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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비몽사몽

2007.03.30 22:2503.30

  남들은 어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잠들어 있을 때, 꿈을 꾸는 것 외에는 거의 의식을 할애하지 않는다. 나는 완전히 잠이 든 상태를 온전하게 유지한 채로 최소한의 의식만을 활용해서 대략 일곱 가지 정도의 일만을 할 수 있다.
  우선 나는 이불을 걷어찰 수 있다. 그리고 만약에 걷어찬 이불이 발 근처에 놓여 있다면 그것을 다시 덮을 수 있다. 잠자리가 더워지면 옷을 벗어던질 수 있지만, 벗어버린 옷을 다시 입지는 못한다. 같은 자세로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허리가 아프거나 어딘가가 저려오기 시작하면 몸을 뒤집을 수도 있다. 그보다 훨씬 복잡한 동작들도 있다. 나는 모기에 물리거나 해서 가려운 데가 생기면 긁을 수 있고, 알람시계 소리가 들리면 꽤 정교한 조작을 통해 시계를 정지시켜버릴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수면을 유지시키기 위한 움직임일 뿐, 그저 잠들어 있는 동안 되도록이면 꿈의 경계 너머 저쪽에 가 있는 의식을 불러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내 몸의 배려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한가지만은 지금 말한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차원의 정신 작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불이 꺼져 있는 깜깜한 방 안에 누워 있을 때에도 내가 누워 있는 공간의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다. 물론 나만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에 방 안에 불이 꺼져 있느냐 아니냐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불이 아니라 의식이 거의 완전히 꺼져 있는 상태에서 공간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 덕에 나는 비몽사몽간에도 아내를 밟지 않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고, 밤늦게 걸려온 중요한 전화를 팔을 뻗어 한 번에 받을 수 있으며, 심지어 재빨리 메모지를 찾아서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조금 전에 사고로 돌아간 장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병원의 위치를 받아 적을 수도 있었다.
  다 받아 적고 나서, 나는 잠들어 있는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곧바로 아내를 깨울 수가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10분을 더 주었다. 장인이 아직 돌아가지 않은 세상에서 10분을 더 잠들어 있도록. 그러고 보니 처남이 아내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은 꽤 사려 깊은 조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인은 무서운 분이셨다. 키는 옛날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작달막했지만 눈빛이 매섭고 목소리가 카랑카랑해서 얼굴을 대하기만 해도 나처럼 기가 약한 사람은 그냥 풀이 죽어버릴 정도였다.
  “자네보다 내가 더 오래 살 것 같네.”
  하고 늘 나를 못마땅해 하시던 장인이 그렇게 어이없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아내에게 전하자, 아내는 그만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방 안 여기저기에서 아내의 옷가지와 내 옷들을 주섬주섬 꺼내 왔다. 그러면서, 황망한 중에 잘도 옷을 주워다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픽 웃음이 났다. 다행히도 아내는 내 웃음을 보지 못했다.
  물론 나도 장인의 죽음이 고소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른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아내의 부모들이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내의 집에 몰래 기어들어가 아내를 끼고 단잠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철컥 하고 열쇠로 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잠이 깼다. 어찌나 당황했던지, 그 순간 세상에 믿을 것이라고는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방 안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대강 파악을 하고 있으리라는 믿음뿐이었다. 일단은 믿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식이 수면 저 너머로부터 돌아오는 최초의 순간에 이용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첫 정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 일곱 번째 능력만은 수면 상태를 유지하는 것 자체보다는 잠에서 깨어난 후의 첫 동작과 관련해서 그 뛰어난 효능을 발휘해야 했던 것이다. 결국 그 효능이 영 신통치 못한 바람에 장인에게 딱 붙들려서 결혼이라는 것까지 하게 되고 말았던 것을 떠올리고, 나는 그만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바로 그 무시무시했던 장인이 저쪽으로 돌아간 날에 말이다.
  나는 장인을 무서워했지만, 그렇다고 장인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장인에게 좋은 사위가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일이지만, 그날 장인의 집에서 장인의 딸을 끼고 잠들어 있다가 들켰을 때만 해도 형편없던 이 공간 파악 능력이 글쎄, 연마하면 연마하는 만큼 정교해지고 또 숙달이 되는 것이 아닌가. 미리미리 경로를 연구하고 어떤 순서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지를 17개월에 걸쳐 부단히 이미지 트레이닝해둔 결과, 나는 내연녀의 집에 갑자기 들이닥친 그녀의 남편이 2층 계단을 향해 거침없는 걸음으로 올라오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창문을 통해 탈출할 수가 있었다. 그것도 속옷에 바지까지 대충 꿰어 입을 만큼 여유를 부린 상태에서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성취인가. 그것도 불과 2년만의 성취라니.
