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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세콤 지구를 지켜라

2012.12.28 23:3112.28

세콤 지구를 지켜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자리를 잡은 그 교육청에는 120명이나 되는 공무원들이 바글거리며 일하고 있었지만, 주말 낮 당직이라면 모를까 밤 당직을 서는 것은 남자 직원들의 몫이었어요. 남자직원 수가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장학사나 장학관, 또는 하늘같으신 과장님, 국장님들이 손바닥만한 당직실에서 새우잠을 주무시게 할 수는 없는 일이죠. 차 떼고 포 떼고 하다 보니, 실제로 당직을 설 수 있는 직원 수는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고로, 당직은 두 달에 세 번, 운이 나쁘면 네 번 정도 돌아왔습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FM대로 할 때의 이야기죠. FM. 필드 매뉴얼. 하지만 세상에는 RTFM이라는 말도 있어요. Read the FXXXing Manual. 얼마나 매뉴얼들을 안 보고, 또 얼마나 매뉴얼대로들 안 하면 이런 말이 다 생겼을까요. 이 당직 일만 해도 그랬습니다. 대체 당직같은 걸 좋아할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당직비라고 조금 나오긴 하는데, 그거야 저녁 먹고 아침 먹고 혹시 시간이 되면 요 앞 장수탕 가서 씻고 사우나좀 하고 오면 땡 치는 거고. 그래도 밤 당직을 서고 난 다음 날이면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긴 하니까, 은행이며 관공서며 돌아다니며 볼 일 같은 것을 이런 당직날 다음 날로 미뤄서 처리하는 영리한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어쩐지 시간 축나고 몸 축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기는 많지요. 반면, 세상에는 언제나 틈새시장을 노리는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또 당직이야?”
 
 대체 언제부터의 도시전설이었을까요. 이 세상에는, 총각 시절 매일매일 이 당직을 서서 나중에 결국 집을 장만한 청년이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도 분명히 떠도는 법입니다. 그게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만약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면 대체 몇 년도에 일어난 일인지, 그런 것 따위는 사실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예, 세상에는 그런 도시전설을 믿고 실천에 옮기는 좋게 말해 우직한 사람들도 있긴 있거든요. 어쩌면 여기 장 주사가 바로 그런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정말로 당직비 모아도 집이라도 사려고?”
 “에이, 요즘 집값 비싸요.”
 
 싱글벙글 웃으며 집값 비싸다고 받아치긴 하지만, 신혼인 직장동료들에게 당직을 자기에게 넘기라고 은근히 권해서는, 한 달에 당직만 열 번을 넘게 서고 있는 이 희한한 청년이 이 도시전설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리는 없거든요. 일단 그의 직장상사들만 해도 돌아가면서 “당직비 모아서 집 장만 할 거냐”고 물어봤으니까요. 뭐, 속셈이야 어떻건 간에 장 주사는 종종 당직을 서고, 당직비를 챙겼고, 다음날은 오후 두 시쯤에 퇴근하게 되어 있었지만 여튼 너무 자주 일찍 나가면 눈치가 보여서 그런지, 아니면 워낙에 성실해서 그런지, 꼬박꼬박 오후 여섯 시를 챙겨서 퇴근하곤 했습니다. 겨울이 되면서부터 장 주사는 거의 매일같이 당직을 대신 서고, 아침은 공익에게 부탁해서 빵이며 우유 같은 것을 사다 먹곤 했습니다. 그러고 살다가 병 나면 너만 손해라고, 몇몇 사람들이 걱정스레 잔소리를 했습니다만 장 주사는 그저 싱글벙글 웃기만 했습니다.
 
 뭐 이유야 무엇이 되었건, 적응력 좋은 장 주사는 이 좁고 이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당직실에서 자기 집인 듯 잠을 잘 잤습니다. 얼마나 잠을 푹 자는지, 가끔은 새벽같이 출근한 국장님이 문을 흔들다 못해 발로 걷어차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는걸요. 아, 물론 보안 카드를 찍고 들어오면 되기야 하죠. 하지만 아무리 숙직자라도 첫 출근자가 오기 전에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특히, 시건장치, 통칭 세콤기에 찍는 그 보안 카드 같은 것은 그냥 장식으로 알고 계실 높으신 분들이 출근하시기 전에는요. 그런데다, 기러기 아빠라 집에 일찍 들어가봤자 외롭고 쓸쓸한 나머지 교육청 근처에서 소주 한 잔 하시다가 술김에 다시 교육청에 기어들어가 당직실에서 청승맞게도 새우잠을 청해 보실까 하던 과장님이 몇 번인가 “장 주사, 눈 좀 떠! 제발 일어나!”하고 달밤에 울부짖으며 교육청 문에 매달려 계시다가 보안 회사 직원에게 발견되기도 했지요. 그런 일이 몇 번 이어지자 과장님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 “잠 주사”였습니다. 얼마나 잠을 잘 자는지 업어가도 모르겠더라는 말씀도 덧붙이시면서요. 일은 멀쩡히 해놓고도 그놈의 잠 때문에 애먼 욕 먹고 혼쭐이 나도, 그런 희한한 별명까지 붙어도, 장 주사는 그냥 잘 웃고, 또 누군가와 당직을 바꾸고 숙직실에서 잠을 잤습니다.
 
