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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 한국어판 2011년 10월호 별책부록 "멀티버스"에 "읽다가 그만 두면 큰일 나는 글"이라는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아래 이야기는 지면 관계상 싣지 못한 부분을 포함한 새로운 판입니다.

 


 


1.


 "여긴 아예 가짜 책이네."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책꽂이 높은 칸에서 뽑아 들었던 책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 놓았다. 그러고보니 그냥 가지런히 높은 자리에 꽂힌 모양만 봐도 가짜책 같아 보이기도 했다.


 


 원가 보다 유난히 과격하게 비싼 음료를 파는 가게가 있다면, 그 모양을 20세기초 거대한 저택의 고풍스러운 서재 모양으로 꾸미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커다란 호텔의 커피 파는 곳이라든가, 땅값 비싼 동네에 널찍하게 터를 꾸민 곳들이 유난히 그랬지 싶다.


 


 "여기 생긴게 좀 오래된 저택에 서재처럼 생겼으니까, 거기 맞추려고 두꺼운 옛날 책이 많이 꽂혀 있는 것처럼 꾸몄나 보네. 그런데 옛날 책을 직접 사서 이만큼 쌓아 놓기는 쉽지 않으니까 옛날 책 모양으로 생긴 가짜 플라스틱 모형을 사서 주욱 꽂아 놓았을 거고."


 


 내가 가짜책들을 둘러 보면서 말하고 있는데, 그녀는 자리 위에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어 펴 보였다. 펼쳐져 있는 책에는 알파벳으로 표시된 여러 숫자들과 수학에서 쓰이는 기호들이 잔뜩 씌여 있었다.


 


 "맞아. 그런 데도 많아요. 가짜 모형 책 꽂아 두기는 좀 민망하니까 그냥 아무책이나 두꺼운 책 꽂아 두는거지. 영어로 된 크고 두까운 책 많이 꽂아 놓은 데 그런데가 많더라고. 보면 꼭꼭 영어로 된 책을 찾아서 꽂아 놓아서 꾸미는데...... 아무거나 영어로 된 두까운 책만 구하다 보니까 꼭 대학생들  원서 교과서 뭐 이런게 구하기 좋아서 수북수북 꽂혀 있지.


 


 차라리 그냥 누가 가끔 심심해서 기다리다가 읽을 책이라도 꽂아 놓는 게 낫지. 이런건 뭐... 이렇게 영어로 된 버린 교과서 주워서 꽂아 놓아서 아무도 안봐도 먼지는 앉으니까 가끔 닦고 정리하고 하긴 하겠죠? 그렇게 오면서 가면서 겉보기 좋게 관리야 하겠지만. 아마 나중에 나중에 이 가게 망해서 문 닫을 때 까지 한 사람이라도 펴서 보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오랫만에 그녀를 만나서 말이 없이 어색하고 재미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말이나 나오는 데로 떠드는 모습은 무척 멍청해 보일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차 마시는 곳에 꽂혀 있는 책 따위야 진짜건 가짜건 무슨 소용인가? 무슨 책이 어느 높이까지 어떻게 꽂혀 있건 그게 무슨 상관이랴. 정말로 그녀에게 물어 보고 싶은 말은 이 들뜬 기분의 높이 만큼이나 가득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요즘 누구 만나는 사람은 있어? 여기 네 앞에 서 있는 횡설수설하는 이 몸은 장차 만날 사람으로 어떠하다고 평가하는지?


 


 그런 말은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어떻게 돌려서 의향을 물어야 할 지 기회만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참 동안 쓸데 없이 책으로 장식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제 내 스스로도 내가 하는 말이 무척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 가게 안을 둘러 보던 그녀가 말했다.


 


 "이 책은 여기서 뽑은 책 아닌데. 이게 바로 오늘 보여 준다는 거야."


 "이게?"


 


 나는 지난 삼년간의 왠갖 소동들을 돌이켜 보면서, 이런 일을 두고 도대체 이런 책 한 권으로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나 싶었다.


 


 


 2.


 3년 동안 벌어진 일은 그녀와 나 사이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그랬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녀와 나는 3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대신에 지난 3년 동안 그녀와 나 사이를 제외한 세상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는 일들이 일어 났다.


 


 내가 맨처음 이 모든 일들이 시작되는 소식을 들은 것은 회사의 주차장이,


 


 "경찰에는 네가 좀 가야 겠다."


 


 고 말했을 때였다.


 


 물론 자동차를 세워 두는 공터가 갑자기 입이 생겨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성이 주씨인 차장 직급의 인간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내가 경찰에 가야 하는 겉보기 이유는, 우리 회사가 개발한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어떤 사람이 사망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진짜 이유는,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주차장이 직급 낮은 사람에게 일단 떠넘기고 피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회사가 개발한 컴퓨터 게임은 화면에 나온 한 손에 도끼를 들고 싸우는 고려 시대의 무인들과 1 1 격투를 하는 내용이었다. 이 게임의 특징은 적으로 등장하는 무인의 싸우는 전법이 단순히 한 가지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 게임의 무인은 싸우면서 게임 하는 사람의 버릇이 무엇이고 어떤 공격에는 약하고, 어떤 공격에는 강한지 점차 인식하고 분석한다. 그렇게 해서, 게임 하는 사람의 솜씨와 성격을 노리고 약점을 찾아 공격 방법을 바꿔 가며 싸운다는 것이었다. 이런 특징이 큐빗 지향 프로그래밍으로 표현 되어 있어서 게임이 상당히 정교하게 움직였다. 덕택에 무척 재미나게 표현되어 있어서 인기가 많았다.


 


 이 게임과 엮인 문제의 희생자는 아름다운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다. 특별히 약은 수를 쓰지 않고도, 가만히 걸려오는 전화만 받고 날아오는 문자 메시지에만 답해 주면, 선배, 후배, 동기, 아는 오빠, 아는 아저씨 등등의 남자들이 계속 재밌게 해 주겠다며 날아 들어 언제나 심심하지 않은 삶을 살게 해 줄만한 미모를 갖고 있는 여자 이기도 했다. 보통 주말 오후, 항상 빽빽히 차 들어가는 그녀의 일정표를 보면, 드넓은 북대서양 어장에서 무한정으로 연어와 고등어를 잡아들이는 늠늠한 노르웨이 어부와도 같은 풍족함을 느낄만 하였다.


 


 그러나 어느날, 독특한 우연으로 아무 약속도 없는 심심한 주말 오후가 찾아 왔다. 이 대학생은 그때껏 일부러 사람을 끌어서 약속을 만들어 낼 줄도 모르고 지냈다. 그러니 갑자기 심심해진 오후가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때 TV에서 대학생이 본 것은 전전 대통령과 전전전 대통령이 둘이서 격투 게임으로 서로 패버리는 싸움을 하면서 재밌어 한다는 내용의 우리 회사 게임 광고였다. 이제 충분히 늙은 두 사람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있었다.


 


 철지난 정치인들을 기용해서 컴퓨터 게임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한 번 즈음은 광고를 눈여겨 보게한 우리 회사 광고는 성과가 좋았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좀 더 중요한 내용은 이 때문에 요즘 인기 있다는 그 격투 게임을 이 대학생이 한 번 해 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대학생은 게임 속에서 정중부, 이고, 이의방, 이의민, 두경승, 경대승 등등의 고려시대 무인들을 차례로 때려 눕혔다. 그녀는 게임에 빠져 들어 극적인 몰입을 경험하게 되었다. 북대서양 어장의 거친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는 것과 같은 활달한 바깥 생활을 하는 것에 익숙했기에 이런 컴퓨터 게임을 전에 접해 본 적이 없다는 것도 깊이 빠진 이유가 되었다. 대학생은 끝없는 도전 끝에 그날 깊은 밤이 될 무렵 척준경 마저 물리치고 망소이와 대결하는 단계까지 오게 되었다.


 


 망소이가 문제였다. 망소이는 거울처럼 반질거리는 칼을 썼다. 칼질의 움직임 자체는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이 대학생의 게임 솜씨로 쉽게 방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게임 속 망소이가 칼질을 할 때 마다 칼에 반사된 빛이 번쩍 거리면서 화면이 밝게 깜빡였다. 그게 위험 했다. 이 대학생은 광과민성 발작 증세가 있었다. 90년대 일본에 화제가 되어서 한국에도 한 바탕 소란거리가 되었던 그 증세였다.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번쩍이는 화면을 보면 간질 발작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문에 화면이 번쩍 할 때 마다 대학생은 움찔 거렸다. 갑자기 머리가 어찔했고 아주 잠깐이지만 토할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번쩍 하는 동안에만 잠깐 그런 느낌이 들고 사라졌기에 대학생은 멈추지 않고 계속 게임을 했다.


 


 이러는 동안 게임 속 프로그램은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이 대학생이 칼질을 하면 왜인지 조금 반응이 느려진다는 점을 분석해 낸다.  게임 속의 망소이는 대학생의 약점을 공격하기로 한다. 게임 속 망소이는 칼질을 마구 해 댄다. 화면이 매우 빠른 속도로 번쩍 거린다. 대학생은 점점 더 당황하고 놀란다. 망소이는 더욱 빠른 칼질을 계속한다. 대학생은 간질발작 증세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대학생이 게임을 하지 못하게 되어 게임 속에서 밀린다. 그러자 게임 속 프로그램은 지금 쓰는 전법이 다른 어떤 방법 보다도 잘 먹힌다고 계산해서 더욱더 빠른 속도로 화면을 번쩍이게 만든다. 대학생은 어느 때 보다 심각한 발작으로 쓰러진다.


 


 게임 속의 망소이는 역전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대학생이 발작으로 쓰러져 있다가 결국 사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경찰 조사와 게임에 대한 소송이 뒤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게임 개발팀 중에 한 명이었던 것이다.


 


 


 3.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소식은 이상의 내용은 아니다. 그 다음에 나는 그 소식을 듣는다.