  그러나 그 일이 있고 나자 나는 어쩐지 내연녀에 대한 애정이 한번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리고 장인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잠들어 있는 동안 꿈이 아닌 다른 일에 의식을 지나치게 많이 할애하는 훈련을 의식적으로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깊은 잠에 빠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져버렸는데, 나는 그런 불안한 상태가 싫었다.
  그렇다. 나는 천성이 게을러서 원래부터 잠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자라면서도 큰 사고를 낸 적이라고는 한 번도 없었다. 호기심이 왕성하다거나 활발하게 돌아다니거나 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다 큰 어른이 되어가지고 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나는 밤이 깊도록 좀처럼 잠이 들지 못했던 까다로운 내연녀의 그 매끈하게 빠진 다리를 포기했다. 그리고 서서히 아내에게로 돌아와 있었다.
  그에 비하면 아내는 다리가 좀 길지 않은 대신에 확실히 쉽게 잠이 들고 또 일어날 때도 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편이었다. 가슴은 내연녀 쪽이 워낙 빈약해서 비교가 안 됐지만 아내 정도면 나쁘지는 않았다.
  일요일 아침이면 아내는 나를 깨우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서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소파에 앉은 그대로 다시 잠이 들곤 했다. 열한 시쯤 내가 방문을 열고 나가면 아내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눈만 살짝 치켜뜨고는 배가 고프다고 말하곤 했다. 내연 관계를 정리한 후 아내에게로 돌아오고 나서 한 넉 달 동안은 그 모습이 어찌나 정겨워 보였던지 나는 그만 지나간 내 외도에 대해 죄책감마저 느끼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섯 달째가 되자 슬슬 귀찮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어나면 곧 아내에게 먹을 것을 해다 바치든지 아내의 배가 너무 고파지기 전에 대충 씻고 먹을 것을 찾아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서서히 짐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직접 해 먹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이지 아내는 맛을 내는 재주라고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나는 거의 잠이 깰 듯 말 듯한 상태로 한참 동안을 이불 속에서 버티고 누워 있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시간이 얼마나 흐르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은 의식을 할애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버티고 누워 있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에 내가 파악할 수 있는 공간은 시간축이 존재하지 않는 3차원의 공간뿐이었다. 나는 그 달콤한 아침 수면을 최대한 안정되게 보존한 상태로 잠과 의식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머물러 있었다.
  저 너머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뭔가 소리가 들릴 때쯤 되면 나는 이제 슬슬 맑은 정신의 세계로 기울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의식이 돌아오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어김없이 수면 중 공간 지각 능력이, 곧 의식이 밟고 지나갈 곳 위에 붉은 카펫처럼 공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내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과 천장, 내가 머리를 두고 있는 방향, 문의 위치, 안경이 놓여 있는 곳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아니 머리 속에 그려진 것인지 머리 밖에 나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창가 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 있었으므로 문은 발쪽에 있었다. 왼쪽으로 손을 뻗으면 안경을 집을 수 있고, 침대 높이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공간의 카펫이 주위에 깔리자 의식이 내 잠의 얄팍한 경계를 뚫고 넘어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쪽 세상으로 돌아오자마자 의식은 기억 속에서 아내에게 건넬 야한 농담 하나를 건져내고 있었다. 단잠을 자고 난 뒤였으므로 눈꺼풀이 전혀 무겁지가 않았다. 그렇게 눈을 떴다. 나른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나는 내가 깜빡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내가 머리를 두고 누운 쪽에는 창문이 없었다. 왼쪽으로 손을 뻗어도 안경이 없었고, 심지어 방문은 오른쪽에 나 있었다.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의식이 기억을 더듬어 잃어버린 시간 축을 찾아서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그 차가운 방의 3차원 공간에다 시간 축을 세웠다. 나는 비로소 아인슈타인이 말한 그 공간에 누워 있었는데, 그곳에는 머리 쪽에 창문이 없었고, 왼쪽으로 손을 뻗은 곳에 안경이 없었고, 오른쪽에 나 있는 방문을 열고 세상 어디로 나가도 이제는 더 이상 아내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의식은 잘못 깔려 있었던 카펫 위에서 허탈하게 서 있었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할애한 최소한의 의식이 만들어 놓은 나른했던 일요일 아침의 공간과 방금 내가 눈을 떠서 확인한 공간 사이의 괴리를 의식이 빠르게 메워 갔다. 의식은 두 공간 사이를 연결하는 시간 축을 따라 복잡하게 구불구불 이어졌다. 나는 그 3년간의 곡선이 생각만 해도 아득했다.
