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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xk160 메시아의 몸

2007.12.29 22:5212.29

1.

별이 총총한 밤이었다.
잘려나간 밤의 다발에, 희끄무레한 빛의 점액이 가득 맺혀있었다. 창 너머로도 별들이 이렇게 잘 보이는 건 가로등이 꺼져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한 구역 전체가 가로등이 꺼져 있었고 냉장고도 돌아가지 않았다. 방은 후덥지근했다. 그는 지팡이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기로 했다.
공기가 식어가며 움직였다. 걷는 동안 가로등이 켜졌다. 안개 너머 집들의 불도 켜졌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이제 집에 가면 천장의 환풍기가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냉장고에 있던 과일은 더 이상 차갑지 않을 테고 빵에서는 쉰내가 나리라. 돌아가지 않는 게 낫겠다. 불이 켜진 거리는 위험할 것도 없으니. 그는 절뚝거리며 좀 더 걸었다. 모퉁이를 돌자 누군가가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 사람이 돌아보자 얼굴 반쪽만 가로등 빛에 번쩍거렸다. “날이 덥군요.” 그 사람은 말했다. 그럴 수밖에. 그 사람은 검정 양복을 입고 가을용 와이셔츠를 안에 껴입고 있다. “날이 덥군요, 스미스 씨.”
스미스는 오른손에 지팡이를 쥐고 왼쪽 다리에 걸린 무게의 반쯤을 기대었다. “저를 아십니까?” 그러자 그 사람이 마침내 스미스를 완전히 돌아보았다. 스미스는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딘의 장례식장에서 보았다. “아아.” 그리고 스미스는 몇 걸음 물러나고 싶은 것을 참았다. “페터 씨.”
“산책 중이셨습니까, 스미스 씨?” “네. 하지만 돌아가려고 생각중입니다.” “아직 냉장기 안은 엉망일 겁니다.” 페터가 말했다. “후덥지근한 공기도 몰아내야 할 테고요. 당신 집안 사람들에게 치워 둘 시간을 주셔야 합니다. 가로등이 켜지니 별들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반 시간 정도만 더 걸읍시다. 이 부근의 산책로는 훌륭하군요.” 페터는 으쓱하더니 먼저 걷기 시작했다. 스미스는 눈을 감았다 뜨고는 그저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팡이를 꽉 쥐었다.
페터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진통을 겪고 있는 내륙 무역에 대해 이야기했다. 페터는 그에 대해 강경하게, 그러나 열의없는 어조로 이야기했고, 사실 그 이야기만으로도 반 시진은 지나갔다. 그 때 즈음 해서는 스미스는 페터를 다소 다시 보게 되었고 몇주 전의 불쾌한 사건을 통해 페터를 바라보기보다는 오히려 어째서 페터같은 사람이 그런 불쾌한 짓을 했는가 놀라워하게 되었다. 그는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사실 궁금합니다, 페터 씨.” 그리고 스미스는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딘은 제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스미스 씨. 그래서 더욱 불쾌하고 이상했는지도 모르겠군요. 장례식장에서 당신의 행동은 여러 사람들에게 요 몇주동안 회자되었습니다. 당신의 평판은 물론이오, 유족들의 기분도 묘했을 것입니다.”
페터는 스미스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시신입니다, 스미스 씨.” 페터는 말했다. “시신에 입맞춤한 것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보통은 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스미스 씨, 당신은 그저 입맞춤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열린 관도 아니었습니다. 닫혀있는 관을 당신이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입술에 입술을 대었습니다.” “장례식 때는 아니었지만,” 페터가 말했다. “딘은 오래 앓다가 죽었지요. 임종 직후에 침대 곁에서 그의 젊은 딸이 그의 입술에 키스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금세 창백해졌습니다, 그 딸은, 자신이 죽은 자와 키스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따스했던 마음은 찰나에 싸늘해졌고 상처입었습니다.”
“그건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스미스가 말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저는 키스해서는 안 된단 말입니까?” “그것과는 다릅니다.” 스미스가 말했다. “딸은 죽은 자에게 키스하려던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한 것입니다. 임종 시의 키스입니다, 이미 관에 넣어 장례식장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의 딸만큼 딘과 가까운 관계도 아닙니다.” “어지러운 변명입니다.” 페터가 말했다. “사실 잘못된 건 없지 않습니까.”
스미스는 골치가 아파졌다. 서로 마음을 상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야 한다, 그 점을 다 자란 신사에게 설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가로등이 다시 꺼졌다.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모양이다. 이 골목은 몹시 어둡다.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잠시 서 있어야 겠다. “저에 대해서는,” 페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기어나오는 것 같았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관습일 뿐입니다.” “무슨 관습 말입니까?” “저 자신의 관습입니다.” 페터는, 소문대로 이 신사가 어떤 비의적인 단체에라도 들어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아무리 저라고 해도, 아니 오히려 저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 오래 되었으니까요. 당신들에게는 전혀 오래된 것이 아니지만, 저에게는 말입니다. 영원과 똑같이 오래되었으니까요. 어떤 몸으로 다시 옮겨가든 그건 상관이 없다고 저는 저 자신에게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당신들의 관습에 익숙해져서는 안 되고, 어떤 몸으로 옮겨가든, 어떤 생애를 살게 되든, 그건 상관이 없다고 말입니다. 저는 그저 저 자신일 뿐이고 그게 전부라고 말입니다. 저는 우습게도 저만의 관습이 필요해지고 만 겁니다. 원래부터 저 자신이 무엇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이제는 그게 필요해지고 만 겁니다. 나는 이 몸들과 세계들에 반항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겁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난 것을 기념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나의 관습입니다. 스미스 씨, 아십니까? 두려운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신입니다. 도대체 시신이 입맞춤따위 상관할 것 같습니까?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할 것 같습니까? 당신들은 상관하는 척 하면서 시신을 여전히 이 세상에 매어두려고 하지만 말입니다.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것입니다. 죽음이라고는 없는 영원입니다. 당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시체의 산과 피의 계곡일 겁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것은 나무가 돋은 산과 송어가 뛰노는 계곡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똑같지요.”
