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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신기루

2011.02.25 23:5502.25


  좀비란 일반적으로 ‘되살아난 시체’로 알려져 있다. 영화나 외국 드라마 등의 대중 매체에서 보이는 모습은 죽어서도 죽지 못하고 반쯤 썩어 문드러진 채로 산 사람을 뜯어먹기 위해 끝없이 헤매 다니는 끔찍하거나 역겨운 이미지이다. 그러나 본래 좀비는 부두교의 주술사가 마법으로 영혼을 빼앗아 노예 상태로 만든 사람을 가리킨다. 아이티 등 부두교를 믿는 지역에서는 이런 좀비를 조달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주술사가 아직도 존재하며, 이렇게 정신을 뺏기고 주술사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따르는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주로 농장의 강제 노동 등에 동원되어 팔려간다고 한다.
  4년 전에 나는 유학을 떠났다. 미국 남부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에 대해 논문을 쓰는 것이 목적이었다. 때는 여름이었고, 하늘과 땅은 맑고 푸르렀으며, 태양이 쏟아내는 남부 특유의 강렬한 햇살이 사방의 모든 것을 씻어냈고, 도시는 축제 분위기로 흥청거렸다. 그곳에서 나는 주술사를 만났다.
  노예로 잡혀온 흑인들이 고수했던 특이한 관습은 아직까지도 남부 문화의 일부로서 깊이 자리잡고 있다. 부두교라는 종교 자체가 기독교계 신앙을 강요했던 농장주들의 탄압을 피하면서 흑인들이 고유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눈속임을 하는 과정에서 지배자들의 신앙과 노예이던 흑인들의 종교 체계가 기묘하게 결합되어 만들어진 산물이다. 한국에서는 먼 외계의 이야기 혹은 한낱 싸구려 흥미거리로만 여겨지는 이런 문화가 생생히 살아 있는 현장 – 즉 이런 종류의 무속 신앙 용품을 파는 가게라든가 전문 서점, 그리고 주술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점집 등이 가득 모여 서 있는 거리에서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즐거워하는 나를 보고 가이드 역할을 하던 청년이 ‘진짜 주술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나섰다. 이 청년은 내가 머무르던 숙소의 주인집 아들인데 태어나서 20대 중반이 되던 그 때까지 평생 그 고장을 떠나본 적이 한 번도 없으며 그러므로 그 지역의 문화, 역사, 관습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아는 진짜 전문가라는 것이 본인의 주장이었다. 숙소의 안주인이 무척 친절했고 그 아들인 청년 또한 허풍이 좀 심하기는 해도 대단히 재미있고 활달한 총각 같아서 첫인상부터 호감이 갔기 때문에 나는 절반쯤은 학문적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또 절반쯤은 여행 기분에 들떠서 그래 그럼 그 진짜 주술사를 만나게 해 달라고 나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부 짜고 치는 사기극이었던 것도 같다.
  어쨌든 늦은 저녁에 어느 북적이는 바에서 만난 주술사라는 남자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고 그 지방 사투리의 독특한 억양이 매우 심한 말씨를 쓰는 깡마른 흑인 남자였다. 자기 말로는 이름이 ‘로이’ (Roy)라고 했는데 민박집 아들은 그를 ‘보코’ (bokor) 라고 불렀다. 민박집 청년은 평소처럼 허풍 섞인 농담을 늘어놓고 로이나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호들갑을 떨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왠지 그 주술사라는 남자를 매우 경외하는 눈치였다.
  주술사 로이는 내게 영혼을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얼치기 학자답게 동서양 신앙체계의 차이에 대한 장광설로 답한 뒤에 잘 모르겠다는 불분명한 결론으로 매듭지었다. 로이는 내 말을 막지 않고 끝까지 참을성 있게 들어준 뒤에 그러면 신은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 역시 무속 신앙과 불교 신앙부터 개화기를 전후한 기독교의 역사까지 들먹이는 장광설로 답했다. 로이는 이번에도 끝까지 말없이 들어준 후에 내가 입을 다물자 다시 물었다. ‘너는’ 신을 믿느냐 (Do you believe in God?) 라고. 나는 여러 가지로 궁리했지만 끝내 확실한 답변은 내놓지 못했다. 애초에 내가 성장하고 생활했던 한국식 환경 자체가 신이나 영혼에 대한 진지한 문제 제기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었으므로 그 당시 내놓을 수 있었던 최선의 답변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함정이었던 것 같다.
  주술사 로이는 웃으면서 ‘좋다’ (Good)라는 한 마디로 길고 복잡한 대화를 정리하더니 술을 시켜 주었다. 이 지역 특산 식물로 만든 고유의 술인데 다른 곳에서는 마실 수 없는 귀한 음료이며 이 지역 전체에서도 이 바에서 가장 맛있게 만든다고 설명하면서 외지에서 오신 숙녀에게 흥미로운 대화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그 말투나 표정이 신이나 영혼에 대해 물어볼 때와 딴판이라서, 사람이 달라진 게 아닐까 싶게 눈빛까지 변할 정도로 딴판이라서 속으로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대화의 내용도 분위기도 달라졌기 때문이려니, 정도로 생각해 버렸다. 서양에서 흔히 맞닥뜨리는 남자들이 여성을 대접해주겠다는 기사도인지 허세인지 모를 행동들이 내 문화의 일부가 아니라서 낯설기는 해도 불쾌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로이가 사주는 술을 흔쾌히 받았다.
  무표정한 바텐더가 기묘하게 생긴 술잔에 녹색 술을 따라서 앞에 놓아주었다. 의례적인 감사를 표하려고 잠깐 눈이 마주치자 바텐더는 얼굴을 돌려버렸다. 미국인들의 일상적인 생활 예절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상당히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이상하거나 불쾌하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로이가 물었다.
