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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좀비와

2003.08.30 01:4108.30

  눈을 뜨자마자 머리 위로 뭔가가 날아왔다. 공기가 찢기는 소리, 육박해오는 기세, 그 위에 실려있는 살의, 그리고 핑- 하고 긴장하는 내 몸. 생각은 필요치 않다. 신경 한 올 한 올이 일어서고, 근육 줄기 줄기가 팽팽해지며 전율이 척추를 타고 흐른다.
  쩡 -
  듣기 싫은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튀고, 그와 동시에 눈앞의 안개가 걷힌다. 번개치는 밤처럼 한순간에 시야가 밝아진다. 발 밑으로 느껴지는 단단한 바닥. 확 끼쳐오는 땀과 피와 금속의 냄새. 젠장. 기왕이면 일이 다 끝난 다음에 깨어날 것이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경우에는 기면증 발작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멀쩡한 정신일 때보다 훨씬 안전하다. 일시적인 가사 상태에 빠져 ‘나’와의 연결이 끊기는 순간 내 몸을 조종하는 권한은 제 2의 두뇌로 넘어가고, 고맙게도 그 멍청한 회로가 할 줄 아는 일이라곤 이 몸을 보호하는 것뿐이다. 다만 문제는 그럴 때의 나는 공격해오는 적만 죽이려 들 뿐, 건드리지 않는 상대는 무시한다는 - 그러니까 동료가 위기에 처하든, 목적 달성이 실패할 위기에 처하든, 후퇴 명령이 떨어지든  아랑곳하지 않고 원래 위치만 지킨다는 건데, 뭐 발작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미리 알려두기만 하면 대개는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핸디캡 하나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내 핸디캡에는 나름 이점이 있었다. 심지어 어느 재수 없는 팀원은 발작을 일으킨 나를 선봉에 내세워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망할 자식. 이후에도 그런 짓을 한 놈은 있었지만 아직까지 살아있는 건 하나 뿐이니 욕은 모두 녀석에게 퍼부어 주기로 하자. 오래 오래 살아라, 미친놈아.
  하지만 그런 즐겁고 유쾌한 생활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어느 날, 기절한 듯한 잠에서 깨어 보니 이쪽이고 저쪽이고 시체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어느 미친 새끼가 회로에 장난을 쳐놓는 바람에 발작이 끝나고도 10시간 가까이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회로에 붙어있던 기록장치도 망가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나는 문제의 정신나간 놈으로 추정되는 시체를 걷어차 주고, 시체들을 헤집어 목적한 물건을 찾아내고, 이 쪽 저 쪽 할 것 없이 한꺼번에 태운 잿더미를 배에 싣고 돌아갔다. 같이 술도 마시고 포커도 치던 놈들이긴 하지만 썩어가는 시체더미에 둘러싸여 2주를 항해할 순 없지 않은가. 어쨌든 그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고, 아슬라에 돌아온 나는 영웅이라는 칭송과 의리 없는 개자식이라는 욕설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양쪽 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기로는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언론이 뭐라고 하건 말건 녀석들의 몫으로 정해져 있던 포상금까지 독식하고, 미련 없이 은퇴했다. 그걸로 내 짧은 용병 생활은 완전히 끝났다.
  아니, 잠깐.
  그렇지. 난 은퇴했잖아? 대체 왜 이런 상황에 처한 거지?
  연속으로 내리 찍히는 도끼 날을 받아내며 머리 속에 혼란이 일었다. 귓가에 나방이 날아다니는 것 같은 성가신 느낌. 웅성거리는 소리.
  누군가가 내 몸을 밀치고 지나갔다.
  덕분에 막 내 머리를 쪼개려던 도끼 날을 피해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눈을 몇 번 깜박여야 했다. 한 번 깜박. 뭐야, 꿈이었나? 두 번 깜박. 그렇지. 여긴 공중철 안이로군. 세 번 깜박. 그런데 왜 다들 옆칸으로 도망간 거지?
  그리고 나서야 머리가 맑아졌다. 10년 사이 반응속도가 형편없어진 것을 실감한다.
  여기는 아슬라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해서 아야사 산맥까지 가는 공중철 2호선 안이고, 시간은 오전 10시이며, 나는 출근하던 길에 깜박 졸았고, 지금 이 칸에는 나말고 사람이라곤 없다. 모두 옆칸으로 몰려가서 유리 너머로 이쪽을 들여다볼 뿐. 나는 유리에 코를 납작하게 붙인 채 열심히 이쪽을 구경하고 있는 꼬마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내가 처한 곤경을 돌아보았다.
