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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레플리카

2012.12.28 23:3012.28

레플리카
 


 


 



 내가 그녀를 죽였다. 시간은 새벽 네 시 오십 분이었다. 그녀는 조깅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나무 뒤에 숨어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가 지나가는 순간을 붙잡아 나는 그녀를 불렀다.
 “어, 네가 여기 웬일이야?”
 그녀가 물었다. 운동을 방해당해서 성가시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달리기를 좋아하고 오랫동안 해왔던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걸음을 완전히 멈추지 않고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물론 무슨 일이 있다. 무슨 일이 있는지 그녀가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무슨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들고 있던 스카프로 그녀의 목을 졸랐다.
 스카프가 목을 조이는 순간 그녀는 내 이름을 소리쳐 말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그녀는 대체 어찌된 노릇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이것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리벙벙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축복받은 순진함이 가증스러워서 목을 조른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죽일 때 썼던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그녀가 떨어뜨린 전화기를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
 어머니는 혼자서 나와 그녀를 임신하여 출산했다. 정확히 순서대로 쓴다면 ‘그녀와 나’를 출산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어머니는 만으로 마흔 두 살이었고, 그녀와 나를 세상에 내놓은 것이 어머니 인생에서 최대의 성취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우리’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다. 그녀와 나, 혹은 어머니와 나는 한 번도 ‘우리’였던 적이 없다.
 
 ***
 쥐의 피부에서 만들어낸 줄기세포를 이용해 난자를 만들어서 체외수정을 통해 수정란으로 만들어 암컷 쥐에게 이식시켰더니 정상적으로 새끼를 출산했다. 이렇게 태어난 쥐들도 성장하여 정상적인 생식능력을 보여주었다. 체세포를 이용해서 생식세포를, 나아가 생명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렇게 하여 어머니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이미 입증되었다.
 인공적으로 정자를 만들어내는 실험은 이미 그보다 몇 년 전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한 사람의 체세포에서 난자와 정자를 각각 만들어 수정시키면 정상적으로 수정이 이루어질까? 수정이 되었다고 가정할 때, 그 수정란을 착상시키면 임신이 될까? 임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인간도 자가생식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게 해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는 생물학적으로 체세포를 제공한 사람의 자녀인가 아니면 복제인간인가?
 일각의 풍자적인 견해와는 달리 쥐와 인간은 사실 세포의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시켜 성공한다 해도 그 뒤로 여러 가지 윤리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뒤따르게 된다. 불임 치료가 목적이라면 시험관 아기나 대리모 고용 등 더 믿을 수 있고 합법적인 방법들이 이미 많이 있었다. 그래서 2012년 10월 4일 교토대학교 연구팀에서 처음 성공시킨 이 실험은 그 뒤로 후속 실험과 기술 발전에 난항을 거듭하다가 세간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인간을 복제하는 행위가 합법화된 것은 그보다 약 50년쯤 뒤였다. 그러나 기술은 그 행위가 합법화되기 오래 전부터 발달했고 그리하여 인간 복제는 암암리에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주된 목적은 여러 의료팀이 공식적으로 주장했던 불임 치료, 즉 후대를 생산하여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생물학적, 사회적, 정서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식이나 대체용으로 여분의 장기를 확보해두기 위한 것이라는 측면이 강했다. 대리모 고용과 인공수정 등의 불임 치료 기술이 이미 합법이라는 사실을 이용하여 일부 부유층과 최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이나 혹은 자녀의 복제 인간을 만들었다. 방법은 이론적으로 간단하며 이미 수십년 전부터 검증되어 있었다. 대리모의 자궁에 자신과 배우자의 수정란을 착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리모의 자궁과 함께 난자까지 빌려 핵을 없애고 그 자리에 자신이나 자녀의 체세포를 넣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산된 복제인간은 체세포를 제공한 본체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형질을 지닌다.
 물론 이것은 “이론적으로” 간단한 방법이다. 복제 배아가 실제로 자궁에 무사히 착상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유산되거나 출산 후 즉사하는 경우가 많고 기형으로 태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든 난관을 이기고 복제 인간이 무사히 출생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또 그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인간 복제 기술은 세간에서 생각하듯이 복사기에 다 자란 성인을 집어넣으면 그와 똑같이 생긴 성체를 척척 뽑아낼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미래에는 그런 기술도 생겨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복제된 인간도 보통 사람이 태어나는 경로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수정란 상태에서 시작하여 여성의 자궁 혹은 그와 유사한 환경에 자리를 잡고 분열하고 발육한 뒤에 때가 되면 출생하여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난치병에 걸린 사람이 지금 당장 자기 자신을 복제해서 장기나 체액 등을 뽑아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고 복제 아기를 보통 아기처럼 양육한다고 해도 또 그에 따른 특수한 상황들이 발생한다. 우선 아기가 외모상으로 가족 중 한 사람과 완벽하게 똑같이 생겼다는 점은 복제된 아이가 자라날수록 숨기기가 힘들어진다. 성인이 자기 자신을 복제했을 때는 연령과 발달과정의 차이로 인해 얼굴이 꽤 달라지기 때문에 “어머, 아기가 아빠/엄마를 꼭 빼닮았네요?” 등속의 일반적인 찬탄을 자주 듣는 것 이상으로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어린 자녀를 복제해서 본체와 복제의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경우, 자녀들이 자라날수록 주위 사람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의심하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특히 먼저 태어난 자녀가 난치병을 앓고 있다면 주변에서는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더라도 모두 다 짐작하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발전된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는 가운데 남녀 모두 결혼과 출산에 처음 임하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또한 환경오염과 특히 방사능 오염이 점점 심해지면서 희귀병이나 난치병을 앓는 상태로 태어나는 아기의 숫자 또한 점점 늘어났다. 그래서 만성적인 경제불황과 자원고갈과 계층간 양극화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갖춘 사람이라면 자신과 자녀를 위한 의료보험 성격으로 복제 인간을 고려하는 경우도 점점 늘었다.
 복제인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소설 같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즉 장기제공만을 목적으로 복제되어 출생한 둘째가 어린 시절 내내 이런저런 고통스러운 의료시술에 시달리며 자라나다가 마침내 본체인 형에게 심장을 이식해주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정부를 상대로 부모의 친권을 박탈해 달라는 소송을 걸었다. 21세기 초에 이런 내용의 소설이 출간되어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그 집안 자체가 상당한 재력을 보유한 최상위 부유층에 속하는데다 소송을 건 둘째가 아직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더욱 세간의 주목을 끌었고, 그리하여 복제인간인 둘째와 그 후견인이 되겠다고 나선 먼 친척과 그의 변호사는 논란의 중심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여론은 처음부터 둘째에게 동정적이었고, 소송도 갈수록 둘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판결이 확정되기 직전에 둘째가 법원으로 향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편리하게도 뇌사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이 사건은 복제인간에 대한 윤리 논쟁의 정점에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부모는 뇌사 상태의 둘째에 대하여 부모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했고, 그래서 형은 바라던 대로 심장 이식을 받았다. 살인이라는 의심은 팽배했고, 모든 정황이 앞서 언급했던 그 소설이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의 핵심 내용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에 그 의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그러나 수사는 이상할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었으며, 가족은 그 사이에 짐을 싸서 외국으로 이민을 가 버렸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경찰은 흐지부지 손을 털었다. 그리하여 역사상 최초의 복제인간 살인 사건이 될 수도 있었을 이 사건의 진상은 영원히 미궁 속에 묻혔다.
 이 사건은 장기나 체액을 목적으로 복제 인간을 만들어보려는 모든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의미에서일종의 경고가 되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복제 인간의 생산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유산이나 출산 후 즉사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로 장애가 있는 상태로 태어나는 경우도 많다.