페터가 말을 마친 직후에 가로등이 다시 깜박거렸다. 페터의 옆얼굴이 번쩍거렸는데, 스미스는 문득 피부와 거의 비슷한 색깔의 실밥이 지나간 자리를 본 것 같았다…… 페터는 금방 돌아보지 않았고, 가로등이 다 켜져서, 눈이 익숙해지고 나자 더 이상 이어붙인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페터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혹은 그의 입술이 삐걱거렸다. 스미스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시신에 입맞춤하는 것은……” 페터가 말했다. “오해받기 쉬운 일이기는 합니다. 이제 당신 집 쪽으로 돌아갈까요?” 페터는 왔던 길로 손가락질해 보이고는, 돌아서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십시오. 중세에 그런 짓을 했다가는 무슨 이단적인 의식으로 오인받기 십상이었을 겁니다. 성기가 잘리거나 등에 골이 파이고 살점이 뜯겨나가기도 할 겁니다. 물론 목이 잘릴 수도 있습니다. 고양이의 항문에는 입맞추어 본 적 없냐고 묻는 거지요. 또 말하자면 남색가로 여길 수도 있을 겁니다. 당신 말대로, 적당히 친하게 지냈을 뿐인 동성의 시신에 입술을 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시신에 탁월하게 매혹되는 것으로 여기는 자도 있을 겁니다. 어떤 자들은 기계로 환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써서 치료해주려 애쓰고, 또 어떤 자들은 시신을 놀랍도록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장치를 홍보하고, 시신의 성기능을 살아있는 몸과 유사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겠지요. 전쟁터에서라면 어떻습니까? 찢어진 손가락이나 내장에 입맞추는 나를 보면 그들은 스트레스에 미쳐버렸다거나, 배가 고프니 시신이라도 주워모으려 한다는 식으로 이해할 겁니다.” 페터의 억양이나 발음은 중간중간에 묘하게 변했다가 되돌아오곤 했다. 그 중에는 스미스가 아는 옛날식의 발음도 있었다. 어떤 단어는, 분명히 익숙한 단어인데, 짐작하기 어려운 다른 뜻으로 쓰는 것 같다. 스미스는 그와 몇 걸음 떨어져 걷고 있었다. 스미스는 페터를 내내 흘깃거리며 그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얼굴에서는 실밥같은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불이 갑자기 켜지는 순간 먼지 따위를 잘못 볼 수는 있었을 것이다. 순식간에 다시 찾아온 어둠이 주었던 공포가, 불이 켜지는 순간 의미의 잔상으로 남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왜 그렇게까지 공포를 느꼈던가? 단순히 다시 정전이 되었다고 해서? 무슨 목소리라도 들었던가? 속삭이며 어둠에서 기어나오는 듯한 목소리를. 희미한 생각에 잠겨 있느라 스미스의 걸음이 느려졌다. 페터가 조금 앞으로 나서서 걷게 되었다. 그는 모자 꼭대기로부터 비스듬히 가로등 불빛을, 왼쪽 어깨로부터는 건너편 집 지붕 아래에서 새어나오는 아주 샛노란 빛의 여운을 받고 있었고, 목과 머리를 이어붙인 살가죽 색깔의 실밥 자국이 선명했고, 손바닥부터 손등까지 단단하게 박음질이 되어 있었고, 아래턱과 윗턱 사이의 촘촘한 바늘땀이 그가 입을 벌리고 닫을 빼마다 오그라들고 꽉 여미어졌다. 페터가 돌아보았는데, 그의 눈동자를 세 조각으로 가르며 흰 실밥이 조금씩 삐져나와 있었고 자세히 보면 조각마다 지름이 다르고 색깔이 조금씩 달랐다. “반가웠습니다.” 페터가 말했다.
스미스는 그를 바라보았다. 걸음이 빠른 편인지 페터는 이미 저만치 앞에 서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모자 챙을 살짝 들어올려 인사하는 흉내를 내는 것은 알아볼 만 했다. “반가웠습니다.” 스미스가 답했다. “또 뵙죠.” “또 뵙겠습니다. 그런데,” 페터가 말했다. “절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아뇨, 이제 확실히 기억합니다.” 스미스가 답하며 미소지어보였다. 그러나 그 거리에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페터의 표정도 스미스에게 잘 보이지 않았다. 페터가 자신의 관자놀이 밑으로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것 정도만 보였을 뿐이다. 그 부분의 살은 아주 말랑말랑했지만 붉은 얼룩이 있었고, 아주 가늘게 긁힌 듯한 섬세한 상처들이 있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페터는 입술만 움직여서 말하는 듯 했다.
“이 부분입니다, 그것을 바로 여기에 썼습니다. 가끔은 아주 말랑말랑한 살이 필요합니다. 그건 말랑하고 보드라운 만큼 쉽게 상하기 때문입니다. 상처라든가 부어오른 자국을 흉하지 않게 연출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여린 살점은 아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안고 있었을 때도 이 몸을 썼는데요, 이 몸 이 얼굴 그대로였다 이 말씀입니다.”
스미스가 작별의 인사로 손을 약간 들어보였다. 페터는 한동안 스미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리 양 쪽에서 엇갈려 비쳐드는 빛들 때문에 그의 몸은 녹이 슨 듯이 보였다. “그래요.” 하고 페터는 답했다.
