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아직 살아있나요?

 

 

 

관리소장이라는 직함이 있지만, 어차피 그냥 산장지기인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백수 생활 청산인데 쥐꼬리 월급이며 산장지기며 따질 겨를이 없었다. 더구나, 대기하다 간간이 도움 청하는 이들 응대하는 게 전부인 쉬운 일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일과는 별개로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 대화, 소통.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었지. 혼자는 못 사는.

감옥도 독방이 있고 외로움에 자살하는 사건들도 흔하듯, 각오를 아무리 단단히 해봐도 몰려드는 외로움은 견딜 수 없었다. 내 팔자에 취직은 감지덕지야 하고 버텨보겠다며 굳게 다잡아도 밀려드는 그 세기는 만만치가 않다.

 

[미안하다. 눈이 많이 내려서 못가겠어. , 먹을 거는 넉넉히 남았지?]

 

삼일은 버티겠는데요.”

 

[. . 그 정도면 됐어. 삼일 동안 그냥 푹 셔. 나 찾지 마. 알았지? 이런 날씨에 갔다가 발 한 번 삐끗해서 구르면 인생 쫑 난다고.]

 

알아요.”

 

[뭐 아무튼, 전화는 살아있으니까 진짜 정말 급할 때만 연락해라. 하늘이 미쳤나보다. 기록적인 폭설이래. 설악산이 무슨 알프스가 됐어. 무릎까지 빠지는 건 나도 처음 본다. 이런 날 산에 오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냥 푹 잠이나 자.]

 

잠이 와야죠.”

 

[그건 니 사정이고. 끊는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정말 엄청난 폭설이다. 좁은 산장은 통나무로 이루어져 틈새사이로 바람이 새어 들어 몸을 찌른다. 종종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이 있었지만 이정도로 심한 적은 없었다. 뭐 그래도 전화는 살아있으니까.

 

추워 죽겠는데. 잠이 오긴 뭘 와.”

 

TV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산중턱에 뭐가 들어오겠는가. 솔직히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벽난로 하나는 고풍스러운 자태에 걸맞게 잘 되어 있어 불을 지피는 건 걱정이 없다. 구석에 처박힌 라면 박스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구한 날 끓여먹기만 하니 지겨울 때도 됐지. 스테이크를 썰고 싶다고. 벽에 걸려있는 달력이 펄럭인다.

삼일이라. 짜증이 물밀듯 밀려왔다.

시간을 때우는 방법도 여러 가지지만, 어차피 시간을 버릴 거 뭔가 도움이 되는 것으로 때우고 싶었다. 천성이 몽상가라, 결과적으로는 독서로 결정했는데, 어려서부터 추리물이나 스릴러물을 좋아했던 성격 상 장르 소설이 대다수다. 특히 유명한 추리 소설들은 대부분 정독했다. 추리 소설이야말로 혼자 놀기엔 그야말로 정수.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겐, 소설을 읽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어김없이 오늘도 침대 끄트머리에 던져둔 책을 집어 들었다. 유명 SF소설을 모아둔 두께가 10센티는 족히 될법한 걸작선인데, 시간을 보내기에 정말 좋은 아이템이다! 어디까지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대충 펴 들었다.

여긴 봤어. 다시 몇 장 넘겨보았다. 이 놈의 기억력......

여기도 봤고……

 

.

 

고개를 들었다.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그대로 가만히 주시했다.

 

.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나는 몸을 일으켜 문으로 향했다. 이런 날에 산에 오는 미친놈들이 있긴 있구나. 걸린 빗장을 풀며 밖에 있는 이를 향해 말을 걸었다. 저기요. 바로 닫아야 되니까 열리자마자 얼른 들어오세요. 신발 눈 털지 말고요. 안 그러면 산장 안으로 눈발이 엄청 치고 들어와요. 시간이 지나면 질퍽해진다고요. 청소하기 불편해요.

문을 열자 매서운 눈보라가 들이닥친다. 팔을 들어 눈발에 맞을까 얼굴을 가리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검은 그림자가 쑥 들어왔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서운 눈발이다. 문을 닫기도 힘들어서, 안간힘을 쓰며 겨우 다시 빗장을 걸었다.

 

후우.”

 

한 숨을 쉬며 몸을 돌리자 들어온 남자가 우두커니 서있다. 키가 작은 편이라 키가 큰 내가 앞에 서니 더 왜소해보였다. 남자의 얼굴은 창백했다. 왠지 엉거주춤 서 있는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웠다.

 

아저씨, 참 대단하네요. 이 날씨에 여기까지 오려면 웬만한 전문가 아니고서야 엄두도 못 내는데. 뭐 좀 드려요?”

 

커피를 끓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며 나는 모처럼의 대화를 즐겼다.

 

담배 태우시면 꼭 밑창으로 제대로 비벼서 끄시고요. 일단 날씨가 이러니 여기서 좀 묵으셔야 될지도 몰라요. 원래 피난처 비슷한 곳이래요 여기. 식량은 맛없지만 먹을 만치는 있으니 걱정 마시구요. ! 휴대폰 안 터져요. 이 지역은 통신망이 안 들어와서 안 터져요. 유선 전화는 있으니까 원하시면 구조 요청할게요. 어차피 헬기 같은 거는 못 떠요 하하. 생명이 위급한 사람 없는 게 천만다행이죠. 그런데, 등산이 취미세요? 대단하십니다. 이런 날 등산하고 싶어요? 저는 이런 곳에서 일하지만 등산은 안하거든요. 뭐 좀 몸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하하. 이런 날 산에 오시는 분들 이해가 안가요. , 기분 나쁘게 듣지 마세요. 제가 좀 말이 많죠. 봐주세요. 사람이랑 이런 대화하는 게 얼마만인지 아시면 아저씨 깜짝 놀랄걸요? 커피 드릴 건데요, 설탕 타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남자는 여전히 서있기만 했다.

 

저기, 자리에 앉으셔도......” 남자가 침을 주룩 흘렸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줄줄 흘렀다. 나는 말을 멈추고 의아한 눈초리로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남자의 관자놀이를 타고 녹은 눈이 물이 되어 뚝 떨어졌다.

 

괜찮아요?”

 

대답이 없었다. 다시 침이 주룩 흐르며 남자의 웃옷을 적셨다. 아까부터 서 있는 자세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지금 보니 다리 한 쪽이 특이하게 굽어져 있었다.

뭔가가 잘못됐다.

본능적으로 판단한 나는 등을 문으로 향한 채 조금씩 뒷걸음 쳤다.

 

거기, 다리 불편해 보이시는데 왼쪽 다리 괜찮아요?”

 

다시 보니 굽은 게 아니라 부러져 있다.

 

, 그거 부러진 거 아녜요?”

 

입을 헤벌리며 서 있던 남자의 눈알이 뱅글 돌았다. 눈이 마주치자 이상한 신음을 낸다. 끄윽. 순식간에, 남자의 몸이 내 앞으로 뛰어올랐다.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몸을 구르자 남자의 다리가 원래 내가 서 있던 곳을 정확히 찍어 내렸다.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굽은 남자의 다리가 더 휘어졌다. 뼈가 나간 소리야. 뼈가 튀어 나왔다고! 고개를 돌려 내 몸을 보호할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불을 때우려고 쌓아 둔 장작더미가 보인다. 엉금엉금 기려니 몸이 떨려 말을 듣지 않았다.

 

.

문이 덜컹 움직였다.

. .

 

문 열어!” 누가 밖에서 소리쳤다. 장신이 바짝 든 내가 서둘러 문을 향해 일어나 달렸다. “살려주세요!” 급하게 외치며 빗장을 풀려 했다. 손이 떨려 잘 벗겨지지가 않았다.

 

아 씨발 빗장!”

 

안에 그거 있지?” 밖에서 다시 소리치는 게 들렸다.

 

그거 뭐요? 아 미치겠네! 왜 이렇게 안 풀려!” 답하며 문을 열려고 애쓰는 사이 이상한 남자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끄윽. 침을 질질 흘리며 벌리고 있는 남자의 이가 시커멓다. 끄윽. 듣기 거북한 소리가 또 들리자마자, 남자의 몸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으아!”

 

동시에, 빗장을 풀며 황급히 몸을 숙였다. 문이 벌컥 열리며 눈발이 들이닥쳤다. 머리 위로 찬 기운이 느껴졌다. 겁이 나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문이 계속 활짝 열려 있어 눈발이 매섭게 칼바람을 몰아쳤다.

 

가만히 있어!” 머리맡에서 밖의 남자가 말했다. 붕하는 소리가 바로 뒤를 이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뭔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등으로 물컹한 게 튀어 기겁을 하는 와중에 밖에 서 있던 남자가 급히 내 팔을 잡고 일으켰다. 힘이 무척 세서 그가 끄는 힘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산장 안으로 나를 끌고 간 그가 내 뺨을 후려쳤다.

 

정신 차려! 까딱하면 큰일 난다.”

 

? ?” 어안이 벙벙해 쳐다보자 그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침 흘리던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한테 당하면 죽어.”

 

저것이요?”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맙소사.

 

왼쪽 옆통수가 뭉개진 채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어깻죽지가 들썩거리는 게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 같았다.

 

아직 살았어요.”

 

죽었어. 그것도, 죽은 지 꽤 됐어.”

 

그가 일어나 쓰러진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발로 툭툭 머리를 몇 번 치는가 싶더니 그가 잡고 있던 등산용 지팡이를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머리를......”

 

.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지팡이가 흔들렸다.

 

“......완전히 박살내야 돼. 안 그러면 다시 일어난다구. 죽고 나서 움직이는 거 뭐라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 아무튼 다시 움직여 이것들은. 확실히 박살내지 않으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 나는 그저 입만 벙긋거렸다.

 

맞아! 좀비. 시체가 살아나는 거 좀비 맞지?”

 

, 좀비요? 맞아요. 일단은 좀비라고 하죠 대부분......”

 

이게 그 좀비야. 이렇게 처리하는 게 맞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그가 지팡이로 등을 쿡 찌르며 말했다.