  아내는 장인처럼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다. 아니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아주 오래 전에 나는 의사에게서 어쩌면 아내가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장인이 돌아간 지 3년쯤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내 옆에 아내가 누워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깊은 잠으로부터 황급히 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의식은 세상으로 돌아오자 곧 팔을 뻗어 아내가 누워있던 곳을 더듬었다. 아내는 거기에 없었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자 화장실 앞에 아내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들여다보다가 별 일 아니겠거니 하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누웠다. 나는 한 3분인가를 더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도 아내는 내 옆에 없었다. 나는 지난밤의 단잠을 후회했다. 아내가 밤새 쓰러져 있는 동안, 빛이 어렴풋이 스며들 정도로 살짝 열려 있던 그 방 문 너머 방안에서의 단잠을 나는 후회했다.
  건강하던 아내가 도대체 무슨 병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진단을 얻는 데에만 1년 반이 걸렸다. 진단이 내려질 때까지 아내는 지겹도록 검사를 받았고, 원인도 모르는 채로 겨우 증상만 완화시킬 수 있다는 비싼 약을 썼다. 그런 약을 썼는데도 아내는 아파했다.
  아내가 폐의 일부를 떼어내는 수술을 받던 날, 나는 아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의자에 누운 채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이번에도 또 그놈의 단잠이었다. 나는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등받이 쪽으로 몸을 바싹 붙였다. 나의 잠들지 않는 마지막 의식이 의자의 폭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내가 누워 있었던 3인용 의자의 폭신한 부분과 테두리 부분 사이의 굴곡이 만들어내는 불편함이 이따금씩 나를 뒤척이게 만들었다.
  자고 있는 동안에 내가 그저 의자 모양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내의 수술실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의식은 잠의 나락 깊은 곳까지 가 있지 못하고 현실 언저리에 위태롭게 매달려서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꿈틀거렸다. 그래도 그 잠은 오랜만에 맛보는 단잠이었다. 아내에게는 안 된 말이었지만 내 의식은, 약 때문에 잠들어 있는 아내의 의식이 가 있는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아주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그때였다. 차가운 병원 복도를 따라 멀리서부터 발자국 소리가 다가오자 내 의식은 그만 흠칫 놀라고 말았다.
  “장인어른!”
  생생한 발소리에 놀라 의식이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나 몸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의식은 벌떡 일어나 앉고 싶었으나, 아니 넙죽 엎드려 장인의 발목이라도 잡고 엉엉 울고 싶었으나, 몸은 벽을 향해 돌아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지 않은데도 몸을 움직이는 데에 의식을 할애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만 절대 잠들지 않는 내 의식의 일곱 번째 감각의 힘으로,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장인의 위치만 짐작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잘못했습니다, 장인어른! 은경이 데려가지 마세요! 이제 고생 안 시키겠습니다. 데려가지 마세요, 장인어른! 저더러 책임지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가위에 눌린 목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장인이 한참을 더 내려다보고 있다가 뚜벅뚜벅 걸어서 돌아갈 때까지 복도는 내내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굳이 의식을 현실세계로 불러내 오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아내를 고생시키고 말고가 내 손에 달려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가 더 잘 벌고 아내가 더 책임감이 있었으니까. 나는 잠든 채로 픽 웃고 말았다.
  그렇다고 픽 웃는 것이 내가 잠자는 동안 할 수 있는 여덟 번째 일이 된 것은 아니었다. 대신 나는 아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다른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능력이란 그런 것이다. 충분히 연마하면, 사람은 잠들어 있을 때에도 의식의 상당부분을 꿈 이외의 것에 할애할 수 있다. 충분히 연마하면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기(氣)의 흐름이 변하는 것을 알아채서 암살을 피하는 일쯤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비록 거기까지는 연마하지 못했지만, 아내가 수술실에서 나온 뒤부터 나는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한층 힘겹게 들려오는 아내의 숨소리가 밤새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들을 수가 있었다. 나는 아내의 숨소리가 힘겹게 퍼져나가는 병실의 모양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잠이 들었다. 아내의 숨소리가 텔레비전에 부딪쳐서 돌아오고, 냉장고 윙윙거리는 소리를 만나 꺾이고, 옷장 문을 열지 못해 그 앞에 섰다가 이내 되돌아오는, 그런 소리들. 아내의 숨소리가 퍼져나가는 파장들 아래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놓여 있는 잡동사니들. 다급한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해야 아내를 밟지 않고 벽에 부딪치지도 않고 재빨리 병실 밖으로 뛰쳐나가 다른 사람을 불러올 수 있을까. 나는 바람을 피우던 때처럼 불안했다. 그래서 잠자고 있는 동안 소리에 너무 많은 의식을 할애해야 했다. 그래서 도무지 깊은 잠에 빠져들 수가 없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결국 눈까지 쌓인 차가운 땅에 아내를 묻고 돌아온 날에, 나는 장인 무서운 줄도 모르고 오랜만에 단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에게는 이제 집이 없었다. 아내가 아프다고 해서 집값만큼 약을 쓰고 집값만큼 비싼 치료를 했는데도 아내는 괴로워만 하다가 저쪽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이제 집이 없었다. 나는 혼자 누운 채로 잠에서 깨어났다가 이내 다시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일곱 살짜리 조카 방을 그렇게 차지하고서 나는 몇 달을 더 지냈다. 그 동안 나는 종종 장인이 나오는 꿈을 꾸곤 했다.