 
 
 
 
 
 
 
 관공서라는 것은 자고로 문턱이 낮아야 하는 법입니다. 진짜 문턱도 없는 편이 좋지만, 일단 기본적으로는 교통이 편리한 데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죠. 내부에서야 계단도 낮추고 휠체어가 올라오기 좋게 길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일단 찾아가기 쉬워야 하는 것은 기본이죠. 하지만 사실, 교통이 편리한 데는 땅값이 비싼 법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체 저길 무슨 수로 찾아가라는 건가 싶은 엉뚱한 곳에 관공서가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지요. 이 교육청이 그랬습니다. 등 뒤에는 응봉산이 펼쳐져 있고, 산책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창문을 열면 인천 앞바다의 낙조가 그대로 눈에 들어오면 뭐하겠어요. 교육청이 산꼭대기에 붙어 있는데. 이건, 국내 최대의 차이나타운이 걸어서 10분 거리라 언제 갑자기 야근을 하더라도 대한민국 최고의 짜장면과 짬뽕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따위로는 상쇄도 안 될 문제점이긴 했습니다. 어차피 동사무소도 아니고 동네 교육청에 선생들 말고 누가 기어올라오겠어,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일반 민원인도 적지 않거든요. 학교 선생님이라고 다들 차 한대씩은 끌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요. 천상 여기 올라오려면 인천역에서부터 차이나타운을 거쳐 등산을 하든가, 아니면 저 아래 구청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예전 일본인 가옥들이 오글오글 줄을 지어 선 가운데 열심히 비탈을 기어오르든가, 아니면 동인천에서 내려서 아예 산을 넘어오든가, 뭐 그렇고 그런 선택지밖에는 없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장 주사는 아침에 다시 이 산을 기어오르기 싫어서 매번 당직을 자청해서 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는 말입니다. 아침마다 신문을 배달하는 아저씨도, 온 동네 신문을 다 돌리고 마지막으로 이 교육청 차례가 되면 낡은 오토바이를 한 번 더 바라보며 기합을 넣어야 할 정도입니다. 말 다 한 거죠.
 
 그렇다는 것은요, 보안 회사 직원이라고 해서 딱히 다를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한밤중에 그 산비탈을 걸어서 올라가진 않겠지만.
 
 “또 교육청이야?”
 “그런가본데요. 지난번에도 과장인가 하는 아저씨가 달밤에 체조하고 있더니.”
 “거기 뭐하는 데래.”
 “교육청이라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거기 당직 서는 사람도 없어?”
 “있어요. 잠충이라 그렇지.”
 
 그걸 혼자 서느냐는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김 과장은 움지럭거리며 일어났습니다, 교육청과 이 근처의, 한때는 고급 주택가였던 것 같은 주택단지 쪽을 담당하는 김 과장에게도 이 교육청은 늘 골칫거리였습니다. 어지간한 데는 이미 건물이 다 들어 찬 동네긴 했지만, 땅값이 싼지 어떤지는 몰라도 무슨 생각으로 그런 데다 관청을 지어 놓았까요. 길은 좁지, 가로등도 변변치 않지, 사흘 걸러로 당직을 서는 잠충이는 밖에서 별 짓을 다 해도 일어날 기미도 안 보이지. 그러다 보니 이 교육청은 이미 그에게는, 서둘러서 달려갈 것도 없는 곳으로 분류가 끝난 지 오래였습니다. 지금은 새벽 두 시고, 무슨 은행이나 세무서도 아니고 훔쳐갈 것도 없는 동네 교육청 따위 누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기껏해야 술 취한 과장이겠죠,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그리고 달려가봤는데 무슨 일이 있다손 쳐도, 한낱 보안 회사 직원일 뿐인 김 과장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요. 거긴 다른 데도 아니고 관공서입니다.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함부로 밀고 들어갈 수도 없어요. 그런 작은 관공서의 시건이라는 건, 여튼 안에서 문을 층층이 걸어잠그고 나면 거의 근무자만 고립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창밖으로 누군가 문을 흔드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를 하건 상위 기관에 신고를 하건 원래는 당직자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죠. 설령 안에 있는 사람이 위험에 처한 것 같아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밖에 얼씬거리는 수상쩍은 사람을 쫓아버리고 경찰에 신고하는 게 고작입니다. 어설픈 정의감으로 권한 밖의 일을 해 봤자 덤터기나 쓰기 일쑤거든요. 그런데다 지금은 연말이거든요. 명함에야 과장이라고 떡하니 박혀 있지만, 과장은 무슨 과장. 이런 건 그냥 영업사원들이 들어오자마자 대리라고 박힌 명함 들고 다니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직급 인플레. 그래야 밖에 나가서 일을 해도 얕잡힐 일이 줄어들죠. 그래봤자 남들 아무렇지 않게 우습게 보는 이들은 과장 아니라 상무나 이사라고 박아서 들고 나가도 무시하긴 마찬가지지만. 여튼 새해가 되면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섣불리 엉뚱한 짓을 했다가는 비둘기 목털에도 윤기가 돈다던 새해 새 봄날에 쫄쫄 굶지나 않으면 다행이지요.
 
 그렇다고 아주 안 가 볼 수도 없는 일. 김 과장은 걸치고 있던, 회사 이름이 새겨진 점퍼를 걸쳐 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12월이라고 춥다 춥다 했더니만, 사무실 바로 밖에 걸려 있는 온도계 액정에 영하 12도가 찍혀 있네요. 이래서야 냉장고 속 스크류바가 차라리 더 따뜻한 데 있겠다 싶어 괜히 한숨이 납니다. 사무실 안도 종아리가 시리긴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굳은 다리를 이리저리 축구공 걷어차듯 움직여 보고,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그 비탈길에 그대로 얼어붙지나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늘 뻔하게 일어나는 그저그런 교육청 일 때문에 그 좁고 가파르고 어둑어둑한 길에서 목숨 걸고 운전하고 싶진 않으니까요.
 
 “야, 김 과장.”
 
 안에서 소리가 납니다. 창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더니, 갑자기 밀려드는 한기에 소장이 낯을 있는 대로 찌푸립니다.
 
