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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 내 친구 좀비

2010.05.28 23:0905.28

    1.
    동창회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생각해보면 원래부터 그다지 살뜰한 동기 사이도 아니긴 했다. 귀국한 지 갓 석 달째라 고국의 모든 것이 다 무조건 반갑던 참에 또 마침 졸업 십 주년 기념이라고 해서 호기심 반, 얄팍한 감상 반으로 얼굴을 내민 내 쪽이 애초에 너무 많은 걸 기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누군지 잘 알 수 없는 사람들,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눈인사를 나누고 적당히 자리 잡고 앉아 말라빠진 부페 음식으로 대충 배를 채운 후에 낭비한 시간과 식사비와 차비를 아까워하며 눈에 띄지 않게 빠져나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사실 눈에 띄었다고 해도 굳이 붙잡을 사람도 없는 분위기였지만) 호텔을 나오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다가 마주친 것이 그녀였다. 그래서 우리는 근처 커피 가게로 자리를 옮겨 둘이서 진짜 동창회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가 누구냐 하면 나랑은 대학교 동기다. 그러나 같은 과도 아니었고 같은 동아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지 어쩌다가 수업을 한두 번쯤 같이 들은 게 전부인데 그러다가 친해져서 사 년 내내 단짝까지는 아니라도 꽤나 가깝게 지냈고, 졸업하고 내가 유학을 떠난 뒤에도 한 삼사 년 정도는 정기적으로 연락을 유지했으니 생각해보면 그것도 꽤나 신기한 인연임은 틀림없다. 물론 이제는 서로 소식 못 들은 지가 오륙 년이나 돼 버려서 나는 그녀가 결혼한 것도 몰랐고 그녀는 내가 귀국한 것도 몰랐다. 그러나 그렇게 돼 버린 지금도 호텔 화장실 같은 데서 마주쳤을 때 곧바로 얼굴을 알아보고, 서로의 인생에서 일어난 큰 사건들, 그러니까 결혼이라든가 귀국이라든가 이런 얘기를 하면서 세월 무섭네, 시간 정말 빨리 간다, 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래놓고 한숨을 쉰 게 아니라 반갑고 기뻐서 깔깔 웃고는 당장 의기투합하여 커피숍으로 출동하면서 동창회 온 보람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우리 둘 다 생각했다.


    2.
    대학을 졸업한 후 그녀의 인생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물론 스물 몇 살에 인생의 방향을 정해봤자 그게 그대로 흘러갈 만큼 사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실용성이라고는 약에 쓰려 해도 찾을 수 없는 애매모호한 문과 계통 전공으로 고만고만한 대학에서 졸업장 하나 받은 사람 치고 그 전공과 딱 맞는 일을 하면서 예측가능한 인생을 평탄하게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내 친구도 그랬다. 졸업한 후에 그녀는 예술 계통으로 전공을 바꿔서 다른 학교에 편입을 했다. 그리고 교직과정을 이수해서 교사 자격증을 땄다.
    여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예술 계통이라니 뜻밖이었지만, 선생님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흔히 말하는 대로 ‘좋은 직업’인데다 그녀에게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응원했다.
    내가 몰랐던 것은 그녀가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두 번째 학교를 졸업하고 그녀는 예술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좀 마이너한 잡지사에 취직을 했다. 일 년을 채 못 다니고 잡지사가 망했기 때문에 그녀는 다른 잡지사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닌 지 일 년이 좀 넘었을 때 잡지사가 또 망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재정난 때문에 다른 회사로 소유권이 넘어갔는데, 그러면서 잡지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계속 다니라는 권유를 과감하게 뿌리치고 퇴직을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그녀는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첫 직장에서 만나서 사귀던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것이 4년 전의 일이다.
    이후로 그녀의 인생은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 보아하니 조금씩 표류하는 중이었다. 대학원을 계속 다니고는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졸업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위를 마쳐도 그 뒤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졸업을 미루는 것 같았다.
    “사실 대학원도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고 우리 엄마가 하도 성화를 해서 간 거야. 너도 알잖아, 나 학부 들어갔을 때부터 엄마가 박사, 박사 노래 부르신 거.”
    그녀의 어머니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녀가 조금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부모님은 대학원만 졸업하면 곧바로 교수 되는 줄 아시지만, 너도 알다시피 현실은 그런 게 아니잖아.”
    그렇다고 잡지 일은 다시 하고 싶지 않고, 학교 선생님은 어떠냐는 내 물음에도 그녀는 지금 새로 시작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서, 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그녀가 정말 바라는 건 전업 예술가가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재능보다도 인맥과 돈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 그녀가 이제까지 관찰하여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나는 양쪽 다 없잖아.”
