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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열매와 화염

2012.11.30 23:2411.30


 
 열매와 화염
 
 
 1.
 그날따라 미영은 양식에게 뭘 하러 우주선을 타고 떠나는지 별로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양식은 엉겁결에 우주선에 타고 목적지를 입력하기는 했지만, 뭘 해서 돈을 벌러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몇차례 양식이 반복해서 물어본 뒤에야 미영은 양식에게 계약서를 보여 줬다. 그때 이미 우주선은 사무실이 있는 G581E 행성 태양계를 벗어난 뒤였다.
 
 계약서를 확인한 양식은 미영에게 따졌다.
 
 "아니, 아무리그래도 약장사는 너무 하잖아요. 우리가 이런 거 하려고 사업 시작한 거는 진짜 아니다. 사장님, 정말, 정말 이건 아닌데요. 옛날 부터 '약판다' 이러면 딱 안좋은 느낌이잖아요. 우리 진짜 아무리 궁해도, 차라리 진짜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사업을 접으면 접었지 이런 일거리까지 맡아서 하지는 맙시다. 사장님. 우리가 사업을 시작한 뜻이 있는데, 약장사 하러 다니는 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미 출발한 우주선을 되돌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미영은 양식에게 대답했다.
 
 "약 팔러 가는게 아니라, 약 사러 가는 거라니까."
 
 양식은 수긍하는대신 다시 따지면서 되물었다.
 
 "제가 반대할 것 같아서 미리 말씀 안하시고 이제야 말씀하시는거죠? 그렇죠?"
 
 미영이 말했다.
 
 "간만에 사람 북적북적하는 화성도 구경하고 좋잖아."
 
 양식은 말을 돌리지 말라고 했지만, 미영은 "우주선을 돌리기가 어렵지 말 돌리는게 뭐 그렇게 어렵나" 라고 답할 뿐이었다.
 
 
 2.
 두 사람은 일을 맡긴 사람을 만나러 화성으로 갔다. 두 사람이 찾아간 사람은 화성의 한 동물원장이었다. 동물원장은 요즘 화성에 새로 생긴 동물 보호 구역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미영과 양식은 도대체 화성에 동물 보호 구역이 왜 생겼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 황량하고 추운 행성인 화성에 넓은 보호 구역을 만들어 관리해야 할 만한 생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성에 살던 생물이 아니라, 다른 행성에 살던 생물입니다."
 
 보호 구역 안에서 문제의 생물을 보자, 두 사람은 대충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보호 구역에 있던 생물은 일전에 미영과 양식 두 사람이 사실상 가장 먼저 발견했던 한 외계 행성에서 살던 생물이었다. 그 행성은, 먼 옛날 지구에서 수정란 형태로 인류의 자손과 문화를 퍼뜨리기 위해 발사했던 옛 우주선이 착륙한 잊혀진 행성으로 그 수정란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자라나서 "우리 조상은 알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을 만든 곳이었다. 지구에서 보낸 수정란들은 그 사람들 외에도 유전자 보정을 거쳐서 여러가지 가축을 태어나게 하고, 곡식, 과일들의 씨앗을 만들어 냈다. 그런 동물, 식물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그 사람들은 지구와는 단절 된채로 먼 행성에서 스스로 문명을 이루었다. 그렇게 지내면서 그 사람들은 1년에 한번 꼴로 무전기가 충전이 되면 하늘로 "잘 도착했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을 꼬박꼬박 의식으로 수행했다.
 
 미영과 양식은 그런 행성이 있다는 것을 은하 인권 위원회에 신고 했다. 은하 인권 위원회에는 한 문명탐사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유명해 진 뒤에 자기 이름이 붙은 대학 연구소를 차리려는 야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이 학자는 미영과 양식의 신고를 듣자 마자 탐사대를 꾸려서 바로 그 행성을 찾아 갔다. 문명 탐사학자는 그 행성이 있다는 것을 정식으로 학계에 보고 하면서, "행성의 정식 최초 발견자"라는 명예를 얻었다.
 
 그 학자는 그 행성에 "하백 민주 왕국"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정식으로 발견 되기 전에도, 여러 잡다한 이유로 이 행성의 진정한 가치를 모른채 이곳을 무심히 오가는 무심한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는 보고서의 표현으로 미영과 양식의 존재를 설명했다.
 
 양식은 "저 학자가 우리 공을 빼앗아 갔다"고 억울해 했지만, 미영은 어차피 요즘에 행성 발견에 크게 관심 갖는 사람도 없고, 우리가 그런 명예 얻어 봤자 돈 될 일도 없다고 양식을 달랬다. 그때만 해도, 미영은 별로 따뜻한 지역도 없는 그 정도 행성으로는 그 학자 조차도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할 거라고만 생각 했다.
 
