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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D2

2013.03.29 23:1903.29

D2
 

 


그나저나 학회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이제는 학회 시리즈라도 하나 따로 연재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학기 중에는 언제나 학교 집 학교 집만 왔다갔다 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 뭐 하고 사는지도 모르고 학생들 외에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어른(!)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데 그에 비해서 학회에 가면 별별 사람들이 다 있고 유쾌하든 불쾌하든 소소하게 비일상적인 사건들도 언제나 한 번씩은 일어나기 때문에 대단한 작품까지는 내지 못하더라도 뒷담화의 소재 정도는 쏠쏠하게 얻어올 수 있어서 유용하다. 그러니까 이 얘기도 그냥 믿거나 말거나 뒷담화 정도로 읽어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하는 뒷담화가 다 그렇듯이 어떤 교수, 정확히 말하면 전직 교수에 대한 얘기다.
올 초의 춘계학술대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문제의 전직 교수는 작년 가을 연례학술대회장에도 나타났고 그 전에 춘계학술대회장에도 나타났고 그 사이에 우리 학과에서 조그맣게 주최했던 특별 강연회장에도 나타났으니까 일회성으로 끝난 사건도 아니고 그 전직 교수는 이쪽 관련 분야에서 은근히 골치 아픈 인물이라고 해야겠다.
왜 골치가 아프냐 하면 문제의 전직 교수는 학술대회나 특별 강연 등 교수님들이 사람 모아놓고 뭔가 발표하는 자리에 반드시 나타나서 질의응답 시간을 독차지하고 트집을 잡아가며 발표자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물론 학회장에 가면 질의응답 시간에 이상한 질문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잘 생각해보면 나도 최소한 한 번쯤은 그랬을 테니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질문을 던지라고 하면 발표자만 남고 다들 슬금슬금 나가버려야 하는 사안이기는 한데 이 문제의 전직 교수가 참 못된 게 뭐냐면 꼭 여자 발표자만 물고 늘어진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모든 여자 발표자를 물고 늘어지는 건 아니고 주제가 정해져 있어서 19세기 문학 중에서도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에 관련된 발표라면 기를 쓰고 찾아와서 무척이나 못마땅하다는 듯이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발표를 듣다가 플로어에서 질의응답을 받겠다고 하면 기회를 만났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서 질문을 해대는데 그 질문이라는 것이 심대한 주제에 관해서 아주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진 사람들이 항용 하는 매우 지엽적인 질문인데다가 역시나 심대한 주제에 관해서 아주 단편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으면서 자기가 굉장히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질문의 요점은 나는 항상 옳고 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으니 무조건 무릎 꿇고 승복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전직 교수는 현직이 아니고 “전직” 교수인데다가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과 교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체로 교수님들에게 해 드리는 예우는 해 드리려고 노력하지만 지엽적인데다 공격적이고 모욕적인, 한 마디로 쓸데없는 질문들로 질의응답 시간을 몽땅 까먹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느 정도 봐주다가 결국은 사회자가 끼어들어서 제지하게 되는데 내가 지난 세 번의 학술대회 혹은 특별강연회장에서 관찰한 바 이 전직 교수가 정말로 비겁하다고 느낀 점이 뭐냐면 남자교수가 제지하면 즉각 꼬리를 내리고 깨갱, 하고 짜부라지는데 상대방이 여자일 경우에는 점점 더 흥분하면서 점점 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더라는 것이다. 학술대회에는 남자 여자 불문하고 사람이 많이 오니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면 남자 교수님들 중에서 누군가 안 되겠다 싶어서 끼어들게 마련인데 특별 강연회 때는 우리 과 학과장님도 여자 교수님이고 초청 강사도 여자 교수님이라서 질의응답이 시작되고 이 문제의 전직 교수가 트집을 잡기 시작하자 논란이 끝이 안 나고 분위기가 정말로 안 좋아졌고 결국 학과장님과 초청강사 교수님을 포함해서 거기 있던 사람들이 이 전직 교수가 아직도 말을 하고 있는 도중에 모두 일어나서 나와버리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그러나 우리 학과장님이 보통 때는 상냥하고 생기발랄하시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화르륵 쏟아붓는 불 같은 성격인데 이 전직 교수를 그 자리에서 혼쭐을 내주지 않고 그냥 나와버린 이유는, 그리고 타과 교수이면서 우리 과 학술대회장에 끈질기게 찾아와서 벌써 몇 번이나 되풀이해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데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이유는, 그 전직 교수가 언제나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여자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전직 교수는 남자다. 