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박사는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사람들을 본다. 그러면서 자신과 그들이 있는 곳은 둘러본다. 산골짜기에 있는 것치고는 꽤 호화로운 건물이다. ‘전당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법도 하다.

자신들을 신도라 칭하는 이들은 작은 제단을 향해 절하고 있다. 걔들 중에는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고, 알아듣기 힘든 주문을 외는 자도 있다. 이른바 종교의식이다.

박사는 학자로서 다양한 지역의 문화를 연구했고 각 문화 사이에 우월성은 없으며 모든 문화에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받아들일 수 없는 선이 있고, 이들이 행하는 숭배 의식은 그 선을 한참 벗어났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문화권에서 다채로운 것들을 숭배하고 있지만 이들이 숭배하는 것은 지나치다.

교주가 들어온다. 하얀 소복을 입은 나이 많은 여자인데, 소박한 옷과는 다르게 군데군데 걸친 장신구는 화려하다. 손가락에는 색이 다른 보석반지가 빛나고 있고 귀걸이는 옥으로 만든 것이다.

단상 위에 올라선 교주는 유리관의 뚜껑을 조심스레 들어 올린다. 그 안에는 여인이 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반듯하게 누워 있고 주위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놓여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 여인이 사람이 아닐 뿐.

시체.

한 때는 붉은 혈액이 온 몸을 휘도는 인간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한 낱 무생물. 그저 시체일 뿐이다.

교주가 입을 연다.

여러분, 시체님의 가르침을 들으시오. 일어나시오. 기도하시오. 노래하시오.”

신도들이 일어난다. 기도한다. 노래한다. 그리고 한명씩 앞으로 나가 시체의 손에 입술을 댄다. 이른바 시체님의 얼을 나눠 가지는 의식이다.

저 썩은 살에 입을 맞추는 것은 무슨 느낌일까. 저것의 악취를 맡을 것이고, 맛을 볼 것 아닌가. 매일 아침마다 여자 신도들이 저것의 피부를 향수와 기름으로 닦아주고 저것이 들어 있는 관이 부패를 억제해 준다고는 해도 끔찍할 따름이다.

모든 신도들이 시체에 입을 댄 후, 교주가 다시 연단으로 올라간다. 그녀의 강연이 시작된다. 저 시체가 살아 있을 때 전해 주었던 가르침부터, 사람들이 그녀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해 그녀를 괴물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했고, 결국 그녀가 시체가 되고 나서야 그녀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녀를 숭배하게 됐다는 것까지. 그들만의 세계에서 이 가르침은 너무나도 완전무결한 것이다.

그래봤자 저것은 인간의 유약함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저 환상에 취한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던 그들은 그 속에서 벗어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박사는 알고 있다.

이들과 유사한 사람들에게 저런 행위의 불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면에 대해 역설한 적도 많이 있었으나, 이들에게는 박사야 말로 불합리와 비이성의 표상이다.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 시체에게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무런 가치도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저 시체는 당신들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저 교주가 시체를 빌미로 당신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가 연단 앞에 서서 목이 터져라 외쳐봤자 그들은 머릿속에서 소위 시체님을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박사는 그들을 평생 이해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도 박사를 평생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박사가 그런 믿음이나 신념을 가져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 그는 뒷산에 있는 거대한 바위를 믿었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타지에서 온 사람들도 복을 비는 바위를 꽤나 신령스런 바위였다. 그가 한 행위는 매우 단순했다. 우물의 맑은 물은 떠다가 아직 때묻지 않은 손으로 바위를 정성스레 닦는 것이 전부였다. 그 행위는 그가 7살 때 산사태로 바위가 굴러 떨어져, 호수에 처박힐 때가지 계속되었다.