 일부 부유층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복제인간이건 아니건, 정상적이고 건강한 태아에게 인위적으로 장애를 유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출산 과정에서 산소 농도를 조금만 조절해주면 몸이 성장해도 이성은 완전히 성장하지 않아 다루기 쉬운 수준으로 지능을 낮출 수 있다. 이미 20세기 초에 어느 소설가가 미래 사회를 예견한 과학 소설에서 소개했던 방법이다. 그 소설가의 상상에 따르면 미래 사회에서 인간은 모두 인공적으로 생산되는데, 출생 전부터 계급이 결정되어 하위 계급일수록 태아 상태에서 산소공급이 제한된다. 그 결과 상위 계급일수록 높은 지능에 완벽한 신체를 갖추고 태어나는 반면 하위계급은 단순노동 등에 종사하기에 알맞은 낮은 지능과 가벼운 신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기술을 소설이 아닌 현실에 적용한다면 언제나 의료행위의 비윤리성과 인권침해 논란의 소지가 있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양심선언을 했던 의사가 거꾸로 면허를 박탈당하고 피해보상까지 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복제를 의뢰했던 사람은 64세의 재산가였는데 여성이며 평생 결혼한 적이 없었다. 이 여성은 자신의 건강상태가 대체로 양호하며 의료비를 충분히 스스로 댈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데다 복제한 아기를 지금부터 키워도 신체 부분을 안전하게 이식할 수 있는 연령에 도달하려면 최소한 10-20년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당장 장기나 체액을 추출하려는 목적에서 복제했다는 근거가 없으니 불법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보다는 그저 생물학적인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었을 뿐인데 이미 나이들어 정상적인 방법으로 불가능하고 도움을 청할 배우자나 가족도 없고 해서 복제기술에 의존했다는 것이었다. 태어난 복제 아기가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처음에는 가슴아픈 모정을 호소했고 그 다음에 법정에서는 의료과실을 주장했으나 한참 뒤에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복제된 인간이 원본보다 뛰어나서는 안 되잖아요? 그랬다간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유전자 조작 없이 일반적인 유성생식의 경로를 거쳐서 태어난 대다수의 불완전한 인간들은 복제를 시도할 만한 경제력이 있건 없건, 그럴 의향 자체가 있건 없건 간에 어쩐지 이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마침내 인간 복제가 합법화되었을 때, 복제소송으로 유명해진 이 여성의 한 마디는 <복제 인간의 위상과 복지에 관한 법안>의 제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복제 인간은 그 본체보다 열등하다는 것이 법안의 전제였으며, 그러므로 본체는 자신의 복제를 죽을 때까지 돌보아줄 의무가 있고 복제는 그 본체의 모든 법적, 현실적 결정에 따를 의무가 있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였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 그러나 “복제”는 (수식어나 부연 설명이 붙지 않는) “인간”이 아니었다. “복제는 본체와 명확히 구분하여 등록하며 등록시 본체와 복제의 동일한 유전자 정보를 반드시 첨부해야 한다. 또한 복제등록시 지능지수와 장애 종류 및 증상을 상세히 기재한다.”라고 법은 못박았다.
 “복제”를 등록할 법적인 의무는 그 본체인 “인간”에게 있었다. 양쪽의 구분이 어려울 경우에는 시술한 의료기관에서 최종결정에 대한 권위를 행사했다. 다만 복제와 본체의 생물학적 연령이 20년 혹은 그 이상 차이날 경우 복제는 본체인 “인간”의 결정에 따라 “복제”가 아닌 “자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 경우 복제등록부가 아닌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되었으며 유전자 정보를 포함한 기타 생체정보도 따로 제출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복제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하고도 예외적인 경우였다.
 인간 복제를 시도할 만한 경제력을 갖춘 경우, 복제를 어디까지나 소유물로서 다루기 쉬운 상태로 보유해두고 앞날을 대비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고 싶어서 자신의 복제에게 인위적인 장애나 제한을 가하지 않고 건강한 상태 그대로 출생시켜 자식으로 양육하고자 하는 경우도 생각 외로 많이 있었다. 한편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녀를 복제한 경우, 즉 “복제”와 “인간”이 모두 미성년자인 경우 그 둘을 구분하여 등록할 책임은 부모에게 있었다. 이 경우 둘 중 나이가 많은 쪽이 성년, 즉 만 18세에 이르기 전에 구분하여 등록을 마쳐야 했다.
 그녀와 나의 17세 생일에 어머니는 복제등록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느 쪽이 “인간”이며 어느 쪽이 “복제”로 결정될 것인지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기획의 핵심이었다. 결정적인 부분을 비밀에 부치면 앞으로 1년간 세상의 관심이 다시 어머니와 그녀와 나에게 쏠릴 것이라고 어머니는 기대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죽였다.
 그리고 15년 후에 그가 나를 찾아왔다.
 
 ***
 그녀와 나를 낳기 전에 어머니는 직업적인 대리모였다. 대리모 중에서도 자궁과 난자를 함께 제공하는 전문적인 복제인간 대리모였다. 뭔가 과학적인 이유가 있어서 “복제인간 대리모”라는 직업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난자까지 같이 빌려주는 쪽이 자궁만 빌려주는 쪽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그저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다만 어머니는 난자의 껍질만 제공했을 뿐 핵은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녀와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생물학적 자녀가 없었다는 뜻이다. 어머니가 그녀와 나를 임신하겠다고 신청했을 때 이 사실은 어머니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어머니는 이 사실을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니 “자궁은 빌려줘도 유전자까지 팔지는 않겠다는 자부심” 등속의 미사여구로 포장했다. 그러나 사실은 혹시 모를 친권이나 양육권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어머니는 녹취당할 위험이 없는 자리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대리모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알고 지내던 다른 대리모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이를 도로 대리모에게 떠맡겼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그 대리모는 자궁과 함께 난자도 제공했고, 그 사실을 모르고 아이가 생물학적으로는 자기 자식인 줄 알았던 아이 엄마가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데려갔다가 사실을 알게 되자 충격을 받아 이혼 소송을 제기했으며, 얼떨결에 혼자 양육을 떠맡게 된 아이 아빠가 그 대리모에게 “생물학적인 어머니로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벌이면서 아이를 갖다 버리고 사라졌다”는 것이 어머니의 버전이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어머니는 경멸과 혐오로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자주 보아서 익숙해진 표정이었다.
 나는 그 대리모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그녀와 내가 아직 어렸을 때, 어머니가 유명해진 뒤에 한 번 찾아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리모는 문제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머니의 표정이 시사했던 바와는 달리 그 대리모와 남자아이는 사이가 무척 좋아 보였다. 어머니는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인사하고 형식적인 대화를 잠깐 나누면서 “저 애 아직도 키우냐”고 물었다. 그 대리모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끌어당겨 안아 올리고는 “힘들게 데려왔으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야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축하한다”고 덧붙였다.
 그 장면, 특히 아주머니가 아들을 안아들면서 온 얼굴에 떠올리던 함박웃음은 내 뇌리에 오랫동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어머니의 꿈은 본래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안이 어려워서 연예계 진출을 뒷바라지해줄 돈이 없었다.
 “원래 너희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무시무시한 부자였어. 그런데 외할아버지가 사기를 당해서 나쁜 사람들한테 돈을 홀랑 날리고 쫓기다가 행방불명이 되니까 집안이 홀랑 망해버렸지.”
 어머니의 설명은 이러했다. 때때로 어렴풋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화려했던 생활에 대해 꿈꾸듯이 회상하기도 했다. 나는 어머니의 회상을 언제나 다 믿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일찍 독립해서” 십대 시절부터 혼자 식당 등지에서 일해서 돈을 모아 연기 수업을 받으러 다녔다. 한 번은 그런 학원에서 기획사와 연결해줘서 오디션까지 본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아주 작은 단역이었고 그나마 실제 무대에 서기 전에 다른 “돈 많은 집 딸”에게 빼앗겨 버렸다. 어머니는 그 당시 정말로 배우가 될 줄로 믿고 일하던 식당도 그만둬 버렸기 때문에 배역을 뺏기고 나니 먹고 살 길이 없었다. 그래서 혈장을 기증하면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병원을 찾았다가 대리모가 되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너무 좋더라. 그 부부가 자기들 애를 낳아준다니까 집도 구해주고 돈도 주고 요가클럽 회원증도 끊어주고, 달라는 대로 별 거 다 해다 바치더라고.”