  “할 만큼 했잖아요.”
  나는 장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장인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몽둥이를 두 손에 움켜쥐고는 나를 쫓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장인이 무서워서 도망쳤다. 그런데 발이 빨리 움직여주지 않았다. 마음은 급하게 달아나고 있었지만 다리는 성큼성큼 내딛지 못했다. 거의 장인에게 붙들릴 만큼 다급해지자 나는 곧 의식을 불러내었다. 근심에 싸일 때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의식은 그 얇디얇은 꿈을 아주 손쉽게 한 겹 걷어내더니 기억을 더듬어 아내가 언젠가 해 준 말을 찾아냈다.
  “당신이 왜 자꾸 다리가 안 움직이는 꿈을 꾸는지 알아?”
  “몰라.”
  “다리를 오그리고 자니까 그렇지.”
  그 말을 들은 뒤부터 나는 늘 다리를 뻗고 자려고 애썼다. 벌써 몇 년 동안이나 그래왔다. 그러나 아내가 돌아간 뒤로는 나도 모르게 다리를 접고 잠들어 있을 때가 많아졌다. 근육이 수축되어 있어서인지 피가 잘 안 통해서인지, 다리 쪽에서 느껴지는 그 조그만 불편함을 꿈은 놓치지 않았다. 그 잠버릇을 어떻게 알았는지 장인은 사흘이 멀다 하고 몽둥이를 들고 쫓아왔다.
  “그 정도면 저도 할 만큼 했잖아요!”
  나는 장인에게 그렇게 외쳤다. 장인도 아내가 있을 때나 장인이지 아내도 없는 마당에 장인은 무슨 장인인가 싶었다. 깨어나서 생각해 보면 내가 아내를 그렇게 못 잊어 했던가 싶었다. 나라는 인간이 과연 들키지도 않은 외도 때문에 그렇게까지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는 인간이었나 싶었다.
  아무튼 아무리 애를 써도 잠들어 있는 동안 오므린 다리를 펴는 재주는 생기지 않았다.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도무지 그런 일에다 의식을 할애할 수가 없었다. 아내가 가고 나자 나는 곧 예전의 나로 돌아왔다. 즉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딱 일곱 가지 일에만 의식을 할애했다. 사실 꿈에 장인이 나타나도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꿈에서 깨어나면 그 동안 미뤄 두었던 일상이 번거롭게 밀려왔지만 그것도 참아줄 수 있었다. 꿈속이든 꿈밖이든 그 두 곳에서는 누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참아볼 수 있었다. 다만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 둘 사이의 공간을 침범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깨어있는 것도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닌 그 좁은 공간에 이불을 깔고 누워서 잠이 들었다. 형수는 내가 영영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잔다고 말했다.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내가 잠들고 싶어 하는 잠은 그렇게 긴 잠이 아니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의식이 감각기관을 하나하나 차단하다가 결국 잠의 문턱을 넘어가기까지의 짧은 순간, 그리고 잠의 문턱을 방금 지나온 의식이 세상의 감각을 받아들이기 직전의 짧은 순간, 그렇게 딱 두 번 뿐이었다.
  그 비좁은 틈새를 향해 나는 치열하게 잠이 들었다. 편안한 이불 속에 드러누워서 더우면 벗고 추우면 이불을 끌어당기고 가려우면 긁고 뻐근하면 뒤집었다. 그런 곳에 근심이 끼어들 데가 어디에 있을까 싶겠지만, 어느 순간 깨닫고 보니 그 비좁은 공간에도 어느새 근심이 비집고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그 근심은 이런 것들이었다.
  ‘잘 때 발을 두고 잔 방향으로 걸어 나가면 나무로 된 방문이 있고, 방문을 열고 나가서 왼쪽 문은 화장실, 오른쪽으로 꺾어서 다섯 걸음쯤 가면 냉장고가 있다. 지금은 잠이 하도 달아서 꼼짝도 하기 싫지만, 눈을 뜨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면 아내가 소파에 반쯤 누운 자세로 졸고 있다.’