    그녀가 다시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모호하게 고갯짓을 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우리 둘 다 커피를 마시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참, 너 걔 소식 들었니?”
    “누구 소식?”
    그녀가 갑자기 물었기 때문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있잖아, 왜. 선이.”
    그녀가 커피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조금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선이….”
    선이도 그녀처럼 나와 전공은 달랐지만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친해진 친구였다. 그녀와 선이는 전공이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선이가 나보다는 그녀 쪽과 더 성정이 맞았기 때문에, 그녀와 훨씬 더 친했다. 그러나 4학년이 되면서 선이는 돌연히 고시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하고는 책과 학원에 파묻혀 버렸고, 내가 유학을 가게 되면서 흐지부지 연락이 끊어졌다.
    “예전에 일시귀국 했을 때 한 번 만났는데 그 뒤로는 소식 못 들었어. 넌 계속 연락해? 어떻게 지낸대?”
    “그게…, 좀….”
    말을 하다 말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예의상 조금 기다렸지만, 그녀는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점점 더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었고, 입을 열 듯 말 듯하면서도 망설이고만 있었다. 궁금해서 더 참을 수가 없어졌기 때문에 나는 재촉했다.
    “왜, 무슨 일인데?”
    그녀는 대답 대신 주위를 둘러보고,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커피 잔을 들여다보면서 또 망설였다. 한 번 더 재촉할까 하는 순간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저기, 너 다른 애들한테는 이런 얘기 안 할 거지?”
    “왜, 무슨 얘긴데?”
    나는 점점 더 흥미가 동했다. 그녀는 곤란한 표정으로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본 후에 한 번 더 다짐했다.
    “진짜 이상한 얘기거든. 내가 얘기했단 말, 절대로 하면 안 돼.”
    “내가 어디 가서 얘기를 하겠어. 나 지금 동창들이랑 전부 연락 끊어진 지 오래됐어.”
    “그래? 하긴….”
    그녀는 조금 안심하는 얼굴이 되었다. 또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주저하다가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정말이지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얘기 할 데도 없고…. 그런데 혼자서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이상해서….”
    그녀는 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3.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이는 고시에 실패했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공부’ 혹은 ‘준비’를 한다고는 했는데, 실질적으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언제나 뭘 하는지 모르게 지내는 중이었다.
    “이것저것 손댄 게 얼마나 많은데. 내가 아는 것만 해도 고시 그만두고 나서는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가, 그것도 금방 때려치우더니 갑자기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겠다고 했다가, 한 달도 못 가서 그만두더니 또 무슨 컴퓨터 아트 학원을 다니다가, 너 유학가고 얼마 안 됐을 때는 갑자기 자기도 독일로 유학가겠다고 독일어 학원도 다녔고, 그런데 그것도 아마 오래 못 갔을 거야. 유학 갔다는 소식은 못 들었거든.”
    어쨌든 매번 만날 때마다 ‘준비’하는 종목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녀도 슬슬 걱정이 되었다. 뭐든 한 가지를 붙잡고 끝까지 해 봐야 하지 않겠냐고 충고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이렇게 눈을 초점 없이 크게 뜨고는, 마치 자기는 다른 일에 손댄 적 한 번도 없고 평생 지금 하는 거 한 가지만 붙들고 열심히 해 왔는데 너 무슨 소리 하냐는 얼굴로 멍하니 쳐다보는 거 있지. 친구로서 충고를 해 주려고 해도 도대체 말이 통해야 말이지.”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가볍게 몸을 떨었다.
    “게다가 그 멍한 얼굴이, … 지금 생각하니까 너무 소름 끼쳐서.”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선이는 아주 어렸을 때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선이의 어머니는 젊어서 과부가 된 이래 딸과 단둘이 지내왔고, 그래서인지 딸에게 몹시 집착하는 것 같았다. 학교 때도 선이는 저녁에 해만 지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낮에도 같이 있다 보면 어머니에게서 몇 번씩이나 호출(핸드폰이 일상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니까)이 오곤 했다. 선이 자신도 종종 불평은 했지만, 어쨌든 호출이 오면 고분고분 집에 전화를 하고, 미팅이나 술자리가 있어도 뿌리치고 해가 지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졸업한 후에도 그런 일은 계속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선이와 만나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면 언제나 선이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이가 그녀와 함께 있다고 말한 뒤에는 반드시 그녀도 전화기에 대고 선이의 어머니에게 목소리를 들려드려야만 안심을 했다.
    “나 같으면 애저녁에 돌아버렸을 텐데, 걔는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엄마랑 친한 건지 짜증도 안 내더라. 엄마가 전화를 하면 고분고분 받아서 물어보는 대로 대답 다 하고, 엄마가 날 바꿔달라고 하면 또 고분고분 바꿔주는 거야.”