  “무엇을 위해 건배할까?”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민박집 총각이 뒤에서 건강이니 사랑이니 주워 섬기며 또 호들갑을 떨었지만 로이는 우아하게 무시했다.
  “신께서 돌보아 주시는 너의 영혼을 위해, 어때?”
  나는 신도 영혼도 믿지 않는다고, 최소한 확고하게 믿지는 않는다고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로이는 대답하지 않고 한쪽 입끝을 들어올려 미소 지으면서 잔을 들어 내 잔에 가볍게 부딪쳤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자 녹색 술에서 박하 냄새와 또 다른 여러 가지, 무엇인지 잘 구분할 수 없는 씁쓸한 약초 같은 냄새가 풍겼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만 넘기고 내려놓았지만 로이는 잔을 전부 비웠다. 그리고 탁, 소리 내며 잔을 내려놓은 뒤에 내게 말했다.
  “내기 하나 하지?”
  그 목소리와 표정이 어쩐지 괴기하게 느껴졌고 무엇보다도 술잔을 내려놓고 내게 시선을 돌린 순간 로이의 눈에서 녹색 불꽃이 튄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주저했다. 흑인이라고 몸의 색소가 전부 검은 것은 아니다. 흑인 중에도 출신 지역에 따라 머리가 금발인 사람도 있고 눈이 푸른 사람도 있다.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었고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저런 고양이 같은 밝은 초록색 눈은 인종을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보기 힘들 듯 싶었다. 저 사람, 아까 처음에 만났을 때도 눈이 저런 색이었던가….
  “무슨 내기?”
  라고 먼저 되물은 사람이 민박집 총각이었는지 나였는지 여기서부터 이미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렇게 물었다는 사실 자체로 반쯤은 걸려들었던 것이다. 내기의 내용은 아주 간단해서, 25센트짜리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내 영혼은 내가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뒷면이 나오면 영혼을 로이가 가져가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영혼의 존재를 전적으로 믿지 않으니 이런 내기는 성립이 안 되잖아?”
  내가 항의하자 로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영혼’이라고 하지 말고 ‘너의 자신’ (your self)라고 할까?”
  ‘너의 자신’을 ‘너 자신’으로 듣고 내가 다시 반박했다.
  “영혼은 몰라도 나 자신이 존재하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어. 그리고 나는 25센트 동전 따위에 팔아먹을 만큼 싸구려가 아니야.”
  “아니,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내가 표현력이 부족했나보군.”
  로이가 바텐더에게 눈짓을 하면서 말했다.
  “네가 아까 말한 ‘서양의 신앙 체계’에서 영혼이란 사람이 죽고 나서도 영원히 남는 것, 그 사람이 평생 지은 선업과 악업을 모두 짊어지고 창조자이신 신 앞에 나서야 하는, 사람의 존재에서 핵심이 되는 것,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 너의 신앙 체계에 따르면 죽은 뒤에 유일신이신 조물주 앞에 나아가지는 않는다 치더라도 그와 비슷한 어떤 것, 네 존재의 핵심을 이루는 무언가가 존재하긴 할 거야. 그렇지 않아?”
  “당연히 존재하지.”
  내가 로이를 흉내내어 박하와 약초 냄새를 풍기는 술잔 속의 녹색 액체를 입 안에 털어넣은 뒤에 말했다.
  “그렇지만 그게 영혼이 됐든 뭐가 됐든 25센트 동전에다가 내 존재를 걸 수는 없어. 술 한 잔 마셨다고 그렇게까지 취하지도 않았고, 내가 외국인이라고 해서 바보라는 뜻은 아냐.”
  “아니, 아냐. 오해하고 있군.”
  로이가 손사래를 쳤다.
  “나는 고작 25센트 동전을 던져서 너의 귀중한 뭔가를 빼앗으려는 게 아냐. 그보다는 계속 이야기하는 신과 영혼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거야. 하지만 이런 건 믿음의 문제이고 믿음은 논리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여기는 바이고 우리는 술을 마시고 있으니까, 재미삼아 내기를 하자는 거지. 앞면이 나오면 네가 이기고, 뒷면이 나오면 내가 이기는 걸로.”
  “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뭘 걸고 내기를 하자는 거야?”
  바텐더가 로이 앞에 두 번째 녹색 술잔을 내려놓았다. 로이가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했다.
  “이런 건 어때? 신과 영혼과 너의 자신과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앞면이 나오면 네가 무조건 옳고, 뒷면이 나오면 내가 무조건 옳다고 결정하는 거야.”
  “하지만 내기란 뭔가 걸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아무래도 석연치 않아서 되물었다. 로이는 다시 한 번 녹색 술잔에서 한 모금을 빨아 마시고 입술을 혀로 핥았다.
  “걸지 않아도 상관없어. 굳이 걸어야 한다면 절대적인 ‘옳음’ (the absolute rightness)을 걸지. 앞면이 나오면 네가 절대적으로 옳은 거고, 뒷면이 나오면 내가 무조건 절대적으로 옳은 거야. 오케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로이가 바텐더에게 손짓했다. 바텐더가 내 앞의 빈 잔을 치우고 녹색 액체가 든 술잔을 하나 더 가져다 놓았다. 로이가 반쯤 남은 자신의 술잔을 들면서 말했다.
  “어때? 절대적인 옳음을 위하여.”
  두 잔을 연거푸 마셔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지만 그 때까지 나는 전혀 취기를 느끼지 못했다. 걸린 것이 없으므로 잃을 것도 없이 술김에 하는 내기 정도, 반 장난삼아 응해 주면서 이 주술사와 친해두면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절대적인 옳음을 위하여.”
