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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깜박했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몇 번이고 집주인에게 말하자고 다짐했는데 자꾸 잊어버린다.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 등이 고장난지 오래라, 그것도 한 층만 말이지, 3층 통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카매져 휴대 전화 후레쉬를 켜고 살피는데 은근히 번거롭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장이라도 보고 오는 길이라면 더욱.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품에서 휴대 전화를 꺼냈다. 높은 굽을 신고 있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계단 끄트머리에 걸리는 둥 큰일 날 수도 있으니까. 빛이 새어 나왔다. 그대로 앞을 비추며, 다른 손으로 비닐봉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누군가 3층 현관 앞에 서 있었다.

!” 놀란 내 소리에 그도 놀랐는지 홱 고개를 돌렸다. 후레쉬 방향을 그 쪽으로 돌렸다가 얼른 뒤로 빼냈다. 정면에서 비추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덩치가 작은, 중학생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다. 눈을 찌푸리며 잠시 나를 보던 아이가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얼굴이 동글했다.

안녕하세요.”

, 안녕.” 들고 있는 비닐봉지를 본 아이가 씩 웃었다.

그거 치킨이에요?”

, 그래. 장 보고 오는 길이야. 너 여기 사니?”

같은 건물이지만 왕래가 거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특히나 하루 열 시간 이상을 밖에서 보내는 내게 이웃이란 개념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기다란 쇠막대기 같았다.

왜 집에 안 들어가고?”

열쇠를 놓고 와서요. . 엄마는 늦게 와서......”

이런 큰일이네. 그래서 여기서 계속 기다리는 거야? 불도 안 켜지는데 무섭지 않아?”

빨리 대화를 끝내고 집으로 들어가고 싶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되는대로 내뱉고 있었다.

차라리 불 켜지는 밑에 내려가던가. 아니면 뭐 pc방 같은 데라도 가 있는 게......”

이 문 열 수 있어요.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봤거든요. 락피킹이라고, 자물쇠 따기.”

?”

도구만 있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대요. 한 번 해보려고요. 어차피 기다리는 김에.”

그대로 몸을 돌린 아이가 양 손을 올려 현관 손잡이 밑 열쇠 구멍에 쇠막대기 둘을 집어넣었다. 철컥. 철컥. 낑낑 거리며 열중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 보다가, 별다른 대답 없이 마저 계단을 올랐다. 얼른 들어가 쉬고 싶은 기분이었다. 참 요즘 애들은 독특하다니까. 자물쇠를 딴다고? 피식 웃으며 다다른 4층 현관 앞에서 열쇠를 집어넣고 돌렸다.

우와 진짜 열렸다. 오지네. 개꿀이득! 연습 한 거 핵인정.”

밑에서 들리는 소리에 웃음이 터졌지만 얼른 소리를 죽였다. 저게 요즘 유행하는 급식체야? 그나저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열었어? 나중에 나도 한 번 검색해 볼까? 테이블 위에 비닐봉지를 올려놓고 겉옷을 벗어 쇼파에 던지며 스피커에게 말했다. “아리야. 발라드 좀 틀어줘.” 잔잔한 노래가 흘러 나왔다. 나머지 옷도 모두 벗은 채 욕실로 향했다. 얼른 씻고 싶은 피곤한 하루였다. 뜨거운 물을 틀고 들리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이 가수는 목소리가 참 좋아. 연습했다가 노래방에서 불러야지. 샤워기 앞에 서서 몸을 녹이는 도중, 문득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퇴근 후 올라가는 길에, 3층 문이 열리며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여성이 나와 내게 봉투를 건넸었다.

‘4층 사시죠? 밑에 3층사는 사람인데요, 이거 집주인이 전달하라고 하셔서요. 그 공항 소음 보상 신청이래요. 전기세 환급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보면 아신다고.’

아 네. 감사합니다.’

눈인사 후 올라가려는 내 눈에 얼핏 들어 온, 문이 닫히기 전 마주친 조그만 강아지도. 전혀 몰랐었다. 개를 키운다는 거. 훈련이 잘 됐나 봐. 소음 한 번 없었으니까.

중요한 건 이게 아니야. 샤워기 물줄기가 얼굴을 때렸다. 그 사람, 나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여자였다. 20대 중반 정도. 수증기가 욕실을 가득 메웠다. 아니, 말이 돼? 못해도 중학생은 되어 보이는데? 아까 그 아이! 나이가 맞지 않아. 그 나이에 그 정도 아들을 가질 수는 없다고. 친척인가? 앞치마도 둘렀었는데? 아니야 아까, 엄마가 늦는다고 했잖아. 뭐지 이 상황?

샤워기를 잠갔다.

자물쇠를 딴다고? 열쇠를 놓고 와서? 이거,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얘기야?

귀를 기울였다.