 하지만, 그 학자는 곧 엄청난 유명세를 타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바로 그 행성에 있던 이상한 동물 때문이었다. 그 행성에 처음 수정란이 자라나고 아기들이 깨어날 무렵, 그곳에서는 우주선 파손과 정보 손실로 잘못된 생명체들이 몇 태어났다. 대부분은 장기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거나 너무 연약해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그렇지만 그 중에는 살아 남을만큼 튼튼한 생명들도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우연히도 생긴 겉모습은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과 매우 닮은 모양이었지만, 뇌를 비롯한 내부의 장기는 인간과 전혀 다르고 늑대 무리의 습성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습성을 가진 생물이었다. 이 동물들의 지능은 늑대 보다는 뛰어났지만 개보다는 낮았고, 식성은 늑대 보다는 호랑이나 표범과 더 비슷했다. 같이 깨어난 정상적인 수정란의 후예인 그 행성 사람들은 이 동물들을 두고 "원숭이들"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겉모습이 인간과 매우 닮은 것과 달리, 이 동물은 반대로  원숭이들보다 인간과 실제 유전자는 더욱 다른 동물이었다. 겉모습은 인간 유전자와 많은 부분이 유사하지만, 장기와 습성에 관한 부분은 인간과 심하게 달랐던 것이다.
 
 학자는 이 동물의 이름을 "하백 원인"이라고 붙였다. 하백 원인들은 사실 이 행성의 큰 문제 거리였다. 습성이 늑대와 비슷해서 항상 떼지어 다니면서 인간을 공격하고 잡아 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하백 민주 왕국의 병사들과 장군들은 그 동안 이 하백 원인들을 사냥하고 몰아내는 것이 가장 큰 일거리일 정도였다. 학자는 이 포악한 짐승이 공교롭게도 그 겉모습만큼은 인간과 매우 비슷하고, 그 중에서도 무척 아름다운 인간과 닮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런 그럴듯한 겉모습의 생물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면 유명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학자는 하백 원인을 의욕적으로 지구와 화성의 사람들에게 알렸다.
 
 학자의 예상대로, 지구에서 이 동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매우 많았다. 곧 하백 원인들을 수입해서 지구에서 길러 보려는 사람들이 생겨 났다. 하백 원인에게 옷을 입혀 놓고 그럴듯한 자세를 취하게 하면 옷이나 화장품을 광고하는 전문 모델을 떠올리게 할 만큼 보기가 좋았다. 야성적인 화장품을 광고하면서 하백 원인을 모델로 삼아서 만든 광고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하백 원인을 애완동물로 기른다면서 정답게 여기다가, 하백 원인에게 공격 당해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생겨 났다.
 
 하백 원인들을 길들이기 위해서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한 교육, 홍보나, 하백 원인들을 사납지 않게 만드는 수술법 같은 것들이 잠깐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시행 착오의 결과로 곧이어 이 문제는 결론을 맺었다. 뇌 부분 절제술 같은 방법으로 하백 원인들을 백치 상태로 만들지 않는 한은 근본적으로 하백 원인은 길들일 수 없는 생물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당국은 그동안 애완 동물로 팔렸던 하백 원인들은 다시 야생 상태로 돌려 보내는 일에 착수 했다.
 
 그런데, 그러고보니, 하백 원인의 고향인 하백 민주 왕국에서는 하백 원인들을 인간의 적으로 보고 사냥해서 죽인다는 점이 골칫거리였다. 
 
 "어떻게 우리 애들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려 보내요?"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를 하는 하백 원인을 애완동물로 삼은 옛 주인의 모습은 많은 화성 주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하백 원인을 다시 하백 민주 왕국으로 돌려 보낼 수는 없다는 여론이 크게 일었다. 이것이 때를 잘만나 선거철의 주목 받는 관심거리가 된 덕에, 마침내, 하백 원인을 자연상태와 비슷하게 살아 가게 해주는 인공 동물 보호 구역이 건설 되었던 것이다.
 
 미영과 양식에게 일거리를 준 동물원장은 바로 이 동물 보호 구역의 관리자가 되었다. 화성에 많지 않던 동물원장이었기 때문에 동물원장은 단숨에 연봉이 크게 올랐고, 지위도 급격히 높아지게 되었다.
 
 "이제 저도 그동안 준비하던 일을 좀 해보려고요. 나름대로 과학사회적인 연구를 준비하는 게 있거든요."
 
 동물원장은 그렇게 설명했다. 미영은 왜 "사회과학적인 연구"라고 하지 않고 "과학사회적인 연구"라고 했을까 의아하게 여겼지만, 그냥 말실수려니 했다. 그리고 동물원장은 그 연구에 필요한 재료를 모으는 일이라면서, 어떤 알약을 사서 모아 오라고 했던 것이다. 동물원장이 전송해 준 약도에는, 은하수 일대 수십곳의 지역에서 알약을 살 수 있는 곳이 표시 되어 있었다.
 
 
 3.
 미영과 양식은 먼저 화성에 있는 약국에서부터 그 약을 샀다. 약은 노랑색 알약으로 가운데에 "B"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모양이었다.
 
 양식은 화성에서 일을 끝내고 다음 지역으로 떠날 때, 미영에게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를 했다.
 
 "1978년 김수용 감독, 남정임 주연 영화 '웃음소리'에 보면 맨 처음에 주인공이 약국 마다 돌아 다니면서 수면제를 한 알씩 사거든요. 이걸 몇날 며칠 동안 여러 약국에서 계속 반복해서 병에다가 수면제를 가득 채울만큼 많이 모은다고요. 그걸 한꺼번에 먹어서 자살하려고 그렇게 한거죠. 이 양반도 그 비슷한 일을 하려는거 아닐까요?"
 
