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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논문 공장

2007.06.30 13:4106.30

  197×년 ×월 ×일
  은경아. 오늘도 밖에는 바람이 차다. 잘 지내고 있는 거니? 성식이가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찾아내겠다고 큰소리친다. 늘 큰소리만 쳐 놓고 뒷감당도 못하는 주제에 이번에는 꼭 너를 찾아서 발모가지를 부러뜨려서라도 집으로 데리고 오겠다는데 내가 말렸다. 우리 귀한 막내 손끝 하나라도 건들었다가는 요절이 날 줄 알라고 되레 윽박을 질러 놓았다. 그냥 큰소리만 치는 게지, 설마 꽁꽁 숨어버린 너를 찾아 데려올 재주야 있겠니. 그래도 이번에는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그놈 허풍이 현실이 되기를 바래본다. 혹시 너를 찾게 되면 집으로 데려오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식구 지내는 이야기나 전해 보려고 이놈의 편지를 쓰고 있다.
  어머니는 여전하시다. 너 그렇게 나가버리고 나서 이틀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꿈쩍도 안 하고 계시더라. 그러다 사흘째부터는 귀가 밝아지셨다. 대문 쪽에서 務슨 소리라도 날라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뜨면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신다. 그러시느라 저녁이 되면 일찍 피곤해지시는 모양이다. 3년이나 지났으면 이제는 무던해질 만도 한데, 그게 안 그렇다. 은경아, 그게 안 그렇다.
  네가 그렇게 달아나 버리는 바람에 네가 다니던 공장에서는 우리 동네 사람들을 안 좋게 본단다. 그래서 공장에 취직하기가 예전처럼 쉽지는 않다더구나. 사실은 나도 학교를 마치고 나서 공장에 일자리를 알아봤는데 어림도 없었다. 네 오빠라는 걸 이야기하기도 전에 쫓겨났다. 하지만 그게 너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거기도 어차피 필요한 만큼 사람을 다 채웠으니 예전처럼 아무나 다 받아 주지는 않겠지. 게다가 최근에는 공장장이 기계를 들여 놓겠다고 알아보고 다니나 보더라. 그 통에 이미 들어가 있는 사람들도 오래 버텨나기가 힘든 모양이야. 노조일 하는 사람들이 이틀이 멀다하고 모이는 것 같더라. 빨갱이로 몰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결국 어머니 소원을 못 풀어드리게 됐지 뭐냐. 월급도 돈으로 다 주지도 않고 반은 물건으로 주는 그런 공장에 다니는 게 뭐가 그렇게 부러우셨는지. 하루는 작은 어머니가, 성식이가 월급으로 받아 온 쇠사슬을 자랑삼아 들고 오셨단다. 어머니가 그 차가운 쇠사슬을 따사해질 때까지 어루만지시면서 참 때깔도 곱다 하시는데, 어머니가 해 주시는 뜨신 밥 먹고 하릴없이 집에서 뒹굴기나 하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고개를 못 들겠더구나. 그렇게 한 3개월을 놀다가 나도 드디어 일자리를 찾았단다.
  그래. 이 오빠도 결국 학교를 그만 뒀다. 장차 학위도 받고, 연구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어느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부모님은 무슨 일 하시냐고. 우리 같은 형편에 책값 대기도 빠듯하겠지. 그렇다고 내가 너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 그만하면 내 하고 싶은 대로 젊은 날을 즐겁게 보냈으니 이제 공장에 가서 돈이나 벌어야겠다 싶더라.
  그래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다니는데, 마침 시내에 새 공장이 하나 들어섰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한 번 구경이나 할까 하고 그 근처에 가서 어슬렁거렸다. 점심시간이 되니까 누가 공장 대문을 나서는데 내가 다가가서,
  “뭐 하는 공장이요?”
  하고 물으니까 그 사람이 나를 아래위로 슥 훑어보더니,
  “글은 읽고 쓰나?”
  하는 거다.
  “고등학교 나왔소. 재주가 내 여동생만 못하지만, 학교에서 우등상이라고 준 걸 보면 글은 얼추 읽고 쓰는 모양이외다.”
  하고 우스꽝스럽게 대답했지 뭐냐. 당황했던 모양이다. 그 양반이 내 대답을 듣고 점심 먹으러 나가던 사람이 밥 먹는 것도 잊고 한참을 웃더니 나를 데리고 도로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거다. 이 양반이 책꽂이에서 책 몇 권을 뽑아다 내미는데, 하나는 국문보다 한자가 더 많이 섞인 학술서고 다른 하나는 영문이다. 내가 책을 받아들자마자 제목을 읽어내는 폼을 보고 그 사람이,
  “그만하면 됐네. 훌륭하네.”
  하면서,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느냐고 굳는 거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꾸벅 절하고는 내일 아침으로 당장 출근할 수 있노라고 대답했다. 오빠는 그렇게 취직했단다.
