실 수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제가 진짜 궁금해서 잠을 못 자겠거든요. 아, 그리고 제 이름은 심너울입니다."

 하고 말하고, 꿀귀리빵을 잘라서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환한 미소를 띄면서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러고보니, 생각도 못했는데, 그녀의 눈웃음이 예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점장은 내 광기를 바라본 표정을 짓고 있었고, 성혁은 내게 존경과 선망이 비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4.

 "이렇게 만남이 시작되는 거죠. 완벽하지 않나요?"

 나는 반질반질한 원목 탁자 건너편에 있는 심너울을 바라보면서 내가 준비한 이야기의 초입을 말했다. 동그란 뿔테 안경을 끼고 있던 그녀는 커다란 노란색 노트에 무언갈 쓰면서 내 이야기를 들었다. 노트를 얼핏 보자, 그녀의 혼잡한 머릿속 만큼이나 노트는 여러 낙서와 알아볼 수 없는 문자로 꽉 차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메모한게 맞긴 맞을까?

 "그래서 꿀귀리빵만 먹는 이유가 뭔데요?"

 심너울이 내가 정확히 예상하던 질문을 던졌다.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나는 준비했던 답변을 그대로 던졌다.

 "아니 그걸 당신이 모르면 어떡해요."

 "그제 막 생각한 건데요 뭘. 기왕 부른 김에 같이 생각해 보죠. 아 그리고, 저 멕시코 요리 먹고 싶어요."

 심너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 바쁜데."

 "에이~ 선배님!"

 나는 내가 생각해도 끔찍한 애교 비슷한 것을 부려 보았다. 와, 이게 강남에 사무실 하나 빌려서 우주선 그림이나 붙이고 자기 마음대로 놀 수 있는 부자가 가지는 권력이구나.

 "그래요, 뭐. 같이 생각해 보죠. 근데 정말 아무것도 생각 안해온 거에요?"

 "일단 타코 주문부터 하면 알려드리죠."

 심너울이 하!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었고, 나는 퀘사디아도 추가로 먹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5.

 놀랍게도 그날 밤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메시지로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윤수경이었고, 비둘기대학교 사회학과 4학년이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메시지를 나누었는데, 수경은 자신이 꿀귀리빵만을 주문하는 이유는 이상하게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능숙하게 그 주제를 피하면서 말을 빙빙 돌렸다.

 그녀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보았다. 수경은 검은 머리카락을 어깨 밑까지 오도록 기르고 있었고, 또렷하고 자신만만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온갖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어떤 사람에게 번호를 먼저 줬고, 그 사람이 내게 연락을 했다는 일 자체가 기적 같았다. 살면서 처음 해 본 일이었고, 살면서 처음으로 성공했다. 이런 일보다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더 빨리 일어날 것 같았는데.

 이런 망상을 하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에 전혀 상관없이 망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그녀와 연락한지 15분 만에, 그녀와 결혼하게 되면 집은 어디에 사느냐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이야 하프웨이에서 샌드위치 만드는 일인데, 부모님한테 지원 받으면 마포구에 집 한 채 정도는 살 수 있으니까 그걸 가지고, 그녀는 자기가 하고 싶다고 말한대로 데이터 분석 쪽에서 커리어를 밟아나가고, 나는 조신하게 내조를, 아니 뭐 내가 하프웨이 지점을 낼 수도 있는 거고... 온라인 게임에서도 맨날 치유사만 했는데 역시 나는 지원하는게 어울리지 않나... 그녀가 원한다면 역시 자식은 한 명은 있는게... 나중에 죽을 때 되면 함께 수목장을 하는게 좋지 않을까... 뭐 그런 망상들 말이다.

 "그럼 마침 주말인데, 내일 저녁에 자두대학교 근처에서 식사나 하실래요?"

 이 메시지를 메신저에 타이핑하고는 한 5초동안 눈을 질끔 감고, 그래도 내가 오늘 점심에 낸 용기의 반쪽만 있어도 이 정도 메시지는 보낼 수 있다고 마음 속으로 되뇌인 다음에, '전송' 버튼을 눌렀다.

 "좋아요. 그럼 내일 봐요."

 나는 마음 속으로 시간을 세고 있었다. 1분 30초, 딱 그 정도 있다가 그녀에게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나는 마음이 탁 하고 풀리더니, 침대 위로 내가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연애는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미묘한 바람이라도 서로와의 사이에서 불었던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세상이 나를 향해 웃어주는구나.