    친구의 어머니에게 매번 자신들의 위치와 활동 내용을 신고하는 것도 고역이라면 고역이었지만, 원래 그렇다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이의 어머니가 어떤 식으로든 그녀를 의심하는 것도 아니었고, 목소리를 들으면 언제나 무척 반가워하셨기 때문에 전화 통화 자체는 딱히 불쾌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딸한테 의존하는 게, 그 때는 좀 불쌍했거든…. 그런데 그 어머니도 그렇고 선이도 그렇고, 둘 다 확실히 정상이 아니더라고.”
    “왜, 무슨 일이 있었어?”
    내가 물었다. 그녀는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긴 있었는데…, 어떻게 얘기해야 될지 잘 모르겠네….”
    그리고 그녀는 완연히 불편한 표정이 되어 이제는 다 식은 커피를 또 다시 홀짝였다.
    선이는 나이에 비해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었다.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주면 아무나 쉽게 믿었고, 언제나 주위에 사람이 있어야만 안심했다. 그런 면은 아마 어머니의 영향일 거라고 우리는 짐작했다. 그래서 선이가 갑자기 고시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는 내가 아는 선이의 성격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아서 나도 그녀도 무척 놀랐다.
    선이는 고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첫 1년 정도는 연락을 완전히 두절했다. 그러나 2년째가 되었을 무렵에 다시 그녀에게 연락을 해 왔다. 그리고 그 때부터는 이전과 똑같이 친하게 지냈다고 했다. 그녀가 아직 두 번째로 들어간 학교를 다니던 무렵이었다. 그 때 선이는 예고도 없이 불쑥 그녀를 찾아와서 수업 들어가야 한다는 그녀에게 놀아달라고 조르기도 했고, 심지어 그녀를 따라서 전공 수업을 같이 들어간 일도 있었다. 실기 수업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문외한인 선이는 수업 시간 내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옆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교수가 내쫓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선이도 무척 창피했다고 했다.
    “그래도 그 때는 내가 계속 학생이었으니까 상관 없었지 뭐. 다른 애들은 다 졸업하고 바빠져서, 그렇게 학부 때처럼 자주 만나서 같이 놀만큼 한가한 사람도 별로 없었고….”
    그녀는 다시 말을 멈추었다. 손을 커피 잔으로 가져갔다. 이미 다 마신 것을 깨닫고 그녀는 곤란한 표정으로 빈 커피잔을 내려다보았다.
    “리필해달라고 할까?”
    내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그녀는 눈살을 조금 찌푸린 채 빈 커피잔 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입을 열어 이야기를 계속했다.


    4.
    그녀가 잡지사에 취직을 하면서 선이와는 잠시 사이가 멀어졌다. 선이는 여전히 전화도 자주 하고 회사 앞으로 찾아오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이전처럼 친하게 지내려고 했지만, 직장인이 된 그녀로서는 학생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선이가 원하는 대로 놀아줄 수가 없었다.
    “미안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고 짜증이 나더라고. 대학 졸업했으면 사회인인데, 어쩌면 그렇게 마냥 어린애 같을 수가 있니?”
    그래도 그녀와 선이는 어쨌든 친구였다. 그리고 선이만큼이나 그녀도 직장과 관계 없이, 자유롭던 학생 시절처럼 만나서 수다를 떨고 맛있는 것을 먹고 같이 재미있는 일을 할 상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와 선이는 주로 주말에 만나서 함께 놀았다.
    선이가 조금 이상하다고 그녀가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딱 집어서 뭐가 잘못된 건 아닌데…. 그 왜, 있잖아. 그냥 기분이 안 좋은 거.”
    발단은 그러니까 옷차림이었다. 그녀의 직장은 옷차림이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그래도 처음 하는 직장 생활이고, 일 관계로 외부 사람을 만나야 할 때도 있고 해서 그녀는 가능한 한 신경 써서 정장에 가까운 차림을 하고 다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선이가 자신의 옷차림을 따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걔가 그 때 아마 컴퓨터 학원 다니면서 자격증 시험 준비하다가 때려치고 유학 가겠다고 독일어 학원 다니기 시작했던 그 무렵일 걸. 학원이야 뭐, 다들 자기 마음대로 하고 다니잖아. 선이도 학교 다닐 때처럼 그냥 아무렇게나 입고 다녔고.”