여전히 은은한 노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타월을 걸친 채, 조심스럽게 욕실 밖으로 나섰다. 방안은 들어온 그대로였다. 현관문은 여전히 닫혀 있는 채고, 벗어놓은 옷가지들도 그대로였다. “아리야, 노래 꺼.” 스피커가 재생을 정지했다. 쇼파 위에 널브러진 수면 바지와 티셔츠로 갈아입고 얼른 현관으로 향했다. 잠겨 있다. 잠금장치를 살짝 풀고 문을 열었다. 아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나 인기척을 확인 했다. 조용하다. 생각이 너무 막 나갔나? 아무것도 아닌 걸지도 모르고, 애 누나 일수도 있잖아?

끼익. .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끼익. . 작은 충격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끼익. . 왈왈!

강아지가 짖는 소리. 끼익. . 어쩌지? 무슨 일이야? 밖으로 살짝 나가볼까 하다가, 금세 생각을 고쳤다. 미쳤니. 너부터 챙겨.

다시 현관을 닫고, 잠근 후, 몸을 돌렸다. 한 숨을 길게 내쉰 나는 휴대 전화를 들고 쇼파 위에 앉았다. 아 뭐지 이 불쾌함은. 뭐 신고라도 해야 되나? 그런데 그냥 내 추측이고 혼자 쇼 하는 거면 어떡해? 한 숨이 다시 나온다. tv를 틀었다. 강풍과 한파에 주의하라는 뉴스가 나온다. 곧바로 영화 채널로 돌린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맥주 한 캔 하고 다시 생각해보자. 주방 테이블로 향하는 도중, 작은 방 안에서 기척이 들렸다.

. .

 

소름이 돋았다.

 

그대로 조용히 방 문 앞에 다가가 귀를 대었다. 리듬 있는 소리. . . 이 방은 옷이랑 여러 가지 물품들만 두고 사용하지 않는 방이다. 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누군가, 있다는? 숨을 죽여 다시 집중 해 귀를 기울였다.

. .

, 미치겠네. 과민 반응인가? 아까 들은 것처럼 분명 3층에서 소리가 났잖아. 만약. 정말 생각하기도 싫지만 그 만약에, 그 아이가 문을 따고 들어와 숨어있다면 3층에서 소리가 날리 없잖아. 그 강아지도 짖고 있었고. 너 너무 예민해. 몸이 허해서 환청이라도 듣나? 이거 말로만 듣던 이명 현상인거야? 여전히 들리는 소리는 분명, 환청은 아니었다. 분명 작게 들리고 있다. . . 살금살금 주방으로 걸어가 식칼을 빼들었다.

밑져야 본 전인데 확인해보자.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잖아?

저기요!” 큰 소리로 물었다.

거기 누구 있어요?”

대답 소리는 없었다. 들리는 건 그저, 통통 거리는 소리뿐. 침을 꿀꺽 삼키고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거기 누구 있어요? 없죠? 누구 숨어 있으면 경찰에 신고 할 거 에요!”

역시 대답은 없었다. 나는 그대로 방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벌컥 열린 문 안으로 보이는 건, 반쯤 열린 창문이 강풍을 맞아 흔들리며 통통 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 뭐야 진짜! 사람 간 떨어질 뻔했네! 아 왜 몰랐지? 창 열어 놓고!”

신경질을 버럭 내며 성큼성큼 다가가 창을 소리 내어 닫았다. 주위를 둘러 봐도 별 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누군가 숨기란 작은 방이고, 창문 놈이 소리 낸 걸 확인한 이상 겁에 질려 누구 있냐고 물어보던 방금 전 상황이 너무 창피해서 얼른 방을 나가고 싶었다. “십 년 감수했네.” 방문을 닫고 아까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에 식칼을 집어던지고 - 뭔 생각으로 칼까지 들었는지 너무 쪽 팔려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 - 물을 틀어 손에 맺힌 땀을 씻어냈다. “아 진짜! 혼자 사는 게 다행이다!”소리 지르며 얼굴에도 물을 몇 번 끼얹다가, 살짝 드는 경계심에 다시 한 번 현관으로 다가가 살며시 문을 열고 밑에서 소리가 나는지 확인했다.

끼익. . 왈왈! ! 끼익. . 왈왈!

여전히 기분 나쁜 소리는 들려오고 있었다.

고로 내 집엔 아무도 없다는 거. 모종의 위안을 삼으며 현관을 잠갔다.

빨리 맥주와 치킨을! 테이블로 달려 가 비닐봉지를 젖혔다.

치킨이 없었다.

 

오지게 맛있네.”

 

안방 문이 열린 채, 그 안에 서서 닭다리를 뜯던 검은 뿔테 안경의 아이가 씩 웃었다.

인정. 씹인정. 아줌마 입맛 개인정.”

, 뭐야!”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은 나를 보며 아이가 닭 뼈를 바닥에 휙 집어 던졌다. 몸을 좌우로 몇 번 흔들며 아이가 두 손을 들어 손가락을 쫙 펼쳤다.

치킨 좋아해서. 먹으려고요. 이거 봐요. 비닐장갑도 안 끼고 그냥 집어 먹었어.”

, 어떻게 들어 온......”다리에 힘이 풀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까 봤잖음. 자물쇠 따기. 밑에 집에 들어갔더니 개새끼 한 마리가 있어서 몇 번 걷어차 주고 그냥 나왔어 아줌마. 빈 집인 줄 알았더니 쪼그만 새끼가 감히 이 몸을.”