  은경아. 거기가 무슨 공장인지 상상이나 하겠니. 오빠 직장은 논문 공장이란다. 논문 공장. 우리는 세상의 끝에 대한 논문을 생산해 낸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도 관심을 가졌던 핵전쟁에 관한 논문도 벌써 네 편이나 생산했단다. 취직하고 하루하루 일을 익혀갈수록 나는 네가 눈에 밟혀서 아쉬운 마음을 누르기가 힘들다. 네가 집을 나가기 전에 이 공장이 문을 열어서, 어머니가 너를 동네 쇠사슬 공장에 보내지 않아도 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너도 그렇게 집을 나가 버리지 않았을 거고, 아침이면 나는 너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이런저런 재미난 이야기들을 하면서 출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술에 취하면 나는 가끔 나를 면접하고 채용했던 그분, 인사과장님께 네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면 과장님은, 술김에 하시는 소리인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지 네가 돌아오면 꼭 우리 공장에 면접 보게 하라고 큰 소리를 치신다. 그러다 과장님이 진지한 투로,
  “그런데 자네 여동생 같은 재원이라도 계속해서 갈고 닦지 않으면 머리가 굳는다네.”
  하고 말씀하실 때면 나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흘러내릴 것만 같다. 내가 너를 잘 돌봤어야 되는데. 외지에 혼자 나가서 얼마나 고생이 많니? 지금쯤 자리를 잡아서 네가 하고 싶던 일들 마음껏 해 보고 있니? 솔직히 나는 네가 그렇게나 잘 살고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날이 추워지면 아끼지 말고 따뜻한 불이나 때고 살 수 있는 형편만 돼도 나는 세상에 감사해야 할 것 같구나.
  어머니와 나는 그럭저럭 형편이 좋다. 우리 공장은 쇠사슬 공장보다 봉급이 높지는 않은데, 그래도 봉급 대신 물건을 떠안기지는 않아서 좋다. 내가 논문 공장에 들어갔다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는 내가 봉급 대신 종이께나 받아 오겠거니 하고, 그날부터 바로 중학교 선생하는 숙이네 집에 판로 물색차 부지런히 다니셨던 모양이다. 결국 숙이네 모친이랑 어머니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성사된 차에, 웬걸, 월급날 보니까 월급봉투에 한 푼도 빠짐없이 빳빳한 새 지폐가 들어있는 거다. 이튿날 작은 어머니가 종이를 구하러 우리 집에 오셨는데 어머니는,
  “아이구, 우리 집은 큰 종이는 없는데. 요렇게 작은 놈으로만 한 다발이 있어. 요놈도 내일 아침이면 은행에 넣어야 될 것 같은데, 헛걸음 시켜서 어떡하나.”
  하시는 게 아니냐. 그 말에 작은 어머니는 일전에 쇠사슬 자랑하러 오셨던 게 무안했던지 별 말씀 없이 앉아만 계시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나는 두 분 말소리만 듣고도 어머니 표정을 떠올릴 수 있겠더라.
  아무튼 어머니가 그렇게 소문내고 다니시는 바람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줄 알지만, 사실 내 하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각주(脚註)가 제대로 달렸는지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까다로운 일일 줄 알았는데, 한 이틀 해 보니까 양복저고리에 단추 다는 거나 곰돌이 인형에 눈알 다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일이랄 것도 없었다. 빨간 색연필을 들고 각주를 쭉 훑어보다가 저자, 책 이름, 출판사, 발행연도 순서에 맞지 않게 돼 있는 데가 나오면 동그라미를 치는 거다. 그렇게 해서 다음 사람한테 넘기면 끝이다.
  그 일을 하는 폼이 성실하다고 소문이 나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색인(索引) 다는 라인으로 옮겨 갔다. 조장이 책 몇 권과 그 책 안에서 찾아낼 단어 목록을 받아다 오면 우리는 1쪽부터 책을 뒤지면서 그 단어가 나오는 페이지를 기록하고, 그 부분에 빨간 동그라미를 친다. 이것도 역시 단순한 작업이기는 한데, 각주 라인 작업보다는 좀 더 성실해야 하는 작업이다. 실수로든 귀찮아서든 대강대강 보고 넘어가면 찾아야 할 단어를 빠뜨리고 넘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별 일도 아니지만 석 달이나 그 짓을 하고 났더니 이제는 아무 소설책이나 읽어도 눈에 불을 켜고 읽게 되더라.
  그러다 어느날은 품질관리과장님이 내가 작업한 데가 제일 불량이 적다고 칭찬을 하셨다. 덕분에 나는 드디어 2층으로 출근하게 됐다. 우리 공장은 내가 공군에 있을 때 본 비행기 격납고처럼 생겼다. 가운데 넓은 공간이 있고 2층은 건물 양쪽 벽에 방 한칸씩이 붙어 있다. 2층 복도에서 보면 1층 생산라인이 훤히 내려다보여서 좋다.
  내가 일하는 품질관리과 내적타당성 관리반은 북쪽에 붙어 있어서 겨울이면 좀 춥다. 남쪽에는 외적타당성 관리반이 있는데, 오빠는 요즘 거기를 자주 드나들고 있다. 그쪽이 더 따뜻해서 자주 드나드는 게 아니라, 네 새 언니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 거기에 근무해서다. 미숙 씨는 너보다 한 살이 많고, 단발머리에 귀여운 아가씨다. 아직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나 너도 미숙 씨를 보면 마음에 들어 할 거라고 믿는다.
  혼자서 내 연구를 하는 것만큼이야 할까마는, 일은 재미가 있다. 아마 너도 그렇게 생각할 거다. 논문은 가내 수공업으로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세상이 이렇게 달라졌다. 우리는 이렇게 논문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다 판다. 제일 돈이 되는 건 남의 박사학위 논문을 주문제작하는 일이지만, 사실 그런 건 야비한 일이다. 그래도 공장장은 주문을 계속해서 따온다. 거의 완성된 초고를 받아다가 마지막으로 다듬는 정도의 일감이면 양심에도 덜 걸리고 좋은데, 사실 그 정도 작업은 큰 돈이 되지 않는다.