그 이후, 그는 길가에서 주운 각시 인형을 믿었다. 그는 그 각시 인형을 위해서 제단을 만들었고 시간을 정해서 그 인형에게 자신의 소망을 빌었다. 자신의 바람을 종이에 적어 불에 태우고, 그 재를 탄 물을 마시며 소원을 빌기도 했다. 그 의식은 술에 취한 아버지가 계집애 같다며 그 인형을 태워버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이후로는 나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집단에 들어가 좀 더 추상적이거나 혹은 훨씬 더 구체적인 것을 믿고, 그것에게 자신의 소망을 빌었다. 하지만, 그가 믿은 대상들이나 혹은 그런 행위들은 단 한 번도 그의 소망을 이루어주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술주정을 부리며 폭력을 가할 때도, 그의 어머니가 말기 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그의 논문이 계속 퇴짜를 맞을 때도, 그가 교수직을 얻지 못했을 때도, 그의 아내가 이혼 서류를 내밀었을 때도, 신이 됐든 혹은 성물이 됐든, 그 무엇도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의 피와 땀, 혹은 어떤 우연적인 요소들의 덕택이었다.

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기적적인 일들이 다 저 시체의 얼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의 노력이나 우연적인 요소들의 결과일 뿐이다.

 

박사는 혼자 전당에 남아있다. 줄줄이 늘어선 창문 사이로 노을빛이 사그라져 간다.

사실 마을에 처음 왔을 때부터 요구 했지만, 교주라는 작자는 돈을 받고서도 이제야 허락해 주었다. 그렇지만 특별히 둘러볼 것은 없다. 빠르게 내부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갈 생각뿐이다. 시체와 한 공간에 있는 것은 역시 달갑지 않다.

문뜩 이번 연구에 대한 짜증이 밀려왔다. 애초에 그의 연구가 아니다. 이전에는 그의 동료였지만, 지금은 유명 대학 교수인 자가 필요로 하는 자료를 그가 수집해줄 뿐이다. 그 결과로 돈 몇 푼이나 받아먹게 될 것이다. 다행이도 몇 달 간의 밥벌이는 될 것이다.

그의 손에는 시체 경전이라는 두꺼운 책이 들려 있다. 그가 이 전당에 처음 들어올 때, 그 교주라는 작자가 준 것이다. 교주는 만일 이 책을 제대로 음미한다면 자연스레 시체님의 가르침을 따르게 될 것이라는 말 또한 덧붙였다.

물론 박사가 이 책을 제대로 음미할 일은 없다. 내용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다.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전들은 이미 수없이 많이 읽어 왔다. 그런 책들은 서점에 가도 많이 있다. 할인해서 파는 경우도 있다.

저 신도들은 이 책이 시체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 여기지만, 그 시체님의 말씀이 얼마나 기록되어 있는지는 교주도 모를 것이다. 박사는 그제야 자신이 혼잣말을 하고 있단 것을 깨닫는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일부는 내가 한 것이 맞으나 대다수는 내가 한 말이 아니다.”

그 혼자만 있을 전당 안에서 목소리가 울린다. 누구인가. 목소리가 들린 곳은 제단 부근이다. 아직 남아 있는 신도가 있는 것일까. 그는 제단 위로 올라간다.

그 이방인 이구나. 가가이 오거라.”

시체가 말한다. 아니 소리가 들렸다가 맞는 표현일까.

당신이 제게 말을 건 것 입니까?”

그래. 내가 말을 걸었다. , 이상한 점이라도 있느냐?”

박사는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주머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혹은 의뢰인이 주문했던, 질문들을 적기 시작한다.

, 당신은 시체가 아닙니까? 시체가 어떻게 말을 합니까?”

시체도 입이 있고, 성대가 있는 데, 말을 못할 것이 무어 있느냐?”

말라비틀어진 시체의 입술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그 속에서는 이유 모를 고혹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박사는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려고 노력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시체가 말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나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는 시체가 말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눈으로 본 것을 믿기로 하고 메모지에 적힌 질문들을 바라본다.

그럼, 말을 하실 수 있는 김에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 혹시 이름이 따로 있으십니까? 아니면, 시체님이 원래 이름 입니까?”

너는 참으로 아둔하구나!”