아마도 최소한 50대 후반에서 60대 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어른 남자다. 염색이야 하다 보면 잘못되는 수도 있고 처음엔 괜찮았다가 머리 몇 번 감았더니 이상한 색깔로 변하는 수도 있는 일이긴 한데 적어도 내가 이제까지 봤을 때는 머리카락이 세 번 다 똑같이 짙은 빨간색이었으므로 일단은 일부러 저런 색으로 염색한 거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염색은 그렇다 치고 무엇보다 어째서 여자 옷을 입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이든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있다는 건 실제로 보았을 때 상당히 충격적이고 기괴한 광경이다. 그것도 매번 질문을 할 때마다 보란 듯이 벌떡 일어나기 때문에 발표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차림새를 목격할 수밖에 없다. 나하고 상관도 없는 타인의 옷차림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건 기본적으로 무례한 일이지만 그 당사자가 또한 무례한 사람이고 여태까지 여러 번이나 사람들 많이 모인 장소에서 여자 발표자만 골라서 모욕적인 언사로 이유없이 물의를 일으킨데다가 옷차림까지 그 모양이니 저 인간은 아무래도 사고방식이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찌저찌 학술대회가 끝나고 나면 항상 하는 일이 다들 고기 먹으러 가는데 동종업계 관련자들이 모이면 다 그렇듯이 이 학회 뒷풀이라는 건 언제나 뒷담화의 장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보통의 경우라면 매번 물의를 일으키는 이 빨간머리 전직 교수에 대해서도 뒷담화가 안 나올 수가 없는데 누군가 말을 꺼낼라치면 모두들 몹시 불편한 표정이 되어 입을 다물거나 그 중 눈치 빠른 사람이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리기가 십상이었다. 어른 남자가 짧고 몸에 붙는 여자용 정장 자켓에 프릴이 달린 블라우스를 받쳐입고 그 아래 정장 치마를 차려입은 모습은 학회 뒷풀이에서 험담 겸 아무 소용 없는 남의 걱정 겸해서 적당히 씹고 잊어버릴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강렬하도고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학회 같은 데 오는 사람들도 다 교수, 강사, 박사들이다 보니까 학교를 오래 다니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다분히 얌전한 삶을 사는 소심한 사람들이라서 이런 불편한 장면에 대해서 차마 내놓고 비뚤어진 흥미를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 연구실에 너무 오래 틀어박혀 지내다 보면 나도 저 나이쯤에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일말의 두려움도 한 몫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내가 그 빨간머리 여장남자 전직 교수의 경우에 대해서 다시 듣게 된 것은 전혀 다른 경로를 통해서였다. 그러니까 대학원 시절 룸메이트였던 언니가 그 또한 학술대회에 갔다가 뒷풀이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물어왔던 것이다. 이 바닥이나 그 바닥이나 좁아터지기는 마찬가지라서 정확히 어느 분야인지는 밝힐 수 없지만 그쪽 사람들은 문학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피도 눈물도 없이 뒷담화를 하면서 훨씬 더 재미있게 사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나도 그 쪽 전공을 할 걸 그랬다고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은 없고 빨간머리 전직 교수의 사연을 이야기하자면 꽤나 간단하다. 국내 유명 모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고 결혼도 해서 부인도 있고 이제는 다 큰 자녀들도 있는 보통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랬는데 이 교수가 자기 조교와 바람이 났다. 그 조교는 대체 저런 남자의 어디가 마음에 들어서 바람이 났는지 잘 알 수 없지만 그 때는 전직이 아니라 현직 교수였고 빨간머리도 아니었으며 평범하게 남자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바람이 난 끝에 문제의 교수는 부인한테 이혼을 당했고, 이혼한 뒤에 전 부인은 물론 자식들까지도 아버지를 쓰레기 취급하면서 완전히 인연을 끊어버렸다. 그런데 한편 이 교수와 바람이 났던 조교는 교수가 이혼을 하고 나니까 나는 당신이랑 결혼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면서 이 교수를 차 버렸다.
