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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명의 어려움

너울

 

  어제 나는 첫 일주일 치의 실업급여를 받았다. 그 전까지 4대보험은 내게 너무나 추상적인 개념이어서, SNS에서 범람하는 카드 마케팅의 글꼴처럼 느껴졌다. 왜, 한 장 한 장의 그림 글꼴이 굴림체로 되어있으면 얼마나 문구가 명확하든 허접해 보이고, 고딕체면 문구가 최악이어도 최소한의 신경은 쓴 것 같지 않은가. 일자리를 처음 구할 때 4대보험의 보장 여부는 내게 딱 그 정도로 중요했다. 이제 나는 고용보험을 삼천리 금수강산 역사에서 훈민정음 이래 가장 아름다운 행정부의 위업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2년 전의 나는 아직 해고 경험이 없는 실업자였다. 학사에서 잘 지원만 해준다면 모두들 복수 전공 졸업장을 가지고 나오는 시대에, 나는 심리학 학사 학위만 덜렁 가지고 갈매기대학교에서 쫓겨나듯 졸업했다. 3학년 때부터 나도 미래가 짱짱하다는 융합아트바이오메디컬머신러닝소프트웨어컨버전스엔지니어링 학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지만, 4학년 1학기나 되어서야 학사요람에 적혀 있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발견한 것이다.

  “인문사회대 학생이 융합(후략) 전공을 복수 전공하고자 한다면 4학기 연속으로 학점 석차가 본 학과 최상위 3명 이내여야 한다.”

  물론 내 학점은 최상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9학기 이상을 다니기에는 장학금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들을 바라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심리학과 교수들과 졸업 사진도 찍고, 몇 개월 뒤에 나는 갈매기대학 밖으로 쫓겨났다. 한때는 갈매기대학 학사 정도면 외계철학 학사여도 취업이 되는 때가 있었지만, 지금 갈매기대학 심리학 단일전공 학사의 성공적인 취직은 꿈결 같은 이야기였다.

  나는 1년동안 부모님이 마산의 키조개 양식장에서 수백 수천의 키조개를 팔아 꼬박꼬박 보내주는 돈으로 서울에 계속 붙어 있었다. 눈치가 좀 보였기 때문에, 융합아트바이오메디컬머신러닝소프트웨어컨버전스엔지니어링 학과의 전공 과목들을 들을 때에 배웠던 자잘한 프로그래밍으로 아주 간단한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일을 하고 지냈지만, 프로그램 개발에 사용한 이런저런 프로그램의 월 구독료를 간신히 댈 만큼의 수익만 낼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서울에서 개인사업가인 척 하면서 살다가, 빠른 시일 안에 마침내 계란 한 판의 나이를 채우고, 결국 마산에 내려가 키조개를 기르며 살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내려가면 키조개에서 맛조개나 굴로 품종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프로그램 개발의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면 10년 뒤에 분명히 “클래스 설계가 대체 왜 이래?”나 “C 플랫 개발자 3명 타요!” 같은 말을 들으며 괴로워할 거 같기도 했다. 

  그렇게 신촌의 자취방 구석에 박혀 어영부영하던 2021년에 시대는 나의 등을 밀어주었다. 심너울인가 하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쓴 심리학에 관한 책이 어느 날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었다. 

  심너울이 처음 출판한 책은 인공지능에 완전하고 적절하게 대체된 현 시대의 수많은 청년들을 위로하는, “알바트로스”라는 제목을 가진 수필집이었다. 커다란 날개를 가져서 날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날기만 하면 정말 오래 날아다니는 알바트로스에 청년을 댄 다음, 진지하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퀴퀴한 이론들을 조미료로 친 시시껄렁하고 진부한 책이었고, 출판사도 2쇄를 그다지 기대치 않았다.