 어머니는 스물 한 살이었다. 아직 젊고 사회경험이 적었기 때문에 그 때 받은 돈으로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므로 아이를 낳아서 넘겨주고 나면 생계 걱정 없이 몸매도 가꾸고 옷이나 화장품도 좋은 걸로 마련해서 연예계에 진출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물론 세상 일이라는 것이 어머니의 생각대로 쉽게 풀려주지는 않았다. 임신과 출산에 일 년이 지나갔고 몸이 완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도 시간이 더 걸렸으며 그 동안 어머니의 기준에 딱 맞는 배역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고 어머니는 돈이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다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20대 초반의 귀중한 몇 년을 별 성과 없이 보내고 나니 돈이 떨어졌다. 정말 다급한 처지에 몰려서 어머니는 다시 대리모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씩 기간을 두며 서너 번 정도 타인의 복제를 대신 낳아주고 나니 연예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기에는 나이도 너무 많아진데다 일정 주기를 두고 불규칙한 생활을 이어나갔기 때문에 흩어진 몸매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서른을 넘기자 어머니는 대리모 자리에서도 슬슬 더 어린 여자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서른 네 살에 마지막으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는데, 복제를 의뢰한 여자가 서른 네 살이었고 어째서인지 자신과 나이가 같은 대리모를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낳아주고 서른 다섯이 되어버린 어머니는 그 뒤로 일다운 일은 전혀 찾지 못하고 6-7년 긴 세월을 고생했다. 아는 인맥을 전부 동원해서 돈 벌 만한 실마리를 알아보다가 어머니가 결정적인 제의를 받은 것은 의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전에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던 사람을 통해서였다. 영업사원이 말하기를 제약회사는 아니고 의료분야 연구소에서 최첨단 극비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실험 참가자를 구한다는 것이었다. 보상금 액수가 무척 큰데다 실험 기간이 길고 그 기간 내내 따로 교통비와 추가 검진비도 지급한다는 말에 어머니는 앞뒤없이 덜컥 신청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그 실험이라는 것이 연구소 측에서 붙인 이름으로는 “불임치료 시술”이었다. 자기 체세포에서 정자와 난자를 만들어 임신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자가생식이었다.
 사실 어머니는 실험 내용을 전부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별로 이해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어머니가 알아들은 내용은 이 연구소에서도 약간 요상한 방식이긴 하지만 결국은 대리모를 구하고 있다는 정도였다. 다만 임신이 되건 안 되건, 아이를 낳건 못 낳건, 일정 조건을 통과해서 실험에 참여하기만 하면 무조건 큰돈을 주겠다는 엄청나게 군침 도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연구소에서 들이미는 수많은 각서와 합의서에 전부 가볍게 동의했다. 실험 내용자체가 어차피 얼토당토 않은 시도라고 생각했고, 어머니는 사십이 넘었기 때문에 쉽게 임신이 될 리가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어머니를 꼬드겼던 영업사원도 잘 했다고 부추겼다. 참가하기만 해도 돈은 받을 수 있고, 착상은 아예 안 되거나 되더라도 곧 유산이 될텐데 그렇게 되면 위로금과 병원비 조로 얼마쯤 더 받아낼 수도 있을 거라고 영업사원은 흐뭇해 했다. 실제로 어머니는 실험 참가자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것도 한두 살 많은 게 아니고 나이로 따져서 어머니 바로 아래인 사람보다도 여섯 살이 더 많았다. 연구소 측에서 애초에 어머니를 왜 받아줬는지는 어머니도 모르고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는 –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은 유산되지 않았다. 다른 신청자들이 모두 임신에 실패하거나 도중에 유산하여 연구소를 떠난 뒤에도 혼자 정상적으로 임신이 진행되어 3개월을 넘기고 4개월째에 접어들자 어머니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 배고 낳았던 아이들은 모두 남의 자식들이었다. 그러므로 돈을 받고 아이를 낳아서 건네주기만 하면 끝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뱃속의 쌍둥이는 자기 자식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복제였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자신이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머니는 그 부분이 몹시 찜찜했다. 딱 집어 왜 찜찜한지 자기도 알 수 없어서 더 찜찜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처음 실험에 참가하겠다고 신청했을 때 연구소에서 받았던 수많은 서류 더미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어머니는 더욱 불안해졌다.
 연구소에서는 어머니를 달랬다. 아이를 원치 않는다면 연구소에서 맡아 길러주겠다고 했다. 뱃속의 아이들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영구히 포기하며 앞으로 어떤 법적 권리도 주장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면 돈을 더 많이 주겠다고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번에도 동의하려고 했다.
 그 때 펄쩍 뛴 사람이 바로 문제의 영업사원이었다. 자기 체세포에서 정자를 만들고 난자를 만들어서 그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켜서 그 수정란을 자기 자궁에 착상시켜서 임신해서 아이를 낳는 데 성공한 경우는 인류 역사상 어머니가 처음이었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원했던 스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 번 반짝 뜨고 마는 그런 종류의 스타가 아니라 인류 역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기는 대스타다. 그리고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둘인데다 유산도 안 되고 뱃속에서 계속 잘 자라고 있으니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에 어머니도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연구소에서 내주는 서류들에 서명하지 않았다. 대신 임신 6개월의 몸으로 기자들 앞에 나서서 불러오는 배를 양 손으로 감싸안고 “이 아이들은 그 어느 악덕 거대기업에서 그 어떤 불법적인 횡포를 부려도 결단코 빼앗길 수 없는 내 피와 살이며 나 자신”이라고 울먹였다. 이에 대하여 세포기술 연구소에서는 처음 실험에 참가할 당시 어머니가 서명했던 각서와 합의서와 다른 서류들을 들고 나와 “실험 결과물”에 대한 법적인 권리를 요구했다. 그것은 그 뒤로 끝도 없이 이어진 수많은 소송의 시작이었다.
 결과적으로 어머니는 이겼다. 세포기술 연구소에서 그녀와 나를 지칭할 때 사용한 “실험 결과물”이라는 표현은 포기 각서에 나와 있는 용어였지만 언론에 노출되었을 때 연구소 측이 대중의 반감을 사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그래서 여론은 어머니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생모로서 그녀와 나에 대한 친권은 물론 복제에 대한 본체로서의 “유전자적 독점권”도 갖고 있었다. (이 괴상한 표현은 법원 판결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 판결문은 액자에 끼워져 거실 벽 한 구석에 꽤나 오랫동안 걸려 있었다.) 연구소 측은 체세포를 채취하여 생식세포로 만드는 과정이나 수정과 착상, 그리고 임신 상태를 유지시키는 기술에 대해 전부 혹은 각각 특허를 낼 수 있었고 그 모든 과정에 대한 연구 논문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었으며 필요에 따라 어머니와 그녀와 나에게 실험이나 연구에 참여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와 나를 인간이 아닌 “실험 결과물”로 취급하여 “인격적 존엄성”을 침해하고 자녀를 그 어머니에게서 빼앗아갈 권한은 없다고 법원은 판결했다. 덤으로 소송 비용 전부와 함께 어머니와 그녀와 나의 정신적인 피해 보상까지 합해서 엄청난 액수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런 판결이 나오던 무렵에 그녀와 나는 첫돌을 맞이했다. 그녀와 내가 세 돌을 맞이했을 때 어머니는 유치원과 돌보미와 이모에게 그녀와 나를 맡기고 대부분의 시간을 앞서 말한 영업사원과 소송하거나 합의하거나 다시 소송하는 데 보내고 있었다. 다른 여러 가지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출산 동영상을 어디에 얼마 받고 팔 것이냐를 논의하던 시점에서 어머니와 영업사원은 이미 의견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연구소에서 정신적 피해보상금을 지급했을 때 영업사원은 자신도 일부를 나눠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영업사원은 그녀와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어머니의 동의나 허락 없이 그녀와 나의 사진을 지속적으로 팔아서 돈을 챙기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영업사원은 나나 그녀의 생물학적 아버지도 아니었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이도 아니었으므로 법적으로는 아무런 권리도 없을 것이라고 어머니는 간단하게 상정했다. 그러나 영업사원이 연구소에 어머니를 소개했고 임신과 출산의 과정 동안 계속 보호자 노릇을 자처했으며 무엇보다도 실험이 시작되기 전부터 어머니와 몇 년 동안 사실혼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생각했던 것처럼 법의 힘을 빌려 간단히 쫓아낼 수가 없었다. 한편 영업사원 쪽에서도 평생 빨아먹을 소중한 꿀단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총력전을 벌였기 때문에 다른 여러 소송 중에서도 이 소송은 특히 길고 지루하고 더럽고 지저분하게 이어졌고, 영업사원은 어머니의 주변을 오랫동안 맴돌면서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하긴 했지만 끝까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어머니에게 복제인간 등록을 권유한 것도 아마 아저씨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그녀의 얼굴은 희었다.