 “이거 좀 이상하다. 교육청 말이야.”
 “뭐가요?”
 “밖에 시건 고장난 것 같아.”
 “어우, 씨발. 그걸 또 걷어찼나. 주정 작작 좀 하지.”
 “단선 된 것 같다. 장비 가져가라.”
 “예에.”
 
 날이 추워서일까요, 아니면 평소답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을까요. 등에 한기가 돕니다. 그래도 김 과장은 점퍼의 지퍼를 바투 올려 잠근 채, 다시 차창을 내렸습니다. 회사 마크가 찍힌 마티즈가 돌돌거리며 어둠을 가르고 도로 위를 굴러가듯 내달립니다. 차창을 끝까지 올렸어도, 인천의 바닷바람은 제법 매섭습니다. 북항에서 날로 불어드는 바닷바람도 모자라 산자락에서 매섭게 불어오는 새벽바람에 삼십 년 밖에 안 묵은 무릎이 시립니다. 이런 날씨에 등짝에 찬바람 맞아 가며 시건장치 교체까지 해야 한단 말이지. 무슨 달밤에 체조 하는 것도 아니고.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인생 뭐 이래. 맨날 이러고 살아봤자 신나는 일 하나 없이.
 
 
 
 
 
 
 
 사무실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장학사가 열한 시 반에 퇴근을 하자, 장 주사는 교육청 문을 밖에서부터 하나하나 걸어 잠갔습니다. 예전같으면 묵직한 열쇠꾸러미를 들고 다니며 잠가야 했을 텐데, 요즘은 관리자용 보안 카드 하나면 다 열렸다 잠겼다 하니 진짜 세상 좋아졌습니다. 그래도 열쇠뭉치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에요. 정전이라도 되면 그럴 때는 열쇠를 써야 할 테니까요.
 
 바깥 문, 안쪽 문, 복도의 방화문, 쪽문, 뒷문, 다 걸어 잠그고, 장 주사는 수건 하나를 챙겨들고 얼른 샤워실로 내려갔습니다.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지하 샤워실은 추웠지만, 온수를 틀자 딱 온수가 닿는 자리만큼 따뜻해졌습니다. 어차피 직원들 쓰라고 만든 샤워 시설이고, 심야전기를 쓰고 있으니까 미안할 것 까진 없겠지만, 그래도 장 주사는 서둘러 씻었습니다. 이렇게 따끈따끈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났으니, 오늘도 푹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다 그, 몹쓸 놈의 고시원 주인 때문입니다. 지난 봄 그 고시원에 자리를 잡을 때만 해도 동인천 근처에서 이만한 방은 절대 못 구한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만, 고시원 주제에 한 달에 23만원이나 받아먹으면서, 겨울이 되자마자 난방이며 온수를 딱 끊어버리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나요. 몇 번인가 항의도 해 보고, 적어도 아침에 단 30분이라도 온수를 쓰게 해 달라고 이야기도 해 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근처 대학교 학생들이 방학이라고 귀향을 하는 바람에 방이 비었다나요. 방이 비었고 적자가 난 것 까진 뭐 이해할 수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 사는 방이라고 방세를 받으면서 이런 냉골이 뭡니까. 너무 추워서, 참다 못해 너무 추워서 전기요도 아니고 정말 등허리에 댈 작은 전기 찜질팩 하나 산 것 뿐인데, 혹시나 고시원 주인이 트집이라도 잡을까 싶어 택배도 사무실로 받고, 포장은 싹 분리수거를 해서 갖다버리고는 알맹이만 갖다놓았는데, 언제 방에 들어가 보기라도 한 것인지 이 찜질팩을 두고 또 난리인 겁니다. 전열기를 쓰니 안 되겠다며 당장 2만원을 더 내라고 하는데, 세상에, 이 고시원 주인은 무슨 스크루지를 통째로 달여먹었나. 방 안에서 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것도 모자라 합판으로 댄 듯한 그 얄팍한 벽에 성에가 끼는데도 이 난리를 치는 것이, 가만 보니 성에 얼었던 게 녹아 얼룩이라도 지고 나면 도배 비용까지 물리려 들 심사인 게 안 봐도 뻔할 노릇이었지요. 이쯤 되면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감당이 안 되는 겁니다. 그렇게 벌어서 참 부자 되세요. 있는 힘껏 빈정거리고 라면박스 하나 가득 있는 짐을 다 챙겨 고시원을 나오긴 했는데, 막상 나오고 보니 갈 데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공무원이 되긴 했는데 합격해서 발령받고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단 500만원만 있어도 어떻게 손바닥만하게 볕 드는 월셋방을 얻어서 들어가겠는데, 아직 그럴 돈은 없었거든요. 다행히도 장 주사는 학교 다니던 시절, 정말 돈이 없어서 학교 동아리방 구석에 슬리핑 백을 가져다 놓고 잘도 숨어 살았던 전력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뜻한 물 잘 나오고, 때는 끼었을지언정 포근포근한 이불이 있는 숙직실이라니, 그에게는 충분히 호사스러운 방인걸요. 무엇보다 좋은 것은, 여기는 돈을 내고 잠을 자는 데가 아니라 돈을 받으며 잠을 잘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만세입니다.
 
 여튼 사람 한 명 겨우 누울 만한 이 숙직실은, 지금까지 장 주사가 고등학교 졸업한 뒤 가져 본 잠자리 중 군대 다음으로 편한 잠자리였습니다. 이 푹신한 베개에 머리만 대도 소르르 잠이 들어, 어릴 적에도 실감 못했던 꿈나라에 폭 빠져들곤 했지요. 마음놓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일까요. 그것도 이렇게 따끈따끈한 방에서 말입니다. 장 주사는 행복했습니다. 샤워하고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낸 수건을 화장실에서 얼른 빨아다가 숙직실 구석에 널어놓고, 그는 숙직실 안, 이 교육청을 완전히 잠가 놓을 메인 시건장치에 보안카드를 댔습니다. “경비가 개시되었습니다”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베개를 끌어안고 숙직실의 불을 껐습니다.
 
