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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오래된 어떤 것

2011.07.30 02:0707.30

미국에 유학가서 처음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차를 몰고 이웃한 주의 주립대학에서 열리는 학회를 찾아가다가 길을 잃어버렸다. 고속도로에서 분명히 출구 번호를 확인하고 나왔는데 달려도 달려도 목적한 도시는 보이지 않고 옥수수밭만 이어졌다. 주 경계선을 넘어가서 이웃 주에 도달한 뒤에 같은 번호의 출구로 빠져나갔어야 했는데 내가 주 경계선을 넘기도 전에 너무 일찍 나갔다는 사실은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 지도를 확인한 뒤에야 깨달았지만 그건 훨씬 나중 문제였다. 나는 낯선 나라의 낯선 고장, 그것도 도로표지판도 하나 보이지 않는 황무지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었던 것이다.


내 운전 실력은 그 때나 이후에나 형편없었다. 차는 싼맛에 산 중고 고물차였을 뿐만 아니라 내가 살던 곳은 미국에서도 가장 뒤떨어지고 가난한 지역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내비게이션 시스템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뇌에는 방향감각을 관장하는 부분이 태어날 때부터 고장나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방향 감각이 아예 없었으면 더 나았을텐데 나는 언제나 가야 할 방향과는 정확히 반대쪽으로 향하는 특이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든 조건들이 결합된 결과 나는 어딘지도 모를 옥수수밭 한가운데로 뻗은 좁다란 지방도로를 몇 시간째 헤매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버렸다. 사람의 모습은 커녕 사람이 있을 만한 건물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때 교회가 눈에 띄었다.


기독교를 믿으시는 분들께는 혹여 불쾌하게 여겨질 수도 있으니 미리 양해의 말씀을 구해야겠다. 때는 4월이었기 때문에 부활절 무렵이라서 교회 앞에는 아마도 부활절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간판이 서 있었다. 교회 자체는 목조 건물인데 몹시 낡아빠지고 내가 살던 주에서 흔히 보이는, 판대기로 아무렇게나 지은 헛간 같은 모양새였다. 그런데 간판만은 아주 크고 새하얀 바탕에 검고 커다란 글자가 선명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었다. 간판에는예수께서 돌아오십니다” (Jesus Is Returning)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부근은 소위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 하여 미국 내에서도 독실한 신앙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래서 교회도 많고 더구나 부활절 무렵이라서 그와 관련된 현수막이나 기념물이 내걸린 모습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Jesus Has Risen)라는 문구를 더 자주 보았기 때문에 나는 약간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예수께서 돌아오신다는 그 간판 바로 앞에는 주 정부 교통과에서 세워놓은 불타는 주황색의 마름모꼴공사중표지판이 서 있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예수께서 돌아오셔야 하는데 돌아오시는 그 교회 앞길이 공사중이라는 광경이 너무나 부조리하게 보였기 때문에 나는 절박한 와중에도 웃고 말았다. 더욱 부조리했던 점은 교회 앞을 포함하여 그 부근 반경 70마일 ( 100km) 이내에 공사중인 구간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시속 70마일로 약 한 시간 정도 근방을 헤맸기 때문에 이것만은 사실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공사가 끝났는데도 주 정부에서 잊어버리고공사중팻말을 수거해 가지도 않을 만큼 외진 곳이라면 나의 상황은 대체로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대로 예수께서 돌아오시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누군가 훼방을 놓으려 했다면 이 교회는 교회로서의 기능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후자의 경우라면 나의 상황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게 도움이 될 이유도 전혀 없었다. 버려진 교회라면 안에 들어가 길을 물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교회 앞에 정차한 채로 공회전을 하면서 아까운 기름을 낭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교회 문이 삐걱 열렸다.


나는 차 안에 있었기 때문에 물론 문이 열리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사실 그 문은 예수께서 돌아오신다는 문제의 간판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열리는 걸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백인 할아버지였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든 미국인의 유니폼인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교회 관련자인지 그냥 인근 주민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노숙인치고는 차림새가 너무 깔끔했다.