 20초. 제대로 조르면 의식을 잃을 때까지 20초라고 했다. “제대로” 조르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 그래서, “제대로” 조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다.
 목을 조르면서 나는 홀린 듯이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시선을 뗄 수가없었다. 커다랗게 뜬 그녀의 눈 – 나와 같은 그 눈에서 생명이 빠져나가기까지 영겁의 세월이 그대로 멈추어 내가 스스로 나의 존재를 짓누르고 내 손으로 내 영혼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죽었다. 나는 그녀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도 한참동안 스카프를 쥔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나오는 길에 공원 입구에서 “복제”를 보았다.
 처음에는 노숙인이라고 생각했다.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고 경계하면서 앉아 있는 형체의 뒤쪽으로 돌아서 나오려고 했는데 그가 갑자기 나를 돌아보았다. 어두운 새벽 하늘과 흐릿한 가로등불 아래서도 한쪽 이마부터 관자놀이를 거쳐 뺨까지 새겨진 등록번호가 뚜렷이 보였다. 그 등록번호의 아래쪽, 광대뼈 부근에는 역시 뚜렷하게 커다란 멍이 들어 보기 흉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복제는 흐릿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쩝쩝 입맛을 다시더니 입술을 우물거리며 뭔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나는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주변에 본체가 보이지 않고 복제 혼자 있을 시에는 신고하는 것이 시민의 의무였지만 나는 신고하고 싶지 않았다. 복제가 그 때 그곳에서 나를 목격했다고 해서 기억을 할 리도 없고 정식으로 증언을 하거나 법정에 설 자격도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이 상황에서 경찰을 개입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인상에 남은 것은 복제의 얼굴에 새겨진 멍 자국이었다. 복제의 얼굴에 그런 상처를 내고 이른 새벽에 그런 곳에서 배회하게 하는 본체라면 신고해서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쪽이 복제를 위해서 행복할 것 같았다.
 그 때 내 처지는 그 복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찰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동이 트고 고작 몇 시간 뒤에 문을 두드렸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랐다. 결과적으로는 그 덕분에 문을 열었을 때 정말로 자연스럽게 놀란 표정을 지을 수가 있었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그 순간을 마치 방금 일어난 일처럼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초인종이 울렸고, 화면에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 “경찰입니다”라고 남자는 말했다. 나는 신분증을 요구했고, 남자는 화면에 조그만 플라스틱 카드를 들이밀었다. 적어도 화면상으로는 경찰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문을 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번에는 형사가 조금 망설였다. 그리고 기묘한 표정으로 천천히, 몹시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무슨 일인지 물었다. 형사의 표정은 조금 더 기묘하게 변했다.
 “집에 어른은 안 계십니까?”
 형사가 물었다. 내가, 아니 그녀와 내가 아직 미성년자라는 사실은 전 국민이 다 알고 있었다. 다만 나는 형사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존대말을 쓰는 것이 마음속으로 조금 신선했다.
 “계시는데, 주무세요.”
 내가 대답했다. 형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깨우세요. 서까지 동행을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내가 물었다. 이미 무슨 일인지 알고 있었지만 내가 듣기에도 그 질문은 내 입에서 무척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형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
 “일단 서에 가서 말씀드리죠. 어머니 깨워서 나오세요.”
 그리고 형사는 기다리겠다는 몸짓으로 문설주에 한 손을 짚고 고개를 끄덕였다.
 
 ***
 15년 뒤에 나를 찾아온 남자는 그 때의 형사가 아니었다.
 나는 남자를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지난 15년간 그를 본 적이 없었고, 이십대의 청년이던 그는 그 사이에 사십줄의 중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15년 전에 나는 그를 곧바로 알아보았다. 그는 뺨에 커다란 멍이 들어 있던 복제의 본체였다.
 공원에서 순찰을 돌다가 시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최근에 뉴스에 나온 적도 있고 인터넷 등지에는 언제나 떠도는 얼굴이었으므로 그는 시신을 곧바로 알아보았다고 했다. 시신이 전혀 훼손되지 않았으며 값비싼 최신형 전화기도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그는 경찰의 본능으로 스토커가 살해했다는 걸 알았다고 증언했다. 법정에서도 그는 같은 증언을 되풀이했다. “스토커 살해”라고 말한 뒤에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웃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느낀 것은 죄책감이 부른 착각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자신을 달랬다.
 착각이 아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
 살인 사건 덕분에 어머니는 그렇게 원했던 대로 다시 한 번 유명해졌다. 복제등록 선언도, 그 이전에 그녀와 나의 연예계 진출 시도도, 그 전에 어머니의 연예계 진출 시도도 이 정도의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나와 그녀의 사진이 매체에 끊임없이 오르내린 것은 우리가 태어난 직후부터 딱 돌이 될 때까지였다. 대중은 같은 정보에 너무 쉽게 질려버렸고 너무 빨리 흥미를 잃었다. 그녀와 내가 걸음마를 하기 시작했을 때와 처음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귀여운 모습으로 눈길을 끄는 사진들이 한 번씩 다시 언론과 인터넷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학교에 들어갔을 때에도 입학 첫날 기자들이 학교 앞에 몰려와 진을 쳤고 같은 학교 학부모 중에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였다. 학교란 매일 가는 곳이고, 매일 마주치다 보면 누구든지 익숙해진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 전부터 우리를 어떻게든 연예계에 진출시키려고 백방으로 노력했기 때문에 그녀와 나는 시간이 갈수록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학교에 나가지 않으니 당연히 사진 찍힐 일도 없었다. 아직 어렸던 동급생들은 그녀와 나를 금방 잊고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살아갔다.
 어머니가 무엇보다도 바랐던 것이 바로 그녀와 나를 연예계에 진출시키는 일이었다. 그보다 더 바란 것은 어머니 자신이 모처럼 얻은 유명세를 타고 연예계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그런 기획은 모두 실패했다. 어머니는 나이도 많이 들고 외모도 많이 망가진데다 무엇보다도 연예계에서 요구하는 종류의 능력이나 재능이 전혀 없었다. 어찌어찌 해서 중년 여성 관객을 주 시청층으로 하는 토크쇼를 하나 맡게 되었지만 말솜씨가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데다 무엇보다도 오만한 성격에 자기중심적인 면이 너무 강해서 대화를 잘 진행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쇼에 출연했던 게스트와 여러 시청자들의 불평만 들은 끝에 얼마 못 가서 잘려버렸다.
 그녀와 나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그녀와 나는 여느 평범한 집에서 재미삼아 방송에 내보낸 쌍둥이 자매가 아니었다. 우리는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실험의 결과물”이었으며 “존재 자체가 과학의 빛나는 발전을 대변해주는 증거”였다. (잡지 기사에 나왔던 말이다.) 시청자들은 그런 배경을 가진 그녀와 내가 화면에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고 예쁘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을 불편해했다. 어느 시청자는 방송국 게시판에 “어째서 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가”라고 항의했다. “저렇게 태어난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월반을 해서 어린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거나 경시대회 같은 데서 메달을 따고 있어야 옳은 것이 아닌가”라고 그는 물었다.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었으나 여기에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동조했다. 일반 대중의 관점에서 그녀와 나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과학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흥미롭다는 반응과 못마땅해하는 반응이 엇갈렸다.