 미영이 대답했다.
 
 "우리가 약 다 모은다음에 넘기기 전에 의약품 거래 신고를 해 놓자고요. 그런 위험이 있는 사람이면 바로 당국에서 조치를 하게 말이야."
 
 이것으로 두 사람은 더 이상 의심하는 일을 멈추고, 그저 부지런히 문제의 알약을 사다 모았다.
 
 두 사람이 그 알약을 다 모았을 때, 동물원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동물원장은 화성의 동물 보호 구역으로 돌아오지 말고 다른 곳으로 와 달라고 했다.
 
 "갑자기 제가 좀 급하게 되어서요. 화성 말고요, 거기서 가까운데로. 그러니까 하백 민주 왕국으로 와주시면 좋겠네요."
 
 그때까지만 해도 미영과 양식은 별 의심은 하지 않았다. 동물원장은 자신의 보호 구역에 있는 동물의 원산지가 하백 민주 왕국이었으니 그곳으로 자주 오갈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우주선의 방향을 바꾼 두 사람은 곧 하백 민주 왕국의 인공위성 궤도에 건설되어 있는 우주 정거장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동물원장을 만나려고 연락했다. 그러자, 두 사람에게 무척 예의 바르고 격식을 갖추었으며 하인 교육을 받은 한 쌍의 미남 미녀가 찾아왔다. 하인 노릇을 하는 두 사람은 미영과 양식에게 동물원장에게 가는 길을 안내 하겠다고 했다.
 
 미영과 양식은 우주 정거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 학술 토론회장에서 머물면서 동물원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토론회장에서는 하백 민주 왕국에 있는 야생 하백 원인들을 보호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두고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하백 원인 보호론자들이 말하기를, 하백 원인은 아름다운 생물로, 많은 애호가들이 있는 동물이고, 또한 하백 민주 왕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귀한 생물이므로 당연히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그 사람들은 하백 원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보여 주었고, 하백 민주 왕국의 병사들에게 비참한 모습으로 사냥당한 불쌍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백 원인 보호론자들은 은하 인권 위원회에서 직접 개입해서 이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하백 원인 방치론자들은 하백 원인은 지능이 낮고 인간 보다는 늑대나 원숭이에 훨씬 가까운 하등한 동물로, 겉모습만 겉보기에 인간과 비슷해 보일 뿐이지 유전적으로도 인간과 먼 생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더군다나 하백 원인은 이 행성에서 인간에게 큰 해를 끼치는 유해 조수라는 점을 지목했다. 하백 원인 방치론자들은 하백 원인이 하백 민주 왕국의 농민과 여행자들을 공격해서 뜯어 먹고 어린이들을 습격하는 잔인한 영상을 보여 주었다. 하백 원인 방치론자들은 하백 민주 왕국은 스스로 지금까지 이루어온 생태계를 유지할 권리가 있으며, 적극적으로 하백 원인을 제거해 주지는 못할 망정 하백 민주 왕국의 국민들의 삶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하백 민주 왕국은 그때까지 유지해온 고립된 문명을 유지할 것이냐, 은하수의 다른 발전된 사회와 적극적으로 교류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결론을 못내리고 있어서, 함부로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적다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그러자 하백 원인 보호론자들은 지능이 낮거나 유전자가 인간과 많이 다르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동물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백 원인 보호론자들은 토성의 원자력 엔진 사고로 피해를 입어서 지능이 낮게 태어난 사람들과 유전자의 절반이 손실되어서 하반신이 대부분 없는 사람이 되어 사이보그로 몸을 대체한 사람들을 소개했다. 이런 사고를 당한 사람들, 유전자에 결함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한다면, 유전자가 조금 다르고 지능이 조금 낮다고 해서 하백 원인을 죽여도 된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하백 원인 방치론자들은 그러면, 늑대나 원숭이도 절대 죽여서는 안되고 보호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먼 우주에서 엉뚱한 사고로 우연히 생긴 하백 원인 보다는 지구에서 실제로 인간과 계통상 밀접한 관련이 있을 지구의 원숭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저 겉보기에 더 예뻐 보인다는 것 만으로 괜히 하백 원인에게 목매는 것 아니냐고 하백 원인 방치론자들은 비판했다.
 
 길어지는 토론이 지루해 지고, 미영과 양식은 왜 아직까지도 동물원장이 나타나지 않느냐고 궁금해졌을 때, 동물원장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미영과 양식 앞에 곱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우주 정거장의 안내 화면에 그 모습을 비춘 것이었다.
 
 화면에 나온 동물원장이 말했다.
 
 "하백 원인 해방 전선은 오늘 정의와 인도의 뜻을 위해 모두 같이 궐기 했다!"
 
 미영과 양식은 동물원장이 우주 전함 두 대를 이끌고 나타나서 우주 정거장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4.
 미영과 양식은 동물원장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동물원장이 수집하게 한 알약은 지구에서 뇌 기능 저하를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약이었다. 그 약은 처음에는 지능 개발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평균적인 인간의 지능을 더 향상시키는데는 거의 쓸모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만 상당히 지능이 낮아졌을 때 이 약을 이용하면 평균 정도로 지능을 높이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뇌세포의 성장과 발달을 조절하는 약이었던 것이다.
 