 그 날 밤 나는 꿈도 꾸지 않고 정말 잘 잤다. 나는 알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났다. 오후 5시에 자두대입구 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 시간이 한 시간씩 가까워질 때마다 에스프레소를 한잔 씩 마신 것마냥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몇 개월 전에 소개팅을 할 때, 친한 여자애가 "이게 그나마 내가 이 캔버스에 해낼 수 있는 최선이다" 하면서 해 준 코디를 그대로 입고, 하도 안 뿌려서 거의 다 증발한 향수를 몸에 좀 뿌렸다. 준비를 끝낸 후, 오후 4시 30분까지 나는 아무것도 않고 인터넷에 자두대입구역의 분위기 있는 맛집들을 검색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오후 5시가 되어 내가 윤수경과 자두대입구역에서 마주했을 때, 나는 그녀의 온 몸에서 후광이 비친다고 생각했다. 내 모든 삶의 순간이 이 순간을, 그러니까 내가 하프웨이 유니폼이 아니라 제대로 된 옷을 입은 상태에서,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예쁘게 꾸민 윤수경을 자두대입구역에서 만나는 이 순간을, 이 순간만을 위해 철저한 인과로 진행되어 온 것 같았다.

 어떤 말을 해야할지 정말 모르겠다, 하면서 갑갑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입에 바보 같은 웃음을 띄운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동안 내 마음의 다른 부분들이 "바보야! 지금은 뭐라도 재밌는 말을 해서 네가 재밌는 남자인 걸 보여야지!"하고 부추겼다. 그런데 정말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멕시코 요리 좋아해요? 내가 아는 집 있는데, 지금이면 웨이팅도 안 길 거에요."

 그녀가 나 대신 먼저 말했다. 낮에 맛집을 괜히 찾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녀가 이렇게 다 준비해온거 보면 역시 준비성이 뛰어난 거 같고, 내가 사람을 잘 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걸 다 떠나서 나는 그녀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꿀귀리빵은 어떻게 된거지. 일단 식당에 들어가서 물어봐야겠다.

 윤수경이 나를 데리고 간 멕시코 요리 식당은 괜찮았다. 메뉴에 선인장 타코 같은 신기한 음식도 있었고, 음악도 적절하게 멕시코 음악이 시끄럽지 않게 흘렀다. 내부가 좀 좁은 것 같긴 했지만,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인테리어가 좋았다. 우리는 튀긴 타코와 퀘사디아를 주문했다.

 "어, 여기서는 빵만 안 드시네."

 나는 질문하고 한 2초 있다가 바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아, 그녀가 계속 꿀귀리빵에 관한 말을 피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일텐데 그걸 왜 지금 물어보는 거지. 나중에 결혼하고 그녀가 내 임종을 맞을 때 유언으로 물어봐도 되는데, 그녀가 나를 속깊지 않은 남자로 생각해서 그 모든 기회를 내가 지금 저버린 거면 어떡하지. 아니 그깟 꿀귀리빵이 뭐라고 지금 눈 앞에 있는 윤수경을 놓치냐. 아 진짜 심너울.

 "이건 좀 더 친해지고 나면 말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이렇게 운을 뗐다. 오, 세상에, 내가 그녀랑 친해질 기회를 지금 뻥 걷어찬 거 아니야. 그런데, 지금 나랑 더 친해지고 싶다고 말한건가? 그런 뜻 맞지?

 "저는 지금 바로 우리가 엄청 친한 관계라고 해도 나쁘지 않은데요."

 나는 입을 떼서 그냥 뇌에서 흘러나오는 데로 말했다. 내가 지금 스스로 말하면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너울, 너 지금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니? 그런데 그녀는, 윤수경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뭐, 심너울 선배님, 심리학과 출신이시라니까. 기억상실증 들어봤죠?"

 "네?"

 그때, 갑자기 세상이 멈췄다.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세상이 멈췄다. 마치 DVD 플레이어를 일시정지 한 것처럼, 내 앞에 있는 풍경이 모두 멈췄다. 윤수경은 미소를 띄고 약간 입을 벌린 채로, 그리고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멈춰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무 커다란 타코를 입에 밀어넣느라 고생하고 있는 사람 하나가 그 상태로 멈춰 있었다. 웃으면서 음료 두 개를 나르고 있는 종업원도 멈춰 있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포크를 들어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마치 테이블에 딱 붙어 있는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식당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정착액에 푹 절인 것처럼 얼어붙었다.