나는 망설였다. 길을 물어봐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 잘 판단할 수 없었다. 내가 살던 주는 학교 바로 옆 동네에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의 본거지가 있었고 소문에 의하면 아직도 엄연히 활동 중이라고 했다. 외국인 학생 오리엔테이션에 갔을 때도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유색인종은 그 동네에 얼씬거리면 큰일 난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는 학교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한인 교회 앞에서 어떤 백인우월주의자가 대기하고 있다가 예배 마치고 나오는 한국인들을 무차별 총격해서 한 명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험하다면 은근히 험한 동네였고, 학교 근방을 벗어나면 옥수수밭에서 백인끼리만 평생 살아온 사람들이 흔한 동네였으며, 시골이고 주변이 모두 농가이다 보니 들짐승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집집마다 당연히 총기를 소지하는 동네였다.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나 워싱턴 같은 대도시만이 미국이 아니라, 이런 시골 작은 마을이 미국 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미국적 정서의 중심을 이루는클래식 아메리카나라는 사실을 알려준 동네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동네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었다. 나는 이방인이었다. 유색인종에다 여자였다.


백인 할아버지가 차를 향해 다가왔다. 운전석 창문을 톡톡 쳤다.


할아버지는 양손에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약 3분의 1초 망설이다가 나는 일단 차창을 내렸다.


여기서 뭐 하나?”


할아버지가 느릿한 사투리를 쓰며 물었다.


길을 잃었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래?”


할아버지가 내 얼굴을 훑어보았다.


어디서 왔지?”


옆 동네 학교에서 왔다는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사우스 코리아.”


그래?”


그리고 할아버지는 뜻밖의 발언을 했다.


내가 전쟁 때 2년간 한국에 있었지.”


70-80년대 교포나 유학생들의 미국 생활 체험기에서 간간이 얻어듣기는 했지만 내가 실제로 참전용사를 만나보기는 처음이었다.


할아버지가 고갯짓을 했다.


들어와서 뭣 좀 마시겠나?”


그래서 나는 들어갔다.


 


처음에는 6개월이라고 했는데, 그게 1년이 되더니 결국은 2년이 됐어.”


할아버지가 콜라를 따라주며 말했다. 콜라는 좀 미적지근했지만 김은 빠지지 않아서 깡통 꼭지를 따자마자 탄산 거품이 기세좋게 올라왔다. 때는 초봄이라 아직 쌀쌀해서 음료가 너무 차갑지 않은 편이 오히려 나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씩 홀짝거렸다.


할아버지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영촌이라는 곳 아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가 조금 웃었다.


젊은 사람이니까 잘 모르겠지. 낙동강 근방인데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곳이었어.”


할아버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정확한 지명은 영이었다.)


2년 동안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걸 많이 봤지.”


보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는 콜라만 마실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제 나라를 위해 싸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치레가 아니고 진심이었다.


미국의 군대는 징병제가 아니고 모병제이므로 미군은 모두 직업 군인이다. 다른 직업을 놔두고 하필이면 남의 나라 전쟁에 파병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군대에 자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다.


내가 유학했던 주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미국에서 가난하고 뒤떨어진 지역의 대명사 같은 곳이다. 옥수수 농사 외에는 뾰족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특히 남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군에 자원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조교로 일하던 수업의 수강생 중에도 입대하면 군에서 대학 등록금을 대주기 때문에 자원입대한 학생들이 몇 있었다. 육십 년 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금은 이라크로 파병하고 그 때는 한국으로 파병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유가 뭐가 됐든, 한 개인으로서 지구상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에 가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전쟁에 참여하여 목숨 걸고 싸워준다는 것은 고귀한 행동이다.


할아버지는 내 말이 뜻밖이었던 모양이었다. 콜라 깡통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You are very welcome.”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나는 조용히 콜라를 마셨다.


콜라를 다 마셔갈 때쯤 할아버지가 물었다.


그럼 자네는 서울에서 왔나?”


내가 그렇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조금 웃었다.


내가 만나본 한국 사람들은 모두 서울에서 왔지.”


나도 조금 웃었다.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난 서울에서는 하루 이틀밖에 안 있었어. 판문점에서 석 달 있었지. 그 때 서울은 전부 다 타버려서 아무 것도 없었어.”