그 목소리는 오래 남았다. 뼛속까지. 스미스는 절뚝거리며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몸 속이 으슬으슬했다. 생각보다 늦지 않았다. 여자들은 청소를 다 끝낸 것 같다. 집안은 쾌적했다. 환풍기는 잘 돌아가고 있다. 자켓을 벗어던져놓고 스미스는 소파에 주저앉아버렸다.
부인이 땀을 닦아주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스미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무 오래 걸었나봐. 참, 전기가 왔다갔다했지?” “네?” “정전 말이야. 좋은 동네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시절도 나아졌고…… 이런 건 여전히 엉망이군.” “네. 아까 정전이 되었어요.” 부인이 웃음지었다. “어떻게 아셨나요? 거기서도 문제가 있었나요? 네, 당신이 나가 계신 동안 잠시 전기가 나갔어요. 하지만 금방 켜졌어요. 몇 분도 걸리지 않았지요. 장례식장은 더웠겠지요. 많이 피곤하셨나봐요. 다녀오시자마자 이렇게 털썩 주저앉으시고는. 딘의 아내 되시는 분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딸이 아직 어릴 텐데요.” “아아……” 스미스는 눈을 깜박거렸다. “아내는 침착해. 딸도 괜찮아 보이고.” “다시 한번 뵐 수 있었나요?” “응. 열린 관을 썼더군. 완전히 열린 것은 아니고, 상반신만……” 스미스는 창 밖을 보았다. 햇빛이 발코니의 바닥과 벽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교회에서부터 교구민 묘지까지 가서, 교구민 묘지에서부터 다시 저 날씨를 뚫고 걸어 왔으니. 스미스는 몸을 일으켰다.
스미스가 피곤해 했기 때문에, 그 날은 저녁을 조금 일찍 먹기로 했다. 스미스는 그날 일찍 잠자리에 들 예정이었다. 배가 부른 채로는 편안하게 잠들 수 없으리라. 아내는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두 번째 임신인데, 또 유산할 지도 모른다. 오늘 그의 친한 친구의 장례식에도 함께 가지 못한 것이다. 스미스는 저녁을 먹고 나서는 집에서 입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서재로 가는 도중에 그는 딘의 관을 생각했다. 관 뚜껑은 상반신 덮개와 하반신 덮개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상반신 부분만 열어놓아 얼굴을 보게 했다. 사자의 얼굴은 희었고 관 안쪽은 검붉은 벨벳으로 되어 있었다. 벨벳 털은 산호처럼 딘의 몸 주변에 자라나 있었다. 윤기 흐르는 털들이 사자의 얼굴 주위로 일렁거렸다. 우묵한 검은 관 속에서 딘의 얼굴은 문상객들의 그림자마다 가볍게 흔들렸다.
사자의 몸 위로 고개를 숙이며 스미스는 어떤 냄새를 맡았다. 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었으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냄새는 그렇게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몇 년 전의 그 날 훨씬 강렬하게 맡았던 그런 것이다. 말랑말랑하고 미끌미끌한 살점이 풍기는 냄새. 뱃속에서부터 이미 썩어있었던 것 같은 기괴한 냄새로, 스미스의 마음 속에는 이런 냄새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전형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자 딘의 얼굴이 자신의 그림자 아래 문득 겹치며, 그 모공들이 표면인 양 반짝거리며 저 수면 아래를 가린 채, 거기에 있는 죽은 아이와 곧 생길 아들과 자신의 아버지로서의 존재와 수많은 조상들의 고리를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짐작케끔 했던 것이다……
묘지에서 매장하기 전에는 물론 덮개를 닫았는데 - 햇빛 아래 들어올리자, 위아래 덮개의 틈이 희미하게 하얗게 드러났다 - 스미스는 움찔했다. “어서 들어요.” 부인이 권했다. 스미스는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괜찮아?” 스미스는 고기를 잘게 썰었다. “괜찮아요.” 부인은 대답했다. 그녀는 한 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스미스는 끄덕거렸다.


2.


비참한 생애다.
웨일스는 생각했다. 그는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서 그 애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애는 머리털도 가늘었고 살결도 보드라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희고 끈적거리는 것이 그 애의 입 안에 목구멍까지 분사되었고 삼키지 못해서 입가까지 넘쳐흘렀다. 다리를 벌린 사이로 몇 번이나 분비물을 내놓았고 허벅지가 젖어들었다. 뱃속 끝까지 들어왔던 것이 몸 밖으로 나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엉덩이의 구멍이 움찔거리면서 받아들였던 것을 내놓았다. 하지만 무슨 약이라도 먹인 것 같았다. 피로에 지쳐 나가떨어져 짧은 잠을 자다가도,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 그 애는 잠을 깨고, 뺨이 붉어지고, 몸을 뒤틀며 신음하고 온 호홉으로 앙탈하기 시작한다. 울면서 그 애는 그리고 또 그런 과정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뱃속 끝까지 넣어달라고, 자신의 몸 속에 퍼부어달라고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 핏속의 욕망 하나하나를 채워달라고 갈구한다. 그리고 처넣어지고, 마침내 끝까지 이르면, 구멍에서 체액이 흘러나오고.
웨일스는 방 구석에서 그저 허벅지께를 탁탁 두드리면서 보고 있었다. 웨일스. 이것의 이름은 웨일스. 이 몸의 이름은 웨일스다.
그는 이 몸이 싫증나면 다른 시신을 주워모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이든 좋다. 가끔 접합이 잘 맞지 않을 때도 있지만, 예컨대 눈동자의 색을 조절하기 위해서 이것 저것 섞어올 경우, 가끔은 예상 외의 이상한 색이 되어버리거나 귀찮게도 한순간 실명해버릴 때도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조금 쉬면서 기다리면 결국 어두침침하게나마 시야가 트이는 것이다. 타협하지 못할 살점들은 없다.