 괴상한 실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약을 이용해서 개나 고양이를 똑똑하게 만들고 이런 것들에게 말을 가르친다는 발상을 한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뇌와 신체 구조가 인간과 다른 생물은 이 약이 지능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었다. 원숭이 같은 경우만해도 몸이 털로 뒤덮히고 두 발로 걷지 못한다는 점이 의외로 큰 장애로 작용해서 말을 할 정도로 지능을 높이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동물원장은 이 약을 인간과 겉모습은 거의 같아 보이는 하백 원인들에게 먹이면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을 알아 냈다. 이 약을 먹인 뒤에 조금 가르치고 나면, 하백 원인들은 말을 배우고, 인간의 개념을 이해하고, 기술과 학문을 익힐 줄 아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해버렸다. 미영과 양식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던 그 미남, 미녀가 바로 그런 방법으로 지능을 뛰어나게 만든 하백 원인이었다.
 
 마침내 동물원장은 많은 약을 구한 뒤에, 하백 민주 왕국에 사는 많은 하백 원인들에게 이 약을 먹여서 하백 원인들을 모두 지성체로 바꿀 계획을 떠올렸다. 그렇게만 하면, 그 누구도 희로애락과 자의식, 동정심이 있는 그 생물을 함부로 죽게 놔둬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동물원장은 유달리 하백 원인을 좋아하는 애완동물 애호가인 부자들을 몰래 모아서 "하백 원인 해방 전선"이라는 비밀 단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회원 중에 스스로 전함을 사둘 수 있을 만한 안드로메다 은하계의 갑부들을 끌어 들였다. 그리고, 드디어 두 척의 우주 전함을 마련해서 하백 민주 왕국으로 쳐들어 온 것이었다.
 
 동물원장은 두 전함을 행성에 착륙시킨 뒤에 마취총과 같은 모양의 장비에 장착해서 하백 원인들에게 발사해서 하백 원인들의 지능을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1차분의 약을 모두 소모할 동안 이렇게 일을 진행하면 이미 무시 할 수 없을 정도의 하백 원인들이 "짐승이 아닌 상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나면, 시간을 벌어서 공기 중에 살포할 수 있는 기체 형태로 약을 만들어서 이 행성의 모든 하백 원인들의 지능을 높인다는 것이 이 계획의 2단계였다.
 
 동물원장이 끌고 온 우주 전함은 우주 정거장의 보안 장치를 간단히 파괴하고 우주 정거장을 떠나 착륙을 하기 위해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미영과 양식은 적당한 기회에 빠져 나와 도망가려고 했다. 동물원장은 감개 무량함에 젖어 세세한 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못하는 눈치였다. 우주 정거장 내의 모든 화면에서는 하백 원인 해방 전선에서 애국가처럼 사용하고 있는 고려시대 작가 이규보의 "슬견설"이 반복해서 낭독되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도망칠 틈은 있어 보였다.
 
 그러나, 동물원장의 전함이 착륙 궤도에 들어 서기 전에, 두 전함을 제지하는 작은 1인승 공격 우주선들 수십척이 나타났다.
 
 "간교한 오랑캐놈이 어찌 감히 왕국의 관문을 넘을 생각을 하느냐?"
 
 통신망을 통해 커다란 호통 소리가 울렸다. 하백 민주 왕국에서 화살을 잘 쏘기로 이름 높았던 하백 민주 왕국의 장군이, 어느새 훈련시킨 1인승 우주선대를 이끌고 전함을 막기 위해 우주 정거장 근처에 온 것이었다.
 
 
 5.
 장군이 거느리고 있는 1인승 우주선들은 대략 4, 50척쯤 되어 보였다. 이 우주선들은 조종사들의 손발 움직임을 읽어 들여서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우주선이 움직여지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으로, 먼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행성의 궤도로 이륙하고 행성 근처를 방어하기에는 적합한 것이었다. 미영은 어떻게 말을 타고 활을 쏘던 장군과 그 병사들이 우주선을 조종하게 되었는지 의아스러웠다.
 
 동물원장에게 들어보니, 그 우주선들은 하백 민주 왕국이 외부 사람들에게 알려진 후에, 어떻게든 돈벌 기회를 찾아 모여든 여러 종합무역상사 직원들이 판매한 간단한 순찰용 우주선인 것 같다고 했다. 이 나라의 병사들이 조종하기 좋도록, 우주선 조종실에 들어가서 말을 몰고 활을 쏘는 것처럼 몸을 움직이면 그 움직임을 동작 감지기가 읽어서 그와 비슷한 효과대로 우주선을 동작시키게 개조되어 있었다. 그렇게 우주선대를 만들어 꾸준히 훈련을 시켜 두었으니, 장군이 이끄는 우주선대는 꽤 능숙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장군은 우주 정거장을 포위하여, 미영, 양식과 동물원장이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가로 막았다. 장군은 미영과 양식이 와 있는 것을 확인하자,
 
 "원수는 하늘이 다시 만나게 해서 한을 풀 기회를 준다고 하더니 정말이구나."
 