  물론 눈을 뜨면 나는 그런 공간에 잠들어 있지 않았다. 열흘에 한 번쯤이었을까, 아침에 눈을 뜨려고 보면 나의 수면 중 공간 지각 능력은 꽤 자주 그런 잘못된 정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그 능력이라는 것도 결국 기억이 만들어 내는 것일 뿐이니까 최근에 가장 오래 살았던 집을 떠올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이 녀석이 급기야 나를 아예 동떨어진 공간 속에다 내려놓는 경우에 대해서는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어느날 잠에서 깨어날 무렵에, 나는 아라비아 해에 접한 어느 바닷가 민박집에서 잠들어 있었다. 파도소리는 이 동네 어디에서나 하루 종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낮에는 다른 일들을 하느라 들을 수 없었을 뿐이다. 일찍 일어난 개들이 짖고 있었다. 개들이 한참 짖다가 한낮의 더위에 지쳐 나른하게 잠들 때쯤이면 나는 수영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해변으로 걸어 나갈 생각이었다. 수영은 잘 못하지만 파도가 잔잔한 바다 위에 몸을 띄우고 머리 위에 걸려 있는 하얀 반달을 올려다보면서 둥둥 떠다니기만 해도 좋았다. 아내는 내가 하늘을 보고 떠 있는 곳 근처를 헤엄쳐 다닌다. 지금은 내 옆에 누워서 잠들어 있는 나의 아내가.
  그러면서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내가 누워 있는 곳의 공간을 그렸다. 그러니까 내가 누워있는 곳의 반대쪽 구석에 문이 있고 내 왼편으로는 욕실이다. 어제 걸어 놓은 빨랫줄이 방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그 위 천장에는 커다란 날개가 달린 팬이 천천히 돌아간다. 스위치는 문 옆에 있고.
  그러다 그곳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나라에서, 일곱 살짜리 조카가 쓰던 방에서 눈을 뜨고 나면, 방 문은 내가 조금 전까지 굳게 믿고 있던 그곳에 있지 않았다. 방 문이 그곳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 나는 화가 났다. 배신감이었다. 그러나 잠과 의식 사이에 난 비좁은 틈새 그 어디에도 나를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나에게 속아서 나에게 화를 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화를 내다보면 속은 내가 나인지 속인 내가 나인지 알 길이 없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엉뚱한 곳에서 잠을 깨는 일은 몇 번 되지 않았지만 아내가 있는 곳에서 잠을 깨는 착각이 한 달에 두세 번씩이나, 좀 피곤한 날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반복되자 나는 그 허탈한 기분이 견디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아내가 돌아가고 1년이 좀 넘었을 무렵부터 나는 다른 여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뒤에 우리는 결혼했다.
  새 아내는 첫 아내보다 세 살이 더 어렸다. 그러니까 나와는 나이 차이가 좀 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가 재혼인 데 반해 새 아내는 연애도 한번 그럴듯하게 해 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멍청한 여자였다고 해야 할까, 순수했다고 해야 할까. 그 나이가 되도록 남자 한 번 제대로 못 만나 봤으니 그쪽 집에서는 당연히 온 식구들이 나서서 결사반대를 하고 나섰다. 세상 물정 모르고 사람 볼 줄도 모르는 것이, 이 사람 아니면 죽어버리겠다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는데 정신이 제대로 박힌 부모라면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한 번 결혼한 적이 있는 남자라니.
  그러나 어쩌겠는가. 결국 그 집 부모들이 우리의 결혼을 허락한 데에는, 내가 법률의 경계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 때문에 첫 아내와 헤어졌다는 것, 그리고 첫 아내와 나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는 점이 큰 도움을 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그 집에서 절대 환영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새 장인 장모는 내가 그 집안 재산을 곁눈질하고 있다는 의심을 멈출 수가 없는 눈치였다. 현명한 분들이셨다.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내를 아주 손쉽게 구슬려서 그 현명한 부모들의 감시로부터 서서히 벗어났다. 사실 나도 그 집안 재산을 통째로 털어먹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결혼한 뒤에도 나는 해고당하지 않을 정도로 성실하게 직장에 다니면서 아내에게는 절대로 손을 내밀지 않았다. 장모는 ‘저 놈이 뭘 크게 한 건 해 먹으려고 저러고 있나.’ 하는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곤 했다.
  그냥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한 건을 노리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결혼 후 1년이 지나도록 놀랍게도 나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처가살이를 해 내고 있었다. 장모가 나에 대한 경계를 조금은 게을리 하기 시작했을 무렵에 나는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그 일을 벌이고 말았다. 나는 내 돈을 들이지 않고 내 집을 장만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더욱 극적인 것은 내가 그 음모를 완성하고 말았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장모는 ‘설마 저 놈이 저거 먹고 떨어지려고 이 집에 굴러 들어왔을까.’ 하는 얼굴을 하고 우리를 떠나보냈다. 남자가 돼 가지고 야심이라고 있는 게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게 안쓰럽기까지 했던지 장모는 측은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서는,
  “새 집도 아니고 좁아 빠져서 어디, 불편하지 않겠어?”
  하고 묻고 또 묻는 것이었다.