  하고 나도 잔을 들었다. 잔을 부딪치면서 로이가 뭔가 입을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술잔을 비웠다. 로이가 동전을 던졌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동전은 뒤가 나왔다.
  “어때, 내가 절대적으로 옳지?”
  로이가 다시 그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다고 하….”
  말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내가 절대적으로 옳으니까,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해.”
  로이가 중얼거렸다.
  “나는 절대적으로 옳다. 그러니까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로이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손가락을 가볍게 탁, 튀겼다.
  …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4년 전의 일이다. 게다가 나는 위에서 말한 대로 기묘한 술을 마시고 의식을 잃었다. 그러므로 대화를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기억은 커녕 이제 와서 생각하면 마치 오래 전에 얻어들은 남의 꿈 얘기처럼 흐릿하고 몽롱할 뿐이다. 제대로 기억이 나는 것은 내기의 내용 – 나의 ‘자신’을, 나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걸고 ‘절대적인 옳음’을 시험하자던 그 말 뿐이다.
  위에 쓴 대화는 내가 더듬거리며 불분명하게 회상한 내용을 토대로 방송사에서 제멋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류의 흥미 위주 재연 프로그램이었는데, 출연료로 준다는 얼마 안 되는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방송 따위에서 보여주는 얄팍한 싸구려 관심에도 넘어갈 정도로 나는 절박했던 것이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그 때 그 숙소의 문 앞에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일단은 병원으로 이송된 후에 경찰이 개입했는데, 사라졌을 당시에 개강한지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닿지 않자 마음씨 착한 룸메이트가 실종 신고를 해 준 덕에 기록이 남아 있어서 신원은 비교적 빨리 파악되었다. 비자 기한은 5년이었고 미국 학교에서 발행하는 학생 신분 증명 서류인 I-20에 기재된 수학 기간은 6년이었기 때문에 4년이나 행방불명 상태였지만 다행히 학생 신분도 아직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입학할 당시에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반강제로 가입해야 했던 종합보험이 뜻밖에도 도움이 되었다. 입이 딱 벌어지는 액수의 병원비와 실종되었던 동안 밀린 기숙사 월세, 그리고 학교에서 이후의 행정적인 처리를 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수수료 등이 보험으로 처리되었고, 범죄 피해자로 분류되어 보상금도 어느 정도 지급받았다. 그 보상금으로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살 수 있었다.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딱 그 정도였다.
  그렇게나마 비교적 원만하게 사후 처리를 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4년이라는 시간을 잃었고, 기억을 잃었고, 유학을 떠났을 당시에 품었던 희망, 하고 싶은 공부를 해서 학위를 취득하고 연구와 강의 쪽으로 진로를 잡아 경력을 쌓겠다는 꿈, 그 모든 것을 다 잃었다. 기숙사 방에 있던 내 물건들은 1년이 지나자 학교에서 처분했고 은행구좌의 얼마 되지 않는 잔고와 보험회사에서 준 보상금은 모두 뒷처리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데 써버렸으므로 돌아왔을 때 가진 것이라곤 정말로 아무 것도 없이 딱 입고 있는 옷 정도였다. 게다가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내 힘으로 일어서거나 걷는 것은 물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약해져 있었다. 미국에서는 경찰도, 병원 관계자들도, 학교 관계자들도 내가 너무 끔찍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일’을 당한 것이 틀림없다고 지레짐작하고 나를 피해자로 취급했다. 한국에 돌아오자 가족들은 나를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 이라기보다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대했다. 친구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며 몸과 마음이 병든 환자로 취급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호기심에 가득 차서 뭐 하나라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쥐어짜려는 부류였다. 방송사에 연락한 것도 아마 후자 쪽에 속하는 누군가였을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나는 혼란스러웠다. 우선은 거의 기억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나 자신도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러저러한 상태이니 어떻게 대해 달라고 분명히 주장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극소수의 파편적인 기억은 주변 사람들의 지레 짐작과 너무나 달랐다.
  실종되었던 그 4년 동안, 나는 … 행복했던 것이다.
  머리가 돌아버린 게 아니다. 최소한 나 자신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약물에 중독되었다거나 세뇌를 당했다거나 기억을 조작당했을 수도 있지만 부두교의 주술사에게 영혼을 빼앗겨 4년 동안 좀비 상태로 지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므로 그 이상 환상 소설이라든가 음모 이론 같은 전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일을 당한 것 치고는 스스로 느끼기에 나 자신이, 육체적으로는 허약했지만 최소한 정신적으로는, 너무나 정상이었다.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처럼 희미한 기억의 파편을 제외하면 나는 그대로 4년 전 처음 유학 떠나던 당시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 그 때의 나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그래서 비판이나 반박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기억이나마 냉철하게 객관적인 제 3자의 눈으로 짜 맞추어 내 입장에서 앞뒤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줄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가족도, 친구도, 의사도 그렇게 해주려 하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원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태도를 보여준 사람이 하필 일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어느 지인의 제보를 받고 연락해 온 방송사 PD였다. 그래서 나는 방송 출연에 동의했고, PD와 작가와 함께 어느 커피숍에 앉아서 기억나는 대로 전부 털어놓았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다.
  그 대부분은 ‘눈’이었다. 추운 겨울에 하늘에서 내리는 그 눈이다. 부두교의 주술사에게 홀린 좀비들이 노예 노동을 하는 곳이 대체로 더운 지방이고 내가 찾아갔던 남부 지방도 굉장히 더운 곳임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긴 하다. 이 기억이 과연 진짜인지 여기서부터 의심스러워지기는 하지만 어쨌든 머릿속에 남아 있는 영상은 그러하다. 눈.