시체가 호통을 친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바싹 마른 검은 혀가 보였고 소리칠 때의 충격으로 살점이 바스스 떨어진다. 박사는 그것이 아마도 살비듬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 뇌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것을 어찌 기억하겠느냐? 내장도 없어서 배가 고픈지도 모른단 말이다.”

그럼 눈알도 없겠군요. 앞을 보지 못해 부, 불편하시겠군요.”

정 궁금하면, 눈을 한 번 떠주랴?”

시체가 하는 말이 많아질수록 그녀의 입 주변에서는 계속 살 부스러기가 떨어져나간다. 볼 살은 거의 다 떨어져 나가서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고 그 사이로 검붉은 피가 한 두 방울씩 흘러내린다.

그럼 첫 번째 질문입니다. 당신은 어느 시대 사람입니까?”

아둔한 것아! 뇌가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너도 뇌가 없느냐? 그런 질문을 답을 하지 못한다.”

시체는 눈꺼풀을 벌린 채로 소리를 지른다. 당연히 눈알은 없고 군데군데에는 파란색과 보라색 반점이 있는 썩은 살만이 보인다.

, 그럼, 다른 종류의 질문을 하도록 하죠. 당신은 신도들의 소원을 들어 주신 적이 있으십니까?”

가끔은 들어준 적이 있느니라. 그래도 시체님이라고 불러 주는 데, 그 정도도 못하겠느냐?”

놀라운 발견이다. 이 시체가 소원을 들어줄 신비한 힘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 잠시 만요.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말을 걸 수 있으십니까?”

물론이니라. 하지만, 밤뿐이다. 시체는 밤에만 활동하는 게 예의 아니더냐? 그렇다보니, 예전부터 그 교주라고 하는 작자 아니면 그 자를 따라다니는 자들에게 밖에 말을 걸지 못하느니라. 그것도 가끔이다. 이 신도들은 이상하게도 밤에는 나를 거의 찾지 않더구나. 하여튼, 그 교주 일당에게 내가 말을 전하면 그놈들은 일단 눈물부터 흘리다가, 다음 날이 되면 지들 입맛대로 말을 하고 있으니, .”

그렇군요. 걱정이 많으시겠군요.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은 숭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지막 질문 전에, 나도 부탁하나만 하자구나. , 당장 내 몸을 만져 보거라.”

뼈의 모습과 몸의 굴곡으로 상상했을 때, 이 시체는 살아생전에 꽤나 미인이었을 것이다. 만일 그런 여자가 자신에게 몸을 만져달라고 부탁한다면, 박사는 응당 그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시체다. 살아생전에 얼마나 아름다웠든 지금은 살이 한 점, 한 점 부서지고 걸쭉한 진액이 흐르는 시체다.

왜 망설이는 게냐? 여인이 몸을 만져 달라 하면 따르는 것이 사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더냐? 그 교주나 신도들이 걱정되느냐? 내 허락하노라. 이리 해야 네가 원하는 답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니라.”

박사는 시체가 들어있는 유리관을 조심스레 들어 올린다. 향수와 기름의 향이 물씬 풍기나, 고약한 죽음의 냄새도 강렬히 풍겨온다.

그는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남아 있는 시체의 가장 윗부분으로 손을 뻗는다. 두개골이 들어난 부분도 있고 피부 아래쪽에 피가 고여 물컹한 부분도 있다.

손에 피가 묻고 있는 것 같지만, 박사는 시체의 곡선을 따라서 손을 움직인다. 마치 땀 같은 진액이 그의 손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다. 턱뼈는 거의 문드러져서 박사가 그곳을 매만졌을 때, 실수로 손이 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생각 외로 피가 많이 고여 있다. 손에 잡혀지는 딱딱한 것이 아마도 성대일 것이라고, 박사는 생각한다.

