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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환 스타벅스 기행문

2004.12.29 21:4812.29

스타벅스 기행문을 쓸 생각이 없냐고 아이는 다른 아이에게 물었다. 아직 없다고 아이는 아이에게 대답했다. 그래도 한 번 써보지 그래, 아이는 말했다. 글쎄 한번 생각해 보지 뭐, 아이는 대답했다.


아이를 만난 건 ( )전의 일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그 날, 아이는 나에게 스타벅스 기행문을 써보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마치 여행을 하듯 서울 도심가의 스타벅스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앉아 글을 쓸만한 조용한 곳을 찾던 중, ‘일을 하려면 스타벅스가 좋다’고 누군가 귀뜸 했기 때문이다. 나는 신촌의 스타벅스에도 가보았고 종로와 인사동과 광화문과 홍대 앞과 이대 앞과 강남역과 대학로의 스타벅스도 가보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인사동이었다. 그곳 3층에서 글을 쓰기로 결심하는데 2주의 시간이 걸렸다. 많다면 많은 장소를 돌아다녔고, 길다면 긴 시간을 걸어다녔다. 과장을 약간 더한다면 짧은 기행문 하나를 정말 완성할 수 있었다.
“약간의 과장을 더한다면 짧은 기행문 하나를 정말 완성할 수 있을 걸” 이란 건 아이의 생각이었다. 우리는 인사동 스타벅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건 (    ) 전의 일이었다. 아이는 내게 스타벅스 기행문을 쓸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아이는 생각해 보라고 말했으며, 나는 거울처럼 미끄러운 탁자 표면을 곁눈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 앞의 스타벅스는 넓지만 글에 집중할 수 있을 만큼 조용한 ‘자신만의 공간’은 없다. 내부 전체가 종업원이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커피에 설탕 시럽이라도 넣을라치면 종업원의 호기심 어린 눈과 마주치게 된다. 신촌의 스타벅스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항상 줄을 서야하고 항상 자리가 없고 항상 시끄럽다. 아마 근처의 맥도날드 만큼이나 시끄러울 것이다. 대학로의 스타벅스는 경치가 좋지만 저녁이 되면 손님이 너무 많아 번잡한 것이 흠이다. 창가 자리는 의자가 빽빽하게 놓여 있어서 앉으려면 몸을 움츠려야 한다. 세종문화회관 옆의 스타벅스는 노숙자가 자주 출몰한다. 경복궁 쪽의 것은 회사원이 주로 오가는 곳이라 앉아서 글쓰기엔 ‘뻘쭘’하다.
가장 마음에 든 곳은 인사동의 스타벅스였다. 전 세계 수천개의 스타벅스 중 유일하게 ‘STAR BUCKS'가 아닌 한글간판 ’스타벅스‘가 걸려있는 그곳이다. 인사동이 한국의 주요 관광명소인 만큼 세계적인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는 것에 단단한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현수막까지 내걸고 반대 운동을 했다는데 나는 본적 없어 모르겠다. 한글 간판은 그 타협인 셈일까? 잘 모르겠다. 말했다시피 직접 본 것이 아니라 건너 건너 주워들은 이야기니까. 때문에 나는 소극적인 태도로 스타벅스 기행문을 쓰고 있다.


