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판 밑의 걔

 

 

장판 밑에는 걔가 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 아이를 감시하는 게 내 일이다.

걔는 항상 말을 건다. 전에도 그 전에도 걔는 항상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언제나 시작하며 던지는 말은 똑같다.

[누나, 짜증나지?]

주위를 둘러본다. 완전히 밀폐 된 공간. 출구는 하나. 굳건히 잠겼다. 누런 장판이 깔린 장판은 틈새 하나 없다. 구석에 방석을 하나 깔고 앉아, 그저 장판만 쳐다볼 뿐이다. 그게 내 일이다. 그러고 있으면, 짜증나지 라는 말과 함께,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누나, 짜증나지?]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대답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집의 주인은, 그러니까 내 주인은 절대로 걔와 말을 섞지 말라고 했다. 철썩 같이 지켜왔다. 물론 걔 말대로 짜증나는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일이니. 더군다나, 공허한 이 비좁은 방안에 쭈그리고 앉아 있자면, 시시때때로 알 수 없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머리를 훅 치며 들어오곤 한다. 하지만 일은 일이다. 내 일이다. 주인이 시킨 일이고, 이것이 내 유일한 삶이다.

[짜증나지? 성이 누나. 짜증나지?]

내 이름은 성이다. 장판 밑의 걔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주인이 부르는 호칭을 주워들었을 수도 있었다. 왠지 친근한 어투로 성이누나 하고 이름을 부르는 꼴이 무척이나 불쾌하게 한다. 네가 뭔데 내 이름을 부르고 친한 척 해? 애당초 너와 대화하지도 않고 대화하기도 싫은데 왜 그렇게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

[누나. 성이 누나. 짜증나지? 짜증나지? 짜증 날 거야. 계속 그 상태면.]

대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조금 있으면 주인이 올 터였다. 걔와 말을 주고받는 꼴을 보인다면 십중팔구 주인은 나를 혼내고, 이 결박을 더 단단히 조일 게 틀림없다. 그렇다. 내 두 손과 두 발은 꽁꽁 동여매진 상태다. 원래는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근래 들어 주인은 끈이 잘 묶여있는지 재차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고, 나 역시 그런 주인의 달라진 행동에 괜스레 신경이 쓰여 뭔가 답답해져오던 상태다.

[묶여있는 거 안 불편해? 짜증나지?]

빨간 색 노끈은 절대 풀 수 없는 매듭으로 내 손과 발을 옭아맸다. “......” 입을 다물었다. 대화하지 말자. 침묵이 잠깐 지나가고, 방을 둘러싸고 있는 하얀 벽지를 바라보며 더는 걔가 떠들지 않는 것에 내심 안도했다. 불편하지 않아. 이 방을 나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이 방을 나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방에서 태어나고, 이 방에서만 지내왔다. 가끔씩 들어와 말을 건네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소연도 하고, 그렇게 나를 챙겨주고 안아주고 떠나는 주인만 있으면 되었다. 묶인 것은 전혀 불편하지 않아.

[내 이름을 부르면 그거, 풀어줄게. 내 이름을 불러 줘.]

, 오늘은 포기 하지 않고 말을 거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절대로, 그럴 순 없어. 절대로. 장판 밑의 걔는 이런 내 모습을 보지 못 할 터다. 말만 안 섞으면 제 풀에 지쳐 입을 다물 것이다. 손목을 동여 맨 빨간 끈을 보며, 손을 모아 깍지를 꼈다. 천장을 올려 보았다. 하얗다. 새하얀 방에 유독 돋보이는 누런, 싯누런, 장판. 발가락을 움직여 장판에 대고 슥 밀어보았다. 부드럽게 밀릴 줄 알았더니 까끌 거린다. 갑자기 눕고 싶어졌다. 살짝 몸을 숙여, 비스듬히 장판에 누웠다. 차갑다. 차가운 바닥. 싯누런 장판으로 덮인, 아주 차가운 바닥. 냉기. 언제와? 내 주인은 언제 오지? 보고 싶어.

문이 벌컥 열렸다. 황급히 놀라 몸을 일으켰다. 주인이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손에 뭔가를 들고 서 있다. , 기다란, 뭔가를.

너를 가둔 게 아니야.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네가 여기 있는 거랑, 걔를 감시하는 거랑, 내가 지금부터 채찍을 휘두르는 것 다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힘들어서 그래. 힘들어서.”