 


 나는 경찰 조사를 위해 문제의 장면을 보여 주려고 우리 격투 게임을 열심히 해서 망소이가 나오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경찰 중에도 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하면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을 잘 써야 수박치기를 막을 수 있습니다." 등등으로 틈틈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 때마다 나를 둘러싸고 화면을 보던 경찰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깨달음의 기쁨을 느끼는 듯 보였다.


 


 내가 게임 속에서 망소이에게 도달하기 전, 척준경과 싸울 무렵이었다. 척준경이 역사에 나오는 것처럼 나무를 통째로 뿌리채 뽑아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바람에, 게임 속 내가 얻어 터지던 때였다. 보고 있던 화면 구석에 그 뉴스가 나왔다. 여러 사람의 전화와 컴퓨터, TV화면들에도 그 소식은 나타났다.


 


 일단 그 이야기는 복사선 망원경 연구소라는 곳에서 일하는 한 마른 체구의 대학원생이 발견한 연구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세종시에서 국회의원과 시장을 뽑고 어쩌고 하던 선거철에, 세종시를 재개발하자느니, 천리장성을 재건하자느니 하는 이야기가 돌다가 대규모 개발 계획으로 아입자 가속기를 만들자는 안이 진행된 적이 있었다. 유럽에 있는 것 보다 더 큰 규모로 만들겠다고 막대한 예산을 들인 것이었다. 그런데 일이 좀 꼬여서 아입자 가속기가 완성된 후에 이걸로 뭘 할 지, 어떻게 쓸 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 번 돌리는 데에 사용료를 10억씩 받는 최고급 설비이기 때문에 단숨에 건설비용을 뽑아 낼 수 있다고들 했었는데, 10억씩 내고 쓰기는 커녕 재미로 공짜로 쓰라고 해도 쓸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막대한 건설비를 내고 만든 괴물 같은 설비가 아무 결과를 내어 놓지 못하는 모양에 지식경제부의 여러 공무원들은 매우 초조하게 되었다. 공무원들은 비슷한 분야의 여러 교수들을 닥달해서 아입자 가속기로 하여튼 아무거나 신기한 연구결과를 만들어 오라고 했다. 교수들은 흩어져서 대학원생들에게 뭐든 한 번 해보자고 했다. 그러나 뭐라도 해볼 만한 일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불과 두 달 앞으로 아입자 가속기 성과 발표회가 다가 왔다. 무려 차관이 참가 한다고 했기에, 어쨌거나 알아 볼 수 없는 어렵고 대단해 보이는 것을 갖다 보여 주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임무를 떠맡은 곳이 복사선 망원경 연구소 였다. 이곳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여러가지 소립자들을 감지 하고 연구하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하여간 여기랑 연결시켜 놓으면 우주에서 계속 쏟아지는 왠갖 빛과 방사선을 관찰한 결과들과 엮어서 뭐건 한뭉치 결과라는 걸 풀어 놓을 수 있었다. 난해한 내용이 많았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금방 보고 쓰레기 같은 결과라는 걸 알아보기도 어렵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복사선 망원경 연구소, 마른 체구의 대학원생에게 아입자 가속기를 써서 두 달 내에 뭐든 "이런 걸 해서 참 보람 있었다"는 결과를 짜내라는 명령이 떨어 졌다. 마른 체구의 대학원생은 한 번 쓰는 데 10억원을 내야 한다는 아입자 가속기를 마음껏 사용했다. 이 학생은 한 번은 윙윙거리며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 괜히 한 번 기계를 가동 해 본 적도 있었다. 대학원생은 아입자 가속기에서 만들어진 여러가지 입자와 신호를 우주 이곳 저곳 여러 방향으로 보내 보았다. 그러면 태양빛 속에서는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나오는 지, 북극성의 별빛과는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 지 닥치는 대로 그 결과를 기록 했다. 그렇게 모은 기록을 정리해서 나중에는 은하수, 안드로메다 은하, 빅뱅 뭐 이런 말들이 들어간 보고서를 꾸미면 된다고 본 것이었다.


 


 대학원생은 하늘 여러 방향을 향해 아입자 가속기 신호를 보내는 것을 "광자(光子)총통을 쏜다"고 부르기 시작했다. 대학원생은 머나먼 우주에서 빛나고 있는 퀘이사들을 향해 광자총통을 쏘아 보기 시작했고, 그 중에 한 퀘이사에서 매우 이상한 결과를 얻었다. 원래 기대했던 것은 블랙홀과 상관 있어 보이는 저 머나먼 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상한 전파신호 사이를 아입자 가속기가 쏜 신호가 어지럽히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 그 먼 별까지 단숨에 광자총통의 신호가 전달 되고, 그로부터 반사되는 신호도 바로 붙잡히는 것 같아 보였다.


 


 빛 보다 빠른 속도로 신호가 날아간 것처럼 보이는 자체가 해괴한 일이었다. 이 우주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신호를 조금씩 조정하자, 날아오는 신호도 그에 맞추어 달라지면서 꼭 무슨 뜻이 있는 것 같은 결과가 나왔다. 대학원생은 이 내용들을 정리해서 차관이 참석하는 발표회에서 발표 했다. 차관이야, 사실 참석한다고 말은 했지만 잠깐 들러서 조카 사위인 아입자 가속기 연구원 원장과 악수를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대학원생이 발표한 결과는 그런대로 재미난 이야기거리로 많은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기 시작 했다.


 


 덕택에 대학원생의 지도 교수는 이 대학원생에게 두 명의 더 어린 대학원생을 붙여서 같이 광자총통 쏘는 짓을 하도록 시켰다.


 


 어린 대학원 생 두명은 큐빗 지향 프로그래밍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양자 컴퓨터 겸용 CPU 가 보급 되면서 보통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논리와 계산법을 꾸미는 큐빗 지향 프로그래밍이 많이 쓰이게 되기 시작 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세상 어린이들은 이런 컴퓨터로 자기가 만들고 싶은 컴퓨터 게임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런 어린이들은 이런 큐빗 지향 프로그래밍을 하나 둘 익혀서 인공지능으로 동작 하는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하는 게임등을 만들어 내곤 했다. 통통하고 마음 좋게 생긴 12살짜리 몽골 아이가 만든 우주 정복 게임은 큰 돈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무슨무슨 세대"라는 말을 붙이기 좋아하는 기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어린이들 사이에서 재미로 큐빗 지향 프로그래밍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많아 지자, 생각하는 방법 자체가 큐빗 지향 프로그래밍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모든 계산과 처리를 바라보는 감각적인 능력을 갖춘 어린이들이 자라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은 민망할 만큼 진부한 줄도 모르고 이런 세대를 "Q세대"라고 붙여 기사 제목을 꾸몄다.


 


 광자총통을 쏘던 마른체구의 대학원생도 바로 "Q세대" 대학원생들 두 명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마음의 눈이 트인 Q세대 대학원생들이 보니, 광자총통을 퀘이사에 쏘아서 얻어낸 결과들을 여러가지로 해독한 모양은 우연인지 뭔지 어째 큐빗 지향 프로그래밍으로 꾸민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아 보이는 면이 있었다. Q세대 대학원생들은 이런 내용을 하나 둘 해독해서 공개하고 발표했다.


 


 그러다 보니 그 모아 놓은 결과는 정말로 실행시킬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같이 보였다. 이게 뭔가 싶어 세계의 여러 학교와 연구소에서 같이 달라 붙자 해독은 더 빨리 진행 되었다. 20세기말에 인간 유전자를 모두 출력해서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다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던 것과 비슷했다. 광자총통을 퀘이사에 쏘아 얻은 신호에 많은 사람들이 달라 붙어 이곳저곳 군데군데 해독하기 시작했다.


 


 우주 저편에서 사람들은 어떤 굉장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읽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내용을 있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우리가 접할 수 있다는 게 이 연구의 묘미였다. "게놈 프로젝트"와 버금가는 일을 하겠다고 서로 자랑하려는 사람들의 욕심이 모여, 우주의 핵심적인 정보를 정리한다는 이 일은 "유놈 프로젝트"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아쉽게도 유놈 프로젝트 라는 제목은 "너 난쟁이지?" 라고 비웃는 말처럼 들려서 인기가 없었다. 인기가 있었던 것은 그 결과 였다. 내가 경찰서에서 게임 속 척준경과 싸우다가 들었던 이 모든 연구의 결론은 이러했다.


 


 문제의 프로그램 같은 신호는 정말로 어떤 프로그램이었다. 그것도 이 우주 전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지 써놓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이 우주가 바로 그 프로그램의 결과인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전부가 어느 컴퓨터 속 프로그램이 돌아가며 계속해서 쌓아가는 기록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우주는 모조리 어떤 우주 바깥 세상에 있는 거대한 컴퓨터 같은 것이 계산해서 따지고 있는 가상의 표현이었다.


 


 


 4.


 처음에는 "그래서 노벨상은 어느 나라 사람이 받는가?" 정도의 주제가 더 관심을 끄는 결론일 뿐이었다. 키는 작았지만 잘 생긴 까닭에 여러 가지 과학 강연을 잘 하고 다녀서 돈을 벌던 과학철학행정문화 연구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과학철학행정문화 연구인은 정치건 텔레비전이건 돈 되고 얼굴 알려지는 일이면 무엇이든 따라다니겠다는 각오로 자신의 직업을 그 모양으로 불렀다.


 


 과학철학행정문화 연구인은 유난히 눈웃음을 잘 웃는 TV 아나운서 옆에 서서 아나운서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우주가 어떤 괴물이 돌리고 있는 무슨 데스크톱 컴퓨터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전혀 웃기지 않은 대목에서 과학철학행정문화 연구인은 하하하 하고 화면을 향해 웃어 보였다. 동시에 옆 자리의 아나운서는 우주에서 가장 직업적인 눈웃음을 인정사정 없이 퍼부어 주었다.) 우리가 그 전에 어떤 입자나 장(field)으로 표현 했던 세계를 더 논리적이고 더 순수한 프로그램의 표현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뿐입니다.