좀비란다.

주마등 같이, 좀비 영화 장면들이 떠올랐다. 시체들의 새벽, 리빙 데드, 이블 데드, 좀비오, 새벽의 저주, 28일 후, 상어랑 맞장 뜨던 좀비도 있었지. 그건 아주 제목부터 좀비였어. 외로움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서러워진다. 아직 젊은데.

 

이봐.” 그가 어깨를 툭 쳤다. 화들짝 놀란 내가 고개를 들자 건장한 체격의 턱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씩 웃는 게 보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사람은 내 일행이었어. 한 번 죽었고. 그런데 지금 움직이니까 이거 좀비 맞지?”

 

. .” 영혼 없는 대답을 하며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웃기지도 않아.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일단 살고 봐야지.”

 

털보가 일어나 열려있던 문을 닫았다. 눈이 들이닥쳐 꺼진 벽난로를 향해 그가 다가갔다. 잠시 후, 뭔가 타들어가는 냄새와 함께 불꽃이 올라왔다.

여기저기 앉아있던 눈꽃들이 스륵 무너져 내렸다. 불씨가 튀고 연기가 올라온다. 털보가 의자 하나를 끌고 와 앉았다. 등산용 지팡이가 피를 흘리며 붉게 웃고 있었다. 바닥을 툭툭 건드리며 털보가 하품을 했다.

 

저기.” 일단 무슨 상황인지 물어보는 게 정상 같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좀비가 왜? 그 대한민국에, 우리나라에도 좀비가 있었나......?”

 

봤잖아. 눈으로. “

 

.” 말문이 탁 막힌다. 털보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사람은 내 일행이야. 우리는 등산 동호회 소속이고, 저 사람과 나를 포함한 네 명이 오늘 산을 올랐지.”

 

, 이 날씨에요?” 미친 날씨에는 미친놈들이 설치는 구나.

 

원래 그런 거야. 남자들 경쟁심 같은 거 있잖아. 애들 노래처럼 누가 누가 잘하나 그런 거. 유치하지만. 그래도 자연의 장애물을 정복하는 맛, 그 맛 모르면 등산가가 아니지. 이런 미친 날은 그런 도전 정신을 부추겨. 물론 거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지만. 뭐 사실 좀 꺼림칙하긴 했어. 꺼림직.......”

 

털보가 자조 섞인 헛웃음을 날렸다. 나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귀로는 들리지만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잘 믿기지가 않았다. 좀비랑 한 판 붙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정상적일 수 있지? 내가 이상한가? 상남자 산 사나이들의 교본인 셈인가 이 인간은? 그때, 털보의 목덜미 쪽에 검붉은 핏자국이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머리 위쪽에서 흘러내린 자국 같았다.

 

다쳤나요?”

 

, 처음에 붙었을 때. 별거 아니야.” 털보가 머리를 긁적였다.

 

커피 한 잔 주쇼.”

 

!” 뭔지 모를 압박감에 우렁찬 대답과 함께 급히 일어나 커피를 타려 물을 끓이는 동안, 품에서 담배를 꺼낸 털보가 불을 붙여 연기를 훅 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이 상황을 정리해 줘야겠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야 당신도 궁금증이 풀릴 거 아냐. 나는 황인호 라고 합니다. 직업은 군인이요. 산은 한 십년 탔어. 아까 동호회에 있었다고 했지? 우리 넷은 동호회에서 꽤 친했지. 저기 머리가 깨져 자빠져 있는 병희씨는 방송국 피디고, 태찬이라고 있는데 그는 의사요. 그리고 다른 한 명이 형민이라고 있어. 형민이는 헬스클럽을 운영하지. 온 몸이 근육질인 젊은 친군데 힘이 장사야 하하.

오늘 산에 오르자고 제안한 사람은 태찬이었소. 사실 이런 날씨에 누가 산을 오르려 하겠어? 아까 당신한테 말했던 것은 다 객기야 객기. 서로들 꺼렸는데, 이거 묘하게 자존심을 자극한 거야. 태찬씨가 의사니까 머리도 똑똑해. 잔머리를 잘 굴려요. 나야 단순하니 바로 걸려들고, 나머지도 툭툭 낚이고. 결국 이 미친 날에 산에 올라 우리 넷 중 최고를 가리자는 유치한 자존심 싸움에, 모두가 동참하게 된 거지. 한두 명이면 몰라도, 2년을 함께한 우리 넷이 같이 오르면 충분히 가능하다 서로 판단한 것도 있을 거야 분명.

그런데 그게 이 지랄이 될 줄은 몰랐지.

후우. 담배 연기가 싫은가? 안 피우나 보네. 일단 사과하지. 봐봐, 연기 올라가는 걸 가만히 보다보면 흥분이 좀 가라앉아요. 똬리를 틀고 있다가 고개를 쳐드는 뱀 같기도 하고. 그래 뱀. 뱀 하면 무서운 게 뭐요? 딱 드는 느낌은 독, 독이잖아. 그렇지? 이 모든 상황의 시발점은 바로 독이였어. 나는 그렇게 믿어. 생전 그런 벌레는 처음 봤거든. 당신 손바닥만 한 딱정벌레가 피를 빨고 있다고 생각해 봐. 끔찍할 걸. 그 벌레가 독을 옮긴 거야. 그 독이 죽은 시체를 되살렸다고! 잘 들어요. 우리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소. 멍청했어. 전문가가 아닌데 이런 날씨에 산을 오르는 게 무리였지. 이 산에 오르는 게 아니었다고. 태찬씨가 뭔 생각으로 이런 폭설에 산을 오르자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중에 경력도 가장 적고 기술도 떨어지는 거 은근히 무시당한 일들, 굉장히 자존심 상했었다고 봐. 이 인간이 내심 벼르고 별러 한 방 먹일 수 있는 날을 고른 거지. 머리가 좋을수록 자존심도 세다던가. 자격지심이 아마도 원인일 거라는 생각은 했소. 그러면 뭘 해. 결국은 제일 뒤로 쳐질 거면서.

 

나와 형민이 앞에, 병희씨가 가운데 위치했고 태찬씨는 제일 뒤에 뒤쳐졌소.

 

사실 오르는 건 어렵지 않아. 영화처럼 가파르진 않거든. 규칙만 제대로 지키면 되는 거지. 문제는 뭐냐면, 이런 날씨에는 시야가 가린다는 점이야. 화이트 아웃, 들어봤나? 십오 센티 앞도 안 보여. 눈발에 가려진 틈새와 구덩이가 얼마나 많은지 모를 거요. 까딱하면 추락, 그냥 그대로 즉사지. 젠장. 가장 뒤에 쳐져 있던 태찬씨가 그만 구덩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소. 사람 하나 겨우 드나들 공간인데 태찬씨는 몸이 말랐기에 걸리는 부분도 없이 그냥 직방으로 떨어진 거야. 바로 머리를 부딪친 것 같은데, 한 삼 미터는 족히 되는 깊이고. 피가 엄청 흘렀고 우리는 경악했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병희씨가 - 저기 쓰러져 있는 좀비? 아무튼 그거 - 내려가겠다고 나섰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을 해봐야 되는 거 아니냐며 줄을 내리기 시작했지. 솔직히 좀 놀라긴 했소. 의외였거든. 나 같은 군인이나 형민 씨처럼 운동하던 사람들은 겁에 질려있는데 피디가 구출하려 한다니, 아이러니하잖아? 쪽 팔리게. 그는 자신의 허리에 맨 후 줄을 잡아달라고 부탁했고, 우리는 힘껏 버틸 테니 걱정 말라고 했소. 내 허리에 동여매고 그 다음 형민과 내가 같이 잡았지. 병희씨가 내려가고 우리는 그가 소식을 전하기를 기다렸어.

 

[피가 장난 아니에요!]

 

그가 외쳤고, 우리는 올라오라고 했어. 구조를 요청하는 게 더 급했으니까.

 

[이미 죽은 것 같아요!]

 

다시 그가 외쳤고, 우리는 마찬가지로 얼른 포기하고 올라오라고 했소.

 

[일단 올라갈게요.]

 

줄이 팽팽 해졌지. 나는 이 지팡이를 바닥에 틀어박고 버텼소. 행여 구덩이에 끌려갈까 있는 힘껏 버텼지. 우리 무게를 지탱해서 병희씨가 올라오는 거니, 조금이라도 힘을 빼선 안 되는 거지. 사람의 몸은 꽤 무겁더군.

 

[!]

 

그때였어.

단말마의 비명이 들리고, 엄청난 힘이 내 몸을 끌어당겼지! 지팡이를 잡은 그대로 미끄러져 끌려갔어. 형민이 손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내 몸은 구덩이 쪽으로 향했소! 난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으려 버텼소. 취미로 인공 암벽 등반도 틈틈이 즐겨왔는데, 그게 아주 큰 도움이 됐지. 떨어지는 찰나 온 힘을 다해 벽의 암석 하나를 손으로 붙잡았거든.

 

[으아아악!]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싶었는데 밑에서 또 비명 소리가 들리는 거야. 상황을 파악하려 내려다본 뒤 난 충격에 휩싸였소. 처참한 광경이었어. 온 통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둘의 모습이 보였다고. 태찬은 사고를 당해서 그랬다 쳐도 병희씨마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건 의아했지. 나를 끌어당겼던 그 힘은 병희씨가 구덩이를 오르다 떨어지면서 중심이 쏠렸다는 건 알았지만, 왜 병희씨가 이 삼 미터밖에 안 되는 구덩이 하나 못 오르고 떨어졌는가, 그게 궁금한 거지.

 

[이봐!]

 

나는 병희씨를 향해 소리쳤소.

 

[이봐! 괜찮아?]