  좀비였다.
  어떻게 좀비가 공중철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보다, 좀비를 보고 도망치는 사람이 아직도 이렇게 많다니 놀랍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정도에 도망치는 사람들이라면 요 10년 사이에 다른 곳으로 도망가거나, 사냥 당하거나, 조각품이 되거나, ‘벌레’의 번식처로 전락하거나, 죽었을 줄 알았건만. 하긴, 그렇게 보기에는 남은 인구가 꽤 많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좀비의 위험 등급은 그리 높지 않다. 그저 비위가 좀 상하고, 천에 하나 꼴로 감염의 위험이 있을 뿐......무심히 창밖만 바라보던 좀비가 햇빛을 피해 몸을 틀었고, 나를 인식하고, 똑바로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 이번 정류장은 아슬라 시청, 아슬라 시청입니다. 공중철 1호선, 지하철 3, 4호선으로 갈아타실 승객은 이곳에서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몇 초나 지났을까. 때맞춰 나와준 안내방송 덕분에 겨우 붙잡힌 시선을 뗄 수 있었다. 등골이 서늘했다. 내 판단이 틀렸다. 옆칸으로 도망친 사람들은 <피의 10년>을 살아낼 만한 눈치가 있는 이들이었다. 이건 흔한 좀비가 아니라 ‘원본’ 좀비였다. 산채로 생명력을 빼앗겨 시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삶을 이어가는 존재... 내 시선은 뒤늦게 바닥에 말라붙은 생명의 흔적을 잡아냈다. 고양이, 아니면 개였을까? 보기 흉한 털뭉치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문득 좀비가 입을 열어 곰팡이 냄새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어쩔, 없, 요. 갑, 빛이...”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좀비의 약한 생명력과 세포재생이 불가능한 피부로는 쏟아지는 자외선을 감당할 수 없다. 좀비들의 평균수명이 짧은 것도 그래서였다. 밝은 햇빛과 사람다운 삶에 대한 그리움, 흉측하게 변해버린 제 몰골에 대한 혐오감이 그들을 낮의 태양 아래로 내몰았고, 다른 방법으로는 죽을 수도 없는 그들은 그렇게 자살을 감행하곤 했다. 가끔이지만 때로는 용기를 내기 위해 무리지어 지하에서 뛰쳐나온 좀비들이 평화로운 휴일 공원을 점거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그럴 때면 시청에 항의가 빗발쳤고, 급파된 소방대는 잿더미를 쓸어모으고 공원을 소독해야 했다. 하지만 ‘원본‘은 그들보다 강하고, 그들보다 영리했다. 생명력을 잔뜩 빨아들인 다음 모자를 푹 눌러쓰고 코트를 둘러 몸을 가리고서 햇빛과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 공중철에 숨어든 것을 보면. 좀비 특유의 곰팡이 냄새는 가릴 수 없었겠지만, 후각 신경이 없는 지하철 - 공중철 환승구간쯤은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으리라. 물론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고, 멀찍이 피해 앉았을 것이며, 마침내 갑자기 창을 뚫고 들어온 햇빛에 얻어맞은 좀비가 가까이에 있던 동물을 잡아 말려버리자 사태를 알아차리고 일제히 옆칸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동물을 희생시켰다고 정상참작의 여지가 많다고는 볼 수 없었다. 동물이 과연 사람보다 덜 중요한가 하는 문제는 일단 제쳐두더라도 저 놈은 최소한 수십, 아니 어쩌면 수백의 멀쩡한 사람을 좀비로 만든 원흉일 것이다. 조금 전만 해도 눈을 마주친 게 내가 아니었다면 벌써 좀비화했을 터. 이 순간만큼은 내 유전자의 6.1%를 차지하고 있는 가소이의 피에 감사했다. 가소이 조상 때문에 살짝 돌기는 했지만 그래도 좀비보다는 미치광이가 낫지.
  그러나 조상님의 피가 ‘원본’의 시선만이 아니라 접촉으로부터도 나를 지켜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출근하던 길이라 변변한 무기도 없고, 그렇다고 소탕반을 부르기엔 일이 귀찮아질 것 같고...저녁식사 시간까지는 집에 돌아가고 싶단 말이지. 나는 눈을 들어 좀비를 다시 보았다. 그도 나를 마주보았다.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되겠지만, 어쩐지 내가 쉽게 좀비화하지 않는 것을 알고 기뻐하는 것 같았다. 햇빛에 닿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내가 앉은 쪽으로는 건너오지 않는 좀비를 보며 물었다.