채찍이 허공을 가른다. 충격과 아픔이, 나를 때린다.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이는 내게, 주인은 계속 내려친다. “미안해. 미안해. 어쩔 수 없어. 이렇게 해야 내가 살아.” 주인은 홀린 듯 중얼거리며 채찍을 마구 휘두른다. 처음이었다. 이런 모습은.

하지 마......”

미안해. 미안해. 어쩔 수 없어. 용서해 줘.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도, 너도, 모두 사라져.”

하지 마......”

마구 내려치던 채찍을 저 멀리 집어 던진 뒤, 주인이 울음을 터트린다. 나도 같이 울었다. 통곡을 하며 엎드려 흐느끼던 주인은, 금세 눈물을 닦고 나를 안아주었다. 아니, 안아주었다는 건 내 느낌일 뿐, 주인의 손은 빨간 끈의 매듭을 더 조이고 있었다.

풀리면 안 돼. 미안해. 이해해 줘. 미안해.”

주인이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계속, 일해 줘. 다시 올게. 다음에는 이러지 않을 거야.”

아픔에 찡그리는 내 얼굴을 보며 주인은 울적 한 표정으로 위로를 건넸다.

그렇게 방을 나갔다.

그리고 역시나,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거는 걔.

[성이 누나. 거 봐. 앞으로 계속 될 거야. 이제부터 계속 지속 될 거야. 얼른 내 이름을 불러 줘.]

말 걸지 마.” 혼란스러운 감정에 나도 모르게 답변을 하고 말았다.

[누나, 누나를 여기 가두고 있는 건 누나 자신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누나는 지금 착각 하고 있어. 누나는 제 발로 묶여, 제 발로 여기 있는 거야.]

뭔 소린지 모르겠어.”

[누나가 주인이야.]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몸을 눕혀, 귀를 싯누런 장판에 갖다 댔다. “다시 한 번 말해 봐.” 걔가 킥킥 웃는 소리가 장판 밑에서 울렸다.

[누나가 주인이라고. 누나가 이 집의, 이 방의 주인이야. 아무도 없어.]

방금 나를 채찍으로 때린 이는 누군데?”

[누가 누나를 채찍으로 때려? 누나 혼자 비명만 지르던데?]

무슨 소리야.”

[여긴, 이 집에는, 누나와 나 둘 밖에 없어. 내가 해결할 테니 내 이름을 불러. 그냥 부르기만 하면 돼.]

주인이 화 내. 또 나를 때릴 거야.”

[누나가 주인이라고.]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묶여 있던 손목과 발목이 저려왔다. 이렇지 않았는데. 왜 이러지? 답답해지고 있었다. 속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묶인 끈이 답답해지고 있었다. 풀고 싶어. 이 매듭. 하지만 절대 못 풀어. 아니 풀면 안 돼. 그러면 주인이......화 내.

[내가 그 끈을 풀어줄게.]

시끄러워. 조용히 해. 내가 네 이름을 부를 일은 없어.”

[성이 누나, 나 지금 어디 있는 줄 알아?]

답하지 않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누나 바로 밑에 있어.]

 

. 차가운 냉기가 올라온다. . 장판 밑에서 둔탁한 소음이 들린다. . 차가워. . 하지마. . 그만해. . . . .

[내 이름을 불러 줘.]

싫어.”

[끈이 점점 답답해 질 거야. 누나는 잘 버틴 거야. 이제 내게 맡겨.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죽어. 죽는다고. 내가 풀어줄게. 단숨에.]

안 돼. 주인이......”

무서운 눈빛으로 채찍질 하던 방금 전의 주인의 모습이 떠올라......?

[누나가 주인이라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굴이.

[누나가 이 집과 이 방의 주인이야. 우리 둘 뿐이야.]

내게 일을 맡기고, 나를 때린 건 누구야? 네 말대로, 내가 주인이라면, 내가 나를 때리고, 내가 나를 묶은 거야?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는......

[불러줘.]

기억나지 않아. 주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이 안나. 그렇게 기다리고 대화하고 싶고 위로받고 싶었는데, 아니 어제 만해도 하소연을 들어주며 같이 공감했는데.

[불러.]

, 기억이 나지 않지? 떠올려 봐. 내 주인을.

[부르라고.]

 

.” 그냥 입이, 제멋대로, 열렸다. 사실은 끈이 너무 아파서. 고통에. 못 이겨서. 그냥.

 

[고마워.]

 

장판이 서서히 갈라졌다.

