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현관문을 열면 누구나 기침을 했다. 좁은 통로로 걸어 들어가면 계단이 나타났고 계단 위로 올라가면 화려한 방이 있을 테지만 우리는 계단을 올라가지 않는다. 우리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이 집의 심장, 여자들의 부엌은 그 계단을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 그 부엌에 들어서면 강렬한 초콜릿 향기가 사위의 감각을 잃게 만들어서 결국 사람들은 길을 잃게 마련이었으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부엌에서 길을 잃지 않을 단 두 사람이 존재했고, 그 두 사람 외에 아무도 그 부엌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잠드는 시간을 제외하고서, 두 여자는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일 년 내내, 평생을 초콜릿을 만들었다. 초콜릿이 천천히 녹아갈 때, 여자들의 거친 손은 정확한 분량의 오렌지 필을 붓거나, 거품을 낸 우유를 부었다. 여자들이 만나는 단 한 명의 인간은 이 초콜릿을 가지러 오는 빵집 청년이었다. 여자들은 가끔씩 바뀌는 청년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고 청년 역시 여자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자들의 얼굴보다는 그녀들이 평생 등에 지고 산, 그녀들을 낙타처럼 보이게 하는 살덩어리에 시선을 먼저 꽂았고, 그래서 여자들은 굳이 힘겹게 얼굴을 들어 사람들의 얼굴을 보려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초콜릿이 녹는 걸 볼 수 있었고,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더군다나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저 고개를 숙였다.
보글보글, 초콜릿이 녹는 소리가 들렸고 여자들은 숨을 죽이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쥐들이 마루를 뛰어가는 소리와 위층 창부의 교성에 섞여서 여자들의 귀에만 들리는, 미세하게 끓는 소리― 이제 불을 줄여야 할 때였다. 둘째가 미리 만들어두었던 초콜릿 쉘을 꺼냈다. 오렌지 가나슈에선 달콤하면서도 입 안에 침이 고이는 신 냄새가 났다. 허리춤의 리본을 팔랑거리면서 플라타너스 길을 내달리는 열여섯 살 소녀 같은 냄새였다. 아마도 그런 소녀가 이 초콜릿을 선물 받게 될 터였다.
이제 꾸덕꾸덕, 초콜릿이 굳는, 두 사람만 분간할 수 있을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 끝에 첫째가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불어야 할 때였다. 어두운 부엌에 약간 햇빛이 들어오는가 싶더니 첫째가 나직하게 탄성을 내뱉었다. 둘째는 첫째가 입을 다물고 있음에도 첫째의 감정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의아한 표정으로 첫째를 돌아보았다. 첫째의 눈앞에 맑은 초록색 눈동자가 반짝였고 그 순간 그것이 입을 벌리고 몸을 뒤틀었다. 첫째는 서둘러 손을 뻗어 그것, 두 손에 다 들어올 정도로 작은 악어를 들어올렸다. 악어는 빛나는 꼬리를 흔들었다. 둘째가 첫째 옆에 붙어서 악어의 차가운 등껍질을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작고 여린 몸 위에 단단한 등껍질이었다. 첫째는 둘째가 느끼는 촉감을 오른손 검지에 느꼈다. 여자들은 등에 붙은 혹이 단단하게 빛나는 느낌이었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느껴본 적이 없는 감각에 여자들은 몸서리를 쳤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사이 여자들의 초콜릿은 잘 굳어있었다.
악어는 들어오자마자 맑은 초록색 눈동자를 굴리면서 부엌 카운터 위로 올라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첫째가 서둘러 악어를 카운터에 올려주었다. 악어는 첫째의 손에 몸을 가볍게 비비고는 카운터 위를 겅중겅중 뛰어넘었다. 악어는 오렌지 가나슈 앞에 멈췄다. 조그마한 입을 있는 힘껏 벌려서 위턱으로 초콜릿 쉘 하나를 뭉갠 악어는 오렌지 가나슈를 씹어 삼켰다. 여자들은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악어의 맑은 눈이 황홀한 색채로 빛났다. 눈에서부터 시작한 휘황한 빛깔은 작은 띠를 그리면서 악어의 꼬리까지 내려갔다. 여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악어는 입을 벌리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여자들은 초콜릿을 만든 자신들의 손가락 끝이 처음으로 자랑스러웠다. 악어는 어두컴컴한 부엌을 한참 동안 빛내고 있었다. 그 다음 날, 여자들은 생애 첫 펑크를 냈다. 한 개가 부족한 물량에 빵집 청년은 당황했고, 여자들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빵집 주인은 투덜거리면서 더 작은 구의 상자를 준비했다. 그렇다고 해서 빵집 주인이 여자들을 찾지 않을 리는 없었다. 이 거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초콜릿은 바로 이 빵집의 초콜릿이었다.