 아까, 장학사가 퇴근하기를 기다리며 만지작거리던 게임 때문일까요, 장 주사는 꿈을 꾸었습니다. 교육청 뒷산 위로 초코파이를 닮은 외계인들의 UFO가 날아오는, 어렸을 때 보던 로봇만화 같은 꿈이었습니다.
 
 그런 꿈을 꾸고 있으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법도 했습니다. 무슨 소리가 들려도 그저 꿈 속에서 들린 소리겠거니 하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자이니 래미안이니 하는 아파트 브랜드들이 프리미엄 급 아파트를 표방하며 불쑥 고개를 들고, 멀쩡한 현대아파트가 아이파크로 이름을 바꾸고 도색을 새로 할 무렵부터였을 겁니다. 소위 잘나가는 아파트란 아파트들이 서로서로 경쟁하듯, 꼭대기 층에다가 형형색색의 조명을 두르기 시작한 것은요. 자기 단지에 자부심을 가진 주민들이 그 조명을 두고 랜드마크 표시니 왕관이니 품격의 상징이니 이상한 말들을 지어다 붙이던 바로 그 무렵부터, 관공서에도 희한한 전광판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뭐, 음주운전을 하지 맙시다, 오늘의 아황산가스 농도는 이만큼입니다, 내일 날씨는 어떻습니다, 그런 쓸모있는 내용을 보여주던 전광판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며 별 시답잖은 공지사항들을, 그러니까 일반 민원인들은 눈여겨 볼 필요도 없는 내용들이고, 그 내용을 신경 써서 볼 만한 사람들은 이미 사내 전자문서로 세부 내용까지 다 확인하고도 남았을 만한 그런 빤한 토픽들을, 비싼 전기 먹어가며 밤새 보여주는 희한한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이 교육청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We센터인지 Wee센터인지가 대체 뭐 하는 덴지, 누가 관심이나 갖겠어요. 교육청이랑 학교 선생님들 말고는 크게 관심갖는 사람도 없는 내용을, 동네 고양이들도 깊이 잠들었을 이 밤중에 밤새도록 전광판을 돌리고 있는 것을 보면, 추우면 추워서, 더우면 더워서 전력수급이 어떻더라고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소리도 다 되어먹지 않은 헛소리로 들릴 수 밖에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신새벽에는 이 앞을 지나가는 사람도 하나 없어서, 이런 걸 어디 국민신문고 같은 데다 올릴 이도 없었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과연 ‘다행’이라고 불러도 좋은 것이라면요.
 
 그리고 그 불빛은, 인간의 눈을 피해 바다 쪽을 우선 돌아보던, 먼 세계에서 온 이방인들의 눈에도 띄었습니다. 산꼭대기라 송전탑 불빛도 없지 않았지만, 그건 단색이거든요. 이 전광판은 무려 빨강 주황 초록, 세 가지 색이 깜빡거리며 서로 어우러지는 물건이었어요. 서로 파장이 다른 세 가지의 빛이 서로 다른 주기로 깜빡이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뭔가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아, 인간 말고 이들, 지구 기준으로 볼 때 외계인이라 불릴 만한 이 지성체들에게는요.
 
 사실 태양계는 아직 공룡이 뛰어다니던 시절부터 이들의 구역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이 살던 행성계에는 불행히도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지성체가 각각 행성 하나씩을 차지하고 살고 있었거든요. 비슷한 수준으로 진화에 성공한 이 두 종이 우주에 관심을 두고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가장 가까운 항성으로 유인우주선을 보낸 뒤, 두 세계 사이에는 아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갈등이 벌어졌을 겁니다. 세 발 달린 로봇을 타고 지구를 공격하는 화성인을 생각할 수 있다면 실제로는 그보다 더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런 전쟁 끝에 결국 두 종족은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할 방법도 찾아내고, 공존할 방법도 찾아내고, 마침내 평화 협정을 맺기에 이릅니다.
 