 


 그게 왜 저 퀘이사 속에 가지런히 읽기 좋은 형태로 정리되어 있는 지는 좀 더 연구할 가치가 있겠습니다. 요즘에는 퀘이사가 아니라 일종의 웜홀이라는 의견이 더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만... 우주가 생기기 전에 먼저 이러한 원리에 해당하는 것들이 먼저 생성되어 모여 있었는데, 그게 이번에 발견된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잠시 잠깐이지만, 이렇게 발견된 "우주 프로그램"이 우주가 생기기 이전에 먼저 생긴 것이라는 이야기는 굉장히 인기를 끌었다. 과학철학행정문화 연구인의 라이벌이었던 한 늙수레한 다른 재료공학 교수는 바로 이것이 조선시대 이황의 주리론 철학과 일맥상통한다는 주장을 떠들고 다녔다. 그러다가, "전통우주론 기념 연구 사업단"어쩌고 하는 이름으로 정부 지원금 15억을 냉큼 챙겨 먹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대충 이 문제가 정리되지는 않았다. 비키니 몸매를 드러내는 사진이 인터넷에 유출되어 나돌다가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던 한 정보보안학 교수가 있었다. 이 정보보안학 교수는 과학철학행정문화 연구인이 떠드는 TV 장면을 소속 대학원생들과 같이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쟤는 뭘 저렇게 구구하게 말해? 어떤 괴물이 돌리고 있는 데스크톱 컴퓨터 속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 바로 우리 우주라고 보는 게 바로 와닿는 이야기 아냐?"


 


 20세기 초, 광속이 한계가 있는 일정한 값이고 양자 규모의 아주 작은 크기에서는 속도를 부드럽게 바꿀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 졌을 때부터 이런 상상을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영화 필름의 움직이는 영상이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단위 이하로는 쪼개어 질 수 없듯이, 세상도 어떤 가상의 것이기 때문에 양자라는 최소 단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닌게 아니라 "우주는 프로그램이 출력한 가짜 결과일 뿐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던 닉 보스트롬 교수의 제자들은 광자총통이 사용된 후에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 중에는 삽시간에 백만장자가 된 사람들도 몇이나 있었다. 정보보안학 교수는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자기가 그 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큐빗 지향 프로그래밍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던 정보보안학 교수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정리하고 이해하는 일에 집중 했다. 처음 결과를 발표한 뒤 몇 번 동안은 결과에 비해 주목을 못 받은 편이었다. 그때 마다 다른 교수들이 이 정보보안학 교수는 양성평등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여자라서 남자들 보다 훨씬 더 쉽게 교수가 된 사람이라서 연구에 깊이가 있다는 둥 없다는 둥 하는 소리나 할 뿐이었다. 하지만 정보보안학 교수의 발표가 거듭될 수록,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의 비루한 모습을 깨닫는 비율은 높아져 갔다.


 


 정보보안학 교수는 그동안 과학자들이 발견한 중력 이론이나 전기에 관한 이론의 가장 결정적인 사항이 프로그램에서 어디에 해당하는 지 찾아 냈다. 그러니까 사과 나무에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까닭은 바로 이 프로그램의 87010 번째 줄에 그렇게 하라고 씌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정보보안학 교수는 아예 양자중력장 이론의 난해한 풀리지 않던 문제들을 광자총통으로 발견한 프로그램을 통해 설명해 내기에 이르렀다. 다른 연구로는 잘 알 수 없었던 이론이었던 것을 "원래 우주는 이렇게 되어 있다"라고 적혀 있는 프로그램 내용을 뒤져 보니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구구하게 일일히 실험을 하면서 살펴 보는 연구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복잡한 상상력으로 앞뒤로 식을 정리하면서 과학을 연구하는 것도 가치가 떨어졌다. 그보다, 그냥 프로그램에 어떻게 씌여 있는지 잘 뒤져 보기만 하면 모든 이론과 법칙들을 찾아 낼 수 있다는 생각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모든 일은 아직 큰 이야기 거리는 아니었다.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것이 경제가치로 몇 조원이 있다는 둥, 차세대 산업을 이끌어가는 대혁신을 이루는 길이라는 둥 하는 선전 따위가 유행하는 정도였다.


 


 개인용 비행장치로 돈을 많이 번 자동차 회사에서 남아 도는 돈을 쓸 곳을 찾지 못해서 괜히,


 


 "우리 회사는 궁극적인 미래의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서 가장 기초적인 학문 분야의 인재들을 최고급 글로벌 인재로 영입합니다."


 


 운운하면서 우주 프로그램 연구와 어떻게든 엮여 있는 영어 잘하는 유학생들을 비싼 연봉을 주고 채용하는 것 정도가 눈에 뜨이는 일일 뿐이었다.


 


 그러던 일이 점점 커졌다. 주리론을 내세워 세워졌던 한국의 "전통우주론 기념 연구 사업단"을 보고 영감을 받은 한 중국의 관리가 "훈고 우주 연구 중심"이라는 것을 세운 것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중국 관리는 홍보 영상을 만들도록 지시 했는데, 내용은 공자와 맹자 등으로 분장한 배우들과 한나라 때의 학자들이 나오는 내용이었다.


 


 "진나라의 분서갱유 이후, 학자들은 모든 학문들을 연구할 때 옛날 공자, 맹자와 같은 성현들이 뭐라고 말했는 지 알아내고, 그 참뜻이 무엇이었는 지 토론하는 데 집중 했습니다. 학문을 일구어 내는 데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 나온 대가의 책을 돌이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훈고학의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이제 우주의 모든 이론과 원리가 담겨 있는 프로그램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분석하기만 하면, 무슨 법칙이건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의 훈고학 시대인 것입니다."


 


 홍보 영상 속의 학자는 이런 정도의 말을 요란하게 과장된 성조로 읊어 대다가,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황금색 용으로 변신하여 밤하늘 저편으로 날아 올랐다.


 


 풍부한 예산 덕이었는 지 이 "훈고 우주 연구 중심"이 내세우는 이야기들과 연구를 추진하는 방법 중에는 정말로 그럴듯한 것들이 점점 늘어 났다. 덕택에 먼저 이 바닥에 발을 담갔던 정보보안학 교수도 좀 더 힘을 얻게 되었다. 정보보안학 교수의 연구팀은 점차 커져 갔고, 그 절정의 순간, 정보보안학 교수는 한 투자은행 TV 광고에 거액을 받고 수영복 차림으로 출연해서, 그 은행에 돈을 맡기면 "우주 프로그램 시대의 차원이 다른 투자"를 하기 때문에 열대의 해변에 별장을 짓고 유유자적할 수 있을 만큼 갑부가 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모래밭에서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 광고가 방영된 지 8일이 지났다. 그 때 해변을 뛰어다니는 아름다운 정보보안학 교수가 나온 광고를 넋을 잃고 바라보던 수많은 여러나라 젊은 남자 군인 장병들 중에 한 상병이, "일반 큐빗 메모리 해킹 수법"이런 것을 인터넷을 통해 올렸다.


 


 상병이 올린 "일반 큐빗 메모리 해킹 수법"이라는 것은 광자총통을 통해 우주 프로그램을 읽어 낼 수 있다면, 우주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는 컴퓨터 메모리 속의 다른 부분도 읽어 낼 수 있지 않겠냐는 발상이었다. 이것은 마치 대화 프로그램으로 옛날 친구와 "그떄 엄청 예뻤던 순이 지금 뭐하는 지 너 알어? 걔가 말이지..." 같은 말을 나누는 중에, 몰래 대화 프로그램의 오류를 이용해서 친구 컴퓨터 한 켠에서 실행되고 있는 은행거래 프로그램을 들여다 보고 계좌 비밀 번호를 읽어 오는 것과 비슷한 수법이었다. 즉 우리 우주를 돌리고 있는 프로그램의 오류를 이용하면, 우리 우주를 돌리는 컴퓨터의 구석구석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이상한 웜홀을 향해 광자총통을 쏘면 프로그램이 어떻게 되어 있는 지 나타나는 것부터가, 바로 이 프로그램의 오류를 악용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주식 투자를 하다가 돈을 다 날리는 바람에 졸지에 대학 등록금이 떨어져서 재빨리 군대에 들어 갔던 그 상병이 올린 글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만 뒤지면 우리 우주 프로그램을 만든 자가 누구인지, 실행시키고 지켜보고 있는 자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지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이 우주를 실행시키고 있고 우리 우주를 담고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 고 있는 괴물은 재미 삼아 별이 반짝이는 모양을 보기 위해 이 우주를 돌리고 있으면서, 한 편으로는 주식 투자 사이트에서 오르고 내리는 주가를 보면서 초조해 하고 있는 지."


 


 상병은 21세기 초에 세계 여기저기에서 굵직굵직한 인터넷 보안 사건이 터졌을 때 창설된 군대 정보 보호 부대의 대원이었다. 상병은 정보보안학 교수의 연구팀이 밝혀 놓은 프로그램의 구조를 보고 프로그램의 문제점과 오류들을 하나 둘 파악해 나갔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악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낸 것이었다. 상병의 일반 큐빗 메모리 해킹 수법에 따르면, 열 두 대의 광자총통을 한꺼번에 공명시켜 쏘아 대는 방법으로 우리 우주에 관한 내용 뿐만 아니라, 이 우주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컴퓨터의 다른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알아 낼 수 있었다.