  아마 계속 그런 야비한 일들을 해야 공장이 유지가 될 거다. 우리가 우리 기술로 직접 생산해서 사장 이름으로 찍어내는 세상의 종말에 관한 논문들은 솔직히 누가 사 가는지 모르겠다. 아마 아무도 안 사갈 거다. 재고로 그대로 쌓이는 걸 거다. 사장이 워낙 부자라서 월급도, 인쇄비도 꼬박꼬박 지불이 되는 거지 이게 어디 수지맞는 장사라고 할 수 있을까. 돈 되는 장사였으면 누구나 다 공장을 차렸겠지.
  사장은 기이한 분이다. 어렸을 적에는 공부께나 했는지 일본사람들이 동경대도 보내 주고 징집도 빼 준다고 했단다. 결국은 그런데 워낙 엉뚱한 사람이라 결국은 유학을 못 갔단다. 유학 시켜준다는 사람한테, 자기는 65년 뒤에 올 세상 끝날에 대해서 공부하겠다고 그랬다는 거다. 머지않아 세상이 뒤집어진다니, 얼핏 들으면 혁명 이야기 아니냐. 그 소리를 듣고 총독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겠니. 그 전쟁통에 형무소에 안 보낸 게 다행이었지. 하지만 앞으로 학계에는 절대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더란다.
  “어디 니가 65년 뒤에도 살아있나 두고 보자.”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사장은 이제 공부 같은 것은 그만두고 돈이나 원 없이 벌어서 떵떵거려 보겠다고 작정을 했는데, 그만 전쟁통에 돈이고 뭐고 죽을 고생을 했단다. 그러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서 나중에는 군수 회사를 차려서 미군 달러를 좀 만지기도 하고 어쩌고 하다가 근래에는 사우디 현장에서 돈을 꽤 많이 모은 모양이더라. 다른 부자들은 그렇게 모은 돈으로 으리으리한 집이나 외제차를 살 때 우리 사장은 사모님 잔소리를 들어가며 이 공장을 세웠다. 부자가 되고 나니 아무 나라나 가서 어려움 없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이제는 한가하게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을 시간이 없더란다. 세상이 망하게 될지 아닐지도 이제는 확신할 수 없게 된 모양이겠지. 사장은 공장장에게 초기 자본금과 운영비 절반만 댈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벌어 보라고 했단다. 놀고 먹는 공장은 되지 말라는 거다.
  공장장은 원래 중동에서 파이프라인 용접을 책임지던 양반이었는데, 사장이 이 공장을 믿고 맡기자 의욕에 넘쳐서 일을 맡았다. 첫 해에는 1층 주석(註釋)라인에 각주 한 개에 얼마씩 성과급을 지급했는데, 그 결과 각주만 574개가 달린 50쪽짜리 논문이 나와 버렸다. 그 논문을 보고 공장장이 화가 나서 1층 라인을 대거 해고해버리는 바람에 내가 쉽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셈이다. 그때 해고된 사람들은 쇠사슬 공장 노조 사람들과 어울려서 아직까지도 공장장을 성토하고 있다. 나도 직장에서 내몰린 사람들 딱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내륙아시아지역 종말 예언 비교 연구”는 각주가 574개나 달려 있는 모양이 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너무 우스꽝스럽다. 그러니 공장장 마음도 이해가 간다. 몇 달간 피땀 흘려서 쓰레기를 만들어버린 거다.
  그런 면에서는 학자들이 우리 공장을 무시해도 할 말이 없다. 그 사람들은 진리가 어떻게 공장에서 찍혀 나올 수가 있겠느냐며 우리를 비웃는다. 진리는 오랫동안 훈련받은 사람의 이성에서 나오는 것이지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공정 따위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언젠가는 좋아질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내적타당성만 봐도 엉망인 논문들이 한둘이 아니다. “미-소 핵전쟁 전망 관련 연구들에 관한 연구”이라는 논문은 1990년대에 소련이 무너질 거라고 예측하고 있는데, “핵전쟁에 의한 종말에 관한 비교예언분석”에서는 2000년대 말에 핵전쟁으로 세계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결론이 나 있다. 핵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20년 후에 소련은 왜 무너지는 것이며, 그로부터 20년 후에 소련도 없는 곳에서 미국은 도대체 누구와 핵전쟁을 한다는 말일까. 이렇게 우리 공장 제품이면서도 서로 앞뒤가 안 맞는 것들을 읽다 보면 곧 이 일에 대한 회의가 느껴지기도 한다. 미숙 씨도 그 비슷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외적타당성이 엉망인 제품까지 따지자면 아마 한도 끝도 없을 거다.
  그러나 그 말도 안 되는 제품들 덕분에 나와 어머니는 그럭저럭 형편이 괜찮다. 나는 그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제야 내 힘으로 그럭저럭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뿌듯하다. 내가 고학(苦學)으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던 그 시절에 나나 우리 식구들은 얼마나 힘이 들었니. 운 좋은 때를 만나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게 다 네가 믿는 하느님이 나와 어머니를 보살펴 주신 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행복한 나날에 너만 쏙 빠져 있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편히 잠이 들 수가 없구나. 네가 돌아와 주어야 오빠가 행복할 텐데. 네가 돌아와 주어야 내가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고 할 텐데. 은경아. 어렸을 적 숨바꼭질하고 놀던 때부터 그랬잖니. 네가 마음먹고 숨어버리면 아무도 너를 못 찾았잖니. 어머니와 나는 성식이가 너를 찾아낼 거라는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는단다. 그러니 네가 먼저 나타나 주렴.
