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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마을에는 탑이 있다. 마을 외곽에 있는 탑은 가로로는 두 뼘, 세로로는 한 뼘 반인 직사각형의 돌을 쌓아 만든 것으로 높이 20미터, 지름 10미터 가량의 원통형 건물이다. 탑의 상단부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 면이 허물어져 있다. 탑의 주변을 돌다보면 탑에서 떨어져나온 돌조각들이 길게 자란 풀 사이사이에 얌전히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밋밋한 건물이지만 오랜 세월을 지내온 것들에서 느껴지는 애련함이 주변을 휩싸고 있다.
  일 년에 한번, 마을 사람들은 탑에 모여 밤을 보낸다. 주축이 되는 것은 여자들이다. 오랜 전통에 맞춰 여자들은 아름다운 옷을 꺼내 몸에 두르고 남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탑으로 향한다. 사람들은 탑에 모여 불을 지피고 음식과 술을 나눈다. 그 사이 가장 아름답게 꾸민 여자가 맨발로 탑의 계단을 오른다. 보통은 성년을 앞둔 마을 안의 소녀가 그 역할을 맡지만 오늘은 축제에 참여하고 싶다고 찾아온 외지인이 주인공이다. 그는 향유와 파란 보석으로 몸을 단장하고 머리를 천으로 가린 채 탑으로 들어간다.
  마침내 밤이 깊어지고 음식과 술이 바닥을 보이면 남자들이 불을 지키고 여자들은 춤을 춘다. 발소리, 옷이 허공에 나부끼는 소리, 숨 소 리가 불이 이글거리는 소리에 섞여 탑을 뒤흔든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간간이 춤을 멈추고 여자들이 부르는 짧은 노래만이 허락되어 있다. 춤추던 자들 중 한 명이 선창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머지가 화답한다.
  '여기에서 지금을'
  그들은 다시 춤을 추고 지치면 멈춰 노래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스스로 대답한다.
  '여기에서 지금을'
  질문이 바뀌는 일은 없다. 대답이 바뀌는 일도 없다. 그들도, 그들의 할머니도, 할머니의 할머니도, 대를 거슬러 오르고 올라 탑돌이가 처음 시작되었던 때에도 같은 노래로 화답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탑은 먼 옛날, 신과 정령들이 인간과 가까이 교통했던 시절 이 곳을 다스렸던 왕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왕은 하늘에 신들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고 믿었다. 그는 높은 탑을 건축하고 정결한 소녀를 뽑아 홀로 탑에 오르게 했다. 소녀가 탑에 오르는 동안 병사들은 아무도 탑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경비를 단단히 했다. 하루가 꼬박 지나도 소녀는 내려오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도 소녀는 내려오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왕은 사람을 시켜 탑에 오르게 했다. 그는 하루만에 탑에서 내려와 위에 있는 것은 창공과 구름, 그를 훑는 바람뿐이라고 전했다. 아무도 소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무수한 추측이 오가는 가운데 나이 든 무녀가 입을 열었다. 무녀가 말했다. 소녀는 신들의 비밀을 엿보았고 그에 화가 난 신이 독수리의 형상을 한 바람의 정령을 보냈다고. 정령은 소녀를 나꿔채 탑 밖으로 떨어뜨렸고 소녀는 허우적대다가 신들이 인간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하늘을 가린 천을 움켜쥐었다고. 왕이 물었다. 그렇다면 신들의 비밀은 알 수 없는 것이냐. 무녀가 대답했다. 손으로는 미혹을 붙잡고 눈은 하늘의 비밀을 향한 소녀의 꿈을 점쳐 그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면 신들의 비밀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이 든 무녀가 소녀의 꿈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제대로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다. 묻는다 해도 돌아오는 것은 한껏 부풀린 뺨과 둥그렇게 말려 올라간 입술뿐이다. 대신 그들은 노래한다. 여기에서 지금을. 이 순간 여기에서 신의 비밀이 행해지고 있다고.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추측들이 이 이야기에 덧붙여진다. 노래하고 춤추는 그들도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른다. 노래가 끝나고 누군가가 속삭인다. 소녀는 탑의 가장자리를 거닐다가 탑이 무너지는 바람에 떨어진 거야. 자신의 광휘에 어둠이 드리우는 것을 저어한 왕이 몰래 소녀의 시체를 치운 것이 틀림없어. 누군가가 웃으며 속삭인다. 아니야. 탑을 지키던 병사중의 하나가 소녀를 사랑했고 소녀가 탑에 오르기 전에 설득해서 둘이 함께 도망쳤을 거야. 다른 사람이 입을 연다. 이건 어떨까. 소녀가 하늘을 올려다 본 순간 신의 눈이 소녀의 눈과 마주쳤고 신은 소녀에게 반해서 하늘의 궁전으로 데리고 간 거야. 그러나 춤과 노래와 수많은 전설의 근간이 된 탑의 건설과 소녀의 부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을 사람들은 동이 트기 전에 자리를 떠난다. 탑에 올라간 사람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뜬 뒤에 몰래 홀로 집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아침이 되면 머리장식을 풀고 옷을 갈아입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른 이와 어울려 탑을 확인한다. 탑 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면 축제는 끝이 난다.
  사람들은 탑 근처에 모인다. 그러나 축제는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탑과 그 아래 누워 있는 여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서로를 질책하거나 변명하는 사람은 없다. 말없이 시체를 치우고 흔적을 지운다.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정중하게 여자의 시체를 매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며칠 뒤, 여자의 친인들이 마을을 찾아와 울음과 분노를 터뜨렸다는 것이 중요하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탑의 주위에 울타리가 생긴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축제가 금지된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침묵 속에서 지켜본다. 탑을 둘러싼 새로운 전설이 생겨난다. 탑에서 사람을 투신시켜 하늘에 제물로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보이지 않는 눈과 옹그라진 손을 지니고 찾아와 탑에서 목숨을 끊은 방문자의 이야기일 수도, 혹은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에 분노해 영원한 침묵의 저주를 내린 왕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오랜 전통에 대해서도, 신들의 비밀에 대해서도, 탑과 소녀에 관해서도. 그저 웃는 눈과 입으로 마주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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