그러니까 딱한 사정에다가 끝에는 그 나름대로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기는 했는데 그래도 뭐 여기까지는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상당히 평범하고 진부한 사연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그러니까 이혼하고 자식들한테도 버림받고 내연녀한테까지 차이고 나자 그 때부터 이 교수가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고 여자 옷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는 몰랐지만 듣다 보니까 언니가 이야기하는 그 사람이 우리 학술대회마다 찾아오는 바로 그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게 이 부분이었다. 설마하니 머리 빨갛게 염색하고 여자 옷을 입고 다니는 남자 (전직) 교수가 한국 학계에 그렇게 넘쳐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어쨌든. 자고로 한국 사회에서 교수 자리는 철밥통인데다가 불륜치정극이 공개됐을 때 아무래도 불리한 쪽은 여자다. 그러므로 그 여자가 한낱 대학원생 조교이고 남자가 교수님이면 이런 상황에서는 여자 쪽이 학교를 그만두고 조용히 사라지는 걸로 사건이 일단락되고 남자는 남들이야 뒤에서 뭐라고 수근거리든 학교에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계속 교수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 상례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상황은 그렇게 예측 가능하게 흘러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이 남자 교수가 치마 정장에 스타킹까지 갖추어 신고 학교를 활보하다 못해 수업까지 그 차림새로 들어갈 줄이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차림으로 다니게 된 이유가 양성평등이나 성적 소수자의 권리 신장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닌 치정극의 여파 때문이라면 학교 측에서도 그냥 쉬쉬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현직 교수는 전직 교수가 됐다. 그리고 아마 그 때부터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타 학과의 학술대회장을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자기 과 학술대회장에는 쪽팔려서 못 가니까) 여자 발표자만 골라서 붙잡고 늘어져 뗑깡을 부리게 된 것으로 사료된다.
거기까지는 이해를 하겠는데 머리는 대체 어째서 빨간색으로 물들인 것이며, 아니 머리 색깔 따위가 문제가 아니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도대체 어째서 그런 뗑깡을 여자 옷을 입고 부려야만 하게 된 것인지, 이 결정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선배 언니도 나도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얘기이긴 한데 국내의 유명 대학교 몇 군데에서 공동 연구팀을 꾸려서 중독 치료에 대해서 연구를 했다고 한다. 뼛속까지 문과 사람인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요점만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중독을 일으키기 쉬운 사람은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는데, 도파민 수용체 D2가 적은 사람이 중독에 빠지기 쉬운 성향을 타고난다는 것이다.
도파민은 (나도 알 정도면 다들 알겠지만)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인데 쾌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이 분비되면 조울증이나 정신분열을 일으키고 너무 적게 분비되면 우울증을 일으킨다. 이 도파민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다섯 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서 두번째인 D2 수용체가 중독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D2 수용체가 너무 적으면 도파민이 분비되었을 때 제대로 조절을 못 해주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위에 말한 공동연구팀에서는 이 문제의 도파민 수용체 D2를 제거한 형질전환 생쥐와 정상 생쥐를 좁은 우리에 가둬서 인위적으로 막 스트레스를 받게 한 다음에 코카인 약물을 주입했다. 생쥐가 대체 무슨 죄냐 싶긴 하지만 그 결과 D2를 제거한 생쥐는 코카인 중독이 재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가둬놓고 일정하게 계속 코카인을 주입하다가 한 2주 정도 끊었는데, 이렇게 스트레스 받고 약물에 중독이 됐다가 금단증상까지 일으키는 상황에 처했을 때 다시 스트레스를 받게 되자 정상 생쥐의 경우 코카인 중독 가능성이 현저하게 높아졌지만 D2를 제거한 생쥐의 경우에는 같은 상황에서도 중독이 재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속 말하지만 나는 문과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연구 결과에 대한 감상은 정상 생쥐가 D2 수용체를 제거한 생쥐보다 고생을 많이 해서 불쌍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감상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 연구의 핵심적인 성과는 만성 스트레스가 중독의 시작보다 재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과 도파민 수용체 D2가 중독 재발 과정에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연구를 주도했던 의대 교수는 “그러므로 중독 치료에 있어 만성 스트레스가 매우 중요한 요소다”라고 강조했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세간에 알려질 때는 만병통치약이라도 찾아낸 듯이 보도가 되었기 때문에 “D2 수용체를 없애버리면 중독이 한 방에 치료된다!”라고 와전되어 버렸다.