외국인의 입에서 내 나라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생경한 경험이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내 나라에 대한 추억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도 아주 오래 된 옛날 건물들은 살아남은 게 인상적이었지. 그냥 지나가면서 봤을 뿐이지만.”


할아버지가 다시 콜라를 마시면서 말했다.


한국은 아주 오래 된 나라라는 걸 느꼈어. 미국은 한국에 비하면 아주 젊은 나라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은 나도 종종 실감했다. 한국에서는역사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300, 500, 1000년 단위를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일어난 일을역사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말했다.


여기서 가던 길로 계속 직진하면 돼. 그냥 쭉 가다 보면 고속도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일 거야.”


초대가 끝났으니 이제 네 갈 길을 가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반밖에 못 마신 콜라 깡통을 내려놓았다.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고 일어서려는데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오래 된 것들을 만나게 될 거야. 미국은 젊은 나라지만, 미국이 있는 이 땅은 다른 어느 곳에 못지 않게 오래 됐거든.”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 당황해서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웃었다.


나도 그렇게 오래 된 것들 중 하나지. 사람은 오래 돼 봤자 겨우 백 살도 안 되지만. 아쉬운 노릇이지.”


나는 더욱 당황했다. 할아버지가 다시 웃었다.


아까 나한테 고맙다고 했지? 오래 된 것을 또 만나거든 그렇게 그냥 축복해주면 돼. 부활절이고, 봄이고, 모든 것은 되살아나고, 되살아날 권리가 있으니까.”


그리고 할아버지는 내가 마시던 콜라 깡통을 집어서 내밀었다.


가져가서 마셔.”


내가 교회를 나서자마자 할아버지는 내 등 뒤로 문을 탕 닫았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나는 계속 직진한 끝에 고속도로를 찾을 수 있었다. 이거 너무 오래 직진만 하는 거 아닌가 불안해지기 시작하던 차에 고속도로가 보이기 시작했고, 어떻게 하면 저기로 들어갈 수 있을까 궁리하는 와중에 도로표지판이 보였다. 표지판이 가라는 대로 따라가니 나는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있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학회장에 무사히 도착해서 일단 숙소로 갔다. 방을 배정받았다. 내 발표는 다음날 아침 여덟 시 반 첫 패널이었다. (이 때 뭔가 저주에 걸렸는지 나는 이후로 몇 년 동안 학회에 갈 때마다 매번 아침 여덟 시 반 첫 패널을 배정받았다…)


숙소는 학회 측에서 무료로 제공해 주었지만 2 1실이었고 룸메이트는 특별히 신청하지 않는 한 주최측에서 무작위로 배정했다. 그러나 나와 함께 방을 쓰기로 했던 여학생이 갑자기 사정이 생겨 학회 참석을 취소했기 때문에 나는 방을 혼자 쓰게 되었다. 개회식에 참여하고 강연과 발표도 한두 개 듣고 나니 피곤해서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아침에 출발해서 운전을 여섯 시간 가까이 했고 그 중 두 시간 넘게 잔뜩 긴장한 채로 알지 못할 동네를 헤매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저녁 먹으러 가자고 권했지만 나는 호텔 커피숍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들고 돌아와서 방에서 먹은 후에 쓰러져 잤다.


한참 자다가 너무 추워서 깼다. 에어컨을 켜둔 기억이 없는데 어디선가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 창문이 열렸나 생각하며 일어날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몸을 잔뜩 웅크려 봤지만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어나서 창문을 닫기엔 몸이 천근만근이었고 너무나 지독하게귀찮았다.