  네가 믿는 하느님이 너를 끝까지 보살펴 주시기를.

  
오빠가.




  197×년 ○월 9일
  지난번에 성식이가 서울에 갔을 때 탐정을 사서 네 소식과 편지 주소를 알아왔다. 그때 내가 쓴 편지도 너에게 전해졌으리라고 들었다. 집 나간 뒤로 네가 대강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들으시고 어머니는 앓아 누우셨다. 나는 그 탐정이라는 작자의 말을 신용하기가 꺼려진다고 말씀드렸다. 착수금이라고 성식이한테 받아 가지고는 어디 노름판에서 다 날려 먹고 나서 대충 아무렇게나 둘러댔다고 해도 우리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 아니냐. 이 편지 주소도 나는 신용할 수가 없지만, 어머니가 편지 하나 넣어 보라고 성화를 부리셔서 몇 자 적는다.
  탐정이라는 작자가 네 아이 이야기를 했다. 물론 나는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가 됐든 다른 뭐가 됐든 네 형편을 고달프게 하는 게 있거든 망설이지 말고 내게 맡겨 주었으면 좋겠다. 오빠는 이제 내 삶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을 만큼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뭐든 이야기하길 바란다. 미숙 씨에게도 그렇게 말해 두었다. 순하고 착한 여자라 싫거나 섭섭한 기색이 없더라. 나를 빼고 나면 이 세상에 미숙 씨만큼 네 재능을 아까워하는 사람도 없을 거다.
  일전에 쓴 것처럼 미숙 씨는 볕이 잘 드는 외적타당성 관리반에서 일한다. 보통은 내가 커피 같은 것을 들고 미숙 씨 일하는 곳을 찾아가곤 하는데, 어느날은 미숙 씨가 책 한 권을 들고 나에게 찾아오더니 이런 말을 한다.
  “저기, 동생 이름이 은경이랬죠?”
  “예.”
  “55년생?”
  “그래요.”
  “저기 이거, 우즈베끼스딴 예언서인데요. 여기 이거요.”
  나는 미숙 씨가 사뭇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처음에는 이 여자가 왜 갑자기 소련에서 나온 글을 건들고 있나 싶어서 걱정스러울 따름이었다. 선전과에서 자체 검열을 미리 거친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장처럼 국내에 워낙 적이 많은 분 밑에서 일할 때는 본인이나 윗사람 서로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외적타당성 관리반은 우리 공장 상품이 외부 세계의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려고 늘 이것저것 위험한 것들을 기웃거리기 일쑤다. 나는 그게 걱정스러웠다.
  미숙 씨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신경도 안 쓰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내 옆에 바싹 붙어 서서 책의 한 대목을 손으로 짚으면서 말했다.
  “마르길란이라는 곳에서 나온 예언서래요. 실크로드에 있었던 도시였다는데요, 마르길란 최후의 예언자에 대한 예언이 있어요. 너무나 늦게 세상을 구원하러 나타난 나머지 사람들이 세상의 비탄을 견디다 못해 거의 모든 희망을 접었을 때에야 비로소 이 예언자를 볼 수 있을 거래요. 그래서 ‘늦게 깨달은 자’라는 칭호를 얻는대요. 그런데 특이한 건요, 이 예언서에는 예언자 당사자가 아니라 그 어머니의 이름이 써 있어요. 그렇게 구체적인 이름까지 나오는 경우도 드문데, 예언자 엄마 이름이 예언되는 일은 더 없거든요. 아, 여기네요. 기나긴 절망으로부터 마침내 세상을 구원하는 사람의 어머니. 이거에요.”
  나는 미숙 씨가 빨간 색연필로 밑줄을 쳐 놓은 곳을 보았다.
  Nky.
  다시 미숙 씨에게 물었다.
  “어떻게 읽는 겁니까?”
  “은키? 엔키? 유럽 사람들이 소리만 비슷하게 옮겨 적느라 적은 거니까 아마 현지 말로는 은키라고 읽겠죠.”
  “은키?”
  “네, 은키. 그래서 말인데요, 저, 동생 이름이 은경이잖아요.”
  “예.”
  나는 미숙 씨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채고는 되물었단다.
  “이 여자가 우리 은경이라고요? 아니, 하지만 미숙 씨. 은경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흔한데요. 내가 아는 은경이만 다섯 명이에요. 그리고 그걸 은경이라고 읽는 게 맞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소련 쪽 예언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한대요. 은경이라는 이름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걸 알고는 무슨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떠들썩했다는데요.”
  “미숙 씨.”
  “그리고 동생 나이나, 그 아이 나이도.”
  “아니, 잠깐만요. 미숙 씨. 우리 은경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에요. 애를 낳다니요. 저는 그 말 안 믿어요. 그리고 미숙 씨. 소련 책 자꾸 보면 큰일 나요. 저는 다른 것보다 그게 걱정스러워 죽겠어요. 선전과에서도 당분간은 더 조심하라잖아요.”
  그 일로 미숙 씨와는 한동안 서먹서먹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 마음이 고맙다. 미숙 씨는 착한 여자다. 나도 네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든, 먼 훗날 사람들이 너를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네 나이 또래의 은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다 특별해 보인다.