 


 상병의 해킹 수법은 인기를 끌어 퍼졌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프로그램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해라고 지적 합니다. 프로그램이 우주의 모습을 알려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우리 우주가 우리가 쓰는 컴퓨터와 비슷한 곳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그런 식으로 우리가 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추상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대체 누가 "전문가"인지 밝히지도 않는 신문과 TV 보도는 이와 같이 상병의 작품은 그냥 장난스러운 생각일 뿐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상병의 장난 같은 생각은 잊혀질 듯 하다가,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면서 계속 해서 힘을 얻어 갔다. 그러다보니 맨처음 광자총통을 사용했던 마른 체구의 대학원생을 비롯해서,


 


 "아주 말이 안되는 발상은 아니다. 해볼만한 일이지 않은가?"


 


 라는 의견도 생겨 났다.


 


 결국 "일반 큐빗 메모리 해킹 수법"에 근거해서 우주를 실행시키고 있는 컴퓨터의 곳곳을 뒤져 본다는 시험이 이루어 졌다. 결과는 상당히 괜찮았다. 아쉽게도, 컴퓨터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우리 우주를 구경하고 있는 괴물의 개인신상정보를 캐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프로그램이 작동된 경과들을 저장해 놓은 내역이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내역 자료, 로그를 읽어 낼 수 있다면, 우리 우주 전체의 과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시간 여행 장치와 다름 없어 보였다.


 


 정말로 우리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프로그램이고 이 프로그램을 담고 있는 컴퓨터가 우주 바깥 어디인가에서 돌고 있다는 해석이 삽시간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정보보안학 교수를 따라하려고 애쓰는 한 근육질의 미남 교수는 프로그램 자체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는 컴퓨터의 구조를 알아내고자 노력 했다. 미남 교수는 우주 전체의 알려진 모든 별과 별을 이루는 그 많은 입자들과 그 입자들의 여러 가지 작용을 하나하나 묘사하는 이 어마어마한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프로그램이 어떤 식으로 컴퓨터에 탑재되고 어떤 형식으로 구동되는 지 밝혀 내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우주를 지켜보는 거대한 괴물과 괴물의 컴퓨터에 대한 상세한 사항이 밝혀지기 전에 다른 것이 먼저 알려지게 되었다. 미남 교수의 연구팀에 어울려 일하던 사람 중에는, 광자총통을 제작하는 회사의 성실한 회사원으로 연구하던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우주를 담고 있는 컴퓨터의 구조를 뒤지다가, 특수한 광자총통을 이용하면 프로그램의 새로운 오류를 악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컴퓨터 메모리를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메모리에 내용을 써넣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우주의 프로그램을 지금 내가 고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내일부터 중력이 없는 세상으로 세상이 돌아가도록 프로그램을 고쳐 써 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면, 세상의 별들은 우수수 떨어지게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세상에서 빛을 모두 없애 버릴 수도 있고,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태양이 노래를 하면서 떠오르고, 밤마다 별들이 춤을 추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지 않겠는가?"


 


 회사원의 말을 들은 상사는 위와 같이 글을 썼다. 본래 상사는 뭐든지 "이것은 쇼크가 큰 아이템이며, 이것은 대단한 투자 호재입니다"라는 식으로 글을 쓰기 좋아했기에, 더 많은 말을 하고 다닐 수록 말투는 더욱 더 이모양이 되어 갔다.


 


 하지만 우주의 원리를 표현한 프로그램을 직접 수정하는 방법으로 단숨에 무슨 소원이든 이루어  수 있다는 말뜻만은 분명해 보였다. 수천개의 은하계와 생명체가 살아 가는 수만개의 행성을 잠깐 사이에 으스러뜨려 없애 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미군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강력한 무기를 만든다고 해도, 우주 자체의 원리를 바꿔서 그 무기는 동작하지 않는 세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상사는 공무원에게 공무원은 더 높은 공무원에게, 더 높은 공무원은 더욱 더 높은 공무원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계속 전달이 되었다. 그러던 끝에 미국 대통령은 우주 프로그램을 고치고,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는 컴퓨터 메모리에 내용을 써 넣을 수 있는 새로운 광자총통을 만드는 계획을 승인 했다. 그리고 여기에 겁을 낸 다른 나라 대통령들도 서로 악수하는 사진을 찍으며 줄줄이 달라 붙어, 이 계획은 세계 20개국 협동 투자 계획으로 변했다.


 


 그 무렵부터가 정말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들썩들썩 하는 느낌이 드는 때였다. 단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부수어 버릴 수 있는 기술이 나왔다고들 했으니까. 새 광자총통은 인공위성과 우주선의 형태 였다. 세 개의 커다란 인공위성과 아홉계의 회전식 우주선이 하늘로 날아 올라 자리를 잡았다. 지구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밤하늘에서 알아 볼 수 있는 이 번쩍 거리는 것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새 광자총통들은 빠르게 첫번째 실험을 실시했다. 새 광자총통이 아주 살짝 우주 프로그램을 바꿨다. 그러면 우주가 움직이는 과학의 원리와 법칙들이 조금 바뀌게 된다. 지구에는 아무 이상이 없을 정도였지만, 대신에 30만 광년 멀리 떨어져 있는 한 거대 중성자별에는 큰 영향을 끼쳐 빛을 뿜으며 터져 버리도록 극히 교묘하게 꾸몄다.


 


 중성자별은 뜨거운 기름에 갓 튀긴 튀김 속에서 아이스크림이 튀어 나오는 모양으로 폭발했다. 시험이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저 머나먼 중성자별만 하나 골라 없애버리는 것 보다 아무렇게나 프로그램을 부수어 버리는 것은 훨씬 쉽다. 그렇다면 이 실험보다 훨씬 더 간단한 수법으로 우주의 모든 것을 멈추어 버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실험을 지켜 보던 학자나 군인들 중에는 뭔가 멋진 한 마디 감상을 남기기 위해 골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0세기 중반 핵폭탄의 실험을 보고,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부류의 말을 해서 유명해진 인기 있는 명언들이 있지 않았는가? 그걸 흉내내서 이 실험을 지켜 보던 학자나 군인들 중에는 뭔가 멋진 한 마디 감상을 남기기 위해 골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핵폭탄 개발 사업 때의 오펜하이머 박사를 따라하려고 그 옷차림새까지 흉내 냈던 뉴욕대 부설 연구소 출신 고위 연구원은 이런 말을 했다.


 


 "이것은 인간이 최초로 우주의 원리와 법칙을 고쳐 버린 사례이다. 우리는 바다를 흙으로 메워서 육지로 만들거나 인간을 복제하는 일 정도를 두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의 법칙들을 아주 잘 이용해서 대단한 일을 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법칙 자체를 바꾸었다. 오늘, 우리는 정말로 자연의 섭리를 거슬렀다."


 


 그 외에도 이 장면을 보고 멜로드라마적인 몸짓으로 무릎을 꿇거나 탄식하는 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은 세계의 여러 나라 마다 그득그득 있었다.


 


 그렇게 되니 이제 사람들은 저마다 밥상 머리의 이야기 거리로 광자총통과 우주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 했다. 출근 후 담배 피우면서 시간 낭비하는 시간에, 결혼하기 위해서 선 보러 만난 어색한 남녀들이 쓸 데 없이 웃으면서, 광자총통과 우주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세상이 되었다.


 


 부유한 나라들은 민주 국가들이었고, 민주 국가들은 그 나라 국민들이 그와 같이 선보러 와서 잡담거리로 나누는 이야기의 화제가 되는 사건에 민감하기 마련이기에, 광자총통들은 더욱 더 늘어 났다. 그 동안 쓰던 "읽기 전용" 광자총통과 무기로도 쓸 수 있는 "읽기/쓰기"용 광자총통을 같이 활용하게 되었고, 광자총통을 보강하기 위해 더 많은 우주선들이 인공위성 궤도로 날아 올랐다.


 


 "연합군"에 돈을 쓰는 나라들은 더더욱 많아 졌다. 여러가지 큐빗 지향 프로그래밍의 알려진 많은 해킹 수법들이 우주의 프로그램을 조작하고 뒤지는 데 적용 되었다. 곧 별빛을 관찰하기 좋은 티벳과 멕시코 고원의 높은 산지에 수천명의 정보 보호 부대 군인들이 모이는 커다란 기지들이 생겨 났다.


 


 이들은 곧 우리 우주를 나타내는 프로그램에 아주 작은 내용을 덧붙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아주 작고 간단한 프로그램을 덧붙이는 방법으로 더 철저하게 우리 우주를 실행시키고 있는 컴퓨터에 대해 조사하는 기능을 집어 넣었다. 이 기능 덕택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우리 우주가 들어 있다는 컴퓨터의 모양과 이 컴퓨터를 조작하고 있는 우주 바깥의 괴물에 대해서 점차 많은 것을 추측할 수 있게 되기 시작했다. 분명히 우리 우주는 어떤 컴퓨터 속에 돌아가고 있는 프로그램이었고, 그 컴퓨터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지켜 보는 알 수 없는 우주 바깥의 괴물들이 있었다.


 


 이 군사 기지 사람들은 우주 바깥 세계의 모양과, 그 우주 바깥 세계에서 컴퓨터를 쓰는 자들의 행동하는 습성이나 풍습에 대해 조사해 나갔다. 한편으로는 우리 우주 바깥 세계에도, 우리 식으로 말하면 빛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것과, 공기라고 불러야 할 만한 것들, 자기력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것과, 상대성이론이라고 불러야할 만한 것들도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리 우주 전체를 담고 있는 컴퓨터의 주인은 굳이 사람으로 따져 보자면 멧집 좋고 늙수레 해 보이는 별 특색 없는 아저씨에 해당한다는 부류의 추측도 나돌게 되었다.


 


 이 중에 가장 놀라운 영향을 끼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었다. 바로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 3년간 그 막나가는 소동들이 본격적으로 일어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런 이야기 였다. 이 우주 바깥의 컴퓨터 주인은 가끔 프로그램 실행을 중단시키고 컴퓨터를 툭 하고 무심하게 끄기도 한다. 그런데, 컴퓨터 주인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바로 우리 우주가 실행되고 있는 컴퓨터를 꺼버릴 예정인 것처럼 보였다.