부엌을 등지면 계단 아래쪽에 여자들의 방이 있었다. 여자들이 함께 잠드는 침대는 딱딱했지만, 여자들은 그보다 더 푹신한 감각을 알지 못했다. 여자들은 혹여 자신들이 흉물스러운 혹으로 작은 악어를 짓누를까 불안했다. 여자들은 악어의 침대를 따로 만들어주려고 했다. 첫째는 현관에 버려져 있던 작은 쿠션을 들고 왔다. 계단을 두 번 올라가면 있는 창부의 것이었다. 쿠션 위에 악어를 올려놓자, 악어는 첫째의 손에 턱을 비볐다. 그 순간,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의 충격이 여자들을 훑고 지나갔다. 물론 첫째가 조금 더 놀랐다. 첫째는 초콜릿을 만들던 통을 들고 왔다. 첫째는 내일 아침에 먹을 빵에 남은 초콜릿을 듬뿍 묻혀 악어에게 가져다 댔다. 악어는 있는 힘껏 위턱을 내리쳤다. 다시 악어가 찬란하게 빛을 내뿜자, 여자들은 행복감에 벅차올랐다. 물론 첫째가 조금 더 벅찼다.
여자들이 웅크리고 잠이 들자, 악어는 천천히 침대를 기어올랐다. 첫째는 자신의 등 뒤에 악어가 웅크리고 잠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첫째는 행복해서 그만 죽고 싶었다. 그때 둘째는 한참 꿈을 꾸고 있었다. 언니가 초콜릿의 강물을 타고 떠내려가는 걸 지켜보면서 둘째는 악어와 함께 강물 밖에 있었다. 악어는 강물을 약간 삼켰다. 바로 그때 옆에서 언니가 느끼는 행복감의 미세한 파동이 둘째를 스쳤지만 둘째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럼을 열자 악어는 몸이 달아올랐다. 둘째는 초콜릿에 럼을 풀어서 악어 앞에 떨어뜨렸다. 악어는 뛰어올라 초콜릿 통 속에 들어갔다. 둘째가 나직하게 소리를 질렀다. 미적지근한 초콜릿 속에서 악어의 눈은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 다시 기묘한 색채가 드러났다. 둘째가 국자를 꺼내자, 첫째는 국자를 낚아챘다. 첫째는 천천히 초콜릿 통을 휘저었다. 둘째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멍하니 손을 내려다보았다. 첫째가 등 뒤로 다가왔는데도, 둘째는 첫째가 왔다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첫째가 어디든 가려고 한다면, 첫째가 첫 걸음을 내딛기 전부터 둘째는 첫째의 마음을 읽어왔었다. 비단 걸음만이 아니었다. 둘째는 첫째의 등을 보았다. 커다랗게 굽은 흉측스러운 혹이 있었다. 둘째는 손을 뻗어 자신의 등을 만지려고 했지만, 휘어진 등까지는 손가락이 닿을 수 없었다. 후다닥, 지하실 한 가운데로 쥐 한 마리가 뛰어나갔다. 여자들은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녀들의 느린 몸짓으로는 쥐꼬리도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실컷 초콜릿을 마신 악어는 느긋하게 통을 빠져나왔다. 초콜릿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날카로운 교성이 들렸다. 위층의 창부가 또 울부짖고 있었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 손님이었다. 창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메아리칠 때마다 남자의 질펀한 욕설이 섞여들었다. 살 부딪히는 소리, 살 후려치는 소리가 겹쳐 들렸다. 둘째는 느릿한 손길로 덫을 놓았다. 첫째는 악어를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악어는 꽤 자라있었다. 그날 밤, 여자들이 잠이 들었을 때 악어는 슬그머니 여자들의 작은 창문을 빠져나갔다.