  “햇빛이 그리웠나?”
  침묵. 역시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건가 의심스러웠지만, 좀비는 한참만에 고개를 끄덕여 답을 대신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휴대전화를 켰다. 개인비서인 유리는 이미 내가 반경 내에 들어갔다가 지나친 것을 감지하고 대기 중이었다. 나는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언제 출근할 수 있을지 모르니 오늘 일정은 모두 취소하라고 일렀다. 유리는 일정 취소에 비하면 내가 원본 좀비와 단 둘이 공중철에 타고 있다는 것쯤은 별일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곧장 스케줄 정리에 들어갔다. 나는 끊기 전 충동적으로 덧붙였다.
  “소탕반은 따로 파견하지 말아요. 필요하면 다시 연락할 테니까.”
  유리는 얼굴을 다시 내 쪽으로 - 정확히는 화면 쪽으로 돌렸고, 그 얼굴에는 함께 일한 2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래봐야 1초 정도긴 했지만.
  “알겠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접촉을 끊은 다음, 건너편에 앉은 좀비를 다시 보았다. 좀비는 넋을 잃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죽음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햇빛이 그리워서 공중철까지 숨어들었다면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내 판단이 틀렸다면? 혹은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손을 뻗어 내 생명력을 빨아들이려 한다면?
  그럼 죽는 거지 뭐. 어쩌겠어.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생각해보면 이것도 오랜만의 외유 아닌가. 나는 계획에 없던 휴가를 즐겨보기로 마음먹고 좌석에 다리를 뻗으며, 스쳐 지나가는 도시를 내려다보느라 정신이 없는 좀비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비스듬히 보이는 녀석의 얼굴윤곽은 온전하다. 잿빛으로 죽은 데다 비늘처럼 올올이 일어난 피부에는 실핏줄인지 금인지 모를 푸르스름한 선이 빽빽하고, 손톱도 체모도 없다. 하지만 반투명한 껍질 같은 것에 싸인 눈동자도 박혀 있고, 머리카락도 붙어있고...색은 죽었지만 입술 비슷한 것까지 남아있다! 어눌하기는 해도 말을 할 수 있는 걸 보면 피부 안쪽도 거의 온전하겠지. 확실히 다른 좀비들과는 달랐다. 좀비 소탕은 내 소관이 아니지만, 보고서는 몇 번 본 적이 있다. 보통 좀비는 발병 일주일만에 인간의 형체를 잃는다. 죽은 세포에 곰팡이가 앉아 정체모를 가루를 흩뿌리고 다니거나 몸에서 계속 세포가 흘러내리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았다.
  그런 혐오스러운 일도 다 이런 원본 좀비들의 존재 때문이라는 건 알지만,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는 않았다. 햇빛에 부서지는 모습은 기꺼이 지켜봐주겠지만 말이다.
  침묵 속에서 공중철은 아슬라 시 북쪽 끝으로 달려갔다. 멀리 보이던 아야사 산맥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나와 좀비가 탄 객차 출입구는 폐쇄되어 있었고, 옆칸에 탄 사람들은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우리를 주시했다. 나는 햇빛 아래 웅장한 자태를 빛내는 아야사 산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려는 거지?”
  좀비는 천천히 나를 돌아보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아야사 산맥?”
  녀석은 고개를 저으며 계속 산맥만 가리켰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 차는 산맥 중간까지밖에 안 가는데.”
좀비에게도 표정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때 처음 알았다. 보통 사람과 비슷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건 표정이었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녀석은 절망한 얼굴로 나를 보며 “어, 어, 어...”하는 소리를 내다가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크고 가깝게 다가오는 능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녀석이 아슬아슬하게 햇빛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반투명한 껍질 안쪽에 있는 눈동자의 붉은 빛이 드러났다. 이건 좀비에게 표정이 있다는 사실보다 더 믿지 못할 일인데.
  설마, 색소부족 때문이겠지. 가소이 인은 좀비화하지 않는다. 피를 빨리거나, 벌레로 변하거나, 벌레의 번식처로 쓰이는 일도 없다. 가소이 인은 독버섯과 같았다. 본능이 살아있는 동물이라면 감히 입을 대지 않는 아름다운 독버섯.