 


 


 5.


 이 해 가을, 여러 나라에서 큰 문제가 되었던 사건들 중에 유명한 것으로는 게임을 중단시키자 싸움이 벌어져 맞았다는 둥, 갑자기 난투극이 벌어졌다는 둥 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20세기말식으로만 상상해 보자. 비디오 게임에 중독된 어린이가 있다, 어머니는 게임을 못하게 막는다. 어린이는 너무 게임을 하고 싶어서 어머니에게 덤벼든다. 대략 이런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 해 가을의 사건들은 그런 모양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21세기 초반식으로 상상해 보자.  온라인 컴퓨터 게임에 빠진 사람이 있다. 상대방이 너무 약은 수법으로 자신을 농락한다. 도저히 참다 못해 상대방을 직접 찾아가서 약은 수법을 못쓰도록 막는다. 시비가 붙어 두 명의 20대 초반 남자끼리 격투를 한다. 이런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 해 가을의 사건들은 그렇지도 않았다.


 


 이 해 가을에 일어났던 일은 대체로 이런 모양이었다. 기계에 무심한 노인들이 게임을 하다가 무심하게 휴대전화를 닫아 버리려고 한다. 그러면 옆에 있는 감수성 깊고 동정심 많은 소년 소녀 청년이 그 노인이 전화를 닫지 못하도록 눈물로 호소하고 빼앗으며 부르짖고 싸우고 애를 쓰는 모양이었다.


 


 "할아버지. 지금 할아버지가 전화로 하던 게임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동지들을 모아 용을 잡는 내용이었잖아요. 이 게임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바로 그 게임 속 세상에 살아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 할아버지가 이렇게 전화를 꺼버리면, 이 게임 속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세계 전체가 다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우주 종말이라고요.


 


 유놈 프로젝트 들어보셨죠? 유놈 프로젝트가 뭐냐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다른 사람이 돌리는 컴퓨터 속의 프로그램이라는 거거든요. 그런데 누가 우리 세상을 이렇게 실행시키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확 꺼버리면 좋겠어요? 할아버지 전화 속에서 돌리던 게임도 정말 정말 단순하고, 거기 등장인물들이 아주아주 간단하게 되어 있을 뿐이지 그 나름대로 그 속에서 세계를 이루면서 돌아가고 있었다고요. 그것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랑 차이가 없는 거라고요. 그런데 함부로 그렇게 돌리기 시작했다가 또 갑자기 그렇게 꺼버리면 어떡해요. 간단하고 보잘것 없는 세상이라고 해서, 남의 세상을 심심풀이로 다 없애 버리면, 그러면 안되잖아요."


 


 이러다보니, 환상적인 세계를 묘사한 게임들은 바로 우리 스스로 아주 간단한 형식의 우주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 것과 같다는 주장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는 학생들이 공부를 좀 하게 하려고 컴퓨터 게임에 반대하려는 학부모 단체들이 별 뜻 없이 이런 주장을 퍼뜨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이게 꽤 그럴듯하게 들리기 시작했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게임을 실행시키는 것은 아주 간단한 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꺼버리는 것은 그 우주를 함부로 없애는 지독한 행동이라는 생각을 따르기 시작했다.


 


 이러자니, 실행 중인 컴퓨터 게임을 끄지 말자고 시위하는 사람들이나, 앞으로 함부로 컴퓨터 게임을 실행시키지 말자는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나타났다. 스페인의 투우장 앞에서 동물 애호가들이 속옷차림의 시위하면서 소를 죽이는 잔인한 스포츠를 멈추라고 하던 것을 본 받아, 대형 PC방이나 컴퓨터 게임 개발 업체 앞에서 "잔인한 장난을 멈추라"는 속옷차림의 남녀들이 나타났다. 나 역시 회사 앞에 날마다 모여드는 그런 사람들의 다양한 상표의 속옷들을 무척 자주 구경 했다. - 시위 전용 속옷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번은 반대로 계룡산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기 위해 갈고 닦은 사람이라며 어떤 신내림 받은 무당 몇 사람이 회사에 찾아와,


 


 "여러분들은 작고 단순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시는 분들이시옵나이다. 여러분이 바로 세상을 창조해 내시는 분들 아니시옵나이까!"


 


 라고 하면서, 회사 주차장 앞에서 무수히 절을 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다른 세계"를 무대로 하는 게임이나, 새로운 나라나 새로운 행성을 만들거나, 탐험하는 게임들은 모두 "19세 미만 이용불가" 판정을 내렸다. 그리고 훌륭한 조치를 취했다고 의기양양해 하기도 했다. 덕택에 우리 회사는 컴퓨터 속 적과 싸우지도 않고, 게임 속에 다른 사람의 모양이 나오지도 않고, 그저 실제 사람 둘이서 각자가 다루는 무기만 표시 되는 사람 대 사람 대결 게임만을 위주로 당분간 사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 난리는 가라앉지 않았다. 가라앉기는 커녕, 우리 우주를 돌리고 있는 컴퓨터의 주인이 얼마 안있어 컴퓨터를 끌지도 모른다는 점이 보도 되기 시작하자, 이상한 놈들은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준동했던 무리들은 긴긴 역사 동안 흔하디 흔하게 나타났던 종말론자들이었다.


 


 "컴퓨터를 끄면, 우리 우주는 그 순간 완전히 없어진다. 고통도 없고 느낄 것도 없이 그대로 모두 사라진다. 하지만 이것은 바로 우리 우주를 창조한 분, 지금도 우리 우주를 지켜보고 있는 분, 컴퓨터 주인, 그 분의 뜻이다. 그 뜻을 거스를 수는 없다. 우리는 그대로 우주가 없어지는 컴퓨터가 꺼지는 날을 받아들여야 한다."


 


 80년대의 헤비메탈 밴드를 보고 베꼈음이 분명하리라고 보이는 복장으로 싸돌아 다니는 인간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다니며, 사람들을 몰고 다녔다. 이런 수법은 굉장히 큰 인기를 끌었고, 심지어 꽤 큰 기존의 종교 단체 중에서도 이런 내용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이런 놈들을 따라 다니며 "경건한 최후"를 대비한다고 아내나, 아들이 가출을 해버리는 바람에 속타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났다. 뭐라도 다른 소리가 나와야 했다. 그러니 종말론자들을 말려 보자고 반대 입장을 내세우는 학자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학자들은 어차피 우주를 껐다고 해도 언젠가는 다시 켜서 저장했던 부분 부터 다시 실행할 것이고, 그러면 그 안에서 동작하는 우리는 아무것도 차이점도 느낄 것 없이 그대로 계속 편안하게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컴퓨터를 한 번 끄는 일이 온다는 것을 가지고 우주의 종말이 찾아 온다는 둥 어쩐다는 둥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번 프로그램을 중단 시키고 나서 영원히 다시 실행시키지 않는다면, 혹은 지워서 없애 버린다면 그대로 우리 우주는 끝이 난다는 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뜻이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문제였다. 일단 한 번 프로그램이 꺼지면 그때부터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시 켜서 다시 뒤이어 실행시키면 부드럽게 이어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꺼져 있는 동안은 우리의 시간은 멈추어 사라지게 될 터였다. 그러면 우리는 그저 잠자는 동안 어머니가 내일 아침 먹을 분유도 잘 마련해 놓겠지 하고 믿고 자고 있는 갓난아기와 같은 꼴이 될 뿐이었다. 과연 우리 우주를 담고 있는 컴퓨터를 꺼버릴 자를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즈음 되자 꽤 진지하게 이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과 단체, 연구기관들 중에서도 좀 엉뚱한 소리가 나돌기 시작했다.


 


 우리 우주의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관찰하고 있는 그 우주 바깥의 괴물은 우리 우주의 구석구석 어느 부분이건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하는 내용 조차 이 자는 알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마음 속으로 간절히,


 


 "제발 우리 우주를 담고 있는 컴퓨터를 끄지 마세요!"


 


 하고 마음 속으로 외쳐 보자. 우리 모두가 그렇게 마음을 모아 간곡히 외치면, 분명히 우주 구석구석을 보고 있던 컴퓨터 주인 괴물은 그 말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컴퓨터 주인을 감동시킬만큼, 세상 사람 모두가 한데 정신을 모아 그렇게 마음 속으로 외친다면, 컴퓨터 주인은 분명히 컴퓨터를 끄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바로, 역사상 아슬아슬한 순간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사람들이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 까닭이라고 했다. 컴퓨터 주인은 우리를 항상 관찰하고 있고, 꽤 감동적인 장면이 나타나면, 가끔 그 말을 듣고 프로그램을 조금 조작해서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컴퓨터를 끄지말라고, 어쩔 수 없이, 예를 들어서 컴퓨터 전원장치 교체 같은 일 때문에 잠깐 컴퓨터를 끈다면, 잘 저장해 두고 일이 끝나자마자 그대로 다시 켜서 실행해 달라고 그렇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마음속으로 애절하게 빌어 보자고 했다.


 


 우리 모두 간곡히 마음을 모은다면 컴퓨터 주인이 그 마음을 알아 보고 감동해서 컴퓨터 끄는 것을 멈춘다는 주장에는 나중에 "소승 프로그램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것은 그 반대자들인 대승 프로그램론자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소승 프로그램론의 인기는 종말론을 넘어 설 정도로 선풍적이었다. 이 주장을 그대로 따라가는 종교 단체들이 날이 갈 수록 늘어나는 판이었다.