 

대답이 없었소. 몸에 미동도 없었고. 잠깐 고민했지만, 어차피 나와 그를 연결하는 줄을 풀려면 내려가야 했지. 형민에게 소리쳐 무사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줄을 당겼어. 형민의 반응이 오더군. 난 밑으로 내려가 착지한 다음, 병희씨에게 다가갔소. 그는 죽어있었어. 숨결은커녕 이미 눈이 뒤집혀 흰자위가 번득였으니까. 심한 외상은 보이지 않는데 피가 너무 많이 흐른 게 이상했소. 도대체 그 순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했지. 난 의문을 가지고 둘의 시체를 살펴봤소. 일단 병희씨 몸과 내 몸을 묶고 있는 줄을 푼 뒤, 먼저 떨어졌던 태찬쪽을 살폈어. 머리 뒤쪽에서 피를 흘리고 있어서 몸을 뒤집어 보았어. 새하얀 눈 더미에 커다란 피얼룩이 진 것을 보면, 누구라도 소름이 돋을 거야. 뇌수가 다 튀어나가 주변에 흩뿌려져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처, 그냥 즉사였소. 난 혀를 차며 이번에는 병희씨를 살폈지. 꿀럭 거리며 피가 분출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와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섰지. 확실히 죽긴 죽었는데 사인이 뭔지는 알아봐야 할 거 아냐? 그래서 마찬가지로 몸을 뒤집었소.

 

맙소사. 난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소!

 

병희씨의 목덜미, 그러니까 머리 뒤쪽과 목이 연결되는 그 지점, 그곳에 거대한 황금색 딱정벌레 한 마리가 붙어 있었소! 황금빛이 도는 황갈색 딱정벌레! 피가 흐르는 소리란 착각이었지. 그 벌레가 피를 빨고 있었던 거야! 두려움이 밀려왔소. 그 벌레가 사람을 죽인거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군. 얼른 떨어질 때 놓친 등산지팡이를 찾았어. , 저기 병희씨 아니, 좀비 머리 깨부순 요놈 말이야. 구석에 굴러다니는 걸 곧바로 집어 들어 그 벌레를 향해 내리쳤지. 그런데, 그 벌레가 지팡이를 피해 날아올랐어.

그렇게 그냥 위로, 하늘로.

고대 생물 알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런데서 백악기 쥐라기 해서 몇 억 년 전 살던 것들 보여주던 거 봤나? 마치 그 시대 있던 벌레 같은 거야. 미지의 고생물 이런 거. 그러고 보니 바퀴벌레도 삼억인가 역사가 제일 오래 된 종이라지? 맞아. 바퀴벌레 같이 생긴 것도 같았어. 바퀴도 좀비 같은 생물이잖소. 머리를 잘라도 발발 기어 다니니까. 초강력 생명력을 전해준 건지도 모르지.

그때였어. 병희씨의 몸이 움찔 하는 거야. 살아 있을 리가 없는데 몸이 반응을 보이는 거야. 처음엔 헛것을 보고 있나 했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으니까. 얼어붙은 것 같이 나는 꼼짝도 못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지. 병희씨가 천천히 일어나더군. 정신이 하나도 없었소. 얼른 달아나자는 생각밖에는 안 들었어. 함부로 움직이면 이 병희씨 아니, 뭔가 모르는 존재가 인기척을 느낄까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지만. 병희씨가 고개를 갸웃거렸소. 눈과 입에서 물인지 뭔지 모를게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어. 그러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태찬의 시신을 향해 움직이는 거야. 피범벅이 된 태찬의 머리를 붙잡더니, 병희씨가, 입을 쩍 벌렸소.

속이 메스꺼워지는 군.

그는 태찬의 머리통에서 흘러나온 뇌수와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어. 뇌를 먹었단 말이야! 다른 부분은 신경 안 쓰고 오직 머리 부분에만 매달려 있었어.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고 조심스레 몸을 움직였지. 여차하면 발악할 심정으로 이 지팡이를 부러져라 꽉 쥔 채 말이야.

 

[밑에는 어때요?]

 

타이밍 기가 막혔지. 그때 형민이 소리칠 줄 누가 알았겠어? 그 소리에 흠칫 놀란 나는 밑져야 본전이다 재빨리 벽을 올랐지. 병희씨도 나를 발견하고 태찬의 머리에서 내 쪽으로 방향을 틀었어. 끄윽 하는 소리를 몇 번 내더니, 그 좀비가 뛰어들었어. 느릿느릿 하던 그것이 갑자기 달려들었어! 좀빈지 뭔지 원래 느릿느릿 한 거 아니야? 무슨 육상선수 같았다니까! 난 약간 벽을 기어 오른 상태였는데, 그 좀비가 밑에서 내 다리를 잡았지. 무지막지한 힘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미끄러져 다시 바닥에 떨어졌어. 좀비가 흘리는 침과 핏물이 내 얼굴에 떨어지고.

 

[? 병희씨 괜찮은 거예요?]

 

형민이 위에서 우리 모습을 봤나봐. 그가 놀라며 소리치더군. 난 그냥 살려달라고 외쳤어. 좀비가 몸을 숙였어. 내 뇌를 먹으려고!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살려줘!]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 챘는지 형민이 줄을 있는 힘껏 잡아 당겼어. 허리에 묶여 있던 줄이 강하게 당겨지며 약간 벽 쪽으로 끌려갔지. 구사일생으로 피한거야. 서둘러 일어나 그때까지도 꾹 쥐고 있던 이 지팡이로 좀비의 관자놀이를 후려쳤어! 퍽 하고 지팡이가 울려 손이 저려왔지. 온 힘을 다한 일격이라 좀비의 몸이 옆으로 밀려 쓰러지고, 그 반동으로 나도 벽에 심하게 부딪혔는데 그 때 당한 상처가 바로 이 뒤통수에 생긴 그거야. 당시는 아픔이고 뭐고 몰랐어. 헐레벌떡 벽을 기어올랐지.

형민이 내 팔을 붙잡고 위로 끌어올렸어. 어찌어찌 구덩이에서 올라왔지. 밑에서는 계속 끅끅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우리는 겁에 질렸어. 바람은 몰아치고 앞은 온통 새하얗고. 형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정신적 충격이 컸던 것 같아. 나는 행여 날아 오른 딱정벌레가 근처에 있지는 않을지 걱정되어 여기저기 살폈어. 갑자기 형민이 구덩이 근처로 가더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상황을 살피고 싶었나봐. 도저히 믿겨지질 않았겠지. 자기도 얼추 본 게 있을 테니. 형민이 엎드려 밑을 보는 순간 에도, 난 계속 그 벌레를 경계했어.

설마 이 위로 올라오지는 못하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어.

 

[뭐해?]

 

세상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지.

 

[도와줘. 왜 보고만 있어.]

 

병희가, 그 좀비가 기어 올라온 거야. 그것도 형민에게 도와달라며 말까지 꺼내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상해 봐. 방금 전만 해도 시신의 뇌를 빨아먹던 움직이는 시체가 어느 순간 멀쩡하게, 그 동안 뭔 일 있었소? 하는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는 광경 말이야. 얼마나 놀랐는지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지. 지팡이에 맞은 자국도 그대로 남아있는데. 시뻘건 피멍이.

 

[이봐. ‘헐크보고만 있지 말고 도와줘.]

 

[히익!]

 

형민은 얼마나 놀랐겠어. 눈앞에 피투성이로 죽어 있던 사람이 말을 거니까. 그만 놀라서 그가 발을 헛디뎌 구덩이에 떨어지고 말았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떨어지면서 그 좀비를 잡아끌었던 모양인지, 좀비의 모습도 눈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어.

난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어. 이해하지?

칼바람이 매서웠지만 눈을 헤치고 달렸지.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들은 척도 않고 죽어라 달렸어.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어. 그냥 뛰고, 뛰고, 또 뛰고. 몇 번이나 굴렀는지 몰라. 여기저기 돌에 채이고 나뭇가지에 긁히고. 시팔! 눈이 깨끗하게 다 덮는 건 좋지만 그 밑은 지저분하고 위험하다 이거야. 마치 우리 세상살이 같은. 독기가 슬슬 올라왔지. 좋아! 일단 난 살았어. 그 미친 상황에서도 난 살아남았다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거야. 개죽음이니까. 미친 듯이 걷고 뛰고. 얼마나 헤맸는지 몰라. 그러다 우연찮게 이곳을 발견한 거지. 구세주를 만난 느낌에 눈물이 앞을 가린 것도 잠시, 그 빌어먹을 병희, 아니 좀비가 들어가더라고.

당신이 좀비를 안으로 들였어!

한참을 굴러보니 이미 내 두려움은 분노가 잠재우더라.

그 다음 상황은 더 얘기 안 해도 알겠지.

 

 

긴 얘기였다. 커피는 이미 식어 차가워져 있었다. 담배를 하나 또 꺼낸 인호가 불을 붙여 연기를 뿜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지만, 지금은 그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몸의 떨림을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인호가 침을 찍 뱉었다.

 

그 좀비가 다시 구덩이를 기어올라서 말했을 때, 형민에게 헐크라 했거든.”

 

헐크요?”

 

헐크는 형민이 애칭 이야. 만화 속 주인공 헐크와 닮았다고 붙여준거거든. 태찬씨가.”

 

담배가 금세 몽당연필 만치 작아졌다. 뿌연 연기 건너로 인호의 눈빛이 번득였다.

 

그리고 그 애칭은 태찬씨만 불렀어. 우리는 사용하지 않았어.”

 

병희씨는 애칭으로 불렀을 수 있잖아요.”

 

아니? 한번도,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어. 솔직히 둘은 그렇게 친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애칭 부르는 거 취향에 안 맞아서 안하고. 태찬씨만 형민에게 애칭을 불렀어. 예전에 형민이가 하는 헬스클럽에 회원으로 있었다고 했거든. 그때 붙여준 애칭이라고 했어. 절대로 병희가 형민에게 헐크라고 부를 일이 없어!”

 

인호가 지팡이로 다리를 툭툭 쳤다. 그 묘한 리듬이 은근 거슬렸다.

 

태찬의 뇌를 먹고, 병희가 태찬이 된 거지.”

 

설마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답했다.