살점들, 저 애처럼. 웨일스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비늘 다섯 개가 손가락 끝에 가지런히 박혀 있었다.
웨일스는 자기 코 밑에 손을 대어 본다. 물론 그것은 구멍 모양으로 생겨 있다. 시커멓고  잘 보면 콧털도 달려 있으니까. 이 콧털들을 달아놓는 건 섬세한 작업이었다. 정 하고 싶으면 킁킁대는 소리를 낼 수도 있다. 그는 자기 입을 만져본다. 정 하고 싶다면 무엇이든 입에 넣을 수도 있다. 달아 놓았다가 나중에 버리면 되니까. 아니면 웨일스 자신의 몸의 일부로 재조립해넣으려면 못 할 바도 아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렇게 할 수 있다. 가슴의 유두 대신 동전을 달 수도 있는 노릇이지. 들키면 더 이상 ‘웨일스’ 행세는 어렵겠지만.
이런 몸으로 그는 한스 폰 어쩌고가 들어가는 이름으로 가발을 써 보기도 한다. 지구니 목성이니 하는 걸 매일 살펴야 하는 일도 해 보았는데, 후자는 속여야 하는 게 더 많아서, 가발 쓴 폰이나 드 씨들은 옷을 잘 갖춰입고 있나 슥 훑어보고 끝이었는데 별 사이로 항해하는 인간들은 그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의 가슴이라는 부분에 방사선이란 것을 쏘아 사진을 현상해놓고 이놈이 사실은 숨어든 외계인 아니냐며 혼비백산해버린다. 그 후부터 비로소 웨일스는 내장이니 뼈같은 것을 만들려고 해 보았는데, 웨일스는 처음 내장을 만들어서 걸치고 다녔다가 여러 사람을 기절시켰고 결국 도망쳐야 했다.
하긴 한스 폰 어쩌고일 때도 그랬다. 한스 폰 어쩌고 씨는 방금 여기 있었는데 금방 저기도 있거나, 매우 젊어보이는데도 상대의 아주 어릴 때 친구에 대해 기억하고 있거나 상대가 아주 늙었을 때의 일들을 지껄여 대곤 했다. 더 이상 한스 폰 어쩌고의 몸을 유지하기가 귀찮아졌을 때 즈음에야 그는 시계가 뭐하는 물건인지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는 지극히 귀찮아졌다. 매 순간 그들을 따라 이동하면서, 때마다 몸을 재조립해주어야 했다…… 망할 주름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머리카락도 지워버리고 나중에는 내장 색깔까지 바꾸어야 했다. 오기가 붙어서 몇 번쯤 그런 식으로 재조립해보긴 했지만, 귀찮은 나머지 그는 주로 요절하거나 신비롭게 남기로 했다.
이러니까 귀찮다고. 이번엔 못이랑 나무로 의자나 만들걸. 철덩어리의 절걱거리는 소리도 좋지. 증기 덩어리도 나쁘지 않았을텐데. 어쩌다 이런 것들이나 쫓아다니게 되었을까. 웨일스는 허벅지께를 탁탁 두드렸다. 어린애가 깨어나버린 것이다. 웨일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린애에게 다가갔다. 시계는 그래도 알기 쉬웠다. 하지만 내장이라.
아이를 안고 얼러주었지만 표정이 좋지 않았다. 웨일스는 몸의 온도를 높였다. 아이 입에 우유병 꼭지도 물려주었다. 기저귀를 확인하고 나서 웨일스는 아이를 도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그 모양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쌕쌕 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에는 코에 난 구멍으로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밖에 살 수 없도록 결정지어져 있다. 웨일스는 생각했다. 지독한 욕망, 넣어지고 흘러 나와야만 하는 것들, 오직 그것들을 위해 연동하는 과정, 빠짐없이 정해져 있다. 몸에 뚫린 구멍들로 철저하게 정해져 있다. 약을 먹이다시피, 그러니까 구멍을 뚫어놓고, 너는 이렇게 살아라, 하고 마치 드릴이 달린 조그만 손기계는 구멍을 뚫기 위한 것이고 구멍밖에 뚫을 수 없다는 식으로 정해버린 것이다.
아이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 웨일스는 가만히 걸터앉아있다. 그는 아기가 뒤척거리는 것을 본다. 자신들의 구조에 대해 이해하려 애쓰는 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의 자신들의 몸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는 다음과 같다. 살점 한 조각의 증식 즉 자기 복제, 그리고 살점 한 조각 한 조각은 각각 저 애와 거의 동일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창자 시계. 구멍으로 이리저리 관통된 구조 말이다. 금방 울음을 터뜨리며 정시를 알리는.
작은 살점 조각들이 결집해서 큰 것이 되고 더 큰 것이 되는…… 그러한 해석대로라면 웨일즈에게 그것은 무서운 질병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아무리 다른 시신 조각을 붙여넣으려 해도, 순식간에 그 살점이 전신으로 번져버려서, 그 몸뚱아리로밖에 살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 살점이 그를 지배하는 것이다. 좋을대로 다닐 수도 없어서, 얽히고 설킨 구멍들에 꿰인 채 실에 걸린 빨래처럼 째각째각 실려갈 것이다…… 그래, 그러고 보면 괜찮은 분석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또 깨어났다. 웨일스는 다가서 눈을 보았다. 찌그러진 것 같은 몰골이다.
웨일스는 이 아이가 좀 더 자랄 때까지 따라다닐 생각이다. 수없이 많은 아이들을 키웠다. 그러느라 웨일스는 이런 귀찮은 몸으로 있는 것이니 말이다.

