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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사, 또한 모험가였던 그녀에게



  초콜릿을 먹어 버린 마법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준섭은 곧장 희원 누나의 자취방으로 달려 왔다. 나는 썰렁한 방에 덩그러니 놓인 소파에 늘어져 시계 위를 흐르는 시간을 구경하다가 그를 맞아 들였다. 마법사 협회에서 들러 벌써 누나의 물건들을 거두어가 버린 후였다. 마법사의 증표며 문장 따위도 거두어 갔고 누나가 쓰던 일지, 보고서, 컴퓨터와 시디 묶음까지도 전부 가져갔다. 남은 것은 험한 손을 타 부서지거나 속엣것이 사라진 물건 뿐으로, 하나 남은 소파도 날카로운 칼 따위로 난도질 당한 채 형상만 유지하고 있었다. 그 외에 방에 남은 거라곤 처음 위치에서 손을 댄 듯 뒤틀려 놓인 탁자와 그 위에 얹힌 네모 반듯한 수족관이 하나, 그 뿐이다.

  "벌써 휑하구만. 싹 거둬 간 거지? 쳇, 빌어먹을 영감들 같으니라구!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게 적당히라는 걸 모른다니까, 그 협회란 덴."
  "앉아. 좀 불편하긴 해도 무너지진 않아."

  자리에 앉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준섭은 말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희원 누나 이야기란 걸 짐작했다고. 왜냐고? 글쎄, 희원 누나가 아니라면 나와 준섭이 아는 한 그런 짓을 굳이 저지를 서울 마법사는 없다. 오직 희원 누나만이, 내게는, 오로지 그녀만이,
  두려워 어쩔 줄 모르면서도 초콜릿을 먹을 수 있는 마법사다.

  "초콜릿을 먹는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구."

  이야기를 마치면서 준섭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물론 알고 있다, 고 나는 답했다. 마법사에게 초콜릿은 대단히 위험한 식품이라는 것 정도 모르는 마법사는 없다. 모른다면 현대 마법사가 아니겠지.

  "하지만 초콜릿을 먹으면 뭔가 변형이 일어난다는 거 말고는 알려진 게 없잖아. 죽는지, 사라지는지, 아니면 뭐 거북이라도 되는 건지……."
  "거북? 거북이라고?"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수족관 안의 거북이를 바라보며 말했는데, 준섭은 그것이 자신을 향한 위협이나 되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그리고 앞주머니를 엉정벙정 더듬더니 구겨진 담배갑을 꺼내 쥐고는 한 개비 꺼내 문다.

  "담배 피우지 마. 마법사 주제에 목 상하면 영창은 뭘로 할래?"
  "하, 거북이라…… 그래 거북이일 지도 모를 일이지. 아, 씨발, 정말 돌아 버리겠다. 희원 누나가 그런 짓을 하다니."

  제길. 준섭이 욕지기를 뱉었다. 하긴, 너도 희원 누나를 꽤 좋아했지. 나는 웃었다.
  마법사는 그렇게 수가 많지 않다. 마법사라는 단어에 관해 구구절절한 정의까지 내릴 생각은 없지만 일단 '초콜릿을 먹으면 큰 일을 당하는' 우리 종족에 한정 짓는다면 한국땅에 사는 마법사는 내가 아는 한 백 명이 채 안 될 것이다. 희원 누나와 나와 준섭은 그 백 명이 안 되는 한국 마법사 소속이다. 또래인데다 마침 어린 시절 살던 곳이 가까웠던 탓에 어린 시절부터 친근하게 지내 왔고 누나가 서울로 대학을 간 후 두어 해 격차가 진 것을 제외하자면 아직 오래도록 헤어져 본 기억이 없다.
  그런 희원 누나가 초콜릿을 먹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디에 가서 무엇이 된 건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희원 누나가 초콜릿을 먹었을 때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라고 보고된 모양이니까.

  "그럼, 누나가 초콜릿 먹은 건 어떻게들 알았대?"

  내가 묻자,

  "참 빨리도 묻는다. 너도 알고 온 거 아냐? 누나 유서가 협회 앞으로 배달 됐다고. 젠장."

  내가 이 여자 언젠가는 일 칠 줄 알았어, 라고 준섭이 말했다. 그야 그렇지. 희원 누나가 조용히 여생을 즐긴다든가 하는 건 상상도 안 되거든. 그것보다는 어디서 번지 점프라도 하다가 품고 있는 줄을 뚝 끊어 본다든지 헬리콥터에서 뛰어 내린다든지 하는 쪽이 더 현실성 있지.