 그 평화 협정 중에 바로 이런 조항이 있었던 겁니다. 은하 이분지계. 간단히 말하면 은하계에 대해 가상선을 그어 둘로 나누자는 거죠. 두 종족은 각각 한 쪽씩을 선택했고, 자기 구역에서 발견되는 행성이나 자원이나 생물종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갖기로 했습니다. 동등한 지성체의 입장에서 볼 때 한없이 황당하고 무례하며 언제 물어라도 봤느냐고 따져 묻고싶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이미 지구에서도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어요. 15세기에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신대륙에 대한 권리를 두고 티격태격하다가, 교황청의 중재 하에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중간에 선 하나를 그었다고 하죠. 멋대로 태평양의 경계를 정해놓고, 거기서 왼쪽은 내 땅, 오른 쪽은 네 땅 하고 말이에요. 천만다행히도 그로부터 몇십 년도 지나지 않아 유럽 전역에서 이런저런 종교개혁들이 일어나는 바람에 유명무실해지긴 했지만 말이죠. 그런 것을 보면, 지능이라는 게 있다고 하는 생물들이 생각하는 건 여기나 거기나 다 비슷비슷한 것 같기도 해서 한심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결론만 말하자면, 이들의 입장에선 이미 그때부터 이 태양계는 자기들의 소유였던 것입니다. 다만 우주가 너무 넓어서 이제야 와 본 것일 뿐이었죠. 다행히도 이들은 그렇게 호전적인 종족은 아니라서, 그야말로 명나라의 환관 정화가 온 세계를 배 타고 돌아다니며 위엄을 떨쳤듯이, 행성의 환경과 그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조사하고, 혹시 의사소통이 될 만한 지성체가 있다면 어떤 문명을 세웠는지 연구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운이 좋아 몇몇 행성에서는 신으로 추앙받고 제물을 받기도 했지요. 사실 집짐승의 통구이나 귀하게 기르던 가축으로 끓인 국 같은 것에 대해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어떤 종류의 종교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그 실마리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들은 둥글넓적한 우주선들로 이루어진 함대를 이끌고 지구를 두루두루 둘러보며, 주로 바다 생물들에 대해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이 행성에도 우주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 했지만, 사실 그런 초보적인 감시를 피할 정도의 능력은 충분했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이들 중에도 첫 항해에 나선 젊은이들은 있었죠. 어느 문화권이라도 그렇겠지만, 새로운 곳에서의 탐사를 마무리할 무렵에는 이 용감하고 호기심 많은 젊은이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자유로운 시간을 주게 마련입니다. 용인된 범위 안에서 작은 추억과 모험담을 만들고 오라는 배려이지요. 예를 들면, 이 행성의 대표적 지성체의 눈에 띄지 않는 선에서 기념사진을 몇 장 찍거나, 혹은 위험하지 않은 작은 생물들을 채집하거나 하는 것 말입니다. 이들의 지구 탐사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 이 탐사단 역시 첫 항해에 나선 견습생들에게 자유 시간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함대에서 가장 작은 훈련용 우주선을 이끌고 바다 위로 날아오른 이 은하 저 편에서 온 손님들의 눈에 띈 것이 바로, 이 교육청의 전광판이었습니다. 그것도 꼴사납게 커다랗게가 교육청 건물의 한쪽 외벽을 거의 반 넘게 차지한, ‘인천의 교육을 바로 세우겠습니다’와 ‘Wee센터는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가 번갈아 돌아가는 전광판이었지요.
 
 “역시, 두 패턴이 명멸하며 반복되고 있어.”
 
 한 젊은이가 세 번째 촉수 끝을 빙빙 돌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세 가닥의 촉수를 이리저리 꼬며 생각에 잠겨 있던 다른 젊은이는, 산 위의 송전탑에도 주목했습니다.
 
 “역시 여긴 소규모 천문대 같은 게 아닐까.”
 “육안으로는 별이 보이지 않는데, 설마 이런 데다 천문대를 세우진 않겠지.”
 “그럼 대체 저게 뭐겠어.”
 “일단 내려가보면 어때?”
 
 구석에서 몸을 움츠렸다 폈다 하던 다른 젊은이가 한 마디 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돌아보자, 그는 얼른 변명하듯 중얼거렸습니다.
 
 “괜찮지 않을까. 일단 위험해 보이는 건 없잖아. 이 근처에는 이 행성의 대표적 지성체가 돌아다니는 흔적도 없고, 고도가 낮은 쪽에는 폐허에 가까운 건물들 밖에 없어. 우리가 활동하기에는 다소 기온이 높긴 하지만, 이만하면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산소농도가 너무 높은 것 알면서. 그냥은 못 나가.”
 “그럼 저기 빈 공간이 있으니까, 이걸 저기 잠시 세워놓고 기념사진만 찍자. 어때? 잠깐은 괜찮지 않을까?”
 “잠깐이면 괜찮지. 좀 어지럽긴 하겠지만.”
 
 그러니까 이런 일은 늘 그렇지만, 아주 사소한 호기심과 공명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지구보다 중력이 강하고 기압은 높고, 그래서 그 압력을 견딜 만큼 탄력있는 피부가 온몸을 감싸고 있는, 넓적하고 물렁물렁한 원뿔대형 몸에 세 가닥의 촉수가 나 있는 이 친구들은 둥글넙적하고 통통한 적갈색 우주선을 천천히 응봉산 자락으로 몰아갔습니다. 지구인들이 몰고 다니는 네 바퀴 달린 탈 것을 여덟 대 정도 붙여 놓은 것 같은 이 우주선은, 평소에는 그 탈 것으로 가득했을 이 딱딱한 바닥 위로 소리도 없이 내려앉았습니다. 적갈색 우주선의 윗부분이 슬쩍 들려올라가며, 새하얀 벽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반투막같던 벽체의 구석에서부터, 이 먼 세계에서 찾아온 젊은이들이 뽀도독거리며 한 개체씩 밀려나왔습니다. 낮은 중력과 낮은 기압에, 흐느적거리던 그들의 몸은 탄력있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들의 모성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흥미로운 모습이었지요.
 
 그래서 이들이 정말로, 낯선 세계의 작은 천문대 앞에서 얌전히 기념사진만 찍었다면 모두가 평화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구에는 그런 이야기가 있지요.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어떻게 직역할 방법이 없긴 하지만 이들에게도 그 속담이 전해 내려오긴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속담이 전해내려온다는 것은, 그들도 호기심 때문에 사고를 치고, 치고, 또 쳐 왔으며 앞으로도 또 치고 말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반성없이 계속 사고를 치리라는 것 만큼은 지구인들과 마찬가지라는 방증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사진을 찍기 전, 이 젊은이들 중 한 개체가 문 앞에 달려 있는 기계장치를 조사해보고 싶다며 가져온 장비를 회로에 연결해 보려고 했던 것이 화근이었지요. 장비를 회로에 연결하는 과정에서 가벼운 파손이 일어난 것이야, 보안회사에 신호는 갔을지언정 별다른 이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과전류가 흐른 회로 하나가 끊어진 순간, 지구인들에게는 제법 시끄러운, 그러나 이들의 가청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기분이 나빠지는걸.”
 “너 뭐 잘못 건드린 것 아냐?”
 “아냐, 회로검사기를 물려 놓은 것 뿐인걸.”
 