  그런데 말도 안되는 음모론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검은 비밀을 알려주는 듯하지만 알맹이는 아무것도 없는 한 정치 팟캐스트 진행자와, 팩트라는 단어를 허무맹랑한 추정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또다른 정치 팟캐스트 진행자가 그 책을 읽고 몇몇 표현에 꽂혔다. 두 진행자들의 정치적 진영은 극단적으로 달랐지만, 책을 비롯한 모든 텍스트를 1~2년에 한번 꼴로 읽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심너울의 책에 쓰인 곰팡내 나는 진부한 비유와 생각을 매우 새롭고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공허한 감상을 팟캐스트에 일일히 늘어놓았고, 그들의 추종자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점에 들러 심너울의 책을 샀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너무나 구린 한 책에 빠지는 별로 놀랍지 않은 우연으로 한국 도서시장의 질은 또다시 퇴보했으나 심너울은 일약 명사가 되었다.

  통장에 두둑한 인세가 꽂히고 자신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자 심너울은 놀라운 속도로 책을 쏟아냈다. 쏟아내는 책마다 대상으로 하는 연령대과 자세한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어쨌든 모든 내용들은 “인간이 AI에게 대체될 수 없는 영역은 분명히 있으며 굉장히 광대하고, 심리학 이론을 공부하면 그러한 영역에서 탁월해질 수 있다” 같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한다는 말이 더 이상 미래의 불안이 아닌 세상에, 심너울의 발언은 사실성은 없어도 설득력은 있었다. 3~4년에 한 번 꼴로 책을 읽는 나이 많은 인사 담당들이 인문학적 소양보다 심리학적 소양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심리학이 인문학이라기보다는 사회과학에 더 가깝다는 개념도 널리 퍼졌다. 어쨌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심리학적 소양의 기준은 전문적인 심리학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또, 꽤 많은 고등학생들이 몇 년 전 사람들이 암호화폐에 투자하던 심정으로 심리학과에 대학원서를 냈다.

  수십킬로그램의 족쇄로 여겨지던 내 갈매기대학교 심리학과 학사 학위가 갑자기 명문대의 유망한 학과 학위로 탈바꿈한 것이었다. 대학원 진학을 택해 진지하게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몇몇 친구들은, 하루 날 잡아 심너울의 사지를 찢어 놓고 싶어했다. 하지만 학사 수준의 심리학 공부로 너무나도 넘치게 만족하던 내게, 심너울은 갈매기대학교 취업지원팀보다 위대한 멘토였다.

  심너울이 유명해지고 몇 개월 후에 나는 꽤 큰 통신기업에 계약직으로 취업했다. 나는 전자파라고는 몸에 나쁜 거라고만 생각했지 굉장히 쓸모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몰랐다. 어쨌든 회사 사람들은 “데이터 송수신 시 정보의 비트가 누락될 확률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심리학적 방법론을 이용해서 직원들의 업무효율을 높여봐라” 같은 업무를 내게 내렸다.