  "웃을 일이 아냐. 너, 그 누나 그렇게 좋아해 놓고 웃음이 나오냐?"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 이제와서 뭘 어쩌겠어?"
  "아아."

  그렇지.
  준섭은 목이 타는 것처럼 담배를 빨아 댔다. 연기가 막 자란 덤불처럼 솟아 그의 이마를 건드린다. 준섭은 초조해 보였다. 어쩔 줄 몰라 소파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반복하더니 괜히 수족관 유리에 대고 담배갑을 집어 던진다.

  "어디로 간 거야, 대체! 제기랄!"
  "그거야 아무도 모르지. 마법사가 제 아무리 천기를 읽는 법칙까지 안다고 해도, 초콜릿 먹고 사라진 마법사 찾는 법칙은 없으니까. 아, 마법사 명부에서는 벌써 지워졌지? 누나 이름."
  "……후우."

  답이 없다는 건 긍정이겠지. 나는 쓰게 웃었다.

  "어쩔 수 없잖아. 옛날부터 그랬어. 희원 누나 인생에 참견할 수 있는 건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구."

  가수 누가 3집 앨범을 낸 기념으로 지망 대학을 바꾼다든지, 정치인 누가 탈당한 기념으로 여행을 간다든지, 혹은 남미 어느 소도시에서 열차 탈선 사고가 일어나 7명이 다친 것을 애도하는 뜻에서 7일간 줄넘기를 700개씩 한다든지. 희원 누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희원 누나가 좋았다.

  "유선이 너 말야."
  "응."
  "너 누나 좋아한댔지?"

  대놓고 물어 오는 말에 답을 해야 하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섭은 삼분지 일 정도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왜?"
  "왜라니? 왜 같은 게 있냐, 애초에?"
  "그래도 말야. 처음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 있을 거 아냐."
  "그게……. 글쎄, 양치질할 때 양치컵을 쓰지 않아서 였던가."
  "그게 뭐냐?"

  언제더라. 또래의 마법사끼리 모여서 술을 마시다가 차가 끊긴 김에 모두들 그녀의 집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던 것이. 여자 둘에 남자 셋, 좁은 방에 어깨를 부비며 앉아 맥주며 소주며 가리지 않고 마셔대고 남은 음식을 햄이든 김이든 참치든 오이 호박 양배추든 마구 먹어 치웠다. 적당히 새벽녘에 차곡차곡 쌓여 잠이 들었다가 낮이 되어서야 정신이 들었는데 두 사내 녀석을 구겨 두었던 작은 방 문을 빠끔 열고 그녀가 소리 치던 것을 기억한다.

  [안 일어날 거야? 씻으려면 저쪽 문이야. 혹시 새 칫솔 필요하면 이야기하고.]

  그리고도 한참 만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로 기어 들어갔다가 문 앞에서 숙취로 눈 앞이 흐려져 주저 앉은 나를 사뿐 뛰어 넘어, 그녀가 먼저 화장실로 들어섰다. 입에 칫솔을 문 채로, 나 입 헹구고, 하고 말했다. 단발머리 끄트머리가 찰랑거려서 끝에 치약 거품이 묻었다. 들어서자 마자 문을 닫지도 않고 세면대에 힘차게 입에 머금은 치약을 내뱉더니 비누로 꼼꼼하게 손을 닦고 그 손으로 물을 받아 입을 헹궜던 것이다. 바로 곁에 벅스 바니가 그려진 분홍색 양치컵이 놓여 있는데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누나, 양치컵 안 써요?]

  물었더니 입에 막 머금은 물을 탁 뱉어 내고 뒤를 흘깃 돌아 본다. 속눈썹을 붙이지 않은 왼쪽 눈이 할끔 일그러지면서 잔 주름을 만들었다. 눈썹 끝을 슬쩍 들어 올려 주름을 만드는 것은 그녀가 말할 때의 버릇이었다.

  [컵, 더럽잖아.]
  [손이 더 더럽지 않아? 세균 덩어리라구.]

  그러자 그녀는 막 닦아 내어 유난히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입술 끝에 치약 거품이 남아 있었다. 다시 물을 틀어 입가를 닦고 그 김에 세수도 다시 한 번 한 후에 돌아서서 새 수건을 꺼낸다. 병아리 날개 색깔 수건으로 얼굴을, 드러난 목덜미까지 두드려 닦은 다음에야 그녀는 말했다.

  [나는 내 손을 믿어. 똑같이 세균투성인데 내 손보다 컵을 믿는다는 게 어쩐지 웃기지 않니?]