여자들은 서로의 몸을 감싸 안았다. 사실은 자신의 몸을 감싸 안기 위해서였다. 익숙한 감정이 밀려들어왔다. 첫째의 감정인지 둘째의 감정인지 알 수 없이 감정들이 얽혀들었다. 혹에 돌을 맞을 때, 어머니가 아버지의 주먹 앞에 이들을 숨길 때, 집에서 쫓겨날 때, 고기 냄새를 맡을 때 느꼈던 음습하고 어두우면서도 안온한 감정. 하지만 첫째와 둘째가 서로 느끼는 감정이 미묘하게 달라져 있다는 걸 둘 중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둘째가 먼저 푹 쓰러졌다. 첫째도 같이 눈을 감았다. 이들이 사는 곳이 지하라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언제든 눈꺼풀은 감길 수 있었고, 세계는 깜빡 잊힐 수 있었다. 어느 쪽이 꿈인지 알 수 없게 여자들은 잠에 빠져들었다.
악어가 빛나는 걸 보고, 수컷의 눈이 돌아갔다. 아직 성기를 빼내지 못한 수컷, 악어의 아비는 악어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악어는 몸을 돌려서 몸에 들어온 뜨거운 살덩어리를 빼냈다. 아비의 이빨이 악어의 머리를 향해 내리꽂혔다. 악어는 몰아치는 하수 속에서 몸을 뒤챘다. 아슬아슬하게 아비의 이빨을 피했다. 아비는 계속해서 턱을 부딪치며 악어를 향해 꼬리를 쳤다. 악어는 물을 타고 아비의 뒤로 향했다. 물은 악어의 숨을 틔웠다. 악어는 이렇게까지 자유롭게 물을 헤엄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악어의 몸이 더 붉은 빛으로 빛났다. 춤을 추듯 아비의 꼬리를 잡았다. 아비는 여전히 이빨을 드러내고 악어에게 덤벼들었다. 하수에서 초콜릿 냄새가 났다. 아비의 성기는 아직 빳빳하게 서 있었다. 악어는 다시 한 번 아비의 꼬리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아비는 튕겨나가는 악어의 등껍질을 물었다. 악어의 등에 세로로 줄이 갔다. 속도를 늦추면 틀림없이 고통은 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악어는 속도를 늦춰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비의 단단한 꼬리 끝이 악어의 윗니에 걸렸다. 악어는 힘껏 하수도의 벽에 아비를 내리꽂았다. 악어의 등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아비는 한순간에 혼절했다. 악어의 몸에서 나던 빛이 사그라졌다.
악어는 급수가 다 떠내려갈 때까지 혼절한 아비를 짓누르고 꼼짝하지 않았다. 아비에게 뜯긴 어미의 오랜 기억이 잠깐 악어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었던지 악어는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팠다. 한참동안 코끝을 맴도는 고소하고도 그리운 냄새의 진원을 찾아 헤매던 악어는 드디어 아비의 목덜미에 이를 가져다 댔고 그대로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핏방울이 솟구쳐서 하수에 선명한 무늬를 만들었다. 몇 번 몸을 튕겨내듯 떨었지만 단지 그 뿐,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고 힘도 없는 혼절한 아비 위에서 악어는 정신없이 혀를 뒤채어 목덜미와 발톱, 쪼그라든 성기까지 꼼꼼하게 집어삼켰다. 아비의 둥근 눈알을 삼킬 때 악어는 다시 반짝였다. 아비는, 눈이 부시도록 맛있는 음식이었다. 아비를 포식하고 난 악어는 교미에 식사까지 마친 평화로운 잠에 빠져들었다.
돌아온 바로 그날부터 악어는 탐욕스럽게 먹었다. 초콜릿과 술뿐이 아니었다. 악어는 여자들이 먹으려는 스튜에 뛰어들어 얼마 되지 않는 고기를 삼켰고 그 때문에 여자들은 악어가 돌아오자마자 며칠 동안 어떤 고기도 먹지 못했다. 첫째가 손을 뻗어 고기를 씹고 해맑은 표정으로 엎드려 있는 악어의 등을 만지려고 할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고기 맛을 보고 돌아온 악어는 결코 고기 냄새를 놓치지 않았다. 꼬리를 빠르게 흔들던 악어는 부엌 한 구석으로 돌진했고 곧장 부엌 벽에 턱을 짓찧었다. 힘세고 날카로운 악어의 턱보다는 작고 약한 쥐의 다리가 빨랐다. 악어는 쥐를 볼 때마다 그 언제보다도 간절하게 쥐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갈수록 악어의 몸은 눈에 띄게 둔해졌다. 둘째는 악어를 지켜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잠자리를 펴고 있던 첫째는 희미하게 둘째의 놀라워하는 감정을 느끼고 뒤뚱거리며 달려왔다. 둘째는 첫째를 보았고 첫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벌리고 거친 울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는 악어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배가 불러있었다. 이제 초콜릿 쉘 하나 정도로 악어는 빛나지 않았다. 양껏 삼키고 나서 겨우 그 찬란한 빛을 보여주는 순간에도, 빛은 좀 더 불길한 빛을 뗬다. 여자들은 첫 생리를 떠올렸다.