  첫 번째 기억은 바닷가였다. 해안가 전체에 눈이 덮였다. 인적은 없었고 단지 눈 속에 파묻힌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뒤로는 푸른빛의 겨울 바다가 펼쳐졌고, 그 바다는 저 멀리 수평선에 같은 색의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하늘도 바다도 모두 이상할 정도로 맑은 푸른색, 청록색도 하늘색도 아닌 순수한 푸른색이었고, 수평선에서 맞닿아 어디까지 바다이고 어디서부터 하늘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저 새하얗게 눈이 덮인 해변, 눈 덮인 소나무, 그 뒤로 푸르고 쓸쓸하게 펼쳐진 바다와 그 안으로 녹아든 하늘이 있을 뿐이었다. 황량하고 초현실적이었다. 인적 없는 공간과 차가운 대기와 새파란 바다와 선녀의 옷처럼 이음매 없이 펼쳐진 새파란 하늘을 가득 채운 것은 한없는 자유였다. 그래서 그 광경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두 번째 기억은 눈밭의 요정이다. 숲이었고, 나무들이 눈에 덮여 있었다. 그곳에서 푸른 옷을 입은 요정이 나타났다. 등 뒤에 날개까지 달고 있었다. 다만 서양 동화 같은 데 나오는 것처럼 조그맣거나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과 똑같은 몸집의, 보통보다는 키가 좀 큰 날씬하고 예쁜 백인 아가씨였다.
  눈 내린 숲 속에 맨발로 서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손가락을 입술에 갖대다고 쉿, 말하지 말라는 신호를 했다. 그리고 곧 나무 뒤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나타난 순간 요정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자 요정은 반대편에서 다시 나타났다. 처음에 보았을 때와 같은 맨발이었다. 나를 보고 살짝 웃더니 또 다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정말로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게 될까봐 방송사에도 친구들에게도 정신과 의사에게도 이 요정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요정이 아니라 요정 차림을 한 보통의 아가씨였기 때문에 나는 이 기억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등에 달린 날개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였고, 하늘하늘한 치맛자락에 줄지어 매달려 반짝이는 스팽글 중에서 한 조각이 떨어져나가고 없었다. 다만 그런 차림의 아가씨가 왜 눈 내린 숲 속에 맨발로 서 있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눈 속에서 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삽을 들고 눈을 파내기도 했고, 물이 가득 찬 무거운 양동이를 양손에 들고 눈과 얼음으로 덮인 언덕을 올라가기도 했고,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눈 덮인 밭두렁 같은 곳을 여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줄지어 걸어가기도 했다.
  추위도 배고픔도 목마름도 느끼지 못했다. 힘들지도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주 가끔씩 희미하게나마 무언가 느낀다면 그것은 충만한 일체감이었다. 나는 언제나 나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사람들 사이에 ‘나’는 없었다. 내가 나라는 자각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함께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였다. 그리고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우리의 머릿속에 오로지 존재하는 유일한 생각은 각자의 자아 혹은 미약하나마 들려오는 무의식의 소리가 아니라 ‘그’의 목소리였다.
  ‘그’가 누구인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방송에서는 이야기 진행의 편의상 내게 처음 주술을 걸었던 주술사의 목소리인 것처럼 재연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4년 전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그 깡마른 흑인 남자의 기묘하게 불길한 갈라진 목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그 남자, 주술사 로이는 좀비가 될 사람들을 데려다가 속여서 영혼을 빼앗아 파는 것이 전문이다. 그러므로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그 사람들이 팔려가서 일을 하게 된 이후에도 몇 년이나 그 여러 사람의 머릿속에 굳이 자기 목소리를 주입할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자기가 팔아먹은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끌려가서 어떤 일을 하는지 일일이 신경쓸 것 같지도 않다. 그러므로 ‘그’는 로이에게서 나를 사서 어딘가의 눈밭에 데려다가 일을 시킨 사람일 것이다. 미국 경찰에게서 들은 표현을 인용하자면 납치 감금 및 강제 노동을 시킨 인신매매범인 것이다. 그러나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유일한 기억인 ‘그’의 목소리를 떠올릴 때면 내가 느끼는 것은 납치나 감금 등에서 연상되는 공포나 두려움, 괴로움이 아니다.
  유대감. 안정감. 그 목소리는 지구상에, 아니 온 우주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창조주의 목소리와도 같았다. 나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언제나 머릿속에서 동시에 모두 함께 그 목소리를 들었고, 목소리가 들려올 때면 아무도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전혀 일말의 의심조차 품지 않은 채 그 소리가 명령하는 바를 실행에 옮겼다. ‘그’의 목소리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절대 진리였고, 거기에 따르는 것은 의식적인 복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본능적인 반사 작용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이었고, 같은 충만함을 느꼈고, 우리들 전체보다도 (‘나’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훨씬 더 크고 절대적으로 중요한 누군가를, 무언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데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행복감을 느꼈다. 그 행복감은 나라는 개인이 혼자서 느낄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설명할 수 없이 커다랗고 안온한 것이었다.
  미국 경찰에서 진술을 받으러 온 정신과 전문의와 학교에서 붙여 준 정신과 의사는 모두 스톡홀름 신드롬을 의심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성폭행 여부를 캐물었다. 기억이 없었으므로 내가 진술할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았다. 사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발견 직후 병원으로 이송되어 검사도 받았는데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그러나 검사 직전에 폭행을 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난 4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잘 생각해 보라고 경찰과 의사들은 끈질기게 어르고 달래며 몇 번씩이나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수백, 수천 번을 질문한다 해도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가 됐든 폭행을 하려면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머릿속을 헤집어도 ‘그’에 대해 생각나는 것은 목소리뿐, 실제로 모습을 본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그’의 목소리를 떠올릴 때면 나는 언제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을 느꼈다. ‘그’라는 존재에 대한, 한 개인에 대한 그리움이라기보다는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퍼질 때 모두와 함께 경험했던 그 안정감, 충만한 일체감 – 행복감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물론 그 모든 경험은 거짓이었다. 우리는 우리보다 크고 중요한 어떤 것을 위해 봉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인신매매범의 속임수에 어떤 식으로든 넘어가서 몸에 해롭고 마음을 흐려놓는 약을 먹고 제정신을 빼앗긴 채 욕심 사나운 다른 인간의 노예가 되어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채로 강제로 노동을 하면서 사기꾼의 배를 불려 주었을 뿐이었다. 그곳에는 유대감도 일체감도 있을 수 없었고 행복은 더더구나 존재할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피해자였고, ‘우리’로서 공감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피해자로서의 공분 뿐이었다.