  “편합니다.”
  나는 짧게 잘라서 대답했다. 사실 좁아터진 아파트는 절대로 아니었다. 내가 내 돈에 내 신용으로 살 생각을 했으면 한 10년 안에는 어림도 없었을 아파트였다. 내가 나의 아둔한 새 아내와 그녀의 현명한 부모로부터 얻어내려고 했던 것은 딱 그것뿐이었다. 그 집, 내가 첫 번째 아내와 신혼살림을 차렸던 그 집, 아직도 1년에 대여섯 번은 그곳에서 잠을 깨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그 집, 달랑 그것 하나뿐이었다.
  드디어 그 집에다 짐을 풀어 놓고, 나는 실로 오랜만에 단잠에 빠졌다. 꿈에 웬 영감 하나가 나타나 각목을 들고 쫓아왔다. 나는 무심코 그 영감을,
  “장인어른!”
  하고 불러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고 나서는 곧 그 영감을 그렇게 불러준 것을 후회했다. 그 장인은 이제 내 장인이 아니다. 내 장인은 자기가 직접 할 배짱도 없는 주제에 이틀에 한 번씩 장모를 시켜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서는 사위라는 놈이 뭔 일을 벌이고 있지는 않나 감시하고 앉아 계신 어르신이다.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두 장인이 두 세계에 각각 하나씩 들어앉아서 눈을 부라리고 있다니.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드디어 그곳에 돌아와 있었다. 거기까지 오느라 그 끔찍한 장인이라는 것을 하나 더 만들고 만 데다 내 옆에는 영 엉뚱한 여자가 누워 있는 꼴이 되고 말았지만, 아무튼 나는 그곳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옛날 장인이 꿈에 나타나는 바람에 의식이 꿈의 문턱을 넘어 이쪽 세계로 슬쩍 돌아오고 말았는데도, 나는 그 생각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식은땀이 흐르고 긴장감에 온통 기분이 뒤숭숭해져버린 바로 그 순간에도, 내내 잠들지 않고 깨어있던 내 의식의 그 조그만 조각은 다른 엉뚱한 곳이 아니라 내가 누워 있는 바로 그 공간을 머릿속에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내 의식이, 그 조그만 조각이 깔아 놓은 엉뚱한 공간 위에서 허탈하게 잠에서 깨어날 일도 없었다. 나는 득의양양한 미소마저 머금으면서 마음껏 내가 누워 있는 곳을 그려 나갔다.
  ‘발 아래쪽에 문이 있고, 그 문을 열고 나가면 그 앞에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그 문을 나와 집 뒤쪽으로 돌아가면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야트막한 산이 집 바로 뒤에까지 내려와 박혀 있고, 그 비탈을 따라 좁은 길을 타고 올라가면 내 스승이 8년째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똑같은 자세로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암자가 나타난다. 나는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스승이 밤새 열반하시지나 않으셨는지 살펴보러…….’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의식을 현실세계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눈을 떴다. 날은 아직 어두웠지만 어둠 속에서도 내가 누워있는 방 안의 모습이 분명히 드러나 보였다. 그곳은 분명히 내가 그렇게도 오래 그리워하고 있었던 그 방이 틀림없었다. 누워있는 곳으로부터 방문까지의 거리, 창문이 나 있는 곳의 방향과 창문의 넓이, 거기에 에어컨이 달려있는 위치까지. 그것은 틀림없는 나와 내 첫 아내의 신혼집 침실이었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고?