여자들의 첫 생리는 같은 날이었다. 여자들이 처음으로 몸에서 피를 쏟던 날에도 여자들의 손은 지금처럼 우둘투둘했고 혹은 늙어있었다. 어머니가 여자들의 혹을 때리며 울었고 여자들은 몸에서 끈적끈적한 피를 쏟으며 울었다. 여자들은 피를 쏟을 필요가 없는 동물들이라고 여자들의 어머니가 말했고, 여자들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점액질의 시뻘건 액체들이 영원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거란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슬픈 일이라는 것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당연하게 알 수 있었기에 여자들은 때때로 침대시트가 붉게 물들 때나 아랫배를 누군가 쥐어짜는 듯 고통스러울 때면 울어야만 한다는 강박이 가슴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걸 느끼곤 했었다.
악어는 여자들과 같지 않았고, 무언가를 속에 품어 기를 수 있었으며, 자궁 안에서 둥근 알들이 구를 때면 기분 좋은 듯 입을 벌리곤 했다. 때때로 임신한 여자를 마주칠 때, 여자들은 자신들이 서로 닮았다는 것을 재확인하곤 해 왔는데, 이번은 조금 달랐다. 여자들은 악어와 닮고 싶었지만 도무지 닮을 수가 없었다. 여자들은 바싹 마른 생리통에 더욱 심하게 시달렸다.
부엌의 쥐들은 밤이 되면 신이 나서 날뛰었다. 쥐들은 썩은 음식 냄새를 누구보다 빠르게 맡아냈고, 어둠 속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쥐 두 마리는 동시에 그 냄새를 감지하고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한 마리가 재빠르게 덫 위를 내달리려다 붙들렸다. 끈적이는 덫은 몸부림을 치는 쥐를 더 강하게 옥죄었다. 거의 비슷한 순간 다른 쥐는 달려오다가 미끄러져서 벌러덩 덫 위에 누워버렸다. 꼼짝없이 붙잡힌 쥐는 가늘게 숨을 내뱉었다. 먹을 걸 두고 경쟁하던 쥐들은 사이좋게 마주보는 자세로 누워있게 되었다. 덫은 단호했고 쥐들은 힘이 빠졌다.
쥐들을 발견한 둘째는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악어가 며칠째 쥐를 먹고 싶어 했다는 걸 여자들은 잘 알고 있었기에, 악어에게 주기 위해 물을 부어 쥐를 죽일 생각이었다. 둘째는 가만히 쥐들을 들여다보았다. 쥐들은 눈을 데룩데룩 굴렸다. 자신들이 곧 죽을 거란 사실은 쥐들 역시 당연히 알고 있을 터인데도 쥐가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리고 수염을 움직이는 게 보이자 둘째는 마음이 심란해졌다. 첫째가 둘째가 심란해 하는 걸 느끼고 다가오는데, 커다랗고 푸른 파충류가 첫째를 젖히고 튀어나온 배로 바닥을 쓸며 달려들었다. 덫이 통째로 부서졌고 둘째는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악어는 살아있는 냄새를 놓치지 않고 덫을 씹어 삼켰다. 쥐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사라졌고, 불길한 빛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악어가 내뿜는 휘황한 빛 속에 감싸인 첫째가 고개를 숙여 덫이 있던 자리를 보았을 때, 쥐의 얼굴은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수염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오후, 위층에 발자국소리가 들려왔으나 이번에는 교성이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남자의 목소리와 위층 여자의 목소리는 거칠게 섞여서 부엌까지 들려왔다.
“너랑 자고 나면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행복했어. 그거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너무 행복해서 잊을 수가 없어.”
남자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처럼 들렸고, 여자의 목소리는 잘게 부서졌다.