 

그게 가능해요?”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럴 수도 있단 얘기지. 지금 이 상황이 현실 같아? 우리는 방금 좀비랑 싸웠어. 영화 찍는 거 아냐. 이 지팡이 대가리를 봐. 머리 껍데기랑 머리칼 엉겨 붙은 거 안 보여?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폭설이 내리는 산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지.”

 

그렇다면 왜 처음에 태찬씨처럼 행동 하지 않고 침을 질질 흘리며 공격했죠?”

 

, 시간제한? 우리들 밥 먹고 다시 배고픈 것처럼. 아무래도 그들은 뇌를 먹고 뇌에 대한 배고픔을 느끼나 봐. 봐봐. 만약에 내가 이렇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당신은 태찬처럼 행세하는 좀비에게 속아 당신 머리를 먹혀 버렸을 거야. 내 추측은 그거야. 이들은 뱀처럼 속이는 거야. 먹이를. 아무튼 중요한 건 난 아직 살아있다는 거고, 살아야 한다는 거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거. 씨발. 태찬처럼 행동하든, 아니면 침을 흘리며 개소리를 내든 죽은 건 죽은 거고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거지. 제기랄. “

 

만일 인호의 생각이 맞는다면, 좀비는 시체의 뇌수를 흡입하고 그 흡입한 뇌의 소유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게 된다. 영원히는 아니고, 언젠가 풀리는 시간제한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가 떨어지거나, 아니면 먹이를 찾거나 하면 다시 배고픔을 느끼고 사람을 찾아 헤맨다. 그 본능이 내가 있는 이 산장까지 찾아오도록 일종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준 거고. 이거 말 되는데?

 

형민이라는 분은 어떻게 됐을까요?”

 

병희 뿐만 아니라 태찬도 좀비가 됐겠지. 그럼 좀비가 둘.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이길 수 있어?”

 

또 담배를 꺼내 문다. 벽난로 불씨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열기가 죽어가니 추운 공기가 다시 꾸물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한다. 장작을 더 집어넣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욱한 담배 연기를 피해 벽난로로 걸음을 옮겼다. 장작을 집어 들고 던져 놓다가, 문득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멈칫 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전화는 살아 있으니까 일단 구조 요청을 하는 것이 좋겠어요.”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인호는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팡이를 꾹 쥔 그의 팔뚝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입과 코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물고 있던 담배의 재가 툭 떨어져 흩날렸다. 보고 있는 나도 온 몸의 세포가 곤두서며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누가 있어.”

 

.

. .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우리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일단 무슨 말이라도 들리기를 기다려 보자. 밖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이라면 말소리가 들릴 테고 아니라면…….

 

. .

나는 곧바로 단단해 보이는 장작 하나를 집어 들었다.

. .

인호가 가자고 눈빛을 보냈다. 문 쪽으로 다가가 순식간에 해치우자는 신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손으로 장작을 단단히 쥐고, 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안에 누구 없어요!”

 

!”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내뱉은 탄식이 산장 안에 울려퍼졌다.

 

이봐요! 누구 있죠? 이봐요! 문 좀 열어주세요!”

 

누구야!” 인호가 소리쳤다. 문에 바짝 붙은 그가 지팡이를 위로 치켜들었다.

 

조난을 당했어요! 열어주세요! 제발요!”

 

나는 빠르게 인호의 귀에 속삭였다.

 

(저게 누구든 간에 좀비일 가능성이 크겠죠?)

(좀비라고 해도 말을 할 줄 안다는 건 누군가의 뇌를 처먹었다는 거고.)

(행여 살아왔을 수도 있잖아요. 구덩이에서 기어올라서......)

(불가능 해.) (일단 유리한 건?) (아마도 둘인 우리.)

 

속사포처럼 말을 주고받은 우리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빗장을 올리고, 쏜살같이 왼편으로 비켜서 장작을 치켜들었다. 거센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몰아쳤다. 왼쪽엔 내가, 오른쪽엔 인호가 각각 무기를 들고 여차하면 내려칠 기세로 대기했다.

 

온 몸이 눈으로 뒤덮인 남자가 두리번거리며 안을 살폈다. 그의 시선이 인호로 향했고, 인호 역시 그를 알아보고 표정이 사색이 되어 굳어졌다.

근육으로 탄탄한 덩치가 큰 남자였다.

모습을 보자마자 형민일거라고 내 직감이 말했다.

 

형민씨?” 큰 소리로 묻자 남자가 깜짝 놀라며 나를 돌아봤다.

그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얼른 나와요!”

 

?” 대답할 틈도 없이 남자가 나를 밖으로 잡아끌었다. 끌려가는 내 반대쪽 팔을 인호가 거세게 붙잡았다. “이봐. 그렇겐 안 되지.”

 

인호가 담배를 뱉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넌 죽었을 게 틀림없어. 구덩이에 떨어졌잖아. 고로 너도 좀비야. 이 새끼야.”

 

뭐라고!” 남자가 악을 썼다.

 

 

당신이 죽었잖아!”

 

둘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채 양쪽을 번갈아 보는 내 표정은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시체 주제에 머리를 굴려? 그렇게 뇌가 고픈가. 어디서 누명을 씌워.”

 

넌 죽었다는 것을 몰라! 내가 다 봤어! 다 봤다고!”

 

남자가 분노하며 침을 튀겼다.

 

당신이 인호씨의 뇌를 게걸스레 퍼먹는 것을 봤단 말이야!”

 

생각들이 온통 헝클어졌다. 엉킨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줄들이 구르고 구르며 점점 덩치를 불려갔다. 형민의 말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부 뒤집을 수 있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긴 시간동안 내게, 좀비와의 사투를 얘기하던 인호라는 사람이 바로 그 좀비라니. 그럼 그의 지금까지의 얘기들은?

 

닥쳐! 이봐. 저 놈 말 믿지 마.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구덩이에 떨어지는 모습을. 좀비에게서 살아남을 수는 없어. 저건 좀비야. 널 속이려는 거야. 확실해. 내가 아까 말했지? 뱀처럼, 먹이를 속인다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호가 형민의 머리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말을 하다 말고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눈 깜짝할 새였다. 형민이 피할 틈도 없이 팔을 들어 막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형민의 몸이 옆으로 밀려 눈밭에 쓰러졌다.

 

씨발!”

 

그가 욕을 내뱉으며 내게 외쳤다.

 

저 새끼가 좀비라고! 당신도 당한다고!”

 

혼란스러웠다. 손이 아릴 정도로 아까 주워들은 장작만 힘주어 잡고 있었다. 형민이 엎드려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인호가 어느새 다가왔는지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형민과 또 눈이 마주쳤다. 이제는 공포에 애절함이 더해졌다.

 

좀비는 머리를 부셔야 해.”

 

인호가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는 내가 못마땅한지, 잠시 노려보던 그가 바닥에 다시 침을 찍 뱉었다.

형민이 악을 버럭 질렀다.

 

당신 정신 차려! 내가 아니라 좀비는 조병희야! 당신 옆에 있는 조병희! 저 사람이 죽었다고! 저 사람이 죽어서도 움직이는 좀비라고!”

 

병희. 형민은 인호를 병희라고 불렀다.

순간, 머릿속에 작은 백열등 한 개가 반짝 켜졌다.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을.

 

나는 재빨리 인호의 지팡이를 낚아챘다. 전혀 방비하지 않던 그가 놀래며 나를 쳐다봤지만, 그 시선에 아랑곳없이 나는 지팡이로 인호의 머리를 겨눴다.

 

당신의 말이 맞는 건지만 확인하면 돼요.”

 

?”

 

인호가 역정을 내자 형민이 얼른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는 말이잖아! 당신이 누구 행세를 했는지는 몰라도, 너는 조병희야. 죽었다가 일어나 뇌를 처먹던 좀비라고! 아니라면 증명해 보여!”

 

개새끼야 시끄러워. 그런 건 널 끝장내고 충분히 증명할 수 있어.”

 

듣고 있던 나는 지팡이를 그대로 든 채 장작을 슬쩍 등 뒤로 돌렸다. 형민을 노려보고 있던 인호는 눈치 채지 못했다. 뒤쪽에 엎드려 있는 형민에게 던지면, 그가 바로 잡을 수 있는 거리다.

 

상식적으로 사람이 좀비를 상대할 수는 없는 거죠?”

 

당연한 거잖아. 어서 내 지팡이를 내 놔. 미친 거 아냐?”

 

인호의 성난 목소리가 쩡쩡 울렸다.

 

이러다가 당하면 너만 손해야!”

 

저 좀비 새끼 말 듣지 마요. 이성을 잃지 마요. 얼른 휘둘러요!” 형민이 애걸했다.

침을 한 번 삼키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인호씨. 지금 당신에게 얻어맞고 악을 써대는 이 남자, 누구죠?”

 

최대한 머리를 굴려 생각해낸 질문이다. 인호가 어이없다는 듯 노려보며 말을 던졌다.

 

몇 번을 말해. 아까 마지막으로 구덩이에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고 했잖아. 밑에 좀비가 있고 태찬마저 좀비가 되었다면 좀비가 둘이야. 살아남기란 불가능 해. 방금 전에도 대화했잖아. 형민이야. 헐크! 형민! 근육질 보면 몰라?”

 

헐크요. 형민씨라고요. 좋아요.” 다시 한 번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아까 나한테 했던 얘기 기억나죠? 좀비가 사람 행세를 한다는 말. 뇌를 먹고. 그 추측 기억나죠?”

 

그렇지.”

 

저 새끼가 좀비에요! 조병희가 좀비에요!” 형민이 자꾸 옆에서 끼어들었다.

 

당신은 조용히 해봐요.”

 

씨발! 닥치라고 했지! 주둥아리를 찢어버리겠어! 이 개 호로 좀비 씨발 새끼야!”

 

인호가 으르렁 거렸다. 나는 침착하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인호씨, 다시 한 번 물어 볼게요. 밑에 좀비가 있고, 혼자 사람이 오르기는 힘들고, 그 태찬씨라는 분도 좀비가 되었을 수 있으니까 결론은 처음에 병희, 그리고 태찬 모두가 좀비가 되었을 거다. 고로 마지막에 떨어진 형민씨는 절대로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죠?”