 먼 세계의 젊은이들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다가, 다시 멋진 기념사진을 찍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 문제의 전광판이 잘 보이도록 각도를 맞추고, 다시 느릿느릿 몸을 움직여 사진을 찍기 좋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중력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지만, 여기나 저기나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 했습니다. 추억이 될 만한 사진을 남기는 데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죠.
 
 마티즈 한 대가, 비탈길을 달려 올라와 교육청 앞길에 멈추어 선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김 과장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교육청을 오갔지만, 이렇게 일본인 가옥 쪽에서도 들릴 만큼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리는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급히 엑셀러레이터를 밟아 마티즈를 몰아 올라갔습니다. 술취한 과장이나, 과하게 일찍 출근한 국장이 난리를 부리는 게 아니라면, 진짜로 교육청에 누가 침입하려 드는 것이라면, 이렇게 여유를 부리다가 도착한 것에 대해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으니까요. 애사심 같은 게 있을 턱은 없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했습니다. 혼자 몸이면 모를까, 아직 식은 못 올렸지만 내년 초여름이면 아이도 태어날 텐데, 재계약도 못하고 몇 달을 공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대충 때우면 된다고 생각했던 교육청 쪽 일은, 갑자기 아내와 태어날 아이를 위해 목숨걸고 사수해야 하는 전투의 현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교육청 앞에 차를 세우자마자 구르듯 차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아, 이건 정말 뭐라고 해야 할까요.
 
 거대한 초코파이였습니다.
 
 정말입니다. 회사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지만, 지름이 10미터 쯤 되어 보이는 거대하고 통통한 갈색 초코파이같은 것이 교육청 주차장에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위 아래를 덮은 갈색 뚜껑 아래, 희게 빛나는 막은 마치 마시맬로 덩어리처럼 보였습니다. 김 과장은 눈을 의심하다가, 얼른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대로 찍힐지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사진이라도 찍지 않는 이상 누가 이 황당한 이야기를 믿어 주겠어요. 연장상자를 주차장 안쪽으로 던져놓고,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든 채 김 과장은 도로와 교육청의 앞마당을 가로막은 대문자바라를 타넘었습니다. 일단 저 초코파이는 그렇다고 치고, 당장은 사이렌 소리를 멈추는 게 급했습니다.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골치아파지니까요. 그나저나, 사이렌 소리 자체야 안에서도 끌 수 있을 텐데, 이런 요란한 소리가 나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고는 저 안에서 당직을 선답시고 퍼질러 자고 있는 놈팽이는 대체 뭐 하는 놈일까요. 그는 한숨을 푹 쉬며 바닥으로 던져놓은 연장상자를 챙겨들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
 
 ‘꾸에’ 하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것은 바로 그 때였습니다. 예, 뭐라고 해석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의 귀에는 ‘꾸에’로 들렸습니다. 아무리 봐도 포도맛 딸기맛 오렌지맛 제리뽀같이 생긴 큼직하고 물컹물컹해 보이는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더듬이 같은 것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예, 그런 게 하나도 아니고, 여섯 개나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김 과장은 입 안의 무른 살을 어금니로 깨물어 보았습니다. 아픈 정도가 아니라 피 맛까지 희미하게 느껴졌습니다. 세상에, 저게 다 뭐야. 김 과장의 머릿속에 순간 ‘간첩신고는 112’라는 구호가 떠올랐습니다. 아니, 간첩은 113이었던가요? 112건 113이건, 신고하는 게 급했습니다. 예, 그는 보안업체 직원이지 경찰이 아니니까요. 당연한 겁니다. 보안업체 직원이 아니라 귀신잡는 해병대라도, 사람만한 제리뽀가 여섯개나 뿌잉뿌잉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 데야 장사 없는 겁니다.
 
 “여, 여보세요! 경찰서죠?!”
 
 그러나 세상에는 불행히도 상식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이라서요.
 
 “여기 교육청인데요, 지금 앞마당에 이상한 게 있어요!”
 “좀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선생님.”
 “그게...... 그러니까 커다란 초코파이가......”
 