물론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라는 게 눈에 띄게 한 군데 우르르 모여 있어서 무슨 손톱 깎듯이 샥 잘라버리면 한큐에 없애버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고 세포 수준에서 신호를 주고받고 하라고 있는 건데 처음부터 갖고 태어나지 못하게 유전형질을 조작한다면 모를까 이미 가지고 태어난 경우에는 수용체를 무슨 수로 없앤다는 건지 과학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사람의 경우에 D2 수용체가 너무 적으면 도파민 조절을 제대로 못 해서 정신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고 위에도 썼는데 그 수용체를 아주 없애버리는 게 어째서 중독 치료에 도움이 되는지도 나는 잘 이해를 못 하겠다. 그러나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학술연구지원재단에 연구비를 신청해서 지원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거 하나는 확실히 알기 때문에 위에 말한 중독치료와 D2 수용체에 대한 후속 연구가 진행되어 D2 수용체를 제거하는 임상 시험을 동물 대상으로, 그 뒤에는 사람 대상으로 실시하게 된 이유나 배경은 충분히 이해를 하겠다. 의대 교수들도 교수이고, 교수는 연구업적에 살고 연구업적에 죽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나는 교수가 아니지만, 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연구업적과 연구비 지원 경력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까 매년 이맘 때면 연구비 신청서를 쓰느라 골머리를 앓게 된다. 벌써 몇 년째 해마다 골머리를 앓고 몇 년째 해마다 실망하고 있다.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잘못돼서 매번 연구비 지원 심사에서 미끄러지는지 모르겠지만 (알면 안 미끄러졌겠지) 일단 한국 뿐만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도 계속 불경기라 정부에서 당장 인생 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문학 연구 나부랭이까지 지원해줄 돈이 없는 관계로 학술연구 지원금액 자체가 매년 전해에 비해 3분의 2 정도로 착실히 줄어들고 있는데다가 내가 졸업한 학교가 이쪽 바닥에서 좀 왕따라는 문제도 있고 뭐 그런데 이런 건 내가 어쩔 수가 없는 사정이고 나라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되든 안 되든 삐까번쩍하게 포장한 지원신청서를 열심히 써서 마감기한에 맞춰 들이밀어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처음 몇 번 정도는 갓 졸업한 신참의 패기로 기운차게 써서 들이밀어 보다가 계속 떨어지니까 대체 심사 통과해서 연구비라는 걸 지원받는 사람들은 뭘 얼마나 어떻게 잘 했길래 그 어마무시한 경쟁을 뚫고 간택이 된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절반에 울분과 원한이 절반 섞인 심정으로 연구지원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전 선정결과들을 막 한참 전까지 싸그리 뒤져서 심사 통과된 연구계획서(는 연구지원재단 홈페이지에 공개된다)들을 받아서 보다가 도파민 수용체와 중독에 대한 연구계획서도 보게 되었고, 같은 페이지에 연구 중간 결과 보고서도 첨부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심코 “파일 전부 다운로드”를 눌렀다가 후속 연구 보고서에 포함된 임상 시험에 대한 보고서도 열어 버렸다. 그리하여 화면에 가장 먼저 나온 부분은 첫 페이지가 아니라 중간 어디쯤이었는데, 별 생각 없이 스크롤을 죽죽 내리다가 그 페이지를 가득 채운 기다란 명단 뒷부분에서 그 빨간머리 전직 교수의 이름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문제적 교수의 이름도 선배 언니에게서 얻어들은 정보였는데, 사실 나의 선배 언니는 남의 뒷담화를 하더라도 정도를 지키는 성격이라 실명까지 거론할 정도로 인정사정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뒷담화 중에 실명이 밝혀지게 된 이유는, 그리고 이름만 보고 내가 동명이인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일 것이라고 확신했던 이유는, 이 문제적 전직 교수의 성이 굉장히 특이한,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문제적 인물의 문제적 행동거지에 상당히 잘 어울리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성이었기 때문었다. 