 


 그렇지만 대형 종교 단체들은 언제나처럼 버텼다. 대형 종교 단체들은 진정한 창조자는 우리 우주를 만들어낸 컴퓨터 주인, 우주 바깥의 괴물이 아니라고 했다. 진정한 창조자란 우리 우주 뿐만 아니라, 우리 우주를 담고 있는 컴퓨터와 그 컴퓨터가 있는 우주 바깥의 세상 조차 창조한 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컴퓨터 주인은 정말로 모든 것을 창조한 분이라는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 단체에 따라서는 우리 우주를 담고 있는 컴퓨터의 주인은 어쩌면 우리 우주를 관리하고 지켜 보는 천사나 악마라고 했다. 시시한 우주 과학 논문을 몇 편 쓰다가 다른게 더 돈이 되겠다 싶어 종교 지도자로 전향한 어떤 늙은이는, 우주 바깥 세상, 우주를 담고 있는 컴퓨터들이 있는 세상이 바로 "저승"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 늙은이 외에 정말로 본격적으로 소승 프로그램론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대승 프로그램론자들이었다.


 


 소승 프로그램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컴퓨터 주인이 지구인들의 마음과 사람의 생각을 항상 관찰하고 신경 쓰고 있고 가끔은 감동도 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승 프로그램론자들은 컴퓨터 주인은 그런 소소한 일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주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는 컴퓨터 주인은 훨씬 더 크고 거대한 사건을 보기 위해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을 것이다. 컴퓨터 주인은 빅뱅이 일어나 세상에 별들이 태어나는 순간이라든가, 은하계와 은하계가 충돌하는 장대한 모습 같은 것을 관찰하며 우주 프로그램을 구경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장면을 보는 것이야 말로 이 드넓은 우주를 프로그램으로 실행하고 지켜 볼만한 이유로 합당하지 않을까. 그런 컴퓨터 주인에게 은하수 한 켠 별로 밝지도 않은 태양에 딸린 한 돌더미 행성에서 인간이라는 것들이 복닥대며 복닥대며 사는 모양은 아무런 눈길을 못끄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품는다는 일은 컴퓨터 주인의 눈길을 끌 가능성 조차 없는 것이지 않겠는가? 만약에 정말로 우주가 들어 있는 컴퓨터가 꺼지는 것을 막고자 한다면, 마음을 모으니 어쩌니 할 것이 아니라, 광자총통들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직접 컴퓨터 주인에게 무슨 신호를 보내야 한다. 이런 것이 대승 프로그램론자들의 주장이었다.


 


 소승 프로그램론자들과 대승 프로그램론자들은 무척 치열하게 대립했다. 1년이 지나지 않아 두 파는 개경파와 서경파, 서인과 동인, 노론과 소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좌파와 우파가 서로 대립하던 시기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발전 했다. 사회의 모든 문제들을 두고 소승 프로그램론자들과 대승 프로그램론자들은 서로 편을 갈라 싸웠다. 중앙 은행 금리를 결정하는 정책 문제부터, 학생들 급식에 소시지를 얼마나 자주 주어야 하는 문제까지, 무슨 문제건, 모두 소승 프로그램론의 관점에서 보면 찬성하는 게 맞다, 대승 프로그램론의 관점에서 보면 반대하는 게 맞다며 다투곤 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대규모 공공사 업과 군사 작전에서는 결국은 대승 프로그램론이 주도를 잡았다. 정부의 높은 관리들일 수록, 소승 프로그램론을 따라간다면 몇몇 종교 지도자들에게 너무 휙둘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두려워 했다. 대부분의 국가 기관들과 정부는 대승 프로그램론을 따라 합심 했다. 여기에 시민들이 반대해서 혁명이 일어난 나라도 몇 생겨나긴 했다.


 


 대승 프로그램론을 따르는 많은 나라들은 광자총통들을 이용해서 컴퓨터 주인이 컴퓨터 끄는 일을 막아 보자는 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우주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는 컴퓨터의 구조에 대한 연구가 더욱 깊게 이루어졌고, 이 컴퓨터에 연결된 다른 컴퓨터를 찾아 들어가서, 컴퓨터 주인이 사는 우주 바깥 세상의 모습과 그 사회에 대해 알아내는 별별 기발한 수법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이어서 광자총통들을 안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달에 기지를 짓고 지구와 달을 오가는 우주선을 운항하는 일도 시작되었다. 이 광자총통들을 써서 우주 바깥 세상의 컴퓨터 주인이 자주 보고 눈에 뜨일 만한 곳에, "지금 컴퓨터를 끄지 마십시오."라는 경고 문구를 보여주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사람들이 달라 붙었다.


 


 소승 프로그램론자들은 이 모든 짓들이 다 부질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컴퓨터 주인은 우리 우주 프로그램의 실행 상태를 항상 어디든 보고 있을 거라고 했다. 우리가 이렇게 컴퓨터 주인에게 신호를 보낼 방법을 만들어내고 큰 기계를 만들고 컴퓨터를 함부로 해킹하는 것을 모두 지금 빤히 지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소승 프로그램론자와 대승 프로그램론자와 싸우는 이 모습도, 착한 일을 하는 지, 나쁜 일을 하는 지 모두 컴퓨터 주인은 보고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대승 프로그램론자들은 컴퓨터 주인이 무슨 산타 클로스냐며 비아냥 거렸다.


 


 그러나 소승 프로그램론자는 컴퓨터 주인이 당장 손만 까딱하면 이 모든 것이 다 날아가도록 컴퓨터를 꺼버릴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함부로 컴퓨터에 침입하는 것은 컴퓨터 주인을 화나게 할 뿐이라고 했다. 오직 컴퓨터 주인이 감동할 수 있도록 간절히 마음을 모아 비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그래도 대승 프로그램론자들은 우리가 직접 컴퓨터 주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단을 만드는 것은 단지 지금 위기를 벗어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대승 프로그램론자들은 컴퓨터 주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면, 우리 우주를 만들어 실행시킨 장본인을 마주보고 말을 하는 것과 다름 없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도대체 왜 우리 우주를 만들었는 지, 우리는 왜 사는 지, 뭐하려고 여기에 이렇게 태어나 있다가 죽는 지, 대놓고 따져 물어 볼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그러면 컴퓨터 주인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우주 바깥 세상에서 이 거대한 컴퓨터를 만든 어마어마한 지식으로 세상 사람 모두가 감탄할 정도의 답을 알려줄 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대승 프로그램론자들 중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의심을 품는 사람들은 조금씩 생겨 났다. 대승 프로그램론자들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고생고생해서, 컴퓨터 주인에게 컴퓨터를 끄지 말라고 알려 주는 데 성공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래도 만약 컴퓨터 주인이 무심하게 그냥 컴퓨터를 확 꺼버리면 어쩌냐는 것이었다. 컴퓨터 주인이 프로그램 속의 우리들이 만들어 낸 "끄지 마시오"라는 말을 본다고 해도, 그건 프로그램 오류나 다름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우리의 말을 그 자가 들어 줄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냐는 것이었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가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6.


 그 날, 나는 19세 이상 이용 가능 등급을 받지 않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기 위해 네 시간 동안 이어지는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 데 회사에, 마른체구의 대학원생, 과학철학행정문화 연구인, 재료공학 교수, 정보보안학 교수, 상병, 오펜하이머 흉내내던 사람 등등이 나타났다. 이제는 모두 리얼리티쇼 주인공들 만큼이나 유명인사가 된 국제연구회의 최상위 회원들이었다.


 


 엄숙하게 차례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우리의 소개를 받은 그 사람들은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게임 속 등장인물이 게임을 하는 사람에게 직접 해를 끼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이 회사에서 만든 게임에서 게임 속의 적이 주인공을 물리치려고 별별 방법을 다 쓰다가 주인공을 조종하는 게임 사용자를 발작시켜서 죽게한 적이 있었던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고려 시대 무인들과 싸우는 게임을 하다가 죽은 대학생 이야기를 하는 말을 듣자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사람들은 여차하면, 우리 우주를 창조한 컴퓨터 주인을 죽여 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게임 속 망소이와 싸우다가 사람이 죽은 이후에, 컴퓨터 프로그램 속의 인공지능 동작이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해 알아 보고 세상 어느 회사보다 그러한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한 적이 있었다. 위험한 작동이 과하게 일어나서 키보드나 마우스에 과전류가 흐르게 되어 사람이 감전하게 될 가능성에서부터, 컴퓨터 프로그램이 전략적으로 정보를 외부에 누출 시켜서 사용자를 개인 정보 사기의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일들까지 별별 경우를 다 살펴 봤던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가 반대로 컴퓨터 속의 등장인물인 셈이었고, 우리를 창조하고 지켜보는 것은 우주 바깥에서 컴퓨터를 돌리고 있는 그 자였다.


 


 주차장은 - 역시 주씨 성을 가진 차장을 말한다 - 이번에는 대뜸 자신이 그 고려시대 무인과 결투하는 게임의 책임자라면서 나섰다. 주차장은 이 일의 대표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텔레비전에도 많이 나왔고, 이 문제에 전문가랍시고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떠들어 댔다.