 처음에 방송국에서는 좋아했다. 어떤 반응이든 무반응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방송에만 노출된 것이 아니라 생활의 모든 측면이 전방위적으로 모든 매체에 온갖 방식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빠른 속도로 지겨워하기 시작했다. 연구소에서 월단위로 우리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어머니가 끊임없이 소송에 연루된 것도 이 지겨움에 한몫 했다. “인터넷 들어가면 사방에 널려있는 저 얘기인데, 스트레스 풀려고 보는 연속극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까지 저 사람들을 봐야만 하겠냐”라고 시청자들은 다시 불평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나도 어머니도 방송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조금 더 자라서 그다지 귀엽지 않게 되었을 무렵에 짧은 공백기가 찾아왔다. 그녀와 내가 아홉 살이나 열 살 정도 되었을 때라고 기억한다. 그 즈음에 어머니는 우리가 눈에 띄면 자주 때렸다. 주로 나를 때렸다. 그러나 언제나 일관성 있게 항상 때린 것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어머니는 언제나 바빴다. 소송 때문에, 방송 때문에, 돈 때문에, 혹은 몇 번이나 시도했다가 망한 사업 때문에 계속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다녔다. 고용된 돌보미나 이모나 학교 선생님이나 방송국의 코디와 FD들이 우리를 돌아가며 떠맡아주는 동안 며칠씩 어머니의 얼굴조차 못 보는 일도 자주 있었다. 주로 책임을 떠맡아 우리를 집에 데려가야 하는 사람은 이모였지만 관계없는 타인들과 이모의 일정이 맞지 않을 때면 우리는 수업이 끝난 학교의 텅 빈 교실이나 방송국 세트장 한 구석이나 누군가의 사무실 복도 등에 몇 시간씩 방치되기도 했다. 그럴 때 누군가 친절한 사람이 우리를 발견하고 연락하면 어머니는 뒤늦게 나타나서 우리를 껴안으며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고 연락한 사람에게 머리를 숙였으나 집에 가면 나를 때렸다. 며칠만에 집에 돌아온 어머니가 반가워서 가까이 가려고 해도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고 결국은 때렸다.
 신기하게도 어머니는 악쓰고 고함을 지를 때에도 절대로 욕설이나 비속어는 쓰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때리거나 화를 내지 않을 때에도 그녀와 내가 본질적으로 쓸모없는 존재임을 누누이 각인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와 나는 어머니의 창작품이었고 어머니만의 소유물이었다. 그러나 또한 어머니가 먹여 살려야만 하는 무거운 짐이었고, 게다가 우리에게는 생계와 양육을 함께 책임져줄 아버지가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그녀와 나에게 모든 결정권을 한손에 쥔 무소불위의 신과 같은 존재였으며, 그녀와 내가 시시각각 충분히 감사의 마음을 표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우리를 연구소에 넘겨버릴 권리를 가진 폭군이었다. 나와 그녀를 혼자서 한꺼번에 길러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만 아니었더라면 어머니는 이미 오래 전부터 꿈꾸던 대로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진출했거나 아니면 이제까지 힘들여 번 돈으로 어딘가에서 조용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막중한 책임을 버리지 않고 연구소에 우리를 넘겨주지도 않고 밤낮으로 온몸이 부서져라 세상 모든 사람과 싸우며 일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와 나도 우리의 몫을 해야만 했다. 그것이 어머니가 그녀와 나의 어린시절 내내 말과 행동으로 주입시킨 의견이었다. 그녀와 나는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그렇듯이 어머니의 그런 주장을 의심없이 믿었다.
 그래서 그녀와 나는 어머니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연구소로 반품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 몫을 다하려고 진심으로 애썼다. 방송에 나갈 때는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것은 물론 종종 밥도 제때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와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이모를 포함한 타인들이 우리를 귀찮아해도, 어머니가 이유없이 발악을 하며 화를 내도 그녀와 나는 그럴수록 더 잘 하려고 애썼다. “더 잘” 한다는 게 어떻게 하는 건지 알지 못했지만, 엄마가 왜 자꾸 화를 내냐고 이모에게 물었을 때 이모가 그렇게 대답했기 때문에 그녀와 나는 노력하면 어머니도 언젠가는 우리를 용서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으며 왜 용서받아야 하는지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쨌든 실제로 어머니는 가끔씩 그녀와 나를 용서했다. 방송국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는데도 그녀와 나를 안아주며 “내 예쁜 천사들”이라고 말해주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은 방송이 없었고 그녀와 나는 학교에 갔고 어머니는 모처럼 집에서 쉬었고 아무런 사건이 없는 평온한 하루였는데 그녀와 내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문을 열어주고는 현관에서부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대체로 나의 어린 시절은 이런 식이었다. 긴장에 이은 폭발, 혹은 긴장 뒤에 의외로 찾아오는 평화와 안도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반복되는 주기에는 아무런 규칙이 없었고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논리적인 예측이 불가능했다. 그 예측 불가능성이 가장 많은 혼란을 야기했으며 정서적으로 가장 커다란 해를 끼쳤다.
 어머니가 그녀와 나를 어떻게 구분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어쨌든 어머니는 그녀와 나를 혼동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한 그녀와 나를 어머니가 당연하다는 듯이 구분해내는 장면은 수십 번이나 전파를 탔지만 방송마다 지칠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우려먹었다. 어머니가 잠시 맡았던 토크쇼에서도 몇 번이나 묘기처럼 내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모성의 힘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저주였다. 어머니는 그녀와 나를 쳐다볼 때 표정이 달랐다.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면 때리기도 전에 그녀는 울기 시작했고 그러면 어머니는 화내던 것을 멈추고 달래주었다. 내가 울면 어머니는 “뭘 잘했다고 우냐”고 더욱 더 분노에 차서 광란하고 악을 쓰면서 때렸다. 그녀와 내가 떨어져 있었던 적은 거의 없지만 아주 드문 경우에 나 혼자 있는 모습을 보아도 어머니는 내가 그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어머니는 마치 남이 실수로 흘리고 간 잡동사니를 본 것처럼 무표정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죽은 사람이 내가 아니라 그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두 명, 그 중 나를 제외하면 어머니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침묵으로 일관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녀의 시신을 본 순간 어머니는 경찰서에서 쓰러졌고 그리하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 기자들이 무엇을 물어도 그저 신음하며 눈물만 흘렸다. 용의자가 잡혀서 재판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어머니는 건강 상태를 핑계로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기자와 경찰과 방송사 관계자들과 범죄물을 전문으로 하는 논픽션 작가들이 끊임없이 어머니를 찾아가서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엿보기 위해 달래고 구스르고 협박하고 뇌물을 바치고 비위를 맞추었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딸의 죽음을 담보로 연장된 유명세를 즐겼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당시 나에게는 그것이 유일하게 수긍할 수 있는 해명이었다. 지금은 어머니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사건이 종결된 직후에 나는 어머니의 집을 떠났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로부터 삼 년 뒤에 난소암에 걸려 죽었다. 병원에서 어머니는 진통제에 취해 흐느적거리면서도 사건의 진상을 언제든지 폭로하겠다고 죽는 순간까지 나를 협박했다.
 어머니는 자신도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한낱 인간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혹은 그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전에 나에게 휘둘렀던 권력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맛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머니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고 보호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해도 별로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
 수사 과정에서 내가 어느 정도 의심을 받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집에 처음 찾아왔던 형사는 내가 그녀의 이름을 내 이름이라고 말했을 때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시신을 발견했던 젊은 경찰은 수사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내가 범인일지도 모른다고 한번 조심스럽게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계급도 낮고 경력도 짧은 젊은 경찰의 제안은 묵살되었고, 그는 더 이상 우기지 않았다. 나는 재판정에서 그를 처음 보았지만, 그 때는 이미 다른 사람이 용의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집에 찾아왔던 나이든 형사도 나에게 시험하는 듯한 질문을 던진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는 능력 있고 경험도 많은 노련한 경찰관이었으며 현명하고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유전자부터 지문까지 모든 것이 똑같았고, 자라면서 생겨난 그녀와 나 사이의 모든 실존적 차이점을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해서 내보이거나 숨길 수 있도록 평생 훈련받은 사람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녀와 나는 삶을 타인 앞에 전시하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만과 조작은 일상 생활이었다.