“가.”
위층 여자에게는 화요일마다 찾아오는 새 애인이 있었다. 첫째는 벽에 기대어 앉아서 반쪽만 남았던 쥐의 얼굴을 떠올렸고, 악어는 첫째의 무릎에 기대 눈을 감았다. 그 날은 화요일이었고, 애인은 창부를 찾아오지 않았다.
악어가 다시 코를 벌름거렸다. 창부가 한 걸음씩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코를 찌르는 냄새는 점점 더 구체화되었고, 악어의 몸은 깜빡였다. 악어가 계단을 성큼 뛰어올라가자 둘째가 서둘러 악어의 꼬리를 잡았고, 첫째가 몸통을 붙들었다. 악어는 몸을 뒤틀며 이빨을 드러냈지만 여자들은 결코 악어를 놓지 않았다. 악어가 사라졌을 때의 암연이 되살아났다. 여자들은 손에 힘을 주면서, 가지 말라고 속으로 애타게 중얼거렸으나, 악어가 들었을 지는 알 수 없었다. 창부가 나가고 현관이 닫히자 악어는 커다랗게 불어오른 배를 바닥에 깔고 풀이 죽었다.
여자들이 잠자리에 들고 나서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 동이 트기 직전에 현관이 열렸다. 아무도 건지지 못한 창부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왔다. 밤거리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힐끔거렸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그녀와 살을 섞었던 남자들은 먼발치에서 도망쳤다. 그녀는 애인의 가게에 발을 들이자마자 쫓겨났다. 모두가 낄낄거리며 웃어서, 그녀는 견딜 수 없이 두려워졌다. 얼굴을 가리고 가만히 거리 한 귀퉁이에 서 있었지만 모두들 신기하게도 그녀를 알아보았다. 집에 들어온 그녀를 유일하게 반겨준 것은, 커다란 암컷 악어였다. 악어는 천진하게 눈을 깜빡였고, 악어의 눈과 마주친 채 한참 말을 잃었던 그녀가 악어를 향해 처음으로 뱉은 단어는 지하실까지 울리는 비명이었다.
비명소리에 잠에서 깬 여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둘째는 혹을 거칠게 떠밀던 여자의 손을 떠올리고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 여자들은 평생 해 왔던 일을 할 시간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여자들은 계단을 올라갔다. 어머니가 혹을 때릴 때 그랬듯, 아이들이 돌을 던질 때 그랬듯, 누군가에게 빌 시간이었다. 혹여 악어에게 무슨 일이 있지는 않겠지, 이제 저 아이를 묶어놓아야 하나, 첫째가 생각했지만 둘째는 여자의 맨발을 떠올리느라 첫째의 생각을 받아 안지 못했다.
“이제… 어쩌지?”
“저걸 꺼내면 괜찮아질까.”
여자들은 창고 안에 넣어놓은 초콜릿을 모두 꺼내었다. 커다란 통에서 초콜릿이 녹기 시작했고, 악어는 코를 벌름거렸다. 악어는 다시 뱃속을 채워야만 했다. 악어는 통속으로 기어들어갔고, 이번에는 매우 조용하게 푸른빛으로 반짝였다. 그 빛을 보고 여자들은 안심했다. 그는 새끼를 낳지 않아도 여전히 여자들의 사랑스러운 푸른 악어였다.
악어는 엷게 빛나는 몸으로 알들을 씹어 삼킨 거실을 지나 창부의 욕실으로 들어갔다. 악어의 눈에는 선명하게 가야할 길이 보였다. 욕조 아래에 악어가 찾던 그 구멍이 있었다. 비대해진 몸으로 배수구에 기어들어갔다.
악어는 앞을 보지 못해 헤매는 녀석의 몸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녀석은 더듬거리며 악어를 찾으려고 애썼다. 악어는 몸속에서 벌써 알들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악어는 아비에게 긁혔던 상처에 짜릿한 환통을 느꼈다. 악어는 녀석의 목덜미를 가볍게 물었고, 녀석이 비명을 토해냈다. 녀석의 등가죽을 뜯어내면서 악어는 자신의 단단한 이빨이 사랑스러웠다. 녀석의 피는 끈적이며 악어의 이빨에 들러붙었고, 악어는 꼼꼼하게 이빨을 핥았다. 녀석은 정말로, 정말로, 맛이 좋았다.