 라고 하면서, 미영과 양식을 붙잡아 가두려고 했다. 그리고는,
 
 "얄궂게도 이 속담도 그러고보니 네놈들 덕택에 헛소리가 되었도다."
 
 라고 했다. 본래 하백 민주 왕국 사람들은 1년에 한번씩 작동하는 전파 통신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다른 행성 사람들의 회신을 하늘에서 내려주는 말씀처럼 여기고 살아 오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미영과 양식이 이 행성을 외부 세계에 알리고, 외부 사람들이 찾아 오면서 이 사람들의 삶과 사상이 격렬히 바뀌게 된 것이다.
 
 동물원장은 자신의 친구들이 조종하고 있는 전함에 연락해서 장군을 물리치고 자신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장군의 병사들은 훌륭한 솜씨로 전함에 대한 방어진을 펼쳤다. 장군은 전함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자치권을 갖고 있는 하백 민주 왕국의 군대로, 너희 무장 선박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더 이상 접근하면, 왕국을 방어하기 위해 너희들에게 공격을 개시할 뿐만 아니라, 은하 자치 위원회에 정식으로 자치권 위협 혐의로 신고하겠다."
 
 장군이 말하자 전함의 함장들은 망설였다. 1인승 우주선들이기는 했지만 50척에 가까운 장군의 우주선대는 결코 호락호락하게 맞서 싸울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동물원장의 친구들인 전함 함장들은 어디까지나 취미이자 재미거리고 전함을 구해서 싸우러 다니는 무리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은하 자치 위원회에 범법자로 수배되어 경찰의 추격을 받게된다는 일은 결코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동물원장을 도와야 하는 전함들이 발이 묶이자, 동물원장과 미영, 양식은 난감해 했다. 얼마 되지 않아 장군의 우주선들이 우주 정거장 안으로 들어와 동물원장, 미영, 양식을 붙잡아 갈 듯 보였다. 미영과 양식은 하백 민주 왕국의 감옥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고, 특히 두 사람을 미워하는 장군이 어떤 혹독한 대우를 할 지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동물원장은 동물원장대로 하백 원인들을 모두 똑똑하게 만들어 버리려는 자신의 계획을 장군이 싫어하고 있으므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리라고 걱정했다.
 
 하백 민주 왕국은 다른 행성들에게 알려진 후의 문화적 충격 때문에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 나라의 정치 세력도 크게 두 파로 나뉘었다. 여왕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파벌은, 이렇게된만큼 어쩔 수 없이 외부와 교류를 진행하고, 이 나라 사람들도 우주 곳곳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려고 했다. 장군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파벌은, 그렇게 되면 결국 "행성 바깥의 오랑캐"들의 세력과 문화에 하백 민주 왕국이 먹히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침공을 받아 정복된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해도, 결국 하백 민주 왕국의 문화를 모두 잃어버리고, 하백 민주 왕국이라는 독립된 체제를 유지할 이유도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해서 여왕을 중심으로한 파벌은 "개화파"라고 불렸고, 장군을 중심으로한 파벌은 "쇄국파"라고 불렸다. 장군과 쇄국파 정치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 하백 민주 왕국의 하백 원인을 보호해야 한다느니, 구출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이 행성에 찾아오는 외부인들이었다. 당연히 동물원장을 중범죄자로 단죄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동물원장은 전함에서 몰래 구출대를 보내서 자기를 꺼내달라고 알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장군은 행성 바깥과 우주정거장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장군은,
 
 "하백 민주 왕국의 합법적인 국경 수비 책임자로서, 경고한다. 전함은 결코 우주 정거장 안의 범죄자들과 접촉을 시도하지 말라."
 
 라고 말했다.
 
 이대로 가면 장군에게 붙잡힐 것이라고 생각한 미영과 양식은 방법을 궁리했다. 미영이 결국 방법을 하나 생각해 냈다.
 
 "항상 옛날 이야기에서 이럴 때 보면, 그렇잖아요. 어떤 신비로운 왕국이 있고, 그 왕국의 임금은 인자한 영감님이거나 순진한 어린 왕이거나, 아니면 아름다운 여왕이지요. 그런데 그 임금 바로 밑에 거느리고 있는 대신들 중에 교활하고 음흉한 사람이 있어서 왕좌를 빼앗으려고 하고 주인공도 괴롭히고 그러잖아요."
 "1956년작 '단종애사'만 봐도, 꼬마 임금님 단종이 있는데 그 신하인 수양대군이 임금을 죽이고 옥좌를 차지하려고 음모를 꾸미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찾아 가야 할 데가 또 어딨겠어."
 
 미영은 양식에게 평소에 하던대로 온힘을 다해서 헛소리를 하는 방법으로 장군의 시선을 끌고 시간을 때워 보라고 한다음, 몇 사람들과 함께 몰래 우주선을 타고 우주정거장을 빠져 나왔다. 장군이 행성 바깥과 우주정거장을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미영은 행성 대기권 안쪽으로 들어가 착륙하려고 한 것이다.
 