    여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게 은근히 중요한 법이다. 그녀도 선이도, 그렇게 따지면 나도, 본래 옷차림이나 화장 등에 공을 들이는 성격은 아니었다. 애초에 서로 친해진 이유도 아마 꾸미지 않고 편하게 다니는 걸 선호한다는 면에서 취향이 잘 맞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취직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선이는 언제나 똑같이 편한 옷차림으로 다녔다. 운동복 바지에 구겨진 티셔츠 차림으로 그녀의 회사 앞에 만나러 오기도 했고, 그런 선이에게 그녀는 부럽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선이가 정장을 차려입고 직장인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녀는 내심 조금 놀랐던 것이다.
    “어디 좋은 데 가냐, 혹시 소개팅 하냐고 물어봤지. 그냥 농담이었어. 사실 선이 그렇게 꾸민 거 처음 봤는데, 굉장히 예뻤거든.”
    그녀가 더욱 놀라면서 동시에 기분이 나빠진 것은 선이의 반응 때문이었다. 평소 선이의 성격으로 보아 기뻐하거나 부끄러워하면서 똑같이 농담으로 받아칠 줄 알았는데, 선이는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학원 갔다 오는 길이라고, 스터디 하고 사람 만나느라 피곤해 죽겠다는 거야. 그런데 그 말투가 왜, 회사원들이 예를 들면 영업 뛰느라 피곤해 죽겠다는 그 말투 있지? 딱 그거였어.”
    옷차림이나 겉모습 뿐만이 아니라 말투도 표정도, 그녀가 아는 선이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아서 그녀는 조금 섬뜩했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에 통화하면서 마감 때문에 피곤해 죽겠다고 불평했던 것이 생각나자 그녀는 더욱 기분이 나빠져 버렸다.
    “그 날 선이 진짜 이상했거든. 계속 정색을 하고 앉아서 무슨 말을 해도 피곤하다느니 바쁘다느니 딱딱거리기만 하고.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았어.”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헤어지면서 그녀는 자신이 직장인인 데 비해 선이는 아직까지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뭔가 열등감이라도 느끼는 모양일 거라고 해석하고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로도 선이를 만날 때마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매번 만날 때마다 옷차림만이 아니고 신발이랑 화장이나 머리모양까지, 바로 그 전번에 만났을 때 내가 했던 차림이랑 거의 똑같이 하고 나타나는 거야. 그러면서 내가 만나기 바로 직전에 전화로 했던 얘기를 자기 버전으로 바꿔서 똑같이 되풀이해. 내가 이번 호 마감 무사히 끝내서 다행이라고 하면 그 다음에 만났을 때는 자기 이번 시험 무사히 끝내서 다행이라고 하고, 기사 거리가 없어서 고민이라고 하면 자기도 ‘아르티켈’을 써서 학원에 ‘넘겨야’ 하는데 소재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거야. 그게 작문 숙제지 무슨 아티클이니?”
    가장 어이가 없었던 것은 원고 청탁 이야기를 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 선이가 함께 스터디하는 사람들에게 ‘발제를 청탁’했다고 말한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그녀는 하마터면 소리 내어 웃어버릴 뻔했다. 그러나 선이는 어디까지나 정색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얘가 날 놀리나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너무 진지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게 정말로 자기 생활이라고 믿는 것 같았어. 그러니까 그 왜 있잖아, 자기도 나처럼 원고 쓰고 마감 하고, 뭔가 아주 중요한 일을 매일매일 하고 있다는 그런 얼굴로 얘기하는 거야.”
    선이가 자신이 쓴 ‘쿤슈트’에 대한 ‘아르티켈’을 읽어 달라고 그녀에게 보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쿤슈트가 뭐야?”
    “독일어로 예술이래.”
    “너한테 독일어로 쓴 걸 보냈다고? 그걸 무슨 수로 읽어?”
    “한국어 번역 붙여서 보내더라.”
    선이의 ‘아르티켈’은 그녀의 평가에 따르면 중학생의 작문 수준이었다.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외국어로 쓴 것을 다시 한국말로 옮겼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곤란해진 그녀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자 선이는 다른 잡지에도 투고를 했다. 그러다가 어느 잡지였는지 채택이 돼서 독자 투고란에 한 번 실렸다.
    “선이 말로는, 담당 기자하고 통화를 했는데 자기더러 독일에서 유학했냐고 물어보더라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그 쪽에서 그냥 의례적으로 물어본 것 같은데, 선이는 정말 진지하게 기뻐하면서 자기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더라고.”
    그 뒤에도 선이는 여기저기 몇 번 더 투고를 했던 모양이지만, 채택된 경우는 없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그녀는 선이가 점점 더 불편해졌다. 또 마침 그 무렵에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에, 선이와는 점차 만나지 않게 되었다.


    5.
    “그게 끝이야? 그 뒤로 연락 안 해?”
    그녀는 대답 대신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카운터를 향해 손을 들었다.
    “여기요.”