 그녀를 죽일 때 사용했던 스카프는 그런 기만과 조작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어렸을 때 문제의 영업사원이 개발해낸 사업 아이템으로, DNA 구조를 모티브로 한 무늬가 들어가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나는 그 무늬가 몹시 보기 흉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쩐 일인지 스카프는 꽤 잘 팔렸다. 그러니까 이 도시만 해도 그 스카프를 가진 사람이 줄잡아 수천 명은 될 것이었다.
 범죄수사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이럴 때 상피세포나 지문을 이용해서 수사를 한다. 당시에 집에는 팔다 남은 그 스카프가 스무 개쯤 굴러다녔다. 거기에는 거의 전부 그녀의 상피세포와 내 지문이 묻어 있었다.
 나의 상피세포는 그녀의 상피세포와 같다. 내 지문도 그녀의 지문과 같다. 경찰에서 그녀의 목을 조른 것이 어느 스카프였는지 특정한다 해도, 증거만으로 판단한다면 그녀가 자기 스카프로 자기 목을 졸랐다는 결론도 내릴 수 있다.
 집안에 굴러다니던 스카프 중 몇 개는 어머니도 홍보용으로 가지고 다녔었다. 그 스카프에는 어머니의 생체 증거가 묻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어머니가 그녀를 죽였다는 결론도 내릴 수 있다. 그녀와 나는 결국 어머니의 복제이고, 우리의 생체 정보는 모두 같았기 때문이다.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세포 수준에서 어차피 그녀는 나였고, 나는 그녀였다.
 그리고 형사는 내가 당시 열 일곱 살 소녀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내게 동정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녀라고 속이기가 더 쉬워졌다.
 그녀가 알았더라면 눈쌀을 찌푸렸을 것이다.
 그녀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와 나를 절대적으로 지배했던 인물인 어머니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자매로서 나를 사랑했다기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함께 태어났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으니 참아준다는 태도로 나를 대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녀는 그 나이의 소녀들이 모두 그렇듯이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일기나 음악 리스트 등을 간직하려 했으나 소용 없는 일이었다. 그녀와 나는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언제나 다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나를 더욱 싫어했다.
 어쨌든 현실적으로도 그녀가 나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상황보다도 내가 그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 언제나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는 그녀가 나에 대해 아는 것보다 그녀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나는 이런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녀와 나 둘 중에서 한쪽을 “인간”으로, 다른 한 쪽을 “복제”로 정식 등록하겠다고 선언하기 전날, 늦은 밤에 나는 그녀가 어머니와 은밀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엿보았다. 잠들었다가 어느 순간 그녀가 깨었기 때문에 나도 깨었다. 그녀가 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일어나서 조심조심 방을 나갔기 때문에 나도 그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한참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따라 나갔다.
 어머니도 그녀도 속삭이듯 낮은 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어머니가 말하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장면이다.
 “내가 죽고 나면 세상에 너하고 쟤하고 둘만 남을 테니까….”
 어머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쟤를 잘 돌봐줘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를 쳐다보던 어머니의 눈빛과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의 몸짓으로 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다른 대안은 신기할 정도로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집을 나간다거나, 멀리 도망친다거나, 외국으로 떠난다거나 – 그런 해결책도 한참이나 지나서 사건을 되돌아볼 때에야 떠올랐다. 그 순간 당장 떠오른 생각은, 생각이라기보다 확신은, 그녀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나는 한 쌍의 “복제” 중 더 열등한 반쪽일 뿐이었다. 절대로 나 자신으로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었다.
 나는 그 때까지 보았던 복제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운이 좋은 복제들은 깨어나지도 못한 채로 시험관 안에 갇혀서, 혹은 침대 위에 누운 채로 지내다가 본체의 부품으로 소모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병원으로 찾아가지 않는 한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좀처럼 띄지 않았다. 일상 생활에서 더 많이 보이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복제”의 모습은 애완동물과 노예의 중간에 해당했다. 똑같은 유전자를 타고났고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본체는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스스로 느끼며 주체적 인간으로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자기 삶을 살아가지만 복제는 자신이 어째서 불운한지 이해할 능력조차 빼앗긴 채로 그저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끌면 끌려다니고 때리면 맞고, 그러면서도 과자 한 조각이나 친절한 말 한 마디에 히히 웃으며, 아무런 자각 없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존하다가 죽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모습이었다면 불행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것이 나의 불행이었다. 서커스의 동물 같은 삶에서 유일하게 내 것인 의식과 지각마저 빼앗길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다정하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녀가 따뜻하게 어머니를 마주 쳐다보는 광경을 몰래 지켜보면서 나는 마음이 점점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게 무섭지도 긴장되지도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 혼자였고, 그래서 처음으로 완전한 나 자신이 되었다.
 
 경찰 일각에서는 그녀의 살해범으로 끝까지 나를 의심했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지는 못했다. 일단 내가 나인지 아니면 당시 주장했던 대로 그녀인지를 밝혀낼 방법이 없었다. 생체 정보가 전부 똑같을 뿐 아니라 나는 그녀가 인터넷이나 각종 전자기기에 사용하는 아이디나 비밀번호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도 나도 친구가 많지 않았고 십대에 흔히 있을 법한 남자친구도 없었다. 어머니가 나와 그녀의 생활을 한편으로는 완벽하게 간섭하고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홍보해서 팔아먹으려 했기 때문에 남자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고 사귄다 해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러므로 아주 친한 친구나 연인 관계 등의 가까운 사이에서만 알 수 있는 개인적인 정보나 섬세한 단서를 제공할 사람도 없었다.
 밝힐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라고 주장하는 내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경찰은 오히려 나를 의심했다. 복제를 평생 돌보아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등록되기 전에 죽여버렸다는 것이었다. 이런 가설과 추측들은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게재되었다.
 그리고 나로서는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복제를 돌보기 싫어서 죽였다는 이 가설을 믿었다. 내가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그녀가 아니라 나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지만, 살해 동기에 대해서는 모두들 대답이 궁해졌다. “복제”로 인정받으면 평생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인간”이 돌보아줄 텐데, 피와 유전자를 나눈 쌍둥이 자매를 죽이면서까지 그런 편안한 삶을 내 손으로 뭉개버릴 이유는 절대로 없다는 것이었다.
 “복제”가 살아가는 삶의 질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해범으로 의심받는 것보다도,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는 생각보다도 나는 이 사실이 가장 무서웠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붙잡힌 사람은 이전에도 그녀와 나를 스토킹하다가 체포된 경력이 있는 남자였다. 그녀와 내가 초경을 시작하자 그 사실은 어머니를 통해 연구소에 전해졌고 뒤이어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스토커는 그 때 그녀와 나에게 생식능력이 있는지 자신이 직접 실험해서 “과학적으로” 밝히겠다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에 학교에 난입해서 그녀와 나를 납치하려다가 붙잡혔는데, 살던 집을 수색한 결과 그녀와 나를 어렸을 때부터 따라다니면서 찍은 수만 장 분량의 사진과 납치 계획을 적은 공책이 발견되었다. 구식으로 손으로 쓴 공책에는 그녀와 내가 초경을 시작하자마자 납치해서 감금하고 성폭행하려는 계획과, 그렇게 성폭행하여 그녀와 내가 둘 다 임신할 경우, 한 쪽만 임신할 경우, 양쪽 다 임신하지 않을 경우의 행동 방안이 세부적으로 구분되어 꼼꼼하게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스토커는 당시 체포되어 7년 형을 받았다. 그리고 그 중 5년을 복역하고 내가 그녀를 죽이기 삼 주 전에 가석방되었다. 풀려나자마자 스토커는 곧장 다시 그녀와 나에 대한 정보를 모으면서 또 스토킹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그녀와 나 중에서 한쪽을 복제등록하겠다고 선언했다는 사실을 알고 스토커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인터넷에 여러 번 위협적인 글을 공개했다. 주장의 요지는 그녀와 내가 양쪽 다 복제이면서 양쪽 다 본체인 첫 번째 사례이므로 평범한 복제-인간으로 등록을 해 버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보다는 양쪽 다 임신을 시켜서 아이를 낳게 하여 그 아이들을 해부하고 유전자를 검사하는 것이 과학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스토커는 주장했다.