  하지만 내게 상담 자격증은 없었다. 조직의 사람들에게 해주면 마법처럼 능률이 올라가는 태도와 자세도 알지 못했다. 가끔 나라 잃은 독립투사 표정을 하며 찾아오는 직원들에게 나는 인지행동치료 상담소를 추천했다. 그들은 한 시간에 수 만원 씩 하는 비용을 듣고 일제 순사에 검거당한 독립투사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입사하고 몇 달이 지나자 나를 찾는 사람들은 없었다. 곧 나는 비채용연계형 인턴과 완전히 똑 같은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심너울의 인기는 시들시들해졌다. 사람들은 심너울이 하는 모든 말이 다음을 확대재생산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마음 속에 A라는 기작이 있습니다. 당신은 A라는 기작을 쓰지 않는다고요? 그게 바로 당신이 A라는 기작을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이 심너울의 레퍼토리를 깨달은 데다가, 심너울은 말이 너무 빠르고 경상도 사투리까지 써서 라디오 방송에서도 자리를 잃었다. 또 심너울은 좀 과도한 수준의 대두였기 때문에 촬영 감독들이 무진 애를 써도 화면에 예쁘게 잡히지 않았고, 그래서 방송 PD들도 그를 피하게 되었다. 결국 심너울의 영광은 2년도 채 못 가서 사라졌고, 사람들은 이제 심리학이 아니라 프랑스 철학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심리학과 사람들이 다시 고통스러워진 만큼 불문학과 사람들은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심너울은 마지막 방송 출연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난 다음에 부동산 사기를 치다 잡혀 뉴스를 탄 이후 소식이 끊겼다. 심너울이 낸 책들은 온라인 중고 서점에 1000원대의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심너울이 지금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지만, 급격히 낀 심리학의 거품은 내 불안정한 지위와 함께 빠르게 꺼졌다. 계약 만료와 함께 내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사실, 내 일이 AI에게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내가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인터넷에 조개 품종만 검색했다. 나는 맛조개가 이름도 먹음직스럽고 괜찮아서, 내려가면 아버지의 키조개 대신 맛조개를 키울까 했는데 맛조개는 대대적으로 양식하는 품종이 아니었다. 또 양식되는 조개 품종들도 양식 방법이 전부 이것저것 달랐다. 키조개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 날 나는 저녁에 술에 취해 부모님께 전화해 사랑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보증금도 걸려 있고 하니, 직장에서 해고되고 혹시 새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더라도 서울 자취방의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서울에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서울과의 추억을 접을 시간이 필요했다. 마산에 한 번 내려가면 조개껍질에 가두어진 조개살처럼, 죽기 전에는 마산을 탈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전 계약이 끝났다. 재계약 의사 같은 건 쥐뿔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안타깝진 않았지만,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이런저런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 귀찮았다. 통장을 보니 몇 개월 정도 밍기적거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나마 뿌듯했다.

  어제 첫 일주일 치 실업 급여를 받고 나는 학부 시절에 자주 다니던 바에 갔다. 평소에는 가격이 무서워 도수가 높은 럼과 도수가 높은 리큐르를 섞은 칵테일을 마셨지만, 어제는 눈독 들이고 있던 것을 전부 주문해 마셨다. 그리고 기억이 끊겼고, 나는 내 집에서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맥주병 몇 개를 보았다. 어제 받은 실업 급여를 모조리 다 쓰고도 더 많은 돈을 썼다는 걸 깨달았다.

  쏟아지는 피로감을 이겨내고 억지로 일어나 앉았다. 많은 것들이 꿈만 같았다.

  “씨발… 그냥 은행대학교를 갔어야 했는데.”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적에, 은행대학교는 갈매기대학교와 엇비슷한 평가를 받는 학교였다. 그 해에 나는 은행대학교 경제학과와 갈매기대학교 심리학과에 합격했다. 심리학과와 경제학과의 평판 차이를 생각하면, 경제학과에 합격한 것은 기적적인 일이었다. 근처 사람들은 모두 은행대학교에 진학하라고 했지만 나는 왠지 오기가 생겼고, 언젠가는 사람 자체를 연구하는 학문이 뜬다고 당당히 선언하며 갈매기대학교에 진학했다. 뜬다는 예언은 맞았지만, 뜬 후에 곧바로 더 어두운 심연으로 추락한다는 사실은 예측하지 못했던 셈이다.

  두 손 안에 얼굴을 묻으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했다. 키조개 양식을 물려받는 것은 꽤 안정적인 미래였다. 사실 양식장이 안정적인 벌이가 되지 않는다면, 서울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빈둥댈 때 부모님이 나를 전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불가능했으리라. 하지만 동시에, 서울까지 올라와서 부모님 척추를 박살냈으면서 다시 돌아가 자영업을 물려받는다는 것이 말이나 될까?

  프로그래밍을 더 열심히 파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2015년 이후 몰아닥친 컴퓨터공학 붐 이래로, 프로그래밍 쪽에서 기는 사람은 없었다. 기는 사람들이 전부 자연선택된 마당에 들어가서 당당히 “나 프로그래밍에서 기어보려고 하오, 언어는 C 플랫이랑 퓌톤이랑 귀틀린이 가능하오, 하지만 커다란 프로그램은 만들어본 적 없소” 하고 선언하는 것은 그다지 장엄하지 않은 자살행위 같았다.