 

 

이 시팔 새끼야! 지팡이 당장 내 놔! 이 개새끼!”

 

인호가 더는 못 참겠는지 분노에 찬 악다구니와 함께 눈을 부릅떴다. 여차하면 내게 달려들 기세였다. 순간적으로 놀라 뒷걸음질 쳤을 정도였다.

 

멀대 같이 키만 큰 게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새끼가! 뭘 물어보고 싶은 거야! 귀 얇은 새끼. 왜 사람을 못 믿어. 왜 자꾸 질질 끄는 거냐고!”

 

당신의 상식과 추측대로라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거든요.”

 

뭐가 이해가 안 간다는 거야!”

 

 

형민이 좀비에게 죽었다면, 그 형민의 뇌를 먹는 것은 태찬이나 병희가 돼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당신 추측처럼, 사람의 뇌를 먹고 그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기존 좀비였던 태찬이나 병희가 마지막으로 죽게 되는 형민의 흉내를 내고 있어야겠죠. 가장 마지막 먹이잖아요. 먹은 뇌의 소유자처럼 행동한다면서요. 처음 산장에 들어 온 머리를 부순 좀비가 병희라고 했으니, 당신 말대로라면 이 사람은 태찬 이어야죠.”

 

인호의 눈빛이 흔들린다.

나는 결정타를 날렸다.

 

그런데 당신은 형민의 탈을 쓴 좀비야가 아닌 그저 형민이라 불렀어요. 내가 확답을 위해 다시 물어도 당신은 형민이라 불렀어요. 왜죠?”

 

인호, 아니 인호의 탈을 뒤집어 쓴 좀비가 씩, 웃었다.

 

 

, 들켰네. 그래서 어쩌라고?”

 

던져!” 형민이 옆에서 소리침과 동시에, 나는 형민에게 장작을 던졌다. 그리고 바람같이 아까 빼앗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질문을 시작 할 때부터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기에, 속절없이 정통으로 얻어맞은 인호가 억 소리를 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피가 얼굴에 튄다. 사람(?)을 쳐 본 것은 처음이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인호는, 아니 좀비는 의식을 잃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형민이 서둘러 달려와 장작으로 쓰러진 좀비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리며 다시 피가 튀었다.

 

. . , 목을 봐요. 뒤집어 봐요. 시팔 새끼. . . 어휴 숨차.”

 

형민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살펴보고 있었다. 좀비의 목 뒤쪽, 검붉은 핏자국. 그것도 인호라 칭하는 좀비를 의심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으니까. 핏자국을 따라 가보니, 목과 후두부를 연결하는 지점에 엄지손톱만한 구멍이 나 있었다. 이런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 생명이 위험할 정도다. 소름이 돋았다.

이 남자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살조차 몰랐던 것은 아닐까.

 

다 연깁니다.” 마치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형민이 곁에 다가와 말했다.

 

멀쩡하게 속이고 갑자기 돌변해요. 어렵게 찾아낸 먹이니까 완벽히 속이려 했겠죠.”

 

먹이요?”

 

당신 머리요.” 형민이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저것들이 머리를 잡고 쪼그려 앉아 쭉쭉거리는 걸 보면 삼 일동안 속을 게워내야 할거요.”

 

형민이 좀비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안주머니를 뒤지던 그가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붉은색 테두리가 도드라지게 빛난다. 스위스제 명품 군용나이프다.

 

수백만원짜리 칼이라 했었지.”

 

형민이 나이프를 자신의 품에 집어놓고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가 왔다 갔다 하는 게 나를 살펴보는 것 같았다. 관찰하는 눈빛에 기분이 상한 내가 아직도 열려있는 문을 큰 소리 나게 닫았다. 눈발이 너무 많이 들어와 한기가 돌 정도였다. 문이 닫히는 충격에 눈꽃이 우수수 떨어졌다. 형민의 시선이 여기저기를 살피더니 맨 처음 산장에 돌입했다가 쓰러진 좀비의 시체를 발견하고 멈추었다. 눈빛이 침울했다.

 

저건, 인호씬데.”

 

저게 인호씬가요?”

 

황인호씨. 지금 우리를 속이려 했던 이 자빠진 덩치가 조병희에요.”

 

형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창백한 그의 얼굴은 건드리면 얼어붙을 것 같이 시퍼렇다.

 

저는 송형민입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민이 손을 쓱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냉기가 느껴져 손을 얼른 빼냈다. 놀란 나를 보며 형민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손 발 모두 심각한 상태에요. 감각이 없으니.”

 

불을 지필게요.”

 

서둘러 대답하며 벽난로로 향했다. 머리가 아파왔다. 심하게 찌르는 두통이 계속 생각을 방해하고 있다. 불을 지핀지 방금 전 이었는데 눈바람에 다시 꺼진 것 같았다. 등 뒤로 형민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폐까지 얼음으로 가득 찬 것처럼, 토해내는 그 소리에 냉기와 고통이 묻어났다. 계속 기침을 하는 그가 걱정되어 난로를 지핀 뒤 곧바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삶의 기쁨을 줄 수도 있다.

바로 지금, 우리처럼.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몇 마디 말을 던지며 커피를 건넸다. 형민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고맙다며 형민이 커피를 홀짝인다.

 

굉장하죠? 빌어먹을.”

 

형민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푹 눌러쓴 하얀 비니 모자를 보니 머리가 통째로 눈에 뒤덮인 것 같았다.

 

시체가 살아 움직이지를 않나, 이렇게 사람 사냥도 하고.”

 

사냥요?”

 

지능적이잖아요. 같은 편인 척. 그러다가 꿀꺽.”

 

형민이 다시 기침을 해댔다. “아 씨발.” 욕을 내뱉던 그가 머리가 아픈지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도 못 믿겠어요. 그 벌레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벌레요?” 인호, 아니 병희도 벌레 얘기를 했었다.

 

지금 이 사태의 원인이겠죠. 저 좀비가 아무 말도 안 했던가요?”

 

하긴 했죠.”

 

저것이 무슨 말을 했던 믿지 마요. 제 얘기가 진실입니다.”

 

 

형민이 내 눈을 또렷이 바라보았다.

 

 

 

저와 우리 동호회 회원 셋은 오늘 산에서 조난을 당했습니다. , 방금 우릴 공격한 조병희, 저기 머리가 깨져 쓰러져 있는 인호씨, 그리고 태찬씨 이렇게요. 이들 얘기는 병희에게 들었나봐요? 당신이 아까 제 이름을 불렀던 걸 보면. 제가 제일 어려서 모두에게 형님 존칭을 썼었는데, 바로 어제만 해도 말이죠. 후후후. 이런 끔찍한 일을 겪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가장 친했던 형님이 인호씨였고, 인호씨는 군인이었어요. 체구는 작아도 남자다움이 누구보다 철철 넘쳤던 지라 모두가 좋아했죠.

사실 오늘 같은 날에 산을 오르는 건 자살 행위에요. 누가 이런 미친 날에 등산을 하겠어요? 자살행위지. 우리는 등산을 한 것이 아닙니다. 급하게 연락이 왔었어요. , 저는 헬스클럽을 하나 운영합니다. 인테리어를 리뉴얼 하던 중이라 문을 닫고 내부 공사 중이었죠. 아침부터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전화가 울리는 겁니다. 인호씨였죠. 그 남자다운 사람이 울고 있더라고요.

 

[, , 사람을 죽였어. 어쩌지?]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일단 그를 진정시킨 후, 천천히 자초지종을 말해보라고 했어요. 누구를 죽였고, 어디서 왜 죽였는지. 뒤에 들리는 말이 더 놀라웠죠.

 

[태찬이. 태찬이를 내가 밀었어. 으흐흑.]

 

우리는 2년 넘게 서로를 알아온 등산 동호회 회원이었어요. 그동안 트러블이라고는 없었는데, 왜 인호씨가 태찬씨를 죽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어떡하지? 너랑 병희한테만 연락했어. 어떡하지?]

 

일단 그를 만나야 할 것 같았어요. 진정을 시키고 자수를 유도하던가, 아니면 일종의 사고로 은폐하던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사람이라 도와주고 싶었어요. 처벌보다는 기회요. 우연찮게 벌어진 사고 일수도 있고. 정황은 모르는 거니깐.

위치를 파악한 뒤 당장 가기로 했죠. 바로 병희씨랑 연락을 취했어요. 그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군요. 우리는 인호씨가 있는 곳으로 바로 출발했어요.

가면서 병희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제가 모르던 사실이 하나 있었어요. 병희씨는 아마도 그 사건이 이번 사고의 원인일 거라 짐작했죠.

 

[태찬이가 돈을 빌려 줬었나봐. 빌려주고 고리를 받았던 모양이야.]

 

병희씨 말로는 태찬씨가 지인들에게 돈놀이를 좀 했나 봐요. 인호씨에게도 빌려줬는데, 인호씨가 갚을 여력이 안 되자 암암리에 협박을 한 거죠. 인호씨는 정년퇴직 연금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직업군인이라는 거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면 연금이고 정년이고 다 날아가죠. 울며 겨자 먹기로 사채에 손대고 그게 반복된 거죠.

인호씨가 말해준 곳이 이 산이었고 우리는 그를 찾아 엄청난 폭설에도 불구하고 산을 올랐습니다. 자주 오르던 루트가 있는데, 그곳 중반에 우리가 항상 쉬어가는 곳이 있습니다. 인호씨는 그곳에 있었어요. 바위에 걸터앉은 인호씨의 초췌한 모습이 보였고 우리는 급히 그에게 달려갔죠.

 

 

잠시 만요.” 중간에 그의 말을 끊었다.

 

제가 알기로는 이 산을 오르는 길은 몇 안 되는데, 어느 길로 오신 거죠?”

 

우리가 항상 가는 길이 있어요. 닦여진 길보다는 거칠어서 재미있다고 좋아했죠. 왕래가 없어서, 그쪽은 잘 모르실거에요.”

 

그런가요?”