 그렇지 않아도 한밤중에, 인력도 부족한 경찰이 이런 황당한 신고를 진지하게 받아줄 리가 없지요. 김 과장도 그건 압니다. 알지만 어쩌겠어요. 이 상황에서 비빌 언덕이라고는 없는데, 모처럼 세금 낸 보람이라도 있어야 마땅한 것을요. 적당히 말을 돌리며 전화를 끊으려는 경찰에게, 그는 순찰 도는 길에라도 잠깐 와 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경찰은 알았다고 하고, 정말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순찰차가 오기는 와 줄까요? 그가 알기로 별 일 없어도 이 교육청 바로 근처까지 순찰을 돌기는 했으니, 어쩌면 잠깐 들여다보고 갈 지는 모르겠습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지요. 경찰이 오는지 마는지야 하늘에 맡기고, 그는 그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뭐긴 뭐겠어요. 시건장치를 고치는 일이죠. 세상에, 무슨 짓을 해 놓았는지. 회로 끝이 다 녹아서 뭉개져 버렸어요. 저 괴물, 아니, 외계인들이 한 짓인가 봅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못 보던 집게전선 같은 게 물려 있었습니다. 뭔진 모르지만 일단 집게전선을 떼어내고, 그는 더이상 사이렌 소리가 나지 않게 조치부터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외계인들이 지구에 왔다가 감기에 걸려 죽기도 하고,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설마 저 거대 제리뽀랑 잠깐 마주쳤다고 병에 걸려 죽는 것은 아니겠죠? 그때 김 과장의 눈에, 교육청의 유리문에 비친 저 제리뽀 외계인들이 비쳤습니다. 움직임이 꽤 느리긴 했지만, 여섯 중 다섯은 초코파이를 향해 기어가는 반면, 그중 한 마리는 굳이 이쪽을 향해 더듬이를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그러셨던가요? 칼을 뽑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고? 아니었나? 그,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고 한 건 또 누구였죠? 김 과장은 혼란스러웠습니다. 혼란스러웠지만, 이 자리에서 도망칠 수도 없었습니다. 아니, 글쎄. 시건장치 고장을 손 봤으면 여기 당직자에게 사인은 받아 가야 하잖아요. 정말 먹고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이 신새벽에 보안 문제로 여기 왔다가 수리까지 해야 했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외계인? 설마, 저 뿌잉뿌잉거리며 돌아다니는 놈들에게 닿으면 무슨 게임 속 슬라임에게 잡아먹히듯이 그냥 녹아서 물보다 빠르게 흡수되는 건 아닐까요? 그 잠꾸러기 당직자도 벌써 잡아먹힌 건 아니겠죠? 그는 떨리는 손으로 몽키스패너를 꺼내 들었습니다. 장갑을 낀 손바닥에 금세 땀이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저 거대 제리뽀와 초코파이를 본 이후 계속 혼란스럽기만 하던 머릿속에, 겨우 선명한 문장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난 한 놈만 패.
 
 그렇습니다. 원래 싸움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한 놈이라도 확실히 팰 수 있으면 승산은 있는 거죠. 게다가 상대가 저런 느려터진 외계인이라면요. 먼저 선빵을 날려버리는 게 유리하긴 하겠지만, 괜히 성질을 긁었다가 떼로 덤벼들면 그것도 낭패입니다. 김 과장은 곁눈으로 초코파이 쪽을 쳐다보았습니다. 먼저 저 쪽으로 간 다섯 마리는 하나씩, 마시맬로를 뚫고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게 꿈이라면 내 머리통 속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 날이 밝으면, 그 쁘띠첼인가 하는 거, 아무리 주먹 반 만하다고는 하지만 하나에 이천 원 가까이 되는 그 비싼 제리뽀를 사다가 우적우적 퍼먹어 줄 테다. 김 과장은 스패너를 어깨 위로 들어올렸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제리뽀 외계인이 땅을 향해 더듬이를 뻗었습니다. 그 더듬이가 김 과장의 발목을 스치려는 찰나, 김 과장은 척 봐도 탱글탱글한 제리뽀를 향해 스패너를 휘둘렀습니다.
 
 “너, 너희 별로 돌아가아아아아아아!!!!!!!!!”
 
 그렇습니다. 놈의 목적이 무엇이 되었건, 그는 이 교육청을, 적어도 이 시건장치를 사수해야 했습니다. 김 과장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았거든요. 지켜야 할 것은 많고, 가진 것은 너무나 없었던 그에게는, 그야말로 몸을 던져 제리뽀를 막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외계인의 피부는 철갑을 두른 듯 단단한데다 마치 트램폴린처럼 탄력이 있어서, 스패너를 휘두르며 온몸으로 덤벼든 김 과장은 그대로 되튕겨 교육청의 유리문에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맙소사, 사람은 괜찮은데, 손에서 놓친 스패너가 그만 유리창을 깨 버릴 줄이야. 교육청을 지키려다가 그만 교육청에 대물피해를 입히고 만 김 과장은 망연자실하였습니다. 이거 통유리인데. 두께도 대충 8밀리쯤 하는 건데. 이게 유리값이 얼마나 들까 하는 생각이 눈앞을 스쳤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바로 발 앞까지 다가온 제리뽀가, 그에게 더듬이를 내밀었습니다. 밧줄같은 더듬이가 김 과장의 어깨를 휘감아 당겼습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옮기려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김 과장은 제리뽀 외계인을 안듯이 하며 일어났습니다. 어쩌면 일으켜주려고 손을 내민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공격을 하려고 덤빈 것은 아닐 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계인은 그의 어깨를 휘감은 더듬이를 풀고,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더듬이로 주워들었습니다. 멀리 경광등의 불빛이 보였습니다. 긴장이 풀린 것일까요, 무릎 아래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김 과장은 차가운 바닥에 손을 짚으며 그대로 다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꿈이라고요?”
 
 그날 새벽,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교육청의 정문 유리가 파손되었습니다. 누군가 교육청에 침입하려 한 흔적들이 발견되었지만, 교육청 인근의 CCTV에 장애가 발생하여 결정적인 기록을 찾긴 어려울 것 같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말도 안 되지...... 아니,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자요? 사이렌에 얼마나 크게 울었는지 알기나 해요?”
 “꿈에 나오는 소리인 줄 알았죠. 말했잖아요. 초코파이 별의 제리뽀 외계인이 날아오는 꿈을 한참 꾸고 있었다고. 진짜 맛있어 보였는데.”
 “......팔자도 좋네.”
 