    종업원이 다가오자 그녀는 리필을 부탁했다. 종업원이 커피 잔을 가지고 사라진 뒤에도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무슨 일인데?”
    종업원이 리필된 커피를 가지고 돌아올 때까지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살을 찌푸린 채로 탁자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선이는 그 뒤로 몇 년간 연락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그녀는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었고, 대학원에 들어갔고, 결혼을 했다. 선이는 결혼식에도 오지 않았다.
    “사실은 내가 일부러 안 불렀어. 그 전에 이상하게 굴던 거 생각하면 결혼식장에 와서 무슨 짓을 할지 좀 불안했거든. 나랑 똑같이 웨딩 드레스라도 차려입고 나타나면 큰일이잖아?”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선이가 혹시 다른 친구들에게라도 연락 받고 나타나지 않을까, 반쯤은 걱정하고 반쯤은 기대했다. 그러나 선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가 결혼한 후에도 한동안은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화가 왔어. 아마 재작년쯤 됐을 거야.”
    화면에 나타난 것은 모르는 번호였다. 무심코 받았는데, 상대방은 천천히 무겁게 숨을 몰아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변태의 장난전화라고 생각하고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에 다시 전화가 왔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리고 십 분쯤 더 지나서 이번에는 집으로 전화가 왔다.
    “그 때가 저녁이었는데, 나 집에 혼자 있었거든.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서 깜짝 놀랐어. 그런데 설마 그 전화가 그 전화일 줄은 모르고 그냥 받았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온 것은 이번에도 천천히 무겁게 몰아쉬는 숨소리였다.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치더라구. 그 숨소리도 기분이 나빴지만, 저녁이라 해 떨어지고 어둑어둑할 땐데 핸드폰도 아니고 집으로 그런 이상한 전화가 오면 진짜 무섭잖아.”
    그래도 그냥 끊으면 계속 전화가 올 것 같아서, 그녀는 경찰에 신고하겠다거나 하는 의례적인 맞대응이라도 해 주려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온 것은 선이의 목소리였다.
    “자기 지금 많이 아프니까, 보러 와 달라는 거야…. 입원했다고, 병원 이름이랑 입원실 번호 가르쳐 주더라.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하고,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꼭 만나러 와 달라고, 그 소리만 되풀이하는데….”
    연락이 끊어진 지 몇 년이나 되었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정황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전화해서 아프니까 만나러 와 달라고 부탁하는 친구의 꺼져가는 목소리를 듣자 그녀는 어쩐지 눈물이 났다.
    “그래서 당장 가겠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그랬거든. 그랬는데….”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주저했다.
    “그런데, 전화 끊기 전에 선이가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
    “뭔데?”
    “와서 자기 좀 데리고 나가 달래.”
    “그렇게 아픈데 어떻게 데리고 나가?”
    “모르지. 그 때야 그냥 얘가 너무 아파서 헛소리를 하는구나 싶었지.”
    “선이가 너네 신혼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대?”
    내 질문에 그녀는 한 순간 대단히 공포에 질린 표정이 되었다.
    “몰라.”
    어쨌든 그녀는 부랴부랴 과일을 조금 사서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는 해가 완전히 지고 주위가 깜깜해져 있었다. 면회 시간이 끝나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병실로 올라가는 그녀를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녀는 처음에 방향을 잘못 잡아 반대쪽으로 한참이나 갔다가 복도 거의 끝까지 가서야 잘못 왔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서서 또 한참을 걸어야 했다. 다시 아까 내렸던 엘리베이터 앞에 도달해서 그녀는 자신이 왜 본능적으로 반대쪽을 향했는지 깨달았다. 그녀가 가야 하는 방향, 그러니까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오른쪽 복도는 조명이 반쯤 꺼져서 어둠침침했던 것이다. 반대쪽 복도는 병원답게 형광등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환히 켜져 있었는데, 이쪽은 거기에 대비되어 더 어두워 보였다. 그래도 자신이 찾는 병실이 이쪽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침침한 복도에 서서 불안하게 깜빡이는 전등 불빛에 의지하여 병실 문 옆에 붙은 방 번호를 하나씩 확인하며 천천히 나아갔다.
    선이가 알려준 병실은 복도 끝에 있었다. 미닫이문에 달린 조그만 창문으로 들여다보이는 방 안은 깜깜했다. 자는 걸까 싶어서 돌아서려다가, 선이가 그렇게 간절하게 전화했는데, 들고 온 과일이라도 두고 가서 자기가 다녀갔다는 흔적 정도는 남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능한 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미닫이문을 열었다.
    복도가 어둠침침했다면, 방 안은 마치 검은 천이라도 덮어씌운 것 같은 완전한 암흑이었다. 안에 들어서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서 그녀는 문가에 한동안 서 있었다. 어느 정도 어둠이 눈에 익고 나서 그녀는 천천히 발소리를 죽이며 침대로 다가갔다.