악어는 검은 물 밑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이 잡아먹은 알들을 생각했다. 알을 낳아야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알을 낳기 위해 악어는 먹어야만 했다.
두 여자는 언제부터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는지 기억을 돌이켜보았다. 여자들을 받았던 산파가 깜짝 놀라서 그녀들을 떨어뜨렸을 때였던가, 어머니가 여자들을 후려칠 때던가, 교회에 오지 말라고 쫓겨났을 때던가, 등의 혹을 가릴 로브를 함께 만들었을 때던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두 여자는 혹여 말을 잘못 해서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것이 무서웠다. 두 여자는 다시 입을 다물었고, 부풀어 오르는 고독을 내버려두었다. 두 여자는 먹는 것도 잠드는 것도 포기한 채 그저 악어를 그리워했다.
악어는 두 여자에게서 참을 수 없이 달콤한 냄새를 맡았다. 냄새는 도무지 감출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져 있었다. 악어의 뱃속에서 새로 태어날 알들이 꿈틀대었고, 악어는 이 알들을 키우기 위해서 눈앞에 있는 달콤한 먹이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악어는 두 여자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첫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쩌면 첫째와 둘째가 함께 악어의 뱃속에 들어간다면 새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지금보다 훨씬 더 따스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는 첫째의 귀에 생경한 둘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명을 지르는 법도 잘 모르는 둘째는, 밀려오는 고통에 성대를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악어는 둘째를 다리부터 씹어 먹기 시작했다. 둘째는 다리 두 쪽을 다 잃은 채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첫째는 둘째의 고통을 느낄 수가 없었다. 첫째가 울었다. 두 여자가 어릴 적, 둘째가 아주 멀리에서 동네 청년들에게 얻어맞고 있을 때에도 첫째는 부엌에서도 다 알고 아파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첫째에게서 둘째보다 더 맛있는 냄새가 났고, 악어는 첫째의 머리통을 위턱으로 으스러뜨렸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아름다운 색깔로 악어의 몸이 물들어갔고, 악어의 뱃속에서는 단단하게 알이 여물어갔다.
악어의 몸은 빼어나게 달콤했고, 악어는 고르게 응축된 달콤함에 고통을 잊었다. 뱃속에서 알들이 꿈틀거렸고, 악어는 거침없이 자궁으로 이빨을 들이밀었다. 악어는 자궁의 농익은 달콤함에 혀를 내둘렀다. 악어가 위턱을 높이 들자 악어의 혀에 끈적하게 핏방울이 들러붙었다. 악어가 턱을 내리찧을 때마다 악어의 눈에서 눈물이 도르륵 흘러내렸다. 악어의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는 눈물조차도 빛방울로 날려보냈고, 온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줄만 알고 이불을 덮어썼다. 궁금해서 실눈을 떠 보았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멀었다.
빛이 완전히 사그라지고 나서 그 빛발에 한쪽 눈을 잃어버린 빵집 청년이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집은 여전히 낡았지만 그렇다고 무너지거나 불타버린 것은 아니었다. 빵집 청년은 어떤 빵집보다 맛있는 초콜릿을 만들던 부엌으로 내려갔다. 부엌에는 깨진 초콜릿 통과, 거미는 사라진 거미줄과, 털이 다 빠진 쥐꼬리 토막과, 여기저기 흩어진 악어 이빨들 사이에, 어스름히, 하지만 아름다운 빛깔로 빛나는 주먹만한 초콜릿이 있었다. 빵집 청년은 초콜릿을 들어서 한 입 깨물어보았다. 초콜릿은 피처럼 달콤했고, 빵집 청년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 맛은, 마치…….
빵집 청년은 울음을 그치고 사방에 흩어진 악어 이빨을 모아다가 주인에게 가져다주었고, 주인은 악어 이빨을 곱게 갈아서 조금씩 초콜릿에 집어넣었다. 초콜릿은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갔고, 그 돈으로 주인은 새로운 템퍼링 기계를 샀다. 새로운 템퍼링 기계는 악어의 이빨 가루도 잘 섞었고, 윤기가 감돌게 만들었다. 지금 당신의 손에 쥐어진 바로 그 초콜릿이 이 마을의 명물 “악어의 맛 초콜릿”이다. 자, 이제 당신도 한 입 깨물어보시라. (200*79)
고양이기지개/ 저도 초콜릿을 매우 좋아해서 쓰기 시작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