그에 비해 성 빼고 이름 부분은 또 지나치게 흔한 이름이라 그 괴상한 성과 나란히 놓고 보았을 때의 효과는 다분히 코믹한 것이었다. 그러니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고, 그 성명은 듣는 즉시 내 머릿속에 잊을 수 없이 각인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명단에 실린 사람이 실제로 그 빨간머리 교수이건 아니건 간에 피험자의 실명이 연구 보고서에 공개되고 그 보고서는 연구지원재단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다니 피험자 입장에서는 펄쩍 뛸 노릇이다. 의료정보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부분인데 이 후속연구 임상시험을 진행한 책임자들은 대체 뭐 하는 놈들인가, 하고 분노하려다가 또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이쪽 전공자가 아니라서 업계 관행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데다가 연구지원재단에서 돈을 받아서 연구를 하고 보고서를 쓸 경우에는 얼마나 자세한 정보를 어디까지 제공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언제 돈을 받아봤어야 알지.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이미 몇 년 전에 연구비 지원도 끝났고 결과 보고까지 다 완료됐으니 지금 와서 아무 상관없는 국외자인 내가 연구지원재단에 이런 일로 항의 같은 걸 해봤자 나만 미운털이 박히고 별다른 결과 없이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배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그래?”
라고만 말하고 선배 언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건 지원재단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나는 걱정했다. 선배 언니는 잠시 생각한 뒤에 내가 예상했던 대답을 내놓았다.
“벌써 몇 년 전에 홈페이지에 공개됐으면 볼 만한 사람들은 다 봤겠지. 문제가 없으니까 지금까지 공개돼 있는 거 아니겠어?”
뭐 듣고 보니까 그 말도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보기술 시대에 만연한 개인신상정보 유출의 문제에 대하여 이상 논의하지 않기로 하고 본래 전화한 목적인 즐거운 뒷담화 쪽으로 말을 돌렸다.
“그거 그 교수 맞죠? 그 사람은 왜 그런 실험에 피험자로 참여했을까요?”
그러나 선배 언니의 반응은 썰렁했다.
“글쎄….”
그래서 나는 언니 바쁜가 본데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말고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끊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선배 언니나 나나 희망 없는 교수 자리를 바라보며 연구업적에 목 매는 처지이다 보니까, 그리고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둘 다 내년도 연구비 지원신청서를 빨리 써서 혹은 얼른 고쳐서 기한 내에 제출할 궁리를 해야지 남의 뒷담화 같은 데 열 올리고 앉았을 만큼 한가한 팔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라고 두루뭉수리하게 마무리를 하고 전화를 적당히 끊으려고 했는데 선배 언니가 말했다.
“네 말 들으니까 이제 좀 이해가 될 것 같아.”
“뭐가요?”
되물었으나 선배 언니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뭔가 생각하는 중이기 때문이라는 걸 눈치챘으므로 나는 조금씩 기대감에 부푼 마음으로 언니의 대답을 기다렸다.
언니는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그 연구 보고서 몇 년도 거야? 꽤 오래 됐지?”
나는 보고서에 찍힌 연도를 말해 주었다. 아주 많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년 묵은 연구였다.
언니는 또 말없이 무슨 생각을 하더니 또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 교수가 원래 술 좋아하고 굉장히 많이 마시는 타입이었나봐. 돈 문제도 있었다고 하고….”
“돈 문제요?”
사람들은 교수가 떼돈 버는 줄 알지만 사실 교수 자리라는 게 돈이나 실제적인 권력보다는 그냥 허울만 좋은 명예직이고 분야나 학교에 따라서는 일반 월급쟁이보다 못 버는 사람도 널린 게 현실이다. 게다가 교수는 공부만 한 사람들이라 이론만 철벽같지 현실 감각은 종종 어린애만도 못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교수라도 혼자 벌어서 가족을 부양했다면 요즘처럼 팍팍한 세상에서는 충분히 돈 문제로 시달릴 수 있다.