  미숙 씨가 들려준 이야기를 어머니에게도 들려 드려야 할지 고민해 보곤 한다. 하지만 어머니께는 아무래도 그런 이야기는 해 드리지 않는 게 좋겠다. 그 이야기, 어쩐지 우리가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소리로 들려서 싫다. 나중에 우리가 너를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영원히 너를 가슴 속에 묻어두기로 마음먹는 날에, 그때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해 드릴 생각이다.
  하지만 어지간하면 네가 먼저 나타나 주렴. 우리는 너를 찾을 수가 없구나.

  
오빠가.



  197×년 ○월 30일
  은경아. 어머니께서 몸이 많이 편찮으시다. 몸져누우신 뒤로 열흘이 가도록 열이 높고 음식을 잘 떠넘기지 못하셔서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에 가 보란다.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너는 그때 너무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에도 나는 지금처럼 무서웠단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더 해 봐야 알겠지만 이번에는 예감이 좋지 않다.
  어머니도 무슨 예감이 드셨는지, 내가 못 보는 동안 혼자서 눈물을 지으시더라.
  “은경이 년. 남들은 딸자식이 아들자식보다 더 재미있다고 그러는데 이 매정한 년은 에미 가슴에 못을 박고 어디로 숨었대니?”
  하시는 소리를 들을 때에도 나는 슬픈 생각보다는 겁이 먼저 난다.
  은경아. 혹시 이 편지를 보거든, 꼭 돌아와 다오.

  
오빠가.



  197△년 △월 △일
  어머니는 편안하게 잠드셨다. 네가 돌아오면 미안하다고 전해 달라고 하시더구나. 나는, 우리 세 식구, 이제 누가 누구한테 미안해하고 그러지 말자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가 그렇게 가시고 나서, 나는 조금 더 일찍 미숙 씨를 소개시켜드리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됐다. 그래서 곧 식을 올린 다음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가서 며느리를 인사시켜드리고 내려왔단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간 나도 탐정을 사서 너의 흔적을 찾아봤단다. 양병학이라고, 전에 성식이가 샀던 그 사람이다. 누가 믿을만한 사람이고 누가 사기꾼인지 몰라서 또 그 사람한테 부탁했다. 너를 찾기가 쉽지 않은 모양인지, 네 행적이 끊어진 곳에서 그 양병학이가 착수금을 더 달라고 요구하더라. 거기서부터는 더 파고 들어가기가 까다롭다는구나. 그냥 돈 문제가 아니라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 같다고 그러더라. 하지만 그 무렵에 나는 그렇게 형편이 좋지가 않았단다. 어머니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거든. 결국 너를 찾는 일은 거기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일을 마무리하고 나머지 대금을 정산하는 날, 양병학이가 네 사진을 내밀었다. 이미 어머니께는 보여드릴 수 없게 되고 말았지만, 나는 그 사진을 받고는 반시간이나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너와 내 조카를 들여다봤다. 웃고 있는 모습이 꼭 닮았다 싶었다. 옷가지며 배경이며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구석구석 훑어보면서 네 지나온 흔적들을 추측했다. 그래. 이러니저러니 해도 네가 그렇게 웃고 있는 사진을 남겨 준 덕에 나는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식구는 줄고 돈 버는 사람은 하나가 늘었는데도 요즘 우리 형편은 썩 좋지가 않다. 공장이 영 벌이가 시원치 않구나. 요 전에는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 몇 명이 공장장실에 들어가더니 세 시간이나 머물러 있었단다.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은 놔두고 나만 불러다 한 시간이나 아버지 고향이며 친척들 이름 같은 걸 캐물었다. 나는 아직도 그 영문을 모르겠다.
  사장은 벌써 반년이나 외국에 나가 있다. 공장장이 대신해서 윗선을 찾아다니면서 기름칠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사장이 만날 수 있는 사람과 공장장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격이 다른가보더라. 사장이 석유 개발을 해 보겠다고 중동 쪽에 가 있는 동안 소련 쪽 사람들을 이래저래 만난 것 같은데 그 일을 뒤에서 수습해줄 사람이 국내에는 없다. 우리 편은커녕 무슨무슨 대학 교수님들이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구나. 고등교육을 받은 적 없는 노동자들 끌어 모아서 지식을 생산하자는 게 고단수 공산주의가 아니고 뭐냐고 난리다. 우리가 공산당이면 노조 일 하는 사람들은 왜 또 그 난리니? 일전에 공장장이 한꺼번에 잘라버린 각주 라인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안팎이 시끄럽다. 사장이 거물이 아니었다면 나도 어쩌면 끌려가서 고초를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거기 갔다 병신 돼서 온 사람치고 영문을 알고 갔다 온 사람이 얼마나 되겠니.
  네 새 언니더러 직장을 관두라고 말했다. 집에서 밥이나 짓고 청소나 하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네 새 언니가 그동안 소련 책들을 좀 만졌던 게 영 마음에 걸려서다. 우즈베끼스딴 예언서의 예언자 모친 이야기를 쓴 편지는 아직도 가지고 있니? 가지고 있으면 이 편지랑 같이 불에 태워버리는 게 나을 거다.