 

이상했다. 이 산을 오르는 길들은 내가 아는 바로는 중간에 쉴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없다. 쉴 수 있는 곳은 이 산장이 유일무이 하다. 더군다나 이런 폭설에.

형민이 말하는 길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 길?”

 

형민이 째려보았다.

 

왜요? 중요한가요? 남들은 모르는 길이라니까요? 이 산이 뒷산도 아니고, 얼마나 큽니까? 길이라고 항상 정해진 건 아니잖아요. 닦았으니까 길이 생기는 거지. 사람이 다니면서 닦기 전에는 길이라곤 존재치 않아요. 그건 상대적인 거 아닙니까.” 형민이 툭 말을 던졌다.

 

의심이라는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 남자도 믿지 말라는 경고가 붉게 깜박이고 있다. 아무리 자신들이 아는 산길이 있다한 들, 이 산장을 수십 년간 지켜온 선배들이 모르기엔 불가능 한 것이 아닌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건강이 안 좋아서지 산이 싫어서 떠나는 건 아니라며 선임 산장지기 영감님은 세세한 모든 걸 내게 알려주고 갔다. 어디가 조난이 많은 지역이고, 어느 시각에 사람이 많고 등등. 자료 파일도 있다. 여태껏 산장을 방문하는 사람은 전부 기록한다. 구조 요청도 마찬가지. 알려진 코스도 종류별로 다 기록되어 있다. 그래야 실종자들이나 조난자들에 대한 빠른 구조가 가능하니까. 일을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만난 이들은 모두 내가 아는 길을 타고 올랐다. 심지어 전문가들까지. 그런데 이들은 아마추어 동호회 회원들이다.

 

못 믿는 표정인데?” 형민이 물었다.

 

혹시, 거짓말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아니에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너무 강하게 부정해버렸다.

 

날 못 믿으면 대체 누굴 믿나요? 당신 자신? 이봐요. 저기 시체 둘이 쓰러져 있는데 나까지 의심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믿을 수 없다.

강한 의심은 모든 이성을 틀어쥔다.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읽었던 SF걸작선이지만, 그래도 인상 깊었던 단편 소설이 하나 있었다. 필립 K 딕이라는 작가의 두 번째 변종이라는 단편. 먼 미래, 인간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그들의 무기는 진화한다. 살상용으로 만들어진 전투 로봇은 인간들의 손이 닿지 않는 것을 이용해 자체적인 품질 개량을 시도하고, 전쟁의 양상은 바뀌어 인간들과 인간 자신이 만든 살상 로봇과의 전쟁으로 바뀐다.

 

로봇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데, 처음은 땅속에서 튀어나오던 갈고리발톱.

그리고 곰 인형을 안고 거리를 배회하는 전쟁고아의 모습.

그리고 다리를 다쳐 부상 중인 상이군인.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인간과 구별이 되지 않는 변종 살인 기계들.

인간을 속이기 위한 절묘한 속임수. 눈가림. 사냥꾼들.

사람 사냥꾼들.

 

일단, 얘기를 더 들어보죠. 중간에 끊어서 미안합니다.”

 

좋습니다.” 형민이 씩 웃는다.

 

 

서로 믿어야죠.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아무튼, 우리는 인호씨를 만났고, 그가 태찬씨를 죽였다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절벽이 하나 있는데 자주 오가던 곳입니다. 그 절벽에서 밀었다고 하더군요. 원인은 돈이 맞았어요. 지저분한 일이죠. 태찬씨가 그런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요. 저와 병희씨 둘이 내려가기엔 남아있는 인호씨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시체를 혼자 확인하는 것도 솔직히 껄끄러웠고요. 일단 시체는 확인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고민하던 차에, 병희씨가 자신이 내려갈 테니 남아있으라고 하더군요. 나서기 좋아하던 그의 성격이 반영되었던 걸까요? 뭐 어찌됐든 내 입장에서 반대할 이유는 없었죠. 근처의 커다란 바위에 줄을 묶었습니다. 병희씨가 줄을 내려 절벽 밑으로 내려가고, 나는 떨고 있는 인호씨를 안정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잠시 후, 밑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찾았어!]

 

그 다음, 계속,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기다려 봤지만 깜깜 무소식인 겁니다. 불러도 대답도 없고. 함흥차사도 아니고.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시야도 가려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 했습니다. 인호씨는 더 안절부절 못 했죠. 자신을 도우러 온 친지들이 행여 사고라도 당한다면 살인의 죄책감과 더불어 큰 압박이 됐겠죠.

 

[내가 내려가 보겠어!]

 

결국은 인호씨가 자신이 직접 확인하겠다고 나섰어요.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인호씨를 내려 보내기는 좀 그랬어요. 자신이 죽인 태찬씨를 본다면 더 불안해할게 아닙니까?

그때, 밑에서 병희씨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인호씨! 잠깐 내려와봐! 뭔가 잘못됐어!]

 

우리는 일단 안도했죠. 병희씨에게 별일은 없었구나 하는. 하지만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질 않더군요. 이 상황에서 잘못될 일이 없잖아요? 분명히 시신을 찾았다고 외쳤던 그가, 한참의 침묵 후에 인호씨를 내려오라고 한 것도 이상하고요. 사체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무엇이 잘못됐다는 건지 몰랐어요.

 

[뭐가 잘못됐는데요!] 제가 외쳤습니다.

 

[인호씨한테 확인 할게 있어!]

 

[뭔데요!]

 

[일단 내려오라 그래! 보면 알아!]

 

더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인호씨는 계속 내려가겠다고 나섰죠.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인호씨가 내려갔어요. 그리고 조금 지나서…….

 

[으악!]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렸죠. 너무 놀라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급하게 밑을 향해 외쳤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봐요! 무슨 일이에요!]

 

눈은 쏟아지고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나 홀로 고립 된 느낌. 무엇인가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 눈발은 칼날처럼 내 살을 베고, 몸은 얼음처럼 차가워져 갔습니다. 온통 눈뿐인 새하얀 풍경을 둘러보니 이러다 미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어느 순간 확 오잖아요. 무서움. 두려움. 그때였습니다.

바위에 묶여있던 줄에 반응이 왔습니다. 밑에서 움직임이 있다는 겁니다. 내려가야겠다 생각한 건 바로 그 다음이었어요. 줄이, 누가 힘껏 잡아당기듯 허공으로 팽팽하게 떠 있다가 툭 떨어지더군요. 이는 밑에서 일행 둘 중 하나가 올라오다가 다시 내려갔거나, 혹은 추락했을지도 모른다는 거라 생각했죠. 걱정이 들었어요.

바위에 묶인 줄을 다시 한 번 살피고 단단히 동여맨 뒤, 조심스레 줄을 잡고 절벽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평소와는 달리 좀 힘들더군요. 집중하면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어요. 가려져 있던 시야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기 위해, 잠시 행동을 멈추고 시선을 밑으로 돌렸습니다.

 

하느님. 하마터면 줄을 놓쳐 떨어질 번했어요!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태찬씨로 보이는 시체에 거대한 황금색 딱정벌레 - 마치 바퀴벌레 같았어요 - 들이 떼로 붙어 있고, 피로 뒤덮인 바닥에 우두커니 선 병희씨와, 그 곁에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인호씨의 모습이 보였어요! 그런 벌레는 생전 처음 봤습니다. 병희씨가 등을 돌리고 뭐라 말을 하고 있었는데 잘 들리지는 않았어요. 인호씨는 생사를 알 수 없었고요.

정말 무서웠습니다. 분위기가, 본능이, 죽음이 가깝다고 경고하고 있었어요! 제 인기척을 느꼈는지 병희씨가 휙 몸을 돌렸죠. 병희씨 목덜미에 딱정벌레 한 마리가 날아와 붙더라고요. 아무렇지 않은지 절 보며 씩 웃더군요. 웃었어요! 그 미소란!

 

[아아.]

 

병희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인호씨쪽으로 몸을 돌렸어요. 그러자 벌레가 다시 날아올랐고, 벌레가 있던 자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습니다! 엄청난 피가! 살아있을 수가 없어요. 상식적으로. 사람이 목에서 그렇게 피를 흘리면 경동맥이 손상됐다는 건데, 즉사할 수도 있는 치명적인 상처라고요. 하지만 멀쩡히 서 있었죠.

, 하느님!

그 다음 무얼 했는지 알아요? 쪼그리고 앉아 인호씨 머리를 잡아들더니 입을 쩍 벌립디다. 그대로 콱! 머리 뒷부분 있죠? 우리가 뒤통수친다 할 때 쓰는 그곳. 제대로 이빨을 박고 쭉쭉 빨아대기 시작하는 거예요. 구역질이 나왔죠. 즉시 벽을 박차고 죽을힘을 다해 올랐습니다. 그런데, 벌레 하나가 내 쪽으로 날아드는 겁니다. 저를 공격하려 했는지 원래 그냥 날아온 건지는 모르지만 너무 놀라 그만 줄을 놓쳐버리고 말았죠.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아픔보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심장 박동 소리가 내 귀에 다 들릴 정도로요. 정말이라니까요? 병희씨 모습을 한 그 괴물이 인호씨 머리에 박힌 이빨을 뽑아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데, 숨이 멎는 줄 알았죠.

 

[아아아아아아.]

 

병희씨, 아니 그 괴물이 핏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어요.

 

[. . . 아파.]

 

얼이 빠져 보고만 있었죠.

 

[아팠다. . . . . 머리. 아파. 아팠다. . .]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섰어요. 가까이서보니 확실히 두려움은 곱절로 늘더군요. 창백하고 핏기하나 없는 시체가 말을 하고 걷다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괴물이 입맛을 쩝 다셨어요.

 

[형민아 괜찮아?]

 

갑자기 내 안부를 묻더군요. 태찬씨만 부르던 애칭으로. 하하. 그때 내 심정이란. 황당하고 완전 진짜.

 

[머리가 굉장히 아프네. 뭔 일 있었어?]

 

대답안하고 멍하니 있었어요. 그냥 멍하니.

 

[왜 그래? 나야 황인호. 뭔 일이지? 머리가 왜 이리 아프지?]