 재판 중에 스토커의 변호인은 그녀가 성폭행당한 흔적이 없다는 사실을 거듭하여 강조하였다. 그러나 증언대에 오른 스토커가 돌연히 그녀가 “말을 안 들어서 죽여버렸다”라고 자백하고는 나를 쳐다보면서 이를 드러내고 위협적인 미소를 지었기 때문에 변호인의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되었다. 스토커는 그녀를 살해한 범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 대신 정신병원에 갇혔다.
 그리고 나는 자유로워졌다.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
 “부모의 죄는 자식의 족쇄이다.” 그런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내 어머니의 죄는 그녀와 함께 나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 평생의 족쇄이다.
 
 ***
 한때 젊은 경찰이었던 중년 남자는 내 옆에 누워 있다. 가볍게 코를 곤다. 나는 그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본다.
 일반적으로 모든 남자는 여자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임신시키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것이 남성성의 증명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혹은 나를 눈여겨본 남자들만, 나를 임신시키고 싶어하는 것일까? 내가 나이기 때문에? 임신시키면 나와 태아를 소유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나에게 자신의 아이를 가질 것을 요구했다. 어린 시절에 그녀와 내가 태어나는 순간을 동영상으로 처음 보았던 날부터 나를 사랑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낳는 것이 인류와 과학에 대한 나의 의무라고 그는 주장했다. 자가생식으로 태어난 생명체도 정상적인 생식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엄청난 과학적 사실을 최종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물론 나는 거절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아이를 가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열심히 나를 설득했다.
 나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자식, 혹은 양육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의 악다구니와 매질이었다. 어머니가 그녀에게 주었던 따뜻하고 부드러운 순간들을 나는 옆에서 지켜보았으나 내 것으로 가진 적이 없었으며, 그래서 그런 따뜻함은 영원히 내 것일 수 없으리라 너무 일찍, 너무 깊이 절망했다. 그러니 내가 아이를 갖더라도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아마 증오와 경멸과 폭력뿐일 것이었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끈질기게 거절하자 그는 주머니에서 타블렛을 꺼냈다. 전원을 넣고 파일을 실행시켰다.
 - 어, 네가 여기 웬일이야?
 그녀의 목소리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그 날 그녀의 목소리였다.
 - 무슨 일 있어?
 물론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녀는 날카롭게 내 이름을 외쳐 불렀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그는 내 얼굴을 보며 상냥하게 웃었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25년이야.”
 그가 말했다.
 “앞으로 10년 남았어. 그러니까 네가 내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가 열살이 되면 너는 자유야. 아이를 열 살까지만 무사히 키워주면, 그 때는 내가 아무 조건없이 너를 풀어줄게.”
 그것은 협박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그녀와 나를 임신시키겠다던 스토커가 잡히고 나서 얼마 뒤에 어머니는 그녀와 나를 연구소로 데려갔다. 오랫동안 대리모 노릇을 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임신에 대해서 잘 알았다. 그래서 임신을 촉진하는 방법과 함께 임신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약간 남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어머니는 혹시 모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그녀와 나에게 자궁내 장치를 삽입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연구소 측에서는 기뻐했다. 그녀와 내가 성년이 된 후에 결혼하거나 아이를 원하게 된다면 장치 제거와 수정부터 임신, 출산, 신생아 관리까지 모두 연구소에 일임하겠다는 각서를 받은 뒤에 무료로 시술하고 그 뒤로도 계속 무료로 관리해 주었다. 주기적으로 장치를 교체한 적은 있지만 나는 장치를 제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남자의 터무니없는 망상이 실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인지 멍청하게도 “그럼 아이는?” 이라고 물었다.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이는 내 거니까 내가 데려가야지.”
 그 말을 듣고 나는 언젠가 어머니와 그녀를 엿보던 때처럼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내가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나를 범했다.
 
 남자는 그녀와 나를 상당히 오랫동안 몰래 따라다녔던 것 같았다.
 경찰이 된 뒤로는 스토킹하기가 더 쉬워졌다. 내가 그녀를 죽이는 장면도 전부 목격했다. 촬영을 하려고 했는데 그만 버튼을 잘못 눌러서 녹화는 되지 않고 녹음만 되어 버렸다고 했다.
 그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유일한 목격자였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는 그의 의견을 묵살했다.
 처음에 그는 분노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세간에 떠도는 말들은 모두 추측이었으나 그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증거를 이용해서 나에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완전히 그의 손 안에 들어올 때까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는 녹음 파일을 숨겼다.
 “너는 법정에서 나를 처음 봤겠지. 나는 그 전에도 널 자주 봤었어.”
 그는 말하면서 그 때처럼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웃었다.
 “연기를 아주 잘 하더라. 다른 사람들은 다 속았지만 난 속지 않았어. 난 처음부터 너희 둘을 구분할 수 있었거든. 아주 확실하게.”
 어떻게, 라고 나는 물었지만 그는 다시 웃었다.
 “나도 몰라. 그냥 보면 알아.”
 그리고 그는 나에게 입맞추었다.
 그 입맞춤만이라면 그가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어머니에게 배운 바를 종합하면 내가 이해하는 사랑은 상대에게 나를 학대하고 이용해도 좋다고 허락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집을 떠나 어른이 된 후로 만난 몇 안 되는 남자들 또한 대부분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그와 비슷하게 행동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란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녹음 파일을 생각한다. 내 위에 강제로 올라탔을 때 그의 얼굴과 찍어누르던 그의 무게를 생각한다.
 그는 자기 나름의 방식에 따라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또 다시 노예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옆에 누워 잠든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가 내 삶에 갑자기 다시 나타난 지 석 달이 지났다. 그 석 달 동안 그는 내 집에서 나와 함께 살았다.
 그는 내가 완전히 고분고분해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일하러 갈 때도 의심하지 않고, 처음에 그랬듯이 십 분에 한 번씩 전화하지도 않는다.
 위치 추적은 아마 그 때나 지금이나 계속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예측가능한 생활을 한다. 정해진 시간에 일하러 갔다가 일이 끝나면 정해진 시간에 집에 돌아온다. 돌아와서는 그가 시키는 대로 한다. 배가 고프다고 하면 음식을 만들어 주고, 집이 더럽다고 불평하면 청소와 빨래를 한다. 그가 때리면 말없이 맞고, 그가 성교를 원하면 몸을 대 준다. 그리고 그가 술을 원하면 사다 준다. 그는 술을 무척 많이 마신다. 술을 마시면 거칠어진다. 취해서 거칠어지면 그는 자신이 강하다고 착각한다.
 그는 내가 약해서, 겁에 질려서 시키는 대로 한다고 믿는 듯하다. 내가 다루기 쉽다고, 웃으면서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이런 생활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나는 필요하다면 이런 긴장 속에서 감정도 속내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그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그는 내가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침에 약국에 들른 이유를 물었을 때 내가 생리대를 사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자 그는 실망하면서도 내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약국에서 나는 실제로 생리대를 샀다.
 그리고 수면제도 샀다.
 
 그는 깊이 잠들어 있다. 가볍게 코를 곤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법에 대해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러나 헛점은 생각하면 할수록 늘어났다. 결국은 아직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가 내 앞에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법보다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방법을 더 열심히 궁리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이제 더 이상 경찰이 아니다. 경찰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쫓겨났다. 내가 어머니의 집을 떠나 사라진 후부터 본연의 임무는 젖혀두고 나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관련없는 무고한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열람했고 그 중 몇몇은 찾아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내 어머니에게도 찾아가서 나의 행방을 말하라고 위협했던 모양이다.