 


 국제연구회에서 컴퓨터 주인을 죽일 방법을 찾고 있다는 계획이 발표 되자, 소승 프로그램론자들은 사력을 다해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 우주를 창조한 자를 우리가 배반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벌이려는 것을 우주의 창조자는 알아보고 바로 벌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국제연구회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컴퓨터 주인이 우리 우주의 모습을 관찰하는 관찰 프로그램을 몰래 고쳐서 알 수 없도록 하는 기법을 쓸 거라고 했다. 또 만약 컴퓨터 주인이 그렇게 우리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단번에 심판할 수 있다면, 왜 지금 갑자기 우주가 멈추고 우리 일이 중단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소승 프로그램론자들은 이게 바로 너무나도 너그러운 컴퓨터 주인이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잘못을 깨달아 우리 손으로 멈추고 반성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우리 우주를 창조했고 우주를 움직이기 위해 우주 바깥에서 컴퓨터를 돌리고 있는 컴퓨터 주인을 공격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주차장은 TV에 나와서,


 


 "사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라면서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지껄였다. 간단할 일일 리가 없었다. 아직 동물을 죽여서 육식을 하는 것이 얼마나 삼가야 할 일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조차 논쟁이 일어나는 판국이다. 그런데 다른 별에 사는 외계인도 아니고 우리 우주 바깥에 있는 자를 공격하는 일에 대해 선악을 따진다는 것이 어떻게 아주 간단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소리 저 소리 많이 떠들고 다닌 덕분에, 주차장은 대단한 사람으로 이름이 나는데 성공했다. 주차장은 지식경제부에 특채 되어 삽시간에 고위 공무원이 되기도 했고, 얼마 안되어 무슨 우주개발과 관련된 공기업에 사장으로 가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제연구회 사람들은 주차장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맞춰 주차장 스스로도 공기업 사장으로서 경영을 하는 데 앞으로 뜻이 있다고 했지, "기술적인 문제"에는 이제 한 발 물러설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 말은 우주 안과 밖을 통틀어 가장 가증스럽게 들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제연구회 사람들은 주차장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탓에 계속해서 회사에 남아 있던 나와 다른 동료 연구원들은 아주 어정쩡한 직위에서 이 작전의 "무기" 만드는 일을 도맡아야 했다. 먼저 우리는 우리 우주를 담고 있는 컴퓨터를 관리하는 우주 바깥의 컴퓨터 주인들에게 우리 우주를 돌리고 있는 컴퓨터를 끄지 말라고, 하나 둘 설득하기 위한 신호를 보냈다. 컴퓨터 주인을 딱 한 명으로 특정할 수 없었기에, 이렇게 여럿에게 연락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대체로 잘 통했다. 그러나 그 중에 쉽게 설득하기 어렵던 자 하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떼도록 강제적인 처리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억지로 우리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로 비슷하게 설명해 보자면, 우리가 쓴 수법은 이러했다. 우리는 우리 우주가 담겨 있는 컴퓨터에 연결된 다른 컴퓨터에 몰래 접속했다. 우리는 계속 여러 컴퓨터를 거쳐서, 우리 우주 바깥 세상의 교통 신호 제어 컴퓨터에 해당하는 곳까지 들어갔다. 거기서 우리는 교통신호를 조작해서 우리 우주가 담겨 있는 컴퓨터를 함부로 끄려고 하던 자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만들었다. 꽤 큰 부상을 입었고, 이 자는 한동안 우리 우주를 담고 있는 컴퓨터 근처에 오지 못할 처지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소승 프로그램론자들과 종교 지도자들 중에는 이렇게 우리 우주를 창조한 자를 해치면 안된다고 우리에게 테러 공격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뭐 그렇지 않겠는가. 한참 열기가 달아 오른 시기가 지나고 나자, 갈 수록 우주와 우주 바깥의 또다른 세상에 대한 이 엄청난 일들은 차차 관심을 잃어 갔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땅이 당장 갈라지지 않는 이상 그러려니 하고 골치아픈 일은 대충 눌러두고 살아가게 되나 보다. 이제 이런 요란한 소동들은 적당히 가라 앉았다. 사람들은 다시 주식 시세나 고속도로가 어느 지역으로 건설 되는 가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살고 있다. 요즘에는 사교육판에서 우주 프로그램을 알아야 하는 세대라고 하면서, 어린이용 프로그램 해설이니, 대학 입시 논술을 위한 프로그램 이해 따위의 허황된 장사로나 이렇게 저렇게 모습을 바꿔가며 돈벌이로 언급되는 정도다.


 


 그 와중에 내가 "창조자를 죽인 사람들" 등등으로 - 사실 죽인 적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 한 바탕 여기저기에 얼굴이 알려진 일도 있었다. 그 유명세 덕택에 오랫만에 안부를 묻는 그녀와 연락이 닿을 수 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다행히 주차장이 이 모든 작전의 대표랍시고 설쳤던 까닭으로 나는 "창조자를 죽인 악마 두목의 심장에 대못을 박아야 한다"며 날뛰던 테러 공격의 중요한 목표가 되는 일만은 피해갈 수 있었다. 이런저런 수당이며, 사례금, 포상금을 받아 생활은 좀 넉넉해지는 정도는 즐거운 일이었다.


 


 한편, 아쉽게도 우주가 왜 "있는" 지에 대한 탐구는 갈 수록 더 개떡 같아질 뿐이었다. 굉장한 이론이 나와서 그동안 수수께끼 같았던 일들을 모두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처럼 보이는 때가 가끔 있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법칙일 수록 깔끔한 설명은 하나요, 알 수 없는 수수께끼는 백만가지인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곤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우리 우주를 돌리고 있는 컴퓨터에 대해서 알아내고, 그 컴퓨터의 주인들에 대해서 알아냈다. 하지만, 그렇게 캐다보니, 얼마전에는 우리 우주를 돌리고 있는 그 주인들의 세상 조차 또다른 컴퓨터 속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프로그램 속의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를 창조한 컴퓨터 주인들은 자신들이 프로그램 속에 있는 것일 뿐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면에서 보면, 우리는 아버지 보다 똑똑한 아들이요, 사람 보다 똑똑한 컴퓨터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다시 파헤치고 또 연구한 끝에, 우리 우주 바깥의 존재들을 담고 있는 그 프로그램을 만든 창조자들 조차 또 다른 프로그램 속에 있는 것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두 겹으로 파헤치고 나간 그 우주 바깥의 바깥 컴퓨터 주인들은 자신들이 다른 프로그램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자들은 우리와 "말이 통하는" 스승이었다. 이들도 우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들이 다른 누군가의 프로그램 속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신들이 담겨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 자들에 대해 알려 주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현재까지 일곱겹으로 되어 있는 프로그램 속의 프로그램이라는 것까지를 알아냈다. 그 겹겹의 세상 중에는 컴퓨터가 여러 대가 있고, 그 여러 대 속에 서로 다른 우주들이 돌아가고 있는 곳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엉망진창이었다. 이 여러겹의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모두 같은 구조일까? 만약에 서로 다른 구조라면 겹겹으로된 형태로  표현되다가 예기치 못한 오류를 일으키는 골치아픈 순간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일곱겹을 뚫고 나간 우주 바깥의 컴퓨터 주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진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조차 또다른 컴퓨터 프로그램 속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모두 의심하고 있다.


 


 그러면 이런 겹겹은 어디까지 이어진다고 보아야 하는가. 주차장 같은 놈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대충 넘겨 짚어서 아홉겹이나 열겹 정도라고 헛소리를 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우주 프로그램의 복잡한 정도로 보았을 때 여덟겹 이상으로 프로그램 속의 프로그램이 겹쳐져서 실행 되는 것은 논리상 불가능하다는 증거들이 꽤 많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일곱겹 바깥의 컴퓨터 주인들이 진짜 세상에서 정말로 살아 있는 진짜 사람들이고, 나머지들은 모두 그 진짜 사람이 만든 컴퓨터 속에서 프로그램 속 프로그램으로 겹겹히 겹쳐진 채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뭔지.


 


 


 7.


 3년만에 다시 연락이 닿은 그녀에게 나는 이런 여러가지 겪은 일들을 들려 주었다. 몇 년 전 한때 그녀에게 말을 하는 것이 참 어색할 때도 있었지만, 워낙 떠들 말들이 많았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그런대로 재미나게 들려 줄 수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녀도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광자총통과 우주 바깥의 세상에 대해 흥미가 많았다. 그녀는 긴시간 전화 통화를 모두 즐겁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재미있는 것을 보여 주겠다며, 이번에는 먼저 나에게 청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저녁, 그녀와 이렇게 3년만에 만난 것이었다.


 


 그녀는 내 앞에 앉아, 그 두꺼운 책을 펼쳐 보여 주었다.


 


 "이게 바로 우주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써서 해설해 놓은 책이거든. 그래서 이 책을 앞에서 부터 차례대로 따라하면, 우리 우주가 돌아가는 우주 프로그램이 움직이는 것처럼 한 번 계산을 해 볼 수 있는 거야."


 


 그리고 그녀는 그런식으로 계산을 계속해 나가면 우리도 직접 우리 우주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우주 하나를 가상으로 실행시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굳이 이 내용을 어떤 큰 컴퓨터에 집어 놓고 하드디스크에서 읽혀져 실행되는 소프트웨어의 형태로 돌려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손으로 그냥 종이에 쓰면서 하나 둘 따져 봐도 그 형태만 다를 뿐 마찬가지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어차피 우리 우주를 실행시키고 있는 우주 바깥의 그 컴퓨터들도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처럼 실리콘과 게르마늄 반도체로 되어 있는 형태일 리는 없으니까. 우리도 꼭 우리 세상에서 눈으로 보기에 기계 같아 보이는 형태 속에서 우주 프로그램을 실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저 그 추상적인 표현만 이루어지고 있다면 효과는 같다고 했다. 그녀는 심지어 정확히 기억할 수만 있다면 꼭 종이에 뭔가를 쓸 필요 없이 머릿속으로 암산만 해도 될거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하면 계산 속도가 너무 느리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하루 종일 계산해도 우주에 생긴 맨 처음 입자 하나가 잠깐 동안 날아 가는 것 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래도 상관 없다고 했다. 우리가 우리 세계에서 아무리 느리게 계산을 한다고 해도, 어쨌거나 진행을 하기만 하면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산하고 있는 가상 우주 속에서는 그렇게 느릿느릿 한 단계 한 단계의 계산이 끝날 때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시간이 진행되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다만 책을 읽다가 중간에 영영 그만두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그만 두면 그때 그 우주는 끝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읽다가 좀 쉬었다가 읽고, 천천히 느리게 읽어도 아주 그만두지 않고 계속 진행하고 있는 동안은, 이 가상 우주는 돌아가는 거라고 그녀는 말해 주었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그녀는 다시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사람들이 보기에, 일곱겹 바깥의 우주가 진짜 우주 같다면서. 그런데 왜 하필 일곱겹인지 이상하지 않어? 왜 어떤 우주는 진짜 우주고 어떤 우주는 프로그램 속의 가짜 우주야? 모양이 어정쩡하잖아. 깔끔하지가 못하고."