  그래도 왠지 가슴이 뛰었다. 서류일을 오래 해서 이젠 스릴과 공포를 구분하기도 힘들었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시 능선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 산맥 너머엔 가소이의 옛 도시가 있다.
  “설마 가소이에 가고 싶다는 건 아니겠지?”
  반신반의하며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에 좀비는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봐, 그 흉물스러운 얼굴로 강아지같은 눈 해봤자 전혀 귀엽지 않아.”
  공중철은 아슬라를 뒤로하고 산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양 옆 창에는 나무와 바위가 들어차 하늘마저 가리고 있었다. 마지막 역이 멀지 않았다.
  “...골치아프군.”
  그냥 소탕반을 부를 걸 그랬나. 나는 의자에 길게 드러누우며 미친놈의 연락처를 찾아 머릿속을 뒤졌다.

  “미친놈은 어디 가고?”
  호출에 응해서 나온 검고 각진 얼굴의 거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마를 찌푸리지도, 눈썹을 치켜올리지도 않았지만 화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손을 뻗어 한참 위에 있는 어깨를 두드렸다.
  “뭐야, 경애하는 주인님을 무시해서 열받았어?”
  “당신, 방송에서는 점잖게 말하더군.”
  그는 내 도발을 덤덤히 무질렀고, 나는 히죽 웃었다.
  “시청에서 일하려면 연기수업도 받아야 하거든.”
  거한은 짧게 웃더니 지붕 밑 그늘에 웅크리고 앉은 좀비를 돌아보았다. 좀비는 시선을 땅에 붙박고 있었다.
  “흡혈귀도 아니고 좀비라니. 이제껏 본 중에 가장 괴상한 취향이군.”
  “내가 좀 비범하긴 하지.”
  “‘도시’까지 혼자 운전할 수 있겠소?”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검은 얼굴의 거한은 내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자리를 비운 ‘미친 놈‘ 대신 위치추적 교란기와 햇빛차단재를 덧댄 자동차를 내어주고, 좀비가 지붕 아래 그늘과 자동차 사이 손바닥만한 햇빛의 영역을 지나갈 수 있게 같이 천을 들어주었을 뿐이다. 나는 고맙다고 하는 대신 돌아서는 거한의 등에 대고 최대한 시끄러운 경적 소리를 울려주었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고 애꿎은 새들만 놀라 날아올랐다.
  이상한 여행이었다. 이 화창한 날, 옆자리엔 좀비를 앉히고, 행여나 닿을까 싶어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장갑을 낀 채 울퉁불퉁한 오솔길을 운전하는 기분이라니. 꽃향기는 코를 간질이고, 어디선가 새들과 벌레들은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부르고, 나뭇가지는 채찍처럼 목을 후려치고, 돌부리에 걸려 차가 덜컹일 때마다 옆자리에 앉은 좀비의 몸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색 가루가 떨어지고...
  죽여주게 상쾌하잖아?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더 가관이었던 건, 옆에 앉은 좀비가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노래를 그치고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뜨렸다. 운전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좀비는 어리둥절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힉힉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저었다.
  “너, 설마 가소이 인이냐?”
  결국 그 질문을 던지고 만 건 30분쯤 지나, 오솔길이 끝나고 산맥 내부를 관통하는 터널이 가까워질 때였다. 좀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수월한 포장도로에 들어서며 계속 지껄였다.
  “난 사실 가소이는 아냐. 16분의 1이거든. 아슬라에선 8분의 1 잡종까지만 가소이로 구분해서 엄중 감시하지. 간발의 차이였다고나 할까. 같은 정신병력이 있어도 가소이냐 아니냐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진다고.”
  “정, 병력, 무...”
  좀비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대화를 시도해왔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기면증이 있거든. 기면증, 뭔지 알아? 아무 데서나 아무 때나 픽 쓰러져 잠드는 병이야. 말은 잠든다고 하지만 사실 그게 자는 건지 잠시 죽어있는 건지 알 게 뭐람. 지금도 증상은 그대로지만 보조장치를 달아서 사는 데 별 지장은 없지. 아아, 그것 말고 더 어렸을 때 신기루 증후군도 앓았어. 신기루 증후군, 이름 웃기지? 더 어려운 말을 좋아하는 작자들은 결핍환상물질화증후군이라고도 부르지. 더 쉬운 말을 좋아하는 것들은 그냥 헛것을 본다고 하고. 사람들은 그런 건 없다면서 호들갑을 떨고 약을 먹이고 무슨 문제가 있냐면서 상담을 해댔지. 덕분에 나아버렸어. 특별히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행복하게 살게 놔두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지금도 가끔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 환상이 실재고 사람들 때문에 내가 그걸 죽여버린 걸지도 몰라......”