    선이야, 자니, 하고 불러보려는 순간, 그녀는 침대 위에 사람 크기 정도의 뭔가 거무스름한 덩어리 같은 것이 올라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와 함께, 선이에게 전화가 왔을 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던 무겁고 깊은 숨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그 숨소리가 날 때마다 침대 위의 검은 덩어리는 앞뒤로 조금씩 천천히 흔들렸다.
    너무 놀라서 그녀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못박인 듯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거무스름한 덩어리는 계속해서 힘겨운 숨소리를 내면서 앞뒤로 조금씩 움직였다. 한참이었는지 아주 잠깐이었는지, 얼마인지 모를 시간 동안 그렇게 침대 옆에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다가 그녀는 그 검은 덩어리가 기다란 혀를 내밀어 침대에 누운 사람을 핥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혀를 내밀어 침대에 있는 사람을 휘감을 때와 감았던 혀를 거두어들일 때 검은 그림자의 몸체는 앞뒤로 흔들렸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의 혀가 들고 날 때마다 침대에 누운 사람은 고통스러운 듯 힘겨운 숨소리를 냈다. 검은 덩어리가 혀를 빨아들였을 때, 언뜻 침대에 누운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선이야.”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불렀다.
    “선이야, 괜찮아? 어떻게 된 거야?”
    검은 덩어리와 침대에 누운 사람이 동시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 명이야.”
    선이가 그녀의 이름을 대답해 불렀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던, 꺼져가는 목소리였다.
    “명이야…. 나 좀 살려 줘….”
    “어떻게 된 거야? 너 왜 이렇게 됐어?”
    대답 대신 선이는 그녀를 향해 팔을 뻗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람의 팔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빼빼 마른 막대기 같은 것이 침대에서 자신을 향해 가늘게 떨리면서 뻗어 오는 모습을 그녀는 보았다.
    “제발, 나 좀, 데리고, 나가 줘….”
    선이가 속삭였다.
    그녀도 무심코 손을 내밀어 선이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자기 쪽을 돌아본 침대 위의 검은 덩어리가 머리(그 부분을 머리라고 가정한다면)를 점점 가까이 기울이는 것을 보았다.
    검은 덩어리가 입을 벌렸다.
    “어머, 명이 왔니?”
    그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전화로 몇 번이나 들었던 선이의 어머니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몇 년 전과 다름없이 상냥하고 사근사근했다. 시각과 청각의 괴리에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이 문병 왔구나? 고마워서 어쩌나? 저런, 뭘 또 그렇게 사 왔어?”
    검은 덩어리의 머리(일 것 같은 부위)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살그머니 한 발을 뒤로 빼서 약간 뒷걸음질쳤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아, 앉아. 과일 사 왔구나? 무겁지? 이리 줄래?”
    그와 함께 선이를 핥던 혀가 그녀 쪽으로 뻗어왔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그녀는 들고 있던 과일 봉지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대로 돌아서서 도망쳤다.
    그녀가 선이를 본 것은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6.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각자 커피 잔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사실은 작년에 선이 만났어.”
    “뭐? 진짜?”
    그녀가 입에서 커피 잔을 떼고 고개를 홱 들어 나를 보았다. 놀랐다기보다 겁먹은 얼굴이었다.
    “어땠어? 아무 일 없었어? 선이, 어때 보였어?”
    “별로 안 좋았어.”
    내가 중얼거렸다. 그녀가 재차 물었다.
    “왜, 선이 계속 아프던? 병원에 있었어?”
    “아니, 그건 아닌데….”
    학부 때부터 계속 쓰던 메일 주소로 어느 날 갑자기 메일이 왔다. 다분히 횡설수설이라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내 나름대로 요약해본 바, 요즘 힘들고 우울하다, 그냥 생각나서 한 번 메일 보내본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마침 내가 한국에 있을 때였기 때문에 또 그 ‘호기심 반 감상 반’이 발동하여 만나자는 답장을 보냈고, 그리하여 나는 선이와 만났다.
    겉보기에 선이는 대학 때와 그다지 변한 점이 없었다. 다만 내 기억 속의 모습보다 많이 말라서 홀쭉해 보였다. 그러나 자리를 잡고 앉아서 ‘어머,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등의 인사라기보다 감탄사에 가까운 말로 서로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단계가 지나고 나자 눈 앞에 앉은 사람이 대학교 때 내가 알던 그 선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차츰 명백해지기 시작했다.