  나는 SNS에 들어가서 동기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나 보았다. 어떤 친구는 7급 공무원에 당당히 합격한 후 쏟아지는 소개팅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 살고 있었고, 또 어떤 아이는 “오버스코어”인가 뭔가 하는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차렸다. 또 대학원에 간다고 했던 동기는 벌써 논문을 몇 편이나 쓰고 미국 대학에서 박사 과정에 있었다.

  숙취보다 뒤쳐진 느낌이 더 괴롭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심리학과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실업급여로 술이나 퍼마시고 있을 때 동기들은 나름대로 살 방법을 찾아냈구나 했다. 내가 남긴게 뭐 있지, 하고 나는 침대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이 심너울의 책이었다. 30~40대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쓴 심너울의 진부한 책이 방바닥에 찢어진 채로 널부러져 있었던 것이다. 책꽂이에 고이 모셔져 있어야 할 책이었는데, 아마 어제 술에 취한 채로 집에 들어와 찢어서 방바닥에 던져 놓은 것 같았다. 나는 그 책의 제목을 문득 다시 읽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문득 마음 속에 울림이 느껴졌다. 맞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심너울도 갈매기대학교에서 심리학 학사를 따고 백수로 펑펑 놀다가 책을 썼다 하는 이야기를 힐링을 주제로 한 시답잖은 방송에서 본 기억이 났다. 나도 어차피 키조개 양식장의 숙명을 짊어지고 있다면, 먼저 글을 써서 심너울 같은 대박을 노려보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나는 글을 써서 상을 받은 적이 많았다. 그림 일기를 그릴 때부터 내 글은 짜임새가 있다는 말을 들었고, 중학교 때에는 과학의 날만 되면 과학의 날 글쓰기로 문화상품권을 휩쓸었고, 고등학교 때는 진지하게 잠시 작가를 꿈꿨다가 그러다간 키조개를 캐러 뻘로 나가야 할 거라는 생각에 꿈을 접었다. 그러다가 문학 말고 인간의 마음을 탐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심리학을 전공한 것이었고.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심너울의 글은 섬유질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한 다음 날의 변기 위에 떠다니는 것들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심너울의 책은 많이 팔렸고, 한국 사회에 비록 짧은 시간동안이지만 분명한 자국을 남겼다. 2020년대 초반을 살아간 사람이라면 심너울이란 사람의 존재를 아주 희미하게나마 기억할 것이다. 그냥 몸 속에 있던 여러 배설물을 아래쪽이 아니라 두뇌로 드러낸 것일 뿐인데 말이다.

  심너울도 갈매기대학교 심리학 학사고, 나도 갈매기대학교 심리학 학사고, 글은 내가 좀 더 잘 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심너울보다 더 큰 자국을 사회에 남기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 실업 급여가 나올 때까지는 글을 써서, 자비 출판이든 뭐든 해 보자. 내가 다녔던 회사는 내 무지막지한 쓸모 없음에 비하면 꽤 많은 돈을 줬고, 통장에는 출판사에 똥을 찍어내도록 강요할 수는 있을 만한 돈이 있었다. 그 후에는, 잘 안되면 마침내 키조개 양식장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실업급여 지급 기간 동안 충분히 해볼 만한 과제 같았다.

  갑자기 숙취가 가시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언가를 분명히 하고 싶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의 느낌, 나는 들떴다. 갑자기 수많은 발상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내가 지금까지 내렸던 수많은 결정의 순간에 다른 선택을 했으면 내가 되었을 모습, 내가 타고나기를 다르게 타고났으면 어떻게 살고 있을 지에 대한 모습, 우리 집이 키조개가 아니라 굴이나 피조개를 키웠다면 분명히 달라졌을 나의 모습, 내가 좀 더 일찍 태어났으면 달랐을 내 주변의 일들이…

  내가 소설을 쓰면, 예술가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예술가들이, 돈 좀 안되더라도 흥미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사회가 가르쳐 준 건지 아니면 내가 스스로 그렇게 결론 내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원하는 흥미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본질이 어떻든 굉장히 매력적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매력적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쓰기로 했다. 한 남자, 갈매기대학교에서 심리학 공부를 한 남자, 그렇지만 나는 아닌 남자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말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하루를 시작해야 하고,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서 나는 샤워를 하기로 했다. 나는 옷을 벗어 가지런히 두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샤워를 했다. 그날따라 자취방 화장실에 극성이던 초파리도 없었다.