  기가 막힐 일이었다. 더 가라니. 아직도 편안하게 잠들 수가 없다니. 어이가 없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 뒷산에서 도 닦는 늙은이라니. 나는 내 의식과 꿈 사이에 있는 또 다른 내가, 그 조그만 내가 왜 어서 아내를 내 놓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게 그 조그만 나의 잘못인가. 언제 그녀석이 날더러 거기까지 가면 아내를 내 놓기라도 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그렇다 치고 내 옆에 와서 누워 자고 있는 이 여자는 이제 어떻게 하란 말인가. 왜 장인 때문에 가위눌린 일들은 한낱 허상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면서, 아내가 소파에 드러누워 자고 있는 공간은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까.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후회가 밀려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떠나간 아내를 다시 한 번 느끼기 위해 내 삶을 믿을 수 없는 궁지까지 몰고 가기를 서슴지 않았던 결연한 의지를 가진 사나이였으나, 청소차가 지나갈 때쯤 되자 나는 순식간에 어깨가 늘어지고 배가 나온 무기력한 30대로 변하고 말았다.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후회하지 않으려면 이왕 그렇게 되어버린 삶, 긍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젊은 아내의 탄력 좋은 가슴을 날이 밝을 때까지 주물렀다. 새삼스러운 소리지만 참으로 촉감 좋은 가슴이었다. 그렇다. 그야말로 행복한 새 출발이 아닌가. 젊고 매력 있는 부잣집 딸을 아내로 맞이한 나의 선택 어디에다 근심 따위를 집어넣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잠이 들었다. 아니, 잠에서 깨어났다. 아니, 그 가운데에 한 발씩을 걸치고 누워 있었다. 등에 와 닿는 딱딱한 감촉으로부터 방바닥이 그려졌다. 내 기억으로부터 방 문이 날아와 발아래 저쯤에 가서 세워졌다. 문을 따라 벽이 세워지고 그 위에 나지막한 천장이 얹혔다. 문을 열고 나가면 넓은 들판. 집 뒤로 돌아가면 야트막한 산에 나무가 우거졌다. 좁은 비탈길이 산 위로 날아가 깔렸다. 비탈길이 한참이나 깔린 뒤에 암자가 하나 들어앉자 비로소 스승이 맨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암자 주변에 또 다른 암자들이 날아와 박힌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살아있는 부처님, 잠들어 있는 부처님을 보러 멀리에서 온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이제 곧 눈을 뜨면 나는 스승님이 밤새 열반하시지나 않으셨는지 살펴보러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혹시나 스승님이 뜨신 밥을 찾지나 않으실지 몰라 뜨신 밥을 이고 비탈길을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채로 누워 있다. 그리고 손을 뻗으면 내 옆에는 아내가. 아내가.
  아내는 돌아가고 없었다. 그런데 또 다른 아내가 옆에 누워있다. 나는 서둘러 의식을 불러들여서 일어나 앉았다. 뒷산에서 도 닦는 영감 따위는 의식이 나타나는 순간에 모두 으스러져버렸다. 의식은 힘이 세다. 그래서 돌아간 아내고 뒷산이고 모두 다 한 순간에 뭉개버렸다. 새 아내만 빼고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이 세상이 열렸다.
  나는 별 싱거운 꿈을 다 보겠네, 하고 생각하면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다.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니다. 매일 겪는 일도 아니었다. 그저 아주 가끔씩 의식이 잠의 경계 저 너머로 사라졌다가 막 이 세상으로 되돌아 올 무렵이면 내 의식의 마지막 한 조각은 어느새 꿈과 현실 사이에다 들판과 뒷산을 펼쳐놓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여전히 빽빽한 나무와 암자가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라진 것이 있었다. 그곳은 뒷산 암자의 스승님이 돌아가신 공간이었다. 나를 포함한 제자들이 스승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숨겼던 공간이었다. 언제 열반에 이르실지 모두가 그날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스승님은 어이없게 돌아가고 말았다. 스승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문을 찾아가시다가 엉뚱한 벽에 부딪쳐 머리가 깨져서 피를 흘리고 돌아갔다. 횡사였다.
  의원이 남몰래 불려와 스승님의 시신을 보고 갔다.
  “열반하셨지요?”
  의원이 서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머리가 깨져서 돌아가셨네. 연로하신 데다 몸이 많이 지치셔서.”
  살아있는, 잠자는 부처님이 열반하지도 못하고 벽에 머리를 받고 돌아간 뒷산. 암자 주변에 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열반도 못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일어나긴 왜 일어나.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편안히 갈 것이지. 열반 못한 스승이 잠들어 있던 뒷산. 뒷산 아래 집이 있고, 집 안에 내가 누워 있고 손을 뻗으면 옆에는 아내가. 아내가.
  눈을 떴다. 아내가 없다. 가슴이 탱탱한 새 아내가 옆에 누워 있다.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었다. 현실은 지금 이 모양대로 되어 있었다. 나는 이 아내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탄력 있는 가슴. 그 촉감이 내 의식을 이 세상에다 붙들어 맸다. 인정하자. 내가 살아온 삶이 지금은 이 여자의 가슴 위에 와 있었다. 이게 현실이다. 몇 번을 더 잠들어도 언제나 그 아내는 없는 세상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잠이 들거나 아니면 날이 밝을 때까지 그러고 있기로 마음먹었다.
  가만히 누워서 천정을 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들을 다음으로 미루고 싶지가 않아서 당장은 다시 잠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천성이 게을렀다. 잠이 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나는 서서히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이었다. 내가 다시 잠에 빠져들 때, 의식의 마지막 조각이 자지 않고 깨어 있었다. 의식은, 한두 번도 아닌데, 잠들지 않는 의식의 그 조그만 조각이 속이면 속이는 대로 꿈의 경계를 넘어와 엉뚱한 공간에 발을 들인다.