 

그 괴물이 자신이 황인호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피가 픽픽 뿜어져 나오는데, 멀쩡하게 머리만 아프다며 인상만 잔뜩 찌푸리고 나보고 괜찮냐 묻고 있었어요. 원래의 인호씨는 저쪽에 널브러져 있는데 말입디다. 뇌가 없는 채로요. 이빨이 딱딱 부딪히고, 몸이 오한이 오듯 떨렸어요. 미칠 것 같았어요. 병희씨가 의아한 표정으로 저를 보더니,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빠져 있는 인호씨 시체를 봤어요. 한 참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기억난다.]

 

살그머니, 줄이 내려져 있는 곳으로 몸을 옮겼죠.

 

[먹었지. 그게 지금 내 머릿속에 있지. 그래서 나는 황인호오오오오오오오오.]

 

귀를 막고 싶었어요! 좀비가 몸을 휙 돌렸죠. 내 쪽으로!

 

[이번에는 송 형 민이 되자.]

 

저는, 정말 놀랐던 게, 한 번에 삼 미터는 족히 되는 거리를 뛸 수 있을 거라 생각도 못했거든요? 그 괴물이 단 한 번에 뛰어올라 제 머리를 물려고 했어요! 더 놀란 건 제가 단지 두 팔의 힘만으로 줄을 잡고 그 순간 일 미터는 족히 되는 거리를 기어올랐다는 사실이고요! 미친 듯이 줄을 잡고 절벽 위로 내 몸을 잡아 당겼어요. 괴물의 입이 허공에 탁 닫히며, 뛰어들던 속도 때문에 벽에 강하게 부딪히더군요. 그때를 틈타 미친 듯이 기어 올라왔습니다. . 손이 찢어질 정도로 죽자 살자 줄을 당겼죠. 올라와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어요. 지금 생각하면 병신 같았던 게, 줄을 풀어버리면 그 좀비 새끼가 못 오르는데 생각지도 못했다는 거예요. 내가 등신이지.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내가 이겼지만요. 살아남았으니까.

 

 

흥분했는지 얘기가 끝나자마자 형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좀비 시체로 다가가 침을 뱉었다. 끈적끈적한 핏물이 형민의 신발 바닥에 잠깐 올라타더니 도로 떨어졌다.

 

시팔 새끼.”

 

내뱉는 욕지거리가 귀에 거슬렸다. 한 때는, 아니 반나절만 해도 절친했던 동료들이었을 텐데. 그것은 병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거슬린 생각이었다.

원수라도 되 듯 휘두르고 쳐 죽였다.

병희라는 좀비와 지금의 형민은 묘한 공통점을 지녔다.

과도한 폭력성.

내가 이 모든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거짓말 이다. 형민이 얘기한, 병희라는 사람이 죽었고 움직이는 좀비가 되었다는 건 과연 정답인가. 병희가 모순된 주장을 했었고, 그의 목덜미에 상처가 있었던 거로는 확실한 증거는 되지 않는다. 그냥 내 기준일 뿐이다. 차라리 병희의 이야기가 더 신빙성 있게 들렸었기도 하다. 이미 의심의 꼬리를 물고 있는 상황에서, 형민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혼란스럽다.

형민이 다시 돌아와 의자에 앉는다. 힐끗 내 눈치를 본다. 아까부터 저랬다. 왜 저렇게 눈치를 보지?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답답한 공기가 산장 안에 가득 들어찼다. 벽난로 불꽃이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간간이 고요의 틀을 깬다.

 

커피 괜찮더군요.” 건조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 .”

 

그가 지그시 나를 쳐다본다. 눈은 뱀처럼 가늘다. 이유가 뭘까. 왜 자꾸 나를 살피고 눈치를 보는 것일까. 소설 두 번째 변종의 결말은 끝까지 믿었던 이가 진화한 살인 로봇에 불과했다는 비극적인 사실이었다. 결국 인류는 멸망한다. 모두를 의심하다가 단 하나를 믿고 선택한 것이 틀렸다는 것, 그것이 가장 무서운 점이다.

나는 사냥꾼의 덫에 걸려든 불쌍한 사냥감일 뿐인지도 모른다. 나를 사냥하기 위해 세 명이 경쟁을 펼쳤고, 한 명 제거, 두 명 제거, 이제 마지막 한 명이 남았다면.

 

구조를 일단 요청할게요.”

 

약간 안심 되는 건, 고립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외부에서 지원이 올 수 있다는 점이다. 전화를 걸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형민의 고개가 내 움직임을 따라 돈다. 수화기를 들려다, 멈추었다.

전화선이 축 늘어져 있었다.

망치로 얻어맞은 듯 뒤통수가 아렸다.

황급히 수화기를 들어 버튼을 마구 눌렀다. 신호가 없다. 들리지가 않는다.

 

전화가 끊어졌다!

 

내 행동에 형민이 당황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그래요?”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섰다. 눈발이 들이닥친다. 뿌득거리는 눈 밟히는 소리와 바람 소리가 화음을 이룬다. 문 우측 산장 모퉁이로 향했다. 전화선은 그쪽에 연결되어 있었다. 땅에 매입하고 빼낸 거라 그냥 끊어질리 만무했다.

 

역시나, 날카로운 것에 베여 잘린 선의 단면이 보인다.

 

군용 나이프! 순간 떠오른 이미지는 바로 형민이 병희의 품에서 꺼낸 스위스제 군용 나이프였다. 의심으로 이루어져 언제 터질지 모르던 폭탄이 점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꺼내는 척 한 거다. 꺼낸 것이 아니다!

그가 세 번째 사냥꾼인 것이다.

 

이봐요. 무슨 일이에요?”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리자 형민과 마주 보는 형세가 되어 버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그가 약간 몸을 움츠렸다.

 

형민씨, 그 칼,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어떤 칼요? 아 이거요?”

 

형민이 칼을 꺼내 들었다. 손을 내밀어 그의 칼을 집으려 했다. 순간, 형민이 칼을 뒤로 빼냈다. 특유의 뱀 같은 시선으로 나를 보며 그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너 뭐야. 날 의심하는 거야?”

 

심장이 쿵 흔들렸다.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정곡을 찔린 것이다.

말문이 막힌 내 표정을 본 그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수도 있겠지. 이런 일을 겪으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지. 이해해요. 이해합니다. 당신의 판단 말이에요.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요. 결과.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고, 확실한 사실입니다. 좀비 아니에요. 저런 죽어 나자빠진 좀비 따위 아니라고요!”

 

형민씨, 그냥 다 까놓고 말하죠.” 호흡을 가다듬었다.

너무 긴장해서 추위가 안 느껴질 정도다.

 

왜 처음부터 내게 구조 요청을 물어보지 않았죠? 보통 죽음의 위험을 겪으면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게 본능 아닌가요? 당신은 내가 전화기 쪽으로 이동할 때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왜죠? 그건 당신이 이미 전화선을 끊어 아무 소용없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고. 패닉에 빠진 나를 비웃었겠지.”

 

무슨 소리야! 오히려 정신없는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구조나 전화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게 불가능 한 것 아냐? 내가 자처해서 고립할 이유가 없잖아.”

 

가능하죠. 당신이 좀비면.”

 

미친 소리야.”

 

그럴까요?”

 

눈바람이 미친 듯이 몸을 때린다.

 

형민씨. 당신의 얘기를 들어보면 의심할 만한 상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그 길부터 시작해서 말이야. 우리가 모르는 길이란 있을 수가 없다고.”

 

이봐, 내가 전화선을 끊을 리가 없잖아. 솔직히 다 털어놓을게. 이 칼은, 병희가 생전에 굉장히 고가로 산거라고 자랑했던 칼이라고. 사람은 욕심이 있어. 솔직히 그 칼이 탐났어. 갖고 싶었다고. 난 병희씨가 인호씨를 물어뜯고 다음에 나를 물려고 한 걸 겪었어. 이 지옥같은 상황 당신도 같이 겪었잖아. 지금 내게 병희라는 사람은 그냥 좀비 이상 이하도 아니야.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아. 그가 한때 친했던 사람이라도 상관 안해. 그게 사람이야! 막상 닥치면 안면 몰수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게 그게 사람이라고! 내가 가지면 안돼? 수백만원짜리 칼인데! 그리고 말이지, 결정적으로, 이 칼의 원 주인은 그 좀비였어. 좀비였던 병희가 미리 끊은 거라고는 왜 생각 안 하는 거야!”

 

좀비가 된 병희씨가 끊었다? 좋아요. 그랬다 쳐요. 의문점은 아직 많아요. 병희씨가 당신을 죽이려 했을 때의 그 긴박한 상황, 기억나죠? 그 상황에서 겨우 목숨을 구했는데, 바로 그 칼이 생각이 나나요? 그렇게 그 칼이 가지고 싶었나요? 수백만원에 목숨을 걸어요?”

 

형민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봐요, 산장지기 형씨. 하나하나 의심하면 끝이 없어.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리가 터질 거요. 당신은 너무 생각이 많아요.”

 

말을 마친 그가 몸을 돌려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엄동설한에 눈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기란 참기 힘든 일이다. 바로 따라 들어섰다. 형민은 병희의 시체 옆에 서있었다. 나는 경계를 풀지 않고, 아까 휘둘렀던 지팡이가 어디 있는지 살폈다. 갑자기 형민이 나이프를 병희의 시체에다 던졌다. 핏물에 잠기자 빛나던 나이프가 곧 붉게 물들었다.

 

이게 뭐라고 씨발. 미안합니다. 버릴게요. 안 가져가요. 이 것 땜에 당신이 나를 의심하니까. 나는 지옥 같은 상황에서 빠져 나왔어. 지금도 악몽 같아요. 내가 알고 지냈던 친구들 셋이 죽었고, 그 중 둘이 좀비가 되어 다시 죽었어요. 나만 살았다고요. 살아있다는 게 너무 좋아 죽을 지경이란 말입니다!”

 

형민이 머리를 감싸 쥐며 울부짖었다.