어깨 부근으로 내려가 누렇게 변색된 뼈를 만진다. 보관이 잘 되어 있는 줄 알았지만, 이대로 가면 몸이 완전히 뭉개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돌이켜보니 유리관 속에 이 시체가 보관된 것은 최근의 일일 터이고 그 이전에는 더욱 좋지 않은 곳에 보관되어 있었을 것이다. 벌레가 꼬이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피부가 다 찢어져 근육의 결이 들어나 있는 젖가슴은, 아래로 쳐지기는 했으나 그 풍만하고 둥그스름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는 살이 접혀 있는 부위로 손을 밀어 넣는다. 그 후, 엄지손가락을 시작으로 하여 모든 손가락들을 젖가슴 위쪽으로 감아올린다. 그 부위에도 피가 고여 있지만 촉촉한 느낌이 더욱 강하다. 젖꼭지도 건들이고 말았는데, 그의 손가락이 닫자마자 바스스 부셔져 버린다. 시체는 간지러운 듯이 몇 안 되는 이를 드러내면서 웃는다.

허리와 허벅지 부분에는 근육은 거의 없고 뼈에 붙은 거죽이 전부이다. 발 부분은 미라처럼 말라서 피부와 뼈가 거의 붙어있다. 그 끝에서 발가락을 결을 따라 손을 움직인 박사는 그나마 피부와 근육이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는 다리 안쪽 살결을 주무르면서 계속해서 손을 올려간다.

됐느니라. 이제 손을 때어라. 이 죽은 몸한테 그리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면 어찌하겠느냐? 그대로 손을 올렸으면 시간(屍姦)이니라.”

그 말에 제정신을 찾은 박사는 지금까지 자신이 뭘 했는지 돌이켜본다. 저 시체를 만지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가. 이제 곧 썩어 문드러져 흙으로 돌아가 저 시체를 만지면서 그는 무슨 쾌락을 느낀 것인가. 아내와 이혼을 한 후, 여자와 잔 적이 전혀 없긴 하나 그의 몸은 이토록 본능에 충실한 것인가.

그래, 너는 날 그렇게 음미하면서 뭘 느꼈느냐?”

곧 완전히 썩어 문드러질 것 같군요. 차라리 매장이나 화장을 하는 게 나아 보입니다.”

정답이다. 그 놈들은 진정 내 몸이 무얼 원하는 지 무시하고 있느니라. 난 이제 곧 흙으로 돌아가야 하느니라. 아니, 벌써 돌아가야 했는지도 모르겠구나. 근데, 이게 무슨 상황인 게냐? 이런 이상한 곳에 가두어 져서는…… 이건 시체 숭배가 아니다. 단지, 시체 팔이니라. 저 교주 일당은 나를 빌미로 어리석은 신도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는 것이다. 네가 가서 전해라. 네가 계몽자로서 이 시체님이 원하는 바를 전하여라.”

해가 떠올랐고, 시체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박사는 그가 한 밤중 동안 시체와 대화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손에 묻은 피를 우물가에서 씻고 숙소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일을 다시 한 번 돌이켜봤다.

우선 그는 자신의 생각 하나를 정정해야 한다. 시체님은 실존하다. 이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확고부동한 사실이다. 어제 밤의 일은 꿈이나 환상으로 치부될 만한 것이 아니다.

또한 시체가 말한다는 것은 현대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는 얘기다. , 시체님이 행했다고 하는 여러 기적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시체님은 자신을 계몽자로 임명했다. 이제 저 가련한 신도들은 물론 시체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우매한 인류를 이끌어야 한다.

그래. 그래. 그래.

이 모든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운명.

모든 것은 운명이다. 그가 지금까지 격은 모든 고통, 수난, 괴로움. 이것은 모두 자신, 이 계몽자의 운명인 것이다. 이 사실을 왜 지금까지 자신은 몰랐을까.

자신의 인생은 무가치하지 않다. 모두 시체님의 뜻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숙소에서 소리 없이 흐느낀다. 그런 그를 누군가 껴안는다.

시체님이시다.

살아생전의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검은 진주 같은 눈동자가 그를 응시한다. 백옥 같은 두 손이 그의 거친 얼굴을 매만지고 박사는 그대로 시체님의 살결에 얼굴을 묻는다.