  '어쩐지.'
  그것도 희원 누나의 말버릇이었다. 그녀에게서 어쩐지 이게 더 좋지 않니, 라든가 어쩐지 이걸 하고 싶은 기분이야, 같은 말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누나. 나, 어쩐지 누나가 좋아요.]
  [눈꼽 떼고, 술 깨고 나서도 그렇게 이야기하면 나도 어쩐지 네가 좋을 지도 몰라.]

  나는 희원 누나를 좋아했다. 그녀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 뭔가 재미나는 걸 생각할 때면 입술 끝을 씹는 버릇, 새침하게 입술을 비죽이며 흰 이를 드러내는 웃음, 찡그려 잔주름을 잡는 눈매와 콧잔등, 앞머리가 몇 가닥 흘러 내린 이마, 상처가 많고 못생긴 손가락까지 좋아했다.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상체를 위로 들어올려 한 걸음 내 디디는 독특한 걸음, '어쩐지' 하고 서두를 꺼낸 다음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화려하고 재빠른 목소리로 '어쩐지 나, 이걸 해보고 싶어!' 하는 식의 말버릇, 그리고 그녀가 마법사라는 것마저도 나는 좋아했다.
  마법사는 모험가가 아니다. 타고난 모험가인 그녀가 타고난 마법사라는 것처럼 부조화한 것은 없을 테지만 희원 누나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더라는 이야기는 꿈에서도 들은 일이 없다. 희원 누나는 꿈 속에서조차 시원시원했고, 밝았고, 잘 웃고, 자주 모험을 벌였다. 지구 끝으로 갈 수 없으니까 서울 변두리까지 기차를 타고 나가 보고, 화산 폭발을 구경하러 갈 수는 없으니까 꼭 설악산에서 아침을 맞아 봐야 하고, 고래를 만져볼 수 없으니까 고등어라도 주물러야 한다는 식이다. 마법사는 모험가가 될 수 없다. 이 땅에서 마법사가 하는 일은 별이 뜨고 지고 해가 뜨고 지고 지구가 자전하고 태양을 공전하고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하는 일이었으니까. 모든 것은 지극한 신비이며, 또한 마법사에게는 인수분해만큼이나 지루한 공식이었다. 그렇다, 공식은 신비한 만큼 지루하다.

  [마법사한텐 지루할 뿐이지, 뭐. 이런이런 법칙에 따라 이런이런 주문을 영창하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된다……. 그런 거잖아.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눈 앞에서 꽃이 피어나고 구름이 흐르는 것은 다시 말할 수 없는 신비다. 바람의 굽이를 계산할 수 있고 해류를 타고 지나는 어류의 움직임에 관해 해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신비다. 그러나 그 모든 신비를 알고 있다는 것만큼 만물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마법사는 감탄하는 법을 쉽게 잊는 종족이며, 그렇기 때문에 좋은 모험가가 될 수 없다. 마법사는 파스테논 신전을 보고 기하학을 읽고 피라미드에서 돌 수를 예측해 내며 스핑크스의 제작법을 알아 내는 종족이다. 별이 지는 것을 보면 어느 인간의, 혹은 국가의 운명을 짚을 수 있고 민들레 꽃잎 수를 헤아려 날씨를 점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인수분해 공식처럼 마법사들의 공식에 의해 계산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수가 줄어드는 거야. 정말 멋 없지 않니? 상대를 보는 순간 그가 마법사 종족인지 아닌지 알 수 있고, 마법사 종족이라면 그가 어떤 아이를 낳을지 까지 순식간에 파악해 버린다는 거. 수상 관상 족상까지 법칙을 만들어 놓다니, 대체 나는 이 마법사라는 종족에 갖은 정이 떨어지고 만다, 얘.]
  [하지만 난 누나가 좋아요.]
  [내가 자식 운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 수명이 길지 않다는 걸 벌써 읽었으면서도?]
  [응. 그래도 나는 누나가 좋아요.]

  마법사는 모험가가 아니다. 하지만 희원 누나는 좋은 모험가였다. 그렇게 생각한다. 양치컵을 두고 힘차게 물을 틀어 자신의 맨손, 상처가 많고 못생긴 손가락과 운 나쁜 손금이 박힌 손바닥으로 수돗물을 받아 입을 헹구던 그녀를 좋아했다. 운 나쁜 눈썹, 귀엽지만 어쩐지 인상이 나빠 보이는 코와 뼈가 슬쩍 도드라져서 아무리 봐도 매끈하지 못한 뺨 근육을 마음껏 움직여 터뜨리는 웃음, 나는 희원 누나를 좋아했다. 그것은 준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 뭐, 나는 토 달 생각 없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상관 없겠지. 응?"