 

당신과 싸울 기력 따위는 남아있지 않아요. 날 의심하지 말아요, 의심받기 싫다고요. 빨리 이 산장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에요. 이 산, 이 눈, 다 증오스러워요.”

 

 

[다 연깁니다.]

[멀쩡하게 속이고 갑자기 돌변해요. 어렵게 찾아낸 먹이니까 완벽히 속이려 했겠죠.]

[먹이요?]

[당신 머리요.]

 

아까 형민의 말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단 하나였다. 정상적인 사고를 유지하게 해준 단 하나의 생명선이 지금 끊어졌다.

외부와 고립되었다. 외부와 고립되었다. 외부와 고립되었다.

전화는 끝났다. 함께 있는 건 죽은 시체 둘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뿐.

 

최소 삼 일은 혼자다. 구조 요청을 하지 못하는 이상 삼 일후에나 온다. 그 삼 일은 삼백 일, 아니 삼 년보다 더 길 것이다.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서 말이다.

 

소름이 돋는다. 고골리의 소설 마녀의 관에서도, 모파상의 소설 산장에서도 주인공들은 모두 광기와 공포에 미쳐 백발이 되고 만다. 소설 속에서나 벌어지는 상황들일 줄 알았는데. 내 머리도 백발이 될까. 왜 이 산장에서 일하겠다고 했지? 좀비가 나오다니. 하필 내가 일할 때 좀비가 튀어나오다니. 대한민국에.

 

머리가 너무 어지럽다. 생각들이 포화 상태라 밖으로 튀어나오려 한다. 좀비 영화, , 지팡이, 눈보라, 벽난로, 군용 나이프, 전화, SF 걸작선, 두 번째 변종.

 

아아. 아아아.

 

혹시 내 머리 하얗게 변하지는 않았나요?”

 

?” 형민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거울이 없잖아. 백발 아니냐고. 내 머리카락요. 흰 머리가 많이 보인다던지.”

 

당신 지금 심각한 거 알아요 상태가?” 그건 나도 알고 있다.

 

일단 머리는 검죠? 백발 아니죠?”

 

형민이 한 숨을 쉬며 중얼거린다.

 

머리는 아무렇지 않아요. 전화 하나 끊겼다고 이러는 거예요?”

 

전화 하나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생존과 직결 된 문젠데. 다시 의심의 화약고가 터지려 한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이가, 전화가 끊겼는데 멀쩡한 게 더 이상 한 거 아냐?

 

어떻게 전화가 안 중요해. 어처구니없군요.” 냉소적인 내 말투에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전화가 안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당신이 사람들이 올 거라고 말했잖아요. 기억 안나요?”

 

내가?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전화도 있고 삼 일이면 온다고 했어요. 식량은 많이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하며 당신이 내게 커피를 주며 말했다고요. 이제 살았구나 안도했죠.”

 

형민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내게 말했다고요. 분명히.”

 

나는 말한 적 없다. 분명히.

거짓말!

 

이 좀비 새끼! 이제야 정체를 알겠구나!”

 

나는 괴성을 지르며 발로 좀비의 얼굴을 걷어찼다. 좀비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아까부터 봐두었던 지팡이를 향해 몸을 날렸다. 끽끽 거리며 신음하는 좀비를 해치우려면 이 지팡이가 필요했다.

 

좀비는, 머리를, 부셔야 해.’

 

머리를 부셔야 해. 지팡이를 들고 좀비를 향해 달려들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 나머지 힘을 못 쓰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튀어 올라서 내 머리를 물지도 몰라. 신속하게 해치워야 한다. 지팡이를 치켜들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 정확하게 놈을 파악했어.

 

잠깐......” 뭐라고 좀비가 말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사람의 탈을 쓴거다.

 

퍼억. 손이 아릴 정도로 지팡이가 흔들렸다. 좀비의 턱이 묘하게 일그러져 옆으로 어긋났다. 피가 또 튀었다. 몸 전체가 미끄러질 정도로 강한 일격이었다. 내 일격에 혀를 깨물었는지 좀비의 입에서 피가 마구 흘러나왔다. 아래턱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이야아!”

 

다시, 내리쳤다. 왼쪽 눈두덩이 윗부분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이상한 소리와 함께 눈알이 시뻘게지더니 핏물을 쏟아낸다. 좀비의 이빨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피는 콸콸 흐르고, 몸은 경련을 일으킨다. 이 정도면 되겠지. 지팡이를 꾹 움켜쥐었다.

 

내가 사냥꾼을 모두 잡았다. 결국은 먹이일 뿐인 내가 반격에 성공한 것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을 잡고 몸을 지탱했다. 하마터면 당할 뻔 했어. 의심을 거두었다면 틀림없이 내가 당했을 것이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피범벅인 좀비 세 구가 보인다. 바닥은 굳은 피로 치장한 흉물스런 옷을 입었다.

 

이 세구의 시체와 삼일을 보낼 수는 없다. 밖에다 내 버린 후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만사 다 잊고 잠을 청할 것이다. 폐에 구멍이 난 듯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혼란스러운 상태인 것을 이용해 거짓말을 하다니. 영악한 것들. 나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 전화가 안 되는 것을 알고 패닉에 빠지면 위로하는 척 하다가 잡아먹으려 했겠지. 비겁해. 그러나 내 이성은 그런 혼란과 공포를 이겨냈다. 그리고 승리했다.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아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머리가 샐까봐 걱정이 된다. 검은색이다. 다행이야. 나는 멀쩡하다.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일어섰다. 너무 추웠다. 눈도 침침하다. 뿌옇게 흐린 것들이 앞을 가린다. 난로를 때야지. 이상하게, 다 끝난 것 같은데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지 않는다. 불안은 가중된다. 나는 분명히 살아있는데? 이대로 삼 일만 버티면 되는 걸! 생각이 계속 끊긴다. . . . 연결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어느새 몸은 난로 앞이다. 불꽃이 타올라 뜨거웠다.

 

, 왜 난로를 때야 한다고 생각했지?

 

추웠지. 그래 추워서야. 왜 추워? 고개를 돌렸다. 문이 열려있다! 숨이 탁 막히고 등골이 오싹해진다. 서둘러 산장 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바람이 세서 문이 그냥 열렸을 수도 있잖아. 닫으면 그만이야. 가까이 가보니, 빗장이 걸려있다.

 

, 왜 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무너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 판단으로 결정했던 건 아무것도 없다. 처음에는 병희의 이야기, 후에는 형민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었다. 그들의 이야기에만 휘둘리고 그들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지금도 모르면서. 나를 지탱해 줄 더 이상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아. 승자는 나인데 이 점점 커지는 공포는 대체 뭘까.

 

주인공이 믿었던 마지막 진실이 결국 거짓이었다는 것.’

 

내가 믿은 진실이 결국 거짓이라는 공포. ‘두 번째 변종을 읽고 책을 덮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던 그 결말이,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는 그 것.

그것이 무서운 거야.

나는 형민의 몸을 살폈다. 둘의 이야기의 공통점은 황금색 딱정벌레와, 그 벌레로 인한 상처다. 그가 좀비라면 그 벌레가 낸 상처가 있겠지. 목덜미를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눈을 씻고 찾아보았다.

자꾸 뿌옇게 흐려 보여 짜증이 울컥 치밀었다.

 

, 시팔. 시팔.”

 

형민의 피가 묻은 부분을 옷소매로 벅벅 닦아냈다. 아무것도 없다. 이럴 리가 없다. 등골이 시려온다. 고개를 팩 돌렸다. 구석에 자빠진 좀비 시체들. 원래 저런 자세였나? 저 털보의 뻗은 팔은 왼 팔 아니었나? 머리를 부시지 않아서 그런가?

그렇게 말한 이가 누구였지? 좀비가 머리가 부서지면 더 움직이지 못했던가?

소름이 좍 돋는다. 처음 나를 덮쳤던 좀비는 분명 문 앞쪽에 쓰러져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털보와 거의 나란한 위치다.

 

다시 움직이나 봐.

이가 부딪히고 몸이 떨려온다. 머리가 부서졌다고 원래 죽었던 것들이 다시 죽을 리 없잖아 이 병신아! 좀비는 시체가 움직이는 걸 뜻하는데 머리 하나 없다고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억지를 왜 믿었던 거야! 어디선가 붕붕 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벌레 날갯짓 소리다.

그 딱정벌레. 바퀴를 닮은 좀비 딱정벌레가.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냥, 의지와는 상관없는 비명이었다. 이성은 점점 단순해지다 못해 사라져 버린다. 모든 생각은 흑과 백으로 나뉘고 있다. 처음에 병희라는 털보를 좀비라고 생각하고 죽였다. 고로 형민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형민도 좀비라고 생각해서 죽였다. 이건 모순이야. 모순이야!! 어찌됐든 나는 사람을 죽였다. 이게 진실이야!!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니 있다. 형민이 아직 안 죽었으면 된다.

그러면 병희는 좀비, 형민은 사람, 모순은 벗어날 수 있다. 이히히히.

 

이봐요.”

 

입에서 멋대로 말이 튀어 나왔다.

 

저기요. 이봐요.”

 

내 손은 형민의 터진 머리를 잡고 흔들고 있다.

 

그렇게 심하게 안 때렸어. 안 죽었을지도 몰라. 눈물이 흐른다. 혼자는 싫어요.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무서워서 그랬어요. 죽지 마요. 미안해요.

훌쩍.” 콧물을 삼키며 나는 울먹였다.

 

안 죽었죠?”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를 깨우려 뺨을 후려쳤다. 피가 묻었지만 손바닥을 계속 휘둘렀다. 일어나요. 처음 털보를 칠 때보다는 분명 약하게 휘둘렀는데. 훌쩍. 분명 그랬는데. 훌쩍.

 

목소리가 작아서 안 들렸나봐. 머리가 가려워 긁으니 손톱에 머리카락이 묻어난다. 염색을 한 것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어.

안 돼. 아아, 아아. 아아, 아아아.

 

나는, 피가 굳어 얼룩진 형민의 귀에 입을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직, 살아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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