 의문의 침입자로부터 교육청을 지켜낸 사람은 바로 이, 보안업체 직원 김 과장이었습니다. 스패너에 맞아 깨진 교육청의 정문을 등으로 가로막듯 하여 버티고 앉은 채, 그는 반쯤 기절해 있었습니다. 그가 출동하기 전 회사로 보안장치에 이상 신호가 갔던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교육청에 침입하려던 자들을 저지하려고 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고객을 지키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맞서 싸운 보안업체 직원이라니, 어디로 보아도 신문의 미담란에 실리면 딱 좋을 만큼 영웅적인 이야기이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처리할 수는 없었습니다. 유리 안에 떨어져 있던 김 과장의 스패너가 문제였거든요. 그 와중에도 쿨쿨 잘 자고 있던 장 주사의 창창한 앞날도 문제였고요. 경찰이 둘 나타나긴 했지만, 그 두 사람은 자기들 눈 앞에서 날아오른 거대 초코파이, 아니, UFO에 대해 뭔가 잘못 본 게 틀림없다고 수군거리기만 했습니다. 차마,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그랬는지, 김 과장에게 혹시 뭔가 본 게 없느냐고 물어보지는 못하고요. 이런 상황이니,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시교육청과 국장과 교육장에게 보고를 하고, 아침이면 이 일에 대해 보고서를 써야 할 텐데 어떻게 말을 맞춰야 하나 고민하며 커피를 내 온 장 주사에게, 초코파이니 제리뽀니 우물거리는 것 밖에요.
 
 “난 바로 그 제리뽀와 싸우다가 죽을 뻔 했다고요.”
 
 김 과장이 찍은 사진 속에는, 뭔가 희미한 빛 덩어리만 찍혀 있었습니다. 애초에 저 전광판 말고는 광원이라 부를 것도 마땅치 않은 이 곳에서 사진이 제대로 나오기를 기대한 게 욕심이었겠죠. 그래도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어둠 속에 윤곽만 선명하던, 그 거대한 초코파이 형태라니.
 
 “제리뽀 같은 것에 깔려 죽었으면 가문의 망신이야. 아, 좋아요. 그건 그냥 그쪽의 꿈이라고 치고, 내가 정말 도둑이랑 싸웠다고 치고, 싸워서 이겼으면 뭐 해요. 댁이 신고를 했고, 경찰이 출동했고, 나는 뒤늦게 와서 수리를 했고. 일은 그렇게 처리되게 생겼는데. 내가 허구헌 날 술취한 과장 아니면 잠퉁이 당직때문에 번거롭기만 한 교육청 같은 걸 지켜서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왜요, 지구를 지키셨잖아요.”
 
 그 말에, 김 과장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폈습니다. 펴다가 말고, 그는 장 주사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습니다.
 
 “어이쿠야, 내 이야길 믿어요?”
 “그럼, 기사님은 제가 초코파이 별의 외계인이 나오는 꿈을 꾼 건 믿어요?”
 “거 참.”
 
 김 과장은 웃었습니다.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아마 학교 다닐때는 쌤쌤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 피장파장이라고도 하던가요. 여전히 머리는 복잡했지만, 이젠 어디부터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도 헛갈리지만, 어쩌면 정말로, 유리를 깨고 도망치는 도둑과 싸우다가 기절해서는 희한한 꿈을 꾸고 헛소리를 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김 과장은 문득 생각난 듯, 아까 손을 대었던 정문의 시건장치를 손가락으로 만져보았습니다. 녹아 뭉개진 회로를 손끝으로 건드리며, 그는 아까의 그 모든 일들은 아마 꿈이 아니었을 거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이 일이 다 수습되고, 이 시건장치를 바꿔 달고 나면 가능하면 이 회로 조각을 갖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결코 헛소리가 아니라는 증거로 말이지요.
 
 “근데, 대체 왜 하필 초코파이였어요?”
 “예?”
 “그 꿈 말이에요.”
 “아, 제가 좀...... 군 생활이 싫지 않았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게, 제가 그동안 멀쩡한 방에서 살아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그나마 군대에서 좀 따뜻하게 살았나.”
 “......”
 “여기 당직실이 좀 따뜻하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런데서 포근하게 자다 보면 군대 꿈을 꿔요. 병장 때 깔깔이 입고 내무실에서 뒹굴던 거, 군대에서 먹었던 초코파이 같은 거.”
 “그거, 좋은 꿈이에요, 나쁜 꿈이에요.”
 “......글쎄요.”
 
 장 주사는 그저 머리만 긁적였습니다. 거 참, 팔자 좋은 놈팽이라고 욕을 바가지로 퍼부어줄까 했는데, 군대 내무반이나 이런 데 당직실이 따뜻하다고 좋다고 늘어져 자는 것을 보니 그럴 마음도 차마 들지 않았어요. 그런 것을 보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다하다 못해 외계인에게 스패너 하나 달랑 들고 덤빈 그나, 이 잠꾸러기나, 쌤쌤이네요, 쌤쌤. 김 과장은 장 주사의 팔을 툭툭 쳤습니다. 장 주사는 안경 너머로 눈을 깜빡깜빡 거리다가, 손가락으로 차이나타운 쪽을 가리켰습니다.
 
 “저기, 이따가 저녁때...... 탕수육 드실래요? 제가 쏠께요.”
 “난 삼겹살이 더 좋은데.”
 “아, 예. 저도요.”
 “그나저나, 정말 그거, 내 얘기, 믿는 거예요?”
 “어, 어쩌면요. 아마도요. 전 있으면 좋겠어요. 예,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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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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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망재 12.12.29 06:34 댓글 수정 삭제
    생각해봤는데 이게 아마 태어나서 처음 써 본 "촉수물"인 것 같아요.
분류 제목 날짜
갈원경 신세계로부터 (본문 삭제) 2013.03.01
정도경 나무 2013.03.01
이로빈 호접만장蝴蝶萬長 (본문 삭제)2 2013.01.31
해망재 섬마을 선생님1 2013.01.31
가는달 2013.01.31
곽재식 초능력2 2013.01.31
정도경 Melly Baby (본문 삭제) 2013.01.31
정도경 날개4 20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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