  샤워를 하고 상쾌한 상태에서, 나는 내가 컴퓨터 앞에 앉으면 당장 소설을 쓰는게 아니라 게임이나 하고 자빠져 있을 것을 알았다. 나는 펭귄이 그려진 반팔티와 베이지색 슬랙스를 입고, 노트북과 충전 어댑터를 챙긴 다음에, 내가 요즘 한창 다니는 카페로 향했다. 그 카페는 2호선 자두대학교 입구 근처에나 있을만한, 갈매기대학교와 어울리지 않는 힙한 분위기의 카페였다. 그런 곳에서라면 무언가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럴 것이었다.

  여름날의 뜨거운 길거리를 지나 카페에 들어서자 약간 몽환적인 하우스 뮤직이 낮은 음량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세상 모든 것이 귀찮은 표정으로 카운터에서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마우스를 딸깍이고 있었다. 구석 자리에 손님이 단 한 명 있었는데, 등까지 내려오는 아주 약간 곱슬거리는 하얗게 탈색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고, 머리가 정말 큰 여자였다. 그녀는 동그란 색안경을 끼고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레몬 파운드 케이크를 주문하고 원래 항상 앉던 자리에 앉으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단 하나 있던 손님인 그 여자가 내가 자주 앉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대충 근처 자리에 가서 앉은 다음에, 노트북을 멀티탭에 연결하고 워드프로세서를 실행했다.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는 이미지들을 글로 써 내는 것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SNS에 감성적인 글을 올리는 것을 제외하면 뭔가 문학적인 글을 써본 지가 꽤 되었다. 그래도 소설을 썼던 어린 시절에, 서두에 어떤 일반적이지 않은 문장을 던져 놓고 그것을 수습하며 글을 쓰면 쉽게 이야기가 풀렸던 기억이 났다. 나는 천천히 타이핑했다.

  “그는 지금 막 비둘기대학교 심리학과 졸업장을 손에 꼬나쥐고 학교에서 나오는 길이다.”

  내가 다녀본 대학교라고는 갈매기대학교 밖에 없지만, 소설에 갈매기대학교의 이름을 직접 쓰자니 왠지 별 것 아닌 학벌을 애써 드러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의 이름을 일부러 비둘기대학교로 비틀었다. 오랜만에 다시 쓰는 소설이니 묘사하기 쉽도록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심리학과 전공자로 결정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나’는 좀 오래 전인 2016년에 비둘기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마산 중상류층 출신의 남자다. 이 남자는 꽤 잘 사는 집안에 태어난 행운을 얻은 대신에, 삶과 꿈에 대해 지나치게 순진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인디 게임을 만든다든가 하는 괴상한 꿈을 좇는다. 그리고 나는 이 대책 없이 꿈을 먹고 사는 돈좀 있는 촌놈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쓰는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나는 한 사람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나’가 졸업하면서 얼마 전에 ‘나’를 찬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비릿하게 읊조리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고민이 생겼다.