  새 담배를 꺼내 한 까치 뻑뻑 피워 대서는 온 방을 너구리굴로 만들어 놓고, 이내 준섭을 몸을 일으켜 서성거렸다. 방은 넓지 않고 탁자 위에는 거북이가 두어 마리 든 수족관 하나. 희원 누나가 한때 살았던 이 방은 이제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짐은 가지런하고 책장에는 끈으로 묶어 놓은 책 짐이 총 다섯 꾸러미. 옷장 문은 열린 채 세탁소 비닐이 씌워진 붉은 색 코트 하나가 덩그러니 걸려 있다. 나는 주위를 새삼 둘러 보았다. 준섭은 입에 물고 열심히 빨아 대던 담배를 다시 오른손 집게 손가락으로 쥐고 한참이나 벽을 보고 서 있었다.

  "재 떨어진다."
  "괜찮아. 카펫이고 뭐고 협회의 영감들이 싹 거둬갔으니까."
  "그래도 못 찾을 텐데. 초콜릿 먹은 마법사가 어떻게 되는지는 법칙도 없지?"
  "그래."
  "무능하네, 마법사라는 거."

  준섭은 내 말에 짜증을 부리는 것처럼 눈가를 잔뜩 찌푸리고, 그러나 입은 비죽이 웃음을 흘리는 채로 다가와 담배를 수족관 유리벽에 비벼 껐다.

  "무능하고말고. 법칙을 모르면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주제에 세상 모든 걸 아는 것처럼 재미 없고말고."
  "……미안."

  준섭의 말이 희원 누나의 말버릇이었으므로, 나는 고개를 떨궜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초콜릿을 먹은 희원 누나가 어디로 가 버린 것인지.

  "미안할 거 없어. 난, 울어야 하는지 웃어야 하는 지 모르겠다. 이런 것도 법칙이……. 법칙이 있으면 좋을 텐데. 제길."
  "미안해. 말리지 못해서."
  "그거 말리라는 법칙도 없어. 괜찮아. 아마 나였어도 못 말렸을 거다."

  간다, 라고 한쪽 손을 들어 보이고 나서 준섭은 수족관 유리벽에 들러 붙은 제 담뱃재를 툭툭 문질러 털었다. 손끝으로 유리벽을 툭툭 두드리며 씨익 웃는다. 거북이 세 마리가 일제히 목을 빼고 준섭의 손가락 쪽을 돌아 본다. 퐁, 퐁, 퐁, 신선한 물방울이 솟는 물레방아 곁에 돌멩이가 가득 차 있고 물은 거북들이 움직이는 대로 잔 물결을 잣는다. 준섭은 옆구리에 검은 가죽 가방을 끼고 방을 나간다. 나는 따라 일어서서 멍하니 그가 나간 방향으로 서 있었다.
  언젠가 그녀가 말했다.

  [덮인 상태의 양변기 뚜껑을 들어 올려 볼 정도의 용기만 있으면 되는 거야, 살아간다는 건.]

  그건 무슨 의미냐고 나는 묻고, 그녀는 귓등을 스쳐 목덜미에 닿은 곱슬머리 끝을 손가락으로 훼훼 감아 돌리면서 눈가에 잔주름을 잡았다. 웃는다, 흰 이가 드러나고 뺨이 일그러진다. 생기가 돌고 주위가 환해진다. 그녀는 타고난 마법사, 그러나 천성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강렬함이 그녀를 좋은 모험가로 자라게 했다. 나쁘지 않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좋을 대로 사는 것이다. 다른 마법사 어른들처럼 혀를 차고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의 장래, 마법사답지 않은 행동을 질책하고 걱정할 이유는 없다. 그녀는 그녀 좋을 대로 살아가고 있다. 지극히 모험가답게.

  [무슨 의미냐고? 그냥 말 그대로야. 고등학교 다닐 때 화장실이 양변기였거든. 그런데 이따금 말야, 꼭 한두 개씩 양변기 뚜껑이 내려가 있는 게 있었어.]
  [헤에?]
  [그거, 실제로 보면 상당히 놀란다구. 뚜껑에 발자국이 나 있다든지 핏자국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갖은 상상 하다 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란 말이지.]
  [으음, 누나, 여자 화장실에 관해서 조금은 환상 품고 싶은데.]
  [됐어, 됐어, 그런 거. 없어도 돼. 환상이라든가 그런 걸 품을 데는…… 다른 데에도 얼마든지. 응, 그렇지, 많이 있잖아?]