                                      *

웨일스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 찡그린 몰골 - 벌어진 입과 비틀거리는 입매를. 그것을 따라서 웨일스도 자기 입을 잠시 훈련시켜 보았다. “힘드니?” 하고 그는 말을 걸었다.
아이들에게는 말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그는 아이를 돌려눕혔다. 머리가 납작해지면 좋지 않다고 한다. “마음에 들어?” 그는 말했다.
이 아이들은 증오를 배운다. 그렇게밖에 태어나지 못한다. 그렇지 않다면 구멍들 뿐이겠지. 그들은 강간자에 대한 증오를 배운다. 자기 몸에 대한 순수하고 강렬한 증오를. 그 증오로 인해서만 자신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구멍들에 대한 증오를. 빨간 입을 벌리고 우는 소리에는 구멍에서 울려퍼지는, 지독하고 지긋지긋한 썩은 욕망과 함께, 그 욕망을 몸의 썩은 구멍들로부터 쥐어짜 되토해놓으려는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 웨일스는 가끔은 이 아이들에게 우유를 주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숨구멍을 막아주어야 할 것 같다. 들쑤시듯 쌕쌕거리는 소리를.
봐요 칭엔, 내 아이가 태어나는 걸. 내가 아니라 내 아이지. 정액이 쏟아부어지고 머리카락도 몸도 그렇게 더럽혀진 채로. 우리는 원래 더럽게 태어나. 닦아낼 재간이 없지. 몸을 지워버리면 우리는 아예 없어져버리니까.
가슴에 달린 두 개의 종양 덩어리가 덜렁거렸다. 온 몸의 구멍이 움찔거렸고 그 핏덩어리와 더러운 고깃덩어리를 싸버렸다. 웨일스는 아이를 무릎으로 데리고 왔다. 그는 아이의 침을 닦아주었다. 아이가 쩝쩝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야기를 들려주마,” 그는 말했다. 아이가 관자놀이에 웨일스의 손마디를 느끼고는 찡그렸다. 하지만 온도를 높이고 손모양을 부드럽게 해서 쓰다듬자 곧 누그러졌다. 비참한 생애. 웨일스는 배웠던 대로 웃어보았다. 그러다가 한번 더 엉덩이를 툭툭 쳐 주고 가슴에 안았다. “이야기를 들려주마.”
“예전에 태양신이 있었단다.” 웨일스는 말했다. “그는 눈이 먼 신이었단다. 눈이 먼 빛의 신이었어. 하지만 그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단다. 빛이 있으면 뭐든 보일 거라고 말이야. 그는 어둠을 증오했고 빛을 보고 싶어했단다. 늘 그리워했단다. 빛의 얼굴을 말이다. 우리는 이제는 알 수 있다. 그러려면 그는 자신의 심장을 파내야 했다고 말이다. 그의 심장이 빛이었으니까. 그는 빛의 심장을 지닌 눈먼 태양신이었단다. 하지만 빛의 심장을 꺼내면 그는 태양신으로서의 힘을 잃고 심장은 빛을 잃겠지, 그도 그렇게 생각했단다. 그래서 그는 심장을 꺼내지 않았다. 그는 조금씩 몸을 변형시켰다. 그의 눈들은 안으로 파고들어갔고 눈동자는 살점과 허무를 뚫으며 전진했다. 그는 그런 동물이 되려고 했다. 심장을 향해 움푹 파고들어간 수천개의 눈을 가진 동물. 그는 그런 식으로 진화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육신이라고는 심장이 전부였고 심장에 수천개의 구멍이 뚫린 채 그는 힘을 잃어버렸단다. 심장에 뿌리박힌 수천개의 눈을 심장 속으로 되돌려보냈던 그는. 자신의 몸이라곤 그것 뿐이었는데. 그리고 그 눈들은 원래부터 멀어있었던 것을. 그것이 빛의 심장에 뿌리내리는 대가였으니까. 그래서 태양신은 사라졌고 심장은 빛을 잃었지 - 구멍들은 꽉 찼다, 어둠으로, 어둠이 구멍들에서 새어나왔다, 아무데서도 오지 않은 그것이, 새어나오고 흘러나가 태양신을, 심장의 윤곽을, 빛의 줄기를 하나하나 감싸고 눈동자들을 눈물을 채웠고 마침내 수천개의 눈들을 감겨 주었단다.
그래서 마침내 그 모든 일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 되었단다. 빛줄기, 눈동자, 빛의 심장, 태양신, 눈물, 그 자신도 알지 못했던 눈물, 그런 것들이.
영원히 고동치게 되었단다.“ 웨일스는 말을 맺었다.
웨일스는 관자놀이에서 실밥을 하나 빼냈다. 눈가가 늘어져서 주름이 생긴 것처럼 되었다. 그는 다른 쪽 관자놀이에도 마찬가리로 처리해주었다. 그는 아이가 실눈을 뜨고 웨일스를 바라보고 있는 걸 눈치챘다. 아이는 다시 볼살에 밀리다시피해서 눈을 감아버렸다. 웨일스는 곡식을 갈기 시작했다. 이제 이 애는 건더기가 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

                                      *

  아이가 웨일스를 바라보았다. 웨일스는 눈을 맞추고 있었다. 아이가 몸을 뒤집을 듯 하더니 찡그렸다. 그것은 ‘아부’라고 하는 듯 했다. 그것은 몸을 뒤집고 싶을 때도, 배게를 원할 때도, 입에 넣을 것을 원할 때도, 똥을 쌌을 때도 ‘아부’라고 한다. 그러다가 웨일스와 눈이 마주치면 한동안 시선을 맞댄 채 입을 쪼물거린다. 웨일스는 거의 다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몬,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이건 모두 당신이 가르친 말이야, 당신을 증오해, 머리가 타버릴 것 같이, 하지만 이건 모두 당신이 가르친 말이야, 나는 강해지고 싶어, 당신을 증오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하지만 이건 모두 당신이 가르친 말이야, 사랑한다는 것, 증오한다는 것, 강해진다는 것, 당신이 가르친 말, 말들이 새겨둔 욕망, 새겨진 곳을 따라 흐르는 피처럼, 가로놓여있는 수로들처럼, 욕망은 도시, 아몬, 도시의 하수구와 배수로, 마음은 물, 이 피는 액체일 뿐이라서, 새겨진 수로들을 따라서, 당신을 증오해, 증오해, 그런데 이 증오는 당신의 것이라서, 내 피는 맑고 투명하고 아무것도 담지 못하고 어디로 가든 상관이 없지, 그 뿐, 그 뿐.