 진짜 사랑에 빠지면 이런 기괴한 일이 생기나? 그래서 사랑이 마법이라고 하는 건가? 아니, 사랑은 열린 문 아니었나? 아니, 그런데 이 식당 밖에서도 이러나? 나는 일어나서 반쯤 열린 식당 문을 활짝 열려고 했는데, 고정되어 열리지 않았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고 열린 틈새로 식당 밖으로 나갔다. 거리의 모든 것도 멈춰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얼음에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나는 쩌저적 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소리를 쫓아 하늘 위로 머리를 올렸다. 하늘에 금이 가고 있었다. 아직 해가 창창한 여름의 하늘에 검은색의 금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 놀랍고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곧 조각난 하늘 한 쪽이 떨어졌다. 쾅 하는 거대한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하늘의 조각이 떨어진 빈 곳에는 검고 공허한 어둠만이 남아있었다. 초현실적인, 너무나도 초현실적인 광경이었다. 하늘의 조각 하나가 더 떨어졌다. 이번엔 제법 가까이 떨어져서 슈웅 하는 소리까지 났다. 꽝 하고 그 조각이 대지에 충돌했고,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오른쪽 귀에서 삐이 하고 이명이 울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한 남자의 변명하는 듯한 거대한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이건 그냥 브레인스토밍이라고요, 브레인스토밍! 내가 무조건 이 아이디어로 쓴다고 했나...." 

 

6.

 "이봐요, 후배님, 지금 나랑 장난쳐요?"

 심너울은 진짜 화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내가 기억상실증이란 단어를 꺼냈더니, 진짜 들고 있던 선인장 타코를 집어던지려고 했다. 내가 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면서 워 워 하는 소리를 냈더니 타코를 집어던지지는 않았다.

 "기억상실증 때문에 사회의 여러 문화를 까먹어서, 빵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 잘 모른다고요? 그게 진지하게 생각한 이야기에요?"

 그녀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뭐... 기억상실증이 좀 구식이긴 하지만요, 선배님. 그래도 사회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기억상실증이 구식이라는 건 그만큼 검증된 소재라는..."

 "미친! 진짜 그 기억상실증이란 단어 한 번만 더 말했다가는 봐요."

 나는 기억상실증도 진짜 괜찮은 거 같은데. 심리학 하면 보통 이런 신경과적 문제에 관심 안 생기나? 심너울은 나와 전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내 이름 달고 있는 주인공이 그런 찌질한 이야기에 휘말려 들어가는게 너무 싫어요."

 "아, 예..."

 애초에 내가 쓰는 소설은 주인공이 루저라고 했잖아요, 하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기세가 너무 무서웠다. 어쨌든 그녀는 지금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날 열심히 지원해주는 물주이니까. 나는 잠자코 퀘사디아를 씹었다. 강남에서 배달하는 집이라 맛있긴 맛있네. 그런데 저 선인장 타코는 무슨 맛이 날까? 그녀가 기억상실증을 좋아했으면 한 입만 달라고 해볼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윤수경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났어요? 등장 인물들 이름 짓는거 되게 무서워하잖아요. 동명이인들이 기분 이상할까봐. 그런데 이번엔 성혁이니 수경이니 줄줄 나오네."

 "아 그건... 사람들이 생각보다 제 소설을 신경 안 쓰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SNS 알림창에 뜬 이름들 중에 모르는 이름 아무거나 성만 바꿔서 썼어요."

 심너울은 선인장 타코를 한 입 씹고는 의자의 목받침대에 그녀의 큰 머리를 기댔다.

 "플랜 B는 뭐에요?"

 "프..플랜 B요?"

 그녀가 나를 쏘아보았다. 이건 심상치 않다.

 "없지는 않죠. 그러니까..."

 내 두뇌를 짜내는 느낌으로, 어떻게든 난 말이 되는 이야기를 이어붙이려고 해 보았다.

 

7.

 눈을 뜨니 벌써 오후 한 시였다. 진짜 별 꿈을 다 꾼다. 윤수경을 본다는 생각에 너무 긴장해서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비몽사몽간에 실제로 하늘이 무너지는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내가 정말 그녀를 만나는 것에 기대하고 있긴 있나보다. 나는 침대 위에 앉은 채로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몸을 씻고는, 나랑 친한 여자애가 "이게 그나마 최선이다"라고 해준 코디대로 입고, 거의 말라붙어가는 향수를 몸에 뿌렸다. 눈썹도 좀 정리하고, 성혁이가 "너울 선배님 부럽지 말입니다" 하고 보내는 메시지에 쓸데없는 소리로 답해주고, 인터넷에서 맛집을 찾다 보니까 운명의 시간이 가까이 다가왔다. 