 
 6.
 양식은 장군에게 별별 어림 없는 이야기 거리를 꺼내며 시간을 끌었다. 양식은 미영과 자신이 이 행성에 왔다 간 것은 맞지만, 본격적으로 이 행성을 외부에 알린 학자는 따로 있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도 이 행성의 발견자로 항상 그 학자를 말한다고 장군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그 학자야 말로, 이 행성에 혼란을 가져온 장본인인만큼, 자기들을 잡아 가둘 게 아니라 그 학자에게 따지라고 했다.
 
 "좋다. 그렇다면 너희들부터 잡아 가두고, 그 다음에 그 학자놈이 이 행성을 찾아 올 때까지 기다려서, 그 놈도 붙잡겠다."
 
 장군은 그렇게 대답했다. 양식이 생각내로 지어내서 말하는 수작들이 치밀한 장군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양식은 장군이 쇄국파라면서 왜 신형 우주선은 병력으로 건트리고 있냐고 따지기도 했다. 장군은 뭐라고 길게 설명을 하다가, 결국,
 
 "돌아 보니, 과연 네 말이 옳은 면도 있구나. 그런즉, 일단 네놈을 붙잡으면, 새 행성의 법도를  버리고, 옛날 방식과 옛날 도구를 써서 네놈을 문초하고, 옛날 도구를 써서 반역자에 대한 옛날 방법대로 처형하겠다."
 
 고 웃으면서 말을 맺었다.
 
 그리하여, 양식의 갖가지 협잡과 온갖 헛소리도 모두 실패하고, 결국 장군의 우주선이 우주 정거장으로 돌입하려는데, 갑자기 인근의 모든 통신 주파수로 영상이 전송 되었다.
 
 "멈추시오!"
 
 하백 민주 왕국의 여왕이었다. 미영 일행이 여왕을 데려온 것이다.
 
 "지금 여기, 이 행성을 천하통일한 나라의 유일한 합법적이고 정당한 국가원수인 여왕이 있노라. 여왕의 이름으로 명하니, 장군은 병사들을 거두어 우주정거장 안쪽 궤도로 물리도록 하고, 전함들과 외부인들은 속히 행성을 떠나게 해 주어라."
 
 사실 미영 일행이 행성에 착륙한 후 처음 여왕을 찾아 갔을 때만해도, 여왕은 미영이 예전에 자신들을 조롱했다고 생각해서 결코 반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미영이 자신들과 힘을 합쳐서 장군과 겨루자고 했을 때에도, 여왕은,
 
 "무슨 소리냐? 장군의 쇄국파와 내 개화파가 서로 다투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서 굴러 온지도 모르는 네 놈들 따위와 손을 잡자고 서로 죽자사자 싸우기야 하겠느냐? 사악한 신하에게 착한 임금이 당한다는 옛날 이야기 책을 너무 많이 보고, 임금이 있으면 다 그런줄로만 아느냐?"
 
 고 코웃음 쳤다. 그러나, 미영은 여러가지 이야기로 여왕을 설득했다.
 
 "하오나, 마마, 이곳은 민주 왕국으로 선거를 통해 임금의 자리를 선출하지 않습니까?"
 "옳은 말이다. 그러니 더더욱, 어찌 싫어하는 신하가 있다고 해서 창칼을 휘두르고 싸우겠느냐?"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마마께서는 여당이고, 장군은 야당이지 않습니까?"
 
 결국 여왕은 설득되어, 일단 기회를 잡은 김에 어떻게든 장군을 망하게 만들어야 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다. 다만, 여왕은 조건을 내걸어 동물원장이 하백 원인들을 똑똑하게 만들려는 계획은 포기하게 했다. 동물원장은 안타까워 했지만, 자칫 잘못하면 장군에게 붙잡혀 죽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쩔 수 없어서 가져온 약을 모두 파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여왕이 직접 타고 있는 매우 거대한 우주선 한 척과 여왕을 바로 옆에서 방어하는 세 명의 화랑이 타고 있는 전투용 1인승 우주선 세 척이 우주 정거장 앞으로 나타났다. 장군은 여왕에게 자신의 행동은 정당하고 하백 민주 왕국의 적인 외부인들을 붙잡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왕은 임금의 허락 없이 나라 재산으로 구입한 1인승 우주선을 자기 세력 병사들이 조종하도록 꾸미고, 또한 임금에게 보고하지도 않고 이렇게 갑자기 우주선대를 출동시킨 것은 장군이 절차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군은,
 
 "내가 이 나라의 모든 군사를 이끄는 장군이니, 병사를 어떻게 훈련시키든 그것은 내 권한입니다. 또한 긴급한 군사 문제로 우주선대를 출동시킨 것이므로 보고를 멈춘 것입니다. 이제 곧 이 오랑캐놈들을 붙잡아 왕궁으로 돌아가 보고하려고 하였으니, 소장의 뜻에 어찌 의롭지 않은 것이 있었겠습니까?"
 
 라고 말하면서 따졌다. 그러나, 여왕은 다시 장군의 말을 반박했고, 그러자 장군은 그 말을 무시하고 우주 정거장으로 돌입하려고 했다.
 