그 때 퍽, 데구르르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을 던져서 굴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아무래도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이라고 나는 이불 속에 잔뜩 웅크린 채로 결론을 내렸다. 찬바람도 창문으로 들어오고, 공놀이하는 소리도 창밖에서 들려온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 번 퍽, 데구르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이라 사방이 조용해서 그런지, 이불 속에 있는데도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그다지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신경에 거슬렸다. 계속 창문을 열어둔다면 춥기도 춥거니와 저 소리 때문에 제대로 잘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짜증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희끄무레한 형상이 침대 발치에 서 있었다. 뭔가 둥근 것을 내던졌다. 둥근 것은 방바닥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리고 의자에 부딪치더니 사라졌다. 분명히 사라졌는데 다음 순간 그 희끄무레한 형상이 다시 둥근 것을 안고 있었고, 다시 내던졌고, 그러면 둥근 것은 다시 방바닥을 굴러가서 의자에 부딪쳐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피곤하고 졸린 김에 나는 그 순간 학회 측에서 나 모르게 새로 룸메이트를 배정했으며 그 룸메이트가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회 참석자가 한밤중에 공놀이 따위를 할 리 없지만 어쨌든 당시 내 머릿속에 떠오른 합리적인 설명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일 아침 일찍 발표가 있어 잠을 자야 하니 공놀이를 그만둬 달라고 말하기 위해서 나는 희끄무레한 형상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익스큐즈 미.”


희끄무레한 형상이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내가 뭔가 더 말하기 전에 둥근 것을 내 쪽으로 내던졌다. 나는 얼떨결에 받았다.


둥근 것은 공이 아니었다. 아기였다. 백인 아기가 내 품에 안겨 있었다. 눈을 감고 얌전히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아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침대 발치를 다시 보니 희끄무레한 형상은 여전히 그대로 서서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나는 희끄무레한 형상과 아기를 번갈아 보며 당황해서 입을 열었다.


그 때 품에 안긴 아기가 눈을 떴다. 그 눈은 어둠 속에서도 이상할 정도로 뚜렷하게 보이는 파란색이었다. 그리고 아기가 입을 벌렸다. 어둠 속에서 그 입은 그냥 침침하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새하얗고 날카로운 송곳니 두 개는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기가 내 목을 향해 덤벼들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희끄무레한 형상 쪽을 향해서 아기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아기와 그 희끄무레한 형상은 동시에 사라졌다.


나는 일어나서 불을 켰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다.


 


나는 다시 잠들지 못했다. 동이 트기 시작했을 무렵에야 간신히 마음을 놓고 졸다 깨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눈을 떠 보니 여덟 시였다. 허둥지둥 침대에서 뛰쳐나와 초고속으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자료를 챙겨서 학회장으로 내려갔다. 아침도 못 먹고 간신히 학회장 입구에서 지독하게 맛이 없는 커피 한 잔만 얻어마시고 발표를 시작해야 했다. 질의응답하는 내내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릴까봐 긴장해야 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발표는 무사히 마쳤다. 새벽 여덟 시 반부터 남의 발표를 들으러 오는 열성분자는 몇 명 없었기 때문에 거의 발표자들끼리 돌아가면서 발표하고 서로서로 오붓하게 질의응답하는 분위기였다.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사람 수가 적고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에 질의응답과 토론이 한없이 이어졌다. 쉬는 시간까지 잡아먹고 다음 패널이 발표실을 내놓으라고 쳐들어왔을 때에야 우리는 해산했다.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해 있었다. 시간은 열한 시 가까이 되었고, 배는 고프다 못해 쓰렸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머리가 아팠다.


다음 패널에서 듣고 싶은 발표가 있었지만 속이 너무 아팠다. 일단 식당으로 달려가서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었다. 속쓰림은 가라앉았지만 두통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후로도 나는 학회 내내 두통에 시달렸다. 학회장의 발표실에는 창문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4월인데 에어컨을 미친 듯이 틀어대서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두통에 오한이 겹치자 나중에는 구토 증세가 일어나서 나는 애써 먹은 아침 겸 점심을 결국 모두 토해버렸다. 그냥 집으로 가 버릴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이대로 네 시간 동안 운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신 운전해줄 사람도 없었고, 학회는 오늘로 끝나고 내일 다시 학교에 가야 하니 더 이상 머무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두통약을 먹은 후에 학회장에서 무료로 무제한 제공되는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든 두통을 달래보려고 애썼다.


 


약을 먹었더니 두통은 더 심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아지지도 않았다.