  바로 이름이었다. ‘나’를 찬 여자친구에서부터 ‘나’ 주위에 있는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 굉장히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나’의 이름을 정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나’의 이름을 내 이름으로 하면 왠지 내가 예전에 사귀었던 사람들한테 실례를 저지르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는 ‘나’를 찬 여자친구를 대충 내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여자들의 이름 중에서 정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지수’, ‘지영’, ‘지원’ 같은 이름을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이름은 너무 흔해서, 많은 동명이인 독자들이 이상한 기분을 느낄 것 같았다. 왜, 서울역에서 “어, 야, 김지수!” 하고 부르면 내 앞을 지나는 여자들 중 10%, 그리고 남자들 중 5%는 고개를 돌릴 것 같지 않나. 내 친구들 중에도 당연히, 아니 여럿 있고. 물론 현실 속의 ‘김지수’들은 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개인들이지만, 내가 쓰는 인물은 이름이 독특하지 않으면 꼭 그렇게 구별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설을 쓰다 보면 분명 인간 같지 않은 재수 없는 인간도 내가 출현시키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악역의 이름을 ‘강재경’ 같은 이름으로 정했는데, 내 소설을 읽는 독자 이름이 똑같이 ‘강재경’이면 굉장히 기분이 더럽지 않겠나. 그러면 나는 내 글을 사랑해줄 수도 있는 독자 한 명을 잃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름을 너무 독특하게 지으면 그것도 이상하다. 아니 뭐, 소설 속의 사람 이름을 ‘김팔팔’이나 ‘고야옹야옹’이라거나 아니면 더해서 ‘유오늘따라맥주맛이괜찮네안주는소세지가좋을까나쵸가좋을까’로 정하면 분명히 구별은 되겠지만, 그럼 어떻게 독자들이 내 글에 몰입하겠나?

  성씨를 다 독특하게 지을 수도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전부 ‘온’씨라든지 ‘남궁’씨라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집성촌이 아닌 이상에야 독특한 성씨만 있는 사회는 영 한국 사회가 아닌 것 같고, 또 한 성씨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망가뜨리면 어느 종친회에서 항의 전화가 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더 심하면 변호사가 유쾌하지 않은 이유로 날 찾아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이었다.

  사실 옛날에 심심풀이로 소설을 쓸 때는 죄다 한국이 배경이 아닌 소설이었기 때문에 이름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쉴머츠’라든지 ‘카라뮬러’라든지 하는 어느 나라에서도 쓰지 않는 근본 없는, 그런데 중고등학생 때의 내가 듣기에는 어감이 그럴싸해 보이는 이름을 썼다. 그래서 이런 고민을 딱히 해본 적이 없는데, 내가 사는 현실을 배경으로 묘사하려니 시작부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의자 뒤로 고개를 젖히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와, 생각지도 못한 데서 문제가 생기네.”

  나는 혼잣말이라고 읊조렸지만, 꽤 크게 말했던 것 같다.

  “뭣 땜에 그러세요?”

  아르바이트생이 내 말에 답했다. 이 카페에 하도 자주 들락날락하다보니 아르바이트생이 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소설을 쓰는 것이 예술적인 일이고 하니 굳이 숨길 것도 아니니까, 바른 대로 말하기로 했다.

  “아… 그게, 제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등장인물 이름을 뭘로 지어야 할지 몰라서.”

  “아, 그래요? 지수나 지영, 뭐 지원이나.. 이렇게 지으면 되지 않을까요?”

  나는 그냥 사람 좋게 보이도록 웃었다.

  “괜찮네요. 한 번 생각해 볼게요.”

  그때였다.

  “혹시 제 이름도 괜찮을까요? 독특하고 나쁘지 않은 이름인데.”

  내가 자주 앉던 자리에 앉은,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던 머리 큰 여자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색안경은 별로 진하지 않아서 나는 그녀의 큰 눈을 또렷히 바라다볼 수 있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지만…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그러자 그녀가 한 글자씩 똑바로, 똑똑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심너울이요. 심, 너, 울.”

  “아니, 그 심너울 씨요?”

  그러고보니 그녀는 정말로 방송에 잠시 나오던, 그 잠시간만이라도 나를 취직시켜준 사람인 그 심너울과 닮은 것 같았다. 일단, 머리가 정말로 컸다. 그리고 몇 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투에 내 고향 마산의 지워지지 않는 억양이 묻어나왔다. 행색이 추레해 보이는게 왠지 심리학으로 사기칠 법한 사람 같기도 했다.

  “책 쓴 심너울 말씀하시는 거면 맞아요.”

  “아니, 심너울 씨, 제가 알기로는 그 부동산….”

  부동산 사기까지 말하려고 하다가 나는 간신히 입을 닫았다.