  경찰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몇 번이나 듣고 미국과 한국에서 정신과 의사들과 몇 번이나 상담을 하면서 나는 이 사실을 차츰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4년간의 기억 중에서 유일하게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그’의 목소리는 무슨 수를 써도, 그 어떤 해명을 들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목소리를 떠올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그리움, 행복감, 그 충만한 일체감은 아무리 애를 써도 부정할 수 없었다. 주변의 상황이 전부 거짓이고 기만이었다 하더라도 나 자신의 존재를 마음 밑바닥부터 가득 채웠던, 나와 우리를 받쳐주고 존재라는 것의 의미를 그토록 생생하게 되살려 주었던 그 감정만큼은 진실이었다.
  거짓된 상황에서 진실한 감정을 우러나게 하는 것, 혹은 진실한 감정을 유도하여 거짓된 상황을 눈속임하는 것, 바로 그것이 아마도 사기극의 필요충분 조건일 것이다.


  내가 주장하고 싶었던 요점은 이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설명하려고 했던 내가 바보였던 것 같다. 어쨌든 걱정하시는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들에게, 그 4년이 그렇게까지 무시무시한 세월은 아니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에 주변 사람들은 더욱 경악하고 더욱 걱정했다.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엄마는 내 말을 반쯤 듣다 말고 이렇게 소리쳤다.
  “너, 거기서 무슨 약 먹었니? 그 남자가 약 먹이고 너랑 잤어?”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울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들은 너무나 근심스러워하면서 나의 육체적 정신적 안위를 염려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 자기들 멋대로 상상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을 어떻게든 한 가지라도 더 끄집어내려고 들었기 때문에 역겨워져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한 가지 소득이라면 주변 사람들 중에서 누가 진짜 나를 생각해주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정도였다. 그런 부차적인 정보도 애초에 내가 원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방송에 나갔을 때는 당연하게도 그곳에서 정체모를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지냈을 때 느꼈던 유대감이나 일체감, 행복감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편집되었다. 대신 그 4년간의 경험은 ‘돌아오지 않는 어두운 기억’이니 ‘악몽과도 같은 날들’이니 하는 뻔한 수식어를 남용하여 무슨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되었고, 나는 그저 괜한 호기심에 쓸데없이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일부러 찾아갔다가 좀 희귀한 사고를 당한 여자 정도로 알려졌다. 그다지 시청률이 높지도 않았던 방송에 약 3분 26초 정도 얼굴을 내민 결과 20세기 이후로 연락이 두절되었던 초등학교 동창부터 사돈의 팔촌은 물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까지 나에게 전화와 메일과 문자를 퍼부어댔고 인터넷 게시판에는 ‘불쌍하다’ 혹은 ‘무섭다’는 예측가능한 단답식 논평부터 나를 분쟁 지역에 일부러 찾아갔다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억류되었던 어느 종교단체와 비교하면서 무책임하고 멍청하고 ‘납치당해도 싼 X’으로 매도하는 글까지 떠돌았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들은 모두 방송국의 의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그 어떤 반응도 진실에, 최소한 내가 느끼는 진실에 근접하지 못했다. 애초에 진실에 근접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가 메일을 보내왔다.


  방송에 나간 뒤로 나의 메일함은 부쩍 늘어난 각종 스팸 메일과 함께 소모성 흥밋거리를 찾는 사람들,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이유로 쌓인 원한과 분노를 안전하게 풀만한 마땅한 통로를 찾는 사람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혹은 해답이 모호한 여러 가지 초자연적 문제에 대한 각종 정신적, 육체적 ‘해결책’을 제시하겠다는 사이비 종교단체 관련자들의 메일로 언제나 넘쳐나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이 낯설었고 그의 메일도 그런 읽을 가치가 없는 정보 사이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나는 읽지 않았다. 얼마쯤 지나서 남자가 다시 메일을 보냈을 때도 읽지 않았다. 그 후로 세 번쯤 더 메일이 날아오자 이름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로 그 이름이 눈에 띄었을 때는 드디어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남자가 보낸 여섯 번째 메일의 제목은 ‘그의 목소리’였다. 미해결 납치 사건에 대한 무슨 영화 제목과 비슷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쨌든 나는 열어보았다.
  그러니까 남자의 요지는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으며 그런 경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남자가 실종되었던 곳은 다름 아닌 부두교의 본거지 아이티였다. 회사 일로 장기 출장을 갔다가 그곳에서 친해진 거래처 사람에게 이끌려 주술사를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재미삼아 이상한 술을 마셨고 이후 기억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아이티에는 대한민국 공관이 없기 때문에 남자가 실종된 후에도 같이 출장가 있던 회사 동료들이 알음알음으로 물어봐주는 것 외에는 딱히 공식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대지진이 일어난 것이 남자에게는 오히려 행운이었다. 구조대가 왔고, 이 신원 불명의 동양인 남자가 아이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가 봐도 명백했으며, 내가 그랬듯이 남자도 육체적으로 몹시 탈진한 상태인데다 대지진의 여파로 부상까지 입었지만 그 덕에 오히려 제정신을 차려서 적어도 구조대에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 정도는 진술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남자는 구출되어 다른 한국 교민들과 함께 인접한 도미니카 공화국에 있는 한국 대사관으로 인계되었고, 그렇게 해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남자는 한국의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부두교 따위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만난 이상한 흑인 남자가 주술사라는 사실도 몰랐다. 그저 거래처 사람이 자기 ‘친구’이며 아이티 특유의 ‘전통적인 관습’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말을 믿었다. 자신이 한동안 실종되었다는 사실도 고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실종되었던 기간 동안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단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뿐이었다.