 자두대입구역 근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알아보자 나는 잠깐 눈이 부셨다. 지하철역 바깥에서 나오자 해가 그녀의 뒤에 떠서 역광을 비췄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녀에게 후광이 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프웨이와 꿀귀리빵과 전혀 상관없는 맥락에서 내가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게, 그리고 그녀가 정말로 아름답다는게 너무나 놀라웠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해서 멍하니 서 있었다. 아,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대사가 뭔지 가르쳐주는 머신러닝 어플리케이션 같은 건 언제 나오나?

 "멕시코 요리 좋아해요? 내가 아는 집 있는데, 지금이면 웨이팅도 안 길 거에요."

 그녀가 왠지 익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멕시코 요리라면 진짜 가장 어색한 사람들과 먹어도 좋은 요리인데, 어떻게 이렇게 취향이 잘 맞을까, 역시 운명이 정해준 짝이라는 게 있나보다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그 꿀귀리빵은 어떻게 된 거지.

 윤수경이 나를 데려간 멕시코 식당은 언젠가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식당 같았다. 메뉴 중에는 선인장 타코 같은 신기한 것도 있었고, 처음 보는 멕시코산 탄산음료도 있었다. 식당은 약간 좁았지만 그래도 음악도 멕시코 분위기가 나고, 너무 시끄럽지도 않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대구 타코와 부리또를 주문했다.

 "어, 여기서는 빵만 안 드시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지금 적당한 때인가? 사실 그녀가 하프웨이에서 꿀귀리빵만 먹고 자시고, 지금 나는 그녀 앞에 있다. 내 앞에 있는 윤수경이라는 이 아름답고 재치 있어 뵈는 여자에게 할만한 다른 말이 있지 않을까?

 "이건 좀 더 친해지고 나면 말하려고 했는데."

 "저는 지금 바로 우리가 엄청 친한 관계라고 해도 나쁘지 않은데요."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다보았다. 나는 이 말을 외우고 있던 것처럼 말했다. 왠지 모르지만 그녀가 말하리라고 예상하고 있던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빵만 안 드시네라고 운을 떠본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어.

 그러자 갑자기 그녀가 일어서더니 상반신을 내 쪽으로 가까이 당겼다. 어 이건 너무 빠른데, 아니 사실 빠른게 나쁘지는 않지만, 아니 그래도,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굉장히 좋은데, 뭐, 아니,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신체적으로 매력적인가? 나는 그러니까, 아주 옛날에 만났던 사람이 볼수록 매력이라고 볼매라고 불렀는데, 내가... 어... 어쨌든 나는 살짝 주둥이를 내밀어 보았다.

 "엎드려!"

 한 남자가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근처에서 카드게임 하나? 그때, 그녀는 내 목을 휘감고 내리눌러서 식탁 밑으로 나를 엎드리게 했다. 그 다음에 그녀는 식탁을 발로 쾅 차서, 식탁의 넓은 판이 문쪽을 향하도록 엎었다. 그리고 그녀는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냈다. 세상에, 그건 권총이었다. 아니, 벌써 이런 플레이를? 그런데 식당을 산 건가? 내 머릿속은 굉장히 혼란스러워졌다.

 식탁 판 밖을 보려고 했는데 윤수경이 갑자기 내 머리를 내리눌렀다. 그녀는 겉보기보다 정말로 힘이 세서 내가 어떻게 저항할 수 없었다. 그리고 탕, 탕 하고 화약의 거친 폭발음이 들렸다. 세상에, 그건 권총 격발음이었다!

 "으아악!!"

 나는 일단 비명을 지르고 보았다. 식당의 다른 사람들도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을 가리는 구석으로 다급하게 몸을 숨겼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고개를 들자 윤수경이 권총을 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바깥에서 확성기를 거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수공작원 윤수경, 윤수경은 들어라. 너는 지금 포위됐다. 인질을 풀어놓고 즉시 투항하라."

 나는 특수공작원이라는 단어에 얼이 빠졌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뭔가 조각들이 맞춰졌다.