 그러자, 여왕의 우주선을 호위하던 화랑들은, "장군의 행동은 헌정 이후 용납될 수 없는 정치계의 수치이며, 가히 쿠데타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하였다. 여왕과 화랑들은 우주선들을 우주 정거장 앞에서 전진시켜, 접근하는 장군을 막았다.
 
 장군은 이렇게 되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역사의 가장 불행한 순간에, 혁명을 일으킬 가장 무거운 결단을 내린다."
 
 고 거창하게 한 번 말하고는, 여왕을 호위하는 화랑들과 전투할 것을 명령했다.
 
 처음에는 화랑들이 셋 밖에 없었기 때문에 쉽게 물리칠 수 있을 듯 했다. 하지만 여왕을 호위하는 화랑들의 1인승 우주선은 저마다 다르게 생긴 것이 성능이 매우 뛰어 났으며, 그 우주선들을 움직이는 화랑들의 솜씨도 대단했다. 장군의 함대가 그 열배가 넘는 숫자였지만 어느 한 척도 제대로 여왕의 우주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뛰어난 실력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장군은 오래 시간을 끌면 언젠가는 화랑도 사람인 이상 지칠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어떻게든 소식이 새어나가 동물원장과 전함을 이끌고 온 부자들을 구하기 위해 다른 행성에서 우주선들이 올 지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전에 여왕을 붙잡고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면 장군은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마침내 장군은 상당한 숫자의 병사들을 희생해서라도 여왕을 칠 수 있는 전술을 짰다. 장군은 화랑이 조종하는 호위 우주선 한 대 마다 여섯척의 우주선을 배정해서, 전후좌우상하에서 각각 우주선에 일직선 방향으로 달려 들게 했다. 그렇게 무모하게 공격하면 화랑의 실력에 의해 완전히 격파되겠지만, 일단 격파되는 동안 화랑의 우주선들이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둘 수 있었다. 그런식으로 화랑의 우주선 1대 마다 여섯척씩, 총 열여덟척의 우주선을 희생시켜서 화랑들을 묶어두고, 나머지 병력으로 여왕의 우주선을 공격하기로 한 것이다.
 
 나머지 장군의 병력만해도 수십척이었다. 여왕의 거대한 우주선에는 여왕의 신하들의 생활 공간과 사치품들을 실을 적재장소가 무척 넓게 있을 뿐, 별도의 무기는 없었다. 설령 무기가 있다고 해도, 장군 자신의 부하들과 여왕을 호위하는 세 화랑을 제외하면 하백 민주 왕국에는 우주선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장군은 여왕의 흰 우주선에 드러난 하얀 배 부분을 보았다. 화랑의 우주선들이 묶여 있을 동안, 단숨에 그 곳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바로 여왕의 우주선을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장군과 병사들의 우주선이 여왕의 우주선의 배를 조준한 순간, 갑자기 그 배가 열리면서, 그 안에서 1인승 우주선들이 한가득 쏟아졌다.
 
 "여왕이 직접 미끼가 되면, 그만큼 장군을 끌어들이기 좋은 함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미영이 파 놓은 함정이었던 것이다.
 
 "저 많은 1인승 우주선들을 누가 조종한단 말인가?"
 
 장군은 놀라서 소리쳤다. 그런데 그 1인승 우주선에 타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백 원인들이었다. 왕궁에 가서 남아 있는 예비 우주선의 프로그램을 미영이 모두 급하게 바꿔 놓은 것이다. 그래서 하백 원인들이 늑대 처럼 날뛰고 호랑이처럼 사냥을 하러 뛰어 다니는 동작이 우주선을 조종하는 것처럼 읽히도록 바꿔 놓은 것이었다.
 
 하백 원인들을 태우고 있는 우주선들의 통신 회선에는 하백 원인들이 지르는 울음소리와 괴성으로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동물원장의 하인이었던 남녀가 바로 이 무리들을 맨 앞에서 이끌고 있었다. 하백 원인들은 사실 규칙 없이 마구 날뛸 뿐이라서 우주선 조종을 매우 못하는 것이었다. 장군의 우주선에게 공격당해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불쌍한 무리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워낙 숫자가 많고 우주에서 죽는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무모하게 덤벼드는 통에, 장군의 부하들을 밀어낼 수 있었다. 기습이 성공한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장군이 걱정했던대로, 은하 인권 위원회에서 파견한 조사단의 우주선들이 나타났다. 장군은 일이 꼬여서 자기 나라 정부에 체포되면, 여왕과 싸운 죄를 받아 역적으로 몰려 반란을 일으킨 대역죄인이 될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장군은 목숨이라도 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미영과 양식에게 부탁해서, 조사단의 우주선에게 투항하게 안내해 달라고 했다. 장군은 은하 인권 위원회에 자신은 "납치범"이라고 자수했고, 제발 자기 행성으로 돌려보내지말고, 화성이나 달기지에 가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7.
 미영은 일이 이렇게 엉망이 되는 바람에 정작 돈을 못받게 되었다고 불평을 했다. 그렇지만,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왕은 장군을 중심으로 쇄국파가 일으킨 쿠데타를 분쇄했다는 것을 대대적인 사건으로 선전하려고 했다. 다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일이었다. 그런 선전 행사의 하나로, 여왕은 자신의 든든한 동맹 역할을 한 미영에게 훈장을 내려 주기로 했다. 하백 민주 왕국의 훈장은 신라 시대의 것과 비슷한 황금으로 만든 금관이었다. 미영은 여왕이 준 예복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아 갔고, 여왕은 미영에게 금관을 씌워 주었다.
 