나는 인사동 스타벅스의 3층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주말이고, 저녁이었다. 손님이 무척 많았다. 이 시간엔 항상 사람이 많다. 그 이유는 모른다. 그 사실만 안다.
그때 나는 아이를 만났다. 검은 외투를 입고, 뿔테 안경을 쓰고, 군청색 가방을 맸다. 가방엔 ‘stop crack down'이라는 배지가 붙어있다. 이주 노동자의 강제 추방에 반대하는 배지라고, 아이는 설명했다. 아이가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누군지 어떻게 알았는지도 나는 모른다. 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만을 알뿐이다.
“스타벅스 기행문을 써보라니까.”
들뜬 목소리로 아이는 말한다. 나는 미끄러운 탁자 표면을 곁눈질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 대답이 시원치 않았는지 아이는 재차 말한다.
“작가 좋은 게 뭐야. 세상 모든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다는 거잖아.”
설득력 있는 말이다. 나는 옆자리의 두 여자를 본다. 인형만큼이나 예쁜 그들은 인형만큼이나 예쁜 표정으로 스콘을 베어먹는다. 반대 테이블의 두 여자는 남자 친구 이야기를 하며 미친 듯이 웃어댄다. 짱이야 짱 짱, 둘의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뒤에 앉은 커플은 스타벅스의 시끄럽고 더운 공기를 지겨워한다. 이제 막 매장에 들어온 여자는 빨간 목도리를 쓰다듬으며 빈자리를 찾는다. 그녀가 내 가방이 놓인 빈 의자를 힐끔거리는 것이 나는 못내 부담스럽다. 길거리의 연인은 스타벅스를 올려보며 누가 손님으로 앉아 있는 지를 궁금해한다. 수녀 한 명이 친한 성도의 팔짱을 끼고 길을 걷는다. 그녀는 방금 문구점에서 서예 도구를 샀다. 흰 모자를 쓴 청년이 그 뒤를 따라간다. 그는 판테라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멤버 중 한 명이 얼마 전 죽은 것을 슬퍼한다. 골목을 빠져나간 택시는 을지로 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그 택시를 피하던 아저씨는 중절모를 고쳐 쓰고는 친구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가나 아트센터 쪽으로 걸음을 서두른다.  모든 사람에겐 수십억개의 이야기가 있다. 수십억개의 이야기가 있는 사람 수십억 명이 뒤엉켜 있는 것이 이 세계이다. 세계는 사물들의 총합이 아니라 이야기의 총합이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말한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다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수십 억의 사람들이 모두 특별한 이야기가 되어 나의 펜에 들러붙는다니,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아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수십억개의 이야기들 중 한 두 개의 이야기만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이 있을 뿐이다. 모든 이야기를 다 특별하게 할 순 없다. 그건 작가의 권리이자 한계이다.
그러자 아이는 숨돌릴 틈 없이 되묻는다.
“너에겐 스타벅스 기행문을 특별하게 할 수 있는 욕망이 있어.”
욕망……욕망…… 욕망, 이라는 단어가 내 심장으로 쑤시고 들어오는 듯 했다.


예전에 한 작가는, 짝사랑하는 사람이 ‘나는 글쓰는 사람이 좋더라’ 라는 말을 한 것을 언뜻 들은 것만으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짝사랑한 사람을 짝사랑한 이야기를 썼고 결국 그 이야기를 책으로 냈으며,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책을 선물했다. 짝사랑한 사람은 작가에게 말했다. “내 애인에게도 주고 싶은데 한 권 만 더 줄래?” 어떤 작가는 자살을 하면 기분이 어떨지가 궁금해 자신이 자살하는 내용을 글로 썼다. 막상 글을 완성하고 나니 자살을 하면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아 그는 자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떤 작가는 달로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살아있는 동안 달로 여행을 갈 수 있을 정도로 과학 기술이 발달할 것 같지 않아, 달에 여행가는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한 이야기를 특별한 이야기로 만드는 행위의 동기는 욕망에서 출발하며 작가는 그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라고, 아이는 말했다.
글을 쏟아내고 싶어하는 욕망, 그것이 내가 글을 쓰게 했던가. 내 욕망이 나를 스타벅스로 이끌었던가. 종이 위에 활자로 남은 그 잉크들, 내가 욕망충족을 위해 그것들의 사사로운 값을 일일이 지불했던가.
“너는 욕망이 있으니까 스타벅스 기행문을 쓸 수 있을 거야.”
라고 아이는 말했다. 나는 오늘의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커피의 신맛과 단맛과 쓴맛과 떫은맛을 느꼈다. 그 맛의 어느 사이에 아이가 말한 욕망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욕망이 정말로 욕망의 가치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아이가 나에게 한 말을 종이 위에 옮겨보았다. 그 문장은 그럴 듯 했다. 그래서 스타벅스를 여행하게 된 이유를 썼고, 어느 스타벅스가 어떤가에 대해서도 썼다. 인사동 스타벅스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썼고, 그곳에서 아이를 만난 이야기도 썼다. 그래서 나는 스타벅스 기행문을 썼다.