 매일 하프웨이에서 꿀귀리빵 샌드위치에서 내장을 모두 덜어내고 빵만 먹는 사람이 상식적인 사람일 리가 없다. 아니, 어쨌든 그건 엄청 특이한 일이다. 그녀는 어딘가에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간첩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그녀에게 빠졌으면 그녀는 나를 포섭하려고 했을 것이다. 순식간에 국보법을 수십개 위반하고 감옥에서 평생 썩을뻔한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땅이 쑥 꺼졌다.

 "으악, 으아아아아악!!"

 말 그대로 땅의 모든 타일들이, 그 타일 밑의 바닥이, 그 바닥 밑에 다져놓은 토지가, 그 토지 밑에 있는 튼튼한 기반암이 내 밑에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잠시 윤수경이 저 먼 위에서 당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흙과 자갈들이 내가 빠져든 구멍을 와르르 메워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대지 깊은 곳에서, 콰르릉대는 소리와 함께 날선 여자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때려쳐, 그냥! 그냥 다른 장편 프로젝트 시작합시다."

 

8.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나는 '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재밌게 읽은 적이 있고, 언젠가 첩보소설을 한 번쯤 써보고 싶었다. 아니, 소설 속에 심너울이 계속 루저로만 살면서 맨날 술만 마시면 소설에 무슨 재미가 있겠나? 나는 심너울 옴니버스 시리즈를 좀더 흥미진진하고 새롭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세상에, 대체, 어느, 간첩이, 하프웨이에서, 빵만, 시키면서, 신호를, 보내요. 후, 배, 님."

 심너울은 한 단어 한 단어에 철저하게 그녀의 경상도 악센트를 주면서 말했다.

 "아니, 국정원이랑 일해본 적 있어요? 그런걸 어떻게 알아요, 너울 선배님이."

 "간첩이,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그딴 짓을 하는 간첩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아니 북한에서는 빵이 희귀하니까... 많이 먹고 싶을 수도 있는 거고..."

 나는 말을 하면 할수록 내가 궁색해짐을 알았다.

 "사실 이게, 수습이 힘들어요. 너무 말도 안되는 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나는 내가 지금 처해 있는 난국을 알렸다.

 "그러니까, 진짜 완전 재능 있는 거 아니면, 의식의 흐름대로 하면 조지는 거에요. 당신이 제임스 조이스야 뭐야?"

 "아,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 밤에 '오버웨이 샌드위치에 와서 맨날 꿀귀리빵만 먹는 여자와 맺어지는 남자' 생각을 하면서 지나치게 설레였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체 왜 그녀가 그런 짓을 하는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제대로 된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

 "제 작가 친구들이 맨날 그런 말 해요. 제대로 구성 안 해놓고 짜면 조진다고. 제 친구 중에 한 명은 판타지 쓰는데, 세상에 돌아온 대악마랑 소녀 마법사가 클라이맥스에 지혜 결투를 하도록 판을 짰어요. 거기까진 완전 흥미진진했는데, 정작 작가가 어떻게 수습을 해야할지 모르는 거야."

 그녀가 흥분했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녀는 화가 나면 나한테 근처 사람들의 일화를 꼭 이야기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중간에 작품을 펑크 낸 거지 뭐. 그렇게 세상은 멸망했다 하고 끝내면 욕 먹고, 소녀가 대악마를 이기는 기가 막힌 지혜 결투를 짜내기도 힘든 거지. 그래서 몇 년이 지났는데 그걸로 아직도 욕 먹잖아요."

 "아... 예..."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또 있어요, 다른 친구는 빵에 예수님 얼굴이 찍혀 나오는 사람 이야기를 썼거든. 근데 2편까지 쓰고 나니까 기적이라는 현상이 너무 다루기 힘들어서, 잠시 머리 식히는 척 하면서 때려치우고 지금 딴 거 쓰고 있어요."

 "아... 네..."

 나는 문득 억울해졌다. 내 작품 속의 심너울 이야기를 계속 쓰다 보니까, 난 이 가상의 인물에 꽤 정이 붙었다. 나는 내 '심너울'에게 여자친구 하나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이... '심너울'한테 슬슬 여자친구 하나 만들어줘야하긴 할 것 같지 않아요?"

 그러자 심너울이 피식 웃었다.

 "너무 감정 이입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심너울은 연애할 사람 아니야. 처음 번호 주고, 연락 왔다고 결혼까지 생각하는 애가 어딨어요?"