  용접 라인에 너와 이름이 같은 은경이라는 직원이 있다. 이 은경이가 하는 용접 일이라는 건 자기가 직접 집필을 하는 게 아니고, 집필 라인에서 세 쪽씩, 다섯 쪽씩 써서 넘긴 글들을 받아다가 이어붙이는 작업이다. 여러 사람이 나눠서 쓰다 보니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생기지 않겠니. 그런 데를 찾아서 자연스럽게 고치는 게 용접 라인 일이다. 단순 작업이라는 뜻이다. 어제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작년에 우리 공장에서 나온 “폴란드-헝가리 지역 예언민담 비교분석”이라는 제품을 가지고 시비를 걸었는데, 은경이도 불려가서 조사를 해야겠다는 거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내가,
  “선생님, 얘는 그냥 단순 용접작업이라서 아마 글은 읽어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고 나섰지만 별 수가 없었다.
  “뭐야? 선생님? 이 빨갱이 새끼가. 너 품질관리과라고 했지. 그럼 품질관리과에서는 다들 돌려 읽고 학습했다 이거야?”
  하는 소리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대뜸 하는 소리가 빨갱이라니. 애국자와 불온한 자를 도통 가려내지 못하는 세상이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너도 미리 조심해라.
  양병학이 말로는 너에게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 같다던데, 괜히 들쑤시는 거나 아닌지 걱정이다. 양병학이 말이 자기가 찾아 들어가면 찾아 들어갈수록 네 행방이 묘연해지는 것이, 아무래도 네가 일부러 피하는 것만 같단다. 그래서 이제 더는 찾지 말까 마음을 먹은 적도 있다. 하지만 네가 네 의지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안 좋은 상황에 처해 있어서 다른 사람이 너를 감추고 가두는 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다시 돈을 끌어 모아서 이 사람을 다시 한 번 보낸다. 이 편지도 같이 딸려서 보낸다. 그렇다고 너무 신뢰하지는 말아라. 나도 아직은 잘 모르는 사람이다. 이 탐정이라는 작자는, 아무래도 네가 집 나가서 여공(女工) 할 때 노조 일인가 뭔가를 하다가 북쪽에 줄이 닿은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속삭이고 갔다. 아무래도 요즘 내 사정이나 우리 공장 사정을 뻔히 알고 하는 협박이 아닌가 싶다. 돈을 더 내 놓으라는 소리를 안 하는 게 이상하지만,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알 수 없으니 그게 더 무섭다. 아무튼 신뢰할 수 없는 부류다.
  답장을 돌려받을 생각은 안하고 있다. 어디에서 뭘 하고 있든 잘 살고 있기만 바란다.
  어머니는 아버지 옆에 모셨다. 명절이나 기일에는 네 아이도 그쪽을 보고 절이나 한 번 하게 해라.

  
오빠가.



  197△년 ×월 ×일
  몇 번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다. 험한 말은 들었어도 피는 보지 않았다. 사장이 잠깐 입국했다가 공장에도 안 들르고 다시 나갔다는데, 그러고 나자 이래저래 다시 사정이 나아졌다. 생산라인도 다시 돌아간다. 네 언니는 네 조카를 가졌다. 아직은 공장에 나가고 있지만 곧 몸이 무거워질 거다.
  공장장이 불러서,
  “사장님이 다 알아봐 주시고 직접 다 주선해 주셨으니까, 미숙 씨 배 불러오기 전에 미국으로 떠나게.”
  하고 말했다. 그때 나는 내가 왜 이런 고초를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공장장도 그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유는 몰랐지만 그 고초가 괴로워서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지금 돌아가기 시작한 생산라인이 한 번 다 돌 때까지만 있게 해 주십시오.”
  “그래. 그러게.”
  나는 공장장의 승낙을 얻고 공장에서 마지막으로 생산 라인을 돌리고 있었다.
  세상도 어수선하고 공장도 어수선했다. 공장이 다시 돌아가고, 우리가 검토해야 할 제품들이 슬슬 1층에서 다시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결과가 좀 이상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제품들의 내적타당성이 한결 좋아진 거다. 각 제품 안에서 모순되는 논리가 발견되는 경우도 줄어들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품들끼리 서로 모순되는 부분이 한결 줄어든 거였다. 나는 과장님께 가서 말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요. 우리가 무슨 특별한 조치를 취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불량률이 떨어질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과장님도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제품 샘플들을 빤히 쳐다만 보고 있는 거다.
  “잘 됐잖아. 품질 향상인데.”
  과장님은 그냥 그러고 만다.
  “다들 똑같은 말만 한다고 품질 향상이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다들 똑같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요.”
  “뭐가 다 말이 안 돼?”
  “그렇잖아요. 이게 말이 돼요?”
  “제품들이 다 똑같은 결론을 내고 있으면 그게 맞는 거겠지. 뭐가 말이 안 돼? 외적타당성은 어떻대? 그쪽도 좋아졌대?”
  과장님이 그렇게 되물었다. 그래서 나는 외적타당성반에 가서 요즘 제품 품질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네 새 언니가 아주 기분 좋은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는 거다.
  “요즘 진짜 좋아졌어요. 외국에서 아주 최근에 나온 책들하고 비교해 봐도 모순이 안 나와요. 왜 이렇게 불량이 없어졌죠? 용접도 아주 매끈하던데요.”
  나는 과장님께 그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과장님은 이렇게 말하는 거다.
  “내적타당성도 불량이 안 나고 외적타당성도 불량 안 나면 그게 좋은 제품 아니냐? 그걸 두 개 다 안 믿을 거면 자네는 왜 우리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 자네 생각에 공장에서 생산한 진리는 질이 떨어지는 것 같아?”