 그가 간과한 사실은 첫째로 내 어머니가 협박을 받으면 겁을 먹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는 성격이라는 점이었고, 두 번째로 어머니가 소송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또한 어머니는 꽤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일종의 유명인사였고, 그래서 유명인사로서의 영향력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거론하며 한 번만 더 경찰이 찾아와서 공무가 아닌 일로 괴롭히면 시 경찰 전체에 소송을 걸겠다고 어머니의 변호사를 통해서 경찰서장에게 정식으로 통보한 사실은 그의 인사고과에 무척 불리하게 반영되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으므로 어머니는 내친 김에 항상 좋아하던 기자회견도 한 번 했다. 살인사건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고위 간부도 아닌 젊은 순경이 멋대로 찾아왔으며 게다가 위협적인 언사로 행패를 부렸다는 어머니의 묘사에 경찰의 입장과 경찰 내부에서 그의 입장은 더욱 더 난처해졌다.
 그래도 그는 나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경찰에서 쫓겨난 이유는 쓸데없는 짓 그만 하고 본업에 충실하라고 잔소리하는 반장에게 총을 뽑아들며 쏴죽이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었다.
 직장에서 해고된 뒤로 그는 정신상태가 더욱 피폐해졌지만 나를 찾아다닐 시간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 그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을 때 그는 나를 거의 잡을 뻔했다. 내가 어머니 때문에 돌아와서 병원에 있었을 때 그는 내가 당시 살던 도시까지 찾아갔던 것이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보고 그는 거창한 장례식이 열릴 것이며 당연히 내가 상주 노릇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서둘러 돌아왔다.
 그러나 그 때 나는 혼자서 어머니의 시신을 재빨리 화장하고 남은 유산은 어머니의 변호사에게 내주다시피 맡겨버리고 서둘러 다시 떠났다. 거창한 장례식 같은 건 애초에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이제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머니가 죽었으니 나는 세상에 혼자였다. 이제 나만이 나 자신의 유일한 본체였다. 그래서 나는 기쁨에 들떠서 그 때까지 살던 곳을 모두 정리하고 또 다른 곳으로 떠났다.
 처음에 어머니를 떠났을 때 나는 다른 생각은 없이 여비가 허락하는 한 어머니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질 수 있는 곳을 골랐다. 재벌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이 그곳에서 내 생활도 궁핍했고 마음 붙일 곳은 없었으며 게다가 나는 종종 나라는 사실을 알아본 사람들의 달갑지 않은 시선과 무례한 호기심까지 견뎌야만 했다. 이제는 그곳에 머무를 이유도, 고향 도시로 돌아올 필요도 없었다.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었고, 마음 내키는 대로 어떤 삶이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무척 기뻤다.
 내가 조용히 갑작스럽게 떠났기 때문에 그는 나를 붙잡는 데 다시 한 번 실패했다.
 그 때부터 그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잠든 그의 얼굴에 베개를 대고 누른다.
 음식에 수면제를 무척 많이 넣기는 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죽지 않을 것이다. 한때 제약회사에서 일했던 영업사원은 언론에서 자살 사건을 거론할 때면 잘난 체 하면서 저걸로는 안 죽는다고 비웃었다. 수면제 과용이나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약을 제조할 때부터 용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수면제만 먹어서 죽기는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체감하는 수면제의 효과는 확실하다. 호흡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그는 거의 저항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팔다리는 죽기 전에 잠들어 있을 때부터 시체처럼 힘없이 풀어져 있었다.
 그가 숨을 쉬지 않고 맥박도 완전히 멈춘 것을 확인하고 나는 거실로 간다. 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철제 용기를 꺼낸다. 그 안에는 일하는 곳의 창고에서 훔쳐온 시너가 들어 있다.
 가방 안에 숨겨가지고 와야 했기 때문에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가능한 한 골고루 그의 몸에 뿌린다. 그리고 불을 붙인다.
 그가 불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얼굴에 불이 붙는 순간 갑자기 그가 움직인다. 컥, 컥 소리를 내며 목구멍에서 불꽃을 뿜어낸다. 아직 죽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깜짝 놀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가 버둥거리는 사이에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서 그의 몸을 전부 잡아먹고 침대를 휩싼다. 매트리스에 불이 붙으면서 독한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눈물이 난다.
 그래서 나는 화재경보기가 울린 틈을 타서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온다.
 
 ***
 비상계단을 내려와서 뒷문으로 빠져나오려다 나는 문 바로 밖에 웅크리고 앉은 남자의 복제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남자는 언제나 복제를 건물 밖으로 쫓아내려 했다. 복제는 추운 날씨를 피해 언제나 그렇듯이 비상문 안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화재 경보를 듣고 도망쳐나오는 사람들의 서슬에 같이 밀려서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남자와 똑같은 얼굴이 15년 전에 보았던 흐릿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과 이마에서 관자놀이를 거쳐 뺨까지 뚜렷하게 새겨진 등록번호를 보면 나는 언제나 소름이 끼쳤다. 15년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뺨이 아니라 코에 멍이 들어 심하게 부었다. 그리고 입술도 찢어져 부르튼 채로 복제는 덜덜 떨고 있었다.
 평소라면 말없이 서둘러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평소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복제에게 말했다.
 “네 주인은 죽었어.”
 복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넌 이제 자유야.”
 복제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15년 전 그 때처럼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입술을 우물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그를 돌볼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나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
 어디로 가야 할까. 연기가 솟아오르는 건물을 멀리서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어디로 가야 할까. 앞으로 얼마나 더 도망쳐야 할까.
 어머니의 죄는 내 평생의 족쇄이다. 나는 어디를 가든 완전히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도망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이 우주에 나라는 존재는 복제물도 대체품도 없이 오로지 나 혼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숨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든 삶을 유지하는 것도 내 책임이다. 오로지 나 한 사람만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거운 책임인 동시에 소중한 권리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그것을 이해한다.
 밤이다. 하늘은 어둡다. 우범지대의 싸구려 임대 아파트에는 경찰도 소방차도 빨리 오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이 몇몇 모여서 웅성거린다. 몇몇은 제 풀에 흩어진다. 구경거리 치고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고, 그에 비해 밤의 거리는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들이 또 나타난다.
 그렇게 흩어졌다 다시 모여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 어둡고 불행한 세상에 인간은 무엇을 바라고 자꾸 태어나서 살아가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진다. 가야 한다.
 나는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조용히 어둠 속에 몸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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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No Profile
    정도경 12.12.29 19:14 댓글 수정 삭제
    역시 내 글만 댓글이 안 달려 ㅠㅠ 우울한 얘기만 쓰니까 할 수 없지만 ㅠㅠ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ㅠㅠ
  • No Profile
    미로냥 12.12.31 15:45 댓글 수정 삭제
    우울해서 좋아요 2012년 마지막날... 좋아요... 으허허허헝 ㅠㅠㅠ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No Profile
    정도경 12.12.31 23:35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으허허헝ㅠㅠ
    미로냥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ㅠㅠ
  • No Profile
    pena 13.01.01 21:09 댓글 수정 삭제
    표면은 우울하지만 언제나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유를 얼핏 본 것 같아요. 정도경님의 작품에서는 배경이나 상황이나 인간의 본성 그 자체가 갇혀 있거나 밑바닥이거나 처절한데, 모든 걸 넘어서서 자신이고자 하고자 하는 자유에의 의지 같은 게 언제나 느껴져요. 음음. 자유롭고픈 도경님...? ...
  • No Profile
    정도경 13.01.02 11:43 댓글 수정 삭제
    흐엉 감사합니다 ㅠㅠ 새해에는 자유롭게!
  • No Profile
    슴컹크 13.01.08 11:25 댓글 수정 삭제
    정도경님~ 이번에도 정말 흡입력 있게 술술 빨려 들어가서 읽었습니다. 좋은 작품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져요!!!!
  • No Profile
    정도경 13.01.08 14:23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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