  - 방송에서 나왔던 것과는 달리 제가 기억하는 그 목소리는 그렇게까지 끔찍하고 공포스럽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정말로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그 목소리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지면서 너무 그립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하면 저를 모두 미친놈 취급합니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회사에서 정신이상이라고 소문나서 짤릴까봐 같이 출장갔던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못합니다.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이 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생전 일면식도 없는 분께 불쑥 이런 메일을 드려서 정말 죄송하지만 부탁이니 꼭 연락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메일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는 물론 사무실 전화번호까지 적어 놓았다.
  연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자와 나는 만났고, 석 달 뒤에 결혼했다.


  사랑해서 결혼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기에는 남자도 나도 서로를 너무 몰랐고, 딱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 우리가 서로에게서 찾고 있던 것은 사람의 한평생에 비교할 때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사람이 평생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감정보다도 압도적으로 깊고 강렬하게 자신을 지배했던 무언가의 환영이었다. 비록 환영일지라도, 신기루일지라도 그것을 기억하고 그 흔적을 보존하는 작업이 적어도 남자와 나에게는 무척 중요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세상 전체 – 는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대한민국에는 남자와 나 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사랑보다 훨씬 더 강한 유대감이었다. 그리고 그런 유대감에서 우리는 한때 경험했던 그 충만한 일체감의 잔영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했다.
  그러나 남자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했던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남자는 계속 찾고 있었다.


  남자가 실종되었던 기간은 1년이 채 안 되는 정도로, 나보다 훨씬 짧았다. 그래서인지 남자는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목소리의 잔상 외에는 정말로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내 경우 기억 속에 떠도는 파편들은 환각인지 꿈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고,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목소리와 그것이 가져다주었던 안정감이나 충만함을 포함한 모든 경험이 전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비현실감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내가 현실로 돌아와 재적응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세상에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괴로웠던 기억도, 행복했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고 그 위에 일상과 생활의 먼지가 쌓이면 어쩔 수 없이 희미해지게 된다. 평생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목소리, 그리고 그와 함께 느꼈던 유대감, 그 안온한 행복감과 가슴을 찢는 그리움은 기억 속의 잔상들이 희미해져 가면서 함께 빛이 바랜다.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 중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강력하고 소중했던 기억이 이런 식으로 시간 속에 매몰되고 녹아 흩어져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한 번 괴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전부 거짓이었고 나는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주 아름답고 빛나는 것을 눈 앞에 매달아 두었다가 손을 뻗어 잡으려는 순간 누군가 앗아가 버린 듯한 느낌이었고, 비록 그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 실체 없는 속임수였을지언정 상실감만은 진짜였으므로 나는 꽤나 오랫동안 괴로웠다. 그러나 나는 아직 살아 있었고, 현실은, 나의 일상은, 앞으로 하루하루 일구어 나가야 할 나의 미래는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눈밭의 요정에 대한 기억보다, 누구인지 알지도 못할 사기꾼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4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동안 정말로 모든 것을 다 잃었으므로 한 시라도 빨리 새로 시작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새로 시작했다. 유학을 가기 위해 자퇴했던 대학원에 재입학 원서를 냈고, 등록금이 필요했으므로 과외도 하고 학원 강사도 뛰었다. 방송 따위에 괜히 나갔다가 쓸데없이 얼굴이 알려지는 바람에, 부두교의 주술사에게 영혼을 빼앗겼던 여자에게 아이를 일대일로 맡기려는 학부모는 거의 없었다는 게 타격이라면 타격이었다. 그러나 학원가에서는 의외로 나를 환영하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쪽 나름대로는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었던 모양인데 홍보용 사진을 찍어야 하니 피부관리를 받으라는 말을 듣고 나는 본의 아니게 웃고 말았다. 사실 그 말은 방송이 나간 뒤에 몇몇 친구들에게도 들은 적이 있었다. 4년 동안 관리는 고사하고 세수도 제대로 못 하고 야외에 나가 눈과 바람와 태양에 그대로 노출된 채 나 자신은 기억도 나지 않는 육체노동을 했기 때문에 돌아왔을 때 나는 팍삭 늙어 있었다. 방송에서는 ‘무시무시한 악몽의 세월’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관리 받으라는 소리도 안 하고 분장도 거의 안 한 채로 망가진 얼굴이 그대로 나갔다. 나쁜 놈들, 이라고 피부관리실 침대에 누워서 생각하다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피부관리사가 팩 할 때 움직이면 주름 생긴다고 주의를 주었다. 여기서 주름이 더 생겨봤자 별로 달라질 것도 없는데, 라고 생각하니 삐질삐질 웃음이 더 새어나왔다. 그렇게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남자는 달랐다.