그럼 미, 밑에는 아무도 없어?”

네양. 없어양. 아줌마랑 나 둘만 있어양. 인정? 개인정? 씹인정? 요즘 유튜브에서 재밌는 거 많이 해서 이것저것 연습 중. 문 따기 성공. 그 다음은 뭐? 뭘까요? 배고파서 일단 들어오기는 했는데, 다음은 뭘 할까요? 몇 개 더 할 거 있긴 한데, 아줌마한테 할까?”

주머니에서 아미 나이프를 꺼내 든 아이가 공중을 휘휘 저었다.

아줌마, 아니 누나. 저 좀 도와줘요. 몇 개만 연습 한 거 시험 좀 할게요.”

달아나. 재빨리 일어난 내가 현관으로 달렸다. “아니 진짜. 어디 가?” 쿵쿵 거리며 아이가 달려왔다. 잠금쇠를 풀려는데 손에 힘이 빠져 자꾸 미끄러졌다. “, 살려줘요!” 뒤를 돌아보니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와 있었다.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아이의 팔이 내 어깨를 덥썩, 붙잡았다.

꺄아악!”

시끄러워. 아줌마 조용히 안 하면 그냥 찌를 거야. 진짜 찔러. 나 많이 찔러 봤어요. 연습 삼아 이것저것.”

히죽거리며 아이가 아미 나이프를 치켜들었다. 온 힘을 다해 밀치며 현관을 박치고 나갔다. “아 씨 죽여 버린다아! 까불지 말라고오!”아이도 뒤따라 나와 나를 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맨 발로 도망치던 와중 다리가 꼬여 그만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바로 3층 현관 앞이었다. 달려오던 아이가 걸음을 멈췄다. “아줌마 노답.”내 발목을 잡고 들며 아이가 히죽 거렸다.

 

아킬레스라고 있는데, 유튜브에서 봤는데, 그 전설의 용산데, 약점이 여기라 활 맞고 뒤졌대요. 그래서 아킬레스 건이라고 해요. 여기 끊으면, 못 걷는 다, 인정? 개인정?”

하지마! 제발!”

사람한텐 해본 적이 없어서 첫 시도 두근두근. 심장이 콩닥콩닥. 들림? 인정?”

살려줘요!”

아니, 죽이진 않아요. 뭘 그리 말이 많아. 그냥 칼로 끊고 못 걷는지만 확인할거에양.”

 

끼익. .

휙 하며, 작은 그림자가 튀어 나왔다.

 

으아악!”

으르렁 거리는 소리. 아이의 팔목을 물고 매달려 있는, 그건 강아지였다.

으아 이 개새......”

! 아이가 휘두르는 나이프를 피해, 물고 있던 팔목에서 떨어져 바닥에 착지 한 강아지가 한 번 짖었다. 그르르. 위협 소리와 함께 강아지가 몸을 바짝 굽혀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 나이프의 휘두름이 멈춤과 동시에, 뛰어든 강아지가 다시 한 번, 이를 드러내며 팔목을 덥석 물었다.

아아아! 아파!”

고통에 소리를 지르며 아이가 나이프를 떨어뜨렸다. 죽어도 놓지 않는 강아지를 때어내려 기를 쓰는 사이, 바닥에 놓인 나이프를 주워들은 내가, 본능적으로 그대로 아이의 종아리부분을 찔렀다. “으아앙!” 비명이 섞인 울음을 터트린 아이가 후다닥 뒤로 몸을 피해 일어섰다. 주저앉은 채 칼을 들고 내가 울부짖었다.

, 다가오지 마! 오면 찌를 거야!”

왈왈! 왈왈! 옆에서 지켜주듯 강아지가 내 외침에 답하며 컹컹 짖었다.

아 씨발......” 아이가 중얼거렸다.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아이는 나와 강아지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역시 이론보다 실전? , 인정. 실전 인정.” 기분 나쁘게 중얼거리던 아이의 모습이 사라져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낑 하며 작은 울음과 함께, 강아지가 - 갈색 요크셔테리어였다 - 내 옆구리로 다가와 몸을 비볐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너 때문에 살았어!”

다시 보니 다리 하나가 부러진 듯 했다. 얼른 병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강아지를 품에 안고 일어섰다. 자초지종은 나중에, 일단은 우선 병원부터. 손을 할짝이는 강아지를 보다, 그 소리가 뭐였는지 궁금해 3층 현관을 쳐다보았다.

우유 투입구였다.

강아지가 우유 투입구로 기를 쓰고 빠져나오려던 소리가 바로 그 끼익과 퉁 하는 소리였던 거다.

설마, 복수하려고? 아니지, 복수보단 저 나쁜 놈 가만 안 놔두려 한 거지?”

! 대답하듯 강아지가 짖었다.

털이 대수니. 무조건 나도 키울 거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댓글 2
  • No Profile
    limzak 18.07.11 01:14 댓글

    신선한 부분 인정. ㅋㅋ

  • limzak님께
    No Profile
    글쓴이 후안 18.07.14 11:25 댓글

    ㅋ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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