손이 보였다. 잠시 후 다른 손이 올라왔다. 손과 손이 갈라진 틈 언저리를 짚고, 힘을 주었다. 동그란 머리통이 슥 올라온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산발인 상태다. 나는 계속 옆으로 누워 있었다. 내 눈과, 걔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주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걔는 입에 칼을 물고 있었다. 걔는 칼을 문 채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상반신이 드러났다. 이미 주인의 얼굴을 떠올린 나는 어떤 반항도 하지 않았다. 다리와, 발이 올라왔다. 싯누런 장판을 디디고 서서, 걔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웃고 있는 입에 칼을 문 채.

[풀어줄게.]

걔가 칼을 집어 내 손목을 잡고, 끈을 끊었다. 빨간 끈이 끊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발목의 끈도 풀었다. 지저분하게 흩뿌려진 끈 조각을 바라보며 걔는 웃었다.

나도 웃었다.

주인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리고 걔를 보니, 그저 웃길 뿐이다.

[누나. 누나랑 내가 이 집의 주인이야. 이제 알았지?]

. 그러네. 네 말이 맞아. 내가 몰랐네. 진작 네 이름을 부를걸 그랬어.”

[이제 서로 자리를 바꿀 차례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갈라진 틈을 찾아 머리를 들이밀었다.

걔가, 힘주어 나를 밀었다.

어두컴컴한 장판 밑으로 떨어진 나를 보며 걔가 히죽 웃었다. 손에는 여전히 칼을 들고 있는 채로.

[당분간은 거기서 지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뭔가 웃겨서 웃음이 멈추지를 않았다.

 

==

 

성희씨는 퇴근하지 않았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참고 참았지만, 억울함은 쌓이고 쌓여, 이제 분노를 태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멀뚱히 쳐다보는 저 새끼. 저 눈깔. 뽑아버리고 싶어. 뽑아버릴 거야. 뽑아버리고 짓밟을 거라고.

뭘 봐? 잘리고 싶어? 일하기 싫어?”

집적거렸고, 거부했더니, 이상한 소문을 퍼트려서 나를 쓰레기로 만들어?

뭐 하긴, 여기서 잘려도 반반한 얼굴이니 밥은 벌어먹겠지. 여자의 무기는 눈물과, 몸뚱아리 아냐?”

 

이성을 묶고 있던 끈이 풀렸다.

본능이 바닥에서 올라와 성희씨의 등을 밀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손에 만지작거리던 커터 칼을 쥔 채로.

 

뭔가 계속 웃겨, 웃음이 멈추지를 않았다.

 

 

 

 

.

 

 

 

 

 

댓글 2
  • No Profile
    limzak 18.06.26 01:26 댓글

    속도감과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네요. 후반부에서는 작가님의 재치가 느껴졌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limzak님께
    No Profile
    글쓴이 후안 18.06.26 08:30 댓글

    앗 감사합니다! 짧은 분량이라 너무 급하게 진행하지는 않았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079 0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9804 0
2452 단편 가역거부귀(可逆拒否鬼) 맥인산 2018.08.04 70 0
2451 단편 상실형2 모르타 2018.08.02 106 0
2450 단편 사이버펑크 목이긴기린그림 2018.07.31 45 0
2449 단편 타나토스 강서진 2018.07.31 38 0
2448 단편 개를 기르는 마녀 강서진 2018.07.31 25 0
2447 단편 원조맛집 너울 2018.07.30 121 3
2446 단편 공생 김성호 2018.07.19 26 0
2445 단편 친애하는 선생님께2 후안 2018.07.18 81 1
2444 단편 연애의 어려움 너울 2018.07.14 41 1
2443 단편 작명의 어려움 너울 2018.07.12 63 1
2442 단편 개를 키우는 이유2 후안 2018.07.10 68 0
2441 단편 문예부의 방석 목이긴기린그림 2018.06.30 36 0
2440 단편 남겨진 사람들 limzak 2018.06.30 17 0
단편 장판 밑의 걔2 후안 2018.06.25 60 0
2438 단편 소용돌이 학교1 보리와 2018.06.20 57 0
2437 단편 Punish limzak 2018.06.16 27 0
2436 단편 자기에 담은 김성호 2018.06.13 66 0
2435 단편 잘난 사람에게는 마귀가 산다 후안 2018.05.15 65 0
2434 단편 덜커덩 덜커덩 나뭇잎은 흐른다 보리와 2018.05.03 51 0
2433 단편 열차를 놓치다 Mori 2018.05.03 74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5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