웨일스는 손을 닦는다. 한스, 이봐 한스, 그래 나는 시체가 두려워.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 아이가 ‘아부’하고 소리를 낸다. “괜찮아,” 웨일스는 아이를 들어올렸다.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 피도 나의 피란다. 너희들의 피는 맑지 않아. 가슴에 종양 덩어리가 달린 그런 자들은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지. 내가 가장 먼저 있었단다. 누구보다 무엇보다도 먼저 말이다. 내가 퍼져나가 모든 것이 있게 했지. 나의 피가 사방으로 흘러나갔단다. 가장 먼 과거에까지도. 너희들은 수천개의 수로를 따라 거슬러올라 나를 찾아올 테지만 나는 거기에는 없을 거란다.”
그는 아이가 고개를 모로 꼬면서 침을 흘리는 걸 보았다. 그의 옷자락에 침이 묻었다가 그대로 사라졌다. 웨일스는 아직도 천을 잘 지어내지 못한다. 웨일스는 눈 근처의 실밥을 만져보았다. 아이 때문에 표정을 자주 썼더니 튀어나온 것 같다. 그는 적당히 눌러서 가다듬어주었다. 수염을 몇 줄기만 더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충분히 닮은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 자는 턱 밑에 수염이 더 굽슬굽슬하고 부숭부숭하단 말이다. 체취나 입냄새도 비슷하게 맞춘 것 같은데. 아기가 옹알대는 소리를 냈다. “그래,” 웨일스가 말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불러주는구나.” 웨일스는 아기 뺨에 입술을 대었다가 떼었다. 그리고 그 애를 침대에 앉혀놓고, 아이가 빤히 바라보는 가운데, 멀찍이 구석 의자에 가서 앉았다. 아이가 찡그리며 좀 더 명확한 발음으로 웅얼거렸다.
웨일스는 자신의 멀어버린 눈들 중 하나가 마침내 무척 탐욕스럽게 욕망하는 것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그 혈관을 타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3.

길렌은 물가에 앉아있었다. 숲 속의 작은 개울이다. 그저 수초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뿐이다. 얼굴이 희미하게 비치기도 한다. 그 얼굴에 수초들이 얽혀있는 것은 오싹하게 보이기도 한다. 길렌은 쭈그리고 앉은 채 수초들이 일렁이는 것을 바라본다. “시체가 가라앉아 있는지도 몰라.” 그의 여자 친구는 말하곤 했다. “젊은 여자나 소녀의 시체 말이야!”
“뭐하고 있는 거냐?”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는 바람에 길렌은 깜짝 놀랐다. 그는 거의 한 발을 물에 담글 뻔 했다. 물 속으로라도 도망가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끈끈한, 용기라기보다는 궁지에 몰린 동물의 자각같은 것이 그를 붙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도 소용이 없으니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는 깨달음 말이다…… 여기까지 도망와서 도망에 실패하고 나자 자유를 얻는 것이다. 온 몸이 꿈틀거리며 분노에 차서 만끽하게 된다. 길렌은 돌아보았다. 숲 속은 고요하고 어두웠다. 검은 나뭇가지들이 그의 얼굴에 길다란 그림자를 드리웠고 마지막 황혼의 빛이 산 너머로 굴러떨어지며 개울의 표면에 종잇장같은 반향을 띄웠다가, 검게 젖어서 가라앉아버렸다. 그 마지막 빛을 어깨와 목 사이에, 지팡이를 잡은 장갑 낀 손에 받으며 그가 길렌 쪽으로 검은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장갑과 소매 사이로 바늘땀이 반짝거렸다.
“얘야, 길렌?” 길렌은 개울에서 고개를 들고 뒤를 돌아보았다. 버들잎 사이로 통통한 신사가 보였다. 봄날의 잔잔한 햇빛에 나뭇가지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버지.” 길렌이 스미스를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왜 그러고 있어?” 스미스가 다시 물었다. 그러나 길렌이 대답하지 않자 으쓱해보이고는 슬그머니 도로 별장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버렸다.
길렌은 천천히 개울 쪽으로 다시 돌아앉았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신경쓰지 않으려 애썼다. 숲은 고요했다. 별장까지는 걸어서 십오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선선한 오전, 좋은 시간이다. 지금쯤 어머니는 아는 사람들끼리 새로 마련한 도자기에 차라도 마시고 있을 것이다.