기행문의 마무리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방으로 쳐들어온 어머니가 원고를 빼앗아가서는 말했다. 또 글을 쓰고 있구나, 자꾸 쓸데없는 짓을 하면 밥 안 준다. 아버지는 원고를 뺏으며 말했다. 이런 거 쓸 시간이 있으면 취직이나 하지 그러니. 동생은 내 원고를 들고 웃어댔다. 하하하 글이나 쓰고있는 한심한 형. 지나가던 행인은 내 원고를 빼앗으며 소리 질렀다. 이렇게 재미없는 소설은 살다 살다 처음이다. 다른 작가는 내 원고를 빼앗아가며 말했다. 팔리지 않는 글을 쓰는 소설가는 장르 문학계의 수치야. 담당 편집자는 내 글을 빼앗아가며 말했다. 재미있는 판타지 좀 쓰지 그래요, 그건 적어도 팔리기라도 하잖아. 평론가는 내 글을 빼앗아 들고는 중얼거렸다. 로비? 저번에 대충 읽어봤는데 별로 였어. 이번 글도 마찬가지겠지. 그들은 원고를 아이의 발치에 내던졌다. 아이는 원고를 조심스럽게 주워 나에게 건넸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정말로 글을 쓰게 하는 것이 욕망이야? 내가 글을 쓰는데는 욕망 이상의 것이 필요했어.”
고집도 필요했고 희생도 필요했고 고통도 필요했고 인내도 필요했어. 그런데 욕망만이 스타벅스 기행문의 해답인 건가? 그것만으로 스타벅스 기행문이 다 완성된단 말이야? 아이는 말이 없었다. 아이는 내가 오늘의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탁자의 매끄러운 표면을 곁눈질했다. 그곳엔 아이의 얼굴이 비치는 듯 했다. 아이는 대답했다.
“너는 작가잖아.”
그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는 검은 외투를 입고 뿔테 안경을 쓰고 있다. 아이는 가방을 쓰다듬었다. ‘stop crack down' 배지가 아이의 떨림을 따라 미묘하게 흔들렸다. 아이는 입을 열었다. 나는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작가가 좋다고 해서 작가가 됐어. 그 사람을 짝사랑한 이야기를 결국 책으로 내서 그 사람에게 선물했어.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 애인한테도 주고 싶다면서 한 권 더 달라고 그러더라. 죽고 싶었어. 하지만 진짜 죽을 순 없어서 자살하는 이야기를 글로 썼어. 막상 쓰고 나니 자살이란 게 너무 끔찍한 것 같아서 자살은 포기했어. 허탈한 마음에 밤하늘을 보는데 달이 보이더라. 그래서 달나라로 여행가는 상상을 했어. 그걸 또 글로 썼어. 그런데 집에선 도저히 써지지 않아서 어디 글 쓸 만한 곳이 없나 찾아다니다가, 스타벅스가 작업하기 좋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어. 그래서 서울 도심가의 스타벅스를 다 돌아다녔는데 인사동이 제일 좋더라. 요즘은 스타벅스 기행문을 쓰고 있어.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의 매끄러운 표면을 곁눈질 했다. 그곳엔 아이의 얼굴이 비치는 듯 했다. 스타벅스 기행문을 다 쓰면 어쩔 거야,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아, 잘 모르겠어, 아이는 더 이상 무심할 수 없을 만큼 무심하게 대답했다. 다른 욕망을 찾아가겠지, 아이는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작가잖아.”
그때의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인사동 스타벅스는 사람이 많지 않으면서도, 대학로처럼 전망이 좋다. 다른 손님도 나처럼 자신의 일에 열중 해 있기 때문에, 광화문의 스타벅스처럼 회사원이 지나가면서 힐끔거리는 일도 없었다. 신촌처럼 기다리는 줄이 길지도 않았다. 2층과 3층이 있는 덕택에, 이대 앞처럼 종업원과 눈이 마주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고 그곳에서 스타벅스 기행문을 썼다.
그 동안에도 나는 아이를 잊지 못했다. 거리를 내려다보면 모든 사람이 그 아이로 보였다. 모든 이야기가 그 아이의 이야기로 보였다. 수십억개의 이야기는 다른 수십억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다른 수십억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의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이며, 모두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스타벅스 기행문을 썼고, 서울의 많은 스타벅스들을 돌아다닌 후에야 그 말을 깨달았다. 나는 작가였고 나는 스타벅스 기행문을 쓸 수밖에 없었다.


스타벅스 기행문을 쓸 생각이 없느냐고 아이는 다른 아이에게 묻는다. 그럴 생각은 아직 없다고, 아이는 아이에게 대답한다. 그래도 한 번 생각해 볼게, 아이는 대답한다. 아이는 스타벅스 기행문을 쓴다. 나는 스타벅스 기행문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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