  아무렇게나 지껄이고는 입술을 비죽거리면서 기지개를 펴는데 찡그린 눈매며 입매, 뻗은 손 따위가 진저리 쳐지게 예뻐서 나는 말을 잃곤 했다. 나는, 희원 누나를 좋아했으니까. 마법사로 태어난 운명을 두고 불평하는 그녀를, 불평하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그녀를, 모험가가 되기 위해 '바람이 부니까 오늘은 반드시 만 오천 원짜리 퐁듀를!' 같은 규칙을 멋대로 정해 보는 그녀를. 나는 좋아했으니까.

  [여하튼 그렇게 뚜껑이 내려진 양변기를 보면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에 그걸 슬쩍 들춰 봐.]
  [우엑? 그런 짓 하지 말아요!]
  [아, 이건 정말 '그런 짓'이긴 한데 그래도 꼭 열어 보게 된단 말야. 잘못 열면 사흘은 식사를 못 할 정도로 끔찍한 걸 보게 되지만 운이 좋으면, 아무 것도 없을 때가 있거든. 그러니까…… 음, 잘은 모르지만…… 옷 갈아 입거나 그러려고 뚜껑을 닫고 앉았다든지 섰다든지 그러는 일 생기니까. 응.]

  사는 것도 그런 거야, 라고 또 밑도 끝도 없이 말한다. 마음에 드는지 고개까지 넉넉하게 끄덕여 가면서 만면에 미소를 머금는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기, 누나, 그건 용기라기 보단 그냥 호기심 아닐까요.

  [응, 그래? 그치만 좋잖아, 호기심이라도? 그 호기심이 고양일 죽여도, 그만한 리스크를 감당할 정도의 호기심이라면 꽤 목숨을 걸만 하다고 봐.]
  [양변기 뚜껑을 들어 올리는 거에 목숨 걸지 말아 줘요, 제발. 힘 빠지니까.]
  [아아, 물론이지. 내가 목숨을 걸 건 따로 정해 놨으니까.]

  그리고 희원 누나는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들었다. 내 눈 앞에서 팔락팔락 흔들고는, 천천히 껍질을 벗겼다.
  그래, 분명 그랬다. 그녀는 타고난 마법사였으나 또한 모험가였고, 모험가로 죽기를 바랐다. 그래, 분명 그랬다. 그녀는 타고난 모험가였으므로, 죽음을 각오한 만큼이나 살기를 바랐다. 나는 모험가이자 마법사인 그녀를 동경하는 마법사일 뿐이므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초콜릿에 감긴 금박을 벗겨내며 처음으로 손을 떨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양변기 뚜껑을 들어 올려 보는 거랑 똑 같은 거야, 모험은. 최악을 상정해 놓고 미친 짓을 하는 거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반드시 꼭 하는 거야.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말야, 아주 깊은 곳에서는, 가장 최선의 것이 나오기를 바라는 거라구. 난 그 괴상한 이중성이 마음에 들어. 죽음을 향해 달리는 것처럼 산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서 살기를 바라는, 그런 거 말야.]
  [나, 말리면 안 될까?]

  그녀는 답하지 않고, 파랗게 질린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마지막으로 웃었다. 초콜릿을 씹어 삼킨 후 우리들은 나란히 앉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전등불이 깜박이는 것은, 방 안에 존재하는 두 명의 마법사가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마법사가 흔들리면 계산에 착오가 생긴다. 틀리는 건 법칙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이므로.

  [……그러니까 모험가가 되는 마법사는 나 하나로 족해.]
  [마법사 사상 최초의, 마법사 출신 거북이군요.]
  [언제까지 말 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자.]

  온 몸이 등껍질과 녹색 피부로 덮이고 가만가만 느긋한 눈동자가 튀어 나오고 입술이 다른 빛깔로 물들어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듣고 듣고 들었다, 열심히. 그녀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굳어가는 입술로 지극히 평온하게.

  [양치컵이 더러우니까 버려 줘. 아, 뭐랄까, 난 만족해. 한 컵의 용기와 한 컵의 호기심, 그 정도면 딱 적당하잖아?]

  "만족한다고 말해서 다행이에요. 울 뻔 했으니까."

  수족관 안에서 유유히 걸음을 옮기는 거북이를 향해 나는 말했다. 거북은 나를 향해 주름 많은 목을 돌리고 뭉툭한 다리를 흔들어 보인다. 이런, 나는 그래도 울 것 같다. 좋아했다구요,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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