학회는 오후 네 시에 끝났다. 그 때쯤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주차 확인을 받고 기타등등 뒷마무리를 하고 나니 학회장에서 출발했을 때는 네 시 반 정도였다. 여전히 머릿속에는 두통이 남아 있었고, 빗발은 점차 굵어지고 있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비가 마치 살수차로 퍼붓는 것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는 절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차들이 전부 다 물에 떠 가는 것처럼 보였다. 앞차 뒷바퀴가 돌아가면서 튀기는 물이 전부 내 차 앞유리창에 쏟아져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옆으로 대형 트럭이 지나갈 때면 그 크기와 진동과 바퀴에서 튀기는 물살이 거의 공포에 가까울 지경이었다.


앞유리창에 자꾸 김이 서려서 난방을 가동했다. 그 때문에 두통이 점점 심해지고 뱃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가 너무 세차게 뿌려대서 창문을 열 수가 없었다.


날씨와 도로 조건과 내 몸 상태와 모든 것이 전부 최악이었다. 나는 차를 갓길에 댔다. 시동을 껐다. 좌석을 뒤로 젖혔다. 창문을 살짝 열었다. 들이치는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는 감촉이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졌다.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했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두세 시간은 더 운전해야 한다. 너무 아파서 두 시간은커녕 이십 분도 더 운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음 출구에서 빠져나가 아무 데나 숙소를 잡고 좀 쉴까. 따뜻한 물로 씻고 약을 먹고 제대로 된 침대에 누워서 푹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숙소를 잡으면 돈이 든다. 그리고 두세 시간만 참고 운전하면 내 집에 가서 내 침대에서 잘 수 있다. 아침 여덟 시부터 벌써 여덟 시간이 넘게 참았는데 두세 시간을 더 버티지 못하고 또 어딘지 모를 곳에서 하룻밤을 더 지내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누가 이대로 차와 함께 나를 번쩍 들어서 집 앞에 내려 줬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누워 있다가 나는 잠깐 졸았던 것 같다. 뭔가 차가운 것이 오른손을 건드려서 살짝 눈을 떴다.


조수석에 어젯밤의 백인 아기가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나를 보며 웃었다.


하얀 송곳니가 드러났다.


 


나는 깜짝 놀라 진저리를 치며 깨어났다.


 


차를 세웠을 때부터 15분 정도 지나 있었다. 비는 여전히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졌다. 그래도 잠깐 잤기 때문인지 두통은 조금 나아져 있었다.


나는 시동을 켰다. 깜빡이를 넣고 도로에 재진입을 시도했다.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차들은 물살을 가르며 무서운 속도로 헤엄쳐 지나갔다. 도무지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한껏 돌리고 창밖에 지나가는 차들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노려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지나가는 차들은 나를 끼워줄 기색이 전혀 없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시도하기는 겁이 났다.


계속 왼쪽을 보고 있자니 목이 아팠다.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앞유리창을 통해서 비 내리는 하늘 한 구석에 뭔가 펄럭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깃발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깃발 치고는 하늘에 너무 높이 떠 있었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연이나 풍선 같은 걸 띄울 리도 없었다. 비행기라면 저런 식으로 펄럭거릴 리가 없다.


교회의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오래된 것들을 만나게 된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 펄럭이며 하늘을 날아가는 저것이 그오래 된 것이라면, 정말로 아주 오래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다른 곳도 아닌 이 나라에서 저런 걸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것을 만나거든 축복해 주면 돼.’


그래서 나는 하늘 구석에서 천천히 떠 가는 그 펄럭이는 것을 향해 속삭였다.


“I bless you.”


말해 놓고 보니 나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어로 하는 편이 나았겠다 싶었다. 그래도 애초에 할아버지의 말을 영어로 듣기도 했고, 무엇보다도축복이라는 말은 내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국어 단어가 아니었다.


들렸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안 들렸어도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그 펄럭이는 것은 내가 보거나 말거나 천천히 여유만만하게 꿈틀거리며 하늘을 가로질러 구름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차들의 흐름 속에서 드디어 끼어들 곳을 발견하여 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있었다.


 


주 경계선에는 반원형 구조물이 서 있었다. 내가 살던 주의 이름과 함께환영한다는 말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푹 놓였다.


주 경계선을 건너는 순간, 마치 칼로 자른 것처럼 비가 싹 그쳤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대충 씻고 침대에 쓰러졌다. 어찌 됐든 내 집과 내 침대가 세상에서 최고였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깨어났다.