 


 그리고 그녀는 이 겹겹으로 겹친 프로그램 속 프로그램 속 우주들의 모양이 마음에 들 만큼 멋지고 가지런 해 지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라고 했다.


 


 바로, 전혀 프로그램 속 우주 같지가 않고 가장 진짜 같아 보이는 일곱겹 바깥 우주야 말로, 도리어 지금 그녀와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우주에서 돌리고 있는 프로그램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우주들은 서로가 서로를 가상의 프로그램으로 돌리고 있어서 결국은  뱅글뱅글 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우주는 정말로 있는 가장 진짜 같은 우주고 어떤 우주는 컴퓨터에서 실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일 뿐인 가짜 우주라는 이상한 차별이 없이, 모두가 다 진짜 의미가 있고, 동시에 모두가 다 그 위치에서 어느 정도는 가짜가 된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되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다른 우주를 실행시키고 있는 곳이 있어야 되거든. 그게 어디냐면, 바로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연필로 숫자를 계산해 가면서 손으로 실행하고 있는 이거 라는 거지. 이게 바로 (그녀는 손짓을 했다.) 그 일곱겹 바깥의 제일 진짜 같은 우주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이런 속도로 실행하면 일곱겹 우주가 생겨 나고 나서 한 2, 3초 정도 시간이 지나는데만 우리는 몇 억년 동안 계산을 해야 할거라고 했다. 그녀는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몇 백억년, 몇 천억년이고 계속 손으로 책을 보면서 계산을 하면, 결국 일곱겹 우주도 차근차근 시간이 흘러갈 거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몇 천억년 동안 그런 일을 계속할 수 있냐고 내가 묻자, 그녀는 이미 거기에 성공할 거라는 증거가 있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 그 일곱겹 우주 속에서 만들어진 컴퓨터 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프로그램 속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이야 말로 그 증거라고 했다.


 


 그녀와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 서로 무슨 최신 이론이나 새로 본 이상한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떠들던 때처럼 즐겁게 쉬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꼭 그 옛날 처럼 가끔 말이 재밌어 지는 순간에 손을 가볍게 흔들어 움직이는 동작을 했다. 나는 들뜬 목소리로 겹친 우주와 그녀가 보여준 책에 대해서 계속 떠들었다.


 


 시간은 그러는 사이에 훌쩍 지나가 있었다. 나는 정말 그냥 이렇게 오늘 그녀를 보낼 거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즐겁게 이야기를 하긴 했다. 하지만 계속 눈치만 보고 기회만 엿보다가 내가 가슴을 두근거렸던 진짜 이유를 주제로 하는 대화는 결국 하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녀는 분명히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렴. 벌써 몇 년간이나 변함이 없는 내 얼빠진 보는 표정과 어색하게 헤메는 말투만 들어도 누구든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가 그녀는 아입자 가속기 오류로 밝혀낸 우주론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잡담을 하자며 갑자기 나를 만나자고 하지 않았는가? 그녀는 정말로 아입자 가속기 오류로 밝혀낸 우주론 문제에 대한 잡담만 하고 싶었을까? 설마. 나는 이것이 바로 여자가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 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 오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기회를 탄다면 좋겠지만, 이제 이상한 기회라도 어쩔 수 없다. 이대로라면 변죽만 울리다가 그냥 헤어지고 말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에 좋은 시점이 아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냥 말하기로 한다. 네 겹 째 우주의 웜홀이 붕괴하면서 세 겹 째 우주 속에서 돌아가던 열여섯개의 우주 프로그램이 한 번에 부서진 사건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무한 재귀 호출 때문에 프로그램이 진행이 되지 않는 문제는 큐빗 지향 프로그램에 나오는 "류 이론" "포화(saturation) 정리"로 해결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아냈는데, 뭐 하여간 지금 이렇게 너를 다시 만나 보니까 나는 너를 참 좋아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고.


 


 내일 출근 시간이 되면 또다시 영원히 겹쳐진 우주의 운명을 찾아 헤메고 다녀야 할것이다. 그래도 일단 나는 그렇게 저질러 보았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 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옛 현인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나는 나무 심는 것 보다야,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보람찬 일이라고 생각 한다. 더군다나, 웃으며 춤을 추듯 날아다니는 광자총통 위성들 덕택에 세상은 아직은 멸망하려면 한참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물며, 저 두꺼운 책을 우리가 두고 두고 같이 차근차근 읽어 나가게 되는 한은, 온 세상 모든 시간이 여유롭게 넉넉하기만 하지 않겠는가.


 


 - 2011, 등촌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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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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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쑤우 11.11.26 13:32 댓글 수정 삭제
    주 차장을 보니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겪고 어렵사리 대장으로 진급해도
    결국 소대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소씨의 비극이 생각나는군요.
    비키니 사진이 유출된 정보보안학 교수 부분에선
    제가 존경하는 - 사진을 찍히면 영혼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사진 찍히기를 꺼려하시는 - 과학사진 교수님이 오버랩 됐구요 :)
    게임과 관련된 작품 속 논쟁은 요즘 이슈인 게임 셧다운제와 관련하여 생각할 거리를 주네요.
    국사교육의 바람직한 예로 꼽힐 만큼 재밌고 유익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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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이 11.11.27 03:47 댓글 수정 삭제
    개인적으로 수미상관식 구성이 멋졌습니다. 독특한 소재도요!
  • No Profile
    박쥐 11.11.28 10:03 댓글 수정 삭제
    "멀티버스" 발매 소식을 듣고도 구하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던 저같은 독자에게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첨단 과학기술 이론에 대한 곽재식 님의 흡수력과 소화력 (여기에, 감히, 달리 표현할 재주가 없어 조야한 조어로 덧붙인다면, 문학적 승화력...)에 늘 감탄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우주론, 인지이론, 나아가 창조론/무신론 논쟁에 이르기까지 철학적으로 무척 흥미로운 주제들이 전면에 부각되어서 개인적으로 더욱 반가웠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하신 "과학철학문화행정" 비스무레한 분야에 적을 두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말이지요.

    읽으면서 여러 구절에서 최신 물리 이론들이 암시되고 있다고 느꼈는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쭈어도 될지요? 평소 이쪽 공부를 따로 하시는지요? 하신다면 어떤 방법으로 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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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1.11.28 15:51 댓글 수정 삭제
    쑤우/ 언제나 용기를 주는 덧글 감사합니다. "주차장" 이야기 같은 것은 사실 빼고 지나가도 아무 아쉬움도 없는 부분인데, 이야기 쓰면서 이상하게 그런 소리 한 마디 하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해서 그렇게 써 두고 넘어 가게 되었습니다. 게임 부분의 논쟁은 셧다운제 말씀을 하셨는데 이 이야기 쓰던 도중에는 당시 대중가요에 대한 지나치게 엄격한 심의 기준에 대해 생각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쓰면서 굳이 그 주제에 대해 비판하면서 쓰겠다고 그렇게 쓴 것은 아니고, 그냥 실감나게 한국적 관료제의 모습을 재미나게 그리려고 했던 것인데 써놓고 뉴스, 기사 보다보니 겹쳐 보였습니다.

    예이/ 꼭 그런 구성으로 갈 필요가 없었던 이야기이고, 그래서 사실 드러난 헛점도 좀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주인공의 연애 이야기는 거의 부각되지 않는 이야기라서 두가지 이야기가 좀 겉돌게 붙어 있는 느낌이 난다고 생각 합니다. 이런 몰골이 된 것은, 대뜸 키보드 붙잡고 쓰려고 시작했을 때 생각난 장면 - 커피 가게에서 가짜 책을 발견한 모습 - 과, 과연 SF다운 전형적인 SF에 가깝게 써 달라는 편집자님의 주문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엉켰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성이 된 것은 그나마 그 엉킨 모습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뽑아 보려고 이리저리 잔재주를 부려본 결과입니다.

    박쥐/ 뭘 그렇게 까지나 말씀하십니까. 단발성으로 잡지에 한 번 실리고 영영 잊혀지고 말 수 있을만한 이야기인데 이렇게 재미나게 읽어 주시니 제가 그저 감사합니다. 학교 졸업한 후로 따로 무슨 이론에 대한 대단한 공부는 하지 않고 있고, 그저 잡지나 대중서적 보고 흥미 생기는 분야는 인터넷에서 좀 찾아 보는 정도 입니다. 위키피디아가 그 자체만 보면 의심스러운 정보는 많습니다만, 소개 되어 있는 부가자료, 다른 링크, 참고 문헌 찬찬히 따라가면서 확인하면 아주 좋은 곳이 되는 듯 합니다. 위키피디아가 소개해 주는 대로 따라다니다보면 아무래도 읽기 재미나고 쉬운 내용들부터 잘 보이는 편이니, "정말로 이게 맞는가?" 하는 의심하는 태도만 갖고 본다면 좋은 출발점은 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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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쥐 11.11.28 18:58 댓글 수정 삭제
    답변 감사합니다. 위키를 언급하시니 새삼 반갑습니다. 왜 좀더 많은 사람들이 위키에 공헌하지 않고 또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을까 하고 안타까워하던 차였거든요.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비판적인 자세는 늘 견지해야 하겠지만요.

    슬쩍 끼어들어 말해 본다면, 앞으로도 "주차장 이야기" 류에의 "욕망"은 굳이 억제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곽재식 님만의 고유한 문체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라 생각되거든요. 엄숙한 형식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장르문학 특유의 경쾌함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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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teater 18.12.06 09:24 댓글

    갑자기 이 글이 생각나서 오랜만에 다시 읽었어요. 역시 좋습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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