  “그건 제가 그냥 법을 잘 몰라서 생긴 해프닝이에요. 선고유예로 끝났죠. 원래 언론들은 사건이 어떻게 매듭지어졌나는 안 알려주잖아요.”

  사기 문제가 어떻게 진행됐건 간에 그녀는 확실히 심너울인 것 같았다. 진짜 사기죄였으면 지금 이렇게 카페에 있지는 못하겠지. 그런데 나는 어제 그녀의 책을 찢어발기고, 오늘 아침에 그 책을 보면서 소설을 쓰기로 작정하고 나온 참인데.

  “아하… 너울 씨, 제가 갈매기대학교 심리학과 15학번이에요!”

  “아, 그럼 내 후배네요.”

  “그리고 저 마산 출신이에요.”

  “재밌네요. 나도 마산 종려나무여고 출신인데.” 

  분명히 아침에는 그녀를 가능한한 과소평가하면서, 그녀가 해낸 것 이상을 내가 해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꽤 유명한 심너울이 진짜 내 앞에 등장하자 나는 가능한한 그녀와의 연결고리를 찾게 되었다.

  “갈매기대학교 심리학과 나와서 나처럼 글 쓰는 후배라니 반갑네요. 어떤 소설이에요?” 

  “아 그게, 오늘부터 천천히 쓰기 시작한 건데…”

  나는 심너울에게 내가 구상한 소설의 내용들을 전부 알려주기 시작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경멸하는 그녀였지만, 그녀가 말하니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물론 내가 그녀에게 이성적인 어떤 감정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녀는 내가 구상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흥미롭게 들었다. 나는 30분 정도 그녀에게 내가 생각한 이야기의 가장 깊숙한 주제까지 말했다.

  “그거 혹시 주연 이름 내 이름으로 하면 안돼요?”

  심너울이 이런 제안을 했을 때 나는 좀 당혹스러웠다. 사실, 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는 크게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꿈을 좇기는 했지만, 별에 닿을 정도의 능력은 없고, 약간 철없는 면도 있고, 이것저것 할 줄 아는 건 많은데 뭐 딱히 특출난 건 또 없고, 여자 때문에 자주 외로워하기도 하고, 운전면허 딸 때 실기시험을 재수해서 돈을 꽤 날려 우울해하고, 심리학과를 졸업하기 전에 생물학과 공부를 했는데 컴퓨터공학과 공부를 했으면 훨씬 더 지금 삶이 나았으리라 생각하기도 하고, 가끔 취미로 소설을 쓰기도 하고, 머리카락 탈색한 다음에 관리를 제대로 안해서 머리카락이 완전 개털이 되어버린, 어떤 면에서는 유별나고 재미있지만 어떤 면에선 고루하고 따분한, 사실 재미 없는 면이 약간 더 우세한 남자였다.

  “아니, 그런데 성별이 다르기도 해서.”

  “이름에 성별이 정해져 있나, 우리나라 말이 유럽쪽 언어도 아니고. 애초에 너울이 뭐 딱 여자나 남자 이름도 아닌데. 주인공 이름 독특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그녀의 말에는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그래도… 제가 쓰는 소설이 그렇게 막 엄청 주인공을 좋게 묘사하는 소설은 아니거든요. 사실 요즘 유행하는 루저감성이 많이 든 소설이라.”

  “뭐, 싫으면 말고, 마음대로 해요.”

  “아니에요, 이제 우리의 주인공은 심너울 씨입니다.”

  나는 엄숙히 선포했다.

  이제 왜 그녀가 잠시라도 비루한 심리학을 한국 사람들 마음의 옥좌에 올릴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말투는 경상도 사투리와 표준 서울말이 섞여서 약간 우스꽝스러웠고, 외모가 특출나게 뛰어난 것 같지도 않고, 사실 머리가 좀 과하게 크기는 했지만, 그녀에게는 뛰어난 품위와, 분명한 매력이 있었다. 그녀는 심리학처럼 보이는 헛소리에 더해 그녀의 개성으로 잠시 한국의 사람들을 휘어잡았던 것이다.