  좀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녀석이 알아듣기는 하는지, 아니 애초에 듣고는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상관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래서 이렇게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니까.
  나는 한참 상관없는 이야기를 떠들어대다가 문득 물었다.
  “너, 진짜 가소이 인이냐?”
  “도시엔 왜 가려는 건데?”
  녀석은 검은 입술을 금붕어처럼 뻐끔거렸고, 나는 녀석의 대답을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태양은 불길을 죽이고 공기는 무거워진 오후, 산맥을 관통하고 나면 멸망한 가소이 왕국의 수도까지 허허벌판만 쭉 이어졌다. 풍요로운 땅이었지만, 이곳을 개척하려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씨만 뿌려놓으면 쉽게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 만큼 기름진 흙인데도 어쩐지 이 땅은 황무지요 사막 같았다. 가소이 왕국이 아직 명맥을 유지하던 때에도 왕래하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멸망한 후에는 그늘이 더욱 짙어졌다. 아마 지금보다 인구가 늘고 영토 전쟁이 치열해지더라도 이 땅을 건드리려 드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곳에 ‘도시’가 있는 한에는.
  풍요롭지만 이상하게 고요한 들판이 끝을 보이고, 앞에 은빛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저편으로 ‘도시’의 윤곽이 보인다.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하고 싶지만, 이미 뱃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오한이 치밀었다. 사람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맞닿뜨렸을 때 보이는 반응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했던가. 아니, 그렇지 않다. 이해할 수 없다고는 해도 죽음은 늘 곁에 있는 것, 자연스러운 것, 현실이다. 나라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알 때에 비유하겠다. 결코 통제할 수 없는 광기의 파도에 휩쓸리기 직전, 그 때.
  그래도 나는 운전을 계속했고, 차는 호수를 돌아 ‘도시’로 달렸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건만, 환한 햇살마저 어둡게 느껴졌다. 목적지가 가까워올수록 내 속은 차갑게 가라앉는데 좀비는 흥분해서 엉덩이마저 들썩였다. 정말로 여기가 고향인 걸까? 가소이 인은 좀비화하지 않는다는 건 학자들의 많고 많은 헛소리 중 하나인가? 아니면 가소이 인은 다 ‘원본’ 좀비로 변하나? ‘도시’의 윤곽은 또렷해졌고, 이제는 허물어진 탑과 들쭉날쭉으로 부서진 궁전, 거의 주춧돌 높이까지 내려앉은 신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폐허에서 꿋꿋이 제 존재를 주장하는, 그림자도 보였다.
  ‘도시’의 증거는 이것이었다. 그림자. 언제나 짙고, 또렷하며, 완전한 그림자.
  허물어진 탑도 그림자만은 예전의 늘씬한 자태를 뽐내고, 들쭉날쭉하게 부서진 궁전도 반듯한 직선과 우아한 곡선을 자랑했으며, 주춧돌 높이까지 내려앉은 신전도 옛 위용을 간직했다. 그림자만은 가소이 왕국의 전성기를 보여주었다. 이곳의 그림자는 흐르는 시간을 무시했고, 그림자는 사물의 상(相)이라는 물리법칙도 이곳에서는 힘을 잃었다. 여기에서 가소이는 여전히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노라 선언했고 그 소리없는 외침은 아슬라로, 더 멀리 다른 도시국가들로 퍼져나갔다.  
  내 16분의 1은 감동하여 고개를 숙였고, 나머지 16분의 15는 오한에 떨며 몸서리를 쳤다.  어쨌든 16분의 16은 말없이 차를 몰아 ‘도시’ 한가운데 광장까지 들어갔다. 좀비가 긴 탄성 혹은 비명을 터뜨렸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말라붙고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분수대가 있었는데, 분수대의 그림자는 반투명한 물줄기가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비춰주었다. 그림자 속의 분수는 높아졌다 낮아지며 사방에 미세한 물방울을 흩뿌렸다. 그림자에 눈을 박고 있으려니 환영이 몰려왔다. 이 광장이 사람으로 가득하고, 활기차고 시끄러웠던 시절의 환영.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이나 앉아 있었을까. 좀비가 문에 손을 올렸고 그 동작에 나도 최면에서 깨어났다.