 "사무실로 돌아가자마자 팔아서 현금으로 바꿀 건가요?"
 
 양식이 묻자 미영은 금관을 한참 보더니, 그래도 이 나라에서는 영예인데 그건 너무하다고 했다. 미영은 대신에 경리직원에게 알아 보라고 해서, 어디 전시관 같은 곳에 빌려주고 돈을 받는 방법이 없는지 알아 보겠다고 했다. 양식은 그러다 전당포에 넘기게 되는 것은 아니냐고 중얼거렸다.
 
 왕궁을 나서면서 보니, 동물원장과 그 하인들인 두 사람이 쓸쓸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우주선을 얻어 타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동물원장은 멀리 도시의 성벽을 타넘어 사람을 잡아 먹으려고 오는 하백 원인들을 보았다. 성벽을 지키는 병사들이 하백 원인들을 활을 쏘아 죽이려고 하자, 동물원장은 기겁을 하며 달려나가 병사들에게 "이 아름다운 생명체를 해치미 말라"면서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그냥 소리를 지르거나 불을 휘둘러서 쫓아버리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냐고 부탁했다.
 
 미영과 양식은 동물원장의 하인, 두 사람과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미영은 두 사람과 함께 다니면서, 동물원장이 잘못 생각하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물원장은 두 사람을 두고 자신이 마음대로 부리는 하인일 뿐이고, 이 행성에 와서 지능을 높이는 약을 뿌려서 하백 원인들을 구한다는 생각은 모두 동물원장 자신의 야심찬 발상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애초에 그 발상을 한 것은 이 두 하인들이었다. 이 하백 원인들은 교묘하게 울고 웃고 아양 부리고 무심하게 구는 방법으로 동물원장을 마음을 움직여 동물원장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조종한 것이었다. 동물원장은 자신이 두 하백 원인들의 술수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의 배후에서 일을 꾸민 것은 이 남녀였던 것이다.
 
 미영은 두 남녀에게 발달한 먼 행성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었을텐데, 굳이 왜 이런 위험한 일을 꾸몄냐고 물었다. 더군다나, 약을 먹기 전, 이 행성에서 지내던 지능이 낮은 시절은 머릿속에서 잘 기억도 나지 않을텐데, 특별히 마음에 남는 것도 없지 않냐고 궁금해 했다.
 
 그 말을 들은 여자가 대답했다.
 
 "자기 시민에 대한 토머스 맬서스의 생각과 적의 시민에 대한 커티스 르메이의 생각을 두고도 아직까지 인간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잖습니까?"
 
 미영은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물었다. 여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저것들이 초라한 두뇌로 벌레처럼 뛰어다니면서 이 행성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약만 있으면 거기에서 깨어나서 심성과 지각이 있는 구실을 멀쩡히 하면서 살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런 방법이 없으면 모를까, 있는데, 그걸 치료할 수가 있는데, 어떻게 제가 그걸 보고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냥 계속 그 구덩이에서 그렇게 살고 있으라고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데 제가 쉽게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이 끝날 때 즈음, 다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보였다.
 
 성벽 바깥으로 화살을 쏘아 하백 원인을 쫓아 내는 병사들이 있었고, 그 짐승은 길게 울음소리를 내어 하늘을 향해 소리 짖고 있었다.
 
 - 2012년, 등촌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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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No Profile
    쑤우 12.12.01 22:58 댓글 수정 삭제
    하백에서부터 통상수교 거부정책까지
    구국의 결단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불행한 군인에서
    민주주의 체제에 선거로 뽑힌 여당 출신 여왕까지
    한국사를 종횡무진하는 에피소드네요 ㅎㅎ
  • No Profile
    곽재식 12.12.01 23:36 댓글 수정 삭제
    쓰다보니, 소재 때문에 "혹성탈출" 시리즈 내용이랑 너무 비슷해지지 않나 싶어서 다른 점에 좀 더 초점 주려고 쓰다보니 말씀하신 면면들이 눈에 뜨인 것 같습니다.

    "여왕"은 말씀하신대로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니고 그냥 지난번 에피소드에서 화랑들 나오는 이야기에 어울려 나온 것이 이어진 것인데, 다쓰고보니 그런 점도 보입니다.
  • No Profile
    앤윈 12.12.05 16:02 댓글 수정 삭제
    마지막 장면이 짠하네요.
    그건 그렇고, "마마는 여당이고 장군은 야당"이라니! ㅋㅋㅋ
  • No Profile
    곽재식 12.12.05 20:58 댓글 수정 삭제
    "착한 여왕, 사악한 신하의 음모"의 구도로 흔히 이루어져 있는 판타지 모험물, 스페이스 오페라들을 풍자해 보려고 원래 가져왔던 것이었는데, 어째 보다보니 그런 점도 눈에 뜨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이번 따라 이상하게 오타가 눈에 많이 띄어서 다음번에는 각별히 유의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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