  “나쁘지 않네요. 아, 그런데 이름이 뭐에요?”

  심너울이 내 이름을 묻자 나는 내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그녀가 내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던 것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확실히 내 이름이 더 독특하고 재미있긴 하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녀는 빙긋 웃더니 말을 이었다.

  “뭐, 어쨌든. 좋아요. 완성되면 연락 줘요. 어떻게든 완성되기 전에는 절대 연락하지 말고. 그럼 저는 이제 다시 게임할게요.”

  심너울은 지갑을 뒤적이더니 명함을 꺼내서 내게 준 다음에, 다시 노트북에 집중했다. 명함에 새겨져 있는 직함을 보니 그녀는 돈을 인생에 넘치고 넘칠 만큼 번 다음, 취미로 가벼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내가 왔을 때부터 죽, 그녀는 아주 무겁고 육중해 보이는 윙윙대는 게이밍 노트북으로 아주 매니악해 보이는 고사양 게임을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제 근처 대학원생 친구들이 당신을 찢어 죽이고 싶어 하던데…”라든지 “혹시 오늘 기분이 좋으면 지금까지 번 어마어마한 자산에서 0.5%만 내게 떼어줄 수 없어요?”라든지 “머리가 그렇게 크면 목에 무리는 오지 않아요?” 같은 걸 물어보고 싶기는 했지만, 어른스러운 일 같지가 않았다. 나는 내 노트북의 워드프로세서에 집중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더 쓰지 못했다.

  그녀는 한 시간 뒤에 일어나서 마카롱 몇 개를 사더니 카페를 떠났다. 심너울은 일어나니 키가 175센티미터는 되는 것 같았고, 커다란 머리랑 길쭉한 키 때문에 걸어다니는 면봉처럼 보였다. 약간 팔자걸음으로 걸으면서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보면서, 이제야 나는 좀 더 뭔가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 소설의 심너울도 175센티미터쯤 되고, 머리가 정말 크고, 면봉 같은 체형을 가지고 있고, 팔자걸음으로 걷는다고 썼다.

  심너울이 카페를 떠나기 직전에, 나는 왠지 그녀를 아주 오랫동안 보기 힘들 것 같아서 다급히 물었다.

  “그런데 왜 제 소설 주인공 이름이 심너울이면 좋겠어요?”

  그녀는 커다란 머리를 돌려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냥, 왠지 내가 또다른 삶을 살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리고 나도 책 쓸 때 이름 가지고 고민 많이 했거든요.”

  “너울 씨는 소설이 아니라 수필을 썼잖아요?”

  “수필이라고 각색 안 하나. 그리고 사람들 이름 그대로 쓰면 그 사람들도 당혹스러울 수 있으니까, 적당히 눈치 못 채게 바꿔야죠.”

  흠, 설득력이 있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카페 밖의 더위 속으로 나갔다. 창 밖을 보니 구름이 약간 모이면서 어둑어둑해지는게 좀 있으면 비가 내릴 것 같기도 했다. 잘 됐네, 카페에 감금돼서 한 편 다 써야겠다. 150페이지 정도 되면 심너울한테 연락해 봐야지. 분명히 그 사람은 출판사랑 연줄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사실 그녀가 말하는게 꽤 재밌어서, 그녀의 책이 유행한 이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충분히 흥미롭기 때문인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나는 머릿속을 정리하기 전에 번잡하게 쳐놓은 글을 지웠다. 내 심너울 옴니버스 이야기에서 어떤 이야기를 먼저 써야할 지 잠시 고민했다. 가장 첫 이야기는 심너울이 마산의 부모님이 하는 자영업을 물려받지 않기 위해 서울에서 온갖 발악을 다 하다, 잠시 지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이야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나는 워드프로세서의 빈 백지에, 심너울의 큰 머리와 면봉 같은 체형과 175센티미터 정도 되는 키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숙취에 찌든 채로 비둘기대학교 심리학과 졸업증서를 문득 바라보고 있던 심너울은 자신만의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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