  귀국하고 나서 몸이 회복된 후 남자는 아이티로 다시 돌아가려 했다. 물론 갈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말리는 것은 둘째 치고 지진의 여파로 기자나 구조대가 아닌 이상 그 주변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직접 갈 길이 막히자 남자는 국내에서 아이티와 부두교에 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터넷을 떠도는 믿거나 말거나, 혹은 민속학 책 등에 나오는 수박 겉핥기식 자료 외에 남자가 원하는 종류의 정보가 있을 리 없었다. 어찌어찌 무슨 오컬트 동호회와 연락이 닿아서 만나보았는데 동호회 회장이라는 어린 남자애가 이상한 질문만 잔뜩 하더니 다음날 남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마치 자기가 겪은 것처럼 각색해서 인터넷 게시판과 자기 미니홈피에 장식해 두었다든가, 이태원의 어느 바에 가면 주술사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렵게 찾아가서 주는 대로 음료를 마셨는데 다음날 지갑을 홀딱 털린 채로 길바닥에서 깨어났다든가, 이런 종류의 실망스러운 사건들만 몇 번 겪고 나서 남자는 부두교 쪽은 일단 포기했다.
  대신 일반 종교단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남자가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꼭 그 ‘목소리’를 되찾는 것이라기보다 거기서 느꼈던 안정감과 일체감을 다시 느끼는 것이었다. 꼭 아이티의 그 주술사가 아니더라도 그런 충만함을 종교에서라면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남자가 미처 몰랐던 것은, 일반인이 상식적인 방법으로 그런 충만함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진심으로 공을 들이고 마음을 전부 쏟아붓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런 갈등도 의심도 없이 자기 자신을 잊고 저 위의 목소리와 하나가 된, 말 그대로 몰아(沒我)의 합일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성직에 평생 몸담거나 아주 오랫동안 수도를 해오신 분들이라도 이루기 힘든 경지였다. 혹은 해병대 특수훈련 수준의 격렬한 신체 활동을 단체로 수행하는 것도 비슷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라면 방법이었지만 소요되는 에너지에 비해 가능성이 너무 적었고, 혹여 남자가 갈망하는 합일의 상태에 도달한다 해도 지속 시간이 너무 짧았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남자는 군대를 다시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향정신성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었는데 이 역시 지출되는 비용에 비해 지속 시간이 너무 짧은데다 신체적 후유증이 상당히 심했고 무엇보다 자칫하면 감옥에 안착할 가능성이 있었는데 그것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못했다.
  남자가 원하는 것은 몰아와 합일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가능한 한 오래, 어쩌면 영원히.
  정상적인 종교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남자는 차선책으로 사이비 종교단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쪽에서 제공해주는 만족감은 남자가 원했던 수준과 조건에 가장 근접했다.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은 비교적 적었고, 지도자가 시키는 대로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몇 시간씩 소리치고 박수치고 제자리에서 뛰고 수백 번씩 절을 하며 바닥에 이마를 부딪치는 와중에 겪게 되는 충만하게 넋 나간 상태는 다른 방법에 비해 비교적 지속 시간도 길었고 남자가 원하는 만큼, 때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반복되었다.
  그리고 이기적인 개인에게 교묘하게 이용당해 사기꾼의 배를 불려주고 있다는 사실도 그 당시와 같았다. 남자는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친구들은 하나 둘씩 그를 외면했으며, 가족들의 시름은 깊어갔다. 남자가 나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방송에 나왔던 내 얼굴을 알아본 남자의 아버지가 상을 엎고 남자의 누나가 들고 있던 물컵의 물을 내게 끼얹은 것도 어찌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남자와 나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세상에 둘만 남았다.
  그리고 남자는 나를 떠났다.


  방송을 본 직후부터 남자는 아이티 대신 미국 남부의 내가 실종되었던 지방을 조사하고 있었다. 처음에 만났을 때부터 내게 관련된 지명과 숙소의 위치, 관계자들의 이름, 당시의 상황 등등을 아주 자세하게 물었다. 남자와 나의 사정이 사정이었으니만큼 나는 아무런 경계심 없이 물어보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전부 다 대답해 주었다.
  그 때부터 남자는 찾고 있었다. 내가 현실로 돌아와 나의 삶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동안에도, 나와 결혼한 뒤에도 남자는 줄곧 찾고 있었다.
  물론 부두교의 주술사가 자기 실명과 연락처를 내걸고 피해자를 공개 모집할 리는 없었으므로 스스로 ‘로이’라고 말한 깡마른 흑인 남자의 정체나 행방은 묘연했다. 그러나 내가 묵었던 숙소는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었고, 친절했던 안주인과 호들갑이 심하고 활달한 그 아들도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살고 있었다. 인터넷 홈페이지 같은 것은 없었고 내 기억에 따르면 그 숙소는 인터넷이 아예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클릭 몇 번으로 쉽게 찾아낼 수는 없었지만, 해당 지역 관광 정보 등을 파헤치다 보면 전화번호 정도는 어떻게든 찾아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전화를 했고, 처음에는 숙소의 안주인과, 이어서 안주인의 아들과 통화를 했다. 안주인의 아들은 변함없이 허풍 섞인 농담을 쉴 새 없이 던져 가면서 지역 사회에 대한 자신의 지식과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럼, 당연히 이 지역의 모든 것은 내가 다 알고 있다. 물론, 부두교의 진짜 주술사도 몇 명이나 알고 지낸다. 말할 것도 없이 나와는 막역한 친구 사이고, 내가 부탁하면 당신이 상상도 못 했던 마술의 세계를 눈 앞에 펼쳐보여줄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비용이 좀 들겠지만, 모두들 나와는 아주 좋은 친구 사이니까 싸게 해 줄 수 있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지역에서 가장 싸다. 언제쯤 방문할 계획이지? 어디서 오는데? 멀리서 오는 손님이면 특별히 더 할인해 주겠다. 코리안이라고? 우리 숙소에 코리안도 물론 찾아온다. 얼마 전에 코리안 여자도 온 적이 있는데, 혹시 아는 사이인가? 내가 그녀에게 이 지역을 안내해 주었다. 아주 즐거워하면서 구경했고, 진짜 주술사도 만나서 그녀는 매혹되고 (charmed) 마술에 걸렸다 (spellbound).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남자가 전달해주는 내용을 들으면서 나는 FBI와 주 경찰과 지역 보안관과 그 외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미국 수사기관에 신고하고 싶은 충동을 매우 강하게 느꼈다. 해외에서 신고를 해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줄지 아니면 미국까지 직접 가야 할지, 신고가 접수된다 해도 무슨 증거가 있을 것이며 사건의 공소 시효는 얼마나 될지 궁리하는 와중에 남자가 내 생각을 끊고 불쑥 말했다. 함께 떠나자.