  그날 아침에 내가 잠이 깬 곳은 이런 모양을 하고 있는 방 안이었다. 발 아래쪽 방향으로 걸어 나가면 나무로 된 방문이 있고, 방문을 열고 나가서 왼쪽 문은 화장실, 오른쪽으로 꺾어서 다섯 걸음 가면 냉장고. 지금은 잠이 하도 달아서 꼼짝도 하기 싫지만, 눈을 뜨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면 아내가 소파에 반쯤 누운 자세로 졸고 있는 방.
  그렇다. 그곳이었다. 늘 바라고 바라던 바로 그곳이었다.
  아내가 보고 싶다! 그리움이 복받쳐 올랐다. 아내가 보고 싶다. 정말로 보고 싶었다. 내 안에 수많은 내가 느껴졌다. 그중 그리움에 가장 목마른 하나가 의식과 신경을 통제했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내 안의 또 다른 누군가는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스승님! 잘 앉아 계시더니 왜 갑자기 일어나서 벽에 머리를 받으셨어요?’
  또 그 영감 이야기였다.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단지 아내를 만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드디어 아내를 만날 수 있다. 성큼성큼 두 걸음을 내딛는데, 옆에서 새 아내가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떴다.
  ‘미안해.’
  또 내 안에 있는 누군가가 그렇게 말을 했다. 그 여자에게는 미안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 여자의 가슴, 그 생생한 생의 감각마저도 아무렇지도 않게 부인하고 말았다. 나에게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내가 저기에 있다. 나의 아내가.
  아내가 있는 거실로 통하는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나는 그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의식이 꿈의 경계를 넘어 황급히 이쪽 세계로 넘어왔다. 의식은 가짜로 펼쳐진 공간의 얇은 막을 걷어내고 제 눈에 직접 보이는 것을 보았다. 벽이 보였다. 그렇다. 나는 벽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왜 멈출 수가 없는 것일까. 왜 멈출 수가 없을까.
  나는 그대로 벽으로 달려들었다. 머리가 벽에 부딪쳐 스승의 머리뼈처럼 부서지고 있는 것만 같은 바로 그 순간. 내 의식과,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깨어 있어야 하는 내 의식의 일곱 번째 조각과, 그리움과, 미안함과, 머리가 깨어지는 감각까지 그 모든 것을 통해서, 내가 문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벽으로 막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바로 그 순간에.
  그리고 그 벽이 바로 스승이 머리를 들이받고 돌아간 바로 그 뒷산 좁은 암자의 노란 벽이었으며 스승이 돌아간 후 지난 20년간이나 내가 꼼짝도 하지 않고 그 벽을 노려보고 있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진실일 뿐, 그 외의 모든 생의 감각이 다 한낱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아!
  나는 열반에 들었다.
mirror
댓글 8
  • No Profile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결말도 참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언제나 드는 생각이지만, 배명훈님의 글은 인간미가 느껴져서 좋습니다.
  • No Profile
    배명훈 07.04.24 14:17 댓글 수정 삭제
    옛날에는 그래도 마키아벨리를 흠모하는 날 선 사회과학소년이었는데, 점점 인심 좋은 아자씨로 진화해가나봐요. 성원에 감사합니다. 이런 수면예찬론을 써 놓고 작가 본인은 요즘 불면에 시달려요.
  • No Profile
    볼티 08.03.17 15:57 댓글 수정 삭제
    따라가기가 약간 어려운 소설이었습니다.^^; 제 이해력도 비몽사몽에 휘말린 듯해요.

    그런데 이 글에서도 그렇고 이전의 소설들에서도 계속 나오는 '렁렁렁' 말입니다. 처음엔 배명훈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의 외계어(?)가 아닐까 싶었는데, 굳이 SF적 세계관을 띠지 않은 작품에서도 쓰시는군요. '렁렁렁'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혹은, 단순한 게시물 깨짐 현상이라든지.(쿨럭)
  • No Profile
    배명훈 08.03.17 18:01 댓글 수정 삭제
    흠. "..." 이었는데 깨졌군요. 그게 깨지면 렁렁렁이 되는군요.
    이 글이 어려운 글이라면... 흠... 어찌 해야 할지..
    다른 글로 넘어가 보세요. 별 방법이...
  • No Profile
    mirror 08.03.18 15:54 댓글 수정 삭제
    오류가 발생한 단편들을 모두 수정했습니다. 미처 확인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 No Profile
    배명훈 08.03.18 16:06 댓글 수정 삭제
    저도 미리 확인을 못해서 죄송합니다. 수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글 세벌식으로 가운데점을 찍으면 이런 데서는 깨지는 거였나봐요.
  • No Profile
    자하 08.11.24 17:16 댓글 수정 삭제
    이거 다시 읽으니까 '나'가 아내가 있던 방의 감각을 잘못 불러오는 부분이 굉장히 슬퍼요.
  • No Profile
    영식 09.07.31 17:49 댓글 수정 삭제
    명훈님이 평소에 많은 생각을 하셨다는게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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