  “진리요?”
  나는 더 이상 따질 수가 없었다. 은경아. 진리란다. 진리.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가서 돈이나 벌어야겠다고 했을 때부터 나는 진리라는 건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후로는 그냥 시키는 대로, 공정이 흘러가는 대로 그저 나에게 할당된 작업을 처리할 뿐이었다. 내가 진리를 생산하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했다.
  은경아, 그게 도대체 어떻게 진리일 수가 있을까. 우리가 생산해 놓은 게 진짜 진리라고 믿는다면 품질관리과장이나 공장장은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가 있는 걸까. 우리 제품들이 하나같이 내 놓기 시작한 결론, 그 결론을 보고도 어쩌면 그렇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걸까.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 처를 앉혀다 놓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직 완제품들은 아니지만 지금 생산중인 제품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결론들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처가 물었다.
  “시제품들이 뭐라는데요?”
  “30년쯤밖에 안 남았대.”
  “뭐가요? 석유 매장량이요?”
  “아니. 세상의 수명이.”

  그 다음 주에 공장장이 그 사실을 사장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사장은 공장을 150프로로 가동하라고 지시를 했다. 납품 기한도 따로 없는 자체 생산품 때문에 주말까지 반납하고 철야를 해야 한다는 말에 직원들은 어이가 없어했고, 노조 일 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장장은 잔업 수당을 두 배로 줘 가면서 작업을 독촉했다.
  가장 알 수 없는 일은, 그 옛날에 사장이 어떻게 알고 세상의 끝에 관한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가 하는 거다. 돈을 좀 벌고 나서는 스스로도 세상의 끝 같은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도 없었으면서, 어떻게 알고 이런 공장을 짓고 또 돈을 댈 생각을 했을까. 사장은 공장장의 보고를 듣고 기뻐하고 있을까, 걱정하고 있을까.
  하긴, 사장은 세상 마지막 날까지는 살지도 못할 거다. 그러니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 상관이 있는 일이다. 네 새 언니 뱃속에 있는 아이나, 네가 낳은 아이를 생각하면 30년은 그렇게 길어 보이지도 않는다. 어쩌면 나에게도 30년은 충분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의 수명이 그렇게밖에 남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해야 할 일이 많아질 거다. 그 누구에게도 시간은 충분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과는 상관없이 철야 7일째에 노조가 파업을 했다. 공장장은 생산중인 제품 원본과 다음 분기에 생산에 들어갈 논문 설계도, 그리고 기초자료들을 금고에 넣고 그 앞을 지키고 섰다. 공장장은 경찰을 부르지 않았다. 어쩌면 불러도 와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사복 경찰들은 주위를 맴돌면서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을 거다.
  노조 사람들은 나도 파업에 끼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내 복잡한 사정을 다 알만 한 사람들이 그렇게 강압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는 정이 다 떨어졌다. 무엇보다 나는 사장의 말이 이해가 갔다. 우리는 철야를 해서라도 하루빨리 세상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근로자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공장 사람들은 자기들이 직접 만들어 낸 제품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어린애들 장난 같은 공정을 통해 진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학계에서 하는 말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공장장은 그 말에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그러자 노조 사람들이 자재실과 인쇄실을 불태웠다. 나는 자재실이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꼈다. 우리 공장 자재실은 그냥 창고가 아니다. 다른 데 있었으면 도서관이라고 불릴 만한 곳이다. 일제때 일본 사람들이 모아 두고는 미처 못 가져 간 외국 책들부터 사장이 외국에서 박스로 사다 보낸 책들까지, 그 귀중한 자재들이 서가에 꽂힌 채로 불에 타 들어가는 야만의 현장을 보고 나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공장장 편에 서서 사장실 금고 앞을 지켰다. 파이프를 들고 사람을 때리고, 맞아서 피를 흘리기도 했다. 나는 진리의 편에 서고 싶었지만, 내가 지키고 있는 물건이 진짜 진리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의심스러운 진리 앞에 서는 것 말고는, 나는 아무데도 서 있을 데가 없었다. 나는 사복경찰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사를 받으러 끌려갔을 때 본 그 사람의 얼굴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죽는다.”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이제 진리를 지켜낸다 해도 나에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나는 곧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사장이 마련해 준 방침에 따라 공장장이 도피 길을 주선해 주었다.
  가져갈 수 있는 것들을 대충 정리하고 있는데 탐정이, 양병학이가 네 소식을 가지고 왔다. 좋지 않은 때였다. 그 소식을 듣고 나서야 나는 왜 나라에서 나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자꾸 못살게 구는지 알 것 같았다. 양병학이는, 이제는 진짜로 다른 사람에게 맡기든지 하라고 했다. 자기도 덩달아 빨갱이로 오해받기도 싫고, 게다가 소련말을 못해서 이제는 하고 싶어도 더는 추적을 할 수가 없단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알아낸 소련 주소로 편지 하나를 넣어 주겠단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소련 간첩이라니. 착해빠진 네가 요원이라니. 네가 어떻게 그런 험한 일을 하게 된 걸까. 어쩌다가 그런 나쁜 일을 하게 됐을까. 아니, 어쩌면 그 일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봤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험한 일은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면, 오빠는 그저 말리고만 싶구나.