시체님이 속삭이신다. 나의 뜻을 네가 행하라고.

박사는 시체님의 입술을 탐한다. 시체님은 거절하지 않으신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주는 시체님에게 박사는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

박사는 시체님의 얼을 느꼈고 이제 그가 해야 하는 일을 행해야 한다.

 

박사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전당 앞 광장에 나타난다. 시간은 이제 막 해가 진때다. 그가 오늘 아침에 교주에게 시체님에 대해서 신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전했고 교주는 선뜻 허락해 주었다.

여러분, 사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전당을 짓고 시체님을 숭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신도들이 침묵한다. 박사가 계속 말을 한다.

하지만, 어제 밤 저는 시체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맞습니다. 시체님의 가르침은 존재 했습니다. 저도 이제 그분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해해야만 합니다.”

신도들이 웅성거린다. 그들은 이상하고 미개한 자들이라고 바라봤던 그가 어찌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누구는 시체님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머리를 조아리고 누구는 눈물을 흘리고, 누구는 시체 경전에 나온 주문을 읊는다.

교주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하얀 머리숱을 흩날리면서 그녀는 박사에게 다가간다. 사람을 제대로 본 것이다. 저 자를 처음 봤을 때, 그의 눈빛에는 혼란이 있었고 교주는 그런 혼란을 좋아한다.

하지만 여러분의 믿음은 잘 못 되었습니다. 그런 믿음은 시체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어제 시체님께서 제게 여러분에게 참된 가르침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신도들이 다시금 웅성거린다. 그 말을 듣고, 연단위로 올라오던 교주의 표정이 일순간 험악하게 굳어진다. 그녀의 예상과는 다른 태도다. 하지만, 교주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오늘 처음 본 것이 아니다.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시체 숭배가 말도 안 되는 행위라고 말했고 그들은 응당한 대가를 받았다. 다만 이상한 점은 저 박사가 이른바 시체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말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 교주 일당은 시체님의 말을 왜곡했습니다. 당신들은 신도들과 시체님에게 사죄하시오. 시체님이 밤에만 가르침을 집적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소?”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신도들이여!! 저자는 이단이오. 외지인이 지금 시체님의 가르침을 모독하고 있소.”

나는 계몽자요! 신도들이여, 나를 따르시오. 시체님의 참된 가르침을 전하겠소.”

박사가 전당을 향해 나아간다. 신도들도 그 뒤를 따른다. 전당 안은 어두웠고 한 줄기 빛만이 시체님을 향해 쏟아진다.

모두 기다리시오. 곧 시체님의 가르침이 들릴 것이오.”

시간이 흘러간다. 시간이 지나간다.

시체님은 한 줄기 빛만을 받고 있으실 뿐, 썩어 문드러진 입술을 움직여서, 그 고혹적인 음성을 내면서, 가르침을 전하지는 않는다.

시침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비어 있는 공간을 매우고 박사는 그 소리가 그의 아내가 이전에 선물해 준 손목시계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다. 소리로 채워지지 못한 허공 속에서의 압박이 그를 점점 옭맨다. 시체님의 향한 저 빛만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의 눈으로 들어온다.

신도들이여, 보시오! 저 소위 계몽자라는 작자가 여러분을 속이고 있소. 우리의 믿음을 시험에 들게 한단 말이오. 이단을 죽음으로 구하라는 것이 내가 최근에 시체님에게 들은 가르침이오.”

그러시겠지. 당신네들이야말로 이단이다! 감히 신성한 시체님의 가르침을 네놈들의 몸뚱이를 위해 왜곡하는 이단이란 말이다!”

박사가 제단 위로 올라간다. 신도들은 웅성거리기도 하고 일부는 박사를 따라 올라가기도 한다.

시체님이 흙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봐라. 시체님은 저 유리감옥에서 나오기를 원한다. , 어제 이 손으로 시체님의 살결을 만지면서 깨달았다. 시체님의 가르침을 듣고 싶다면 저 이단을 처리하라.”