  저 좀비는 죽기 전에 이걸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던 걸까. 아슬라의 좀비들이 죽기 전에 풀과 나무와 동물과 사람들을 보고 싶어하며 공원에 뛰어드는 것처럼?
  좀비가 드디어 죽으려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면서 동시에 묘하게 섭섭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현명한 행동이 아닌 줄 알면서도 따라 내렸다. 물론 눈으로만 작별 인사를 마치고 바로 다시 차에 탈 생각이었다. 문도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자를 피해 바닥에 발을 디뎠을 때, 휴대전화에 신호가 들어왔다. 차단기를 달아놓았는데 누가? 이 ‘도시’에서 들리는 전화벨소리란 섬뜩하기까지 했다. 나는 숨을 멈춘 채 전화기를 켰다. 미친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 다른 볼일을 좀 보느라 소식 듣는 게 늦었다. 좀비와 여행이라니, 그렇게 죽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어째서인지 맥이 쭉 빠졌다. 유령의 전화라도 받을 줄 알았던 걸까. 나는 키들키들 웃으며 입을 열었다.
  “......”
  그러나 말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발작이었다. 2년만에. 처음엔 화면이 꺼지고, 조금 후에 전원이 나간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었다.
  좆됐구나......하는 생각.
  정신을 차렸을 때 제일 먼저 들린 것은 미친놈의 목소리였다.  
  “어이, 엘! 정신차려!”
  “......몇 분 지났어?”
  “42분. 괜찮아?”
  “아아. 당연하지. 잘 알잖아, 내가 어떤지.”
  글쎄. 이 경우에도 자기 방어가 통했을지 당연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죽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좀비가 서 있던 위치부터 건너다보았다. 그곳엔 아무 것도 없었다. 좀비의 시체 - 혹은 잔재는 나와 무척 가까운 곳에 누워 있었다. 해질녘이 가까워오면서 움직이기 시작한 공기에 재가 조금씩 흩날렸다.
  그가 햇빛 속에서 죽었는지, 아니면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내게 손을 뻗었다가 내 손에 죽었는지 알아낼 방법은 없다.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거짓말을 했다. 10년 전, 잠에서 깨어났을 때 기록장치는 아직 무사했다.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보았고, 기록장치를 부숴 버렸으며, 흔적을 없애기 위해 시체를 모조리 불태웠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는 회로에 기록장치를 달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전히 알 방법은 없다. 과연 내 피에 흐르는 가소이의 광기가 ‘원본’ 좀비와의 접촉마저 이겨낼 만큼 강한지 어떤지도.
  어쩌면 나도 이미 ‘원본’으로 변했는지도 모르지.
  혹은, ‘원본’의 바이러스가 잠재해 있다가 어느 순간엔가 튀어나올지도.
  아직 켜져 있던 전화 너머로 미친놈이 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나는 조금 전에 이유를 알았다고 말하는 대신 그냥 웃었다.
  “내가 언제는 생각이란 걸 했던가.”
  연락을 끊으며 나는 무심히 좀비의 잿더미를 걷어찼다. 청회색 재가 휘날려 내 얼굴을 때렸다. 덕분에 눈물이 몇 방울 새어나왔다. 정말 웃기는 일이군. 함께 웃고 포커를 치고 술을 마셨던 친구들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했던 내가 졸지에 좀비를 위해 울어준 셈이니.
  10년만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한 때 그곳에 살았던 사람은 모두 시간 사이에 묻히고, 건물은 모두 무너졌어도, 그림자만은 온전히 옛 영광을 보존하고 있는 도시, 가소이에서.
mirror
댓글 4
  • No Profile
    필바라 03.08.31 08:19 댓글 수정 삭제
    ... 오오
  • No Profile
    해랑이 03.09.03 16:23 댓글 수정 삭제
    아쉬움이 남는 단편이군요.
    문장이나 구성은 탄탄한데 내용에서 뭔가 빠진 것 같습니다.
  • No Profile
    moodern 04.02.11 21:26 댓글 수정 삭제
    다시 봐도..멋지군요. 시작하는 방법, 결말을 맺는 방법,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이것만 잘되도 꽤 괜찮은 느낌이
    나죠. 멋집니다.
  • No Profile
    askalai 10.06.21 11:33 댓글 수정 삭제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작가 입장에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은 단편이랍니다.
    - 7광년 떨어진 미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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