이건 길렌의 기분을 나아지게 해 주기 위한 여행이었던 셈이다. 길렌은 오기 싫다고 했지만, 스미스가 어머니와 상의해서 강행했다. 어리석은 짓이었던 셈이다. 스미스는 길렌이 그 여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미스는 모르겠지만, 별장도 이 숲도 길렌이 디아나를 데리고 왔던 곳이다. 디아나는 별장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숲과 작은 개울들을 좋아했다. “시체가 들어있을지도 몰라!” 그런 말을 하면서 낄낄대는 걸 좋아했다. 그런 소릴 할 때마다 길렌이 기분나빠했기 때문이다. 디아나는 길렌의 안색이 녹색으로 질리는 걸 보길 즐겼다. 그런 얘길 자꾸 들어야 작가는 글을 잘 쓸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변명하기도 했다. 작가란 자들은 원래 기괴한 걸 좋아하는 취미가 있지 않느냐고. 그래서 길렌이 더 기분나빠하는 거 같으면 그냥 까르르 웃으면서 길렌의 팔을 한 대 때리곤 했다. 그런 말을 했다고 정말로 이런 개울에 잠겨있을 리가 없지. 사람이 들어가 빠져 죽기엔 너무 작기도 해. 하지만 길렌은 수초들이 일렁거리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얼굴 위로. 약간 냄새가 나는 녹색 물에 창백하기 비친 자신의 얼굴 주위로.
수초들. 구불구불한 잎사귀들이 서로 건드렸다가 물결 혹은 물에 비친 그림자들에 뒤섞이는 것을 바라본다. 그런 것을 보면 기묘한 기억이 날 것도 같은데 역시 물이 다시 흐려지는 것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스미스는 길렌이 디아나가 묻힌 곳에 다녀오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기꺼운 마음으로 허락해주었을지도 모른다. 디아나는 정강이 아래로 내려오는 치마는 입기 귀찮아하는 여자였다. 당연하지. 늘 사람들 사이로 종종걸음쳐야했고 골목길을 뛸 일도 있었다. 늘 바빴다. 생전에 멈추어있는 몸은 보지 못했다. 며칠 후에야 소식을 들었기에 매장되는 장면도 보지 못했고 시신도 보지 못했다. 수초들. 그런데 죽었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떠올리면 그녀의 몸이 떠오른다. 반드시 알몸으로. 아직 알지도 못했던 부위들이 더 크게 떠오르는데- 시신에는 음영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몸의 부위들이 정면으로 드러나 있다. 옆모습, 앞모습, 뒷모습이 한 평면에 조합된 그림처럼. 말이 되지 않지만 말이 되는 모습이다. 수초들. 다리는 벌린 것 같기도 하고, 꾹 다문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길렌은 수면에 물에 담그어 보았다가 찌푸리며 털어냈다. 냄새나고, 다 썩은 듯이 미끄럳거리는 물덩어리일 뿐이다. “디아나.” 그는 죄책감을 털어내듯이 중얼거렸다. 수면이 떨리는 듯 하다가 부끄러움 때문에 잦아들었다.
숲은 고요했다. 수면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부드러운 실오라기같은 수초들 뿐.
어린 길렌은 누군가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아주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무서워 보이기도 했다. 큰 눈과 아직 덜 자란 눈썹 바로 위까지 고수머리가 미끄러져 내려와 있었다. 귀는 둥글었고 목에는 작은 점이 있었다. 그는 길렌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눈동자속의 홍채는 빛 때문에 작아져 있었지만 여전히 아주 정교하게 다듬어진 입구처럼 깨끗하게 뚫려있었다. 시선은 두 줄기 날카로운 빛처럼 길렌의 시선을 마주 뚫어 고정시켰다. 그것은 늘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특정한 장소에서 갑자기 슥 나타나거나, 어떨 때는 단순히 스쳐지나가기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에서 그것이 나타나는 장소는 늘 같았다. 그 판 앞에만 가면 더없이 또렷한 모습으로, 자신의 커다란 눈의 빛으로부터 바로 자기 자신의 얼굴을 영사하듯이 그렇게 빛처럼 그는 나타나곤 했다. 그 때의 무섭고도 애잔한 느낌. 어디에도 없는 형제를 가진 듯한 느낌. 어느날 길렌이 형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걸 보고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나, 맞아 얘야, 그게 너야.” 어느날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그게 너란다.” 그것은 얼마나 무서운 명령이었던가! 나중에 혼자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되어 아버지가 그의 방에 길쭉한 판을 따로 놓아준 후로, 그 판자에 비친 망령의 명령에 따라 단추를 끼우고 양말을 신으면서, 길렌은 얼마나 주눅이 들어 있었던가!
어떻게 이 모든 일을 잊고 있었을까? 수초들은 서로 건드리면서 그것들은 그녀 성기의 주름들을 간지럽혔다. 디아나는 모든 곳을 몸의 정면에 드러낸 채 잡풀 가득한 땅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신음 소리와 울음 소리가 들렸고 이상한 감정 상태 때문에 괴로워하던 길렌은 자신이 소리를 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의 다리 사이에서 희고 끈적거리는 것이 빠져나갔다. 그는 너무 흥분해 있었고 도무지 분비하길 멈출 수가 없었다. 허리가 들썩거렸고 침이 흘러나왔다…… 흘러나와서 그의 어린애같은 울음소리를 축축하게 적셔주었다…… 그는 자신의 남근에 의해서 강간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분은 너무 강하고 분비는 수없이 일어나다 못해 이제는 그저 오줌처럼 아주 느리게 주르르 새어나왔다. 정액은 깨끗한 기저귀에 담겨 어딘가로 옮겨졌으며 그는 그 어느때보다도 거대하게 곤두서 있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 뻣뻣한 것이 진동과도 흡사한 것을 일으킬 때마다 길렌의 온 몸을 파고들며 날뛰었고 눈물과 침을 내놓게끔 했다.
다리가 저렸다. 그는 성당 근처 공원의 벤치에서 일어났다. 해가 막 사라져버린 후의 저녁이라 서늘한 편이다. 아버지는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디아나가 창녀 비슷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계급의 차이를 직시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가로등 하나가 켜질 듯 말 듯 깜박거렸다. 길렌은 손목 시계를 보고 곧 들어가보아야겠다고, 하지만 교회의 종이 칠 때까지만 기다리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그의 장갑과 소매 사이에서 톱니 모양의 바늘땀이 번쩍거렸다. 그가 길렌 쪽으로 검은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아니,” 길렌이 소리쳤다. “당신을 기억하고말고!”