    “왜, 오랜만에 만나면 보통은 서로 그 동안 뭐 하고 지냈는지 그것부터 얘기하잖아. 그런데 선이는 계속, 난 앞으로 뭘 할 거고, 앞으로 이것도 할 거고 저것도 할 거고, 그런 얘기만 계속 하더라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미래 계획을 듣는 것도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이는 앞에 앉은 내가 아니라 자기 손을 내려다보면서 서로 연속성도 공통점도 없는 여러 가지 계획을 두서 없이 늘어놓았다. 나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뭐부터 먼저 하고 싶냐고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나를 이렇게 흘끗 보고는 나도 유학 갈 거야, 나도 외국 가서 공부할 거야, 나도 외국 가서 유학할 거야, 이렇게 똑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하잖아.”
    돌연히 이야기의 방향이 바뀌어서 나는 더 당황했다. 그래도 장단을 맞춰 주기 위해 뭘 공부할 건지, 어디로 갈 예정인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또 갑자기 자기 엄마 얘기를 하는 거야. 엄마가 유학 보내준댔어, 엄마가 대학원 보내준댔어, 엄마가 고시 공부도 붙을 때까지 다 도와준댔어, 계속 그러더라고. 그 때는 서른이 한참 넘은 다 큰 어른이 말끝마다 엄마, 엄마 하는 것만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네 얘기 듣고 나니까 좀 이해가 된다.”
    ‘엄마’라는 말에 그녀는 다시 겁먹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 혹시 전화도 왔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한테도 바꿔주고?”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가볍게 진저리를 치며 들고 있던 커피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내가 달랬다.
    “그냥 별 일 없었어. 걔네 엄마가….”
    “됐어, 그만 해.”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소리쳤다. 공포와 혐오감으로 굳어진 그 얼굴을 보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선이, 앞으로는 연락하지 마. 그게 좋을 거야.”
    그녀가 한참이나 굳은 표정으로 커피 잔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7.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애써 화제를 돌려 다른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잘 풀린 사람도 있었고, 소식을 모르게 된 사람도 있었다. 한 가지 놀랐던 점은, 삼십대 중반을 달리는 나이에도 여전히 이것저것 ‘준비’만 하면서 인생의 가닥을 잡지 못하는 사람이 동기 중에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었다.
    “전에는 그런 얘기 들으면 그러고 사는 애들이 한심했는데, 이제는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가 막 큰 걸 바란 게 아니잖아? 서른이 넘으면 어쨌든 직장이 있고, 결혼해서 아이가 있고, 안정된 생활이 있고,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고작 그거 이루기가 왜 이렇게 힘드니. 아주 약간 다르게 사는 게 뭐가 그렇게 큰 죄라고? 대체 어디서부터 엇나간 걸까?”
    그녀는 무기력한 자조의 웃음을 띠었다.
    “나만 해도, 직장 두 군데 다녔는데 둘 다 경력 될 만한 기간도 못 채웠고, 대학원에 이름은 걸어놨지만 졸업이나 제대로 할지 모르겠고….”
    “그래도 넌 결혼을 했잖아. 그것만 해도 크게 한 가지 이룬 거 아냐?”
    내가 위로했다. 그녀는 다시 쓴웃음을 짓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털어놓았다.
    남편과 그녀는 겉보기에는 무난하게 결혼 생활 4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실상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소원해지는 중이었다. 가장 큰 원인은 아기를 가지라는 주위의 압박이었다.
    “시댁이나 친정이나, 어른들 눈으로 보기에는 취직을 해서 어딜 매일 다니면서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다 노는 거잖아. 대학원 다니면서도 계속 아르바이트 하고 내 나름대로는 노력을 하는데, 어른들은 남편 등골 빼서 놀고 먹는 줄 알아. 그러면서 계속 무위도식하지 말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빨리 애를 낳으라는 거야. 시댁이랑 친정 양쪽에서 달달 볶아서 아주 노이로제 걸릴 지경이야.”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애를 나 혼자 낳는 게 아니잖아. 남편이 애라고 하면 무슨 돈 먹는 기계 쯤으로 생각하거든. 아이 얘기 꺼낼 때마다 펄쩍 뛰면서 지금 우리 살림에는 절대로 안 된대. 근데 남편 혼자 출판사 다니는 월급 가지고는 앞으로도 무슨 떼돈 버는 수가 생길 것 같지도 않고….”
    “너는 어떤데? 아이, 갖고 싶어?”
    내가 물었다.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말끝을 흐렸다.
    “글쎄…. 그렇지만 남편이 저 모양인데, 내가 갖고 싶다고 애가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아이를 낳아도 결국은 네가 낳는 거고, 대학원도 결국은 네가 다니는 거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네가 원하는 쪽으로 결정해서 밀고 나가는 게 너한테는 최선 아닐까?”