또 다시 한기가 들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그리고 언젠가 들었던 퍽, 데구르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


어둠 속의 내 침대 발치에 호텔방에서 보았던 그 희끄무레한 형상이 서 있었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둥근 것을 내던졌다. 둥근 것은 바닥을 따라 굴러가서 침실 문에 부딪쳐 사라졌다가 희끄무레한 것의 품에 안긴 채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바닥으로 내던져졌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보고 있었다. 그 때, 호텔에서와 마찬가지로 희끄무레한 형상이 내 쪽을 보았다. 그리고 둥근 것을 나에게 던졌다.


굳이 받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다음 순간 둥근 것은 내 품에 안겨 있었다. 그 때의 그 백인 아기였다.


이전에 그랬듯이 아기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었다. 그리고 입을 벌렸다.


새하얗고 뾰족한 송곳니가 반짝 빛났다.


나는 깜짝 놀라서 질겁을 하며 이전처럼 아기를 던져 버리려 했다. 그 때, 문득 내가 저 희끄무레한 형상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기는 안아주고 달래주고 귀여워해줘야 하는 존재이다. 살아 있는 아기이든 오랫동안 죽지 않은 아기이든 마찬가지다. 바닥에 내던지고 공처럼 아무렇게나 굴리는 존재가 아니다.


이어서축복해주라던 할아버지의 말이 생각났다.


여행은 이미 끝났고 나는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외국에 혼자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나의 집 또한 어찌 보면 여행 중의 휴게소 쯤에 지나지 않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정체모를 존재들은 호텔에서부터 나와 함께 비 오는 고속도로를 여행해 왔다. 어떻게든 그들이 무사히 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해 주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일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I bless you.”


처음에는 아기에게 말했다. 그리고 희끄무레한 형상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I bless you.”


그 순간 아기도 희끄무레한 형상도 사라졌다.


 


나는 눈을 떴다. 방안은 캄캄했다. 몸을 일으켰다. 일부러 불을 켜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 것도 없었다.


한참이나 두리번거리다가 나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따뜻했다.


그래서 나는 드디어 잠이 들었다.


 


이 모든 일이 무슨 의미였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나는 다시 깨어나지 않고 푹 잤다. 아침에 무사히 일어났다. 다음날은 월요일이었고, 나는 학교에 가야 했다. 더 이상 머리가 아프지도 구역질이 나지도 않았고 비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 가는 길 정도는 헤매지 않을 만큼 잘 알고 있었다.


이듬해에 다시 같은 학회에 가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참전용사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서 일부러 그 때의 출구로 나가서 헤맸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 때의 그 교회는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때 이후로는, 외국에서든 내 나라에서든, ‘오래 된 어떤 것을 보는 일은 다시 없었다.

mirror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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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ret 11.08.08 18:36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옛날의 환상특급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약간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고, 그런데 뭐라고 말을 덧붙이거나 다른 이야기나 이유를 캐면 안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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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연 11.08.09 08:17 댓글 수정 삭제
    이야기 줄거리만 놓고 보면 '도로 괴담'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가볍지 않고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야기였어요. 여담이지만 댓글 달던 중에 컴퓨터가 멎어버리지 뭡니까. 가끔 멎으니 우연이라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글을 읽고 댓글 달려던 차에 컴이 멎으면 그건 또 나름 기이한 기분을 불러일으키거든요. ^^

    글이 가볍지 않은 건 이 글에 나온 '오래된 존재'가 괴담에 나오는 단지 '공포를 불러을으키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대상(참전 용사 할아버지)이자 아끼고 보살펴야 할 존재(아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고, 읽는 내내 어쩐지 몸이 식는 듯한 서늘함을 느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끝까지 읽은 건 도경님의 필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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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경 11.08.09 23:16 댓글 수정 삭제
    꺄핫 답글이다 답글~ Claret님 가연님 감사합니당 ^^*

    가연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 컴을 멎게 해서 죄송해요 (저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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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윈 12.04.01 23:43 댓글 수정 삭제
    아주 다정한 이야기네요.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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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경 12.04.02 10:59 댓글 수정 삭제
    앗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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