  양병학이는 소련으로 넘어간 간첩의 친오빠를 알고 있다고 신고하지 않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하란다. 옳은 말이다. 현상금이 얼만데 그걸 포기하다니 생각보다 믿을 만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을 신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돌아서고 나면 그자는 나를 배신할 거다. 배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자가 신뢰를 지켜 주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아마 자기 스스로도 나라에 켕기는 게 많기 때문에 그러는 걸 거다. 어쩌면 이 편지도 너에게 가는 게 아니라 어느 기관의 손에 넘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나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일 거다. 그러니까 행선지는 여기에 쓸 수가 없다. 사장이 주선해 준대로 미국으로 가지 않을 것만은 확실하다. 어차피 출국 같은 건 할 수도 없을 테니까.
  은경아. 진짜로 이 편지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너도 아마 꽤 놀랄 거다. 어떻게 거기까지 알아냈을까 하고 말이다. 사실 네 주소를 보고 나도 놀랐다. 어떻게 네가 우즈베끼스딴 마르길란에 가게 됐을까 하고 말이다. 거기까지 갔으니 이제 돌아오라고 말할 수가 없구나. 서로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전해질지 못 전해질지도 모를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하자꾸나.
  은경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동생아. 네가 그렇게 집을 나가버린 뒤로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말벗 하나를 잃어버리고 내내 외로웠단다. 너는 나보다 더 외롭고 힘들었겠지. 오빠가 참 미안하다. 끝까지 기다려주지 못해서. 집에 돌아와도 이제 나는 없을 거다. 세상의 수명이 이제 겨우 30년이라는데, 나는 지금 당장의 일이 무섭고 괴로워서 이제 곧 달아날 참이다.
  내가 전에 보낸 편지들은 받았는지 모르겠다. 그때도 썼지만, 네 아이는 소중한 사람이니 훌륭하게 길러내길 바란다. 세상의 수명이 다 한 다음에 기나긴 고난의 시절이 와서 사람들이 이제 더는 예언자를 기다리지도 못할 만큼 깊은 슬픔과 비탄에 빠져있을 때, 비로소 그 아이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될 거다. 세상의 수명이 다한다 해도 사람들이 그 아이를 ‘늦게 깨달은 자’라고 부르며 존경할 때까지 그 아이는 살아남겠지.
  솔직히 나는 그 아이가 꼭 네 아이가 맞는지 확신이 없다. 세상의 수많은 은경이와 수많은 은경이의 아이들 중에서 어느 은경이와 어느 아이가 바로 그 사람들일지 누가 알 수 있겠니. 그리고 그 예언은 결국 머나먼 나라 어느 동네에 전해 내려오는 민담일 뿐이지 않니. 그리고 사실 예언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그러면 세상이 좀 더 빨리 사람 살만한 데가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 아이가 꼭 예언자가 아니라고 해도, 그 아이가 살아남아서 세상을 다시 꾸려나가는 데 한몫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진심이란다.
  하지만 오늘은 네 아이가 바로 그 아이라고 굳게 믿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내가 더는 너를 기다리지 않기로 마음먹는 날에 비로소 이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려주기로 했던 것과 똑같은 이유다. 나는 이제 이 집을 떠날 거고, 오늘이 바로 그날인 것 같구나.
  ‘늦게 깨달은 자’의 어머니, 이 세상의 어머니. 그 사람은 바로 너, 은경이란다. 그날 밤 혼자 몰래 집을 나가서 머나먼 길을 홀로 돌고 돌아 언젠가는 이 세상의 끝에 가서 서게 될 네가, 나는 한없이 자랑스럽다.

  
오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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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형태: 원본(한국어)
  자료등급: 1급(예언)
  분류번호: 0-01-001-28
  기 증 자: 은키
  기 증 일: (공전력/A.D.)2022년 1월 3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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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No Profile
    07.06.30 14:30 댓글 수정 삭제
    논문공장... 굉장한 풍자로군요. 배를 잡고 웃다가도 이것저것 연상되는 것이 많아서 또 숙연해지네요. ... 저임금 고노동의 대학원공장이군요. ^^ ... 가슴아파요.
  • No Profile
    배명훈 07.06.30 23:13 댓글 수정 삭제
    음... 사실은 이거 두 페이지쯤 쓰고 나서 대학원보다 더 논문공장스러운 데 들어갔어요. 가슴아프게.
    뽀 님의 반응은 늘 여러가지 의미에서 힘이 되네요.
    건필!
  • No Profile
    매뉴얼하고 분명히 다른 이야기인데도 사소한 연결고리가 나오는 게 재밌네요^^ 아, 그리고 또 은경이가 나왔군요. 음, 가끔 진보적인 책에서 한탄하는 대학의 논문생산체제가 저런 건가 보군요=ㅁ=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배명훈 07.09.14 13:20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세계가 빤하다보니, 연결고리인지 중복인지 모를 것들이 나오게 되더라구요... 흠...
    음. 대학의 논문생산체제하고는 좀 다른 감이 있어요. 대학은 가내수공업 방식이고, 이건 공장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No Profile
    볼티 08.03.21 16:19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영식 09.07.27 14:54 댓글 수정 삭제
    어딘지 친숙한 제목을 보고 움찔했습니다. 하하. 제가 알던 것과 같은 의미의 제목을 이렇게 희망차고 환상적인 내용으로 바꿔주셔서 감사합니다.
  • No Profile
    배명훈 09.07.29 13:11 댓글 수정 삭제
    저도 논문 공장 좀 다녔거든요. 요새 그 공장은 이상한 제품을 출시하는 바람에 말이 좀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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