신도들의 웅성거림이 심해진다. 서로를 바라본다. 결국에는 시체 경전을 펴본다.

저 박사라는 자야 말로 이단 아니요? 시체 경전을 보소.”

시체님의 몸을 씻기는 것을 제외하고 만지는 것은 금기 사항이 아니오? 우리는 오직 그분의 손에만 입맞춤을 할 수 있지 않소?”

고작 이방인 따위가 시체님에 대해 논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아.”

이단이다.”

누군가 말했다.

이단이다.”

누군가 따라 말했다.

이단이다.” “이단이다.” “이단이다.” “이단이다.”

교주가 제단위로 올라와 박사를 지목한다. 그리고 소리 지른다.

이런, 발칙한! 감히 그 더러운 손으로 시체님의 몸을……. 저자는 이단이오. 시체님을 욕되게 한 이단이오. 신도들을 기만한 이단이오. 시체님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이단이오. 시체 경전에서 금하는 이단이오. 우리가 죽여 마땅한 이단이오.”

사람들이 일어선다. 소리를 지른다.

이단이다.

신도들이 제단위로 올라온다. 박사는 시체님에게 다가간다. 거칠게 유리관을 밀쳐내고 시체님의 몸에 얼굴을 댄다. 피가 묻는다. 이 분은 참으로, 생전에 아름다웠을, 고혹적인 목소리를 가졌을, 풍만한 굴곡을 가졌을, 한 구의 시체이시다.

시체님의 얼굴을 만지다. 살점이 찢겨져 나간다. 그 살점을 먹는다. 그의 이와 혀로 시체님의 온전한 얼을 느낀다. 시체님의 눈꺼풀이 열린다. 속이 비어 있는 썩은 살결, 그 안에 하얀 액체가 점점 채워지고 선명한 검은 빛이 그 위를 살포시 덮는다. 박사는 크고 선명한 그 눈을 보았고 이내 그것이 자신을 둘러싼 신도들의 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박사의 눈을 본다. 시체님의 몸을 바라본 그 눈은 부정하다. 도끼로 눈을 찍고 그 안에 흙을 부어 정화한다.

그들이 박사의 입을 본다. 시체님의 살을 씹은 그 입은 부정하다. 칼로 턱을 도려내고 불로 지져 정화한다.

그들이 박사의 손을 본다. 시체님의 살결을 만진 그 손은 부정하다. 망치로 모든 손가락 관절을 으깨고 남은 살점을 염산으로 녹여 정화한다.

그들이 박사의 귀를 본다. 시체님의 소리를 왜곡되게 들은 그 귀는 부정하다. 집게로 귀를 뽑고 그것을 개의 먹이로 주어 정화한다.

그들이 박사의 머리를 본다. 시체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그 머리는 부정하다. 돌로 머리를 찍고 흘러나온 뇌수를 삼켜 정화한다.

그것이 시체님이 박사에게 준 마지막 가르침이다.

 

 

………………교주 일당이 시체님을 기만하고 신도들을 현혹시키고 있었다.………………그 때 먼 이방의 땅에서 계몽자가 나타났다. 그는 교주 일당에 현혹되지 않은 지치고 순수한 영혼으로서 시체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온 몸으로 받았다.………………그는 그 가르침을 토대로, 그는 신도들에게 참된 가르침을 전하고자 했다. ………………하지만 교주의 술책에 ………………신도들은 그를 이단으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그가 죽자 시체님은 그를 애도하기 위해 울었다.………………사람들은 그제야 시체님의 음성을 통해 가르침을 들었다.………………계몽자의 육신은 부셔졌어도 그의 순수한 영혼만은 신도들의 정신 속에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그리하여 신도들은 교주 일당을 죽여 그들의 뼈로 시체님의 제단 아래에 계몽자의 제단을 만들어 그의 시체 또한 숭배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체님과 계몽자를 숭배하기 위해 전당으로 모여들었고 전 인류가 시체님과 계몽자를 숭배하여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해야 하는 것이리라.

시체 경전-계몽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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