    그녀는 다시 무기력한 자조의 웃음을 지었다.
    “너 진짜 순진한 소리 한다. 사는 게 그렇게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되니?”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게 아니라, 최소한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는 확실히 알아야….”
    그러나 그녀는 말을 끝까지 마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네가 결혼도 안 하고 외국에서 오랫동안 혼자 살아서 세상을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마음 먹는다고 생각대로 다 될 정도로 사는 게 그렇게 쉬운 일 아니다, 너. 다들 좀 부족해도 적당히 맞추고 포기하고 타협해 가는 거야.”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었는데, 라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대신 화살을 내게 돌렸다.
    “그런데 넌 요즘 뭐 해? 어디 강의 나가?”
    “아니. 나 그냥 백수야.”
    “어머, 왜? 학교에서 강의 안 줘?”
    “학교에서 내가 귀국한 거 몰라.”
    학부 졸업하고 곧바로 떠나서 내내 아무 연락 없다가 십 년만에 갑자기 나타나서 일자리를 구걸한다는 게 보통 배짱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것을 핑계로 미적미적 미루면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지금이라도 교수님들한테 인사 다녀야지? 네가 한국 학교 사정을 잘 몰라서 그러나본데….”
    그리하여 나는 그녀에게 한국의 대학원 상황에 대한 강의를 잔뜩 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은 예측가능하게도 사귀는 사람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누구 좀 소개해 줄까? 너 설마 어렸을 때처럼 외모니 조건이니 따지는 건 아니지? 결혼이야말로 자기 마음 먹기 나름인 거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야지, 결심 안 하면 평생 결혼 못 한다.”
    딱히 결심할 생각이 없는데, 라고 우물우물 대답하려 했으나, 그녀가 다시 말을 가로막았다.
    “지금은 네가 잘 모르겠지만, 기왕 귀국했으니까 남자도 열심히 만나보고 적당한 사람 보이면 얼른 붙잡아서 더 늙기 전에 빨리 빨리 가. 이미 한참 늦었는데 완전히 퇴물 되는 거 순식간이다, 너.”
    어린 아이를 타이르는 말투로 진지하게 충고하는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어째서인지 당사자인 나보다도 더 절박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8.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작년에 만났을 때, 선이는 헤어지기 직전에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시 만날 수 있지? 다음 번엔 우리 어디 여행 가자.”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알던 대학교 때의 선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선이는 눈을 반짝이며 내 손을 꼭 쥐었다.
    “우리, 여기 떠나서 어디 멀리 가자.”
    그러나 그 때 나는 출국을 해야 했다. 떠난다고 전화했을 때 선이는 다시 그 생기 없는 목소리로, 나도 유학 갈 거야, 나도 외국 갈 거야, 엄마가 보내준댔어,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선이에게 전화라도 해 볼까, 생각하면서 나는 전화기를 꼭 쥔 채로 앉아서 멍하니 전철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선이를 어떻게든 구해낼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러기 위해서 내가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괴물과 싸우는 용사가 아니다. 그리고 선이를 구해낸다 해도, 이 곳을 떠난다 해도, 달리 갈 데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기분 나쁜 상황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계속 망설이다가,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지금이라도 빨리 끊는 편이 좋지 않을까 계속 망설였다. 신호음은 오랫동안 끈질기게 울렸고, 나는 오랫동안 끈질기게 망설였다.
    그리고 돌연히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 선이야? 선이니?”
    상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물었다.
    “… 윤이야…”
    마치 강 건너에서 외치는 소리가 바람결에 전해지듯이, 그렇게 작고 희미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선이야? 여보세요?”
    “윤이구나? 어머나, 이게 얼마만이니? 귀국했나 보네? 아주 온 거야?”
    전화기 저편에서 갑작스럽게 기운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투는 선이보다 선이 어머니 쪽에 가까웠다. 목소리만으로는 누구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려다가, 나는 심호흡을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저기, 여보세요? 어, 죄송하지만, 선이 전화죠? 선이랑 통화하고 싶은데요.”
    “어머, 어쩌나. 선이 지금 전화 못 받는데?”
    나는 손으로 전화기를 가리고, 통화구에 입을 바짝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선이, 바꿔주세요.”
    전화기 저편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대답했다.
    “선이, 이제 여기서 못 나간다. 앞으로 연락하지 마라.”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9.
    방금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어서 나는 전화기의 조그만 화면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하얗게 밝았던 화면은 설정된 시간이 지나자 곧 까맣게 죽어 버렸다. 다시 전화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나는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철에서 내려야 하는 순간까지, 공허한 신호음이 계속 새어나오는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나이 먹는 게 원래 그런 거다, 사는 게 원래 그렇다는 말만은,
    어쩐지 아무래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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