알고 보니 힘들게 사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일말의 동정을 느끼려는 찰나에 선배 언니가 나의 쓸데없는 감상을 가로막았다.
“그게, 사람들이 딱 내놓고 말을 안 해줘서 나도 잘 몰랐는데, 경마를 그렇게 좋아했대.”
그러니까 돈 문제라는 건 일반적인 사정이 아니고 도박 중독이었다는 얘기다.
“충동조절 장애가 있거나 모험 추구형 행동에 빠지는 타입이었거나 하여간 전부터 문제가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조교하고 바람이 났을 때 그 부인이 그렇게 단칼에 이혼해버리고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했겠지.”
그러면 문제의 빨간머리 전직 교수는 알콜 의존에 도박 중독에 불륜치정을 거친 끝에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내리고 D2 수용체를 제거하는 임상시험에 참여했던 것일까? 그러나 지난번 학회에서 목도했던 치마 정장과 프릴 달린 블라우스를 생각하면 대체 그 임상시험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선배 언니가 시간 관계를 정정해 주었다.
“아니, 조교하고 바람난 건 그 임상시험 다 끝나고도 한참 지난 다음이야. 그 부인이 친정에 졸라서 빚더미에서 꺼내준 적이 있는데, 몇 번 그러고 나서 치료받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선언했었대. 그 교수가 그래서 임상시험에 참여했나봐.”
그러면 이론상으로 문제의 전직 교수는 도파민 수용체 D2가 제거되어 더 이상 중독이 재발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 뒤에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고 이혼을 당하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 그리고 복장도착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 사람이 학교에서 짤리기 전에 같은 과 교수들이 여자 옷 입고 다니는 거에 대해서 여러 번 얘기를 하려고 했었대. 근데 이 사람이 자기가 왜 여자 옷을 입고 다니는지 설명을 하면서 정당화를 하려고 그러더라는 거야. 여자 옷이 편하다, 보기에 예쁘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서, 아무리 설득을 해도 어른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어째서 이상한지, 남들 눈에 얼마나 괴상하게 보이는지 전혀 이해를 못 하더래.”
“그런 일 있기 전에는 본인도 평범하게 남자 옷 입고 다녔을 거 아녜요?”
“그러니까 말이지.”
선배 언니가 동의했다.
“전부터 무슨 도착 증세가 있었던 거예요?”
“그거야 모르지. 그치만 교수까지 됐으면 아마 그 전까지 겉보기에는 멀쩡했을 거야.”
선배 언니가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왜, 나이드신 교수님들 중에 복장도착이랑 트랜스젠더랑 게이랑 구분 못 하는 사람 많잖아. 그 사람 알고 봤더니 동성연애자 아니냐고 막 그러시는 거야. 근데 그건 절대 아니지. 애초에 동성애하고 복장도착하고 아무 상관 없고, 그 교수는 여자하고 결혼해서 자식을 셋이나 낳고 그 뒤에 바람이 난 것도 여자하고 났으니까 게이가 아니잖아?”
그리하여 대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정신적 충격에 의해 복장도착 증세를 보이게 될 수 있는지, 그게 어떤 종류의 충격을 받으면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선배 언니도 나도 전문가가 아니라서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도파민 수용체 D2와 중독치료에 대해 생각해보면 뭔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보고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독 재발에 있어 D2 수용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요소는 만성 스트레스다.
생쥐의 경우, D2 수용체가 없는 형질전환 쥐는 만성 스트레스 상황에 처해도 중독이 재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실험은 성공했다. 쥐는 사회생활도 하지 않고 돈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하지도 않으며 여자 옷을 입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기 위해서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지도 않으니까 연구자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중독이 재발하지 않았으면 그걸로 끝이다.
사람은 쥐가 아니다.
중독은 파괴적이다. 알콜중독이나 약물중독이나 도박중독의 효용에 대해 변호하려는 건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좁은 우리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쥐들은 코카인에서 도피처를 찾았다. 중독이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한 일종의 기제라면 역설적으로 생존을 위한 기제이기도 하다.