종소리 때문에 길렌은 휙 성당 쪽을 올려다보았다. 벤치 근처의 가로등은 아무래도 고장난 것인지 켜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공원의 다른 가로등은 희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하늘은 아직 청남색에 가까웠고, 검게 뭉뚱그려진 성당의 윤곽이, 덩치에 맞지 않게도 유리 조각상의 파편같은 종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기가 길렌의 몸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의 귀에 노랫소리가 들렸다. 첨탑으로부터,

어떻게 기억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상처가 아니라면
묘석에 새겨지듯이 그러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기억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피가 아니라면
종이에 남은 잉크 자국처럼 그러하지 않았더라면
새겨지고 흘러나왔더라 우리는
모두 한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기억이어라
그의 몸에 온통 새겨진 속죄의 상흔이어라

“그만 해!” 길렌이 소리쳤다. 그러나 노래는 사라지지 않았다. 길렌은 말을 할수록 그에게 더 많은 길을 내어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학창 시절 얼마나 노력했던가? 막대기들과 직선들을 읽지 않으려고. 그것들을 그저 눌어붙어 있는 잉크 자국들로 보려고. 그러나 막대기들은 구불구불하게 글자를 이루어 그의 몸을 관통했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만화경이었던 셈이다. 어떻게 이 모든 일들을 잊고 있었을까?
“그만, 그만 해!” 길렌은 소리질렀다. 공포가 그의 몸을 사로잡았다. 증오가 그의 몸을 사로잡았다. 증오가 그의 몸을 밀어냈다. 그는 토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번에는 그의 똥이 그의 입을 강간하는 것과 같았을 뿐이다.

아버지 죽음이시여

“그만 해!” “나의 피가 사방으로 흘러나갔단다. 가장 먼 과거에까지도. 너희들은 수천개의 수로를 따라 거슬러올라 나를 찾아올 테지만 나는 거기에는 없을 거란다. 수천개의 수로를 따라 거슬러올라 나를 찾아올 테지만 나는 거기에는 없을 거란다. 당신은 거기에 없어. 당신은……” 길렌은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거기에 없어…… 디아나…… 너…… 완전한 너…… 빛과 같은 것…… 빛…… 하지만 거기에 있었어…… 그러니까…… 그만 해!” 길렌은 중얼거리다가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종소리가 그쳤다. 어둠이 완전히 좁혀들어왔고 그의 이마를 사이에 끼운 채 문이 닫혔다.
찌푸린 채 길렌이 얼른 손을 빼자 수면이 찰랑거렸다. 이 개울은 미끄덩거리고 냄새나는 다 썩은 듯한 물덩어리일 뿐이다. 길렌은 손을 탁탁 털어낸 후 바지에 대충 닦았다.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런 곳에서 무얼 그리워하려 했는지 생각했다. 그러자 어쩐지 화가 났고 디아나에게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수면이 바람에 우묵해졌다가 젤리처럼 되튕겨오르면서 이상한 냄새를 뿜어냈다. 지극히 불쾌해져서, 그는 다시 한번 손을 바지에 잘 닦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저린 다리를 펴고 하늘을 보았다. 해가 남쪽에 걸려있다. 식사 시간 까지는 돌아가야 아버지든 어머니든 괴로워하지 않으리라.
‘디아나’ 걸으면서 그는 죄책감 때문에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 이름이 이제 그의 마음 속에 끔찍하게 불러일으키는 시상들에 대해, 개울 수초들의 풍경에 대해 그는 돌이켜보았고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결국 글을 쓰며 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대도 괜찮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런 신문이나 잡지는 애초에 살펴보질 않는다. 그러니 길렌의 필명을 눈치챌 가능성이라고는 사실 없다. 만약 알아차리게 된다 해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테지만, 결국은 싸움을 한바탕 벌이고 나서 완전히 틀어지든지 아니면 결국 아버지가 인정을 해 줄 거라고 길렌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디아나의 일을 겪고 보니 후자의 경우는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여자들을 못마땅해했듯이 그가 부르고 새겨넣을 모든 이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취할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그것들을 창녀 취급을 할 것이다. 사실 길렌은 디아나의 몸을 본 적은커녕, 그러니까 늘 입고 다니는 치마 아래의 종아리, 얼굴, 맨손 이상의 몸을 본 적은커녕 그 드러난 손도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나중에 혹시라도 유명해져서 웬만한 사람들이면 다 알게 되고 말 것이고, 그러면 아버지도 그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를 대비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길렌은 필명을 하나 갖고 싶었다. 수업시간에 책의 여백에 몰래 아무 문장들이나 듬성듬성 써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는 그런 식으로 종이 위에만 흘러나오는 새까만 것으로서 현현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의 조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P로 시작하며 깨끗하게 구부러지는 이름 - 자신의 모습이 그런 잉크 자국으로 후두둑 떨구어지는 것을 상상하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투고할 때도 그렇게 적어 보냈던 것이다. 그 뿐이다.
mirror
댓글 3
  • No Profile
    yunn 08.01.01 00:49 댓글 수정 삭제
    jxk님 글은 신기하게도 독일 느낌이 나요...
    저는 1이 제일 좋군요. 2 뒷부분도 좋고요.
  • No Profile
    배명훈 08.01.04 16:10 댓글 수정 삭제
    전에 리뷰에도 썼지만, 리플 달기가 참 어려워요.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자기만의 미학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가 그 미학을 언어로 정착시켜 주고, 모두가 그 언어로 이 독특한 미학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 No Profile
    ii 08.01.20 11:52 댓글 수정 삭제
    죽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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