 "아니 그게 원래 좀 설레였을 때 망상을 하다 보면... 그게 또 꼬리를 물고 하는거라..."

 "주인공은 '심너울'인데, 지금 자기 이야기 쓰고 있었네, 작가님?"

 심너울은 나를 놀리듯이 말했다. 아니, 그럼 어쩌란 말인가. 나랑 비슷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고 나랑 비슷한 이야기를 쓰는데 그럼 감정 이입해서 내 이야기 쓰지.

 그녀는 그 날은 내 어이없는 상상에 지쳤다고 말하고는, 더 이상 소설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용기를 내서 선인장 타코 좀 달라고 해서 먹어 봤는데, 선인장은 아주 뻑뻑하고 질긴 가지 맛이 났다. 그녀는 다른 생각이 났을 때 다시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어이없는 샌드위치 어쩌고는 아예 완전히,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마냥 잊어버리라고 했다.

 하지만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다 오후 10시에 나와, 다시 신촌역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영겁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이 샌드위치 이야기를 절대 포기하진 않으리라고 마음 먹었다. 구석에 묻어두고 보다 보면 언젠가 기억상실증이나 특수공작이 아닌 재미있는 설명이 생각나겠지. 그때는 심너울이 깜짝 놀랄 것이다.

 

9.

 정말로 괴상한 꿈이었다. 윤수경을 자두대입구역에서 만날 때 너무 기대했던 탓일까? 윤수경을 만나고 기괴하게 끝나는 꿈을 연속으로 꿨다.

 엊그제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신체적으로 뭐 크게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대한 예쁘게 꾸미고 향수도 뿌리고 다른 것들도 이것저것 정리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연애의 신인지 여신인지는 나에게 미소짓지 않았다.

 자두대입구역에서 만난 윤수경은 참 예뻤다. 정말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츄리닝을 입고 온 것이 약간 당혹스럽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벌써 그렇게 편한 사인가 하고 생각도 했지만, 너무나 편하지 않아서 츄리닝을 입고 왔구나 하고 추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윤수경은 자기가 아는 멕시코 요리 식당이 있다고 나를 끌고 갔다. 그 멕시코 식당은 조그맣지만 운치있고 신기한 메뉴들도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선인장 타코와 퀘사디아를 주문했다. 요리는 참 맛있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나는 참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그녀의 반응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예, 아니오, 글쎄요 정도로 건성으로 대답했다. 나중에는 아예 무시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 개발된 챗봇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30분만에 식사를 끝내고 윤수경은 자기가 사겠다고 말한 후 4만원을 냈다. 내가 "혹시 뭐라도 한 잔 하실.."이라고 운을 떼려고 하니까, 그녀는 빠르게 말했다.

 "저 일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돼서요."

 그리고 그녀는 자두대학에 널린 힙스터들 사이로 사라져갔다.

 아직 해도 안 졌는데, 나는 침울한 기분으로 신촌으로 돌아갔다. 자취방에 올라가는 길에 맥주피쳐를 한 너덧개 샀다. 몇 시간 뒤에 성혁이가 "오늘 어떻게 잘 되셨습니까, 선배님?" 하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나는 그냥 무시했다. 나는 그날 미친듯이 술을 퍼마셨다.

 월요일에 하프웨이에 출근하자 성혁과 점장이 내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나는 세상의 모든 괴로움이 다 담긴 표정만을 돌려줬다. 그 둘은 내 표정을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짐작했다. 점장은 그 날 세 시간 빨리 나를 퇴근시켜 주었다.

 그 날, 윤수경은 하프웨이에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 후 단 한 번도 그녀를 다시 마주치지 못했다. 자두대 근처에서 건성으로 하던 대화가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가끔 일이 있어 비둘기대학교 사회과학대 건물에 갈 일이 있었지만, 그녀를 마주칠 일은 없었다.

 내 어떤 말이 잘못됐을까, 행동이 잘못됐을까. 나는 내 옷을 코디해준 여자애를 만나, 술을 펑펑 마시며 눈물을 직싸게 흘렸다. 그녀는 그냥 인연이 아니거니 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 생각에 저항하고 싶었지만, 사실 그렇게 말고는 달리 생각할 방도도 없었다. 그게 그냥 운명이었거니 하고 말이다.

 다시 마주칠 일 없는 그녀가 잘 지내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그 꿀귀리빵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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