  나는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다시 그곳으로 간다면 사기, 유괴, 납치 감금 및 강제노동,그 외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범법 행위에 대한 혐의로 숙소 안주인부터 정체가 불분명한 주술사까지 싸그리 고소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럴 돈도 여력도 없었다. 그리고 물론 남자의 ‘떠나자’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아직도 거기 있는 거야, 확실해.”
  남자는 흥분해서 외쳤다.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어. 다시 한 번 하나가 될 수 있어. 그 충만한, 그 행복한…, 그걸 다시 느낄 수 있다고. 다시 그 안으로 돌아가서 영원히 그대로 머무를 수 있단 말이야.”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거짓이고 속임수였다. 이미 알게 된 이상 내 발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거짓이면 어떻고 속임수면 어때.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 나는 행복했어. 뭐가 어찌 됐든, 남들이 아무리 미친놈 취급을 해도 나는 좋았단 말이야. 당신은 안 그랬어? 나보다 기억하는 것도 많잖아. 당신은 생각 안 나? 당신은 그립지 않냐고?”
  물론 생각난다. 물론 그립다. 그러나 내가 그리워하는 그것은 실체 없는 환상이었고, 일말의 진실이라도 존재한다면 오로지 내 기억 속, 내 감정 안에 간직하고 있을 때뿐이었다. 그러므로 다시 돌아가봤자 소용 없었다. 돌아가봤자, 그 주변 정황이 모두 사기극이었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될 뿐이다.
  “그 일체감을 내가 느끼는데, 나한테 그게 이렇게 생생한데 뭐가 사기라는 거야? 도대체 뭐가 두려운 거야?”
  더 이상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나는 남자를 그저 쳐다보았다. 남자가 애원했다.
  “내가 이걸 얼마나 갈망했는지 알잖아.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내가 얼마나 절망했는지 당신한테도 말했잖아. 나를 처음에 데려간 주술사는 아마 지진 때문에 죽었을 거야. 주술에 걸린 사람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건 영혼을 담아두었던 단지가 깨졌을 때나 아니면 주술사가 죽었을 때 뿐이니까. 그러니까 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간다 해도 날 다시 데려가 줄 사람도 없단 말이야.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잖아. 비행기만 한 번 타면 된다고. 그 뒤에는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 당신이 그리워하는 그 모든 것이 아직도 고스란히 거기 있단 말이야.”
  걱정하고 두려워하더라도 내 삶은 나의 것이었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비행기표를 사고 얼마간의 돈을 환전하고 여권을 새로 만들었다. 짐은 거의 없었다. 나는 막지 않았다. 문을 나서기 전에 남자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를 돌아보았다.
  “같이 가자. 우리 정말로 하나가 될 수 있어. 그곳에서는 죽음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해.”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곳에 ‘나’라는 개인은 없었으므로, 개별 존재의 죽음도 없었다. 그러므로 ‘나’라는 존재의 고유한 삶도 없었다. 오로지 하나로 뭉뚱그려진 ‘우리’와,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목소리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한참 동안 현관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제 나는 세상에 혼자였다. 고독의 무게에 눌려 움직일 수 없었다. 선 채로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마음이 무거워서, 한없이 한없이 가라앉을 정도로 무거워서,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나는 소리 없이 울었다.
  남자가 떠난 것은 슬프지 않았다. 어차피 사랑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더라도 알고는 있었다. 운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세상에 혼자였다. 주술사의 목소리에 하나로 묶인 ‘우리’였을 때, 심지어 남자와 세상에 단 둘이었을 때에 비해, 혼자 남은 자신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외롭고, 조그맣고, 초라했다. 이것이 본래의 나 자신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조그맣고 아무리 외로워도 나는 나를 놓을 수 없었다. 사기극이 됐든 깨달음의 경지가 됐든, 알면서 스스로 나 자신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울었다. 그토록 안온하고 매혹적인 일체감의 환영과 조그맣고 고독하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나 사이의 거리를 애도하며, 외롭고 보잘것 없지만 내가 가진 전부인 나 자신에게 매달려서 울었다. 그리고 그 울음은 주술사도, 남자도, 세상에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그 어떤 목소리도 위로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뼈에 사무치도록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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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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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윈 11.02.26 21:27 댓글 수정 삭제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체로 되어 있는데도, 지루하지 않게 재밌게 읽었습니다. '빨간 약'을 먹는다는 건 언제나 외로운 일이죠. 괴로운만큼, 아파하는 자의식으로 가치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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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11.02.26 22:55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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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영 11.02.27 00:58 댓글 수정 삭제
    일단 보라님의 프로필 소개 이번 글을 읽으면서도, 정말 어두워지네... 라고 생각하게 되고요.
    보면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마음의 허전한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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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11.02.27 10:30 댓글 수정 삭제
    어둡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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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드 11.03.04 21:07 댓글 수정 삭제
    끝나고 나서도 답답한 기분이 침전물처럼 남아있네요....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해시키지 못하는 여자도 끝까지 안타까워요. 흐르는 대로 쫓아가다보니 어느새 끝났네요.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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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11.03.05 13:22 댓글 수정 삭제
    원래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직접 겪으면 또 겪은대로 각자 해석이 달라지는 법이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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