좁은 우리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된 실험실의 쥐처럼, 사람도 삶에 갇혀 꼼짝 못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런 출구 없는 생활이 아무 기약도 희망도 없이 계속 이어질 때, 그 사람에게서 생에 즐거움을 주는 단 한 가지,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음날 아침에 눈 떠서 다시 하루를 견뎌나갈 힘을 주는 단 한 가지를 빼앗아버린다면, 고민과 고통을 덮어버리고 녹여버리는 흥분과 쾌감을 느끼게 해 주는 감각기관 자체를 없애버린다면…. 그런 뒤에 괴롭고 숨 막히는 평소의 생활 안에 다시 가두어 버린다면….
마음은 풍선과 같아서 한쪽이 눌리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고, 그러다가 지나치게 세게 눌리면 터져 버린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문제적 전직 교수의 마음을 짓누른 것이 무엇이었는지 타인의 입장에서 세세하게 전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억누르던 것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곤 했던 탈출구를 잃게 되자 그의 병든 마음은 추락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터져 버렸던 것이다….
 


***

학기말의 정례학술대회 발표장에서 나는 어김없이 빨간머리 전직 교수를 다시 마주쳤다. 내 앞 세션에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발표한 여자 교수님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빨간머리 전직 교수는 어느 샌가 발표장에 나타나서 질의응답 시간이 돌아오자 예의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더니 되도 않는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베이지색 7부 소매 자켓에 같은 색 치마를 입고, 목 부근에 커다란 리본이 달린 짙은 푸른색 실크 블라우스를 받쳐 입었다. 자켓이나 치마가 전에 봤을 때처럼 몸에 붙지 않고 반대로 푸대자루를 뒤집어쓴 것처럼 지나치게 헐렁한 걸 보니 어깨너비에 맞는 다른 사이즈를 시도해보는 중이거나 아니면 살이 찐 걸 감추려다 실패한 모양이었다.
예정된 시간을 십 오 분이나 넘겨가며 계속 트집을 잡은 끝에 빨간머리 전직 교수는 사회를 보던 남자 교수님에게 쿠사리를 먹고 언제나 그렇듯이 즉시 얌전해졌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음 세션이 시작되면 첫 발표가 내 순서였기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나도 저 빨간머리 여장남자에게 시달리게 되는 것일까, 하고 긴장했으나 내가 속한 패널은 20세기 문학이라 도스토옙스키도 톨스토이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인지 문제의 전직 교수는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가더니 다른 발표장으로 사라졌다. 학회가 끝나고 고기를 먹으러 간 자리에서 옆 발표장에서 마지막으로 발표했던 여자 선생님이 그 빨간머리 전직 교수에 대한 원망을 쏟아놓았으나 모두들 침묵했기 때문에 뒷담화는 시작도 되기 전에 삼겹살 굽는 연기와 함께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의 결함과 한계에 대해 생각한다.
빨간머리 전직 교수는 D2 수용체를 제거하기만 하면, 그래서 다시 중독에 빠질 가능성을 원천봉쇄해 버리기만 하면 자신의 모든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되리라 기대했을 지도 모른다. 설마 그것이 문제의 끝이 아니라 파국의 시작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인간은 본래 모두 불완전하다. 그것도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각자 다르게 불완전하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의 뿌리는 세포 속에, 그 세포가 받아들이는 전기 신호 속에, 그 전기 신호를 해석하는 뇌 속에,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 속에 있다. 그러므로 존재 자체를 없애지 않는 한 삶의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저 모자란 곳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도록, 불완전한 부분이 완전히 기능을 멈추거나 반대로 일상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삐거덕거리고 덜그럭거리고 비틀거리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 바로 존재의 근본이라서 죽음과 소멸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뿐만 아니라,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온화함과, 그 두 가지를 구분하는 지혜”를 언젠가 얻을 수 있을지….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mirror
댓글 1
  • No Profile
    정도경 13.03.30 00:17 댓글 수정 삭제

    실제 연구재단에서는 임상시험 피험자의 개인정보를 홈페이지 등 일반에 무차별적으로 공개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소설 전개를 위한 상당히 무리한 설정일 뿐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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